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 전6권 로마제국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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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제국 쇠망사> 두번째 권은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한 콘스탄티누스부터 동로마제국의 첫번째 황제 발렌스의 죽음까지 다루었다.

1권보다 훨씬 재미있다. 물론 이건 내 경우에 그렇다는 것. 1권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이자 역사상 유일하게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숫사자의 탈을 쓰고 입장해 직접 검투사 대결을 벌여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황제 콤모두스부터 시작해 콘스탄티누스의 등극까지 였는데, 콤모두스 이전 황제 가문의 내력은 조금 알고 있던 터라 무릎을 칠만큼 재미지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것에 관한 (내 입장에선) 지독하게 지루한 설명이 무려 두 장章에 걸쳐 설명하고 있어서 짜증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2권이라고 해도 시작하자마자 동로마제국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콘스탄티누스 황제, 오직 기독교를 공인했기 때문에 “대제great emperor”라고 불리는 이이가 콘스탄티노플을 창건하고 그곳에서 로마와 유사하지만 똑같지는 않는 정치제제를 비롯한 사회적 시스템을 설명한 후 이어서 황제의 품성과 그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기 후에 치루었던 전투/전쟁, 세 아들에 의한 로마의 분할 통치와 내전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역사책 읽으면서 무슨 흥미진진이냐고? 모르시는 말씀. 가장 기본적인 역사의 시스템을 이루는 건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 이 가운데 특히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다. 하지만 나 같이 역사에 관심이 있는 보통의 독자가 제일 곤혹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이 시스템 분석 역사다. 우리나라를 예를 들자면, 전혀 이야기가 될 것 같지 않은 이슈, 고려시대 토지 제도가 조선시대 제도에 영향을 준 방식 등을 논하는 김정배 선생의 책을 나는 읽어낼 자신이 없다. 반면에 누가 누굴 죽이고 왕이 됐는데, 새로 왕이 된 임금이 이를 축하하기 위한 만찬 자리에서 조카한테 칼을 맞고, 하는 식의 위진남북조 시대 사마 씨 역사 같은 건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친척끼리 너무 죽여대서 나중엔 좀 그만 죽였으면 하는 심정까지 든다. 진짜다. 시간 나면 한 번 찾아 읽어보시라.

  그런데 에드워드 기번은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대제라 칭하는 콘스탄티누스의 투철한 군인정신이나 새로운 도시를 개척하는 프론티어의 모습에 방점을 두는가 싶었다가, 성격적 결함이나 의심투성이,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 의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겠지만 하여튼 이런 그늘진 모습까지 서슴없이 서술을 하는데, 자신의 발언에 꼬박꼬박 증거를 들이대니, 만일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자손이 아직 숨을 쉬고 있다면 기함하다가 넘어가지 않을 도리도 없겠다 싶다. 콘스탄티누스는 미천한 출신의 정실부인 미네르비나와의 사이에 장남 크리스푸스를 둔다. 일찍 홀아비가 된 그는 선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딸인 파우스타와 재혼해 세 딸과, 콘스탄티누스 2세, 콘스탄티우스, 콘스탄스, 3형제를 더 둔다. 그리고 정치적 야심이 1도 없는 두 명의 형들에게 갈루스-율리아누스 형제, 달마티우스-한니발리아누스가 있었고, 여동생들도 결혼해 수십명의 친조카, 외조카를 두었다. 그러나 30년도 안 되는 세월이 흐르면, 이 가운데 그때까지 숨을 쉬고 있던 건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와 조카 율리아누스 딱 두 명 뿐이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재능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맏아들 크리스푸스는 불과 열일곱의 나이에 부황제로 임명해 전쟁터에 보냈더니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작전과 중원을 휩쓰는 초절정의 검술로 연이어 승전보를 전한다. 소위 “대제”라고 하는 콘스탄티누스는 맏아들의 넘치는 인기에 졸지에 좌불안석, 자고로 세상에 태양은 오직 하나만 있어야 하는지라, 엣다 모르겠다, 대궐로 불러들여 좋은 말을 하더니 단칼에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알아두시라. 친아들이었다, 친아들.

  이왕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나온 김에 기독교 공인에 관한 이야기를 읽은 소감도 하나 꽝.

  로마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다신교와 그리스로부터 물려받은 재미나고 재미난 신화, 전설, 민담, 야사野史, 기타등등. 안 그런가? 이게 다 백색 대리석으로 기막히게 조각한 숱한 신들의 경연에서 비롯했다. 이 신들은 신들의 아버지인 유피테르부터 나름대로 다, 개과dog family 동물과 비슷하게, 서열을 갖고 있어 그저 서열에만 복종하면 신도 그렇고 인간들도 그렇고 먹고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가끔 까불어대는 족속이 있어 이런 작자들이 신화를 만들어냈을 뿐. 이렇게 숱한 신이 사이좋게 잘 살고 있다가 기독교의 신, 야훼가 들어왔다. 드디어 야훼가 들어와버렸던 거였다. 사랑의 신이자 질투의 신. 종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나 말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제일 중한 첫번째 엄명을 내린 다음, 계명을 받은 모세가 자신을 따라온 유대인들한테 가보니 잔뜩 취해서 황금 송아지한테 절을 하고 있는 걸 보자마자 질투의 불칼을 내리 꽂았던 신이, 로마 땅에 들어와 온갖 이단의 신들을 목격했으니 이제 야훼는 새롭게 할 일이 무척 많이 생겼을 수밖에. 다 때려잡아야 했을 터이니 말이지. 구약을 읽어 보시라. 야훼가 가장 참지 못하는 것이 자기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는 거였다. 고대 유대인들은 거의 모든 종교가 그랬듯이 자살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구약 시대에 만일 진정으로 스스로 죽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면 야훼가 보는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는 시늉만 하면 됐다. 곧바로 불칼을 맞아 즉사, 적어도 고통을 모르고 단칼에 갈 수 있었으니.

  못 말리는 질투를 로마의 땅 위에서도 시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로마는 기록의 시대. 물론 전에도 기록은 했지만 구전에 의해 전해지다가 후세에 의해 기록을 한 거하고, 직접 본 사람이 기록한 거하고 같을 수가 없어서 이번엔 점잖은 체면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야훼의 대리인들을 통해 질투를 구현하기로 결정한다. 누구? 주교와 대주교. 아직 교황이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주교와 대주교는 처음엔 숱한 기독교 교파끼리 지들이 더 잘났다고 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박질을 한다. 아직 이교의 신들하고 맞짱을 뜨기엔 유피테르의 힘이 덜 빠지기도 했다.

  용감무쌍하고 유능한 군인이자 전술가이며 탁월한 학자이기도 한 율리아누스가 콘스탄티누스 다음, 다음 황제로 있을 때, 이이가 젊었을 때 그리스에 유학해 철학을 깊게 공부한 적이 있어 그리스의 종교에도 믿음이 깊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 이후 로마 황제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비호받고, 돈도 받고, 땅도 받고, 건물도 받고, 귀족과 부호들한테 기독교 교회에 기부도 많이 하라고 협박도 해주는 바람에 기세등등하고 콧대도 높았던 야훼에 반대해 다시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경배하기에 이른다. 물론 당시에 벌써 기독교의 힘도 막강해져 그들을 박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유피테르 집안 사람들이나 애인들을 경배해도 저 위대한 성군 솔로몬이 했듯이 신전에 황소 2만 2천마리, 양 12만 마리를 소신 희생해 공중에 미세먼지를 분사할 수는 없었다. (이 책에는 황소 2만 2천마리는 내 의견과 같은데, 양은 120 마리라고 써 있다. 확인하기 위해 다시 구약을 꺼내긴 싫지만 내 말이 맞을 거다.)

  기독교 말고, 당시 기독교 지도자들인 주교와 대주교의 버릇을 잘못 들인 사람은 콘스탄티누스 황제 본인이다. 본인은 죽음의 침상 위에서야 겨우 세례를 받은 주제에 거의 모든 일에서 기독교를 거의 최우선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 그리하여 로마 제국으로부터 정식 종교로 인정받고 불과 3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정치적으로는 아직 아니지만 종교적으로는 황제마저 주교와 대주교의 아들의 위치에 앉히기에 이른다. 왜 그랬느냐 하면, 콘스탄티누스가 아니더라도 무릇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 얼마나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겠는가. 가뜩이나 바빠 죽겠는데 종교에서도 집전의 자리에 있게 되면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교, 대주교들은 자신들의 위세를 확장하는데 결코 게으름이 없었다. 당연하지. 유독 기독교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정치력 지수 political index라는 것이 있다면 대통령, 수상, 국회의원을 누르고 챔피언의 자리에 앉을 사람은 종교 지도자라고 하니까. 이것만 해도 그런데 황제가 직접 시간 날 때마다 기독교를 찬양하고 직접 미사에도 참가하고 그러니까, 수도 콘스탄티노플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로마에서도 돈 좀 있고 원로원 의원이나 의원이 될 가능성이 있는 귀족들이라고 별 수 있나? 다들 믿거나 적어도 믿는 시늉은 할 수밖에. 그이들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독자들이 이해하고 넘어가자. 용감한 철학자 황제 율리아누스가 다시 다신교를 주장하자 얼른 기독교를 버리고 개종하더니, 사후 요비아누스 황제가 등극하니까 또다시 개종하는 것처럼. 인생 뭐 있냐, 다 그게 그거지. 역사책 읽으면 제일 많이 느끼는 게 그거다. 인생 뭐 있어? 기독교를 안 좋아하느냐고? 아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나한테 믿으란 얘기만 안 하면 된다.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읽으며 진짜 좋았다. 종교 이야기 빼고. 완전하지 않은 용감한 천재. 그는 젊은 나이에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에서 다 이긴 싸움을 하다가 창을 맞아 죽는다. 황제가, 말 위에서.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될 뻔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보병 사병 출신이다. 쫄딱 망한 귀족이라 장교도 아니었다. 거기서 황제의 가문이 시작했으니 그의 후손들이 차지한 황제 자리, 여기에 등극하려면 칼부림에 능숙해야 했다. 군인 황제의 전통이 내려오며, 직접 칼을 들고 적과 싸우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겼는데, 세상에나. 다 이긴 전쟁을, 마치 신과 같은 영웅적 철학자 황제가 급사하자마자 단박에 전세 역전, 로마군은 전투에도 지고 철수하며 판판히 깨지다가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어야 했으니, 황제의 손실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그토록 유능한 황제 스스로가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 돼? 말도 안 되니까 더욱 재미있다.

  이 책은 율리아누스 황제 이후로도 조금 더 진행해, 아시아 북동부에서 발현한 훈족에 밀려 로마를 할 수 없이 침공했던 고트족과의 싸움으로 본격적으로 로마제국이 쇠망해지기 시작할 때까지의 역사가 쓰여 있다. 흥미진진하다. 웬만한 소설책보다 훨씬 재미있다. 글쎄 이 맛에 역사책 읽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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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6 1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골드문트님 리뷰가 더 재밌는건 아닐까요? ^^ 책보다 더 재밋다고 말하고 싶은데 책을 안 읽어서요. ㅠ.ㅠ

Falstaff 2022-12-06 19:32   좋아요 0 | URL
이 책 새로 가격 인하해서 다시 팔기 시작했는데도 여전히 비쌉니다. 도서관 이용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물론 안 읽으셔도 만수무강에 전혀 지장 없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으쓱으쓱..... ^^

꼬마요정 2022-12-06 21:50   좋아요 1 | URL
책 안 읽어도 제 생각엔 골드문트님 글이 훠얼씬 재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권짜리 읽었는데요, 골드문트님 글이 더 재미납니다!!^^ 6권짜리라고 더 재밌진 않겠죠? ㅎㅎ

Falstaff 2022-12-07 06:00   좋아요 1 | URL
윽, 너무 띄워 주시면 ㅎㅎㅎㅎ 좋지요!

yamoo 2022-12-08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제국쇠망사...전 까지에서 나온 한 권짜리 축약본으로 봤는데, 걸루 봐도 재밋더라구요. 기번의 저 6권을 다 읽으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거 같아 전 축약본으로..ㅎㅎ

Falstaff 2022-12-08 19:30   좋아요 0 | URL
옙. 이 책을 다 읽는데 내년 10월까지로 잡았습니다. 그러니까 두 달에 한 권 꼴로. ㅎㅎㅎ 게으른 사람은 어쩔 수 없다니까요.

yamoo 2022-12-09 16:56   좋아요 0 | URL
대단하십니다! 폴스타프 님은 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 뿐만 아니라 두꺼운 책도 꺼리낌 없이 완전히 읽으실거 같아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신 이력이 정말 대단하나는 말밖에..^^

Falstaff 2022-12-09 19:05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시간은 김창석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오직 그냥 ˝읽었다˝ 하는 거 하나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만.
텍스트가 뭐가 됐든지간에 일단 저질러야 이룰 수 있잖아요. 아직 못 읽고 있는 (거의 유일한) 하나가 <피네간의 경야>인데 이건 문화충돌인지 뭔지 하여튼 읽다가 재수 없으면 그냥 그만 읽으려고 합니다. ㅎㅎㅎㅎ
 
우리 읍내 오세곤 희곡번역 시리즈 1
손톤 와일더 지음, 오세곤 옮김 / 예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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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턴 와일더는 극작가 유진 오닐의 네 번에 이어 퓰리처 상을 세 번씩이나 받는다. 전에 소개한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로 처음 상을 받고, 두 번째로는 희곡 <우리 읍내>, 세 번째 역시 희곡 <위기일발>로 받으니 사실 손턴 와일더는 소설가로 출발했으되 극작가로 더 큰 명성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퓰리처 상 이후 받은 전미 도서상은 또 소설 <제8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작가임에도, 지금 읽어보면,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른 (극)작가들과 비교해보면 유난히 낡은 작품을 읽는 기분이 든다. 올해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작가들 가운데 돋보이는 한 명인 폴란드 사람 스타니슬라브 이그나치 비트키예비치는 와일더보다 열두 살이 더 많은 띠동갑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품의 신선함 또는 전위성이 펄펄 뛰고 있으며 글 속의 비의를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알고 보면 지금은 전 지구가 거의 동일한 문화권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쳐도, 20세기 중반까지 서양 중심의 문화적 시각으로 보면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 구대륙이 아닌 신대륙, 이 가운데서도 미국이었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혁신적인 사조는 아니더라도 같은 미국 극작가유진 오닐이나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 등의 희곡 작품은 여전히 독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반면 와일더는 몇 십년 만에 (우리나라에 국한해서는)별로 읽히지 않는 보통의 (극)작가가 되고 말았다. 그럼 결론은, 손턴 와일더가 당대엔 잘 읽히는 보편적인 스타 (극)작가였지만 와일더 자신의 한계 때문에 이젠 낡은 느낌이 난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난 달에 쓴 독후감에서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를, 책을 출판한 샘터사와 지극히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한 적 있다. 같은 의미로 <우리 읍내> 역시 희곡전문 출판사인 “예니”에서 찍었지만, 잡지 『샘터』에 기가 막히게 어울릴 극작이라고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샘터』에 어울린다.” 이것만 써도 눈치 빠른 독자들은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읽었는지 감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3막 희곡. 1막은 1901년, 2막은 열네 살이었던 여주인공 에밀리 웹이 열일곱 살이 되어 옆집에 사는 ‘조오지’ 깁스와 결혼하는 1904년. 이 때 조지 깁스의 나이도 에밀리와 같거나 그 근동쯤이다. 3막은 2막에서 9년 후인 1913년. 에밀리는 깁스의 두 번째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고 이이의 장사를 지내는 날로, 에밀리는 유령의 형태로 등장한다. 장소는 모두 뉴햄프셔 주의 그로버즈 코너즈 (가상) 지역이며, 무대 감독이 공연을 시작하자마자 직접 무대에 등장해 나레이터로 활약하고 심지어 에밀리와 조지의 결혼식 때는 주례도 보고, 조지의 엄마 깁스 부인이 2막과 3막 사이에 결혼한 딸을 보러 뉴욕에 갔다가 비를 맞아 열병에 걸려 그곳에서 죽는다는 얘기, 읍내의 신문배달부 조오 크로웰이 읍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랍게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들어가 학과 수석으로 졸업해 보스턴 신문에서도 대서특필 할 정도였는데 막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려는 찰나에 (이 작품이 끝난 뒤) 전쟁이 터져 프랑스에서 전사하게 된다는 것까지 늘어 놓는다.

  여기까지 얼핏 읽으셨으면, 그러니까 이 극작품은 어린 에밀리와 조지가 1막, 이들이 결혼하는 날의 풍경이 2막, 에밀리가 해산 중에 죽어 장사 지내는 날이 3막이라고 생각하실 터인데, 날짜 구분으로 하면 맞다. 물론 여러분은 이 책을 읽지 않으실 것이니까 좀 더 상세하게 얘기해보겠다.

  손턴 와일더는 희곡의 제목을 <우리 읍내: Our Town>이라고 했으니 이 커플만 등장해서는 규모가 작다. 커플은 희곡/연극의 재미 또는 스토리의 연결을 위한 장치 정도로만 기능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세대의 흐름. 인간살이의 연속성. 보편적인 삶의 위대함 같은 사소한 아름다움 아니었을까 싶다. 이 동네의 유지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읍의 이름을 유래하는 그로버즈를 비롯해서, 1950~60년대 미국드라마 <보난자 Bonanza>의 주인공인 카트라이트, 깁스, 허시 가문 등인데, 이 가운데 유일하게 등장하는 집안이 1막에 열네 살이었다가 3막에선 홀아비가 되는 조지 깁스의 집으로, 그래봤자 아버지 깁스 씨는 1막이 올라가자마자 밤새 폴란드 여인네의 쌍둥이 출산을 돌보고 새벽에 집에 돌아오는 왕진 의사에 불과하다. 나머지 부자 집안은 3막의 무대인 공동묘지에 묘비로만 나오거나 아예 꼬리도 내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와일더는 시골 마을인 그로버즈 읍의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이어서 이들이 성장, 결혼, 출산, 사망이라는 사이클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보여주고 싶었던 거다.

  어떠셔? 진짜 샘터스럽지?

  역자 오세곤은 연세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마쳤다. 오박사가 대학시절 유명한 ‘연세극회’에서 활동하면서 장 주네, 이오네스코, 오태석 등의 작품을 “연출”한 바 있는데, 이 당시 연세극회의 지도교수가 고 오화섭 선생이었다고 한다. 와일더의 <Our Town>을 우리말로 <우리 읍내>라고 붙인 사람이 오교수라고 하고, 학창 시절에 우리나라의 위대한 연극배우 가운데 한 명인 오현경과 박재서의 공동연출로 무대에 올린 <우리 읍내>에 참가한 경험도 있다고 하니,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여간한 것이 아닐 듯도 하다. 오세곤이 74학번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학생운동사에 모든 학교의 74학번이 참 지랄맞고 극성맞았다. 대학에 입학해보니 74학번이 얼마나 까마득하게 보이든지. 요즘엔 그냥 친구라고 부를까 싶기도 하지만. 하여간 그랬는데 70년대에는 와일더의 <우리 읍내>를 기성 극단이 공연을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지금은 대학 극단에서 하면 적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내 ‘교만한’ 느낌일 수도 있으니 믿지는 마시라. 어쨌든 이렇게 역자 오세곤이 <우리 읍내>와 <우리 읍내>를 처음으로 번역한 오화섭의 관계가 이러했고, 이제 오세곤이 자신의 이름을 딴 “오세곤 희곡 번역 시리즈”를 내려 해 자신이 애정해 마지 않는 <우리 읍내>를 시리즈의 1번 자리에 두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런 내역이 책의 앞쪽에 실린 “옮긴이의 글”에 재미있게 쓰여 있어서 굳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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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2-03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4학번이 그렇게 지랄 맞은가요? ㅎㅎ
캬~ 보난자. 그렇군요. 전 그때 넘 어려서 그거 하는 시간에 잤는데. 그건 울아버지께서 좋아하셨습니다.
오현경 씨는 탈랜트 그분이 맞죠? 어찌지내시나 모르겠습니다.

Falstaff 2022-12-03 11:34   좋아요 1 | URL
74학번들, 아주 쌈꾼들이예요. 정말 쌈도 잘하고, 술도 잘 퍼마시고 ㅋㅋㅋㅋ
<보난자>는 아버지 벤, 아들 존, 호스, 찰스 카트라이트 네 부자의 서부 정착기인데 아마 지금 다시 보라고 하면 백인주의와 원주민 비하 때문에 못 볼 거 같아요.
오현경 씨의 본령은 연극입지요. 이 양반이 배우자 윤소정 씨 먼저 보내 홀아비 된 것까지 아는데 아직도 활동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TV에 나와 희극 이미지가 강해져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 대표적 연극인일 겁니다.

잠자냥 2022-12-03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읍내’라는 단어랑 딱 어울리는 작품이었어요…. 올드하다 올드해 ㅠㅠ

Falstaff 2022-12-03 11: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우연히 도서관 서가에 있는 걸 보고, 으아, 아는 이름이다, 싶어서 빌려 읽었습니다. 짧아서 다행이었습지요. ㅋㅋ
 
아비가일
서보 머그더 지음, 진경애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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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서보 머그더의 문장은 끝장이다. 문장도 문장이지만 장면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독자를 홈빡 빠뜨려버리는 눈물의 연못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아이고, 환장이다, 환장. 세 번 울었다. 사람을 울리고 지랄이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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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2-02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거 만두 님이 전에 청소년 소설 같다고 해서 이거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솔깃솔깃...

Falstaff 2022-12-02 14:50   좋아요 1 | URL
저도 독후감엔 청소년 소설....이라고 콕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아도, 청소년 시절에 읽으면 참 좋았겠다, 라고는 할 예정입니다. 도서관 가셔요!

유부만두 2022-12-02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우셨어요?? 소년 골드문트의 신선한 발견이에요!!
확실히 우리말 번역가들의 솜씨로 서보 머그더의 문장이 빛나는 것일지도 몰라요. 불어론 그냥 그랬거등요. … 그나저나 골드문트님의 감동 포인트는 어디였을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Falstaff 2022-12-02 18:1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요즘 유난히 에스트로젠이 풀풀 분비되는 거 같아서 말입죠.
감동 포인트는요, 당연히 안 알려드립니다. ㅋㅋㅋㅋ

scott 2022-12-14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영어판으로 읽었는데 눈물은 단 한방울도 ㅎㅎ

Falstaff 2022-12-14 18: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제가 어느새 테스토스테론 보다 에스트로젠을 더 분비하는 세월을 맞았나 봅니다. 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12-14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어>의 작가군요^^
성장소설이라고 하니 눈물 날수도 있겠네요.

Falstaff 2022-12-14 19:1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제가 좀 여린 남자라서 말입죠.

stella.K 2022-12-15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이 강렬하네요. 읽을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입니다. ㅎㅎ

Falstaff 2022-12-15 13:1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즐기기 딱 좋은 책입니다.

coolcat329 2022-12-19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스콧님이 골드문트님 세 번 울었다고. 저도 책 읽고 울고 싶어요.
이 책은 꼭 읽으렵니다.

scott 2022-12-19 18:49   좋아요 1 | URL
헝가리 문학
작품들 깊이가 있습니다 산도르 마라이 머그더 모두 세계적인 문호들 ^^
 
지평선 너머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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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문학상과 무려 네 번의 퓰리처 상을 받은 유진 오닐은, 겨우 <밤으로의 긴 여로>와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독자에게 큰 한 방의 충격파를 주는 극작가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독자도 나처럼 오닐의 명성만 기억하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밤으로의 긴 여로>를 골라 별 생각 없이 읽어나가다 충격의 여파로 넋을 잃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리하여 <밤으로의 긴 여로>를 읽고 쓴 독후감으로 “피를 토해 쓴 백조의 노래”라는 단 한 구절로 마무리해야 했다. 어떻게 더 보탤 말이 없어서. 이후 4년이 흘러 다시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을 읽었는데, 이 작품은 에드워드 토마스가 오페라로 작곡한 것을 지난 세기말부터 듣고 있었던 터라 대본을 통해 스토리를 잘 알고 있어서 ‘백조의 노래’를 들은 여파에도 불구하고 선택에 시간이 걸렸었다. 세월은 자신의 속에 망각을 품고 있다. 나 역시 세월 속의 망각에 묻혀 오닐의 다른 작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오랜만에 생각이 나 검색을 해보니 다른 작품도 꽤나 많이 번역 출판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놓치지 않으리. 이 가운데 유진 오닐에게 첫 번째 퓰리처 상을 안게 해준 초기 작품 <지평선 너머>를 동네 도서관에서 상호대출 신청을 해 읽었다.


  지평선 너머.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지리적 관점으로 말하자면 지구 표면적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바다가 나온다. 하지만 문학장르 가운데서도 시와 더불어 가장 함축적이어야 하는 희곡에서 지평선 너머에 있는 ‘무엇’은, 초등 고학년이던가 중학 저학년 시절에 교과서에서 배운 김동인의 단편소설 <무지개>에서 말하는 ‘무지개’ 비슷한 것이겠다. 꿈, 또는 의미도 없고 이룰 수도 없어서 허망하기 짝이 없는 야망 같은 것. <지평선 너머>에는 앤드루와 로버트 메이오 형제가 등장한다. 건장하고 튼튼한 앤드루는 아버지의 농장을 이어받아 주에서 가장 효율적인 농장으로 성공시키는 것이 꿈이고, 병약한 동생 로버트는 대학 1학년을 마치고 휴학중인데 농장생활을 답답하게 여기며 저 평야 밖에 있는 지평선 너머엔 아름다움, 자신을 부르는 아름다움, 멀리 있는 미지의 아름다움, 자신을 유혹하는 동방의 신비와 마력, 넓은 곳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은 마음 등이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 조금은 몽환적인, 좋은 말로 시적인 청년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성격에 맞게 형은 농장에 남아 땅을 파고, 동생은 바다를 건너 동방으로 가면, 희곡도 안 되고 연극도 안 된다.

  우애 깊은 형제들 사이의 지극히 좁은 간극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사랑과 질투. 옆 농장의 병든 과부여인 슬하 외동딸 루스. 어린 시절부터 형제와 루스, 이렇게 세 명은 죽마를 타고 놀던 동무 사이였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다가 당장 내일 새벽에 외삼촌이 선장으로 있는 상선을 타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로버트한테 루스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앤드루가 아니라 로버트였다고 고백하면서 농장에 남으라고 요구하고, 루스가 당연히 앤드루와 결혼할 줄 알았던 로버트는 감격에 차서 출발을 아홉 시간도 남기지 않은 밤, 떠나지 않고 루스와의 결혼을 위해 남아 있기로 결심을 바꾸었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외삼촌 딕 스콧 선장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로버트의 변심을 기뻐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형 앤드루가 루스의 변심으로 깊게 상심해 로버트 대신 외삼촌의 배를 타기로 한다.


  고향에 남아 옆 농장까지 합해 큰 농장을 경영하게 된 로버트는 당연히 하는 일마다 꼬박꼬박 실패해 농장은 나날이 황폐해지고 아내 루스와의 사랑 역시 희미해진다. 삼 년이 지나고, 기어이 항해를 떠나기 전에 앤드루와 부자간의 연을 끊은 아버지마저 2년 전에 돌아간 후, 이제 한 재산을 모은 앤드루가 다시 집에 돌아오는 것이 2막. 실패한 로버트는 형 앤드루에게 미묘한 열등감을 지니게 됐고, 루스는 살아보니까, 3년 전에 자신이 진심으로 로버트를 사랑했다는 것이 진심이었을지언정 진실은 아니었음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잖은가. 로버트가 내일 새벽에 떠난다고 하니, 사실은 안 그랬음에도 마치 자신이 남아 있을 형보다 떠날 동생을 진심으로 사랑해왔다고 과 포장하게 되는 것. 이거 하나 가지고도 그리스 사람이라면 수 없이 많은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사실이 그렇더라도 일단 결혼을 하고 두 살 난 딸 메리까지 어리광을 부린다면 지나간, 진심 말고 진실은 마음 속에 가두고 절대 내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솔직히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잖아. 근데 드라마의 주인공쯤 되면 그런 걸 못하는 법이라서 루스는 기어이 남편 로버트에게 삼 년 전의 고백이 거짓, 아니면 적어도 기가 막힌 후회스러운 과장이었고, 진실은 앤드루를 사랑했었다고, 그걸 이제야 알게 됐다고 남편에게 말하고야 만다. 그러나 앤드루는 동남아 근해에서 태풍을 만나 악전고투하며 채 1년도 되지 않아 루스와의 사랑은 깨끗하게, 완벽하게 정리를 해버렸다고 로버트에게 선언을 했다. 로버트는 이 사실을 루스에게 전한다. 앤드루 역시 직접 자기 입을 통해 루스한테 같은 내용을 말한 후 아르헨티나에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건설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급하게 떠난다.

  여기까지가 1막과 2막. 3막은 다시 5년 후, 백만장자 가까이까지 갔다가 곡물 선물거래에 손을 대 겨우 5만 달러만 남기고 다시 고향의 농장집에 앤드루가 들르면서 극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데, 어떻게 되는지는 안 알려드리겠다. 물론 로버트는 완전 파산 일보직전이고, 양쪽 폐가 기능을 거의 정지해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으며, 딸 메리는 8개월 전에 먼저 세상을 떠, 루스는 심신이 거의 상실한 채 남편의 죽음만 건조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배경만 소개한다.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불운한 앤드루-로버트 형제 같이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을 갖는 한 쌍이 서로 다른 행로를 선택하고자 하지만 이들의 운명의 연못에 운명의 돌이 하나 떨어져 생긴 파장이 각기 서로 어긋난 행로로 가게 만드는 작품. 혹시 기억 나시나? 날 것도 같고 아닐 것도 같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시절에 많고 많은 신들이 인간을 대상으로 저지른 숱한 장난이 전부 이런 식 아니었나 싶다. 기껏 최고의 능력을 부여해놓고 능력과 관계없는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까지 심술궂게 툭 던져버리는 우롱의 신들. 또는 세상의 지복을 약속하는 동시에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단서조항을 달아버리는 장난꾸러기 신들. 이것들을 나는 유독 유진 오닐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으니 첫째가 <밤으로의 긴 여로>의 제이미와 에드먼드. 그리고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에서 시미언-피터와 이들의 이복동생 에벤.

  평생 떠돌면서 돈을 벌 목적의 멜로 드라마에만 출연하던 제임스 오닐 씨의 아들로 태어난 유진 오닐은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극작을 시작할 때부터 예술적인 작품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는데, 유진 오닐의 작품 세계를 시기별로 3기로 나눌 때 2기에 그리스 극도 실험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자 해설 속에서 이 내용을 읽으며 오닐의 초기작인 이 <지평선 너머>에도 그리스 극과 유사한 내용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하긴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굳이 가져다 짜맞추기로 하면 그리스 신화와 비교하지 못할 게 하나라도 있긴 한가 말이지만. 억지스런 독자의 감상일지언정, 이런 모든 것을 합해 어디서 이미 읽은 듯한 기시감을 느낄 수 있고 그래서 별점 하나를 뺐을지라도 유진 오닐, 참 드라마 하나는 재미있게 잘 쓴다. 오늘도 난 또 하나의 유진 오닐을 읽고 놀래 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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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2-0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단적으로 다른 성향을 갖는 한 쌍이 서로 다른 행로를 선택하고자 하지만 이들의 운명의 연못에 운명의 돌이 하나 떨어져 생긴 파장이 각기 서로 어긋난 행로로 가게 만드는 작품‘ 에서 저는 제일 먼저 ‘제프 린제이‘의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가 떠올랐지만, 아니겠죠. 골드문트 님은 덱스터를 안읽으시겠죠... ㅎㅎ
그러고보니 <차일드 44>도 형제들이었는데, 역시 골드문트 님은 차일드 44도 안읽으시겠죠..

저도 저 줄거리의 답을 기다립니다. 궁금하네요.

Falstaff 2022-12-01 16:22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습니다. 이제 하루 루틴이 (조금 일찍) 끝나서 놋북 앞에 앉았습니다. ㅋㅋ
흠. 이야기하신 책들 참고 하겠습니다. 도서관 이용하면 좋은 것 가운데 하나가 어떤 책이 있다, 하면 그냥 읽을 수 있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은근히 기대하겠습니다. ㅋㅋㅋ
줄거리의 답은요, (아씨, 스마트 폰으로 읽을 때 적절한 단어가 생각났었는데 그새 잊었습니다) 그냥 코메디아, 즉 일상극이랄까 그렇습니다.

바람돌이 2022-12-01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리뷰를 읽을 때마다 세상에 내가 안읽은 작가가 왜 이리 많을까 절망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부터 미래에 자라서 골드문트님이 되기로..... 그러기 위해서 지금도 열심히 읽어야겠네요. ^^

Falstaff 2022-12-01 16:23   좋아요 1 | URL
에이, 그게 어딨어요. 책 읽는 거, 전 백퍼 취미활동입니다. 이까짓 거 가지고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요. 아무쪼록 바람돌이 님도 그러시기 바랍니다. ㅎㅎㅎㅎ

yamoo 2022-12-0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으로의 긴 여로>를 골라 별 생각 없이 읽어나가다 그냥 덮었습니다. 희곡은 영 재미없네...라는 생각이 들어 몇 페이지 읽다 말았는데... 이거이거 완독을 해 봐야 겠습니다.충격과 넋을 잃을 정도라니...닥치고 완독해야 겠습니다. 사실 두 권 모두 있거든요..ㅎㅎ 밤으로, 느릅나무..

흠...그나저나 다락방 님 댓글을 보니, 전 차일드44를 너무도 재밌게 읽었는데 말이죠..ㅎ

Falstaff 2022-12-08 19:25   좋아요 0 | URL
사람마다 맞고 아니고가 있잖습니까. 아무리 셰익스피어라도 읽는 독자가 싫으면 싫은 것이지 뭐 별 거 있겠습니까. 근데 이렇게 써 놓고 봐도, 가지고 계신 이이의 작품 두 편은 ㅎㅎㅎ 다시 읽어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죠. ㅋㅋㅋ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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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 돌 아래 에우포리온(Euphorion)의 아들, 아테나이의 아이스퀼로스가 잠들도다. 그는 곡식이 풍성할 젤라(Gela)의 들판에서 죽음에 제압되었으나, 그의 힘과 용맹은 마라톤의 숲이 말해줄 것이며, 또한 이를 시험해본 더벅머리 페르시아인들이 전해주리라.”


  이것이 아이스퀼로스 본인이 직접 쓴 자신의 묘비명이다. 즉, 죽음의 침상에서 아이스퀼로스는 자신을 그리스 비극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든 극작가가 아니라 2차 페르시아 전쟁의 마라톤 전투와, 3차 페르시아 전쟁의 살라미스 해전에 마흔 다섯 살의 나이로 참전한 늙었으나 용맹한 전사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역자 천병희는 아이스퀼로스가 참전한 페르시아 전쟁을 기점으로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가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에서 아테나이로 옮겨와 그야말로 찬란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보면, 애초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병력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으로 무력의 열세를 딛고 그리스가 세 번의 승리를 이끌어낸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의 기적은 아이스퀼로스로 하여금 10년 터울로 극적인 승전의 감격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게 만들었으리라.

  아이스퀼로스는 기원전 525/4년에 귀족 에우포리온의 아들로 아테네 근처,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근방 부천 정도에서 태어났다. 지금부터 2,546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니 그에 관하여 구체적인 자료는 당연히 남아있지 않아서, 군인으로서는 위 단락에서 이야기했고, 이제 극작가로만 남았는데, 문예진흥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그리스의 참주僭主tyrant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하여 시작한 연중행사, 디오뉘소스 축제 중에 열린 비극경연대회에서 열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그리스의 대표적인 극작가이다. 이이가 비극경연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을 때는 마라톤 전투와 살리미스 해전의 딱 한중간 시절인 기원전 484년, 그의 나이 마흔 살 때였다. 천병희의 해설의 영향을 받아 조금 과장된 생각을 보탠다면, 마라톤 전투 승리의 기적을 경험한 아이스퀼로스는 죽음을 마주한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적진 앞에 섰던 비극적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비극작가로 등극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한다.

  아이스퀼로스는 주인공 한 명과 코러스로 구성되는 그리스 비극의 전통에서 여러 등장인물과 코러스를 동시에 무대에 올려 드디어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어 연극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이 바로 앞에 읽은 그리스의 희극 전문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작품 곳곳에서 소크라테스를 시류에 영합하는 소피스트로 악평을 늘어놓은 반면, 자신의 전공인 희극과 반대로 비극만 쓰다가 죽은 아이스퀼로스에게는 열렬한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돌면서 발전하고 진화한다. 살라미스 해전이 끝나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이스퀼로스는 훗날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죽음을 맞는 그리스 식민지 시칠리아의 쉬라쿠스로 가서 공연을 하고 작품도 만들며 지내다가 쉰일곱 살 때 아테나이로 돌아와 다시 뒤오니소스제의 비극경연대회에 참가하지만 대회에 첫 출전한 스물여덟 살의 소포클레스한테 밀리고 만다. 아이스퀼로스는 허탈했겠지. 그리고 다시 힘을 모아 『테바이』 3부작을 다음해 경연대회에 올려 다시 우승을 획득한다. 이후 또다시 10년이 흐른 후, 68세의 그는 필생의 역작인 『오레스테이아』로 경연대회의 열세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고 다시 시칠리아로 가서 70세를 일기로 자신의 묘비명을 쓰기에 이른다.

  아이스퀼로스 본인에게는 페르시아 전쟁, 이 가운데서도 두 번에 걸친 믿기지 않는 승리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마흔 살에 시작한 열세 번의 경연대회 우승도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제우스의 손길이 스치지 않았더라면 도무지 이길 수 없던 전투와 비교해서 사소했을 정도로 경각에 스스로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일종의 트라우마. 그래 자연스럽게 이이의 드라마에서 다수의 전쟁과 살육의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아이스퀼로스를 호전적인 작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스 시대에는 숱하게 국가간 전쟁이 발발했고, 그게 없던 평화시절엔 하다못해 수다하게 내전이라고 발생했던 시기라, 전쟁, 습격, 도적/해적, 약탈 등은 쉼없이 벌어지던 일상의 한 가지였으니.


  이이의 작품은 ‘아테Ate’ 여신이 막강한 영향력을 빼놓고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자 백조의 노래인 『오레스테이아』에서도 아테 여신은 무대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천병희의 후주annotation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테는 광기, 광기에서 저지른 행동, 거기서 벌어지는 불행.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의미하는 여신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이어서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어리석은 실수와 미망을 의인화한 여신이다. 제우스와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딸인 아테는 신과 인간들을 현혹시켜서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게 만든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올림포스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던져졌다.”

  그러니까 『오레스테이아』의 원형이 광기냐, 어리석음이나 미망이냐, 하는 차이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천병희의 후주가, 역자니까 당연하겠지만, 더 진실에 가깝다. 『오레스테이아』, 즉 오레스테스 3부작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 가문보다 복잡하고, 질기고, 오래 지속하고, 추악하고, 비정하고, 난잡하기까지 한 오레스테스 가문의 저주받은 내력에 관해서 미리 읽어보고, 가능하면 충분히 익숙해질 만큼 다양한 작품을 섭렵한 뒤에 감상하는 것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이 어디 그럴 시간이 있을까. 이런 분들은 그저 간단하게 탄탈로스→펠롭스→아트레우스→아가멤논→오레스테스로 이어지는 골치 아프지만 세계적인 가문이라도 검색해보면 좋을 것이다. 독후감에선 가문 내력은 말고 작품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들만 뽑아보면,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원정을 위해 수천 척의 배를 띄웠으나 (남)서풍이 불지 않아 출전하지 못하고 나날만 보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점을 봤더니 아가멤논의 어여쁜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죽음으로 희생시켜야 바람이 불어 출항할 수 있다는 신의 계시가 내려, 아가멤논은 정말로 자기 맏딸을 희생의 대 위에 서게 만든다. 전쟁이 끝나고 아폴로의 저주를 받은 명 예언자 카산드라를 대동해 개선한 아가멤논을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클뤼타임네스트라’의 고어형이라고 함)는 시사촌동생이자 연인인 아이기스토스와 공모해, 욕조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천을 뒤집어 씌운 다음 자신이 직접 (칼 또는) 도끼로 머리를 쪼개 죽인다.

  어머니와 당숙이 자신을 해칠까 몸을 숨긴 오레스테스는 나그네인 것처럼 변장을 하고 친구 퓔라테스와 함께 궁으로 돌아와 누이 엘렉트라와 공모해서 어머니를 (칼 또는) 도끼로 찍어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아이기스토스 역시 살해해버린다.

  죽은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의 혼백이 호출한 복수의 여신들에 쫓기는 신세가 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아폴론은 아테나이에 가서 여신 아테네 주재로 심판을 받으라고 한다. 이에 아테나이에 도착해 재판을 받아 유무죄가 동수를 기록, 아테네 여신의 캐스팅 보트로 무죄를 선고하고 여신은 복수의 여신들을 설득해 자비의 여신으로 탈바꿈하게 만든다.

  이렇게 차례대로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그리고 <자비로운 여신들>이란 제목을 달았고, 이 3부작을 합쳐 『오레스테이아』라고 칭한다. 이건 지극히 간략하게 내용만 스케치했을 뿐이고 직접 읽어보면 디테일이 무수하게 달려 있다. 특히 크리스타 볼프가 쓴 <카산드라>는 <아가멤논>과 내용이 거의 비슷하지만 볼프가 누군가, 지극히 재미있는 해석, 그리고 색다른 덧붙임을 엮어 나가고 있다. 휴고 폰 호프만슈탈이 대본을 쓰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엘렉트라>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과 같은 플롯이지만 곁가지를 다 쳐내고 오랜 시간동안 냉혹한 어머니와 당숙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던 엘렉트라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틱한 오페라로 만들어냈다.


  『오레스테이아』외에도 라이오스→오이디푸스→에테오클레스/폴뤼네이케스 3대를 그린 『테바이』 3부작도 매우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 3부작 가운데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 마지막 3부 격인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인데, 아시는 것처럼 테바이의 일곱 성문을 일곱 명의 장수가 제비를 뽑아 공격하기로 했고, 이중에 일곱 번째 성문은 성주 에테오클레스의 동생이자 오이디푸스의 아들인 폴뤼네이케스가 맡는다. 이에 형 에테오클레스는 자진해서 동생을 맞아 싸우기로 했다가, 서로가 서로한테 창을 꽂아 동시에 죽음을 맞는 비극이다. 이 라이오스→오이디푸스→에테오클레스/폴뤼네이케스 가문을 좌우한 것 역시 아가멤논의 집안과 마찬가지로 아테 여신의 작업이라고 봐도 괜찮겠다.

  졸지에 왕 에테오클레스가 죽음을 맞아 섭정을 맡게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에겐 국장을 베풀지만 테바이 공격에 적극 협조한 폴뤼네이케스는 시신을 거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개들의 먹이가 되도록 만든다. 시신에 손을 대기만 해도 참형에 처한다고 공고를 했으나 누이 안티고네는 형벌을 기꺼이 감수하고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 주는 이야기 <안티고네>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소포클레스 비극전집과 카를 오르프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에 실려 있다. 이렇게 다양하게 섞여 있는 그리스 비극을 서로 연결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주의할 것은 비슷비슷한 구성으로 쓰인 작품을 단번에 여럿 읽으면 간혹 멀미가 나는 수가 있으니 짬짬이 다른 책들도 함께 읽으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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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1-29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스퀼로스에 관해 쏙쏙 들어오게 정리를 넘 잘해주셨네요. 저도 아이스퀼로스 읽을 때, 이 내용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 기억을 끄집어내서 정리했습니다^^
👍

Falstaff 2022-11-29 11:58   좋아요 1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이 책, 정말 재미나요! 을유에 이어 두번째 읽었다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