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6월까지 읽은 책 가운데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책을 소개합니다. 책을 추천하는 일은 사실 좀 부담스럽습니다. 무슨 글을 공부해본 것도 아니고 그저 살며 인생을 즐길 거리 가운데 하나, 즉 취미로 독서를 하고 있는 형편에 무슨 책 추천씩이나. 그리하여 3개월마다 한 번씩 올리는 ‘이 책을 추천합니다.’ 글은 한 아마추어가 자기 식으로 좋은 책을 선정해 잊지 않기 위해 자국을 낸 것이라 여기시면 될 듯합니다. 책들을 추천한다고 해서 덜커덕 이를 믿고 구입해 읽으셨다가 취향에 맞지 않아도 저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점을 꼭 밝혀야 하겠네요. 순서는 제가 읽은 날짜순입니다.

 


1. 마리오 베네데띠, <휴전>

 
 우루과이 출신의 베네데티는 라틴 아메리카의 붐 문학적 소재를 쓰는 대신 전형적인 리얼리즘 방식으로 이제 정년퇴직 몇 주 남긴 늙은 회사원 마르틴 산또메 씨의 ‘황혼에 핀 꽃’을 그려놓았다. 스물다섯 살 젊은 신입사원 라우라를 사랑하게 되고, 라우라 역시 그것이 사랑인지 벌써 눈치를 챘는데, 반듯하지만 우울하고 염세적인 세계관을 가진 남자에게 젊은 라우라는 인생의 한 변곡점으로 작용을 할 수 있을까.

 


2. 커트 보니것, <고양이 요람>

 ‘고양이 요람’은 진짜 고양이더러 잠자라고 만든 요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선 흔히 두 명이, 유럽과 아메리카에선 보통 혼자 하는 실뜨기 놀이를 얘기한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필릭스 호니커 박사는 1945년 8월 6일 B29 폭격기에서 두 발의 원자폭탄 뚱보와 꼬마가 투하되던 시간에 난쟁이 막내아들 뉴트와 바로 이 고양이 요람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 호니커 박사는 한 장군의 독촉으로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킬 가공의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근본적으로 비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보니것의 우주적 유토피아?

 


3. 베시 헤드, <권력의 문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백 혼혈로 태어나 보츠와나에서 교사로 일하던 작가가 마치 자신의 일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지만, 엄연히 픽션이다. 세상에 왜 불공평, 그리고 이에 따른 차별이 그리도 많이 존재하는가. 그건 제목처럼 기본적으로 권력이 있고 없음에서 시작한다. 모든 차별과, 억압과 핍박은 권력에서 시작한다. 이렇게 말로 써놓으니 쉽다. 그러나 신경증 증세가 심한 사람의 시선으로 씌어 있으면 점점 곤란해지기 시작한다. 그걸 한 번 경험해보시라.

 


4. 찰스 부코우스키, <팩토텀>

 제목대로 ‘잡역부’ 또는 ‘막일꾼’에 관한 소설. 또다시 우리의 행크 치나스키 형이 등장해서 끊임없이 사고치고, 해고당하고, 술 마시고, 싸움하고,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시 취직하고, 애먼 도시로 흘러들어가 다시 사고치고, 해고당하고, 술 마시고, 싸움하고, 연애하고, 헤어지고, 중고 타자기 하나 사서 글을 좀 써볼까, 끼적이기 시작하는 이야기. 부코스키, 아니, 치나스키의 팬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근본주의적 비트 소설.

 


5. W.G. 제발트, <현기증. 감정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무거운 대포를 끌고 무려 알프스를 넘었다는 거 아냐. 이때 숱한 사병들 가운데, 그때까지는 아니고, 나중에 위대한 작가가 될 앙리 벨이라는 소년이 있었으니, 우리는 그를 ‘스탕달’이라고 부르게 된다. 프랑스 군은 밀라노 근처 마렝고 전투에서 이탈리아 군에게 극적인 막판 뒤집기 역전승을 따내는데, 제발트는 전매특허인 특별한 미적 감각과 관찰력으로 스탕달의 일생,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관한 글을 보태고 있다. 제발트가 제발트 한 책.

 


6. 엔리케 빌라-마따스, <바틀비와 바틀비들>

 

 숱하게 많은 작가들과 작가지망생들이 오늘도 붓을 꺾는다. 특정한 사람에겐 글을 쓰는 것이 영광의 길이지만, 다른 특정한 사람들은 글을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영광의 길이란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많은 작가들. 그들은 왜 글쓰기를 멈췄을까.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극소수 작가들을 추적하는 일보다, 자의건 타의에 의하건 도중에 붓을 꺾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작가들을 추적하는 일이 어쩌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에 관한 기록이 하나는 있어야 하겠지.

 


7. 아시아 제바르, <프랑스어의 실종>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의 식민지 알제리. 알제리는 종전 후에도 무려 17년 동안이나 더 독립투쟁을 해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1990년대까지 독재정권 치하에서 북아프리카의 잠재력을 모두 잃어버리고 만다. 식민모국인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여자와 살던 작가 베르칸은, 알제리에서가 아니라면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강박을 안고 귀국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때 알제리는 혁명(또는 쿠데타)의 와중에서 반 프랑스 정서가 전 국토를 뒤덮고 있던 것. 과거와 현재, 비극의 역사와 에로티시즘 사이를 오가는 엑스터시.

 


8. 이스마일 카다레,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1981년 12월에 알바니아에서 있었던 후계자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쓴 작품. 대내외적으로는 자살로 발표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완벽하게 폐쇄되어 불안 말고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독재사회 속에서 사는 개인, 집단, 사회의 병리적 모습을 놀랄 만큼 섬세하게 그려놓았다. 독재체제가 전 인민을 집단 공황장애에 빠뜨리는 프로세스가 독할 정도로 잘 묘사되어 있다. 독재시절을 경험한 분들은 거의 완벽하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듯.

 


9. 에이브러햄 버기즈, <눈물의 아이들>

 인도 출신 에티오피아 의사 가족 이야기. 엄마는 일란성 아들 쌍둥이 시바와 메리언이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리고, 아빠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두 인도인이 이들을 키우는 소설. 시바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으면서도 타고난 천재성으로 산부인과 학에 놀라운 수준으로 올라서고, 메리언은 미국에서 고생해가며 의사가 되는데, 거기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과의가 된 아버지와 조우한다. 여기에 에티오피아의 현대사까지 겹쳐 흥미진진한 소설책이 만들어지니, 잠 안 오는 여름밤을 위해서 최고의 피서 책이 될 듯.

 


1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저항의 멜랑콜리>

 주의를 요함. 책 권쯤 읽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강추. 몇 십 년 만에 강한 추위가 몰려온 한 시골마을에 여태까지 멈춰서 있던 시계탑에서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서커스단이 들어오긴 했는데, 무엇을 가져왔느냐 하면, 세상에서 가장 큰 고래 한 마리. 추위와 시계, 그리고 고래가 무엇을 우화한 것일까. 혹시 그것들이 트로이 목마처럼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가져올까? 우연히도 책을 쓴 시기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넘, 어, 간, 다.

 


11. 캐서린 앤 포터, <캐서린 앤 포터 - 오랜 죽음의 운명 외 19편>

 ‘외 19편’이면 모두 스무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는 뜻. 야, 어쩌면 그러냐. 어떻게 하나도 빼지 않고 스무 편의 작품이 다 좋을 수 있느냐는 말이지. 내가 중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정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루한 지역을 꼽으라면, 그곳이 유럽이라기보다, 미국 남부지방에 한 표 줄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곳 출신으로 불행한 과거를 지닌 캐서린 앤 포터는 소외당하고 약하고 피해입는 가엾은 것들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 어떻게 이제야 이 작가를 알게 됐느냐는 말이다.

 


12. 유진 오닐, <느릅나무 아래 욕망>

 격렬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해, 다 읽고 나면 후달린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듯. 미국 서부 판 <페드르와 이폴리트>. ‘격렬하다’와 ‘후달린다’는 단어를 쓰고는 한 마디도 보탤 수 없는 책.

 


13. 포드 매독스 포드, <퍼레이즈 엔드>

 포드 매독스 포드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좋은 소설이 다 그렇듯) 심리소설이다. 비록 1차 세계대전이 시작하기 전과, 전쟁 중, 전쟁이 끝난 후까지 아우르는 작품이지만, 스토리를 끌고 가는 건 거의 완벽한 신사 한 명과 그의 행실이 방정하지 않은 경국지색의 아내.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양도하는 남편과, 쉼 없이 남편을 괴롭히지만 괴롭힘 역시 사랑의 한 표시인 아내. 사주팔자가 상극인 커플. 급한 사람은 이 책 읽다 성질 버릴 수 있으니 조심하실 것.

 


14. 위앤커, <중국신화전설>

 아무리 취미생활로 독서를 한다고 해도, 기초가 잘 되어 있으면 암만해도 더 즐거운 책읽기가 되지 않겠는가. 이 책은 동양, 특히 동아시아 작가들의 책을 읽을 기초체력 단련이란 목표로 읽어도 좋다. 중국의 창세기부터 서주시대까지 각종 신화와 전설을 수집해 놓았다. 이색적인 동물과 식물, 반인 반수, 인종들까지 망라했는데, 나는 <서유기>를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더 재미있는 <서유기>가 될 뻔했기 때문에.

 


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천사, 바빌론에 오다>

 뒤렌마트가 쓴 희곡이면 일단 믿고 사서 읽는다. 뭐 그렇다고 이이의 희곡에 정답까지 다 들어 있는 건 아니다. 여기서도 하느님이 처녀를 하나 만들어 천사를 시켜 지상에서 가장 가엾은 인간에게 이 처녀를 주고 오라는 심부름을 보냈는데, 천사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공정한 방법으로 누가 가장 불쌍한 인간인가 최종 전형을 마친 끝에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가 선정이 된다. 왕이 가장 찌질한 남자? 뭔가 은유가 있겠지. 그게 뭔지는 직접 알아보시라.

 


16. V.S. 나이폴,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

 세상에 하는 일마다 어째 이 남자 비스와스 씨는 뭐 하나 되는 게 없을까. 이게 다 불길한 시간인 자정에, 머리가 아니라 다리부터 나온 육손이라서 그런 거라고, 트리니나드 사주 책에 적혀 있단다. 아빠가 죽고 시골 땅을 팔았는데, 그 땅에서 유전이 터지고 자기네 집은 날이 갈수록 거지 신세가 되는 거부터 시작해, 나이 들어 장가를 갔더니 처가살이를 하며 구박만 오지게 얻어먹는다. 그러면서도 천부적 독설가인 비스와스 씨가 어떻게 자기 집을 마련하게 되는지 궁상스럽지 않게 재미있다.

 


1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리스본의 밤>

 이것도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 비자도 못 받았고, 체류기한은 다 끝나가고, 그랬다한들 뱃삯으로 300달러나 모자라 의기소침해진 ‘나’는 조금이라도 벌어볼까 싶어 도박장에 가서 그나마도 거덜이 나버린다. 이때 은혜처럼 등장한 슈바르츠 씨. 그는 기꺼이 비자 스탬프가 찍힌 여권과, 배표 두 장과 수중에 있는 돈을 건네주는 대가로 이 밤이 새도록 자기가 망명객으로 겪은 생애를 들어달라고 요구한다. 보통 망명객이 겪어야 했던 좌절과 불안과 공포가 잘 표현되어 있다.

 


18. 방영웅, <분례기>

 석서방댁이 똥독 위에 앉아 뭐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어 픽 옆으로 쓰러지는 순간 글쎄 아이가 쑥 나오지 않았겠어? 원래 변소에서 낳은 아이 이름엔 똥 분자가 들어가야 오래, 건강하게, 부자로 산다기에 이름을 똥례로, 한문으로는 분례로 지은 거 아냐. 근데 옛 말대로 됐냐고? 에이, 그럼 그게 인생인가. 나이 열여덟을 먹도록 중매 하나 들어오는 게 없어. 아비가 노름꾼에다 다 찌그러진 가난뱅이거든. 어떻게 나중에 진짜 상 노름꾼 애꾸에다 부잣집아들의 후처로 들어가게 돼. 재미있어. 욕 한 마디를 하더라도 이제 다 잊은 줄 알았던 어릴 적 욕이 나오더라니까. 나 참.

 


19. J.M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

 흠. 정색을 하고 말씀드리면,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니다. 나와 비슷한 성질, 성품, 기타 등등을 가진 분에겐 비추. 그러나 책이 주장하는 바에 관해서는 적극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 이 목록에 올린다. 특정하지 않은 가상의 제국, 파시스트 국가, 독재국의 식민지 또는 멀고 먼 변경에서 벌어지는 대 야만인과의 전쟁 이야기. 진정한 야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표현 방법이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당신의 독서까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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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밤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5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경호 엮음 / 범우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서부전선 이상 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개선문>. 이렇게 세 작품이면 레마르크는 졸업했다고 생각했다. 그리 틀린 발언은 아니지만, <리스본의 밤>을 레마르크 목록에 추가한 것 역시 참 잘한 선택이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전쟁/전장을 무대로 한 반전소설이고, <개선문>에선 전쟁의 장면이 나오지는 않지만 나치 독일 치하에서 서방으로 탈출한 인물을 그리고 있다 해서 ‘망명문학’이라 한다는데 <개선문>에서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에 등장하는 (거의 대다수의)일반 망명객의 절망적인 기다림 같은 것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 <리스본의 밤>은 첫 장면부터 바로 이 일반 망명객을 등장시켜 1942년의 리스본 타조 항에서 저 멀리 정박해 있는 미국행 여객선을 바라만 보고 있는 독일을 탈출한 ‘나’의 무력한 모습을 부각시키고 있다. 포르투갈 정부로부터 얻은 체재기간도 며칠 남지 않았고, 아직 미국 영사관으로부터 비자를 얻을 수 있다는 어떤 귀띔도 받지 못했으며, 비자를 받았다 하더라도 뱃삯이 300달러나 부족한 상태.
 (리스본에 도착한 망명객, 정확하게 말해서 망명 희망자들은 남프랑스 마르세유 항에서 스페인 비자, 포르투갈 비자, 프랑스 체재기간 만료 사이에서 극도로 절망적인 경험을 이미 한 번 이상 겪은 이들이기도 하다. 마르세유에서의 혼돈상황은 앞 문단에서 얘기한 안나 제거스의 <통과비자>에서 세밀하게 묘사를 하고 있다. 다만 <통과비자>를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그것에 앞서 이 <리스본의 밤>을 먼저 읽어 당시의 망명객들의 마르세유에서의 갈급을 이해하는 순서로 독서계획을 잡는 편이 좋을 듯하다.)
 ‘나’는 미국행 비자는 다음으로 하고 일단 모자라는 300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바보같이 카지노에 간다. 그래 자신의 전 재산 62달러 가운데 56달러를 잃고 만다. 숙소에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으니 ‘나’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는 없었을 것. 늦은 밤에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나’의 뒤를 밟는다. 망명객이 다른 어떤 종족보다 뛰어난 직감 하나를 가지고 있다. 바로 쫓는 자를 발견하는 능력. 물론 오랜 시간 증명서 없이, 또는 가짜 증명서를 가지고 살며 해당 정부의 세관원, 경찰, 군인 등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발달시킨 여섯 번째 감각일 것이다. 누굴까. 경찰?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더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드디어 ‘나’를 따라잡은 정체모를 인물이 묻는다.
 “독일 사람입니까?” “뉴욕으로 가고 싶습니까?”
 그러면서 품 안에서 뉴욕 행 배표. 바로 저 앞 바다에 떠 있는 여객선의 승선표 두 장을 꺼내 갖고 싶으면 가지라고 말한다. “난 이제 필요 없으니까.”
 대신 오늘 밤 자신이 가슴에 담고 있는 말을 들어달라고 한다. 여기쯤에서 직접 증명서 없는 방랑 망명객 생활을 경험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말한다.
 “우리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가끔 미치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들이 혼자 있기 싫어한다는 것, 어디에고 소속될 곳이 없는 자들의 공포로 괴로워한다는 것, 그리고 비록 낯선 사이라도 하룻밤의 동지가 됨으로 해서 그를 자살로부터 구해 낼 수가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16쪽)
 ‘슈바르츠’라는 가명으로 살고 있는 이 정체모를 사람은 심지어 미국 비자 스탬프가 찍혀 있는 남녀 두 장의 여권도 배표와 함께 전해줄 용의가 있다. ‘나’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은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격이다. 기록자 ‘나’는 리스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완전하게 슈바르츠가 하는 말을 들어주는 일로 채우게 된다.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 레마르크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사랑,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다. 사랑이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온갖 역경을 거치게 될 뿐. 어떤 신난과 고난이 와도 사랑은 사랑이다. 끝내 유대인인지, 독일인이기는 하나 나치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인지 밝히지 않지만 슈바르츠는 게슈타포 처남에 의해 체포당해 수용소에서 고문을 비롯한 온갖 고통을 겪고 풀려나 5년 전에 프랑스로 망명한 인물. 4년 결혼생활과 5년의 망명 세월 동안 아내 안나를 향한 그리움은 비탈에서 굴린 눈덩이처럼 커져 기어이 다시 독일로 잠입해 아내의 모습이나마 한 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굴복하고 만다. 5년의 세월 동안 아내는 새로 결혼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궁금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다른 남자의 품에 있건 아니건 간에 자신이 아직도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이고, 동시에 아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는 일로도 충분하니까. 그래 슈바르츠는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스위스에서 오스트리아로, 다시 독일까지 거꾸로 잠입해 아내 안나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왜 슈바르츠로 하여금 다시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일로 가게 만들었을까. 그는 말한다. “나를 돌아오게 만든 것은 어쩌면 명명백백한 절망감”이었다고.
 “나의 여력 전부가 탈진해 버렸고 살아남겠다는 그 원초적인 의지는 고독이 주는 냉기를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다시 세워나갈 힘이 다한 것이지요. 나는 옛 생활을 버릴 수도, 극복할 수도 없었으며 거기서 붕괴가 시작되어 썩어가는 악취 속에서 완전히 썩어버리거나 뒤로 물러서거나 그걸 치료하거나 해야 할 선택의 갈림길에 섰던 것입니다.” (88쪽)
 그러나 아내를 만난 일은 슈바르츠의 긴 여정이 이제 새로이 시작했다는 걸 알리는 일일 뿐이다. 다시 그들에게 펼쳐지는 불안과 공포와 외로움과 가난과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지니, 어떤 내용인지는 직접 읽어 확인하시라.
 레마르크의 다른 작품, <서부전선 이상 없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개선문>과 비교해서 이 책 <리스본의 밤>이 더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결코. 그러나 그렇다고 범작 수준도 아니다. 역시 레마르크다. 불안과 고독 속에서 20세기 중반의 한 시절을 고통스럽게 흘려보낸 수많은 영혼들의 흔적을 매력있게 그려내고 있다. 다만 슈바르츠 한 사람의 이야기라 예시한 작품들보다 규모가 작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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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 1 대산세계문학총서 127
V. S. 나이폴 지음, 손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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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겔 스트리트>와 <도착의 수수께끼>에 이어 세 번째 읽은 나이폴. <미겔 스트리트>는, 아니, 먼저 나이폴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하자. 영국의 흑인노예 해방으로 인해 사탕수수 재배 인력을 위해 급하게 수입된 인도인 이민 3세로 영국령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태어나 식민 모국이었던 영국의 장학금을 받으며 영국에서 유학해 영국인으로 살고 있으나, 여섯 살부터 청소년기까지를 보낸 트리니다드 토바고, 그중에서도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을 사실상 고향으로 인식하는 인도 브라만 핏줄의 소설가. 대충 그림이 그려지실 것이다. 자신의 가난하고 지긋지긋했던 소년시절을 밝은 필체의 연작소설로 그린 것이 <미겔 스트리트>. 나중에 나이 먹어 이제 영국에 안착하여 스톤헨지 부근에 자그마한 돌집을 짓고 방랑하는 인도인이 드디어 한 곳에 정착하기 전까지 있었던 몇 번의 도착arrival이 의미하는 바를 쓴 <도착의 수수께끼>는 자신의 기억을 큰 줄기로 하되, 당연히 작가 스스로가 선별하고 자의적으로 왜곡시킨 경험을 서술했다고 할 수 있고, 이번에 읽은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은 얼핏, 작가 나이폴의 아버지 시퍼사드 나이폴의 생애를 ‘집’을 얻기 위한 투쟁의 측면에서 관찰한 작품이라 주장할 수 있음직하다. 물론 내가 나이폴에 대해 잘 알아서 이렇게 얘기 하는 건 아니다. 책 뒤편 해설에 나이폴의 아버지 시퍼사트 나이폴 씨가 브라만 계급출신이고, 부유한 처가에 더부살이를 했으며, 이 책의 주인공 비스와스 씨와 비슷하게 처가와 애증의 관계에 있었다고 하니, 하는 말이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아직 트리니다드와 토바고가 각각의 식민지로 떨어져 있을 당시, 트리니다드의 한 농촌 도시에서, 힌두교 미신에 의하면 불길하기 짝이 없는 자정, 밤 열두 시에, 머리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두 발부터 세상 구경을 하면서, 손가락을 여섯 개 달고 한 아이가 태어나니 이이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모헌 비스와스 씨다. 더 이상 불길할 수 없는 별자리를 타고 난 모헌을 내려다보며 일종의 주술사는 지금 태어난 이 집안의 셋째 아이가 어미 아비를 잡아먹을 팔자라고 단정을 해버리면서, 특별하게 물, 마시는 물이나, 물 비슷한 우유, 술 등을 일컫는 것이 아니고, 흐르는 물 가까이엔 절대로 못 가게 해야 한다고 아이의 부모 가슴에 힘차게 못질을 한다. 이런 예언은 아빠보다는 엄마 빕티의 가슴에 팍 새겨졌다. 그러나 불길한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소설작법 제2장 1절의 진리에 의거하여, 마치 탯줄이 저절로 떨어지듯 여섯 번째 손가락이 어느 날 신체에서 똑 떨어지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인생에서 딱 한 번 물에 빠졌을 뿐인데, 수영과 잠수를 동네에서 가장 잘하는 아빠가 모헌을 구하려 몇 번 잠수를 감행했다가 기어이 용왕님을 알현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세상에서 자식 교육에 전력을 기울이는 인종 가운데 유대인과 한국인은 널리 알려져 있고, 인도인의 상류계급들도 그러한가 보다. 모헌의 엄마는 이제 가족/친척 가운데 가장 계급이 낮은 과부로 떨어졌음에도 어린 비스와스에게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받게 하는데 성공한다. 그래 부실한 체력으로 육체노동과 완력의 사용에 체질적 약점을 갖고 태어난 비스와스 씨가 처가에서 온갖 굴욕, 온갖 잡일을 하다가 비록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버젓하게 신문사 기자에 이어 국가공무원이 될 수 있었으니, 교육의 힘이 대단하기는 대단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스와스 씨의 굴곡진 인생을 희극적 묘사로 일관하고 있지만, 사실 각 장면이 진짜 지긋지긋한 가난과 눈치와 처가식구들에 의한 멸시와 비난을 견뎌야 하는 와중의 모습을 이렇게 희화화해놓은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서술방식은 <미겔 스트리트>와 비슷하다 할 터인데, 자정에 거꾸로 태어난 육손이 비스와스 씨는 또한 사주에 해학과 신랄한 풍자의 팔자가 들어있는지라 대책도 없이 처가식구와 처가의 권력에 반항하고, 비아냥거리고, 비웃다가, 심각한 수준까지 얻어터지기도 하고, 내쫓기기도 하고, 소작쟁의가 일어날 것이 뻔한 사탕수수 농장의 관리인으로 보내지기도 한다. 작가 나이폴은 자기 아버지의 현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비스와스 씨를 어찌 이렇게 묘사해놓았을까. 주둥이만 살아 나불대며 하는 일마다 전부 실패로 마감하며 인생을 다 바치는 인물. 그러면서도 단 하나, 그래도 자기 살아생전 집 하나는 남겨놓는, 집 하나만 달랑 남겨놓는 인물로. 그건 책을 읽어보시면 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스와스 씨가 나하고 매우 비슷한 면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그리 꼬이는지. 그와 내가 제일 다른 건, 나는 열세 번의 이사 끝에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한 다음, 집과 여하튼 모든 부동산에 관한 전권을 아내에게 위임했다는 거. 살아보니 여자 말 들어서 나쁠 거 별로 없더라고.
 비스와스 씨는 딸, 딸, 아들, 딸을 둔다. 이 가운데 큰딸 사비는 장학금을 받고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갔다가 다시 귀국을 하고, 아들 아난드 역시 장학금을 받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그곳에서 정착하는 걸로 봐서, 독자는 중요한 출연진인 아난드가 작가 V.S.나이폴이고, 비스와스 씨가 그의 아버지 시퍼사드 나이폴 씨라고 오해할 권리가 있는데, 뭐 굳이 그렇게 오해할 필요 없이, 그냥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이다. 1, 2권 합해서 870쪽에 달해 분량이 좀 부담스럽지만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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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그린 - 정원 아래서 외 5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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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0쪽에 모두 53편의 단편 소설을 실었다. 나는 그린의 책과 상당히 늦게 만났다. 당연히 <권력과 영광>을 제일 먼저 읽었는데, 번역에 관해 논란이 많아 그렇게 됐다. 유명 소설가가 한 번역이었다. 난 소설가의 번역을 될 수 있으면 피하는 편이다. 우리말을 과하게 잘해 원문을 자기 마음대로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고,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는 대신 문맥만 파악해 옮겨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들 모두 소설가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윤문으로 무마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더는 미룰 수 없어 읽어봤더니 그렇게 재미날 수 없더라는 거. 그렇다고 <권력과 영광>을 추천하지는 않겠다. 오역 여부에 관한 논란이 여전하고, 중쇄를 찍었음에도 (확인한 바는 없지만) 개전의 정이 없다고 한다. 읽으실 분만 읽어보시라.
 하여간 그래서 그레이엄 그린을 알게 됐다가, 이제 지난 주 월, 화, 수요일, 삼일에 걸쳐 930쪽에 달하는 53편의 단편집을 읽었다. 네 권의 단편선집과 미발표 단편 네 편을 묶어 2005년 펭귄북스에서 발매한 <그레이엄 그린 단편 전집>을 번역했다고 한다. 지난달에 읽은 캐서린 앤 포터의 단편집은 여성 아니면 쓸 수 없는 아릿한 작품들로 구성됐다고 하면, 이 책은 남성만 쓸 수 있는 선 굵은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1부 “21가지 이야기”는 1929년부터 54년까지 작품을 쓴 역순으로 꾸며져 있다. 글쎄,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린 역시 첫 작품부터 빼어나지는 않았다. 아,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그레이엄 그린이 훌륭한 단편소설 작가라고 이야기 하려고 한다. 작품마다 명작을 뽑아내면 그게 어디 인간이겠는가. 소수의 범작, 졸작도 있는 게 정상이지.
 책을 펼치면 54년에 최초 출간한 책 “21가지 이야기”의 첫 작품 ‘파괴자들’이 나오는데 처음 두 문장이 이렇다.
 “가장 최근에 입단한 신참이 ‘윔즐리코먼 갱단’의 우두머리가 된 것을 8월 공휴일 전날 밤이었다. 마이크 말고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이 문장 뒤에 같은 문단이지만 딱 맞춰 줄이 바뀌며 이어지는 문장이,
 “그러나 아홉 살인 마이크는 무슨 일에나 놀랐다.”
 흠. 그레이엄 그린이 누군가. 영화 <제3의 사나이>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먹고, <오리엔트 특급>의 원작도 쓴 장르문학의 큰 별이다. 위의 처음 두 문장으로 비슷한 추리, 첩보, 범죄 등을 기대했다가 아이고, 아홉 살? 동네 악동들이 만든 갱단이 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조금 속은 기분. 정말? 정말. 그러다가 페이지를 넘기면서 조금씩 독자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열 살 내외의 악동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집단 폭력성과 파괴성. 그러면서 늙어 거의 완벽하게 무력한 피해자에게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하는 말이 이렇다.
 “죄송해요. 웃음이 터져 나오는걸 참을 수 없어요, 토머스 씨.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요. 하지만 이건 우스운 일이라는 걸 인정하셔야 해요.”
 몇 명의 소년들이 완전히 ‘재미삼아’ 약자인 동네 노인에게 폭력을 저지르고 이렇게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그린은 인간 본성 속에 들어 있는 범죄성향을 신랄하게 그려낸다. 이것으로 소년들에 의한 폭력을 다룬 단편 <파괴자들>은 5년 전에 쓴 <제3의 사나이>의 주인공 해리 라임이 관람차 위에 올라 까마득한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무수한 점 가운데 하나가 없어진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지겠나.”라는 대사와 연결이 되는 거 아닐까. 약한 것을 보면 괴롭히는 장난. 다들 어릴 때 해보셨을 거다. 파리를 잡아 날개를 떼고 놔주는 행위. 이게 사람의 본성이고, 그걸 문자를 통해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작가란 사람의 직업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심리소설이다. 유럽인 부부가 더운 태국으로 여행을 떠났다. 뭔가 새로운 자극을 찾는 이들. 어떻게 하다 보니 포르노 영화를 틀어주는 조그만 집에 들어가게 됐다. 1950년대 중반이니 외설영화도 구경하기 쉽지는 않았을 터. 영화가 시작하고 여자가 남자의 옷을 벗기는데 어깨의 특별한 점을 발견한 남편. 그는 아내에게 그만 자리를 뜨자고 재촉하고, 여태까지 지루하다고 불평하던 아내는 남편이 그럴수록 오히려 더 보자고 고집을 피우다, 포르노의 주인공 남자가 바로 옆에 앉은 남편의 젊은 시절 모습이라는 걸 알고 경악한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가르쳐드리지 않겠다. 이런 의미에서 작품의 거의 대부분은 심리소설이다. 심리는 심리인데 남자의 시각에서 본 인간의 심리. 그래서 혹시 여성이 읽으면 남성에 의하여 왜곡된 여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한꺼번에 쉰 세 편의 단편소설을 읽어 제목과 내용이 막 섞여 떠오른다. 그럼에도 좋았던 작품 세 개만 대보라면, <정원 아래서>, <남편 좀 빌려도 돼요?>와 <8월에는 저렴하다>를 꼽겠다. <정원 아래서>는 문예출판사에서 찍은 『제3의 사나이』의 두 번째 작품인데, 이 책에도 있다는 걸 알고 당시엔 읽지 않았었다. 단편소설들이라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무려 쉰 세 편에서 고른 딱 세 작품에 관해서라면.
 내가 책 읽는 방법이 나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쩌랴, 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치워야 속이 개운해지는 스타일인 걸. 그럼에도, 역시 단편집은, 특별히 현대문학에서 내고 있는 ‘세계문학 단편선’ 같은 두꺼운 단편집은 넉넉하게 날짜를 잡고 한 번에 한두 편씩 꼭꼭 씹어가며 읽는 편이 훨씬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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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바빌론에 오다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40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황혜인 옮김 / 책세상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천사가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안드로메다 성운을 중심으로 적색 별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업무였는데, 하루는 주님께서 가운뎃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비비더니 손등에서 꼬물거리는 인간 여성 모습의 생명체를 하나 만들어 이름을 쿠루비라고 하며 천사에게 주면서, 인간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 건네라는 지시를 받들어 모시게 되었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이 유프라테스 강변의 바빌론. 바빌론은 바빌론인데 누가 지배하고 있었는가 하면, 바로 얼마 전에 쿠데타에 성공해 정권을 장악하고 이제 사회주의 체제로 만들기로 결심을 한 국왕 네부카드네자르 치하 원년이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자기가 아는 좁은 지식 안에서 말하자면, 전 세상을 통일한 유일한 국가의 왕이란 것. 이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면서 유일하게 노동하지 않고 밥을 먹는 거지라는 계급을 박멸하기 위해 바빌론의 모든 거지를 협박, 체포, 고문 등을 통해 다 노동자로 만들었는바,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바빌론의 천재적인 거지 ‘아키’는 여태까지 전향을 거부하면서 자기가 동냥해온 돈으로 바빌론의 숱한 시인을 먹여 살리고 있는 거였다. 그러니 국왕 네부카드네자르가 신경질이 날 수밖에.
 국왕이 수상에게 묻는다. “고문은 했는가?”
 수상이 답하기를, “그의 몸 어느 한 구석도 뜨겁게 달군 쇠로 지지지 않은 곳이 없고, 어떤 뼈도 엄청난 무게에 짓눌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네부카드네자르는 대국의 국왕답게 사형보다는 직접 만나 설득을 해서 내일부터 공무원 자리를 주어 일을 하게 만들겠다고 결심을 해,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천재적인 거지 아키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국왕 역시 누더기를 걸치고 붉은 가발을 쓴 채 나타나는 장소에, 하필이면 똑같이 누더기에 붉은 가발을 한 천사 역시 짙은 베일을 한 쿠루비를 대동하고 나타나는 바람에, 거지 아키, 국왕 네부카드네자르, 그리고 천사가 비슷한 모양을 하고 만나게 된다. 이렇게 1막은 시작한다.
 여기서 절묘한 반전이 일어난다. 이건 얘기해도 스포일러는 아닐 것이라 소개한다. 네부카드네자르는 아키를 설득하기 위해 거지대결을 벌이기로 한다. 누가 더 구걸을 잘 할 수 있는가를 내기하는 건데, 천하의 네부카드네자르, 일찍이 아라비아반도 전체를 통일하고 거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완성했으며, 유대문명까지 몽땅 자기 노예로 만든 위대한 왕이라서 자신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서만 살지 않았을까. 그래 겁도 없이 프로페셔널 거지 아키에게 구걸 도전을 했으니 그걸 이겨낼 수 있나. 거기다가 명색이 왕이라 주변에 숨어 있는 측근들의 훈수나 도움도 깨끗하게 거절을 해버리니 말이지. 여기서 구경꾼으로 관람석에 앉아 있던 천사와 쿠루비는 세상에서 딱 둘 남은 거지 가운데 구걸도 제대로 못하는 거지가 가장 비참한 인간이라고 결론을 내려 시합에 지는 거지에게 쿠루비를 넘겨주기로 결정을 했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구걸을 한다 해도 선걸仙乞, 걸인의 신선 수준에 도달한 아키를 이길 수 없어 총점 99대 1로 패배하면서, 일은 우습게 꼬인다. 졸지에 거대왕국의 군주 네부카드네자르가 가장 비참한 인간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천사는 더 이상 아무 생각 없이 어여쁜 정도를 넘어 모든 남자가 단 한 번의 눈길로 넋이 나갈 정도의 미모를 지닌 쿠루비를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는 국왕의 손길로 넘겨주니, 국왕이 제일 비참한 인간인가, 천사도 실수를 하는가, 긴가민가해지고 만다. 어떠셔, 이 정도 가지고는 스포일러라고 하지 못하겠지? 그래서 맛보기로 여기까지만 써놓아도 되겠지?
 뒤렌마트는 하여튼 재미있는 극작가다. <노부인의 방문>도 그렇고, <물리학자>도 그렇더니, 여기서도 뭐 이것저것 막 떠오르는 대로 변주를 해버린다. 자세한 건 진짜 스포일러가 될까봐 더 이상은 얘기하지 못하겠는데, 비록 지금 신분은 국왕이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비참한 인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정신적? 제일 우스운 것이 법의 그물에서 살짝 벗어난 잘못을 저질러놓고 “도의적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삽질하는 인간들. 그걸 다른 표현으로 하면 “절대 책임지지 않겠다”는 거하고 뭐가 달라? 아, 또 삼천포. 다시 네부카드네자르로 돌아와서, 국왕이란 자리보다 더 정치적인 위치는 없을 것이다. 그래 정치적으로 국왕 네부카드네자르는 어떠신데? 이런 물음을 던질 수도 있지 않을까? 아키를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지만 결코 노동자로 전향하지 않으면 가로등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다는 신념. “동냥질은 반사회적”이라서. 그럼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고 기어이 아라비아 반도에서부터 소아시아 지방까지 다 먹고 입 싹 닦은 자신은? 이래저래 연극은 복잡한 골목으로 접어 들어가고 이에 비례해 읽는 재미는 점점 더 고양되는데, 더 이상은 짧은 희곡을 너무 상세하게 이야기하는 거 같아 이쯤에서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으니 바로,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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