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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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작품 <그리머스>를 출간하는데 성공한 루슈디는 여전히 “젊은 소설가 지망생 겸 카피라이터로 절망에 빠진 한 마리 새”에 불과했다. 이때는 자기 또래 작가들, 예를 들어 마틴 에이미스와 이언 매큐언은 진즉 뾰족머리, 즉 두각頭角을 나타내고 있었던 반면, 루슈디는 런던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좋은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꽤 괜찮은 연봉을 받고 있기는 했으나 원하는 바가 아니라서 쉴 새 없이 습작을 끼적여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머스>가 평단의 평은 좋지 못했더라도 영국은 물론이고 프랑스와 이스라엘에까지 판권이 팔려 짭짤한 저작료가 들어오자 광고회사인 오길비를 그만 두고 나중에 맏아들 자파르 하룬의 어머니이자 첫 번째 아내가 될 클래리사를 꼬드겨 인도에 다녀온 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 클래리사가 먼저 생을 마친 후 루슈디는 성인이 된 하룬과 함께 다시 인도를 방문해, 과거에 네 엄마하고도 왔었다, 라고, 추억 그득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주게 된다) 클래리사와의 합의 하에 가난하게 살 각오를 용감하게 하고 필생의 대표작이 될 <한밤의 아이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게 대박. 1981년에 출간을 하고, 그 해에 도리스 레싱, 뮤리엘 스파크, 이언 매큐언, D.M. 토머스 등을 가볍게 누르고 부커 상을 수상해버린다. 게다가 훗날 이 작품은 부커상 2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부커상 수상작품, ‘부커 오브 부커’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살만 루슈디는 세계적인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름과 동시에 작품만 썼다 하면 적지 않은 선인세를 받고, 입맛에 맞는 출판사를 고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쥐었다는 말씀. 이후 <수치>를 발표해 작은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수치> 5년 후, 루슈디의 평생을 좌우하고 나중엔 기어이 그의 멱살을 잡아 땅바닥에 메다 꽂을 <악마의 시>를 출간해, 루슈디의 의견도 그렇고 나도 직접 읽어보니까 별 문제도 없어 보이는데,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당대의 이맘, 이란의 호메이니를 간질거려 <악마의 시>를 최악의 신성모독으로 규정, 그것을 쓴 살만 루슈디에게 만 년 동안 지속할 사형선고, 이른바 파트와를 선언해버리고 만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이슬람 광신도들은 이때부터 살만 루슈디를 죽여 불멸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 아니면 루슈디의 목에 걸린 수백만, 적어도 백만 달러가 넘는 현상금을 얻기 위하여 소총을 기름칠하기 시작했으며, 1964년에 루슈디가 시민권을 딴 영국의 경찰은 자국민을 테러리즘에서 보호하기 위해 영국 여왕에 준하는 경호를 시작한다. 이 책 <조지프 앤턴>의 8할 이상은 ① <악마의 시>가 결코 신성모독이 아니라는 점, ② 과중한 경호에 자신이 얼마나 피폐해졌는지, ③ 문학적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신성한지, 그리고 ④ 기타 자기 잘난 척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그러니까 회고록은 회고록이되 이슬람 테러 (위협)에 의하여 부당하게 자유를 침탈당한 한 작가의 억울함을 호소하는데 전력을 다했다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좋아하지 않는지를 다시 한번 절절하게 알았으며, 그러면서도 어찌하여, 아무리 내가 살만 루슈디를 좋아할지언정 그의, 회고록을 골라서, 그것도 8백 페이지를 가뿐하게 넘는 길고 긴 회상, 궁상, 잘난 척을 읽었는지 참, 감회, 라기보다 후회가 새로웠다. 역시 사람은 신념을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도서관 지하 휴게소에 내려가 천 원짜리 백제 컵쌀국수에 뜨건 물 부어 하나 먹고 곧바로 올라와 독후감 쓰는 거니까 이제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거의 모든 인간들이 그렇기는 하겠지만 살만 루슈디 역시, 그가 좋은, 아니다 이걸로 부족해서 좀 올려 이야기하면, 훌륭한 작가라는 점만 빼놓고 그를 평하자면 천하의 이기적인 잡놈이다. 이 책 읽으신 분 가운데 내 얘기가 틀리다는 사람 있으면 거수 바람. 물론 작가, 화가, 음악가, 가수, 배우 등의 연예인, 하여간 예술 주변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나하고 비슷한 보통 인간들하고 같으면 안 되겠지만, 이들 무리 만을 생각하더라도 살만 루슈디의 사물을 보는 방식은 대단히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이고, 거만하고, 잘난 척하고, 이 모든 것을 다 합쳐서, 매우, 매우 밥맛이다.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여간 나는 이이의 작품을 좋아하니까. 하긴 루슈디도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자기 팬이란 걸 아니까 그렇게 밥맛이긴 하겠지만.

왜 이리 침을 튀는지 한 번 설명해보겠다.

루슈디는 가난을 각오하고 시절을 함께 헤쳐나간 첫째 아내 클래리사와 살림을 시작하면서 맏아들 자파르 하룬을 낳았고 이들 처자식을 자랑으로 여기면서도 작가 매리앤 위긴스와 불륜을 저질러 결국 이혼하고 매리앤과 결혼한다. 뭐 그럴 수 있다. 여기까지는. 그러나 루슈디는 회고록에서 매리앤이 좀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사람으로 보일만큼 악의적으로 평가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그 틈을 노려(진짜로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젊고 아름답고 선한 아가씨 엘리자베스 웨스트와 또다시 불륜을 저질러 매리앤과 이혼한다. 엘리자베스와 몇 년에 걸쳐 사이 좋게 잘 지내다가 둘째 아들 루카를 낳고, 그동안 영국과는 달리 경호원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는 문제와 산후 우울증, 이어서 두번째 출산을 원하는 엘리자베스와의 갈등이, 내가 봐도 거의 엘리자베스의 귀책으로 몰고가는 등, 비록 혼인신고 하기 전이지만 파리에서 또다른 불륜을 저지른 것이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게 된 결정적 이유란 것을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루슈디는 뉴욕에서 엘리자베스보다 더 젊고 아름다운 인도 출신 여성 모델 파드마 락쉬미를 만나 거의 동거하다시피 하다가 끝내 엘리자베스와 이혼하고 파드마와 네번째 결혼을 올린다. 그리고 또다시 파드마의 왔다 갔다 하는 성격으로 네 번째 이혼을 하게 되는데, 살만 루슈디는 도대체가 반성이, 있긴 있다. 결국 다 내 책임이고 내 잘못이라고 말은 하지만 독자인 내가 읽기로는, 주로 잘 나가는 프로 운동선수들이 구단과 연봉협상 할 때 즐겨 쓰는 용어로, 진정성이 없다, 진정성이.

둘째로, 이이는 어떻게 됐거나 하여튼 자신이 쓴 <악마의 시> 때문에 이란을 위시한 아랍 여러 나라의 이슬람 교도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 국적이 있는 영국정부한테 보호를 요청하는 것까지는 좋다. 당연한 권리니까. 세금 내잖여? 세금도 일종의 보험 아녀? 그런데, 그러면 만일 영국 정부가 루슈디의 가족을 몽땅, 이 책에 비유적으로, 비아냥도 아니지만 좀 우스꽝스럽게 말했듯이, 오스트레일리아의 태즈메이니아 섬의 오두막에 쑤셔 박아놔도 그리 크게 불평할 수 없을 거 같다. 물론 설마 내가 그 정도를 바라겠는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루슈디는 자신이 도시형 인간이라 외딴 곳이나 시골에서는 살지 못할 것이라고 구태여, 죽어도 런던이나 런던 근방의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아파트는 경호문제 때문에 불가능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 확보한 채로 살고 싶어 한다. 경호원이 그의 행동반경과 노출 수위를 정할 때마다 짜증이 듬뿍 묻어나는 문장과 단어를 구사하는데, 이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말도 일리가 있다. 왜 살만 루슈디의 경호를 위해 (그들의 주장대로 ‘막대한 수준’은 아니지만) 세금을 써야 하는지 국민들이 불평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말이지. 루슈디는 자신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 하고 모든 것을 경호상 편리를 위한 과잉 경호 때문에 벌어지는 자유의 구속으로 보려고 애쓴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해서 주로 아가씨의 원피스에 흔적을 묻히는데 취미가 붙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을 만나고, 그로부터 자신을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오히려 영국 경찰과의 관계에 거의 완벽한 권력을 잡는 행운까지 나꿔챈다. 이후부터는 당연하게 더, 더, 더 밥맛이 없게 되는 건 물론이고. 그러다가 2022년의 뉴욕에서 그 봉변을 당한 거 아닌가 말이지.

하긴. 그래, 그래. 너나 나나 별 거 있니. 재주 빼고, 가진 돈 빼고, 가방끈 빼고, 그냥 인간 대 인간, 발간 알몸 대 알몸으로 비교하면 뭐 하나 다를 거 있겠니.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살만 루슈디, 하나만 기억해라. 이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 팬이다. 부상에서 얼른 회복해 현란한 당신의 요설을 조금만 더 들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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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1-28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욕하면서 읽었어요!!! 나쁜 놈이네 이거! 근데 제밌게 쓰다니, 더 나빠!!!

그리고 루슈디가 신작 Victory City를 내놓았다는군요. 역자 (당연 김진준)를 재촉하고 싶어요.

Falstaff 2023-01-28 13:39   좋아요 0 | URL
오호, 신작이 나왔군요. 얼른 번역해 깔리기 바랍니다. 반가운 소식이네요. ^^

싱글오이 2023-01-28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곧 읽으려고 쟁여둔 책인데,
이 글 보니 더 기대 됩니다 ^-^;;

Falstaff 2023-01-28 13: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재미나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moonnight 2023-01-28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_@; 살만 루슈디가 이런 인물이었군요. 어질어질@_@;;;

Falstaff 2023-01-28 13:41   좋아요 1 | URL
뭐 다들 본성은 비슷한데 누가 더 참고 사느냐, 도를 많이 닦았느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이 책 읽으면서 저 천재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도 비슷했겠거니 싶었습니다. ^^

stella.K 2023-01-28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그렇지 않아도 이이의 책이 최근에 또 나온 걸 보고
문트님 생각했는데 말입죠. 재밌게 쓰셔서 킥킥대고 읽었습니다.
자서전은 뭐 꼭 인격이나 도덕성이 뛰어난 사람만 쓰는 건 아니죠.
그냥 그 사람은 어떤 생각과 체험과 경험이 있었나 관음증 때문에
읽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작가라면 좀 고상하고 발라야 한다는 뭔가의 이미지가 있긴하죠?
아무래도 문트님은 건강을 위해서 읽지 않는 게 좋으실 듯 합니다. ㅋ
전 솔직히 살만 루슈디 생긴 게 좀 괴팍한 느낌이어서 별로 선뜻 손이 안 가더군요.

Falstaff 2023-01-28 13:44   좋아요 1 | URL
자서전이나 회고록 쓰고 한 십 년 흐른 다음에 읽어보면 작자 자신도 무지 쪽팔리지 않을까요? ㅎㅎㅎ 저는 여간해 읽지 않지만 간혹 자서전 읽어보면 이런 의문이 무지하게 생긴답니다.
오, 저는 작가를 비롯해서 하여간 예술 비슷한 직업에 종사하는 인간들은 오히려 더 방종할 거 같아요. 반듯하고 고상하기는요, 주위에 예술하는 인간들 가운데는 한 명도 없더라고요. 저도 예술 안 하기 얼마나 다행인지 말입니다. ㅎㅎㅎㅎ

바람돌이 2023-01-28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본적인 인간성과 그 재능이 일치하게 좋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이렇게 인성을 욕할 수 밖에 없음에도 그 재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래서 팬이 될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있지요. 암요..... ㅎㅎ

Falstaff 2023-01-28 14: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알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파이버 2023-01-28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슈디 작품만 알았는데 사적인 모습은 별로군요...;; 이정도 불륜이면 실수가 아니라 습관인 것 같아요...

Falstaff 2023-01-29 06:05   좋아요 1 | URL
뭐든 다 좋기는 힘들잖습니까. 바람둥이 작가들이 무척 많잖아요. 이들 가운데 한 명이지요 뭐.

그레이스 2023-01-30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서전 제목이 왜 조지프 애턴인가 했더니 그의 가명이군요.
<한밤의 아이들>만 읽었지만 루슈디의 글 방향을 좋아해요.
골드문트님의 말 듣고 얼른 일어나시길!

Falstaff 2023-01-31 05:55   좋아요 1 | URL
옙. 가명 하나는 정말 잘 지었습니다. ㅎㅎㅎ 계속 읽어보셔요. 재미난 작품 많습니다.

yamoo 2023-02-0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루시디 자서전이 나왔군요! 구매해야 겠으묘~~~~
루시디 전집, 가즈아~~!!ㅎㅎ

Falstaff 2023-02-03 16:12   좋아요 0 | URL
ㅎㅎㅎ 루슈디 팬이면 읽어볼 만합지요.
 
뜨거운 여름
우베 팀 지음, 오용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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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베 팀은 1940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수공업자 가족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열여섯 살 터울의 형 모두 2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었는데, 악명높은 SS단의 일원이었던 형은 1943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사한다. 팀은 형과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중에 작품으로 써서 회고하기도 한단다. 굳이 읽어볼 마음은 없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모피 공장을 열어 초등학교를 마친 우베도 모피 가공업 실습교육을 이수해 아버지가 유명을 달리하자 사업을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 때가 몇 살이었던 거야? 팀은 스물한 살 때인 1961년부터 2년동안 공부해 63년에 대입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이때 공부하는 과정에 니더작센 주에서 67년 팔레비 이란 국왕의 국빈 방문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어 서독 학생운동에 본격적인 불을 붙이게 되는 베노 오네조르크와 알게 된다. 오네조르크는 <뜨거운 여름>에도 작지 않은 사건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우베 팀이 특히 베노 오네초르크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은 2005년에 출간한 <친구와 타인>이라고 한다. 이후 팀의 행적은 뮌헨과 함부르크에서 계속 공부를 했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60년대는 좌파학생운동의 본산인 사회주의독일학생연맹 SDS 회원이었으며, 1973년부터 81년까지 독일 공산당 당원이었다고 하면 얼추 감이 잡힐 것이다. 1981년에 독일 공산당을 탈당한 이유는 독일 공산당이 동독의 정책에 관해서 무비판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라고. 공산당 탈당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좌파적 사고를 견지하면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은 1967년, 알프스를 넘어오는 푄 바람의 영향으로 극도로 기온이 올라간 뮌헨의 여름 이야기로 시작한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독자는 설마 이런 문장과 수사와 어법을 가지고 60년대의 학생-노동운동을 이야기할 예정인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첫 장면도 뜨거운 여름, 가장 더운 오후에 섹스가 끝난 후의 침대 위임에야. 뮌헨 소재 대학에 다니는 공부 잘하는 학생 로타가 옆방에서 아침부터 모든 창문을 닫은 위에 젖은 수건을 덮고 방문까지 꽁꽁 닫은 다음, 이렇게 해야 방의 온도를 가장 낮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내내 논문을 쓰다가 잠시 바이올린 연습을 하는 동안, 주인공 울리히 크라우제는 5월에 레오폴트 거리의 카페에서 만나 사랑을 키운 잉에보르크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여간 하고야 만 섹스 뒤에, 난데없이 “네가 싫어 죽겠어, 지독히도 말이야.”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녀와의 이별을 확정시켰고, 벌거벗은 채 뒤통수를 맞은 잉에보르크는 굵은 눈물을 쏟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잉에보르크의 눈물을 상상할 수 없었던 울리히는 주 르비앙 화장품에서 출시한 향수를 많이 뿌린 그녀의 머리를 감싸주고 달래야 했음에도 도무지 울 것 같지 않은 잉에보르크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가 의문스러웠다. 물론 이유가 있다. 기가 센 독일 젊은 여성이, 비록 1960년대라 할지라도 그깟 섹스 후에, 이깟 이별 통보 하나로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터, 잉에보르크가 자신이 울리히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걸 아직은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울리히는 잉에보르크의 낙태 비용 6백 마르크를 벌기 위해 이리도 뜨거운 여름날 며칠 동안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다가 터지고 또다시 잡히기를 반복하면서 노가다를 해야했지만.

지금 나는 스토리를 다 알고 있어서 될 수 있으면 한 방에 앞쪽 이야기를 쏟아내려고 이렇게 긴 문장을 쓰고 있지만 우베 팀의 문장은 짧고 건조하다. 게다가 시간 배열도 마구 헝클어져 있고,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아 좀 더 내밀한 호소를 전할 수 있지만 반면에 독자를 효과적으로 미궁으로 빠뜨리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1960년대 말의 서독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다 합해 사회운동과 유치한 수준의 테러리즘을 통틀어 보이기 위한 것이고, 독자도 결국엔 작가가 의도한대로 똑바로 하나, 둘, 셋, 넷, 줄 맞춰 스토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운동소설 말고 작품의 앞부분 같은 모더니즘 소설이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이게 책을 읽으며 내내 든 생각이었다. 알겠다, 알겠어. 우베 팀의 작품의 성격이 대략 좌파적 성향이며 그것도 사회주의의 왼쪽, 공산주의와 매우 가깝다는 건 알겠는데, 그럼 처음부터 저 오스트롭스키나 고리끼처럼 내놓고 쓰던지 하지 말이야.

올해가 어느 새 2023년. 지금 1960년대 말, 적어도 55년 전의 학생운동, 그것도 결국 실패 또는 마지막 낭만적 혁명의 흐지부지 정도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서구사회의 좌파 식 운동”을 다룬 작품을 읽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다. 만일 우베 팀이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같은 제3 세계 출신으로 제3 세계에서 벌어진/있었던 운동을 탐색했더라면 여전히 흥미롭게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서독의 학생/노동자 운동을 다룬 <뜨거운 여름>이나 미국의 노먼 메일러가 쓴 비슷한 소설 <밤의 군대>나 내게는 그냥 그런 소설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게 운동이고 (말로만)혁명이었는가 말이지. 물론 본인들은 심각했겠지.

생각해보자. 출발은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에서 시작한다. 이들은 호치민의 혁명투쟁가와 마오저뚱의 혁명가를 노래하면서 막연하게 서구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인간해방과 사회주의를 획득하고자 한다. 동시에 프리 섹스와 마리화나 등을 누리면서. 이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절박함이 없었다. “없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내가 제3 세계 출신이라서 말할 수 있는 것이지 그들의 절박함을 평가절하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같은 시기의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어떻게 그렇게 똑같이 지독한 독재정권에 의한 폭력과 수탈과 가난과 공포 속에서 헤매고 있었는지. 입을 비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자. 일단 퇴로를 확보하고 있는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학생, 지식인, 노동자들의 운동이, 어떻게 말 그대로 목을 내놓고, 내 목 하나도 아니고 여차하면 가족 모두의 목이 될 수 있는 걸 다 내놓고 죽기 살기로 투신하는(했던) 제3 세계의 젊은이들하고 같을 수 있는지. 같기는커녕 비슷할 수 있는지 말이다.

결국 <뜨거운 여름>의 주인공 울리히도 잉에보르크, 등꽃 색 손톱의 여인, 녹색 눈꺼풀의 검은 머리 여자, 크리스타, 레나테 등을 거치고, 동시에 뮌헨과 함부르크의 대학시절과 짧은 노동 현장을 겪은 후 초등학교 교사라는 쁘띠 부르주아로의 귀환을 선택하게 되는 거라고 단정한다.

차라리 작품 속에서 가끔 인용하는 알베르트 이야기를 선택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알베르트 이야기? 한스 팔라다가 쓴 <홀로 맞는 죽음> 또는 <누구나 홀로 죽는다>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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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2023-01-26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그가 멋져요~!

Falstaff 2023-01-26 16:54   좋아요 1 | URL
앗, 그러셨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바람돌이 2023-01-26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3세계에서 진짜 목숨걸고 싸우는 이들이랑 저 서구에서 반전운동 하던 사람들이 같을수는 없죠. 그래서 약간 그들의 방황이나 이런걸 보면 공감이 힘들때가 많은 건 역시 우리가 식민지의 경험과 독재의 경험을 겪어왔던 이유겠죠. ㅎㅎ

Falstaff 2023-01-27 10:15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그렇지요.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회운동하는 책들에 상대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겠습니까. ^^;;
 
타인들의 나라 대산세계문학총서 179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황선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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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슬리마니. 망상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여인 루이즈가 자신이 돌보던 두 아이에게 심각한 폭행을 저질러 숨지게 한 일을 다룬 공쿠르상 수상작 <달콤한 노래>를 2018년에 충격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대단한 흥미를 느꼈던 작가다. 이후 <그녀, 아델>이란 작품을 번역 출간했으나 어쩐지 손에 닿지 않아 미루다가 이번에 <타인들의 나라>를 도서관에 구입 신청해서 읽게 됐다. <타인들의 나라>는 레일라 슬리마니의 가계를 모델로 한 삼부작 대하소설이며 이 책은 삼부작의 첫번째 작품으로 원제가 <타인들의 나라 – 전쟁, 전쟁, 전쟁>으로 2020년에 출간했다고 한다. 2022년에는 2부 격인 <춤추고 있는 우리를 좀 보세요>를 출간했으면 지금 2024년 출간 목표로 3부를 쓰고 있단다. 이것을 알았다면 2024년 출간하고, 그걸 번역해 완전한 3부작이 모두 시장에 나왔을 때, 한 번에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

<타인들의 나라>의 주인공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프랑스-독일 접경지역인 알자스 출신 여성 마틸드와 모로코 출신 2차대전 참전 장교 아민이다. 아민은 1940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 수감된다. 수용소에서 홀로 탈출에 성공해 남부 독일의 검은 숲에 숨어 지내다 귀환에 성공해 모로코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다시 대위 계급을 달고 유럽 전선에 투입된 아민은, 프랑스 입장에서 조국해방전쟁의 최전방에서 독일로 동진을 거듭, 알자스에 주둔할 때 열여덟 살의 마틸드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모든 처녀 중 가장 키가 크고 어깨가 딱 벌어졌으며 장딴지가 남자 아이처럼 단단하면서도 초록색 눈을 가진 매력적인 아가씨. 남자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로마 가톨릭 신자 마틸드와 이슬람인 아민은 장소가 프랑스이니만큼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아민의 아버지 카두르 벨하지는 프랑스 말을 잘 해 식민지 주둔 부대의 번역자로 돈을 벌어, 그걸 갖고 자갈투성이 몇 헥타르 땅을 매입한다. 이 땅의 소출로 후손들이 대대손손 먹고 살 수 있는 번창한 경작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안은 채. 그러나 불과 4년 후, 세상을 뜨고 만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 중에서도 오직 땅과 땅을 어떻게 경작할 것인지 만을 생각하던 아민은 비록 프랑스 처녀와 혼인은 했을지언정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으로 돌아갈 것임은 명백하다. 그는 전쟁 중 알자스에서 늘 외국인,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임시 체류자 신분으로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전쟁이 끝나자마자 아민은 먼저 모로코로 향하고, 마틸드는 홀로 알자스-스트라스부르-알제를 거치고, 알제에서 낡은 융커스 기를 타고 모로코의 리바트에 도착, 남편을 만나면서, 세상 천지에 아는 사람 한 곳 없고, 모든 문화가 낯설기 그지없는, 유럽인의 시각으로 보면 야만인과 잔인한 자들의 난장판인 아랍 세계로 들어선다. 이제 알자스에서 아민이 겪었던 소외를 마틸드가 전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환경, 문화의 역전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

이쯤에서 레일라 슬리마니의 가계를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슬리마니의 외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모로코 부대의 장교로 참전한 라흐다르 도브. 이이는 독일 국경을 향해 동진을 거듭하다가 1944년 알자스의 한 마을에서 프랑스 중산층 여성 안 루에츠를 만나 결혼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젊은 부부는 모로코로 이주해 정착하고, 훗날 안 루에츠는 모로코의 최고 명예 훈장인 위삼 알라위트 훈장을 받는다고 한다. 책 뒤에 실린 작가 연표에 나온 자료다. 라일라의 아버지는 오스만 슬리마니로 모로코의 은행가이자 경제부 장관을 지닌 고위 공무원이며 어머니 베아트리스는 프랑스-모로코 이중국적자로 모로코 최초의 여성 전문의라고 한다. 외할아버지 내외는 당연히 <타인들의 나라>의 두 주인공 마틸드와 아민을 떠올리게 되며, 어머니는 두 주인공 사이의 맏딸 아이샤와 비교할 수 있다. 작중 아이샤는 이슬람의 땅에서 기독교를 믿는 프랑스인 학교를 다니는데, 학업 성취가 워낙 뛰어나 비록 학급에서는 반쪽 프랑스 아이로 왕따를 당하지만 월반을 할 정도로 똑똑하며, 어머니 마틸드로부터 인체와 치료에 관해 상당한 관심을 쏟는 환경을 만나, 책을 읽으면서도 이 아이는 나중에 의사가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타인들의 나라>를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와 연결시키지 않고 작품 그대로 읽는다면, 알자스 억양을 강하게 쓰는 프랑스 아가씨가 낯선 문화, 낯선 정도를 넘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문화권인 모로코의 벽촌 중의 벽촌에 거주하면서 마주쳐야 하는 문화충돌로 읽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게 더 바람직할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한 “어떤 의미”라는 건, 이 작품을 대하소설의 삼부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할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쉽게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작중 초반에 마틸드가 딸 아이샤를 낳을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초점의 일부분이 아이샤를 향하면서 책의 후반부에는 아이샤가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비록 후반부가 아니라 다음 권에서 그렇게 되겠지만.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전쟁, 전쟁, 전쟁>이라는 건 위에서 말했다. 물론 실제적인 전쟁이 나온다. 2차 세계대전. 그리고 모로코 독립전쟁. 이것만? 글쎄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모로코, 이슬람 국가 내에서 배우지 못하고, 나서지 못하고, 항상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매번 남성에 의하여 모든 것이 결정되는 여성들의 의식 발전이, 비록 조금씩이나마 싹트기 시작한다. 물론 말 그대로 발아기發芽期라서 움트는 싹은 여지없이 짓밟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싹, 떡잎들은 2권으로 가면 (마틸드가) 여간해 모로코 국민이 아니라면 주지 않는다는 모로코의 최고 명예훈장을 받을 수도 있고, 아이샤는 모로코 역사상 최초의 전문의로 이비인후과 의사가 되기도 하겠지만, 1권에서는 여지없다. 프랑스인 커뮤니티 안에서는 더러운 아랍인과 결혼한 여인으로, 아민이 프랑스 해방전쟁에 참전해 부상을 입고 프랑스 훈장의 서훈자가 얻은 기묘한 전리품 정도로 여긴다. 아랍인들에게는 희한하게도 문자를 읽고, 해석하고, 쓸 줄 아는 “여자”, 모로코 사람들을 지배해온 식민자와 같은 혈통을 가진 타도대상일 수도 있다. 집안에서도 거의 결정권이 없고 여차하면 남편 아민에게 얻어터져 눈자위가 보라색이 되거나, 코뼈가 부러져 권투선수의 코를 달고 다니게 되거나, 구타를 당하지 않더라고 이는 전적으로 딱 그 순간에 아민을 자제시킨, 위대한 알라 덕택인 사회이다.

여기에 들불처럼 번지는 모로코 독립전쟁. 프랑스 총독과 관리들은 프랑스가 없었으면 모로코는 절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자이며, 농촌마저 지금처럼 개간하고, 오렌지와 올리브를 심어 수확을 올리게 된 것 역시 전부 프랑스 식민자들이 움집에서 살며 연구하면서 노동을 한 덕택이 아니냐고, 공동묘지에서 여우가 해골 파먹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비록 비시 괴뢰이긴 했지만, 프랑스 정부가 레지스탕스를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던 시절이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왜 모로코의 해방을 위한 프랑스인을 향한 폭력을 1대 10, 하나를 당하면 열을 갚아주는 식으로 보복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굳이 이런 모든 정치 현상을 모른 척하고 싶은 프랑스인, 모로코인을 남편으로 둔 프랑스 여성. 그를 향해 점점 조여오는 폭력의 느낌. 이런 것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

딱 한 마디로 감상을 이야기하자면, “역시 슬리마니.” 아쉬운 건 삼부작 가운데 첫번째 작품이라 다 읽으면 갑자기 허탈해지는 느낌이, 많이는 아니고, 조금 든다는 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한살이를 찬미한다.

“타버려. 사라져버려. 죽게 내버려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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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1-24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 네 개 반은 없나?

coolcat329 2023-01-2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삼부작 중 1권이군요.
저노 <달콤한 노래> 너무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었는데, <그녀,아델>은 또 손이 안가더라구요. ㅎ

별 반 개 저도 되면 좋겠어요~^^

Falstaff 2023-01-24 13:55   좋아요 1 | URL
저도 아델은 안 읽었는데, 올해 안엔 꼭 읽을 겁니다. ^^

moonnight 2023-01-24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슬리마니의 책이었군요@_@; 나온 줄도 몰랐네요@_@; 그녀의 책을 세권 읽었는데 이 예쁜 아가씨가 쓴 책들이 벌벌 떨리게 무섭ㅠㅠ;;; 일단 (두려움을 누르고) 보관함에 넣어봅니다. 덜덜;;;;;

Falstaff 2023-01-24 13:57   좋아요 1 | URL
아델도 덜덜... 입니까? ㅎㅎㅎ 이 책에선 그런 장면은 없습니다. 작품을 재미나게 쓰더군요. ㅎㅎㅎ

moonnight 2023-01-27 19:25   좋아요 1 | URL
네 아델 덜덜 ㅠㅠ;;;;;;

yamoo 2023-02-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별 다섯개 출현이네요...슬라마니라뉘...이것도 구매목록 추가...
으아~~도대체 몇권을 더 사야하는지...ㅠㅠ
 
에데시 언너
코스톨라니 데죄 지음, 정방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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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코스톨라니 데죄는 188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헝가리 쪽 영토인 서버드커에서 태어났다. 부계, 모계 공히 훌륭한 전통 가문을 자랑했다고 하는데, 아버지는 김나지움의 수학, 물리학 교사/교장이었고, 어머니는 독일계 약국 집 딸이었다. 서버드커는 현재 지명으로 수보티차, 라고 하며 세르비아 영토에 속한다. 고향에서 사춘기적 비행시절을 겪으며 김나지움까지 다니고 두 학기를 부다페스트, 또 두 학기를 빈에서, 이렇게 2년 동안 대학에서 철학과 독문학을 공부하지만 중도 작파하고 언론인의 길을 걷는다. 기자로서의 특징은 자유주의, 보수주의, 천주교, 마르크스주의를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기고한 점이었다. 이는 작가 스스로가 종교적으로는 가톨릭,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쪽에 관심이 많았던 결과로 보인다. 정확한 거 아니고 내가 짐작하기에 그렇다. 185cm의 완벽한 키와 근육질 체질로 1차 세계대전에 징집을 당했지만 징집 장소에 밝은 색의 영국 슈트와 노란 넥타이를 매고 서 있다가 대령(연대장쯤 되나 싶다)에게 시와 연극 경력이 담긴 명함을 건네는 바람에 부적격자로 판명되어 최후의 돌격전이자 최초의 장기 참호전에서 총알받이가 되는 팔자를 모면할 수 있었다.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고, 1936년에 쉰한 살의 나이로 천국의 즐거움을 찾아, 갔다.

코스톨라니의 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각기 다른 나라가 된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당시의 헝가리 정세를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 1914년 8월에 시작한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에 콩피에뉴에서 독일제국과 협상국 대표가 모여 종전 협정에 인감도장을 찍으면서 끝난다. 독일제국에서 분리된 헝가리에서는 즉각, 1918년 11월 16일에 헝가리 공화국을 선포한다. 카로이 미하이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국 정권은 반년을 견디지 못하고, 1919년 3월 21일 부다페스트의 실업자들을 주축으로 혁명이 일어나 쿤 벨러가 전권을 쥐고 적군, 붉은 군대를 창설하며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하지만, 1919년 7월 31일에 호르티가 정변을 일으켜 헝가리는 다시 로마 가톨릭의 교왕이 수여하는 왕관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어깨에 힘주는 “사도의 왕국”으로 회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이 벌어진다. 우습게도 이 사도의 왕국은 2차 세계대전 발발 때까지 유지되기는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또다시 독일에 복속했다가 이후 4십여 년 동안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가 노릇을 해야 했다.

쿤 벨러가 집권했던 짧은 시기, 몇 달 동안 공산주의 국가들이 펼쳤던 유감스러운 일들이 당연히 헝가리에서도 발생해서 비밀경찰과 붉은 군대, 종업원 20인 이상의 모든 기업의 국유화, 부르주아의 재산 몰수, 금융과 교육기관 국유화, 토지 개혁 등을 “시도”했고 이 와중에 <에데시 언너>의 무대가 되는 부다페스트 어틸러 거리 238번지 3층 고급 주택의 주인인 비지 코르넬 씨처럼 20년간 공직생활을 하고 현재 국장의 지위에 있던 사람들은 “잠정적”이란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한 순간에 실직을 하고 만다. 대신 헝가리라는 영토와 국가가 생긴 이후 단 한 번도 역사책에 이름을 올려본 적이 없던 하녀 커티처 양은 노골적으로 비지 씨와 비지 부인의 지시와 요청, 심지어 간청을 아랑곳하지 않고 밤이면 밤마다 또는 밤새도록 붉은 군대의 병사나 마도로스 청년들과 연애하기에 날 가는 줄 몰랐고, 심지어 비지 부부는 생각조자 할 수 없었던 것인데, 남자를 데리고 집안에 들어와 새벽에 보내는 일도 잦았다.

커티처 양보다 더 위세를 떨쳤던 인물이 있었던 바, 일찍이 20여년동안 공산당 당원으로 당비를 꼬박꼬박 냈다고 주장하는 어틸러 거리 238번지 건물의 관리인 피초르 씨. 이이의 주장은 분명히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일손이 모자랐던 공산정권은 이런 이들의 주장을 모르는 척해서 자잘한 일손과 필요한 정보 수집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인데, 문제는 그동안 집 주인 혹은 집에 정당하게 세를 들어 사는 사람들이 누리던 권리를, 여태까지 방바닥에서 1.2 미터 정도는 습기가 차 물방울이 맺힌 벽으로 둘러싸인 지하실에 살면서 밟으면 찍소리 하지 않고 밟히는 대로 살던 피초르 씨가, 그들의 권리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 하고 안면 싹 몰수해버렸다는 거다. 그렇다고 불만이나 불평은커녕, 오히려 당원 중에서도 골수당원, 귀족이라고 같은 귀족이 아니라 수백년 전통이 있는 진짜 귀족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듯이, 자칭 골수당원의 눈 밖에 나서 그로 하여금 공산당 정권에 가서 쓸데없는 주둥이질이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해야 했으니 이게 사람 사는 꼴일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부르주아들의 입장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몇 달 새 벌어져 피곤했던 바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거꾸로 매달아도 시계바늘은 돌아가는 것이라 드디어 1919년 7월 31일이 도래했고, 혁명 정부의 수반 쿤 벨러를 태운 비행기가 소비에트들이 머무는 본부로 사용했던 ‘헝가리’라는 이름의 호텔에서 날아 올라 낮게 비행해 가는 장면으로 소설을 시작하니, 부르주아들의 기쁨이야 말로 해 무엇하겠는가. 그러나 정장 쿤 벨러는 비행기 안에서 언제나의 모습처럼 창백한 안색에 수염도 깎지 않은 얼굴로 나 없이 잘 해보라는 심술이 가득한 것이 분명한 히쭉거리는 웃음으로 조국과 국민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그의 가방 속에는 마음 여린 귀족 부잣집 사모님들을 은근히 협박해서 억지로 선물로 받은 제르보 빵집의 고급 과자, 액세서리와 보석들, 성당 제단에서 쓰는 고급 촛대 등의 귀중품으로 터질 듯했다는 걸 아는 헝가리 국민들은 별로 없었을 걸?

공산주의 정권이 물러나자마자 기세가 오른 비지 씨. 그는 초인종을 당기는 대신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로 하녀 커티처를 부르는데, 그동안 수없이 여러 차례 초인종을 고쳐 달라고 관리인 피초르 씨에게 부탁했지만 귀에 못이라도 박았는지 일체 대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혁명의 소식을 듣지 못한 커티처는 주인의 요구를 잠깐 들어주는 시늉만 하더니 또 금방 데이트하러 날라버리고, 부르지도 않은 피초르 씨는 스스로 찾아와 “인자하신 어르신. 충실한 하인입니다. 존경하는 국장님!” 운운하면서 재까닥 초인종을 고쳐주기에 이른다. 당연하지. 세상이 변했으니. 이러니 어떻겠는가. 비지 씨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비지 부인은 더 이상 ‘상전같은 하녀’ 커티처를 해고하지 않고 참아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건 피초르 씨도 마찬가지. 이를 눈치챈 피초르는 자신의 처조카, 빌러톤 호수 지역에서 온 처녀이자 농부의 딸을 만성 신경성 위궤양에 시달리는 비지 부인에게 데려오겠다고 하면서 점수를 따는데, 당시 부다페스트 지역에서 하녀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초르 씨가 데려오기로 약속을 한 처녀가 바로 언너. 에데시 언너. 그는 1916년에 부다페스트로 와서 창고지기 빌트 씨와, 재무공무원 버르토시 댁에서 각 1년 반을 가정부로 일했는데, 아무런 하자도 없는 가정부를 이제 국장의 자리에 있는 천생 공무원 비지 씨의 댁에서 ‘강탈’ 비슷하게 빼앗아 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비지 부인이 열을 받아 자기도 모르게 웬수 같은 커티처에게 해고 통보를 해버렸으니. 이 책이 모두 468 페이지인데,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앞으로 인간이 아닌 하녀라는 물건, 로보트, 일하는 짐승의 처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대우를 받을, 갸름한 얼굴과 고운 두상, 균형 잡히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매우 마른 몸매, 낮고 작은 앞가슴, 그리고 앞으로 여주인의 조카에게 상실할 처녀성을 가진 완벽한 하녀, 우리의 에데시 언너가 98쪽에 이르러서야 부다 지역 어틸러 거리 238번지의 3층 주택에 등장한다.

서보 머그더의 <도어>에서 나오는 독특한 주인공 에메렌츠가 직업이 하녀여서 그런지 헝가리 하녀, 하면 자동적으로 에메렌츠가 떠오르는데, 에데시 언너는 맡은 일을 완벽하게 잘 한다는 것 말고는 에메렌츠와 비슷하지 않다. 한 인간을 하녀라는 이유만으로 불쌍해서 못 볼 정도로 "야비하게" (주의: '야비하게'다, 잔인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이런 종류는 아니다) 대우하는 상류층. 겉으로 보면 호의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안으로는 무한한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부르주아는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이것은 일단 나만 아는 것으로 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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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1-21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헝가리 영토에서 태어났으니 헝가리 사람이겠죠?

그나저나 이 책은 리뷰를 읽어도 구매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몰겠네요...동구권 소설들은 대체로 좋긴 한데, 문트 님 압도적인 한줄 멘트가 없어 아쉬운데, 덧글로 달아주세요..ㅎㅎ

뽈스타프 님 새해에도 좋은 책 소개 많이 부탁드립니다. 늘 건강하셔요~~

Falstaff 2023-01-22 05: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휴, 제가 뭐라고 책을 사라, 마라 할 수 있습니까.
이 책, 시작은 공산주의 지도자 쿤 벨러가 비행기 타고 망명하면서, ˝나 없이 한 번 살아봐라.˝라고 시작하는 바람에 뭔가 크고 재미있는 그림을 그릴 줄 알았다가, 한 건물로 무대가 축소되는 바람에, 물론 가족-친척-이웃이 국가의 축소판이긴 합니다만,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국 시녀 이야기로 끝나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게 좋을 듯하네요.
야무 님도 올해 늘 건강하세요. ㅎㅎㅎ
 
청부 살인자의 성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5
페르난도 바예호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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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 메데인 시 보스톤 동네 페루 거리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바예호는, 우연인지 의도를 했는지 작품 <청부 살인자의 성모>의 주인공 ‘나’, 페르난도하고 출생지와 이름이 같다. 이후 부모의 집과 엔비가도에서 사바네토 오는 길 왼쪽에 있는 외할아버지의 농장 ‘산타 아니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것까지 똑같다. 바예호는 아홉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는데, 많고 많은 동생들에게 질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작 속에서 인간, 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유별난 생식력에 끊임없이 저주를 퍼붓는다. 바예호는 콜롬비아에서도 대단한 부유층에서 낳고 자란 것 같으니까 당연히 자신이 속한 계급의 다산성은 저주에서 제외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참 다양하게 다니며 졸업을 했고, 대학도 메데인 대학 법학과, 콜롬비아 국립대학 철학 및 문학, 로스 안데스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다시 볼리바리아나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하면서 하여간 연표에 표기되어 있는 것을 기준으로 졸업은 하지 않았다.

22세 때 처음 미국 여행을 하고, 23세 되던 1965년부터 1년 4개월 동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에 체류했다니까, 그게 누구 돈이겠어? 부모 잘 만났다. 스물여섯 살 때는 동생의 돈으로 보고타에서 콜롬비아를 내전의 파도로 휩쓸어버린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 암살사건에 관한 기록영화를 촬영하는데, 사실 이이의 내력을 보면 영화 쪽으로 더 유명세를 탔다. 1971년 바예호는 열 달의 뉴욕 생활을 거쳐 멕시코시티로 건너가 이후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등 멕시코 영화계에 발을 들여 놓아 1980년엔 전년도에 촬영한 <붉은 연대기>로 멕시코의 아리엘 영화상을 받지만 조국인 콜롬비아에서는 상영이 금지된다. 그의 첫번째 소설은 마흔세 살이던 1985년에 출간한 <푸른 나날들>.

콜롬비아에서 집안에 돈 좀 있고 재주도 있는 사람 가운데 젊은 시절을 국내에서 콜롬비아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기로 결정해서 나날이 절차탁마, 백두산석마도진 한 유명인을 아시는 분은 거수 바람. 20세기 후반을 살았던 콜롬비아 사람들, 특히 수도 보고타와 제2의 도시 메데인에 사는 부유층들은 자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북아메리카와 유럽 각국의 교육기관을 알아보기 시작해 거의 대학 재학 중에 유학을 보내버린다. 콜롬비아가 워낙 지옥의 불가마 같아서 좋은 신발 신고 외출했다가 나이키 신고 싶어하는 청(소)년의 눈에 띄어 눈 먼 권총 총알에 이마를 관통 당할 수도 있는 지경이었으니,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 같아도 그렇게 하겠다. 이게 다, 앞 문단에서 얘기했듯, 바예호가 동생 다리오의 돈으로 만든 기록영화의 주인공 가이탄이 암살된 후, 보수와 진보로 갈려 시작한 내전 상태, 이 혼란의 와중에 세계 최고의 마약 카르텔까지 섞인 지상 최대의 난장판이 무려 칠십여 년 이어져 생긴 일이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집안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 유명해졌고, 돈도 많이 벌었고, 그러다보니 콜롬비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똑 떨어져, 멕시코시티에서 살다가 죽었다. 페르난도 바예호 역시 무려 47년간 멕시코에서 살았다. 나중에 멕시코 국적을 얻었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콜롬비아 출신의 멕시코 사람이다. 나중에 필생의 연인이랄까, 동반자랄까,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를 다비드 안톤(액센트는 ‘톤’에 있습니다)이 죽자 47년의 멕시코 생활을 마치고 2018년, 그의 나이 76세, 영화와 문학에 종사하는 멕시코 사람이 되어 콜롬비아로 귀국한다. 이것마저 작중 ‘나’와 거의 비슷하다. 평생 외국 생활을 하다가 외국 국적을 갖고 모국인 콜롬비아에 돌아와 메데인 거리에서 별 해괴한 짓을 벌이는 늙은이. 직업만 문법학자로 바뀌었을 뿐. 심지어 게이인 것도 같다.

작품은 엔비가도에서 오는 길 왼쪽에 있는 산타 아니타 농장에서 띄운 풍등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기억하기를 안티오키아의 하늘에서 본 것 중 가장 큰 풍등. 120개 주름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큰 마름모 꼴의 빨간 종이 풍선 속 촛불 하나. 이 촛불로 데워진 따뜻한 연기로 하늘 높이 올라가는데, 풍등을 하늘로 올리는 연기는 그들의 영혼이요, 풍등을 예수의 성심처럼 고동치면서 불타는 가슴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게 만드는 촛불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비유하는 장면을 읽으면, 앞으로 벌어질 청부 살인자에 의한 연쇄 살인을 감히 생각도 못할 정도로 서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서정의 뒤를 이어 곧바로 연상하는 것은 콜롬비아의 폭력성. 풍등은 하늘로 날아 어떻게 됐을까? 타버렸을지도 모른다. 예수의 성심처럼 하늘로 날아가게 한 촛불 하나로도 타기 쉬운 재질인 종이를 순식간에 화르륵, 태워버리기에 너무도 충분할 터이니. 마치 1948년 4월 9일, 한 자유주의자의 척추에 박힌 불꽃 하나가 나중에 콜롬비아를 불태우고 ‘그들’을 불태우는데 충분했던 것처럼. 말은 ‘한 자유주의자’라고 했으나 자유주의자의 대표이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였던 호르헤 엘리에세르 가이탄을 말한다. 상세한 걸 재미있게 읽으시고 싶다면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작 <폐허의 형상> 참조하시라.

주인공 ‘나’는 수십년 동안 콜롬비아에 살지 않았고, 이제 늙어 죽기 위해 메데인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한다. 아마 필생의 연인(다비드 안톤, 액센트가 어딨다고요?)이 자신을 두고 먼저 명을 다한 것에 심상하여 가운데 중中, 중등도의 우울증에 시달렸던 거 같다. 자신은 정말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노인성 우울증 환자. 콜롬비아식 조폭들이 총격전을 벌이는 와중에 납작 엎드리지 않고 고개를 발딱 든 채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직립보행을 멈추지 않는 노인. 이게 바로 ‘나’다. 차에 치고 폭우에 떠밀려 하수도 망에 걸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개에 총을 쏴 조금이라도 더 편한 죽음을 맞게 하고는 곧바로 자신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돌릴 수 있는 노년의 남자.

이 늙은이가 먼 시절의 친구 호세 안토니오 바스케스(흠. 이름이 수상해. 또다른 콜롬비아 귀향작가하고 같은 성씨다)의 아파트를 찾는다. 호세는 ‘나’에게 이미 죽인 사람만 족히 열 명은 될 아름다운 사람을 선물로 준다. 알렉시스. 콜롬비아 사람의 이름이 알렉시스라고? 그렇다. 그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은 자식에게 부자나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 혹은 외국 스타일의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 아이들은 대개 열두 살부터 열 다섯 살, 아무리 많아도 열일곱 살을 넘지 않은 청부 살인자가 되기 십상이라 한다. 원래부터 청부 살인은 청년도 아닌 청소년이 하는 것이라고. 거의 대부분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다른 청부 살인자의 손에 의해 죽음을 맞으니까. 친구 바스케스는 알렉시스에게 ‘나’를 나비의 방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고, 나비가 한 마리도 없이 커다란 침대만 있는 나비의 방에서 ‘나’와 아름다운 외모의 알렉시스는 첫 게이섹스를 치룬다.

다음날부터, 밑도 끝도 없는 폭력의 연속. 때와 장소를 가리지도 않고 대상도 특별하게 정하지 않는다. 라디오에서 쏟아져 나오는 유행가 볼륨을 낮춰 달라는 말에 격분해 오히려 최대로 볼륨 업을 해버리는 택시 드라이버의 이마에 사제가 재의 십자가를 긋는 바로 그곳에 작은 총알 구멍을 내버리고, 만일 이 장면을 본 증인이 있다면 그 증인의 이마에도 같은 피의 십자가를 그어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이유없이 죽이고, 재수없다고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다. 어디서 본 거 같지? 그렇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장편소설 <2666> 4부, <범죄에 관하여>. 대책없이 이어지는 살인, 강간. 이것을 합해 강간살인. 페르난도 바예호는 알렉시스의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는 짓을 볼라뇨만큼 상세하고 장황하게 쓰기 싫어서 나중엔 그냥 250명가량 해치웠다고만 하는데, 아이고 이 양반아, 독자는 하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눈이 다 지물지물해졌다.

이왕 볼라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미 볼라뇨를 충분히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굳이 바예호의 책까지 돈 주고 사서 비슷해 별로 다를 것 없는 이야기까지, 지극히 건전하지 못한 피 튀는 장면을 상상해 스스로 자, 상할 해, 정신적 자해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러나 당연히 개인 기호가 다를 터. 뭐 있는 척해가면서 되는 대로 마구 쏴 죽이는 장면의 애호가들은 읽어봄직하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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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1-19 1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감사합니다~
바예호를 살까 망설였는데, 마지막에 아주 적절한 조언을 주셨네요..ㅎㅎ
볼라뇨 전집을 갖고 있어요. 충분히 읽지는 않았지만 어느 느낌인지 알겠어요..ㅎㅎ
아주 간단히 패수하겠습니다요~~!

Falstaff 2023-01-19 13:36   좋아요 0 | URL
볼라뇨 읽으셔요. 이런 종류의 책은 볼라뇨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coolcat329 2023-01-19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얇길래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다가 너무 진도가 안 나가 포기하고 다시 반납했습니다. 글이 잘 이해가 안가서요... 😥 저는 볼라료도 읽을 일이 없는데 ㅋ 좀 더 내공을 쌓은 후 기회되면 다시 도전을 해볼까합니다.

Falstaff 2023-01-19 13:35   좋아요 0 | URL
그리 중요한 작품 같지는 않더군요. 저는 첫 부분의 서정적인 묘사가 참 좋아서 막 기대를 하고 그랬는데 점점 가면 갈수록 피가 철철 흘러서 좀 그랬습니다.
바스케스가 쓴 <폐허의 형상>이 장황하지만 이 책보다는 좀 더 좋은 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