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 프리즘 총서 29
조르주 캉길렘 지음, 여인석 옮김 / 그린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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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연초에 존경하는 후배님한테 책 소개를 받았다. 과학사에 관심이 많은 그이는 줄곧 이 방면으로 독서를 하고 있다. 내가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알고 있는 그이는 우정 전화를 해 프랑스 과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조르주 캉길렘의 저작 《캉길렘의 의학론》이 작년에 출판사 그린비에서 세브란스 출신의 여인석 번역으로 나왔으니 읽어보면 좋겠다고 권했다. 역자 여인석은 연세대에서 박사를 하고, 파리 7대학으로 유학해 서양고대의학에 관해 연구해서 과학사 인식론으로 박사 학위를 한 번 더 받은 인물이다.

캉길렘은 1904년에 태어난 프랑스인으로, 1924년 스무 살 때 고등사범에 입학해 사르트르 등과 동기생이 된다. 27년에 철학 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해 여러 고등학교에서 철학 교사로 지내기도 했는데, 이 시기부터 캉길렘은 다시 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철학자로서 작가는 1941년에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출강해 55년에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후임으로 소르본으로 옮겨 역사 인식론을 강의하다 나중엔 학과장까지 역임한다. 소르본에서 71년까지 16년간 후학을 가르치다 은퇴하고, 95년에 천국의 기쁨을 찾아 91세의 일기를 끝으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고, 라기 보다 후회없이 살다가 세상을 떴다. 의학자로의 캉길렘은 전시였던 1943년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는데 이 때 논문이 오늘 소개하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이었다. 사회적으로의 저자는 또한 비시 괴뢰정부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니 40년 6월에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하고부터 43년 의학박사 학위를 얻을 때까지는 한편으로는 저항군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의학생으로 연구에 몰두했을 것이다. 참 난 사람이다, 난 사람.

역자 여인석이 프랑스에 유학할 당시 캉길렘을 읽고 자신은 의학자이며 철학자, 저자는 철학자이며 의학자라는 우연의 조우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캉길렘은, 내게 전화를 해주었던 후배님은 프랑스 학파와 영미학파의 차이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런 거 같지는 않고, 유럽의 학자 대부분과 달리 대단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아주 적은 저술만 남기고 갔다. 소개받은 《캉길렘의 의학론》은 작자가 잡지 이곳 저곳에 기고한 컬럼이나 소논문을 저자의 후배, 제자들이 추려 출간한 것으로 분량도 상대적으로 적고 이해하기도 수월한 편인 것 같다. 나는 캉길렘의 도서 목록을 화면에 올려놓고 어떤 것을 읽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소개받은 《캉길렘의 의학론》을 일단 책방 보관함에 저장을 한 후, 이왕 읽으려면 이이의 첫번째 저작, 그러니까 의학박사 학위논문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싶어서 바로 다음날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하고 2월 들어 읽었다가, 코피났다. 기껏 소개를 해주었으면 소개받은 바로 그 책을 골라야지 내가 과학사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잘난 척을 해 겁도 없이 박사학위 논문을 읽느냐는 말이지. 논문에 얼마나 얻어 터졌는지 심지어 이 책 말고 다른 책에도 손도 대고 싶지 않아서 그냥 술만 마셔서 취하면 자고, 또 취하면 다시 또 자고, 한 삼사일 취생몽사했다.

내가 줄기차게 주장한 것 가운데 하나는, “철학이라는 학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얼마나 일반대중이 알아듣기 어렵게 서술할 수 있는지를 광고하는 공부”라는 거다. 아니라고? 좋다, 아니라고 치자. 그건 양보를 했다. 그럼 학위 논문이라는 거에 대하여. 학위 논문이라고 함은 ①같은 공부를 하고 있거나 ②이미 했거나, ③앞으로 할 예정으로 특정한 학문에 깊은 관심이 있는 심각한 딜레탕트, 이 세 부류를 위한 전문인만의 리그다. 이 리그 안에 들어 있거나 반쯤 발을 담근 사람들이 아니면 읽으면서 세종임금의 훈민정음 말씀대로 “제 뜨들 실어 펴디 못할 노미 하니라”. 아무리 철학과 의학과 역사를 합친 캉길렘의 논법이 되도록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되었다 하더라도. 이이의 책이 그나마 알기 쉽게 쓰였다는 건 이해하겠다. 근데 독자가 책을 읽으며 주장하는 것을 즉각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책을 읽다가 죽을 똥을 쌌는데, 책의 결론을 소개해도, 정말 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는 거의 없을 거 같아서,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그리하여 결론부 일부를 소개한다. 조금 길더라도 양해해주기 바란다.

“생리적 상태는 정상 상태라기보다는 건강한 상태이다. 이것은 새로운 규범으로의 이행을 가능케 한다. 환경의 변동에 대해 규범을 정할 수 있는 한 인간은 건강하다. 생리적 상수들은 생명체에 가능한 다른 모든 상수들 가운데에서 추진적인 가치를 지닌다. 반대로 병리적 상태는 생명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생명 규범의 폭이 감소했음을, 즉 이미 성립된 정산이 질병에 의해 불안정해짐을 나타낸다. 병리적 항상성은 반발적이고 엄격하게 보수적인 가치를 지닌다.”

위 인용문은 이해하기 쉽다는 캉길렘답게 정말 이해할 수 있다. 단, 문장을 천천히, 여러 번 읽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그게 맞다. “규범”과 “생리적 상수”, “추진적인 가치”, “이미 성립된 정산” 이런 단어나 구句의 정의는 이미 앞에 나와 있는 것들이지만 그걸 다, 온전히 정의해 머리속에 보관하고 있어야 인용문을 읽으면서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평소에 철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정체를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는 독자가, 과학사라는 벌판에 처음 서서, 감히 한 위대한 철학자이며 의학자가 쓴 박사학위 논문을 읽겠다고 덤볐으니, 꼴 좋게 됐다. 그저 추천해주면 추천해준 책을 읽지 뭐 잘났다고 책을 고르고 자시고 해서 말이지.

지금 책을 옆에 놓고 독후감을 쓰고 있으면서, 어떻게 사서에게 반납을 해야 할지 답답하다. 언제나 반납하면서 “잘 읽었어요.”라고 인사를 했는데, 이 책에 관해서라면 감히 그렇게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그렇다. 에휴, 이 책도 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산 거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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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02 0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고생하셨습니다.ㅎㅎ
저는 저 인용문장도 와닿질 않네요.
철학에 대한 골드문트님 생각 정말 ㅋㅋ 맞네요. 넘 어려워요.
그래도 골드문트님 정도 되시니 이런 책도 도전하시고 역시 짱이세요!

Falstaff 2023-03-02 07:37   좋아요 1 | URL
아이그... 무슨 말씀을.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 걸요. 철학은 넘 어려워요.

다락방 2023-03-02 09: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골드문트 님 ㅋㅋ 글 너무 재미있어요. 골드문트 님이 읽으셨다는 논문은 재미없을 것 같지만, 그 논문 읽은 골드문트 님의 리뷰는 재미있습니다 ㅎㅎ

Falstaff 2023-03-02 11:22   좋아요 0 | URL
앗, 그러셨습니까! ㅎㅎㅎ 기분 좋습니다. 어깨가 으쓱으쓱.

바람돌이 2023-03-02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소개해준다고 이런 책도 읽어주는 골드문트님의 우정에 눈물이 납니다. 역시 골드문트님은 훌륭한 분이세요. 저는 얼마전에 소설 한권을 사랑하는 후배에게 소개받았는데 3분의 1 읽다가 취향 아니라고 집어던져버리고 말았는데 말입니다. 앞으로 골드문트님 살신성인의 자세를 본받도록 노력해야겠슴다. ^^

Falstaff 2023-03-02 12:49   좋아요 1 | URL
아휴, 살신성인이니 본받으시겠다니, 말씀이 무거워 어깨를 누릅니다. 흑흑....

잠자냥 2023-03-02 1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 친구는 나르치스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3-02 12:50   좋아요 2 | URL
무지하게 진지한 사람입지요.
대단한 술꾼이었습니다만 한 방에 술도 딱 끊어버린 놀라운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ㅎㅎ
그러고보니 나르치스와 비슷한 족이겠네요.

그레이스 2023-03-02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골드문트님 글 오랜간만에 읽는 것 같은데, 이 책 때문인가요?
아님 제가 못본 글이 있는지도...^^
암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도 약간은 취기가 느껴지네요^^

Falstaff 2023-03-03 05:44   좋아요 1 | URL
앗, 이 독후감은 대낮에 도서관에서 쓴 건데 취기가... 아무래도 알코올 의존증이 점점 심각해지는 거 같습니다. 지금도 어제 마신 술이 덜 깨서리 어질어질한데.... 흑흑흑...
 
무엇이든 가능하다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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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지 19일이 지났다. 그리고 열흘 넘어 “책읽기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이후 캉길렘과 헤밍웨이를 그저 들춰봤을 뿐. 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나는 왜 이런 식으로 책을 읽을까. 숱한 선량한 사람들이 읽고 등장인물의 처지, 환경, 생활이라는 삶에 가슴 절절하게 공감해, 선량한 마음으로 주변인들에게 권하는 작품, 이것을, 작가가 말하는 의도대로 따라가지 못하거나 그렇게 안 하는 건 어쩌면 천성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새 작품을 감상하기보다 조각조각 뜯어보려는 건방진 마음에 사로잡혀버렸는지도. 하나하나 다 아픔과, 상처라는 아픔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것보다 이야기들의 상투성을 먼저 발견하는 야박함이라니. <…루시 바턴>에서 벌써 “이야기의 상투성”을 말했고, 스트라우트를 그래도 읽는 건 문장 때문이라고 결론을 낸 적이 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 역시 아픔 속의 아름다움(왜 아름다운 건 대개 아플까?) 이것을 발견하는 대신 누추한 추억(언제나 추억은 누추할 수밖에)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아름다움 쪽으로 끌고 가려는 것처럼 읽고, 그걸 구태여 남들이 다 보는 독후감에 그대로 썼다. 그리고 꼴난 독후감 이후 책 읽고 싶은 마음이 거의 사라졌고 읽히지도 않은, 이른바 슬럼프를 맞았다. 그게 19일 전이다.

남들이 다 볼 수 있는 독후감, 게다가 솔직히 말하건대, 남들이 좀 봐주었으면 바라기도 하는 독후감에 구태여 안 좋거나 덜 좋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 그것도 무수한 독자들이 바치는 찬사를 향유하는 책에 관하여. 아무리 잘 봐줘도, 내가 책, 그리고 작품을 이해하는 수준이 선량한 다중의 것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 좋은 독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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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우트는 2008년 발표한 <올리브 키터리지>로 2009년 퓰리처 상을 받는다. 상을 받고 10년 후인 2019년에 그동안 흐른 세월만큼의 나이를 더 먹은 올리브를 다시 등장시킨 후속작 <다시, 올리브>를 발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며칠 전에 읽은 2016년 작 <내 이름은 루시 바턴>도 예외가 아니라서 2017년에 이 책의 후속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내고, 2021년에는 심지어 다시 후속작으로 루시 바턴의 첫 남편인 윌리엄을 호출한 것처럼 보이는 <오, 윌리엄>까지 발표했으며, 이 삼부작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오, 윌리엄>이 삼부작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다시, 올리브>에서 볼 수 있듯이 제목에 쉼표가 하나 첨가되어 강조하고 있어 추측하는 것뿐이다. 스트라우트는 우리나라에서 벌써 만만치 않은 팬들을 지닌 인기작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제일 처음 읽은 스트라우트인 <올리브 키터리치>를 제일 좋았다고 기억한다. 어떤 작가가 있어서 70대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엄격하면서도 세상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뜻한 눈길로 사물과 사람을 볼 줄 아는 ‘현명한 늙은이’를 그릴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집단 PTSD를 다룬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 오늘 읽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보다 더 좋았다. <…루시 바턴>에서 PTSD 또는 이와 유사한 심정적 상처라는 주제를 설정했다. 그리고 후속작인 《무엇이든…》은 전작에 출연했던 등장인물들 주변의 사람들 역시, 그러니까 지금 숨쉬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누구나 심정적 내상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이야말로 이의 해소를 위한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루시 바턴>에서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윌리엄>을 조만간에 읽을 예정이지만 그것 역시 같거나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1부와 마찬가지로 작중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은 바턴 가 구성원이지만 부모는 이미 하직하고 이제 삼남매, 차례로 피트, 비키, 루시 만 남았다. 피트는 앰개시 카운티의 변두리에서 전작에서 별로 개선이 되지 않은 상태로 부모가 남긴 집을 지키면서 독신으로 궁색하게 살고 있고, 비키의 딸 라일라 레인은 이모를 닮았는지 매우 총명해 학업에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지만 전형적인 반항아 기질을 가지고 있는 삐딱한 십대로 성장했으며, 비키 역시 과체중을 넘어 고도비만 정도로 요양원에서 일하며 ‘불쾌한 비키’라는 뜻의 ‘익키 비키’라 불리고 있다. 즉, 손위 두 남매는 부모세대에서 전혀 개선되지 않은 사회적 루저의 위치를 보전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비키의 경우엔 딸 라일라가 대학에 진학하기만 하면 재수없는 앰개시를 떠나 대도시에서 (이모처럼)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비키 입장에서 대학에 보낼 수 없으니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장학금을 받은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루시는 이혼을 하고 재혼도 했으며, 작가로 이름이 나 이제는 회고록을 출간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대도시를 두루 돌아다니며 사인회 등을 개최하는데, 전작 <…루시 바턴>에서 루시와 함께 뒷골목 식당 쓰레기통을 뒤져 먹지 않은 스테이크와 케이크를 발견하고 기뻐했던 외가쪽 육촌형제, 지금은 에어컨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에이블을 만나 재회의 기쁨도 나누고, 아버지가 죽은 이후 처음으로 앰개시 본가에 들러 오빠 피트로 하여금 십여 년 만에 집안 대청소도 하고 깨끗한 러그도 사오게 만든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난 삼남매가 언제나 반가왔던 건 아니지만. 생각해보라. 십여 년 만에 만났는데 어떻게 친할 수 있느냐는 것을. 그냥 잘 살았어? 잘 있었어? 잘 지내지? 이거 세 개만 물어보면 더 뭔 할 말이 있다고. 그저 사이가 좋으려면 (물론 나쁘려면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가까이 또는 자주 얼굴 맞대야 한다.

이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다. PTSD는 이들 가족, 남매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다 그렇다. 친족 내 성폭행의 경험, 동성애를 딸에게 들키지 않을까 싶어 숲 속으로의 외출을 금지시키는 아버지,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PTSD에 시달리는 가난한 가장인 바턴 씨와 바턴 씨 부부의 (어린 남매가 생각하기에) 끔찍한 성생활, 계부가 어린 의붓아들에게 가한 성폭행,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의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고등학생 시절 위경련으로 조퇴를 하고 일찍 들어간 집에서 어머니와 스페인어 교사 딜레이니 선생이 벌이던 대낮의 불륜 라이브와 이어진 어머니의 가출 등등. 이것들 모두 PTSD이다.

그리고 그저 젊어서 또는 어려서 경험한 가난. 이것 역시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PTSD인 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꽤 많은데, 가난 역시 다르지 않다. 다만 그냥 부족함이 어느 정도 있는 살림살이를 살고 자기가 한 시절 가난하게 살았다고 착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가난의 기억 역시 한 인간의 평생을 따라다니며 극복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초래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의 역사적인 큰 사건을 통한 공통의 가난, 평등한 가난이 아닐 경우에는.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특정시기에 가난 때문에 어려웠다는 얘기를 쉽게 하지 않는다. 그러니 무릇 사람들은 널리 살펴 언행에 주의하시기를.

이것으로 네 권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읽었다. 앞으로 <오, 윌리엄> 한 권을 더 읽을 예정이다. 나는 스트라우트가 좋다. 그러나 이이의 이야기가 좋은 건 아니다. 문제를 꺼내놓고 딱 미국에서 권장하는 해결방식인 “그래도 가족”과 “사랑”에 충실한 결론이 이제는 식상한다. 내가 스트라우트에게 느끼는 매력은 단지 하나, 문장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사랑은 불완전해. 앤젤리나,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노랫말 같기도 하고 격언 같기도 한 반짝반짝한 문장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스트라우트가 좋은 것이지, 스토리는 이제 질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쉽게도 고백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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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02-28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토리가 질려서 더 이성 스트라우트는 읽기 싫다는 말은 스트라우트 애독자에게서 자주 듣던 이야기인지라 신선해요. 저는 질릴 정도는 아직 아닌지라 더 읽어보고픈 마음입니다. 다만 골드문트님 하신 말씀은 다 구구절절 이해가 됩니다. 몇 권 읽어보지 않아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스트라우트 꽤나 완고한 거 같지 않나요? 전 그런 완고함이 느껴져서 좀 꺼려지더라구요. 좋은 작가라는 건 알지만. 책태기 얼른 벗어나시기를!

Falstaff 2023-02-28 16:10   좋아요 1 | URL
ㅎㅎ 탈 슬럼프는 한 거 같습니다. 조금씩 읽고 있으니까요.
저하고 비슷하게 생각하는 분도 드물지는 않군요. 근데 문장은 정말 좋지 않나요?
태그 달았다시피, 세월이 지나면 스토리는 낡아도 문장과 문체는 영원하니 그게 어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PTSD 시리즈 보다 올리브 연작에서 더 완고했던 거 같은데요, 주인공의 나이를 훌쩍 올려놓아서 조금은 의도를 갖고 그러지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청아 2023-02-28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트라우트의 책을 두 권 읽어봤는데 스트라우트에겐 오히려 골드문트님 같은 독자가 좋은 독자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좋았다는 독후감을 너무 많이 써서 이제 좀 다른 시각을 갖고 싶거든요.^^

Falstaff 2023-02-28 16:1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설마 고마우려고요. 아무리 훌륭한 작가도 자기가 쓴 작품이 별로라고 하면 정말 드럽게 화딱지 내더군요. 동서양, 옛날옛적이나 요즘이나, 여자나 남자나 다 마찬가지더라고요. 다 인지상정입지요. ^^

청아 2023-02-28 16:23   좋아요 1 | URL
물감님이 경험자이신걸로 기억합니다. 여기에 써주셨는데 그거 읽고 급이 다른 작가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정희진 쌤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구요. 백 마디 칭찬보다 뼈 있는 한 마디가 당사자에겐 (다른 독자들에게도)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있죠. 골드문트님 그러니 앞으로도 솔직한 독후감 써주셨음 합니다. 저는 그런 시선이 부럽기만 합니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Falstaff 2023-02-28 21:09   좋아요 1 | URL
ㅎㅎㅎ 나름대로 무척 친하게 지낸 소설가와 역자가 있었거든요. 자신의 책에 솔직하게 평해달라고 해서 정말로 솔직하게 얘기했다가 손절 당한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ㅋㅋㅋㅋ 근데도 왜 손절됐는지 몰랐다니까요. 그렇다고 안 좋은 걸 거짓으로 좋다고 하라는 얘긴 아니고, 현명하게 피해가면 될 것을 구태여 이렇게 쓰는 건, 미련한 짓일지도 모릅니다. 팔자일 수도 있고, 사주에 들었는지도 모르지요. 어쩌겠습니까. 여태 그리 살아왔는 걸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28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오, 윌리엄이 시리즈 끝이 아닙니다. 후속작으로 Lucy by the Sea가 미국에서 이미 나왔어요. 조만간 한국에서도 번역이 되겠죠. ㅎㅎ
저는 스트라우트의 문장도 좋지만 그가 사람들의 상처를 바라보는 방식도 좋아합니다. 지켜야 할 선을 그어놓고 넘지않는 느낌이랄까? ㅎㅎ 특히나 소설은 호불호가 갈리는게 당연한데 무슨 좋지 않은 독자까지.... 이렇게 훌륭하게 깔 수 있는 골드문트님이야말로 진정 좋은 독자이십니다. ^^

Falstaff 2023-02-28 16:15   좋아요 1 | URL
앗, 그렇습니까? 그럼 4부작이 되네요. 어휴....
물론 스트라우트의 시선은 그의 작품처럼 따뜻하지요. 그래서 가끔 사람 같지 않아 보여서 말이지요, 이런 제가 싫습니다. ㅎㅎㅎ
격려의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stella.K 2023-02-28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세 권 읽으셨으면 좋은 독자죠.
저는 올리브 몇년 전에 읽기 시작해서
아직도 끝을 못 냈습니다. ㅋㅋㅋㅋ
재밌다고 난린데 뭐 나쁜 건 아니지만 막 열관할 정돈가...?
어리버리 벙쪄하고 있다가 언제나처럼 다른 책 읽느라
흐지부지가 되었죠. 미국문학은 저에겐 호불호가 큰 것이라
골드님 이리 쓰시면 전 뭐 올리브나 완독하면 다행이다 싶네요.
연작소설들은 표지가 맘에 들긴 하는데...ㅠ

Falstaff 2023-02-28 21:02   좋아요 1 | URL
음주 댓글은 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 오후 4시에 저녁 먹으면서 한 잔 했으니 다섯 시간이 지난 지금은 다 깼다고 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
같은 텍스트를 읽고 다 같은 감상을 한다면 참 재미는 없을 거 같습니다. 호불호가 큰 작품이 오히려 더 바람직하지 않겠어요? 걍 즐겁게 사는 게 제일입니다. 서로 미워하지 말고요. 스트라우트도 작품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주장을 하고 있잖아요. 제발 서로 미워하지 마시라고..... ^^

반유행열반인 2023-02-28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오랜만에 제가 먼저 읽은 책! 저는 유일하게 읽은 스트라우트 책이고 올리브 책은 오래도록 꽂혀만 있어요. 곧바로 다시 읽지 않은 거 보니 역시 남들 좋다는 책도 취향이란 게 있나 봅니다. (그리고 골드문트님 입맛도 상당히 까다로우십니다….ㅋㅋㅋㅋ)

Falstaff 2023-02-28 2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옙. 제가 좀 까다로운가 봅니다. 당연히 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까다롭다는 얘기는 간혹 듣습니다. 원래 자기 눈의 들보는 알아채기 힘든 법이라서 말입죠.
열반인 님도 책 많이 읽으시잖아요. 제가 많이 배우고 있는 걸요. ^^

그레이스 2023-03-02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 좋아해요^^

Falstaff 2023-03-03 05:43   좋아요 1 | URL
우리 열심히 읽어요! ^^
 
사랑하는 개
박솔뫼 지음 / 스위밍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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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후장사실주의 소설가 가운데 두 권의 책을 읽은 유일한 작가가 박솔뫼가 됐다. 전에 자음과모음에서 출간한 장편 <을>을 나름대로 근사하게 읽어서 이번엔 박솔뫼의 단편집을 골랐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짧은 단편 꼴랑 네 편 싣고 한 권을 내면, 거 참, 읽는 독자는 좀 섭하지. 다행스럽게도 편편이 참 기막힌 아이디어로 만들어서 그것 봐라, 내가 눈썰미 좀 있지, 라고 다독일 수 있었지만 말이다. <을>은 다른 후장주의 작가들하고 별 변별이 없었으나 《사랑하는 개》는 그렇지 않았다. 박솔뫼를 이제 겨우 두 권 읽었으며 정지돈, 오한기, 이상우의 책을 각 한 권씩 읽었을 뿐이라는 전제로 말하자면 《사랑하는 개》는 이들의 상상력에서도 방향을 좀 달리하지 않았는가 싶었다. 물론 책을 읽어보면 말이 후장주의 동인이지 서로 자주 만나지도 않고 교류나 의견 교환 같은 것도 생각만큼 잦지 않은 거 같다. 또 아무리 동인이라도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달라야지 동인이라고 무조건 고지를 향하여 돌격 앞으로만 외치면 그게 무슨 재미일까 싶기도 하고.

단연 <고기 먹으러 가는 길>을 흥미롭게 읽었다.

남쪽이 고향이고 그곳에서 사는 것처럼 보이는 두 명이 북쪽의 숙소에 도착한다. 점심시간이 지나 갑작스럽게 폭설이 쏟아졌다. 이번 여행이 이들의 초행길이 아니라서 전에 왔을 때 밥을 먹었던 식당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폭설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흘러, 장소가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점심은 대강 아무 곳에서나 먹고 싶다. 그래도 호오가 있어서 파스타를 먹고 싶다. 오다가 본 파스타 집이 있어 그곳으로 향하며, 생선구이 집이 보이기에, 파스타를 먹지 못하면 생선구이를 먹으면 되겠다 싶었는데, 파스타 집 현관에는 CLOSED 가 아니라 CLOSE 라고 쓴 보드가 걸려있고, 문을 열고 들어가봤자 아르바이트 생은 아르바이트 특유의 무표정하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장사 안 하는 시간이라고 하기만 하고, 그러면서 안에선 한 노인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생선구이 집에 들어가 결코 친절하지 않은 생선구이 집 사장의 눈치를 받으며 한 끼를 때우고 숙소로 돌아온다. ‘나’와 동행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뿐더러 그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도형은, 곧바로 잠에 빠져들고, ‘나’는 그의 콧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봤지만 후푸후푸 숨만 몇 번 쉬더니 그냥 그대로 자고 만다.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소도구. 커피 포트와 함께 있는 가습기. 가습기 세정액 때문에 호흡곤란과 폐질환을 유발하는 그런 가습기가 아니라, 작가 박솔뫼가 주목하는 건, 가습기 분출구를 통해 분사하고 있는 흰색 수증기. ‘나’는 겁에 녹차 티백을 넣고 포트에서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리고.

“컵 안의 물은 점점 노란색에 가까워지고 간신히 김을 내뿜고 있는 가습기도 여전히 할 일을 하고 있다. 내 앞의 김은 가늘게 위로 올라가고 가습기에서 나오는 흰 수증기는 좀더 존재감을 드러내며 흰색으로 좀 더 오래 남아 그 색으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었고 하지만 그것은 다른 가습기와 비교하면 가습기라고 하기에….좀…. 이 방의 건조함을 막는 데 큰 도움이 아니라 작은 도움의 작은 도움의 작은 도움 정도를 줄 정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지만 그래서 자꾸 쳐다보게 하는 것인가. 한 번씩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김을 바라보며 창밖을 보면 이웃의 건물이 건물의 창이 아니라 벽이 보이고 그 사이를 눈들이 흩어지는 눈들은 마치 너를 내가 잠들어 있는 도형을 내가 잠든 도형의 꿈을 내가 말하듯이 지켜보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조금 사이를 두면 가습기에서 나오는 이 흰 수증기가 희한한 생명체로 변용한다.

“가습기의 김은 여전하고 나는 컵에 물을 담아 와 가습기 안에 부어주었다. 다시 침대에 등을 기대고 가습기를 바라보았을 때 김 사이에서 닭 세 마리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닭은 병아리와 닭 사이 크기의 부리도 벼슬도 모두 만화처럼 귀엽고 부드러운 형태로 변한 닭이라고 해야 할지 좀더 병아리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였다. 세 마리는 테이블 위 가습기의 김 사이에서 피어 나와 한 마리씩 테이블 위에 종종종 선다.”

설마 정말로 가습기의 수증기가 닭으로 변했겠나. 주인공 ‘나’의 뇌 속에서 수증기가 이렇게 변용transfiguration한 것이지. 실제로 이후에 수증기의 변용인 닭은 ‘나’에게 무슨 고기를 먹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자신이 닭이라서 자기 앞에선 닭고기를 먹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냐고 물으며, 고기 가운데 닭고기가 제일 맛있다고,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해도 괜찮다고 참견하기까지 한다.

나는 박솔뫼가 이 단편 <고기 먹으러 가는 길>에서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심지어 작가가 작품에서 특정하는, 갑자기 대낮에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는 반도의 그나마 북쪽 지역에 실제로 가서 썼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할 이유도 없다고 여긴다. 그냥 작가가 고기가 먹고 싶었구나, 그리고 어느 날, 가습기를 바라보며 폭폭 쏟아져 올라가는 수증기를 바라보면서 이게 닭처럼 생겼구나, 라고 여겼을 뿐이고, 그걸 서로 섞어서 작품을 만들지 않았을까 한다. 그게 뭐 어때서? 괜찮지 않나? 좀 깨고. 어차피 세상을 바꾸려면 깨지 않고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법이니 말이지.

또 세 번째 작품인 <여름의 끝으로>에도 발칙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물론 세상 사람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여유 있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 한해 선택적으로 동면할 수 있다는 가정. 동면冬眠, 즉 겨울잠이지만 굳이 겨울에 자야 할 필요는 없고, 무슨 이유가 있어서 아마도 배부른 사람들이나 향유할 수 있고 배가 덜 부르거나 고픈 사람들은 시달릴 수밖에 없는 소위 번아웃을 느꼈을 때, 자신의 사정에 맞춰 동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어떤가?

여기서 ‘나’는 여차하면 돈을 벌 수 있는 비상용으로 동면 관리사 자격증을 땄고, 딴 김에 치과의사를 하는 허은이 임신을 했다가 중도에 잘못되어 쇼크를 먹어 남편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별거에 들어갔고, 일신상의 이유로 긴 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아 허은의 친척이 경영하는 온양온천의 오래된 호텔 방 두 개를 빌려 이 가운데 한 방에서 40일 간의 동면을 취하기 위해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도착하면서 작품을 시작한다. 연말을 맞은 소도시 분위기, 오래된 호텔. 그리고 새해부터 시작하는 동면. 대전에서 KTX를 타고 우정 온양온천까지 와서 (그래야 20분 걸린다) ‘나’에게 밥을 사고 다시 전철로 서울로 올라가는 번역하는 선생님. 그러나 다른 등장인물은 별로 영양이 없다. 그저 동면. 사람이 동면을 한다는 아이디어 하나. 그거 가지고도 충분히 매력있지 아니한가?

나는 장편 <을>보다 더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었다. 다만 후장사실주의자 소설답게 읽는 이에 따라 감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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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2-25 1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똥꼬사실주의.ㅋㅋㅋㅋ
정말 후장사실주의란 문예사조가 있긴 한 건가요?
한 10년전쯤 훅하고 튀어 나온 것 같은데 아무리 소설가들이라지만
말장난 너무한다 싶어 영 마땅치 않습니다.
골드님은 소설을 읽으신다면 외국 작품만 읽으시는 줄 알았는데
한국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읽으시네요.
2, 30년에 욕했던 젊은 작가들 요즘 보면 나쁘지 않았는데
왜 욕을 했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물론 실제로 읽은 작품은 없지만...ㅋ
요즘 젊은 작가들도 앞으로 2, 30년만 버티면 그땐 추앙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품은 당대에는 인정 받지 못해도 훗날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ㅋㅋ

Falstaff 2023-02-25 15:3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냥 젊은 작가 몇명, 출판사 편집 직원, 평론가 말고 서평가 이렇게 몇 명이 모여 우리 친구 먹을까? 비슷하게, 볼라뇨의 <야만스런 탐정들>에서 나오는 ˝내장사실주의˝를 빌려서 우린 ˝후장사실주의˝라고 하자, 해서 시작한 거랍니다. 저는 불라뇨를 이미 읽었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 들였는데요, 그냥 처음 들으신 분들 가운데는 기분이 좋지 않은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ㅎㅎㅎㅎ

전 우리나라 문학 좋아해요. 근데 요즘에 별로 안 읽는 건 우짜 그게 그거인 거 같은 작품들이 손에 계속 잡히더라고요. 이젠 출판사 광고글만 봐도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가서.... 아니더라도 뭐 그렇게 생각이 들어서, 우리 작품 고를 때는 아주 신중을 기하는 편입니다.
제 진짜 인생 책을 꼽으라면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을 제일 먼저 거론하는 걸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2-25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도 골드문트님 글에서 후장사실주의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딱히 의미는 없는 말이지만 이렇게 서로가 자신이 생각하는걸 자기 마음대로 열심히 진짜 자기 쪼대로 써보는거 뭐 나쁘지 않은거 같애요. 저는 한국문학의 경우 편식이 심해서 진짜 안읽은 작가가 많은데 이렇게 골드문트님 글을 보면 또 반성을 하게 되네요. (도대체 내가 읽은 것은 무엇인가 싶기도 합니다. ㅠ.ㅠ)

Falstaff 2023-02-25 15:32   좋아요 1 | URL
옙. 이이들의 작품을 보면 내용이 마음에 들거나 말거나와 관계 없이 주머니 속의 송곳 같은 면이 있더라고요. 이 박솔뫼는 이제 겨우 두 권 읽어봤지만 사물을 보는데 자연스럽게 그것을 변용시켜 이야기를 확장하는 특별한 시각이 돋보이고요. ㅎㅎㅎ 건방지게 아는 척했습니다. (에구 쪽팔려. ㅋㅋㅋㅋㅋ)
 
배트맨 : 킬링 조크 - 디럭스 에디션 시공그래픽노블
앨런 무어 지음, 브라이언 볼랜드 그림,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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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그래픽 노블. 우리말로 하자면 만화책이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니까 폼은 난다. 하여간 21세기 접어들면 무엇이든 인플레이션이다. 그래픽 노블? 흐흐흐. 예전에도 만화책 표지엔 글, 그림 이렇게 구분을 확실하게 했었다. 이 책은 <젠틀맨 리그>, <왓치 맨>과 배트맨 시리즈의 글을 담당한 유명한 만화 스토리 작가 앨런 무어가 쓰고 볼랜드가 그림을 그렸다. 이럴 경우, 즉 만화의 경우엔 내 경험상, 스토리 작가보다 소위 ‘화백’이라고 칭하는 만화가의 이름이 우선하는 거 같은데 요즘엔 아닌 모양이지? 내가 가장 최근에 본 만화는 <비천무>, <불의 검>, 그리고 명작 <북해의 별> 등 김혜린이니 한 이십 년 만에 처음 본 거 같다. 그러고보니 이젠 김혜린도 환갑이 넘었겠다. 아이고, 세월이 무섭다, 무서워.

책을 보고 제일 먼저 놀랐던 것은, 아무래도 나는 ‘만화’라는 말이 ‘그래픽 노블’보다 더 친하고 좋아서 계속 ‘만화’라고 쓰겠는 바, 만화도 내가 보지 않은 사이에 상당한 수준의 ‘이야기’로 진화한 거였다. 물론 스토리 작가 앨런 무어의 의식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배트맨: 킬링 조크>가 사회적 주류 문화로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전혀” 찬성할 수 없다. 비록 불량하지만, 불량한대로 나름의 구조를 갖추어 이야기로 만드는 솜씨는 인정해야 하겠다. 얼마 전에 호아킨 피닉스가 주인공 역을 한 <조커>를 재미있게 봤다. <배트맨: 킬링 조크>도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배트맨 시리즈의 중요한 악역 조커의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조커>처럼 조커는 고담시의 희극배우 지망생이다. 다른 점은 3개월 후에 아내 지니가 첫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고, 고양이 오줌 냄새가 풀풀 나는 단칸방에서 몇 달치 월세가 밀려 있다. 오디션만 보면 될 듯 될 듯하면서 이상하게 긴장하는 바람에 늘 마지막에 미역국을 마신다. 이런 비참한 환경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깨끗한 곳으로 이사해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으로 사고를 친다. 두 악당의 보조 길잡이로 전에 다니던 화학공장을 털기로 한 것. 드디어 약속한 날짜가 되어 술집에서 이들을 만났지만 조금 후에 형사가 들이닥친다. 체포가 아니라, 몇 시간 전에 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아내 지니가 젖병 보온기를 시험 작동하다가 감전되어 순식간에 즉사했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이제 강도질을 할 이유가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악당들이 내버려둘 리가 없다. 약속은 약속. 이들은 계획대로 화학공장에 숨어 들어가고, 전에 다닐 때는 경비가 없었는데 그동안 바뀌었는지 무장 경비에게 들켜 총격을 받고 악당(들)이 총에 맞아 죽고, 길잡이는 살기 위해 화학 폐수가 잔뜩 들은 공장 옆의 호수에 빠져 오염수로 유전인자가 바뀌었는지 극악의 악당인 조커로 변신하게 된다. 당연히 영화보다 더 공상적이다. 만화라서 극단적인 공상을 허용할 수 있겠다 싶다. 개연성이 있거나 없거나 그걸 심각하게 생각할 정도로 막혀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세상의 루저가 극단적인 불행과 절망 앞에서 최고의 악당으로 변한다는 플롯에 찬성표를 던지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세상엔 다행스럽게도 다른 선택지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있기는 있기 때문에. 다만 만화를 더 만화답게 만들기 위해 스토리 작가는 악당으로 변신한 루저를 최고의 영웅 배트맨의 상대역으로 캐스팅한 것뿐이겠지.

앨런 무어가 썼건 다른 이가 썼건 간에, 이미 전작에 배트맨의 탄생은 분명히 밝힌 바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선 배트맨이 왜 조커와 서로 죽음을 나누어야 할 사이로 여기는지, 이게 불투명하다.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뒤로 가면 배트맨은 기껏 잡은 조커를 죽이지 않고 다시 사회화해 정상인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희망사항까지 제시하는 것도 난데없기는 하다. 그러나 <배트맨: 킬링 조크> 이후 또 무슨 작품이 나와 그걸 설명하겠거니 여겨서 시비하지 않기로 한다. 킬링 조크, 농담 없이 킬링 타임 하기에 좋다. 그러나 자라나는 어린이의 손이 닿게 보관하고 싶지는 않다. 청소년이면 기쁘지는 않겠지만 봐도 뭐라하지는 못하겠고.

에잇, 김혜린의 <비천무>나 다시 한번 봐야겠다. 그새 얼마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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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린, <비천무>

(2001년 5월, 모회사 사보 게재글)




새삼스레 만화를 고급스런 문화물로 추켜올리려는 속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부터 대중적 기반을 잡기 시작한 만화에 대해 억하심정이 있는 것 또한 아니어서 그저 있는대로 말하자면, 새로이 도래한 21세기에 만화는 활자 매체와 시청각 매체의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문화 코드로 이미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큰 착각은 아닐 것이다.
소년기에 한 번 쯤 만화에 몰입하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는가마는, 하필이면 만화를 탐독하는 시기가 성인이 되기 전인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매체와는 도저히 비교하지 못 할만큼 소박하지만 활자매체에 비해서 훨씬 설득력이 있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힘이 그 이유가 아닐까. 이러한 어설픈 단정에 공감할 수 있다면 활자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는 세기에 대중문화의 저변으로 등장한 만화를 새로운 문화로 인식하는데 주저하고 있다면 차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그러나 제법 세상을 살아 <포켓몬스터> 류의 황당무계를 참을 수 없는 세대들이 즐거이 볼 수 있는 만화는 사실 드물다. 그리하여 아까운 지면을 빌어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약관 22세 때인 1983년에 데뷔작이자 문제작, 히트작이었던 <북해의 별>로 화려하게 등장한 김혜린의 야심작 <비천무 : 飛天舞>이다.


나의 서평이 언제나 그렇듯이 상세한 줄거리 소개는 직접 감상하실 분을 위해 생략하겠으나, 달리는 말 위에서 산 바라보는 식으로 훑어보면, 1343년부터 1368년 사이,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주원장이 명나라를 개국할 때까지의 격변기를 무대로, 멸망한 지방 족벌 유가장 출신의 떠돌이 무사 진하와, 몽고인 지방총독과 한족 사이의 혼혈 여인 설리, 그리고 한족 부흥운동에 투신하는 지방족벌의 계승자 남궁준광의 이야기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첫 장을 넘기자마자 김혜린이 작품을 절차탁마해가는 '내공'의 숨막힘으로 만일 여지껏 만화를 그저 우스운 저급문화라고 여겼던 분들은 낭패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中原草草失承平 중원은 버려지고 오랜 평화는 깨져
戌火胡塵到南京 오랑캐는 남경까지 이르렀네.
扈 老臣身萬里 늙은 신하들이 군주를 따라
天寒來此聽江聲 한겨울 이곳에서 양자강 물소리 듣네.


 <비천무> 첫 장을 열면 작가는 위와 같은 남송 시대 사람 육유의 <용흥사조소릉선생 우거 : 龍興寺弔少陵先生 居>라는 시를 소개한다. 곧이어 이어질 스토리가 원나라의 4족 신분제(몽고족-색목인-한인-남송인)에 따른 몽고인에 의한 남송인 핍박이어서, 위의 한시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감정을 피압박인의 정서로 촉촉하게 적시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하는데, 이렇듯 시의적절한 한시의 소개는 심약의 <육억시 : 六憶詩>, 이욱의 <낭도사 : 浪淘沙>, 백거이의 <경비 : 輕肥> 등 수다하게 등장함으로써, 그녀의 만화에 충분한 감정이입을 부여하는 동시에, 비극적 흥취를 주고, 또한 시대극이기 때문에 충분히 감안했다고 김혜린 스스로가 밝히고 있듯이, 대사의 운율성을 부여하는 것에 타당성을 확보하게 한다.


그러나 김혜린의 나이 40세. 그녀는 자라면서 일본풍의 만화를 누구보다 많이 읽었을 터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작가는 일본 캐릭터, 예컨데 <캔디>의 테리우스,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더구나 <비천무>는 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가상국을 무대로 한 열 여섯 권짜리 장편 극화 <북해의 별>을 끝마치고 곧바로 손 댄 작품이어서인지 몽고족과 한족, 그리고 고려족을 그렸음에도 각각의 캐릭터들은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고, 이는 만화는 숙명적으로 그림을 매개로 하고있기 때문에 선의 운동감을 부여하기 위하여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다음 장편극화 <불의 검>의 경우 무대가 북만주 우리 조상들임에도 불구하고 극동 아시아 인의 특징인 광대뼈 돌출과 같은 특징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겠다.


김혜린. 그녀가 일본 만화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음에도 우리 시대에 김혜린과 같은 만화 작가를 또 한 명 보탰다는 것은 대중문화를 올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제대로 육성하는 토대를 만드는 또 하나의 벽돌이 제공되었음을 의미한다. 극화 <비천무>는 김영준 감독이 당대의 스타 신현준과 김희선을 캐스팅하여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 개봉관에서 절찬리에 상영하였으니, 이 자체가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에 이어 만화의 대중문화적 위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비천무>에 몰두하게 하는가. 그것은 작가 김혜린이 끈질긴 역사탐구와 고증, 상상력의 결집으로 만화작업을 하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북해의 별>을 창작할 당시 그녀의 관심은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정치적 휩쓸림이었고 만화작업이라는 기존 역사의 왜곡작업을 위해 수다한 서양사 관련서적을 탐독하는 동시에 복식사, 궁중풍속사에까지 관심을 쏟았듯, <비천무>를 그리기 위하여 김혜린은 원말명초 시대의 중국사와 민속사, 야사집까지 이 잡듯 뒤져 성공적으로 기존의 역사를 왜곡해내어, 그 결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역사만화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우리 만화작가 가운데 누가 있어 김혜린 만큼의 공을 들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비천무>는 원말명초의 시대극이나 비천신검이 난무하는 무협활극, 그렇다고 흔히들 단정하듯 순정 멜로드라마는 아닐 것이다. 위에서 얘기한 미덕과 작가의 노력,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 장편만화 <비천무>에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세월, 그 쓸쓸함과 사무치는 정한일 것이다. 누구의 가슴에나 품고 있는 회한과 아스라하게 부서지는 모종의 기억들을 김혜린, 이 중년의 아주머니 화백은 정확하게 할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비천무>를 읽는 깊숙한 재미는 진정 이러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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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23 0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조커>는 보면 기분 나빠질 것 같아 여태 보지 않고 있어요. 재미있게 보시는 분들도 많던데 말입니다.
그나저나 <비천무>개봉당시에 극장 가서 봤는데요, 정말 재미없게 본 기억이 나네요. 전 원작 만화를 보진 않았고요, 줄거리의 재미없음 이라기보다 두 주연의 연기 못함이 너무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보다가 신현준이 칼에 맞았던가 화살에 맞았던가 김희선이 이름 부르며 우는 장면이 있는데 어찌나 몰입이 안되던지... 오늘 골드문트 님의 이 글을 읽고보니 비천무는 원작으로 봤어야 했던 거네요. 크..

Falstaff 2023-02-23 07:43   좋아요 1 | URL
영화 <조커> 재미납니다.
근데 영화 <비천무>는 망작입니다. 김혜린의 원작을 보시면 좋을 거 같네요. 순정만화예요, 순정만화. 제가 좋아하는 ㅋㅋㅋㅋ

붉은돼지 2023-02-23 1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 때 순정만화(그때는 여학생들이 보는 만화를 그렇게 불렀음)를 처음 봤는데요..이게 완전 신천지였습죠...당시 이재학, 하승남(맞나??) 류의 무협만화만 보던 고딩에게는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는데요..!!! 와아아!!!!!!!! 여학생들은 만화도 이렇게 수준높은 만화를 보는구나!!!!!!..혼자 몰래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특히 즐겨보던 만화는 제 스스로 여류3대가로 칭한 황미나, 김혜린, 신일숙이었습니다. 북해의 별, 불의검, 비천무, 굿바이 미스터블랙, 우리는 길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아르미안의 네딸들 등등등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눈물 콧물을 줄줄흘리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Falstaff 2023-02-23 14:03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전 김혜린 말고는 모르겠습니다. 복학하니까 후배들이 공포의 외인구단이니 만화들을 보더라고요. 저는 결혼하고나서야 좀 봤습지요. ㅎㅎㅎ
눈물 콧물, 이게 스토리, 이야기의 힘 아니겠습니까.

잠자냥 2023-02-23 15: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화 <비천무>는 명작이지요.
만화 안 좋아해도 비천무는 정말 몰입해서 본 기억이 납니다.
근데 하필 다부장님은 만활 안 보고 그 영화를!!!!!! ㅋㅋㅋ

Falstaff 2023-02-23 16:34   좋아요 1 | URL
오, 잠자냥 님. 오랜만입니다.
김혜린 좋아하시는 분이 많아요. 영화는 정말 개떡, 만활 다 망쳐버렸습니다.
 
약자들의 힘
안나 제거스 지음, 장희창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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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제거스는 1900년 11월 19일 마인츠에서 네티 라일링이라는 이름으로 부유한 미술품 상인의 딸로 태어난다. 예로부터 미술품을 비롯한 거의 모든 예술품, 보석 세공품, 고악기 등의 감정을 귀신같이 해내는 족속이 있었으니 이들은 일찍이 음악과 고리대금업에 관한 한 타의 근접을 불허한 바, 네티 라일링 역시 이들 유대인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젊은 시절을 보낸 시기를 보시라. 1900년생. 19세기가 점을 찍고 며칠 후 20세기가 열릴 시점에 태어난 네티는 10대 초반, 불타는 사춘기의 정점을 지날 무렵 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인생의 황금기라고 일컫는 20대를 지나자마자 독일 전역을 집권한 나치들에 의한 탄압을 받으며 조금만 더 버티면 좋은 세상이 올 줄 알았는데 천만의 말씀, 동족 수백만 명이 흰 연기로 변해 굴뚝을 통해 천국으로 날아가는 일이 생겨버린다.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벗어나 세상 곳곳으로 방황한 이후 몸과 마음이 편했던 적이 별로 없었지만 하필이면 네티 라일링의 시절에 극적인 핍박을 받게 되는데, 네티 라일링, 이제부터 안나 제거스라고 불릴 작가는 원래 그런 성향이 있기도 했고, 1925년에 헝가리 출신의 공산주의자이며 사회학자인 라슬로 러드바니와 결혼하고, 1929년엔 프롤레타리아혁명작가동맹에 가입하면서 자신이 공산주의자임을 만방에 고했다. 불과 몇 년 후에 집권한 나치 입장에서 보면, 유대인이라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주리를 틀고 불태워 죽일 만한데 거기다가 공산주의자라고 뭐 잘났다고 커밍아웃까지 해버린 인간을 곱게 살려둘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제거스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독일 탈출. 나치 역시 악마 같기는 하지만 바보는 아니라서 1933년 게슈타포를 보내 제거스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이전까지 출간한 이이의 작품들, 이 가운데엔 체포된 이듬해인 1934년에 소비에트연방에서 영화로도 만든 <성 바르바라 마을 어부들의 봉기>까지 있었지만 나치는 제거스의 모든 작업을 퇴폐문학으로 규정하여 금서 조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광장에서 확 불을 싸질러버리고 만다. 여기서 제거스의 명이 다 했다면 지금처럼 유명세를 누리지 못했을 것. 제거스는 귀신같이 탈출에 성공해 파리로 망명, 반파시즘 잡지에 간여하며 투고와 창작작업에 몰두한다. 그러나 39년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40년엔 파리가 함락되자 급하게 마르세이유로 옮겨 라틴 아메리카로 대서양을 건너기 위해 숨막히는 기다림을 시작하는데, 이때의 절박한 심정을 그린 소설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한 <통과비자>, 내가 처음 읽은 안나 제거스다.

우여곡절 끝에 1941년 멕시코에 짐을 푼 안나 제거스는 그곳에서 반 파시즘 단체 하인리히 하이네 클럽을 만들어 의장으로 활동하고 이후에도 갖가지 독일의 반 파시즘 활동을 벌이는 한편 소설쓰기도 게을리하지 않아 공산주의자와 집시들을 가두어 놓은 수용소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그린 역작 <제7의 십자가>를 발표한다. 이 책은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로 발간했다. 매우 재미있다. 내 경우엔 <제7의 십자가>를 읽고 난 다음부터 안나 제거스에게 유심한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에 멕시코에서 서베를린으로 이주하고 1950년엔 당연히 동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긴다. 이후 제거스는 동독의 첫 번째 국가 훈장 수훈자라는 명예를 누리다가 1983년 6월, 8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힘들고 어려운 초중년 시절을 보냈으나, 이 정도면 그래도 잘 산 삶이다.

《약자들의 힘》 역시 안나 제거스다운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모두 아홉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일곱 이야기는 반 파시즘, 즉 반 나치는 물론이고 반 프랑코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나머지 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이야기는 멀고 먼 시절의 독일 북부지역, 모진 기후와 척박한 땅에 살던 조상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어머니>. 역자 장희창은 작중 주인공인 어머니 아가테 슈바이게르트를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 유사하다고 했다. 수긍이 가는 말이기는 하지만 완전하게 그렇다고 동의하기는 좀 어렵다. 우리가 아는 제일 유명한 의식화된 어머니는 아무래도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겠다. 고리끼의 어머니와 이 책의 아가테와 유사한 점은 직접 공산주의 운동과 반 파시즘 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고리끼의 경우엔 어떠한 경로를 거쳐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의식화가 되어 있는 상태인 반면, 아가테는 아들이 반 파시즘을 위해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었다는 것 하나로 그것이 옳은 일로 판단해 스스로 스페인 국제여단 독일분국으로 찾아가 간호사로 일을 한다는 거다. 아가테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딱 하나다. 아들이 확신을 갖고 투신했으며, 아들과 신념을 공유하는 아들의 친구와 함께 행동하는 것.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20세기 초에 라인강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알게스하임 시 변두리에 잡화점을 하는 과부 헬레네 덴회퍼가 딸 아가테와 함께 살았다. 아가테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집에 와서 숙제를 마치자마자 정원에 물 주고 잡초도 제거하지만, 과부 엄마를 도와 손님 시중 역시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었다. 때마침 시 외곽에 통조림 공장이 생기고 이에 따라 인구도 늘자 매상도 덩달아 늘어 우리가 알고 있듯이 과부 살림에 은이 서말이 넘었다. 그러나 때를 맞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개전 초기엔 군인들이 몰려들고 새로 들어온 조차장을 꽉 메워 잠시 호황을 맞았지만 곧바로 불황이 닥쳤다. 그래도 원래 내핍생활에 이골이 난 터라 속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지만, 부인이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며 행상을 나갔다가 그만 덜컥 폐렴에 걸려 숨을 거두고 만다. 가냘픈 아가테 혼자 남았으나 사회 전반이 워낙 황황해 사람들은 아가테와 덴회퍼 부인을 헛갈려 하며 그냥 저냥 시간이 흘러갔고, 원래 조차장에서 일하던 슈바이게르트 씨가 전쟁이 끝나고 절름발이 홀아비가 되어 나타나자 그의 아내가 되어, 공부 잘하는 아들 에른스트를 낳았다.

에른스트는 겉으로 보면 불량스럽기 짝이 없는 라인홀트 샨츠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고, 아버지를 어려서 잃은 에른스트는 샨츠의 아버지와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며 영향을 받았는데 엄마 아가테 눈에는 그게 참 싫었다. 그렇다고 아들의 의견을 모른 척할 수 없어서 내버려두었을 뿐. 엄마의 고민은 시간이 해결해주어 라인홀트는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가고, 에른스트는 좋은 성적으로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프랑크푸르트의 대학으로 진학한다. 이 사이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키 작은 아마추어 화가가 나치 당을 만들어 집권을 하고, 가끔 들르는 친절한 아들 에른스트는 집에 와서 즐겁게 지내다가 히틀러 이야기만 나오면 여태 보지 못한 정도의 흥분을 하며 비난을 퍼붓고는 한다. 그러다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서 벽보와 삐라 사건이 터지고, 에른스트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소위 잠수를 타게 되고,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 소식이 끊어진다. 2년 후, 전에 프랑스에서 온 편지의 우표 스탬프 주소를 보고 아들을 찾아 무작정 파리를 거쳐 툴루즈의 그라페 도르 호텔로 길을 떠나게 되는 아가테 슈바이게르트. 그러나 그동안 에른스트는 이미 스페인으로 떠난 상태. 어머니는 가진 돈을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그라페 도르의 사장에게 맡기고 이번에도 홀몸으로 바르셀로나로 향한다. 아들이 부상을 당해 차를 타고 며칠을 가야 하는 야전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고생스럽게 다시 그곳으로 가 드디어 상봉을 한다. 이때까지는 몰랐지. 그게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지.

불행하게도 팔랑헤당이 공화국을 점령했을 때, 제일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간호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프랑스를 향해 피레네 산맥을 넘은 아가테. 프랑스의 수용소에서 두 번째 만난 아들의 막역한 친구 라인홀트는 아주머니에게 자신들과 함께 라틴 아메리카로 갈 것을 종용하자, 아들의 친구들, 뜻을 같이 했던 이들과의 동행을 기꺼이 승낙한다. “그래, 그래. 너희들과 함께 가야지.” 하면서.

훌륭한 책이라고까지는 하지 않겠다. 그러나 소비에트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공의 어머니와 비교해 훨씬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안나 제거스하면 떠올릴 수 있는 적당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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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2-21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약자들의 힘을 너무 인상깊게 읽었기에, 누구에게든 두루 추천하고 있습니다만...

첫번째 단편의 주인공이 아마도 아가테였던 거 같고 리뷰 쓰신 내용을 보니 기억이 납니다...첫 단편이 저는 이 단편집 중에서 제일 별로 였지만(상대적으로) 나머지 단편들이 모두 좋았습니다! 특히 어떤 학자와 대화하는 단편이 매우 인상깊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데, 워낙 읽은지 모래되어서 주인공과 플롯이 기억나지 않습니다만...전 단편들이 고루 좋다는 인상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제7의 십자가 읽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약자들의 힘이 더 재밌다는 인상입니다..^^

Falstaff 2023-02-21 14:31   좋아요 0 | URL
저는 십자가가 좀 더 재미있는 걸로.... ㅎㅎ
세상 사람들의 감상이 다 같으면 무슨 재미겠습니까. 그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