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안드리치 단편집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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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 안드리치 팬을 자임하는 내 눈에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 띄었으니 어찌 안 읽고 넘어갈 수 있나. 그리하여 득달같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꼬박 한 달을 기다린 끝에 기쁨을 억누르며 드디어 첫 장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이런. 이거, 읽은 책이다. 물론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라는 제목은 아니다. 출판사 ‘연극과인간’에서 2001년에 초판을 찍은 《아스카와 늑대》라는 책이었다. 역자 김지향金志香의 진짜 도장이 찍힌 책이다. 여전히 내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 있(거나 방바닥부터 대책없이 쌓은 책 탑 어딘가에 있)을 텐데 한 번 찾아보고 있으면 사진도 올리고, 못 찾으면 그냥 두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책값은 비싸지만 믿고 읽었던 출판사가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였건만. 책 뒤에 보면 초판 1쇄 펴낸 날이 2009년 4월, 지금 표지를 하고 가격을 조금 내린 개정판 펴낸 날이 2021년 10월. 흠. 말도 안 돼. 초판 1쇄는 연극과인간에서 찍은 2001년 5월이다. 이렇게 써야 올바르다.

  거참. 만일 이거 돈 주고 샀다면 스팀 좀 뿜을 뻔했다. 도서관에서 구입한 것, 즉 시민들 세금으로 산 거라고 열을 받지 않은 건 아닌데 그래도 직접 내 돈 주고 산 거보다는 아무래도 덜 돈다. 세상 인심이 다 그렇지 뭐.

  2019년에 나는 이 책의 진짜 초판본 《아스카와 늑대》를 읽고 쓴 독후감을 이렇게 끝맺었었다.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 <아스카와 늑대> 독후감  2019년 11월



  저 먼 먼 기억의 삽화



 출판사 “연극과 인간”은 주로 희곡을 출간하는 회사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 독자들이 잘 찾지 않지만 정말 좋은 작가, 라고 내가 생각하는 보스니아 사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소설집을 냈다. 2016년에 그해에 내가 가장 감명 깊게 공감하며 읽은 책으로 안드리치가 쓴 <드리나 강의 다리>를 꼽은 적이 있다. 2017년에는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 작년엔 김태정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그러고 보니 벌써 11월 중순, 올해도 이제 슬슬 정리를 해야겠다, 라고 썼는데, 왜 이야기가 난데없이 삼천포 시로 빠졌을까. 그래, <드리나 강의 다리>. 이 책을 번역한 이가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 어를 가르치고 있는 수석연구원이라고 하는 김지향. <아스카와 늑대>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빨간 인주 묻힌 인지가 붙어 있고, 거기에 예쁘장한 한자어로 ‘金志香印’이라 박혀있다. 내가 비록 이이가 번역한 <드리나 강의 다리>를 2016년에 읽은 최고의 한 권으로 뽑은 적이 있지만, 안드리치의 다른 책 <저주받은 안뜰> 독후감에서는 번역한 한국어 문장의 질에 관해 아주 모질게 독설을 펼친 바 있어, 사실 이이의 또 다른 작품인 <아스카와 늑대>를 읽은 감상을 쓰기가 좀 캥기기는 한다.
 《아스카와 늑대》는 작가가 쓴 서문 격인 <어떻게 내가 문학의 세계에 들어가게 됐을까>를 제외하면 단편소설 일곱 편을 묶은 단편집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 우리가 단편소설의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들 역시 매우 매력적이다. 특히 첫 두 작품 <파노라마>와 <서커스>를 매우 좋게 읽었다. 두 작품의 구조는 비슷하다. <파노라마>에서는 어렸던 시절의 기억으로 남은 시장통 마당에 자그마한 가두 상점을 빌려 오스트리아 사람이 파노라마, 굳이 우리말로 하자면 대형 만화경쯤으로 생각할 수 있는 구경거리를 열었고 소년 시절에 이국의 정경들을 보며 무한대, 소년 특유의 무한정의 상상력을 펼쳤던 것을 기억하며, 어느 새 순식간에 이제 나이 들어 당시의 감정을 회상하는 작품이고, <서커스> 역시 어린 시절 시장 공터에 서커스단이 와 천막을 치고 공연을 했는데 워낙 어려서 부모가 자신을 데려가줄지 아닐지, 아닐 것이 분명해 울음을 터뜨리기 바로 직전에 함께 가기로 결정을 했으며, 난생처음 서커스, 기묘하고 긴박하고 긴장되는 공연에 자지러지다가 또한 갑자기 수십 년이 흘러 당시 서커스단의 단장을 만나는 시간의 전이가 벌어진다. 글쎄, 요즘 젊은 분들이 파노라마와 서커스 구경, 그것도 옛 시절의 (파노라마는 분명 보지도 못했을 것이고) 서커스를 봤을지 확실하지 않아 이 이야기에 공감할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노년의 작가가 소년시절을 떠올려 상상해가며 차분하게 쓴 단편소설들이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다른 다섯 편의 단편들도 다른 외국 소설가들의 단편들에 비해 더 친근하게 느꼈지만 그것들에 비해 <파노라마>와 <서커스>에 훨씬 공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가격도 착해서 10% 할인 가격이 6,650원이다. 단편 한 작품에 천 원 미만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이기는 하나 요새 유행하는 가격대비 성능비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거 같다.



* 표지가 귀엽게 생겼다고 동화 읽는 기분으로 골랐다가는 골로 가는 책. 주의 바람.


​ 책 찾았다. 안드리치 팬이라고 그래도 쉬운 자리에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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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4-15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귀여운데요? ㅎ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언제 다시 읽어도 좋죠. 평을 좋게하시니 저도 기회되면 기억했다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주말요.^^

Falstaff 2023-04-15 17:10   좋아요 1 | URL
오, 조심하세요. 알라딘 독자 서평을 보면 제가 최고의 평가를 하는 드리나 강의 다리 조차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괜히 큰 기대 하시고 읽으셨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

yamoo 2023-04-1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저도 그렇습니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광팬으로서 그의 작품들이 눈에 띄면 득달같이 달려가서 사오곤 했는데, 읽어보면 타이틀만 바꿔서 단 번역본. 빡치는 기분을 몇 번 당하니, 뭐 그려러니 합니다..ㅎㅎ

이보 안드리치...저도 나오는 족족 사려고 하는데,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네요..^^;;

Falstaff 2023-04-15 17:13   좋아요 0 | URL
슈니츨러도 그런 책이 있었군요! ㅎㅎㅎ
안드리치 번역은 다 읽은 거 같은데요, 유고슬라비아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세나 유리나츠가 보스니아의 역사를 알고 싶으면 안드리치의 작품 <대신과 영사>를 읽어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다만 <대신과 영사>만이라도 얼른 번역해 나오면 좋겠습니다.
 
사소한 삶
피에르 미숑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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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참 희한한 사람일세. 1945년 중부 프랑스 크뢰즈 지방의 샤틀뤼르마르셰에서도 촌동네인 작은 레카르 마을에서 태어난 것도 좋고, 만으로 서른아홉 살이던 1984년에 자기가 하여튼 엮여서 살아온 집안 사람들과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존경할 만한 주정뱅이와 농투성이, 사제, 장난꾸러기 아이들에 관한 기억,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이었다면 노인들이 해주던 이야기에다 그랬을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연작 장편소설을 쓴 것도 좋다. 작가는 그럴 권리가 있는 직업인이고, 가문에 작가가 한 명 생겼다 하면 자기들이 살아온 방식이 어떻게 해서든지 결국은 죄다 까발려지게 되는 것이, 가족 구성원 가운데 재수없게 작가가 된 식구를 거느린 가족의 숙명이니까. 미숑이 제목을 “사소한 삶”이라고 했지만 세상에 “사소한” 삶이 어디 있니? 남들 보기에 조금 사소해 보일 망정 당사자들은 즐겁기도 하고 목이 메기도 하고 정말로 목을 매달기도 했던 일상사 가운데 한 번이라도 사소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사소한 삶”은 반어법이겠지. 남 보기에 사소하지만 자기 마음 속에는 중요하기 그지없는 가족의 삶을 피에르 미숑은 천연덕스럽게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미숑의 가족사 정도면 장소가 중부 프랑스이건 가난한 동부 튀르키예이건, 경상북도와 강원도를 접경한 남동쪽 봉화나 영양쯤 대한민국이건 흔하지는 않지만 동네에 적어도 한 집구석은 있을 법한, 그리 유별난 삶도 아닌데, 현대 프랑스에서 이름을 휘날리는 소설가인 피에르 미숑의 유별난 화려체 문장 덕에 사소하기는커녕 데뷔작 한 편으로 하여금 시작부터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걸작 A genuine masterpiece in contemporary French literature”이라고 상찬을 받았단다. 나는 이런 표현을,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위키피디아도 찾아보고, 옮긴이 윤진의 해설도 읽어보면서 알았기 망정이지, 만일 처음부터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걸작이라는 등의 말을 미리 읽었더라면, 제일 앞 장인 “앙드레 뒤푸르노의 삶”에서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이후부터 조금씩 고개를 외로 꼬았을 듯싶다. 왜냐하면, 이건 꼭 알아 두셨으면 좋겠는데, 후진 가족의 뚝뚝 떨어지는 궁상이 지겨워지는 것이 아니라, 앞 장chapter에서 감탄하며 읽었던 화려한 은유와 감각적 수사와 현학적인 차용과, 낡고 누추해서 더욱 아름다운 추억이란 조미료의 놀라운 문장들이, 아오, 지겹도록 계속되는지라, 우리 조상님이 말씀하신 대로,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질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 스테이크가, 참돔 회가 맛나더라도 삼시 세끼, 일주일에 일곱 번, 한 달에 서른 날 같은 걸 먹으면 그게 식도락이니, 고문이니? 피에르 미숑의 글이 후졌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절대로, 한 번 더 강조해서 절대로 아니다. 서양의 권위 있는 평론가 집단이 “현대 프랑스 문학의 마스터피스”, 그것도 genuine masterpiece 라고 강조했다시피 글 좋고, 꼬질꼬질해서 더욱 추억 같은 (성공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누선자극 의도도 괜찮았다. 하지만 책을 덮을 때까지 이 작품에 열광할 수 없었던 것은 첫째가 여태 이야기한 과도한 미문, 그것도 겁나게 화려한 수식과 뭐 하나 그냥 이야기하고 지나가지 않는 (조금 과장해서)탐미주의적 은유의 능선이 그걸 넘기 힘들게 했고, 둘째 이유로, 복잡한 가계도, 저 먼 옛날, 앙투안이라는 남자를 끝으로 아들을 생산해내지 못해 “대가 끊긴” 플뤼셰 가족의 한 시골 여자가 역시 시골 농부와 결혼해 외동딸 마리를 낳았고, 마리는 팔라드 라는 성姓의 남자와 결혼해 또 두 딸을 낳았는데, 맏이 카틀린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둘째 필로멘은 레카르 마을(이제야 나온다, 레카르 마을이)의 폴 무리코와 결혼해 외동딸 엘리즈를 낳는다. 이 엘리즈가 피에르 미숑이라고 읽는 화자 ‘나’의 외할머니다. 엘리즈는 펠릭스 게오동과의 사이에서 다시 한 번 외동딸인 내 어머니 앙드레를 낳고, 어머니는 에메 미숑과 결혼해 역시 맏딸 마들렌을 낳지만 마들렌은 어려서, 불과 두 살도 되지 않아 백혈병으로 숟가락 대신 젖병을 내려놓고, 이후에 다시 ‘나’, 피에르 미숑을 낳는다. 그리하여 ‘나’는 앙투안 플뤼셰(의 누이), 마리, 필로멘, 엘리즈, 앙드레, 피에르의 계보에 따라 5대 만에 처음 태어나는 아들인 셈. 엄마 앙드레의 처녀 적 이름이 앙드레 게오동이고, 에메 미숑과 결혼하며 앙드레 미숑이라는 이름이 생겨 ‘나’ 피에르 미숑을 낳았지만, 피에르가 소년들의 투견장인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마치고, 조현증 증세가 가볍지 않은 천재 극작가/연출가 앙또냉 아르또의 극단에서도 일하는 한편, 열심으로 술과 약물에 절어 있다가, 그리하여 두 여자로부터 이별을 당한 후에, 드디어 처음 발표한 소설 <사소한 삶>을 엄마는 엄마지만 ‘앙드레 미숑’이 아니라 ‘앙드레 게오동’에게 헌정했다는 것은, 피에르 미숑이 아버지를 부정했다, 엄마 앙드레 게오동의 혼인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비록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인 클라라와 외젠의 사랑을 받았던 것과 그들의 친절은 기억하지만, 어려서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이유가 아니고, ‘나’ 피에르의 알코올 의존과 약물 장복이 아버지인 외눈박이 에메로부터 드러운 유전자를 내려 받았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이다. 어떠셔? 정말 아버지 쪽, 그러니까 미숑 가의 핏줄이 깨끗하지는 않지? 비단 할아버지 외젠은 사람이 부드럽고 유약하고 아내 클라라한테 찍소리 한 마디 못하고 살지만, 외눈박이 아버지로부터 알코올과 약물 의존의 유전자를 받은 거 하나만 가지고도 치가 떨렸을 거다. 내가 언젠가 이야기했다. 알코올 의존의 80%는 유전이라고. 알코올 의존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이 술을 끊는 것이며, 스스로 알코올 의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후세의 안녕과 복지와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후손의 생산을 포기하는 걸 한 번 진지하게 생각들 해보시라고. 아버지 에메도 자신의 알코올 의존을 알아채고 처자식이 조금이나마 자유스럽게 살라는 깊은 뜻에서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던 건 아닌지, 알코올 의존증에서 벗어난 서른아홉 살의 아들 피에르는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아비가 되어 처자식을 나몰라라 했던 것이 그토록 서럽고 분해서였을까? 정신없이 이야기하다 보니 이 작품이 조금 유감스러웠던 둘째 이유와 셋째 이유가 호박넝쿨처럼 한꺼번에 나왔는데, 둘째가 복잡한 가계도를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실명을 그대로, 족보에 관계없이 그냥 사용하기 때문에 가뜩이나 남의 집구석 이야기를 과하게 듣는 마당에 족보 여하가 마구 헷갈렸기 때문이며, 셋째가 나 스스로가 비록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알코올 의존 성향이 있어서 피에르 미숑의 알코올 의존과 약물 의존에 관한 묘사가 심장을 너무 콕콕,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던 것이 이 책에 후한 점수를 매길 수 없었던 이유였다. 마지막 이유는, 사실 이걸 세번째로 넣었으면 좋겠지만 알코올 의존과 가계도를 따로 떼기 쉽지 않아 마지막에 놓았을 뿐으로, 시와 소설, 극작, 회화 같은 것들을 마구 인용해, 동아시아 독자는 마치 인용한 것을 모르는 것이 이 책을 충분하게 감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인 것처럼 여기게 만드는 현학적 태도였다. 하지만 이런 지적질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일관한다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함부로 이 작품을 필사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감정의 과다한 분비를 의도적으로 하는 작가들은 없다. 아니지. 내 주제에 무슨 단정을 하나, 그리하여 다시 쓰면, 없을 것으로 믿는다. 문장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 어떻게 미문을 만들어볼까 궁리하다가 드디어 그것들로 촘촘히 날줄과 씨줄을 엮어 한 장의 결 고운 비단을 만든 후, 조금 멀리서 한 마리 누에가 토해 놓은 곱디고운 실의 모음에 과다한 감정 분비물로 질척하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 지경 바로 앞에서 일단 정지를 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서 말씀입니다, 하여간 조심하고 조심해서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아름답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이런 작품이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다고 대책 없이 필사했다가 나중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어디서 써먹고는 큰 코 다칠 수 있으니. 그 정도로 문장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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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4-13 0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제가 이거 읽다가 질려버렸지 뭡니까! 문트 님 리뷰 다시 봐도 또 절레절레 ㅋㅋㅋㅋㅋ 전 이이 책은 또 안 읽을 거 같아요. 질린다 질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4-13 18: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 마음 이해 합니다. 저도 굳이 찾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레이스 2023-04-13 0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소한 삶이란 없죠.
골드문트님!
북튜버를 하심이 어떠실지, 입담도 장난 아니실듯 하여... 이 글대로 말씀하시면 정말 재밌을 겁니다.

Falstaff 2023-04-13 18:10   좋아요 1 | URL
아휴, 저는 입담 별로 없어요. 발음도 좋지 못합니다. ㅎㅎㅎ
이 페이퍼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써버린 겁니다. 그리하여, 물론 그러실 리는 없지만, 조금만 꼼꼼하게 읽어보시면 말이 안되는 문장, 소위 비문이 중요한 자리에 있습니다. 고칠까 말까 하다가 독후감을 한 방에 쓴 증거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내버려 둔 것입지요.
재미나게 읽어주신 거 같아서 기쁘네요. ^^

stella.K 2023-04-13 1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들수록 소설 읽는 게 자신없어 지더라구요.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맞나? 자꾸 의심하게되고
되돌아 다시 읽어야할 것 같고.
이책은 읽을 자신이 없어지네요.
문장 좋은 작가들 부럽던데.
몇년 전에 노르웨이 작가가 <나의 투쟁>인가 4권짜리
나왔잖아요. 1권의 반을 읽다가 접은 아픈 기억이 나네요. ㅋㅋ

Falstaff 2023-04-13 18:15   좋아요 1 | URL
그까짓 소설 읽는 거에 무슨 자신이고 뭐고가 있어요? ㅎㅎㅎ 걍 읽고, 뭐 그런 것이지요. ㅎㅎㅎ 너무 심각하십니다.
<나의 투쟁>은 아이고... 저도 한겨레든가 하여튼 신문매체의 평가가 하도 화려하기에 무려 내돈내산했다가 1권 초장에 키 크고 험악하게 생긴 아빠가 수퍼마켓에서 아이들 어깨를 쥐고 앞뒤로 흔드는 것까지 읽고, 도무지 더 읽어줄 수 없어서 확, 방바닥에 팽개친 게 생각나네요. 근데 그게 뭐 어떻습니까. 걍 팍팍 읽으셔요. ㅎㅎ
 
점원 을유세계문학전집 125
버나드 맬러머드 지음, 이동신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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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버나드 맬러머드는 미국의 소설가로 솔 벨로우, 조지프 헬러(아니, 이이도?), 필립 로스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20세기 미국 유대 작가로 불린다고, 위키피디아는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조지프 헬러를 거론할 때 왜 “아니, 이이도?”라고 의문을 표했는가 하면, 유대인 가운데 전쟁에 참가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헬러는 1942년에 열아홉 살의 나이로 공군에 입대해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이 되어 당시의 경험을 밑천 삼아 명작 블랙 코미디 수준의 반전소설 <캐치-22>를 쓴 작가. 맬러머드는 1914년생으로 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게 된 진주만 폭격이 일어났던 1941년엔 스물일곱, 사실상 참전을 목적으로 미국의 젊은이들이 입대하기 시작했던 1942년엔 스물일고여덟. 대학 학부를 졸업했으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 존 밀러 대위처럼 장교로 입대해 전쟁하기 딱 좋은 나이에 이이는 콜롬비아 대학에서 토마스 하디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따고, 194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단편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눈치 받았겠다고? 눈치 주는 거 모르는 척하는데 도가 튼 종족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이란 거 모르셔? 그래, 그래. 유대족이 아닌 백인 가운데서도 그랬던 인간이 있지. 스토너라고. 1차 세계대전이었지만. 갑자기 웬 스토너? 생각날 때마다 그가 미워서 그런다.

  맬러머드의 주요 작품은, 나는 운동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안 봤지만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인공을 한 영화의 동명 원작이자 데뷔작인 <더 내츄럴>. 1984년 작품 출간 이후 31년만에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세를 탄 작품이다. 그러나 실제로 맬러머드가 소설을 써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즉 전업작가로 성공할 떡잎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두번째 작품인 <점원>이 전미도서상 최종심까지 올라갔을 때라고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인 1958년 개의 해에 단편소설집 《마술통》으로 기어이 전미도서상을 받는다. 불과 8년 후엔 러시아 제국의 반유대주의를 그린 <The Fixer: 수선공>으로 두 번째 전미도서상과 미국작가들의 꿈인 퓰리처 상을 받았으니 대단한 성가를 누렸을 텐데, 설마 유대인들이 이리저리 밀어줘서, 소위 문화계 내의 유대 마피아들이 여기저기에서 압력을 넣은 결과는 아니겠지? 아니라고 믿자. 의심해봐야 증거도 없고 괜히 정신건강에만 좋지 않다. (내가 왜 이리 심통을 부리느냐 하면, <점원>이 정말 전미도서상이라는 큰 상의 심사에서 최종심까지 올라갈 만큼 대단한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우리나라의 누가 말했다. 부모 잘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고. 유대인 엄마 아빠한테 물총 잘 맞는 것도 실력이긴 실력이겠다. 꽤 오랫동안 노벨 문학상을 줄 때에도 특정 작품에 대해 심사를 했던 적이 있다. 어디선가 이이가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였다가 미역국 먹은 적도 있다고 들은 거 같은데 도무지 어디서 본 것인지 찾지 못하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여튼 노벨상 못 받았다. <점원>은 전미도서상 수상엔 실패했지만 미국 문화계 유대인협회에서 주는 ‘전미유대종족문학상’은 받았다고 한다. 그래, 이 정도면 양해해주지. 흠.


​  작품의 무대는 뉴욕의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사는 곳. 빈민가라고 하면 너무 험악할 거 같아서 그렇게 쓰기는 조금 무리다. 이 동네에 60세 노인 모리스 보버 씨가 있어 한 자리에서 21년 동안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아침 여섯 시에 병에 든 우유 박스와 빵을 들여놓고, 이름은 모르지만 폴란드에서 온, 할머니까지는 아니고 나이 든 여자에게 3페니어치 빵을 파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밤 열 시까지 꼬박 계산대 뒤에 서서, 정말 하루 종일 그렇게 서 있으면 하지정맥류로 인한 관상동맥 이상으로 벌써 세상을 떴을 터이니, 오전의 상당한 시간 동안은 유대여인인 아내 ‘이다’가 가게를 좀 봐주는 식으로 일주일에 7일을 쉼없이 열고 있었다. 식료품점이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지만 길 건너에 독일 이민자가, 다른 곳에서 온 것도 아니고 하필 독일에서 온 이민자가 최신식 식료품점을 내는 바람에 이젠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어서 혹시 등장할지도 모를 멍청하고 불쌍한 인간에게 이 감옥살이 itself를 헐값에라도 팔아버리고 싶어한다. 가게 말고 위층에 방이 있어 푸소 가족에게 세를 주었는데, 하다못해 이 푸소 가족들마저 길 건너에서 식품을 사고는 혹시 모리스가 볼까, 들킬까 싶어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레 드나들 정도니 뭐 말은 다 한 거다. 모리스와 이다 사이에는 맏딸 헬렌이 있고, 아래로 에프라임이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과거시제니까 당연히 아들은 병들어 죽었다. 그러나 부모 마음에는 크고 크고 또 큰 상처로만 아직도 살아있다.

  식료품점이 장사가 얼마나 안 되는지, 유대인들이 자식 교육 하나에는 정말 열심인 거 아시지? 똑똑하고 문학에 관심이 지대한 헬렌을 대학에 보내려고, 어떻게 해서라도 보내보려 노력했지만 비싼 등록금을 댈 수 없어서 헬렌은 비서 자리를 얻어 취직을 했고, 야간대학에 1년을 다녔지만 주경야독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서 너무 힘들어 때려치우고 말았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없는 집안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 있으나, 이 집구석은 장사가 안 되도 너무 안 돼, 헬렌이 받은 봉급의 거의 대부분을 (‘가게’ 말고)가계에 보태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소설에서나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같은 유대인이자 좀 멍청한 친구 줄리어스 카프는 어떻게 하다가 주류 영업권을 따고, 잘 사는 친척이 종자돈을 대주는 바람에 가난한 동네에 주류판매점을 개업해 대박이 난 인물이다. 가난한 동네가 술은 더 많이 팔리는 건 뉴욕이나 런던이나 춘천이나 마찬가지다. 돈이 많아지면서 저절로 똑똑해지기 시작한 카프 사장은 어느 날 밤, 가게 맞은 편 도로에 불 꺼진 승용차가 서 있는 걸 보고 일찌감치 문을 닫고 들어간다. 그리하여 애초에 영업이 잘 되는 주류판매점을 털려고 했던 두 명의 권총강도는 꿩 대신 닭이라고 카프네 말고 가뜩이나 장사 안 돼 돈이 떨어지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날이 헬렌의 봉급날이라서 봉급 받은 대부분을 가지고 있던 모리스 씨네 식료품점에 쳐들어와 돈을 다 털어가고, 그것밖에 없냐고, 더 내놓으라고 협박하다가 급기야 권총으로 쏴 죽이지는 않고, 권총 손잡이로 모리스의 이마를 후려쳐 까무러치게 만들어버린다. 이때 때린 놈은 동네 전담 경찰의 아들 워드 미노그, 폭행을 말리다가 졸도하기 일보직전의 모리스에게 물 한 컵을 떠다 준 놈은, 흠.

  그해의 11월의 화요일. 동네에 한 젊은 남자가 등장한다. 검은 턱수염, 낡은 갈색 모자, 갈라진 에나멜 구두와 해졌지만 검정 롱코트를 입은 남자는 며칠 동안 모리스 씨네 식료품점을 관찰하는 것 같다. 프랭크 알파인이라는 이탈리아 계로 부모가 없어서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누이가 가리발리 부인이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그건 거짓이라고 실토한다. 그가 어떻게 해서 식료품점에 들어오고, 척 보니까 돈 한 푼 없는 걸 알아챈 모리스 씨는 (없는 자들에게는 언제나처럼)차와 빵 같은 걸 먹여 보내고 그랬는데, 어느날 밤 글쎄 지하실에서 뭔 소리가 나길래 집안에 하나 있는 남자라고, 몽둥이를 든 채 지하실 문을 열고 불을 비춰보니 이 추운 날에 거기에 프랭크가 잠들어 있는 거였다. 프랭크는 이때 자신의 신상에 관해 전부 털어놓고 급여는 없어도 좋으니 그저 먹여주고 지하실에서라도 잠만 재워주면 자기가 점원으로 일해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 군식구 하나를 더 들일 수 없는 모리스 보버 씨. 거절을 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프랭크는 오히려 더 열심으로 가게를 청소하고, 물건을 받고, 모리스 씨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친절로 손님들을 맞은 결과, 놀랍게도 놀라운 매출을 올리고 만다. 와우. 근데 모리스 씨, 이때는 몰랐다. 나중에는 눈치를 챘지만.

  프랭크 알파인이 가게에 쳐들어온 권총 강도 가운데 물 한 잔을 떠온 강도였으며 갑자기 올라간 매출은 당시 자기 몫으로 워드 미노그가 프랭크한테 준 돈의 전부였다. 프랭크, 얘 정체가 뭐야? 회개한 검은 양? 좀 웃긴다.


​  이 작품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 유대성 등에 관해 이야기하는 모양인데 나는 한 집단으로의 유대인이란 종족이 있다는 것에만 초점을 둔다. 그들의 정체성과 폐쇄성, 그리고 종교에 관해서는 특히 관심이 없다. 작품의 말미에 랍비 하나가 나와 누가 유대인인가, 하는 문제를 설파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게 뭐? 나는 아무 관심도 없이 그냥 훅, 읽고 지나쳤다. 그건 이 작품이 나온 1950년대에나 중요한 것이지 지금에 와서 유대인인지 아닌지 뭐가 중요한가 말이지. 소설 속에 모리스의 딸 헬렌이 등장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니 틀림없이 연애하는 장면도 나온다. 헬렌을 둘러싸고 부모, 이웃 간에 유대인은 유대인끼리 혼인을 해야 하고, 유대인이 아닌 족속들은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것도 줄창 나오지만 그래서 뭐?


​  말이 나온 김에 하나 정확하게 하자. 역자 이동신. 나이도 좀 있는 거 같은데 헷갈린 모양이다. 위에 모리스와 이다 보버 부부 사이에 큰 딸, 효녀 중의 효녀 헬렌이 있다. 헬렌의 연애담도 당연히 등장한다. 그리하여 한 장면이 나온다.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은 씬이다. 어쨌든 이제 막 결합을 하려는 순간, 헬렌의 입에서 욕설이 터진다.

  “잠시 후, 그녀가 소리질렀다. ‘개자식 ᅳ 포경도 안 한 개자식!’” (p.249)

  헬렌도 유대인이니까 여기서 말하는 건 상대가 할례를 안 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위에서 “포경도 안 한”은 “포경(수술)도 안 한”의 뜻이란 건 안다. 하지만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저자, 역자는 일반 독자하고 똑같이 쓰면 안 된다. 포경은 包莖, 감쌀 포, 줄기 경. 줄기를 감싸고 있는 것, 인간종의 수컷에서 줄기를 감싸고 있는 건 뭐 다들 아시는 것과 같이 소위 “조껍데기”다. 그러니 “포경도 안 하다”는 줄기를 감싸지도 않은 것, 즉 할례를 했다는 뜻이다. 하고자 하는 의미와 완전히 반대되는 말이니 틀린 번역이다. 우리도 알고 쓰자. 대신 “할례도 안 하다” 또는 “포경수술도 안 하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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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4-11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대남에겐 중요하군요 ㅋㅋㅋ 안한 걸 햇다하면 안돼죠 ㅋㅋㅋㅋ

Falstaff 2023-04-11 09:35   좋아요 0 | URL
남자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녀한테 까고 안 까고가 중요했던 것이지요.
레마르크가 쓴 <그늘진 낙원>에선 1940년대 스페인의 진보적 유대남들은 안 까기도 했던 걸로 나오더군요.

공쟝쟝 2023-04-11 11:14   좋아요 0 | URL
엥 근데 저 궁금한데 유대인 할례랑 우리나라 포경수술도 관련이 있나요? 식민잔재인가… (찾아볼게요!!)

공쟝쟝 2023-04-11 11:19   좋아요 0 | URL
헐 ㅋㅋㅋ 남한만 하네요 ㅋㅋ 미군정기 유행템이었대요 ㅋㅋㅋㅋㅋ 요즘엔 안한대요… 갑자기 식민지 분단국가 남성들이 짠해지네요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4-11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아 진짜 마지막 대목은 왜 이렇게 웃깁니까? 유대인에겐 중요하군요. 그럼 진짜 비유대인과연해하기 힘들겠네요. 유대인이 자신들의 집단을 유지하는 힘이 종교만은 아니군요. 할례 즉 포경수술이(뭐 이것도 종교에서 기인한거긴 하지만 그래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Falstaff 2023-04-11 11:46   좋아요 2 | URL
ㅎㅎㅎ 이거 TMI 인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밝히겠습니다.
저는 스물여섯 살에 제가 직장 다녀서 번 돈으로 병원가서 시술을 했습니다만,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할 거 같아요. 마치 새 세상을 만난 것처럼 뽀송뽀송한 세계를 경험한다니까요. 유대인들, 아랍인들이 다 머리가 있어서....ㅋㅋㅋ
붕대 감은 채로 직장 점심시간에 족구하다가 축구공에 맞아 실밥이 터져 붕대가 시뻘개졌을지언정 아문 다음엔 까짓 것은 아무 것도 아니더라고요.
당연히 종교하고는 관계 없습니다.

공쟝쟝 2023-04-11 12:1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뒷부분 사정도 아는데 골드문트님 ㅋㅋㅋ 죄송해요 ㅋㅋ 기억력이 좋아서 ㅋㅋㅋ

Falstaff 2023-04-11 12:25   좋아요 0 | URL
저 뒷부분에 뭐가 있는지 저도 모르는데요. 뒷부분이라면 치질 얘기 같습니다만. ㅎㅎ
그게 아니라면 저도 궁금하니 공개하셔도 좋습니다. 전 치핵, 치루 같은 거 말고, 치열이 조금 있어서 술이 좀 과하면 다음 날 약간 째집니다. 그거 얘기 같군요.

공쟝쟝 2023-04-11 12:35   좋아요 0 | URL
네 뜻하지 않았지만 앞뒤사정과 히스토리를 알게되어 … 많이 걸으실테니, 술 좀만 드시구요!!!!

바람돌이 2023-04-11 15:2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족구하다 공에 맞고도 잘 아물어서 정말 천만다행입니다. 제가 아들이 없어서 교훈을 들려줄수 없음이 슬플따름입니다. ㅎㅎ

blanca 2023-04-11 1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연히 유대인들 핍박 받은 역사에 대하여 증언적 문학을 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만, 그 정체정 자체와 특권적 현재 위치를 적절히 타협하여 이용하는 것에 거부감 있어요. 과거를 이용하면서 현재적 특권을 공고히 하는 거잖아요. 골드문트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Falstaff 2023-04-11 14:59   좋아요 0 | URL
과거의 피해가 지금의 특권으로 되는 현상, 그게 또 미움/증오로 변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찬성할 수 없습니다. 동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oolcat329 2023-04-11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몰랐던 사실을 알았습니다. 뭐든지 대충 알 것이 아니라 한문의 뜻을 정확히 알고 사용해야겠어요.

유대인이 전쟁에 참전하는 게 흔한 일이 아니군요. 그러고 보니 저의 인생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연합군이 히틀러 술창고 발견했는데, 극중 실존 인물이었던 한 유대인 장교가 히틀러 한정판 코냑을 가져와 나중에 손자 성인식 때 썼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ㅎㅎ

근데 조지프 헬러의 <캐치 22> 읽다 포기 했는데 다시 도전해 봐야겠습니다. 2차대전 참전한 유대인이라니 또 흥미가 가네요.

Falstaff 2023-04-11 21:00   좋아요 1 | URL
유대인들이 유럽 사람들한테 미움을 받은 진짜 이유가 저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봅니다. 원주민들은 만날 전쟁터에 나가서 죽고 다치고 그랬는데 유대족들은 시내에 머물면서 부자가 되기도 했거든요. 비록 얼마 벌지 못했다고 쳐도,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에 나간 사람들한텐 정말 아니꼽게 보였을 겁니다.
저는 이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걸 거론하는 사람은 포이히트방거 말고는 찾을 수 없었답니다.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게 살고 죽는 거 아니겠어요. 거기서 살짝 빠져나가니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캐치 22는 사실 좀 거칠지요. 그것만 극복하면 정말 잘 쓴 반전문학이라고 생각한답니다. ^^

coolcat329 2023-04-11 21:39   좋아요 1 | URL
아! <미국의 목가>의 시모어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해병대를 들어간 게 이해가 됩니다. 대부분의 유대인이 군입대를 멀리하는 현실에서 유대인이 아닌 진정한 미국인으로 거듭나려면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포이히트방거 <고야...>말고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3-04-12 06:25   좋아요 1 | URL
아, <미국의 목가>. 읽어본지 오래라 기억을 못했습니다. ㅎㅎㅎ
유대인들은 유대인들과 여호와를 위한 전쟁이 아니면 그저 못 본 척 했을 겁니다. 뭐 다 그런 것이지 그이들이 그리 특출난 것도 아닙니다만. ^^;;
 
오후의 예항 / 짐승들의 유희 대산세계문학총서 182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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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표적인 탐미주의적 작가 미시마 유키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70년대 초반에 집에 있던 <금각사>를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고 읽어봤고, 쉰 넘어서 <가면의 고백>을 읽었는데 그게 다였다. 무엇 때문에 극우 골통 군국주의자가 쓴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했던 거다. 미시마 유키오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1960년대 초반, 책의 뒷면에 쓰인 걸 그대로 인용한다면 “작가적 역량이 절정에 오른” 시기에 쓴 작품임에도, 미시마는 적어도 반 세기 정도 발달장애가 있었던 것처럼 여전히 탐미주의적, 예술지상주의적이고 만일 그게 아니라면 청소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차일디시, 좋아 좋아 영어 말고 예스럽게 얘기하자면, 구상유취한 정서를 미시마 특유의 미문으로 그려내고 있다. 만일 조선이었던 시절의 김동인이 자신의 전성기에 이런 작품을 썼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만세삼창이라도 해줄 수 있지만 1960년대, 며칠 뒤면 김승옥이 <생명연습>을 발표할 시점에 이렇게 발랄 엽기적 소설을 쓰는 이유는 도대체 뭐였을까? <오후의 예항>은 발표한 뒤에 곧바로 영역하여 영미권에서 절찬리에 읽혔다고도 한다. 독자들이야 죄 없다. 미시마의 미문은, 내용이 어떻고 주장하는 바가 저떻더라도 문장 하나만 가지고 충분하게 매료시킬 수 있을 터이니. 물론 이 독자들의 범위에서 나는 좀 빼주라.


  “그는 그것(복도에 선명하게 떨어진 햇빛)을 사랑했다. 수줍게, 열렬히. 어째서 저런 창에서 떨어지는 햇빛이 좋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것은 은혜롭고 아주 거룩한 느낌이었는데, 칼로 토막 살해당한 유아의 하얀 몸처럼 마디마디 잘려져 있었다.” (<짐승들의 유희> 1장. p.200)


​  “노보루는 있는 힘껏 새끼고양이를 들어 올렸다가 목재 위에 세차게 내리쳤다. 손가락 사이에 잡혀 있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간 것은 멋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에는 부드러운 털의 감촉은 아직 약하게 남아 있었다. … (중략) … 노보루가 다시 잡아 올린 것, 그것이 이미 고양이가 아니었다. 반짝이는 힘이 그의 손가락 끝까지 꽉 차서, 그는 이번에는 자기의 힘이 그려내는 분명한 궤적을 따라 집어 올려 그것을 목재에 몇 번이고 내려칠 뿐이었다.” (<오후의 예항> 1부. p.65)


​  위에 인용한 문단은 19세기 자연주의 시절이나 20세기 초의 예술지상주의 혹은 세기말주의에서나 볼 수 있고 어울리는 것이지, 60년대에 이게 뭡니까. 평상시에 생각하는 게 이런 따위니까 천황, 뭐 천황? 그냥 왕이라고 해야 마땅하리라, 하여간 절대왕권을 위한 쿠데타 비슷하게 시도하다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할복을 해버린 것이지. 할복이나 제대로 했나? 배는 갈랐지만 숨이 넘어가지 않아 할복 도우미, 가이샤쿠가 옆에서 빨리 죽으라고 목을 쳐버렸고, 단번에 잘리지 않아 여러 번의 난도질 끝에 데굴데굴 구르던 미시마의 머리통, 이 가운데 대뇌, 큰골은 아직 완전한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테고 그러면, 어쩌면, 혹시라도 여전히 살아있는 눈을 통해 머리통이 잘린 자신의 몸통을 아주 잠깐이라도 구경하고 가지는 않았을까? 아, 나는 “토막 살해당한 유아의 하얀 몸”이라든지 통나무에 새끼 고양이를 패대기쳐서 죽이는 장면 같은 건 아주 질색이다, 질색. 이런 장면을 연상하지 않더라도 세상은 충분하게 살기 힘든 곳이라서.


​  시절에 맞든 맞지 않든 간에 인정할 것은 인정한다.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적 뇌 놀림. 이건 정말 대책이 없다. 미시마 흉을 보느라 벌써 지면을 많이 써버려서 <오후의 예항>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 위에서 인용한 ‘구로다 노보루 黑田登’라는 열세 살의 촉법소년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노보루가 여덟 살 때 일찌감치 차마 감지 못할 눈을 감아버리고, 어머니 구로다 후사코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일본 최고급의 수입 양품점 ‘렉스’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놀랄 만한 수완으로 더욱 번창시켰다.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한 테니스를 클럽에서 정식으로 배워 탄탄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서른네 살의 아름다운 여성. 그러나 철저하게 수절하고 있는 과부라서 거의 매일 밤 모든 옷을 벗고 전신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나신을 비춰보는 습관이 있다는 걸, 노부로는 우연히 서랍장에서 서랍을 모두 빼고 안에 들어가 장 때문에 가려져 있던 틈 사이로 훔쳐보면서 알아냈다. 아무리 미시마 유키오라고 해도 아들이 엄마의 사생활을 전부 관찰하게 만들 수는 없어서 틈으로 볼 수 있는 엄마 방의 범위를 한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 돈 많은 미인 과부가 언젠가는 베드 씬을 한 번 벌이지 않겠느냐, 그럼 엄마의 엑스터시를 아들이 A부터 Z까지 생 라이브로 관람을 하게 만들어야겠느냐, 하는 딜레마가 있었을 터이다.

  노부로는 바다와 선박, 그리고 항해에 관한 로망이 있다. 배의 구조와 설치물에 관해서는 상당한 지식까지 가지고 있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조금 천재성까지 있을 거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소년이라서 어머니한테 배 구경을 하고 싶다고 졸랐다. 세계적인 무역항 요코하마에서 일본 최고급 양품점을 하는 유력인사인 어머니는 선박회사 전무에게 부탁을 했고, 전무는 소개장을 써주면서 화물선 라쿠요마루 선장을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리하여 이틀 전, 라쿠요마루 호에 오른 모자는 마침 선장이 외출 중이라 삼십대 단단한 체력과 체격을 갖춘 스카자키 류지 이등항해사의 안내로 배 견학을 한다. 받으면 보답을 해야 하는 게 일본식이라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도 친절한 어머니인 후사코 씨는 그랜드호텔 양식당에서 류지에게 다음날 저녁 식사를 대접했고, 비프 스테이크를 대접한 김에 자신의 입술까지 주어버린 건 뭐 한창 때의 과부가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에그머니, 열세 살 먹은 노부로가 바로 옆방에서 자는 자기 집, 자기 방, 자기 침대에까지 끌어들인 거, 이건 어쩔겨? 물론 벌써 배꼽 아래 13cm에 푸른 색 모근으로부터 검정 터럭이 촘촘하게 돋고 있는 사춘기 아들이 서랍장 속에 들어가서, 부얼부얼한 가슴 털이 아래로 쪽 이어진 곳에서 류지의 “무성한 털을 뚫고 나와 자랑스러운 듯 솟아 있는 매끈매끈한 불탑”과 엄마의 맨 다리를 보고 있었다는 것은 몰랐을 테지.

  사실 노부로는 밤마다 가택연금 비슷한 “자기만의 방에서의 연금” 중이다. 여섯 명으로 된 학교에서 마리 좋은 아이들의 모임이 있다. 대장이 있고, 1호부터 5호까지 있어, 노부로는 3호로 불린다. 하루는 대장이 꼬여서 한밤중에 몰래 나가 놀다가 엄마한테 제대로 들켜 이후부터 밤마다 엄마는 방문을 밖에서 잠궈버렸다. 덕분에 노부로는 서랍장 속의 비밀을 하게 되긴 했지만. 하여간 이 또래들은 매우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바, 모든 영웅적인 것을 숭배하고, 지질한 잡것들을 타도해야 할 것으로 구분한 것. 제일 먼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무리는 바로 아버지란 작자들하고 선생이란 새끼들이었다. 강한 자들에게는 경배하지만 위에 인용한 것처럼 새끼 고양이 같은 약하고 구질구질한 것들은 멸해야 마땅한 거다. 그리하여 새끼 고양이를 산 채로 통나무에다 패대기를 쳐 죽인 다음에 껍데기를 벗기고 배를 갈라 장기를 적출해 붉은 심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까지 구경하는 내내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할 수 있었다. 이 여섯 명의 자칭 천재들은 스스로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형법 제41조, “14세가 되지 않은 자의 행위는 이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제 세상이 자신들은 선한 존재, 귀엽고 아름다운 존재로 알아주는 일은 불과 몇 달밖에 남지 않아 자신들의 특권을 한 번을 써봐야겠다고 진지하게, 아주 진지하게 결심하고 있으니, 이거 진짜 미시마 유키오 맞지?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나는 당신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거 말고도 읽을 책은 넘치고 넘친다. 그러나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 내가 주제넘게 읽어라, 읽지 마라를 권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불행하게도 미시마의 탐미적이고 감각적인 문장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걸 재료로 만들어 이 책에 담은 두 편의 소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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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08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토당토 않은 작가의 정치적
행태와 말로 때문에 도무지 정
이 가지 않는 작가입니다.

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작가가
추구한다는 탐미주의에 대해
서 와 닿지가 않더군요.

Falstaff 2023-04-08 14:58   좋아요 1 | URL
이 책을 낼 때까지는 군국주의를 노골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는데 뒤로 갈수록 도라이로 바뀌었지요. 제 생각엔, (어떤 기준인지는 몰라도) 병약했던 청소년기, 폐결핵 진단이 오진인 것을 알면서도 시침 뚝 떼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은 과거, 이런 것들이 점점 커져 완전히 맛이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림의 이면 을유세계문학전집 122
씨부라파 지음, 신근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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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소설로는 두 번째 읽는 작품이다. 만일 버마 출신 중국인이면서 태국에서 대학에 다니며 농민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농민운동에 뛰어든 민퐁 호가 쓴 <아버지의 쌀알>을 태국 문학이라고 치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걸 빼면 <그림의 이면>이 처음 읽는 태국 소설이다. 태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작가 씨부라파는 (이하 위키피디아 및 해설/연표를 참조했음) 1905년 철도청 1등 서기 쑤완 싸이쁘라딧과 쏨분 싸이쁘라딧의 맏아들 꿀랍 싸이쁘라딧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다. 청소년시절엔 부유층 자제들이 주로 다니는 데브시린 학교에 들어갔지만 대부분의 학생과 달리 1등 서기관이었던 아버지는 여섯 살 때 일찌감치 세상 하직을 해 싸이쁘라딧 가문의 맏아들이자 외아들인 꿀랍의 교육비를 위해 엄마는 재봉사가 되어 자기는 입어보지 못할 여성복만 죽어라 만들어야 했고 여동생마저 손가락을 이상하게 비틀며 포즈를 취하는 태국 전통 무용수를 해야 했다. 아직 중등학교에 재학중이던 1923년, 열여덟 살 때 신문에 ‘선언’이란 사설을 발표하면서 본명 꿀랍 싸이쁘라닷을 버리고 씨부라파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근데 씨부라파 보다 꿀랍이 그래도 어감이 더 좋지 않은가? 내 귀에만 그런가? 하여간 이후에도 신문기자 등 신문newspaper인으로, 진보적 소설가로 활발한 작품생활을 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문학인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한다.

  진보 문학인답게 1952년에는 한국전쟁(에 태국이 연합군을 파병한 일)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하다가 평화 반란죄를 범해 13년 4개월 형을 선고받고 57년 2월 불교나라 태국답게 불기 2,500년 기념으로 사면되기까지 4년 이상을 복역하고, 같은 해에 태국의 대표적 좌파 문인 자격으로 러시아혁명 4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아 소련을 방문한다. 이듬해에는 고리키의 <어머니>를 태국어로 번역 출판도 했다. 8월엔 태국의 “문화교류진흥단”을 이끌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초청을 받아 베이징을 방문하기도 했으니 당시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유행하던 우파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씨부라파는, 이왕 베이징에 간 김에 그냥 중화인민공화국, 중공으로 망명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16년 후, 그 좋은 태국의 공기만 마시다가 베이징에서 황사 섞인 스모그를 장복해서 그랬는지 폐렴과 관상동맥질환으로 사망하니 향년 69세. 하긴, 1974년에 69세면 죽어도 그리 아까운 나이는 아니었다.


​  <그림의 이면>에서 ‘그림’은 훌륭한 아마추어나 딜레탕트 수준의 화가(지먕생)이 그린 수채 풍경화로 일본의 미타게 산 근처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들과 오솔길, 물돌물 돌물돌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걸 그린 평범한 그림으로, 주인공 놉펀이 자기 서재에 책상에 앉았을 때 등 뒤 벽에 걸어놓은 “작품”이자 결혼 축하 선물이다. 그림에 관해 조금의 감식안만 있어도 차마 돈을 주고 사게 되지 않는 그림이지만 내가 이걸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비록 객관적 시각에 의하면 평범할지언정 놉펀의 입장에서 그림을 바라보면 이 그림의 이면에 인생이 있고 그 인생이 자신의 마음에 새겨져 있어서 만일 정면에 걸어 둔다면 신경을 몹시도 건드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놉펀, 사람 좋다.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림을 앞이건 뒤건 뭐하러 걸어 둬? 눈 앞에 보이면 신경을 그것도 “몹시” 건드릴 거 같다며? 그럼 뒤에다 걸면 그림 속에서 귀신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려고. 나 같으면 안 건다. 작가의 인생이 놉펀의 마음에 새겨질 정도라면 더 그렇지. 뭐 좋은 기억/추억인 모양이지?

  우리의 주인공 놉펀은 현재 일본 릿교 대학에 유학중이다. 아버지는 나 같은 서민이 보자면 재계에서 무지하게 빵빵한 거물이고, 장남이 일본에서 유학을 마치고 거기서 직장을 얻어 장가들어 일본인으로 살까 걱정이 되어 놉펀을 말도 몇 번 못해본 부잣집 아가씨 쁘리와 약혼시켜버렸다. 지금은 스물두 살 청년이지만 스무 살 때. 나 참. 내가 놉펀 아빠면 쁘리하고 결혼시켜 둘 다 유학시켜버리겠네. 그러면 씨부라파로 하여금 이런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게 할 수 있었지 않은가 말이지. 하여간 놉펀이 이제 스물두 살의 여름을 맞아, 당시 태국까지 가는 뱃삯이 보통이 아니라 도쿄 시내에서 빈둥거려야 할 때, 아버지의 친한 친구이며 평소 놉펀도 존경해 마지않던 아티깐버디 공(公)이 홀아비 생활을 마치고 두번째 장가를 들어 국왕의 증손녀인 끼라띠 여사와 도쿄로 허니문을 와, 그들의 관광 가이드 및 도쿄에서 8주 이상 묵을 숙소 임차 등을 맡기도 했다. 아티깐버리 공은 태국에서 손꼽히는 재벌 가운데 한 명이라, 비용은 얼마가 들든지 간에 하여간 자기는 호텔이 싫으니 독채 살림집을 빌리라 해서 도쿄 교외에 있고 철도와도 멀지 않은 아오야마 지역에 외관은 서양식, 실내는 다다미방으로 된, 일본식 정원으로 잘 치장한 집을,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보통보다 두 배는 비싼 하녀 한 명과 함께 임대해 놓았다. 이에 만족하는 아티깐버디 공. 그리고 끼라띠 여사.

  끼라띠 여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번 대강이나마, 원문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특징을 소개해보면, 예상외로 젊은 여성으로 눈부시게 빛나 보인다.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있는 남색 복장에 흰 모자, 그리고 하얀 신발. 통통하지만 체구가 크지는 않으며, 풍만하고 피부가 부드러워 빛이 났다. 그래, 1930년대에는 “통통하고… 풍만하고 부드러운 피부”가 미인의 척도였다. 하, 정여사 생각나네. 비단 있지? 그걸 쓰다듬을 때 느낄 수 있는 손의 감촉. 정여사 피부가 딱 그랬다는 거 아녀?

  놉펀은 끼라띠 여사를 보고 급하게 머리를 굴려보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스물여섯이나 일곱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아티깐버디 공은 쉰 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젊고 싱싱하고 아름답고 귀한 가문의 여성이 쉰 살 먹은 쉰 늙은이와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을까? 처음엔 이게 궁금했다. 하여간 관심이 생겼다. 독자는 21세기를 살고 있어서 까질대로 까진 상태. 한 눈에 척 보고 놉펀, 얘가, 얘가 사고 한 번 치겠구나, 딱 감을 잡는다. 다만 문제는 끼라띠 여사가 왕가의 숙녀이며 거대 부를 보유한 공公의 아내로 쉽게 놉펀에게 마음을 주겠느냐, 하는 건데, 여기에 시절이 1930년대, 동남아 출신이 유교국인 일본에 와서, 이게 되겠냐, 하는 거. 어려서부터 엄한 가정에서 자라면서 학교 대신 서양에서 온 노처녀 독선생을 모셔놓고 서양식 교육을 받은 끼라띠 여사는 서양 여인으로부터 각종 미용, 패션 잡지를 섭렵하며 젊음을 조금이라도 유지할 수 있는 관리를 받아서 겉으로만 스물여섯, 일곱이지, (어차피 조금만 더 읽으면 나오는 거니까 밝히는데) 알고 보면 서른다섯 살, 당시 기준으로는 중년 여성이었으니 우리의 놉펀과는 열세 살 차이. 그런데도 이게 되겠어? 여사와 공의 열다섯 살 차이를 심한 터울로 봤는데, 놉펀과 여사 역시 열세 살 차이니까 말이지.


​  그래도 <그림의 이면>은 연애소설이다. 내가 줄창 연애소설은 궁극적으로 이별소설이라고 주장한 거 기억하시나?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만일 정말 연애소설이라면 열다섯 살 차이는 억지 결혼이고 열세 살 차이는 자연스런 연애가 되어야 하고, 이별 또한 해야 하는데, 문제는 얼마나 독자가 앙가슴을 치게 만들 수 있는 이별을 연출하느냐,에 연애소설의 성패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필생의 소원이 연애소설 한 편 써보고 죽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뻔하기 때문에. 남녀가 (요새는 남남하고 여여도 포함해서) 만나고, 사랑하고, 점점 뜨거워지다가 몽땅 불사른 다음 이별하는 일과성이자 일방통행을 그리 쉽게 절절하게 쓸 수 있겠어? 이미 그려놓은 보드 위를 달리는 말들인데. 이 책도 그게 아쉽다. 이야기의 배경, 달달한 문장과 애절한 사연, 구성 같은 거 다 좋다. 하지만 결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연애소설이 쉬울 거 같아? 그럼 전부 셰익스피어고 괴테고 톨스토이게?

  (톨 백작의 <안나 카레리나>가 정말 명작인 건, 자식새끼, 늙은 영감 버리고 뛰쳐나온, 인류의 문학 역사상 가장 우아하게 아름다운 여인 안나가 미치게 사랑한 브론스키 백작을 결국 배 나온 대머리 술주정뱅이로 만들었잖여? 톨 백작 말고 이 비슷하게라도 끌고 간 인간이 누가 있는지 가르쳐주시면 만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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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04-06 0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졸라 남주들도 외모는 별루에요… (만원 대신 리뷰 만개 부탁 드림)

Falstaff 2023-04-06 20:00   좋아요 0 | URL
윽. 졸라는 연애소설이 아닌 걸로..... ㅎㅎㅎ ^^;;;

유부만두 2023-04-06 20:51   좋아요 1 | URL
아… 제겐 “제르미날”도 연애소설이었어요;;;

다락방 2023-04-06 0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잠자냥 님의 리뷰 읽고 이 책 사두었는데 골드문트 님의 이 리뷰를 읽으니 사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이천번 드네요. 으하하하하. 주말엔 이 책 읽어야겠어요. 와 너무 쫄깃쫄깃 재미있을 것 같아요!!

Falstaff 2023-04-06 20:01   좋아요 0 | URL
거의 백년 전 작품이니 넘 기대를 많이 하시지는 마세요. 전 러브씬 안 나오는 연애소설은 ㅋㅋㅋ 아주 조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락방 2023-04-06 20:50   좋아요 0 | URL
러브씬 제대로 수시로 나올 설정인데, 아니라구요?????

Falstaff 2023-04-06 21:20   좋아요 0 | URL
넵. 이게 20세기 초 아시아 작가에 의하여 쓰여진 작품입니다. 러브씬이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입술 박치기 한 번 나옵니다. 설왕설래舌往舌來도 없습니다.

yamoo 2023-04-06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니까 톨 백작의 <안나>가 연애소설의 원탑이라는 야그군요! 집에 판본이 2개인데, 일단 눈에 띄는 범우사본으로 일독하야겠습니다! 마지막 괄호 문장이 아주 강력하군요! ㅎㅎ

Falstaff 2023-04-06 20:03   좋아요 0 | URL
옙. <안나....>를 따라올 작품이 동서고금을 통해 몇 개나 있겠습니까. 전 오랜 세월 ˝D > T˝ 즉 도스토옙스키 > 톨스토이 였는데요, 이게 점점 바뀌고 있는 거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