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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기계
장 콕토 지음, 이선화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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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모리스 유진 클레망 콕토. 프랑스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 조형예술가이면서 비평가의 명함을 지닌, 초현실주의자, 아방가르드이며 다다이즘 운동의 기수이기도 했다. 당연히 20세기 초반의 지구 예술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이이가 관심을 둔 분야를 좀 보시라.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다다이즘. 나는, 여태 읽은 장 콕토, 그래봐야 몇 권 안 된다, 가운데 흥미 있다거나, 재미 있다거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 <지옥의 기계> 역시 만일 책가게에서 쇼핑 중에 눈에 띄었다면 백이면 백, 돈 주고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쇼핑 대신 도서관 개가실의 아이 쇼핑 중에 눈에 들어와 별로 기대하지 않고 주워 읽었다가, 세상에나, 이런 대박이 있나 그래. 그동안 읽은 장 콕토는 1930년 작 <사람의 목소리>와 40년 작 <폭탄녀>가 전부인데 둘 다 단막극이었다. 어땠냐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폭탄녀>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심지어 에디트 피아프가 파리 오페라 코믹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노래도 한다. 그래서 CD로도 나왔고 나도 가지고 있는데, 나중엔 나의 유일한 라이벌 알랑 들롱이 주연을 맡아 영화로도 제작했다. 원래 제목은 <La Bel Indifferent>이지만 <폭탄녀> 또는 <재수없는 여자>가 아주 맞춤한 제목이다.
<지옥의 기계>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희곡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신화를 주제로 했다면 당연히 소포클레스의 <폭군 오이디푸스>를 첫 손에 꼽을 것이다. 나도 소위 무인도 책, 하면 1번이 소포클레스의 이 작품을 선택할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 저 먼 시절, 독일의 작곡가 카를 오르프가 젊은 시절에 극장에 가서 독일어로 번역한 <오이디푸스>를 보고 완전히 빠져버린다. 오르프는 관람 이후에 도무지 극의 감흥에서 벗어나지 못해 소포클레스의 작품인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를 오페라로 작곡하려 전력투구, 여태까지 없던 놀라운 표현방식의 현대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왜 오페라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고전극을 관람할 기회가 거의 없다. 반면에 오르프의 두 작품은 DVD로 발매를 한 적이 있어서, 영상물을 본 것이 소포클레스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 그리스 고전을 읽을 때 조금 곤혹스럽게 다가왔던 것이 코러스였다. 그것이 작품의 진행을 설명하고, 현재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가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는 걸, 아주 빨리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마지막 장면, 테바이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도대체 테바이가 어떤 죄를 지었기에 이리도 독한 벌을 받는지를 밝히기 위해 오이디푸스의 궁정에서 백관들이 모인 가운데 작품을 시작한다. 반면에 콕토의 <지옥의 기계>는 오래 전 예언가 테이레시아스가 전해준 신탁에 의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인 자신의 갓난 아이를 발등에 구멍을 내고 끈에다 묶어 깊은 산에 내다 버린 왕비 이오카스테가, 한밤에 테이레시아스와 함께 성벽에 올라 아들에게 맞아 죽은 왕이자 남편인 라이오스의 유령을 만나려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니고 성벽 위의 망루에 나타난 죽은 왕의 유령. 어디서 본 거 같지? <햄릿>? 나도 그랬다. 덴마크 죽은 왕의 유령은 동생 클라우디우스가 아내 거트루드와 결혼한 다음에 나타난 반면, 라이오스 왕의 유령은 아내 이오카스테가 아직 오이디푸스와 결혼하기 전인데 이런 희대의 불행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 나타난다. 하지만 성벽 위의 두 병사한테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반면, 당대 뿐 아니라 그리스 최고의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와 이오카스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메시지도 전해줄 수도 없었다.
테이레시아스. 일찍이 목동으로 일을 하던 소년 시절, 산길에서 교미하는 뱀을 회초리로 쳐죽인 벌로 남자의 몸에서 여자의 몸으로 바뀌어 출산도 하는 등 여성으로 살다가, 몇 년 후 다시 산길에서 또 교미하는 뱀을 이번엔 내버려뒀더니 원래대로 남자로 변신했던 인물이다. 조금 후에 유피테르와 헤라가, 남녀가 교접하면 어느 편이 더 큰 엑스터시를 느낄까, 말다툼을 하다, 둘 다 경험해본 테이레시우스를 불러 물어봤더니 “쇤네가 둘 다 해봐서 아는데요, 여자였을 때가 남자일 때보다 아홉 배 정도 더 까무러치게 좋았습지요.”라고 대답했다. 내기에 진 헤라가 열을 받아 눈을 한 번 슬쩍 만졌더니 그만 장님이 됐고, 순간의 화딱지를 참지 못한 헤라는 눈을 대신할 수 있는 지팡이와 오랜 수명, 그리고 절대 틀리지 않는 예언의 능력을 보너스로 주었다. 오래 살면 좋은가 뭐? 예언, 미래를 미리 알면 좋을 거 같지? 흠. 아닐 걸? 하여간 신들의 선물을 이렇게 많이 받은 테이레시아스 역시 유령을 알아채지 못했다. 또는 알아채긴 했는데 예언자의 맹세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거봐, 살기 힘들지.
이 테이레시아스는 애초부터, 그러니까 3막에 들어 오이디푸스를 처음 보자마자, 아, 저 잘생기고 덩치 좋은 젊은이가 바로 오이디푸스구나, 라고 척,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아는 척하지 못하는 예언자의 팔자라니.
1막에선 테바이의 성벽 망루에 아들 손에 죽은 라이오스 왕의 유령이 나왔고, 3막에선 드디어 오이디푸스와 왕비 이오카스테의 초야가 벌어진 침실이다. 새로 왕이 된 사람은 관례상 첫날 밤에 대예언자와의 접견을 해야 한다고 해서 테이레시아스와 오이디푸스가 독대를 하고, 이어 모자간 첫밤을 보내게 되는데, 1934년에 쓴 작품이니 괜히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마시고, 다만 오이디푸스가 아내를 품에 안고 싶은 마음보다, 이오카스테의 품에 안기고 싶은 생각이 훨씬 더 강하게 들었다는 정도의 얘기만 하고 넘어가겠다.
그럼 2막에 나오는 것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이자 현직 테바이의 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건, 신화를 통해 알고 있듯이 오이디푸스가 출중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말 앞잡이를 치려 지팡이를 휘둘렀는데 우연히 그게 가뜩이나 늙어 오늘 낼 하는 왕의 관자놀이에 잘못 맞아 즉사를 한 것으로, 극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있었던 일로 치부된다. 2막에서는 또다른 중요한 오이디푸스의 에피소드인, 스핑크스와의 만남이 등장한다. 스핑크스는 이제 한 명의 테바이 젊은이만 죽이면 자신의 수행이 끝나는데, 그간 계속된 살인이 지긋지긋해서 거의 인생무상의 경지에 다달았다. 스핑크스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어여쁜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대리석 좌대에 서 있다. 마치 세일런처럼 지나가는 남자들을 미모로 유혹하고 수수께끼를 내 미혹에 빠뜨려 죽이는, 또는 죽여야 하는 운명. 하필이면 이때 오이디푸스와 마주친 것.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스핑크스는 자신이 어떤 수수께끼를 낼 것이고, 답이 무엇이라는 말을 오이디푸스에게 해준다. 스핑크스는 과제를 마칠 순간이 가까워 오자 차라리 자신이 죽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4막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같다. 소포클레스를 각색한 오르프의 오페라에선 무대 위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내인 줄 알았던 엄마 이오카스테의 브로치 바늘로 자기 눈을 찔러 눈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까지 요구했지만, 그게 얼마든지 무대장치로 가능함에도, 콕토는 무대 뒤 관객이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눈을 찌르고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상태로 다시 무대에 나와 딸 안티고네와 함께 퇴장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오이디푸스는 차라리 생을 끊어버리지 않고 왜 눈을 찔러 맹인이 되었을까? 차라리 저 바위 위에서 자유낙하라도 하면 깨끗하게 인생 종칠 수 있을 텐데, 고통을 무릅쓰고 바늘로 눈알을 찌르는 것을 택했을까? 콕토는 테이레시아스가 차기 왕 크레온에게 하는 대사로 이를 간략하고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뭐라 했을까?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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