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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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을 쓰기 위해 화면을 열어놓고 시작하기가 쉽지 않아 한참을 망설였다.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까?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오닐의 다른 극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쓴 작품이라서 그럴까, 등장인물의 분위기가 유사해서, 특히 3막, 두 주인공 제임스 타이론 2세와 조시 호건의 장면이 <밤으로의 긴 여로>의 어머니와 제이미를 연상시켰다. 독자의 가슴을 후벼 판다는 뜻이다. 특히 나처럼 알코올 의존증세가 있는 독자들은 더 그렇지 않았을까.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 크지 않은 토지를 소작하여 농장을 운영하는 필 호건 씨와 그의 딸 조시. 그리고 땅의 주인이자 단역 연극배우로 활약중인 마흔 살의 독신남 제임스 타이론 2세. 이외에 호건 씨의 막내 아들 마이크와 농장의 울타리를 이웃한 또다른 지주 스테드먼 하더가 잠깐 등장한다. 그러니까 소작농 호건 씨와 딸, 그리고 독신 지주 제임스 사이의 드라마인데, 유진 오닐의 후기작 답게 참 절절하다.

  오닐 자신이 네 번의 퓰리처 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았음에도, 대단히 우울한 가족사를 짊어졌다. 호텔에서 태어나 호텔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대중적인 연기를 하던 떠돌이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와 훗날 모르핀 중독자가 된 어머니 사이에서, 선천적으로 알코올 의존에 의한 우울증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던 것 같다. 형 제임스는 아버지의 부재와 알코올 중독이 가정이 불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아버지를 크게 원망했으며, 부모의 사랑을 받는 막내 유진에게 질투와 사랑이란 애증을 갖고 있다가 결국 많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 삶을 끊어버리고 만다. 오닐은 또한 자신의 알코올 의존증과 이에 따른 우울증 등으로 세 번의 결혼을 했다. 맏아들 유진 2세는 예일대 그리스 문학 교수를 하다가 역시 가족의 유전자 안에 도사린 알코올 의존증을 이기지 못해 마흔 살의 나이로 자살했고, 둘째도 헤로인 중독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아 자기 가솔들과 극빈하게 살다가 역시 자살해버렸으며, 막내딸은 열여덟 살 때 자기보다 서른 여섯 살이 더 많은 영국의 위대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과 결혼해버렸다.

  50대로 접어든 유진 오닐은 후기 시대로 들어간다. 이제 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각종 기관에서 상을 받는 외적 출세에 관해서는 마음을 조금 접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1940년대 초반을 말하는데, 당시 나이로 50대면 이제는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지난날을 후회하며, 가끔은 시절 때문에, 내가 시절에게, 시절이 내게 가했던 가해를 떠올릴 때마다 부르르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을 수 있다. 그랬던가, 그는 자신의 지난 세월, 특히 “가족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고, 이런 환경에서 위대한 극작 <밤으로의 긴 여로>를 만들었으며, 자신의 진짜 체험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죽고 25년이 흐르기 전에 발표를 하거나, 공연을 하지 말라고 유언했으나, 죽은 지 3년 만에 희곡은 출판되었고, 스웨덴에서 초연의 막이 올라, 오닐이 사후에 네 번째 퓰리처 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이후 미국, 미국을 건너 전 세상 극장가에 새로운 창작 방식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을 읽으면서 <밤으로의 긴 여로>를 연상하는 일은 사실 어쩔 수 없다. <… 여로>에 등장하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 어머니와 아들 제임스의 망가지는 모습이 <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에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이다. 소작인 호건 씨와 지주 제임스의 형태로 바뀌기는 하지만. 호건 씨는 제임스 씨와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 곳, 즉 집의 바깥, 주로 술집에서는 이해심 많고 사람 좋고, 활달한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제임스의 대사에 의하면 그렇다는 건데, 집에서는 독선적이고 아들한테 구타도 서슴지 않는 폭군이다. 딸 조시 호건만 빼고. 이 조시 호건이 오닐의 작품 가운데 이례적인 주연급 여성이다.

  카슨 매컬러스의 고딕 작품에서 주로 등장하는 키가 많이 큰 여성처럼 조시는 180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도 81킬로그램에 달한다. 크고 단단한 유방, 엉덩이와 허벅지하고 비교하면 날씬하게 보이는 굵은 허리. 특별히 근육은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튼튼한 길고 매끄러운 팔. 어느 남자보다 힘이 세서 보통 두 명의 남자가 할 수 있는 노동을 혼자 거뜬하게 해치운다. 그러나 조시에게 남자 같은 면이라고는 없다. 천생 여자. 거친 머리카락과 해를 많이 받아서 주근깨가 촘촘하고 그을렀지만, 검푸르게 푸른 큰 눈동자가 아름다운 느낌을 주고 특히 미소가 매력적이다. 옷도 대충 일하기 편한 싸구려 원피스를 입었고, 일할 때는 대개 맨발 차림이다.

  이 거친 야수 같은 아가씨는 집안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는 독재자 아버지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다. 맞붙어 주먹다짐을 한다 해도 도무지 완력으로 당할 수 없고, 말로도 마찬가지다. 주로 1막에서 호건 씨가 되로 주면 조시가 말로 되돌려주는 형국이다. 조시는 이제 아들 가운데 하나 남은 막내 마이크에게 마이크도 모르게 짐을 싸서, 아버지 침대 밑에 숨겨놓은 돈을 몽땅 꺼내 주며, 너도 나이가 찰 만큼 찼으니까 일찌감치 도시로 가 일을 하고 있는 형을 찾아가라고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은 자기도 알고 있는 큰 덩치의 여자 괴물이라서 관심을 받을 수도, 사무실에 일자리를 얻거나 괜찮은 남자의 배우자가 되어 아이 낳고 살림하는 주부로 살 수도 없으리라, 그래서 아버지 죽을 때까지 일을 돕다가 이후에 스스로 농장을 꾸려 사는 수 말고는 다른 길을 찾지 못하리라 여기고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조시는 마을의 많은 남자와 만난다. 그냥 만날 뿐이다. 그러다보니 마을에서는 조시 호건이 마을의 모든 총각들은 물론이고 유부남들도 숱하게 잡아 드셨다고 소문이 났다. 조시는 NCND,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저 킁, 코바람만 한 번 불뿐이다.


  이제 땅과 집의 소유자인 제임스 타이론 2세가 등장한다. 유진의 자살한 형의 이름과 같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며 사는 캐릭터다. 마흔 살 먹은 잘 생긴 남자. 농장에 내려오지 않을 때는 브로드웨이에서 분명 단역일 것 같은 배우로 활동하며 여성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조시도 그렇고 제임스도 그렇고, 그렇게 보인다는 거다. 많은 여성 편력은 여성을 판단하는 높은 수준의 시각을 갖추게 했고, 이런 제임스가 보기에 180센티미터, 81킬로그램의 전혀 예쁘게 보이지 않는 괴력의 소유자 조시가 아직 훼손되지 않은 순정을 가지고 있고 소위 ‘따뜻한 여성성’을 보일 수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채며, 접근하고 싶어 한다.

  때마침 울타리를 마주한 이웃 농장주 하더와의 사이에 불화에 빠진 호건 씨는 하더가 비싸게, 적정가의 두 배가 넘는 가격으로 자기 소작지를 제임스한테 사서 나를 쫓아내려는 건 아닐까 싶은 ‘없는 자의 피해의식’에 싸이게 되고, 탁 보니까 제임스가 자기 딸한테 마음이 있는 것도 같으니, 둘을 혼인의 굴레로 얽어매면 어떨까, 궁리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러운 작전을 지시하고, 역시 농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는 같은 걱정에 빠진 조시도 이에 동의하게 되는데, 밤에 제임스와 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조시는, 그가 오면 술을 권해 아예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자기 침대에 올려 함께 자는 시늉을 하면, 딱 시간을 맞춰 아버지와 증인들이 총을 들고 방에 난입하면 결혼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

  그런데 제임스를 보자. 어머니와 함께 서부를 여행하고 있다가 호텔에서 어머니가 뇌질환으로 급사해버리고 말았다. 이 시절에 제임스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어서 몇 년 간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던 시절. 그러나 어머니의 시신을 화물칸에 태우고 바로 앞 차를 전세내 혼자 동부로 오고 있으면서 어떻게 주체할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이고 만다. 하나 남은 가족 어머니의 황당한 주검을 싣고 기차 안에서 제임스는 드디어 입술에 술을 댔으며, 함께 술을 마셔줄 짝을 찾기 위해 객석을 돌아다니다가 차장에게 제제를 받아 다시 돌아오기도 했지만 기어이 다시 나가서 늙고 못생긴 창녀 하나를 데려온다. 그래서 동부까지 오는 내내 며칠 동안 위스키에 절어 지내다가 너무 취해 어머니 장례식에는 참석하지 못한 아들. 어머니라는 형상, 또는 이미지 혹은 의지가지로 그렇게 큰 여성 180센티미터에 81킬로그램이 넘는 고딕식 미인을 선택한 것일까? 나는 그렇게 본다. <밤으로의 긴 여로>와 동시절에 쓴 마지막 작품이라서. 가족에 대한 깊은 연민과 이해와 용서의 측면에서.

  제임스는 알았다. 누구에게 듣거나, 무슨 증거가 있어서 안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았다. 동네에서 가장 많이 구설수에 올랐으나 전혀 까딱도 하지 않는 조시 호건, 이 아가씨가 아직 동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제임스가 조시의 집으로 오겠다는 밤, 그는 오지 않고, 아버지가 먼저 와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그리하여 오해가 깊어진 조시는 급기야 원래 계획대로, 술을 먹여 억지로 동침하려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으로 약속을 하는데, 늦게나마 제임스가 조시의 집으로 걸어온다.

  이렇게 해서 앞에 내가 대강 이야기한 제임스의 스토리가, 점점 취해가는 와중에 노출되는 것이며, 그러나 그 끝은 동침의 침상 위가 아니라 방으로 가는 계단에 앉아, 제임스가 머리를 조시의 크고 단단한 유방에 기댄 상태에서, 자신과 가족, 특히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연민과 용서를 바라는 긴 독백 또는 고백을 하는 거였다. 이렇게 제임스가 아닌 유진 오닐은 한 발, 한 발, 자신의 마지막으로 가는 걸음을 걷고 있었다. 이후 그는 과도한 알코올 의존증에 따른 수전증 혹은 그때까지 병명이 알려지지 않았던 파킨슨 씨 병으로 그의 마지막 날까지 작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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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12-05 1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24 서재의 달인에 선정되신 거 축하 드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리뷰 많이 남겨 주세요~~~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Falstaff 2024-12-05 18:28   좋아요 1 | URL
에흐... ㅋㅋㅋ 쑥스럽습니다. 은하수 님이야말로 저보다 무척 높은 단계의 달인이신 걸요!

은하수 2024-12-05 18:39   좋아요 2 | URL
무슨 그런 과찬의 말씀을요^^
올 한해 덕분에 무척 즐거웠답니다. 좋은 책도 많이 알게 되어 더없이 감사하답니다^^

coolcat329 2024-12-05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점심먹으며 읽다가 다 못 읽고 이제서야 다시 완독했습니다. 항상 작품 이야기 시작하기 전 작가의 삶에 대해 브리핑을 해주시니 참 편합니다.
유진 오닐 가족을 불행하게 만든 저 알콜의존 우울 유전 인자가 참 야속하네요. ㅠㅠ 결국엔 이겨내지 못하고 고생하다 떠났으니...
조시가 <슬픈 카페의 노래>의 어밀리아랑 정말 비슷한 거 같아요.
이 희곡, 진짜 연극으로 본다면 저 고백장면 많이 슬플 거 같아요.

Falstaff 2024-12-06 04:29   좋아요 0 | URL
예. 반 점짜리 별이 필요합니다. 이거 읽고 바로 별점을 매긴 앱에 별 네개 반으로 했었습니다. <...여로>가 있어서 차마 다섯으로 올리지 못했었던 거 같군요.
좋은 책은 어딘가에 늘 있더라고요. ㅎㅎㅎ
 
진홍빛 하늘 아래
마크 설리번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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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설리번은 미국 보스턴 변두리에 있는 메드필드 출신의 58년 개띠 아저씨로 198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말끔하게 면도한 흰 와이셔츠의 미국 남자,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사하라 사막에 가서 투아레그 족 유목민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도 했다. 귀국해서 저널리즘 일을 조금 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주로 미스터리, 서스펜스 물이었으며 나름대로 꽤나 인정을 받은 걸로 보인다. 이 책 <진홍빛 하늘 아래> 서문에 따르면, 마흔일곱 살이던 2006년 초엔 그동안 글 써서 번 돈을 몽땅 까먹고 인생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고 한다. 친동생이 과하게 술을 마시는 바람에 세상을 떴고, 소설은 독자들에게 외면 받았으며, 업무상 분쟁에 휘말려 개인 파산을 신청할까 말까 기로에 서게 되어 차라리 고속도로를 달리며 적당하게 자살로 위장해 죽어버리는 것이 남은 가족들에게 보탬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니까 정말 막바지까지 몰리기는 했던 모양이다. 이때 몬태나 보즈먼에서 있었던 만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열일곱 살짜리 이탈리아 소년의 영웅적 이야기를 들어 소설로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그가 살아 있다는 걸 알고 곧바로 연락을 해서, 직접 이탈리아로 날아가 그를 인터뷰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탈리아 상황에 대한 조사를 해, 영웅적인 소년의 활약을 통해 북이탈리아 지역의 세계대전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에 이르니, <진홍빛 하늘 아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책으로 설리번은 다시 기사회생하는 데 성공해 아직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모양이다. 잘 했다.


  작품은 1943년 6월 9일, 이탈리아 롬바르디 주의 주도 밀라노를 주무대로 펼쳐진다. 패션 명가 밀라노에서도 가장 첨단을 달리는 명품 가방가게 “레 보르세테 디 렐라”를 운영하는 포르치아와 미켈레 렐라 부부의 2남1녀 가운데 맏아들인 17세 키다리 소년 주세페, 애칭 ‘피노 렐라’가 주인공이다. 그보다 두 살 아래로 키가 크지도 않고 앞으로도 그리 크게 자라지 않을 예정이지만 깡다구 하나는 밀라노에서 당할 수 없는 청년으로 성장할 동생 도메니코, 애칭 ‘미모’의 형이자, 작품이 끝날 때까지 어린시절에 머물 치치의 큰오빠다. 이때까지 밀라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세계 전쟁이라는 이슈는 듣자마자 잊어버려도 상관없는 뉴스 기사에 불과했다. 재벌은 아니지만 부유한 명품 제조공장과 상점을 운영하는 유복한 가정의 여드름쟁이 피노는 아직까지 여자친구는 없었지만 낙천적인 성격을 타고나 실망이나 좌절하고는 거리가 먼 정의파였다.

  먼저 짚고 넘어가자. 마크 설리번이 주 특기로 다루는 장르가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물이다. 이런 장르 문학의 경우에 읽으면서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등장인물이 딱 두 가지 부류로 갈린다는 점이다. 착한 우리편, 나쁜 너네편. 이 책에서도 나치와 독일인, 그리고 이탈리아의 일 두체 무소리니를 두령으로 하는 파시스트는 한 명도 빼지 않고 전부 나쁜 너네편이고, 이에 비밀리에 대항하는 시민군과 인종을 가르지 않고 나치에게 핍박받는 사람들을 스위스로 피난시키는 가톨릭 종사자들은 모두 선한 우리편이다. 주인공 피노 렐라는, 읽으면서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정말로 피노가 겪은 일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자료를 수집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북부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치열하지만 프랑스 전선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장면을 살리기 위해 당시 이탈리아의 중요한 인물들과 전부 직접 만날 기회를 얻으며, 그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거나 훔칠 수 있던 것은 물론, 직접 전쟁의 중요한 장면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를 위하여 피노 렐라는 10대 초년 시절부터 이탈리아에 면한 남알프스 지역의 수목한계선을 넘는 고산지대까지 등산을 즐겼으며, 프로 수준급의 스키 실력을 가진 상태로 소설을 시작한다. 이후 알프스의 까마득한 암벽 가까이에 있는 교회 겸 남자기숙학교 카사 알피나로 피난을 가서 유럽 그랑프리 포뮬라 전 챔피언을 아버지로 둔 친구를 사귀어 그에게 놀라운 정도의 운전실력까지 보유한다. 185cm에 75kg으로 시작한 17세 소년은 키도 더 크고 근육도 빵빵해져 놀라운 완력까지 지니는 정의의 사나이로 변신하며, 이에 맞추어 주변 인물들도 모두 반 나치, 반 파시즘의 시민 저항군에 가세한다.

  주변인 가운데 중요한 사람으로 먼저 기숙학교 카사 알피노의 건장한 50대 레 신부와 신부의 수석 보좌관과 요리사 역할을 하는 보르미오 수사. 이들은 밀라노 산타마리아 나센테 성당의 일데폰소 슈스터 추기경과 긴밀한 연락을 하며 유대인을 비롯한 피난민들을 험난한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망명시키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뛰어난 등산과 스키 실력을 가지고 있는 피노 렐라가 이들을 안전하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가면서 한 명도 낙오시키지 않고 국경을 넘겨주는데, 당연히 이런 작품에서는 모진 고난과 극복, 또다시 앞의 것보다 더 독한 고난과 극복을 반복한다. 이건 국룰이 아니라 세계적인 법칙, 이른바 ‘세룰’이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정년이>의 김태리도 그렇잖은가? 그냥 웃자고 하는 말이다.


​  당연히 작가 마크 설리번이 1943년에 열일곱 살 청소년이었던 이탈리아 노인과 인터뷰했다는 건 믿는데, 그리하여 그가 주장한 걸 결정적으로 번복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 작가도 매우 가톨릭 친화적이다. 당시 교황이 비오 12세.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배경으로 하는 카사 알피노의 정의로운 레 신부는 밀라노의 슈스터 추기경과 긴밀하게 협조를 하고 있으며, 추기경은 또한 레 신부의 유대인 망명 협조를 비오 12세에게 보고를 하여 교황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독자에게 이런 도움을 교황이 총괄했다는 암시를 줄 정도이다. 우리나라 가톨릭계에서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비오 12세와 로마 가톨릭이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큰 힘을 쏟았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같은 시기에 우리나라 천주교사에서 조선인 신분의 영광스러운 첫 번째 주교였던 노기남이 추축국 일본제국을 미친듯이 찬양한 다양한 증거들을 연상하면 별로 믿고 싶지 않다. 또한 비가톨릭 쪽에서는 비오 12세와 히틀러의 협조 여부로 시비를 걸고 있기도 하다. 마침내 2차 세계대전 당시 비밀문서가 보관기일을 넘겨 열람이 가능하지만 아직도 이에 대해 명쾌하게 어떠했다, 라고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내 생각, 단지 정말 생각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말해보자면, 교단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 유대인을 구하기도 했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히틀러에게 그래, 그래 하기도 했겠지. 그러니 내놓고 유대인 학살에 관해서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도 않았거나 못했지 않겠나 싶다. 나치군의 탱크와 장갑차가 바티칸을 포위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교황이라 해도 쉽게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 있었겠어? 교황도 총 맞으면 죽거든. ‘진짜 용기’라는 거, 이거 아무나 내는 게 아니거든. 제사 지낼 때나 제사장이고, 교황이고, 사제이지 한낱 인간인 건 다 마찬가지거든.


​  밀라노에 미영 폭격기의 공습이 본격화하자, 피노의 부모는 아들 둘을 카사 알피노에게 피난을 보내고, 열여덟 살이 되기 몇 달 전에 피노만 다시 밀라노로 부른다. 이제 18세가 되면 이탈리아 정부는 피노를 파시스트 군대에 보내 독일의 대 소련 전선에 투입, 총알받이나 대포밥으로 삼을 것이니, 차라리 독일군 건설대에 자원입대해 전선이 아니라 후방에서 명을 보존하라고 강권한다. 도무지 말릴 수 없고, 비타협적인 명령에 몸이 익은 천생 사업가인 엄마 포르치아가 간단하게 선언한다. 넌 아직 미성년자야. 결정은 내가 한다. 넌 독일 토트 조직에 입대해!

  그리하여 피노는 전선 대신 이웃 도시의 중앙역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가 벌건 대낮에 공습을 당해 오른손 둘째와 셋째 손가락이 덜렁거릴 정도의 부상을 입어 잠깐 귀가조치를 받고, 귀가 첫날 마침 (고급 레지스탕스 지위에 있던) 외삼촌의 가죽 가게 앞에 서 있는 고장난 6륜 구동 다임러를 발견, 알프스에서 운전을 배울 때 함께 익힌 정비 실력으로 불과 몇 분만에 말끔하게 고쳐준다. 이게 누구 차인가 하면 회의를 할 때 히틀러의 바로 왼쪽 옆에 앉는다는 군수품 전권대사 한스 레이어스 장군의 전용차였다. 정부 돌리에게 가방 하나를 선물로 사줄까 하고 들렀다가 시동이 꺼져 화가 단단히 난 레이어스 장군은 그 자리에서 피노를 자신의 전용 운전병으로 고용한다.

  고민에 빠진 피노. 가뜩이나 독일군에 입대해 이두박근에 하켄 크로이츠 완장을 달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해서 탈영해 저항군에 들어갈까 고심하던 차에 이제 장군의 운전병이라니,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잔뜩 부어올랐다. 그러나 그의 현명한 외삼촌 오스트리아 사람 알베르트는 이것을 천재일우라고 여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탈리아 전역의 물류이동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레이어스 장군의 운전병이라면 누구보다도 고급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으니, 이제는 마음먹고 독일군의 정보를 빼오는 첩보원으로 일하라는 거였다. 그가 정보를 가져오면 모종의 루트를 통해 영국 정보국으로 송신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숱한 연합군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하면서. 책을 읽어가다 보면 정말로 그가 말한 장소에 미군과 영국군의 폭격기가 폭격을 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이제 열여덟 살이 된 피노 앞에 피할 수 없이 등장해야 하는 숙명적인 스토리가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맞다, 연애. 레이어스 장군의 정부 돌리. 그녀의 집에 가정부로 있는 스물네 살의 여성이 누구냐 하면, 피노가 작년 이후로 애타게 찾고 있던 환상 속의 여인인 안나. 궁금하지? 그래, 그래. 시원하게 말해준다. 안나와 얼려 피노는 총각 딱지를 뗀다. 됐어? 그러나 잊지 마시라.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북부 이탈리아를 다룬 소설이라는 것을. 전쟁 자체에 이미 숱한 비극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  이야기 자체는 재미있다. 그래서 속도도 팍팍 나간다.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마크 설리번이 이 작품도 다분히 미스터리 서스펜스에 어울릴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영화를 염두에 둔, 아니, 다시 말하자.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든다. 헐리우드 영화. 심각하고 중요한 일을 애써서 다 마치고나서 꼭 한 마디 농담을 던져야 직성이 풀리는 등장인물을 보는 듯한. 이 작품에서 주인공이 그랬다는 말이 아니라 이를테면 그렇다는 거다. 기껏 심각하고 긴박한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이런 디테일에서 독자의 헛심을 빼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으며, 그리하여 에피소드 자체가, 아휴, 한 때의 베스트셀러에 대해 아마추어가 이렇게 말을 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작위적이지 않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불만은 사소하다. 그저 이런 작품은 재미 있으면 그걸로 장땡이다. 아쉽게 품절 상태이니 도서관에 들르실 일이 있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다. 다만 해설 없이 655쪽까지 달려야 하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될 수도 있을 터. 인생이 그렇지 뭐 다 좋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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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소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3
미하일 조셴코 지음, 백용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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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수보로프 박물관에서 외관장식 담당 예술가이자 모자이크 작가로 일하던 우크라이나 출신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1894년에 태어나 거의 64년을 살다가 63세로 죽은 러시아 작가, 동화작가, 풍자작가. 1953년에 직접 쓴 자서전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이라 했지만 우크라이나 폴타바에서 낳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득시글거린다 한다. 그까짓 것 알 필요 없으니 궁금해하지 마시라. 미하일 미하일로비치 조셴코는 하여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성장해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지만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해 제적을 당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전선에서 방독면을 쓰지 않은 채 독일군이 살포한 독가스를 흠뻑 마셨고, 당연히 호흡기 부상을 당해 돌아와 러시아 혁명을 눈 앞에서 지켜본다. 혁명 후 내전시기에 붉은 군대에 입대해 활약해보려 했지만 전에 당한 부상이 또 문제를 일으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문학에 뜻을 두어 나름대로 풍자문학에 이름을 떨치기도 했으나 예술도 당의 논리에 순응해야 한다는 1946년 즈다노프 독트린이 발표된 즉시 본격적인 비판을 받아, 저 유명한 1938년 앞뒤로 스탈린에 의하여 저질러진 무지막지한 숙청도 무탈하게 견뎌낸 조셴코는, 즉각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결국 스탈린이 죽은 후인 1958년이나 되어서 연금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러면 뭐해, 몇 달 지나지 않아 7월 22일에 그만 숟가락 놨는데.


  《감상소설》 역시 풍자문학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초판 출간이 1927년. 이미 소비에트는 스탈린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런 시절에 함부로 펜을 놀렸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가는 일쯤 각오해야 마땅하다. 내 생각으로 조셴코 역시 일찍이 레닌 시대부터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날 샌다는 걸 알아채고 일찌감치 우회작전을 펴지 않았나 싶다. 《감상소설》 초판 서문에는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을 신경제정책과 혁명이 절정일 때 썼다고 말한다. 이어서 계속 주접을 떨기를:

  “독자들은 진실한 혁명적 내용, 거대한 주제, 지구적 과업과 영적 페이소스, 한마디로 충만하고 고상한 이념을 작가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중략) 작가는 마음속 깊이 아픔을 느끼며, 이 감상소설집에는 영웅적인 것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는 바이다.”

  즉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 에피소드를 통해 혁명과 사랑의 음모를 소비에트적 감성과 유머감각에 입각해 묘사하려 한다. 사실 이 길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볼셰비키라는 토착적 공산주의 체제, 세상에서 가장 권위적이고 중앙집권적인 독재체제에서 작가가 진지하게 현상을 해석하고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심장에 스스로 총알을 박아 넣든지, 즐거운 마음으로 면회 없는 10년 유배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했던 시절이니까. 실제로 조셴코와 뜻을 같이했던 “세라피온 형제회” 회원들은 훗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정식 소비에트 작가로 활동하면서 1937년부터의 ‘대숙청’ 시기를 다른 작가들에 비해 그나마 덜 희생당하며 지났으니 그것도 틀린 방법은 아니었을 터. 조셴코는 실제로 처남 부부가 체포되자 처조카를 데려와 양육하고 이 시기에 작가동맹 레닌그라드 지부의 간부회 임원으로 선출되며 이듬해는 심지어 “노동의 붉은 기치” 훈장까지 받는다.


  이런 시절에 아무리 풍자 작품이라 하더라도 책을 출간하는 일에는 담대한 각오가 있어야 했나 보다. 조셴코는 중판 서문에 난데없이 이 책 《감상소설》은 사실 콜렌코로프라는 소부르주아 가정 출신의 우익에 속한 작가가 썼으며 그는 현재 개조되고 있는 중이라고, 개조가 된 후에 작가들 사이에서 주목할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 말한다. 자기는 그저 진짜 작가 콜렌코로프의 집필을 지도해주었다고.

  3판 서문에서는 한술 더 떠서, 조셴코는 주로 맞춤법상의 오류를 교정하고 이데올로기를 바로잡는 것만 했으며, 작업을 콜렌코로프의 것이라 당연히 원고료 전부를 이반 바실리예비치 콜론코로프가 받았다고 적는다.

  4판 서문은 놀랍게도, “신경쇠약, 이념적 동요, 큰 모순과 멜랑콜리, 이 모든 것은 ‘발탁된 책임자’인 콜렌코로프의 몫으로 돌려야 했다. 작가 자신, 즉 그런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아들이자 형제인 조셴코는 오래전에 이 모든 것을 극복하였다. 현재 그에게는 모순이 없다.”라고 하며, “무방비 상태의 작가에게 주먹을 쳐들기 전에 이 복잡한 정황들을 기억해주시기를 훌륭하신 비평가들께 간청드리는 바”라고 하는데, 행여 이런 서문(들)가지고 정말 콜렌코로프라는, 조셴코한테 지도를 받은 작가가 있어서 그가 이 책 《감상소설》을 썼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없을 듯하다. 이 모든 것들도 몽땅 다 풍자라고 해야 마땅할 듯하다. 쉽고 간단하게 말해서, 이런 책을 썼지만 괜히 삐딱하게 읽어서 나를 골로 보내지 말라는 애교쯤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참 살기 힘든 시절을 보낸 건 이해한다.


  1927년에 출간한 《감상소설》에는 여섯 단편이 들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책에는 여섯 단편과 함께 “첫 소설”이란 부제로 두 작품을 더 실었다. 전부 화자인 “작가”가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등장인물의 배경 같은 것을 먼저 설명하고, 이야기, 초판 서문에서 말한 대로 주변의 별스럽지 않은 서민을 등장시켜 혁명과 사랑의 음모를 묘사한다. 막판에 가면 결론으로, “그게 다 사람 사는 것이지 뭐.”

  《감상소설》의 초판이 나온 다음해, 미하일 불가코프는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왜 난데없이 불가코프를 입에 올리느냐 하면, 1927년과 28년이면 같은 시대인데, 아무리 풍자소설과 모더니즘 소설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스타일이 다를 수 있을까, 턱이 떨어질 정도라서. 《감상소설》의 단편, 좋다 ‘풍자단편’이라 하자, 이 풍자단편이 나온 시기를 모른 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이 언제 쓰인 것 같나요? 하고 물어보면, ‘혁명’이나 비슷한 단어만 없으면 푸시킨 시절 같은 걸요, 라고 대답할 것 같다. 잘 봐주면 디킨스까지?

  물론 이건 조셴코 탓이 아니다. 이 정도를 쓰고 나서도 세 번이나 서문을 고쳐 써야 할 만큼 몸을 사려야 했던 시기였으니. 다만 아무리 좋게 읽으려 해도 문제는 스타일이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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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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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10개월 전에 에리크 뷔야르의 2017년 공쿠르 상 수상작품인 <그날의 비밀>을 읽었다, 라고 기억한다. 왜 이런 식으로 말하는가 하면, 뷔야르의 책을 읽기는 읽은 거 같은데 어떤 책이었는지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당연히 작품의 내용이나 스토리도 기억나지 않았다. 당시에 쓴 독후감을 뒤져보니까 히틀러 집권 당시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를 아우르면서도 짧은 작품이었다.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독일을 지탱하던 거대기업 바스프, 바이엘, 아그파, 오펠, IG 파르벤, 지멘스, 알리안츠, 텔레풍겐이 히틀러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을 흥미롭게 읽은 (어렴풋한)기억. 솔직하게 그것 말고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주인공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해 서사를 이끄는 등장인물도 없는 작품이며 불과 140쪽의 짧은 분량으로 공쿠르상을 거머쥐었던 책 <그날의 비밀>. 뷔야르라는 이름이 문득 떠올라 그의 다른 작품을 골랐으니,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되는 순간을 눈 앞에 그린 <7월 14일>이다.


  귀족들의 저택이 밀집해 모인 파리 생탱투안 지역에서도 단연 명성을 떨친 호화 별장 폴리 티통, 앙시앙레짐 말기에 가장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장식, 그리고 정원에 속한 숲으로 유명한 곳. 이 저택은 또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두 명의 인간을 바구니에 태운 열기구가 이륙한 역사의 현장으로도 유명세를 떨친 바 있었으니, 왕립 채색벽지 제조공장 소유자 장바티스트 레베용이 머무는 곳이었다. 프랑스 역사에 등장한 숱한 멍청이 왕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우둔한 군주 루이16세의 배우자 앙투아네트는 방에 환상적인 그림이 그려졌거나 반짝반짝 빛나는 원색의 벽지를 선호했는데, 이 바람에 다른 왕족과 귀족들도 자기들 방을 왕비의 그것과 가장 비슷하게 치장하고 싶어해 장바티스트 레베용의 금고에는 밑에 깔린 금화가 납짝 짜부러졌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구라다, 구라.)

  1789년 4월 23일. 프랑스 최고 수준의 부르주아 장바티스트 레베옹은 이 와중에 무진장한 현금을 쏟아내는 왕립 채색벽지 제조공장의 노동자 임금을 일당 20솔에서 15솔로 삭감하겠다고 발표한다. 15솔이면 충분하게 먹고, 살고, 아이들 키울 수 있을 것이며 계속 20솔을 받는다면 얼마 가지 않아 노동자들이 사업주인 자신보다 더 부유하게 살 거라고 엄살을 부리면서. 얼핏 생각하면 그깟 5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려 25%의 임금삭감을 의미한다. 게다가 1789년에는 대기근이 들어 민중들은 유래가 없이 굶주리고 있는 와중에 당연히 밀 가격 역시 하루가 다르게 폭동하고 있던 때였다. 굶주린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바람에 파리 시민 60만 가운데 8만 명이 아무런 수입이 없이 살고 있어, 임금을 깎는다 하더라도 15솔의 일당을 받기 위한 노동력은 쌔고 쌘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에 악덕 기업주 레베옹이 하는 꼴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초석 공장 소유주 앙리오가 있었으니, 앙 사장 역시 나도 임금을 인하하겠다고 나발을 불어대, 파리 시민들이 폭발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세상의 “거의” 모든 혁명은 배고픔 위에서 벌어진다.


  4월 27일 오후 파리 시민들은 대규모로 그레브 광장에 집결해 “부자들에게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빵값을 2수로 인하하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거참. 몇 온스의 빵값을 2수로 하라는 이야기인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독자에겐 이런 가격은 의미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민들은 레베옹과 앙리오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식을 해버렸으니 두 사장님은 등골 깨나 저렸을 듯. 그리고는 곧바로 앙리오의 저택에 난입해 눈에 띄는 호화 장식물들을 몽땅 파괴하다가, 어라, 이걸 깨서 부술 것이 아니라 들고 나가 유대인이 운영하는 전당포에 가져가면 다만 몇 루이는 받을 거 아냐, 각성하는 1인이 있었고, 난입한 군중이 그가 뭔가를 품 속에 넣고 사라지는 것을 본 다음부터는 본격적으로 약탈을 저지르기 시작했던 거였다.

  다음날인 4월 28일. 사실상 이 날을 기점으로 프랑스혁명을 시작했다고 보는데, 앙리오의 저택을 털었던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모여 이제 새롭게 가장 화려한 별장인 폴리 티통으로 쳐들어갔다. 대문을 두드려 부수고 정원을 관통해 저택에 들어가보니,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이 굶주림에 다 죽어가던 시민들 눈에 혐오감을 유발해, 어제의 용사들은 어제의 활약보다 더 사납고, 용맹스럽게 기물을 파괴하고, 수정 샹들리에를 추락시켰으며, (진짜 책에 나온 것에 의하면) 대리석으로 꾸며진 벽난로 앞에 똥을 싸지르기도 하는 등 온갖 망나니 짓을 하면서도, 유감없이 골족의 후예의 진면목을 발휘해 거의 남김없이 귀중품을 싹쓸이해버렸다. 이제 시민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어디까지 사고를 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까지 발동해 화려무비한 별장 폴리 티통은 반나절도 되지 않아 거의 폐허 수준에 도달했고, 이제야 출동해 도착한 기마대가, 아직도 이게 혁명의 시작이 아니라 당연히 폭동일 뿐이라고 여겨 군중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감행, 3백명이 넘는 사람을 한 순간에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으며 이보다 조금 더 많은 부상자를 발생시켰고, 그것도 모자라 주동자라고 아무렇게나 판단한 몇몇 사람들을 광장으로 몰고 가 목매달았다. 이 일이 프랑스 혁명 시기에 1792년 8월 10일 튈르리 궁전 습격을 제외하고 사상자를 가장 많이 발생시킨 일이라고 한다.

  에리크 뷔야르는 당시 티통 별장에서 레베옹 사장이 당한 약탈 내역은 모두 정확하게 기록된 반면에 상퀼로트들 중 죽고 부상당한 피해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비꼬았다. 뷔야르는 정말 몰랐겠지. 원래 약자들은 그런 거다. 이 시절 이후 2백 년이 훨씬 더 지난 다음에 불과 몇 년 전에 독립한 식민지 아메리카 합중국이 세계 최대의 권력국가가 되고, 마흔한 번째 대통령에 당선한 조지 워커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천명하면서 무슬림 국가 이라크를 침공해 소이탄을 퍼부을 때도 미국 병사들은 사망자, 중상자, 하다못해 경상자들에 관해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다가 피해를 입었는지 확실하게 기록하고 영웅의 반열에 올렸지만, 대량학살을 피할 수 없었던 이라크 사람들은 몇 몇이나 죽었는지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원래 약자들은 다 그런 거다. 프랑스가 알제리와 인도차이나에서 저질렀던 살육에서도 이하동문이고.


  그래도 정신 차리지 못한 부르봉 왕가는 뫼동 숲 서쪽의 진흙 바탕에 토대를 둔 석회암 건물, 베르사유 궁전에 퍼질러 앉아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산물들만 소비하며 왕국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다. 루이 16세, 이 우둔한 왕은 파리에서 유혈사태가 있었지, 그게 얼마나 심각한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앙투아네트 왕비가 뿌리는 내탕금만 따지더라도 연간 50만 리브르의 적자를 기록했다는 건 그래도 알고 있어서 당장 적자를 메꾸기 위해 다른 건 몰라도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한다고 이름을 낸 네케르를 재무총감에 임명했고, 네케르는 감투를 쓰자마자 가장 확실하고 빠른 해결책인 대규모 징세를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에 부르주아와 귀족들한테는 세금을 걷지 않았다는 거.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여간 이 책에서 뷔야르가 그렇게 썼다.) 그러니 이 와중에 며칠 후에 상퀼로트가 될 민중들의 고혈을 더 짜내고자 했으니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이상했을 광경. 징세정책은 5월 4일에 열린 삼부회에서 민중들을 일컫는 제3 신분이 수락을 해야 시행할 수 있었는데 네케르는 거만한 태도로 난해한 전문용어로 핵심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사태파악이 끝난 제3 신분은 딱 눈치를 채고 6월 17일에 국민의회를 선포했고,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루이 16세는 6월 20일 왕명으로 국민의회의 결정을 무효로 만들었으니 불이 붙은 들판에 기름을 확 끼얹은 듯했겠지.

  잊지 말자 6.25, 6월 25일이 오자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왕은 귀족(제2 신분)과 사제(제1 신분)들에게 3신분과 합류하라고 호소해, 가톨릭 사제들과 귀족들이 왕의 명을 따라 화해하는 체스처를 하면서도 당시 유력한 귀족 아르투아 백작 등을 중심으로 용병들을 파리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로만 아는 왕은 그래도 7월 11일에 재무총감 네케르를 해임했지만 용병을 믿는 마음이 굳세 강경책으로 돌아섰는데, 이미 거대한 물결은 멈출 도리가 없었다. 7월 12일에 젊은 말더듬이 변호사, 윽, 변호사가 말을 더듬었다고? 하여간 변호사 데물랭이 카페 문전의 탁자에 올라가 지금 궁전과 귀족들이 “애국자들의 성 바르텔레미를 준비하고 있다”고 매우 충동적인 연설을 하면서 사태는 급진전하는데, ‘성 바르텔레미’로 말할 것 같으면 1572년 8월 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에 가톨릭에 의한 신교, 즉 위그노 교도들에 대한 학살을 일컫는 것으로, 지금 왕족, 귀족, 부르주아들이 민중들을 학살할 준비를 하고 있노라, 프랑스 민중들이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다음날, 7월 13일에 파리 시내 곳곳에 바리게이트를 설치, 거의 파리를 점령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퀼로트들은 밤새 축제와 비슷한 해방의 하루를 보냈고, 드디어 7월 14일의 새벽 여명을 맞았던 것이니, 이 책 <7월 14일>, 너, 바스티유여, 기다려라! 드디어, 드디어,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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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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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생이니까 이 책을 출간한 2023년에 딱 마흔 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쓴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실었으니 서른여섯부터 아홉까지 결과물이다. 삼십대 후반. 이때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이야기를 지을 수 있는 시각과 마음과 솜씨를 가지고 있으려면, 책 속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다 허술하고 조금은 비루한 집과 관련한 것들인데, 적지 않은 주거환경의 안달복달, 애달캐달, 전전긍긍을 경험해야 했으리라. 실제로 작가는 2년간 전세 살던 집이 재개발이 되는 바람에 촉박한 시일 안에 이사를 해야 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이 서울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작품(들)을 통해 넘겨 짚으면 서울인 듯한데, 그 야박한 동네에서 한정된 자금으로 적당한 집을 찾아 계약으로 하고, 이사를 해야 하는 것이 어찌 작은 스트레스에 불과할 수 있을까. 김혜진은 이렇게 자기 경험과 경험 속에 있었을 관찰을 바탕으로 집과 집을 둘러싼 삶의 차별과, 집에 깃든 삶의 곡절을 ‘삶의 문장(文章이기도 하고 紋章이기도 한)’으로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전혀 새롭지 않은 차별의 저울 가운데 하나가 집. 집을 소유한 것과 임차한 것의 차이, 아파트 평형의 차이, 아파트와 빌라와 개인주택의 차이, 삶의 장소에 관한 차이, 그리고 차이에서 시작하는 차별. 이런 차이와 차별이라면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단편집 《축복을 비는 마음》이 품고 있는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제일 앞에 실은 <미애>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무대다. 미애는 1년 전에 이혼하고 딸 해민을 혼자 키우는 홀어멈. 이혼한 남편한테 아이 양육비 받는 건 애당초 포기했다. 그저 죽어 없어진 걸로 치부하기로 살겠다고 작정을 해버렸다. 한겨울에 보일라가 작동하지 않는 월세방에서 도망치듯 나오긴 했는데, 갈 곳이 없어 마침 지방에 내려간 친구 주희의 임대 아파트가 빈 것을 발견해 주희한테 사정하다시피 해서 석 달만 살기로 했다. 그러니까 주인공 유미애는 석 달 안에 직장을 구해야 하고, 모녀가 살 다른 월세집을 찾아야 하는 형편. 미애는 단지 안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독서모임을 찾아간다. 평소 책을 많이 읽지도 않고, 관심도 별로 없어도 무조건 갔다. 그곳에서 송선우라는 여성을 만나고, 친해져, 직장을 알아보아야 하는 낮 시간에 해민이 선우의 집에서 선우의 딸 세아와 함께 지낼 수 있었다. 독서모임의 멤버들, 세아 엄마, 새 월세방을 구하려 해도 돈이 모자라 2백만원을 빌리기 위해 사채업자와 치욕스러운 계약을 해야 하는 미애. 2백만원. 선이자 10만원 떼고 180만원을 받고, 50일 후에 원금과 새로운 이자 포함 260만원을 갚아야 한다. 무려 금리가 연 240%.

  임시로 살고 있는 주희네 임대 아파트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몇 동 되지 않는 소위 임대동이다. 다른 동은 자기 이름으로 등기를 한 버젓한 자가 아파트. 사실 독서모임에서도 가입 자격을 놓고 왈가왈부가 있었던 터. 임대동 주민도 회원으로 가입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그러나 다른 모임도 아니고 독서 모임을 하는 건전한 계급의 배운 여성들은 등기권리증의 소유주 따위의 하잘것없는 문제로 가입자격 운운하는 것조차 기분 나빠 한다. 그래서 임대동 거주인도 아니고 석 달이란 짧은 기간 잠깐 빌붙어 사는 유미애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기꺼이? 당연히 기꺼이. 그러나 마음 속으로도? 읽어 보시라. 세아 엄마 송선우 역시 미애의 딸 해민이를 자기 딸 세아와 놀게 해주었고, 매일은 아니지만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세아를 찾으러 온 미애한테 저녁도 먹고 가게 했다. 세아 아빠가 벌써 퇴근해 집에 들어왔어도.

  착한 이웃들이지? 착한 이웃인 건 나도 알겠다. 송선우가 사는 아파트. 1207동 708호면 한 층에 여덟 가구(708호니까) 이상이 사는 아파트면 넓지 않는 평형이겠지만 어엿한 내 집이며, 임대동에 잠깐 들어와 사는 유미애에 비하면 적어도 이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확실하게 계급 차이가 나는 건 사실. 살다 보면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도 생길 수 있지만 그걸 당사자가 크게 생각하면 또 큰 일일 수도 있어서, 늘 책을 가까이하는 건전한 양식을 지닌 사람도 자기도 모르게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는 사소한, 그러나 당하는 사람한테 치명적일 수 있는 작은 폭력을 쓸 수도 있다. 그게 삶이니까. 이런 것을 포착하는 김혜진의 눈매가, 새롭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매섭다.


  늙도록 삶에 찌들어 살다가, 어느 동네가 재개발될 예정이라 그곳에 있는 찌그러진 집이나 다가구주택을 가지고 있으면, 재개발 발표가 뜨는 날 당장 대박을 칠 수 있다는 은밀하고 정확한 소식을 듣는다. 그래서 만옥은 적지 않은 돈을 은행에 빌려서 다가구주택 목화맨션의 채 열 평도 되지 않는 101호를 샀다. 재개발만 돼 봐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삶은 절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 정확한 소식통이 전해준 재개발 뉴스는 확 불타오르다 사그러지고, 다시 타오를 것 같다가는 피시식 꺼져버리기 수차례. 가뜩이나 오래 된 목화맨션은 이제 낡을 대로 낡아버리고 전세 또는 월세로 101호에 들어와 살던 사람들은 거칠게 집을 써버리거나 제때 월세를 내지 않아 만옥의 속을 뒤집어 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월세로 들어온 인물이 하필이면 장대비가 내리는 한밤에 집을 보러왔던 마흔다섯 먹은 독신녀 순미.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고향을 떠나 맞교대하는 공장의 기숙사에서 3년을 보낸 후 일본으로 건너가 4년 세월을 버틴 이력이 있다. 귀국하고 오래 병원 신세도 졌고, 적당히 사는 편을 택했다. 몇 번 결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만 다 잘 되지 않아 이제는 혼자 사는 게 익숙하고 편해 다시 남자를 만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여성.

  이때만 해도 목화맨션이 곧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될 것 같았다. 밝은 날 다시 찾아와 월세 계약을 하는 순미와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고 당뇨가 있어 삼가기도 했던 냉면을 그렇게 맛나게 먹은 기억을 나중까지 가지고 있을 만옥. 이때는 몰랐다. 순미가 목화맨션 101호에서 세 번 계약을 갱신하고, 회사 택시를 운전하는 찬호와 다 늦게 결혼해 살며 그렇게 집안을 깨끗하고 살뜰하게 바꾸어 놓을 지를. 하지만 삶의 발톱은 언제나 날카로운 법. 만옥의 사정은 점점 딱해지고, 남편 승석은 이 세월 동안 뇌혈관계 지병이 조금씩 악화되었으며, 여전히 재개발 발표는 소식이 없었다. 남편은 길게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 달리 돈이 나올 구멍이 없는 만옥은 미안한 마음이야 구름같지만 하는 일이 여간해 잘 되지 않는 순미에게, 집을 팔아야 하겠으니 이사를 좀 가줍사,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지경으로 몰려버렸다. 그 사이에 언니 동생하며 가까이 지냈고, 둘 다 늦은 조촐한 결혼식에 거의 없는 신부측 하객이 되기도 한 중년에 새롭게 맺은, 친구면 친구, 자매면 자매 사이. 이 속에도 삶의 발톱은 파고들 수밖에 없다. 부드럽고 따듯한 목화, 목화 맨션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다. 여덟 편 모두 집과 집을 둘러싼 일에 관한 이야기. 없는 사람들끼리 부딪히며 정을 쌓기도 하고, 허물기도 하고, 결정적일 때 마음과 정말 다르지만 때로는 모질게 해야 할 때도 있는. 누구나 살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 아니, 어쩌면 제일 중요할 지도 모른다. 사랑보다 더 중요할 지도. 삶이 사랑보다 커도 많이 크다. 그래서 사는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보다 더 아름답고 짠하다.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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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1-29 0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에리크 뷔야르, <7월 14일>
화요일. 미하일 조센코, 《감상소설》
수요일. 마크 설리번, <진홍빛 하늘 아래>
목요일. 유진 오닐, <잘못 태어난 자를 위한 달>
금요일.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다섯 2024-11-30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삶보다 사랑이 더 위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삶이 사랑보다 커도 많이 커다는 말에 동감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4-11-30 15:37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암만해도 제일 중요한 건 사는 일이더군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