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라 - 돈 드릴로 장편소설
돈 드릴로 지음, 정회성 옮김 / 창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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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 노이즈>와 <마오 II>를 재미있게 읽어 서슴없이 <리브라>를 골라 읽었다가 혼쭐났다. 작품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대단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본명과 가명을 섞어 사용하며, 여전히 음모론에 휩싸여 혼돈을 자아내고 있는 JFK, 존 핏제럴드 케네디의 암살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노트에 메모를 해가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좀 지나고부터 메모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우 작은 글씨로 무려 아홉 페이지를 노트했다. 당연히 읽는 시간도 보통의 작품보다 배는 더 들었을 듯.
  마거리트 클래버리 오즈월드라는 여인이 있었다. 에드워드와 결혼을 해 살다가 아들 존을 낳자마자 이제 영원무궁하도록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악몽에 시달리던 에드워드는 공포에 질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두 번째 만나 결혼한 로버트 E. 리 오즈월드 씨는 보험 모집원으로 둘째 아들 로버트를 낳고, 셋째이자 막내인 리가 태중에 있던 여름날, 불타는 더위 속에서 잔디를 깎다가 피식 쓰러져 발발발 팔 다리를 떨더니 그만 숨이 넘어갔다. 세 번째 남자 에크달 씨로 말하자면 나이가 지긋한 엔지니어로 한 달에 천 달러 이상을 벌어오는 괜찮은 남자였지만 마거리트의 눈을 속이고 바람을 피운 게 걸리는 바람에 이혼을 해버리고 만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피우라고 해도 바람 같은 거 못 피울 터인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이혼을 해버려, 위자료 한 푼 받지 못하고 비록 구만리는 아니지만 구천리 정도 남은 인생을 어렵게 꾸려나가기에 이른다. 거 옛 말에도 있는데 말이지. 바람피우는 남편은 참아도 돈 못 벌어오는 남편은 못 참는다고. (시대가 1940년대였으니까 말이지만.)
  첫 남편의 아들이자 맏이이며 착한 존은 결혼해서 엄마와 배다른 동생 리와 함께 대가족으로 살았다. 어려서부터 외톨이 기운이 있던 리가 하루는 형수한테 주머니칼을 들이밀고 다투는 바람에 엄마하고 리는 존에게서 떨어져 나와 둘만의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근데 미국이나 유럽의 저 피부색 허연 것들은 아무리 가족이라도 한 번 찢어지면 그길로 영원히 안녕이라 맏이 존은 이걸로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로버트는 이꼴저꼴 보지 않으려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잘 적응하며 복무하고 있다가 책의 저 뒤편 결말 부분에 등장해 눈물바람을 한 번 하는 역할을 맡는다. 리는 집에 있던 해병 교범을 보면서 자신도 해병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열여섯 살 때부터 나이를 속이고 입대하려 시도를 하지만 사실 좀 어려보이는 외모라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결손가정에서 자랄 운명이었던 리는 거기다가 가난, 잦은 이사 등으로 점점 내성적 외톨이, 요새 말로 외로운 늑대의 심정을 차근차근 갖추게 된다. 무단결석이 넘치고 넘쳐 거리를 배회하다가 경찰에 의하여 청소년의 집으로 넘겨지기도 하고, 청소년 상담사와 심리 테스트로 당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뉴욕 지하철역에서 “로젠버그 부부를 살립시다.”라는 유인물을 구경한 적이 있는 리는 엄마와 뉴올리언스로 이사를 하고 마침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서 지적 영역을 확장하니, <자본론>이나 <공산당선언>을 독파, 자칭 마르크스주의자임은 선언한다. 근데 사실 이건 학교나 동네에서 리가 자신들과 달리 북부, 뉴욕 말씨를 쓴다고 아이들이 집단 따돌림, 속어로 ‘다구리’를 가하는데 반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런 경위를 거치면서 리 오즈월드는 자기가 앞으로 할 일로 부두 근처에 있는 미국 공산당의 세포조직에 가담하는 것하고, 해병대에 입대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리가 마르크스주의와 해병 교범을 읽기 전의 유일한 취미생활은 목요일마다 방영해주는 범죄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교범을 읽으며 살인의 요령을 외우게 된다. 사람이란 것이 하나를 알게 되면 그걸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정상이라, 데이비드 페리라는 이름의 주요 등장인물로부터 고장난 22구경 권총을 15달러에 사서, 결국은 고치지 못해 형 로버트 오즈월드에게 10달러를 받고 넘기기도 한다.
  드디어 리가 열여덟 살이 되기 한 달 전, 174cm, 62kg의 몸으로 해병대에 입대, 훈련을 받고는 미닫이문과 눈이 가늘게 찢어진 매춘부의 나라 일본, 그중에서 아쯔기에 있는 레이더 기지의 레이더실에서 근무한다. 아쯔기의 레이더 기지에는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정찰기 U-2기가 상공 24km까지 올라가 주로 소련과 중공을 촬영하고는 했으며 이게 상당한 비밀이었던 모양이다. 일본에서 리는 미쯔꼬라는 이름의 서른네 살 먹은 매춘부와 그녀의 관리인이자 사회주의자인 코노라는 남자와 유대를 갖는다. 그래 머리를 굴려보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군사비밀을 소련에 넘기면 소련에서 자신을 환대해줄 거 같은 거였다. 일본 생활에도 염증을 느끼기 시작해 코노에게 선물로 받은 작은 데린저 식 은도금 권총으로 자신의 왼쪽 팔을 쏘아 의병제대를 시도하지만, 팔뚝은 작은 수술로 탄알을 제거하는 것으로 끝나고, 자신은 허락받지 않은 총기를 소지한 혐의로 군법재판에 넘겨져 28일 동안 영창에서 별 짓을 다 당한다. 1957년엔 미국 영창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근데 텍사스로 거처를 옮긴 엄마가 때마침 작은 사고를 당해 얼굴에 부상을 당한 것을 기회로 의가사 제대를 해 포트워스로 간 리는 일본에서부터 뜻을 세워 조금씩 러시아어를 공부하더니 스위스 쿠르발덴에 있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대학에 입학원서를 내 합격한다. 원서에 학기가 끝난 후 핀란드 투르쿠 대학의 하계 세미나에 참석하겠다는 것을 처음부터 명백하게 밝히고. 그러더니 정말로 스위스, 핀란드를 거쳐 하루 만에 소련 비자를 받더니 모스크바로 망명해버리는 거다. 소련 땅에만 가면 술이고 음식이고 집이고 자동차고 다 해줄 줄 알았겠지. 그러나 천만의 말씀. 현재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 있는 공장의 노동자로 보내버린다. 소련. 엄청난 대지와 풍광과 사람들의 스케일, 그리고 추위. 여기서 리는 미숙련 금속 노동자로 지내다가 그래도 빈손으로 올 수 없어 ‘마리나’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결혼해 딸을 하나 낳고, 다시 미국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귀국길에 오르는데, 소련은 알고도 못 본 척한다. 골치 아픈 인간 하나가 제 발로 땅에서 나가겠다니 이게 웬 떡인가 싶었던 거다.
  그리하여 이제 텍사스 댈러스 근방에 자리 잡은 리 오즈월드 부부. 리는 이곳의 교과서 창고 6층에서 1963년 11월 22일 링컨 컨티넨털 무개차에 분홍색 투피스를 입은 아내 재클린과 코넬리 텍사스 주지사 부부와 함께 타고 신나게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JFK에게 세 방의 총알을 발사하게 된다. 첫발은 케네디의 어깨와 목 부근에 맞았으나 치명상은 아니라고 판단해, 두 번째 총알을 날리는데 그건 엉뚱하게 코넬리 주지사를 정통으로 맞혀버리고, 세 번째 총알은 완전히 빗나간다. 그럼 한 순간 대통령의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가 싶다가 뭔가가 퍽 물결치며 흩날리게 하는 총알은 누가 쐈을까? 이리하여 케네디 암살 사건을 둔 음모론은 여태까지 사라지지 않은 채 숱한 작가, 역사가들이 픽션 또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돈 드릴로도 <리브라>를 통해 음모론의 하나를 만들어낸 것. ‘리브라Libra'는 천칭자리라는 뜻으로 리 하비 오즈월드라는 이름의 인간, 바로 천칭자리, 암살자를 상징한다.
  무엇이 리 오즈월드로 하여금 대통령을 암살하게 만들었을까. 이게 이 책이 재미있는 핵심인데 내가 맨입으로 가르쳐드릴 수야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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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노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5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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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모리슨의 세 번째 작품이며 앞으로 상복이 터질 그녀에게 처음으로 큰 상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안겨준 장편소설. 토니 모리슨은 1993년에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라서 이이의 일생에 대해서 말을 보탤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내가 읽어본 모리슨 가운데 특히 <재즈>와 <러브> 같은 비교적 후기 작품의 경우에, 그저 흑인이나 젠더, 아니면 합해서 흑인 젠더 문제를 다룬 것이겠거니 쉽게 생각하고 덤볐다가 심각하게는 아니지만 혼쭐이 난 적이 있어서 <솔로몬의 노래>도 혹시 비슷한 어려움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약간 조심스럽기는 했다. 읽어보니 초기작이라 그런지 읽는 대로 진도가 잘 나갔다. 후속 작인 <빌러비드Beloved>와 비슷한 정도라고 하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듯.


  이야기는 1931년 2월 18일 수요일 오후 세 시에 시작한다. 주로 흑인들을 위한 보험회사인 노스캐롤라이나 상호생명보험사 직원 로버트 스미스 씨가 시의회가 있는 메인스 애비뉴의 북쪽 끝에 자리한 머시종합병원의 돔 지붕 꼭대기에 모습을 나타내 대중의 눈을 끈다. 사람들 속에는 ‘리나’라고 불리는 막달렌과 이이의 언니 커린디언스(신약성서의 ‘고린도전서’ 할 때의 ‘고린도’의 영어식 발음)는 들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뜨려 이들이 하는 유일한 작업/노동인 붉은 벨벳으로 만든 인조 장미꽃잎이 사방에 날렸고, 파일러트Pilate(사도신경에 “본시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할 때 ‘빌라도’의 영어 발음) 라는 이름의 다부진 체격을 한 여인은 흑인 특유의 깊은 공명이 담긴 콘트랄토 목소리로 “오 슈거맨 날아가 버렸네 / 슈거맨 사라져버렸네 / 슈거맨 하늘을 가로질러 / 슈거맨 고향으로 돌아갔네.”라고 노래했으며, ‘기타’라는 꼬마가 스미스 씨를 가리키며 저 남자가 누구냐고 묻자 두 주에 한 번씩 보험금을 걷어가는 바보천치 중에서도 바보천치라고 답변을 했는데, 드디어 로버트 스미스 씨는 커다랗고 푸른 날개처럼 생긴 옷을 입은 채 돔 지붕에서 하늘을 향해 크게 날아올랐으나, 그건 스미스 씨의 몇 초 안 되는 상상 속에서만 그런 것이고 실제로는 스미스 씨의 영혼은 모르겠고, 육신은 칼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날의 시멘트 바닥으로 거꾸로 처박혀, 철퍼덕, 그러나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은 채 생명이 있는 인체라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 자세로 엎어져 있었던 거였다.
  바로 이 순간, 리나라고 불리는 막달렌과 커린디언스의 엄마이며 십 수 년 만에 산기가 있던 루스 데드 여사, 이 거리 최초의 니그로 의사 포스터 박사의 딸이 갑자기 진통을 시작해 머시종합병원에 입원을 했고, 흑인 여자로는 최초로 병원의 계단이 아니라 병동에서의 출산이 허용되었으니, 다음날 이 기념비적인 출산 끝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자 우리의 주인공인 메이컨 포스터 데드 3세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외할아버지 포스터 박사, 니그로 출신 최초의 의사를 기념하고자 처음엔 흑인들이, 나중에 대충 많은 시민들이 박사의 병원이 있는 거리를 ‘닥터 스트리트’로 불렀고, 이를 고깝게 여긴 시의회는 ‘메인스 애비뉴’라는 호칭을 의사봉 3회를 두드림으로써 확정하는데, 다시 이를 고깝게 여긴 유색인들이 ‘닥터 스트리트’라고 하지 말라고 했으니 ‘낫 닥터 스트리트’로 불렀을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정작 박사를 알고 보면 같은 흑인이라도 피부색이 얼마나 덜 까만색인지를 환자의 등급을 정하는데 가장 유효한 척도로 삼았으며, 자신의 과도한 노동을 달래기 위해 프로로폴이 아닌 에테르에 거의 중독된, 일반적 기준으로 그냥 속물이었던 거다. 주인공의 외가 이야기는 이 정도면 넘친다.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의 엄마 루스에게 쾌감을 주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아이가 이가 나고, 걷기 시작하고, 기저귀를 벗고도 아이와 함께 작은 방에 들어가, 벌써 유치가 다 난 커다란 아이에게 이젠 더 이상 영양소도 없고 들척지근하고 밍밍하기만 한 젖을 먹이는 것이었다. 이 모습을 저택의 하숙인 겸 일꾼이며 수위이기도 한 수다꾼 프레디 씨가 창문 너머로 보고는 온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렸는데,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이니 뭐라 하지는 못했음은 물론이고 루스는 몇 달간 바깥출입을 하지 못할 정도로 창피해 했으며, 우리의 주인공 아이에게는 뭔가 깨끗하지 못한 이름, 더럽고, 내밀하고, 뜨겁고, 어쩐지 혐오감이 드는 “밀크맨”이란 별명으로 책이 끝날 때까지 불리게 된다. 며칠 전에 애너 번스가 쓴 <밀크맨>을 읽어서인지 이 호칭이 나올 때마다 어딘지 모르게 좀 헛갈리는 기분을 느낀 건 뭐 개인적인 일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밀크맨과 바로 위의 누나 리나라고 불리는 막달렌과의 나이차이가 열두 살. 어찌하여 이런 터울이 났느냐 하면, 아버지 메이컨 데드 2세가 장인인 포스터 박사가 죽은 다음부터, 그때 아내 루스의 나이가 스무 살이었음에도 그 후로 한 번도 아내와 동침을 하지 않아서였다. 그렇다고 따로 특별하게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다. 물론 이 커플이 왜 섹스리스가 됐는지는 안 알려드린다.
  메이컨에게도 슬픈 과거가 있으니, 그의 아버지 메이컨 1세와 인디언 출신 어머니 싱이 버지니아 주의 깡촌 샬리마(어쩐지 발음이 ‘솔로몬’하고 비슷하지?)에서 해방노예들과 함께 북쪽으로 향하는 마차를 타고 미주리 주에 정착해 힘든 노동을 한 끝에 자리를 잡았다. 엄마 싱은 메이컨이 어려서 아이를 낳다가 산고를 이기지 못해 아기를 배속에 넣은 상태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태중의 아이가 자기 혼자 힘으로 산도를 헤치고 세상 밖으로 나왔으니 저 위에서 깊은 공명의 콘트랄토 음성으로 노래하던 파일러트다. 태어나면서부터 워낙 고생을 해서 그런지 하느님은 파일러트에게 포유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배꼽을 선물하지 않아 이것 때문에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바’라는 사생아 딸과, 딸이 낳은 또 다른 사생아 딸 ‘헤이가’를 키우며, 약초, 밀주제조 및 판매를 생업으로 삼는다.
  이 남매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파일러트가 한 열두 살 정도 됐을까 할 때, 약 150에이커의 땅을 소유하며 이 가운데 50에이커는 훌륭한 경작지, 80에이커는 사슴과 야생 칠면조가 많이 사는 아름드리가 숲, 기타 양돈장 등의 빼어난 농장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데 이게 시의 가장 부유한 백인 가문의 대농장 한 가운데 탁 박혀 있고, 거기까지는 좀 봐주겠다 하더라도 흑인, 검둥이가 소유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땅이라 이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백인들에 맞서 무려 닷새를 울타리에 앉아 망을 보며 밤을 새우던 아버지가 하필이면 아이들이 보고 있던 어느 날 새벽에 뒤에서 날아오는 총탄에 뒤통수를 맞아 울타리 5피트 위로 날아가더니, 영혼은 그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렸을지언정 육신은 그냥 땅바닥에 고꾸라져버렸다. 백인들이 이제 실소유권이 넘어간 남매를 죽일지도 몰라 그길로 숲을 향해 달려가 일단 몸을 숨기고, 아들 메이컨이 밤을 이용해 아버지의 시신을 시냇가로 끌고 가 묻어준 후, 여기저기를 전전한 끝에 서로 헤어진다. 이런 과거가 있어서 그랬는지 메이컨은 도시에서 여러 집을 소유하고 이를 가난한 흑인에게 세를 주어 악착같이 돈을 벌어 나름대로 성공한, 백인처럼 사는 흑인이 된다.
  이런 환경과 부모 하에서 성장한 밀크맨. 공부를 더 시켜 의사로 만들고 싶어 하는 엄마의 뜻과 달리 아빠 메이컨은 대학을 가느니 어려서부터 자기 밑에서 돈 버는 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임대주택의 임대료 수금부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게 이르는데, 나면서부터 가난의 고통을 모르는 우리의 밀크맨은 아버지처럼 배타적 이익추구의 인간으로 성장하지 못하여 폭넓은 인간관계, 특히 저 앞에서 소개한 ‘기타’라는 인물과 돈독한 우정을 쌓으며 성장한다.
  밀크맨의 나이 열두 살 때 자기보다 다섯 살이 많아 고등학교에 다니는 기타를 만난다. 기타의 손에 이끌려 밀주를 만들어 동네에 싼 값으로 알코올을 공급하는 집에 들어선 밀크맨. 여기서 당연히 고모 파일러트를 만나 처음으로 자신의 가계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나 첫 방문에서 만난 고모의 손녀, 밀크맨보다 역시 다섯 살을 더 먹은 헤이가를 본 순간 자신이 여태까지 본 여자들 가운데 가장 예쁜 여자라고 단정을 하고, 여태까지의 삶 속에서 온전히 행복감을 느낀 적은 이 때가 처음인 것을 알게 된다. 근데 족보가 어떻게 되는 건가? 파일러트가 고모니까 고모의 딸 리바와는 사촌. 그러면 다섯 살 위의 헤이가는 오촌조카. 그러나 이건 우리나라, 소위 동방예의지국의 족보일 뿐, 미국에선 혼인도 가능한 사촌보다 더 먼 친척일 뿐. 그렇지? 맞다. 결국 둘의 교통사고는 피할 수 없다. 첫 만남이 이렇게 인상적인데 어찌 젊은 피를 참을 수 있을까. 근데 그건 하여튼 나중 일이다.
  내가 할 이야기는 다 했다. 여기에 흑백 갈등, 주로 백인에 의한 처벌받지 않는 흑인에 대한 범죄가 나오고, 흑인에 의한 상호 호혜의 원칙에 의하여 폭력을 행사했지만 법원에 의하여 처벌받지 않는 백인의 범죄에 동가同價를 이룰 ‘아무나 백인’을 향한 폭력 결사 ‘7일’, 밀크맨의 아버지와 고모가 도피생활을 할 때의 범죄와 당시 발견했던 황금을 둘러싸고 시작했다가 결국 밀크맨의 부계 족보에 대한 길고 긴 탐색과정과 작품의 시작에서 보험사 직원 로버트 스미스 씨가 시연했던 하늘로 솟구침, 혹은 고향으로 향하는 비상의 은유 또는 상징 같은 것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읽기 시작하면 쉽게 손에 놓을 수 없는 흡인력이 토니 모리슨의 필력을 보여주고, 여기에 상상 가능한 것을 독자 제각각 떠올릴 수 있는 상상력을 펼칠 기회까지 마련해주니 어찌 일독을 권유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번 읽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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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부터 6월까지, 언제나 그렇듯이 좀 읽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좋았던 책 열 권을 소개합니다. 딱 열 권 만 고르는 일이 특히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간보다 읽은 권 수는 적었지만 좋은 책들은 더 많았습니다. 아쉽게 여기에 끼지 못한 것들로 이기영 <고향>, 안젤라 카터 <매직 토이숍>, 서보 머그더 <도어>, 다니엘 켈만 <명예>, 조이스 캐롤 오츠 <카시지>, 아룬다티 로이 <지복의 성자>, 애나 번스 <밀크맨>, 박태원 <천변풍경>, 보후밀 흐라발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등이 있습니다. 이 대단한 작품들의 목록을 보더라도 오늘 소개하는 ‘괜찮은 책 열 권’이 얼마나 제 주관적인 감상에 의하여 결정을 한 것인지 금방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한 아마추어 독자의 취향임을 감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순서는 책을 읽는 날짜순이며, 장편소설은 <  >, 소설집은 《  》으로 표시했습니다.



1. 미셸 트루니에, <마왕>

 

  북부 독일의 두터운 이탄층 속에서 몇 백 년의 동면을 끝내고 이제 음산한 모습을 드러낸 마왕. 그는 구름 같이 커다랗고 까만 말을 탄 채 프로이센 지방을 돌아다니며 소년들을 모집한다. 아이들은 국가의 군사교육기관인 ‘나폴라’에서 소년병으로 키워져 앞으로 고국의 땅을 무단으로 침범할 군대와 자신의 생명을 교환하려 한다. 그러나 소년들을 품에 안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마왕은 또한 모든 인간들의 무게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죽을힘을 다해 어린 예수를 강 건너까지 건네주는 생크리스토프의 모습까지 태생에 가지고 있으니 어찌 고뇌가 없을 수 있을까. 거대한 말을 타고 척박한 프로이센 지방을 음울하게 돌아다니는 죽음의 신 마왕, 아벨 티포주는 또한 알고 보면 포로로 잡힌, 급성 근시와 성기 왜소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 군인. 그가 겪는 실로 다양한 에피소드와 스토리는 이 작품을 명작의 대열에 올려놓지 않을까 싶다. 적극 추천.



2.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

 

  사람 사는 이야기는 거의 언제나 독자들에게 공감을 준다. 모두 열 편의 단편소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크게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대표적인 연작 소설. 이야기는 엄한 아버지와 주인공 로즈가 절대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 계모 플로, 이렇게 흔하게 들은 삼각관계로 이루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소설 속에서 시간은 흐른다. 로즈라는 어린 소녀가 청소년을 거쳐 청년이 되어 핸리티라는 작은 도시에서 벗어나 토론토로 떠나며, 이어서 결혼적령기의 여성, 권태기 주부, 남의 남자를 사랑하는 이혼녀를 거쳐 옛 사랑의 사연을 전해 듣는 폐경기의 장년 여성이 될 때까지, 점점 깊어지고 서로 이해하게 되는 계모 플로와의 관계에 빠져들게 될 것임을 보장한다. 이런 것들이 기교가 별로 섞이지 않은 무심한 듯한 문장으로 툭툭 던져질 때 오히려 더 공감의 폭이 커지는 것을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을 읽을 만한 이유가 되리라.



3. 마거릿 드래블, <찬란한 길>

 

  마거릿 드래블의 삼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결론을 맺지 않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그럼에도 책을 다 읽으면 복잡하게 얽힌 ‘1980년대 초반 영국의 지역과 계급에 대한 상투적이고 사실적인 대작’ 한 편에 만족할 것임을 보장한다. 1950년대 초반에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세 친구들, 리즈, 알릭스 보웬, 에스터 브로이어. 이렇게 세 명이 주인공인데 삼부작 가운데 첫 작품이라 이 가운데 리즈를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진다. 1979년 12월 31일, 이제 새로운 10년을 맞이하는 송년 및 영신 파티를 열고, 파티 장소에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한 여섯 명의 남자 가운데 다섯이 참석한 것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잘 나가는 부자 정신과 의사 리즈. 그러나 리즈에게도 보다 리얼한 삶, 가족이 있으며, 자정이 지난 새해의 첫 시각에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이 있는 것이 또한 현실. 리즈와 남편으로 대표하는 부르주아 속물들로 이제 새로이 전 세계에서 대두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는 가운데 저절로 후속작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는 수작.



4. 돈 드릴로, <마오 II>

 

  1992년에 펜/포크너 상을 수상한 작품. 제목이 분명히 중국의 지도자 마오저뚱을 일컫는 <마오 II>이며, 표지에도 마오의 사진이 올라 있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관심을 받는데 성공하지 못한 듯한데, 진짜로 읽어보시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제목은 한 때 매릴린 먼로의 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앤디 워홀이 그린 회화 작품으로 마오의 얼굴을 그려놓은 (복제)그림의 제목이다. 주인공은 은둔형 소설가 빌 그레이. 공식적인 자리에 얼굴을 내밀지 않아 존재조차 의심받기도 하는 작가들, 토머스 핀천이나 제롬 데이비스 셀린저 같은 이들의 은유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그러나 어느 날 결심으로 하고 작가들의 사진만 전문적으로 찍는 이색적인 사진작가 브리타 닐슨을 자기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여러 가지가 의심스러운 조수 스콧을 보내는 것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첫 장면은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주재하는 6,500 쌍의 합동결혼식부터 시작한다. 드딜로답게 매우 다양한 관심사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마치 10년 후 뉴욕의 무역센터 빌딩 폭파를 예견하는 듯한 메시지도 포함하고 있어 더 주목되기도 하는 책.



5.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

 

  아, 이이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읽은 것이 벌써 언제 적이냐. 그 후 《남해 금산》을 거쳐 이 시집까지 어떻게 이리 한결 같을 수 있으랴. 아직도 시어가 만들어내는 공감각 또는 그냥 공감에 독자는 그만 사스락, 작은 모습으로 기겁을 하고 만다. 그렇다고 시인이 독자의 감성에만 호소하는 감각의 시어를 남발하지 않는다. 이이의 본질은 모더니스트. 시를 다 읽기 전에 무슨 뜻인지 모를 사투리를 절묘하게, 여러 작품 속에서 같은 단어를 섞어 씀으로 해서 하나의 에스프리로 몇 몇 시를 작은 한 단위로 합치는 배열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직 이성복의 변하지 않은 시구를 탐색하고 시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를 궁리하는 일은, 그것이 비록 옳든 틀리든 간에 시를 읽는 독자의 자잘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리라.



6. 리처드 파워스, <오버스토리>

 

  오버스토리. 열대 우림이나 온대 밀림 지역에 빽빽하게 들어찬 높이 60미터 위에서 펼쳐지는 초록의 스카이라인. 이것을 ‘오버스토리overstory'라고 한다. 유럽인이 들어오기 전에, 들어와서도 백 년 동안은 거의 온전히 보존되어 오던 완벽한 숲에, 엔진으로 가동되는 강철 회전 톱이 등장함으로써 식민지 시대를 포함한 미국의 역사는 물론이고 예수의 탄생보다 오래된 나무들이 뭉텅이로 잘려나가는데 잘린 나무 그루터기에 스무 명의 사람이 올라가, 네 명의 추는 춤이 뭐더라, 아하, 카드리유를 추어도 괜찮은 그런 거목들의 숲이 한창 때에 대비해 99%가 사라진 현재, 각기 다른 탄생과 성장과 운명과 학식과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몇 명이 잃어버린 나무와 숲, 일찍이 신이 창조한 가장 거룩한 생명을 유지하고자 생명을 걸고, 삶을 걸고, 자기 재산을 걸고 걸신들린 천민자본주의와 한 판 승부, 패배가 확실하게 보장된 승부를 거는데 망설임이 없는 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세상의 모든 비문맹자들에게 권한다.



7.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거꾸로>

 

  상상하지 못할 것은 없다. 벨 에포크 시대를 맞이한 프랑스에서 책의 주인공 데 제쌩트 공작은 육지거북의 등껍질을 순금박으로 입히고 그 위에 갖은 보석으로 치장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를 즐기지만 안타깝게도 거북은 죽고 만다. 인류가 만든 라틴어라는 언어와 문자가 누린 온갖 화려함과 영화와 쇠락과 몰락을 보통 사람들은 전혀 알지 못할 정도의 스펙트럼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지적으로 우월하다는 걸 노골적으로 과시한다. 위스망스는 세기말을 맞이하여 시대가 요구하는 지적 퇴폐와 향락과 부도덕을 특유의 부패의 향기로 세상을 덮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새로운 백년이 과학의 세기였던 19세기에서 비롯한 인조물의 유토피아, 지적 유희의 미로가 되기를. 그러나 조심하시라. 숱한 독자들이 이 책을 기대 이하, 읽을 만하지 못한 책으로 선정했다는 점을 참고하면 좋겠다.



8. 채만식, <탁류>

 

  이리 재미있는 우리의 근대소설을 이제야 읽다니 딱 한 마디로 해서 만시지탄이다. 중학교와 고교시절에 <탁류>에 관하여 하도 많이 들었고, 내용마저도 훤할 정도로 익숙해서 오히려 일독에 이리도 세월이 많이 필요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우리나라 소설문학을 우습게 아는 건방짐까지 더하여. 만일 아직 <탁류>를 읽지 않으셨으면 우선 읽어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심지어 우리나라 작가라서 그렇겠지만 졸라보다 더 재미있다. 읽는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즉각적으로 알 수 있으며, 제주도를 뺀 각 지방의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독자들 역시 그게 어떤 의미인줄 아는 모국어의 힘. 아, 유럽인들은 이런 즐거움을 언제나 알고 있었을 테지. 한국식 자연주의의 최고봉. 작 중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다 쓰러져가는 양반 댁의 맏딸을 돈 많다고 거짓말하는 가망 없는 사기꾼한테 결혼시키면서 이 대책 없이 재미있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비극, 그러나 곳곳에 웃음과 해학과 골계와 풍자의 시한폭탄이 숨어있는 우리의 근대소설은 시작한다.



9. 존 스타인벡, 《붉은 망아지 · 불만의 겨울》

 

  네 편의 옴니버스 식 짧은 이야기로 되어 있는 중편소설 <붉은 망아지>와 작가의 마지막 소설인 <불만의 겨울>을 한 권에 실은 착한 책. <붉은 망아지>도 참 괜찮은 초기 중편이지만 <불만의 겨울> 역시 마지막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스타인벡의 작품으로는 매우 예외적으로 미국 동북부, 뉴욕과 알바니, 몬타우크를 포함한 동북부 지방을 배경으로 독립전쟁에서 큰 공을 세우고, 사략선, 쉬운 얘기로 해적단을 거쳐 세계최대의 포경선단을 합작 운영했지만 이제 완벽하게 몰락한 홀리 가문. 홀리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이선은 하버드 출신으로 선량하고 정직하고, 부정행위를 단호하게 물리치는 청렴이라는 무기로 1960년대, 부정과 부패와 뇌물과 차별로 얼룩진 미국 사회에서, 한 번 망하면 다시는 복구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고 사실 또 그랬던 정글, 자본주의의 뒷골목에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분명 정직하고 청렴해서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하여튼 교묘하고,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교활한 선량함으로.



10. 토니 모리슨, <솔로몬의 노래>

 

  토니 모리슨에게 처음으로 큰 상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안긴 작품. 라틴아메리카의 환상적 리얼리즘하고 조금 다른 아프리카 식 마술적 은유를 가미시키는 건 후속 작품 <빌러비드>와 비슷하지만 결코 작가의 후기작품들처럼 읽기 어렵지 않으니 도전해봄직 하다. 혼자 걷고 뛰며, 유치가 모두 나서 이제 다 컸다고 누구나 인정할 나이가 돼서도 엄마젖을 먹다가 동네 수다꾼 아저씨에게 들켜 졸지에 ‘밀크맨’이란 별명을 책이 끝날 때까지 들어야 되는 운명의 메이컨 데드 3세. 크게 말하자면 밀크맨이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미국 대륙을 뒤져 알아내는 내용이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재미없다. 초장, 1931년에 흑인들만 가입하는 보험회사의 모집원이 전혀 자비롭지mercy 않은 머시 종합병원의 돔 지붕 위에서 푸른색의 날개 비슷한 옷을 입고 하늘로 솟구치며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사실은 이게 수미쌍관법이라, 밀크맨의 흑인 조상과 원주민 조상들 역시 솟구치며 한 방에 아프리카와 옛 시절의 아메리카라는 고향, 자유가 무한히 보장되던 곳으로 순간이동하려는 꿈이 있었나보다. 어머나, 이를 어째, 엉겁결에 결론을 말해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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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30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왕>은 폴스타프님께 땡스투 하고 사놨는데, 하반기에 읽을 것 같습니다.
<오버스토리>도 꼭 읽을게요. 돌아오신 것 환영합니다.

Falstaff 2020-06-30 15: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환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알라딘을 이용해온 고객입니다. Falstaff 라는 이름을 쓴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서재도 4년 전에 만들었을 뿐이지만 하여튼 책 좀 읽는다는 독자 가운데 한 명일 겁니다. 플래티넘 고객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북플이었습니다. 어제, 그러니까 2020년 6월 26일 아침부터 북플을 열면 아래와 같은 서비스 주의 사항이 뜨는 겁니다. 제 북플 화면에는 아직도 같은 메시지가 뜹니다.

 

하루종일 무시하고 있다가 퇴근 무렵에 결국 아래를 클릭했습니다. 바보같이.

 

 

  그랬더니 제 계정 전부 폭파되고 말았습니다. 4년간 쓴 독후감, 서재 친구들 리스트는 물론이고 7만원이 넘는 적립금, 1만원 중반 대의 마일리지, 여태까지 구매한 리스트, 보관함 내역, 아놔, 금요일에 살까 하다가 7월 초에 추가 적립금 받아서 한 방에 사야지, 하고 대기했던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 형제들> 여섯 권 세트 외의 것들까지. 그냥 구입할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북플 여태 안 하다가 뭐하는 짓인지 말입니다.

 

  뭐 알라딘이 복구는 해주겠지만 이게 무슨 시간 낭빕니까. 이런 바이러스는 누가 만드는 건지 참, 정말 사이코에다가 니힐적 사디스트 같아요.

 

  여러분, 조심하세요. 혹시 이런 메시지 뜨면 절대 클릭하지 마세요. 피해자는 저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 서재도 복구가 되었는데요, 서재 친구들은 다시 사귀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이나마도 다행이지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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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읽는책 2020-06-30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기 안녕하세요! 제가 오르한 파묵 <검은책>리뷰를 보고, 책 다 읽고 히뷰읽으러 오겠다고 덧글을 남겼었는데 그분이 맞으신지요? 리뷰를 찾아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수가 없어서 어떻게 된거지..??? 하고 있었는데 오르한 파묵 리뷰도 남겨주신 분 맞으신지요??

Falstaff 2020-06-30 08:46   좋아요 1 | URL
예. 맞습니다.
그 사이에 알라딘 궁에 해적들이 침입해 와서 제 모든 계정이 그만 피살을 당했답니다.
<검은 책> 독후감은 여기에도 있어요. 별거 아닌 독후감을 기억해주시다니, 감격입니다. ㅠㅠ
https://blog.naver.com/wunderhorn/221080952018

GoldenSlumber 2020-06-3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리뷰 보러 종종 서재를 들르는데 계정이 폭파되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얼른 복구되시길 바랍니다.

Falstaff 2020-06-30 14:09   좋아요 1 | URL
복구는 현재가 최선이라고 하네요. 마일리지하고 적립금 돌려주는 거요.
서재 독후감 써놓은 거, 서재친구들 목록, 이딴 건 그냥 다 묻힌답니다.
그래서 슬럼버님에게 친구 신청을 다시 해야겠습니다. ^^;;
근데 이름이 너무 좋아요, golden slumber, 아 정말 부럽습니다. 언제 한 번 저도 그렇게 자 보나... 싶어서요. ㅋㅋㅋㅋ

hnine 2020-06-3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새벽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알라딘, 꼭 복구해주겠지요? 그래야만 하는데.

Falstaff 2020-06-30 14:11   좋아요 0 | URL
헙. 저도 hnine 님 소식이 궁금했는데, 이노무 알라딘에 아예 접속하기가 팍 싫어지더라고요. 와, 순식간에 정이 뚝 떨어지는데 그거 붙이느라 한 3일 걸리더라고요.
복구는 안 된답니다.
˝자진해서˝ 알라딘 탈퇴한 걸로 표시가 된다더군요.
문제는 북플에 접속하면 아직도 똑같은 메시지가 표시된다는 겁니다. 세상에나...
무서워요. 덜덜덜.... ㅋㅋㅋㅋ

잠자냥 2020-06-30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이게 정녕 복구의 끝이랍니까?
이 낯선 뚱땡이 폴스타프는 무엇입니까??? ㅋㅋㅋ 예전 폴스타프가 왠지 더 폴스타프스러운데 말입니다. ㅎㅎㅎ
암튼 이렇게라도 돌아오신 것 환영합니다. 이 호색한 이미지의 폴스타프에게도 적응해야겠죠. ㅋㅋㅋㅋ

Falstaff 2020-06-30 15:1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이렇게 반겨주시니요. 하하하하....
친구는 다시 사귀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얼른 친구신청 했습니다. ^^

밤에읽는책 2020-06-30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로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플;;; 안심하고 쓸 수가 없겠어요 .. 복구하시느라 고생이십니다;;;

Falstaff 2020-06-30 20:06   좋아요 0 | URL
다행스럽게도, 알라딘에서 연락이 와서요, 회사의 실수임을 인정했답니다.
이제 100% 완벽 복구는 힘들더라도 많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coolcat329 2020-07-15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엊그제인가요. 다른 분. 글들은 다 들어가지는데 폴스타프님 글만 튕기고 안 들어가지는거에요. 제가 얼마나 읽고 싶었으면 북플을 삭제하고 다시 설치했는데도 역시나 안되더라구요. 이런 일이 있었군요...

Falstaff 2020-07-15 16:06   좋아요 0 | URL
윽! 그러셨습니까. 이런....
저도 예전에 제가 쓴 글에 원활하게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알라딘에선 복구가 완료됐다고 하는데요, 사과한다고 주는 적립금 만원 받고 헤~ 해버린 대가로 그냥 참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7-15 15:45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요즘 폴스타프 님 새로 복구하신 뒤로.... 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새 글 올리시면 똑같은 글이 두 개 나란히 중복으로 올라와요(북플 및 컴터로 보는 서재 모두 그러하옵니다).ㅋㅋㅋㅋㅋㅋ 이것도 알라딘의 과한 배려일까요?

Falstaff 2020-07-15 16:04   좋아요 0 | URL
음하하하.... 거 참 재미있군요.
근데 왜 그럴까요? 참, 저도 어느 분이던가, 글 두 개 뜨는 것 봤습니다.
알라딘 전산 쪽에 한 번 물어봐야겠네요. 이거 참 웃긴 배려네요. ㅋㅋㅋㅋㅋㅋ
 
청춘예찬 범우문고 235
민태원.이육사 지음 / 범우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별점은 작품 <청춘예찬>이 아니라, 하드웨어로의 이 책 《청춘예찬》에 대한 평가입니다.

 

 

  교과서에 실린 글은 대부분 당대 최고의 명문일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에 교과서를 통해 읽고 공부하고 시험문제에도 나와 풀어본 <청춘예찬>. 이 수필을 읽어보기로 결심을 하기까지 매우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머리가 채 커지기도 전에 주위에서 이런 저런 수필집을 권하고는 했다. 수필집의 제목을 밝히기도 송구할 정도의 높은 학문, 숭고한 종교적 성찰, 흉내 낼 수 없는 철학적 깊이로 이름이 높은 분들이 쓴 수필집을 몇 권 읽기는 했다. 그러나 도무지 적응을 할 수 없었던 거다. 이토록 높은 성가를 즐기며 서울 시내 종이 값이 하늘을 찌르게 만드는 베스트셀러 수필집이 어째 내 눈에는, 내가 읽기로, 이제 겨우 대가리에 쇠똥이 벗겨지기 시작한 내가 인식하기로, 한낱 신변잡기나 잡문 또는 낙서, 아니면 괴문서처럼 읽히는 거였다.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지적 능력을 자랑하는 동시에, 사실은 잘난 척 말고는 별로 하는 일 없는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두뇌활동을 사색이라는 이름으로 윤색한 것에 불과한 책을 읽고 도대체 배울 것이 없는 잡문이라 결론을 지었다. 이후 수필은 안 읽겠다고 결심을 했으며, 수십 년 동안 결심한 바를 지켜왔다. 그러나 올해부터 수필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변영로의 <명정 사십 년>에 이어 이번에 민태원의 <청춘예찬>. 며칠 후 양주동의 <문주반생기>도 계획에 있다. 수필. 내 생각으로 가장 쓰기 어려운 산문이 수필 같다. 아무나 그저 붓 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은 수필이라고? 천만의 말씀. 어떤 글이 수필이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정의도 내리지 못하겠다. 우리는 위대한 수필의 나라에 살아왔지 않은가. 나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할 높은 직위의 공무원을 뽑는 과거 시험에 무려 9백 년 동안 좋은 글씨로 쓴 멋있는 수필을 요구해왔던 해동수필국. 그러니 어떤 것이 수필이라고 내가 굳이 따로 설명할 이유가 없다.
  <청춘예찬>. 이런 것이 수필이다. 물론 낡았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이다.’라는 표현이 신선한 은유였던 시절에 쓰인 수필이니. 그러나 청춘, 생명을 불어넣는 따뜻한 봄바람의 시절을 이렇게 강건한 문체로 화려하게 쓴 글을 읽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글쓴이 민태원. 갑오농민전쟁이 있었던 1894년생. 약관 20세에 매일신보에 입사해 사회부장까지 하고 기미독립만세운동 이듬해인 26세 때 동아일보로 옮기고 회사의 지원을 받아 와세다 대학에 유학한다. 서른 살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내다가 서른두 살에 중외일보 편집국장으로 다시 옮기는 매우 바쁜 사회활동을 한다. 서른여섯 살에 중외일보가 폐간됨에 따라 잠시 실직을 하다가 만주의 친일신문인 만몽일보 창간에 그만 발을 딛어 한동안 친일인사의 낙인이 찍히고 만다. 민태원이 친일신문의 창간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구성원의 면면을 알고 난 후에 곧바로 발을 뺐으며, 이에 문학평론가 윤고종은 오히려 뼈저리게 느끼던 일제의 압박에 대해 음으로 양으로 항거에 몸을 바친 애국문인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민우보(민태원의 호 牛步)는 신문기자로서 일제의 거듭하는 탄압 속에서도 꿋꿋이 필봉을 굽히지 않았고……”라고 썼다. 그가 1935년에 폐결핵으로 사망을 했으니 친일행위를 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을 듯한데 그건 역사가의 해석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의 초간이 1976년. 민태원의 작품으로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일어 중역한 <애사哀史>, 부아고베의 <철가면>을 역시 일어 중역한 <무쇠 탈>과 <죽음의 길>이라는 번역 소설 등이 있고, <어린 소녀>, <음악회>, <천야성> 같은 소설을 창작, 발표한 바 있으나 해방 후 격변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필 세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자료는 모두 망실되었다고 한다. 그래 이 책에는 민태원의 세 편의 수필 <청춘예찬>과 <월남 선생의 일화> 그리고 잡지 “개벽”의 의뢰로 충남지방의 특징에 관해 쓴 글 <추억과 희망> 이렇게만 실려 있다. 다 합해봐야 30쪽도 되지 않으니 그래도 한 권이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이육사의 수필 열세 편을 함께 실었는데, 아뿔싸, 육사의 수필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이육사 시집》에 전편을 이미 실린 것들이다. 그러니 이 책은 온전히 민태원의 세 수필만 읽기 위한 것이 됐다.


  이제 다시 세월이 흘러 민태원의 작품을 읽어보려 하면 이 책이 아니라 당연히 ‘현대문학’에서 나온 《민태원 선집》을 읽어야 할 것이다. 《민태원 선집》은 범우사가 《청춘예찬》을 찍고 34년이 흐른 2010년에 출간한 것으로 수필은 물론이거니와 그동안 망실됐다고 생각해온 민태원의 창작 소설 세 편과 김옥균 평전 비슷해 보이는 <오호 고균거사嗚呼 古筠居士 - 김옥균 실기>까지 실려 있으니 굳이 내가 읽은 범우사의 옛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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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6-26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예찬의 저자로만 알았지 정작 민태원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는데, 덕분에 자세히 알고 갑니다. 소설까지 낸 바 있다는 것도요.
그러니까 저는 범우사의 <청춘예찬>이 아니라 현대문학에서 나온 < 민태원 선집>을 읽어야겠군요.
수필이란 그저 붓가는대로 쓴 글이 아니라는 말씀에 절대 공감합니다. 적어도 자기만의 통찰이 있어야 하고 그 통찰과 사유의 결과가 담겨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남들이 이미 한대로, 쓴대로 말고 ‘자기만의‘ 무언가 담겨야 한다는 점에서 아무나, 아무때나 쓸 수 있는 글 같진 않아요.

Falstaff 2020-06-26 11:28   좋아요 0 | URL
이 분이 너무 일찍 가고, 남긴 저술이 몇 개 없었던 모양입니다. 소설 역시 당시 소설들이 그래야 했듯이 계몽적 요소가 많이 들어 크게 인정받지는 못했고요.
그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분의 책을 읽을 만할까,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청춘예찬>이 명문이라 그것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읽으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월남 선생의 일화> 같은 거는 국한문 혼용이지만 기미독립선언서보다 좀 쉬울 정도라 아예 사전을 열어놓고 읽어야 할 정도입니다.
수필을 쉽게 알고 막 써낸 수필집 때문에 오랜 동안 멀리 해왔습니다. 어떤 것이 잘 쓴 수필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말씀에는 공감하지만 어떻게 통찰과 사유의 결과를 알아서 읽어야 하는 것인지, 에휴.... 끝이 없습니다. 걍 소설이나 읽고 마는 게 제일 속 편합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