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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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구로의 장편 두 편을 읽고 학을 뗀 나는 세번째로 단편집을 골랐다. 미리 말하건대,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이시구로가 될 것이다. 단정하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일단 지금은 이렇게 마음먹었다. 이이의 글이 아름답지 않아서? 아니다. 오래전에 달을 떠나 지구에 도착한 키 크고 늙은 토끼 열아홉 마리가 스웨덴 한림원의 지하에 모여 추첨을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생산품을 가지고 내가 문학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따따부따 할 계제가 아니다. 단편소설 다섯 개가 실린 책에서 더 읽을까, 이쯤에서 확 내던져버릴까 신중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 두 개나 있었다면 다른 건 모르겠고 이 가즈오 이시구로와 나는 극적으로 합이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왜 이시구로는 작품을 이런 식으로 쓸까?


​  특히 두번째 실린 단편 <비가 오나 해가 뜨나>는 이시구로가 마음먹고 희극, 즉 코미디를 쓰기로 작정을 한 거 같은데, 코미디 속에서 사람 사는 모습, 물론 속물들의 속물성을 드러내 보이기는 한다. 책 속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애호가 수준의 남녀가 나오는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레이먼드가 런던에 와서 대학동창 에밀리와 찰리 커플의 집에 며칠간 묵기로 했다가 바로 첫날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렸다. 에밀리와 찰리 사이에 혼외 연애에 관한 심각한 오해가 생겨 불화가 벌어진 상황에 레이먼드가 도착했고, 찰리는 업무 때문에 또 날을 맞춰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떠나버렸다. 에밀리와 레이먼드가 2박 3일을 보내야 한다. 에밀리 역시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버려 혼자가 된 레이먼드. 심심한 시간을 죽이다가 부엌에서 에밀리의 수첩을 발견하고, 그 속에 틀림없이 레이먼드 자신을 빗대 “징징이 왕자”라고 한 것 같아, 순식간에 열을 받는 바람에 ‘징징이 왕자’가 쓰여진 페이지를 손으로 구겨 버린다.

  이후에 아차 싶은 레이먼드. 남의 수첩, 혹시 짧은 일기일지도 모를 수첩을 왜 열어봤냐고, 성질 까칠한 에밀리한테 귀퉁백이 한 방 얻어 터질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에 공항에서 건 찰리의 전화를 받고 이웃집 부부의 큰 개 핸드릭스가 쳐들어와 한 바탕 난리를 죽였다고 변명을 하란다. 그리하여 레이먼드는 일부러 조명등을 자빠뜨리고, 화분을 쓰러뜨렸으며, 소파를 칼로 째버리라는 찰리의 의견은 좀 과격하다 싶어 무시하고, 주방에서 설탕 그릇을 엎어 놓고, 찰리의 레시피대로 집안 구석구석 개 냄새를 풍기기 위해 냄비에 정향과 냄새나는 장화를 끓이는 동안 개의 시선으로 어디가 합당하지 않은지 엎어져 탐색을 하다가 집안을 좀 더 개의 방식으로 어지럽히는 와중에 예정 귀가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한 에밀리한테 들켜버리는 순간까지. 나는 이시구로가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허구를 만들기 위해 종이를 낭비하고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수첩을 열어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에티켓을 장착한 남자가 그걸 은닉하기 위해 집주인이자 친구의 얼토당토 하지 않은 처방을 그대로 따른다고? 그래서 레이먼드 일생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션을 하고 있는 것을 에밀리한테 들켜버린다고? 이거 연출한 티가 너무 나지 않나? 혹시 모르겠다. 누군가 영화로 만들자고 하면 또 한 번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책에서 얼마 안 되는 분량이기는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음악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장면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하여간 이시구로는 나하고 맞지 않는다. 이 단편에서 레이먼드의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삭제하면 할 이야기가 없었을까? 아니다. 있다.

  대학에 같이 다닐 때 에밀리와 레이먼드가 음량이 작은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엘라 핏제럴드와 사라 본을 비교하며 같은 곡을 누가 부른 것이 더 매력적인지 속닥거리던 추억을 회상해도 충분하지 않았겠나 싶다. 다른 네 편엔 기타, 기타, 색소폰, 첼로 연주자들의 세계가 펼쳐지니 여기선 비전공 딜레탕트 또는 상당한 수준의 아마추어 감상자가 엮는 음악에 관한 날줄을 보태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제목 "녹턴"과는 달리 음악에 관한 진지하고 침잠하며 사색적인 모색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이렇게 하라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몫이니까. 대신 나는 (하여튼 노벨 문학상을 탔으니까) 거장이라고 일컫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으며, 그걸 손모가지라고 달고 다녀서 이딴 단편을 쓰고 자빠졌느냐고 푸짐하게 욕을 퍼부을 수는 있다. 스캣 시대의 두 여왕, 엘라 핏제럴드는 이난영이요, 사라 본은 최진희라고, 아무 책임없이 비교할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  표제작 <녹턴>도 마찬가지였다. 린디 가드너, 첫번째로 실린 <크루너>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이혼여행을 온 토니 가드너와 드디어 이혼을 감행한 아내 린디가 등장한다. 린디는 성형수술을 해 얼굴에 온통 붕대를 두른 상태에서 같은 모양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티브와 친교를 맺고, 내일 음악관련 시상식에서 올해의 재즈 연주상을 재능이라고는 뭣도 없는 제이크 마벨이 받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천재적인 색소포니스트 스티브의 연주 CD를 듣고는 엉뚱한 일을 벌인다. 호텔의 행사장에 몰래 잠입해 올해의 재즈 연주상 수상자에게 주는 트로피를 훔쳐 스티브에게 전해준 것. 스티브는 경악을 하고 당연히 트로피를 원래 있던 장소에 다시 가져다 놓기로 해 한밤중에 둘이 다시 행사장으로 향하는데, 이런 엉망진창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걸 코미디라고, 희극이라고 하면, 좋다, 희극이라고 하자, 그러나 아무리 희극이라도 달에서 온 늙은 토끼 열아홉 마리의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면 좀 그럴 듯해야 소설이든지 장난이든지 하는 것이지, 이건 뭐 습작 다섯 편 쓰고 간신히 “운 좋게” 등단해 이제 문단 말석에 쭈그려 앉은 신삥이나 끼적거릴 정도를 가지고 말이야. <녹턴> 역시 영화로 만들어 돈맛을 본 경험이 있는  작가의 의도를,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이시구로를 지극히 좋지 않게 생각하는 건 맞다. 그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에 의문을 갖고 나름대로 정당한 사유로 의심하게 됐으며 급기야 혐오를 하는 것뿐이지 (비록 뭣도 모르기는 하지만) 개연성이나 작품성 같은 것에 관한 비난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도 단편소설은 제외하기로 한다.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의 기분으로는 이렇게 선언한다.


​  내가 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으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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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12-27 06: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흑. 저의 녹턴을…
그너저나 “나를 떠나지마 never let me go”는 읽어주시고 장은 그 다음에 지지시…

Falstaff 2022-12-27 06:56   좋아요 2 | URL
저도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하나, 궁리궁리하다가 솔직하게 쓰기로 작정했는데요, 솔직한 것도 쉽지는 않았답니다. -_-;;

유부만두 2022-12-27 07:01   좋아요 3 | URL
솔직한 리뷰가 최고죠.

Falstaff 2022-12-27 07:21   좋아요 0 | URL
흑흑...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2-12-27 09:5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유부만두 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가 제가 하고 싶은 말이라서 깜놀. ㅎ

coolcat329 2022-12-27 0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결국에 이시구로와는 파국에 이르셨습니다. ㅠ
녹턴 사놔서 언젠가 읽겠지만 골드문트님 생각이 아주 많이 날 거 같아요.ㅋㅋ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2-12-27 07:22   좋아요 1 | URL
에휴. 댁에 있는 책이면 꼭 읽으셔야지요.
뭐 저하고 합이 맞지 않는 것 뿐이니 넘 걱정하지 마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2-12-27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신랄신랄신랄해서 노벨상 받은 아저씨가 쳐맞는데 왜 저까지 같이 아픈지 모르겠네요 ㅋㅋㅋ저도 네버렛미고랑 남아있는 나날이랑 클라라와 태양 세 개만 읽었는데 앞에 두 개까진 그럭저럭 하다가 클라라 보면서는 골드문트님처럼 아 얘 왜 이렇게 썼을까..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데 나만 못 알아차리고 있을까 아님 심오한데 못 알아차리는지 고민하면서 읽게 만들려고 (사실 아무 것도 없음) 이렇게 썼을까 고민을 했더랩쇼...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모셔만 놨는데 그래서 읽을 일은 이건 삼십년 더 밀릴 수도...

Falstaff 2022-12-27 11: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책 읽는 사람의 팔자요 숙명입지요.
제아무리 심오해도 독서에 관한 한 독자가 대빵입니다. (그렇게 주장해주세요 ㅜㅜ)

건수하 2022-12-27 0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도 이시구로 좋아하는데.... 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독특해서 좋았어요. 녹턴은 안 읽어봤으니 자세히는 나중에 읽겠습니다 ^^

Falstaff 2022-12-27 11:42   좋아요 1 | URL
이 독후감 쓰면서 제일 곤란했던 건요, 저도 몇 몇 작가들에 관해서는 거의 ˝빠˝ 수준으로 광분을 하고, 누가 그이 작품이 개판이더라 하면 뺑, 돌아버리거든요. 그것도 알고, 이시구로 좋아하는 분 많은 것도 알면서 이런 독후감을 쓴다는 게, 그게 쉬웠겠습니까. 그저 이시구로 팬들의 아량을 바랄 뿐입지요. 흑흑흑....

건수하 2022-12-27 11:45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저도 솔직한 리뷰를 좋아합니다 ^^ 그래서 댓글 단 거죠. 앞으로도 계속 솔직한 리뷰 부탁드립니다! 😃

yamoo 2022-12-27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장이라고 일컫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으며, 그걸 손모가지라고 달고 다녀서 이딴 단편을 쓰고 자빠졌느냐고 푸짐하게 욕을 퍼부을 수는 있다...

폴스타프 님...그니까 이시구로 작품들을 제가 3권 읽으려고 했는데, 그럴때마나 든 생각이었는데, 그 지점을 아주 정확히 짚어주셔서 속히 후련합니다! 네, 저도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ㅎ

이시구로와 저는 합이 꽝입니다~~ㅎㅎ

Falstaff 2022-12-27 11:44   좋아요 0 | URL
아이고.... 꽝-합이면 안 읽으셔야지 뭐 3권까지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ㅎㅎ

다락방 2022-12-27 09: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너무 재미잇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시구로에 대한 호감이나 비호감 어느것도 갖고 있지 않고 심지어 <날 보내지 마>는 좋게 읽었으며 <녹턴>도 별 넷이나 주긴 했지만, 골드문트 님이 말씀하시는 ‘전하는 메시지에 의문을 갖는‘다는게 어떤건지 알 것 같아요.

손모가지.. 라고 하실 때는 뜨끔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제가 쓰는 글이 제 손이 쓴다고 늘 생각해왔으므로... 손모가지, 가 중요한게 맞습니다!!

Falstaff 2022-12-27 11:4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글을 쓰건, 자판을 두드리건 하여간 그거 손모가지로 하는 건 맞죠?
오래 전에 음악 감상글을 하나 올렸다가, 중원의 고수가 제게 했던 말, ˝그것도 귓구멍이라고 뚫고 다니냐?˝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2-27 09: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 지지는 거 한번 보구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12-27 11:46   좋아요 0 | URL
흠. 당분간은 안 지지는 걸로... 나중에 사람들 거의 다 잊었을 무렵에 슬쩍 지져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stella.K 2022-12-27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루키가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양반이 받았을 때 그럴바엔 하루키가 낫잖나 생각했스무니다. 근데 뭐 한림원은 워낙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 잘 찾아내기 대마왕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문트님의 손가락을 사랑해 주세요.😆

Falstaff 2022-12-27 11:50   좋아요 1 | URL
저는 언제나 후보엔 오르지만 상 받을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는 메릴린 로빈슨한테 한 번 미친 척하고 노벨문학상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매년 로빈슨한테 한 표 던지는데요, 올해엔 혹시나 해서 테러 당한 늙은이 루슈디가 불쌍해서 이 아재한테 상 좀 줘라, 하는 마음에 한 표 던졌고요. 제 정체가 알고보면 달에서 우주선 타고 도착한 늙고 키 큰 토끼거든요. ㅜㅜ

그레이스 2022-12-28 21:31   좋아요 1 | URL
저도 골드문트님처럼 같은 맘으로 루슈디에게 한표 던젔어요^^

Falstaff 2022-12-29 06:16   좋아요 1 | URL
앗, 제 옆에 옆에 마스크 쓴 토끼가 그레이스 님이었습니까? ㅎㅎㅎ

그레이스 2022-12-28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안읽은 이시구로네요
써주신 내용 보니 안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손가락은 무사해야죠^^

Falstaff 2022-12-29 06:17   좋아요 1 | URL
에구, 제 말 믿지는 마세요! 그냥 이렇게 읽는 인종도 있구나, 선에서 이해하심이.... ^^

프레이야 2022-12-28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을 떼다뇨 ㅎㅎ 울엄마가 잘 쓰는 말을 여기서 보내요. 사두고 안 읽은 책인데 읽어봐야겠어요 어서. 손가락 보존은 잘하시길 바랍니다 ㅎㅎ

Falstaff 2022-12-29 06:18   좋아요 1 | URL
앗, 어머니께서도. ㅋㅋㅋㅋ
사셨으면 읽으셔야지요. 저하고 달리 좋은 마음으로 감상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alummii 2023-01-01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27 일 포스팅 기다렸었는데 , 연말 느므 바빠서 깜박하고 이제사 봤어요 😆 학을 뗀....ㅋㅋㅋㅋㅋ 녹턴은 저도 평이 안 좋길래 안 봤었는데 워메.. 이것에서 종지부를 찍으셨군요 ! ㅋㅋ 😂 암튼 이시구로는 빠빠이✋️ 하는거로 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Falstaff 2023-01-01 07:1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시구로 팬이신데 타박 안 하셔서 고맙습니다!!!
올해 하시는 일마다 좋은 일만 생기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행운하고도 가끔 마주치시기 바랍니다! ^^
 
불만의 집
사샤 나스피니 지음, 최정윤 옮김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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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사샤 나스피니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바이오그래피를 클릭하면 이이가 1976년 10월 19일에 태어났다는 거 딱 하나만 나오고 나머지는 작품목록과 수상내역 밖에 없다. 책의 앞날개에 쓰인 작가소개 역시 홈페이지에 기술된 것 이상은 구경할 수 없다. 뭐 요즘 작가들은 이런 게 보통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심지어 나는 ‘사샤’라는 이탈리아 이름이 모음 ‘a’로 끝나는 바람에 여자인지 알았을 정도다. <불만의 집>은 이이의 2018년 작품. 우리나라엔 2021년에 민음사가 번역 출판했다.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마렘마 평원의 끝자락에 솟은 산마르티노산과 두에(due: 두 개) 알리 봉우리, 이렇게 세 개의 산에 둘러싸인 골짜기 마을 ‘레 카세’에서 벌어진다. 레 카세 마을은 하나의 호텔, 성당 두 개, 두개의 바, 종탑, 상점, 담배가게 하나씩을 포함해 모두 스물네 집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렘마 평원 저 편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엘레오노라가 살았던 집이 있는데, 책의 첫 머리에 산과 각 집에 누가 사는지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레 카세 마을에서 한참을 걸어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는 산마르티노 정상에 올라가면 일찍이 1815년에 키 작은 코르시카 남자가 이 섬을 탈출해 워털루 전투를 벌여 영국과 프러시아 연합군하고 맞짱을 떴다가 심각하게 쌍코피를 얻어터진 엘바 섬이 보인다는 곳이다. 나도 미친 척하고 le case, maramma, toscana로 지도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나, 정말로 있는 지명이다. 실재하는 곳이라면 사샤 나스피니도 강심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산골에다가 철광석 광산의 광부들이 주로 사는 곳이라면 대개의 작가들은 가난할지언정 무뚝뚝한 정이 넘치는 곳으로 설정하려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샤 나스피니는 지중해를 접한 광산지대 레 카세를 악과 범죄가 넘실거리는 작은 소돔의 성으로 만들어버렸다.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쓰였다. 앞에서 엘로오노라를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라고 했지만, 사실 <불만의 집>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모두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다 자신들만의 아픔과 상실과 불안과 어떨 때는 공격성과 도벽 같은 추악한 면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위할 수밖에 없는 멀고 근원적이고 천부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들이 서슴지 않거나 주저하면서도 범하는 비도덕 혹은 범죄, 눈속임 같은 것들은 자주 독자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게 잘 쓴 문장이라서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 혹은 나쁜 행위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은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행위 인물의 불행이나 상실 역시 함께 묘사한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선량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느냐고? 그럼 하나 질문. 세상에 선량한 사람이 있을까? 무턱대고 선량한 사람을 말하는 거다. 반면에 특별하게 범죄적, 폭력적인 사람이 있나? 있다. 마찬가지의 확률로 특별하게 선량한 사람도 있다. <불만의 집>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특별하게 범죄적인 인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하게 선량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위에서 내가 레 카세가 작은 소돔의 성이라고 말은 했을지언정,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작은 소돔의 성에서 살고 있는 거다. 이 책의 등장인물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만큼, 당신도 만일 쓸 수만 있으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 한 명을 소개한다.

  레 카세 마을의 유일한 의사 에밀리오 살기니 선생의 의견에 따르면 자신이 큰 소리로 숱하게 말을 했음에도 델 카시노 가문은 핏줄끼리 쉴 새 없이 관계를 맺더니 결국 선천적 농아-난쟁이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고 말았다. 사촌끼리 혼인이면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왕왕 있었던 일이지만 살기니 선생이 보기에 핏줄끼리의 혼인의 결과로 태어난 두 명의 괴물이 일찍 죽을 것으로 봤으나 이들은 오히려 다른 혈육들이 흙에 덮이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쌍둥이 농아-난쟁이 남매는, 시간적 공간이 20세기 중반이었으니 통상적으로 동네의 또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자기들만의 “침묵의 시절”을 지내게 된다. 이들은 의사소통 방식으로 둘만의 수화를 만들어 놀고는 했는데 다른 보통의 사람들보다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연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능력. 이탈리아는 화산과 지진활동이 활발한 곳이라 크고 작은 지진이 늘상 일어난다. 젊은 시절에 마리엘라를 비롯해 많은 동네 여자들과 사통한 적이 있고 성당의 돈을 빼내 포도주를 사는 데 자주 써버린 적이 있으나 그동안 하도 많이 참회를 해서 아직도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씻어주지 않았다면 그건 외람된 말씀이지만 하느님이 너무 꽁해 있는 증거라고 발뺌을 하던 돈 라우로 신부도 신부 관사에서 자다가 지진을 만나 천장이 꽝, 무너졌는데 신부가 자던 침대 천장만 떨어지지 않아 목숨을 구해서 종탑으로 거처를 옮긴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종탑에서 레 카세 마을을 굽어보는 뷰는 좋았지만 쉴 새없이 째깍째깍 거리는 시계 톱니 돌아가는 소리에 죽기 바로 전까지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긴 했어도. 그런데 이 농아 난쟁이 남매는 아무리 작은 지진이라도 지진에 예민한 다른 동물보다 더 정확하게 이를 감지하고는 했다.

  그런데 아랫마을 아이들은 남매에게 친절했다. 주로 깍두기였기는 했지만 전쟁놀이에도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고’ 동등한 자격으로 끼워주는 것이 더욱 고마웠다. 전쟁놀이가 끝난 후엔 돈 라우로 신부가 살고 있는 시계탑까지 행진을 했다. 시계탑이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난쟁이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올랐다. 아이들은 탑의 현관 앞에 남매를 세운 다음 현관문을 두드리고 한 박자 쉬었다가 뒤로 내빼 버렸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지나 기다리다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남매와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던 1952년 여름. 그날도 역시 시계탑 앞에 남매가 서있었으며, 하필이면 갑작스레 비가 쏟아졌고, 이게 폭풍을 동반해 뇌성벽력을 치기 시작해서, 유난히 자연 현상에 민감한 남매는 혼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후 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세상에나, 귀가 트여 온갖 소리가 다 들리더라는 말씀.

  여기까지는 꼭 동화같다. 이 다음부터 흥미진진하다. 오빠 줄리아노는 동생 피에라에게 동의를 구한다. 오래, 그리고 어렵게 사람들의 말을 공부해 이제 언어를 거의 습득한 이후의 일이다. 자신이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자는 것. 그리하여 레 카세 주민들은 줄리아노와 피에라 델 카시노가 여전히 농아상태인 것으로 짐작하고, 자신의 이야기,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지만 비밀을 누구한테 말하고 싶어하는 본능을 풀어버릴 대상으로 이들 남매를 선택한다. 나는 말하지만 저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니까. 다만 입술 모양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안다고 하니 남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을 마주치는 일 없이 반쯤 옆으로 몸을 비틀어서 온갖 비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디보 발렌티의 아내 마리엘라는 남자만 보면 몸이 근질거려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거치지 않은 남자는 레 카세에 한 명도 없을 것이고, 벤초니네 막내아들 게으름뱅이 필리포는 사실과 달리 정신나간 아이로 찍혔지만 그런 단정 때문에 오히려 일도 안 하고 먹을 것도 많이 차지하고 독후감에선 차마 쓸 수 없는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으며, 마리오 실베스트리는 병이 들어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형편없이 여윈 아내 아델라이데를 정성을 다해 병구완을 하지만 새로운 젊은 점원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며, 처음엔 동네 체스 챔피언이었다가 점점 이름이 나 세계 체스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이제 몰락해 귀향한 니코데모 템페스티는 사실 미군이 몰려오자 연애했던 이탈리아 여자와 마지막 사랑의 행위를 해보려다 술에 취해 다음날 귀대시간을 놓쳐 후퇴하지 못한 오스트리아 출신 독일군 병사 아미코 프리츠이며, 아델레 첸티니는 아사스티아 대령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 쉰일곱 살 먹은 대령의 눈에 들어 그의 아내가 되려는데 여집사 에테드라가 걸림돌이 되자 계단에 트랩을 설치해 엉덩이 뼈를 부서지게 만들었다는 등의 비밀 중의 비밀을 다 토설해버리고 말았다.

  사람의 대화를 “알아듣기”에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역시 책을 읽는 것이다. 피에라 델 카시노는 원래 총명한데다 ‘델 카시노’ 이름 앞에 관사를 붙이는 집안 답게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노래를 많이 들으면 따라 부르듯이, 책을 많이 읽으니 어느 순간부터 글이 쓰고 싶어졌으니, 무엇을 쓸까, 고민없이 그냥 그대로, 자기가 살고 있는 레 카세의 주민들이 갖고 있는 비밀을, 실제 인명과 실제 지명을 사용해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그걸 자기 이름으로 했다가는 난리가 날 테니까 필명으로 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원래 산마르티노 산과 두 개의 봉우리에 겨울마다 스키 관광객이 조금씩 오는 곳이지만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이탈리아 각지에서 “레 카세”라는 동네 이름 하나만 보고 관광객이 몰려들어 진짜 골목과 바, 호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등 난리가 난다. 피에라는 심지어 자신의 메니저도 한 번 만나지 않고 철처한 비밀에 붙이면서, 이 책 <불만의 집>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되리라고 단언한다.


​  문장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이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잘 읽었다. 이탈리아 작가들은 참 특색 있다. 문장도 그렇고 쓰는 것도 그렇고, 특히 스토리도 묘한 매력이 있다. 이탈리아 소설, 확실히 블루 오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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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2-24 0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미난데 파묻힌 거 같아서 안타까웠던 중…. 문트님 리뷰로 한번 흥해보길 바라봅니다. ㅎㅎ

Falstaff 2022-12-24 05:58   좋아요 1 | URL
넵. 이 책은 많이 팔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스피니의 다른 책도 번역해 나옵니다. ㅎㅎ

coolcat329 2022-12-24 0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많이 팔려야 하는 책이라니 바로 접수하겠습니다.
이탈리아 소설이라니 더 신선한 느낌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근데 이미 ‘읽고싶어요‘ 한 책인걸 보니 예전에 잠자냥님 리뷰 읽고 했나봅니다.😅

Falstaff 2022-12-24 07:31   좋아요 2 | URL
ㅎㅎㅎ 편안한 메리 크리스마스 만드셔요!
이 책 명작이라고 하기엔 좀 모자라지만 재미있습니다.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coolcat329 2022-12-24 07:46   좋아요 1 | URL
앗! 그러고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군요! 골드문트님 즐거운 클리스마스 되세요!

그레이스 2022-12-24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소개하시는 글, 너무 재밌네요^^

Falstaff 2022-12-24 16:14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ㅋㅋ 으쓱으쓱!

그레이스 2022-12-27 09:5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제가 갖고 있을지 몰라서 책장 휙 둘러보는데 안보여요. 그래서 알라딘에서 구매하기 해봤는데, 전에 구매한 책이라고,,,, 뜨네요.
ㅋㅋ
놀랍지도 않습니다.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2-12-27 11:52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알라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병증입니다. 저도 가끔 겪어서 압니다. ㅋㅋㅋㅋㅋ

yamoo 2022-12-27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라뉘!!
뽈스타프 님, 이거 이거 리스트 추가해야 겠네요~

그나저나 표지그림이 정말 멋집니다!

Falstaff 2022-12-27 11:53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미나요! 명작 수준까지는 미치지 않으니까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하여간 특색 있습니다.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을유세계문학전집 116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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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이랍시고 니콜라이 고골에 관한 바이오그래피를 소개하는 건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생략하자.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는 고골의 초기 작품으로 그의 나이 약관 스물두 살 때인 1831년에 발표해 페테르부르크의 종잇값을 높였다고 하는데, 역자 이경완에 의하면 “낭만주의적 우크라이나 창작 설화집”이라고 한다. 창작 설화집이라니 이게 무슨 뜻일까? 19세기 초에 고골이 낭만주의적 사조에 입각해 자신 스스로 설화를 창조했을까? 아니면 전래 동화나 설화를 작가가 낭만주의 사조에 어울리게 각색을 했다는 말일까? 나는 두번째 가정에 한 표.

  고골은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라는 제목으로 두 권의 우크라이나 설화집을 출간한다. 이 책은 두 권 모두 싣고, 여분으로 <미르고로드>와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속에 든 작품을 합해 세 편의 단편을 보탰다.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 68번으로 나온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 들어 있는 다섯 편과 중복되는 것이 없으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내용은, 음, 굳이 소개를 해야 할까 싶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  먼저, “야회”. 제목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라고 해서 나는 디칸카 라는 도시의 근처에 마을이 하나 있는데, 이 마을 주민들이 야유회 가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페스트를 피해 열 명의 귀족 신사 숙녀들이 시골로 내려가 진탕 먹고 마시면서 풀어놓은 음담패설을 모아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정희의 세번째 작품집 《바람의 넋》에 실린 단편 <야회>를 생각했어야 했다. 즉, 야유회野會가 아니라 밤모임夜會이었던 것. 마을의 야회라고 하는 건 무도회와 비슷한 촌놈들의 놀이로, 사람 가운데 특히 여성들이 많이 모여 물레질을 하다가 노래 즉 노동요를 부르고, 이제 남자들과 아이들도 합세해서 악기를 보태 흥을 돋우다가 춤판, 우리가 잘 아는 우크라이나 지방의 전통무용인 호팍khopak, 앉았다 일어났다가 앉은 채로 무릎을 쭉 펴는가 했더니 다시 다른 쪽 다리하고 교대하는 경쾌한 춤을 곁들이는데,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가 더 남아 있었으니 바로 이야기다. 당시엔 영화는 물론 TV, 라디오 등의 매체가 없어서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이야기꾼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이 이야기꾼을 중심으로 반원을 이루어 앉아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민담, 야담, 설화, 전설 등에 귀를 기울인다. 유난히 글을 재미있고 화려하게 쓰는 작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같은 이야기일지언정 정말 귀에 착 달라붙게 감칠맛을 더해 이야기하는 꾼도 있는 법이니, 별다른 즐길 거리가 없는 19세기 초엽에 그의 이야기 한 대목을 듣는 것은 지금 세상에선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재미였을 것이다. 이게 디칸카 근교에 있는 시골 마을에서 종종 있었던 야회, 밤마실 이야기다. 이 동네의 가장 으뜸인 이야기꾼은 “밤색 머리카락”이란 뜻의 “루디 판코”라는 이름을 한 양봉업자, 스스로 일컫기를 ‘벌치기’로, 하여튼 이 책의 구색은 이 벌치기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포마 그리예비치라는 신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어 놓은 것이다.

  두번째로, 러시아 옛날 이야기 가운데 악마가 실제로 등장해 빗자루를 타고 보름달 아래를 비행하거나, 무덤을 열고 기어 나오는 원조 좀비 이야기는 주로 우크라이나에서 나오고, 이 가운데서 더 야만스러운 용맹을 찬양하는 와일드 버전은 우크라이나 가운데서도 특히 기마민족 카자흐 이야기다. 고골은 이 책을 쓰고 얼마 더 있다가 당대에 비견할 작품이 없는 멋진 카자흐 소설을 한 편 쓰니 바로 <타라스 불바>였고, 이후 모스크바에서 보름달 아래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이야기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작가 역시 우크라이나 출신 의사인 미하일 불가코프였으며,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카자흐 서사시 <고요한 돈강>도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출세한 미하일 숄로호프였다. 카자흐 문학이 뭐냐고?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는 그것에 대해 뭐라 특정할 수준이 아니라서,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라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밖에 못하는데,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친 광야 같은 성정과 사랑이 아닐까 싶다. 이 사람들, 사랑을 한 번 해도 심장 약한 사람들은 생각도 못할 험한 짓을 저질러 버린다. 심지어 악마의 꼬리를 잡고, 잡은 뾰족한 꼬리로 꼬리의 주인인 악마의 귀싸대기를 찰싹찰싹 때리면서 연인이 요구한 결혼 선물을 얻기 위해, 그깟 것, 어차피 한 번은 죽을 목숨 같은 건 쉽게 내놓는 수준이다.


​  세번째로, 고골, 하면 그보다 열 살 많은 선배 작가 푸시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 음악사상 고골과 푸시킨이 없었으면 러시아 작곡가가 만들어낸 오페라가 절반도 안 됐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동네의 벌치기 루디 판코가 제일 먼저 풀어놓는 이야기인 <소로친치 시장>은 무소륵스키가 자신의 마지막 오페라로 만들려고 했다가 그만 뒀는데 참 과정이 애닯아서 소개한다. 이게 얼마나 재미지는지 무소륵스키 자신이 직접 <소로친치 시장>을 참고해서 대본을 쓰고 작곡을 해 존경하는 당대 음악선생에게 보여줬다가 악평을 듣는다. 가뜩이나 알코올 의존증이 심한 무소륵스키는 여기에 우울증까지 덮쳐 악보를 통째로 불살라 초기 스케치 일부만 남게 되고 곧 숟가락 놨다. 이걸 후배 블라디미르 에시포프 등이 되살리지만 공연은 거의 되지 않고 녹음 몇 종만 구할 수 있다. 내가 알기로는 헝가리 음반 레이블 상도스에서 (아마도)유일한 CD를 출시했지만 거의 찾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사두지 않은 것을 지금 통탄하고 있다.

 

 무소륵스키, <소로친치 시장> 예전에 알던 음반은 아니다


  책의 세번째 이야기로 나온 <5월의 밤 또는 물에 빠져 죽은 여인>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5월 밤>이란 제목의 오페라로 작곡했다. 원주민의 대표니까 족장 정도 되나? 하여튼 그렇다 치고, 족장의 아들이 책에선 간나, 오페라에선 한나 – 러시아어 표기 Ganna는 들어보면 ‘한나’와 ‘간나’ 중간 정도의 발음인데 ‘한나’에 가깝다. 남자 이름으로도 German을 ‘헤르만’으로 불러야 하나, ‘게르만’으로 불러야 좋나, 말들이 많다 – 와 혼인하기 위해 전설로 전해지는 다수의 처녀 물귀신들 가운데 독한 마녀를 잡아 대장 처녀 물귀신의 소원을 풀어준 대가로 한나와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얘기다.

 림스키-코르사코프, <오월 밤>


  2부의 첫번째 이야기 <성탄전야>는 페터 차이콥스키가 <꽃신: Slipper>라는 제목으로 역시 작가 자신이 대본을 쓰고 작곡했다. 동네 제일가는 젊은 대장장이 바쿨라는 자기 엄마를 사랑하는 늙은 대장장이 춥의 딸 옥사나를 사랑하고 있다. 옥사나 역시 바쿨라를 사랑하지만 내놓고 박대한다. 너무 어려 그렇게 해야 더 좋은 줄 아는데 바쿨라는 아예 죽을 지경이다. 이런 바쿨라에게 동네 많은 친구들을 증인으로 해놓고 여황제 즉 예카테리나 2세가 신는 구두(꽃신이 더 어울리지 않나? 그래서 내가 ‘쓰레빠’Slipper를 꽃신이라 쓴 거다)를 가져오면 결혼해주겠다고 한다. 절망하던 바쿨라는 자살을 결심하고 숲으로 가다가 자기 어깨 위에 악마가 걸터앉은 걸 보고 냅다 잡아서 자기 종으로 만들어버린다. 한밤중에 악마를 타고 우크라이나에서 페테르부르그까지 날아가 우여곡절 끝에 꽃신을 구해와 결혼에 성공한다는 동화. 

 차이코프스키, <꽃신>


  이렇게 고골의 낭만주의적 창작 설화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 재미없다. 왜 그러나 하면, 이 책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와 마찬가지로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 내용을 즐기기엔 세대 차이가 크고 또 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그저 이런 설화 작품을 고골이 다시 쓰기도 했다는 정도로만 아는 수준이면 되지 않을까 한다. 굳이 직접 읽어 보시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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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이관우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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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까지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유대계 작가인지 몰랐다. 1897년에 발표했지만 이후 수십년 동안 외설물, 심지어 포르노그라피의 혐의를 쓰고 판매 및 공연 금지를 당한 극작 <라이겐>, 말년 작품으로 정말 많은 등장인물이 출연하는 장편소설 <트인 데로 가는 길>을 읽었음에도, 그저 이이의 작품에는 유난히 유대인들이 많이 등장하는구나, 싶었을 뿐, 작가 자신이 유대계인 줄은 생각도 안 했다. 유대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업이 음악가, 연주자, 그리고 금융업이라고 칭하는 고리대금업이라 그랬는지 아버지, 아트루어 본인, 그리고 동생, 게다가 외갓집까지 모두 다 의료 전문인 집안인 것 하나 가지고 설마 작가가 유대인일까, 의문을 가지지 않았던 거 같다. 왜 이렇게 설레발을 치느냐 하면, 지금 독후감을 쓰는 중편소설 <죽음>에서는 등장인물이 유대인이냐 아니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지만, 아버지 요한 슈니츨러 씨가 후두학 전문의고 아르투어가 젊은 시절에 아버지의 조수, 시쳇말로 새끼의사를 몇 년 했다는 거, 그리하여 호흡기 질환과 구태여 결핵이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이 비슷한 질환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꽤 많이 관찰할 수 있었고, 심지어 숨을 거두는 장면도 목격을 했을 터라, <죽음>을 쓰는데 작지 않은 도움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은 1892년 완성해서 1894년 잡지에 세 번에 걸쳐 연재를 하고, 1897년 출판한 중편소설이다. <트인 데로 가는 길>에서도 짧게 이야기한 바 있지만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은 없을 것이 틀림없는 바, 여태까지 의사 짓을 하게 만든 아버지가 1893년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제 청진기를 벽난로에 던져버리고 불을 확 싸지른 슈니츨러는 그 해에 당장 자신을 도발적인 극작가로 이름이 나게 만든 <라이겐> (혹은 <윤무>)를 발표한다. 한 해가 지나고 1894년에 <죽음>을 유명 잡지에 연재하자 이번엔 그를 실력 있는 산문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고 하니 당시 기준으로 대단하기는 대단한 작가였던 모양이다. <죽음>은 당연히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을 내는데, 작품의 플롯도 대단히 간략하여, 폐병 환자의 마지막 1년을 그렸다.


​  이 작품에 방점을 찍는 것은, 죽어가는 작가, 게다가 19세기에는 결핵이나 매독으로 죽는 것에 일종의 매력 또는 판타지 같은 것을 느꼈다고 하는데, 작가나 독자로 하여금 뭔가 하여간 애틋한 감상을 기대하게 만드는 반면, 직접 폐병으로 인한 죽음의 장면을 목도한 적이 틀림없이 있을 슈니츨러는 독자의 기대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적어가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죽음이란 건 미모의 여배우가 창백한 화장을 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통통한 얼굴을 하고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와중에도 할 말은 꼬박꼬박 다 한 연후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하고 죽지 않는다. 세상의 어떤 연인도 아름답게 이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누구도 고운 모습으로 죽지 못하는 게 인생이고 인간이다. 그래서 죽어가는 혹은 이미 죽은 사람더러 가끔 “정 떼려고” 이런 모습, 저런 행동을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지

  등장인물은 딱 세 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나머지는 전부 엑스트라. 스무 살에 시작해 스물한 살에 막이 내리는 아름다운 아가씨 마리. 마리는 몇 살인지 모르지만 아직은 젊다고 해야 할 작가 펠릭스와 동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펠릭스는 자신의 이름 felix 처럼 행운이 따라붙기는커녕 결핵으로 보이는 폐병을 앓고 있고, 이를 어릴 적에 죽마를 함께 타고 지낸 의사 친구 알프레트에게 치료를 맡기고 있었다. 주연은 마리와 펠릭스, 알프레트는 조연이다. 이렇게 세 명이 이야기를 꾸려간다.

  알프레트가 자신의 최선을 다해 펠릭스를 치료하는 건 환자 본인도 알겠는데, 점점 병세가 나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알프레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좋아지고 있으며 심지어 완치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만 내놓는 데 의심이 든 펠릭스는, 어리석게도 (작가의 아버지를 빙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대학병원의 교수 의사 베르나르트 박사를 찾아가 정밀검사를 받는다. 베르나르트 박사는 대학병원 의사들이 늘 그렇듯이, 이 때가 1890년인데, 당신의 남은 생명은 1891년 1월에서 2월까지니까 미리 각오하고 있으슈, 라고 진실을 말해버렸다. 작품의 시작점은 1890년 5월. 한창 봄을 즐길 시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빈이 위도 47도 지역에 위치해 있으니 해만 떨어졌다 하면 팔뚝에 오소소한 소름이 돋는 쌀쌀한 날씨다. 아직 그렇지는 않지만 저녁 어스름에 공원 벤치에서 마리 혼자 펠릭스를 벌써 30분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오늘따라 우중충한 표정으로 등장한 펠릭스는 나름대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프라터(그냥 도심에 있는 아름답고 넓은 공원 정도로 생각하자)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더니 밥상을 앞에 놓고 갑자기 “뜨겁게 흐느끼면서” 울기 시작했다. 마리 입장에서 “내가 흠모하는, 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인 펠릭스 때문에 밥맛이 똑 떨어졌다. 그러다가 드디어 펠릭스가 마리한테 고백을 하는데, 앞으로 자신 앞에 남은 생은 1년에 불과하다고, 자긴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것.

  마리의 마음이 찢어진다. 그리하여 다음날 날이 새자마자 아직 영업 개시도 하지 않은 알프레트한테 쫓아간 커플은 의사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라고 요구한다. 알프레트는 냉정한 베르나르트 박사하고는 다른 종류의 의사라서, 여전히 완치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펠릭스는 자신이 1년 안에 죽을 것임을 안다고, 마리는 나를 잊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야 한다고 어리광을 부린다. 이 말 듣고 가만히 있거나, 어떻게 내 마음을 그리 잘 알아? 나한테 유산 좀 남겨줄 수 있어? 그럼 영원히 자기를 잊지 않을 텐데, 라고 말하는 여주인공은 없는 법이라서, 순간적으로 확 돌아버리며 이렇게 외친다.


​  “독약 좀 주세요. 나는 이 사람보다 1초도 더 오래 살고 싶지 않아요. 이 사람이 그걸 믿도록 해야겠어요.”


  지금 당장 벌컥벌컥 독약 한 사발 들이켜 칵 죽어버리겠단다. 나는 이것이 진심이라는 걸 이해한다. 의사 알프레트도 알았다. 그리하여 의사는 커플에게 따뜻한 남쪽 지방으로의 여행을 처방한다. 신선한 공기와 편안한 휴식이 둘을 다시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 놓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알프레트 자신 역시 회생 또는 생명 연장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동남쪽, 스위스나 이탈리아일 수도 있는 호수에 바짝 접한 작은 집을 빌려 숙박을 하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건강에 관한 한 이름처럼 펠릭스(felix:행운)하지 않았지만, 펠릭스한 집안 태생이라 노동하지 않고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룸펜 인텔리겐치아 부르주아다. 그래 앞 문단에서 마리한테 재산 좀 유증해주는 것이 어떤가 운을 떼어봤던 건데, 여태까지도 그랬고 심지어 진짜로 죽을 때까지 비슷한 이야기 한번 꺼내지 않는다. 그래, 달리 부자겠니? 이런 구두쇠 노랭이 기질이 있어서 부자겠지.

  이제 이야기는 간단하다. 이들 커플에게 남아 있는 것은 병이 깊어짐에 따라 아름다운 죽음과 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과, 삶에 대한 집착, 홀로가 아닌 ‘나 혼자’ 죽음을 맞아야 하는 두려움, 그리고 이런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간병자가 느껴야 하는 복잡한 심정. 사랑에서 애정으로 갔다가, 결국 정 밖에 남지 않게 되는 과정. 나중엔 그나마 있던 정도 싹 사라지는 비정한 죽음 또는 이별의 과정이다. 스스로 독약을 청했던 마리가 정말 자신과 함께 죽어줬으면 하는 펠릭스와, 자신이 처음엔 그렇게 주장했지만 결코 환자와 함께 죽고 싶지 않아서, 혹시 환자가 자기 모르는 사이에 독약을 물에 타 먹이거나 흉기로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마리.

  그래. 그렇게 죽고 이별하는 거다. 아름다운 이별과 아름다운 죽음은 세상에 없다. 꼭 책을 읽어야 아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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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2-20 0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
죽음은 실재의 극치라서 감히 아무도 닥치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하는듯요. 그래서 은유하고 미화하는듯요
과정속에서 마리의 마음의 변화는 이해하겠는데, 펠릭스는....^^

Falstaff 2022-12-20 15:43   좋아요 1 | URL
죽어가는 마당인데 펠릭스의 마음 역시 이해 못할 것도 없더라고요. 처음 마음엔 그러했지만 진짜 죽을 거 같으니까 혼자 죽기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러니까 누구든지 죽은 다음에 애닲아 하지 말고 있을 때 잘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

stella.K 2022-12-20 1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죽은 자는 말이없다만 알고있는데 이 사람 책이 좀되더군요. 그런 걸 보면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죽음을 다루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프로이트도 오스트리아면서 의사잖아요. 이 양반 프로이트에게서도 영향을 받지않았을까요?

Falstaff 2022-12-20 15:46   좋아요 1 | URL
프로이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프로이트도 슈니츨러도 과하게 섹스 오리엔티드 된 세계관에 사로잡히지 않았었나 싶습니다.
이 양반 작품이 많지만 몇 개 읽어보니까 이젠 내돈내산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yamoo 2022-12-27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로이트와 슈니츨러는 아주 잘 알고 있던 사이는 아니였지만 프로이트가 슈니츨러의 작품을 매우 흠모했고, 자신이 힘들게 쓰고 있는 임상 이론서들과 달리 그 내용을 절묘하게 작품에 잘 녹여내어 재미있는 우화로 쓰는 능력을 매우 매우 부러워하고 질투까지 했다고 합니다. 정신분석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꽤 유명한 이야기..

슈니츨러의 <사랑의 묘약>은 그 단면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죽음>은 제가 안봐서 모르지만, 여기에도 정신분석적인 모티브를 아주 잘 차용하고 있을 거 같습니다. 슈니츨러는 당시 정신분석 이론에 꽤 정통했었다고 합니다..

슈니츨러의 거의 모든 번역본을 모으고 있습니다만, 아직 죽음은 소장하지 못했는데, 이참에 주문해야 겠습니다. 과거에 나온 거의 모든 슈니츨러 작품들을 모으다보니, 한가지 기가 찰 노릇이 같은 작품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제목으로 냈다는 거...심히 열받았었습니다~ㅎ

Falstaff 2022-12-27 11:55   좋아요 0 | URL
아, 프로이트가 슈니츨러를 흠모.... 그렇군요.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ㅎㅎㅎ
죽음, 슈니츨러 작품 가운데서도, 그래봐야 세권 읽었을 뿐이지만, 괜찮더라고요. 내돈내산을 안 할지언정 계속 파볼 생각입니다. 도서관 다니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
 
아메리카의 비극 -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06
시어도어 드라이저 지음, 김욱동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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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인데 안 팔리는 게 유감. 범우사 <미국의 비극>으로 읽었음. 몽고메리 크리프트, 리즈 테일러 주연의 <젊은이의 양지>의 원본. 물론 영화에선 왜곡이 있음. 지상 최고의 미녀 리즈를 멍청하게 보일 수 없어서 작품을 왜곡. 제목은 아메리카의 비극 대신 "미국식 비극"이 더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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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2-19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영화 <젊은이의 양지> 원작이군요! 상하 합쳐 1600 페이지가 넘네요. ㅠ
저는 <시스터 캐리> 갖고 있는데 이것도 참 두껍습니다.

Falstaff 2022-12-19 18:51   좋아요 1 | URL
근데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도무지 손에서 떨어지지가 않아요.
물론 지금 시각으로 보면 아침 엽기 드라마이긴 합니다만.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