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악마의 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1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임슬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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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말엔 특히 아일랜드 작가의 책을 많이 읽는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에서 시작해 북아일랜드 출신의 애나 번스, 다시 남 아일랜드의 클레어 키건과 또다시 에드나 오브라이언. 1주에 한 권은 아일랜드 작가가 쓴 책을 읽은 셈이다. 오브라이언은 1930년에 태어나 2024년 올해 여름에 별세했다. 천수를 다 했다고 해도 무리는 없을 듯. 생일이 지나지 않아 93세까지 살았는데, 요즘엔 90 넘게 사는 노인들이 많아 예전같이 호호 할머니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오브라이언도 그러했기를 바란다.

  젊은 시절에 나는, 이가 다 빠져 볼이 홀쭉하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를 보면서, 이 할머니도 몇 십 년 전에는 불꽃 같은 사랑을 했고, 질투에 휩싸여 하늘이 무너지는 저주도 했을 터이고, 팽팽한 몸으로 밤을 세워 관능의 어지럼증도 숱하게 겪었겠지, 이런 건 추측도 해보지 못한 거 같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던지. 늙은 적이 없었던 젊음의 자연스럽고 그래서 당연한 오만이었으리라.


Edna O'Brien


  <8월은 악마의 달>이 출간된 해가 1965년. 이이의 나이 서른네 살이었다. 사랑도 해보고, 결혼도 해보고, 당연히 출산도 해보았지만, 그러기 위하여 마땅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질투, 다툼, 기다림, 안타까움, 욕지기 같은 고통도 모두 겪어보았을 것이다. 이것들을 통해 인생과 문학은 바야흐로 전성기를 향해 극적인 도약을 할 시기. 앞으로 자기 앞에 60년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조금도 염두에 두고 싶지 않은 시절. 하지만 당시 교조적 가톨릭이 기성계급과 시민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어서, 오브라이언은 이미 몇 년 전에 발표한 소녀 삼부작 <시골 소녀들>, <외로운 소녀> 그리고 <행복한 신부가 된 소녀들>이 아일랜드 땅에서는 판매 및 출판 금지의 금서 딱지를 받게 된 것처럼, <8월은 악마의 달> 역시 판매 및 출판 금지 도서 목록에 제목을 올린다. 성애 묘사와 신성모독의 죄목으로.

  신성? 한자어로 써서 神聖을 모독했다고? 한 세대 후의 작가 클레어 키건에 비하면 이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건할 수준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의 성애 묘사 역시 요즘엔 중학생들조차 심심해서 안 읽어볼 지도 모르겠다. 다 그런 거지 뭐. 세상이 바뀐 걸. 근데 올해 여름까지 살아 있었으니 60년 전에 자신이 당했던 금서 조치를 떠올리면서 얼마나 웃었겠어? 아흔다섯 살 할머니를 보면서 저 할머니가 당시에 성애 묘사의 달인이었으리라, 짐작이라도 할 젊은이들 있으면 세 명만 거수해보실까요?


  “엘런은 그가 자기 안에서 꽃줄기처럼 굳고 길어지는 것을 느꼈다. 부드럽고 또 단단하게. 그는 그 어떤 남자도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엘런을 사랑해 주었다. 남편조차, 엘런을 갈기갈기 찢어 갈망과 사랑과 고통과 후회의 순환 속으로 몰아넣은 남편조차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그런 종류의 사랑은 결국 허망할 뿐이니까. (p.27~28)


  이 정도가 높은 수위의 베드씬이다. 조금 더 높은 수위도 있기는 하다. 이렇게 엘런은 이제 두번째 만난 휴 휘슬러와 밤을 보냈고,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엑스터시를 맛보았으며, 따라서 진정한 의미로 순결을 벗은, 기념할 만한 8월이었다. 여성의 ‘진정한 처녀성’은 첫경험이 아닌 ‘첫 오르가슴’이라고, 그래서 아이 셋 낳은 마흔 살 아주머니도 그제서야 순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라고 1989년 충청북도 충주시 민방위 교육 강사가 충주시 여성회관에서 주장했다. 꽤 그럴 듯해 아직 기억하고 있다. 조금 비껴 말하면 엘런의 남편은 아내에게 아들 마크를 주었을 지는 몰라도 엘런의 처녀성을 없애 주지는 못했고, 앞으로 다른 여성을 만나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는 말. 세상의 많은 남자는 자기도 모르는 새 한 여성의 처녀성도 삭제하지 못하고 생을 마친다는 거다. 흠. 내 아내도 손주가 둘이나 있는 할망구인데 혹시 아직 처녀 아녀? 은근히 켕기네 이거….

  이런 얘기하니까 재미있네. 말 나온 김에.

  위에서 인용한 건, 딱 저 부분만 따와서 그렇지, 사실 앞 뒤 사정을 더 알면 훨씬 더 에로틱하다. 아무리 보수적인 아일랜드 문화계라도 저 정도로 설마 판매 금지를 때렸겠는가. 그런데 사실 보고 듣는 사람을 가장 애태우고 갈급하게 만드는 건 포르노 필름이나 동영상도 아니고 애니메이션도 아니다. 물론 내 경우에 그렇다는 건데 야설보다 조금 소프트한 에로틱한 은유의 문자들. 동영상은 이미 시청각으로 보는 사람에게 제공할 건 다 제공해서 뇌가 더 활동할 여지를 주지 않아서 다 그게 그거인 반면에, 문자로 쓴 에로틱한 묘사는,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어떤 모습과 자세를 하고 있는 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이를 뇌가 충분히 보완해주어 동영상을 볼 때보다 훨씬 더 흥분 수치가 상향한다. 최소한의 감각만 제공하는 은유적 자극제가 진정한 자극제다.

  하여간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1960년 초기에 문제작을 연달아 발표했는데, 그게 하나같이 여성 속의 리비도 배출 욕구와 과정, 그리고 실행을 탐색하고 있어서 점잖은 아일랜드에 작지 않은 파문波紋을 일으켰고, 오브라이언의 진짜 작가 남편 언스트 게블러는, 이이가 에드나의 처녀성을 벗겨주었는지는 별개로 하고, 소녀들 3부작을 쓸 때부터 “계속 이 따위 글을 쓰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위협을 하더니 3부작이 다 나오자 정말로 이혼 소송을 했으며, 다음 해까지 진행한 소송에서 <8월은…>을 증거자료로 제출했지만 패소했다.


  잉글랜드 런던. 엘런은 별거중이다. 법적으로는 유부녀이고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산다. 여름철이라 아이 아빠가 와서 아이를 데리고 몇 주 동안 웨일스의 농촌으로 야영을 갔다. 두 해 전부터 남편과 별거중이지만 이제는 뾰로통한 평화 같은 것에 안착했다. 서로가 많이 포기해 평화를 찾았다는 얘기겠지. 이렇게 해서 스물여덟 살의 아이 엄마는 자유로운 상태가 됐고, 전에 딱 한 번 만난 휴 휘슬러라는 남자가 집에 찾아와, 연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하는) 미란다가 집에 눌러 앉더니 도무지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자기가 나와버렸다고 신세 한탄을 하러 왔다. 이이는 자기 잡, 일에 열중하는 사람이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잔뜩 있으며 아내는 기진맥진했을 때 미란다가 휴에게 접근했다고. 이후 이혼을 했든지, 별거중이든지 둘 가운데 하나다. 어떤 경우라도 잔뜩 만든 아이들 양육비 조달하느라고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을 도리도 없기는 하겠다.

  그래서 이날 오후부터, 영국인답게 차를 대접하고, 혼자 있었다면 그냥 대충 때우고 말 저녁 식사도 요리 비슷하게 해서 함께 먹고, 와인과 위스키도 곁들이다가 처음엔 뜻이 맞아, 조금 후엔 입술이 맞아, 더 있다가 몸이 맞아, 식당 식탁에서, 응접실 소파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침실 침대에서, 아들 마크를 키우는 스물여덟 살 우리의 엘런 세이지 여사는 드디어, 드디어 처녀성을 벗어서 내다버렸던 거였다.

  내가 (만들어서) 가끔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어떤 사람들은 사랑해서 섹스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섹스를 하고나서 사랑을 시작한다. 엘런 세이지는 두번째 경우였다. 겨우 두 번 만난 휴 휘슬러와 오후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함께 지내고, 이제 헤어져야 할 때, 잠깐이 되겠지만 잠깐이라도 굳이 서로를 구속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다음 약속을 잡지 않고, 누구든지 생각나면 전화를 하기로 하고, 휴는 직장으로, 엘런은 식사 약속 때문에 외출을 한다. 이후 엘런은 지독한 고통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뒤라스가 말한 지독한 고통.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고통. 먼저 전화하기는 어딘가 좀 어색하고, 그래서 기다리기만 하는데, 혹시 전화가 올까봐 미나리 한 단과 삼겹살 3백그램 사려고 동네 마트에도 못 가는 심정. 불행하게 이 때가 1960년대. 30년은 흘러야 휴대전화가 나온다. 이런 또는 비슷한 경험, 고통 없는 그대, 사랑을 논하지 말라.


  전화는 오지 않는다. 이제 사랑이라는 뜻의 저주받은 다른 이름의 것들,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한 엘런. 엘런은 전화한다. 그리운 휴. 그의 깊숙한 바리톤 음성이 대답한다.

  “난 미란다를 사랑해요. 떠날 때마다 그걸 깨닫고 다시 돌아가 버릇하는군요. 어쩌면 나는 다 갖고 싶은 건가 봐요. 내 안에 너무 많은 죄책감과 책임감과 골칫거리가 있어요.”

  엘런은 죽을 만큼 용기를 내어 쿨한 척한다. “괜찮아요?”

  이 남자가 저지른 가장 사악한 짓은, 이제 겨우 엘런이 죽은 듯 살자고 체념했을 때, 딱 그때 다가와서 거짓된 희망을 건네어 하룻밤 동안 새 삶이라는 걸 준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 일이다.

  심하게 낙심한 엘런. 이게 독자의 눈에는 님포매니악은 아닐지언정 남편과 휴 휘슬러로 인해 다친 심상을 다른 남자들과의 무분별한 쾌락으로 풀고 싶어하는 것 같이 보인다. 때는 8월, 절정의 휴가기를 맞아 엘런은 자기가 다니는 연극을 다루는 소규모 잡지사에 하기 휴가원을 내고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 칸으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잘생긴 남자가 보이면 빼먹지 않고, 상대가 누구든 접근하리라 마음먹고. 오브라이언은 밝히지 않지만 하필이면 칸을 택한 것도 영화제가 열리는 유명도시라 미남들이 다른 곳보다 밀집해 있을 것 같았을까? 엘런에게 휴가는 일종의 남자 탐색 여행이 될 모양이다.

  실제로 엘런의 헌팅은 프랑스행 비행기 기내에서 시작한다. 호텔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오스트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앞에서 옷을 차례차례 한 꺼풀씩 벗으며 사진을 찍히기도 하고, 괜찮게 생긴 호텔 종업원과 뜻을 모르는 은어를 썼다가 심한 터치도 당하는가 하면, 나이는 많지만 정도 많고 돈도 많고 손도 크고, 미국에서 온 큰 부자와 아무 느낌없이 하룻밤을 잤으며, 자상한 미국 배우 바비도 만나 굳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바비를 기어이 자빠뜨리기도 하는데, 하여간 내가 읽기로, 지중해에 도착한 이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앞부분의 남편, 아들 마크, 자신, 그리고 휴 휘슬러와의 연애에서 기대했던 조밀한 감정의 소묘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 비록 프랑스에서의 일이 본문 격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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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2-18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아내도 손주가 둘이나 있는 할망구인데 혹시 아직 처녀 아녀? 은근히 켕기네 이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빵터집니다. 분발하십시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12-18 16:5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이제 분발이고 뭐고 다 끝났는데요 뭐. ㅋㅋㅋㅋ

잠자냥 2024-12-18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고통. 먼저 전화하기는 어딘가 좀 어색하고, 그래서 기다리기만 하는데, 혹시 전화가 올까봐 미나리 한 단과 삼겹살 3백그램 사려고 동네 마트에도 못 가는 심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명문이 많습니다. 그려, ㅋㅋㅋㅋ

Falstaff 2024-12-18 16:52   좋아요 1 | URL
앗, 이 심정 이해하신다, 이것이지요! ㅋㅋㅋㅋㅋ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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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4월과 11월, 두 중편소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큰 선풍을 일으킨 작가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는 동네 도서관의 관심도서 목록에 올렸는데, 작년부터 이날 이때까지 대출중이며 늘 예약자가 있는 상태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찬사. 그러다가 난데없이 개가실 신착도서 선반에 떡, 꽂힌 클레어 키건의 신간 《푸른 들판을 걷다》가 보이는 거다. 주저하지 않고 집어 그날 당장 읽었고, 250쪽 분량이 반 나절 조금 넘는 시간에 훌훌 읽어버릴 수 있는 넉넉한 편집이어서 앉은 자리에서 몽땅 읽었는데, 어, 이것 봐라, 많은 독자들이 클레어 키건에게 홀딱 빠지는 이유가 있기는 있구나, 하고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키건하고 비슷한 문체로 글을 쓰는 사람, 물 좋은 아일랜드라서 이렇게 쓸쓸한 이야기를 쓸쓸한 문장으로 직조할 수 있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윌리엄 트레버 유형의 문체로, 가부장적 아버지에 의한 딸에 대한 성폭력을 포함한 깊은 상처, 의도했건 아니건 남자의 이기적 행위에 의하여 다친 심신의 흉, 그리고 마지막 작품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의 이에 대한 극복을 다루고 있으니.

  클레어 키건.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의 농장에서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미국의 루이지애나, 다시 웨일스와 더블린에서 공부하고 작품을 썼다. 이후 출간하는 단편집 《남극》, 《푸른 들판을 걷다》와 두 단행본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각종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고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명성과 돈을 한꺼번에 얻은 작가이다.


  단편집 속의 일곱 이야기를 읽으며 주목한 것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역시 문체와 문장이었다. 하루 전에 읽은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유려하고 상세하고 길게 묘사하는 문체 그리고 문장과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황량하고 간결한 키건. 두 작가 모두 독특한 매력이 넘치며, 각자가 자기 문장, 문체, 스타일에 최적화한 서로 다른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짜장면이면 짜장면이고 짬뽕이면 짬뽕이지, 좋은 소설 속에 짬짜면은 없다. 뭐 내가 읽어본 경우에 그렇다는 거다. 있을 수 있겠지, 많고 많은 작품 속에 그런 것도 있어야 정상이겠지.

  그런데 지금 독후감을 쓰면서 당장 맞닥뜨린 문제는, 책을 읽고 한 마흔 시간 흘렀을 뿐인데, 아버지에 의하여 저질러진 성폭력(또는 성적 학대)와 가톨릭 신부 사이에서 있었던 섹스 후의 이별이란 상처와 흔적을 지니고 나머지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 말고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 그런데 사실 친부의 성적 학대와 가톨릭 신부의 성접촉은 말을 하기 쉬워서 그렇지 사회적, 종교적으로 대단한 불경의 경우이다. 키건은 이런 불경을 넘어선 패륜과 파문의 지경에 이른 심각한 부도덕, 지독한 폭력을 앞에서 말한 쓸쓸한 문체로 쓸쓸한 분위기에서 슬쩍 이야기하고 만다. 이런 걸 읽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피해자의 심정에 몰입하게 되고, 피해자와 함께 마음이 찢어진다. 이래서, 이리 극단적으로 자극적이라서, 그리고 이렇게 쓸쓸해서 전세계 독자들이 열광을 하는 것이고, 숱한 영화제작자가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 아직 읽어보지 않아 전적으로 짐작이지만 단행본 <맡겨진 아이>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문학적 영토의 의미로 말해, 아일랜드는 참 물이 좋은 동네인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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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2-17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짬짜면! ㅋㅋ
참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를 간결한 문장 안에 넣어 전달하고, 독자가 그 주제에 직면하도록 하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제일 좋았습니다.

Falstaff 2024-12-17 15:58   좋아요 0 | URL
ㅎㅎ 다른 책 전부 대여중, 예약대기 무지 많습니다. 가히 인기작가 맞습니다. 여기가 촌이라서 그런가요? ㅋㅋㅋ

hnine 2024-12-17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그리고 국가적으로도 고난의 역사는 문학적 영토를 기름지게 만드나 봅니다.
저도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읽었는데,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좀 더 좋았어요.

Falstaff 2024-12-17 15:59   좋아요 0 | URL
흠. 사소한 것은 읽어봐야겠군요. 제가 빌리기 전에 책 다 헐겠더라고요.

stella.K 2024-12-17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손이 안 가던데. 막연히 뭔가 싱겁고 밋밋한 거 아냐?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하긴 요즘 제가 읽는 소설마다 시큰둥해서..요. ㅠ

Falstaff 2024-12-17 15:59   좋아요 1 | URL
독자마다 감상이 좀 달라야 사는 맛이 있지요. ㅎㅎ

yamoo 2024-12-17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키건의 책은 재미가 없더라구요...왜알까요?? 아마도 제가 여자가 아니라서..또는 공감능력이 떨어져서 일겁니다..^^;;

Falstaff 2024-12-17 19:42   좋아요 0 | URL
읽는 독자마다 다 재미있다 그러면 그게 사는 일이겠습니까? ㅎㅎㅎ
 
투계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지음, 임도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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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는 에콰도르에서 가장 큰 도시인 산티아고 데 과야킬에서 태어나 산티아고 데 과야킬 대학을 졸업한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스페인어를 쓰는 에콰도르의 스페인 이민자들에 관한 르포를 쓰기 위해 스페인을 방문했다가 그곳에 눌러 앉아 근 10년 동안 많은 기사를 써서 에콰도르로 보내거나 스페인 현지의 매체에 발표했다. 당시의 기사들을 모아 <미용실에 배운 것들>과 <거주 허가>를 2011년, 2013년에 출간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2018년에 단편집 《투계》를 발표해 센세이셔널한 주목을 받았다. 《투계》 외에 2021년에 역시 단편집인 《인간 제물》을 출간했다고 하는데 《투계》를 읽어보니까 《인간 제물》 역시 급관심이 생긴다. 1976년생이면 지금 바야흐로 전성기를 지나고 있다. 장편도 좋고, 저널리스트 생활을 오래 해 장편이 무리라면 단편집이라도 꾸준하게 발표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투계》의 임팩트가 강했다.


  2백쪽도 되지 않는 분량에 단편소설 열셋을 담았다. 작품집의 제목인 “투계”라는 단편은 없다. 대신 제일 앞에 실린 <경매>에 닭싸움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투계, 싸움닭은 그냥 닭 두 마리가 싸우는 게 아니다. 관중들의 흥분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싸움닭의 며느리발톱에 매우 예리한 칼날을 매단다. 투계장에 두 마리의 싸움닭이 서로 째려보며 기싸움을 하다가, 팽팽한 잠시를 지나, 닭도 새라는 걸 알아차리기도 전, 순식간에, 공중전으로 돌입한다. 날개를 파다닥, 흔드는가 싶은 눈썹 한 가닥의 시간에 사람 키 정도로 훌쩍 날아오른 닭 두 마리는 서로의 복부를 향해 며느리발톱을 쭉 내뻗는다. 발톱대신 크롬 도금을 한 듯 번쩍 눈부신 칼날이 백열등 조명을 반사하는 이 숨막히는 찰라가 지나면,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배가 갈라져 분수 같은 피를 쏟으며 동시에 울컥, 내장과 닭똥을 뱉아낸다. 암푸에로는 닭싸움 장면을 묘사하지 않는다. 싸움이 끝난 후 죽은 닭의 처참한 모습, 그리고 죽은 닭은 맨손으로 집어 내다 버려야 했던 여자애, 그 아이의 아버지를 이야기한다. 닭들과 남자들. 기억 속에서.

  세월이 흘러 아이는 성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그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앞에서 우정을 연기하며 술을 마셔야 했으며, 그게 슬퍼서 마신 술에 비해 더 취기가 올랐는 지는 모르지만,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잠깐 졸았는데, 눈을 떴을 때, 택시는 텅 빈, 캄캄한, 공장 단지에서 멈췄으며, 택시 운전수는 권총으로 여자의 배를 쿡 쑤시면서, 인신매매단에게 넘겨버렸다. 이 악당들이 납치해온 사람은 여자 한 명이 아니었다. 돈이 좀 있을 것 같은 남자도 잡혀왔다. 이들은 다른 악당들에게 인질을 판매하는 경매를 시작하고, 낙찰 받은 악당은 인질의 신용카드, 은행계좌의 돈, 집안에 보관한 보석과 현금 그리고 값나갈 만한 가전제품을 몽땅, 아주 몽땅 갈취한다. 자신들도 본전을 뽑아야 하니까. 아니면 적어도 몸으로 육체적 보상이라도 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닭의 피와, 창자와 닭똥 속에서 자라야 했던 젊은 여자는 기어이 여기까지 왔다. 당연히 결말은 안 알려준다.

  그런데, 문제는 문장과 문체. 이런 그로테스크하며 엽기적이고 막장의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 놀랍게도 매우 유려하고 상세하고 그래서 더 호소력있는 긴 문장으로 적혀 있다. 물론 작품을 읽으며 문장과 문체라는 하드웨어에 집중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되어 있는 책이라면.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만 단정하기에는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글은 너무 매력적이다.


  에콰도르 또는 라틴 아메리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대륙 주거인들보다 훨씬 불안정한 치안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유독 물리적 폭력이 등장하는 소설을 많이 읽게 되는데, 공권력과 범죄집단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폭력이 나오지 않는 라틴 아메리카 작품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그렇다. 이런 면에서도 암푸에로의 단편들은 기존에 익숙한 라틴 아메리카의 폭력과 차별을 둔다. 앞에서 암푸에로가 페미니즘 소설가라고 했듯이 당연히 남성에 의하여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과 가부장제 하의 폭력은 물론이고, 같은 여성 연대 속에서도 고용인과 피고용인, 주인과 하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폭력도 적나라하다. 물론 여성 사이의 폭력은 몸에 가하는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재산과 계급과 인종 등 “다름”에서 비롯하는 극단 차별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좋은 이야기만 해도 “꽃노래도 삼세번”이건만 처음부터 끝까지, 열세 작품이 모두 이런 식의 극단적인 폭력과 그로테스크한 과정을 거친 그로테스크한 결말로 치닫는 바람에 앉은 자리에서 몽땅 읽을 경우 내가 그랬듯이 나중엔 질려 버릴 수도 있다. 작가의 시선은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를 점령한 가톨릭을 향하기도 한다. 마르타와 예수에게 향유를 바른 마리아, 그리고 부활. <상중喪中>은 이렇게 끝난다.


  “이 계절엔 바람이 지독하게 몰아칠 때가 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다시 음식을 먹다가 문 쪽에서 신음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들었고, 누가 손으로 문을 밀 듯 문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문이 열렸다.

  처음에는 파리 떼가 들어왔고 이어서 죽은 오빠가, 구역질 나는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마치 그녀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으나, 이가 다 빠진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못했고 다만 구더기들만 기어 나왔다.” (p.141)


  죽은 자 가운데 삼일 만에 살아 돌아온 오빠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긴 왔는데, 죽기 전에 이미 충분히 부패한 상태였고, 죽은 다음에도 사흘 동안 열심히 파리들이 알을 까서, 이 모양 이 꼴을 하고 돌아온 거다. 그럼에도,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왔음에도, 죽었다가 다시 “육신의 부활”을 이룬 오빠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부활을 했냐는 말이지. 가부장제? 남성에 의한 폭력? 혹시 중세?

  좋다. 좋지만 과하게 그로테스크한 거 아냐 이거?

  같은 가톨릭의 품에서 자랐는데도, 내일 독후감을 쓸 아일랜드 “여성” 작가 클레어 키건하고, 세상에나,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두 작가 다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을까? 다양한 건 거의 언제나 찬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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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의 한 가족 제안들 29
샹탈 아케르만 저자, 이혜인 역자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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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오랜만에 내 스타일이예요. 당신한테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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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12-13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12-14 05:06   좋아요 1 | URL
ㅎㅎㅎ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재미나게 살자고요. ㅋㅋㅋ

수이 2024-12-14 10:41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 별 다섯개 작품 궁금해서 후다다다닥

페넬로페 2025-02-28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데
이 책, 제 스타일인 것 같아요^^

Falstaff 2025-02-28 16:02   좋아요 1 | URL
ㅎㅎㅎ 반갑습니다!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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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쓰홍陳思宏은 1976년, 타이완 용징永靖향에서 농부의 아홉째 자녀로 태어난 퀴어 소설가, 영화배우, 역자이다. 자식 많이 낳은 농부는 당연히 아이들이 공부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얼른 자기 밥벌이를 시작했으면, 하고 바랐겠지. 그러나 천쓰홍은 책읽기를 좋아하여 아버지가 보던 신문, 여동생의 책꽂이에 꽂힌 책을 주로 읽었고, 학교에 다니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한다. 고등학생 시절에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혔지만 가족들은 왜 하필이면 자기네 집에서 동성애자가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곱게 생긴 외모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니 아버지 바람대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 있었을까. 천쓰홍은 푸런輔仁 대학에서 영문학과와, 국립타이완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 남자친구와 베를린에 정착해 주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커플이 법적 “파트너”로 등록했다고 하는데, <귀신들의 땅>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성결혼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귀신들의 땅>은 도서관의 관심도서목록에 오래 보관하던 책이다. 읽으려면 상호대차를 해야 해서 차일피일하다가, 이번에 <67번째 천산갑>이란 책을 출간했다기에, 그 책을 희망도서 신청하면서(하려다 안 했다) 전작인 <귀신들의 땅>을 먼저 읽어보자 싶어 그렇게 했다.

  같은 타이완 작가 가운데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서자孼子>를 쓴 바이센융. <서자>와 <귀신들의 땅>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나 집에서 쫓겨난 아들. 즉 퀴어소설이라는 점. 타이완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 2017년에 동성간 결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아직 ‘결혼’ 대신 ‘동반자 등록’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시아 지역에서 동성애에 관해 상당히 관대하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천쓰홍이 1976년생, 이이가 성인이 된 시절까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이라고 크게 좋아졌을 것 같지는 않다.


  작품의 주인공 톈홍는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타이완 중부의 시골, 아주 작은 마을 용징永靖에서 낳고 어린시절을 보낸 후, 동성애 성향을 목격한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베를린에서 젊은 애인 T를 만나 동성결혼했다. 베를린에서의 동성결혼이라고 해서 이 작품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당연히 경험 가운데 몇 조각은 작품에 반영을 했겠지만.

  5백쪽에 달하는 장편에 한 가족 이야기. 어머니 아찬과 아버지 아산에게 당연히 각자 한 권 분량은 족히 넘을 이야기가 있고, 순서대로 5녀2남 도합 일곱 명의 자녀 개개인들 역시 한 권 분량의 소설로도 다 쓰지 못할 인생이 있는데, 그걸 몽땅 합쳐 소설 한 권으로 썼으니 얼마나 구절양장 같이 얽히고설켰는지 짐작을 하실 터, 부모, 형제, 자매들의 우여곡절과 궁상은 옮기지 않겠다.

  1970년대 중반에 건설업자가 용징 최초의 타운 하우스 열 동을 짓는다. 원래 타이완 중부의 큰 지주였지만 내전에 패배한 장제스 정권이 들어서서 토지개혁을 하는 바람에 그저 그런 시골부자가 됐다가, 그럼에도 여전히 대지주의 소비습관을 버리지 못했던 톈홍의 할머니가 하필이면 백세까지 장수하는 바람에 있던 재산마저 말짱 다 말아먹어 찌그러진 집안으로 전락했던 톈홍의 아버지 아산. 아버지는 트럭을 구입해 각종 농산물을 도시의 소매상에게 내다 파는 일을 했다가, ‘빈랑’이라고 아시지? 발암물질이 있어서 구강암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중독성 또한 있어 주로 남중국 일대 주민들이 늘 우물거리면서 붉은 침을 찍찍 뱉게 하는 열매, 그걸 농부들과 협력해서 대량으로 내다 팔아 차익을 챙기면서 잠깐 여유로운 시기를 맞았고, 딱 그때 3층짜리 타운하우스 한 동에 입주했다. 빈랑 사업을 시작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다섯 딸의 학비를 모두 낼 수 있었으며, 매일 저녁 흰 쌀밥과 돼지고기를 삼킬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연초에 드디어 첫아들을 낳더니 연말에 이왕 낳은 김에 둘째 아들도 한 번 더 쑥 뽑아냈다. 이렇게 세상 빛을 본 일곱째 막내이자 두번째 아들이 오늘의 주인공 톈홍. 말 그대로 생로병사를 시작한다.

  톈홍은 여덟 살 무렵에 빨간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옆집 왕씨네 아들 징쯔총에게 유별난 정을 느낀다. 징쯔총도 톈홍을 귀여워해 함께 극장에 가면 무릎에 앉히고 영화를 보곤 했는데 당시가 시골 용징에서 거의 처음 상영하는 영화였음에도 톈홍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대신 엉뚱하게 빨간 반바지 사이로 자꾸 손을 집어넣어 징쯔총한테 쿠사리도 받고 그랬다. 하여간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하필이면 거의 정신병자 수준으로 학생들을 두드려 패던 담임선생의 친아들 샤오촨에게 그게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고 하여간 무슨 감정을 느낀다. 무슨? 무슨은 무슨이야, 연애감정이겠지. 톈홍의 일방적인. 하지만 담임은 둘 사이를 의심할 만한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그렇지 않아도 미친년 같던 폭력 성향에 불이 붙어 학교 나무에 묶어놓고 상급 아이 몇 명을 불러다가 매타작에 들어갈 때, 바로 옆을 지나던 톈홍의 형 톈이는 그걸 슬쩍 보더니, 그냥 가던 길 갔다. 진짜 형 맞다. 이래봬도 나중에 용징 현장까지 해먹는 형. 업무상 배임으로 임기도 못 채우고 감방에 가긴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샤오촨의 엄마이자 담임선생이 집으로 쳐들어와 당장 다른 학교로 전학하라고 난리법석을 한 번 떨더니 정작 자기 아들을 전학시키고 나중엔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다. 샤오촨은 톈홍과의 연애감정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 고향을 못 잊어 홀로 다시 용징으로 와 터를 잡긴 해도.


  이렇게 세월은 흘러, 톈홍은 베를린에서 살다가 가난하고 젊은 청년 T를 만나 연애를 하고, 동반자 등록을 한다. T는 톈홍과의 관계를 부모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크리스마스 시즌을 빌어 발트해에 인접한 고향 라뵈 집으로 간다. 가긴 갔다. 가서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식사, 작은 만찬을 하면서, 이미 얼굴이 수세미처럼 구겨져버린 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하고 의절을 해버렸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 커플은 가난 속에서 어렵게 살다가, T는 네오 나치 집단에 들어가더니 어깨와 팔뚝 사이에 18과 44라는 숫자를 문신으로 새기고, 꼭 N자를 새긴 비싼 미제 운동화만 신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18은 1번째와 8번째 알파벳, AH, 아돌프 히틀러를 의미하고, 미제 운동화 N은 나치의 첫 글자와 같다. 같긴 같지만 결국 동료들에게 동성애 성향이 뽀록이 나고마는 T. 험한 세상을 만나 T는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톈홍과 극한 싸움, 육체적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애당초 순혈 아리안족하고 왜소한 남부 중국인하고 상대가 되겠어? 이 결과 톈홍은 짧지 않은 세월 베를린 교도소에서 콩밥을 먹고, 출소하고, 다시 타이완 용징으로 귀향해 누나들을 만나는 이야기.

  원래 누나가 다섯 있었지만 다섯째 누나 차오메이는 스스로 험하게 죽었다. 약을 충분히 먹은 다음에 넷째 언니 결혼식장에 들어가 칼로 자기 몸을 북북 긋더니 얼굴에 비닐 봉지를 덮고는 죽은 개와 고양이를 던져버리는 개울에 처박혀서. 넷째 누나는 이때의 충격으로 ‘백악관’이라 불리는 용징 최고의 저택 2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고 지낸다. 하나 있는 형은 업무상 배임에 따른 징역형을 마치고 출소해 백악관에 들어가 넷째 누나 수발을 하고. 그리하여 베를린 감옥에서 출소한 기념으로 생두부를 함께 먹을 사람으로는 이제 딱 하나 남아 타운하우스 아버지 집을 지키고 있는 첫째 누나 수메이, 타이베이에서 민원 공무원 일을 하는 둘째 누나 수리, 타이완 최고의 뉴스 앵커한테 날이면 날마다 두드려 맞으며 사는 아름다운 셋째 누나 수칭. 그리고 어린 시절 친구, 어쩌면 절친, 말 그대로 친구였던 샤오촨. 여기에 한 명만 더 보태자면, 제목 <귀신들의 땅>이니까, 이미 귀신으로 살기 시작한지 꽤 된 아버지 아산의 유령. 이렇게 기구하게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가 속도감이 있어서 그렇지 딸 셋과 막내 아들이 만났을 때, 맏이는 이미 나이 육십이 됐거나 근처까지 간 세월이 흘렀다. 징글징글한 삶의 이야기들.

  그런데 어째 좀 덜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죽은 귀신이 직접 말을 한다고 해서 <귀신들의 땅>이 윌리엄 포크너 근처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좀 뭣하고, 성소수자에 관한 퀴어 소설이라는 것도 이제는 특별하지도 않고, 궁상스런 삶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내력이 있으니 눈에 쏙 들어오지도 않았으며, 하여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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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2-13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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