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흙 문학과지성 시인선 280
조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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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은의 세 번째 시집. 물론 처음 읽는 조은이다. 이름이 참 재미있다. 조은. 검색해보면 조은 DA, 조은 주택, 조은 푸드 육가공, 조은 성모 안과의원, 조은 타이 마사지 등이 나오고 이어서 시인 조은의 사진을 구경할 수 있다. 1960년 안동 생. 1988년에 데뷔하고 몇 권의 시집을 낸 이력밖에는 정보를 구할 수 없다. 특히 바이오그래피는. 하긴 그런 거 알면 뭐 하나. 시인이 시만 좋으면 그만이지.  조은의 시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시집을 샀고, 읽었다. 이 시인 역시 주된 관심사는 탄생과 삶과 죽음의 사이클. 이렇게 또 한 명의 시인이 쓴 또 한 권의 나와 맞지 않는 시집을 읽었다. 왜 시인들은 이리도 무거울까. 뭐 진짜로 만나면 내가 번쩍 들 정도의 체중밖엔 나가지 않겠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삶의 정체는 어떤 이유로 이렇게 우울과 죽음의 색조화장을 하게 되었는지 이젠 궁금증을 넘어 의례 그러려니 할 정도가 됐다. 중국에서 열린 시인대회에 참석해 중국의 유명 여류 시인한테 다른 건 몰라도 오줌발 하나는 지기 싫어 중국식 개방형 화장실에서 힘을 줘 오줌을 눴다는 시를 쓴 김민정이 그리울 지경이다. 하긴 지금은 만 61세지만 조은이 이 시집을 낼 당시의 나이가 43세.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직도 그렇다면 좀 문제지만.
  시집의 제일 앞에 실린 시부터 누군가가 죽는다.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
  여럿이, 한꺼번에, 잠재운 고통을 깨우며,

 

  울고 있다
  동네 개는 모두 짖어대고
  불을 켜려 허둥거리며 나는
  재빨리 모르는 한 죽음에다
  나의 죽음을 겹쳐본다

 

  누군가 죽었다
  누군가 죽었다

 

  어둠의 노른자위에 있는
  나의 손 닿는 어딘가가 썰렁하다
  이곳 어딘가는
  세상을 버린 자와 닿아 있었다
  가쁜 소리를 내던 문도 숨을 멎었다

 

  한때 숨쉬던 흙덩이는
  오열 속에 해체되고 있으리라

 

  이웃들도 불을 켠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 죽었다  (전문)

 


  시인이 노래하는 것은? 죽음의 사발통문.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시인이 들은 것은 울음소리다. 누구의 울음일까. 둘째 연에서 보듯 동네 개가 한 마리 짖으니 모든 동네의 개들이 이를 따라 짖는 걸 여럿이 한꺼번에 잠재운 고통을 깨우며 울고 있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 여럿이 한꺼번에 잠재운 고통을 깨우며 울고 있어서 이것을 들은 동네의 암캐 수캐들이 따라서 달도 없는 캄캄한 밤에 짖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하여튼 (사람 또는 개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깨 허둥지둥 불을 켜기 위해 손짓을 하는 시인은, 자신의 방에서 ‘고통을 깨우며’ 누군가가 죽었다고 지레짐작을 하며 거기다 자신의 죽음을 겹쳐버린다. 이 시에서 자신이 잠자고 있던 방은 이 시집 전체에 중요한 기재로 등장한다. 시인은 이미 죽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이곳 어딘가, 시인이 몸을 뉜 방 어딘가 세상을 버린 자, 죽은 자와 닿아 있다. 문도 숨을 멎었으니 이젠 다시는 열리지 못할 것. 이 문은 다른 시 <문고리>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삼 년을 살아온 집의
  문고리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았던 문
  헛헛해서 권태로워서
  열고 닫았던 집의 문이
  벽이 꽉 다물렸다
  문을 벽으로 바꿔버린 작은 존재  (하략)

 

  숨을 멈춘 문은 문고리가 떨어져 이제 열고 닫히는 기능이 없어지면서, 소통의 장소인 문이 단절의 대명사인 벽으로 바뀐 것. 사람을 완전히 단절시킬 수 있는 것은 죽음 또는 묘혈로써의 문이 숨을 멎은 방이다. 이번에 시집 좀 읽으려고 여덟 권이나 사 놓았는데, 죽음이라, 다른 시집들도 이러려나.
  두 번째로 실린 시에는 새로운 시적 상징이 등장한다.

 


  한 번쯤은 죽음을

 


  열어놓은 창으로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히 방으로 들어왔다
  창틀에서 말라가는 새똥을
  치운 적은 있어도
  방에서 새가 눈에 띈 건 처음이다
  나는 해치지도 방해하지도 않을 터이지만
  새들은 먼지를 달구며
  불덩이처럼 방 안을 날아다닌다
  나는 문 손잡이를 잡고 숨죽이고 서서
  저 지옥의 순간에서 단번에 삶으로 솟구칠
  비상의 순간을 보고 싶을 뿐이다
  새들은 이 벽 저 벽 가서 박으며
  존재를 돋보이게 하던 날개를
  함부로 꺾으며 퍼덕거린다
  마치 내가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는 것처럼!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새들은 절대로
  출구를 찾지 못하리라
  한 번쯤은 죽음도 생각한다면……  (전문)

 


  첫 번째 시 <울음소리에 잠이 깼다>에서 죽음 또는 묘혈의 상징이 된 방에 그만 새들이 들어왔다. 연인처럼 은밀하게 들어왔다니까 두 마리인 듯하다. 방의 주인 ‘나’는 새들을 방관한다. 해치지도 않고 방해도 안 하고 그냥 내버려둔다. 새가 정말로 방 안으로 들어온 경험이 있으신가? 투명한 창문이 아니라면 벽에 부딪히지 않는다. 좁은 방이라면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큰 사무실에선 그렇다. 대신 투명한 유리벽에 온몸을 쿵쿵 박아 죽음에까지 이른다. 시인은 이 모양을 자신이 마치 관 뚜껑을 손에 들고 닫으려 하는 것처럼 보고 있다. 새들이 살려는 욕망으로만 날갯짓을 한다면 결코 들어온 곳으로 다시 나갈 수 없단다. 한 번쯤 죽음도 생각해보면 혹시 모르겠다면서. 그럼 새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기에 허락도 없이 방에 무단침입을 해서 쿵쿵 머리를 박고 있을까.

 


  새

 


  새가 내 머리 위를 불덩이처럼 맴돈다. 언제 저 새가 이 방으로 들어왔을까? 애써 침잠시킨 어두운 한 세계가 역행하고, 숨골이 활짝 열리는 열기. 어떻게 저 새가 이 방으로 들어왔을까? 웅크린 내 몸이 깔고 있는 지렛대 같은 어둠을 극도로 부풀리며 새는 활기차게 난다. 내 몸에서 번쩍 눈을 뜨는 먼지들, 전신을 뒤집으며 소용돌이치고, 휘청거리며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깜깜한 길 하나. (전문)

 


  ....란다. 세상을 버린 자와 닿아있는 내게서 떨어져 나가는 깜깜한 길? 맞아? 그럴 리가 있나. 물론 조은의 시가 전부 이런 건 아니다. 이 시집에서도 더 눈에 띄는 건 탄생과 죽음이란 사이클의 연속, 죽음이 있는 곳에 탄생이 있고, 거꾸로도 마찬가지인 장면이긴 하다.
  조은의 시가 좋은 시라고들 한다. 하여튼 조은의 시가 시를 감상하는 재주가 없는 내게 와서 고생을 좀 한 건 확실하게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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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11 1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분석을 해주신 부분들이 흥미진진한걸요? 맞지않았다고 하셔도 궁금해질만큼요ㅋㅋ시인은 아마도 가까운 사람의 죽음 때문에 침잠했었나 봐요.

Falstaff 2021-05-11 10:39   좋아요 3 | URL
ㅎㅎㅎ 잘 읽어주셨군요. 고맙습니다.
근데 전 시도 잘 몰라요. 요즘 시집을 대강 이런 식으로 읽더라고요. 그래 저도 모르게 시를 ‘감상‘하는 대신 따져본 거 같습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쉽지 않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창비세계문학 84
로베르트 무질 지음, 정현규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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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베르트 무질은 무려 열 권에 달하는 대표작 <특성 없는 남자>를 2권까지 읽었는데, 스스로 무질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출판사 북인더갭의 안병률 사장의 번역이었으며, 반드시 완역이 나와야 할 책이라는 주장에 굳이 반대할 의견은 없으나, 직접 읽어본 독자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안병률 사장에게 가장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게 딱 두 권만 번역하고 스톱 했다는 것이었다는 점 역시 밝혀두고 싶다. 왜냐하면, <특성 없는 남자>를 읽는 내내 소년 퇴를레스가 칸트를 읽을 때 느낀 것하고 비슷하게, “뼈밖에 없는 노인의 손이 머리에서 나사를 돌리듯 뇌를 빼내는 것 같은 느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역시 작가가 로베르트 무질이었으므로 만일 이 책이 4백 쪽을 넘어가는 분량이었다면, 언젠가는 읽었겠지만 틀림없이 지금처럼 신간 안내가 뜨자마자 사서 읽는 일은 없었을 듯하다. 이 정도면 얼마나 덴 줄 아실 듯.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이 무질의 첫 작품인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적어도 무질의 청춘 시대에 쓴 소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1880년에 남부 오스트리아에서 엔지니어 집안에서 태어난 로베르트 무질은 열네 살에 매리쉬-바이스키르헨 군사고등실업학교에 입학한다. 여기가 모르긴 해도 기숙학교일 것 같다. 무질은 군사고등실업학교에서 삼 년 만에 중퇴하게 되는데 이 학교에서 경험했던 것을 몇 명의 작가에게 작품으로 써보라고 제공했지만 아무도 시도를 하지 않아 자신이 직접 소설로 썼다고, 책 뒤편의 작품해설에 쓰여 있다. 왜 초기작품일 것이라 짐작했는가 하면, 열네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두뇌활동이 왕성한 사춘기 소년의 사변적 방황을 섬세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시절을 끝마치고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운 시간 안에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 생각해서다. 이 작품이 현대 모더니즘 소설에서 각광 받고 있는 기념비적 작품이라고들 하면, 독자의 감상은 별개로 하더라도, 뛰어나다는 뜻이라 당연히 작가의 젊은 시절에 썼을 것으로 추정했다. 존경하는 황순원도 <소나기>를 환갑이 넘은 나이에 쓸 수는 없었을 테니.

 

  첫 구절 “러시아를 향해 뻗은 선로 옆 작은 기차역”에서 작품은 시작한다. 당연히 이미 상당히 오래 연착한 기차는 아직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플랫폼에는 비교적 나이가 있는 부부와 한 무리의 명랑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젊은이들은 쾌활한 웃음으로 떠들썩하지만 진정한 즐거움이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끈질긴 저항을 하는 듯하다.
  부부는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제국의 동부에 인적이 드문 척박한 농경지의 작은 도시에서 궁중 고문관으로 있는 퇴를레스 씨와 부인으로 아들의 휴일에 맞춰 W. 기숙학교에서 아들의 면회를 끝내고 귀가하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W. 기숙학교는 퇴를레스 씨에게는 먼 도시의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유명 기숙학교로 가계에 부담이 되기는 했지만, 나라 최상류층 가문의 자제들이 졸업 후 대학진학, 군인,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으며 상류사회 교제를 위해서라도 이 학교 출신이란 추천 요건이 매우 중요한데다가, 어린 아이가 이런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들이 입학시켜달라고 야심차게 졸라대는 바람에, 비록 나중에 많은 눈물을 피할 수 없었지만 허락하게 된 것이다.
  궁중 고문관. 말이 좋아 궁중 고문관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궁중 고문관이었던 사람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궁중 고문관으로 열심히 일하고 극작을 쓰고, 소설도 쓰고 해서 인정을 받아 바이마르의 재상으로까지 출세한 인물. 궁중 고문관이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감당하기가 좀 벅찬 학교였으니 혹시 퇴를레스 군이 외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플랫폼의 명랑한 젊은이들은 소년 퇴를레스와 네 명의 친구. 바이네베르크, 라이팅, 모테, 호프마이어. 이 가운데 모테와 호프마이어는 잠깐 나왔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엑스트라 역할이고 젊은 남작들인 폰 바이네베르크와 폰 라이팅은 두고두고 퇴를레스 군과 갈등을 빚는다. 이들은 퇴를레스보다 두 살이 많은 동급생. 십대 중반에 두 살의 나이면 지력과 완력에서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여 처음엔 두 친구를 존경하는 입장이었다가 서서히 동등해진다.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자. 남자 기숙학교. 한국의 군대처럼 계급과 짬밥에 따라 명확한 서열이 있으면 차라리 덜하겠지만 다수의 동등한 어린 수컷들을 한 우리에 모아놓았으니 이건 애초에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밀림 상태였을 것이다. 소년 퇴를레스 역시 입학과 동시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밤마다 베개를 적셨고 매일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난 소년은 부모를 향한 갑작스럽고도 애틋한 애정이 넘치는 단계를 거치고 이어서 향수라고 부르는 낯설고 새로운 상태에 이르다가, 향수가 사라진 영혼에 이번엔 일종의 공허함이랄까 허무 같은 것이 밀려온다. 자신에게서 사라진 것, 뭔가 긍정적인 것으로 어떤 영혼의 힘이며 내면에서 고통을 빙자해 시든 무엇. 마치 꽃을 피웠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첫 겨울을 보내는 어린나무처럼 빈곤하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상태에 이른다.
  어떤 상태에 이르렀다고? “뭔가” 긍정적인 것. “어떤” 영혼의 힘. 고통을 빙자해 시든 “무엇.” 빈곤하고 황량한 “느낌이 드는 상태”라니. 애매모호한 추상명사들의 나열. 이런 것들이 독자를 혼란의 소낙비를 맞게 만드는 요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무엇’, ‘뭔가’가 계속 나온다. 이것들이 뭘까.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을 혼란 속에서 끝마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드리는 힌트를 기억하시라. 이 추상명사로 요약할 수 있는 책 속의 무수한 사춘기 소년의 번뇌는 오성悟性, 사물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 밖에서 이루어지는 대자적對自的 인식을 말한다. 로베르트 무질은, <특성 없는 남자>에서도 숱하게 그러했는데,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인식 밖에서 가능할 수 있는 현상에 집착한다.
  이 책에선 퇴를레스가 숙고하다 기어이 수학교사를 찾아 질문하게 되는 허수 √-1을 오성 밖의 인식으로 등장시킨다. 제곱하면 –1이 되는 가상의 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수의 제곱은 양수plus number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은 수number가 있어 제곱을 하면 –1이 되는데, 이것을 ‘i’라고 한다. 이른바 허수다. 우리가 아는 평행선도 저 멀고 먼 무한대까지 확장하면, 다른 것도 아니고 평행선이, 만난다. 서울시장 오세훈의 빙모 사공정숙 선생이 평행선이 언젠가는 만난다는 것을 증명한 적이 있다.
  퇴를레스와 악당 친구 바이네베르크, 라이팅 앞에 등장하는 동급생이 바지니. 바지니는 힘도 약하고 씀씀이가 좀 헤픈 아이인데 과자점 주인에게 외상을 지기 시작했고, 그것을 갚기 위해 친구들 사이에서 소위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못해 점점 더 큰 돈을, 더 많은 친구로부터 빌려야 했고, 급기야 아이들 수준으로는 제법 큰 돈을 바이네베르크의 잡낭haversack에서 훔쳐내기에 이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장면을 발견한 것이 가학적 취미가 있는 라이팅. 라이팅은 곧바로 이 사실을 바이네베르크와 퇴를레스에게 전하고 곱상한 외모와 체격의 바지니를 그들의 공동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자신들의 비밀 아지트에 바지니를 불러 옷을 모두 벗기고 구타를 하는 등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학대를 하고 모욕을 퍼붓는다.
  퇴를레스가 사춘기를 본격적으로 맞이하면서 줄곧 숙고의 대상으로 삼았던 오성 밖의 인식이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람들의 행동이나 영혼으로 전환되리라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이 심사숙고가 어떤 때는 열대여섯 살의 미성숙한 소년의 것이었다가, 어떤 때에는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무질, 즉 스물다섯 살의 성년의 사고방식이기도 한 것이 독자를 미궁으로 빠뜨려버린다. 애초부터 무질을 읽으면서 편하고 쉬운 작품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친애하는 이웃의 독자들이여, 이 분량, 250쪽 정도라면 다 읽을 때까지 집중할 수 있을 수준이니 한 번쯤 눈에 힘을 줘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선택한 후의 결과는 전적으로 당신 소관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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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5-10 09: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책 속에 바이네베르크가 동급생 바지니에게 바늘로 찌르는 고문을 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걸 읽으며 무려 39년 전의 군대 고참이 생각났다. 약간 검은 얼굴에 잘 생기고 (공부는 잘 하지 못한 것 같아도) 머리 좋고, 합리적 이유로 후임들 갈궈서 뭐라 할 말 없게 하는, 그래도 괜찮은 인간이었는데, 불행하게도 이 사람 취미가 나같은 졸병 차려 자세 시켜놓고 허벅지에 스테이플을 박아 넣는 거였다. 그새낀 지금 뭐하고 살까? 잘 살 거야, 잘 살 거야, 잘 살아라.
알고는 당할 수 없어서 항의하거나 몸을 피하면 고참들한테 참 괴롭힘을 당했는데, 내가 그랬다. 괴롭힘을 당할 때 당할지언정 그건 아픔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가장 저열한 모욕이었기 때문에 항의를 했고, 오랜 시간 꽤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아, 난 군대에 극적으로 맞지 않는 인간이었다. 탈영 안 하고 만기제대한 것만 가지고도 기특하다, 기특해!

페넬로페 2021-05-10 09:56   좋아요 4 | URL
폴스타프님은 제가 모르는 작가의 책을 어찌 이리 잘 알려주시는지^^과외비 안내고 과외받는 기분입니다.감사해요**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예전에 군대 갔다 온 저의 남편에게 군대얘기 들으면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하게 될 정도로 폭력적인 얘기가 많았어요 ㅠㅠ
그래서 생각보다 영창을 많이 간다고도 하더라고요^^

Falstaff 2021-05-10 10:01   좋아요 4 | URL
ㅎㅎㅎ 뭘요. 그저 조금 앞서서 읽어본 것 뿐입니다.
군대 얘기는 여기서 그만 하겠습니다. 좋은 기억이 별로 없어서 말입죠. ^^;;;

잠자냥 2021-05-10 12: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독일어권 작가들과 멀어지게 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세운 로베르트 무질. ㅋㅋㅋ <벤야멘타 하인학교> 읽었을 때와 똑같은, 아니 그보다 100배는 더한 당혹감을 느끼게 해 준 로베르트 무질. 근데 참 재미난 게 이 로베르트(무질)가 저 로베르트(발저) 작품을 읽고 칭찬했대요. 로베르트끼리는 뭔가 통하는가 봅니다.

암튼 북인더갭에서 <특성 없는 남자> 2권까지만 번역하고 더 번역하지 않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ㅋㅋㅋㅋ 애초에 더 고마운 일은 무질이 이걸 미완으로 남겼다는 게 아닐까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5-10 12:50   좋아요 3 | URL
아, 로베르트들이 또 한 건을 이미 했었군요! ㅋㅋㅋㅋ
19세기 ‘소설의 시대‘ 헤게모니를 프랑스와 영국에 뺐긴 분풀이로 20세기 들자마자 독일어 쓰는 애들이 일치단결한 건 맞는 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대사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5
헨리 제임스 지음, 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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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제임스를 처음 읽은 건, 우습게도 벤자민 브리튼의 쉽지 않은 오페라 <나사의 회전>을 들으면서 도대체 이게 어떤 스토리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원작을 찾게 된 내력을 갖고 있다. 원작을 읽으면서 작품 속에 정말로 유령이 등장한다는 걸 알고는 이런, 이 양반이 쓴 책 좀 읽어봐야겠다, 싶어 계속 찾았다. 그리하여 <여인의 초상>, <데이지 밀러>, <아메리칸>, <워싱턴 스퀘어>까지 읽고 이젠 제임스 그만 읽겠다, 작정을 한다. 그러다 다 늦게 읽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속에서 최고의 영국 소설가 네 명을 고르는데 제인 오스틴, 조지프 콘래드, 조지 엘리엇과 더불어 헨리 제임스를 꼽는 바람에 마음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가 민음사 세계문학시리즈에서 <대사들>을 출간하자마자 구입해 읽게 됐다.
  역자 정소영은 작품해설에서 <대사들>을 포함한 “후기의 삼부작과 단편 소설들은 매우 난해해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문학 전공자들도 친숙하게 다가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삼부작이 제임스의 주요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난해함이 제임스 미학의 정점을 이루기 때문이다.”라고 밝힌다. 위 역자의 인용문 가운데 붉은 색을 칠한 지시대명사 ‘그’를 한 번 빼고 읽어보시라. 뜻이 하나도 훼손되지 않고 오히려 더 잘 읽힌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지. 역자는 본인이 원고를 썼으니 잘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독자가 <대사들> 속에서 7만 5천 8백 92번 나오는(신뢰수준 95%, 오차범위 +/- 3.9%) 지시대명사 ‘그’와 인칭대명사 ‘그' ‘그녀’의 홍수에 휩쓸려 익사할 즈음이 되면 책을 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이것도 책이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요인 가운데 하나인 건 분명하다는 것도.

 

  역자가 어떤 의미에서 <대사들>이 난해하다고 했는지, 책을 다 읽고 30분쯤 지난 독자가 설명해보자.
  주인공 이름이 루이스 램버트 스트레더. ‘루이스 램버트’를 이 책의 지리적 무대인 프랑스 말로 발음하면 ‘루이 랑베르’다. 그렇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생극 가운데 <나귀가죽>과 더불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발자크 책 중에서 가장 읽기 힘든 ‘발자크의 철학연구’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루이 랑베르>의 주인공이다. 결혼 전야에 갑자기 새파란 면도칼을 들고 아랫도리를 훌렁 까더니 평생 거꾸로 매달려 고생스럽게 흔들거리기만 했던 신체 일부를 싹둑 잘라버리겠다고 앙탈을 부리다 기겁한 삼촌에 의하여 저지당한 문제아. <대사들>의 루이스 램버트는 루이 랑베르와 달리 긍정적이고, 사리판단 잘 하고, 정의파인 신사다. 여기서 내가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루이 랑베르가 아니라 그를 만들어 낸 오노레 드 발자크.
  내 경우에 국한해서 벌어지는 일인지 모르겠는데, 발자크를 읽기 위해서는 거의 무한정 쏟아지는 묘사, 가구가 됐든, 건물이 됐든, 사람의 외모가 됐든, 사람이 생각하는 바가 됐든 간에 아주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묘사에 간혹 질리고는 한다. 근데, 헨리 제임스의 다른 책의 경우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대사들>을 읽으면서 저절로 무한 묘사의 달인 발자크가 머리에 떠올려졌으며, 급기야 <대사들>에 관해서 말하자면 헨리 제임스가 발자크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일 수준이라는 걸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 특정인과 특정인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대화 속에서 서로 머리를 굴리는 것, 그러면서 행동으로 비쳐 보이는 극도로 미세한 것까지 모두, 모두, 모두,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해 독자의 뇌 속을 헝클어트리는데, 이게 한 번의 번역을 거쳐, 평소에 지시대명사와 인칭대명사를 자주 쓰지 않은 우리말 특성을 감안하지 않고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말미암아 75,892 번의 ‘그’까지 섞여버리면, 지금 헨리 제임스가 묘사하고 있는 의식, 생각, 짐작, 또는 이런 것들과 비슷한 일이 과연 누구의 대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학작용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 또, 등장인물들의 대화 가운데서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을 찾아보기 힘들다. 출연진 거의 대부분이 미국의 부르주아 또는 세미 부르주아 신사 숙녀, 유럽의 백작 가문 사모님과 영애라서 그런지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듯하다. 그들만의 대화법도 겉멋은 잔뜩 들었으나 알고 보면 속이 하나도 없는 허례로 그득하고,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이심전심이 되어야만 뜻을 알 수 있는 대화를 그들은 진짜 기가 막히게 풀어나간다. 인간 사이에 말이 왜 존재하는가. 이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A를 말하고 싶은데 그걸 A로 말하면 마치 격이 떨어질 거 같아서 A′로 표현해야 했던 19세기말, 20세기 초 벨 에포크 시대의 유럽 신사숙녀들의 노고에 새삼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들의 대화를 21세기의 한국 독자들도 공유해야 하는 아주 가벼운 문제가 있을 뿐.
  그리하여 만일 두 권짜리 장편소설 <대사들>에서 등장인물들의 의식이나 생각 등에 대한 묘사를 최소화하는 요즘 소설처럼 다시 쓴다면 원고지 천오백 매 정도의 짧은 장편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라. 바로 이 지루하고, 골치 아프고,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장황한 묘사가 <대사들>을 헨리 제임스의 노작勞作으로 만드는 계제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작품을 만드는 건 독자가 아니라 작가의 권리니까.

 

  벨 에포크 시대의 미국. 도시 노동자 80퍼센트 이상의 고혈을 짜서 만들어낸 이윤은 자본가 가문의 자제들을 일하지 않는 자, 일할 필요가 없는 자로 만들어놓았고, 태생적으로 유럽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던 그들 가운데 일부분은 구대륙으로 흘러들어 청춘을 소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매사추세츠 울렛 지방의 품목을 밝히지 않는 거대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뉴섬 가문의 적장자 채드윅 뉴섬도 이들 부류 가운데 한 명으로 현재 파리에 거주하고 있다. 채드윅, ‘채드’로 말하자면 부잣집 외동아드님답게 세상 버르장머리 없게 성장해 성격이 속칭 개판이었던 젊은이로, 유럽 각지를 떠돌며 젊음을 소비하다가(소비? 소비라니? 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질투를 유발하는 젊음이란 말인가!) 소위 예술을 공부합네, 하고 현재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었다. 강건하고 올곧은 성격이지만 아들에겐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기엔 문제가 있는,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디서 빠지지 않는 엄마 뉴섬 부인이 생각하기에, 채드가 돌아오지 않는 건 분명히 파리에서 모종의 아가씨와 미친 연애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낸다. 그리하여 즉시 돌아와 가업을 잇든지, 아니면 호적에서 지워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말로는 그렇지만 즉각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의 수행을 위해 우리의 선량하고, 지극히 상식이 통하고, 포용력 있고, 정의로우며 합리적인 우리의 주인공 루이 랑베르, 아니, 루이스 램버트 스트레더 씨를 아들에게 대사로 보내게 된다.
  그래서 제목이 대사들ambassadors이 된다. 나는, 책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래서, 일단 헨리 제임스니까 유럽의 모처, 궁정, 청와대, 의사당에서 벌어지는 외교전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었다가, 이 사실을 알고 조금, 아주 조금 김이 샜음을 고백한다.
  램버트 스트레더 역시 괜히 몇 달씩 걸리는 먼 길을 떠나는 게 아니라, 울렛의 영주라고 해도 별로 손색이 없는 과부 뉴섬 부인과의 오래된 교류도 있고 해서, 유럽으로 가 성공적으로 집나간 탕아를 데려오기만 하면 다음날로 곧바로 뉴섬 부인에게 청혼을 해, 지금이 55세니까, 앞으로 15년가량의 여생을 편히 놀고먹으려 하는 꿍꿍이가 있긴 있었다. 스트레더도 역시 많은 재산이 있었지만 불운의 별은 과거에 벌였던 일곱 번의 사업마다 하는 족족 개골창에 빠뜨려 버려 이제 남은 거라곤 생의 마지막 날까지 그저 근근이 먹고 살기에 아주 약간의 부족함만 있을 정도. 스트레더 씨는 혼자 먼 길을 떠나기에 조금 적적한 면이 있으니 코네티컷 밀로스 출신의 변호사이자 자신이 가장 믿는 친구로 현재 멜버른에서 머물고 있는 웨이마시와 리버풀 항구 근처의 작은 도시 체스터에서 만나기로 한다. 여기서 우연히 만난 역시 밀로스 출신의 서른다섯 정도의 현명한 노처녀 마리아 고스트리 양. 게다가 파리 마르뵈프 구역의 작은 중이층 집에서 살고 있다. 스트레더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고스트리 양과의 우정을 맺게 되는데, 우연히 만난 이 현명한 여성의 덕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난 하마터면 뉴섬 부인 대신 고스트리 양하고 결혼할 줄 알았다니까 글쎄.

 

  여기서 잠깐. 헨리 제임스는 미국 태생이지만 나이 들어 영국으로 귀화한다. 내가 읽어본 그의 작품 속에도 미국과 유럽의 여러 장면이 나오고, 주된 장면은 거의 전부 유럽이다. 독자는 헨리 제임스가 젊은 시절부터 단단히 유럽동경이란 질병을 앓고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도 몇 작품 속에서 미국인이란 돈으로 승부를 거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이렇게 양분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나마 상식이 통하고 총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인물들의 그룹은 모두 유럽을 동경한다. 실제로 문장 속에, 의인화한 유럽이 등장인물에 이야기를 전달했다, 아니다 라는 말도 나온다. 그래 유럽이라 하는 오래된 건물, 조각품들과 아름다운 경치 같은 건 모든 부드럽고 우아하고 불가결하고 곡선적인 것들을 대표하는 반면, 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실제로도 그렇지만) 딱딱하고 천박하고 금전적이고 직선적인 것을 상징한다. 근데 우리의 주인공 스트레더 씨가 유럽에서 어쨌든 잘 지내고 있는 채드를 아메리카로 데려오는 일을 하게 됐는데, 우여곡절이 없을 수가 없는 거였다. 처음부터.
  그런데 진짜 파리에 가서 채드를 만나보니까, 예전의 천방지축 방탕한 채드가 아니라 어느새 세련된 몸가짐과 말씨, 행동거지가 완비한 신사로 변해 있었던 거였다. 왜냐고? 왜긴 왜인가, 위 문단에서 이야기했듯 유럽물을 제대로 먹어서 그렇지. 그리고 프랑스 아버지와 영국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해 백작한테 시집가서 딸 하나를 낳은 마리 비오네 백작부인 가족과 친해진 결과라고 봐야 한다. 백작부인은 눈오네 자작의 친형인 비오네 백작과 결혼해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을 진짜로 아름다운 딸 잔 비오네를 낳았지만, 유럽의 귀족가문 전통상 이혼하지 못하는 쇼윈도우 부부로, 천 킬로미터 이상을 떨어져 살고 있다. 잔 비오네, 열다섯 살의 날개만 없는 천사를 만난 우리의 주인공이자 뉴섬 부인의 대사인 램버트 스트레더는, 채드의 변신이 근본적으로 사랑에서 비롯했다고 결론을 내리는데, 근데 누구를 향한 사랑인지 그게 좀 헛갈리는 상태에 이른다.
  그래 진짜로 스트레더 씨가 뉴섬 부인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고 울렛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 때, 파리에 두 번째 대사가 도착한다. 파리에서 곧바로 할 일 없이 된 스트레더 씨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야 하며, 채드는 가업을 잇기 위해 아메리카로 가야 할까, 아니면 사랑을 위해, 아직 누가 사랑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하여튼 사랑을 위해 파리에 뭉개고 있어야 할까.

 

  하여튼 소설은 제목에 비해 너무 작은 스코프 안에 갇혀 있다. 아무리 잘 봐주어도 로맨스 소설. 더 좋은 마음으로 보면 심리소설. 좀 과도하게 심리탐구를 해서 그렇지만. 따라서 진도도 잘 나가지 않는데 책도 두 권이라 결코 만만하지 않다. 당신이 만약 인내심이 좀 부족하다면, 인내심 함양 차원에서 한 번 대차게 도전해보시는 것도 바람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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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07 14: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일단, 그 번역자의 문장을 그 편집자는 잡아내지도 않고 그 책을 그냥 출판했다는 겁니까? 그 말도 안되는 행위를 그 민음사에서 또..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5-07 14:1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 웃겨서 미쵸요!

잠자냥 2021-05-07 14: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 지루하기 짝이 없고 그 난해하기 짝이 없는 <루이 랑베르>의 그 루이 랑베르가 여기에 또 나온답굽쇼? 게다가 그 헨리 제임스가 그 발자크 귀싸대기를 올려치는 수준이라니, 저는 이 작품 대차게 패스하렵니다. 감사합니다. 그 폴스타프 님께 땡스 투

Falstaff 2021-05-07 14:27   좋아요 4 | URL
이 책은 헨리 제임스가 의도적으로 사람들의 의식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대화를 애매하게 만들기로 작정을 한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당연히 대화를 비롯한 행동에 확실한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 없어서 독자는 트랩이 어디 묻혀 있는지 뻔히 알면서도 그냥 당해야 하는 거 같았습니다.
헨리 제임스가 늙어가면서 점점 악당이 된 거 같아요!
ㅋㅋㅋㅋ 그 발자크의 그 귀싸대기 하나는 확실하게 올렸습니다!!

새파랑 2021-05-07 15: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네요 ㅎㅎ 전 인내심이 많아서 미도전^^

Falstaff 2021-05-07 16:09   좋아요 2 | URL
ㅋㅋㅋ 좋습니다!
저는 소위 난해한 거보다 스케일이 작아서 별로였습니다.

coolcat329 2021-05-07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저는 표지 명화보고 국가 간 외교를 다룬 역사 소설이겠구나...생각했는데, 집 떠난 아들 데려오는 임무맡은 대사라뇨 ㅋㅋㅋ

Falstaff 2021-05-07 20:40   좋아요 3 | URL
아, 제 말이 그거 아닙니까!!! ㅋㅋㅋ
 
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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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소년 소설로도 읽어보지 않고, 영화나 만화 등에 숱하게 소개가 되는 바람에 마치 읽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어본 줄 알았다. 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그렇지 않다고 확정을 해서, 이미 찰스 디킨스는 그만 읽기로 작정을 했음에도, 좋다, 예외다, 이거 딱 하나만 더 읽고 진짜로 디킨스는 끝이다, 라며 주문을 했고 읽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읽은 직후 마음속으로 이걸로 디킨스 졸업장을 받았다, 해놓고도 <황폐한 집>을 읽은 전적이 있다. 그러고는 에잇 석사과정 마쳤다고 생각하자 했는데, 또 넉 달도 견디지 못하고 <어려운 시절>을 읽었으니, 그건 박사과정이었다고 하나? 그럼 <올리버 트위스트>는 포스트 닥이냐?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한 번 해봤다.
  이게 디킨스 파워가 아닌가 싶다. 읽으면서는 우습지만 재미나고, 읽고 나선 뻔한 이야기 가지고 킬링 타임 한 번 잘 했다, 더 이상은 아니다, 해놓고, 시간이 지나 인터넷서핑 하다가 안 읽어본 디킨스 나오면 또 사정없이 궁금해지는 거. 이게 디킨스 파워고 구닥다리 영국소설의 매력인 거 같다. 진짜라니까.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작품이지만)필딩의 <업둥이 톰 존스>나 로렌스 스턴의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이야기> 같은 게 은근히 독자를 끄는 힘이 있다. 특히 로렌스 스턴은 진짜, 지금 읽어도 포스트 모던이라니까. 그러나 아무리 ‘은근히 끄는 힘’이 있어도 <크리스마스 캐럴>은 안 읽는다. 읽지 않겠다. 일단은.
  <올리버 트위스트>의 스토리야 뭐 다들 아시겠지. 나는 안 읽었으면서도 읽은 줄 알았던 소년 소설을 경험해보신 분이 많겠고, 영화 보신 분도 많을 테니까.
  디킨스를 비롯한 19세기 초중반까지 쓰인 영국소설을 읽으면서 21세기를 사는 현대인의 감성에 공감을 준다거나, 삶의 현실을 투사한다거나,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기대하기란 난망한 일. 그저 스토리 하나를 따라가면서 그걸 즐기는 수준 정도만 기대하면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애초 이 책, 출판사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올리버 트위스트>를 선택한 이유도, 거의 유일하게 한 권으로 만든 완역본이라서 그랬다. 다른 출판사들은 두 권짜리가 많다. 스토리 중심의 책이라 역자의 구별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란 잔머리를 굴렸다는 말씀인데 오랜만에 성공한 거 같다.
  찰스 디킨스 가운데 제일 재미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한 권짜리니까 후회는 없으실 듯. 선택은 알아서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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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04 09: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만일 안 읽었는데,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작품 목록이 있다면 디킨스 작품이 수두룩 실릴 거예요. 저에게도 그렇다는 ㅋㅋㅋㅋ 그것도 디킨스의 힘일 것 같습니다.

Falstaff 2021-05-04 09:31   좋아요 5 | URL
맞아요, <크리스마스 캐럴>도 틀림없이 안 읽었을 겁니다. 영화와 만화로는 무지하게 여러번 봤지만요. 그건 읽지 않겠다!!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5-04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는다면 이 책으로 읽겠습니다. 한 권이라 좋네요.~

Falstaff 2021-05-04 11:10   좋아요 3 | URL
그리고 재미있어서 후다다닥 읽게 된답니다. ㅋㅋㅋㅋ

율별엠제이 2021-05-05 0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막대한 유산>도 휘리릭 읽힙니다.. 디킨스의 매력입니다.

Falstaff 2021-05-05 13:20   좋아요 0 | URL
옙. 다행스럽게 그건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초딩 2021-05-06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습니다! ㅎㅎㅎ
시원한 하루 되세요~
언제나 통쾌한 Falstaff 님~

Falstaff 2021-05-06 12:12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세로토닌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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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으로 쪼개지는 작고 하얀 타원형 알약, 캅토릭스.

  초창기에 보급된 항우울제 5-HT1 ’세로플렉스‘나 ’프로작‘은 혈액 내 세로토닌의 비율을 증가시키는 작용을 했으나, 2017년 캅톤 D-L이라는 새로운 세대의 항우울제는 위장 점막에서 생생된 세로토닌의 세포외 유출을 촉진시키는 작용을 했으며 약의 이름을 캅토릭스라고 했다. 이 약의 달갑지 않은 부작용으로는 구토와 리비도 상실 및 성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즉 복용자 전부가 구토와 성기능 장애, 한 발 더 나가서 리비도 상실을 경험하는 건 아니라는 뜻.

  그러나 <세로토닌>의 주인공 플로랑클로드 라브루스트는 당년 46세로 우울증 증세가 있어 15mg짜리 캅토릭스를 한 번에 반년 치 처방을 받아 매일 복용하고 있는데 구토는 없지만 아쉽게도 리비도 상실과 발기부전 증세를 피할 수는 없었다. 여태 우엘벡을 읽어온 독자라면, 우엘벡의 작품 속 남자 주인공이 발기부전은 뭐 다른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해소될 수 있으니 그렇다고 쳐도 리비도까지 상실했다는 것은 도무지 믿지 못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리비도가 빠진 우엘벡을 뭐 하러 읽느냐, 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크게 걱정하지 마시라. 리비도가 충만하지 않아도 플로랑클로드는 만 46세로 할 만큼 했을뿐더러, (할 만큼 한) 지난 세월을 회고할 수 있는 지력이 있으며, 무엇보다 현재의 여인, 소설이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그녀로부터 도망해버리기는 하지만 가히 님포매니악Nymphomaniac 수준에 달하는 일본인 애인 유주가 등장해 당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는데 부족함이 크지는 않을 테니까.

  우리가 프랑스, 하면 예술과 패션, 사상 등의 소프트웨어에 집중해서 그렇지 프랑스는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전 세계적으로 유전자 변형 농업이나 특히 기업형 대규모 농업이라는 추세에는 적절하게 맞춰나가는 것 같지 않다. 이번에 <세로토닌>을 읽으며 알게 된 거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크겠지만 상대적으로 기계화되지 못한 프랑스 농업은 세계각지에서 저렴하게 밀려 들어오는 농산물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국내 대형 유통기업마저 농민들에게 수입농산물과의 가격 차이를 좁히라는 요구하고 있는 처지다. 신자유주의는 농업이라고 예외를 두는 법이 없어 농민들은 힘겨운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다고, 우엘벡은 주장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주인공 플로랑클로드 라브루스트를 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농산부에 고용되어 유럽 행정부와 가끔은 더 넓은 범위의 무역협상 테이블의 교섭위원에게 제시할 보고서와 평가서를 작성하며 주로 프랑스 농업의 위치를 규정하고 지지, 소개하는 일을 한다고 설정했다. 위촉직이라서 공무원 연봉을 훌쩍 넘는 고액의 보수를 받아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으며 지금도 예금통장엔 칠십만 유로가 넘는 잔고를 확보하고 있다. 소설은 이 중년 사내의 예금 잔고가 이십만 유로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 일 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15mg에서 20mg의 단위의 캅토릭스로 갈아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첫 장면은 스페인 알메이라의 340번 국도 옆 주유소. ’나‘는 메르세데스 G350 사륜구동차에 경유를 채우고 제로 칼로리 콜라를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폭스바겐 비틀이 다가오더니 짧은 치마와 핫 팬티를 입은 두 스페인 아가씨가 차에서 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역시 우엘벡답게 완벽하게 동그란 엉덩이를 가진 탱크 톱 차림의 아가씨들. 이들에게 타이어 공기압을 보충해주고, 보충방법을 일러준 다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떠난다. 그러나 이들의 끈팬티와 몇 장의 옷만 든 것 같은 작은 짐꾸러미를 포함해 아가씨들의 동그란 엉덩이에 대한 인상은 앞으로도 근 이백 쪽 이상 가끔이긴 하지만 계속 등장할 예정이다. 젊음과 성, 몸과 관련해서. 2주간 휴가를 받아 스페인에서 지내기로 하고, 비행기로 도착하는 애인 유주를 마중 나가는 길에 잠깐 만난 아가씨들.

  유주는 애초에 함께 살지 말았어야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삶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해왔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어영부영 동거하게 된 여자. 일본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지금은 파리의 일본문화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가 경험한 유주의 프로젝트는 만화 전시회와 일본 포르노의 새로운 경향에 대한 박람회밖엔 없다. 모르긴 해도 부모의 알선으로 다른 곳도 아닌 프랑스에서 별정직 공무원 자리를 얻은 것 같다. ’나‘하고는 스무 살 차이가 나서 지금 26세. 유주를 비난해야 할 점은 무척 많은데, 가장 비난해야 할 건 난교파티에 출입한다는 것. 베튄 강변로의 대 저택에서 백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여 주로 남자 둘에 여자 하나꼴로 여기저기에서 막 관계를 하고, 대체로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어리고 지위도 낮은 듯했다.

  ’나‘가 결정적으로 유주와의 관계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든 건, 유주의 이메일을 볼 기회가 생겨 발견한 동영상 때문이었다. 첫 번째 동영상엔 유주와 열다섯 명의 사내들이 등장해 온갖 방법의 포르노를 실사하고 있었고, 두 번째 영상엔……, 이건 드러워서 내 손으로 자판을 누르지 못하겠다. 궁금하면 읽어보시든지. 하여튼 우엘벡, 미친놈이다, 미친놈. ’나‘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던 것은 첫 번째 동영상을 찍은 장소가 바로 ’나‘의 집 안방이었다는 점과 두 번째 동영상 자체였다. 그리하여 역겨워서 더 이상 보지 못하고 40킬로그램 밖에 나가지 않는 유주를 납작 들고 아파트 창문 밖으로 집어 던져 버릴까, 하다가 유주의 성적 기교의 탁월함 때문인지 하여튼 오늘에 이르렀던 것. ’나‘가 분명히 정상이 아닌 것이, 그러면서 뭐하러 스페인까지 둘이 함께 가기로 하고, 두 주의 휴가를 한 주로 줄이다가, 그것도 중도에 더 빨리 그 먼 길을 운전해 돌아오느냐는 말이지. 하여튼 ’나‘는 그렇게 했다, 파리 15구 토템 타워 30층의 커다란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도착한 후, 유주와 헤어지기 위하여, 라기보다, 지병처럼 달고 다니는 우울증이 도져서 그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울증에 영향을 준 건 당연히 유주의 문란한 성생활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생긴 틈으로 ’나‘의 영원한 연인 카미유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를 잡는다. ’나‘는 유주로부터 도망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발적 실종“을 택한다. 실제로 프랑스에선 매년 만이천 명이 가족을 등진 채 사회에서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유주가 가족은 아니니까 양심의 가책도 받을 필요가 없는 ’나‘는 농산부에 가서 아르헨티나로 직장을 옮긴다는 거짓 핑계로 사표를 내고, 거래은행을 바꾸고, 두 주 후에 아파트 월세 계약을 종료시킨 다음, 파리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흡연 가능한 메르퀴르 호텔의 니오르 마랭푸아트뱅 지점으로 거처를 옮긴다.

  자발적 실종. 자유는 주체성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 상부에서 하달된 수칙에 대한 하급자의 반감이나 일종의 불복종, 또는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등장한 다양한 실존주의적 연극에서 이미 묘사된 개인의 도덕심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나‘의 자발적 실종의 변명.

  이리하여 ’나‘ 플로랑클로드는 현상의 사회에서 이탈해 과거로, 주로 과거의 여인들로 퇴행해버리고, 급기야 아무 남자하고 맺은 관계로 낳은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사는 ’나‘의 베아트리체, 수의사 카미유를 관찰하기에 이른다.

  ’나‘는 작품 전체에서, 한 번도 쉬지 않고 사람 사이를 공고하게 만드는 건 몸이라고, 섹스가 없으면 혼인관계는 물론이고 어떠한 남녀, 또는 동성간의 사랑이 계속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반면에 이와 정반대의 중년 남자, 발기부전은 물론이거니와 리비도까지 상실한 남자를 등장시켜 가슴 속의 유일한 연인을 찾게 만든다. 이들 사이엔 죽음이란 깊은 단절이 있는 셈이다. 만일 20mg 단위의 캅토릭스 복용을 통해 세로토닌을 유지하기를 포기하기만 하면 먼저 리비도가 환원이 되고 이어서 발기부전 증세도 없어지겠지만 눈에 띄게 깊어가는 우울증 증세로 어느 날 권총으로 머리통을 날려버리거나 고층 아파트의 창문에서 몸을 던질지 모를 일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고, 목숨을 위해선 리비도 망실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나‘ 플로랑클로드. 이 진퇴양난의 까마득한 벼랑 위에 선 남자의 이야기.




● 잘 살기(well being)와 행복감을 유발하는 물질인 세로토닌이 위장 점막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역시 잘 먹는 게 최고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고, 58년 개띠 미국 가수이자 영화배우 마돈나는 맛있는 거 먹는 게 섹스보다 좋다고 했다. 당신은 왜 일을 하는가. 다 먹자고 하는 일. 오늘 점심은 봉평장터 가서 돼지 석갈비에 반주 한 병 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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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01 1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로토닌이 이런 내용이군요. 식욕은 성욕에 비례한다고 어디선가 주워들었습니다.ㅋㅋ쩝🙄

Falstaff 2021-05-01 13:07   좋아요 3 | URL
크.... 먹고, 마시고 왔습니다.
이제 절 기다리는 건, 그렇습니다, 즐거운 낮잠!
배부르게 먹고 배 두드리고 있으면 그게 장땡이지 누가 임금인지 무슨 상관인고, 함포고복에 격앙가가 넘칩니다. 인생은 유토피아, 라고 생각하고 살아야지요 뭐, 할 수 읎잖아요. ㅋㅋㅋㅋ 근데 배부르면 딴 생각 안 나던데... 혹시 그거 유언비어 아닐까요?

청아 2021-05-01 13:11   좋아요 3 | URL
주워들은 거라 근거없을 가능성이 큽니다ㅋㅋㅋㅋ
마돈나의 말 때문에 생각나 투척했어요ㅋㅋ😆

Falstaff 2021-05-01 13:15   좋아요 3 | URL
아, 순서가.... ㅎㅎㅎ
식욕은 성욕과 비례한다.... 맞는 말 같습니다. (저절로 배고파지잖아요!)
성욕은 식욕과 비례한다.... 아닌 거 같네요. 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5-01 11: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미셸 우엘벡 인터뷰가 인상적이어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ㅎ 이미 이 책이 보관함에 있네요 ㅋ리뷰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1-05-01 13:10   좋아요 4 | URL
전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특히 페미니즘 입장에 서신 분들에겐 더 그렇습니다.

syo 2021-05-01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충 다 까먹었는데 그것만 기억나요.
‘나‘는 정말이지 ‘학문‘에 큰 뜻을 둔 사람이었다는 거.

Falstaff 2021-05-01 19:35   좋아요 1 | URL
ㅋㅎㅎㅎ
여러분, 사이오 님의 중의법에 넘어가지 마세요. ㅋㅋㅋㅋ
근데 ‘나‘가 ‘학문‘에 몰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 걸로... 아는데요.
마지막 애인 유주가 그쪽 전문이고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5-01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겠다 생각했는데..오..중간부터 내용이 굉장하네요. 작가가 센거 같아요 ㅎㅎ
그래도 폴스타프님 리뷰는 너무나 재밌게 읽었습니다.

봉평장터 서울에 맛집인가하고 검색해봤는데 ㅋㅋ 혹시 천안이신가요?

Falstaff 2021-05-01 21:57   좋아요 2 | URL
이 양반의 매력이었다가 하도 비슷한 걸 우려먹어서 별로 감응이 안 오는 게 바로 그겁니다. 세미 포르노. 포르노가 특성상 날이 갈수록 좀 더 쇼킹한 걸 내놔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세로토닌>에선 조금 너무 나간 듯 합니다.
우엘벡은 이 책의 성애 장면도 주로 여자가 남자에게 기교를 선물하는(자기들이 좋아서든 말 그대로 서비스 차원이든 간에) 것만 자주 출몰하지 거꾸로인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주인공 ‘나‘가 가슴속 연인 카미유를 제외하고 여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오직 하나, 그거 뿐입니다. 이젠 우엘벡을 그만 읽어야겠어요.
저녁 먹으면서 또 한 병 깠더니 지금 주정인지 댓글인지 잘 모르겠군요. ㅋㅋㅋ

그리고 봉평장터 가지 마세요. 이젠 맛대가리 하나 없는 그저 그런 밥집이 돼버렸더군요.

coolcat329 2021-05-01 20:30   좋아요 2 | URL
우엘벡은 <소립자>만 들어봤는데, 폴스타프님 덕분에 작가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맛보게 되었습니다. 알콜이 들어간 글이 저는 더욱 좋습니다. 😊사실 저도 지금 알콜을 맛있게 마시고 댓글을~~즐거운 주말 되셔요~~

붕붕툐툐 2021-05-01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맛있는 거 먹는게 최고죠~ 암요, 암요~~!!^^

Falstaff 2021-05-01 21:44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럼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