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창비시선 369
권혁웅 지음 / 창비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시집의 앞날개를 보면 시인의 약력이 나온다.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97년에 등단해 시집 네 권을 내서 이번이 적어도 다섯 번째고, 미당문학상, 이상화시인상, 현대시학작품상 등을 탔단다. 한 마디로 67년생이니 시집이 나온 2013년엔 마흔일곱 살의 잘 나가는 중견시인이었을 거다. 그새 또 6년이 흘렀고 시집 몇 권을 더 냈는지도 모른다. 소위 586세대지만 중앙일보가 욕먹을 각오를 하고 만든 미당문학상을 2012년에 받은 걸로 보아 적극적 진보는 아닌 거 같다. 상금이 어마어마했겠지 뭐. 그가 비록 고려대학과 같은 학교 대학원까지 졸업을 했다 해도, 시인이 가난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니 이해심 넓은 독자가 양해해주겠다.
 미당문학상 상금이 무려 3천만 원. 흠. 그걸 1회 수상자로 선정된 오규원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거지? 오규원은 당시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있었으니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입장이었을 거다. 권혁웅과는 다른 처지였겠지. 그래 권혁웅은 시집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의 첫 번째 시로 <호구(糊口)> 즉, ‘입에 풀칠을 한다는 뜻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감을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을 골랐다.


 조바심이 입술에 침을 바른다
 입을 봉해서, 입술 채로, 그대에게 배달하고 싶다는 거다
 목 아래가 다 추신이라는 거다  (전문)


 제목과 별개로 언뜻 읽으면 (내가 변태라서 그런지 몰라도)사랑을 노래한 시라고도 읽힌다. 근데 제목과 엮어서 읽으면 오리무중이다. 첫 단어 ‘조바심’이 어떤 조바심일까. 제목과 어울리려면 어디선가 누구로부터 돈을 받을 건수가 생길 것 같은 조바심, 또는 너무도 배가 고픈 몸의 기다림이라고 읽을 수 있겠고, 내 주장처럼 이게 연애시라면 당신에 대한 갈증으로부터 시작하는 조바심일 터인데, 에잇, 여기까지 온 것, 호구, 겨우 끼니를 이어가는 상태라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게 어찌 밥 먹고 사는 일에 국한을 할까보냐. 그대를 향한 그리움과 욕망과 질투 또한 내 몸을 충분히 채우지 못하는 ‘고픔’의 상태, 그리하여 겨우 입과 몸에 풀칠만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흠. 역시 변탠가 보다. ‘풀칠’이라 말해놓고 보니 또 음침한 생각이 드네 그려. 어쨌거나 이렇게 연애시라고 단정해놓으니 그대에게 보내는 내 목 아래, 말 없는 목 아래의 모든 몸이 저절로 추신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거 참 멋있다. 확실히 시인이 일단 한 번 시를 썼다 하면, 그건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 마음대로가 돼버린다. 그게 시와 시인의 팔자지 뭐.
 시집을 읽어보면 얼마나 먹는 것에 관해 많은 시를 올려놨는지, 그래서 첫 번째 시로 <호구>를 등장시켰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첫 번째로 시인이 배가 고프다는 얘기를 해놓고 다음부터 숱한 음식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나열을 해볼까?
 신의주찹쌀순대, 의정부부대찌개, 춘천닭갈비, 연포탕, 청국장, 조마루감자탕, 김밥(천국), 오징어, 24시 양평해장국, 우동, 상추와 삼겹살, 조개구이, 고려삼계탕, 라면, 칼국수, (담배꽁초가 든)짬뽕 까지, 온갖 먹을거리가 시집을 관통한다. 물론 시인이 거론한 모든 음식들이 다 나름대로 사연이 있고 생로병사가 있고, 가학과 피학이 있고, 궁기와 포만이 있고, 먹고 사는 애달픔이 있다. 그 외에도 시의 무대는 노인들 십 원짜리 고스톱 치는 아파트 경로당, 도봉근린공원, 주부노래교실, 천변체조교실, 금영노래방, 불가마, CGV 등을 망라한다. 이렇게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소를 시의 소재로 찾은 권혁웅은 굳이 이런 ‘시설’이 아니더라도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 /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 저 감감함 혹은 편안함 /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 무슨 맛이었을까?” 하고 한 때는 흔하게 볼 수 있었으나 요즘엔 여간해 보기 힘든 한 가장의 장면을 포착하면서 이 가장은 “다시 직립 인간이 되지는 않겠다는 듯이 / 부장 앞에서 목이 굽은 인간으로 다시 진화하지 않겠다는 듯”한 봄밤이 거느린 슬하, 즉 봄밤의 아들이 되어버린 광경을 그리기도 한다. (<봄밤> 부분)
 이렇게 대부분의 시가 조금은 우중충한 서민의 눈으로 본 세계다. 시인의 아버지는 많이 늙지 않은 나이에 한 방에 훅 가버렸고, 어머니는 무릎이 아픈데다가 오른 팔이 마비가 되어 십 원짜리 고스톱 화투장도 감칠 맛나게 찰싹 후려치지도 못하면서도 아이들한테는 오기는 뭐 하러 오니, 명절 때마다 얼굴이나 보고, 이웃들은 자식들을 키워놓고 보니 그게 범의 새끼였다는 걸 알아챈다. 그렇게 사는 모습의 시편들.
 대개 시집 한 권을 사 읽고 괜찮은 시, 괜찮은? 건방떨지 말고 얘기해서, 내 마음에 드는 시 한 두 편 건지면 본전은 뽑는 거다. 내가 읽은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소개하고 독후감 접는다.




 할머니가 익어간다



 청국장은 고구려 전사의 음식이라고 한다 짚으로 만든 주머니에 콩을 담아 안장 아래 두면 콩이 발효된다 말의 체온은 42도, 달리지 않아도 이미 숨 가쁘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노랗게 굳은 요구르트다 장판 아래로 번지는 파문이다 거기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계신다 자잘한 콩들처럼 바글거리는 어머니……들


 아랫목에서 익어가는 청국장 냄새를 할머니 냄새라 말하지 마라
 저승, 그 미지의 땅을 정복하러 가는 전사의 비상식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 박사의 집
피터 애크로이드 지음, 한기찬 옮김 / 프레스21 / 1998년 11월
평점 :
절판


 

 먼저 독후감을 쓴 <혹스무어>와 마찬가지로 “역사적 타자의 언어를 사용하여 당대의 사건과 인물을 전용(轉用)한” 작품. 이번에 애크로이드가 호출한 사람은 생몰이 1527~1609인 당대 영국 최고 수준의 수학자, 기계공학자, 점성가 또는 천문학자, 마법학자, 연금술사, 역사학자, 생물학자, 해부학자, 신비주의 철학자라 불리던 존 디 박사. 존 디 박사는 실존했던 인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헨리 8세의 딸인 처녀왕 엘리자베스 1세의 자문역을 지냈다. <혹스무어>와 마찬가지로 애크로이드는 이 책에서도 시간과 인물을 무한정으로 왜곡해, 잠깐 딴 생각했다가는 몇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야 할 쉽지 않은 <디 박사의 집>을 썼다.
 작품을 쓴 시기가 1993년. 목차를 보면 하나, 둘, 셋……, 일곱. 이렇게 숫자로 된 장章은 딱 1993년이라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에 즈음하는 현대의 런던이고, “장관”, “서재” 같이 표제가 붙은 장의 무대는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로 읽히는 시간적 공간이다. 현대의 화자는 ‘매튜’라는 이름의 젊은이이며, 과거의 화자는 당연히 디 박사다. 그러니 현대와 과거가 서로 병치해 자신의 주장과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것 역시 <혹스무어>와 대단히 유사하다. 하긴 애크로이드의 관점이 ‘역사의 변형’인 바에야 이런 구성이 최선일 수 있으리라.
 17세기 초반, 디 박사의 말년에 그의 주된 관심사는 두 가지였다. 로마 이전에 벌써 번창하고 있었으나 이젠 폐허가 된 런던과 인조인간의 탄생. 온갖 서적을 뒤지고 탐사를 거친 끝에 로마가 브리타니아를 건설하기 이전에도 후세에 런던이라고 불리게 될 지역 근방에는 자생적 도시가 번성하고 있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인조인간, 당대 최고의 연금술사만이 가지고 있는 비법으로 일반적으로 ‘호문쿨루스’라 일컫는 것. 호문쿨루스를 만들기 위한 비법을 소개한다.
 “생명의 씨앗을 앤트워프산 유리 속에 담아 40일 동안 십자 모양을 한 자석 네 개와 함께 말똥 속에 묻어두는데, 나흘마다 신선한 이슬로 된 유리 속의 물을 갈아주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는 17세기 초에 발간한 백과사전을 뒤지면 대강 방법이 나온다. 그러나 아직도 특허 심사가 진행 중인 디 박사의 나머지 레시피를 조금 더 보자.
 “41일째가 되면 숨을 쉬며 팔다리를 움직일 것이며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테지만, 투명하고 눈이 달려 있지 않다. 이제 그것은 1년 동안 ‘인간의 혈액이라는 비약’을 흡수해야 하며, 그 동안에는 계속 유리 속에 머물러야 한다.”
 즉 유리병 속에서 1년 동안 더 머물며 사람의 피를 비약秘藥으로 섭취한 연후에야 활동이 가능하다는데, 호문쿨루스의 생명은 딱 한 세대, 30년에 한하며, 각자가 같은 방법으로 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단다. 윽. 그러면 혹시 이들 호문쿨루스가 자기 번식을 통해 21세기에도 대를 이어 내려와 사람의 힘으로는 하기 대단히 위험한 일들, 우주탐사나 전쟁수행, 생체실험에 동원되고 있는 거 아냐?
 거세게 비가 내리던 날 밤, 디 박사 집의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가 등장한다. 과거에 박사가 스승으로 모신 바 있는 페르난드 그리핀 박사를 사사한 켈리 씨로, 그리핀 박사의 운명의 침상을 지켰으며, 넓게 생각하면 동문수학한 인연이 있는지라 얼른 켈리를 조수로 채용하게 되면서, 디 박사는 어이없게도 흑마법으로 관심의 폭을 넓히게 된다. 물론 흑마법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그것을 이용하여 삼천 년 전의 런던을 발굴하려 하는 것. 켈리는 또한 테니스공만 한 유리구슬을 가지고 있어서, 전력을 다 해 구슬 속을 보고 있으면 몇 가지 형상과 말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것을 디 박사는 삼천 년 전 시대 사람과의 대화로 생각하고 있지만, 시간의 격차 때문일까, 도대체 의미 있는 의사소통은 가능하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켈리 씨가 유리구슬 속에서 분명하게 보고 들은 남자 둘이 있으니 그들은 서로를 메튜와 다니엘이라는 성스러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20세기 말에 디 박사의 집이었던 저택을 상속받은 메튜가 친구이자 아버지의 애인이었던 다니엘을 초청해 집 구경을 하는 모습. 이게 애크로이드의 전형적 문법이다. 시간과 사건이 서로 변형되고 전이시켜 독자의 뇌를 뒤섞어 버리는 일. 역사는 언제나 왜곡될 수밖에 없고 창작 또한 언젠가 있었던 것을 적당히 섞어서 표절하는 행위에 불과하며, 심지어 역사란 것 자체가 바로 지금 이루어지는 것 말고는 없다는 과격한 주장.
 지금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독후감을 쓰면서 현대 시점의 등장인물인 메튜와 그의 부모, 어머니의 애인, 다니엘 등에 관해서는 피하고 있다. 물론 작품의 전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이지만 인심 써서 힌트인지 미낀지 딱 하나만 얘기해드리지. 메튜가 지금 나이 스물아홉. 얘가 혹시 호문쿨루스 아냐? 1년 안에 죽든지 자기 복제를 해야 하는?
 책을 읽는 내내, 숱한 소도구로 등장하는 것이 ‘먼지’. 먼지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궁리했다. 심지어 <혹스무어>에서도 먼지를 묘사하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먼지는 바람 부는 곳에서는 날리기만 하지 쌓이지 않는다. 고요한 상태가 지속되면 표면 위에 쌓이기 시작한다. 끝없이. 몇 천 년이 흐르면 폼페이처럼 한 도시를 지하에 매몰시키기도 하고, 수백 년간 쌓여 3층의 집을 2층으로 만들기도 한다. 즉 시간의 퇴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의 퇴적을 자주 ‘역사’라고 부른다. 우연히 깊은 먼지 속에 살게 된 한 인격은 그의 삶 자체가 한 자리, 집이 있었던 장소의 역사일 수도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혹스무어 - 일곱 교회의 비밀 현대세계문학선 3
피터 애크로이드 지음, 홍덕선 옮김 / 솔출판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읽으려고 책 몇 권을 사면서 가장 염두에 둔 작가가 피터 애크로이드였다. 작년 초에 <플라톤의 반란>을 읽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그 외의 번역물은 전부 절판상태라 포기하고 있다가 기회가 되어 헌책방에서 두 권을 골라 샀다. 피터 애크로이드는, 물론 아직도 창작활동을 하고 있지만 1980~90년대 작가로 보아야겠고, Wikipedia를 검색해보면 런던의 역사와 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둔 작가라고 씌어있다. 케임브리지와 예일에서 영문학을 공부했으나 역사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책의 앞날개에 (‘역사가’라고)적혀있다.
 류춘희는 2011년 부산대 박사학위 논문 《문학적 확산과 역사적 탐색의 메타서사》 3장 1절에서, “일어났어야 하는 일을 일어났음직한 방법으로 글을 쓰는 애크로이드의 저작 능력은 그의 해박한 지식과 공모하여 전기나 역사에 대한 독자의 해석을 치밀하게 교란시킨다.”고 적시한 바 있으며, 이 지적의 특징을 “역사적 타자의 언어를 사용하여 당대의 사건과 인물을 전용(轉用)한” <혹스무어>를 통해 역사의 “탁월한 변형 속에서 실제 역사적 사실의 진위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고 했다. 박사학위 논문이라 쉬운 얘기를 어렵게 하느라 그렇지 내 식대로 풀어 얘기하자면 ‘비틀어버린 과거와 현재 사이의 골치 깨나 아픈 연관성 있는 혼돈’ 정도로 말 할 수 있다. 즉, 읽기가 쉽지는 않다는 의미.
 모두 12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홀수 장은 1711년을 시작으로 실존했던 영국 최고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Sir Christopher Wren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주인공 ‘니콜라스 다이어’가 런던의 동쪽 지역에 일곱 개의 성당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여섯 성당을 완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니콜라스 다이어는 실재로 렌 경의 서기였던 ‘니콜라스 혹스무어’를 모델로 한 것으로 정말로 런던 동쪽 지역의 여섯 성당을 준공한 사람이 바로 니콜라스 혹스무어라고 한다. 소설 속 다이어는 적그리스도, 아니면 상당한 이단 또는 흑마법을 신봉하는 집단의 일원으로 성당을 지으면서 인신공양을 한 것으로 그려진다. 첫 번째 희생은, 성당의 마지막 돌을 지붕에 얹는 영광은 대표 석수장이의 아들이 하는 것이 관례라고 해서 석공의 아들 토머스 힐이 마지막 돌기와(라고 하자)를 가지고 지붕으로 올라가 추락사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짝수 장은 250년여가 흐른 1980년대, 스피털필즈(250년 전에 스피틀 필즈라고 불렸으며 소년 토머스 필이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교회의 지하, 전엔 납골당으로 사용하던 지하실에서 우연히도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년 토머스 필이 목이 졸려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미궁에 빠지는 연쇄살인의 첫 번째 교살 사건. 런던 경찰청에서는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노련한 수사관을 반장으로 배치시키는데, 그의 이름이 ‘니콜라스 혹스무어’, 그래 책의 제목이 <혹스무어>가 되는 것이다. 독자는 제2의 주인공 혹스무어가 등장하자마자 역사와 현실의 미궁에 빠지고 만다. 물론 나도 그랬다. 직접 읽어보면, 니콜라스 다이어의 조수 이름이 월터 파인 Walter Pyne, 니콜라스 혹스무어의 조수 이름이 월터 페인 Walter Payne, 정염의 불꽃을 숨기지 못하는 이웃집 여자 이름 역시 베스트 부인 Mrs. Best와 250년 후 웨스트 부인 Mrs. West, 250년의 차이를 두고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특징도 매우 유사하다.
 1부와 2부의 차이라고는, 거의 같은 인물이랄 수 있는 다이어와 혹스무어가 한 명은 살인범, 다른 한 명은 수사관. 그럼 책의 정체가 뭐냐고? 스릴러나 추리소설? 천만의 말씀이다. <혹스무어>는 말할 것도 없이 포스트 모던으로 불리어야 하며, 분명한 사실을 허구로 만들어버리고 이에 따른 실체와 음영효과, 비록 어느 것이 실체고 어느 것이 그림자인줄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겠지만 무한한 평행의 비의를 담는 ‘역사적 변형의 담론’이라 할 것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 외에도 17세기 말 런던을 뒤덮었던 전염병의 참상과 대화재로 인한 폐허, 비교 의식 등도 흥미를 더한다.
 왜 이 책을 절판시켰는지, 다른 출판사에서라도 다시 낼 의향은 없는지 참 아까운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그만 입술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0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책세상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마누엘 푸익은 여태 <거미여인의 키스>와 <천사의 음부> 이렇게 두 권을 읽었을 뿐이다. <천사의 음부>는 읽은 때가 꽤 되는지 독후감 써 놓은 것이 없다. 그 책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어쨌든 내 경우에, 푸익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다른 이의 작품을 읽을 때보다 더욱 집중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 책 <조그만 입술>은 가상의 아르헨티나 소도시 코로넬 바예호스에서 출판한 월간지 <우리 이웃>의 1947년 4월호에 실린 ‘후안 카를로스 에체파레’의 부고 기사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애 둘 달린 유부녀 ‘넬리다’, 애칭 ‘네네’가 읽고, 옛 시절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의 죽음을 가족과 함께 애도하기 위해 고인 후안 카를로스의 어머니 레오노르 살디바르 데 에체파레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여튼 스페인, 라틴 아메리카 소설들 읽을 때는 이 길고 긴, 그리고 동양인의 눈으로는 서로 비슷하기까지 한 이름 기억하는 것이 문제다. 러시아 소설도 그런 면이 있지만 그거야 이름, 부칭, 성, 이렇게 세 번만 기억하면 되는데, 라틴 계열 작품에서 이름 쓸 때 띄어쓰기 열 번 하는 것도 봤으니 절로 고개를 흔들 수밖에.
 하여간,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여자가 첫사랑이었던 남자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해서, 자신에 대하여 극히 좋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집안의 안주인에게,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자면, 아들 후안 카를로스가 분별없는 자기와의 데이트를 하느라 감기에 걸렸고, 폐렴으로 번졌으며, 결핵으로까지 발전해 드디어 숟가락 놨다고 굳세게 오해하고 있는 고인의 어머니에게, 새삼스레 자기 일생에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가 지금 남편이자 두 아들의 아버지가 아니라 당신의 잘 생긴 아들 후안 카를로스였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기는 한 것인가, 아니면 적어도 서양인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생각하면 이게 미풍양속인가, 나는 모르겠다. 인간은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의 교통사고를 낸다. 자동차가 굴러다니며 부딪거나 뒤집어지거나, 다리를 건너다 난간 너머로 다이빙을 한다는 뜻이 아니고, 인간관계, 즉 인간의 소통에서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사고가 생긴다는 뜻. 물론 내 개똥철학이다. 두 아이의 엄마로 죽은 이의 엄마한테 편지를 써서 소설을 시작하게 만든 넬리다가 예전에 후안 카를로스와 서로 애가 타게 사랑을 하면서도, 처녀도 아니었던 주제에(시대가 1930년대임을 감안해서 읽어주시라) 한 번 허락했으면 됐을 것을, 후안으로 하여금 갈증에 몸이 타게 만들어 자신과 헤어진 후에 다른 과부를 찾아 날이 밝을 때까지 정염의 불을 끄게 하는 바람에 귀한 집 외동아들한테 겨울바람을 자정부터 새벽까지 맞아 감기, 폐렴, 폐결핵까지 진행시키게 만든 것이 후안과의 첫 번째 교통사고라 하면, 십여 년이 흐른 후 후안이 결국 결핵으로 인해 숨이 넘어갔다는 부고를 읽고 편지, 글을 써서 고인의 어머니한테 과거의 사랑과 현재의 못생기고 역겹고 추한 남편에 관해 조잘거리기 시작한 것이 두 번째 교통사고다. 그까짓 편지 때문에? 그렇다. 넬리다는 Littera Scripta Manet의 뜻을 새겼어야 한다. 글로 쓴 건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언제 어느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도 증거자료로 제출될 수 있는 지울 수 없는 자국임을, 넬리다는 깜박 했던 것.
 넬리다, 네네가 편지를 씀으로 해서, 소설은 급전직하 1930년대로 넘어간다. 같은 장소의 10여 년 전에는 세 명의 발랄한 아가씨가 등장하니 넬리다와, 후안 카를로스의 누나인 셀리나, 셀리나의 친구 마벨. 서양에서는 봄이 시작할 때쯤에 장대를 높이 세우고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봄의 축제를 하는 관습이 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봄을 시작하는 9월에 봄의 여왕을 선출했던 모양인데, 대개 클럽에 소속된 괜찮은 집안의 영양들 가운데 뽑았던 거 같다. 그래 좋은 집안으로 불리고 당연히 클럽에 가입한 셀리나와 마벨 가운데 한 명, 꼭 집어서 얘기하자면 마벨이 당연히 봄의 여왕 왕관을 쓸 줄 알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셀리나와 마벨의 소개로 가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넬리다가 감히 여왕으로 선출된 거였다. 마벨은 교사 자격증이 있는 매력적인 아가씨고, 네네는 잡화점의 계산원 신분에 불과하거늘. 이리하여 마벨과 셀리나는 자연스럽게 네네를 따돌리기 시작했고, 후안은 네네와 연애를 하면서, 줄 듯 말 듯, 애간장만 태우다 덜커덕 폐병에 걸려버려 짝사랑하던 마벨은 물론이고 서로 사랑하던 네네마저도 아버지가 절대 결혼 불가를 외침으로써, 중개인을 만나 결혼을 해 거처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옮겨버린다. 이러니 이 세 아가씨 사이가 온전할 수 있겠어?
 이런 와중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과 지역에 별의 별 사건이 다 터지고, 그것이 배경처럼 깔리면서 작품은 더 복잡하게 얽히는데, 내용은 별개로 하고, 소설의 시점, 발언하는 주체가 수시로 바뀌면서, 이젠 읽는 일에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즈음이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절명의, 그러나 언젠가 한 시절엔 복음처럼 외우고 있지 않으면 엄청나게 얻어터지던 경구, 졸면 죽는다, 잠깐의 해이함도 허락하지 않는 독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300쪽을 조금 넘는 적절한, 약간 짧은 듯한 느낌이 드는 장편소설로, 거창하지 않지만 재미있고 생각할 만한 작품이다. 출판사 책세상의 세계문학 시리즈는 가격이 착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니 여러 생각할 필요 없이 냉큼 사 읽어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9-11-22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푸익에 빠져서 그의 책을 읽던 시절 생각
이 나네요.

거미여인은 영화가 소설보다 나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조그만 입술>도 중고서점에 있기에 냉큼 사서
읽기는 시작했는데 결국 못 다 읽은 기억이...

찾아서 다시 읽어야지 싶습니다.

Falstaff 2019-11-22 09:14   좋아요 1 | URL
ㅎㅎ 본문에 쓴 것처럼, 이 책 읽다가, 졸면 죽습니다.
거미여인 영화는 못 봐서요. 한 번 뒤져야겠네요.
 
아스카와 늑대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연극과인간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 “연극과 인간”은 주로 희곡을 출간하는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잘 찾지 않지만 정말 좋은 작가, 라고 내가 생각하는 보스니아 사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소설집을 냈다. 2016년에 그해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공감하며 읽은 책으로 안드리치가 쓴 <드리나 강의 다리>를 꼽은 적이 있다. 2017년에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 작년엔 김태정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 중순, 올해도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라고 썼는데, 왜 이야기가 난데없이 삼천포 시로 빠졌을까. 그래, <드리나 강의 다리>. 이 책을 번역한 이가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어를 가르치고 있는 수석연구원이라고 하는 김지향. <아스카와 늑대>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빨간 인주 묻힌 인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 예쁘장한 한자어로 ‘金志香印’이라 박혀있다. 내가 비록 이이가 번역한 <드리나 강의 다리>를 2016년에 읽은 최고의 한 권으로 뽑은 적이 있지만, 안드리치의 다른 책 <저주받은 안뜰> 독후감에서는 번역한 한국어 문장의 질에 관해 아주 모질게 독설을 펼친 바 있어, 사실 이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아스카와 늑대>를 읽은 감상을 쓰기가 좀 캥기기는 한다.
 《아스카와 늑대》는 작가가 쓴 서문 격인 <어떻게 내가 문학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제외하면 단편소설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 우리가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들 역시 매력적이다. 특히 첫 두 작품 <파노라마>와 <서커스>를 매우 좋게 읽었다. 두 작품의 구조는 비슷하다. <파노라마>에서는 어렸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은 시장통 마당에 자그마한 가두 상점을 빌려 오스트리아 사람이 파노라마,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대형 만화경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경거리를 열었고 소년 시절에 이국의 정경들을 보며 무한대, 소년 특유의 무한정의 상상력을 펼쳤던 것을 기억하며, 어느 새 순식간에 이제 나이 들어 당시의 감정을 회상하는 작품이고, <서커스> 역시 어린 시절 시장 공터에 서커스단이 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는데 워낙 어려서 부모가 자신을 데려가줄지 아닐지, 아닐 것이 분명해 울음을 터뜨리기 바로 직전에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으며, 난생처음 서커스, 기묘하고 긴박하고 긴장되는 공연에 자지러지다가 또한 갑자기 수십 년이 흘러 당시 서커스단의 단장을 만나는 시간의 전이가 벌어진다. 글쎄, 요즘 젊은 분들이 파노라마와 서커스 구경, 그것도 옛 시절의 (파노라마는 분명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서커스를 봤을지 확실하지 않아 이 이야기에 공감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노년의 작가가 소년시절을 떠올려 상상해가며 차분하게 쓴 단편소설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다섯 편의 단편들도 다른 외국 소설가들의 단편들에 비해 더 친근하게 느꼈지만 그것들에 비해 <파노라마>와 <서커스>에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격도 착해서 10% 할인 가격이 6,650원이다. 단편 한 작품에 천 원 미만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나 요새 유행하는 가격대비 성능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거 같다.

 


 

*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19-11-21 1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작가를 또 알게 되었습니다. 19년 폴스타프님의 결산 기대하고 있습니다.🤗

Falstaff 2019-11-21 12:36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아직 40일 남았으니 좀 더 읽고 생각해봐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