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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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공쿠르 상 수상작이라 해서 선택한 책. 솔직히 말하면 헌책방에서 발견하지 않았어도 구입했을까는 조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공쿠르 상 수상작 가운데 내 수준으로는 과도한 문학성 또는 전위적 작품들이 비교적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서, 이 상 수상작들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상 수상작들을 많이 읽어봤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거. 공쿠르 상에 관해서는 내가 선무당이었나 보다.
 60억 현생인류가 복닥복닥 모여 사는 지구에는 참 다양한 성격들이 모여 있다. 루이즈라는 이름의 여성이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었다. 적당한 키에 마른 몸매의 금발 중년. 우리나라 사람들 하는 이야기로 사주에 ‘고’가 끼었다라고 한다. 여기서 ‘고’란 외로울 고孤를 의미한다. 이런 팔자로 대표적인 건 “깊은 밤에 소복 입고 베 짜는 사주.” 청상과부의 사주다. 이 책의 주인공 루이즈는 소복 입고 베 짜는 것하고는 종류를 좀 달리해야 할 거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하고 별 인연 없이 살다가 스물다섯 살에 덜컥 임신을 한 몸으로 치매노인 쥬느비에브 노파를 간병하던 중, 노파의 화가 아들 프랑크의 친절한 주선으로 중절수술을 할 예정(당신 같은 처지라면, 독신에 겨우 밥벌이를 하는 그런 상황이면 말이에요, 보통은 아이를 낳지 않아요. 문란한 당신 사생활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 하지만 삶은 파티가 아니라고요. 아기를 낳아서 어떻게 하려고요?)으로 프랑크 씨가 비용까지 다 지불하였으나, 약속한 날 잠에서 깨지 못하고 약속을 놓쳐버려 딸 스테파니를 낳았다. 스테파니는 엄마가 보모, 가사도우미를 하던 집의 주선으로 좋은 고등학교로 전학했지만 불성실한 학교생활과 도무지 적응을 하지 못해 땡땡이를 연이어 치는 바람에 퇴학 처분을 받고 만다. 딸 하나 둔 상태로 자크란 남자와 결혼했지만 자크는 뒤뜰에 심어놓은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금은보화를 가져오는 대신 경마를 비롯한 도박에 손을 대 빚만 잔뜩 만들어놓고 세상을 뜨는 바람에 집도 은행에 뺏겨버리고 만다. 이젠 텅 빈 손으로 차이나타운의 가장 지저분한 원룸 아파트에 유일한 ‘백인’ 입주민으로 떨어진 상태. 스테파니는 일찌감치 가출을 해버려 완전히 연락을 끊고 산다. 성격도 남들과 어울려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활기차게 지내는 대신 자신의 모든 내적, 외적으로 거의 완벽한 벽을 둘러 쳐놓고 스스로 외로운 처지로 떨어지고 만다. 실제로 언젠가 앙리-몽도르 병원의 의사가 루이즈에게 “망상성 우울증”이 있다고 판정한 바 있다.
 뛰어난 엘리트 둘이 서로 사랑해 가정을 이루었으니 여자는 변호사 미리암이고 남자는 음악 프로듀서 폴. 둘이 결혼했으니 건강한 부부 사이에서 자연스레 딸 밀라를 낳고, 산후 우울증에 잠깐 시달리다가, 아무래도 하나만 키우면 너무 외로울 거 같아서 아들 아당을 또 낳는다. 결과는, 심각한 산후우울증에 빠져버리는 미리암. 아직 부부 가운데 누구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단계도 아니고, 경력을 이어가지 못한 채 그냥 전업주부로 머물고 있는 미리암에게 일을 권하는 로펌도 나타날 확률이 없었다. 자꾸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미리암. 심각한 자존감의 결여로 하루하루 사는 게 미칠 지경일 찰라,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 동기생 파스칼이 자기와 함께 일 해볼 생각 없느냐고 제의를 한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채용할 의사가 있다는 것. 대학 동기인 파스칼은 미리암이 얼마나 총명하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인줄 알고 있었으니까. 미리암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취했고, 남편 폴이 집에 오자마자 보모를 들이자고 이야기를 꺼내 시답지 않은 긍정을 얻어낸다. 그리하여 이력서,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완벽하게 구비한 보모를 고용하니 이이가 바로 위에서 얘기한 우울녀, 루이즈.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을 검색하면 첫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나도 소개한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고통은 없었다고 의사가 분명하게 말했다.”


 첫 문장이 어디서 본 거 같다. 전에 어느 프랑스 작가는 이렇게 첫 문장을 썼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상당히 임팩트 있는 첫 문장.
 시작부터 루이즈가 미리암-폴 부부의 아들 아당을 심하게 폭행해서 뼈마디가 비틀어진 채 시체처리용 검은 비닐에 들어가게 하고, 큰 아이 밀라 하고는 “사나운 짐승처럼 맞서” 싸운 끝에 말랑한 손톱 아래 살점이 박히고, 폐 또는 목에 칼을 맞아 목구멍에 피가 가득한 상태로 숨을 꿀럭이다가 운송 도중 죽음에 이르게 해버린다. 경악스러운 결말을 작품의 제일 앞에 배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루이즈가 이 가족의 (천사 같지는 않지만 순진무구한)두 아이에게 저지른 살인을 강조하는 것.
 그러나 독자는 책을 읽어가며 아동 살인이라는 가공할 범죄를 저지른 루이즈가 거대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는 장면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살인의 죄가 조금이나마 경감되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외롭고, 가난하고, 소외되고, 격리처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숨기지 못하는 개인을 향해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의 시선이 가 있음을 발견한다. 전남편, 은행, 원룸 아파트 소유주, 이웃, 같은 보모 그룹 등등과 심지어 바로 얼마 전까지는 자기 가족의 범위 안에 흔쾌히 루이즈를 받아들이던 미리엄-폴 가족들로부터 그녀는 단 한 뼘의 자기가 설 곳을 찾지 못하는 모습을 독자는 책을 읽어감에 따라 순서대로 발견하게 된다.
 망상성 우울증을 앓고 있는 루이즈가 이들 가족의 범위 안에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리엄과 폴 사이에 다른 아이가 새로 태어나는 것 말고는 없다고 단정해버린다. 오직 유일하게 자신이 찾을 수 있었던 탈출구.
 물론 나와 다른 방식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바로 옆에 도사린 커다란 위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작품. 해석은 언제나 독자의 몫이니까. 공쿠르 상 수상작 치고는 참 쉽고 흥미로운 시선이다. 그래서 얼른 읽히기도 한다. 작가가 모로코 출신의 젊은 여성. 공쿠르 상치고는 아주 드물게 여성을 수상자로 뽑았다 해서 약간의 구설에도 올랐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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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4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ㅠㅠ 이 책.. 정말... ㅠㅠㅠ할많하않..입니다.

Falstaff 2018-10-05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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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제목을 “칠드런 액트”라고 했을까. 그냥 “소년법”이라고 하면 좀 촌스럽나?


 59세, 조금 있으면 60세 생일을 맞을 피오나와 잭 메이 부부에게 난데없이 파도가 몰아친다. 잭에게 멜러니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가 생긴 것. 나이가 들고 고등법원 판사인 아내가 워낙 바빠 건조한 사랑의 단계에 접어든지 벌써 오래. 잭은 아직 열락과 흥분을 필요로 하는 반면 피오나는 샤워실에서 스스로의 알몸을 비춰보면서 자신에게 흥분을 느낄 남성은 세상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잭은 여전히 피오나를 사랑하지만 내세가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상태를 유지한 상태에서 멜러니를 통해 열락과 흥분을 즐기고 싶다고 과감하게 고백해버렸다. 이 상태를 묘사하는 몇 페이지, 참 재미있다.
 추석을 맞아 아이들이 와서 밥상 앞에서 이 이야기를 했다. 여든 넘어서도 소위 열락과 흥분을 원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 노년에도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건 저주받은 일이라고 의견을 같이 했다. 잘 생긴 이성을 보면서도 흥분하지 않는 단계가 되면 세상이 건조한 대신 얼마나 편한 줄 모른다. 근데 그 나이가 돼서까지 습식 사랑(열락과 흥분)을 원하면, 게다가 잭 메이 선생처럼 그걸 만족시킬 대상이 적법하지 않거나 대상 자체가 없는 노인이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이야기가 좀 더 심화 확대되어) 가족은 공창제도의 긍정적인 면을 조명했으며, 아내는 어떤 매춘부의 경우 주로 노인과 장애인들에게만 성 매매를 한다면서 인도적 견지에서 공창제도에 찬성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피오나 메이 판사는 곧바로 남편 잭 메이 교수를 내쫓아버린다. 어, 이러다 멜러니한테 진짜로 가버리는 거 아냐, 후회하면서. 이러니 골이 지끈지끈 아픈 건 당연하겠지. 딱 이런 상태에서 법원 당직 서기한테 전화가 걸려온다. 긴급을 요하는 판결 건이 병원으로부터 접수되었다고.
 만 17세 9개월짜리 청소년. 석 달 차이로 아직 칠드런 액트, 즉 소년법을 적용받아야 하는 애덤이란 소년이 긴급 백혈병에 걸려 입원치료 중인데, 사흘 안에 혈액을 투여하지 않으면 사망. 극적으로 치료가 잘 되어 만일 산다고 해도 눈이 멀거나, 폐에 피가 차거나, 평생 혈액투석을 해야 하거나, 급성 뇌졸중으로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많단다. 문제는 환아 애덤과 그의 부모인 헨리 부부조차 수혈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것. 1945년, 뉴욕 브루클린의 한 건물에서 성경의 몇 귀절을 해석하다가 전 신도에게 수혈을 거부할 것을 명령한 여호와의 증인 교도였던 거다. 그래 사안이 화급하니 당장 내일 오후에 첫 번째 심리가 열겠다고 재판 당사자에게 통보하라 하면서 소설은 본격적인 줄거리를 잡아간다.
 가뜩이나 철없는 남편 때문에 골 아파 죽겠는데 하필이면 이때 당직이라 골치 아픈 결정을 해야 하는 피오나. 병원 측은 위에서 쓴 것과 같이 만일 수혈을 하지 않을 경우 가까운 시간 안에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며 병원에게 환자와 환자의 보호자 의견과 관계없이 수혈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요구하고, 인권과 신념과 개인의 결정권을 들어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와 보호자. 이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다. 마그나카르타의 나라 영국 가정법원 판사 피오나 메이는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소년 스스로, ‘진정한 의미에서’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심리를 중단시키고 직접 병원에 방문해 한 시간 가량 애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대화뿐이랴. 마침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애덤의 반주로 노래도 하나 한다. 예이츠의 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에 벤저민 브리튼이 곡을 붙인 노래.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피오나는 완전히 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이 노래의 가사에 영감을 받는다. 그리고 매스컴에 공개한 재심리에서 이렇게 판결한다. 그 중 일부를 옮긴다.


 “저는 A의 정신, 견해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A는 아동기 내내 강력한 하나의 세계관에 단색으로, 중단 없이 노출된 채 살아왔고, 그런 배경이 삶의 조건을 좌우하지 않았을 수는 없습니다. 고통스럽고 불필요한 죽음을 감수하는 것, 그리하여 신앙을 위해 순교자가 되는 것이 A의 복지를 도모하는 길은 아닐 것입니다. (중략) 요컨대 저는 A와 그의 부모, 회중의 장로들이 본 법정이 가장 중시하는 A의 복지에 해로운 결정을 내렸다고 판단합니다. A는 그런 결정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A는 그의 종교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애덤은 순순히 수혈을 받아들였으며, 애덤의 부모, 헨리 부부는 병실 밖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애덤은 나중에야 알아차린다. 부모가 운 이유는 아들이 더러운 타인의 피를 수혈 받아서가 아니라, 아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이야기는 끝난 거 같다. 그러나 작가가 다른 이도 아니고 이언 매큐언이다. 이 정도로 끝낼 사람이 애초부터 아니었다. 이제야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올 차례.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꺼내지 않겠다.
 심지어 늦바람 난 잭 메이 선생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잖은가. 직접 읽어보시라는 뜻에서. 이렇게 변죽만 울리고 중도에서 뚝 그치는 심통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 그거 아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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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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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사람에겐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겐 과거만 있다.” (15쪽)


 주인공이자 외과의사이며 퇴직 대령인 도리고 에번스는 이것이 어디서 읽은 말인지, 스스로 만들어낸 말인지 도무지 알아내지 못한다. 여태까지 세상의 모든 소설 가운데 “긴 터널을 지나자 그곳은 설국이었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의 첫 문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고르라면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를 들어야 하리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박형규 역, 문학동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연진희 역, 민음사)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이명현 역, 열린책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윤새라 역, 펭귄클래식 코리아)


 정말 숱한 소설이 이 문장을 인용 또는 변용한다. 이 문장을 변용한 “행복한 사람에겐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겐 과거만 있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과거가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는 두 가지 과거를 지니고 있는 인물. 한때 고모부였던 키스Keith의 두 번째 아내 에이미. 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움고모다. 우연히 책방에서 만나 얼굴을 읽힌 에이미. 아미-아망트-아무르 ami-amant-amour 친구-연인-사랑을 뜻하는 단어들의 연상시키는 이름 에이미. 옛 고모부가 운영하는 호텔에 들러 우연히, 그리고 극적으로 재회하자마자 둘은 급격하게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고, 몸을 섞는다. 첫 관계는 두 번째 불륜을 쉽게 만들고, 태평양전쟁 참전을 앞둔 에번스는 타는 갈증으로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에이미를 향해 달려간다. 약혼녀 엘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밀접한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늙은 고모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모부 키스가 자기 처, 에이미에게 자신이 알고 있었음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심정을 고백하는 기분은. 전쟁에 뛰어들기 전에 약혼 상태에서 우연히 만난 치명적인 사랑에 대한 과거. 나중에 알게 된 고모부 호텔에서의 가스 폭발 사건으로 에이미는 에번스의 가슴에 깊은 낙인을 찍어버리고 영원히 과거로 남게 된다.
 다른 과거는 트라우마. 자바 섬에서 일본군 포로로 잡힌 군의관 에번스 대령. 그는 900명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포로와 함께 시암(타이)과 버마(미얀마) 국경을 연결하는 철도 공사를 위해 밀림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포로 수용소장이자 철도 건설대장 나카무라 소령.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은 서양인답게 노래하고, 휘파람 불며, 약식 연극 <워터루 다리: 우리나라 개봉은 ‘애수’>를 가설무대에 올려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를 흉내 내기도 하지만, 긴 행군과 열악한 급식, 가혹한 구타와 노동으로 점차 활기를 잃어간다. 일왕을 위한 철도 가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예전에 국제극장에서 본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가 얼마나 형편없게 미화시킨 작품이었는지 화가 났다. 그렇다. 화가 나더라.
 영화에서는 경쾌한 ‘보기 대령 행진곡’을 깔고 콰이 강에 철도를 놓기 위해 작업장으로 절도 있게 행진해 들어가, 영국군과 영국인과 조지 4세를 위해 씩씩하게 일치단결된 힘을 다해 다리를 놓고 철길을 닦는 군인들을 자랑스럽게 그려놓았다. 실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철도 가설을 위해 투입된 군인들은 앞에서 썼듯이 열악한 급식, 구타와 극한의 노동, 그것도 모자라 말라리아, 콜레라, 이질, 뎅기열, 부종, 각종 감염증으로 숱한 인원이 희생됐고, 살아남은 자들도 영양실조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상태였다. 전쟁이 끝나 구조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들의 모습과 영화 <콰이 강의 다리>에서 포로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비교해보자. 

 

 위는 영화 <콰이 강의 다리>, 아래는 강제노역소에서 해방되어 나름대로 영양 보충을 받고 몸단장도 한 상태에서의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들


 감독이 철도 공사에 동원된 포로들의 사정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차치하고, 실상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포로들만큼 출연진들에게 체중을 감량을 요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겪은 참상에 관해서는 더 쓰지 않겠다.
 작가 플래너건이 인도차이나의 철도 가설에 동원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들만 묘사한 것은 아니다. 수용소 또는 가설부대에 속한 일본인 장교와 병사, 징병 조선인, 만주국에서의 일본인에 의하여 벌어진 학살과 생체실험, 일본 내에서 이루어진 포로들에 의한 노예 상태의 노동, 그리고 전후 전범 처리까지 다양하게 태평양 전쟁에서 있었던 비인간적 행위와, 소련과 또 다른 전쟁을 염두에 둔 미국의 적당한 타협 등을 파헤쳐 놓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핵심은 철도 가설 부대 내의 가혹행위와 노예상태, 동서(일본-오스트레일리아) 문화의 이질성에서 오는 포로에 대한 개념 차이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책은 궁극적으로, 제일 앞에 인용했듯이, 세월이 가도 과거가 삶의 중심에 틀을 잡고 앉아 행위를 조정하게 된 불행한 인간들을 위안할 목적으로 쓰였다. 그리하여 작가는 헌사에 이렇게 써 놓았다.
 “335번 포로에게”
 책 앞날개에 의하면 “실제로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포로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쳤다”고 한다. 여기에 전쟁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숱한 사람들이 가슴 속 화인으로 찍힌 옛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의 과거를 첨가해 가을에 읽기 좋은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 그가 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주인공 마스지 오노. 마스지는 제목대로 탐미주의 화풍을 지닌 화백으로 2차 세계대전 후 전쟁당시에 저지른 모종의 행동으로 국가적 따돌림의 대상이다. 전쟁을 찬미하고 기꺼이 일왕을 위해 젊은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했던 예술행위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무수한 젊은이가 죽어나가 자기 딸의 결혼이 여의치 않고, 자신과 어울리는 계급으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받자, 오직 딸의 결혼을 위해서 전쟁 중 자신의 행위는 잘못됐다는 취지로 ‘반성한다’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곧바로 이렇게 선언한다.

 

 “저는 이 점(과거 잘못된 행동)을 깨끗하게 인정합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당시 제가 선한 믿음에서 행동했다는 것뿐입니다. 저는 친애하는 동포를 위해 선한 일을 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이제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푸른 들판 위의 독야청청한 소나무 같던 화가가 끝내 잘났다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하는 고백이다.
 이런 인간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나온다. 시암-버마 철도 건설의 총책임을 맡고 있던 고타 대령. 초급장교 시절 만주에 주둔할 때 차고 다니던 군도로 중국인의 목을 벤 이후 얼마나 숱하게 사람의 목을 베었는지 '참수의 미학'을 깨달은 인물. 전후 조선인 하사관 최성민은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으나 현장에서 벌어졌던 모든 학살과 폭행, 노예노동의 책임이 있는 고타는 혈액은행의 중역이 되어 105세까지 천수를 누린다. 이 고토 대령이 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에서 나오는 화가 마스지 오노와 겹쳐 보였을까. 고토 대령도 죽기 전에 기회가 있었으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참회했을 것이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당시 제가 선한 믿음에서 행동했다는 것뿐입니다. 밀림에 뼈를 묻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의 원혼이 어떻게 되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독을 추천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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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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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번역한 역자 이세욱. 24세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불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단다. 당시 서울사대 불어과를 졸업하면 자동 교사임용이었던가 그랬다. 2017년 1월에 ‘안나 가발다’란 프랑스 여성의 작품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출간할 때 책을 낸 북로그컴퍼니의 포스트를 보면 역자 이세욱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르 클레지오, 미셸 우엘벡 등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수십 년간 번역해오신(아 씨, 간지러워!) 프랑스 문학 번역의 베테랑”이며, “이탈리아의 천재 작가 움베르토 에코에 심취하여 이탈리아어를 새롭게 공부한 뒤, 에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옮겨서 평단과 독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단다.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것이 1980년. 미국에서 번역 출판한 시기가 1983년.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일본보다 빠른 1986년. 이세욱이 처음으로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시기. 이탈리아어는 이때부터 배웠다고 감안하면 2008년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번역하기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언어습득에 진정한 수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어 번역을 계속하면서, 심지어 다른 이도 아니고 에코를 번역할 정도의 높은 수준의 이탈리아어까지 구사한다니, 감탄의 넘어 한탄이 나온다. 에고, 여사님. 나도 이런 재주 하나 갖게 만들어주시지 어쩌자고 이 모양 이 꼴로 낳아놓으셨대요, 라고. 그럼 이이는 한국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이렇게 적어도 네 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거 아냐. 거기다가 이 책 직접 읽어보시면 안다. 우리말도 어찌 그리 잘 쓰는지, 읽어나가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다. 오식이 눈에 띄지만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 가운데 typo 없는 책은 한 권도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가기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러운 한국말 문장, 마치 에코가 한국어로 작품을 쓴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진짜다(아니 조금 과장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책을 펼치면 목차가 나오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 ‘일러두기’가 있는데 첫 번째 일러두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여기 이 소설은 이탈리아의 대문호 움베르토 에코 선생의 『프라하의 묘지』라 하는 세계적 화제작을 이탈리아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

 

 책의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빌어 또 이리 썼다.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에코가 『프라하의 묘지』 번역자들에게 보내는 짤막한 지침을 받았다. 그중에서 문체와 관련된 항목은 두 가지였다.”

 

 본인이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정말 이탈리아어 직역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거다. 누구처럼 중역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이탈리아 출판사에 계속 로열티 지불하는 건 아니겠지. 서울대 홈페이지에도 이세욱을 가리켜 ‘스타 번역가’라 해놓고 대표작으로 에코의 이 책을 꼽는 걸 보면 말이지. 우리나라 출판계가 조금, 아주 조금, 진짜 쬐끔 개판이라 이런 천재가 나오면 의심부터 하게 되는 일(프랑스어 번역 책보고 다시 중역하면서 가끔 원서를 참고한 거 아냐?)이 웃프다, 웃퍼.
 그럼 이세욱이 도대체 누구야? 구글 검색하니 사진이 나오긴 하는데, 남의 얼굴을 함부로 개인 서재에 올리다 나중에 코피 터질까봐 사진 말고 스케치를 골랐다. 사진보다 약 20배는 잘 생기게 그렸다.

 

 

 다시 <프라하의 묘지>로 왔다.
 이거, 남의 일기 훔쳐보는 일이다. 파리에 사는 세 사람의 시선이 나오는데 먼저 화자. 그리고 달라 피콜라라는 이름의 퉁퉁한 신부. 한 명 더. 문제의 인물,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1830년에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 일기는 이 시모니니가 1897년 3월 24일부터 시작해 1898년 12월 20일에 쓰기를 중단한다. 남의 일기를 가끔 피콜라 신부가 훔쳐보며 대담하게도 같은 일기장에 끼어들어 시모니니가 모르는 내용을 끼워 넣기도 하고 사실과 다르다고 시비도 한다. 이 세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글자체를 달리해서 사용한다. 이건 에코가 주문했던 바라고 ‘옮긴이의 말’에 설명한다.
 그럼 제일 중요한 것, 도대체 시모니니가 누구야?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에코의 말이 진실이라면, 유일하게 창작된 가공의 인물이란다. 이 시모니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할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왕정주의자에다가 교황 성하를 모시는 가톨릭 맹신자인데 반해, 아버지는 공화주의자로 가리발디든가 마치니든가, 하여간 그들 수하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중 전사해버리는데, 이들도 진짜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하니 할 말 없다. 젊어서 아버지가 전사해버림으로 해서 주인공 시모니니는 할아버지의 반유대주의와 반 프리메이슨 사상을 확실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다. 법학을 전공했으며 당시 관습으로는 법과대학을 졸업하면 습관적으로 변호사라고 호칭했단다.어쨌거나 시모니니가 '변호사 선생'으로 불리게 되자마자 할아버지가 졸卒하면서, 담당 공증인이 사문서를 근사하게 위조하는 바람에 졸지에 거지꼴이 되어 사기꾼 공증인 사무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정의감이나 소명의식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던 시모니니(인간이 확고한 철학을 갖게 되면 내 아버지처럼 일찍 죽게 되어 있는 법이야!), 타고난 천재적인 글자 위조와 문장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희대의 사기꾼으로 성장한다.
 그의 화려한 변신, 가리발디의 수하에 소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피에몬테 지역의 왕정주의자와 양다리를 기막히게 걸치고 있던 시모니니는 가리발디를 돕기 위해 프랑스에서 배를 타고 시칠리아에 도착한 알렉상드르 뒤마와도 만나고, 아무 가책도 없이 가난한 염초장焰硝匠(화약전문가)를 이용해 배를 폭파시켜 수십 명을 어복魚腹에 장사지내게도 한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반 프리메이슨, 반 유대 음모를 총 정리해,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메이슨 또는 유대인집단의 우두머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계멸망, 즉 프리메이슨이나 유대인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상상 속의 회합, 회합에서 논의한 주제와, 결론 또는 성명서 등을 꾸며낸다.
 그러면 이들이 어디서 만나는 것으로 할까. 런던이나 파리, 또는 베를린이나 빈, 아니면 로마나 취리히? 너무 큰 도시면 근 백 명에 달할 이들의 대표단들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안 돼, 안 돼. 잠깐 고민하던 시모니니는 프라하를 점찍게 되고, 이왕이면 프리메이슨들이나 유대인들의 음습한 기질과 맞는 장소로 공동묘지가 좋겠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 책의 제목이 <프라하의 묘지>가 되는 것. 작 중 누구도 체코 프라하에 있는 유대인 묘지를 직접 방문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직 주인공의 뇌 속에서만 모일某日 자정,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 묘지 확장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압력으로 인해 관을 아래로 겹쳐 묻을 수밖에 없어 촘촘하게 묘비들이 박힌 음습한 밤, 프리메이슨의 각 분파대표들 또는 유대인 대표들이 모여, 전 세계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줌과 동시에 물가도 올려 결코 노동자들의 생활을 향상시키지 않게 하며(윽, 지금 대한민국에도 프리메이슨들이 도처의 중심에 있는 거 아냐?), 오락과 스포츠 등에 광분하게 하고, 고리대금업을 비롯한 금융과 철도 등 산업 전반을 손아귀에 넣고, 정치, 군대 등을 장악해야 한다고, 토론하고 선언문을 발표한다, 라고 시모니니는 몇 번에 걸친 고서류를 만들어 비싸게 팔아먹는다. 한 마디로 사기꾼. 자기가 한 일에 관해 한 점 후회도, 반성도 없다. 심지어, 놀라지 마시라, 1894년의 드레퓌스 사건의 발단이 되는 첩보문서도 이 시모니니가 작성한 것으로 설정했다.
 재미있겠지? 재미있다. 프리메이슨의 분파들과 반예수, 흑미사, 사탄찬미 등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에서 나왔던 주제들이 잠깐 거론되지만 그 책들처럼 머리 저린 서술이 아니라 음모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등장해 비교적 가벼운 접촉만 이루어진다. 음모와 사기로 점철한 한 기회주의자의 일생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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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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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들어 사람들 입 끝에 가끔 오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포스트에선 오직 하일지의 소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첫 하일지가 1990년의 <경마장 가는 길>. 민음사에서 나왔고, 신문광고를 보고 제목이 특이해서 얼른 사 읽어봤는데, 느낌이,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출현했구나, 라는 감탄이었다. 완전히 건조한 문체로 쓴 소설. 프랑스 유학 동안 뜨겁게 사랑을 불살랐던 남녀. 남자는 유부남이고 여자는 미혼녀. 여자는 남자가 유부남인 걸 처음부터 알았으며, 귀국해서 이혼해버리고 둘이 결혼할 계획이었는데, 이혼은 안 되고 여자는 남자를 귀찮아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참, 귀국한 다음에 연인(이라기보다 그냥 남녀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관계)이 식당에 가서 참 열심히, 자주 먹던 음식이 육개장이란 거, 파리에선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몸의 즐거움을 나누던 여자가 서울에선 하도 이리 빼고 저리 빼는지라 억지로 관계를 하는 바람에 팬티스타킹이 찢어졌고, 찢어진 팬티스타킹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눈길이 지금도 훤히 보이는 거 같다. 28년 전 기억이니 혹시 사실과 다르더라도 양해해주시라. (뭐 그동안 작가가 내용을 바꿨을지도 모르잖아!)
 이후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에서 생긴 일>까지 읽고, 초년 대리답게 쇤네도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느라 책을 끊어버렸다. 조국의 현대화를 위해. 장하지?
 그리하여 큰 기대를 갖고 <손님>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얼라?
 하일지가 28년 전의 하일지가 아니다. 문장은 쉬운 단어들과 감정이 넘실거려 쉽게 팍팍 읽히고, 감정이 넘실거리게 하느라고 (쇤네 전공인) 상스러운 욕설을 남발한다.
 ‘하원’이라는 시골동네가 무대다. 동네에 허표, 허순, 허도, 이렇게 삼남매가 산다. 허표는 심각한 결핵에 걸려 언제 죽을지 기약하지 못하는 허도를 데리고 산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장가도 못간 허도를 죽을 때까지 누가 챙겨주긴 해야 하겠는데, 여동생 허순이 아들 둘 달린 이혼녀로 택시 운전을 하는 개망나니 석태와 동거중이라 마나님의 눈치를 보며 거두어준 것뿐이다. 이 마나님이란 작자가 또 보살 흉내라도 내면 좋겠는데 폐병쟁이 시동생이 어디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허도는 폐병에 좋다고 어디서 들었는지 동네 하원 입구 고욤나무 밑에서 땅을 슬슬 파다가 실한 지렁이가 기어나기만 하면 낼름, 산 채로 집어 먹으며 소일하고 있다. 그림 그려지시지? 근데 하일지는 형수가 영양식을 도무지 챙겨주지 않아 허도가 지렁이를 잡아먹는다고 얘기하는데, 2012년에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허순은 근처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무용을 가르쳐 먹고 산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무용 대회에 참가했던 모양이다. 거기서 미스터 슈를 만나 친교를 다지고, 그저 농담으로 어이, 미스터 슈, 언제 한 번 하원에 놀러와, 라고 했겠지. 그런데 한국 태생의 미국 입양아 출신인 엉클 슈가 진짜로 고속버스를 타고 하원에 놀러 오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한다. (외국인한테 이런 얘기 하지 마라. 진짜 온다.)
 좋아, 좋아. 소설가의 변신이란 자유이며 권리니까, 하일지가 이런 식으로 변한 것 역시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게 쇤네의 취향이건 아니건 말이지.
 하일지가 만든 허씨 남매들이 전부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다. 어떻게 문제가 있는 인간인지 차마 구차해서 여기다 옮기지는 않겠지만, 오죽이나 그랬을까, 쇤네가 두 번이나 책을 덮고, 이쯤에서 읽기를 때려치우자고 작정을 했으나, 읽는 장소가 파티션에 둘러싸인 사무실 구석이어서 이 책 읽는 짓 말고는 할 일이 없어 기어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첫째 허표는 슬슬 눈치를 보며 자기한테 이득이 될지 아닐지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불고염치하고 사소한 이득을 얻고는 인사도 없이 후딱 사라지는 염치없는 인간이고, 둘째 허순은, 쇤네가 주로 얘가 하는 파렴치한 행위 때문에 책을 덮었을 정도로 형편무인지경의 잡년. 이에 못지않은 잡놈 석태 하는 짓도 가관 중에 가관이다. 폐병이 깊어 오늘 낼 하는 허도란 새끼는 이제 열여섯에서 열여덟 살의 여고생들이 손님이 베푼 활수한 씀씀이에 대하여 몸으로 갚아주지 않는 걸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아쉬워하니, 이게 사람의 새끼냔 말이지. 근데 어째 하일지는 은근히 허도의 시선을 옹호하는 듯해서 쇤네를 극히 불쾌하게 했으니, 이게 쇤네 잘못일깝쇼?
 하여간 쇤네가 읽기에 하일지의 <손님>은 잘 쓴 글도 아니고 재미있는 책도 아니고, 심지어 독자 알기를 매우 우습게 아는 책이었다. 독자는 벌써, 아주 벌써 손님의 정체를 이미 훤하게 알고 있는데, 심하게 친절하게도 여름용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로 손님과 9월 밤의 호수에서 수영을 한 여고생 유나의 입을 통해 “장난이 아닌 물건”을 가진 손님의 정체를 발설하게 만들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의 변신은 자유이고 권리. 작가가 변신한 모습을 보고 좋다, 망했다를 결정하는 건 독자의 자유이자 권리. 하일지, 쇤네의 인생에서 사라졌고, 책 <손님>은 “버릴 책”으로 분류되어 책꽂이에 꽂히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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