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시절
찰스 디킨스 지음, 장남수 옮김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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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또다시 디킨스. 디킨스, 솔직히 웃긴 작가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고 이제 디킨스는 그만 읽자, 해놓고 <황폐한 집>을 읽었고, 이번엔 정말 디킨스 졸업장 받았다고 하고는 또 <어려운 시절>을 헌책도 아니고 새 책을 사서 읽는 건, 혹은 읽게 되는 건 왜 그럴까? 젠더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많은 여성 독자들이 오스틴이 눈에 보이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읽어치우는’ 현상하고 비슷할까? 난 한 번도 여성이었던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여튼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런 것들이 오스틴이나 디킨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자잘한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디킨스는, 읽을 때마다 꼭 ‘청소년을 위한 명작도서’ 가운데 한 권을 읽는 듯한 느낌이 난다. 착하다는 뜻이다. 19세기 작품답게 책의 중간 정도에 이르면 이미 결론이 어떻게 날지 훤하게 보이는 거. 그리고 어김없이 예상 답변을 따라 스토리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 보면서 독자로 하여금, 거봐 내 생각대로 되잖아, 은근히 기분 좋게 만든다. 여기에 당시로는어쩔 수 없이 첨가되는 계몽적 시선이 보태지고. <어려운 시절>도 이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두 명의 부르주아가 등장한다. 한 명은 어려서 어머니가 자신을 잔혹한 할머니에게 떠맡기고 떠나버려 할머니한테 더 얻어터지다가는 죽을 거 같아 도망을 해 뜨내기, 심부름꾼, 방랑자, 노동자, 짐꾼, 등 당시 영국의 최하층 바닥을 박박 기다가 점원, 총지배인, 소규모 동업자를 거쳐 공업도시 코크타운의 상인, 공장주, 은행가 등의 대부호의 자리에 오른 ‘조싸이어 바운더비’라는 인물로 마흔 일고여덟 살의 미혼남자다. 장가를 들지 않아 집안일을 맡아 해줄 일종의 집사를 고용했는데, 나이 많은 과부로 친가, 시가 쪽으로 아직 위세가 떠르르한 가문의 일원인 스파짓 부인이다. 왜 이이를 고용했는가 하면, 남들에게 자신은 세상의 가장 천한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자기가 수하에 상류계급 명가 출신을 두고 있다는 것을 세상 만방에 고함으로써 극명하게 드러나는 보색대비를 즐기고 있는 거다. 이 두 명은 책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전혀 개전의 정이 없는 악역을 담당한다.
  또 다른 부르주아는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 코크타운에서 철물도매업을 하다가 느낀 바가 있어 사업을 접고 학교를 세워 사회사업을 하는 현실적인 인간으로, 어떤 일이라도 감정을 배제하고 현실적인 인간, 원칙대로 사는 인간을 육성하고자 하는 열망에 싸여있다. 슬하에 순서대로 루이자, 토머스, 애덤스미스, 맬서스, 제인, 이렇게 다섯 명의 자녀가 있으며 상상력이 거의 없는 아내를 선택한 이유는 그녀에게 많은 지참금이 붙어 있는, 쉽게 말해 돈 많은 바보라서 이었다. 이이는 나중에 코크타운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대부분을 런던에서 보내는데 책의 실제적 주인공인 맏딸 루이자로 인해 감정 없는 사이보그에서 따뜻한 인간으로 개선되기는 하지만 대가로 자기 이름을 물려받은 큰 아들을 잃게 된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 잃게 되는지는, 안 알려줌.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의하여 오직 이성의 힘만을 키우는 교육을 받아 세상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데 익숙한 주인공 루이자가 점점 자라 열다섯 여섯의 나이가 되자 아래 동생 톰을 데리고 마침 동네에 들어온 곡마단 천막의 구멍을 통해 안을 구경하다가 아버지에게 들켜 혼이 나려는 순간, 감히 교장 선생님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지쳤어요, 아버지.” 그래,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에게 여전히 감정은 완전히 무시한 유일 이성의 교육만 내리 시켰으니 이제 속에서 봄을 생각하는 사춘思春의 감정하고 충돌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러나 속절없이 세월이 지나 사춘기도 끝나고 스무 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저 위에서 등장했던 이제 오십 세의 부유한 남자 바운더비 씨가 자기 친구이자 루이자의 아버지를 통해 청혼을 해오자마자,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감정의 활동 없이 그냥 허락을 하고 삼십 년의 차이를 넘어, 전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을 해버린다. 행복하겠지? 읽어보시면 안다.
  어린 루이자가 트인 천막 사이로 구경하던 곡마단 속에 광대 주프가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늙는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어서 이제 늙은 광대를 보고 폭소는커녕 웃어주는 사람도 없고, 게다가 특히 뼈와 관절이 변형되어 능숙하게 하던 묘기까지 연달아 실책을 범하고 만다. 이날도 광대는 묘기를 부리다가 그만 나가떨어져 씨씨라고 불리는 딸 씨씰리아 주프에게 약으로 쓸 각기 다른 기름 아홉 병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키고는 자신이 키우던 개 메리렉즈만 데리고 사라져버린다. 때마침 이 자리에 있던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씨씨를 후원하게 되어 함께 그의 집 스톤로지에 받아들여 교육을 시키지만 씨씨는 정이 많은 곡마단원들 사이에서 자라서 그런지 숫자 위주로 이성만을 강조하는 학업의 성취에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씨씨를 통해 그래드그라인드 가족 구성원의 가슴 속에 따뜻한 감정이 조금씩 들어온다는 것을 사람들은 한참이나 지나야 눈치 채게 된다. 씨씨가 등장할 때의 디킨스의 눈길이 얼마나 따뜻한지 나는 씨씨가 주인공이 될 줄 알았다. 그 정도로 중요한 조연.
  다른 중요한 조연으로 마흔 살 쯤 되는 스티븐 블랙풀과 서른다섯 살 정도의 레이첼 커플. 스티븐에게는 부정하고 방탕한 아내가 있어 거의 혼자 살지만 어엿한 유부남이라 천성이 도덕적인 레이첼과 드라이한 사랑(박완서 선생이 쓴 단어 “건조한 사랑” 인용)으로만 맺어져 있다. 그러나 천상의 사랑. 스티븐과 레이첼의 성격 자체도 정의와 선의, 그리고 따뜻한 배려로 서로의 힘든 환경 속에서 맞는 역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려 애쓰는 모습이 짠하다.
  여기에 딱 한 명의 악역 조연만 추가하자. 그래드그라인드 씨의 동료 국회의원의 동생인 제임스 하트하우스. 서른다섯 가량에 잘 생겼고, 외모, 치아, 목소리 두루 휼륭하며, 여기에 예절, 복장 등이 탁월하지만 빨리 싫증을 내는 성향에 특기가 하나 있으니 자신의 불성실을 솔직함으로 가장해 보여주는 일이다. 이이가 또 사는데 싫증을 느끼는 걸 보고 착한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소개장을 써서 사위이자 친구인 바운더비에게 보내는데, 바운더비한테는 젊다기보다 어리고 아름다운 아내가 있는 거다. 그럼 뻔하게 예측할 수 있으니 우리는 그걸 흔히 교통사고라고 부르는 바, 정말 교통사고가 일어날까? 이 책이 출간연도가 1854년. 무대가 19세기 프랑스였다면 교통사고가 나는 건 당연한데 빅토리아 여왕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던 잉글랜드에서도? 이것도 안 알려줌.
  그래도 디킨스가 당대의 다른 작가들하고 구별이 되는 건, 하층계급의 시민들에게 ‘기본적으로’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는 점. 그들의 생활이나 적어도 돈과 밥을 버는 방법과 환경의 개선을 수시로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 그런 경향이 많이 두드러져, 그러다보니 시시때때로 해학적 묘사가 눈에 많이 띄어 독자로 하여금 미소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현실적 숫자의 인간 토머스 그래드그라인드 씨가 국회의원으로 당선하자 이를 꼬집어 영국식 도량형인 ‘파운드 법 대표, 곱셈표의 대표,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 국회의원’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씨씨가 지진아로 찍힌 이유가, 개당 14.5펜스 하는 모슬린 모자 247개의 값을 암산으로 즉각 말해보라는 교사 맥초우컴차일드 선생의 질문에 답변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 때문이란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렇게 또다시, 더 이상은 읽지 않겠다고 각오한 디킨스를 읽었다. 이제 정말 디킨스는 읽지 않을 것이지만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어디 하나라도 있어야 맹세를 하지,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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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0-06-04 1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익숙한 (게다가 재미있는) 드라마 보는 마음으로 읽어요. 유치해, 라고 입으로 말하면서 신파에 울면서 읽고있더라고요;;;; 계속 두껍고 무거운 걸 사고 (읽고) 있습니다. 물론 제인 오스틴도 함께요.

Falstaff 2020-06-04 20:14   좋아요 2 | URL
그죠, 그죠?
유치하고 뻔한 트로트인데 계속 손이 가잖습니까? ㅎㅎㅎ
 
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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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overstory는 우리말로 “삼림의 덮개를 형성하는 엽군”을 이야기한다. 저 광활한 열대우림 또는 온대 밀림의 지상 60미터 이상의 스카이라인. 초록의 지평선을 만드는 거대 나무들의 이파리 파도. 그것을 ‘오버스토리’라고 한다. 이 책은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명체들의 집합으로의 숲과, 숲을 구성하는 거대나무와 이들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수억 종의 생명체들에 대한 한 인간의 찬사이며 송가이자 반성문이다. 지구 혹은 숲의 나이로 보면 순식간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을 멸종시키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아주 가까운 시간 안에 자신들마저 죽음을 향해 질주하게 만드는 호모 사피엔스들의 비지구적, 비생명적 행위에 대한 질타이다.
  리처드 파워스는 이 책으로 2019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때가 2019년 2월이니까 이 책이 2018년 맨-부커 상의 최종 후보, Short list에 올랐을 때 판권 계약을 했을 터이니 출판사 은행나무는 매우 훌륭한 작품을 좋은 가격으로 확보했을 것 같다. <오버스토리>는 퓰리처상을 받을 자격이 넘치고도 넘친다. 모든 것을 자본화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가 사는 지구의 가장 건전한 하층구조, 숲과 잡목과 고목과 균류와 기타 미생물들을 무조건적으로 파괴하기를 멈추지 않는 지금 시대를 사는 모든 비문맹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7백 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임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며 꼼꼼하게 읽게 만드는 글의 힘. 책을 읽는 내내 추상적으로 짐작하고 있던 것에 대해 확실한 예를 들어가면서 우리가 지금 얼마나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가르쳐주는 등장인물 또는 교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는 일, 정말 오랜만이다.
  대학에서 사람의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학문인 보험통계학을 전공하고 이제 학기말 시험만 끝나면 마지막만 학기를 남겨두게 되는 올리비아 벤더그리프. 70년대 한국어로 이런 학생들을 ‘졸업반’이라고 했다(천승세, <낙과를 줍는 기린> 참조). 올리비아의 취미는 마리화나, 코카인 흡입 등이며 부모의 완강한 반대를 무시하고 데이비와 결혼해버린 것을 후회해서 오늘 경제학과 선형분석 수업 사이의 빈 시간을 이용해 법정에서 데이비를 만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왔다. 역시 마리화나에 취한 몽롱한 상태. 기숙사 꼭대기 방에 올라 샤워를 한 후 나체로 침대에 누워 전등을 끄기 위해 싸구려 소켓 근처를 더듬다가 움켜쥐었고, 하필이면 때 맞춰 소켓의 벗겨진 피복 사이로 아직 습기가 마르기도 전인 올리비아의 몸속으로 맹렬한 전기가 쏟아졌으며, 올리비아는 죽는다. 비명을 지르기는 했지만 아래층에서 TV를 즐기던 학생들은 의례 올리비아의 이상행동쯤으로 생각하고 피식 웃기만 했다.
  70초 후, 갑자기 과부하가 걸린 두꺼비집, 요새 언어로 브레이커가 작동해 스위치가 내려가 전기가 나가고, 놀랍게도 올리비아의 심장이 처음에는 작게 그러다가 점점 크게, 점점 크게 박동하기 시작했고, 오늘 이혼했지만 늘 그랬듯이 한 번 더 싸우고 화해의 잠자리를 하기 위해 기숙사에 들른 전남편 데이비에 의하여 발견되어 올리비아는 70초 동안 죽었다가 부활한다. 70초. 자신의 모든 인생 가운데 겨우 70초. 그러나 죽음을 발견한 올리비아는 마리화나와 기타 자기가 갖고 있던 모든 약물을 변기에 쏟고 물을 내려버린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휴가 동안 기숙사에 홀로 남아 길고 긴 사색에 잠긴 올리비아. 그리고는 며칠 후, 1990년 1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이제 학교를 휴학하겠다고, 열여덟 살이 된 이후 거의 처음으로 따뜻한 목소리로 뜻을 전하고 차를 몰아 서쪽으로 길을 나선다.
  할인매장 주차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매장에 설치한 TV를 통해 캘리포니아 주 솔러스의 몇 천 년 된 나무를 베지 못하게 시위하는 장면을 발견한 올리비아, 나는 서쪽으로 가야해, 생명체의 40억년 동안 가장 경이로운 산물들이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 라고 굳게 믿고 도착지를 정한다. 오하이오 평야지대를 지나가던 올리비아의 차창 밖으로 홀로 거대하게 서 있는 밤나무가 보인다. 거기 쓰인 간판. “공짜나무작품.” 그리하여 거대한 밤나무가 서 있는 집으로 가 이름 없는 예술가 니컬러스 호엘을 만나게 된다. 노르웨이에서 이민 온 고고조부가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힐에 무수하게 늘어선 밤을 따 구워먹으며 아일랜드에서 온 빨강머리 처녀 비 포위스에게 청혼, 결혼한 후 오하이오에 이주해 와 여섯 개의 밤알을 심어 유일하게 남은 나무. 미국 동부에서는 밤나무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발생해 모든 밤나무가 멸종되었으나 고고조부가 주머니에 넣어 가져와 땅에 심온 밤나무는 이곳에서 우람하게 커갔고, 고고조부, 고조부, 증조부, 조부, 아버지까지 76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매달 밤나무의 사진을 찍어 놀라울 정도의 슬로우 샷이 탄생하게 된다. 이 집안의 상속자. 그러나 집과 땅은 그 사이 악마나 악마의 졸개와 비슷한 거대 농장회사에 팔려 두 달 안에 집을 비워야 하는 이들은 거의 모든 것을 땅에 묻고 함께 솔러스를 향해 출발한다.
  1948년 마오의 군대가 들어오기 바로 전의 상하이, 후이족 무슬림 출신 중국인이자 예술학자, 훌륭한 서예가이며 무엇보다 큰 상인인 마 쇼잉은 아들 ‘마 시 수인’에게 집안의 보물인 옥반지 세 개와 루오한(羅漢 또는 阿羅漢)의 초상화 두 점을 건네주고 이제 아들이 살 곳, 먼 먼 동쪽에 있는 대륙, 미국으로 보낸다. 마 시 수인은 미국에서 시 수인 마가 되었다가 윈스턴 마로 최종 결정이 되고, 젊은 시절에 중국에 선교사로 갔었던 백인의 딸 샬럿과 결혼해 딸 셋을 두었으니 첫째가 ‘미미 마’다. 아이들이 다 성장해 집안의 보물인 옥반지와 두 점의 초상화를 미미에게 물려준 윈스턴 마는 어느 날 나무에 기댄 채 자신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쏘아 죽어버린다. 좋은 실력의 엔지니어이자 과장이 된 미미는 12층 사무실에서 내려다보는 포틀랜드의 숲을 보며 일상을 즐겼던 것인데 어느 날 한 순간 숲이 사라지고 만다. 그리하여 포틀랜드 시청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던 중 검거돼 베트남 전 참전 상이군인이자 비행 사고로 낙하 중에 반얀나무에 걸려 목숨을 구한 더글러스 파블리첵을 알게 되고,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회사의 이미지를 흐린 대가로 해고를 당한 후 더글러스와 함께 대륙을 횡단해 솔러스에 도착, 아름다운 올리비아를 만나게 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애덤 어피치는 일찌감치 인류는 끔찍하게 지구에 유해해서 이 종은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되고, 곧 세상은 건전한 지성이자 집단의 지성인 군락과 군집으로 돌아갈 것임을 자각한다. 그러나 그건 자라면서 크게 문제가 되지 못해 대학에 진학해서는 심리학을 전공해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행동가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려고 솔러스에 간다. 거기서 거대한 나무의 지상 30미터 높이에 있는 가지 위에 널빤지 두 장을 이어 붙이고 농성중인 올리비아와 니컬러스를 만나 숲과 나무의 보전을 위한 운동에 접어들게 된다.
  올리비아와 이이를 사랑하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남녀로서도 있겠고 동료로서도 있겠고, 아니면 자연 보존 운동을 하는 이이의 사고방식에 관해서도 있겠는데, 어쨌든 이이를 사랑하는 네 명이 젊은 시절에 벌였던 치열한 생명 운동. 그리고 여태 소개는 하지 않았지만 한 평생을 걸고 생명과 나무와 숲에 자기 인생과 생명을 걸고 연구를 하는 과학자, 살면서 저절로 나무와 생명에 관한 눈을 뜨게 되는 부부와 인도인 부모를 둔 한 불구의 천재 등이 등장한다. 말 하고 싶은 것이 많으나 욕심내지 않고 이쯤에서 그만 하겠다. 이야기하지 않고 남긴 무수한 아름다운 것, 고귀한 것, 장엄하고 겸손할 필요가 있는 것들은 책을 읽어보실 분들께서 직접 발견하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니까. 인간 종種은, 인간 종은, 인간 종은 미안해하고, 불편한 것을 참고, 겸손해야 할 필요가 넘치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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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6-01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년에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 왠지 손이 안가서 안 읽었는데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평소 제가 관심있게 보는 주제인데 왜 외면했는지 폴스타프님 덕분에 다행입니다. 😊

Falstaff 2020-06-01 12:25   좋아요 1 | URL
예.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오랜만에 아주 꼭꼭 씹어 소화시킨 책입니다. ^^
 
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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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시단에 1952년 용띠 시인들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황량했을까. 특히 모더니즘 쪽에서. 전남 해남 출신 황지우, 충남 연기 출신 최승자, 그리고 경북 상주 출신 이성복.
  이성복. 이이의 시집을 읽어보면 참 감각적인 시어로 인해 책마다 감탄하고는 했다. 지금 전문을 외우지는 못하고 부분만 기억해 간혹 독후감 쓸 때도 써먹는 구절이 있다. 《그 여름의 끝》에 실린 <눈물>. “수만 광년 먼 먼 별에서 흐르는 눈물 수만 광년 먼 먼 별에서 이제 막 너의 눈에 닿는 눈물……” 이것뿐인가.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에서도 아스라한 시구詩句가 얼마나 독자의 염통과 허파 사이에 있는 거, 마음을 후비는지. 그런데 이 시집을 내고는 그만 이성복의 새 시집에 관한 얘기가 없었다. 그 사이에 십 년의 세월이 흘렀고, 우리 시인들이 가끔 젊은 나이에 시를 접는 일이 잦아, 계명대 교수를 하는 이성복이 이제 시업을 접은 것으로 알고 여태까지 살았는데, 천만의 말씀을.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이후에 십 년의 세월을 던져 오늘 독후감을 쓰는 《아, 입이 없는 것들》을 냈으며, 이후에 한 권을 더 냈다고 해서, 그건 일단 알라딘 보관함에 넣어놓았다.
  이 시집은 모두 3부, 125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들 역시 제각각이라기보다 작은 단위의 ‘소집합’들로 엮어 있다. 이성복의 나이 51세에 출간한 시집으로 이제 시인은 더할 나위 없이 완숙한 경지에 이르러, 나이든 시인이 가끔 그렇듯 그저 자신이 본 것, 경험한 일 같은 걸 그냥 이야기하는 듯이 쓴 시도 보이고, 자신의 가정사인 것처럼 읽히는 주변의 일도 시의 소재로 삼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성복인데, 이게 말이 “여전히”이지 세월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울울창창했던 시절의 감상을 지니고 있기가 쉽지 않은 법. 첫 번째 실린 시 <1 여기가 어디냐고>를 읽어보자.



  붉은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피 흘려 하늘 적시고,
  톱날 같은 암석 능선에
  뱃바닥을 그으며 꿰맬 생각도 않고
  여기가 어디냐고?
  맨날 와서 피 흘려도 좋으냐고?  (전문)



  척 봐도 저녁노을이다. 붉게 물든 하늘을 본 시인은 그걸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흘린 피라고 노래를 하니 참, 이성복이 여전히 이성복인 게 맞지 않은가. 또 10년 전의 시집 《호랑가시나무의 기억》을 기억하는 독자한테 조금은 뻔뻔하게 자신은 호랑가시나무를 본 적이 없다고 고백을 하면서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꽃을, 꽃 속에 숨은 가시를 노래한다. <56 푸른 치마 벗어 깔고>.



  이제 곧 창검처럼 솟은 가시들
  사이로 사뿐사뿐 흰 꽃들
  술래잡기하다가
  지쳐 다리 뻗고 쉬려고 할 거야
  잎새들 그 밑에다
  푸른 치마 벗어 깔고
  꽃들이 떨어질까 애태울 거야
  하지만 쉽게 당하지만
  않을 거야, 너무 가벼워
  가시에 찔리지 않을 흰 꽃들  (전문)



  그리고는 곧바로 이어지는 <57 날마다 상여도 없이>에서 “나는 죽는 꼴 보기 싫어 / 개도 금붕어도 안 키우는데, / 나는 활짝 핀 저 꽃들 싫어 / 저 꽃들 지는 꼴 정말 못 보겠네 / 날마다 부고도 없이 떠나는 꽃들, / 날마다 상여도 없이 떠나가는 꽃들”이라 노래하면서 앞의 시를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시들이 개별적이지 않고 소집합을 이룬다고 한 것.
  이런 단정은 26번째부터 시작하는 일련의 시들에 이르러 모더니즘적 절정을 만들어낸다. 좀 길더라도 인용해보자. <26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잎을 핏물 들게 하는가
  마라, 생각해보라
  비린내 나는 네 살과
  단내 나는 네 숨결 속에서
  내숭 떠는 초록의 눈길을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초록 잎새들이
  배반하는 황톳길에서
  생각해보라, 마라, 어떻게
  네 붉은 댕기가 처음 나타났는지
  그냥 침 한번 삼키듯이
  헛기침 한번 하듯이 네겐
  쉬운 일이었던가 마라,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  (전문)



  처음 이 시를 읽을 때, 3행 “마라, 생각해보라”에서 콱 막혔다. ‘마라’가 뭘까? 시인이 프랑스 언어를 전공했다고 설마 프랑스 혁명 당시 목욕하다가 칼 맞아 죽은 장 폴 마라를 가져다 쓰지는 않았겠지만 혹시 또 몰라. 이런 생각까지 했다. 일단 모르는 것으로 하고 시를 다 읽으니 마지막에 가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마라, 말아라. 금지의 명령어였다. 이성복은 이 금지의 명령을 “생각해보라, 마라”로 두 번, “쉬운 일이었던가 마라,”로 한 번 쓰고 나서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고 마무리한다. 근데 이게 이 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다음 시 <27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에서 시인은 훨씬 더 문제적 “마라”를 다시 등장시킨다.



  마라, 네가 왜 여기에, 어떻게
  가로등 불빛에 떠는 희부연 길 위에,
  기우는 수평선, 기우뚱거리는 하늘 위에
  마라, 네가 어떻게, 왜 여기에,
  대낮처럼 환한 갈치잡이 배 불빛, 불빛에
  아, 내게 남은 사랑이 있다면
  한밤에 네게로 몰려드는 갈치떼,
  갈치떼 은빛 지느러미,
  마라, 네가 왜, 어떻게 여기에  (전문)



  이후 <28 내 몸 전체가 독이라면>에서 다시 “마라, 네 눈 속에 내가 뛴다 / 내 다리를 묶어다오 / … (중략)… / 넌 믿겠니, 나를 믿지 마라”라고 하며 다시 <29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에서도 “(전략) / 마라, 나는 너의 허리를 감는다 / … (중략)… / 지상에서 가장 / 낮은 하늘 네 눈동자 속으로 / 빨려드는 것이다 마라, (후략)”를 거쳐 30, 31번째 시까지 등장한다. “마라”가 내가 이 시집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했던 것. 시집을 다 읽으면 마지막으로 시인 강정의 해설이 나온다. 근데 해설의 제목 자체가 “오, ‘마라’가 없었으면 없었을……”이다. 해설을 읽지 않아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의 해설의 제목이 이렇게 뜨니까 속으로 은근히 기분이 좋다. 근데 뭐 ‘마라’ 하면 ‘말아라’ 라고 하는 뜻이며, 무엇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는 시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좀 쉽게 쓰면 안 될까? 안될 턱이 없다. 시를 읽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다 독자 마음이니까.
  이성복. 이제 이이도 어느덧 일흔 살을 눈앞에 두었구나. 이젠 어떤 노래를 할까, 궁금하다. 언제나처럼 참 세월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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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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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북아일랜드의 특정시점. 주인공 화자 ‘나’는 열여덟 살의 어린 숙녀. ‘어린 숙녀’라고 하는 건 2010년대의 시각이고 당시 북아일랜드에서는 소위 ‘노처녀’ 단계로 접어들기 바로 전, 즉 결혼적령기의 여성이었다. 보통 아이를 열 명 정도 출산하던 북아일랜드에서 열 명을 출산하기 위해서는 스무 살 전부터 끊임없이 임신, 출산, 수유의 사이클을 돌아야 했을 터. ‘나’의 엄마 역시 ‘나’에게 가능한 빠른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며 끊임없이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를 좋은 남편으로 거론해 ‘나’를 귀찮게 한다.
  ‘나’는 길을 걸으며 20세기 이전에 쓰인 문학작품을 읽는 것하고 조깅이 아니라 러닝 수준의 달리기를 좋아하고, 주 3회 정도 관계를 갖지만 아직은 정식 애인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아쉬운 듯한 ‘어쩌면-남자친구’를 어쩌면-사랑하고 있다. 물론 북아일랜드에서 뿐만 이겠느냐만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영혼의 파트너와 맺어지지 않거나 못하면서 삶에 관해 ‘망했고’, 대신 허겁지겁 대용품 또는 대리 인간과 결혼해버리는 것으로 길고, 길고, 긴 판단착오 속에서 열 남매를 임신, 출산, 수유, 육아의 사이클에 파묻혔다. 오래 사귄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는 ‘나’의 큰언니가 딱 이 케이스인줄 알았는데 책의 진도를 더해 가면 ‘나’의 곳곳에서 이런 사람을 발굴해 낼 수 있다.
  여기에 1970년대 북아일랜드라는 정치문제가 개입한다. 1969년부터 1991년까지 북아일랜드에서는 약 2천 명의 시민을 포함해 경찰, 군인 2,911 명이 사망하는 국제적 테러리즘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일찍이 민주주의를 발아시킨 영국령에서, 놀랍게도, 종교 때문에, 그것도 알고 보면 교회에서 면죄부를 팔아먹는 행위에 빡친 마르틴 루터가 등장하기 전인 16세기까지 같은 종교였던 두 분파의 싸움 때문에 테러를 해 구조물이 파괴되고, 사람이 다치고 죽는 일이 벌어진 것.
  가톨릭 쪽의 테러리스트 단체의 수뇌로, 해당지역에서 가히 대단한 위세를 떨쳤던 ‘밀크맨’이라 불린 마흔한 살 중년의 남자가 첫 페이지부터 등장해 이 책을 큰 범위에서 정치소설로 분류하게 만든다. 41세가 중년? 그렇다. 다시 말 하건데 시대가 1970년대다. 당시 벨파스트 지역은 거의 전쟁에 준하는 국제적 위험지역으로 꼽혔다.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테러리즘이 일상이 되면 남자들은 언제 어디서 생명을 차압당하게 될지 모르고, 여성들은 성폭력의 실제적 위협에 맞닥뜨리게 된다.
  책 <밀크맨>의 설정 자체가 책 속에서 자주 언급이 되는 상도常道 또는 상궤常軌에서 벗어난다. 여태까지 경험한 일반적 시각에서는 주로 피해자나 약자의 입장이, 비록 애초부터 정의와는 거리가 먼 테러리즘 조직이기는 하지만 조금이나마 정의와 비슷한 자리를 즐기는데, 로마 가톨릭 입장에서 물 건너 세력에 반대하는 대항군의 수뇌인 밀크맨이 열여덟 살 주인공 ‘나’에게 접근하는 것. 마흔한 살 유부남이 열여덟 살 아가씨한테, 그것도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독립군 대장이 말이지. 여기에 심지어 수하들을 완전히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해 ‘나’를 스토킹하는 수준에 이르니 말 다했다.
  어차피 사람들에겐 비겁한 속성이 있으니까, 밀크맨의 위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으로 완고한 주민들은 ‘나’의 상도에서 벗어난 행위, 길을 걸어가며 <아이반호>를 읽는 행위를 속으로는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밀크맨 때문에 내놓고 비난하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사회를 내리 덮는 밀크맨의 보이지 않는 그늘. 그러다가 정부군 암살자가 쏜 총탄을 맞고 밀크맨이 죽어버리자마자, 바로 그날 밤, 동네에서 가장 좋은 술집의 여자 화장실에 불쑥 처 들어온 누군지 뻔히 아는 복면의 아무개의 아들이 권총의 총구로 ‘나’의 젖가슴을 푹 쑤시면서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저항하는 ‘나’의 눈 주변을 권총으로 후려갈기고, 개별 화장실에서 나온 여자들한테 죽도록 얻어터진다.
  모든, 아니면 적어도 ‘많은’ 상식적 배려의 기준이 한 가족 가운데 얼마나 많은 가족 구성원이 테러리즘에 희생당했는가 하는 것으로 정해지는 시대. 노년, 그러니까 50세 이상으로 접어든 여인들의 새 사랑을 결정하는 것도 어느 여자가 더 많은 가족을 희생시켰는지, 라는 집단적 기준으로 정해질 정도의 정치적 군사적, 혹은 공포시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삶이라니.
  1970년대에서 바라본 북아일랜드의 앞날은 어떨까. 많은 문학적 컨텐츠에서 미래를 대변하는 것은 아이들. 소수의 남자 아이들과 대다수의 여자 아이들에게 선풍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일찍이 ‘나’의 어쩌면-남자친구를 비롯해 여러 어린 자식들을 그냥 그대로 방치한 채, 큰 아이들아 아직 덜 자란 동생들은 너희들이 대신 키워주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부모. 이들은 평생 스팽글이 달린 화려한 의상을 입고 리우데자네이루로 날아가 세계적인 댄서가 된 부부. 아이들은 너도 나도 언니의 옷 가운데 가장 화려한 드레스를 훔쳐 입고, 턱없이 큰 하이힐을 신어 자꾸 넘어지면서도 다시 돌아온 이들을 흉내내 흥겹게 왈츠를 추러 거리로 나선다.
  1970년대의 어느 날, 공포는 사라진다. 밀크맨이 죽고 잘생긴 진짜 밀크맨, 우유 배달부가 몇 십 년 만에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로 결심하면서 북아일랜드의 흔하디 흔한 과부들이 사랑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애나 번스는 이렇게 선언한다. 결국 해결은 사랑, 특히 여성의 사랑이며, 아이들의 즐거움이라고. 여성의 사랑이 땅 속에서 세상 밖으로 고개를 디밀자 정치와 폭력이 사라지는 거였다. 그래, 결국은 권력이 문제고 사랑이 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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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26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거를 수 없는 ‘창피‘ 책이네요! ㅎㅎㅎㅎ

Falstaff 2020-05-26 09:40   좋아요 0 | URL
아 그렇다니까요. 그래 더 밉지요. ㅋㅋㅋ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
제스민 워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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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인 모양인데 처음 읽었다. 1977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태어나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시시피 주 더리즐DeLisle로 이주해 공립학교 흑인 반에 다니다가 똑똑한 ‘흑인 여자’ 아이들이 대개 그렇다고 하는 것처럼 반에서 따돌림을 당해 사립학교를 거쳐 스탠포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라고 Wikipedia에 씌어 있다. 워드의 부모가 미친 모양이다. 그나마 미국에서 흑백 갈등이 다른 곳보다는 덜 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지랄맞은 주 가운데 하나인 미시시피로 이사해 가다니 말이지. 놀랍게도 이이가 사립학교로 전학할 수 있었던 건 백인들의 도움 덕분이라고 한다.

  그래도 워드의 정체성은 여지없이 흑인이라 이 책 <묻히지 못한 자들의 노래>에서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백인은 늙은 여인 메기, 딱 한 명만 등장한다. 나머지는 주인공 조조의 생부이며 범죄자인 마이클, 태생적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전직 보안관인 빅조지프, 메기의 친구이지만 현재는 싸구려 술집 ‘콜드 드링크’의 여주인 글로리아, 콜드 드링크의 마약중독 상태인 여급 미스티, 미스티의 남자친구이며 지금은 악명 높은 미시시피의 파치먼 교도소에 마이클과 함께 복역 중인 비숍, 이들의 변호사이자 미스티와 사이좋게 마약을 복용하는 알, 사냥 실력이 자기보다 좋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열 받아 흑인 청년 기븐의 목과 가슴에 사냥총을 쏴 죽이는 마이클의 사촌 등등.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소설이 펼쳐지는 장소가 미시시피 주인 것과 함께 흑인 소설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근데 제스민 워드가 쓴 이 소설책이 ‘전미도서상 National Book Award'를 받았으며, 무려 하버드를 나온 전 미국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2017에 자신이 읽은 가장 훌륭한 책으로 꼽았다고 한다. 그냥 전미도서상, 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미국의 작가-출판사 시스템이 만들어낸 숱한 책 가운데 딱 한 권을 골라 주는 상으로, 영화로 말하자면 아카데미상처럼 다분히 로컬적이기는 하나 꽤 권위가 있다. 요샌 미국 밖의 작품에도 상을 주는 모양이다. 적어도 이 상을 타려면 위에서 나열한 등장인물이 흑인 차별이란 주제를 향해 평면적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제스민 워드는 그리하여 미시시피 주에서 가끔 엮어졌던 커플인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부부를 등장시킨다.
  완고한 인종주의자 빅조지프는 아내 메기와의 사이에 마이클을 낳고, 흑인들이 많이 사는 실제 지명인 부아 소바주에서 필로멘과 리버 레드 부부는 리버가 쉰 살에 아들 기븐, 삼 년 후 딸 레오니를 낳는다. 리버에게는 스태그라는 이름의 형이 있는데 너무 잘생긴 흑인이라 하루는 술집에서 백인과 시비가 붙어 먼저 백인이 스태그의 두개골을 이용해 위스키 병을 깨부쉈고, 두개골과 두개골을 감싼 피부에 격한 통증을 느낀 스태그는 문제의 백인 옆구리를 칼로 찌르고 리버한테 도망치는 바람에, 스태그는 폭행죄로 길게, 당시 열다섯 살 먹은 리버는 범인은닉죄로 5년 형을 받아 파치먼에 입소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리버는 동물의 말을 알아들어 탈주범 체포 목적으로 키우는 개를 사육하는 일을 하면서, 천성이 착해 절도죄로 3년형을 받고 살벌한 파치먼에 들어온 열두 살짜리 리치라는 소년범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 했으며, 세상이라는 것이 참, 몇 십 년이 흘러 소년이었던 리치가 우여곡절 끝에 리버를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출소 후 결혼을 하고 무려 쉰 살에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귀한 자식이었는지, 마치 신에게서 받은 듯하다고 이름마저 ‘기븐Given'이라고 지어준 잘 생기고, 몸 튼튼하고 특별히 미식축구를 잘해서 대학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받는 청년은, 위에서 말한 사냥 사건 때 보안관 빅조지프의 조카에 의하여 총에 맞아 세상을 뜨는 불운을 당한다. 보안관은 단순 사고로 처리하여 법원은 범인을 파치먼 3년 형에 처하는데 단, 형의 집행을 2년간 유예하는 판결을 얻어내 이를 창피하게 생각하는 범인의 사촌 마이클이, 처음에는 우연히 나중엔 진짜로 사랑해서 레오니와 연애관계에 들어가고,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직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레오니로부터 아들 조조를 만든다. 그리고 한 십 년 후, 딸을 하나 더 보태 이름을 미카엘라라고 짓는다.
  그러나 온 몸에 문신투성이인 마이클과 레오니는 기본적으로 부성, 모성을 상실한 성격으로 태어났다. 이들이 꼭 나빠서가 아니라 생겨먹기를 사랑은 하지만 자신들의 욕구, 이기심이라고 하기엔 좀 야박스런 면이 있는 그런 성향으로 인해 새끼들을 외조부모에게 맡겨놓고 거의 나 몰라라 하고 살았다. 그래 조조와 ‘케일라’라고 부르는 미카엘라는 외조부모를 아빠, 엄마라고 부르고 친부모에게는 마이클, 레오니라 그냥 이름으로 부르니 족보 하나는 가히 바둑이 족보다. 친가는 한 술 더 떠서 철저한 인종주의자 빅조지프는 애를 둘이나 낳은 며느리가 자기 집 근처에 오는 걸 보고 엽총부터 챙겨서 득달같이 달려오는 모양이 너무 공포스러워 며느리로 하여금 꽁무니를 빼게 만들 정로라 더 할 말이 없다.
  자,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엔 더 없이 개차반이 두 가정을 보고 있다. 빅조지프가 이끄는 백인 가족과 리버의 흑인 가족. 이 가족들이 화합, 아니면 화해,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서로 이해는 하겠지? 그래야 소설이니까. 그러나 아니다. 이 책은 흑인과 백인의 상호 이해나 화해 또는 화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혼혈의 배치부터 그렇다. 남부 골통 미국인들이 그나마 인정해주는 커플이 흑인여자-백인남자 부부. 반대일 경우를 미시시피 백인 촌놈들은 눈뜨고 그 꼴을 못 본다. 책의 주제가 인종 간 이해, 화해, 화합이라면 극단적으로 백인여자-흑인남자 커플을 등장시키고 갖은 고생 끝에 이웃, 지역사회의 인정을 얻어내는 해피엔드로 만들었기 십상이다. 워드는 책을 통해 과거에 행해졌던 흑인을 향한 가혹함이 현재에도 유효함을 설명함과 동시에 흑인들이 겪었던 슬픔과 겪고 있는 아픔의 해원을 위해 책을 썼다고 봐야 하겠다. 물론 어떤 식으로 해원의 한 판 굿을 벌였는지는 얘기하지 않겠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독후감은 이쯤에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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