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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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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으셔요! 제가 5년 전에 쓴 독후감 제목이 "이 책 찍어줄 다른 출판사 없나요?" 였을 만큼 재미납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원수들, 사랑 이야기>하고 비슷한 내용인데요, 둘 다 좋아요! 다만 시대가 변해서 유대인들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조금 거슬리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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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1-28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
저장하고 갑니다^^
하고 나니 집에 있을것 같네요ㅋㅋ
있다고 하네요^^

Falstaff 2022-11-28 19:10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레이스 님은 그럴 거 같았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2-11-28 2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첨 들어보는데 폴란드 작가네요.
노벨문학상도 탔고요.
골드문트님 무작정 영업에 궁금하네요!!

Falstaff 2022-11-28 20:39   좋아요 3 | URL
아 글쎄 재미있다니까요! ㅎㅎㅎㅎ
재미 없으면 제가 책값 드리겠습니다.....라고 쓸까 말까 하다가 ㅋㅋㅋ 아닌 걸로.
 
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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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겔 스트리트>, <도착의 수수께끼>,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 <세계 속의 길>에 이어 다섯 번째 나이폴로 고른 책. 아메리카 본토는 물론이고 도서지역까지 모조리 점령한 유럽인들은 트리나다드 섬에 상륙하여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원주민들을 거의 멸종시켜버렸다. 이후 섬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을 건설, 유지하고자 했으나 노예해방 이후 노동력이 필요해진 백인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인도, 중국 등지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이때 인도에서는 그래도 영어 깨나 하는 최상위 브라만 계급을 중심으로 많이 몰려와 정착했고, 이 속에 뭄바이에서 출발한 나이폴 가족이 들어 있었다. 이리하여 1932년에 V.S. 즉 비디아다르 수라지프라사드 나이폴이 태어난다. 이후 V.S의 성장과정은 웬만한 건 그의 작품에 모두 들어 있다. 후에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되는 섬의 미겔 스트리트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서 단연 발군의 학업 성취로 열여섯 살에 트리니다드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아 가족, 친척의 열광적인 배웅을 받으며 섬을 떠나 열여덟 살에 옥스퍼드에 입학한다. 3년 후인 1953년에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별세했을 때, 나이폴은 생애 마지막으로 고향을 방문하고 다시는 트리니다드 섬에 발을 딛지 않는다. 즉 갈색 피부의 영국인으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나이폴의 원형질에는 인도의 뭄바이, 트리니다드의 포트오브스페인, 런던의 얼스코트, 옥스퍼드, 그리고 만년의 삶을 살게 될 스톤헨지가 바라다보이는 월트셔의 농촌 마을로 이어진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나이폴의 영혼은 뭄바이, 포트오브스페인, 영국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를 끊임없이 떠도는 새로운 유형의 디아스포라로 규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때때로 작품을 읽기 시작해 진도를 나가다 보면 분명히 아름다운 문장, 섬세한 감성의 포착, 삶과 전원과 자연과 인간에 관한 명상들이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이런 묘사가 하도 장황하여 오히려 나가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경우가 있다. 나이폴도 이런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자유 국가에서>는 잘 읽히고 심지어 재미도 있다. 430쪽 분량으로 부담도 별로 없다. 그의 장기이기는 하지만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는 장황한 사색 없이 그리스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인도 뭄바이에서 미국 워싱턴으로, (트리니다드토바고일 수 있는) 제3 세계에서 영국 런던으로, 정치상황이 매우 복잡한 아프리카 한 나라의 수도에서 남부 관할구역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다시 이집트의 룩소르로 가는 로드 무비 식 옴니버스 형식이다. 결국 처음과 끝, <피레우스의 방랑자>와 <룩소르의 서커스단>를 내놓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고 주장하여, 모두 네 편의 단편과 중편 하나의 관계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읽을 수 있는데, 이게 작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출판사가 규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독자가 읽기에 그런 것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순서에 따라 각기 독립된 이야기로 즐기면 되지 않겠나 싶다.


  독후감의 첫 문단에서 나는 V.S. 나이폴을 새로운 유형의 디아스포라 족race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고 슬쩍 제안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의 방랑을 보면 오랜 세월 이방의 참견을 받거나 식민지였던 그리스에서 영국에 의하여 주권의 상당부분을 빼앗겼던 이집트로의 여행인 <피레우스의 방랑자>, 식민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도인이 세계의 심장인 미국의 워싱턴에서 정착하는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영국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토바고로 보이는) 제3국에서 런던으로 온 남자의 방황을 그린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 과거 식민 모국 출신 백인이 대통령이 권력을 쥔 아프리카 나라의 수도에서 왕 시해가 진행중인 왕의 남부 관할지역으로의 여행을 다룬 <자유 국가에서>,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모두 과거에 식민지였거나, 식민지에 버금갈 정도로 주권을 빼앗겼던 나라였거나 식민 국가 출신 해당지역의 백인 공무원이다. 즉, 주인공이 흑백을 불문하고 해당 지역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하여 역자 정희성은 책 뒤편의 작품해석 제목을 “포스트 식민 시대 유랑자들의 쓸쓸한 초상”이라고 적절하게 달았고, 내용 역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도 과거 일제에 의한 강점, 즉 식민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식민 모국인 일본이 전쟁 마지막에 인류 역사상 유일한 한 방, 리틀보이와 팻맨에 얻어터져 나이폴, 그리고 역자 정희성이 말하는 포스트 식민 시대를 겪지 않았고, 겪을 수도 없었다. 포스트 식민 시대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식민주의에 의하여 수탈을 당하느라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피식민국가의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이 부유한 식민 모국,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승전국의 “필수적이지만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작업을 위한” 하층 노동자로 유입하고, 이질적인 문화에서 생활하다가 차츰 적응하는 일을 말한다. 여기서 ‘적응’이라고 하는 건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상당한 시간 동안 죽도 밥도 아닌 상태를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난점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식민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던 미국으로의 유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경우가 다를 뿐이지 결국 필요한 인력의 유입과, 유입한 인력들의 오랜 적응기간과 혼란이란 입장에서는 거기서 거기다. 우리도 한 시절에 아메리칸 드림 하나만 가지고 미국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경험이 있으니.

  뭄바이에서 고관집의 요리사 하인 출신이었던 ‘나’ 산토시는 계단 밑의 작은 공간, 이모네 집에서 일만 생겼다 하면 징벌로 처박혀야 했던 해리 포터의 계단 밑 창고 같은 곳에서 먹고 자야 했는데, 그것보다는 동네의 비슷한 또래 하인들과 함께 밤 늦게까지 두런두런 수다를 떨다가 가끔 술이라도 생기면 한 잔 씩 하면서, 그냥 길거리에서 자던 습관이 있었다. 주인이 정부 일로 워싱턴으로 발령이 나서 어렵사리 함께 워싱턴 비행기를 탔는데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한 주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잠에 빠져버렸고, 산토시는 아무리 뒤져봐도 자기가 잘 공간은 보이지 않는지라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 문 앞에 몸을 구부리고 엎어져 잔다. 물론 아침에 눈을 떠보니 현관문은 자동으로 닫혀 있어서 집 안으로 들어갈 방법도 알지 못하고. 이런 상황이니 인도 출신의 디아스포라는 지역적 분리 이외에도 상상도 하지 못한 문화충돌까지 겪어야 한다.

  나도 한 번 폼을 내보기 위해 요즘 유독 유행하는 단어를 굳이 써보자면, 나이폴은 이런 현상을 핍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흠. “핍진”이라고 쓰니 발음은 뭔가 쿨 한 느낌이지만, 이 단어를 쓰려면 반드시 괄호 치고 한자어를 명기, 분명하게 밝혀야겠다. 逼眞과 乏盡이 발음은 같지만 내용은 거의 반대라고도 할 수 있구나. 웬만하면 이 단어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


  하여간 결론은, 재미있는 책이라는 것. V.S. 나이폴을 처음부터 쉽게 읽은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깊은 사색을 동반해야 할 것 같은 치밀한 서술에 지쳤거나,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한 이야기 다시 한 번 더 하는 것이 걱정스러워 나이폴을 읽기 머뭇거린다면 이 책을 권하겠다. 가장 문턱이 낮아 쉽고 편한 나이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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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25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항상 사두고 닐지 않은
책들이 피드에 올라올 때마다
이렇게 맴에 가책을 느끼게
되는지요 ㅠㅠ

나이폴 선생의 책을 잔뜩 사
두고 선뜻 못 집어 들고 있
습니다.

문턱이 낮다고 하시니 해가 가
기 전에 도전을...

Falstaff 2022-11-25 10:56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그게 뭐 한 두 권이겠습니까. 책 좀 읽는 사람들은 다 그럴 거예요.

붉은돼지 2022-11-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생은 뭐 워낙에 견문이 일천하고 당췌 근본이 천학이기는 허나, 나름 똥폼잡고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지라 뜻도 모르는 한자를 대충 통박으로 많이 쓰는 편인데, 핍진이 결핍의 그 핍진 말고 또 다른 뜻이 있는 줄은 오늘 아침에사 처음 알았습니다. 조문도면 석사가의라. 금일 큰 공부를 하였으니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지는....당연지사 않을 것이고.........................쓸데없는 소리는 각설하고, 가만 보니 골드문트님의 프사가 소생 프사의 거의 실사판이라 반가운 마음에 횡설수설 송구합니다.

Falstaff 2022-11-25 13:53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 터줏대감 님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리 댓글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 사진은 좀 된 거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슷하네요.

coolcat329 2022-11-28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가 인도인이었군요. <미겔 스트리트> 소설은 들어봤는데 작가가 인도인이라고는 전혀 생각못했습니다. 골드문트님의 작가 설명은 역시 재미납니다. ‘이방인‘을 주제로 하는 소설집~

Falstaff 2022-11-28 18:42   좋아요 0 | URL
나이폴은 충분히 집중 탐구해볼 만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정말로 ˝집중˝하려면 꽤나 지루한 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11-28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폴도 모아놓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습니다.
한권 읽었는데 책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제 기억으로는 세계속의 길이었던 것 같네요
마구 읽던 때라 기억이 전혀 안납니다 ㅠ

Falstaff 2022-11-28 19:10   좋아요 1 | URL
세계속의 길이 만만하지 않은데.... ㅎㅎㅎ 뭐 어떻습니까. 다 그런 것이지요.
 
캄캄한 낮, 환한 밤 - 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 대산세계문학총서 178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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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읽는 옌렌커. 이이가 글 하나는 참 재미나게 잘 쓰는 건 알겠는데, 나 하고는 조금 맞지 않는다. 옌렌커는 저 중국 하남 땅, 즉 허난성 뤄양시 인근 출신으로 기름진 평야와 서쪽과 남쪽에 바러우 산맥이 있어 작품이 모두 이 동네를 무대로 하거나, 등장인물이 이 근동 출신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고속전철이 뚫려 베이징에서 두어 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옌렌커가 젊은 시절에만 해도 수도 베이징 구경은 현에서 한 두 명 정도 할까 말까 한 저 멀고 먼 두메산골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옌렌커의 작품 속에서, 거 참 희한도 하지, 내 눈을 잡아 끈 건 강간,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의 과다한 사용과 상상력의 엽기적 발산이 주로 안 좋은 방면으로만 눈에 띄었다.

  처음 읽은 옌렌커였던 <풍아송>도 구도적이고 아름다운 제목과 달리(고백하건대 이때까지 옌렌커가 어떤 작가인지 몰랐다. 오직 하나, 제목이 너무 아름다워 골랐던 책이다) 주인공이 부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의 늙어서 쉬어 꼬부라진 부총장이 자기 집 침상 위에서 젊고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와 포개진 모습을 보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그리고 읽어갈수록 수위가 높아져 결국은 바러우 산 근방에 유토피아, 율도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걸, 제목 풍아송 보다, 아니, 제목만큼 아름답게 읽어줄 수 없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마찬가지였다가, <레닌의 키스>에 와서야 <풍아송>과 같은 무대인 바러우 산 기슭의 집단 촌에서 시작하는 ‘거대한’ 은유의 범람을 즐길 수 있었다. 이어서 <사서>도 괜찮게 읽은 바 있으나 옌렌커 특유의 마초적 과장은 내내 눈에 거슬렸던 것을 숨기지는 못했다.

  이번에 읽은 <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도 거북하게 시작한다. 작가가 자신의 실명을 숨기지 않는 건 뭐 그럴 수 있지만 그의 소설 속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의 출발선을 보자.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리李씨 집안의 둘째 리좡이 먀오苗씨 집안의 넷째 먀오쥐안을 강간했다.”


  이것은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 속에 나오는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의 시작부분이다. 여태까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옌렌커 작품 <레닌의 키스>에서도 작품에 동력을 제공하는 향鄕의 하급 공무원 류잉췌가 서우훠 마을에서 유일하게 장애가 없는 동네 처녀 쥐메이를 강간하여 딸 네 쌍둥이를 낳게 만든다. 나는 이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옌렌커는 마치 작가 또는 지난 시절 남성의 특권인 양 별스럽지 않게 강간행위를 저지르게 구도를 짜는 거 같다. 성폭행이나 어울리지 않는 커플들의 동침 등이, 물론 어떨 때는 매력 있는 글루탐산 나트륨(인공 조미료)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과하면 금방 느끼해지고 질린다. 또 사람에 따라 유독 빨리 질리는 독자도 있다. 야한 장면 읽는 걸 즐기는 내 경우도 그런 편이다.


  이 책에는 작가 옌렌커가 실명 등장한다는 건 위에서 말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리좐, 리징, 리서, 먀오쥐안, 훙원신 등이 소설 속의 소설/시나리오(<캄캄한 낮, 환한 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고, 영화제작에 종사하는 감독, 배우, 작가인 구창웨이, 장팡저우, 양웨이웨이, 궈팡팡 등은 옌렌커가 명리名利(명성과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쓴 소설(<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에 동원된 주요 인물로, 이들 모두가 책 속의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살며, 먹고, 사랑하고, 배설하는 생활인이라고 주장한다.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이기 때문에 소설과, 소설 속의 소설/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은 서로 직접 만날 수도 있고, 실제로 저장성에서 대학 교수를 하는 아버지를 둔 베이징대 대학원생 리징과 작가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리좐의 아들 리서는 영화계 사람들과 직접 만나 5성급 샹그릴라 호텔의 일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 일도 벌어진다. 물론 정말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믿지 않는다. 이 작품이 소설, 허구의 외향을 갖추고 있는 한, 설혹 이게 사실일지언정 나는 몽땅 구라라고 단정한다.


  작가는 50세 생일 전날 밤에 잠들지 못하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비록 베이징의 인민대학에 교수로 근무하고 있지만, 교수이자 소설가일 뿐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이름이 알려진 만큼 돈도 많지 않다는 생각에 이른다. 옌의 사색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 세상의 모든 예술은 명리를 위한 양복이자 중산복이라고. 예술의 고향은 명예와 이익, 명리이고, 명리의 고향 역시 예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이 명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예술 뿐이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손흥민이었다면 축구의 고향은 명리이고, 명리의 고향 역시 축구라 할 것이고, 추신수는 야구와 명리가 서로의 고향이라 할 것이다. 할 줄 아는 게 그것 밖에 없는 천재들이니까?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 인구 만 명당 몇이나 있나? 이들은 행복한 자들이다. 지들이 몰라서 그렇지.

  하여튼 옌 선생은 이제 황혼, 까지는 아니고 석양을 지나는 자신의 예술을 보면서, 명리를 위한 마지막 귀여운 사기를 한 건 도모하기에 이른다. 바로 영화. 자신의 작품을 소설로 쓰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시나리오, 감독, 주연을 모두 자기가 하겠다는 거다. 작품을 구상하고 이게 어느 정도 구체화 되면, 빵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우유부터 꿀꺽꿀꺽 마시는 건 동서가 마찬가지라서, 소설로의 쩨쩨한 성공보다 이걸 영화로 만들어 수억, 수십억 위안의 박스 오피스를 기록하게 될 순간을 꿈꾸게 된다. 그리하여 시나리오 <캄캄한 낮, 환한 밤>을 쓰고, 그것을 쓰기 위한 실화 소설도 쓰는데, 이 둘을 합친 것이 바로 <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이다.


  시나리오와 실화소설의 주인공 리좐은 위에서 얘기했듯, 열일곱 살의 나이에 열네 살 먹은 먀오쥐안을 강간하고, 당시 순박한 하난성 사람들은 이런 흉한 일은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하는 짓이어서 당연히 먀오 씨가 강간범인 리좐을 때려 죽일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먀오 씨와 리좐의 아버지 리린 씨는 인품이 훌륭하고 생각도 깊은 사람들이라 더 흉한 일로 끝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 궁리를 하다가, 동네에서 반평생 동안 민간학교 교사를 지낸 훙원신 선생의 중재로 이 둘을 약혼시키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에 리좐은 자기 왼손 식지를 잘라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먀오쥐안이 몸이 약해 결혼을 하면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 일찍 혼인을 시키고 둘 사이에 아들 리서가 태어난다.

  여기에 옌은 중국의 문제점 하나를 보탠다. 대학 입학. 요즘은 한참 덜 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는 여간 공부를 잘 해야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대학이 마찬가지로. 워낙 인구는 많고 대학은 적은데, 중국인들도 교육열이 대단하니 어쩔 수 없다. 말했듯 요즘에 덜 하단다. 리좐의 아들 리서가 베이징 대학 아니면 안 간다고 앙탈을 부리다가 1점 차이로 낙방을 한다. 그리고 평소 몸이 약했던 엄마는 어떤 일이 있어도 리서를 대학에 보내기 바라며 숨을 거둔다. 근데 촌에 돈이 있어야 재수를 시키지. 아버지 리좐은 아내이자 리서의 엄마 유해를 암에 걸린 노총각한테 팔아버린다. 노총각 죽을 때 관에 넣어 죽어서나마 혼자 살지 말라는 용도란다. 아들 리서는 이 때문에 아버지를 극혐하게 되고, 두번째 입시에서는 2점 차이로, 세번째는 3점 차이로 미역국을 먹는 것. 계속되는 재수, 삼수, 장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리좐은 베이징에서 농촌공으로 일하고, 이때 베이징대 컴퓨터 공학 대학원에 재학중인 리징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어떻게 되느냐고? 쉰한 살이지만 육십대처럼 보이는 리좐과 리징. 동성동본이기도 한데 그렇지만 엄연히 여성과 남성이다. 그럼 둘 중 하나다. 서로 연애를 하거나, 그냥 알고 지내거나. 아참, 하나 더 있다. 리좐한테는 리서라는 아들이 있으니 리징이 연하의 남친을 사육할 수도 있겠네. 하여간 내 입에선 결론이 나오지 않을 테니 천생 읽어보셔야 답을 알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옌이 이제 몇 작품이나 더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이제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내 코드에는 맞지 않지만 글 하나는 정말 재미있게 쓰는데, 이이가 정말로 글쓰기를 멈춘다면 나마저도 조금 서운하겠다 싶다. 이것도 정이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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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22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민해방군 출신 작가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검열이 강화
되는 자국 내 상황도 영향을 미치
지 않았을까요.

<풍아송> <사서> 그리고 <인민>
등등의 추억이 스쳐 가네요.

Falstaff 2022-11-22 21:1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에이, 인민해방군 출신이라고 설마... 저도 국방군 출신입뎁쇼. ㅋㅋㅋㅋㅋㅋ
검열은 그럴 듯합니다. 하여튼 독재, 전제는 안 됩니다.

바람돌이 2022-11-22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 누군가가 중국 작가들은 좋겠다. 아무리 황당한걸 쓰도 다 그럴듯한 환경이 있다라고....
저는 옌렌커 작품은 <딩씨마을의 꿈>하나 읽었는데 진짜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좀 더 읽으면 골드문트님과 같은 안목이 저에게도 생길려나요? ^^

Falstaff 2022-11-22 21:47   좋아요 1 | URL
헥, 에그머니, 제가 뭐라고 저 같은 안목...이라 말씀하십니까. 화끈, 쥐구멍 어디 읎나요? 후다닥.....

그레이스 2022-11-28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옌렌커 잔뜩 사놓고 못읽고 있는 책더미!
이책도 얼마전에 사놓고 못읽고 있습니다

Falstaff 2022-11-28 19:11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으셔요. 새털 같이 많은 나날입니다. ^^
 
머릿속의 새들 지만지 희곡선집
팔로마 페드레로 지음, 박지원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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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957년에 태어난 닭띠 여사님 팔로마 페드레로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으나 사회학보다는 연기와 연극 연출, 발성법, 연극 구성 등을 배우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단다. 당연히 학교에서 연극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도 독립극단인 “잡동사니”를 만들어 극작과 주로 길거리 공연과 아동극을 비롯해 다양한 실험적 연기 생활을 한다. 1981년에 독립극단 생활을 정리한 후에도 연기와 극작을 계속하는 한편, 역시 자본주의에선 돈이 최고라서 영화와 TV 드라마에도 출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첫번째 희곡집인 《밤의 유희》와 두번째 희곡집 《머릿속의 새들》이 지만지에서 출간이 되어 있어 이번에 읽게 됐다.

  스페인 극작가로는 안토니오 부예로 바예호가 쓴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문학과지성사 2002)와 1965년생의 젊은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지만지드라마 2019)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어서 웬만큼 기대를 갖고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해 읽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비록 희곡은 분량에 비해 읽는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본문만 438쪽을 하루만에 독파한 후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으며, 쓰기를 마치자마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한파를 뚫고 나는 팔뚝만큼 굵은 붕장어 소금구이에 쐬주 한 잔 하러 눈썹을 휘날리며 어둠 속을 질주해갈 것이다.


  팔로마 페드레로의 극작품은 기본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 그리하여 폭력에 반대하고, 성실한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등장해 스스로의 욕망이 잠들어 있음을 자각하며, 늙은 여인이 어려서 입양을 간 동생의 죽음을 보살피기도 한다. 종속적 삶을 살았던 부모와 달리 자신의 계발에 성공한 중년 여인은 사회적 성공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모성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다 큰 딸에 의하여 반역을 당하기도 하고, 테러로 숨진 남자의 애인과,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을 한 무대에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제일 마지막에 실린 작품은 전작을 요약했다 하는데 가난한 연극인의 애환을 그렸다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겠다.

  당연히 페드레로가 노골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했더라면 극이 조금은 경색되었을 터이지만 극작가는 적절한 선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control라고 해도 이것이 여성주의를 타협적으로 주장하거나 완곡하게 연마하려는 수작trick으로는 비치지 않는다. 다른 페미니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테러리즘은 완전히 남성에 의하여 저질러지며, 얼핏 봐서 모든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인식하게 시각보정을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하철에서 테러가 발생할 경우, 가장 크게 다루어야 할 것은 ①테러리즘이라는 폭력이 왜 발생했으며, 이것이 ②고위층이나 상류 계급이 아니라 민간인들, 이중에서도 출근시간에 붐비고 냄새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하는 시민 대중을 향하는 폭력이어서 더욱 악질적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마땅한다. 그러나 페드레로는 결국 피해자가 여성과 여성의 아이들, 여성의 남편들임에 강조점을 찍고 만다. 독자가 이 피해자들의 면모를 보자면, 세상에서 “여성의 아이들”과 여성의 남편이 아닌 남자가 있기나 한가? 오히려 “여성의 남편”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은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어오는 가장 남편에게 부속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의도하지 않은 채 드러냈을 수도 있다. 하여간 결국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는 말이다. 인류 역사상 수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사람이 딱 한 명 있어서 그를 기독이라고 부르지만, 여성의 몸을 통해 세상 구경을 하지 않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여성주의를 다루는 “서툰 작가”들은 세상의 모든 남자는 폭력적이고 섹스만 파는 악당이며, 여성은 착하고 약한 피해자였다가 이제 여성주의 또는 인간에 새롭게 눈뜬 인물로 그리지만, 페드레로 같은 노련한 작가는 결코 그렇게 쉬운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그걸 맨입에 알려드릴 수 있나, 어딜. 천생 읽어보셔야 할 것이다.


  모두 여섯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제일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두 번째로 실린 <밤의 눈>이란 작품이다. 물론 “인상 깊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취향에 맞았다는 개인적인 공감의 것일 뿐 다른 이에게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참고할 만하지도 않다는 점을 밝혀야 하겠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혹시 스페인, 이중에서도 마드리드엔 눈 먼 이들을 위한 특별한 뭔가가 있나, 했던 것인데, 저 위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과달라하라 태생인데 그냥 마드리드 출신이라고 쳐주라)의 극작가 안토니오 부예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의 무대가 부르주아 만 다닐 수 있는 최고급 맹학교였던 때문이었다. <밤의 눈>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성숙한 여인이 길거리에서 맹인을 위한 복권을 파는 청년과, 호텔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구두 계약을 맺어, 다른 곳도 아니고 호텔방에 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자’ 루시아는 집에 머물고 거의 완전하게 남성/남편/아버지에게 종속되었던 어머니 세대와 달리 스페인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적 성공을 쟁취한 여성계급이다. 가정에서도 경제권을 확보하여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어 피곤한 직장생활을 마치고 귀가한 남편을 향해 당당하게 설거지를 주문할 수 있는 첫 세대. 십 년에 걸친 결혼생활로 자신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어느덧 흐지부지한 생활의 권태로 변질되었으나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권태를 누구에겐가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나중에 자신을 결코 알아보지 못할 눈 먼 ‘남자’ 앙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자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게 쉽나? 자기 속을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탈탈 털어놓는 것이. 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눈 먼 천사(앙헬)은 시각을 잃어버린 대신 후각, 청각, 촉각을 통해 여자가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던 거다. 물론 장님이라고 해서 여성주의 작품에 나오는 남성의 시각인 성욕을 감추지는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도 무대가 호텔의 객실, 침대가 놓여있는 곳의 밤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주인공들 간의 섹스를 감안(또는 기대)했을 것이다. 정말 이 나이든, 성숙한 여자와 앞을 못 보지만 여자보다 다양한 것들을 감각하는 남자는 하게 될까? 그건 안 알려드릴 것이고, 만일 한다고 해도, 남자는 여자에 의해 선택을 당했으며, 여자가 원한다면 다시는 자신을 찾지 못할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하시라. 근데 다 읽고 나니 나는, 특히 여자, 루시아의 모습이 참 쓸쓸했다. 루시아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나이 들면 다 루시아 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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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8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덕분에 항상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알아가는 기쁨!!! ^^ 주말에도 쐬주 한잔 하시고 또 새로운 작가를 알려주세요. ^^

Falstaff 2022-11-19 11:2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느새 주말이군요! 지금 도서관에 나와 있습니다.
유진 오닐의 작품 <지평선 너머> 독후감 쓰려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첫 페이퍼가 아닐까 싶네요.
 
프레스코
서보 머그더 지음, 정방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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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서보 머그더를 소개한 것은 1992년에 출판사 “미래문학”이 출간한 <사슴>과 <어느 여배우의 고백>이 최초였다(고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미래문학이 서보의 책 두 권과 이문열의 <미로의 날들> 이렇게 딱 세 권을 펴내고 곧바로 93년에 문을 닫는다. 이후 세월이 흘러 세번째 밀레니엄을 거치고 난 다음, 독자들이 서보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1987년에 발표했지만 우리나라엔 2019년 말에 번역 소개된 <도어>가 아닌가 싶다. 매혹적인 문장으로 여태 보도 듣도 못한 강렬한 캐릭터의 여주인공 세레다시 에메렌츠, 비록 이이의 이름은 잊었을지언정 에메렌츠가 던진 가볍지 않은 충격을 기억할 듯하다. 사실 <도어>가 책방에 깔리기 6년 전에 이미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이하 “지만지”)에서 서보의 소설 데뷔작인 <프레스코>를 번역 출판해 판매하고 있었다. 다만 2013년 기준으로 2만 8천원이라는 엽기적인 가격이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가의 책을 섣불리 선택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지. 2020년 봄에 <도어>를 읽고 쓴 독후감에서 일찍이 “은퇴한 후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로 작정을” 했다고 말한 바와 같이, 드디어 때가 되어, 작정한 바와 같이 도서관에 희망구입도서로 신청을 해 새로 사준 책을 소위 “첫 빠따”로 읽었다. 개정판이 2022년에 새롭게 나와 신간인 것처럼 보여 가능했다. 그리고 오늘 <프레스코>를 마저 읽고, 출판사 프시케의 숲에서 올해 나온 서보의 다른 책 <아비가일>을 또다시 희망구입도서로 서슴없이 신청했다.


  터르버 교구의 은퇴한 목사인 마테 이슈트반의 부인 데치 에디트 여사가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40여년 전이던 19세 시절에 치르크베티카의 벌러톤 호숫가 마을에서 과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말없는 아가씨였는데, 지금이나 그때나 전형적인 칼뱅주의 목사 마테 이슈트반 박사가 자신의 학업에 방해하지 않는 과묵한 성격을 지닌 에디트 양에게 청혼해 결혼을 했다. 결혼식 날 사랑하지도 않는 열한 살이 더 많은 남편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눈물바람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 데치 부인한테 귀싸대기를 맞은 기억이 있는, 좀 유별난 성격이기도 했다. 화가 나면 얼굴이 눈 같이 창백해지면서 졸도를 하고, 강아지가 장난 삼아 치마를 물어뜯으면 칼로 강아지를 찌르기를 서슴지 않기도 했다. 에디트는 결혼을 해 첫딸 연커를 낳고 연커가 열한 살이 되던 해 무려 삼일 동안 진통을 한 끝에 둘째이자 막내 딸 어누슈커를 낳았다. 이때 남편 마테 이슈트반 박사에게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는 바, 첫째가 주교가 되는 일이었고, 둘째가 아들을 하나 얻는 일이라서 벌써 이슈트반 2세라고 이름까지 지어 놓았었다. 혹시 몰라서 딸을 낳으면 이름을 ‘주전너(영어 표현 ‘수산나’)’로 지으라 지시하고 취리히로 출장을 갔어도. 이런 상태에서 지독한 진통 사흘만에 딸을 낳으니, 엄마 에디트는, 의사가 딸이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지 한 번 안아 보라고 건네자마자 열 손톱을 사용해 아기 얼굴을 할퀴려 들었다. 그러면서 주전너? 놀고 있네. ‘코린나’로 해. 부목사 갈 언털에게 이렇게 지시해서 아이는 코린나로 출생신고를 마친다.

  마테 목사가 출장길에서 돌아왔다. 자신이 시킨대로 하지 않고 코린나라고 이름을 지은 것에 꼭지까지 열을 받은 목사는 한 순간에 집구석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는데, 이때 현명한 하인 요오 미하이가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갓난 코린나를 아버지에게 건네 주면서 “여기에 작은 어누슈커가 있습니다.” 라고 했고, 이 대목에서 역자의 각주가 필요했지만 각주는 달리지 않았으며, 그래서 독자는 영문을 모르는 채, 식구 모두가 웃음을 참을 수 없어서 목사의 진노가 멈추었다고 한다. 이렇게 코린나는 집안 식구들 사이에 작품이 끝나는 순간까지 ‘어누슈커’라고 불리게 된다. 왜 엄마는 코린나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작품의 뒤쪽에 나온다. 혹시 당신이 정말로 이 책을 읽을 지 모르니 그건 비밀로 해두자.

  어머니 에디트는 어누슈커를 낳자마자 그동안 발현하지 않은 정신질환이 도져 거의 곧바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래 어누슈커는 열한 살 먹은 언니 연커가 이웃에게 얻어온 젖을 젖병에 따듯한 물에 섞어 직접 먹이면서 키운다. 어누슈커는 자라면서 뭐든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악착같이 투쟁하다가 엄격한 칼뱅주의 원리주의자인 아버지에게 숱하게 모진 매를 얻어 터진다. 그래도 조금도 굽히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기어이 해내는데 가장 중요한 건, 유대인 이웃 주케르 씨의 집에 무람없이 놀러가 그로부터 그림을 배은 일이다. 그림에 상당한 재능을 가진 어누슈커.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리라. 어누슈커는 성인이 되어 거의 정상급 화가로 인정을 받지만 공산주의 헝가리 정부가 원하는 작품이 아니라서 작품을 완성하기만 하고 판매를 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공산주의 정부로부터 창작 활동 금지 명령을 받은 서보 머그더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어머니는 병원과 집을 몇 번 왕복하더니 쉰 살이 되었을 때, 저녁 식탁에 발가벗고 나타나 부엌을 활보한 이후 마지막으로 병원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나머지 평생을 보내게 된다. 아버지 마테 목사는 자신 대신에 입양한 조카이자 아들이며 현직 교사인 마테 아르파드가 두 주에 한 번씩 어머니에게 들러 돌보는 줄 알고 있지만, 병원의 의사는 마테 집안만큼 환자를 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가족은 본 적이 없다고 혀를 차곤 했다. 이런 데치 에디트 여사가 죽은 것.

  그리하여 가을의 어느 날, 어누슈커는 아침 6시 45분에 터르버 시에서 열차를 내린다.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다페스트에서 온 것. 이 시점부터 오후 8시 20분, 20분을 연착한 부다페스트 행 여덟 시 열차에 어누슈커가 탑승할 때까지의 13시간 35분 동안이 이 작품의 시간적 공간이다. 9년 전 자신을 키운 언니 연커의 남편, 현 터르버 교구의 목사이자 시의회 의원인 쿤 라슬로가 잠자리에 든 한밤중에 2미터 거구의 하인 언주, 자신에게 어누슈커라는 애칭을 붙여준 미하이를 ‘언주’라고 부르기 시작해 모든 사람들도 언주라고 호칭했던 언주가, 자기가 가진 돈 전부를 담아 건넨 지갑을 들고 감행한 가출 이후 처음으로 터르버에 발을 딛는 순간이다. 13시간 35분을 465 페이지에 담았다고 해서 지긋지긋한 세밀 묘사가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작품은 어누슈커를 비롯해 아버지 마테 이슈트반, 형부 쿤 라슬로, 언니 마테 연커, 의붓 동생 마테 아르파드, 조카 쿤 주전너, 일흔세 살 먹은 늙은 언주, 전에 하녀였지만 신분해방으로 가족 비슷한 위치로 신분 상승한 늙은 커티, 외할머니(에디트의 어머니) 데치 부인, 고모 프런치스코 부인 등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같은 현상과 사실을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으며, 그게 또 재미있다.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목사 아버지 마테 이슈트반. 이이는 자신의 집을 엄숙한 기독교의 전당으로 만드는데 조금의 양보도 없다. 음악과 미술은 삿된 행위라고 보고 금지하며, 신학과 철학을 제외한 모든 문학 서적은 집 문턱을 넘어 들어올 수 없으며, 서양에서는 흔히 하는 자식이나 자매끼리의 애칭 사용도 엄격하게 금지한다. 가족 가운데 애칭은 주인공 어누슈커 한 명만 허용하는데 이건 아버지 이슈트반 자신이 아내가 지은 이름 코린나를 따르기 싫어서 였을 확률이 높다. 신학적으로도 십자가만 숭상하며, 고난 받는 예수의 형상이 들어 있는 십자고상은 부정한다. 매사 엄숙주의인 집안의 독재자. 혹시 서보 머그더는 마테 이슈트반이 이끄는 터르버 시의 이 가정을 작은 공산주의 치하의 헝가리로 묘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술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상상력이 보장받을 때 꽃을 피울 수 있어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어누슈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엄숙해도 너무 엄숙한 집을 박차야 했던 거였다.

  이후 9년 동안 어누슈커는 부다페스트에서 이제 가장이 된 형부 쿤 라슬로의 편지를 받고는 개봉도 하지 않는다. 모든 인연을 끊었으나 단 한 명과 교신은 이어간다. 절대 자신에게 S.O.S.를 타전하지 않는 언주. 터르버 시에게 거의 유일하게 완벽한 자유인의 삶을 누리는 대신 가난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스스로도 구태여 가난을 집어던질 생각도 안 하며, 편한 여생을 위해 부다페스트로의 이주를 거부하는, 일종의 현인이랄 수 있는 노인. 반면에 같은 노인인 마테 이슈트반은? 그는 어누슈커가 일방적으로 자신으로부터 일탈한 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어누슈커 스스로 돌아와 가출에 대하여 참회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아버지이자 목사의 자격으로 다시 딸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절대 자신의 발로 집 문턱을 넘게 할 의향은 없다. 이런 이슈트반의 고집은 가족 모두가 알고 있으며, 친척들도, 심지어 많은 주민들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도착한 어누슈커.

  어누슈커는 오후 세 시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눈길도 받지 못했지만, 부다페스트 행 여덟 시 열차가 출발하기 얼마 전, 기어이 옛집에 발을 들여, 당돌한 어린 어누슈커가 가끔 그렇게 했듯이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안녕, 아버지.” 어누슈커에게 아버지란 무엇일까? 십대 시절의 어누슈커는 혹시, 자주는 아니었을지언정 가끔, 아주 가끔, 어머니 말고 아버지가 좀 빨리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지는 않았을까?

  그래도 이집 식구들, 아니, 모두들 자기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뭐 인생이 다 그렇지.


  서보 머그더의 문장으로 만드는 한 인생 이야기. 또는 여러 인생이 보는 한 세상 이야기.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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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1-15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만지 나빠욧! 무려 2013년도에 2만 8천원이라니.
그때도 책값 만오육 천원만해도 비싸다고 하던 시절이었는데.
출판사가 재정이 좋은 걸까요?
우리나라가 비싼 거 좋아해 0이 하나 더 붙느냐 마느냐에 떠라 명운이 갈린다고는 하지만
책은 안 그럴텐데. 돈 있고, 교양있는 사람만 읽어라 뭐 이런 뜻일까요?
저는 문트 님 이리말씀 하시니 아비가일과 도어는 기웃거려 보겠습니다만 나머지 책은
어림없습니다. ㅋㅋ

Falstaff 2022-11-15 15:56   좋아요 2 | URL
지만지가 확실히 비쌉니다. 근데 이게 참. 이 사람들이 만든 책 중에 숨어있는 좋은 책들이 무척 많다는 겁니다. 광고를 안 해서 그게 나와 있는지도 모르는 작품, 우리나라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좋은 작가들, 그래서 더 얄밉기도 하고, 그나마 고맙기도 하고, 참 거.... 맞습니다, 나쁜 출판삽니다.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11-15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만지는 책값은 비싸지만 이런 작가들을 뚝심있게 소개하는거 쉽지 않은 선택인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훌륭한 출판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이런 책을 이렇게 소개해주는 골드문트님도 훌륭한 독서가이고요. ^^

Falstaff 2022-11-16 08: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지만지, 훌륭한 회사입니다. 근데 책값을 좀만 더 내리면 매출도 올라가고 인지도도 높아지고 그럴 텐데 아쉽습니다.
아닙니다. 전 훌륭한 독자 아닙니다. 걍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소설책 읽는 거 좋아하는 일반....보다 약간 많이 읽는 독자입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2-11-17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싼 값에 비해 책 상태가 너무 빈약한 거 같아요. 근데 훌륭한 작품들 찾아내서 국내 번역 출간은 참 좋네요.
도어의 에메렌츠는 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근데 그 전에 이미 이 책이 번역되어 나왔었다니 놀랍네요. 가격과 함께요~
이 책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Falstaff 2022-11-18 05:30   좋아요 0 | URL
참 안타까운 출판사지요. 저도 지만지 책은 몇 권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도서관을 통해 파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ㅎ 가격은 언제나 중요한 요소입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