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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 때문에 ㅣ 아시아 문학선 12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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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전윈의 <말 한 마디 때문에>를 읽은 것은, 지난 달에 이이가 쓰고 모우선이 각색한 희곡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 읽고나서 쓴 독후감에서 이야기했듯이, 류전윈의 원작을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맞게도 동네 도서관 개가실에 <만 마디….>의 전편 격인 <말 한 마디…>가 있어서 거의 반사적으로 집어 들었다.
류전윈은 1958년생 개띠 작가로, 허난성 신샹시 옌진현 출신이다. 작가가 열다섯 살 때인 1973년에 처음으로 고향 옌진현을 떠나 군에 입대해 복무를 했다는데,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열다섯 살짜리를 군대에서 받아주었던 모양이다. “인민”의 공화국에서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열다섯 살 아이, 우리나라 학제에 의하면 중학교 3학년생에게 총을 잡게 했다니, 대단하다, 대단해. 그런데 그 나라에선 군대에서 교육도 시키는 모양인지 1978년엔 다른 곳도 아니고 북경대학, 즉 베이징대학에 입학한다. 류전윈의 청소년기 시절 중국은, 인구는 많은 반면에 대학의 수도, 학교의 입학 정원도 극히 적어 학교의 등급은 차치하고 대학에 입학한다는 거 하나만 가지고도 상당히 비싼 총명탕을 몇 사발이나 들이켰다는 증거였다.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옌진현 정도의 촌에서는 큼지막한 현수막 깨나 걸렸을 터인데 하물며 다른 곳도 아니고 베이징 대학이라니, 류전윈이 공부도 엄청 잘했던가 보다. 그럼 생김새는 좀 모자라야 할 텐데 그것도 아니다. 생기기도 잘 생겼지, 소설을 써도 쓰는 족족 베스트셀러에 문학상을 수집하는 게 취미일 정도라니, 좀 재수없지?
왜 작가가 허난성 신샹시 옌진현 출신이라고 소상하게 밝혔는가 하면, 이 책 <말 한 마디 때문에>의 부제가 “옌진을 떠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챕터를 제외하고 작품의 무대는 옌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양쟈좡楊家莊, 즉 양씨 성 집성촌에 사는 두부장수 나이든 양, 라오양老楊에게 아들 셋이 있었는데, 첫째가 장자요, 둘째가 거부요, 셋째가 그이인데 화수분이라고 합죠,는 아니고, 첫째가 사는 데 악착 같은 바이예(百業), 둘째가 작품의 주인공으로 온갖 굴곡을 겪을 팔자인 바이순(百順), 막내가 양아치까지는 아니더도 적극적으로 한 평생 놀고 먹고 싶은 소원을 가진 바이리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옌진 현이라는 행정단위 이곳저곳에 산포한 숱한 X좌장, 씨족 마을의 라오X가 등장해서 독자의 혼을 쏙 빼놓는다. 이 책 재미 있어서, 당신도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힌트를 드리자면 무지하게 많은 엑스트라가 등장하는 장편소설이라 등장인물을 일일이 다 기억할 필요가 없으니 나처럼 라오리, 라오서, 라오쥔, 라오됭, 라오주, 기타등등의 라오들을 전부 외우려고 쓸데없이 뇌 용량을 소모하지 않으셔도 좋다는 점. 뒤쪽으로 가면 작가가 알아서 서너 번씩이나 친절하게 중요한 인물들을 시간/세월 순서대로 정리해주니까. 이렇게 등장하는 라오들은 전부 무슨 장사를 하거나 특정한 기술로 밥을 벌어먹는 사람들이다. 라오양도 양씨 집성촌 양쟈좡에 사는 두부 만들어 파는 두부장사요, 뤄쟈좡의 랴오뤄 뤄창리는 식초를 만들어 팔면서 누가 죽었다 하면 상가집에 달려가 장사 지내는 일을 진두지휘하는 함상 일 전문가이며, 쩡쟈좡의 무릎이 좋지 않은 라오쩡은 50리 안쪽에서 경사나 상사가 있을 때 돼지를 잡아주는 돼지 백정이고, 라오쟝은 옌진 시내에서 큰 염색공방을 하며, 라오루도 시내 근교 대나무밭에서 죽업사竹業社를 하면서 주인공 바이순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니까 가난한 제조/상인이거나 돈을 좀 벌어 그럴싸한 업장을 가지게 된 제조/상인 출신의 공방 사장 정도다.
현대 중국 문인들의 소설을 읽어보면, 생각나는 대로 지금 하고 싶은 얘기와 연결이 되는 인물이라면 모옌을 필두로 다 고만고만한 연대의 쑤퉁, 류전윈, 옌롄커, 위화 등의 경우에, 우리나라 독자들이 같은 동아시아 사람임에도 중국인들은 참 독특하다고 느낄 정도의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에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 어린 시절부터 그만큼 대단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극성을 떨어 그런지, 어디서 들은 바와 같이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작가들의 유소년기에 문화혁명이라는 여차하면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격변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극도로 이기적 유전자가 발현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이 작가들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거나, 같은 의미로, 대단히 솔직하다. 솔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사람들은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대신 그들은 생존을 위하여 (현대 중국인의 특색인) 큰 소리로 항의하거나, 정말로 실행하면서 타인의 시선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보인다. (그럴 때마다 좀 징글징글하기도 하다.)
양바이순이 제일 좋아하는 건 상갓집에서 사회를 보는 “함상喊喪” 전문가 뤄창리가 큰 소리로 노래하듯이 장례를 집행하는 걸 구경하는 일이다. 중국의 장례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장례 전문가 “함상”쟁이가 있어서 손님 등장부터 상주와 인사, 문상, 문상 후 음식 대접 같은 일련의 절차를 크게 외쳐 장례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바이순이 학질에 걸려 끙끙 앓고 있을 때, 집에 있던 돼지가 탈출을 감행해 열이 펄펄 끓는 바이순만 집에 남고 남은 가족 모두가 돼지를 찾으러 갔단다. 이때 바이순의 한 살 위 친구 리잔치가 들러서 30리, 12km 거리에 있는 라오왕이 죽어 아마 뤄창리가 함상 노릇을 할 터인데 구경가지 않겠느냐고 유혹을 했고, 악마의 목소리는 언제나 황홀한 법이라 순식간에 열이 내리며 진땀도 멈춘 것 같아 단숨에 30리를 뛰어간 적이 있다. 그러나 왕씨 상가엔 엉뚱한 함상쟁이가 한참이나 모자란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어 정작 뤄창리 구경도 못하고 그냥 돌아오는 동안 집에서 키우던 양 한 마리가 울을 넘어 도망가고 말았다. 이에 열을 잔뜩 받은 아버지 라오양은 지게 작대기로 양바이순의 대갈통을 후려 갈기며 당장 양을 찾아오라고, 찾지 못하면 들어오지도 말라고 호통을 치고 학질 걸린 아들을 한 밤에 내쫓고 말았다. 이때가 20세기 초 국민당 치하였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밤이면 들판에 늑대가 배회했다고 하니 깡촌은 정말 깡촌이었겠다. 어디 가서 양을 찾나. 그냥 마을 어구의 타작마당 헛집에서 잠을 청했다. 딱 이 시점에 모종의 일로 억하심정이 생긴 이발사 라오페이가 가슴에 날이 시퍼런 칼을 품고 아내와 처남을 쳐죽이려 밤길을 나섰다가 길가에 쭈그려 앉은 바이순을 밟았고, 이것도 인연이라고 밥도 먹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바이순을 데려가 이미 문을 닫은 밥집의 현관문을 쿵쿵 두르려 주인을 깨우더니 양고기 볶음 국수를 한 그릇 사주어 바이순이 맛나게 먹었다는 거다. 그게 맛이 있어서 맛이 있었겠나. 옛사람 말씀대로 기갈starvation이 감식이었겠지. 배고픔과 갈증飢渴이 단 음식甘食, 이게 맞는 말은 물론이고 진리다, 진리. 그런데 양바이순이 이때는 몰랐다. 라오페이가 불쌍한 꼴을 당하고 있던 소년 바이순을 데리고 가서 한밤에 문을 닫은 식당을 두드려 주인을 깨우고 기어이 볶음 국수를 한 그릇 먹게 하면서 자신도 한숨 돌려 여유를 찾아 서서히 증오가 풀려 아내와 처남 죽일 생각을 접게 했으니, 하룻밤 추위에 떨더라도 젊은 학질 환자 바이순의 숨은 넘어가지 않았을 터이라, 정작 사람 목숨 살려준 건 라오페이가 아니고 양바이순 자신이었다는 걸. 그것도 칼 맞아 죽을 라오페이의 아내와 처남 두 목숨과 더불어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당할 라오페이의 목숨까지 말이지. 그걸 그럼 나중엔 알게 되느냐고? 아무렴. 양바이순도 몇 년 후에 거의 비슷한 짓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순한 바이순, 백번이나 순한 바이순百順이 무슨 수로? 당신이 바이순이라면 학질에 걸린 아들을, 아무리 미운 둘째 아들일지언정(나도 둘째 아들이다, 왜!) 겨울 한밤에 내쫓는 아버지한테 기쁜 마음으로 두부 만들어 파는 법을 배우고 싶겠어? 그래서 인연을 맺은 김에 라오페이를 따라가 이발 기술을 배웠으면 하는 의견을 피력하게 되고, 라오페이는 도제관계를 맺기 위하여는 너무 깊은 정이 들었던지라 자기 대신에, 우리나라만큼 백정 일을 천시하지 않는 중국이라서 그랬겠지만, 쩡쟈좡에서 돼지 잡는 라오쩡의 도제로 보낸다. 물론 처음부터 돼지를 잡지는 못하고 닭과 개를 잡는 일부터 천천히 진행하다가 아픈 무릎이 도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빨리 실전, 즉 돼지도 잡게 되면서 칼부림 한 번 제대로 할 줄 아는 검사劍士가 되고, 이때 몇 년 전 라오페이처럼 한밤에 칼을 품고 길을 나섰다가 역시 동네 어귀 타작마당의 움집 곁을 지나며 한겨울 밤에 홑옷을 입은 여자 아이를 밟아 볶음국수를 사 먹이는 일이 생겨서 그날 그 일을 떠올리니, 인생은 역시 수레바퀴야.
바이순의 팔자 한 번 기구하고 기구하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직장생활을 길게 이어가지 못하는 바이순은 심지어 이탈리아에서 온 신부의 도제가 되기도 하는데 결국엔 그리스도교에 감화 감동을 받지 못하고 이별하지만, 하여간 신부의 도제가 된 기념으로 이름을 양바이순에서 양모세가 되고, 양모세로 한 일 년을 산 다음엔 중국식 만두인 만떠우 장사를 하는 우샹샹이란 과부의 데릴남편으로 들어가면서 양모세가 우모세로 성까지 바꾸는 일까지 생긴다. 이 작품의 부제가 “옌진을 떠나는 이야기”. 이건 당연히 우리의 주인공 양바이순이 어쩔 수 없이, 예전 스승으로 <논어>를 가르쳐준 라오왕을 예로 삼아 옌진을 떠나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을 나서게 되는 참으로 기구한 팔자를 그리고 있다.
재미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이쯤에서 말아야겠다. 읽는 도중에 모우선이 각색한 희곡을 이 책 읽은 다음에 봤으면 더욱 좋았을 거란 생각까지 들었다. 희곡 <만 마디를 대신하는 말 한 마디>는 이 책과 후속편인 <만 마디…> 두 권의 스토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후속편은 몇 달 있다가, 희곡의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을 때쯤 해서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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