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힐러리 맨틀 지음, 박산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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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프 홀>과 <시체를 끌어내라>로 남들은 살아생전 한 번 받기도 힘든 부커상을 2009년과 2012년, 3년 터울로 두 번이나 받은 작가, 라는 걸 나는 두 작품을 읽을 때야 알았다. 그리고 뭐 남의 나라 발정한 왕의 허리하학적 이야기, 원래는 가톨릭에 충성했던 영국 국왕이 이혼하고 싶어서 종교개혁을 단행했다는 것도 그리 아름답지 않아 별 관심도 없던 터여서 별로 재미있게 읽지도 않았다. 그래, 그래. 설마 오직 이혼 문제 하나 때문에 종교개혁을 하지는 않았겠지. 내가 아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이리 말하는 것이니 그냥 그렇거니 해 주시라.

  정말 20세기를 산 사람인지, 아니면 누백년 동안 죽지 못하는 삶을 이어온 연금술사 혹은 악마인지 정체가 아리송한 플러드라는 야매, 가라 신부神父 이야기인 <플러드>까지, 내가 읽은 힐러리 맨틀은 하여간 조금은 중세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터, 도서관 개가실을 거닐다가 맨틀 여사가 난데없이 마거릿 대처 수상이자 남작부인의 암살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쓴 책을 발견했으니 어찌 혹하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올해 탄생 백년을 맞는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이 아마 늙어 죽었을 걸? 그럼에도 “암살 사건”이라고 했으니까 틀림없이 암살 ‘미수’ 사건에 관한 픽션이겠지? 이렇게 감을 잡았다. 우스운 것이 한 국가, 그것도 20세기 말에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극점을 찍은 영국 총리의 암살 사건을 소설화한 책이니까 당연히 장편소설이겠지, 했지만, 단편집이었다는 거. 힐러리 맨틀의 단편소설집이 딱 두 권 있는데,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2014년에 출간한 두 번째 책이다. 말미에 책에 실린 작품이 언제, 어느 매체에 발표한 것인지 밝혔지만 표제 작품은 예외다.


  돌아보니 영국 작가가 쓴 소설책도 꽤나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까, 숱한 영국 소설가 가운데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을 좋게 묘사한 사람이 1도 없었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 동안, 20세기 들어 가장 오래 영국 총리를 해먹은 인물이기도 하고 최초의 여성 영국 총리이기도 한 대처 남작부인이라면 다른 건 모르겠고 대중적 인기가 대단했으리라 싶은데, 보수당 출신이어서 그런지 작가들한테는 1급 비추였던 모양이다. 하기는 내가 아는 보수 지지 작가라고는 오노레 드 발자크와 <파운틴 헤드>를 쓴 애인 랜드밖에 없기는 하다. 뭐 대개 그렇지. 진보주의자로 불리고 싶지만 사는 건 부르주아로 살고 싶은 게 요즘 인지상정이니까. 대강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스스로도 그렇게 불리기 바라고 자신을 그렇게 정의하기도 했던 바, “강남 좌파”라고 하는 거 아니겠나. 인생 목표가 강남 건물주인 "자칭" 진보주의자들.

  단편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은 1984년 런던 남쪽에 있는 도시 브라이튼의 그랜드 호텔에서 IRA에 의해 저질러진 폭탄 테러를 말하는 건 아니다. 아예 정확한 제목도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1983년 8월 6일>이니까 실제 암살 미수 사건이 생기기 1년 2개월 전이다. 작 중에서 대처 수상은 가벼운 안과 시술 차 런던 시내의 병원에 갔고, 시술을 마치고 나올 때, 의사와 간호사, 기타 관계자가 도열한 가운데 한 명씩 악수를 나누며 병원문을 나설 것이고, 이때 병원 현관이 잘 보이는 민간 아파트에 들어가 창문에서 저격용 소총으로 암살한 다음, 암살범은 총을 든 채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다가 경호원과 교전 중에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 시나리오이다. 잡혀봤자 그래도 20세기 잉글랜드니까 심하지는 않겠지만 고문 또는 고문에 준하는 신문을 당할 것이고, 신문 끝에 관계자 여러분의 명단을 줄줄 읊을 수밖에 없을 터이니 암살자 한 명 때문에 IRA 조직이 와해되는 것보다 깨끗하게 죽는 게 여러모로 영웅답다, 이거다.

  이 작품을 읽는 영국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동아시아 독자들과는 달리 암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고 있다. 그러면 이 단편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궁금하기는 궁금한데 어떤 방식으로 궁금한지 알아내기 위하여 한 번 더 읽을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힐러리 맨틀은 20대 젊은 시절부터 심신이 건강하지 못했다. 신경정신과 적으로 질환이 있어 약물을 복용해야 했고, 산부인과적으로도 질환이 있어 27세에 조기 폐경을 해 평생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너무 빨리는 아니고 2022년에 70세의 나이로, 마거릿 대처 남작부인과 비슷한 질환인 뇌졸중 합병증으로 세상을 접었다.

  가볍지 않은 질환을 가진 채, 달리 말해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태로 늘 약을 복용하며 살았던 맨틀은 죽음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등장한다. 이를 미디어의 서평에서는 “유머러스하고 잔인한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좀 과한 평가 아닐까 싶었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렇게 당하고 싶지 않은 반어법적 그로테스크, 이것을 묘사하는 마음이 즐겁지 않았을 것 같아서. 하여간 뭐 그렇다.

  부커상을 두 번이나 탄 힐러리 맨틀이지만 단편들이 그리 즐길 만하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감상이다. 스토리의 적절한 반전도 그냥 그렇고, 문장이나 구성이 눈에 차지도 않았다. 늘 얘기하는 것이지만 나는 “단편소설의 나라”에 사는 독자라서 단편 소설에 관해서는 눈이 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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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1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단편소설에 대해 눈높으시죠
근데 장편소설에 대해서도 눈 높으시잖아요. ㅎㅎ
이 작가는 이름이랑 작품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주로 역사소설이군요. 헨리8세 근처 시대 딱히 관심이 없는데 고민좀.... 저는 요즘 아민 말루프 너무 좋습니다. 사마르칸트도 나쁘지 않았어요. 후반부의 딕션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전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Falstaff 2025-08-11 16:09   좋아요 1 | URL
눈높이에 대해 솔직히 말씀드리면, 알라딘이 책 가게이지 않습니까? 마음 먹은 별점보다 한 반 개 정도는 상향 조정하고 있습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이런 심정으로요. ㅋㅋㅋ
저는 사마르칸트, 이 중부 아시아 지역에 로망을 갖고 있어서 언제가 기대가 크거든요. 말루프의 <사마르칸트>는 너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군요. <타니오스의 바위>는 괜찮았습니다만.

blanca 2025-08-11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힐러리 맨틀이 이미 고인이 된지도 몰랐어요. 엄청난 작가라는 것만 알았는데... 단편집은 기대에 못 미치는군요. 단편과 장편 각각 특화 분야가 다른 것 같아요.

Falstaff 2025-08-11 16:12   좋아요 0 | URL
부커 2회 수상자면 굉장한 필력을 인정받은 거겠지만 ㅎㅎ 남의 나라에서 벌어진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 장면이라 아시아 변방인의 입장에서는 별로 끌리지 않더라고요. 단편집 읽어보니 역사 장편이 더 좋았습니다.

yamoo 2025-08-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읽가 때려치웠어요. 부커상 받은 작가 모아놓고 읽는데 이 책은 읽다 때려친 2권 중 한권입니다..ㅎㅎ

Falstaff 2025-08-12 04:57   좋아요 0 | URL
ㅋㅋㅋ 돈 주고 사신 건데 웬만하면 걍 달리시지 그랬습니까.
 
알려진 세계 - 2004년 퓰리처상 수상작
에드워드 P. 존스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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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에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범띠 할배 에드워드 폴 존스는 아프리카계 자메이칸 미국인인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어머니 슬하 2남1녀의 맏이였다. 소년시절에 아버지가 집을 나가 글씨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엄마가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을 해가며 키워 맏아들 에드를 “워싱턴 D.C 출신의 가장 훌륭한 작가”로 만들었는데, 아쉽게도 막내 아들 조지프 V.는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에드워드 P. 존스는 2004년에 퓰리처 상을, 2005년에 국제 더블린문학상을 받은 <알려진 세계>를 자신의 동생 조지프 V. 존스와, “더 나은 세상이었다면 훨씬 많은 일을 했을 어머니 저넷 S.M. 존스를 다시 한번 기리며” 헌정하기에 이른다.

  위키피디아에 나온 존스의 딱 세 권의 책만 등록되어 있다. 두 권은 단편집이고 <알려진 세계>가 유일한 장편소설인데, 다른 상도 아니고 미국 작가들의 로망인 퓰리처 상을 받은 것도 모자라, 21세기 100대 저작 가운데 앞에서 네 번째 자리를 꿰찼으니 읽기 전에 이 책에 대한 기대감이 어땠겠는지 짐작하시겠지? 물론 21세기 100권 리스트를 볼 당시에는 존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것도 몰랐고, 이 책이 미국 남북전쟁 전 흑인 노예 이야기인지도 몰랐지만 하여간 기대만빵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리고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기대가 크면? 그래, 실망도 큰 법. 아쉽게 이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책의 본문이 511쪽에서 끝나는데, 511쪽이라 해도 그리 크지 않은 폰트와 빽빽한 편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저 오래전 알렉시 헤일리의 <뿌리>부터 시작한 흑인 노예와 탈출 이야기에 단련된 독자를 자극할만한 장면이 (거의)없는 순한 맛, 그러니까 독한 노예농장 감독과 농장주, 그들이 가하는 채찍질과 고문 같은 것들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이 독후감을 업로드할 날이 극강의 무더위가 지배할 8월 8일 경이 될 걸로 보이는데, 읽다가 엉덩이에 뾰루지 생기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걸 거꾸로 이야기하면, 그래서 착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대하지 마시라니까 글쎄. 착한 작품이 재미있는 거 몇 번이나 보셨어?


  작품은 버지니아 주의 가상 군郡 맨체스터 카운티와 이에 속하는 지역의 농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맨체스터 카운티는 훗날 버지니아 연방 역사상 다른 카운티들, 애머스트 카운티, 넬슨 카운티, 어밀리아 카운티, 해노버 카운티 등에 분할되어 먹혀 버려 사라지게 되며, 그곳에서 있었던 모든 서류 역시 1912년의 대 화재로 인해 몽땅 불에 타버렸다고 했다. 이렇게 해 놓아야 작가가 자기 마음대로 허구를 쓸 수 있을 테니까.

  늘 그렇듯이 이 카운티에도 막강한 권력을 쥔 두 명의 부르주아가 있어 처음엔 사이 좋게 지내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척이 지는데, 서부영화에 자주 나오듯 서로 총질도 하고 그랬지만 몬태규와 캐플릿 가문처럼 늘 살벌한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이 가운데 한 집안의 대장이 노예 113명을 소유한 맨체스터 최고 권력가이자 로빈스 농장의 주인 윌리엄 로빈스 씨.

  우리는, 아니, 나는, 그동안 소위 문학작품을 통해 보아온 노예 농장의 농장주들이 노예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는지 보아왔기 때문에, 로빈스 씨가 등장할 때부터 이 양반도 카운티의 주요 핵심 멤버들을 초빙해 점심 만찬을 즐기는 가운데 여흥으로 도망 노예를 피와 살이 튀게 채찍질하고, 반쯤 죽어나간 노예의 생식기를 잘라 입에 물린 다음,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이는 장면을 농장의 모든 노예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게 하는 동시에 만장하신 백인 만찬 참석자의 소화효소 생산에 도움을 주리라고 짐작했다. 이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그간 읽고 배운 게 그런 거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잖아?

  그러나 로빈스 씨는 이에 비하면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계급간 확실한 경계를 지키는 것은 당시 농장주들의 윤리에 입각하면 당연한 것. 노예를 자신의 재산으로 취급한 것도 당시 윤리와 부합한다. 그러나 잔혹한 면은 없다.

  노예 가운데 오거스터스 타운센드라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손재주가 뛰어나고 매워 목수와 목각으로 이름을 떨쳤다. 아직 스무살도 되지 않아 오거스터스가 만든 책상, 의자, 장식장 같은 건 명품이라 해도 그리 손색이 없을 정도이고, 온갖 동물과 저택을 조각한 지팡이 같은 소품 역시 한 번 본 이들이라면 구입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정도의 솜씨를 자랑했다. 로빈스 씨는 오거스터스로 하여금 가구와 목각품을 만들게 하고 그것을 팔아 자신은 마땅한 수수료만 챙기고 나머지 이익금을 전부 젊은 노예에게 주었다. 정확하게 수수료를 어떻게 계산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작품이 끝날 때까지 로빈스 씨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마도) 수긍할 만하지 않았겠는가 싶다. 그리하여 오거스터스 타운센드는 겨우 스물두 살 때 노예 신분을 스스로 사들여 자유인이 된다. 그리고 스물다섯 살이 되는 해에 스물여섯 살인 아내 밀드레드의 몸값을 완불한다. 다만 이제 겨우 아홉살이 된 헨리의 신분을 사기 위하여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헨리가 다양한 방면으로 로빈스 씨의 마음에 들었고, 아빠 오거스터스를 닮아 손재주가 있어 가죽을 두드려 신발 만드는 일은 근동에 비교할 상대가 없었다.

  로빈스 씨는 아내와 딸 하나만 두었다. 애설과의 혼인생활에 유별난 문제가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지만 세월이 갈수록 조금씩 멀어진 건 확실하다. 로빈스는 자신의 노예 가운데 딱 한 명의 여성 노예 필로메나와만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깊은 사이가 되자 그는 필로메나를 농장을 떠나 맨체스터 카운티 내의 집을 한 채 구입해 그곳에서 살게 하며 사이에 도라와 루이스를 낳았다. 오히려 필로메나가 로빈스 씨의 속을 썩이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는 묵묵히 견뎌내고, 후에 뇌졸중으로 생을 마감할 때, 유색인종으로 구분해야 마땅한 딸 도라가 최후의 순간까지 병상을 지킨다.

  로빈스 씨가 맨체스터 필로메나의 집에 갈 때마다 사나흘씩 묵었다. 며칠 후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새벽이었다. 하루를 줄이기 위해 밤에 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날이 더우나, 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저택의 정문 앞 언덕배기에서 벌판을 바라보고 한 흑인 소년이 서서 그가 눈에 보이면 냅다 뛰어가 주인 나리, 돌아오셨습니까, 반갑게 반겨주는 게 헨리 타운센드였으니 특별히 마음에 들 수밖에. 그리하여 몇 년 후, 오거스터스 타운센드가 드디어 아들 헨리의 몸값을 지불하고 자유인으로 만들자, 로빈스 씨는 헨리를 물심양면으로, 그러나 티 나지 않게 도와 그로 하여금 처음엔 작은 농장을 경영하게 하다가 훗날에는 30명의 노예와 50에이커의 제법 큰 농장의 주인이 되게 해준다. 자신의 땅을 싼 값에 넘겨주어서. 그리고, 헨리 타운센드로 하여금 해방노예가 아니라 노예의 주인으로서 처신하는 태도, 말, 행동 같은 것도 체득하게 만든다. 이리하여 헨리는 해방 노예이되 의식은 해방 노예라기보다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 노예들의 주인 나리에 더 가깝다.


  해방 노예가 자신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농장과 노예의 주인이 되는 일. 이것 때문에 아버지 오거스터스와 회복할 수 없을 지경으로 사이가 벌어진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오거스터스와 어머니 밀드레드는 목공과 목각으로 번 돈을 맨체스터 읍내 자신의 집을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역으로 만들고, 이 급행열차를 타고 북으로 갈 도망 노예를 지원하기 위해 썼던 거였다. 한 예도 나온다. 1843년, 부모와 따로 떨어져 살 때 아들 헨리에게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해준 여자 노예 리타를 뉴욕에 보내는 지팡이와 함께 나무 박스에 포장해 우편으로 보내는 장면. 이때는 제대로 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역장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이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러니 오거스터스는 아들 헨리가 노예를 구입했다는 걸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자기가 공들여 깎은 눈부신 조각을 한 지팡이로 헨리의 어깨를 내리쳐 (아마도 쇄골이겠지) 뼈를 부러뜨렸고, 헨리는 지팡이를 빼앗아 두 동강을 내버렸다. 이후 둘은? 서로 안 봤다.

  이건 주state 별로 봐도 처지가 비슷하다. 커미티에 살며 수공업을 해 돈을 버는 아버지 오거스터스는 자기 말고 별다른 조수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에 아들 헨리는 50에이커, 6만1,200평의 농장을 운영하기 위하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남북전쟁 당시 노예해방을 주장한 북부 주가 오거스터스, 남부 주가 헨리와 비슷한 처지. 이들 사이에 한 판 다툼이 어쩌면 피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이라면 협상을 통해 해결하겠지만 당시에는 주먹 센 놈이 장땡이었으니까.

  존 스키핑턴이라는 이름의 맨체스터 카운티 보안관도 크게 선한 인간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백인으로 등장한다. 상대가 백인이거나 자유 흑인이거나 가리지 않고 오직 연방과 주 법이 지정한 대로 평등하게 다루려고 하는 크리스천. 훗날 6촌 형제인 스키핑턴 변호사에게 횡액을 당하는데, 변호사도 천연두로 처자식이 몰살하는 바람에 성격이 확 비뚤어진 것처럼도 보이고, 원래가 그런 놈이었던 것도 같고 뭐 그렇다. 이렇게 부유한 백인 출신 가운데 진짜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여백을 메꾸는 악한은 농장의 관리자 역을 하는 충성스러웠던 노예, 체로키족 출신의 카운티 소속 노예 순찰대원, 그리고 이가 두 개밖에 남지 않은 추악하고 늙은 노예 투기꾼. 순서대로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가난하고 늙은 백인.

  웃기지? 이 악당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해 악행을 벌이는 시기가 헨리 타운센드가 병으로 생을 마감한 다음이다. 분명하게 헨리 타운센드가 주인공이건만, 헨리는 작 초장에 숨이 넘어간다. 원래 자유민으로 태어난 헨리의 아내 캘도니아가 스물여덟 살에 과부가 되고, 악당들에 의하여 이러저러한 사건이 벌어진 후에 윌리엄 로빈스 씨의 피부색 다른 친아들 루이스가 과부에게 청혼해 혼인을 하기까지, 에드워드 P. 존스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꾸려나가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립자면, 8할은 지겨운 느낌, 2할은 처음 읽은 노예 시절의 차분한 이야기를 들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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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8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제도든 100%나쁜놈만 있는건 아니니까 이런 소설도 있는거겠지요. 한편으로는 또 백인들의 면죄부용인가하는 삐딱한 시선도 가져봅니다. ㅎㅎ 하여튼 제가 딱히 순수하지 못해서 말이죠. 약간 노예제 시절의 스토너 느낌도 나구요.ㅎㅎ

Falstaff 2025-08-09 05:53   좋아요 1 | URL
그럼요. 뭐든 다 좋을 수 있겠습니까. ㅎㅎㅎ 그냥 그렇게 사는 거죠.
삐딱한 시선이 세상을 발전시키니까요, 바람돌이 님은 건강하신 겁니다! ㅎㅎ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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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노 디아스는 1968년 12월 31일에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태어났다. 나고 하루만에 우리 나이로 두 살이 됐군. 7남매 가운데 셋째로 많은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 아버지는 주노가 어렸을 때 미국 뉴저지로 떠나, 유년기까지 어머니와 외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여섯 살이 되어 가족도 뉴저지의 도미니카 타운으로 가 합류했다는데, 이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뉴욕의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작품의 주인공 오스카 데 레온의 엄마 벨리시아 카브랄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가장 유명하고 솜씨 좋은 외과의사와 간호사 사이의 세 딸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순간부터 말 그대로 “눈 뜨고 보기 힘든” 역경의 세월을 보내다가 10대 후반에 고모이자 양어머니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이민해, 그곳에서 맏딸 롤라와 아들 오스카를 낳아, 직장 세 군데를 다니는 억척을 떨어 두 아이 다 대학까지 다 마쳤다. 이렇게 인생 험하게 살다가 암으로 세상 뜬다. 엄마는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대개 소설에서 남편은 다 개자식들이라, 아이들이 유년기일 때 집을 나가버렸다.

  (‘도미니카 공화국’을 ‘도미니카’와 헛갈리지 마시라.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엄연히 다른 나라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야구 잘하는 나라이자 오스카의 할머니 라 잉카가 사는 나라는 도미니카 공화국이다.)

  작가 주노 디아스와 작품의 주인공 오스카 와오는 이렇게 다르다. 그러면 주노 디아스는 작품에서 사라졌나? 아니다. 책 전 분량은 아니지만 많은 페이지에서 화자 ‘나’로 등장한다. 주노를 알파벳으로 쓰면 Junot. 작품에서 벨리시아의 맏딸 롤라와 한 시절 연애도 하고 사랑도 했지만 주체하지 못하는 바람기 때문에 걷어 차인 청년 유니오르Yunior로 등장하는 걸로 보인다. 키 크고, 흑진주처럼 새까맣고, 아름답기까지 한 육상선수 출신의 누나 롤라는 초고도비만에 못생긴 동생 오스카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정말 나도 이런 누나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동생을 사랑하는데, 유니오르가 대학 다닐 때 롤라의 부탁을 받아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오스카의 기숙사 룸메이트로 들어가 자연스럽게 오스카와 친해지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해서 유니오르는 문제적 가족 벨리시아-롤라-오스카의 뉴저지와 도미니카에서의 행적과 앞 세대의 몰락을 알 수 있게 되며, 훗날 이들의 삶을 작품으로 쓴 것. 유니오르라는 반 자전적 캐릭터와 아버지의 부재가 이 작품에만 등장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1990년대 초기 단편집부터 등장했으니 디아스의 대표적 특징이라고 해도 좋을 듯.


  책 좀 읽는 인간들이 도미니카 공화국, 하면 아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2000년 작품 <염소의 축제> 아닐까 싶다. 1961년 5월 말에 차를 타고 가다가 기관총의 집중사격을 받아 암살당한 독재자 라파엘 트루히요. 국가의 거대한 부를 트루히요 일가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공화국의 어리고 예쁜 여자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품을 수 있다고 여긴 염소. 한 인간이 30년 동안 절대 권력을 쥐고 보니 이제 스스로 자신이 신, 하느님과 진짜 초등학교 동창쯤 되는 것으로 착각한 게 틀림없다. 처음에는 공화국 안에서 자기 시민들, 정적들을 불법 구금한 채 잔인하게 고문하고 처형하다가 이웃나라 아이티의 민간인 수만 명을 학살하더니,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반 트루히요, 반정부 인사들도 암살했다. 그것도 모자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까지 베네수엘라 땅에서 암살을 시도해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에게 부상을 입히고 군인과 경찰 등이 목숨을 잃게 하는 등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어질 즈음해서, 더 이상 눈 뜨고 보지 못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아이젠하워는 도미니카의 경제를 무너뜨려버렸다. 그러니 죽을 수밖에.

  트루히요 자신은 하느님의 초등학교 동창 정도로 생각했겠지만, 공화국 국민들은 어땠을까? 신이라기보다 악마로 여기지 않았을까? 저 먼 시절,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서인도제도에 도착한 것은 노예만이 아니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불운의 창에 맞은 흑인의 음울한 그림자 속에 함께 도착한 것은 푸쿠 아메리카누스, 또는 흔히 푸쿠라고 불리는 모종의 파멸이나 저주를 가리켰다. 파멸과 저주의 유령은 도미니카공화국의 근대사 20세기에 들어서도, 특히 트루히요가 통치했던 31년 동안 낮게 깔린 먹구름처럼 섬의 동쪽을 지배했고, 트루히요가 죽어서도 그 시절에 몸과 마음에 밴 공화국민의 의식에서 사라지지 않았단다.


  오스카의 할아버지 아벨라르 루이스 카브랄은 1940년대 최고의 수술 외과의사로 명문가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여쁜 아내 소코로와 총명한 두 딸 재클린, 아스트리드가 있었다. 행복했다. 아이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놀라운 학업 성과를 얻어 재클린은 프랑스에서 의학을 공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나 아이들이 아니었다. 키만 크고 비쩍 마른 재클린이 한 순간에, 정말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눈이 동그래지고, 몸이 풍만해져 보는 사람마다 눈을 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브랄 박사는 불안했다. 그래서 아내 소코로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집밖 외출을 하지 못할 지경이며, 재클린은 엄마를 돌보느라 짬을 낼 수 없다는 거짓말을 트루히요와 그의 측근들이 믿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가려지나? 특히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어느날 카브랄 박사 내외와 맏딸 재클린을 대통령 궁의 파티에 초대한다는 초청장이 왔다. 이제 남은 것은 해변으로 가 보트 한 척을 빌려 푸에르토리코로 가서 다시 미국으로 떠나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어리고 예쁜 딸, 겨우 열댓살의 아이를 설마 50대 중반의 (당시 기준으로) 노인이 손을 대겠는가 싶어, 그러나 안심이 되는 건 아니라서 아내와 재클린은 그냥 집에 머물게 하고 아벨라르 혼자 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며칠 후, 대통령에 관한 유언비어 배포와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차마 내 독후감에 다시 옮기기 힘든 방식의 고문을 받다가 미쳐버려, 감옥에서 몇 년 후에 죽음을 맞는다.

  이때 소코로는 임신 상태였고, 배 속의 아이가 오스카 와오의 엄마 벨리시아 카브랄이다. 언니 재클린과 아스트리드는 납득하기 어려운 사고로 어린 나이에 죽고, 엄마 역시 벨리시아를 낳자마자 죽어 시골의 악마 같은 가정에 입양된 벨리시아는 노예 수준의 하녀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몇 년 지나 벨리시아를 구출해 자신의 딸로 삼아 키운 사람이 오스카가 할머니라고 부르는 라 잉카. 갓 과부가 되어 죽을 때까지 상복을 입고 지낼 라 잉카가 벨리시아를 찾아냈을 때는, 저주받을 부부의 남자가 끓는 기름을 벨리시아의 등에 부어 끔찍한 상처가 난 상태였고, 그 몸을 한 채 닭장 안에 가두어 놓고 있었다. 그래도 살아 남아야 했던 어린 벨리시아. 이후 라 잉카가 아무리 좋은 교육을 시켜도 생존을 위해 충분히 단련해야 했던 야만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무리한 연애를 두 번 경험하고, 나이 든 유명 갱스터의 아이를 임신했건만, 세상에나, 갱스터가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그의 아내 이름이 소이 트루히요, 염소이자 유령이자 공포, 저주의 독재자 트루히요의 여동생이었던 거다. 당연히 벨리시아의 임신상태는 출산 전에 해소되었지만 문제는 임신중단의 방법. 경찰로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두 남자에게 사탕수수 밭으로 끌려가 극악한 수준의 폭행을 당한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벨리시아의 목숨마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엄마이자 5촌 고모 라 잉카는 10대 후반의 벨리시아를 미국행 비행기에 태우며 울었다.

  이제 남은 것은 벨리시아의 아이들. 롤라와 오스카. 진짜배기는 소개하지 않겠다. 재미있는 작품이라 읽어보시라는 뜻으로.

  오스카 와오. 벨리시아가 와오라는 이름의 남자와 결혼해 낳은 아이들이냐고? 아니다. 오스카가 못생긴 초고도비만자라 오스카, 와우, Wow! 가 오스카 와오로 바뀐 것. 못생기고 비만이며 환상문학, 장르물, 게임과 피규어 세상에 머무는 청년. 여자와 잠자리는커녕 키스 한 번 못해본 유일한 20대. 그의 짧은 인생을 타이틀로 하면서 카브랄 가의 불행을 통해 본 도미니카공화국의 현대사. 아쉬운 점은 무거운 주제에 비해 오스카와 유니오르의 성적 환상과 집착이 과하게 과장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거였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가 그만큼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좀 더 무겁게 썼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는데, 또 그렇게 썼다면 요사의 작품을 능가하기 쉽지 않기도 하고, 그래서 여차하면 유사품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직전에 읽은 폴 비티의 <배반>도 그렇고 이 작품도 마찬가지, 소위 21세기 100대 소설 목록에 들어 있어 찾아 읽었는데,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은 독자를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절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었다. 과한 말장난과 잔재주가 가끔은 독자를 짜증나게 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다음 작품도 21세기 100대 작품으로 선정된 미국 작가인데 또 그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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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08-07 0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에서 Falstaff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요. 특히 Wow! <- 이 부분이요. ㅎㅎㅎ 실감 나게 써주셔서 단숨에 후루룩 읽었어요. 재밌으면서도 슬플 것 같아요. 다음 작품도 기대 ‘만땅’ 하고 있겠습니다. :)

Falstaff 2025-08-07 06:08   좋아요 1 | URL
넥. 이 책, 재미있습니다. 아프리칸 미국인들 차별 이야기 같은 거하고는 다른 재미. ㅎㅎ 근데 젊은 남자의 리비도에 촛점을 맞춰서 여성들이 공감하실지 ㅎㅎㅎ 남자새끼들 다 그렇답니다. ㅋㅋㅋㅋ

yamoo 2025-08-0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드뎌 제가 먼저 읽은 작품의 독후감이 올라오는 날도 있군요!!ㅎㅎ
주노 디아스의 책을 한꺼번에 3권을 사서 이게 제일 유명하다고 해서 읽어 봤는데, 나름 읽을만한데,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단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네요...ㅎㅎ 저는 이제 이 책의 리뷰를 쓸 필요가 없어졌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뽈님께서 마지막문단에 떡~~하니 쓰셔가지구..^^

Falstaff 2025-08-08 04:51   좋아요 0 | URL
그래도 리뷰 한 번 쓰실 걸 그랬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 다른 법인 걸요.
오늘 또 흑인 노예 이야기.... 당분간은 흑인 문학은 좀 쉬어야겠습니다. 에휴... 사는 게 참 ㅋㅋㅋ
 
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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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출생해 웨스트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란 1962년생 임인년 범띠 아프리칸 미국 남자. 아버지와는 전혀 소통 없이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는데 이 책엔 오직 아버지와의 관계만 두드러져 오호, 그럴 수도 있구나 싶었다. 작가 가운데 <캐치-22>를 쓴 조지프 헬러와 커트 보니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보스턴 대학과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를 하고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문예창작으로 예술학 석사를 추가했다. 심리학 석사. 작품 중에서 주인공이자 화자 ‘나’의 아버지가 웨스트 리버사이드 커뮤니티 칼리지 심리학과에서 20년간 임시 학과장을 지낸 인물로 설정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 중요하지는 않지만 인지부조화, 책임감 분산, 스키너의 심리상자 같은 개론 수준의 심리학 용어가 출몰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그것 참. 이래서 작가의 바이오를 아는 것이 작품 읽고 독후감 쓰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니까. 2015년에 발표한 <배반>은 비티의 네번째 장편소설로 같은 해에 부커상을 받은 대표작이다. 그러나 우리말 제목이 좀 불만이다. 영어 제목이 <Sellout>. 이걸 출판사 열린책들 편집부와 역자 이나경은 <배반>이라고 표기하기로 합의했고, 위키피디아는 <매진>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Sellout>은 작품 속 주인공이자 화자 ‘나’의 별명이다. 눈을 뒤집어 책을 읽어봐도 ‘배반’이나 ‘매진’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서양소설에서 항용 그러하듯이 작품의 주인공 이름/별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써서 <셀아웃>이라 했으면 어땠을까? 뭐 내 의견이 그렇다는 거다. 출판사와 역자 사이의 계약이 끝나 절판 상태인 것으로 보이는데 다시 찍으면 어떤 제목일지 조금, 아주 조금 궁금하다.


  작품의 무대는 로스엔젤레스와 면한 디킨스 카운티. LA 남부 외곽 빈민지역으로 노예해방 직후인1868년에 디킨스 시로 출발했지만 LA가 거대도시로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LA의 한 카운티로 흡수됐다. 지역 이름이 하필이면 ‘디킨스’? 뭔가 사연이 많을 거 같지? 세상에 사연 없는 도시가 있으면 두 개만 대봐라. 이 카운티도 당연히 사연이 많지만 그것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디킨스’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애초에 ‘디킨스 시’를 설립할 당시 주민들이 “설립헌장”에 명백하게 밝혔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러하였다.

  “디킨스는 중국인, 온갖 피부색과 방언과 모자를 지닌 스페인인, 프랑스인, 빨간 머리, 전형적인 도시인, 재주 없는 유대인이 없는 도시로 남을 것이다.”

  이들을 제하고 남는 미국 내 인종은?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니그로, 깜둥이, 겁쟁이로 불리는 유색인. 이른바 흑인 커뮤니티다.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백인의 연간 가구평균소득이 113,149달러일 때, 히스패닉은 6,325달러, 흑인이 5,677달러였다고. 그리하여 원래는 넓고 넓은 지역이었지만 주변 LA의 더 부유해지는 커뮤니티에 의하여 디킨스 카운티가 점점 좁아지다가 화자 ‘나’가 대학을 졸업하고 1년이 지나 디킨스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카운티 자체도 사라져버렸다고. 그래도 다른 지역의 특히 백인이 ‘나’에게 “어디 사세요?”하고 물어봐서 “디킨스요.”라고 대답하면 물어본 사람이 즉각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물어봐서 죄송해요! 제발 나를 죽이지 말아줘요!”하고 탄원을 했단다. 한 마디로 극강의 우범지대라는 뜻이다.


  ‘나’의 아버지는 작은 말 농장의 마구간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나 꽤 유명한 사회학자이자 대학의 임시 심리학 학과장을 20년간 해 자셨으니 나름대로 입신양명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플로리다에서 사는 한 아가씨 로럴 리스쿡이 흑인을 위한 잡지의 표지 모델로 등장한 걸 보고 한눈에 반해, 1977년 9월호였는데, 잡지를 보자마자 소름끼치는 시를, 탱탱하게 발기한 페니스를 노출한 자신의 사진을 동봉해 우편으로 보내 극적인 청혼을 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해 ‘나’ 셀아웃을 만들었다. 심리학자는 스스로 심리분석이 필요한 인간들만 할 수 있는 학문인지도 모른다, 그렇겠지?

  이후 엄마 로럴 리스쿡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책에 나오지 않는다. 심리학자 아버지는 아들을 범죄의 온상이자 미래의 전과자를 양성하기 위하여 설립한 학교에 보내는 대신 소위 홈 스쿨링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나’는 대가리가 커짐에 따라 깡마르고 멍한 검은 실험쥐로 성장했다. 주로 흑인과 백인 또는 타 유색인종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 실험에 바쳐졌다. 심리학과 임시 학과장이자 아버지의 프로젝트를 위하여 늘 사회학 실험의 재료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기보다 역할을 피할 수 없었던 ‘나’는 기상천외의 실험마다 건건이, 사실 이건 발음하는 대로 ‘껀껀이’라고 써야 제 맛인데, 하여간 실험할 때마다 건건이 실험 상대방에 의하여 몸과 마음에 깊은 물리적 타격을 입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나’ 자신과 흑인 전체에 대한 아버지의 희망을 부숴버린, 통계학적으로 무의미한 아들이라는 결론을 피할 수 없었다. 로럴 양에게 ‘나’를 낳게 한 일과 연계해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사회심리학 실험 자체가 변태 엽기적이라 실험쥐가 줘 터지지 않을 수도 없었겠지 뭐.

  키 크고 건장하고 깊고 호소력 있는 바리톤 음색의 아버지는 심리학 임시 학과장답게, 극악의 우범지대인 디킨스 카운티에서 난동을 벌이는 흑인 범죄자를 진정시키는 ‘니거 위스퍼러’ 역할을 기가 막히게 수행해 카운티의 내로라하는 흑인 지식인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흑인 지식인들이 모이는 곳이 디킨스에서 가장 평화로운 장소인 ‘덤 덤 도넛’으로 작품에서 중요한 장소와 모임이지만 독후감 분량을 감안해 생략한다. ‘니거 위스퍼러’가 주로 상대해야 하는 범죄자 니거들이 피할 수 없는 집단이 있다. 바로 경찰. 또 니거 위스퍼러의 주요 활동 시간도 깜깜한 야밤이란 것도 수긍하시지? 어느 날 범, 아버지는 무척이나 어두운 밤에 털털거리는 자기 차 옆에서 총알 네 방을 맞아 절명하고 만다. 범죄자 니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LA 경찰관이 확인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발사한 총에 복부를 맞아 죽었다. 이래서 ‘나’ 셀아웃은 정부로부터 아버지의 사망 배상금으로 2백만 달러를 받아 LA 카운티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 지역이자 우범지대이며 척박하기가 달 표면 같은 디킨스의 버나드 애비뉴 205번지에 있는 2에이커의 땅을 구입해 농장과 과수원, 목장을 만든다. 이름하여 도시 농장.


  특히 미국 소설에서 내가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난데없이 상속받아 한 순간에 부자가 되는 거. 그게 저 에우리피데스 시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비슷하게 작품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는 건데, <배반>에서는 아버지가 초장에 총 맞고 죽어 ‘나’ 셀아웃이 디킨스에 정착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시작되니 이 비슷한 불만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오직 괜찮은 농업학과가 있다는 이유로 진학한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농학과 부전공을 동물학을 공부한 ‘나’는 처음에 농장에서 타조 부화장을 만들어 래퍼, 프로 운동선수, 잘 나가는 배우한테 타조를 팔려고 했다가, 문화적으로 (특히 니거들한테)가장 가까운 식물인 수박과 마리화나를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네모난 수박을 재배하는 데 성공했지만 어째 반응이 좋지 않아 오렌지 말고 귤mandarin과 사과를 높은 당도로 생산할 수 있었다. 근데 2백만 달러의 부자가 그깟 농사가 잘 되는지 잘 안 되는지 뭐 그리 크게 신경쓸 거 있나? 하지만 한 가지.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 수백 편의 영화에 출현한 전직 배우, 늙은 호미니가 스스로 ‘나’의 노예로 들어오기를 자처한다. 어린 시절 나름대로 은막 스타로 각광을 받았다고 착각하며 평생을 산 늙은이가 옛 시절, 흑백 분리 정책이 성행하던 자신의 황금기를 그리워해 ‘나’를 ‘주인님’이라 칭하며 조금 잘못한 것을 가지고 등에 채찍질을 하라고 안달을 하기도 했으니, 이거 미친 거 아냐?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당연히 픽션이지만 이후에 쏟아지기 시작한다. ‘나’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나 디킨스의 공립 중학교 가운데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 사회 중산층 정도의 교양인으로 성장할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고민하는 교감 카리스마 여사. 교감과 ‘나’는 여러모로 궁리하고 경험적으로 판단해보니, 오히려 흑백 분리가 되었을 경우에 니거들이 백인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고 싶어 더 애를 쓰는 경향을 발견한다. 이때 늙은 노예 호미니의 생일을 맞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나’의 첫사랑이자 지금은 유부녀인 버스 운전사 마페사가 뜻을 모아 버스 안에서 생일 파티도 하고, 그가 원하는 흑백 분리를 위하여 특정 좌석에 이런 스티커를 붙인다.

  “노약자와 백인 승객 전용좌석”

  주인공의 여자가 항용 그러하듯이 현명한 마페사는 호미니의 생일이 지나도 이 스티커를 제거하지 않고 그냥 운행을 하고, 스티커 문구를 본 흑인들은 오히려 더욱 긴장해 서로 인사도 하고, 예의도 반듯해지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놀랍지? 기억하셔야지. 작가 폴 비티도, ‘나’의 아버지도 심리학 전공자이다. 그러나 아무 곤란 없이 생각한대로 잘 나가기만 하면 재미없지. 21세기. 버락 오바마가 두번째 임기 중인 대통령으로 재직하고 있는 시절에 흑백 분리? 인종차별? 이게 말이 되나? 그리하여 사건은 당신이 생각한 대로 흘러간다.


  분리와 평등의 문제. 21세기에 분리해서 평등해질 수 있는지에 관한 진퇴양난의 딜레마. 반면에 디킨스에서 니거들이 도모했던 “분리되고 별로 평등하지 않지만 전보다 형편은 훨씬 나아지는” 것이 미국의 헌법가치에 (합당하지는 않지만) 무엇이 문제인가를 제기한다. ‘분리’와 ‘평등’ 사이에 ‘흑인’이라는 매개변수가 들어갈 경우에.

  미국의 아프리카계 시민한테는 매우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평생 동아시아의 끄트머리에 살고, 덩치가 산만한 흑인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아시아 인들이 얻어 터지는 뉴스나 동영상에 숱하게 노출된 입장에서 뭐 지들끼리 그러거나 말거나, 알아서 하겠지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 주로 중국인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3국 사람들은 부지런한 공부벌레 출신이라 백인을 능가하거나 동등한 수준의 연 수입을 얻는 (별로 바람직하게 묘사하지 않는) 종족으로 치부할 뿐이다. 사실이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농담과 말장난이 과하다. 대단한 입심인 건 알겠는데 참 다양하게 말이 많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어쩌면 내일 독후감을 쓸 작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것도 다인종사회의 흑인병 가운데 하나? 아니, 취소.

  그래도 재미있다. 적당히 야해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충분히 읽을 만하다. 아쉽게 품절. 헌책방이나 도서관 이용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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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05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면 뭔가 정신적으로 테러를 당할거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ㅎㅎ

Falstaff 2025-08-05 15:55   좋아요 1 | URL
테러는요 뭐. ㅋㅋㅋ 21세기 백대 소설 가운데 한 편이라니 읽어보셔도 좋을 거 같긴합니다만 추천하기는 좀 그런... 소설 아닐까 싶네요.
프로필 사진을 바꾸셨구먼요, 흠...

바람돌이 2025-08-05 15:57   좋아요 1 | URL
이토록 매일 많은 책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한자리를 차지했다는거죠. 일단 보관함에 넣습니다. ^^ 프로필 사진을 개을러서 손도 인대다가 한 20년민에 바꾼듯요. 요즘 심심하니까요. ㅎ
 
간과 강 걷는사람 희곡집 6
동이향 지음 / 걷는사람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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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에 살면서 아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공연문화에 소외된다는 거다. 하긴 모든 문화행위가 서울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 공연이 끝나면 대강 열 시가 훌쩍 넘는데 여차하면 버스 끊기고, 열차 끊기고 총알 택시 타고 가기는 싫고, 차 몰고 가려면 복잡하고 뭐 이런 저런 핑계로 저절로 멀어지게 되더라. 그리하여 이제야 동이향이라는 극작가를 알게 되었다니, 아무리 핑계를 대더라도 너무 무심했다. 올해 쉰살. 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나 전공과는 무관한 학창시절을 보내 2학년 때 첫 희곡을 쓰고, 주로 연극판을 따라다녔단다. 졸업해서 잡다한 일을 하다가 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들어가 공부도 좀 하고, 한겨레신문사 여성월간지 기자도 하다가 망원동에서 ‘이 행성의 이행성을 위한 극장’을 운영하는 ‘극단 두’를 만들어 극작과 연출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계속 하는지는 모르겠다. 5년 전에는 확실하게 그랬다. 윤영선 연극상,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경력이 있단다.


  동이향의 극작품을 평할 때 거의 예외 없이 어렵다거나 관념적이라는 의견을 개진한다고. 그럴 듯하다. 특정 스토리를 유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극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독자나 관객이 즉물적으로 이해하기가 거의 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뭐 관객이나 독자 나름이다. 작품마다 다 어렵거나 관념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극작가의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이지 확 내놓고 난해하지는 않다. 내 경우에는 다섯 편 가운데 뒤에 실린 소품 두 편 <해와 달에 관한 오래된 기억>과 <지하철 존재론>이 낯선데 특히 <지하철 존재론>의 경우 “배우들의 신체와 움직임을 중심으로, 사운드와 공간, 말, 그리고 영상-브라운관들-을 공연의 매체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움직임, 사운드, 공간, 브라운관 같은 것들을 종이 위에 문자로 표현했으니 연출자의 의도와 설명을 듣지 않은 독자가 도무지 요령부득인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오래전 한때 인구에 회자되던 연극 <산씻김>의 대본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씨, 그때가 그립네. 구경값도 헐해서 시간 나면 종종 극장에 들를 수 있었던 나의 20대.


  그런데 이제 나도 연식이 제법 돼서 그런가, 실제로 배우가 나와 공연을 하는 극작품에 살인과 자살(미수도 포함), 섹스가 나오는 건 점점 경원하게 된다. 물론 동이향의 작품이 다양한 주제를 갖고 있으며 그 주제를 위한 장치로 사용하고, 심지어 어렵기는커녕 웃기는 장면으로 잘 윤색되기도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걸 어쩌랴. 내가 죽음이나 자살 같은 걸 경원하는 성향도 <암전>의 등장인물 조율사 H처럼 일종의 트라우마일 수도 있으리라고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무 자주 사용해서 단지 식상했을 뿐이니까.

  재미있는 작품들이 실려 있다. 근데 아쉽게도, 오늘 낮에 읽었지만 이제, 많이는 아니고 조금 늦은 밤에 독후감 쓰려니까 도무지 생각나는 것이 없다. 물에 빠져 죽으려 애쓰는 맥주 잘 마시는 여자 이야기 <간과 강>, 한 회사에서 스물 몇 명이 자살해버리는 <내가 장롤롤메롱문 열었을 때>, 삶(무대)의 한 가운데 갑자기 생긴 땅꺼짐에 떨어져 죽을 수 있는 <암전>. 이 정도가 떠오른다. 하지만 독후감을 읽는 분들이 혹시 오해하실 지 몰라 덧붙이자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는 것일 뿐 기본적으로는 무겁지 않게, 심각하지 않게 그리고 희곡으로 드물게 공들인 문장들로 된 작품이라는 거. 그래, 그래. 욕은 좀 나온다.

  신간 도서 서가에 있던 걸 찾아 읽었다. 도서관에서 나 말고 누가 희곡집을 희망도서 신청했을까? 궁금하다. 만나서 쐬주나 각 일 병씩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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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sum 2025-08-04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씻김굿은 이현화의 극본이었던가요? <불가불가> 때문에 희곡집을 읽었는데 불가불가만 기억하는 와중에 씻김굿은 아이들이 약간 충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나 느낌만 있네요… 오래 전 읽었던 걸 주인장님 때문에 다시 떠올려보았습니다.

Falstaff 2025-08-04 14:54   좋아요 0 | URL
<씻김굿>은 잘 모르겠네요. ㅎㅎㅎ 제가 과문해서... 그런데 검색해보니까 <산씻김>을 쓴 극작가가 이현화인 걸 보니 <씻김굿>이라는 타이틀로 공연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meesum 2025-08-04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 산씻김을 보고 씻김굿이라고 쓴 거였어요 ㅋㅋㅋ 이거 뭐 단기기억력도 형편없음이…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