뽕나무벌 이야기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2
천쯔두.주샤오핑 지음, 양졘 각색,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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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희곡은 주샤오핑이 쓴 <뽕나무벌 이야기>, <상원>, <복림과 그의 아내> 세 편의 소설을 바탕으로 천쯔두, 양졘이 가세해 희곡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의 현대사를 산 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1950년대 초반 출생인 이들 역시 문화혁명을 거쳐야했으며, 지식인들의 필수과목이었던 하향下鄕, 즉 시골에서의 현장체험을 겪어야 했기 때문에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할 수 있었으리라. 문화혁명과 벽촌에서 살아야 했던 경험은 이들에게 반어적으로 문학의 자양분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겠다. 주샤오핑 또한 하향 기간에 자신이 체험한 황토고원 마을의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었다고, 역자의 해설에 쓰여 있다.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곳이 장안, 지금 이름으로 서안을 성도省都로 하는 섬서성 북부의 황토고원. TV 다큐멘터리를 유심히 보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 사람들 가운데 일부 주민들은 황토 언덕에 굴을 파 굴 속에서 기거하기도 한다. EBS든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이든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중국의 7대 주석 시진핑도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하방을 간 곳. 그곳과 거기 사람들이 무대와 등장인물. 거대한 황토고원은 수천 년 동안 침식하면서 황하를 통해 서해에 건강한 미네랄을 제공해 풍성한 어족을 보유하게 만들었으며, 진짜 선조, 원조 중국인들이 만든 황하문명의 발상지란다. 그리하여 이들은 노래하기를,


 중화가 황토의 대지 위에 강생하여
 용의 후손이 이 땅 위에 퍼졌네.
 우(禹) 임금의 발자취가 여기에 가득하고
 무왕의 전차가 이 땅 위를 내달렸네.


 우 임금은 요순시대 가운데 한 명인 순 임금의 명을 받잡고 황하의 치수 사업에 큰 공을 세워, 순 임금의 대를 잇는 왕의 위에 올라 나라 이름을 하夏라 칭한 사람이다. 무왕은 은殷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紂왕을 죽이고 최초의 봉건왕국 주周나라를 세운 인물. 즉 진정한 중국의 정통성이 바로 자기들의 땅에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희곡 작가들은 이 드라마에 독특한 장치를 만들었으니 바로, 코러스의 사용. 연극에서 코러스라 함은 다수의 등장인물이 무대에 집단으로 등장해서 분위기에 맞게 대사나 필요하다면 ‘코러스’란 뜻 그대로 합창도 하며, 심지어 집단 속에서 특정한 몇 명이 실제로 역할을 맡아 작은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을 담당하기도 한다. 현대적 연출이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소포클레스에서 내가 본 코러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해 세 명의 자식을 낳았다는 걸 알고 무릎을 꿇고 앉아 브로치 핀으로 자신의 눈알을 찔러 피를 흘리는 장면에서조차 검은 옷을 입은 코러스들은 무대 위에서 그대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스 고전 작품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 코러스를, 누천년이 지나 20세기 후반에, 황하문명의 발상지를 무대로 하는 중국인의 작품에 차용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했다.
 작품의 프롤로그도 무척 재미있다.
 하늘에 비구름이 잔뜩 몰려왔나보다. 마을 촌장이 시끄럽게 징을 치며 등장해 동네사람들을 불러 모아 징, 북, 심지어 세숫대야 등의 가재도구를 두드리며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친다.
 “검은 용아, 검은 용아, 그냥 지나가려무나.
 남쪽에나 가서 내리거라.“
 용은 비를 부르는 영물. 비를 내리려면 여기서 내리지 말고 남쪽 아웃마을에 가서 내리라는 뜻. 남쪽의 이웃마을 사람들 역시 징, 북, 가재도구를 두드리며 뽕나무벌 사람들의 심보가 고약하다고 욕하면서 소리소리를 지른다.
 “검은 용아, 검은 용아, 그냥 거기 멈추려마.
 북쪽 거기에 멈춰 서서 내리거라.“
 큰 소리를 내면서 비를 물리치는 재미있는 인류학적 장면. 시끄럽게 난리를 치면 구름, 즉 검은 용이 적어도 이 땅 위에선 오줌을 누지 않을 거란 희망사항.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중국판 님비. 다 좋은데, 우리 집 뒷마당에선 안 된다는 거. 실제로 뽕나무벌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웃, 주민들만 보호하고, 권력 없는 외부인, 힘 못 쓰는 삯일꾼, 다른 곳에서 팔려 시집 온 젊은 여자 같은 이들을 핍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외부인 가운데서도 지구 혁명위원회의 윗대가리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높은 권력자의 (하향 내려온)아들은 예외다. 역시 권력이 제일 중요한 것. 이들은 자신과 뽕나무벌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상위 권력자들에게 아첨과 뇌물공여와 굽실거리기를 멈추지 않지만, 자신들보다 열등한 외부인한테는 결코 자비롭지 못하다.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공산주의 혁명이 완수되고 공평한 노동과 분배가 이루어지지만 여전히 봉건적 관습이 퍼렇게 살아있는 중국의 벽촌. 당연히 해피 엔드는 아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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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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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두 명의 영국남자가 있다. 찰스 디킨스하고 서머싯 몸. 이들의 공통점은? 얘기 하나는 진짜 재미있게 만든다는 거. 오늘은 몸에 관한 이야기니까 후자에 국한해서 얘기하자. 아, 여기서 몸은 body가 아니라 William Somerset Maugham을 일컫는다. 이하 몸도 마찬가지.
 영문학자 동무님한테 들었는데, 몸이 자칭 “최고의 2류 작가”란다. 전적으로 동의. 최고의 2류면, 웬만한 1류는 그냥 찜 쪄 먹는다는 거 아냐? 여기서 몸이 말하는 1류는 뭘까? <신곡>이나 <파우스트> 또는 <안나 카레니나>를 쓴 작가들을 지칭하는 거 아닐까? 스스로 그들과 비교하기 좀 뭐하니까 조금 낮춰서 “최고의” 2류라고 선언함으로써, 나름대로 가오를 세웠으리라. 시선을 영국문학으로만 돌려보면, 몸은 자신을 최고의 2류라고 함으로써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다. “셰익스피어는 모르겠고, 어쨌든 그이 다음으론 내가 최고다!” 사실 몸의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널리 읽히는 것들을 보면, <인생의 굴레에서>, <달과 6펜스>, <면도날>, 그리고 이번에 읽은 <인생의 베일> 정도. 뭐 검색해보면 다른 작품들도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몸의 팬 또는 지지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씀이긴 하나, 이 작품들을 위에서 거론한 <신곡>, <파우스트> 등과 어깨를 견준다고 얘기하긴 조금, 아주 조금, 그렇지 않나? 아, 오해 마시라. 난 <신곡>과 <파우스트>를 위대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다시는 읽지 않을 책으로 일찌감치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몸의 소설들은 그렇지 않다. 새털 같은 여생 중에 하필 심심한 날이 있으면 기꺼이 책장에서 다시 꺼내 읽어볼 만하니까.
 이 책도 재미 측면에선 시작부터 보통이 아니다.
 두 영국인, 한 명은 ‘키티’라는 이름의 스물여섯 먹은 새댁. 또 한 명은 마흔 살의 건장하고 멋지게 생긴 찰스 타운센드. 현재 직함이 영국령 홍콩의 부총독. 못하는 운동이 없고, 진정한 춤꾼에다가 능수능란한 화술을 겸비한 최고의 남자, 라고 흔히들 여자가 오해하는 멋쟁이 신사. 두 남녀의 공통점은 영국의 자본주의가 만든 최고의 속물들이란 거. 한낮의 키티의 침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몸body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가, 엑스터시의 변곡점에서 그만 키티가 누군가에 의하여 닫힌 방문의 손잡이가 움직이는 소리 비슷한 걸 듣는 것으로 흥미진진한 소설은 시작한다. 누구지? 몸body의 대화는 이쯤에서 저절로 식어버리고 키티의 남편이자 세균학자인 월터가 아닐까 의심이 들지만, 이 시간에 그는 언제나 연구실에 박혀 현미경에 두 눈을 대고 있을 터.
 키티가 처음부터 남편 월터를 사랑해서 결혼한 건 아니다. 어릴 적에 그래도 조금은 대단한 가문의 돈 많은 집안의 총각한테 시집가기 위해 일찌감치 사교계에 데뷔를 했으나, 욕심 많은 엄마 가스틴 부인의 눈부신 치맛바람 덕에 두 눈이 정수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처음엔 최고의 상대를 만나기 위해 조건을 따지느라 결혼을 늦췄지만, 어느새 너무 나이를 먹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상태가 됐을 때, 못생긴 외모 때문에 가스틴 부인의 눈 밖에 났던 동생 도리스가 먼저 준남작의 아들과 약혼을 한다. 그리하여 동생보다 늦은 결혼을 할 수 없다는 쓸데없는 오기가 생겼을 때, 딱 맞춤하게 나타난 이가 바로 지금 남편 월터 페인이었던 거다. 역시 인생에서는 타이밍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종종 있다.
 월터 페인은 아내 키티가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자기가 아내를 숭배할 정도로 사랑하기 때문에 살면서 점점 좋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아내에게 친절하고 예절바르게 대한다. 무슨 뜻이냐고? 키티 입장에선 진짜 재미없는 남자라는 말. 이들은 결혼하고 곧바로 남편의 직장이 있는 홍콩으로 떠나 키티는 그곳 사교계에서 새로이 등장한 별이 되고, 키 크고 잘생기고, 운동 잘하고, 덩치 좋고, 권력까지 있는 찰스 타운센드가 모습을 드러내자 약간의 망설임, 정말 약간의 망설임 끝에 기꺼이 불륜의 꿀통에 빠져버린다. 문제는 상대인 찰스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 그래서 차라리 대낮의 밀회를 남편에게 들킨 일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 자연스럽게 남편한테 이혼당하면, 찰스 역시, 이름도 후진 여자 도로시(그래,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지금이 어느 시대라고 도로시야, 도로시가!)와 이혼을 감행해 남은 인생,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어느 날, 월터가 키티에게, 키티와 찰스를 간통죄로 고소하겠다고 선언한다. 1920년대 홍콩엔 간통죄가 있었나보다. 월터 여보, 남자가 돼서 그러지 말고 깨끗하게 이혼해주면 안 될까? 여태 산 정을 봐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영국의 천한 부르주아의 의견은 그랬다. 월터가 픽 웃으면서, 조건을 하나 제시한다.
 “타운센드 부인이 그녀의 남편과 이혼하겠다는 확답을 내게 주고, 법원으로부터 두 사람의 이혼 확정 명령이 내려지고 나서 일주일 안에 그가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내게 서면 동의를 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콜레라가 창궐하고 있는 산골 오지로 나와 함께 가주셔야겠어.
 키티가 당장 부총독 사무실로 쫓아가 아이고 영감, 나 이제 큰일이오. 제발 어서 빨리 각서 한 장 써주셔야겠소. 하며 사정을 설명한다. 근데 세상의 바람피는 남자들, 진짜 상대를 사랑해서 여차직하면 가정 때려 치고 연인 또는 정부와 새살림 차릴 인간들은 거의 없다. 부총독께서도 이하동문이라, 자기가 비록 키티를 환장하게 사랑하지만 자식들 때문에, 다른 건 하나도 없고 그놈의 자식들 때문에 이혼할 수 없단다. 아, 월터한테는 “넌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하나도 몰라!”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각서를 받아올 것처럼 얘기했는데 이제 쪽팔려 어떻게 하나, 이따위를 생각할 여력도 없다. 자신의 진짜 사랑을 배신당한 순간이라서. 코가 쭉 빠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퉁퉁 부어버린 눈두덩을 하고 집에 오니, 이미 남편이 콜레라 지대로 향하는 마누라 짐도 싸놓은 상태. 멍청이인줄 알았더니 남편 월터는 총명하고, (자기 눈으로 볼 때만 빼고 남이 보면) 괜찮게 생겼고, 성실하고, 부드럽고, 어느 면으로 보나 존경할만한 인격체였던 거다.
 이리하여 키티는 결혼생활도 망가져, 애인한테 버림받아, 그것도 모자라 언제 죽을지도 모를 콜레라 창궐지역으로 자발적으로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로 치닫게 된다.
 스토리는 여기까지.
 몸의 작품들을 읽어보신 분은, 그의 작품을 절대로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실 듯하다. 스스로 최고 신분이자 최고의 인격자인줄 알고 사는 천박한 의식을 가진 집단들. 그들 가운데 적어도 한 명은 고난을 다 겪어내며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천박한 짐승 같았는지를 인식하게 되고, 그런 인식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게 쉬워? 아무리 도를 닦아도 비슷한 실수를 다시 겪을 수도 있는 것이 인생살이. 여기에 서머싯 몸의 진수가 있다. 그의 가차 없는 시각과 인간, 인간의 날것에 대한 지적. 이런 것들을 재미있고 즐겁게 감상하면서 스스로가 말한 “최고의 2류”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었는지, 적어도 감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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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7-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독서모임 책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모옴 선생의 대표작인 <달과 6펜스>보다도
훨배 좋더라는.

나오미 캠블이 키티로 나오는 영화가 있다고
도 들었는데 아직 못보고 있네요.

Falstaff 2018-07-12 16:09   좋아요 1 | URL
1934년 버전엔 무려 그레타 가르보가 키티를 했답니다. 근데 상상이 안 가요. 가르보가 키티라니....
나오미 와츠의 키티는 좀 어울릴 거 같습니다만, 영화를 보지 못해서요. ㅠㅠ

coolcat329 2020-07-13 17: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쩜 책보다 폴스타프님 글이 더 재밌을까요! 저도 이 책 이번에 진짜 재밌게 읽었습니다. 달과 6펜스 지금 다시 읽고 있지만, 그 보다 훨씬 좋고 주변에 막 추천하고 싶네요.

아, 저는 유투*로 영화 조금 봤는데 나오미 와츠 너무 잘 어울리더라구요..

Falstaff 2020-07-13 20:48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에이, 언감생심이지요, 제가 어찌 몸 선생보다 ㅋㅋㅋㅋ 우짰든 고맙습니다.
하여간 재미에 관한 한 독보적인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
 
육체의 악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1
레이몽 라디게 지음, 원윤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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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명색,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성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의 321번째 발간한 책이다. 스무 살에 죽은 한 프랑스 청년이 열일곱 살 먹었을 때 탈고한 작품 <육체의 악마>가 이중 한 자리를 채웠으니 대단하다 할밖에. 심지어 졸라, 뒤 가르, 그레이브스도 자기 이름을 올리지 못한 시리즈 목록에 말씀이야. 작가 라디게가 1903년생. 이 또래가 어떤 의미인가하면, 1차 세계대전엔 나이가 어려 참전하지 못하고, 2차 세계대전에는 스스로 지원하지만 않으면 싸우기에 늙어서 참전하지 못하는 면피 세대라는 거. 1차 대전이 1914년 8월에 발발해 1918년 빼빼로 날, 11월 11일에 끝난다. 당대 숱하게 많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거덜낸 전쟁은 이 세대들에게 “그것은 말하자면 사 년 동안의 긴 여름방학이었던 것이다.”(7쪽)
 소설은 이렇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시점에서 시작하지만 사건은 전쟁 중인 1917년에서 18년 종전 때까지 집중적으로 벌어진다. 주인공 화자 ‘나’의 나이 16세이던 시기의 만 1년. 자기보다 서너 살 많은 마르트란 아가씨를 우연히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비극은 시작한다. 남자 나이 16세, 고 1 정도가 되면 오래전 이순원의 <19세> 독후감에 썼다시피 투시력이 생기는 특별한 나이. 여자가 아무리 두터운 외투를 입었다 해도 척 보면 속살을 훤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얘기, 기억하시려나? ‘나’의 눈이 마르트를 발견한 순간 숙명적인 사랑을 발견하며 당연히 사랑의 허리하학적 최종 목표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뿔싸. 19세 아가씨 마르트는 이미 ‘자크’라는 참전 군인과 약혼을 한 상태이며, 조금 후 자크가 1주일 휴가를 받아 온 틈을 타 정식으로 결혼해버린다.
 이렇게 순진하게 끝낼 거 같으면 소설이 되지 않을뿐더러, 전쟁이 “사 년 동안의 긴 여름방학”이 되지도 않는다. 총사망자 2천만 명, 부상자 2천2백만 명의 참사가 생긴 긴 여름방학 동안 ‘나’는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으로 마르트에게 접근하건만, 마르트 생각엔 자신이 ‘나’에 비하면 할머니 같아 보인다. 16세와 19세의 차이는 그만큼 큰 거다. 게다가 당시 유럽(프랑스나 영국이나, 독일, 러시아까지 지역불문하고)에선 대강 나이 차가 근 스무 살 가까이 나는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16세 남자아이가 사람 같기나 했겠어? 마르트의 남편 자크도 서른을 훌쩍 넘겼으니 마르트의 생각도 그리 많이 어긋나는 건 아닐 터. 하지만 ‘나’는 죽음의 전쟁터로 남편을 떠나보낸 마르트를 유혹하는 데 기어이 성공하여, 주인 없는, 아니, 주인은 죽음의 사육제를 향해 떠나 비어버린 신혼의 침상을 탈취한다.
 비록 16세지만 ‘나’는 한 번도 전쟁과 희생자와, 잠재적 희생자인 마르트의 남편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벌이고 있는 (16세에 불륜이라니! 우습지도 않은) 애정행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불륜행각이 벌어지는 장소가 마른 강가 부근의 작은 도시. 마른이 어딘가. 파리 외곽의 마른 전투, 1차 세계대전 가운데 가장 치열했으며 그만큼 사상자를 많이 발생시킨 악명 높은 전쟁터가 바로 마른 아닌가. 라디게 또는 ‘나’ 속에는 그러나 전쟁에 대한 의식은 전혀 없다. 그냥 남의 눈에 띄면 좋을 거 없는 연애상태. 그러면서도 쉼 없이 마르트의 몸을 갈급하게 구하는 충동과, 남녀 사이에 당연하게 발생하는 모종의 갈등과 질투. 이런 것들을 그냥 죽죽 써내려간다.
 작품을 발간한 것이 1923년 3월. 작가는 그해 연말에 파리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육체의 악마>는 대박을 터뜨린 모양이다. 책 뒤편의 작품해설을 보면, “갑자기 얻은 높은 명성을 1차 세계대전 직후의 문학적 공백 덕분이라고 보는 평자도 적지 않았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그릇된 견해였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단다. 그러나 내가 읽어보니 이 책이야말로 전쟁 후 문학뿐만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서구적으로 대두된 “잃어버린 세대”적 측면을 빼면 남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나야 완전 아마추어 독자에 불과하지만 문화 진공 시대에 맞춤하게 불어온 냉담과 혼돈, 그리고 조금의 자유, 그것도 책임이 결여된 자유 말고는 별로 발견할 것이 없지 않은가 싶다. 물론 해설에는 문장의 간결함이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걸 번역문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결론은, 양심이 있는 관계로, 일독을 권하지 못하겠음. 단, 이 의견이 문학적으로 무식한 한 아마추어의 한계이기를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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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7-11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 작품 읽고 나서 할 말도 별로 없더라고요. 장 콕토 <앙팡 테리블>도 비슷한 느낌이었고요.

Falstaff 2018-07-11 10:36   좋아요 1 | URL
앗! 멋진 답글입니다. 잠자냥님 말씀 믿고 <앙팡 테리블>은 그냥 패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저 이런 답글 무척 좋아합니다. 추천 말고 비추 도서 소개요!! ㅋㅋㅋ

따오리 2023-05-0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교과서를 기대하면..
 
사랑에 빠진 여인들 을유세계문학전집 70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손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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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 브랑웬의 두 딸? <무지개> 확인할 것.”
 책을 읽다가 포스트잇에 위 문장을 메모했다. 책의 첫 문장에 두 명의 여주인공 어슐라와 구드룬을 언급하지만 <무지개>에서 톰의 손녀 어슐라와 같은 인물이라는 것까지 생각해내지는 못했다. 책 뒤편의 후주를 보면 어슐라는 “쾰른 근방에서 훈족에 의해 만천여명의 처녀들과 함께 순교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성녀”라고 했고, 구드룬은 “게르만 전설. 니벨룽의 딸. 지그루프를 사랑하고, 남편 아들리를 살해”했다고 썼다. 구드룬, 아하, 구트루네의 영어식 발음이구나. 게르만 전설 <니벨룽겐의 노래>하고 우리가 하는 <니벨룽의 반지>하고는 많이 다르다. 근데 왜 주인공 자매 이름을 고색창연하게 지었을까. 책을 읽어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하여간 독후감을 쓰기에 앞서 <무지개>를 다시 훑어보았다. 분명 톰 브랑웬의 양녀 애나가 낳은 딸이 어슐라. 그런데 어떻게 가족이름이 할아버지와 같을 수 있을까. 맞아, 맞아. 톰 브랑웬이 지극하게 아꼈던 양녀 애나 렌스키는 톰의 조카인 윌 브랑웬에게 시집가 똑똑한 첫째 딸 어슐라 브랑웬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이 책 <사랑에 빠진 여인들: Women in Love>은 분명하게 <무지개>의 후속 작으로, 어슐라는 일찍이 폴란드 귀족 안톤 스크레벤스키의 사생아를 임신하기까지 했던 첫사랑에 실패하고 부모가 사는 집에 돌아와, 동네 학교 교사로 일하며 어느덧 스물여섯 살을 먹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이때 런던에서 소품 조각을 해서 나름대로 신진 예술가로 이름이 나기 시작한 한 살 아래 동생 구드룬 역시 당분간이란 단서를 단 채 집으로 돌아와 자매가 오랜만의 한가한 시간을 즐기는 것. 그러니 이 책을 읽으실 분은 먼저 <무지개>를 보신 다음에 선택을 하는 편이 좋겠다.
 D.H. 로렌스의 초기 히트작인 <아들과 연인>도, <무지개>도 무대가 영국 중부지방에 있는 탄광촌인데, 로렌스 자신이 탄광촌인 이스트우드 출신이란다. 어려서 숱하게 보고 들은 것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작품에 투영된 것으로 봐야겠다. 이 책에서도 주된 무대 벨도버 역시 탄광촌이긴 하다. 그러나 <무지개>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인들’의 아버지 윌은 레이스 도안을 하다가 나이 들어 어슐라가 재직하는 학교의 시간제 공예교사를 하고 있고, 딸들이 교사와 예술가 직업을 가지고 있어 시골 중산층 계급 정도의 인물들이다. 이 가족은 벨도버 지방이 유지들이 여는 파티에 ‘머리수 채울 요량의’ 초대를 받는 정도이지만 구드룬의 놀라운 외모 덕에 인근에 그래도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됐다. 로렌스, 하면 연애소설. 맞지? 그렇다. 이 책의 제목과 마찬가지로 스물여섯, 스물다섯, 두 여성이 등장하며, 소설의 무대는 특정하지 않았지만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봐서 20세기 초반으로 봐야겠다. 벨도버에서 가장 큰 탄광 사장의 맏아들 제럴드와 그의 절친한 친구 버킨. 이렇게 두 명이 이 ‘여인들’하고 맺어지게 된다.
 후주後註까지 합쳐 800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을 어찌 한 마디로 소개할 수 있을까. 분명하게 연애소설이고, 사랑을 다루는 작품답게 4,783번 정도 ‘사랑’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그러나 작품의 탈고 시기(1917년)가 시기인 만큼 사랑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주인공들도 당시 기준으로 봐서 이미 푹 곰삭은 노처녀들이며, 중요한 남자 주인공 버킨은 시도 때도 없이 비극적 세계관을 설득하려 애쓴다. 그는 소설을 시작해서, 어슐라와 결혼을 하고, 주인공 네 명이 함께 떠난 인스부르크로의 겨울여행을 즐길 때까지, 초지일관하게, 인류는 지구를 떠나거나 멸종해버리는 편이 낫다고 설파하고 있다. 전형적인 우거지 죽상인데 우리의 어슐라는 뭐 때문에 이런 맛이 좀 간 남자가 좋았을까. 큰 탄광회사의 사장 아들이자 실질적인 경영자인 제럴드는 20세기 초에 벌써 탄광회사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안했으며, 오랜 병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아버지의 방을 아침마다 열어보며 오늘 아침엔 틀림없이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사항을 점검한다. 그러다 정작 아버지가 죽어버린 비 오는 밤, 진흙길을 정처 없이 걸어 열린 브랑웬 댁에 침입해 구드룬의 방문을 열고 동침해버린다. 그리고 소설이 끝나기 15페이지 전, 또 한 번의 죽음을 앞두고 이번엔 눈 쌓인 인스부르크의 산등성이로 또 한 번 무작정 길고 긴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거 정말 연애소설 맞아? 하는 것. 연애소설이기는커녕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처한 인류와 영국, 국가들, 문화 등에 대한 비판서를 읽는 기분이었다. 이건 주로 버킨이 유도하는 대사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역자 해설에서 손영주는 “등장인물들의 토론을 통해 민족과 국민, 국가 등에 관한 당시의 민감한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룰 뿐 아니라, 전시에 한층 보수화하게 마련인 정치 담론 및 여론에 상당히 도전적인 반애국적인 시각과 정서를 제시”한다고 지적한다. 맞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정확한 단어로 설명해주었다. 이럴 때 역자의 해설이 참 반갑다.
 아, 역자 손영주 이야기가 나왔으니, 웬만하면 말 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정말?), 한 마디 해야겠다. 현재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손영주는 이 책을 번역해서 제9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단다. 유영번역상은 영어로 된 원작을 한국말로 잘 번역한 책의 역자에게, 1년에 한 명한테 주는 상이다. 원서 복사본 1권과 해당 원서를 번역한 책 한 권을 제출해 상을 신청하면 그걸 심사해서 대상자를 뽑고, 수상자에겐 상패와 세금 포함해 1천만 원을 준단다. 실 수령금액은 989만 원가량 될 거다. 기타소득의 세율 1%, 여기에 주민세 1%에 대한 10%. 그런데 유영번역상. 이거 혹시 교수들 아니면 일부 이름난 번역가들이 서로 돌려 먹는 거 아냐? 나는 지금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 오역이 물결처럼 넘치는지, 이런 거 가지고 뭐라 하는 거 아니다. 전에 본고사 보던 시절, 본고사 문제로 한 번도 빠지지 않던 것. “다음 글을 우리말로 옮기시오.” 이에 대한 답안지를 읽는 거 같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3인칭 대명사, 지시대명사, 관형사 “그”와 “이”. 그리고 상대방을 가리지 않고 마구 적용하는 단어, “사악하다.” 하다못해 조금 되바라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착한 심성을 지닌 10대 초반의 아가씨가 행동하는 걸 보고도 거침없이 “사악하다”라는 단어를 던져준다. “사랑”이 4,783번 나온다면 “사악하다”는 말은 726번 정도 나온다. 아무한테, 아무 행동에 대고 그냥 편하게 “사악하다”는 말을 쓴다. 사악하다는 단어가 기분 나빠서가 아니라, “사악하다”를 그냥 샘플로 얘기한 것이지, 다른 표현에서도 적당한 단어를 찾기 위해 노력을 덜 들이지 않았는가 하는 점. 그런 거 있잖은가. 읽어나가다가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될 듯한 단어가 ‘딱’ 꽂혀있으면 ‘팍’ 와 닿는 불편함. 요즘 읽은 다른 책들과 비교해 유난히 많았다는 건 좀 밝혀야 될 듯.
 그러나 진짜 나를 미치게 만든 건 사악할 정도로 무수하게 쏟아지는 주격대명사 “그”, “그녀”, “그들”, 소유격대명사 “그의”, “그녀의”, “그들의”, 목적격대명사 “그를”, “그녀를”, “그들을”, “그것을”, “그것들을”, 지시대명사 “그”, “이”, 관형사 “그”, “이”들. 좋다, 좋아. 원문을 정확하게 한글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 본고사 시험 치루는 기분으로 말이야.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뭐 분수대도 아니고 폭포 수준으로 남발하니 읽는 사람은 정말 돌아버린다. 근데 또 일정 페이지를 넘기면 아주 좋은 문장이 한동안 등장한다. 이거 왜 이런 거야? 이랬다가, 저랬다가. 을유문화사 편집자들이 책을 부분부분 쪼개서 교정, 교열, 편집한 건가? 아니면 역자 손영주의 대학원 다니는 제자들이 책을 부분부분 쪼개서 번역한 걸 지도교수 이름으로 출판사에 가져다 준 거? 에이 설마. 아니겠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 죄 받는다, 죄 받아. 그렇지? 죄 받겠지? 진짜 궁금한 건, 역자가 자신이 번역한 결과물을 정말 읽어봤을까? 하는 점. 읽어봤겠지. 안 읽어봤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죄 받는다, 죄 받아. 우리나라 영어번역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유영번역상 수상작 가지고 말이야. 그렇지? 내 말 맞지? 정말 맞겠지? 맞고 싶으냐고? 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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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1-08-14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리커버 에디션도 나오고해서 어떤가 찾아보는 중에 Falstaff님이 번역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을 보고 일단 첨가로 했습니다. ㅋㅋ 저도 대명사 남발을 포함해서 기계번역처럼 한 작업들을 만나면 견디기 힘들것 같네요. ㅜㅜ

Falstaff 2021-08-14 09:49   좋아요 0 | URL
좋은 작품......인 것 같습니다. ˝견디기 힘들 것 같˝은 걸 권할 수는 없고요, 뭐 물론 유영 번역상을 받았으니 제 의견이 틀렸겠지만 말입니다, 혹시 인연이 되면 이 책을 읽을 기회도, 다른 번역을 읽을 수도 있으실 거라고 믿습니다.
 
무고한 존재 대산세계문학총서 146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지음, 윤병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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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1년 발표한 장편. 원제는 L'Innocente. 이 작품을 통해 전 유럽에 유명세를 떨쳤다고 하지만 19세기 말 유럽의 열등국가 이탈리아의 작가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위하여 프랑스어로 번역, 소개하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게 1892년. L'Innocente를 위키피디어에서는 우리말로 ‘죄 없는 자’라고 번역을 했으나, 진짜 책을 읽어보면 여러 가지로 문학과지성에서 제목을 단 “무고한 존재”가 더 어울리겠다. 내가 또 읽어본 단눈치오로 말할 거 같으면 <무고한 존재> 몇 년 후에 발표한 <쾌락>이 있어서 독후감까지 쓴 바도 있다. <쾌락>에서 기억하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러했다.
 “그녀는 살짝 쉰 목소리로 미소도 짓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리 같이 죽어요.’”
 아, 얼마나 기막히게 아름다운 퇴폐미이었던가. 그렇다. 19세기 말 적的인 퇴폐미. 지금 시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겠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기가 막힌 예술지향의 퇴폐미가 작품 전체에 걸쳐 뚝뚝 떨어지는데, 그건 이 <무고한 존재>에서도 그러하다.
 이 책에선 주인공 ‘나’ 툴리오 헤르밀은 슬하에 딸 둘을 둔 유부남. 한때는 아름다운 아가씨 줄리아나를 죽도록 사랑하여 결혼에 이르고, 사이에서 아이도 둘 낳아 잘 길러왔으나, 언제부터인지 아내 줄리아나를 향한 사랑은 마치 어려서 죽은 누이 코스탄자와의 관계와 거의 비슷하게 ‘순수한 우정’의 관계로 접어들었다. 좋다. 오래 산 부부가 뭐 그럴 수 있지. 그리하여 혈육 같은 애정으로 보살피고, 다독거리고, 챙겨주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아름다운 미덕을  죄다 베풀지만, 성적인 애정은 다른 여인에게서 찾는다. 그거, 문제다. 진실하고 순수한 우정으로 살기엔 아직 너무도 젊은 부부한테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지. 그런데 시기도 딱 맞추어 줄리아나의 생식기에 깊은 병이 들어 이제 한 번의 임신만으로도 매우 위험한 지경에 이룰 수도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내의 깊은 병으로 순수한 우정에 발동이 걸린 남편 툴리오는 며칠 밤을 새우며 외과수술을 받은 아내를 정성껏 간호하지만, 욕정의 화신인 정부의 호출, “그래서 안 오겠다고? 좋아, 오늘이 아니라면 다시는 오지 마” 단 한 줄의 전보를 받고 기꺼이 아내 곁을 떠나 정부의 품으로 달려간다. 아내의 병은 거의 다 치료했고 그리하여 지극하고 순수한 우정의 행위도 거의 다 완료된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가 긴 서문의 형식으로 쓰여 있다.)
 하지만 정부와의 사랑이 오래 지속되는 거 보셨나? 드디어 사랑이 식어 서로 이별을 고하니, 이제 순수한 우정의 관계에 있던 아내를 행한 깊은 사랑, 진정한 사랑이며, 자신의 첫 번째 사랑이기도 하고, 앞으로도 영원무궁하게 지속되어야 하는 사랑임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어느 하루 날을 잡아 아내에게 새로이 사랑을 고백하는데, 그게 몇 페이지나 계속될 만큼 구구절절, 사내가 참 말도 많다. 그 가운데 내 눈길을 끈 문장들을 소개한다.
 “(전략) 그래서 당신만으로는 부족했던 거야. 그래서 수년 동안 잔인하도록 방탕한 생활에 내 모든 기력을 탕진했던 거야. 얼마나 잔인했는지 마치 감옥에 갇혀 매일같이 조금씩 죽어가는 죄수의 두려움과 다를 바 없는 공포 속에서 살았지. 내 영혼 속에 이 빛이 비치기 전까지, 이 중요한 진실을 내가 깨닫기 전까지, 수년 동안 어둠 속을 헤매면서 살아왔던 거야.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이 세상에 당신밖에 없어. 당신뿐이야. 나한테 달콤하고 따뜻한 여자는 이 세상에 당신밖에 없어. 내가 꿈꾸던 가장 착하고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당신이야. 당신은 내게 유일무이한 존재야. 당신이 집에 있는 동안 난 당신을 먼 곳에서 찾고 있었을 뿐이야…… 이해해? 이제 이해하겠어? 내가 당신을 멀리서 찾고 있는 동안 당신은 그토록 가까이 있었던 거야. 아! 당신이 얘기해봐.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과 바꿀 수 있을 만큼 놀라운 사실 아냐? 그런 사랑의 증거라면 차라리 눈물을 조금이라도 더 흘리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겠어?” (123쪽. 고딕체는 내가 강조목적으로 썼음)
 읽어보셨으면 얼마나 징그러운 남자인지 팍 이해가 되시리라. 정말 말 하나는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 여기 뿐 아니라 뒤쪽에서도 ‘나’ 툴리오가 아내에게 구라를 푸는 긴 장면이 또 등장하는데, 대사 하나만 보면 낭만적 퇴폐미 같은 걸 잘 감각할 수 있을 정도다. 여기서도 최고의 여인,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대상이 바로 자기 아내임을 이제야 알았다니, 이거 참. 근데 잘 보시라. 본문만 410쪽에 달하는 장편 소설에 이 장면이 123쪽. 그냥 여기서 말면 소설이 될 수 없는 일. 우리의 줄리아나 여사, 당대 부르주아 및 귀족 계급에선 가끔 그러기도 했듯이, ‘순수한 우정’의 관계만 갖고 있던 여사가 그만 임신을 해버렸다. 하지만 줄리아나 여사의 임신은 생명을 담보로 해야 하는 것. 그걸 알고 있던 툴리오가 정말 아내와 같은 침상을 썼을까? 당연히 아니다. 우리의 여사님, “홧김에 서방질” 제대로 한 거다.
 인생에 단 한 번도 경제생활을 해보지 않은 귀족 출신의 도련님 툴리오의 기분이 어땠을까. 할 줄 아는 건 오직 하나, 여자 꼬드겨 자신의 애정을 확인하는 일. 물론 여기엔 애정 만들기에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생명을 건 결투와, 결투에서 상대에게 죽음이나 중상을 입히기 위한 검술훈련도 포함하지만, 하여간 그거 말고 생산적인 일이라곤 하나도 해본 적 없는 작자가, 그간 자신이 아내의 속을 무진장 썩인 것을 심사숙고하여 아내의 해산을 용인하기로 결정을 했으나,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던 ‘남자의 질투’를 어쩔겨? 그리고 지금 딸만 둘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작위와 전 재산을 상속할 아들이 태어나면 그건 또? 좋다, 예비 독자가 읽어볼 수 있는 독후감이지만 밝혀버리겠다. 마나님이 아들을 생산하는데, 아내의 아들에 ‘나’ 툴리오의 친아버지 이름 ‘라이몬도’를 붙여주고, 성당에 가서 세례를 받게 하니, 세례를 받는 순간, 사생아 라이몬도가 바로 책의 제목 “무고한 존재”, 아직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L'Innocente가 되는 것.
 궁금하시지? 그래서 사건은 바야흐로, 안 가르쳐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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