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보세요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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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태까지 보니것은 꽤 읽은 줄 알았다. 근데 오늘 세 보니까 겨우 네 권이고 지금 읽기를 마친 《카메라를 보세요》가 다섯 번째 보니것이었다. 가끔 이런 작가들이 있다. 나름대로는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 누가 있나? 토머스 핀천?

  보니것, 이 양반은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작품 속에 경계가 없는, 상상력의 무한 공간에서 살다 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겁나게 재미나기도 한다. 총 한 번 못 쏴 보고 포로로 잡히는 바람에 드레스덴 폭격 속에서 갑자기 트랄팔마도어 행성으로 유괴되어 동물원에서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는 미군병사의 이름은 ‘필그림’. 어디서 많이 듣던 명사noun이기도 하다. Pilgrim Fathers? 섭씨 45도만 되면 물을 얼려버릴 수 있는 놀라운 촉매물질 아이스 나인을 개발해 인류 스스로 멸망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 <고양이 요람> 등등 주로 이이의 작품은 시니컬한 니힐리즘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벌지 전투를 앞둔 상태에서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의 불꽃놀이를 경험한 내상이 하도 깊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도 했다. 어차피 작가의 내상이란 창작의 재료로 꺼지지 않는 불이 되기도 하는 것이니.


​  그런데 《카메라를 보세요》는 달랐다. 모두 열넷의 단편소설을 실은 390페이지짜리 작품집 속엔, 그동안 시니컬하게 니힐한 작품이 거의 없다. 대신 유머를 신랄하게 퍼붓고는 있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을 깔고 그 위에서 온갖 위트를 선보이는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단편소설이라기보다 콩트로 읽히는 것들도 제법 있다. 콩트로 읽힌다고? 그렇다.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경쾌한 문장으로 독자가 거침없이 읽을 수 있게 하면서 마지막 만찬으로 준비한 반전反轉의 글쓰기”. 모든 작품이 다 재미있다. 그리고 더없이 미국적이다. 즉, 끝이 나쁜 경우는 없다. 어쨌거나 다 좋게 끝난다.

  예를 들어 워낙 성질이 더럽고 사나운 개 (성격도 참, 개 이름을 ‘사탄’이라고 지을 건 뭐니?)를 키우고 있어서 동네의 모든 사람이 접근하기 싫어하는 얼의 집에, 자전거를 타고 와서 송곳니를 드러내고 맹렬하게 덤비면서 짓는 사탄을 싹 무시해가며 신문배달을 하는 열 살짜리 꼬마 마크에게, 성질 나쁜 얼이 “너네 아빠는 어린 시절부터 겁쟁이 찌질이였다. 내 가방 들고다니던 ‘가방모찌’였지. 나만 보면 도망가고, 울고, 싹싹 빌고 그랬다니까. 하느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착한 마크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자전거를 타고 떠났고,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던 늙은 보안관 찰리가 순찰차를 타고 쫓아가 마크를 불러 세웠더니, 마크는 그게 정말이었느냐고 찰리에게 물어 보안관을 곤란하게 만든다. 사실을 말해줄까,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서 용기를 돋워줄까?

  찰리는 말한다. “모두 사실이야. 너희 아버지는 하느님이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고 태어났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푸른 눈과 갈색 머리카락처럼. 너하고 나는 그런 공포를 갖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모른단다. 그걸 감당하며 사는 사람들은 엄청 용감한 사람이지. 그러니 네 아버지가 규칙을 어기지 않느라고 네가 아파서 배달을 하지 못했을 때, 다시 얼을 만날지도 모르고 사탄이 덤벼들 걸 뻔히 알면서도 너 대신 배달을 했다는 게 얼마나 용감한 일이었는지 생각해보렴.”

  세상에. <제5 도살장>과 <고양이 요람> 그리고 <갈라파고스>를 쓴 작가가 이런 이야기도 지었다는 건 놀랄 만한 일이다.


​  더 재미있는 것도 있다. 트랄팔마도어 행성의 동물원에 인간이 갇히기도 하더니, 이번에 또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했다. 7월의 덥고 건조한 날, 선량한 로웰이 버스를 기다리다 어디선가 편지 가르는 칼, 페이퍼 나이프가 발 앞에 떨어져 집에 가져왔다. 손잡이 부분에 (인조겠지만 혹시 알아? 진짤지?) 보석이 박힌 나이프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몰라 돌려줄 수 없었으니 상관없었겠지. 집에 와서 무심하게 소파 위에 던져 놓았는데, 글쎄 손잡이에 달린 보석이 사라져 버린 거였다. 찾아보니 그냥 있던 자리에서 떨어진 거였고, 근데 아주 작은 사이즈의 벌레가 꼬물거려, 휴지에 싸서 버릴려고 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돋보기로 들여다보니까, 5 밀리미터 크기 사람 형태의 외계인이었던 거다. 외계인 하면 뭔가 좀 크고, 선량하거나 악당이거나, 물 또는 사람의 고기 즉 식량을 위해, 그것도 아니면 지구 별을 조사하려 오는 것이 보통인데 이들은 작고 선량하고 용감한 외계인이었던 것. 로웰은 이들한테 빵과 통조림과 물과 맥주 같은 걸 아주 작게 잘라 주면서 먹으라고 대접도 하고 나름대로 즐겁게 보내긴 했지만, 동거하던 마들렌이 집에 와서 자신이 다니는 부동산 회사 사장이 청혼했으며 기꺼이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자, 작은 신사들의 행동이 조금 달라지는 데, 어떻게 달라지는 지는 당연히 안 알려줌.

  이것보다 더 재미난 아이디어도 있다. 러시아, 아니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에서 지층에 구멍을 내 지구 역사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에 요세프와 페테르 형제가 동행한다. 이들은 주로 개미의 화석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생대 이전, 그러니까 공룡이 지구를 점령하기 전에 살던 2.5 센티미터 크기의 개미 화석을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놀랍게도 현대 개미 중에서 병정개미들이 가지고 있는 가위 턱이 없는 종을 발견했다. 아, 아주 오래 전엔 개미한테 가위 턱이 없었구나. 이런 결론에 도달한다. 근데 더욱 놀랍게도 이들은 서너 마리 단위로 모여 살았고, 끔찍하게 놀랍게도 분명하게 책book일 수밖에 없는 물건과 함께 묻혀 있었다. 이들을 발견한 바로 위 지층에서야 비로소 가위 턱을 가진 병정개미가 보이고 책 대신 그림이 나타났으며 수십, 수백 마리 단위로 생활하고 있었다. 또 이들 위의 지층, 그러니까 가장 최근의 지층엔 전부 날카로운 가위 턱을 지닌 병정개미들만을 볼 수 있어서 보통 개미들은 멸종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무대가 소비에트라는 것. 아주 오래 전에 어쩌면 사람을 능가했을 지도 모르는 개미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어떻게 해소될까?

  글쎄 재미난 책이니 읽어보시면 안다니까.

  커트 보니것은 천재, 아니면 천재하고 굉장히 비슷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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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6-01 0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올려주신 세 이야기가 다 정말 재미있고 따뜻하네요. 게다가 서비스로 반전까지~~

한 작가 작품 네 권이면 저에겐 진짜 많이 읽은 건데 역시 클라스가 넘사벽이세요.😅

Falstaff 2023-06-01 07:39   좋아요 1 | URL
보니것은 아주 묘하게 매력이 있잖습니까. ㅎㅎㅎ
한 번 읽어보셔요. 재미납니다.
 
지옥의 기계
장 콕토 지음, 이선화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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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모리스 유진 클레망 콕토. 프랑스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 조형예술가이면서 비평가의 명함을 지닌, 초현실주의자, 아방가르드이며 다다이즘 운동의 기수이기도 했다. 당연히 20세기 초반의 지구 예술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이이가 관심을 둔 분야를 좀 보시라.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다다이즘. 나는, 여태 읽은 장 콕토, 그래봐야 몇 권 안 된다, 가운데 흥미 있다거나, 재미 있다거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다. 이 책 <지옥의 기계> 역시 만일 책가게에서 쇼핑 중에 눈에 띄었다면 백이면 백, 돈 주고 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쇼핑 대신 도서관 개가실의 아이 쇼핑 중에 눈에 들어와 별로 기대하지 않고 주워 읽었다가, 세상에나, 이런 대박이 있나 그래. 그동안 읽은 장 콕토는 1930년 작 <사람의 목소리>와 40년 작 <폭탄녀>가 전부인데 둘 다 단막극이었다. 어땠냐고?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폭탄녀>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심지어 에디트 피아프가 파리 오페라 코믹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노래도 한다. 그래서 CD로도 나왔고 나도 가지고 있는데, 나중엔 나의 유일한 라이벌 알랑 들롱이 주연을 맡아 영화로도 제작했다. 원래 제목은 <La Bel Indifferent>이지만 <폭탄녀> 또는 <재수없는 여자>가 아주 맞춤한 제목이다.


​  <지옥의 기계>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희곡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 신화를 주제로 했다면 당연히 소포클레스의 <폭군 오이디푸스>를 첫 손에 꼽을 것이다. 나도 소위 무인도 책, 하면 1번이 소포클레스의 이 작품을 선택할 거라고 말하고 다닌다. 저 먼 시절, 독일의 작곡가 카를 오르프가 젊은 시절에 극장에 가서 독일어로 번역한 <오이디푸스>를 보고 완전히 빠져버린다. 오르프는 관람 이후에 도무지 극의 감흥에서 벗어나지 못해 소포클레스의 작품인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를 오페라로 작곡하려 전력투구, 여태까지 없던 놀라운 표현방식의 현대 음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왜 오페라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리스 고전극을 관람할 기회가 거의 없다. 반면에 오르프의 두 작품은 DVD로 발매를 한 적이 있어서, 영상물을 본 것이 소포클레스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 그리스 고전을 읽을 때 조금 곤혹스럽게 다가왔던 것이 코러스였다. 그것이 작품의 진행을 설명하고, 현재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가 과거의 어떤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인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는 걸, 아주 빨리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마지막 장면, 테바이에 페스트가 창궐하여 도대체 테바이가 어떤 죄를 지었기에 이리도 독한 벌을 받는지를 밝히기 위해 오이디푸스의 궁정에서 백관들이 모인 가운데 작품을 시작한다. 반면에 콕토의 <지옥의 기계>는 오래 전 예언가 테이레시아스가 전해준 신탁에 의하여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인 자신의 갓난 아이를 발등에 구멍을 내고 끈에다 묶어 깊은 산에 내다 버린 왕비 이오카스테가, 한밤에 테이레시아스와 함께 성벽에 올라 아들에게 맞아 죽은 왕이자 남편인 라이오스의 유령을 만나려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것도 재미있지 않은가? 하필이면 다른 곳도 아니고 성벽 위의 망루에 나타난 죽은 왕의 유령. 어디서 본 거 같지? <햄릿>? 나도 그랬다. 덴마크 죽은 왕의 유령은 동생 클라우디우스가 아내 거트루드와 결혼한 다음에 나타난 반면, 라이오스 왕의 유령은 아내 이오카스테가 아직 오이디푸스와 결혼하기 전인데 이런 희대의 불행을 미리 알려주기 위해 나타난다. 하지만 성벽 위의 두 병사한테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반면, 당대 뿐 아니라 그리스 최고의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와 이오카스테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메시지도 전해줄 수도 없었다.

  테이레시아스. 일찍이 목동으로 일을 하던 소년 시절, 산길에서 교미하는 뱀을 회초리로 쳐죽인 벌로 남자의 몸에서 여자의 몸으로 바뀌어 출산도 하는 등 여성으로 살다가, 몇 년 후 다시 산길에서 또 교미하는 뱀을 이번엔 내버려뒀더니 원래대로 남자로 변신했던 인물이다. 조금 후에 유피테르와 헤라가, 남녀가 교접하면 어느 편이 더 큰 엑스터시를 느낄까, 말다툼을 하다, 둘 다 경험해본 테이레시우스를 불러 물어봤더니 “쇤네가 둘 다 해봐서 아는데요, 여자였을 때가 남자일 때보다 아홉 배 정도 더 까무러치게 좋았습지요.”라고 대답했다. 내기에 진 헤라가 열을 받아 눈을 한 번 슬쩍 만졌더니 그만 장님이 됐고, 순간의 화딱지를 참지 못한 헤라는 눈을 대신할 수 있는 지팡이와 오랜 수명, 그리고 절대 틀리지 않는 예언의 능력을 보너스로 주었다. 오래 살면 좋은가 뭐? 예언, 미래를 미리 알면 좋을 거 같지? 흠. 아닐 걸? 하여간 신들의 선물을 이렇게 많이 받은 테이레시아스 역시 유령을 알아채지 못했다. 또는 알아채긴 했는데 예언자의 맹세대로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거봐, 살기 힘들지.

  이 테이레시아스는 애초부터, 그러니까 3막에 들어 오이디푸스를 처음 보자마자, 아, 저 잘생기고 덩치 좋은 젊은이가 바로 오이디푸스구나, 라고 척,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걸 아는 척하지 못하는 예언자의 팔자라니.

  1막에선 테바이의 성벽 망루에 아들 손에 죽은 라이오스 왕의 유령이 나왔고, 3막에선 드디어 오이디푸스와 왕비 이오카스테의 초야가 벌어진 침실이다. 새로 왕이 된 사람은 관례상 첫날 밤에 대예언자와의 접견을 해야 한다고 해서 테이레시아스와 오이디푸스가 독대를 하고, 이어 모자간 첫밤을 보내게 되는데, 1934년에 쓴 작품이니 괜히 엉뚱한 생각은 하지 마시고, 다만 오이디푸스가 아내를 품에 안고 싶은 마음보다, 이오카스테의 품에 안기고 싶은 생각이 훨씬 더 강하게 들었다는 정도의 얘기만 하고 넘어가겠다.

  그럼 2막에 나오는 것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이자 현직 테바이의 왕인 라이오스를 죽인 건, 신화를 통해 알고 있듯이 오이디푸스가 출중한 영웅이라서가 아니라, 말 앞잡이를 치려 지팡이를 휘둘렀는데 우연히 그게 가뜩이나 늙어 오늘 낼 하는 왕의 관자놀이에 잘못 맞아 즉사를 한 것으로, 극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있었던 일로 치부된다. 2막에서는 또다른 중요한 오이디푸스의 에피소드인, 스핑크스와의 만남이 등장한다. 스핑크스는 이제 한 명의 테바이 젊은이만 죽이면 자신의 수행이 끝나는데, 그간 계속된 살인이 지긋지긋해서 거의 인생무상의 경지에 다달았다. 스핑크스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한 것이 아니라 매우 어여쁜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대리석 좌대에 서 있다. 마치 세일런처럼 지나가는 남자들을 미모로 유혹하고 수수께끼를 내 미혹에 빠뜨려 죽이는, 또는 죽여야 하는 운명. 하필이면 이때 오이디푸스와 마주친 것.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르게 스핑크스는 자신이 어떤 수수께끼를 낼 것이고, 답이 무엇이라는 말을 오이디푸스에게 해준다. 스핑크스는 과제를 마칠 순간이 가까워 오자 차라리 자신이 죽고 싶어졌는지도 모른다.

  마지막 4막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같다. 소포클레스를 각색한 오르프의 오페라에선 무대 위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내인 줄 알았던 엄마 이오카스테의 브로치 바늘로 자기 눈을 찔러 눈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까지 요구했지만, 그게 얼마든지 무대장치로 가능함에도, 콕토는 무대 뒤 관객이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눈을 찌르고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상태로 다시 무대에 나와 딸 안티고네와 함께 퇴장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오이디푸스는 차라리 생을 끊어버리지 않고 왜 눈을 찔러 맹인이 되었을까? 차라리 저 바위 위에서 자유낙하라도 하면 깨끗하게 인생 종칠 수 있을 텐데, 고통을 무릅쓰고 바늘로 눈알을 찌르는 것을 택했을까? 콕토는 테이레시아스가 차기 왕 크레온에게 하는 대사로 이를 간략하고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뭐라 했을까?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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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와 에밀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8
도리스 레싱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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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스 레싱이 여든아홉, 우리 나이로 아흔 살 되던 해에 출간한 작품이다. 여든아홉 살에 책을 내는 일 하나만 가지고도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놀랍게도 레싱은 당시 2008년까지도 여전한 문장을 구사하고 있었다. 지금 보니 별로 읽은 것 같지 않으면서 제법 레싱을 읽은 편이다. 여태 읽은 레싱의 책들을 쭉 둘러봤다. 어느 작가가 그렇지 않겠는가만, 레싱도 자신이 겪었던 일, 그것도 자주 가족과의 관계에서 깊이 주름이 잡힌 기억을 소환해 작품을 쓴 것이 많다. 많고 많다. 이 가운데 데뷔작인 <풀잎은 노래한다>와 <마사 퀘스트>는 레싱 가족, 그러니까 테일러 가족이 페르시아를 떠나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살던 시기를 토대로 여기에 허구, 스토리를 입힌 작품이었다. 이때의 테일러 가족이 겪었던 일을, 맏딸 티그스(아명)의 눈과 기억으로 <앨프리드와 에밀리> 2부에 써놓았다. 시각은 티그스가 도리스 테일러로, 다시 도리스 레싱이 되었다가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만년의 작가의 눈이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짐바브웨를 떠나기 전까지. 기구한 가족들의 이야기. 그러나 1차 세계대전에 아버지가, 2차 세계대전에 아들이 참전했던 시기를 보낸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았다. 특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소한 일도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프랑스 전선의 참호 속에 복무하던 아버지 앨프리드 쿡 테일러는 급성 맹장염에 걸려 맹장이 터지는 바람에 1주일 후에 벌어질 참혹한 솜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 죽지 않았다. 회복을 하고 다시 진흙탕 참호로 돌아가서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오른 다리에 유탄을 맞아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또 이것 덕분에 벨기에 땅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살전이었던 파스샹달 전투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이 전투에서 앨프리드의 친한 동료들이 전부 몰살당하고 만다. 앨프리드는 다리 한 쪽과 목숨을 바꾼 셈이다. 명이 길기는 했지만 당사자는 그걸 행운이라 여기지 않은 채 나머지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지독한 당뇨가 와서 신체의 모든 장기가 아주 느린 속도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동안 끔찍한 육체적 고통은 물론이고 최후의 순간까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이하 “PTSD”로 씀)로 시달리게 된다. 그의 아들이자 레싱의 동생인 해리 테일러는 2차 세계대전 초기에 “침몰할 수 없는 배”라고 불리던 리펄스 호에 탑승해 복무하다가 일본군에 의하여 단 20분 만에 침몰하는 배에서 극적으로 탈출, 상어가 득시글거리는 바다에 빠진다. 배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름을 온 몸에 뒤집어쓰고 둥둥 떠다니는 건 해리 혼자도 아니었고, 살아 있는 사람만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몇 시간을 떠 있다 영국 해군에 의하여 구조된 해리는 다시 지중해에 배치 받아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하며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청각이 쉴 새 없이 터지는 대포 소리에 거의 망가진 채 귀가했는데, 저 예전의 해리가 아닌, 어딘지 먹먹하고 답답해서 뭔가에 의하여 적어도 한 겹 이상의 커튼 뒤에 있는 듯한 상태였다. 이렇게 사십여 년을 지낸다. 결국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에야 누나에게 그게 PTSD 였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지만.

  이런 남편과 아들하고 함께 사는 에밀리는 어땠을까? 매사에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거의 콘서트 피아니스트만큼이나 연주에 일가견이 있던 에밀리는 학교에서도 거의 완벽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도 잘 해서, 당시에는 거의 예외라고 할 수 있었을 경우로, 아버지가 딸에게 대학 진학을 권했을 정도라고 한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냉정한 성격의 의붓어머니와 사는 것이 지긋지긋해진 에밀리는 대학은 무슨 대학, 더 이상 의붓어머니의 ‘보살핌’을 받느니 차라리 독립을 하겠다는 각오로, 1902년 8월, 전 유럽이 벨에포크, 가장 화려한 시절, 물론 중산층과 부르주아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였지만, 이 시절엔 하녀들, 시민 가운데 가장 하층 시민들이나 하던 직업인 간호사가 되기 위하여 왕립자선병원에 들어가 소위 ‘간호부’가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간호부는 간호원이 되었다가 다시 간호사로 인플레이션 바람을 타긴 하지만.

  실제로는 강한 체력과 활달한 성격으로 한 지역의 크리켓 팀에선 서로 스카우트해오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던 앨프리드. 그러나 전쟁 때문에 한 쪽 다리를 잃고 정신마저 PTSD로 먹먹해진 남자와,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진취적인 여성 에밀리의 만남은 어떻게 됐든지 간에 하여간 고난으로 채워진 실패의 삶이었다. 적어도 도리스 레싱의 시각과 기억으로는 그랬다.

  이제 세월을 정리하는 단계의 도리스 레싱. 이이는 생각한다. 만일 아버지 앨프리드와 어머니 에밀리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 친정의 불행은 세계대전에서 왔으니, 만일 전쟁이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그리하여 레싱은 이런 전제로 중편 소설을 쓰니, 이 책의 1부 <중편소설 「앨프리드와 에밀리」>다.


​  1902년 8월, 영국의 롱거필드 마을. 얼라이드 에식스 앤드 서퍽 은행의 창립기념일 축하 행사의 일환으로 은행은 동네에서 제일 넓은 농장을 빌려, 한 쪽에 테이블을 늘어놓고 위에 맛난 음식을 잔뜩 올려 참가자들의 (영국식)폭식 취향을 만족시켰다. 물론 대부분의 영국 시민은 음식이 남아 개나 돼지한테 줄지언정 헐벗은 집시 아이들이 음식에 손을 대는 꼴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넓은 초원에선 크리켓 경기가 펼쳐지고, 당연히 이 경기의 최고 스타는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지만 벌써 성인 경기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앨프리드 테일러다. 앨프리드한테는 친한 친구, 요즘말로 하자면 여사친 데이지가 있었는데, 오해하지 마시라, 데이지는 그냥 친구, 앨프리드는 오히려 데이지의 어머니 마리 레인 여사를 친어머니처럼 따랐으니. 레인 부인이 원래부터 오지랖도 넓고, 마음 쓰는 것도 곱기가 비단이라 마을의 나이든 축은 물론이거니와 앨프리드 같은 젊은이들도 존경해 마지 않았는데, 데이지가 물심 양면으로 거의 추앙하는 친구 에밀리 역시 진짜 엄마처럼 레인 부인에게 모든 고민거리를 상의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앨프리드한테 에밀리는 친구의 친구 이상이 아니다.

  이날, 에밀리는 레인 부인에게 런던 왕립자선병원으로 떠날 것임을 레인 부인에게 말했고, 레인 부인은 차마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고 싶은 마음에, 거긴 보수도 적고 일은 빡세고, 급식도 형편없으며 까지만 이야기했다. “가장 밑바닥 출신들이나 하는 일이야.”라는 이야기는 결코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에밀리가 레인 부인을 떠날 때, 부인은 속으로 안타까이 외칠 뿐이었다. “아, 안돼. 아, 안돼. 너무 아깝잖아.” 에밀리는 간호사가 되겠다고 선언해서 이미 아버지로부터 공식적으로 내쫓긴 상태였다. “다시는 내 집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물론 이후에 에밀리의 방은 계속 청결하게, 떠날 때 모습 그대로 몇 십 년간 조금도 변하지 않게 보관하기는 한다. 부모가 다 그렇지 뭐.

  은행원이지만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일에서 해방감을 찾는 아버지를 둔 앨프리드는 수많은 은행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 은행원이지만 그것보다는 크리켓 선수로 활약하다가, 나이 들어 자리를 내준 후에 정식으로 근무를 하면 되니까. 그러나 앨프리드는 천생 농부. 은행원이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앨프리드는 절친 버트 레드웨이의 집에 머물면서 레드웨이 씨를 위해 농장 일, 이 가운데서 특히 목축 일에 전념한다. 버트는 곡식을 재배하는 걸 맡고. 임금을 다른 고용인의 두 배 정도를 받는 것을 보면 능력 또한 탁월했던 모양이다. 레드웨이 씨는 외아들 버트 때문에 고민이 많다. 술이 과해서. 앨프리드는 노상 버트를 따라다니며 그를 관리해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일 때문이 아니라 우정이 깊어서.


​  도리스 레싱은 두 주인공, 앨프리드와 에밀리를 알아도 너무 잘 안다. 그리하여 이 둘을 적어도 성적으로 만나게 하지 않아야 하리라. 이들이 결혼해서 맏딸 티그스(도리스 자신)과 아들 해리를 낳지 않았다면, 이라는 전제다. (사실 이런 상상은 모든 사람들이 해보는 거 아닌가? 하여간 나도 그런 적이 있다. 정여사가 이주사와 맺어지지 않았다면 행복했을까?) 이들은 누구와 결혼하게 될까? 어떤 성격을 지닌, 작가가 아닌 다른 소생들을 낳고, 어떤 손길로 아이들을 키울까? 레싱이 나이든 건 사실이다. 이이의 작품을 읽으며 해피엔드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너무도 명확했다. 내게는. 하지만 나이든 레싱은? 세월이 흘러 이이의 모서리를 어느새 둥글게 마모시켰다. 편안한, 아주 편안한 앨프리드와 에밀리를 볼 수 있으리라. 둘 다 이 정도면 잘 살았다, 라고 감상을 남길 수 있을 정도의. 그래야지. 작가도 늙으면 좀 이렇게 부드러워져야지. 그게 현명한 노인이지. 독자도 레싱을 거의 처음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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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5-27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우리 부모님 보고 그 생각 많이 했어요. 다른 이와 맺어졌더라면 (나는 없겠지만) 행복했을까?

Falstaff 2023-05-27 09:48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누구나 한 번 상상해보는 거 맞지요?
 
지옥의 기계
장 콕토 지음, 이선화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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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는 왜, 그리스 전통의 자살 방법, 사포처럼 저 바닷가 절벽 위에서 뛰어내리지 않고 엄마이자 아내의 브로치 바늘로 자신의 눈을 콕콕 쑤셔서 맹인이 되는 쪽을 택했을까? 이것 하나 만 가지고도 읽어볼 만하다. 유일하게 재미나게 읽은 장 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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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부엉이
사데크 헤다야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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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아편에 탐닉하는 페르시안 데카당. 미문, 아름다운 문장은 환장하는 수준이지만 환각 상태의 홀로그램을 과장하더라도 아 글쎄 정도껏 하셔야지. "어느 페르시아 아편쟁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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