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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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로 칼비노. 가장 먼저 읽은 이이의 책은 <나무 위의 남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107번째 작품이었다. 쥐의 간 요리를 좋아하는 누나가 만들어준 달팽이를 먹지 않겠다고 나무에 올라간 남작이 평생 나무 위에서 사는 동화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한 엽기 발랄한 작품이어서 호기심이 돋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당장 <우주만화>를 골랐다가, 아이고, 지금 생각해봐도 얼마나 황당했는지. 제목에 ‘만화’가 들어가서 가벼운 읽을거리로 생각한 것이 잘못. 지금 기억나는 건 하여간 <우주만화>를 끝까지 다 읽긴 했다는 거 하나. 저 먼 기억의 음각화로만, 내용은 전혀 아니고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미지만 지금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그때 얼마나 칼비노한테 데었는지 한 동안 그이의 작품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 <반 쪼가리 자작>, <힘겨운 사랑>을 차례로 읽기에 이른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거기서 말았다. 근데 작년에 김희선이 쓴 <무한의 책>에 책의 상당부분이 미국의 ‘트루데’라는 가상의 도시를 무대로 한다. 책의 후기에서 도시 이름 ‘트루데’는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따왔으며, ‘초원을 유목민처럼 유동하며 세상은 끝도 없는 트루데란 보이지 않는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로’ 차용했다고 밝혔다. 그때부터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 다음에 읽을, 그리고 칼비노가 쓴 작품 가운데 마지막으로 읽을 책으로 선택했고, 이제 읽었다. 그 도시가 8부, 네 번째로 소개된다.
 내게 누군가 보이지 않는 도시의 이름을 하나만 대보라고 하면, Invisible City of Kitezh,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보이지 않는 도시 키테쯔>를 떠올리면서 대번에 “키테쯔”를 꼽았을 것이다. 그런데 또 나더러 그럼 키테쯔란 도시를 칼비노가 책에 쓴 55개의 도시처럼 키테쯔의 특징을 강조하여 묘사해보라, 라고 했다면, 차라리 똥을 싸고 말겠다고 답했을 거 같다. 음악 하나 듣고 특징을 강조해서 A4 용지 한 장 분량으로 서술을 한다니 그게 말이나 돼? 된다. 적어도 칼비노한테는.
 책은 13세기 중엽, 젊은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한汗Khan의 제국 일부이자, 몽고인이 지배하는 지금의 중국 땅을 방문해 쿠빌라이 칸을 만나 자기가 구경한 세상의 쉰다섯 도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쿠빌라이 칸은 칭기즈 칸의 손자로 원元나라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작자 치하에서 몽고의 고려 식민지개척을 완성했다는 건 그냥 참고. 몽고 제국의 최고 전성기를 만든 황제 앞에서 젊은 이탈리아 장사꾼은 자신이 정말 머물렀던 경험이 아니라, 자기 뇌 활동의 결과에다가 고향 베네치아의 곳곳의 흔적을 묻혀 (쉽게 읽기는 힘들지만) 아름다운 도시의 광경을 묘사해놓았다. 내가 읽은 칼비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책. 물론 역자 이현경의 빼어난 한국어 실력이 뒷받침했겠지만 서정적이고, 사색적이고, 다양하게 상징적인 매력적인 한국말 책으로 만들었다. 총 9부. 1부와 9부는 열 개의 도시, 나머지는 각 다섯 개의 도시, 합해서 쉰다섯 개의 도시에 관한 짧고 아름다운 설명이며, 각 부는 앞뒤에 쿠빌라이와 폴로의 대담으로 구성한다. 칼비노가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해도 맞고, 그런 따위는 없다고 본다고 주장해도 맞다. 그냥 독자가 읽으면서 생각하는 게 정답인 소설.
 어떤 작품인지 도시 ‘디오미라’를 설명하는 1부의 첫 도시를 통째로 가져오는 것으로, 책의 맛을 보여드림과 동시에 독후감을 끝낸다.





도시와 기억 1



 그곳에서 출발해 사흘 동안 동쪽으로 간 여행자는 육십 개의 은빛 돔과 온갖 청동 신상들, 주석으로 포장한 거리, 수정의 극장이 있고, 황금 닭이 매일 아침 탑 위에서 노래하는 도시 디오미라에 도착합니다. 여행자는 다른 도시에서도 이 아름다운 것들을 모두 보았기 때문에 이미 이들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의 특징은, 해가 점점 짧아지고 음식점 문 위에 달린 색색깔의 등들이 동시에 켜지고 테라스에서 어느 여인이 “오!”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9월의 어느 날 저녁 이곳에 도착한 사람이, 이미 이와 똑같은 저녁을 경험했고 이제는 그때가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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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한 해, 저를 책 읽기의 짜릿한 엑스터시로 끌고 갔던 것들만 골랐습니다. 이름하여 Top 10, 그리고 '최고의 한 권'.

 2018년엔 권 수로 219권, 편 수로는 192편을 읽었습니다. 가장 긴 책은 홍성원의 <남과 북> 여섯 권 짜리고, 다음이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 네 권 짜리였습니다. 이 가운데 먼저 약 50편을 골랐습니다. 내역은 글 아래에 따로 첨부했습니다. 선별한 책 중에서 또 골라 열 권을 선택했고, '한 권의 책'은 그 책을 읽는 순간, 이것이 올해 최고의 책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생각은 오늘까지 바뀌지 않았고요. 소개는 읽은 날짜 순서로 하겠습니다. 이 열 권과 특별한 한 권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1. 오에 겐자부로, <만엔 원년의 풋불>

 

 오에 겐자부로 자신이 만엔 원년, 그의 전작 <익사>에서 보다시피 1860년의 농민 반란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을 것. 당시 가장 격렬한 저항을 벌였던 종조부를 둔 한 청년이 68세대로 성장, 반미운동의 전초적 투쟁을 벌이다가, 갑자기 변절, 이후 의식의 혼란을 초래한다. 미국에서의 실종을 거쳐 만엔 원년에 종조부가 투쟁을 벌였던 고향으로 돌아온 다카시. 그가 지역 실권자 조선인 백승기와 벌이는 한 판 풋볼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까.



 2. 메릴린 로빈슨, <하우스 키핑>

 

 <하우스 키핑>을 선택했으나 사실 같은 이유로 <홈>도 추천한다. 가족 구성원이 떠나가고, 상처받고, 돌아오고, 기다리고, 다시 떠나는 일, 그 쓸쓸함. 기관차를 전속력으로 몰다가 선로를 이탈해 깊은 호수에 빠져 시신도 못찾은 남편. 친구 차를 빌려 아이들을 친정집에 맡기고는 역시 전속력으로 호수를 향해 돌진해 실종돼버린 딸. 이제 남은 가족들은 그들이 죽었음을 알지만, 어느 날 문득, 남편이나 딸이 슬며시 웃으며 조심스레 현관문을 여는 날이 있을 것 같은 고통스러운 기다림. 서늘한 아픔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3. 알렉시 제니, <프랑스식 전쟁술>

 고등학교 생물교사가 이런 책을 썼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보통의 프랑스 시민들은 복종과 순응으로 시간을 버텨냈을 뿐이지만, 타국에 의한 피통치가 얼마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후 알제리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프랑스가 독일 군인들에게 당한 고통보다 백 배 이상 더 악랄한 살상과 살육을 벌였다는 지적. 프랑스적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는 결코 피부색을 달리하는 왜소한 아시아 인들을 향하지 않고 오직 갈리아 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불편한 진실을, 생물교사 알렉시 제니는 정식으로 드러낸다.



4, 귀스타브 플로베르, <부바르와 폐퀴셰>

 플로베르의 유작으로 미완성 작품이다. 우울한 명상형 은둔자 플로베르가 인생의 마지막이 될 것을 알고 쓴 것 같은 작품. 세상을 살고 이제 갈 때가 되어 돌아보니 별 거 없이 사는 거 자체가 한 판의 코미디. 그리하여 플로베르는, 위대한 작가가 가끔 그러하듯, 마지막 작품으로 희극을 선택한다. 희극의 진정성은 희극 자체에 진정한 비극을 품고 있어야 하는 법. 두 필경사 부바르와 폐퀴셰가 뜻과 돈을 모아 쓴 사과 브랜디와 이름이 같은 칼바도스로 낙향, 하는 일마다 실패를 맛보는 장면을 읽으며, 그래 인생 자체가 칼바도스 맛이야, 희극 속의 쓴 비극을 음미해보는 것도 좋으리.



5. 헨릭 시엔키에비츠, <쿠오바디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TV에서 재탕, 삼탕으로 본 영화 때문에 이 책을 멀리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우연히 읽게 된 <쿠오 바디스>는, 영화가 원작의 재미에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지 깜짝 놀랐다. 폴란드의 자랑 시엔키에비츠의 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세련됐으며 재기발랄하기도 하고, 심지어 깊은 사색까지 포함하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얼마나 재미있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TV 때문에 직접 독서의 매력을 놓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른 것 다 빼고, 책 표지에 나신의 여성이 부여잡고 키스를 퍼붓는 대리석상의 주인공 페트로니우스의 현명한 언행을 감상하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이 작품은 명작이다.



6. 아고타 크리스토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칼루스와 루카스. 두 번째 세계대전이 두 쌍동이 형제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할머니 집에 도착해 그곳에서 살게 되면서 작품은 시작한다. 외할머니 집에서 형제는 절대로 울지 않고, 굽히지 않고, 그러면서도 성실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잔인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으며, 한 편으로는 따뜻한 마음과 행동을 그치지 않는다. 착한 악마들. 완전하게 건조한 문장으로 블랙 유머와 엽기적 내용을 서슴없이 서술하는 크리스토프. 이 쌍동이 형제가 정말 쌍동이일까? 의식의 분리, 선악, 호오, 이런 두 양식이 상호 교차되는 것의 상징 코드 아닐까? 그건 독자 마음이다.



7. 홍성원, <남과 북>

 

 전쟁을 치룬 나라로, 대한민국이란 나라보다 전쟁 전반을 조망하는 문학작품이 없는 국가도 없다. 무승부로 끝난 전쟁 이후 남쪽과 북쪽 모두 전쟁의 위험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남쪽은 국방군이, 북쪽은 인민군이 절대 선이었어야 했을 것이리라. <남과 북>은 70년대에 발표했다가, 박정희가 죽자마자 곧바로 개작을 해서 전쟁 발발 바로 전부터 종전 바로 후까지 전선과 후방에서 각각 전쟁의 비참함을 당한 모든 국민의 모습을 담은 역작. 진정한 전쟁문학이 없던 우리나라에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한 기념비.



8.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부제처럼 기본적으로 가치, 즉 품질에 대해, 인간과 인간의 사고와, 나아가 모든 물질과 재화의 가치, 품질에 관한 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열한 살짜리 아들 크리스를 등 뒤에 태우고 미국 중부를 떠나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여행을 하며, 한 편으로 여정에서 생긴 조그마한 일과 특히 모터사이클을 매개로 가치, 질에 관한 탐구로 사고를 확장하게 된다. 작가 자신이 다양한 학문을 통섭한 수재로 철학, 수사학, 수학과 물리학을 포함한 자연과학, 기계공학 등에 탁월한 지식으로 무장한 상태. 그리하여 사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을 타도하기 위해 플라톤, 소크라테스, 그 이전의 소피스트들까지 탐색하기에 이르는데, 모터사이클의 뒷자리에 앉은 아들 크리스는 여행 도중 아빠 등짝 밖에 보지 못했다는 건, 아주 나중에야 알아차린다.



9. 알베르 코엔, <주군의 여인>

 

 "이토록 장려하고, 화려하고, 장황하지만 아름다운 넋두리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둘만의 사랑'이라는 감옥과, 한 인간의 고결함을 천상에서 지옥으로 순식간에 떨어지게 만드는 질투와, 결국 땅 속 나무 상자 안의 바싹 마른 뼈밖에 남지 않을 풍만한 아름다움의 허무와, 야훼가 선택한 자신의 민족을 향해 서서히 그러나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위협의 숨막힘을 어느 인류가 있어 이보다 더 훌륭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라고 독후감을 썼다. 이 길고 긴 장편소설을 읽는 내내 화려한 문장의 매력 때문에 행복했다. 서로가 숨막히게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두 연인을 질식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아, 나는 그걸 안다.



10. 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

 

 1918년. 러시아가 공산혁명에 성공하자 서둘러 서유럽으로 망명한 것과 달리 혁명과 동시에 파리에서 러시아로 돌아와, 조모를 망명시키고 자신은 러시아 안에서 살기로 결심한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 혁명 정부에 의하여 현재 자신이 묵고 있는 메트로폴 호텔에서의 유폐형을 선고받고, 스위트룸에서 지붕밑 <라 보엠>의 미미가 살던 꼭대기 방으로 옮기게 된다. 귀족으로 태어나 인간 자체가 신사인 백작은 책상다리 안쪽 비밀 책상 속에 든 예카테리나 금화로 일 하지 않고도 고급호텔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지만, 특별하게 관계를 맺는 몇 명의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면서 이 고급스러운 작품을 만들게 된다. 나는 쉽게 이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이건, 명작이다.




2018년 최고의 한 권.  김태정,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시는 삶이어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또한 보편성 역시 확보해야 한다. 건강이 좋지 않아 서울을 떠나 해남 미황사 아랫동네에 방을 하나 얻어 남은 삶을 보내야 했던 김태정. 가난하고 병마에 고통을 받지만 결코 궁상의 골짜기로 빠지지 않는 단단한 중심의 시인. 인생의 곤고함을 이 시인만큼 깔끔하게 노래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시에 관해서는 말을 길게 하면 오히려 더 좋지 않은 법. 나 역시 조심스럽게 이 책의 일독을 모든 분께 권한다.




* 참 아쉽게 위의 열한 편에 오르지 못한 것으로, 윌리엄 트레버의 모든 책을 꼽는다.




2018년에 읽은 매력적인 작품 목록.

도서명출판사/제작사저 자,  역 자
사서 빠뜨재미마주즈느비에브 빠뜨, 최내경
화이트 노이즈창비돈 드릴로, 강미숙
루시 골트 이야기한겨레출판윌리엄 트레버, 정영목
아르세니예프의 인생문학동네이반 부닌, 이항재 
호르두발지만지카렐 차페크, 권재일
운명민음사임레 케르테스, 유진일
더 컬러 퍼플한빛문화사앨리스 워커, 안정효
플라톤의 반란자작나무(송학)피터 애크로이드, 한기찬
시대의 소음다산책방줄리언 반스, 송은주
마농의 샘펭귄클래식마르셀 파뇰 | 조은경
싱글 맨창비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조동섭
만엔 원년의 풋볼웅진지식하우스오에 겐자부로 | 박유하
의식동아시아레슬리 마몬 실코, 강자모
하우스키핑마로니에북스메릴린 로빈슨 | 유향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민음사모신 하미드, 왕은철
여름의 끝한겨레출판윌리엄 트레버, 민은영
프랑스식 전쟁술문학과지성사알렉시 제니, 유치정
부바르와 페퀴셰책세상귀스타브 플로베르, 진인혜
쿠오 바디스민음사헨릭 시엔키에비츠 | 최성은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민음사제임스 M. 케인, 이만식
절망문학동네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최종술
노변의 피크닉현대문학스트루가츠키 형제, 이보석
미국은 섹스를 한다자작나무카를로스 푸엔테스 지음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까치아고타 크리스토프 | 용경식
칠레의 밤열린책들로베르토 볼라뇨, 우석균, 
천국은 다른 곳에새물결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 김현철
고슴도치의 우아함아르테뮈리엘 바르베리, 김관오
아메리카나민음사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황가한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김태정 지음
그랜드 호텔문학과지성사비키 바움, 박광자
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학고재사바하틴 알리, 이난아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문학과지성사리온 포이히트방거, 문광훈
남과 북문학과지성사홍성원
비 온 뒤한겨레출판윌리엄 트레버 | 정영목
윌리엄 트레버현대문학윌리엄 트레버, 이선혜
아무도 없어요최측의농간박서원 지음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민음사조너선 사프란 포어, 송은주
랜덤하우스코리아메릴린 로빈슨, 유향란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문학동네리처드 플래너건, 김승욱
칠드런 액트한겨레출판이언 매큐언 | 민은영
달콤한 노래arte(아르테)레일라 슬리마니, 방미경
사촌 퐁스을유문화사오노레 드 발자크, 정예영
우리 시대의 아이문예출판사외된 폰 호르바트, 조경수
가브리엘라, 정향과 계피서커스조르지 아마두, 안정효
한국 현대 명작 희곡선집연극과인간김성희 지음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문학과지성사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장경렬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민음사에벌린 워, 백지민
주군의 여인창비알베르 코엔, 윤진
모스크바의 신사현대문학

에이모 토울스, 서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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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12-31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에는 <주군의 여인>을 읽어봐야겠습니다. 폴스타프 님 새해에도 소주와 책과 함께 즐거운 나날 보내세요~!

Falstaff 2018-12-31 12:49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잠자냥님도 내년엔 책은 그만두고, 돈 왕창 버시고요, 하시고 싶은 거 맘대로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컨데 세계일주 같은 거요.
<주군의 여인>이 좀, 아니 많이 장황합니다. 읽다가 자빠질 수도 있는 책이라서 선뜻 권하기엔 조심스럽습니다. 뭐 그런 거 다 팔자니까, 알아서 하시기를 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2-31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팔스타프님의 책들은 우직 묵직 견고합니다 무게가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Falstaff 2018-12-31 23:06   좋아요 1 | URL
내년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카알벨루치님께 늘 좋은 일만 생기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동리 문학전집 1 : 사반의 십자가 - 탄생 100주년 기념 김동리 문학전집 1
김동리기념사업회 / 계간문예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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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비슷한 시절을 지닌 사람들은 <사반의 십자가>를 꼭 읽어봐야 하는 교양도서 정도로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사반’이란 것이 사람의 이름이며, 심지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그의 왼쪽에서 함께 십자가형을 당한 ‘강도’ 또는 ‘도적’인줄 몰랐을 것이다. 지금 예수와 함께 죽은 강도들의 이름을 검색해보니까, 성경엔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을뿐더러 왼쪽 오른쪽 구분하지 않고 그 중 한명이 죽어 예수와 함께 낙원으로 갔고, 다른 한명은 예수더러, 임자가 진짜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임자와 우리를 구원해보라고 비방했다고 한다. 답글을 올린 엄숙한 기독교인은 심지어 알지도 못하면서 왼쪽 오른쪽을 구분하는 건 ‘성서를 오염시키는 행위’란다. 그러니 이 같은 진실에 입각해 발언하자면, 이미 죽은 김동리는 왼쪽 강도에게 ‘사반’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그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 땅 위에서도 일어나게, 죽음을 앞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더러 마치 에굽의 모든 장자들한테 같은 날 죽음을 선사해주어 집집마다 같은 날에 제사지내게 만든 모세처럼 기적을 일으켜주길 끝까지 기대했다는 취지로 작품을 썼으니, 지금 김동리는 23년 동안(벌써! 세월 빠르다) 지옥의 유황불에 지글지글 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유대인들한테 제일 큰 백그라운드는, 야훼. 선택받은 민족으로 모세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기타 등등의 판관들의 자손인 이들의 역사는 탈 에굽 이후 젖과 꿀이 흐르는 이스라엘 땅에서 언제나 잘 먹고 잘 살았던 건 아니어서, 이들이 주로 타국의 신부와 결혼하면서 유입된 이국의 신들에게 경배할 때마다 질투의 야훼가 불칼로 다스려 온갖 민족들에게 침략을 당하고야 만다. 이때마다 혜성같이 거의 메시아 급의 인물이 등장해 유대민족을 압제에서 구하곤 했으니, 서기 30년 조금 넘은 시절,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이 또다시 메시아의 재림을 기대했던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 우리한테도 비슷한 야담野談이 전승해 내려온다. 주로 백기완, 심지어 이청준 등의 글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소년장사 이야기. 주로 양반 지배계급이나 왜나라 사람들이 소년장사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혈맥이 지나가는 산맥에 쇠못을 박아댄 이야기, 기억하시지? 하여간 AD 30년경에 일곱 명이 팔뚝에 날 선 비수를 쓱 그어 피를 뚝뚝 흘려 받은 다음 야만스럽게 그걸 섞어서 서로 마심으로 ‘혈맹의 단’ 즉 혈맹단血盟團을 결성해, 각 단원은 수하로 또 다른 일곱 명의 이차 세포를, 또 일곱 명의 삼차 세포를 등등으로 구성한 대규모 독립투쟁 단체를 결성하게 된다. 여기서 대장, 즉 단장을 먹는 인물의 이름이 바로 ‘사반’이다. 사반은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메시아가 나타나지 않으면 당시 세계 최강이었던 로마의 군대에 대항을 해봤자 전혀 승산이 없음을 알고 메시아의 재림을 기대하던 중 예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세금 걷는 공무원, 세리를 걷어찬 거 빼고 여하한 폭력에도 절대 반대를 외치던 예수가 로마 군대와의 전쟁을 수긍할 수 있었겠는가. 오직 죽은 다음 하느님 우편에 앉을 생각만 잔뜩 하고 있던 예수께서. 여기서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리는 지점이다. 서로 타협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니까. 그러니 이를 주제로 소설을 쓸 수 있었겠지. 근데 신기하다. 책의 시간 배경에서 한 세대에서 한 30년쯤 지나면, 예루살렘을 기반으로 젊은이들이 한 패가 되어 거세게 로마에 대항하는 무장단체를 결성한다. 그리고는 정말로 세계최강의 군대인 로마군과 전쟁을 벌이게 되는 바, 결론은 유대민족이 거덜이 나고, 이때 눈부신 활약을 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의 공적으로 두 부자가 차례대로 황제의 위에 오르게 된다. 티투스가 2년밖에 황제를 못해 그게 혹시 야훼가 불침을 놓은 건지는 몰라도.
 조금 지루했다. 420쪽 가까이 되는 장편소설. 분량은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신은 벌써 19세기에 휘두른 니체의 망치에 맞아 절명한 상태라 나로 하여금 도무지 흥미를 느끼게 해주지 못한다. 원래 “현대문학”지에 연재했던 것에다가 삼사백 매 정도를 보충해 1958년에 상재하고, 그걸 다시 개작을 해 1982년에 재상재한 책. 그래서 그랬나?
 김동리는 황순원과 더불어 우리나라 순수문학을 평생 고집했던 작가. 황순원 선생은 일제가 조선어를 쓰지 못하게 하자 학교를 때려치우고 평양 근처 시골로 내려가 골방에서 우리말로 소설을 썼고, 김동리 선생은 붓을 아예 꺾어버렸다. 이거 쉬운 일 아니었을 걸? 영화 <암살>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악당 염석진이 해방 후 반민특위에 출석해 무죄를 받은 다음, 안옥윤(전지현)한테 총 맞기 바로 전에 이렇게 말하잖나. “(해방될지) 몰랐으니까. 몰랐으니까!” 김, 황 양씨도 언제 해방이 돼 조선어로 작품을 쓰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전히 조선어로 단편소설을 썼으며, 붓을 꺾었던 거다. 작가가 작품을 못 쓰는 상황이란 우리 같은 독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었지 않았을까. 이때 김동리는 <사반의 십자가>를 구상했단다.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 조선. 그러나 목숨이 먼저니 감히 쓰지는 못하고 머릿속에서 자꾸 가지만 치다가,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피난을 가지 못해 서울에서 고통 속에 숨어 살고, 나중에 부산에 내려가 소위 ‘밀다원 시대’를 만나고, 다시 수복해 서라벌예대 문창과 교수를 하면서 드디어 20년을 구상한 <사반의 십자가>를 원고지 위에 옮기게 된다. 비록 이이가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격렬한 리얼리즘 또는 참여문학 종사자들로부터 수없이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세상에 이런 꼰대도 분명히 훌륭한 존재의 이유를 갖는 법이다. 숨 막히던 시절, 고집스레 순수문학의 길을 가는 작가들도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소설판이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을 테니까.



 독후감 다 썼다. 이제 잡담 시간.
 1. 자신이 생각하기에 천주교든 개신교든 하여간 환자 수준의 기독교 신자/신도라면 책을 읽기 전에 지금 읽을 책이 전문 거짓말쟁이가 쓴 소설이란 점을 충분히 인식하시라. 이걸 읽고, 읽으면서 감히 성서에 나온 진리를 왜곡했다느니 하시려면 애초부터 손에 잡지 마시라.
 2. 김동리가 1913년생. 그의 예수는 우리가 이발소 거울 위에 달려 있어 보곤 했던 바로 그 초상화의 예수. “예수의 그 호수같이 맑고 푸른 두 눈이 하늘의 끝없음을 머금은 채 사반의 핏발 선 굵은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114쪽), “예수는 그 백랍같이 희고 긴 손(왼손)을 들어 보였다. 순간, 사반은 ‘그 백학이 깃을 편 듯한 손’이라고 하던 도마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만큼 그의 희고 긴 다섯 개의 손가락 사이에서는 어쩌면 곧장 무지개가 비낄 듯한 황홀한 환상 같은 것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115쪽) 푸른 눈과 백학이 깃을 편 듯한 손과 길고 얇은 손가락의 가진 ‘목수carpenter’가 말이 돼?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짧고 두꺼운 손가락과 억센 손톱을 지닌 건장한 체격. 이게 내가 생각하는 중동 아시아인 목수였던 예수의 모습이다.
 3. 이걸 읽자마자, 어떤 종류의 안도감이 흐른다. 드디어 오랜 숙제를 해결한 거 같은 느낌. 원래 <을화>를 고르려 했는데 작년 이맘때든가, 아, 벌써 3년 전이다, <무녀도>를 읽은 바 있고, <을화>가 단편 <무녀도>를 개작한 것이란 점이 <사반의 십자가>로 선회하게 했다. 하긴, <을화>하면 난 영화배우 김지미가 먼저 떠오르는 인간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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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평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4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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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여 전에 룰포의 다른 책 <페드로 파라모>, 아니 <뻬드로 빠라모>를 읽고 “상쾌하고 뒤통수 때리는 작품”이라고 간략한 느낌을 끼적였다. 그래 여태까지 룰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가 쓴 다른 책 <불타는 평원>을 읽어보자고 차일피일 했다가 이제야 읽었다. 다른 거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룰포가 쓴 또 한 권의 책이란 것 때문에 골랐다. 룰포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보다 10년을 앞서 태어났는데 그의 <뻬드로 빠라모>가 <백년의 고독>에 중요한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 하면, <뻬드로....> 독후감에서 슬쩍 비치기만 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환상문학이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도 있다는 뜻.
 <불타는 평원>에선 이런 환상문학 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 물론 세밀하게 읽는다면 환상문학이 등장하기 바로 앞선 전조현상 정도는 발견할 수 있겠지만. 룰포는 전 생애를 걸쳐서 <뻬드로 빠라모>와 열일곱 편의 단편을 모은 <불타는 평원>, 이렇게 딱 두 권만 출간했다고 한다. 룰포가 쓴 두 권의 책의 공통점은 멕시코의 황야지대, 산악지역 등을 무대로 한다는 것.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10년대와 20년대의 멕시코 혁명에 관해 선행학습을 좀 하는 편이 좋다는 것. 그러나 나처럼 게으른 인종이 소설 한 권을 읽자고 남의 나라의 역사를 뒤져볼 턱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정부군이 우리 편인지, 반란군 또는 농민군이 우리 편인지 도통 알 도리가 없다는 것. 이런 것들이 애로사항이다.
 하긴 뭐 혁명도 어차피 사람 사는 일 아닌가. 우리 편인지 너네 편인지 굳이 알지 못해도 충분히 재미있다. 작중 등장인물은 언제나 정부군에 쫓기는 농민군 또는 반란군이며, 전쟁/전투 중에 새우등 터지는 멕시코 시골 촌사람들이며, 그중에서도 배운 거 없고 가진 거 없는 무지렁이들이기 때문에. 이게 말이 쉬운 것이지 사실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내무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작가가 혁명의 황폐화와 황무지에서의 삶, 그리하여 보다 본능에 가까운 생존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장을 그린 것은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책의 앞날개에 쓰여 있기는 하지만도.
 열일곱 편의 단편 소설의 내용을 다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본문만 191쪽이니까 한 편당 평균 11쪽에 불과한 손바닥 소설, 장편掌篇 모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표제작인 <불타는 평원>과 마지막 작품 <아나끌레또 모로레스>를 제외하면 작품의 평균 길이가 훨씬 줄어들기도 하고. 20세기 초반, 멕시코 고원의 황무지 지역에서 벌어지는 혁명전쟁, 말이 혁명전쟁이지 사실상 정부군에 의한 소탕작전과 피해자들, 와중에 거친 삶을 살아내느라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데 모든 힘을 쏟는 군상들에 관한 객관적인 묘사, 그리고 이 세 유형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는 의식의 흐름 같은 것들을 감상할 수 있다.
 어차피 라틴 아메리카의 환상소설, 또는 아몰랑주의 소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후안 룰포를 경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거 같은데, 아직 룰포를 읽어보시지 않았다면 <뻬드로 빠라모>를 먼저 읽어보심이 어떨까 싶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93번으로 이 책보다 먼저 번역해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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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2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남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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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12월의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적으로 극심한 물자부족을 겪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전쟁이다. 때는 바야흐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어 아메리카를 제외한 전 유럽의 산업은 완전히 거덜이 난 상태였다. 이때 참전하지 않고 그냥 마음속으로 같은 파시즘의 나라 독일이 승전하기를 은근히 기원하던 스페인은 전시 특수를 즐길 황금 찬스였으나, 아뿔싸, 스페인은 스페인 나름대로 프랑코 개자식에 의해 벌써 내전이 발생, 일찌감치 나라를 말아먹은 상태라 전시 특수를 향유할 산업기반이 없었던 거였다. 프랑코 시대에, 나중에 노벨문학상을 받을 젊은 작가 지망생이 하나 있어, 나도 처음 들은 바, 공화진영이 아니라 반란군인 프랑코 파시즘 진영에 자진 입대해서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까지 당한 이가 있었으니 이 인간이 바로 카밀로 호세 셀라. 프랑코 진영에 가담했을 때 나이가 스무 살. 스무 살이라면 성년이기는 하지만 평생을 책임질 뚜렷한 확신을 갖기엔 조금 미숙한 상태. 하여간 이런 이력은 내전 후 자신의 소설작업을 다른 작가들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파시즘, 또는 전체주의 또는 이런 비슷한 것들을 다 모아, 독재정권은 스페인이나 독일이나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 똑같아서 한때 파시즘에 동조했다고 해 작품의 주제나 표현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래 셀라가 쓴 리얼리즘 작품 <파스쿠알 두아트레 가족>은 금서로 찍히고,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벌집>은 끝내 출판 허가가 나지 않아 몇 년 후 아르헨티나에서 출간하기에 이른다고 작품 해설에 나온다. <파스쿠알 두아트레 가족>도 읽어보려고 서점 보관함에 들어 있는데 엉뚱하게도 더 나중에 출간한 <벌집>을 먼저 읽게 됐다.
 지금 같으면 이런 소설의 출판금지 결정을 어처구니없어 하거나 비웃을 수 있겠지만 1948년 인생의 절정기를 맞아 온몸으로 신경질을 뻗어냈을 프랑코를 감안한다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나름대로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쉽게 다른 분께 일독을 권하기는 좀 난감한 소설이다. 첫 장면이 끊임없이 “젠장”, “정말 짜증나네!” 같은 험한 단어를 쏟아내며, 마드리드 시내 한 카페의 사장 도냐 로사가 끔찍하게 큰 엉덩이로 손님들을 툭툭 건들면서 탁자 사이를 오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근데 소설의 첫 문장은, 따옴표 안에 묶인 걸로 봐서 누군가의 대사가 확실하다.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이제 이런 말을 하는 데 진력이 나긴 했지만,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어쩌겠소.”


 그러나 도대체 누가 이 대사의 주인공인지 밝히지 않는다. 누굴까. 내전 이후, 세계대전 말기의 극심한 경기침체기를 맞아 그래도 현상을 유지하게 위해 누군가 먹물 든 이들이 오늘만 참자, 내일이 되도 또, 오늘만 참자, 결코 전망 또는 희망을 잃지 말자고, 소위 희망고문을 하고 있는 것. 대한민국의 2010년대 말에 그대로 차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경구다.
 그리하여 소설 <벌집>은 (내가 1944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이라고 생각하는 세계대전 말기의) 마드리드에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 시민들, 현재로서는 전혀 전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남녀 시민들을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당시 마드리드 시민들도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불행했다는 걸 알 수 있고, 2010년대 후반의 대한민국 국민들도 정말 제각각으로 불행하게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만일 위에 인용한 것이 여전히 효용이 있다면 말이다.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가난한 다수와 작은 성공을 대단한 성공인 것처럼 오해하는 적은 숫자의 중소 상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굳이 주인공을 한 명 고르자면 대학을 졸업하고 한 때는 시를 썼지만 끔찍하게 큰 엉덩이를 가지고 있는 도냐 로자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먹고 돈이 없어 하마터면 허벅지를 걷어차일 뻔한, 그러나 이미 모욕은 모욕대로 겪은 ‘마르틴’이란 실업자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진짜 주인공들은 동시대를 살면서 함께 셀라가 자기 소설에 등장시킨 모든 가난하고, 배고프고, 병들고, 병든 애인의 약값을 위해 몸을 팔정도로 아둔하고(남자가 나중에 어떻게 변할 줄 알아!), 1 페세타어치 군밤으로 한 끼니를 때웠으면서도 건강을 위해 저녁 식사는 가볍게 한다고 둘러대야 하는 시민들과, 한 푼의 적선을 위해 하루 열 시간이 넘게 플라멩코 춤을 추며 노래해야 하는 집시 꼬맹이이기도 하고, 전 재산을 겉모습이 번드르르한 사기꾼한테 투자했으면서도 그 사기꾼을 향해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그마한 인쇄소나, 빵집이나, 카페 하나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보다 가난한 자들에게 가끔은 혹독하고 가끔은 관대하기도 한 모든 군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즉 셀라는 큰 화면에 같은 시대의 마드리드를 사는 중류, 중류 이하 계급의 인간 모습을 판화 찍듯 꾹꾹 눌러 그대로 묘사하기만 한다. 이런 작품에서 소설의 맛을 착 감기게 만드는 역할은, 일종의 악역들의 행위, 바로 조금 부자들. 저녁 식사 때마다 과식을 해 밤새 뱃속이 더부룩하고 가끔은 요동을 치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 가난뱅이 앞에서 비싼 시거를 태우며 유쾌하게 어때 자네도 한 대 피워볼래? 번히 권유에 응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호기를 부릴 수 있는 작은 인쇄소 사장, 이런 인물들이다. 내전과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계대전으로 인해 절대 궁핍에 시달리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 할 수 있는 희망고문자들. 아무리 프랑코가 무식한 깡패 개자식이라고 해도 이 작품 속에 든 시대의 절망에 관해 눈치를 채지 못했을 턱이 없다. 그러니 같은 언어를 쓰지만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르헨티나에서 초판을 찍을 수밖에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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