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김성곤 해설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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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먹먹하다.
 메릴린 로빈슨. 몇 권 쓰지도 않은 작가가 어떻게 책마다 사람의 심금을 이리 저며 놓는지.
 한 여인이 있다. 어느 비 오는 날 밤, 한없이 쏟아지는 비를 철철 맞으며 사랑을 호소하는 452통의 편지와 귀한 금속으로 만든 반지 하나를 하수구에 한 장, 한 장 쏟아버렸다. 9년에 걸친 약혼기간 동안 이 여인 글로리는 어느 새 서른여덟 살이 되었고, 중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번 돈 모두를 약혼자의 사업자금으로 탕진해버린 데다, 처음부터 혹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기미를 챘으나 구태여 확인하지 않은 바와 같이, 약혼자는 유부남인 것이 드러나 버렸다. 학교를 사직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여덟 남매의 막내 글로리는 어느 날 아이오와 주의 아주 작고 완고한 소읍 길리아드에 있는 옛집, 커다랗고 낡았지만 깊은 병에 든 늙은 아버지를 돌본다는 구실로 피난처를 찾듯 돌아왔다. 길리아드. 로빈슨이 쓴 두 번째 작품 <길리아드>와 같은 소읍이며 성경에 나오는 ‘치유의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단다.
 얼마 후, 여덟 가운데 다섯째인 잭이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어려서부터 동네 제일가는 악동으로 사소한 도둑질과 사고치기를 밥 먹듯 해온 유명한 문제아였다가, 한 소녀를 임신시켜 딸을 낳게 하고도 그냥 떠나버린 탕아.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 잘하는 동생 테디가 대리시험을 치루면서까지 졸업을 시키려했으나 결국 낙제 끝에 졸업하지 못하고 알코올중독에 빠져 헤매다 무슨 이유인지 전과자가 되어 버린다. 출소 후 한 여인을 만나 그 여인에게 무수한 죄를 지으면서도 그래도 최근 10년 동안은 평온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이력을 모두 알아낸 애인의 목사 아버지와 친척들에 의하여 배척을 받아, 동생이 와 있는지도 모르고 역시 고단한 몸의 잠시나마 뉘려 고향집에 들은 것.
 메릴린 로빈슨의 세 작품 모두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과 같다. 가족. 또는 옛집. 참 모질게도 끊어지지 못하고 좋으나 싫으나, 미우나 고우나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긋지긋한 끈. 가족과 형제. 로빈슨은 거의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있는 치명적 약점,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연대로서의 가족들 사이에 늘 누추하고, 시큰거리고, 떠올리기만 해도 어딘가가 저릿하며, 가슴 속을 텅 비우는 후회와 슬픔을, 새파랗게 날 선 칼날로 썩 베어버리고 만다. 잘 드는 칼날이 피부를 슬쩍 스쳐지나갈 때의 서늘함. 육체적 고통을 느끼기 바로 전까지의 돌이킬 수 없는 살갗의 감촉.
 난 이런 책, 좋아하지 않는다. 경건하고 늘 자상하면서도 엄숙했던 아버지. 이제 늙어 땅거미 지는 황혼을 맞아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거동도 못하는 약한 노인. 아직도 자식들에게 성경과 장로교적 태도를 권하지만 이젠 예전 옷들을 입어볼 수도 없이 쪼그라들고 약한 아버지. 삶에 지쳐 갈 곳 없어 돌아오긴 했으나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러나 삶의 실패의 무게에 눌린 남매. 아버지는 죽음을 향한 막바지 길로 접어들고, 돌아온 탕아는 다시 집을 떠나는 것을 예고하며, 결국 막내딸이 크고 낡은 집에 홀로 남게 되는 이야기. 살면서 부모에게 잘한 거 없었고, 형제간에 애틋하지도 않았던 나는 이런 종류의 책만 읽으면 오히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더 알러지 증상이 도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메릴린 로빈슨. 아, 난 이 미세스 로빈슨이 쓴 작품들에겐 두 손 들었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쓰는지. 이게 문학의 힘이고 소설의 힘인가? 시멘트로 발라놨던 내 눈물샘조차 뚫어버리는 약하고, 가늘고, 조심스럽고, 점잖고, 겸손한, 나도 모르는 힘. 아, 모르겠다. 로빈슨 여사. 노래나 하나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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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9-1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세스 로빈슨>은 정말 오래 전에
영화 <졸업>에서 로빈슨이 부인이 어린
더스틴 호프만을 꾈 적에 나오던 그 노
래가 아니었던가요.

그렇게 유명한 영화인데 결국 다 보지
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메릴린 로빈슨의 책은 <하우스키핑>
읽다만 게 전부네요...

Falstaff 2018-09-13 12:33   좋아요 0 | URL
옙. 새파랗게 젊은 더스틴 호프만이 등장해서 결혼식날 신부 캐서린 로스를 훔쳐 달아나는 영화요. 당시만 해도 굉장히 선정적인 영화였답니다.
<하우스 키핑> 마저 다 읽으시지.... 그거 은근히 재미나지 않나요?
 
네로의 비밀 -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2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2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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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뭐야!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막스 갈로가 쓴 로마 인물소설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네로의 비밀>은, 첫 번째 작품인 <스파르타쿠스의 죽음>과 달리 이 한 권에서 끝나지 않는다. 뒤로 가면 갈수록, 이렇게 뜸만 들이다가 언제 네로가 죽을까…에서, 지금 죽지 않으면 결말까지 못 가는데, 싶다가 기어이 에이 썅, 베스파시아누스가 이제 나오면 틀림없이 다음 권까지 읽어야 한다는 걸 눈치 챈다. 그 허무감이라니.
 네로가 죽인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세네카라는 인간이 있다. 로마 황제 시절의 유명한 철학자로 말더듬이, 절름발이, 간질병 환자였던 클라우디우스 황제한테 미움을 받아 귀양을 간 사람인데, 이이가 작품의 화자인 세레누스의 은사이기도 하다. 세레누스는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조카 아그리피나가 나중에 네로가 되는 루키우스 도미티우스를 낳을 때부터 시작해 이 책이 끝나는 시점까지, 그리고 다음 권인 <티투스의 승부수>에서 네로가 죽은 다음까지 험한 세월 동안 독약을 먹거나, 동맥을 끊거나, 목이 잘리거나, 맞아죽지 않고 기어이 살아내는데 성공하여 나중에 네로가 죽을 때까지 그를 둘러싼 사건들을 평전 식으로 기록한다. 화자 세레누스처럼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을 우리는 궁극적 승자라고 하는 거 아냐? 하여간 그렇다는 말씀.
 화자 세레누스는 처음부터 세네카가 죽을 때까지는, 아그리피나가 남편을 죽이고 삼촌인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한 다음 황제마저 독살해서 기어이 열여섯 살 먹은 아들 네로를 황제의 위에 오르게 한 후, 네로가 차츰 혼탁해져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이자 자신의 배 다른 동생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하고, 자기 대신 권력을 농락하려는 친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양날검으로 처단하고, 후환을 없앤다는 명분으로(사실은 포파이아와 결혼하기 위해) 클라우디우스의 친딸이자 자신의 아내인 옥타비아를 죽여 전권을 차지할 때까지, 황제의 옆에서 천륜을 어겨가며 자행한 살인행위에도 불구하고 세네카가 네로에게 옳은 길로 가도록 충언하지 않은, 또는 못한 것을 한탄하기만 한다. 세네카가 죽은 다음엔? 죽기 얼마 전부터 저 촌의 지방도시 작은 별장에 머물러 소낙비를 피하다가, 작품의 화자가 되기 위해 다시 로마로 와서 세네카의 죽음을 지켜보고, 자신이 비난했던 세네카보다 훨씬 더 조용하게, 왕창 겁을 먹고 네로의 눈 밖에 나 죽음을 맞지 않기 위해 조심 또 조심하면서 목숨을 이어간다. 다 그런 거지. 그리고 이런 거, 다 독자가 이해해야 한다. 세레누스 본인이 비겁하게 살아남고 싶었다기보다, 막스 갈로가 그로 하여금 책의 화자 역할을 시키기 위해 창작한 인물이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했듯 결론, 즉 네로가 이 책에선 죽지 않는데 뭘 더 얘기할 것이 있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어라? 했던 것만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


 1. 헨릭 시엔키에비츠가 쓴 <쿠오바디스>에 등장하는 사실상 제일 멋있는 남자, 페트로니우스가 정말 실존했던 인물이었던 거다. 햐, 이 반가움이라니. 이 책에서도 <쿠오바디스>와 같이 자살하기 위해 손목을 그었다가 다시 붕대를 감고 네로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도 등장한다. 물론 시엔키에비츠처럼 명문의 편지는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지, 갈로의 본업은 소설가라기보다 사학자에 가까우니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시엔키에비츠를 능가하는 페트로니우스의 편지, 유머가 가득하면서도 사정없이 네로의 유치한 취향을 비꼬아버리는 날이 퍼런 독설과 비견할 문장을 만들지는 못했을 거다. 기억하시나? 페트로니우스가 네로 개자식에게 보냈던 편지. 한 번 보시라.
 “폐하. 앞으로 만수무강하시더라도 제발 대중 앞에서 노래는 하지 마십시오. 양민을 학살하시더라도, 아무튼 시는 쓰지 말아주십시오. 사람들을 독살하시더라도, 부디 춤은 추지 마십시오. 또다시 불을 지르시더라도, 부탁이니 그 서투른 키타라 연주는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폐하의 벗이자 ‘고상한 판관’인 페트로니우스가 폐하께 드리는 충고입니다.”
 <네로의 비밀>에서도 똑같은 상황에 처한 로마가 다시 등장한다. 다만 작품의 주제가 네로, 한 개인이기 때문에 <쿠오바디스>와 달리 폭군에게만 초점을 맞춰 서술한다.


 2. 몬테베르디가 지은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하고 어째 이리 다를까. 몬테베르디는 자신의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버린다. 포파이아(포페아)의 남편 오토(오토네)가 황후 옥타비아와 공모해서 포파이아를 죽일 계책을 세운다고? 아이고. 옥타비아의 시어머니이자 새엄마이자 사촌언니인 아그리피나가 아들 네로한테 버림을 받고 권력을 잃어버린 후, 옥타비아가 정통 황실의 후손임을 깨달은 아그리피나가 친아들 네로를 제거하고 옥타비아를 내세워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있을 거라 머리를 굴리다 오히려 아들한테 죽임을 당한 이후인데 무슨 깡다구가 있고 측근이 있고 무리들이 있어 모사를 꾸미겠느냐고. 아 씨, 난 여태까지 <포페아의 대관> 내용이 정말인줄 알고 살았다. 이럴 때 김도향이란 이름의 흰 수염 난 옛 가수는 이런 노래 부르더라.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책 읽어보니까 포파이아가 등장할 무렵 네로는 정식 아내이자 이름뿐인 아내인 옥타비아 말고 동성애 전용 남편 한 명, 동성애 전용 아내 한 명, 이렇게 있었는데, 여기에 포파이아가 합세해 <쿠오바디스>의 영웅 페트로니우스조차 “아크로바틱하다”고 할 정도의 난잡하고 고 난이도의 난교파티에 날 새는 줄 몰랐다고 한다. 그런 네로와 포파이아의 연애를 이렇게 노래하는 게 말이 돼? 

 

 

 게다가 포파이아가 어떻게 죽느냐 하면, (유부녀가)혼전 임신했던 첫 딸이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죽은 다음, 다시 임신을 해 배가 부른 상태에서, 무슨 일로 꼭지가 돈 네로가 본처 옥타비아를 죽이고 들였을 정도로 죽자 사자 사랑했던 포파이아의 아랫배를 힘껏 걷어차, 바로 그 자리에서 푹 고꾸라지더니 죽고 만다(장출혈이지 뭐겠어). 이중창을 들으면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겠으나, 당시 네로가 저질렀던 미친 지랄들을 읽어보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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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모던 클래식 4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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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차 세계대전 말기 연합군에 의한 드레스덴 폭격, 그리고 2001년 여객기에 의한 뉴욕 무역센터빌딩 테러. 두 사건의 공통점은 놀랄 만한 수의 민간인 희생이다. 책은 우연하게도 두 사건의 희생자가 된 독일 출신 미국 이민가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은 아홉 살짜리 똑똑한 소년 오스카 셸의 시각으로 쓰여 있다.
 나날이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던 가족. 전쟁 중이지만 그나마 평화로운 날들이 계속됐던 독일 남동부의 오랜 도시 드레스덴에, 갑자기,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무차별 폭격이 벌어져 어쩌면 큰 고모가 됐을 지도 모를 아이를 배에 담고 있는 할아버지 토머스의 약혼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56년 후 평화로운 가을의 어느 화요일 오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두 대의 보잉기가 각각 들이받아, 나, 아홉 살짜리 아들과 함께 엉뚱한 발명을 하고 우주 창조에 관해 토론을 하던 아빠가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일어났다. 할아버지 토머스 셸은 드레스덴 폭격으로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애나와, 애나의 태중에 있던 아이가 사라져버리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발음기관에서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그리고and'란 말을 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앰퍼샌드ampersand(&)‘을 써서 “커피 앰퍼샌드 단 것 주세요.”라고 해야 했으며, 이튿날엔 ’...하고 싶다‘란 말이 나오지 않아 대신 ’욕망하다‘로 이야기 했다. 이어서 ’지니다‘ ’일기장‘ ’연필‘ ’잔돈‘ 등을 말할 수 없었다. 이런 걸 ’실어증失語症‘이라 하나? 그래서 토머스는 의사소통을 위해 왼 손바닥엔 ’YES‘, 오른 손바닥엔 ’NO‘라고 문신을 새기기에 이른다.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이 두 가지라서. 그리고 늘 공책을 가지고 다니며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연필로 쓴다. 이렇게.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런 페이지가 나와도 독자가 당황하지 않는 건, 이거 말고도 심지어 다음과 같이 아무 글자가 쓰여 있지 않거나, 붉은 펜으로 잔뜩 교정해놓은 장면이 나와도

 

 



 하나도 놀라지 않는 건, 벌써 1759년에 로렌스 스턴이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생각과 인생 이야기>에서 몇 차례 써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비조(물론 농담이다) 로렌스 스턴은 특정 인물의 조의를 표시하기 위해 한 페이지를 검정색으로 칠해놓은 적도 있고, 독자의 이해를 위하여 대리석 문양으로 역시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경우도 있었던 건 아실 터.
 토머스의 손자 오스카는, 시신은커녕 옷자락 하나 찾지 못한 아버지를 굳이 매장해야 한다는 엄마의 의견을 좇아 빈 관을 싣고 공동묘지로 향하는 리무진 안에서 선량한 리무진 기사 제럴드 톰슨에게 악의 없는 우스갯말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정신치료사 하워드 페인 박사와의 면담에서 의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좋은 점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묻자, 오스카는 “아빠가 돌아가셔서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요?”라고 되물어 확인한 다음, 의자를 걷어차고 그의 서류를 마룻바닥에 내팽개치면서 고래고래 “아니! 있을 리가 없잖아, 이 개새끼야!”라고 소리치고 싶었으나, 대신 아빠와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어깨만 으쓱하고 만다.
 책의 많은 부분은 집에 놓여있던 파란 꽃병 속의 열쇠, 그것에 맞는 자물쇠를 찾는 일에 할양한다. 우연히 꽃병을 깸으로써 조그만 봉투에 담긴 열쇠를 발견하긴 했지만 용도도 모르고, 어디에 써야하는 지도 모르며 오직 아빠가 봉투 위에 직접 쓴 블랙Black이란 단어 하나를 단서로, 아이는 뉴욕의 모든 블랙 씨를 면담하는 장도에 나선다. 어디에 맞는 열쇠일까. 책의 본문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냐타나서 끝날 때까지 가장 자주 나오는 사진이 등장하는데, 바로 문의 손잡이다. 그럼 혹시 이 열쇠가 손잡이, 문을 열 때 쓰는 용도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는, 열쇠의 모습이 손잡이에 맞는 게 아니라는 걸 처음부터 알 수 있지만, 넓게, 책 전체를 아울러 2차 세계대전의 드레스덴 공습과 히로시마 원폭 투하와, 21세기의 언더그라운드 제로를 통하게 만드는 문을 열 수 있는 기재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드레스덴, 히로시마와 뉴욕의 재앙과 재앙의 피해자는 “믿을 수 없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애나가 죽은 후, 애나의 동생과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결혼한 말 못하는 토머스. 몇 년 후 그는 아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40년 동안. 그러나 아내와 아이와 완전히 이별한 건 아니어서, 토머스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니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 자신과 대양 하나를 두고 떨어져 사는 얼굴 본 적 없는 아들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다 2001년 9월 11일이 지나고, 며칠이 더 지나고, 신문에 난 희생자의 명단에 자기 이름이 들어 있는 걸 알고 대양을 건너온 토머스는 40년 만에 아내를 만나고, 아들 대신 손자 오스카를 만난다. 가방 하나 가득하게 든, 부치지 못한 편지를 든 토머스. 그는 그토록 많은 편지를 어떻게 했을까. 드레스덴과 히로시마와 뉴욕에서 날벼락을 맞은 보통의 인간들을 완전히 정치색을 배제한 채 비극과 충격의 증상을 그리고 있는 작품.
 이이의 다른 책을 한 권쯤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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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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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소설이라 읽어봤다. 제목을 왜 이렇게 뽑았을까. 내가 편집자라면 <도쿄만 풍경> 비슷하게 달았을 거 같다. 한문 東京灣景을 우리말 음가 그대로 썼는데, 내 경우, ‘동경’과 ‘만경’ 운이 비슷해서 동경↗ 만경↘, 이런 식으로 읽어버렸으니, 도쿄 배경의 만경晩景, 늦은 경치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뭐 일리가 있잖은가. 정작 헌책을 사서 표지를 보니까 한문으로 東京灣景이라 쓰여 있는데, 東京灣은 고동색으로, 景은 검정색으로 ‘東京灣景’ 달리 색을 칠해놓았다.
 연애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 상당히 많이 팔린 소설이고, 일본에선 드라마로도 만들어 작가로 하여금 돈벼락을 맞게 했던 모양. 얼마나 좋았을까. 전형적인 일본 대중소설. 내가 대중소설 알기를 우습게 아는 인종이 아니란 건 아실 것이지만, 일단 내 취향이 아니다. 쉽게 읽히고 그래서 진도 잘 나가고, 유별난 베드 신이 없는 것까진 좋은데, 원래 사랑이란 것이 아무 것도 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몸과 마음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이라 딱히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범은 없을지라도 적어도 화르륵 불타오르는 정점은 한 번 찍어줘야 제 맛이다. 바로 이때 작가가 정점의 사랑을 묘사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언어 때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불멸의 명작이 되고 셰익스피어가 눈부신 극작가로 변신하는 것.
 내 취향하고 제일 맞지 않았던 건 작품의 결말을 위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연출의 영화 <일식>을 가져다 쓴 것. 다시 말 하건데, 이런 방식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내 취향과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찍이 영화 <일식>을 본 적이 있는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구상했던 결론이 <일식>과 같았을 수도 있고, <일식>을 본 다음에 이 영화의 피날레를 소설 속에서 한 번 써보고 싶었을 수도 있는 바, 둘의 공통점은 연애소설의 결말(희한하지? 연애소설의 결말은 거의 대부분 이별인 것이. 그래 연애소설은 기본적으로 이별소설이다.)을 보다 쉽게 장식할 수 있었으며, 결말을 위해 작가가 머리를 움켜쥐고 이리저리 시도를 해볼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냥 아마추어 독자인 내가 그런 걸 싫어한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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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9-07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제목에 그런 뜻이 있었군요...
그냥 동경만의 풍경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요.

공감합니다, 아무리 고전이고 걸작이고 해도
자신의 취향이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꽝이지욧.

Falstaff 2018-09-07 09:54   좋아요 0 | URL
옙. 동경만을 사이에 두고 직장을 가진 여자와 남자 사이의 ˝몸의 사랑˝이 주제입니다. 저주지요, 저주. 마음은 끌리지 않지만 속궁합이 찰떡인 커플.
취향에 관한 의견에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잠자냥 2018-09-0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동경↗ 만경↘, ‘이 아니었군요! 놀라워라... ‘동경만 경‘이었다니.... 이 책을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암튼 폴스타프 님 덕분에 제목은 확실히 알고 갑니다. ㅎㅎ

Falstaff 2018-09-07 11:32   좋아요 0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아무도 없어요 최측의농간 시집선 1
박서원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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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이렇게 쓰면 안 된다. 당신 시 때문에 다른 시인들은 전부 엄살쟁이가 됐을 뿐더러 실재하는 고통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낱말들을 휘갈긴 꼴이 되고 말았다.



 탈혼



 신발을 버리고 뛰쳐나왔어
 팔팔 뛰는 심장을 가지고
 너에게 갔어.


 시련이여
 시련이여 외치며


 여름 해와


 파리를 날리는 공원을 지나
 나무와 달과 언덕을 넘어


 느닷없이 나에게 와줄
 너를 고대하며
 마른 내 뼈를 씹다가
 
 이제는 기다리지도 않고
 미친 듯이 달려왔어.  (전문)



 시들이 아파서, 너무 아파서, 읽다가 중간에 박서원 시인을 검색해봤다. 1960년생. 인터넷 자료를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내가 읽어본 바는, 시인 지망생이었던 아버지의 이른 죽음, 무능한 어머니와 할머니, 고교 중퇴, 성폭행, 정신병, 발작과 경련 증상, 기면증, 22세 연상의 교수와 연애 실패, 결혼과 이혼, 만 52세의 이른 죽음 등이다. 그러면 이 시 <탈혼>은 언제쯤일까. 신발을 버리고 맨발로 미친 듯이 시련이여, 시련이여를 외치며 시련에게 달려갈 때가. 이이는 따로 시 작법 같은 걸 배운 적 없이 그냥 시집 몇 권을 읽더니, 이런 것이 시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어 몇 개의 시를 투고하고, 그것이 채택되어 서른 살, 1989년에 등단했다고 한다. 그러니 시가 신선하게 고통스러울 수밖에. 고통은 누구의 것이나 아픈 법이다. 특히 시인의 것들은. 하지만 박서원의 시는, 소설가 한창훈의 말마따나, 출판사 화장실 옆에 따로 마련되어 있는 각혈실(咯血室에) 가서 피를 토해야 하는 수준이 아니다. 지난 어느 날, 이이의 대뇌에서 갑자기 혼이 탈출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걸 스스로 맨발로 시련에게 달려갔었다고 노래한다.
 비로소 시인이 정상이 아님을 알아챈 가족은 때론 병원에서 과학의 힘으로, 때론 사이비 교회에서 안수기도로 치료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중에 단식기도도 있었나보다.



 단식기도



 1
 그해 여름은 창백했었다
 가지마다 휘어진 잎들이 무성한 거리에는
 낳아도 자라나지 않는 아이들이 득실거리고
 나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수차례 매질을 했으나 대낮이 깊을수록 대낮의 빛깔은 사라질 뿐 어디서 불어오는 뼈아픈 향기일까 나는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못했다


 2
 그해 여름은 장마도 지나쳐버렸다
 하얀 접시처럼 떠있는 태양의 견고함 아래
 먹지도 배설하지도 못하고 좀약 냄새나는 골방, 지긋지긋한 찬송가만이 나를 일으켜 자꾸 살라고 살라고 으르렁거리고
 그동안 내 속에서 터를 익혀가던 악마는 찬송가의 예민한 침에 자꾸 기절해갔다
 어머니, 어머니, 살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아요
 그해 여름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어머니, 이건 도박이예요 나는 매일매일 나무를 심어야 해요 공부를 해야 해요 내 딸아 그런 건 나중에 하렴 너는 지금 역신을 물리쳐야 해
 그해 여름 나는 꽃 자줏빛 꽈배기가 된 전신으로 형벌이여 형벌이여 되묻고 되물었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주여,  (전문)



 인생은 흘러간다. 다 지나가버린다. 시인 속의 역신을 물리쳤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기도원의 처용무가 하도 가혹해 육체적으로도 그녀는 간혹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고는 했나보다. 기면증의 발병일 수도 있겠다. 몸은 경련을 해서 눈알이 위쪽으로 확 치켜 올라가고 뒷목의 근육이 수축되면서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와중에, 불행하게도 시인의 의식은 명료하기만 했다.



 발작 · 1



 사지는 마비되려 했어
 신경은 끊어진 필라멘트


 땅 위에서 걷지 못하는 나와
 모여드는 군중


 누군가가 말했어
 「발작하나 봐」
 「간질인가 봐」


 나는 말하고 싶었어
 헌데 무얼 말해야 하지?
 아직 귀여운 아가씨인 내가


 그렇지 않아도 병원에서 오는 길이라고?


 누군가가 또 말했어
 「구경 그만하고 가자」


 나는 행복하게도
 이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던 거지


 누군가가 가다가 되돌아왔어
 「좀 더 구경하고 가자」   (전문)



 아무리 험한 세상을 살았지만 그래도 한 구석에선 평온한 시기도 있는 법. 시인 역시 그런 시간을 잠깐이나마 누리곤 해서 이렇게 노래하고.....



 한 달



 한 달 동안 놀았다
 논다는 개념에 시달리며
 혼자였던 시절에 시달리며
 갓 들어온 올케와
 갓 제대한 막냇동생 때문에


 이렇게 웃음꽃이 피는 가족과
 혼자 살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무슨 영화의 콘트라스트가 되어


 문학 같은 거 집어치우고
 예술 같은 거 더더욱 집어치우고


 비디오와 라디오 농담
 비빔국수 되어


 신경증에 시달렸던
 내 평생에
 농익은 오렌지 되어


 놀아라, 놀아라, 놀아라.


 신앙 같은 거 잊어버렸다
 깨어있으려는 의지도 잊어버렸다


 서로를 저버렸던 과거 같은 거
 지지난밤 울어대던 도둑괭이에게
 던져주었다   (전문)



 시인은 놀면서도 신앙도, 의지도 다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저버린 과거 역시 다 내던져버린다. 이 동생이 맞는지 모르지만 박서원 시인이 죽으면서 남긴 단 한 장의 메모에는 자신의 저작권을 동생에게, 조카가 스물일곱 살이 된 이후에는 조카에게 남긴다고 썼다.
 1989년 데뷔라면 안타깝게도 그 시절 나는 책이나 시집을 읽어볼 여유가 없던 초년 대리급 직원이었다. 이 시인의 이름조차 생소했다. 궁색한 변명이나 어쩔 수 없다. 이제나마 읽어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 시를, 아픈 시를 쓰려면 이렇게 아파야 한다. 진정한 시적 고통은 독자가 읽으면 안다. 진정한 아픔을 아는 시인은 어떻게 노래하는지는 여러분께서 직접 읽고 느껴보시라. 요즘 많고 많은 시인들, 물론 당신들의 우울은 존중하지만, 너무 징징대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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