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 Ⅱ
돈 드릴로 지음, 유정완 옮김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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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드릴로. <화이트 노이즈>를 읽자마자 이이의 다른 작품을 검색해보고는 깜박 잊은 사이에 벌써 2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다. 이런 게으름이라니. 안 되겠다. 이이가 쓴 다른 책은 모두 보관함에 쓸어 담아야지. 올해 안에 몽땅 읽어보리라. 이 책, 표지에 등장하는 마오의 사진이 별로여서 그렇지 정말 재미있다. 독후감 시작하기 전에 말씀드리노니, 일독해 보시라.
  돈 드릴로는 뉴욕의 이탈리안 타운인 아르투르가(Arthur Avenue) 바로 옆 브롱크스에서 태어나 작은 집에 열한 명의 식구들이 복닥복닥, 이탈리어와 영어와 이탈리아와 영어가 마구 섞인 희한한 언어를 사용하며 성장했다. 돈의 할머니는 미국으로 이민 온지 무려 5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영어를 못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혹시 돈 드릴로가 유대인 아닌가 궁금했었는데 이탈리아 중남부 사람답게 가톨릭 가족이었다고 한다. 10대 시절 미국의 긴 여름방학 내내 주차단속원으로 일하면서 하도 시간이 남아돌아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전까지는 자신이 작가가 되리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이런 드릴로가 쓴 책을 읽어보면 다른 작가들과 비교해 늦게 책읽기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심사가 매우 다양한 것에 놀랄 수 있다. 텔레비전, 핵전쟁, 스포츠, 언어의 다양성, 행위예술, 냉전, 수학, 디지털 시대의 도래, 정치, 경제, 세계적 테러리즘 등(위 내용은 Wikipedia에서 인용).
  광고회사를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기 시작해 처음엔 컬트 작가로 알려졌었다가 <화이트 노이즈>를 써서 전미도서상을 받은 이후 명성이 나기 시작했단다. <화이트 노이즈>, 상 받을 만한 책이다. 이후 이 책 <마오 II>가 1992년에, <언더월드>가 1998년에 퓰리처 상 최종심사에 올라 두 번씩이나 영광의 준우승을 거두었으며, <마오 II>는 결국 그 해, 그러니까 1992년에 펜/포크너 상과 만 오천 달러의 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펜/포크너 상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 펜클럽 같은 곳에서 따로 포크너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상 아닌가 싶다. 뭐 아니면 말고. 이리 장황하게 떠드는 건, 위에서 잠깐 얘기했듯이 나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표지 디자인에 불만을 품고 이 재미있는 책의 구입을 머뭇거릴까봐 그런 거다.
  <마오 II>는 R.O.Korea의 명성을 전 세계에 널리 떨친, 지구상 일찍이 유례가 없던, 무려 13,000명이 모여 만든 6,500쌍의 합동결혼식이 그들의 진정한 아버지, 대한민국 문선명 총재의 주관하에 다른 곳도 아니고, 뉴욕 양키 스타디움에서 거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새하얀 비단 성복과 붓꽃으로 장식한 높다란 관을 피부만 남은 머리에 올린 채 모두 통일된 하나의 민족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에 입각해 이틀 전에 처음 만난 한국 남자 김조박과 결혼한 캐런.
  책에서 말하는 ‘마오 II’, 앤디 워홀이 그린 비슷비슷하게 생긴 마오의 초상화 비슷한 회화 작품의 하나. 즉 그림의 제목. 책에서는 원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방황하는 젊은 시절을 십 여 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미니애폴리스 대학에서 일 년을 다니지만 또다시 자퇴하고 마약과 상실의 수렁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얼굴 없는 작가 빌 그레이의 소설을 읽고 그를 기어이 찾아내 조수가 된 ‘스콧’이 진짜 오랜만에 뉴욕에 들러 워홀의 전시회를 보고 사온 복제그림을 뜻한다. 물론 책이 진행되면서 저 뒤쪽으로 가면 레바논의 공산화를 위해 투쟁하는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이 중국대륙을 공산화시킨 마오 역시 처음에는 농민무리 몇 십 명의 오합지졸로 시작했다는 말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책의 순서대로 문선명 교주 - 마오저뚱 - 이란의 호메이니로 연결되는 단체 최면술사들을 이야기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근데 스콧이 왜 뉴욕에 갔느냐 하면, 주인공인 소설가 빌 그레이가 극소수의 사진만 남긴 토머스 핀천이나 제롬 데이비드 셀린저처럼 완전 은둔형의 소설가인데,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갑자기 마음을 바꿔 영정사진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작가들의 사진만 전문으로 찍는 브리타 닐슨을 데리러 간 것. 그래서 책은 난데없이 문 총재에 의한 합동결혼식 이후 은둔 작가 빌 그레이와 조수 스콧, 사진작가 브리타 닐슨, 스콧이 휴가 중에 알게 되어 데리고 온 통일교 광신자 캐런에 의하여 상당부분 진전되다가, 1부의 마지막에 스위스 출신의 시인 한 명이 베이루트에 인질로 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갑작스럽게 반전을 맞게 된다.
  이 책 역시 위키피디아가 소개한 작가의 특성답게 텔레비전, 스포츠, 언어의 다양성, 행위예술, 냉전, 디지털 시대의 도래, 정치, 세계적 테러리즘 등이 다양하게 등장하며, 이미 경험해 충분히 알고 있는 후세의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뉴욕의 무역센터 빌딩이 불운한 기운에 휩싸이는 장면을 읽으면서, 이 책의 발간연도가 사건이 생기기 10년 전이란 걸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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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줴의 겨울
디안 지음, 문현선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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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이름이 특이하다. 디안笛安. 피리소리에 편안하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떠오른다. 나도 손녀, 손자 가운데 한 명의 이름 안에 적笛자를 넣고 싶어 하는데 마땅히 앞뒤에 놓일 글자를 여태 찾지 못했다.
  이이의 아버지 리루이(李銳)는 베이징 태생으로 1969년 1월에 부모(작가의 조부모)가 동시에 사망했다는 걸로 미루어 문화혁명의 와중에 봉변을 당한 거 같다. 졸지에 고아가 된 리루이는 조상들이 살던 쓰촨성 쯔궁으로 가는 대신 산시성의 산골 도시 뤼량으로 옮겨 6년간은 농부로, 2년 동안은 공장직공을 하다가 1974년 첫 번째 소설집 <합장묘合墳>을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안에서보다는)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리루이는 산시성에 터를 잡고 훗날 산시성 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하게 될 장원과 결혼하여 1983년에,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에 호응해 외동딸인 리-디안을 낳는다. 왜 이리 태생에 관해 서론이 긴가 하면, 작품의 무대가 베이징에서, 대륙의 기준으로 치면 좀 떨어져 있는 산골지방이며, 유난히 겨울이 긴 동네라는 걸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룽청(龍城)이라는 가상의 철강 산업 도시에 아들 사형제가 있었다. 모두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었는데, 이들은 당시 중국법령에 따라 딸이건 아들이건, 물론 쌍둥이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딱 한 명만 자손을 둘 수 있었다. 그래 네 형제의 아버지는 앞으로 보게 될지 못 보게 될지도 모르면서 각각의 이름자에 동, 서, 남, 북을 넣으라 했단다. 그래 맏이가 낳은 딸은 둥니(東倪), 둘째가 낳은 아들이 일인칭 시점의 주인공 시줴(西決 ‘결’은 삼수변이 아니라 이수변), 셋째가 낳은 딸은 난인(南音)이고 넷째는 아직 아이가 생기지 않았지만 딸이건 아들이건 하여튼 이름은 베이베이(北北)라 짓기로 했다. 어떠셔? 이리 써놓으니까 화목한 가정 같지? 그래, 한 번 들여다보자.
  맏이는 연예인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아가씨를 격투 끝에 아내로 차지했다. 격투 당시에 같은 철강회사에 다니던 맞수를 하마터면 용광로에 빠뜨려 죽일 뻔했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30여 킬로미터 떨어진 외곽지역으로 좌천당한 경력도 있다. 이리 치열하게 투쟁해서 맺은 부부의 공통적인 취미생활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상처를 주고 고통스럽게 하는지 연구하고, 연구한 결과를 실행에 옮기는 것인데, 일단 자기가 설계한 이론을 실험할 때가 오면 그 자리에 누가 있든지 전혀 상관을 하지 않고, 말 그대로 격투기 수준의 진검승부를 벌인다는 것. 이런 취미생활이 어디서 비롯하는지는 공개 독후감에서는 밝히지 못할 스포일러. 어쨌든 이들 사이에 끼어 어린 시절을 보내는 둥니가 정상적인 상태로 성장하기 바랄 수는 없겠지? 둥니는 열여덟 살의 나이에 큰 뜻을 품고 싱가포르로 날라버린다. 둥니는 하룻밤 테이블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대가로 미화 천 달러짜리 팁이 브래지어 속으로 들어올 때 세상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임을 실제적으로 체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맏이 부부는 딸이 어떻게 사는지에 관해서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이 오늘도, 내일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을까를 통해 삶의 의의를 찾는다.
  둘째 부부는 눈과 날개가 하나씩만 달려있어 암수 한 쌍이 함께 해야 날 수 있다는 비익조比翼鳥나 다른 뿌리에서 나왔으나 둘이 한 몸이 된 연리지連理枝 같은 전설적인 사랑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았으나 이들의 아들 시줴가 열 살이 되던 해에 남편이 직장인 철강공장의 설계 사무실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가슴을 두 손으로 쥐어짜면서 급사하고 만다. 직원들이 황황히 소식을 갖고 시줴의 집에 들러 떨어지지 않는 입술로 남편의 운명을 전하자, 아내는 직원들에게 차나 한 잔 하시라고 말을 하고는 조용히 부엌으로 가는 것 같더니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층 베란다에서 자유낙하에 성공, 비익조의 신화를 완성시킨다. 좋다 이거다. 너희들 사랑은 이렇게 절정에서 마침표를 찍는 건 좋은데, 이제 발간 세상에 홀로 남은 우리의 주인공 시줴는 어찌 살라고. 그리하여 열 살 먹은 시줴는 작은 아버지, 셋째의 집으로 들어가 학교를 다니고, 심지어 대학까지 졸업하고 이제 룽청의 중 고등학교에서 물리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셋째네 부부는 완벽하게 선한 인물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은 일컬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칭한다. 상당한 수준의 미모를 지녔으나 아쉽게 지적 능력을 개발하지 않은 실제 내 처형은 나를 보고 가끔, 불경스럽기도 하고 망측스럽기도 하고 남우세스럽게도 ‘부처님 가운데 다리’라고 하는데, 하여튼 비슷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발기부전 증세가 있다는 건 아니니까 제위께서는 반드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란 말을 쓰시기 바란다. 진짜 천의무봉, 순진무구한 남녀. 그래도 할 건 다 해야 하는 게 인생이라서 딸 하나, 세상 무서운 거 없고 구김살 없는 난인을 두었다. 난인뿐만 아니라 조카 시줴, 큰 조카 둥니, 심지어 뜻대로는 되지 않지만 그 외 주위의 모든 친척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돌보고자 하는 무골호인. 부부가 다 그렇다.
  넷째이자 막내인 정홍(鄭鴻) 룽청 최고 명문인 룽청제일중고등학교의 고어古語 전문 국어 교사로 재직하며 성가해 잘 살다가 그만 스캔들에 빠져버리고 만다. 강의하다가 간혹 주화입마에 빠지면 영혼을 쏟는 명강의를 펼치는 바람에 숱한 남녀학생의 우상으로 군림하던 정홍 선생을 스승이 아니라 이성으로 상상해보지 않은 여학생이 많지 않을 정도였다. 이 가운데 탕뤄린이란 학생하고 드디어 추문이 발생해 소문이 곳곳으로 퍼지자 급기야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친정으로 가버렸고, 탕뤼린 역시 저 먼 곳에 있는 시골 외갓집으로 보내졌으며, 정홍 선생은 세상의 온갖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진짜 중국인처럼 때를 기다리며 모든 고통을 인내하고 있다. 그러다 배 나온 중년으로 접어들었고, 이름은 벌써 지은 베이베이도 만들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다음엔 세 명의 사촌들. 둥이, 시줴, 난인. 이들은 말 그대로 형제. 어쩌면 진짜 형제 이상으로 긴밀한 감정으로 얽혀 있다. 친형제가 아니기 때문에 감정이 더 과장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도 경제발전이 되기 전엔 집성촌 안에서 사촌이란 건 정말 긴밀한 관계였다. 근데 얘네들은 좀 심하다. 둥이와 시줴는 3년 차이, 시줴와 난인이 5년 차이. 이들은 기꺼이 서로 얼싸안고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고, 심지어 가슴팍에 안겨 펑펑 울기도 한다. 놀라운 우애. 이건 혹시 작가 디안이 여성이라 여자 형제들의 기준으로 책을 썼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단연코 연애 이야기. 그러나 그것 뿐? 천만의 말씀. 겉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고 아픈 곳을 불어주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잘 되는 꼴을 보기 싫어하는 마음이 조금도, 정말 조금도 없었을까? 이들 사촌 남매들 말고도 윗대의 네 형제간에도?
  이렇게 네 형제와 그 가족들이 만드는 전형적인 가족 이야기. 이 책이 중국에서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왜 그런고 하니, 빤히 들여다보이는 해피 엔드를 향해 정해진 수순을 밟아가기 때문. 독자들은 애초부터 자기가 예상했던 착한 결말대로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걸 읽고 만족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작가 디안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 책의 초판이 2009년. 날로 우울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소설만 읽던 독자들에게 이런 따뜻하고 행복한 결말이 어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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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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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켈만. 문제적 작가 가운데 한 명. <에프F>와 <세계를 재다>에 이어 세 번째 읽은 작품. 굳이 비교하자면 <에프>와 비슷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각기 다른 제목을 단 아홉 편의 짧은 이야기로 약 2백 페이지 분량의 한 덩어리를 만들었는데, 아홉 편을 그대로 단편으로 읽을 수도 있고 나처럼 통째로 하나의 장편으로 읽을 수도 있다. 책의 주제 또는 작가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제일 마지막 이야기 <위험 속에서>에 소개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가 어디서 끝나고 어디서 시작하는지 아무로 몰라. 현실에서는 모든 게 뒤섞이지. 책에서만 말끔하게 분리되는 거야.”
  위 결론만 듣는다면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터. 그러니 아홉 이야기의 순서와 관계없이 의도된 중구난방으로 소개해보자.
  ‘나’는 이동통신 회사에서 전화번호를 담당하는 부서의 팀장으로 아내 한나와의 슬하에 어린 남매를 남독일 호숫가 근처 평화롭지만 단조로운 도시의 주택에서 살며, 주중에는 하노버 시에 있는 직장에 매일같이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다. 쉬운 얘기로 주말부부. 바람직하게 잘 살다가 한 리셉션에서 루치아라는 여성을 알게 돼 그만 바람이 났다. 적당히 하다가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이 바람이건만 차마 그렇지 못해 ‘나’는 두 집, 두 인생, 두 가정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느라 업무를 소홀히 해 자신이 참석해야 하는 유럽 통신회사들의 회의에 부하 직원 몰비츠를 대신 보낸다. 일 대신 인터넷 포럼에 글을 올리는 것이 진짜 자신의 본질이라 단정하고 있는 몰비츠는 또 출장 때문에, 정확하게는 출장기간 동안 인터넷 접속을 못하게 될 것이란 걱정하느라 크고, 크고 진짜 큰 실수를 저질러 고객들에게 같은 번호를 부여하는 에러를 발생시킨다.
  딱 이런 상태에 에블링이라는 PC 기술자가 있었는데 끝까지 휴대전화기 없이 버티다가 주위에서 하도 지랄들을 해서, 어떻게 너한테는 연락도 할 수 없냐?, 늦게나마 개통을 하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개통하자마자 부르르 진동을 하더니 어떤 여자가 말하기를, “랄프 좀 바꿔주세요.” 그래서, 전화 잘못하셨어요, 하고 점잖게 끊었다. 집에 가 아내 엘케와 침대에 누워 자던 밤 열시에 또 부르르 진동이 오고 이번엔 남자가 “랄프! 자식, 어때? 잘 돼?” 이런. 한밤중에 잘 되긴 뭐가 잘돼? 에블링은 이제 휴대전화 때문에 일에 집중이 안 되는 지경에까지 가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자기가 진짜 랄프라는 인물로 행세해보기로 마음먹고, 여태까지 랄프라는 작자가 정한 모든 약속, 모든 행사 스케줄을 다 펑크를 내버리는데, 이 랄프라는 인물이 누구냐 하면, ‘랄프 탄너’,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배우. 이이의 명성과 얼굴을 담은 거대한 광고판이 대서양 너머 중앙아메리카까지 커다랗게 서 있을 정도다.
  레오 리히터라는 이름의 소설가가 하나 있어, 전직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십자포화가 쏟아지는 가운데 납치, 부상, 참수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장을 뛰어다녔다가 이젠 유럽에서 조용히 살기로 결심한 동거녀 엘리자베스를 동반해 중앙아메리카 지역의 모든 나라의 독일문화원을 순회하며 자신의 문학과 사상 등을 강연하기 위해 여행하던 중 길가에 세워진 거대한 광고탑, 휘황한 조명을 받고 서있는 엄청나게 확대된 미남의 얼굴을 통해 랄프 탄너가 세계적인 영화배우라는 걸 독자가 알아차리게 된다. 중앙아메리카 지역만으로도 여행에 질려버린 레오 리히터에게 남아있는 일정 가운데 하나가 중앙아시아 지역 순회강연. 레오 리히터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자기는 죽어도 중앙아시아에 갈 수 없다며 일정을 취소하는 대신에 대타를 하나 구해 대신 보내기에 이르니 마리아 루빈슈타인 여사. 역시 소설가다.
  두 명 나오는 소설가에게 리히터, 루빈슈타인, 모두 유명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부여한 건 왜 그랬을까? 나는 작가 켈만이 이름 짓기 귀찮아서였다는 데 만 원 건다. 어쨌건 루빈슈타인 여사는 광활한 스텝지역을 상상하며 중앙아시아에 도착했건만 이이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흙투성이의 엉성한 도시와 더러운 공장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지 유럽에서 온 귀빈에게 과시하고 싶어 하는 후진국 정부의 웃기는 과시욕뿐. 근데 이 루빈슈타인 여사는 중앙아시아로 출국하고 일 년이 지나 더욱 인기 있는 작가로 변신해 문학상까지 받는데, 어떤 상인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되게 웃긴다.
  루빈슈타인 여사를 중앙아시아로 보낸 리히터는 전직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엘리자베스의 꼬드김에 넘어가 어처구니없게도 콩고인 듯이 보이는 지역의 내란지역에 들어가게 된다. 근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건,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서 레오 리히터는 오히려 물 만난 고기처럼 생기가 돌며, 심지어 이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애착을 보인다는 거. 한편 평소 자신이 레오 리히터의 작품 속 한 인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용될 것 같은 기분 나쁜 상상에 조마조마하던 엘리자베스는, 이곳에서 중앙아메리카의 한 독일문화원에 근무하던 리더고트 여사를 만난다. 근데 알고 보니 리더고트 여사가 바로 그 유명한 라라 가스파드였다는 놀라운 사실.
  라라 가스파드가 누군가 하면 인터넷 중독자 몰비츠가 거의 헌신적으로 숭배하는 여성. 몰비츠는 통신사들의 합동 세미나에 참석했으면서도 자신이 발표할 내용보다는 여전히 칼럼 속 댓글 다툼, 특별하게 랄프 탄너한테 그의 옛 애인 칼라 미렐리가 호텔 로비에서 귀싸대기를 올린 사건에 대해 어떤 반응이 올라와 있을까가 더욱 중요했으니, 이분께서 내일 발표하실 세미나는 들어보나마나 말짱 헛것이 아니겠느냐는 말이지. 정작 진짜 랄프 탄너는 이상하게 어느 날부터 전화가 똑 끊기더니 자기를 찾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지경에 처해버린다. 그래 얼굴도 가리지 않고 스타들을 닮은 사람들이 스타 흉내를 내는 게임을 하는 나이트클럽에 가서 랄프 탄너 역을 하며 잔돈을 받는 재미난 경험을 하는데, 또 다른 랄프의 도플갱어 노릇을 하는 대역배우가 나타나 진짜처럼 보이려면 동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도편달을 마다하지 않는 경우를 당한다.
  이제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어떤 식인지 아시겠지. 어디가 진실이고 어디가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야기인지 알아내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전부 다 소설 속 에피소드지만, 소설이 소설 속 소설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예를 들어 레오 리히터를 진짜 세상 사람이라 가정하면 상당 부분이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니엘 켈만. 하여튼 재미있는 작가다. 내게는 앞으로도 주목할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

  지금 품절이지만 e-book으로는 아직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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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의 판도라 세계문학의 천재들 8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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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오해를 했던 것 같다. 출판사에 대해서. 도서출판 들녘. 이 회사가 지난 세기부터 좋은 사회과학 책을 많이 찍은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줄 착각을 했나보다. 그래 이 회사에서 낸 소설책, 그것도 530쪽이 넘는 장편소설 <콩고의 판도라>를 냈다면 벨기에,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세계가 20세기 초까지 콩고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가장 악랄한 악행을 기록한 책인 것으로 짐작했다. 근대사에서 가장 포악했던 식민통치자로 이름을 올린 레오폴드 2세, 천연고무의 생산량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1차로 손목을 자르고, 그래도 달성하지 못하면 팔을 자르고, 마지막 3차까지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 목을 잘라버렸던 진정한 흡혈황제. 3천만 명의 콩고 인구를 9백만으로 줄어들게 만든 이 극악한 벨기에 통치시절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을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던 거였다. 그래 <콩고의 판도라>라는 제목을 단 장편소설이 진보적 출판사라고 ‘착각하고 있던 곳’에서 나왔다니 어찌 한시인들 머뭇댈 수 있었을까. 이 심정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1965년에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이 (내가 좋아하는 학문인) 문화인류학자이며 작가라고 한다. 게다가 2000년에 아프리카 독재자들을 그린 풍자 수필을 낸 적이 있다고 하니, 기대는 더욱 커져만 갔다. (여전히 들녘을 진보적 인문학서적 전문 출판사라고 착각하고 있는 상태에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이 책이 놀랍게도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라는 이름의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이란 거. 말 하면 뭐하나.
  책은 1974년에서 78년까지의 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토머스 톰슨이라는 이름의 여든 살이 넘은 노 작가가 60년 전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콩고. 영국, 프랑스, 에스파냐 전 국토를 합한 광활한 대지를 상상하라. 그리고 그곳을 온통 6~60미터 높이의 나무들이 뒤덮고 있는 광경을 떠올려라.”


  1914년 여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 이때 화자 ‘나’, 토머스 톰슨은 국가가 운영하는 보육원을 나온 열아홉 살의 반쪽 천식환자, 반쪽 평화주의자, 반쪽 작가였단다. ‘반쪽 작가’라는 건 자기 이름으로 글을 써 출간하지 못하고, 지금은 잊힌 존재지만 당시엔 대단한 성가를 누리던 대중문학의 선구자 루서 플래그 박사가 건네준 지침에 따라 80쪽 분량의 후딱 읽히는 소설을 루서 플래그 박사의 이름으로 대필해주고 푼돈이나 얻어 쓰는 대필 작가를 말하는데 한 단어로 그냥 ‘노예 작가’라 일컬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니 ‘나’는 플래그 박사가 글을 써 가져오라고 한 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의 재하청 작가에 불과했던 거다. 이 해 재하청 작가에게 원청 작가가 원고를 받는 순간 난데없이 교통사고가 나 원청과 재하청 작가가 같은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는 바람에 공동묘지를 방문한 ‘나’에게 접근하는 인간이 있었으니 야심찬 변호사 에드워드 노튼.
  노튼 변호사는 ‘나’가 루서 플래그 박사의 이름으로 절찬리에 판매하고 있는 책들을 진짜 쓴 인물인줄 알고 다가와 1912년 콩고의 밀림 속으로 황금을 찾아 떠난 리처드와 윌리엄 크레이브를 살해한 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질지 모르는 마커스 가비라는 작자를 교도소에서 접근해 그와 크레이브 형제가 콩고에서 했던 일을 소설 형식으로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를 실행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나’는 교도소를 방문해 난쟁이나 다름없는 집시의 아들 마커스 가비를 취재해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나’는 변호사가 아닌지라 자기가 쓰는 작품을 보다 진실성 있게 만들기 위해 살해당한 형제의 아버지 찰스 크레이버 공작에게 면담을 신청, 작품의 초고가 완성되면 복사본 한 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이를 승낙 받는다.
  주의를 압도하는 거구로 여섯 살 소녀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연루되어 군대에서 쫓겨난 리처드와 크레이버 공작 가문의 명성이 아니었으면 족히 20년 형에 처해졌을 경제사범 윌리엄 형제는 보육원에서 프랑스어를 배운 엄마를 통해 불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집시 난쟁이 비슷한 하인 마커스 가비를 데리고 콩고로 향한다. 약 백 명에 이르는 짐꾼을 모질게 독려하며 밀림의 중심까지 진출하고, 우연히 금광을 발견해 그들을 노동시키는 데까지 형제들의 잔인한 행동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형제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마커스의 살육까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폭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서 독자는 심각한 갈등에 빠진다.
  이 책을 더 읽어, 말아.
  진짜다. 도서출판 들녘은 <콩고의 판도라>를 ‘세계문학의 천재들’이란 시리즈로 출간하고 있다. 내가 읽기로는 그러나 완벽한 2류 소설. 서미싯 몸은 자신 스스로가 “최고의 2류 작가”라고 정의한 바 있어서, 혹시 내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려는 거 아닌가, 하고 의심하실 필요 없다. 작가의 다른 책은 당연히 안 읽어봤으니 모르지만(안 읽어볼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이 책만 가지고 판단하면, 아니, 판단은 했으나 더 이상 말로는 하지 않겠다.
  책 속에서는 자신이 대단한 문학적 재질을 갖고 있고, 이 책이 문학적으로 거의 최상급의 성취를 이룬 것처럼 자주 묘사한다. 그런데 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셋 중에 하나, 이건 습작이거나, 열심히는 하지만 천부적 자질이 부족한 불운한 작가이거나, 번역 도중 역자가 우리말로 너무 서툴게 옮긴 것처럼 읽었을까. 더구나 이 책은 헌책방에서 중고품을 산 것도 아니고 큰 기대를 갖고 산 새 책이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SF나 장르문학이나 이 비슷한 것들을 견디지 못한 순문학 지향의 속물의식 때문에 그렇게 읽었다고? 뭐 당신이 굳이 그렇게 우긴다면 할 말이 크게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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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 40년 - 4판 범우문고 20
변영로 지음 / 범우사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구한말 군수의 직을 하던 변정상卞鼎相에게 아들 삼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보성전문을 졸업한 후 판사를 하다가 “왜놈의 사냥개 노릇은 죽어도 못한다.”며 법복을 벗고 변호사 개업을 해 안중근을 변호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해방 후에도 반민특위 재판장을 역임했던 강골의 변영만이요, 둘째는 제 1회로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후에 신흥공화국의 외무부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는 변영태이며, 셋째이자 막내가 죽기까지 불의와 악수는커녕 타협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당대의 세월을 보내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크게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명정酩酊 40년을 보내게 되는 영문학자, 교육자, 신문기자,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이니, 변 군수께서 다른 건 몰라도 아들 농사 하나는 근사하게 지었겠다.
  수주가 어렸을 때 이름이 ‘영복’이니, 변 군수께서 일찌감치 외출하신 하루는 아침부터 술에 잔뜩 취해 아버지 아니 계신 사랑에 누워 있는데, 존장의 벗인 정영택 옹께서(당시엔 30대였지만) 사랑 미닫이를 열고 보니 열 살도 아니 된 쬐그만 게 주인 없는 사랑에 홀로 누웠던 것. 그리하여 정옹이 진중치 아니한 어조로 말씀하시기를,
  “영복아!”
  “……”
  “아 이놈 영복아!”
  “원숭이 왔나?”
  성미를 잘 아는 정 교관은 못 들은 체,
  “어르신네 어디 가셨니?”
  “어디 출입하셨어.”
  “어딜 가셨을까?”
  “모르지.”
  “이놈, 어린 놈이 대낮부터 술이 취해서 학교도 가지 않고.”
  “대낮이라니, 술은 밤에만 먹는 거야?”
  기경(奇驚)하기로 유명한 정 선생도 이에는 어안이 벙벙,
  “에익, 고자식.”
  하고 떠나려 할 때 나(수주)는 한걸음 더 내치어,
  “여보게, 히로(우리나라에 처음 수입된 양담배) 한 개만 주고 가게.”
  망설망설하다가 홱 한 개를 던져 주고 총총 문을 나시었다. 는 거 아닌가.


  수주 자신도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저 먼먼 옛 시절부터 술 한 바가지 얻어 마시기 위해 자기 키보다도 더 큰 술독을 기어오르기도 하고, 혹시 개평 술이라도 얻어 걸릴까 싶어 아버지와 벗들의 술상을 지키다가 아이 놈이 술 좋아하는 걸 이미 아는 어른들이 약만 올리고 술을 주지 않자 자리를 박차고 나서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 유쾌하고 때론 창자가 아플 정도로 웃긴 《명정 40년》을 시작한다.
  실로 전설적인 이야기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숱하게 들은 수주 변영로의 술에 얽힌 기행들. 그저 교사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온, 거의 신화 수준이라 믿기 어려운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공초 오상순, 횡보 염상섭, 성재 이관구와 더불어 네 명의 돈 없는 룸펜 인텔리겐치아들이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하던 고하 송진우에게 나중에 좋은 글 한 편을 기고할 테니 원고료로 50원을 미리 달라고 떼를 써 얻은 돈으로 술과 고기를 사들고 성균관 위에 올라 대취했던 일이다. 잔뜩 술을 퍼마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난데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큰 비를 맞고 누웠다가 공초가 선언하기를 옷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을 이간시키는 쓸데없는 물건이라 칭하며 옷을 찢어버리고 네 명의 나한이 몸에 일호一毫의 천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소를 타고 혜화동까지 진출한 일이었다.
  공초와 횡보는 늘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어서 이 일화를 나 역시 구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때 문제의 한 명, 성재 이관구가 여간해 생각나지 않았었다. 책을 읽어보니 이관구라는 동아일보 기자와 그의 춘부장을 비롯한 집안사람들과 얽힌 허리가 끊어지고 창자가 아프게 웃기는 술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었으나, 그건 일독의 가치가 넘치고도 넘치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고 내 말이 과장인지 확인하시기 바란다.
  나 역시 애주가로 불리지 않으면 매우 섭섭한 정도의 술꾼이지만 감히 수주와 곁을 대할 수 있을까보냐. 수주는 나이 쉰이 넘도록 약 한 봉지 먹어본 적 없는 강골의 사내였단다. 당시 사람들이 자시던 소주는 지금처럼 20도도 되지 않아 술인지 물인지 밍밍한 소주가 아니라 똑 부러지게 40도짜리였다. 그것을 되, 1.8리터 단위로 몇 병을 앉은 자리에서 마셨으며 당연히 지구 온난화 전이라 오줌줄기까지 얼려버릴 정도로 추운 겨울밤에 술에 취해 떡이 되어 길거리에 횡와 취침橫臥就寢 가로누워 자면서 그새 내린 백설로 이불을 삼아도 다음 날엔 어김없이 학교나 신문사로 출근을 해 우우풍풍雨雨風風,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단 한 번의 지각도 없었다는 사내였다.
  수주, 하면 《명정 40년》. 그러나 《명정 40년》으로 그의 이름을 취생몽사의 대명사로 알면 오산이리라. 그 역시 백형이나 중형을 닮아 이화여전, 중앙학교, 성균관대학 선생을 거쳐 동아일보 신문기자를 하면서 한 번도 일본을 위한 문장을 써 본 적 없고, 창씨개명은 그의 앞에서 거론조차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손기정 일장기 말살까지 획책했던 울분의 지사였다.


  인터넷 공간의 오랜 벗들은 몇 번 들으셨을 터이지만, 내게도 수주 못지않은 명정의 시절이 있었으니 그 일탈의 광태를 한 번 소개한다.
  때는 1981년 봄. 서울대를 다녔고 지금은 내가 사는 동네의 대학에서 훈장을 하는 김군과 나는 날이 좋다는 핑계로 학교 앞 청화식당에서 아침 아홉시부터 막걸리 잔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한 말斗(약 18리터, 즉 일인당 9천cc)을 마시니 점심 때가 됐다. 밥 대신 막걸리 한 말을 더 마시고 나니까 수업을 파한 후배 아이들 둘이 고개를 디밀었다. 산업공학을 하는 남자 후배, 화학을 전공하는 여자 후배. 둘이 무슨 썸을 타는 관계는 분명히 아니고 그냥 지나가다 만나서 한 잔 하자고 의기투합한 것이 틀림없었다. 후배들에게 동무를 소개하고 반 말을 더 시켜 마저 마시니 이제 석양이 내리려는 듯. 우리는 밀주 막걸리 몇 통을 더 달라고 해 손에 들고 모교 운동장을 둘러싼 잔디밭으로 진출해 두어 되를 더 비웠다. 잔디에 누워 청하디 청한 하늘을 보다가 내가 동무에게 말했다.
  “벗어버리자.”
  그래 나하고 멀리 관악산에서 온 동무하고 둘이는 예전 성균관의 네 나한처럼 일호의 천조각도 몸에 걸치지 아니하고, 내 옷은 화학 공부하는 아이한테, 동무의 옷은 산업공학을 하는 아이한테 봐달라고 한 채 운동장을 감싸 안은 도로 위를 뛰기 시작했다. 때는 바야흐로 늦봄의 황혼이라, 교정을 바라보고 오른 편의 중앙도서관에서 한 떼의 학생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학생식당으로 교정 밖의 밥집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하면, 오직 하나, 발바닥이 무척 아프다는 거. 남학생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하며 웃기에 바빴고, 여학생들은 갑자기 자기들 시선을 정면으로 하고 정색을 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옆 눈으로 우리의 알몸이 다 보일 터이니까. 교정 정면에 있는 본관 건물 오른 편으로 들어가 교무과, 학적과 등의 사무실을 거쳐 왼편으로 나와 강당 옆을 끼고 다시 운동장을 두른 잔디밭으로 돌아오니 후배 아이들은 서로의 등을 두드려가며 아까 마신 막걸리를 게워내고 있었다.
  벌써 그게 40년 전이다. 나는 아직도 그때 그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귀밑까지 뜨거워지는 게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 왜 그랬을까. 당시 내 나이 이십 대였다는 것이 유일한 변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몸질주는 내 일생 가장 큰 수치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때가 포경수술을 하기 전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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