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류 속의 섬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동훈 옮김 / 고유명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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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천재인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의 작품은 좋아하지 않는다. 헤밍웨이는 굵은 스토리 라인 하나로 밀고 나가는 힘찬 전개 방식이 간결한 문장 속의 다중 함의와 더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소설 읽는 재미가 대단하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성향이 나하고 맞지 않는다. 현대 세계 소설사에서 큰 나무로 우뚝 선 존재감을 자랑하는 작품(들)에서 과도한 마초 성향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고 해서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지 않는 바보 같은 짓을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들지 않는 것이라도, 좋은 작품은 좋은 작품이니까.

<해류 속의 섬들>, 이 책 뒷면에는 출판사 ‘고유명사’의 광고글이 쓰여 있다.

“#노인과바다와 함께_바다3부작의완성”

해시태그 형식으로 쓴 짧은 광고글을 읽는다면, <해류 속의 섬들>이 저 유명한 <노인과 바다>, 그리고 또 한 편의 바다를 주제로 한 작품과 더불어 헤밍웨이가 만년에 쓴 세 편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겠구나, 라고 여기게 만든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니, 위키피디아에는 이 작품 <해류 속의 섬들 Islands in the Stream>이 “젊은 시절의 바다 Sea When Young”, “상실의 바다 Sea When Absent” 그리고 “존재의 바다 Sea in Being”으로 된 삼부작 <바다-추적>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삼부는 나중에, 헤밍웨이가 죽은 이후 네번째 아내 매리 헤밍웨이에 의하여 소제목을 각각 “비미니”, “쿠바”와 “바다에서”로 바꾼 <해류 속의 섬들>로 출판했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심정적으로 위키피디아가 사실이 아니겠는가 싶다. 출판사가 광고 글의 태그에도 <노인과 바다>와 “함께”라고 했다, 즉 “더불어 꼽는” 3부작이라고는 확실하게 주장하지 않았다, 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도 없거니와. 게다가 본문만 506쪽 실려 있지 흔한 역자 해설이나 하다못해 작품론 같은 것도 첨부되어 있지 않아 그냥 소설만 읽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지.

궁금한 게 또 있는데, 이 작품은 헤밍웨이가 1950년에서 51년까지 1년에 걸쳐 작업을 했지만 출판하지 않고 엽총의 총구를 입에 문 다음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밀어 자살한 후, 1970년에야 첫 출판을 했는데(초판을 번역했다 쳐도 아직 저작권이 살아 있는데), 우리말로 번역한 <해류 속의 섬들>은 어떤 책을 번역의 원전으로 했는지 밝히지 않았으며, 어떤 회사에 저작권료를 지불하는지 역시 독자들은 알 수 없다. 물론 이런 것들을 책에 기록하지 않았다고 불법이라 단정할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책에 저작권 등에 관한 정보가 없으면 독자들이 초장부터 왜가리 눈알을 해 째려보기 시작하는 것이 요즘 세태인 걸 정말 몰라서 밝히지 않았을까. 출판사 “고유명사”가 2021년에 시작한 신규 진입 회사라서 이렇게 모질게 이야기하기 미안하지만 잘못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다.

우리의 주인공 토머스 허드슨. 할아버지로부터 황무지만 유산으로 받은 가난한 화가지망생 시절, 아름다운 배우와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아이 톰을 낳고, 톰이 백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가서 파리에 오래 머무른다. 톰은 유아기부터 영어가 아니라 불어에 익숙해 다시 미국으로 귀국할 당시엔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파리에서 배고픈 젊은 시절을 보내던 허드슨 부부는 너무 배가 고파 광장의 비둘기를 잡아먹는 일까지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 이건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가 진짜로 저지른 적이 있던 행위다. 그러다가 토머스는 차츰 명성을 얻기 시작하고, 이혼을 하고, 아들 톰과 지내다가 여전히 진심으로, 유일하게 사랑하는 전 아내와 다시 만날까 싶기도 했지만 세상살이, 특히 애정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서 다른 여성과 혼인을 하고 둘째 데이비드, 셋째이자 막내 앤드루를 낳는다. 아들 셋을 미국으로 데려와 키우다가 두번째 아내와 이혼하지만 이제 훌륭한 화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해 아들들을 전처(두번째 아내)에게 보내 키우게 하고 자신은 플로리다에서 5백 마일 떨어진 비미니 제도에 박혀 작업에만 몰두하게 된다.

잘 되는 집은 비슷하게 잘 된다는 것이 톨스토이 백작이 주장한 진리인지라, 토머스 역시, 할아버지가 물려준 황무지에서 난데없이 석유가 콸콸 쏟아져 나와 석유채굴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토지만 판매해 매년 권리금으로 나오는 돈만 가지고도, 절반은 아내들의 위자료로 지불하고, 절반만 가지고도 평생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좋은 위스키와 디저트를 포함한 안주까지 포식할 수 있는 상태다. 사회적으로는 성공을 넘어 존경받는 화가로 인정받아서, 그림을 구입하기 위해 돈다발이 든 가방을 든 채 뉴욕의 대리인 현관 앞에 줄 서 있는 백만장자들이 정식간격 일렬종대로 화곡동에서 천호동까지 줄 서 있고, 자신은 걸프만의 비미니 제도에서 따뜻한 날씨와 거친 허리케인을 즐기면서도 섬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유대감을 이루며 살고 있으니, 한 마디로 말하자면 상팔자다. 인격도 그리 까탈스럽지 않아서 선술집 폰세 데 레온의 주인장 바비 손더스가 투정을 겸해 토머스에게 용오름 현상을 맛있게 이야기해주고 용오름이 동시에 세 개가 솟는 그림을 크게 그려 달라고 부탁했더니 기꺼이 돈도 안 받고 그려주기도 했다는 거 아닌가. 이러니 이 작은 섬에서 누가 돈 많고, 정 많고, 술 잘 마시는 토머스 허드슨과 척을 지고 싶겠냐고.

그러다가, 1930년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여름을 맞아 아이들이 방학을 해서 각처에서 공부를 하던 형제들이 뉴욕에서 만나 기차로 며칠에 걸쳐 남쪽으로 달려와 플로리다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섬에 와서 5주 동안 지내기로 결정이 났다. 이래서 벌어지는 5주간의 이야기가 책의 1부인 “비미니 제도”.

1부에서는 독자를 흥분시키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아, 잠깐. 걸프해, 걸프만에 관하여. 헤밍웨이 또는 이 책에서 말하는 걸프해 또는 걸프만은 플로리다반도와 미국 남부 사이의 바다로 우리가 “멕시코만”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던 걸프만 아니다. 헤밍웨이 시대엔 걸프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멕시코만으로 부르니 참고하실 사.

클라이맥스는 둘째아들 데이비드가 1천 파운드, 그러니까 454kg이 넘는 초대형 황새치를 낚아 필생의 사투를 하는 장면이고, 이 전에 비록 조스 백상아리는 아닐지언정 그에 못지않게 난폭한 성질을 자랑하는 귀상어, 일명 망치상어가 잠수해서 작살 낚시를 즐기던 아이들을 공격하는 순간이다.

(이 책은 외국어, 특히 불어의 오식에 관해서는 상당히 민감하다. 스펠링 틀린 것을 귀신같이 찾아서 그대로 내놓고 팔기 쪽팔리니까 새로 단어를 인쇄해 오식부분에 잘라 다시 붙인 경우가 두 번인가 세 번 있다. 근데 우리말 오식에 관해서는 또 완전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다. 하나 둘 정도면 내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조스> 1편에서 나중에 살인 백상아리가 어떻게 죽나? 주인공 로이 샤이더가 가스통을 입에 물고 돌진하는 조스한테 소총으로 총을 쏴 정확하게 가스통을 맞혀 터뜨려 죽인다. <해류 속의 섬들>에서는? 여기서는 그냥 몸통을 소총으로 쏴서 죽인다. 근데 문제는 누가 죽였는지, 몇 번을 확인했음에도 여전히 모르겠다는 거다. 한 번 보시라.

먼저 96 페이지.

“허드슨은 숨을 죽이고 침착하게 상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어떻게 하면 최후의 일발을 명중시킬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놈의 아랫배 부분이 조금 전 제1탄을 맞았을 때보다 더욱 심하게 요동했다. 그러곤 ‘꾸루룩’ 하는 소리가 나더니 물길이 쭉 솟아올랐다. 허드슨이 마지막 한 발을 쏘자 이번에는 그놈의 뱃속에서 아까보다 더 세차게 ‘꾸루룩’ 소리가 나더니 지느러미가 서서시 물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서서시”는 오타 아니다. 진짜 책에 그렇게 박여 있다.

당연하지 상어 주제에 감히 인간 청소년으로 점심식사를 꾀했으니 총맞아 죽어 마땅하다. 그런데 멀리도 아니고 바로 다음 97 페이지를 보면 이렇다. 허드슨과 그의 하인 에디와의 대화다.

“잘 쏘더군.”

“그걸 말씀이라고 하세요? 놈한테 던져 줄 고기를 얌전하게 들고 있는 우리 데이비드 도련님을 향해 녀석이 외람스럽게 덤벼드는 걸 보고 누군들 총을 쏘지 않고 배길 도리가 있겠습니까? 상어가 쫓아오는 것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이에요. 젠장, 제가 살면서 다른 빌어먹을 것들을 보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그것만은 반드시 봐야 한다니까요.”

즉 상어를 쏴죽인 사람은 토머스 허드슨이 아니라 그의 하인 에디로 돌변했다. 아직 나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분명히 총은 허드슨 화백이 쐈는데 불과 한 페이지 넘어가니까, 애초에 총을 가지고 있지도 않던 그의 충실한 하인 에디가 사격의 주인공이고 이후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에러인데 나는 이게 헤밍웨이의 에러인지, 아니면 번역을 한 이동훈의 에러인지 모르겠다.

만일 헤밍웨이의 에러라면 그건 글이 예전 같지 않아서 전혀 호평을 받지 못하던 알코올 의존증 시절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역자의 에러라면 아이고 이걸 어쩌나. 필자의 에러이건 역자의 에러이건 간에 어떻게 이게 데스크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 참. 내가 십년만 더 젊었어도 침을 뽈뽈 튀기겠는데, 참겠다. 세상에 완벽한 작가나 역자가 있나? 그걸 보완하라고 편집부가 있고 교정도 보고 그러는 건데 말이지. 에휴, 이 정도만 하자.

2부, 3부는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1부에 대하여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내보여야 하니 소개할 수 없다. 2부는 쿠바에서 첫 번째 아내를 다시 만나 침대에까지 끌어들인다는 것으로 변죽을 울리고, 3부는 전형적으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헤밍웨이라고 소개하고 독후감을 끝내겠다.



* 51년에 끝낸 소설을 발표도 하지 않았고, 죽은 다음인 70년에 출간했다. 작가는 작품을 아직 완성하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런 에러가 아직 고쳐지지 않았을지도. 그랬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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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04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4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4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4 1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3-03-04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쵸. 그 마초이즘 땜에 헤밍웨이를 버거워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더라구요. 저는 뭐 노인과 바다만 읽은지라 읽는다면 무기여ᆢ와 누구를 위하여ᆢ만 읽고 땡칠것 같습니다. 어쩌면 헤밍웨이가 제 안에 남성성 을 일깨워 줄지도 모르겠네요. 😂 꼼꼼한 독후감 잘 읽었습니다. 좋은 주말되십시오.^^

Falstaff 2023-03-04 17:20   좋아요 1 | URL
헤밍웨이 좋아하는 우리나라 독자를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저 같은 경우엔 혹시 중2 때 영어교사가 헤밍웨이를 좋아한 반면, 저는 그 선생을 너무너무너무 싫어해서 혹시 헤밍웨이까지 (저도 모르게) 싫어하게 된 거 아닌가 지금도 의심이 많이 됩니다.
교사 한 사람이 한 인간으로 하여금 한 과목을 완전히 제껴놓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아시죠? ㅎㅎㅎ 전 중2 때 영어선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원망스럽습니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했는데, 굳이 그 학교가 서울대 뺨친다는 주장을 하던 거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 ㅋㅋㅋㅋㅋ
전 본고사를 봤는데요, 아마 수학 점수가 영어 점수보다 높은 인간은 저 말고 별로 없었을 거 같네요. ㅋㅋㅋㅋㅋㅋ (재수없게 합격했어요. 떨어지면 2차로 모 대학 약학과 가려고 했는데요. 흑흑흑... 인생이란)

stella.K 2023-03-04 17:24   좋아요 1 | URL
그 선생님 지방에 살다가 서울로 상경하셔서 그러셨나 봅니다. 재밌는데요? ㅎㅎ
저는 국어 빼놓고 골고루 못해서 아예 학교 자체를 싫어했죠. 다시 태어나면 학교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

잠자냥 2023-03-04 10:2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헤밍웨이는 1961년 사망으로 저작권이 소멸된 작가입니다. 현 기준은 작가 사후 70년까지 보호하는데요, 종전은 50년이었죠(2011년 개정). 헤밍웨이는 이 50년에서 70년으로 개정되던 시기에 종전법을 따르는 2년의 유예기간을 줬었는데! 고때 딱 걸린 작가였어요. 그래서 저작권이 소멸된 2012년에 국내에 헤밍웨이 작품이 봇물을 이루며 쏟아졌었지요. 비슷한 작가로 헤르만 헤세(1962년 사망), 포크너(1962년 사망)가 있습니다. 재미나게도 1년 뒤인 1963년에 사망한 올더스 헉슬리는 딱 고 유예기간 끝나고부터인 사후 70년까지 보호 기준의 적용을 따르는지라 아직 저작권이 살아있고요. 암튼 그래서 저 출판사도 저작권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Falstaff 2023-03-04 17:18   좋아요 0 | URL
앗, 질문 있어요.
죽기는 61년에 죽었는데, 초판이 70년이면, 초판을 찍은 출판사한테 계약 기간 안에는 거의 모든 권리가 위임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그 출판사에서 찍은 책을 번역하려면 일종의 서브 계약을 해야 하는 거.....
진심 아주 오래된 의문이었거든요. 맞아요, ㅎㅎㅎ 자냥 님이 그쪽에 계신 거. 그걸 깜빡 했네요. 진작 물어볼 것을.

잠자냥 2023-03-05 01:50   좋아요 2 | URL
계약 기간 안에서는 계약을 맺은 출판사에게 권리가 있겠지요. 그러나 작가 사후 70년 또는 종전 대로 50년 보호 기간이 지났다면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않는 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가능합니다. 예컨대 헤밍웨이의 저 작품도 사후 50년이 지나고 나서는 저 영문판 책이 무수히 쏟아져나왔을 가능성이 많고, 요즘 같으면 인터넷에 전문이 다 올라와서(구텐베르크 프로젝트 같은 사이트) 전 세계 곳곳에서 번역 출판 가능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셔서 이젠 작가 사후 70년이면 저작권 소멸! 누구나 번역 출판 가능하다고 아시면 될 거 같습니다.

coolcat329 2023-03-05 08:58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았네요~
골드문트님 헤밍웨이 책 한 권만 읽어봤는데 유명한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지하면서 안 읽게 되네요. 마초만 아니었어도 팬들이 많이 늘었을텐데요. 글 잘 읽었습니다.
출판사 골드문트님 글 읽고 앞으로 좀 개선하면 좋겠어요.

꼬마요정 2023-03-04 10: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무기여 잘 있거라랑 노인과 바다만 읽어서요. 단편 몇 개 읽은 거 같은데 가물가물…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경우 전쟁소설임에도 연애소설로 읽었습니다 ㅋㅋㅋ 서서시… 인상적이네요. 게다가 하인이 쏜 지 허드슨이 쏜 지 달라진다면 이건 sf소설이 되나요. 어쩌면 소설보다 더 재밌는 리뷰인 듯 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3-03-04 17:26   좋아요 1 | URL
헤밍웨이는..... 이하 답글 썼다가 지웠는데요, 전쟁을 낭만적으로 바라본 죄, 이게 안타깝습니다.
ㅎㅎㅎ 저는 누가 삽질을 했는지 알고 있는데요, 저 위에 비밀댓글 주신 분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당분간은 모른 척하고 있겠습니다.
이래서 신생 출판사에서 찍은 책은 믿지 못하겠다니까요. 인화의 <인도로 가는 길>, 아토북의 <윌라 캐더> 또 어디더라 하여튼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메디치의 딸> 기타 등등. 정말 아쉬워요. 잘 좀 하지.

꼬마요정 2023-03-05 19:19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무기여 잘 있거라 웃으면서 얘기 하면서 웃지만, 진짜 충격이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수업 하나를 들었는데(전 대학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 때 알았어요. 무기여 잘 있거라가 이탈리아 전쟁을 그린 소설이었다는 것을요. 물론 전쟁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이탈리아 전쟁인 줄도 몰랐구요, 전쟁보다는 사랑에 더 중점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헤밍웨이 책을 멀리 한 것 같아요. 물론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거지만 충격이었어요ㅠㅠ 이하 답글을 다시 써 주셔도 좋을 듯 합니다. 궁금합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주목하라는 표어가 있었는데 그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여기 쓰고 싶습니다. ㅎㅎㅎ <...메디치의 딸> 있는데... 번역이.. 음 그렇군요. 그래서 자꾸 안 읽히나 봅니다. 몇 장 못 읽고 일단 책장에...

전쟁을 낭만적으로 바라본 죄... 글자 그대로는 너무 멋지구요, 뜻은 너무 참혹하군요.

Falstaff 2023-03-06 05:33   좋아요 1 | URL
<무기여 잘 있거라>는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입니다. 헤밍웨이가 참전하려고 했는데 눈이 안 좋았던 모양이라서 퇴짜를 맞았다고 하네요. 그래서 민간인 신분으로 이탈리아에 가 적십자 소속의 운전원으로 일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파편을 맞아 입원을 했고요. 소설의 내용하고 딱 맞아 떨어집니다. 소설에서는 로맨스가 생기는데 실제로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모든 전쟁문학은 반전문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족속입니다. 헤밍웨이는 무기여도 그렇고 종을 울리나도 그렇고, 반전의식이 별로 보이지 않아요. 자신이 보고, 남을 인터뷰한 내용 수준입니다. 전쟁은 절대로 낭만이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입니다. 같은 1차 세계대전을 그린 작품이라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나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이 훨씬, 훨씬 더 좋습니다. 제 수준에서는요.

꼬마요정 2023-03-06 14:47   좋아요 1 | URL
1차세계대전 이탈리아 전선이었군요. 그럼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네요. 그 때는 전 1차세계대전인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 전쟁이었다라고 해서 완전 놀랐구요. (근데 다시 읽어 볼 생각은 왜 안 했을까요??) 로맨스도 사실 문체가 너무 담담해서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는데, 좀 짜증도 났거든요. 말씀 듣고 보니 로맨스도 그냥 인터뷰한 느낌입니다. 자신의 첫사랑에게 심하게 까여서 그렇게 됐다는 말도 있던데, 어쩌면 그게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일까요? 전쟁에서도 까이고, 첫사랑한테도 까여서 자신의 자격지심을 글로 나타낸 걸지도 모르겠네요. 전쟁문학은 반전문학이어야 한다는 말씀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아, 너무 많은 걸 얻은 댓글이라 기쁘네요.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3-03-04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제일 유명한거 3작품 읽었는데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그래도 참 좋았던 기억만 남았네요. 이 소설은 번역이 문제일까? 아니면 헤밍웨이가 진짜 제대로 다 못쓰고 퇴고도 안된 상태인걸 그냥 내서 근런걸까 고민하게 하겠네요. ㅎㅎ

Falstaff 2023-03-04 17:32   좋아요 1 | URL
딱 꼬집어서 역자한테 큰 문제가 있었던 걸로......
그냥 대충한 거 같아요. 가끔 문장을 빼먹기도 하고요. 문장을 빼먹고 번역을 하니까 하인 에디가 어디(배의 객실? 창고)서 기관단총submachine gun을 가지고 나와 허드슨의 둘째 아들 데이비드를 공격하려는 귀상어를 향해 기총소사를 난사하는 장면을 빼버렸답니다.
사실 성체 귀상어가 소총 한두 발로 죽을 덩치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작품이 개판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지금 별점 하나를 더 뺄까 말까 잠깐 생각했는데, 뭐 좋은 게 좋다고 걍 내버려두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기관단총의 소지 여부는 3부에서 중요한 소도구의 존재와 관련이 되는데 그걸 뺐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2023-03-07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7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프리즘 총서 29
조르주 캉길렘 지음, 여인석 옮김 / 그린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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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초에 존경하는 후배님한테 책 소개를 받았다. 과학사에 관심이 많은 그이는 줄곧 이 방면으로 독서를 하고 있다. 내가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알고 있는 그이는 우정 전화를 해 프랑스 과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조르주 캉길렘의 저작 《캉길렘의 의학론》이 작년에 출판사 그린비에서 세브란스 출신의 여인석 번역으로 나왔으니 읽어보면 좋겠다고 권했다. 역자 여인석은 연세대에서 박사를 하고, 파리 7대학으로 유학해 서양고대의학에 관해 연구해서 과학사 인식론으로 박사 학위를 한 번 더 받은 인물이다.

캉길렘은 1904년에 태어난 프랑스인으로, 1924년 스무 살 때 고등사범에 입학해 사르트르 등과 동기생이 된다. 27년에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해 여러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지내기도 했는데, 이 시기부터 캉길렘은 다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철학자로서 작가는 1941년에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출강해 55년에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후임으로 소르본으로 옮겨 역사 인식론을 강의하다 나중엔 학과장까지 역임한다. 소르본에서 71년까지 16년간 후학을 가르치다 은퇴하고, 95년에 천국의 기쁨을 찾아 91세의 일기를 끝으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고, 라기 보다 후회없이 살다가 세상을 떴다. 의학자로의 캉길렘은 전시였던 1943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 때 논문이 오늘 소개하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이었다. 사회적으로의 저자는 또한 비시 괴뢰정부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 40년 6월에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하고부터 43년 의학박사 학위를 얻을 때까지는 한편으로는 저항군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생으로 연구에 몰두했을 것이다. 참 난 사람이다, 난 사람.

역자 여인석이 프랑스에 유학할 당시 캉길렘을 읽고 자신은 의학자이며 철학자, 저자는 철학자이며 의학자라는 우연의 조우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캉길렘은, 내게 전화를 해주었던 후배님은 프랑스 학파와 영미학파의 차이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런 거 같지는 않고, 유럽의 학자 대부분과 달리 대단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은 저술만 남기고 갔다. 소개받은 《캉길렘의 의학론》은 작자가 잡지 이곳 저곳에 기고한 컬럼이나 소논문을 저자의 후배, 제자들이 추려 출간한 것으로 분량도 상대적으로 적고 이해하기도 수월한 편인 것 같다. 나는 캉길렘의 도서 목록을 화면에 올려놓고 어떤 것을 읽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소개받은 《캉길렘의 의학론》을 일단 책방 보관함에 저장을 한 후, 이왕 읽으려면 이이의 첫번째 저작, 그러니까 의학박사 학위논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싶어서 바로 다음날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하고 2월 들어 읽었다가, 코피났다. 기껏 소개를 해주었으면 소개받은 바로 그 책을 골라야지 내가 과학사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잘난 척을 해 겁도 없이 박사학위 논문을 읽느냐는 말이지. 논문에 얼마나 얻어 터졌는지 심지어 이 책 말고 다른 책에도 손도 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술만 마셔서 취하면 자고, 또 취하면 다시 또 자고, 한 삼사일 취생몽사했다.

내가 줄기차게 주장한 것 가운데 하나는, “철학이라는 학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일반대중이 알아듣기 어렵게 서술할 수 있는지를 광고하는 공부”라는 거다. 아니라고? 좋다, 아니라고 치자. 그건 양보를 했다. 그럼 학위 논문이라는 거에 대하여. 학위 논문이라고 함은 ①같은 공부를 하고 있거나 ②이미 했거나, ③앞으로 할 예정으로 특정한 학문에 깊은 관심이 있는 심각한 딜레탕트, 이 세 부류를 위한 전문인만의 리그다. 이 리그 안에 들어 있거나 반쯤 발을 담근 사람들이 아니면 읽으면서 세종임금의 훈민정음 말씀대로 “제 뜨들 실어 펴디 못할 노미 하니라”. 아무리 철학과 의학과 역사를 합친 캉길렘의 논법이 되도록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되었다 하더라도. 이이의 책이 그나마 알기 쉽게 쓰였다는 건 이해하겠다. 근데 독자가 책을 읽으며 주장하는 것을 즉각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책을 읽다가 죽을 똥을 쌌는데, 책의 결론을 소개해도, 정말 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는 거의 없을 거 같아서,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그리하여 결론부 일부를 소개한다. 조금 길더라도 양해해주기 바란다.

“생리적 상태는 정상 상태라기보다는 건강한 상태이다. 이것은 새로운 규범으로의 이행을 가능케 한다. 환경의 변동에 대해 규범을 정할 수 있는 한 인간은 건강하다. 생리적 상수들은 생명체에 가능한 다른 모든 상수들 가운데에서 추진적인 가치를 지닌다. 반대로 병리적 상태는 생명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 규범의 폭이 감소했음을, 즉 이미 성립된 정산이 질병에 의해 불안정해짐을 나타낸다. 병리적 항상성은 반발적이고 엄격하게 보수적인 가치를 지닌다.”

위 인용문은 이해하기 쉽다는 캉길렘답게 정말 이해할 수 있다. 단, 문장을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그게 맞다. “규범”과 “생리적 상수”, “추진적인 가치”, “이미 성립된 정산” 이런 단어나 구句의 정의는 이미 앞에 나와 있는 것들이지만 그걸 다, 온전히 정의해 머리속에 보관하고 있어야 인용문을 읽으면서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평소에 철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정체를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는 독자가, 과학사라는 벌판에 처음 서서, 감히 한 위대한 철학자이며 의학자가 쓴 박사학위 논문을 읽겠다고 덤볐으니, 꼴 좋게 됐다. 그저 추천해주면 추천해준 책을 읽지 뭐 잘났다고 책을 고르고 자시고 해서 말이지.

지금 책을 옆에 놓고 독후감을 쓰고 있으면서, 어떻게 사서에게 반납을 해야 할지 답답하다. 언제나 반납하면서 “잘 읽었어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이 책에 관해서라면 감히 그렇게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그렇다. 에휴, 이 책도 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산 거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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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02 0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고생하셨습니다.ㅎㅎ
저는 저 인용문장도 와닿질 않네요.
철학에 대한 골드문트님 생각 정말 ㅋㅋ 맞네요. 넘 어려워요.
그래도 골드문트님 정도 되시니 이런 책도 도전하시고 역시 짱이세요!

Falstaff 2023-03-02 07:37   좋아요 1 | URL
아이그... 무슨 말씀을.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 걸요. 철학은 넘 어려워요.

다락방 2023-03-02 0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골드문트 님 ㅋㅋ 글 너무 재미있어요. 골드문트 님이 읽으셨다는 논문은 재미없을 것 같지만, 그 논문 읽은 골드문트 님의 리뷰는 재미있습니다 ㅎㅎ

Falstaff 2023-03-02 11:22   좋아요 0 | URL
앗, 그러셨습니까! ㅎㅎㅎ 기분 좋습니다. 어깨가 으쓱으쓱.

바람돌이 2023-03-02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소개해준다고 이런 책도 읽어주는 골드문트님의 우정에 눈물이 납니다. 역시 골드문트님은 훌륭한 분이세요. 저는 얼마전에 소설 한권을 사랑하는 후배에게 소개받았는데 3분의 1 읽다가 취향 아니라고 집어던져버리고 말았는데 말입니다. 앞으로 골드문트님 살신성인의 자세를 본받도록 노력해야겠슴다. ^^

Falstaff 2023-03-02 12:49   좋아요 1 | URL
아휴, 살신성인이니 본받으시겠다니, 말씀이 무거워 어깨를 누릅니다. 흑흑....

잠자냥 2023-03-02 1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는 나르치스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3-02 12:50   좋아요 2 | URL
무지하게 진지한 사람입지요.
대단한 술꾼이었습니다만 한 방에 술도 딱 끊어버린 놀라운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ㅎㅎ
그러고보니 나르치스와 비슷한 족이겠네요.

그레이스 2023-03-02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골드문트님 글 오랜간만에 읽는 것 같은데, 이 책 때문인가요?
아님 제가 못본 글이 있는지도...^^
암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도 약간은 취기가 느껴지네요^^

Falstaff 2023-03-03 05:44   좋아요 1 | URL
앗, 이 독후감은 대낮에 도서관에서 쓴 건데 취기가... 아무래도 알코올 의존증이 점점 심각해지는 거 같습니다. 지금도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서리 어질어질한데.... 흑흑흑...
 
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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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지 19일이 지났다. 그리고 열흘 넘어 “책읽기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캉길렘과 헤밍웨이를 그저 들춰봤을 뿐. 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런 식으로 책을 읽을까. 숱한 선량한 사람들이 읽고 등장인물의 처지, 환경, 생활이라는 삶에 가슴 절절하게 공감해, 선량한 마음으로 주변인들에게 권하는 작품, 이것을, 작가가 말하는 의도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그렇게 안 하는 건 어쩌면 천성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새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조각조각 뜯어보려는 건방진 마음에 사로잡혀버렸는지도. 하나하나 다 아픔과, 상처라는 아픔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보다 이야기들의 상투성을 먼저 발견하는 야박함이라니. <…루시 바턴>에서 벌써 “이야기의 상투성”을 말했고, 스트라우트를 그래도 읽는 건 문장 때문이라고 결론을 낸 적이 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역시 아픔 속의 아름다움(왜 아름다운 건 대개 아플까?) 이것을 발견하는 대신 누추한 추억(언제나 추억은 누추할 수밖에)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아름다움 쪽으로 끌고 가려는 것처럼 읽고, 그걸 구태여 남들이 다 보는 독후감에 그대로 썼다. 그리고 꼴난 독후감 이후 책 읽고 싶은 마음이 거의 사라졌고 읽히지도 않은, 이른바 슬럼프를 맞았다. 그게 19일 전이다.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독후감, 게다가 솔직히 말하건대, 남들이 좀 봐주었으면 바라기도 하는 독후감에 구태여 안 좋거나 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 그것도 무수한 독자들이 바치는 찬사를 향유하는 책에 관하여. 아무리 잘 봐줘도, 내가 책,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 수준이 선량한 다중의 것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 좋은 독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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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우트는 2008년 발표한 <올리브 키터리지>로 2009년 퓰리처 상을 받는다. 상을 받고 10년 후인 2019년에 그동안 흐른 세월만큼의 나이를 더 먹은 올리브를 다시 등장시킨 후속작 <다시, 올리브>를 발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며칠 전에 읽은 2016년 작 <내 이름은 루시 바턴>도 예외가 아니라서 2017년에 이 책의 후속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내고, 2021년에는 심지어 다시 후속작으로 루시 바턴의 첫 남편인 윌리엄을 호출한 것처럼 보이는 <오, 윌리엄>까지 발표했으며, 이 삼부작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오, 윌리엄>이 삼부작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다시, 올리브>에서 볼 수 있듯이 제목에 쉼표가 하나 첨가되어 강조하고 있어 추측하는 것뿐이다. 스트라우트는 우리나라에서 벌써 만만치 않은 팬들을 지닌 인기작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제일 처음 읽은 스트라우트인 <올리브 키터리치>를 제일 좋았다고 기억한다. 어떤 작가가 있어서 70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엄격하면서도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뜻한 눈길로 사물과 사람을 볼 줄 아는 ‘현명한 늙은이’를 그릴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집단 PTSD를 다룬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 오늘 읽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보다 더 좋았다. <…루시 바턴>에서 PTSD 또는 이와 유사한 심정적 상처라는 주제를 설정했다. 그리고 후속작인 《무엇이든…》은 전작에 출연했던 등장인물들 주변의 사람들 역시, 그러니까 지금 숨쉬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누구나 심정적 내상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이야말로 이의 해소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루시 바턴>에서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윌리엄>을 조만간에 읽을 예정이지만 그것 역시 같거나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1부와 마찬가지로 작중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바턴 가 구성원이지만 부모는 이미 하직하고 이제 삼남매, 차례로 피트, 비키, 루시 만 남았다. 피트는 앰개시 카운티의 변두리에서 전작에서 별로 개선이 되지 않은 상태로 부모가 남긴 집을 지키면서 독신으로 궁색하게 살고 있고, 비키의 딸 라일라 레인은 이모를 닮았는지 매우 총명해 학업에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지만 전형적인 반항아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삐딱한 십대로 성장했으며, 비키 역시 과체중을 넘어 고도비만 정도로 요양원에서 일하며 ‘불쾌한 비키’라는 뜻의 ‘익키 비키’라 불리고 있다. 즉, 손위 두 남매는 부모세대에서 전혀 개선되지 않은 사회적 루저의 위치를 보전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비키의 경우엔 딸 라일라가 대학에 진학하기만 하면 재수없는 앰개시를 떠나 대도시에서 (이모처럼)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비키 입장에서 대학에 보낼 수 없으니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장학금을 받은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루시는 이혼을 하고 재혼도 했으며, 작가로 이름이 나 이제는 회고록을 출간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대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며 사인회 등을 개최하는데, 전작 <…루시 바턴>에서 루시와 함께 뒷골목 식당 쓰레기통을 뒤져 먹지 않은 스테이크와 케이크를 발견하고 기뻐했던 외가쪽 육촌형제, 지금은 에어컨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에이블을 만나 재회의 기쁨도 나누고, 아버지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앰개시 본가에 들러 오빠 피트로 하여금 십여 년 만에 집안 대청소도 하고 깨끗한 러그도 사오게 만든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삼남매가 언제나 반가왔던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라. 십여 년 만에 만났는데 어떻게 친할 수 있느냐는 것을. 그냥 잘 살았어? 잘 있었어? 잘 지내지? 이거 세 개만 물어보면 더 뭔 할 말이 있다고. 그저 사이가 좋으려면 (물론 나쁘려면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가까이 또는 자주 얼굴 맞대야 한다.

이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다. PTSD는 이들 가족, 남매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다 그렇다. 친족 내 성폭행의 경험, 동성애를 딸에게 들키지 않을까 싶어 숲 속으로의 외출을 금지시키는 아버지,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PTSD에 시달리는 가난한 가장인 바턴 씨와 바턴 씨 부부의 (어린 남매가 생각하기에) 끔찍한 성생활, 계부가 어린 의붓아들에게 가한 성폭행,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고등학생 시절 위경련으로 조퇴를 하고 일찍 들어간 집에서 어머니와 스페인어 교사 딜레이니 선생이 벌이던 대낮의 불륜 라이브와 이어진 어머니의 가출 등등. 이것들 모두 PTSD이다.

그리고 그저 젊어서 또는 어려서 경험한 가난. 이것 역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PTSD인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꽤 많은데, 가난 역시 다르지 않다. 다만 그냥 부족함이 어느 정도 있는 살림살이를 살고 자기가 한 시절 가난하게 살았다고 착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가난의 기억 역시 한 인간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극복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초래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의 역사적인 큰 사건을 통한 공통의 가난, 평등한 가난이 아닐 경우에는.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특정시기에 가난 때문에 어려웠다는 얘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릇 사람들은 널리 살펴 언행에 주의하시기를.

이것으로 네 권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읽었다. 앞으로 <오, 윌리엄> 한 권을 더 읽을 예정이다. 나는 스트라우트가 좋다. 그러나 이이의 이야기가 좋은 건 아니다. 문제를 꺼내놓고 딱 미국에서 권장하는 해결방식인 “그래도 가족”과 “사랑”에 충실한 결론이 이제는 식상한다. 내가 스트라우트에게 느끼는 매력은 단지 하나, 문장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랑은 불완전해. 앤젤리나,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노랫말 같기도 하고 격언 같기도 한 반짝반짝한 문장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스트라우트가 좋은 것이지, 스토리는 이제 질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쉽게도 고백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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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2-28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토리가 질려서 더 이성 스트라우트는 읽기 싫다는 말은 스트라우트 애독자에게서 자주 듣던 이야기인지라 신선해요. 저는 질릴 정도는 아직 아닌지라 더 읽어보고픈 마음입니다. 다만 골드문트님 하신 말씀은 다 구구절절 이해가 됩니다. 몇 권 읽어보지 않아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스트라우트 꽤나 완고한 거 같지 않나요? 전 그런 완고함이 느껴져서 좀 꺼려지더라구요. 좋은 작가라는 건 알지만. 책태기 얼른 벗어나시기를!

Falstaff 2023-02-28 16:10   좋아요 1 | URL
ㅎㅎ 탈 슬럼프는 한 거 같습니다. 조금씩 읽고 있으니까요.
저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도 드물지는 않군요. 근데 문장은 정말 좋지 않나요?
태그 달았다시피, 세월이 지나면 스토리는 낡아도 문장과 문체는 영원하니 그게 어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PTSD 시리즈 보다 올리브 연작에서 더 완고했던 거 같은데요, 주인공의 나이를 훌쩍 올려놓아서 조금은 의도를 갖고 그러지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청아 2023-02-28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의 책을 두 권 읽어봤는데 스트라우트에겐 오히려 골드문트님 같은 독자가 좋은 독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았다는 독후감을 너무 많이 써서 이제 좀 다른 시각을 갖고 싶거든요.^^

Falstaff 2023-02-28 16:1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설마 고마우려고요. 아무리 훌륭한 작가도 자기가 쓴 작품이 별로라고 하면 정말 드럽게 화딱지 내더군요. 동서양, 옛날옛적이나 요즘이나, 여자나 남자나 다 마찬가지더라고요. 다 인지상정입지요. ^^

청아 2023-02-28 16:23   좋아요 1 | URL
물감님이 경험자이신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에 써주셨는데 그거 읽고 급이 다른 작가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정희진 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구요. 백 마디 칭찬보다 뼈 있는 한 마디가 당사자에겐 (다른 독자들에게도)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죠. 골드문트님 그러니 앞으로도 솔직한 독후감 써주셨음 합니다. 저는 그런 시선이 부럽기만 합니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Falstaff 2023-02-28 21:09   좋아요 1 | URL
ㅎㅎㅎ 나름대로 무척 친하게 지낸 소설가와 역자가 있었거든요. 자신의 책에 솔직하게 평해달라고 해서 정말로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손절 당한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ㅋㅋㅋㅋ 근데도 왜 손절됐는지 몰랐다니까요. 그렇다고 안 좋은 걸 거짓으로 좋다고 하라는 얘긴 아니고, 현명하게 피해가면 될 것을 구태여 이렇게 쓰는 건, 미련한 짓일지도 모릅니다. 팔자일 수도 있고, 사주에 들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쩌겠습니까. 여태 그리 살아왔는 걸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28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오, 윌리엄이 시리즈 끝이 아닙니다. 후속작으로 Lucy by the Sea가 미국에서 이미 나왔어요. 조만간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겠죠. ㅎㅎ
저는 스트라우트의 문장도 좋지만 그가 사람들의 상처를 바라보는 방식도 좋아합니다. 지켜야 할 선을 그어놓고 넘지않는 느낌이랄까? ㅎㅎ 특히나 소설은 호불호가 갈리는게 당연한데 무슨 좋지 않은 독자까지.... 이렇게 훌륭하게 깔 수 있는 골드문트님이야말로 진정 좋은 독자이십니다. ^^

Falstaff 2023-02-28 16:15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그럼 4부작이 되네요. 어휴....
물론 스트라우트의 시선은 그의 작품처럼 따뜻하지요. 그래서 가끔 사람 같지 않아 보여서 말이지요, 이런 제가 싫습니다. ㅎㅎㅎ
격려의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stella.K 2023-02-28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세 권 읽으셨으면 좋은 독자죠.
저는 올리브 몇년 전에 읽기 시작해서
아직도 끝을 못 냈습니다. ㅋㅋㅋㅋ
재밌다고 난린데 뭐 나쁜 건 아니지만 막 열관할 정돈가...?
어리버리 벙쪄하고 있다가 언제나처럼 다른 책 읽느라
흐지부지가 되었죠. 미국문학은 저에겐 호불호가 큰 것이라
골드님 이리 쓰시면 전 뭐 올리브나 완독하면 다행이다 싶네요.
연작소설들은 표지가 맘에 들긴 하는데...ㅠ

Falstaff 2023-02-28 21:02   좋아요 1 | URL
음주 댓글은 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 오후 4시에 저녁 먹으면서 한 잔 했으니 다섯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 깼다고 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같은 텍스트를 읽고 다 같은 감상을 한다면 참 재미는 없을 거 같습니다. 호불호가 큰 작품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지 않겠어요? 걍 즐겁게 사는 게 제일입니다. 서로 미워하지 말고요. 스트라우트도 작품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주장을 하고 있잖아요. 제발 서로 미워하지 마시라고..... ^^

반유행열반인 2023-02-28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오랜만에 제가 먼저 읽은 책! 저는 유일하게 읽은 스트라우트 책이고 올리브 책은 오래도록 꽂혀만 있어요. 곧바로 다시 읽지 않은 거 보니 역시 남들 좋다는 책도 취향이란 게 있나 봅니다. (그리고 골드문트님 입맛도 상당히 까다로우십니다….ㅋㅋㅋㅋ)

Falstaff 2023-02-28 2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옙. 제가 좀 까다로운가 봅니다. 당연히 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까다롭다는 얘기는 간혹 듣습니다. 원래 자기 눈의 들보는 알아채기 힘든 법이라서 말입죠.
열반인 님도 책 많이 읽으시잖아요.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 걸요. ^^

그레이스 2023-03-0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 좋아해요^^

Falstaff 2023-03-03 05:43   좋아요 1 | URL
우리 열심히 읽어요! ^^
 
사랑하는 개
박솔뫼 지음 / 스위밍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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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후장사실주의 소설가 가운데 두 권의 책을 읽은 유일한 작가가 박솔뫼가 됐다. 전에 자음과모음에서 출간한 장편 <을>을 나름대로 근사하게 읽어서 이번엔 박솔뫼의 단편집을 골랐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짧은 단편 꼴랑 네 편 싣고 한 권을 내면, 거 참, 읽는 독자는 좀 섭하지. 다행스럽게도 편편이 참 기막힌 아이디어로 만들어서 그것 봐라, 내가 눈썰미 좀 있지, 라고 다독일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을>은 다른 후장주의 작가들하고 별 변별이 없었으나 《사랑하는 개》는 그렇지 않았다. 박솔뫼를 이제 겨우 두 권 읽었으며 정지돈, 오한기, 이상우의 책을 각 한 권씩 읽었을 뿐이라는 전제로 말하자면 《사랑하는 개》는 이들의 상상력에서도 방향을 좀 달리하지 않았는가 싶었다. 물론 책을 읽어보면 말이 후장주의 동인이지 서로 자주 만나지도 않고 교류나 의견 교환 같은 것도 생각만큼 잦지 않은 거 같다. 또 아무리 동인이라도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야지 동인이라고 무조건 고지를 향하여 돌격 앞으로만 외치면 그게 무슨 재미일까 싶기도 하고.

단연 <고기 먹으러 가는 길>을 흥미롭게 읽었다.

남쪽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두 명이 북쪽의 숙소에 도착한다. 점심시간이 지나 갑작스럽게 폭설이 쏟아졌다. 이번 여행이 이들의 초행길이 아니라서 전에 왔을 때 밥을 먹었던 식당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폭설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흘러, 장소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점심은 대강 아무 곳에서나 먹고 싶다. 그래도 호오가 있어서 파스타를 먹고 싶다. 오다가 본 파스타 집이 있어 그곳으로 향하며, 생선구이 집이 보이기에, 파스타를 먹지 못하면 생선구이를 먹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파스타 집 현관에는 CLOSED 가 아니라 CLOSE 라고 쓴 보드가 걸려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봤자 아르바이트 생은 아르바이트 특유의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장사 안 하는 시간이라고 하기만 하고, 그러면서 안에선 한 노인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생선구이 집에 들어가 결코 친절하지 않은 생선구이 집 사장의 눈치를 받으며 한 끼를 때우고 숙소로 돌아온다. ‘나’와 동행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뿐더러 그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도형은, 곧바로 잠에 빠져들고, ‘나’는 그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봤지만 후푸후푸 숨만 몇 번 쉬더니 그냥 그대로 자고 만다.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소도구. 커피 포트와 함께 있는 가습기. 가습기 세정액 때문에 호흡곤란과 폐질환을 유발하는 그런 가습기가 아니라, 작가 박솔뫼가 주목하는 건, 가습기 분출구를 통해 분사하고 있는 흰색 수증기. ‘나’는 겁에 녹차 티백을 넣고 포트에서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컵 안의 물은 점점 노란색에 가까워지고 간신히 김을 내뿜고 있는 가습기도 여전히 할 일을 하고 있다. 내 앞의 김은 가늘게 위로 올라가고 가습기에서 나오는 흰 수증기는 좀더 존재감을 드러내며 흰색으로 좀 더 오래 남아 그 색으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가습기와 비교하면 가습기라고 하기에….좀…. 이 방의 건조함을 막는 데 큰 도움이 아니라 작은 도움의 작은 도움의 작은 도움 정도를 줄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지만 그래서 자꾸 쳐다보게 하는 것인가. 한 번씩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김을 바라보며 창밖을 보면 이웃의 건물이 건물의 창이 아니라 벽이 보이고 그 사이를 눈들이 흩어지는 눈들은 마치 너를 내가 잠들어 있는 도형을 내가 잠든 도형의 꿈을 내가 말하듯이 지켜보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조금 사이를 두면 가습기에서 나오는 이 흰 수증기가 희한한 생명체로 변용한다.

“가습기의 김은 여전하고 나는 컵에 물을 담아 와 가습기 안에 부어주었다. 다시 침대에 등을 기대고 가습기를 바라보았을 때 김 사이에서 닭 세 마리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닭은 병아리와 닭 사이 크기의 부리도 벼슬도 모두 만화처럼 귀엽고 부드러운 형태로 변한 닭이라고 해야 할지 좀더 병아리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였다. 세 마리는 테이블 위 가습기의 김 사이에서 피어 나와 한 마리씩 테이블 위에 종종종 선다.”

설마 정말로 가습기의 수증기가 닭으로 변했겠나. 주인공 ‘나’의 뇌 속에서 수증기가 이렇게 변용transfiguration한 것이지. 실제로 이후에 수증기의 변용인 닭은 ‘나’에게 무슨 고기를 먹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이 닭이라서 자기 앞에선 닭고기를 먹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냐고 물으며, 고기 가운데 닭고기가 제일 맛있다고,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해도 괜찮다고 참견하기까지 한다.

나는 박솔뫼가 이 단편 <고기 먹으러 가는 길>에서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심지어 작가가 작품에서 특정하는, 갑자기 대낮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는 반도의 그나마 북쪽 지역에 실제로 가서 썼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할 이유도 없다고 여긴다. 그냥 작가가 고기가 먹고 싶었구나, 그리고 어느 날, 가습기를 바라보며 폭폭 쏟아져 올라가는 수증기를 바라보면서 이게 닭처럼 생겼구나, 라고 여겼을 뿐이고, 그걸 서로 섞어서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그게 뭐 어때서? 괜찮지 않나? 좀 깨고. 어차피 세상을 바꾸려면 깨지 않고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법이니 말이지.

또 세 번째 작품인 <여름의 끝으로>에도 발칙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물론 세상 사람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여유 있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 한해 선택적으로 동면할 수 있다는 가정. 동면冬眠, 즉 겨울잠이지만 굳이 겨울에 자야 할 필요는 없고, 무슨 이유가 있어서 아마도 배부른 사람들이나 향유할 수 있고 배가 덜 부르거나 고픈 사람들은 시달릴 수밖에 없는 소위 번아웃을 느꼈을 때, 자신의 사정에 맞춰 동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어떤가?

여기서 ‘나’는 여차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비상용으로 동면 관리사 자격증을 땄고, 딴 김에 치과의사를 하는 허은이 임신을 했다가 중도에 잘못되어 쇼크를 먹어 남편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별거에 들어갔고, 일신상의 이유로 긴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허은의 친척이 경영하는 온양온천의 오래된 호텔 방 두 개를 빌려 이 가운데 한 방에서 40일 간의 동면을 취하기 위해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도착하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연말을 맞은 소도시 분위기, 오래된 호텔. 그리고 새해부터 시작하는 동면. 대전에서 KTX를 타고 우정 온양온천까지 와서 (그래야 20분 걸린다) ‘나’에게 밥을 사고 다시 전철로 서울로 올라가는 번역하는 선생님. 그러나 다른 등장인물은 별로 영양이 없다. 그저 동면. 사람이 동면을 한다는 아이디어 하나. 그거 가지고도 충분히 매력있지 아니한가?

나는 장편 <을>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후장사실주의자 소설답게 읽는 이에 따라 감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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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2-25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똥꼬사실주의.ㅋㅋㅋㅋ
정말 후장사실주의란 문예사조가 있긴 한 건가요?
한 10년전쯤 훅하고 튀어 나온 것 같은데 아무리 소설가들이라지만
말장난 너무한다 싶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골드님은 소설을 읽으신다면 외국 작품만 읽으시는 줄 알았는데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읽으시네요.
2, 30년에 욕했던 젊은 작가들 요즘 보면 나쁘지 않았는데
왜 욕을 했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물론 실제로 읽은 작품은 없지만...ㅋ
요즘 젊은 작가들도 앞으로 2, 30년만 버티면 그땐 추앙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품은 당대에는 인정 받지 못해도 훗날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ㅋㅋ

Falstaff 2023-02-25 15:3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냥 젊은 작가 몇명, 출판사 편집 직원, 평론가 말고 서평가 이렇게 몇 명이 모여 우리 친구 먹을까? 비슷하게, 볼라뇨의 <야만스런 탐정들>에서 나오는 ˝내장사실주의˝를 빌려서 우린 ˝후장사실주의˝라고 하자, 해서 시작한 거랍니다. 저는 불라뇨를 이미 읽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 들였는데요, 그냥 처음 들으신 분들 가운데는 기분이 좋지 않은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ㅎㅎㅎㅎ

전 우리나라 문학 좋아해요. 근데 요즘에 별로 안 읽는 건 우짜 그게 그거인 거 같은 작품들이 손에 계속 잡히더라고요. 이젠 출판사 광고글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서.... 아니더라도 뭐 그렇게 생각이 들어서, 우리 작품 고를 때는 아주 신중을 기하는 편입니다.
제 진짜 인생 책을 꼽으라면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을 제일 먼저 거론하는 걸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25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도 골드문트님 글에서 후장사실주의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딱히 의미는 없는 말이지만 이렇게 서로가 자신이 생각하는걸 자기 마음대로 열심히 진짜 자기 쪼대로 써보는거 뭐 나쁘지 않은거 같애요. 저는 한국문학의 경우 편식이 심해서 진짜 안읽은 작가가 많은데 이렇게 골드문트님 글을 보면 또 반성을 하게 되네요. (도대체 내가 읽은 것은 무엇인가 싶기도 합니다. ㅠ.ㅠ)

Falstaff 2023-02-25 15:32   좋아요 1 | URL
옙. 이이들의 작품을 보면 내용이 마음에 들거나 말거나와 관계 없이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면이 있더라고요. 이 박솔뫼는 이제 겨우 두 권 읽어봤지만 사물을 보는데 자연스럽게 그것을 변용시켜 이야기를 확장하는 특별한 시각이 돋보이고요. ㅎㅎㅎ 건방지게 아는 척했습니다. (에구 쪽팔려. ㅋㅋㅋㅋㅋ)
 
배트맨 : 킬링 조크 - 디럭스 에디션 시공그래픽노블
앨런 무어 지음, 브라이언 볼랜드 그림,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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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그래픽 노블. 우리말로 하자면 만화책이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니까 폼은 난다. 하여간 21세기 접어들면 무엇이든 인플레이션이다. 그래픽 노블? 흐흐흐. 예전에도 만화책 표지엔 글, 그림 이렇게 구분을 확실하게 했었다. 이 책은 <젠틀맨 리그>, <왓치 맨>과 배트맨 시리즈의 글을 담당한 유명한 만화 스토리 작가 앨런 무어가 쓰고 볼랜드가 그림을 그렸다. 이럴 경우, 즉 만화의 경우엔 내 경험상, 스토리 작가보다 소위 ‘화백’이라고 칭하는 만화가의 이름이 우선하는 거 같은데 요즘엔 아닌 모양이지? 내가 가장 최근에 본 만화는 <비천무>, <불의 검>, 그리고 명작 <북해의 별> 등 김혜린이니 한 이십 년 만에 처음 본 거 같다. 그러고보니 이젠 김혜린도 환갑이 넘었겠다. 아이고, 세월이 무섭다, 무서워.

책을 보고 제일 먼저 놀랐던 것은, 아무래도 나는 ‘만화’라는 말이 ‘그래픽 노블’보다 더 친하고 좋아서 계속 ‘만화’라고 쓰겠는 바, 만화도 내가 보지 않은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이야기’로 진화한 거였다. 물론 스토리 작가 앨런 무어의 의식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배트맨: 킬링 조크>가 사회적 주류 문화로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전혀” 찬성할 수 없다. 비록 불량하지만, 불량한대로 나름의 구조를 갖추어 이야기로 만드는 솜씨는 인정해야 하겠다. 얼마 전에 호아킨 피닉스가 주인공 역을 한 <조커>를 재미있게 봤다. <배트맨: 킬링 조크>도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배트맨 시리즈의 중요한 악역 조커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조커>처럼 조커는 고담시의 희극배우 지망생이다. 다른 점은 3개월 후에 아내 지니가 첫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고, 고양이 오줌 냄새가 풀풀 나는 단칸방에서 몇 달치 월세가 밀려 있다. 오디션만 보면 될 듯 될 듯하면서 이상하게 긴장하는 바람에 늘 마지막에 미역국을 마신다. 이런 비참한 환경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깨끗한 곳으로 이사해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으로 사고를 친다. 두 악당의 보조 길잡이로 전에 다니던 화학공장을 털기로 한 것.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되어 술집에서 이들을 만났지만 조금 후에 형사가 들이닥친다. 체포가 아니라, 몇 시간 전에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아내 지니가 젖병 보온기를 시험 작동하다가 감전되어 순식간에 즉사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이제 강도질을 할 이유가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악당들이 내버려둘 리가 없다. 약속은 약속. 이들은 계획대로 화학공장에 숨어 들어가고, 전에 다닐 때는 경비가 없었는데 그동안 바뀌었는지 무장 경비에게 들켜 총격을 받고 악당(들)이 총에 맞아 죽고, 길잡이는 살기 위해 화학 폐수가 잔뜩 들은 공장 옆의 호수에 빠져 오염수로 유전인자가 바뀌었는지 극악의 악당인 조커로 변신하게 된다. 당연히 영화보다 더 공상적이다. 만화라서 극단적인 공상을 허용할 수 있겠다 싶다. 개연성이 있거나 없거나 그걸 심각하게 생각할 정도로 막혀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세상의 루저가 극단적인 불행과 절망 앞에서 최고의 악당으로 변한다는 플롯에 찬성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세상엔 다행스럽게도 다른 선택지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있기는 있기 때문에. 다만 만화를 더 만화답게 만들기 위해 스토리 작가는 악당으로 변신한 루저를 최고의 영웅 배트맨의 상대역으로 캐스팅한 것뿐이겠지.

앨런 무어가 썼건 다른 이가 썼건 간에, 이미 전작에 배트맨의 탄생은 분명히 밝힌 바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선 배트맨이 왜 조커와 서로 죽음을 나누어야 할 사이로 여기는지, 이게 불투명하다.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뒤로 가면 배트맨은 기껏 잡은 조커를 죽이지 않고 다시 사회화해 정상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희망사항까지 제시하는 것도 난데없기는 하다. 그러나 <배트맨: 킬링 조크> 이후 또 무슨 작품이 나와 그걸 설명하겠거니 여겨서 시비하지 않기로 한다. 킬링 조크, 농담 없이 킬링 타임 하기에 좋다. 그러나 자라나는 어린이의 손이 닿게 보관하고 싶지는 않다. 청소년이면 기쁘지는 않겠지만 봐도 뭐라하지는 못하겠고.

에잇, 김혜린의 <비천무>나 다시 한번 봐야겠다. 그새 얼마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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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 <비천무>

(2001년 5월, 모회사 사보 게재글)




새삼스레 만화를 고급스런 문화물로 추켜올리려는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부터 대중적 기반을 잡기 시작한 만화에 대해 억하심정이 있는 것 또한 아니어서 그저 있는대로 말하자면, 새로이 도래한 21세기에 만화는 활자 매체와 시청각 매체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문화 코드로 이미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큰 착각은 아닐 것이다.
소년기에 한 번 쯤 만화에 몰입하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는가마는, 하필이면 만화를 탐독하는 시기가 성인이 되기 전인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매체와는 도저히 비교하지 못 할만큼 소박하지만 활자매체에 비해서 훨씬 설득력이 있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힘이 그 이유가 아닐까. 이러한 어설픈 단정에 공감할 수 있다면 활자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는 세기에 대중문화의 저변으로 등장한 만화를 새로운 문화로 인식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면 차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러나 제법 세상을 살아 <포켓몬스터> 류의 황당무계를 참을 수 없는 세대들이 즐거이 볼 수 있는 만화는 사실 드물다. 그리하여 아까운 지면을 빌어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약관 22세 때인 1983년에 데뷔작이자 문제작, 히트작이었던 <북해의 별>로 화려하게 등장한 김혜린의 야심작 <비천무 : 飛天舞>이다.


나의 서평이 언제나 그렇듯이 상세한 줄거리 소개는 직접 감상하실 분을 위해 생략하겠으나, 달리는 말 위에서 산 바라보는 식으로 훑어보면, 1343년부터 1368년 사이,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주원장이 명나라를 개국할 때까지의 격변기를 무대로, 멸망한 지방 족벌 유가장 출신의 떠돌이 무사 진하와, 몽고인 지방총독과 한족 사이의 혼혈 여인 설리, 그리고 한족 부흥운동에 투신하는 지방족벌의 계승자 남궁준광의 이야기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김혜린이 작품을 절차탁마해가는 '내공'의 숨막힘으로 만일 여지껏 만화를 그저 우스운 저급문화라고 여겼던 분들은 낭패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中原草草失承平 중원은 버려지고 오랜 평화는 깨져
戌火胡塵到南京 오랑캐는 남경까지 이르렀네.
扈 老臣身萬里 늙은 신하들이 군주를 따라
天寒來此聽江聲 한겨울 이곳에서 양자강 물소리 듣네.


 <비천무> 첫 장을 열면 작가는 위와 같은 남송 시대 사람 육유의 <용흥사조소릉선생 우거 : 龍興寺弔少陵先生 居>라는 시를 소개한다. 곧이어 이어질 스토리가 원나라의 4족 신분제(몽고족-색목인-한인-남송인)에 따른 몽고인에 의한 남송인 핍박이어서, 위의 한시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감정을 피압박인의 정서로 촉촉하게 적시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하는데, 이렇듯 시의적절한 한시의 소개는 심약의 <육억시 : 六憶詩>, 이욱의 <낭도사 : 浪淘沙>, 백거이의 <경비 : 輕肥> 등 수다하게 등장함으로써, 그녀의 만화에 충분한 감정이입을 부여하는 동시에, 비극적 흥취를 주고, 또한 시대극이기 때문에 충분히 감안했다고 김혜린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대사의 운율성을 부여하는 것에 타당성을 확보하게 한다.


그러나 김혜린의 나이 40세. 그녀는 자라면서 일본풍의 만화를 누구보다 많이 읽었을 터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작가는 일본 캐릭터, 예컨데 <캔디>의 테리우스,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구나 <비천무>는 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가상국을 무대로 한 열 여섯 권짜리 장편 극화 <북해의 별>을 끝마치고 곧바로 손 댄 작품이어서인지 몽고족과 한족, 그리고 고려족을 그렸음에도 각각의 캐릭터들은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고, 이는 만화는 숙명적으로 그림을 매개로 하고있기 때문에 선의 운동감을 부여하기 위하여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다음 장편극화 <불의 검>의 경우 무대가 북만주 우리 조상들임에도 불구하고 극동 아시아 인의 특징인 광대뼈 돌출과 같은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


김혜린. 그녀가 일본 만화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음에도 우리 시대에 김혜린과 같은 만화 작가를 또 한 명 보탰다는 것은 대중문화를 올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제대로 육성하는 토대를 만드는 또 하나의 벽돌이 제공되었음을 의미한다. 극화 <비천무>는 김영준 감독이 당대의 스타 신현준과 김희선을 캐스팅하여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 개봉관에서 절찬리에 상영하였으니, 이 자체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에 이어 만화의 대중문화적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비천무>에 몰두하게 하는가. 그것은 작가 김혜린이 끈질긴 역사탐구와 고증, 상상력의 결집으로 만화작업을 하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북해의 별>을 창작할 당시 그녀의 관심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정치적 휩쓸림이었고 만화작업이라는 기존 역사의 왜곡작업을 위해 수다한 서양사 관련서적을 탐독하는 동시에 복식사, 궁중풍속사에까지 관심을 쏟았듯, <비천무>를 그리기 위하여 김혜린은 원말명초 시대의 중국사와 민속사, 야사집까지 이 잡듯 뒤져 성공적으로 기존의 역사를 왜곡해내어, 그 결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역사만화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우리 만화작가 가운데 누가 있어 김혜린 만큼의 공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비천무>는 원말명초의 시대극이나 비천신검이 난무하는 무협활극, 그렇다고 흔히들 단정하듯 순정 멜로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미덕과 작가의 노력,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 장편만화 <비천무>에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월, 그 쓸쓸함과 사무치는 정한일 것이다. 누구의 가슴에나 품고 있는 회한과 아스라하게 부서지는 모종의 기억들을 김혜린, 이 중년의 아주머니 화백은 정확하게 할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천무>를 읽는 깊숙한 재미는 진정 이러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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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23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조커>는 보면 기분 나빠질 것 같아 여태 보지 않고 있어요. 재미있게 보시는 분들도 많던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비천무>개봉당시에 극장 가서 봤는데요, 정말 재미없게 본 기억이 나네요. 전 원작 만화를 보진 않았고요, 줄거리의 재미없음 이라기보다 두 주연의 연기 못함이 너무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보다가 신현준이 칼에 맞았던가 화살에 맞았던가 김희선이 이름 부르며 우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나 몰입이 안되던지... 오늘 골드문트 님의 이 글을 읽고보니 비천무는 원작으로 봤어야 했던 거네요. 크..

Falstaff 2023-02-23 07:43   좋아요 1 | URL
영화 <조커> 재미납니다.
근데 영화 <비천무>는 망작입니다. 김혜린의 원작을 보시면 좋을 거 같네요. 순정만화예요, 순정만화. 제가 좋아하는 ㅋㅋㅋㅋ

붉은돼지 2023-02-23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순정만화(그때는 여학생들이 보는 만화를 그렇게 불렀음)를 처음 봤는데요..이게 완전 신천지였습죠...당시 이재학, 하승남(맞나??) 류의 무협만화만 보던 고딩에게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는데요..!!! 와아아!!!!!!!! 여학생들은 만화도 이렇게 수준높은 만화를 보는구나!!!!!!..혼자 몰래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특히 즐겨보던 만화는 제 스스로 여류3대가로 칭한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이었습니다. 북해의 별, 불의검, 비천무, 굿바이 미스터블랙, 우리는 길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아르미안의 네딸들 등등등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눈물 콧물을 줄줄흘리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Falstaff 2023-02-23 14:03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전 김혜린 말고는 모르겠습니다. 복학하니까 후배들이 공포의 외인구단이니 만화들을 보더라고요. 저는 결혼하고나서야 좀 봤습지요. ㅎㅎㅎ
눈물 콧물, 이게 스토리, 이야기의 힘 아니겠습니까.

잠자냥 2023-02-23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 <비천무>는 명작이지요.
만화 안 좋아해도 비천무는 정말 몰입해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근데 하필 다부장님은 만활 안 보고 그 영화를!!!!!! ㅋㅋㅋ

Falstaff 2023-02-23 16:34   좋아요 1 | URL
오, 잠자냥 님. 오랜만입니다.
김혜린 좋아하시는 분이 많아요. 영화는 정말 개떡, 만활 다 망쳐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