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2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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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을 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좋다고 장안에 소문이 나긴 했는데 몇몇 이유로 오츠가 쓴 다른 책을 먼저 사서 읽어본 적이 있다. <사토장이의 딸>. 뭐 그리 인상 깊지 않았다. 그래 이 책도 뭉개다가 늦게나마 손에 들었다. 호, 우리말 문장도 생각보다 잘 읽히고, 내용도 흥미진진하고, 2부에 들어서자마자 뒤통수 확 후려 맞고(내가 원래 순진한 독자거든), 하여간 재미있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런데도 독후감을 쓰기가 쉽지 않다.
  캐롤 오츠는 데뷔한 후 56년 동안, 중편과 단편은 별개로 하고, 장편소설을 58편 출간한 다작의 여왕. 전에 읽은 <사토장이...>도 900쪽이 넘는 장편이었다. <카시지> 역시 660쪽에 달하는 긴 작품이다. 그러니 글 쓰는 거에 관해서는 가히 도가 튼 사람일 텐데 내가 감히 따따부따 할 내공이 되겠는가. 그냥 쓴 대로 읽고, 읽은 느낌을 솔직하게 얘기할 밖에.
  뉴욕 주 북부에 카시지라는 도시가 있다. 물론 가상의 도시고, 카시지Carthage는 보통 트로이의 명장 아이네이스가 여왕 디도의 구애를 뿌리치고 이탈리아를 찾아 정처 없는 항해를 떠난 ‘카르타고’를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 속에 카르타고가 안고 있는 역사적, 혹은 신화 문학적 함의가 들어 있는지는 각자가 따져봐야 할 것인데, 구태여 끼워 맞추려고 하면 세상 어느 것인들 그렇게 하지 못할 건 없을 터.
  주인공 이름이 크레시다 캐서린 메이필드. 1986년 4월 6일생. ‘크레시다’는 트로이 전쟁 당시의 최고 예언자 칼카스의 딸 크리세이드의 영어식 이름. 책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건 제논의 역설. 즉 실생활 속의, 화살은 절대로 과녁에 박히지 않는다는 엉터리 수학적 무한성. 크레시다의 아버지 이름이 제노. 뭔가 크게 한 바탕 전쟁과 학살이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의 이름인데, 정작 전쟁과 학살에 참여하는 인물은 크레시다의 언니 줄리엣의 약혼자 브렛 킨케이드 상병이다.
  이 책을 잘 이해하려면 앞부분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힌트를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제노와 아를렛 메이필드 부부의 둘째 딸이자 막내인 크레시다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자폐증’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한 단계 위인 ‘아스퍼거증후군’일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지만 더 이상 확인해보지 않은 전력이 있다. 즉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은 특성이 있는 인물.
  크레시다의 경계성 인격 장애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 작품의 개연성은 단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물론 작가가 수시로 독자에게 이런 기본 조건을 납득시키고 있으니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아를렛과 제노 메이필드 부부의 두 딸 가운데 맏이는 예쁜 것으로, 막내는 똑똑한 것으로 캐시지 지역에 소문이 났다. 대개 예쁜 사람들이 마음씨도 착해(내가 반대 경우의 여자와 30년 넘게 같이 살고 있어 잘 아는데) 줄리는 독실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일찌감치 공부도 잘하고, 잘 생겼고, 거기다가 만능 운동선수인 브렛 킨케이드에게 청혼을 받아 약혼을 한 상태. 동생 크레시다는 똑똑은 하지만 인격 장애가 정말 있는지 감탄보다는 조롱에 익숙하고, 천성은 착하지만 남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 고통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즉,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요소가 가득한 캐릭터란 뜻.
  또 한 명의 주인공 브렛 킨케이드는 1990~91년 걸프전에 참전한 그레이엄 킨케이드 중사와 애설 사이의 외아들. 아버지 그레이엄은 브렛이 여섯 살 때 돈을 벌어온다고 집을 나가 마지막으로 요세미티에서 그림엽서를 보낸 이후 소식을 끊어버린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시절 속에서 아버지가 군인-형제, 군인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형제 같은 관계가 된 이들과 무람없이 지낸 것이 추억 속의 음각화로 남아, 자신 역시 군인-형제가 있는 중사가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며 나이를 먹어갔다. 십여 년이 흘러 뉴욕주립대 플랫츠버그 캠퍼스에서 재무, 마케팅, 경영 수업을 듣다가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자 충동적으로 친구들과 입대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브렛을 제외한 친구들 거의 모두는 입대취소를 결정한다. 2002년에 거의 모든 미국인들은 전쟁에 나갈 사람들은 흑인과 히스패닉 등으로 구성된 미국 하층민이란 걸 이미 알았고 국방부마저도 이를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하층민으로 구성된 이라크 주둔지의 사병들의 세계에서 백인에다 대학까지 다니다가 군대에 지원한 브렛이 제대로 적응하기는 매우 곤란했던 모양이다. 킨케이드는 주둔지 키르쿠크에서 먹시, 브로카, 머핸, 라미레즈와 함께 조를 이루어 작전을 수행 했다. 주 업무는 전투이고 남는 시간, 사실 전쟁 중 가장 많은 시간은 전투가 아니라 ‘남는 시간’인데, 하여간 여유시간을 이용해 이들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애’들을 집단 윤간하고, 장면을 목격한 여자애의 가족들을 ‘처리’, 즉 몰살을 한다. 기념으로 살아 있는 소녀의 얼굴을 스위스 군용칼로 도려내고, 의료용 가위로 새끼손가락을 절단 후 살해하고, 브로카는 이를 휴대전화로 사진 촬영을 해 기념으로 보관했다. 이들 미군의 시각으로 볼 때 ‘미친’ 킨케이드는 이런 행위를 군 당국에 고발하지만 친구들, 소위 군인-형제들은 그에게 머저리 고자질쟁이이며 보복당할 거라고 경고를 하더니 진짜로 우군에 의해 고의로 터진 수류탄 파편에 치명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후 퍼플하트 훈장 하나를 받고 의병제대를 하고 만다.
  크게 말하자면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크레시다의 실종을 다룬 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실종된 날, 크레시다는 언니 줄리와 파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자신이 오랜 세월 짝사랑했던 브렛을 만나기 위해 늦은 밤에 건달, 술꾼들이 모이는 울프스헤드 호숫가의 술집 로벅인으로 갔다가, 그와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브렛이 모는 랭글러를 타고 호수 주변을 달리다, 신경정신 치료약과 알코올을 함께 복용한 브렛의 혼몽한 의식 속에서 작은 사고가 나고, 그녀는 사라져버린다. 어떻게 된 걸까. 조수석에서 크레시다와 같은 B형 혈액이 몇 방울 떨어져있고, 역시 크레시다와 같은 검정 머리카락 몇 올이 발견되었으나 며칠, 몇 주가 지나도 크레시다의 시신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곁가지 다 치워버리고 크레시다의 실종에만 초점을 맞춰 읽으면 독자는 편하다.
  근데 나는 이라크 최대 유전지대 키르쿠크에서의 에피소드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문제였다. 마이클 치미노가 감독한 영화 <디어 헌터>를 자주 소환하게 된 것. 조이스 케럴 오츠의 관심은 절대적으로 이라크 전 참전 미국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스스로 최고의 아내감인 줄리와 파혼을 하고, 알코올 중독자 비슷하게 삶을 포기한 상태에서 전 약혼녀의 여동생을 강간 살인한 것처럼 보이고, 자기가 진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강간 살인을 오로지 죽기 위해, 사형당하기 위해 자백하고, 중죄인 남자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일. 반면에 저 대서양과 지중해 너머 키르쿠크에서는 한 가족의 아무 죄도 없는 ‘여자애’가 거구의 미국인 네 명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것을 부모와 오라비와 자매가 눈으로 보아야 했으며, 딸 혹은 누이의 왼쪽 귀 밑에서 턱 쪽으로 얼굴이 절개당할 때도 차마 눈을 뜨고 있어야 했으며, 그들의 기념품으로 자신들의 새끼손가락을 잘라준 후 죽음을 당해야 했던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츠는 현장을 묘사만 했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브렛이 이라크 여자 아이가 강간 살해당할 당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원죄적 죄책감에 시달리기는 한다. 그러나 그의 시각 역시 완전히 가해자의 시선이라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가해자, 가해국의 작가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카시지>보다 딱 한 발자국 더 나가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들추어내, 적어도 공론화시키려 하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 아닐까. 그런 시도가 사회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건 아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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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리안 2020-05-2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나이에 본 <디어 헌터>의 러시안룰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중심인물들 외의 배경은 완전히 의식 밖으로 밀어냈던 것 같습니다. 이 글 읽으며 생각해보니 반전이라는 큰 메시지 하나로 퉁쳐버리기엔 베트콩에 대한 묘사도 찜찜하고 근본적인 모순은 모른 척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0-05-21 19:49   좋아요 0 | URL
별 거 없는 독후감을 잘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케이 2020-05-2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진 않았지만, 디어헌터에 대해 쓰신 내용에 너무 공감합니다. 가해한 국가의 사람들은 불의를 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연민과 동정 이상의 것을 도저히 알 수 없나봐요. 피해자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할 것 아닙니까. ㅜㅜ 아... 이 소설 저 읽어보려고 했는데 강간씬이 나온다는 걸 사전에 안 이상 읽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Falstaff 2020-05-22 12:00   좋아요 0 | URL
아, 씬, 장면에 관한 세밀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단어만 써서 설명을 할 뿐입니다. 근데.... 오츠가 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기는 하고요.
<디어 헌터>야말로 진짜 미국적인 작품이라 생각해요. 이 책도 역시 미국 소설이고요. 공감하신다니 고맙고 반갑습니다. ^^
 
껍데기는 가라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신동엽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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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회가 새롭다. 이제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건 물론, 수능시험에 가장 자주 출제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1975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한 《신동엽 전집》은 나오자마자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금서 처분을 받고, 1979년에 창비시선 20호로 다시 찍은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역시 간행과 동시에 판매 금지에 걸려버렸었다. 하지만 내게는 부모가 사놓은 신구문화사의 《현대한국문학전집》의 마지막 18권 <52인 시집>이 있어 <껍데기는 가라>라는 제목과 신동엽이란 이름이 낯설지는 않았다. <52인 시집>이 나온 1965년 당시에는 많은 시가 당연히 4월 혁명에 관한 것이었으니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가 어린 눈에 그리 명편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오히려 학교에서 말랑말랑한 시만 배운 학생의 눈엔 좀 생경스런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얼마나 명품인가. 그걸 너무 늦게 깨닫고 만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전문



  당시엔 심지어 몇 달 후에 읽을 조태일의 《국토》마저 금서였으며, 그리하여 선배의 하숙방에서 동녘에 붉은 새벽놀이 질 때까지 밤 새 읽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참여시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던 정지용의 모든 작품도 마찬가지 굴레가 씌워졌던 시절. 이제 세대가 바뀌어 늦게나마 모든 작품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때가 왔으니 무릇 사람이라면 이런 진보에 환호작약은 아닐지언정 좋은 마음으로 흐뭇해야 마땅할 터, 그리하여 나는 흐뭇하게 생전 처음으로 신동엽 한 권을 내 소유로 사서 기쁘게 감상했다.
  1930년 부여에서 출생한 똑똑한 소년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떡잎이었던지라 열세 살 때 조선팔도에 내로라하는 5백 명의 청소년에 뽑혀 ‘내지 성지 참배단’의 일원으로 보름 동안 일본을 다녀오기도 하고, 1945년 4월에 전주사범에 입학하기에 이른다. 이때 함께 전주사범에 다니던 동기생 가운데 한 명이 키가 커서 신동엽과 별로 교분이 없었던 소설가, <수난 이대>의 하근찬이다. 전주사범에 다니면서 주목해야 할 일이 벌어진다. 당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일제에 부역하던 부르주아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토지개혁을 흐지부지 끝내버리고 일제 청산 대신 일제 청산을 주장하는 반민특위 지지자 무리들을 싹 쓸어버린다. 신동엽은 이에 항의하기 위한 동맹휴학에 참여함으로써 만 삼 년을 다니던 전주사범으로부터 퇴학처분을 받는다. 당시 나이 19세. 애초에 내성적이고 차분하고 작은 체구로 천생 서생 체질이지만 10대 후반까지 다분히 아나키즘 적인 사상을 일구고 있었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1930년생이면, 우리나라 근대사의 어느 세대가 그렇지 않았겠느냐만, 청소년 시절은 일제 치하와 해방직후 극심한 이념투쟁을 겪자마자 곧이어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을 당했으며, 살아남았다 해도 전쟁 후 공황시기를 맨 몸으로 견뎌가면서 한 가족을 일구고 다시 생을 이어가야 했던 세대다. 여기에 아나키즘 적 취향의 왜소한 시인을 대입해보면, 1950년대와 60년대까지를 살면서 감히 아나키즘 적인 발언은 하지 못하더라도 민중위주의 이데올로기적 중립 통일과 평화를 노래한 것이 당연했을 거 같다.
  한국전쟁이라는 한바탕 큰 폭풍은 신동엽의 생애도 거침없이 휩쓸어간다. 당시 단국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던 신동엽은 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치하의 고향에 돌아와 민청 선전부장을 지낸다. 아무리 신동엽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순진한 아나키즘 적 사회주의자 아니었겠나. 몇 달 후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신동엽은 부산으로 내려가 전시 연합대학에 다니다가 12월에 소집되어 국민방위군에 편입된다. 전시 중에도 최대한의 착복과 부패로 악명 높던 국민방위군에서 헐벗으며 추위와 굶주림에 그 유명한 1950~51년의 겨울을 견뎌내긴 했으나 결국 방위대가 해체되기 전에 빠져나온 신동엽은 다시 고향까지 고된 길을 걸으며 그만 민물 게를 날 것으로 잡아먹어 겨우 아사를 면하는 처지에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는 이 때문에 디스토마에 감염되어, 폐와 간을 손상, 후에 긴 세월에 걸쳐 폐결핵(의심증세)과 간암으로 조금씩 번져 결국 눈을 감기에 이르니 그의 나이 겨우 사십 세였다.
  일본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사용하다가, 순진한 아나키즘에 경도되고, 한국전쟁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스스로 겪어냈으며, 동학농민전쟁 지역인 부여 농민 집안의 정체성, 여기다가 60년대 들어서자마자 터진 4월 혁명은 그를 전형적인 리얼리즘 시인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신동엽을 읽을 때마다 김수영이 말한 “시여, 침을 뱉어라!”의 가장 가까운 쪽에 서서 이 말을 그대로 실천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이의 시에 비분강개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이란 시 한 번 읽어보자. 신동엽도 사랑시를 썼으니.



  진하게
  진하게
  모란처럼 소복함 가득 담고 오너라


  참새스런 깡통한, 날매
  가슴차게 안겨오너라


  경憬이여


  장미처럼 매선 향기
  가시로 쏘아라


  화염華艶한 눈웃음은
  다음 장章으로  (전문)



 누가 신동엽 같은 시인에게 사랑을 받았을까? 위 시에서 사랑의 객체 경(憬)은 그의 아내 인병선이다. 북한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의 따님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월남해 갖은 고생을 하다 이화여고를 마치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신동엽과의 결혼생활을 위해 학교를 때려치우고 부여까지 내려가 양품점을 하며 남편을 먹여 살리던 여인으로 지금은 명륜동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장으로 있다는데, 이이의 호가 추경秋憬이다. 신동엽이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아내를 두고 저런 시 한 수 남길 수 있었으니 세상사 큰 아쉬움은 없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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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우리나라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정말 특색 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이고요. 도대체 이런 작품을 찍으면 우리나라 책 시장에 먹힐 수 있을까 싶은 책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야말로 이 총서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 사실 ‘문화사업’이라 하는 출판 회사의 핵심 역할일 터이니까요. 총서는 현재까지 모두 157권이 출간되었는데 저는 번역시는 전혀 읽지 않는 관계로 시집을 빼고 이 가운데 제가 즐겁게, 공감하면서, 때론 고통스럽지만 많은 걸 얻으면서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문학과지성사가 만든 이 총서의 또 하나의 매력은 시에 있을 겁니다. 다른 출판사들의 전집보다 월등히 많은 빈도수로, 하이네, 아폴리네르, 보들레르, 말라르메, 도연명, 이백 등등 시는 읽어보지 않았어도 이름만 들어도 괜히 기가 죽는 별들의 작품들을 출간했습니다. 이런 시집들은 포함하지 않는 추천이라 사실 반쪽짜리 글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용기를 내봤습니다. 순서는 총서의 번호 순입니다.




4, 5.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페리키요 사르니엔토>

 

  무려 1816년 작품.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대단히 재미있다. 제목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는 우리말로 ‘옴쟁이 앵무새 새끼’라는 뜻으로 주인공 페르디요 사르미엔토의 별명이다. 참 여러 가지로 웃기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작품의 앞 쪽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식농사를 망치는 법이 나오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 전에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해 19세기 초에 완성을 했으니 다분히 계몽적인 소설이라는 건 참작을 하시라. 하지만 당시 백인의 시각을 봐서 대단히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매우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예상 외의 인물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을 것.


 

 


9.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

  스페인 내란 때 공화당을 지지해 형과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고 자신은 감방에 박혀 구상한 희곡이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란다. 두 번째 작품이 <어느 계단의 이야기>. <타오르는....>은 부르주아의 맹인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 차이콥스키의 <이올란타> 장면이 떠오른다. 부르주아 자제들은 자신이 맹인인 것을 모른다. 완전히 규격에 맞는 정형화된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거의 완벽하게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교실에서 행동하니까. 세상 사는데 눈은 슬플 때 눈물을 흘리라고 하느님이 만들어낸 기관일 뿐. 여기에 하늘에 무수하게 박혀 있다고 하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호기심을 갖는 이상한 전학생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묘하게 틀어지는데, 재미있겠지? 명작 드라마다. 두 작품 다.


 


10, 11.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러시아 문학을 읽으려면 피해갈 수 없을 걸? 내가 읽어본 가운데 가장 게으른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부르주아 귀족으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막대한 유산까지 유증 받아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상팔자 인간 오블로모프. 호화로운 넓은 침대에 누워 읽던 신문 한 장을 침대 아래로 떨어뜨리면 가비얍게 벨을 눌러 하인을 불러서 떨어진 신문을 주워달라고 부탁하면 그만인 인생. 좋을 거 같지? 하나도 안 부럽다. 이런 인간을 세상이 그냥 내버려둘까. 그저 꼬이느니 사기꾼에 양아치들, 재산이 조금씩 거덜이 나도 게으른 오블로모프는 지금 자기 형편이 어떻게 되가는지 모르는 잉여인간으로 점점 추락하고 있으니.

 


 


31. 미셸 뷔토르, <변경>

 

  누보 로망 작품. 대산세계문학총서에 이 책 말고 알랭 로브그리예가 쓴 대표적 누보 로망 작품 <밀회의 집>과 나탈리 사로트의 <어린 시절>이 있으나 로브그리예의 미분적 분석과 해체, 사로트의 완벽하게 건조시킨 문장들보다 이 책을 권한다. 로마에 애인을 둔 파리 남자가 기차를 타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자기 앞자리에 탄 인물들, 창밖 풍경, 자신의 직업인 타자기 판매, 연인과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공상 등을 나열하지만 사실 사건이라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꼭 무슨 일이 벌어지고 스토리가 전개되어야만 소설이라는 형식이 완성되는 건 아니니까. 혹시 누보 로망은 읽고 싶은데 로브그리예와 나탈리 사로트 등이 지독하게 건조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최고의 대안이 될 듯.


 

 


35.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무려 1532년 작품. 말이 16세기 소설이지 온전히 지금 시각으로 읽는다면 두 편의 소설이 도무지 ‘문학’작품으로 읽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정말로 책을 읽으실 분은 미리 알아두시라. 그래도 될 수 있으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권하는데, 그건 프랑스 소설을 비롯해 무수한 유럽, 아메리카 소설 속에서 <가르강튀아>를 변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라블레는 이 책을 고매한 술꾼과 고귀한 매독환자 여러분한테 헌정하고 있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볼 때는 매우 난잡하고 불순한 묘사가 넘쳐나지만 지금 읽으면 애교 만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경악할 수준의 과장과 해학과 익살로 일관하는 이 작품의 어디가 그토록 많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을까, 한 번 생각해보셔도 좋겠다.


 

 


39. 이보 안드리치, <드리나 강의 다리>

 

  강력추천. 보스니아. 하필이면 동서의 분기점에 자리 잡아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전쟁의 현장이 됐던 곳. 다른 민족들이, 다른 종교를 가진 집단들이 하필이면 이 땅에 몰려와 싸움을 하던 드리나 강의 이 언덕과 저 언덕 사이에 16세기 초반, 웅장한 아치형 다리를 건설한다. 다리의 건설을 둘러싼 전설적인 이야기들과 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약 4백년에 이르는 다리 주변 원주민들의 신난고난한 이야기들. 다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들에 관해 풀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싸움과 죽음을 넘어 공존과 화해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는 당신,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65. 모옌, <홍까오량 가족> 또는 <붉은 수수밭>

 

  원래는 박명애 번역의 <홍까오량 가족>이었으나 박씨와 계약이 끝났는지 역자를 바꿔서 제목을 <붉은 수수밭>으로 다시 내놓았다. 나는 <홍까오량 가족>으로 읽었고 굳이 <붉은 수수밭>마저 읽을 정성은 없다. 말이 필요 없는 모옌의 대표작. 중국소설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데, 아무리 안 좋아해도 이 작품의 일독은 권할 수밖에 없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위대한 강태공의 제나라 땅에서 벌어진 남녀상열지사에다 항일 전쟁의 불행하고 참혹하고 참담한 광경을 읽기에 재미있으면서 실감도 나는 표현으로 일관한다. 영화 <붉은 수수밭>보다 훨씬 재미있다. 무척 길지만 한 번 첫 페이지를 열었다하면 날 새는지 모르고 일박 이일이면 해치울 수 있을 터.


 

 


71.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별과 사랑>

  폴란드인 아버지, 파리 출생, 멕시코에 정착한 복잡한 인류, 포니아토프스카. 로렌소 데 테나라는 이기적 지식인의 일생. 그의 이기심은 그러나 멕시코의 발전을 위한 헌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도 천문학 연구를 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이 많은 어린애 수준의 인간. 대부분의 천재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하던 일에 관해서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증명될 때까지 온갖 무리를 써가며 고집을 부린다는 것. 그게 주위의 많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 본인만 모르는 편. 멕시코를 위시한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환상소설 기법을 과감하게 배제한 리얼리즘 소설.


 

 


72, 73. 쓰시마 유코, <불의 산>

 

  쓰시마 유코는 다자이 오사무의 딸.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분들 많지만 난 그이보다 쓰시마 유코가 백 배 더 좋고, 글도 백 배 더 잘 쓴다고 생각한다. 메이지 유신 시대부터 태평양 전쟁 패전까지 5대에 걸친 가족사 이야기. 5대에 걸쳤으면 그게 아무리 보통의, 평범한, 별 거 없는 집안이라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 하나쯤 있을 건 분명하고, 너무 웃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장면 또한 하나쯤 있을 것도 분명하다. 작품의 시간적 공간을 이리 길게 잡아놓고, 분량 또한 천 쪽에 이르면 가히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이런 의견이 매우 타당하다는 증거가 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한 문장으로 탄탄한 벽돌집을 만들어내고 있다.


 

 


82. 알프레트 안더쉬,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

 

  이 총서의 진짜 매력 가운데 하나가 처음 듣는 작가의 좋은 작품을 많이 소개하는 일. 이 책도 그중의 하나다. 안더쉬가 47그룹의 일원이라 하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 안더쉬는 1937년의 (함부르크 근방쯤으로 상상할 수 있는)독일을 무대로 광활한 대양을 건너는 호연지기를 품은 소년과, 그냥 독일에 머물겠다는 딸을 위해 독약을 먹고 숨을 거둔 어머니의 뜻을 따라 외국으로 도망할 계획인 유대인 유디트 아가씨, 더 이상 공산주의 운동을 하면 이젠 다하우에 끌려가 흰 연기가 되어 나올 수 있다는 아내의 바가지 때문에 이젠 공작원과의 접선을 꺼리는 어부 크누트센 등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퇴폐미술로 찍힌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목각 <책 읽는 수도사>를 지키려 애쓰는, 몸 아픈 목사 헬란더 등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바 작지 않다. 짧지만 예상외의 감동을 줄 수도 있는 책이니 유념하시라.


 

 


87. 토마스 브루시히,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동독인으로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는 입장은 어땠을까? 말이 동서 동격에 의한 합의 통일이지 누구나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인 것을 아는 바에. 40년이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통일이라는 낯선 현실을 만나는 어색한 순간을 변화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시절의 1965년생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가 때로는 익살스럽게, 가끔 통렬하게, 자주는 희화적으로, 열 명 가량의 서로 다르고 낯선 등장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혀 크게 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작품으로 나는 이 한 권으로 브루시히의 팬을 자처했다. 그의 다른 책들이 모두 절판이라 더 읽을 책이 없는 게 아쉽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죽음을 맞는 법도 소개하는 책이니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한 번씩 읽어보시면 좋겠다.


 

107. 맬컴 라우리, <화산 아래서>

 

  엉덩이가 질기거나 인내심이 좋은 독자에게 추천. 처음부터 끝까지 술 마시는 이야기. 1938년,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영국 영사 제프리 퍼민이 멕시코 고유의 축제 11월 2일 ‘죽은 자의 날’ 열두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섬세하게 담았다. 퍼민은 영국이 멕시코와 국교를 단절하는 바람에 귀국을 포기하고 멕시코의 악명 높은 두 화산 사이의 마을에 은둔하며 살고 있는데, 사실 은둔이라기보다 알코올 중독, 술을 마셔도 너무 마셔서 아내 이본, 가족과 친척, 그리고 조국에 의하여 버림받은 신세에 떨어졌다는 것이 옳은 상태. 책은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편을 타고 흐르는 애잔한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변환하는 행간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16.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굳이 추천을 하지 않아도 다들 찾아 읽으실 책. 요사이 우리나라에 츠바이크 신드롬이 퍼져 그가 쓴 작품이라면 구별하지 않고 거의 베스트셀러의 수준으로 판매가 되는 거 같은데 그중에서 <초조한 마음>이 문학적 완성도가 가장 돋보이지 않나 싶다. 물론 아마추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헝가리 외곽지대. 파견 온 호프밀러 소위와 지역 유지의 선병질적인 외동딸 에디트 케케스팔바 사이의 사랑과 연민과 불행. 이런 스토리보다 주인공들에 대한 놀라운 심리묘사가 훨씬 돋보인다.


 

 


120. 엘리자베스 클레그헌 개스켈, <남과 북>

 

  마거릿 헤일과 존 손턴. 마거릿은 애정과 인정 많고 자주적인 성격의 남부 출신이고, 존은 냉정하지만 매사 정확해서 똑 떨어지고 개혁적인 성격인 북부 깍쟁이 사업가. 이들이 결혼해 한 가정을 이루어 공장 바로 옆에서 신혼살림을 꾸린다. 개스켈은 놀랍게도 조지 엘리엇의 시대인 1855년에 남녀의 갈등구조를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들의 대조적인 삶의 형태로 구분해놓고 결국 인정 많은 마거릿의 포용을 존이 받아들임으로써 해피엔드로 만들어낸다. 역시 처음 읽은 개스켈이었고, 이 책으로 이이의 다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 개스켈은 당시에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었을지 매우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133, 134, 135. 페터 바이스, <저항의 미학>

 

  이 책이야말로 엉덩이 질기지 않으면 애초에 포기하시라. 거대한 주제들을 장대한 분량으로 장황하게 써내려간 바이스의 놀라운 작품. 난 이 책에 소위 뻑 갔지만, 이후 바이스의 다른 작품에 도전하기가 머뭇거려져 겨우 <소송, 새로운 소송> 한 편만 더 읽었을 정도다. 책을 출간한지 4년이 넘었는데 올라온 독자서평은 내가 쓴 잡문 하나뿐이다. 작품이 너무 방대해 짧은 평으로 쓰기가 쉽지 않다. 수다한 미학적 관점으로 본 예술작품들과 공산주의 운동,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세계정치 같은 것들에 관해 거의 논문 수준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시간이 넉넉한 분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꼼꼼히 읽을 수만 있다면 양질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터이다. 하지만 정작 책은 사 놓고 추천한 나를 욕하기 없기.


 


147. 리온 포이히트방거,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

 

  “도대체 18세기 말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시작한다. 유대인 작가 리온 포이히트방거가 나치 치하에서 외국에 체류하고 있다가 퇴폐문학 혐의로 그의 모든 저서가 불태워지는 화를 당했는데, 당시를 18세기 말의 스페인 왕실에 횡행했던 어처구니없는 미신에 비유한 건 아닐까? 여기에 18세기 기준으로는 매우 발칙하고 맹랑한 화가가 있었으니 벨라스케스의 뒤를 이어 유명 궁정화가가 되는 프란시스코 고야. 그래도 스페인 궁정과 왕실은 고야가 자신들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린 가족 초상화를 보고 바보처럼 훌륭한 작품이라 했을지언정 탄압하려 하지 않았고 고야가 자유로운 주제로 그림과 판화를 그리고 만들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재미있는 책이지만 좀 길다. 해설까지 합해 약 830쪽. 역시 인내력 테스트에 통과하신 분들에게 추천.


 

 


156. 마거릿 드레블, <찬란한 길>

 

  <찬란한 길>, <타고난 호기심>, <상아의 문>으로 이루어진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 하는데, 640쪽 분량의 장편을 다 읽으면 나머지 두 편도 얼른 번역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삼부작 중 첫 작품은 1979년 12월 31일 새해 이브 파티로 시작한다. 평생 여섯 명의 남자와 자본 적이 있는 주인공 리즈는 이 파티에 이름도 모르는 네덜란드 남자를 제외하고 다섯 명을 불러놓고 흐뭇한 마음으로 이들을 바라다보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없는 집 출신이지만 깨나 성공한 리즈와 그렇지 못한 그의 두 친구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시절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만나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영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는 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머지 두 편이 그리울 정도로 재미있는 책.


 


 


  번외
  이 책들 말고도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 헨리 필딩의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개척자들>,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의식>,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트리스트럼 샌디>는 오래된 책이지만 여전히 포스트 모던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세련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발한 작품으로 다른 출판사를 통해 읽은 책입니다.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는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작품이라 이제 현대 독자에게 흥미를 이끌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유럽의 여러 작품 속에서 고루 인용하는 책이라 참고삼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두 권으로 되어 있어 책 읽는 시간도 많이 필요해 과감하게 추천하지는 못하는 심정,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개척자들>은 <모히칸 족의 최후>에서도 나오는 내티 범포, 가죽스타킹으로 특히 다른 미국소설에 많이 재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개척자들>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하시면 대신 <모히칸 족의 최후>라도 읽어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노의 의식>, <파우스트 박사>,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무조건 읽어주어야 하는 명작입니다만 저는 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습니다. 특히 <제노의 의식>은 대산세계문학총서가 유일한 직역이니 이 책을 선택하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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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15 0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산세계문학총서 정말 소중하죠!
폴스타프 님이 말씀하신 책 중 제가 안 읽은 것도 많지만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
<오블로모프>
<초조한 마음>
<거장과 마르가리타>
<제노의 의식>

이건 정말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오블로모프> 이건 정말 안 읽고 이 세상 떠나는 분들은 후회할 명작. ㅎㅎㅎ <오블로모프>는 올해처럼 집콕할 때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침대에 누워서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5-15 10:15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대산총서 진짜 대박이예요. 위에 쓰지 않았지만 리스트에 올릴까 말까 고민한 것들도 많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05-15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에서부터 쭉 읽어내려오면서 어쩌면 이렇게 읽은 작품도, 아는 작품도 없단 말인가! 하다가, 드디어 가지고 있는 몇 개의 작품을 만나게 되네요. <드리나 강의 다리>, <남과 북>, <홍까오량 가족>을 제가 가지고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아직 읽지 않았지만요.

<남과북>은 글 쓰신 거 보니 남주와 여주가 결혼해서 사는 이야기들이 나오는가 보군요. 저는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거기서는 결혼해서 사는 것 까지 나오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붉은 수수밭
>도 중학생 때 공리 주연의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그 때 어린 나이에 꽤 지루하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로 읽으면 또 이렇게나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그래서 사둔 책일텐데... 왜 안읽고 있을까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아주아주 힘겹게 며칠에 걸쳐서 읽은 기억이 나요. 러시아 소설 특유의 그 낯선 이름들이 튀어나오는 통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것 같아요. 다 읽고서는 다 읽었다는 해방감만 느낀 책이었어요. 한 번 더 읽으면 좀 더 쉽게 읽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차마 다시 읽을 엄두는 나질 않는 책입니다. <초조한 마음>은, 크, 저도 엄청 좋아햇던 책이에요. 서투른 연민은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감탄하면서 읽었더랬죠.

최근 읽은 <출신>에서도 <드리나 강의 다리>작가가 언급되는데, 어휴,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책들, 먼지도 털겸 읽어야겟어요. 방금전까지 장바구니에 책 담으면서 책 사려고 으르렁댔는데, 저는 살 필요가 없네요. <드리나 강의 다리> 읽으려고 했는데, 1박2일이면 읽는다는 <홍까오량 가족>을 먼저 읽을까봐요.

아, 이 페이퍼 너무 신나네요. 별찜해두어야겠어요. *^^*

Falstaff 2020-05-15 10:21   좋아요 2 | URL
읍. 다락방님께서 제 서재까지 마실을 해주시다니 감격입니다.
가지고 계신 세 권의 책, 재미있는 걸로만 고르셨네요.
근데 이 시리즈는 독자는 생각하지도 않고 문학성 또는 문학적 가치 위주로 작품을 고르는 것 같아서, 전 이게 제일 불만이고, 동시에 이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하여튼 쉽게 읽히는 책이 별로 없더라고요.
종종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coolcat329 2020-05-15 1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폴스타프님의 이런 글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아는 작가가 모옌 , 츠바이크밖에 없지만요. <오블로모프> 꼭 읽고 싶네요. <초조한 마음>도요.

Falstaff 2020-05-15 12:30   좋아요 2 | URL
ㅎㅎㅎ 기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좋은 선택을 하셨군요.
하여튼 이 총서는 매번 각오하고 책을 사셔야 할 겁니다. 만만하게 그냥 휙 넘어가는 책이 거의 없어서요. ^^

잠자냥 2020-05-15 12:46   좋아요 1 | URL
<오블로모프>는 정말 새롭고 강렬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고요.
<초조한 마음>은 한번 잡으면 내려놓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GoldenSlumber 2020-05-18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문지판을 먼저 읽었지만 개인적으론 민음사판 번역이 훨씬 좋았습니다. <초조한 마음>, <붉은 수수밭>도 좋아하는데 추천해주시니 반갑네요^^

Falstaff 2020-05-18 10:30   좋아요 1 | URL
<거장...>이 그렇군요.
전 민음사 판으로 읽고 어딘지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지금 다른 출판사 판으로 한 번 더 읽어볼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거든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국수
김숨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홉 편의 단편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김숨으로 말하자면 장편 <바느질하는 여자>를 읽고 섬세한 신경줄을 건드리는 솜씨에 반했던지라 이이의 다른 책을 선택하는 데는 별 고민이 없었다. 이 책 《국수》에서도 김숨 특유의 화법, 가족간의 의사 불통과 그것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상호간의 오해가 특유의 섬세한 씨줄과 날줄로 섬뜩할 정도로 꾸려나가고 있다. 특히 표제작인 <국수>와 첫 번째 실린 <밤차>, 그리고 구제역 당시 돼지 살처분을 다룬 <구덩이>, 이렇게 세 편을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 여기서 얘기하는 재미는 무릎은 쳐가며 웃을 수 있는 재미가 아니라 김숨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서늘함 같은 걸 얘기하는 건 물론이다. 내가 무슨 평론가도 아니고 흔한 서평가도 아니니 단편소설을 놓고 스토리를 소개해가며 작품을 뜯어 해부하고 분석하는 일은 못하겠고, 그저 느낌을 말하자면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 그냥 서늘한 슬픔 또는 상실, 이 정도가 다다.
  많은 작품이 죽음과 질병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 <밤차>는 대장암 말기 수술을 받고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운 며느리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해 밤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시어머니, 밀가루 반죽을 해 국수를 해주던 의붓어머니가 설암에 걸려 혀를 잘라내기 전 이제 예전에 그이가 해주었듯이 국수를 밀어 끓여주는 <국수>, 아흔이 넘었으니 호상이긴 하겠으나 어쨌든 치매에 이어 죽음을 맞은 어머니를 앰뷸런스에 싣고 고향으로 향하는 자매 이야기인 <옥천 가는 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서는 하필이면 영하 18도의 맹추위가 닥친 겨울밤에 보일러가 고장이나 얼어 죽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선 폐지 줍는 남자가 나오고, 전립성비대증이 심각해 소변을 참지 못해 결국 차 안에서 바지에 방뇨를 해버리는 남편과 갑상선암 때문에 한쪽 갑상선을 떼어낸 아내가 <명당을 찾아서>에 등장하고, 심각한 정서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편과 직장에서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그 밤의 경숙>, 아내가 직장암 말기라 수술을 했지만 전신에 암이 퍼져 의사가 배를 갈랐다가 그냥 덮어버리고 마는 <구덩이>, 마치 부조리극의 주인공 같은 인물과 유방암 말기의 어머니를 등장시키는 마지막 작품 <대기자들>까지 독자들은 모든 작품에서 아프거나 거의 죽음에 가까운 사람(들)을 만날 수밖에 없다.
  하긴 세상에 누가 있어 자신이 정상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국수》의 단편들에서 등장하는 환자, 죽은 자들은 작가가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는 가족 또는 인간 사이의 불통과 불화, 오해 등을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치명적인 말기 암환자, 이미 죽음을 예약한 환자들을 자주 캐스팅한 것 같아 약간 불만이다. 김숨의 작품목록을 보니 ‘다작’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자신의 생각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약발이 잘 받는 방법으로 아직까지는 치명적인 병이라 여기는 암환자들을 쓴 것을 두고 독자가 뭐라 할 수는 없다. 작가의 권리이니까. 그래도 아홉 작품 가운데 가망이 없는 말기 암환자가 네 명, 완치가 되었으나 한쪽 갑상선을 절제해버린 인물이 한 명 등장하면 빈도가 아무래도 좀 많다,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전혀 가능하지 않겠지만, 김숨, 이 사람 한 번 만나서 더도 아니고 딱 소주 한 병씩만 마셔보고 싶다. 얼마나 우울한 사람이면 글들이 거의 빠짐없이 이리 시릴 수 있을까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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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 2021-05-10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익스피어와 벤 존슨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시대에 인기 있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세익스피어만을 기억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캐릭터를 믿었고,
벤 존슨은 자신을 믿었다.
저는 가끔 이 말을 떠올립니다.

Falstaff 2021-05-10 20:22   좋아요 0 | URL
이 책 쓴 작가세요? 댓글이 진지해서 혹시 하는 마음에. ㅎㅎㅎ 아니시겠지요 뭐.
별 신경쓰지 마세요. 그저 책 읽은 소감이 그렇다는 ‘독후감‘일뿐입니다.
행인께서 하신 말씀이, 어떤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맞습니다. 제가 틀렸습니다.
그래도 ‘누군가‘의 얘기보다 아주, 아주, 아주 가끔은 그냥 독자의 말도, 혹시 알아요, 더 들을 만한지. 아, 물론 이 독후감이 그러하다는 건 아닙니다.
아무쪼록 행복하세요. 다음엔 익명의 벽 앞으로 나오시면 더 좋겠습니다만 그저 바랄 뿐입니다. 요구는 아니고요.
 
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은 사학자 김윤희가 발칙한 역사학자라는 좋지 않은 평을 들을 각오를 하고 쓴 평전.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독후감을 쓰려하니 나도 덩달아 발칙한 독자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이 앞선다. 피식민 경험을 한 나라의 국민으로 편하게 살기 위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완용, 하면 그냥 나라를 통째로 팔아먹은 친일 매국노라고 여기며 살면 된다.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이며, 을사조약 2년 후인 1907년에 맺게 되는 정미7조약과 이어 고종퇴위,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일합방 서명까지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이완용이 한 짓이라 단정하고 살면 편하다. 그러면 이완용 말고 당대를 살던 거의 대부분의 위정자들, 고종을 비롯한 모든 위정자들은 면죄가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매국의 죄를 가볍게 보이게 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 성인들 대부분 그러하듯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책을 전혀 읽지 않다가 이제 뼈마디 쑤시고 어금니 빠질 때 되니 시간이 나 독서에 몰빵하기 시작한 나는 특히 북아프리카 사막 위에서 살던 민족들이 막강한 무력을 자랑하는 유럽 백인들의 침략에 맞서 싸우며 국토 전 지역에서 전투를 벌여 한 곳, 한 곳 심각한 타격을 입고 결국 굴복해 식민지로 떨어진 것이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빈약한 무기를 들고 백인들을 향해 독립을 외쳐 기어이 나라를 다시 뺐어오는 광경이 감격스러웠다. 우리의 역사는 극소수의 지배계급이 자기들끼리 모여 굴욕적 조약의 몇 부분을 ‘이렇게 수정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만 해주시면 도장 찍어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해가며 외교권을 빼앗겼고, 국권을 들어다 바쳤다. 35년에서 보름이 모자라는 세월을 지나, 일주일 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뚱보’와 ‘꼬마’ 두 방의 폭탄 덕에 또 느닷없이 해방을 맞는 우리의 현대사가 나는 슬프다.
  세계에서 가장 야만적인 문명을 가지고 있던 조선이란 나라에서 환경과 변화, 그것도 격변 속에서 가장 잘 ‘적응’한 자에 관한 이야기. 당신은 놀랠 수도 있다. 여전히 당신 주변에 이와 비슷한 인간들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져야할 것인가.
  그런데, 몽고족의 나라 원이 고려를 침공한 이후 한반도가 중국의 식민지가 아니었던 적이 잠깐이라도 있었나? 이것부터 솔직하게 논의를 해야 할 거 같다. 몽고라는 세계 최강, 결코 이길 수 없는 외부의 적이 침공하여 100년에 이르는 무신정권을 종식시킨 다음 원, 명, 청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이 말이 좀 걸린다면 적어도 ‘속국’의 위치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다. 막강한 중국에 자주독립을 주장하기만 하면 그나마 명줄이라도 보전할 수 없었을 터이니 그게 최상의 방법이긴 했을 것이긴 하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면 늦어도 영조시대엔 개항을 해 유럽의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사상, 경제, 군사적으로 거의 제국주의 수준에 이르는 방법 말고는 없었는데, 만일 그렇게 했더라면 청의 강희제나 옹정제가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명나라 초기 정화의 원정 이후 굳게 문을 닫고 있었던 터에 일개 속국인 조선이 백인 유럽에게 문을 연다는 건 난센스. 솔직히 조선이 식민지로 떨어진 책임을 묻는 일은 아프리카가 식민지가 된 책임을 묻는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당시는 식민주의 시대였고, 조선은 가망이 없는 야만의 나라였다는 걸 슬프지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아프리카에서는 줄루족의 대규모 전투라도 있었지....)
  좋다. 그렇다면 1876년 일본에 의하여 제물포 항이 열린 이후에라도 제도를 새로 해서 국가의 기틀을 제대로 했어야 한다고? 그게 가능했을까?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의 몇 백 년에 걸친 발전과정을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수십 년 만에 뚝딱 해치우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으로는, 세상에 운 좋은 놈은 당해내지 못한다고, 일본이 갑오년 청일전쟁 당시 평양전투에서 청나라를 꺾은 건 그렇다 치고, 1904년 북극곰 러시아와 한 판 붙어 승리를 거둘 줄 누가 알았겠나. 게다가 승전이후에 조선은 속 빈 강정인 걸 알았던지라 삼국간섭과 미국의 견제가 드넓은 만주 경영에 집중되어 일본이 조선을 먹는 건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여기에서 앞에 이야기한대로 전국적으로 지역단위의 봉기와 투쟁이 일어나 예를 들어 각 도의 관찰사가 지휘하는 군대가 막강한 일본군대에 저항하다 실패, 패배로 인해 합병이 벌어지지 않은 걸 통탄할 수밖에. 제대로 된 저항의 역사가 없었다는 것. 구한말 의병활동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봉건적 양반, 아니면 군왕제 지지자들이 이끄는, 농민 위주로 갑자기 구성된 의병들이 일본군과 조국의 정규군까지 합한 군대에 제대로 대항이나 해보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을 터. 그리하여 누군가 왕을 대신해 국토의 양도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했으며, 감히 왕을 비난할 수 없으니 왕 대신에 누구에겐가 욕을 한 바가지 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이완용이 된 것 아닐까. 요새 매스컴의 엉터리 역사 설명에 의하여 재조명을 받고 있지만 나는 이 시절의 왕, 고종의 용렬함을 도무지 좋게 봐줄 수 없다.
  이완용을 이 책에서처럼 현실주의자이며 합리적인 근대인이라고 포장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보다 객관적 사실을 써내려간 평전을 읽어보면, 숱한 자기개발서적에 성공한 인물이 되고 싶으면 반드시 들여야 하는 습관, 뭐 이 비슷한 것을 모두 종합해 갖추고 있고 그것들을 정말로 실행에 옮긴 우리 근대사의 한 명이 바로 이완용이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 만 33년 반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숱한 사람을 겪었던 바, 이완용 같은 인간들이 회사에서도 잘 나간다. 그러니 자기계발 서적에서 잘난 놈들의 특징의 종합이라 하는 것.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 보면 재수 없다는 거. 이런 류의 인간들을 싫어하는 건 내 문제니까, 직장 생활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 이완용의 처세를 배워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너무 솔직하게 얘기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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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0-05-14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쩌다보니 이직만 세번 했는데요. 어떤 회사든 아래 사람들한테 평이 좋은 사람은 회사에서 밀려나고, 윗 사람한테 평이 좋은 사람은 승승장구하더군요. 한마디로 꼴보기 싫은 인간들이 살아남기 쉬운 구조라고나 할까요. 이완용 처세를 배우고 싶진 않네요. 저는 그냥 회사에서 밉상이고 그닥 크게 성공할 가능성 없는 직장인으로 얇고 길게 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좋은 리뷰 감사해요!

Falstaff 2020-05-14 10:47   좋아요 1 | URL
저도 지금 다니는 회사가 네 번째이자 마지막일 게 확실합니다. ㅋㅋㅋ
몇 년차신지 모르겠습니다만 끝까지 가는 거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저도 13개월 동안 120평 넓은 사무실에서 냉난방 없이 혼자 대기발령 버텨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우리나라 최장 대기발령 기록일지도 몰라요. 얇으면 잘 끊깁니다. 두껍고 질겨야 오래 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