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보니것, 1922년생 독일계 미국인인데, 초년 중년 말년 두루 걸쳐 당대를 함께 지내온 인류  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사주를 받고 태어났다. 30년대 말에 대학에 진학해 생화학을 전공하다 성적도 좋지 않고 대학신문에 (전쟁 중에) 평화주의에 관한 글을 게재해 반강제로 학교를 때려치우고 입대, 유럽전선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는 곧바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드레스덴 교외에 끌려가 1945년 2월 13일에서 15일까지 엘베강의 피렌체라 불리는 드레스덴에서 2만 5천 명을 희생시킨 고폭탄과 소이탄의 세례를 고스란히 경험한다. (보니것을 소개한 모든 책에선 13만 명의 희생자 운운하지만 2만 5천이 현재까지 공식적인 희생자 수다.) 이것을 기점으로 해, 모르긴 몰라도 이이가 평생을 걸쳐 지녀야 할 디스토피아의 미래, 파괴를 향한 인간본성, 지구멸망 같은 것들에 관한 비관적 세계관을 품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거나 1940년대 초반까지 대학에 다녔고, 전쟁 중 정신적 내상은 다음으로 하고 어쨌든 신체적 부상도 입지 않았으며, 제대한 다음에 다시 복학과 포기를 한 후 10년가량 고생한 다음 작가로 유명세를 탔으니 인생이 이 정도면 장땡이지 뭘 더 바라나. 그러나 <제5 도살장>, <고양이 요람>, 단편집 《세상이 잠든 동안》에 이어 <갈라파고스>까지 읽어본 결과 드레스덴 폭격으로 인한 그의 정신적 내상이 상당히 깊은 것 같았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들 아시다시피 1835년 비글호를 타고 도착한 다윈에게 깊은 영감을 준 적도 위의 작은 화산섬들. 보니것의 의문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바다/육지 이구아나, 육지 거북, 핀치 새들이 어떻게 대륙에서 1,000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적도 상에 있으면서도 남극 한류가 흐르는 태평양을 건너 그곳에 살게 됐는지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생물체가 지구의 오지로 흘러갔다면 인간 역시 갈라파고스의 생물처럼 제도 가운데 한 섬에 정착해 독특한 과정으로 진화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며, 소설의 무대인 1986년에 새로운 인류의 아담과 이브들이 오지에 고립되기 위해서는 극도로 발달한 인류문명이 이들을 찾아낼 생각을 하지 못해야 하니 반드시 이들을 제외한 인류는 멸망을 했어야 하리라.
  그러니까 조건은 둘이다. 소규모의 인류가 갈라파고스에 도착을 해서 다시 섬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 것. 인류가 멸망을 할 것. 커트 보니것이 이 두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시하는 것들이 대단히 이색적이었다. 이이가 63세에 출간한 소설. 갈라파고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 에콰도르에 속한 섬이다. 보니것은 1980년대 초중반을 휩쓸었던 라틴 아메리카의 외환위기, 이에 따른 가난한 에콰도르 시민들의 폭동과 약탈 때문에 갈라파고스 자연탐사를 위한 호텔과 호화 유람선이 약탈을 당해, 1831년 12월 27일 세계일주 항해를 시작한 영국군함 비글호보다도 편의장치나 항해 보조기구도 없이 도망치듯 갈라파고스로 향했고, 도착해 엔진의 시동을 끄자마자 엔진은 그것으로 생명을 끝내는 것으로 만들었다. 레이건과 대처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제삼세계를 빈곤으로 몰아 빵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이들을 바다로 몰아낸 것.
  그러면 인류의 멸망은? 지금 마스크 쓴 채 독후감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쇼킹했다. 유명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생명체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박테리아들은 인간의 난소 안에 침입해 난소 안의 난자를 포식하기 시작해 전 세계로 급속하게 퍼져나간다. 이 박테리아가 침투하면 하루나 이틀 정도 가벼운 미열을 느끼고 소수의 사람들은 며칠간 시력이 좀 흐릿해지는 증상을 느낄 뿐이어서 감염자들은 자신이 감염되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고 불임의 벽에 갇히게 됐다. 솔직히 말해 지금 지구상 인류가 60억. 이 가운데 남자는 한꺼번에 다 죽어버리고 똑똑하고 힘 세고 부랄 큰 수컷 인간 백 명만 남아 인구가 30억 100명으로 줄어도 인류의 유지에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난자를 포식한다면 인류는 한 세대 만에 끝장을 보게 된다. 어떠신가. 진짜 이런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참 놀라운 상상력이다.
  여기에 귀신같이 등장하는 인간 남자였던 화자가 있으니 이름을 ‘레온 트로츠키 트라우트’라고 한다. 1946년생으로 무뚝뚝한 아버지한테 반항하기 위하여 10대 시절에 가출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미 해병대에 입대하는 전통을 만들고 기꺼이 베트남 전쟁, 미국에서 가장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자들이 끝도 없고, 보람도 없고, 몸서리처지고, 결국 무의미하기만 한 전쟁터로 보낸 젊은이들 가운데 한 명이 된다. 현지에서 수류탄을 던져 레온이 가장 좋아하는 동료와 가장 싫어하는 동료를 동시에 폭사시킨 노파를 집중 사격해 죽인 경험이 있다. 이이가 위로 휴가차 태국의 방콕에서 만난 스웨덴 의사의 주선으로 해병대를 탈영해 스웨덴으로 정치적 망명을 감행, 시민권을 따고 스웨덴 말을 배운다. 그래 거대한 도크를 현대조선에 단돈 일 달러에 팔아먹은 조선도시 말뫼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가 갈라파고스 자연탐사 호화 유람선 바이아데다윈 호의 내부 용접을 하다 큰 사고를 당한 이야기꾼.
  여기까지만 이야기해도 커트 보니것이 생각하고 있는 세계관과 반전의식은 짐작을 할 수 있을 터. 이 위에 보니것 특유의 엽기발랄한 상상력과 입담과 사건의 무거움이나 심각함, 생과 사를 가르는 벼랑 위의 다툼과는 무관하게 툭툭 던져버리는 유머까지, 독자로 하여금 책에 눈을 뗄 수가 없게 만든다.
  정확하게 책의 1 퍼센트만 말했다. 조금만 더 하자.
  인류가 멸망할 예정이고, 화산재가 아직 비옥한 토지로 변화하지 못한 황무지, 갈라파고스 제도의 산타로살리오 섬에서 인류가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등장인물은 누구일까. 스포일러가 아닌지 생각해봤다. 아니라고 본다. 작가도 이에 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으니. 에콰도르 시민의 약탈을 피해 갈라파고스로 도망하는 무리 안에는 정말로 우연히 거의 원시야만인 수준인 여섯 명의 인디오 소녀들이 탑승한다. 현대문명에 노출된 도시인만 오지에 떨어졌다면 과연 아무 도구도 없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나는 이 여섯 명의 킨카보노 족 소녀들이 작가도 생각하지 못한 절묘한 배치였다고 생각한다. 이에 관한 인류학을 공부한 분의 의견을 한 번 듣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시절 대산세계문학총서 93
나탈리 사로트 지음, 권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산세계문학총서를 간행하는 문학과지성사는 책을 낼 때 책의 분류를 정확하게 밝히는 미덕을 지녔다. 예를 들면, 시집, 작품집, 단편선, 장편소설, 희곡 선집이라고 책 표지에 딱 박아 놓는다. 그런데 이 책은 예외다. 1983년. 작가가 여든세 살이 되던 해에 출간했다. 책 뒤편에 역자의 해설을 읽어보면, 1979년 인터뷰에서 자신은 자서전을 쓸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으나 4년 후인 1983년에 이 책을 발표할 당시부터 소설, 희곡과 같은 장르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5년에 다시 문고판으로 출간했을 때는 앞표지에 여섯 살 무렵의 작가의 사진을 실어 작품이 작가의 자서전적 성격을 밝힌 바 있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는 문고판 표지에 있던 사진이 아니라 ‘세실리아 보’라는 화가가 그린 <어린 시절의 마지막 날>이란 그림이다.
  나탈리 사로트라고 하면 당연히 누보로망을 떼놓고 생각할 수 없을 듯. 하여 뷔토르, 로브그리예, 유르스나르와 뒤라스의 일부 작품처럼 주관적인 감정의 표현을 극도로 절제하는 형식의 글을 써왔을 것이다. 이 자전적 소설 <어린 시절>에서도 작가는 자신이 쓰는 자신의 자전 소설을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또 하나의 자신을 등장시킨다. 즉 소설가로의 자신과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진실에 가까운지 아닌지를 묻고 확인하기 위한 또 다른 나. 아 두 명의 나가 계속 대화를 해가며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여든세 살의 노인이지만 만일 정신이 멀쩡한 백 세 살의 가까운 생존자가 있었다면 그이를 인터뷰하기 위해 기꺼이 양로원을 방문해 호스피스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을 듯하다.
  작가가 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글을 썼을까. 이이는 좀 복잡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 완전한 20세기 사람으로 1900년에 모스크바 근교 이바노보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태어나 1999년에 임종했다. 작품을 보면 아버지는 딸을 천주교든 개신교든, 러시아 정교든 어떤 형태의 기독교에도 개방적으로 키우면서도 자신은 확실하게 유대인의 정체성을 밝히고 자존심을 잃지 않았다고 한 반면, 어머니도 유대인인지는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유년시절이 복잡한 건 당연히 부모 탓이다. 젖을 떼자마자 부모가 이혼해서 어머니는 러시아, 아버지는 프랑스에 거처를 정하고 각기 새로 결혼을 하는 바람에 하여간 엄마 하나, 어머니 하나, 아빠 하나, 아버지 하나, 이렇게 네 명의 직계가족을 가지게 됐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히 이복동생들도 태어난다.
  여든세 살의 노파가 자기가 기억하기에 가장 오랜 시간부터 중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어린 시절을 쓴다는 것. 그건 그이가 남들과 비교해서 복잡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언젠가는 자신의 옛 시절에 관하여 써야 하는 숙명 비슷한 것을 갖고 있어서가 아닐까. 결과물을 발표하던지 말든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그리하여 자신의 옛 시절은 쓴 결과물은 글쓴이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거 같은데, 문제는 동시대를 살지 않은 독자가 읽을 때 특정인의 과거가 중요한 일이 될 것인가, 과거 속에서 공감할 교집합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아니라면 과거를 회상하는 정서가 마음에 와 닿았는가 하는 것일 수도. 당시엔 부모가 이혼해 구대륙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가며 사는 일이 상당히 특별한 일이었겠지만 이젠 그런 가족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을뿐더러,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20세기 초 부르주아 계급의 한 아이의 추억 또는 스토리가 그리 감격적이지도 않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임에도 모국어인 러시아어와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독일어로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트레이닝을 시킬 수 있는 계급의 영애의 어린 시절이 드라마틱하기도 쉽지 않을 터. 원래의 코스라면 평생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책이나 슬슬 읽다가 연회장을 빛내주는 역할로 일생을 보내야 하겠지. 그러나 누구의 인생도 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의붓어머니와 이복형제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친모와 친부-계모 간의 화해 불가능한 다툼 같은 것 역시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기에 심각하지 않고, 이제 다 늙어 생각하니까 그렇겠거니 하는 거. 나탈리 사로트도 이것을 구태여 숨기지 않는다.
  나도 이 책에 관해서 독후감을 굳이 더 늘리지 않겠다. 그냥 늙은 작가가 자신의 소년기를 회상해서, (그나마)이게 중요한데,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객관적인 기억을 기록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이가 2013년에 캐나다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물이라 하더라도 앞에 읽은 《디어 라이프》와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 별로 동감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 책을 사기까지 나날이 많이 흘렀다. 앞의 두 권을 읽은 감상이 어떻더라, 기억나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거든. 그런데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하지도 못한 고민에 싸인다. 《디어 라이프》와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다시 읽어봐야 하나?
  포크너는 요크나파토파라는 가상의 지역 제퍼슨 시를 작품의 중요한 무대로 점찍고, 김원일은 초기엔 경남 진해 옆, 단감으로 유명한 진영에 빠져 있는 듯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대구로 지역구를 옮긴다. 앨리스 먼로도 사투리를 쓰는 캐나다의 시골을 무대로 하는데 이 책에선 이 가상의 시골 이름이 핸래티라고 했다. 그냥 핸래티는 시골부자들, 상층부를 이루고 있는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부터 주물공장 노동자, 일반 공장 노동자, 짐마차 꾼 등이 살며, 작은 강 건너에 있는 웨스트 핸래티는 일반 공장 노동자, 주물공장 노동자부터 비정규 밀주업자의 대가족, 창녀, 아직 잡혀가지 않은 도둑들이 일가를 이룬다고 하고, 주인공 로즈의 사인4人가족은 웨스트 핸리티에 있다. 아버지가 매운 솜씨로 거의 모든 것을 고쳐주고 저렴하게 청구하는 수리비로 먹고 산다고 했다. 그러니까 주인공 로즈와 그의 의붓어머니 플로, 이복동생 브라이언 앞을 기다리고 있는 건 가난. 부자들이 눈으로 볼 때는 돼지우리 같은, 구멍가게가 딸린 집에 살고 있다.
  책은 거지 소녀, 19세기 영국 화가 번 존스의 그림에 나오는 반투명한 얇은 옷을 입은 가난한 소녀로 아프리카의 코페투아 왕이 그녀를 얻기 위해 왕관마저 던져버릴 수 있는 매력의 소녀를 일컫는데, 이 거지 아가씨beggar maid는 장학금을 받아 진학한 대학에서, 말로는 아버지가 상점 몇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로 말하자면 백화점 체인 소유주의 외아들 패트릭 블래치퍼드가 책의 주인공 로즈를 꼬드기기 위해 한 말이다. 돼지우리는 로즈가 자격지심에 패트릭한테 한 대꾸고.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까 왜 이 책이 참 가슴에 와 닿는지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거지 소녀》는 가난한 집에서 어머니 없이 계모와 엄한 아버지 아래서 자란 로즈라는 이름의 여자 아이가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이혼하고, 다시 사랑하고, 아이 키우고, 일하고, 이별하는, 그러니까 사람 사는 이야기다. 같은 구성원이 열 편의 단편소설 또는 부部에 공동의 체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전형적인 연작장편 소설 형식인데, 단편 전문 작가인 엘리스 먼로가 장편(이라고 볼 수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형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열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책이라고 하고, 내가 앞에 읽은 작가의 다른 단편집에 비하여 훨씬 공감하면서 읽은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첫 번째 작품에서 얻어맞은 펀치가 워낙 세서 감정의 파동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첫 작품의 우리말 제목을 <장엄한 매질>이라 달아놓았다. 원어 제목으로는 “Royal Beating.” 작품의 첫 문장이기도 하고, 아직 로즈의 의붓어머니인줄 모르는 플로가 주인공 로즈에게 하는 말이다. “장엄한 매질을 한 번 당하게 될 거다.” 누구한테? 평소엔 별로 말이 없지만 한 번 열을 받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아버지한테. 로즈는 의붓어머니 플로를 가리켜 절대로 “어머니”나 “의붓어머니”, “계모” 등으로 호칭하지 않고 그냥 이름을 부른다.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와 계모, 계모와 불화하는 딸의 트라이앵글에 관한 무수한 공포물 시리즈가 너무도 확고하게 머리에 박혀있기 때문에, 나만 그랬는지 몰라도 독자는 이들 사이의 비극과 돌이킬 수 없는 경원을 생각할지 모른다. 플로도 그렇겠지. 자신의 배로 낳은 아들 브라이언보다 로즈에게 더 애정이 가기는 쉽지 않겠지. 하지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면 독자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왜?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런 거니까. 더함도 뺌도 없이 앨리슨 먼로가 사는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았으니까.
  내가 여간해서 외국어로 쓰인 단편소설을 번역한 책을 읽고 감동하지 않는 것은, 장편과 달리 문장 하나하나가 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잘 세공된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선입관 때문이며, 그런 감동은 번역문을 통해서 얻기가 힘들 것이란 지레짐작으로 에스컬레이팅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번역시는 전혀 읽지 않고, 단편소설은 아주 조심해 선택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거지 소녀》에서, 먼로가 툭툭 던지는 무심한 듯한 문장들이 한 소녀, 청소년, 청년, 혼인적령기의 여인, 권태기의 주부, 남의 남자를 사랑하는 이혼녀, 옛 사랑의 사연을 전해 듣는 폐경기 중년까지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 로즈의 그의 의붓어머니 플로의 한 생애를 담담하게 공감하면서 담채화를 구경하듯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1931년생이면 현대 여성이니 당연히 여성주의적 발언도 도처에 깔려있다. 그렇다고 페미니즘을 웅변하는 것도 아니면서 독자로 하여금 만일 여성이 아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처음 두 편의 작품에서는 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이 등장한다. <장엄한 매질>에서는 베키 타이드라는 이름의 머리가 크고 목소리가 요란한 난쟁이. 베키의 아버지 타이드 씨는 웨스트 핸리티에서 가장 큰 푸줏간을 운영하는 돈 많은 푸주한으로 자기 딸, 아들을 폭행할 뿐만 아니라 난쟁이 딸을 성폭행해 임신시켰다는 터무니없이 악의적인 풍문이 돌아 세 명의 악당에게 집 앞 정원에서 린치를 당해 토론토까지 열차를 타고 가 객사를 해버린다.
  두 번째 작품 <특권>에선 프래니 맥길이란 아가씨가 등장한다. 아기였을 때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가 아기를 손에 들고 벽에 뭉개버렸다는 얘기도 있고, 술에 취해 경마차에서 떨어졌는데 이때 말이 뒷발로 차버려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는데 어쨌든 뭉개졌으며 그중에서 가장 많이 뭉개진 게 얼굴이라, 코가 삐뚤어져 숨소리가 길고 음울한 훌쩍거림처럼 들리고 이가 심하게 몰려있어 입을 다물지 못해 침을 질질 흘리고 다닌다. 학교에서 아무도 프래니와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를 배고, 어디로 옮겨지고, 다시 돌아와 또 아이를 배고, 또 어디론가 보내지고, 또 돌아와서 아이를 배고, 또 옮겨지는 생활을 반복해, 동네 라이온스 클럽의 비용으로 불임수술을 해주자는 의논이 오갈 즈음 돌연 폐렴에 걸려 한 많은 생을 접는 여자다. 마지막 작품 <넌 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에서 정신박약 남자가 한 명 등장하기는 하지만 처음 두 작품 속 에피소드로 나오는 여성들만큼 임팩트가 강하지는 않다.
  이렇듯 열 개의 단편소설 또는 부chapter가 각기 한 시절의 에피소드 하나 또는 두 개와 당시를 대표하는 갈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하게 그려놓아 한 여자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당연히 작품 속에 작가의 모습이 어느 정도는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작가의 이야기라고는 믿지 않는 것이 현명하리라. 어디까지나 작가는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거의 유일한 직업인이며 앨리스 먼로는 이 책 말고도 캐나다 시골 여자의 비슷한 한 생애를 그린 적이 있으니 말이다.
  단편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5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민음사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이 나오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구입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기대하고 있었고,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만족스럽다. 이런 책을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명작’이란 호칭을 부여하고는 한다.
  그러나 독후감을 쓰기는 쉽지 않을 터. 서술이 방대하고 소설 안의 여러 에피소드들이 각기 긴밀하게 연결, 변화하여 선으로든지 악으로든지 특별한 행위로 전위, 확장되기 때문에 책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하기는 뭐, 어떤 책이든지 독자는 정확하게 읽을 수도 없고 그렇게 읽을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책의 주인공 ‘아벨 티포주’는 보베 시에 있는 생크리스토프 중학교에서 가장 왜소한 체격과 비사교적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 제일 약한 아이들마저 지배하고 모욕할 수 있는 놀림감 신세의 소년시절을 보냈으나 약 20년이 지난 지금, 1938년부터 39년에는 당시 기준으로 무척 큰 키인 191cm에 110kg의 건장한 체격과 엄청난 힘을 가진, 파리 포르트데테른 광장에 있는 자동차 정비공장의 사장이다. 그러나 거의 서진書鎭만큼 두꺼운 안경을 써야 사물의 식별이 가능한 급성 근시와, 성기왜소증을 피할 수 없는 팔자이기도 하다.
  티포주가 스무 살 때, 키는 지금과 같은 191cm이었지만 몸무게는 68kg밖에 나가지 않아 지독한 근시와 더불어 징집대상으로 할 것인가를 군의관들이 오래 토의한 끝에 결국 사격을 할 필요가 없는 통신대로 배치를 시킨 적이 있을 정도였다. 군복무 후에 갑자기 엄청난 식욕을 감당할 수 없어 하루에 2kg의 날고기와 5 리터의 우유를 들이키기 시작해 지금의 덩치와 완력과 근육을 갖게 되었는데, 자신이 고기, 신선한 피와 살을 좋아하는 식인귀 스타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게 됐을까?
  첫 번째 장 “아벨 티포주의 불길한 기록”은 1938년 초부터 39년 9월 3일까지 티포주가 왼 손으로 쓴 일기로, 위에서 말한 현재 시점과 20년 전 보베의 생크리스토프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을 교차하여 묘사하고 있다. 남자 기숙 중학교. 16세까지 다니고 이후 대입자격시험의 합격률을 올리기 위해 시험에 떨어질 것이 뻔한 학생들은 시험 전에 퇴학시키는 걸로 악명이 높은 이 학교 학창 시절의 아벨. 여성들은 모를 것 같다. 소년들만 모인 기숙학교라는 정글, 그것도 도망할 곳이 없는 폐쇄공간으로 이루어진 야만의 큐빅 공간.
  이 학교에 파리에서 전학생이 온다. 펠스네르. 튼튼한 체력과 우직한 성격을 가져, 학급의 특별한 서열로 단번에 올라간 건 당연하다. 당시에 문신이 유행했단다. 그래 아벨이 펠스네르에게 제의하기를 허벅지 안쪽 부드러운 살에 “이 생명을 당신에게 A toi pour la vie"라고 새겨주겠다고 해놓고 ”A T pour la vie"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내 생명을 A T에게” A T는 당연히 ‘아벨 티포주.’ 이후 아벨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 도중에 페스네르가 무릎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많이 흘리는 상태가 됐고, 페스네르는 티포주를 지목해서 흐르는 피를 혀로 핥으라고 명령을 해 진흙이 묻은 종아리부터 혀를 내밀다가 결국 벌어진 발간 속살에서 흐르는 피를 핥기 위해 입술을 상처부위에 밀착시켰고, 조금 후 기절해버리고 만다. 왜 기절했을까. 아벨 자신도 몰랐다. 책을 500페이지 가까이 읽어야 아벨 티포주가 까무러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책에서 벌이지는 많은 사건들이 특유의 연관성과 확장과 변위를 거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아벨 티포주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역시 같은 학교 동급생으로 학교 수위의 외동아들. 괴물 같고, 천재적이고, 환상적인 상상력에 비만증에 걸린 엄청난 뚱보로 거의 무제한 적 완력과 힘을 가진 인물인 네스토르.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들까지 네스토르가 뿜어내는 아우라에 이의제기를 하기가 쉽지 않은 압도하는 분위기. 네스토르가 아벨 티포주에게 접근해 ‘나의 아벨’이란 뜻인 ‘마벨’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하면서 학교 내 아벨의 위상은 높아지고 아무도 아벨을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네스토르의 진가는 기호와 기호해석에 있다. 나중에야 기호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절대적 독재 권력자의 중대 관심사인 것을 아벨이 알게 되기는 하지만. 네스토르로 인하여 아벨은 왼손 손 글씨를 익히게 되고 문제의 “불길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된다. 아벨의 거대한 덩치와 완력과 급성근시와 성기왜소증도 네스토르로부터 전위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당연히 네스토르와의 연결끈도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생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라는 성인은 강을 건네주는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이이 앞에 예수라는 어린이가 나타나 자신이 예수이며 무동을 태우고 강을 건너달라고 했단다. 그래 크리스토프는 예수라고 주장하는 어린이를 어깨에 올리고 강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는데 어린이의 무게가 갈수록 마치 태산을 짊어진 것 같았다고 한다. 죽을힘을 다해 강은 건네주니 예수가 하는 말이 지팡이를 땅에 꽂아 내일 꽃이 피면 내가 예수임을 알 것이다, 했고, 다음날 정말 땅에 꽂아놓은 지팡이에서 꽃이 피어 있어 어제의 어린아이가 예수임을 알았다는 성인聖人 우화.
  아벨 티포주는 생긴 것이야 누백 년 동안 이탄층의 옷을 입고 이탄층에서 살며 아이를 망토에 숨겨 유괴하는 마왕의 모습일지언정, 약한 아이를 품에 안아 보살피면서 황홀감을 맛보는 종류의 인간이다. 물론 성격이 좀 이상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그리하여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누명을 뒤집어써서 중죄재판소에서 넘겨져 2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을 틀림없이 받을 찰라, 2차 세계대전을 앞둔 프랑스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리고 1차 소집 대상인 아벨 티포주는 형벌 대신 입대하게 된다.
  이어서 소설은 본격적인 무대로 옮아가니 1939년부터 종전까지. 프랑스 군에 입대해 곧바로 포로가 되어 독일 북부, 예전의 동프로이센 지역의 수용소에 수감, 자연스럽게 독일과 독일군에 흡수되어 포로 신분으로 로민텐하이데 자연보호구역에서 일하다가 이후 열 살 이상의 소년병을 양성하는 군사교육기관인 나폴라에서 거대한 말을 타고 주변지역의 아이들을 수집하는 일을 하기까지 실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애초부터 제대로 스토리를 소개하기가 어려운 복잡다단한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으며, 이야기의 큰 줄거리보다는 세부적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이 훨씬 더 놀라운 작품이다.
  책의 광고문구에 “<양철북>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쟁소설”이라고 씌어있어 틀림없이 과장일 것이라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광고문구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인의 시각에서 쓴 2차 세계대전 소설 가운데 이만한 작품을 읽어본 적이 별로 없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이 책은 분명 명작. 거기다가 재미도 있다. 이 독후감을 보신 분들은 다음번에 읽을 책 목록에 올려보심이 어떤지 제안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내가 돈 도로 돌려드린다. 물론 농담이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직 토이숍
안젤라 카터 지음, 이영아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세 번째 읽은 앤젤라 Y. 카터. 이름을 다 풀어서 쓰면, 앤젤라 ‘엽기’ 카터. <피로 물든 방>에서 푸른 수염의 성castle을 봤었는데, 또다시 <매직 토이숍>에서 등장한 필립 플라워 씨라는 이름의 푸른 수염은 “필립 플라워의 진기한 장난감”이라는 간판을 단 장난감 가게 건물, 1층은 완전히 수공업에 의지하여 플라워 씨가 만든 고전적이고 비싼 장난감을 파는 상점이고, 2층과 3층은 플라워 가족과 처가 식구인 아일랜드 사람들인 자울 형제, 그리고 나중에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누이의 남매들이 묵을, 이른바 도시 중산층용 주택의, 거대한 몸집과 완력의 주인이다.
  이 책을 예전에 랜덤하우스 코리아에서 <멜라니>라는 제목으로 판매했다. 그러니 먼저 주인공 멜러니를 소개하기로 하자. 우리나라로 치면 중3, 열다섯 살이 되자 멜러니는 자신의 몸이 피와 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이해한다. 가끔 옷을 모두 벗고 자기 방에 달린 전신거울에 몇 시간 씩 자기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데이지 꽃을 꽂아보기도 하고, 조금씩 변하고 있는 몸을 더듬어보기도 하면서, 쥴리엣은 열네 살에 로미오와 격정적인 사랑을 했거늘 어찌 나는 열다섯이 되도록 비슷한 연애 경험이 없을까 한숨을 쉬는 본격적 사춘기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리하여 혼인과 성에 관한 농밀한 관심과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 해 여름에는 유명작가인 아빠가 엄마와 함께 미국 전역을 순회강연을 하느라 집에는 뚱뚱하고 늙고 못생겼으며 결혼해본 적이 없지만 처녀는 아닌 넉넉한 마음씨의 가정부 런들 부인과 범선 모형 제작에 인생을 건 것처럼 보이는 동생 조너선, 이제 유아 단계를 간신히 벗어난 빅토리아, 그리고 맏이 멜러니, 이렇게 네 명만 머물고 있는 중이다. 집에 어른이 없으니 아이들 간덩이가 조금씩 부을 수밖에. 결혼. 이것에 관한 호기심이 돋은 멜러니는 자연스럽게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떠올리게 되고, 엄마가 결혼식 때 입었던 드레스가 생각나서 어느 날 밤 부모 방에 들어가 침대를 내려다보며 부부생활을 하는 부모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으나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아 포기하고, 장롱 속 선반에서 엄마의 옷상자에 든 화관과 드레스를 기어이 꺼내 입어본다. 참 이상도 하지. 사람들은 왜 오직 처녀성을 잃어버리기 위해서일 뿐인데 이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일까.
  터무니없이 거추장스러운 화관과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처음엔 그저 나쁘지 않았다가 차츰 드레스 속의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허파에 바람이 들어버린 멜러니는 드레스를 입은 채 정원에 나가고 싶어진다. 늦은 여름밤, 엄마의 고급 공단 드레스를 입은 모습의 멜러니. 그러나 자동 현관문은 멜러니 뒤에서 저절로 철커덕, 잠겨버린 것을 잊고 때마침 환하게 땅을 비추고 있는 둥근 달, 조용한 새소리, 고요한 공기, 향기 나는 꽃의 숨결에 취한 듯 맴을 돌다가, 갑자기, 풀더미 속에서 런들 부인이 키우는 고양이가 부스럭거리며 도망가는 검은 형체와 소리에 화들짝 놀랐고, 이것을 시작으로 등을 따라, 팔뚝을 따라 자잘한 소름이 쪽 끼쳤으며 말할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고 만다.
  이제야 현관문이 잠긴 것을 안 멜러니는 집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모르고 잠에 떨어진 런들 부인을 깨우기 위해 돌을 던져 부인 방의 창문을 깨버리든지, 아니면 어렸을 때 몇 번 해봤듯이 사과나무를 타고 열어놓은 이층 자기 방 창문으로 들어가는 방법만 있을 뿐이었다. 생각을 해보자. 맨발은 벌써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의 뾰족한 돌에 찔려 피가 나기 시작하는데, 말이 공단이지 이게 고급 비단을 뜻하는 건데 눈처럼 흰 비단 드레스를 입은 채 거친 가지도 많고 풋사과까지 많이 달린 나무를 타고 이층까지 올라간다는 것이 말이 되나? 거기다가 도망갔던 고양이까지 다시 나타나 자기 몸을 문지르다가 날선 손톱으로 드레스를 건드리는 바람에 죽 찢어지기까지 한 것을 입고. 그래도 워낙 밤의 공포에 질린 멜러니는 기어이 나무에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다 도저히 드레스를 입은 상태에서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나뭇가지 위에서 옷과 화관을 벗어 창문을 향해 던져버렸는데, 드레스는 제대로 들어갔으나 긴 꼬리가 달린 화관은 사과나무 꼭대기로 휘익 날아가 길게 걸쳐지고 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옷의 중요한 용도 가운데 하나는 몸을 보호하는 것인데 이제 나신이 된 상태에서 나무를 타려니 온몸이 까지고 찔리고 긁혀 엉망진창이 된 채 겨우 방에 들어가게 된다.
  다음날 일어나보니 드레스에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가 묻어 있고(처녀성을 잃기 위해서 흰 드레스를 입는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더렵혀지고 찢어진 상태. 가뜩이나 머릿속이 황황한 찰나에 때맞추어 엄마 아빠가 있는 미국에서 전보가 한 장 도착한다. 무슨 전보일까. 멜러니는 전보의 내용도 모른 채, 전보를 통째로 이로 물고 생각한다. 내 잘못이야. 내가 엄마 드레스를 입어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엄마 드레스를 망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거야. 화장실에 가서 배 속의 것들을 다 게워내고 여전히 전보를 이 사이에 문 채 자기 방에 걸려 있는 전신거울을 산산이 부셔버린다. 눈에 띄는 거의 모든 것, 자기 힘으로 가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다 던져버리고 망가뜨려버린 멜러니는 이어서 부모 침실로 가서 먼저 결혼식 사진이 든 액자를 깨고 혼인사진을 짝짝 찢어발긴 후 역시 난장판을 만들어버린다.
  저녁 식사 시간에 이르러서야 런들 부인이 시간이 지나서도 밥 먹으러 내려오지 않는 멜러니를 찾아 이층으로 올라, 난장판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로 물고 있는 전보를 가지고 내려와 벽난로에 기대 돋보기를 찾아 귀에 걸고 읽어보고는, 남동생 조너선에게 누나가 몸이 좋지 않으니 의사를 불러오라고 시킨 다음 고기 한 조각을 천천히 씹어 삼킨 후, 자신의 고양이에게 말한다. 너랑 나랑 이제 새 집을 찾아야겠구나, 야옹아.
  엄마, 아빠는 오하이오 주에 있는 사막에서 관광용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시신조차 추렴하지 못하는 상태로 전원이 사망한 사건 속의 두 명이 되고, 이제 엄마, 아빠라는 호칭 대신 어머니, 아버지라 불리게 됐으며, 순서대로 멜러니, 조너선, 빅토리아, 삼남매는 남부 런던의 쇠락한 변두리에 음산하게 자리 잡은 필립 플라워라는 이름의 외삼촌이자 푸른 수염이 사는 성의 입주자가 된다. 이렇게 멜러니의 소녀시대는 종막을 고한다.
  푸른 수염의 성에서 벌어지는 앤젤라 카터 식 엽기발랄한 고딕 사건들, 붉은 머리를 한 아일랜드인 세 명과 거대한 몸집의 푸른 수염, 그리고 여기에 가세한 전형적인 잉글랜드 삼남매의 아슬아슬한 동거에 관해서는, 안 알려줌. 역시 앤절라 카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