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 씨네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외르케니 이스트반 지음, 정방규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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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깜짝이야! 반칙 아냐, 이거? <장미 박람회>를 쓴 외르케니가 희비극을 이렇게도 기막히게 썼다는 말이지! 짧은 이야기 속에 참 여러가지로 독자를 살살, 때론 벅벅, 긁는다, 긁어! 눈물 없이 읽기 힘든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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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하인리히 뵐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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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손에 들고 처음 든 생각. 역자 곽복록? 아니, 언제적 곽복록 선생이야? 선생은 1922년생으로 이 책 초판이 나온 2011년 4월에 여든아홉. <아담…>의 출판 이후 한달 이십여 날을 더 살고 갔다. 한국 괴테 협회장을 역임하고, 한 시절을 풍미하던 서강학파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곽선생이 정말 이 책을 번역했는지, 직접 번역을 했다면 진짜로 2011년에 했는지, 조금은 의심스럽다. 물론 지만지 출판사의 소신대로,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작품만을 선정하여, 오랜 시간 그 작품을 연구한 전문가가 정확한 번역, 전문적인 해설, 풍부한 작가 소개,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고급 소설 선집”을 만들었겠기에 크게 의심은 하지 않지만, 혹시 만의 하나, 이제 절판되어 나오지 않는 옛 시절의 세계문학전집, 뭐 학원사나 금성출판사, 정음사 같은 곳에서 이미 번역해 출판한 것의 판권을 사와 중판을 찍으면서 마치 초판인 것처럼 시늉한 건 아닐까, 어느새 내 눈이 가자미 눈깔이 되는 걸 숨기기 힘들다. 이런 조금의 의심을 품은 채 책을 읽어서 그런지,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하늘도 무심하셔서 어느 새 꼰대가 된 내가 읽기에도 조금은 낡은 단어들이 제법 등장하는 게 유독 눈에 밟힌다. 곽복록 선생은 1974년 12월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사무국장의 명함을 달고 이스라엘에서 열린 국제펜클럽대회에 참석해 심지어 하인리히 뵐, 외젠 이오네스코, 솔 벨로우를 직접 만나, 쐬주 한 병 깠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함께 토론을 했던 적도 있는 노장이기도 하다.


​  몇 달 전에 <열차는 정확했다>를 읽고 쓴 독후감에서 말했지만 뵐 자신이 1939년부터 독일의 육군 사병으로 참전했고, 전쟁 막바지에 탈영에 성공했으며, 포로 생활을 하다 종전을 맞은 경험이 하도 지긋지긋해 나머지 평생을 지극한 반전주의자의 길을 선택한 작가다. 이 책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에서는 바이데스하임 출신으로 남이 짓지 않은 집을 짓겠다고 각오했지만 결국 남이 지었던 집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건축가였다가 징집당해 온 파인할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이이의 행적 가운데 많은 부분이 뵐과 유사하여 작가의 직접적 체험담은 아닐지언정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인 것은 금방 드러난다. 예컨대.

  1. 첫 장면에는 장군이 등장한다. 매우 피곤해 보이고 놀랍게도 목덜미에 훈장 하나를 달지 못한 장군. 이이는 ‘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패전과 후퇴의 실패를 연속했으며 따라서 병사들은 비통, 연민 불안 그리고 분노 같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2. 얼마 후 333명이 된 병사들. 이들 앞에 순종 독일인의 얼굴이 지나간다. 창백하며 무서운 눈, 악문 입술과 긴 코를 가진 대령.

  3. 또 시간이 흘러 이제 105명뿐인 병사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상처투성이 발과 땀이 밴 얼굴을 한 채 지친 행군을 하고 있다. 선두에 선 중위의 얼굴에 ‘진저리 난다’는 글자가 씌어 있는 듯한 분노로 가득한 사람의 ‘우아하고도’ 맥 풀린 걸음걸이.

  4. 다음 장면은 스물 네 명의 병사를 지휘하는 검은 양철 메달의 훈장 하나를 가진 중위. 그리고 중위보다 네 배 많은 훈장을 단 상사. 이들은 결국 포로가 되지 않으면 부상을 당해 죽을 운명이다.

  5. 마지막으로 단 한 명 남은 병사. 파인할스. 우리의 주인공이다.


​  이 다음 장면은, 전쟁 중 후송해 치료를 해야 할 만큼 큰 부상을 세 번 당한 하인리히 뵐의 경험이 없으면 쓰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야전병원 장면이다. 야전병원으로 쓰기 전엔 건물의 1층이 마구간이었던 병실에서 파인할스의 가장 눈에 띄는 환자는 바워 대위. 그는 차 위에서 철모도 쓰지 않은 채, 아마도 고의로 떨어져 뇌에 심각한 손상이 일어나 의식을 찾지 못한다. 만일 의식이 돌아오면 전시 군법회의와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긴 하지만. 그는 무의식 상태에서 정확하게 50초마다 “브엘로고르셰”하고 나지막이 읊조리기만 한다. 절대로 영웅이 될 수도 없었고,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으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던 그는 트럭 위에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해버린 거였다.

  그리고 파인할스는 다시 헝가리 전선으로 배치된다. 그곳에서 만난 한 여인, 일로나. 그녀는 유대인이었고, 천주교로 개종을 했으며, 그럼에도 계속 유대인 가족들에게 헌신하고 있었다. 헝가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대인 박해에 적극적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임레 게르테스의 작품을 통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렇지는 못했다는 걸 알고 있다. 조신하고 신중한 일로나는 파인할스에게 키스를 해주고 게토 지역 안에 있는 가족에게 간다. 가서…. 파인할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헝가리로 와 일로나를 만나겠다고 결심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면 그게 소설이니?

  또 부상을 입는 파인할스. 그리고 탈영. 이렇게 주인공은 작가의 행적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나 완전하게 다른 건 마지막 장면. 파인할스는 탈영에 성공해 자신의 고향 바이데스하임에서 불과 3킬로미터 떨어진 핑크 씨 댁에 도착한다. 핑크 씨가 주는 음식을 먹고, 브랜디도 마시고, 그가 일러주는 안전한 길 대신 조금 더 빠른 길을 택해 고향으로 향하는 파인할스. 이미 한 미군이 애인과의 밀애를 즐기기 위해 하루에 한 시간씩 머무는 동네 바이데스하임. 그러나 정식으로 점령한 곳이 아닌, 전투 지형적으로 아무 쓸모 없는 그곳으로 오랜 피곤을 쉬고 싶은 마음 만 갖고 향한 파인할스.


​  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찬양할 수 없다. 이 책의 가장 극적인 요약은 서문에 있다. 생텍쥐페리가 쓴 <전시 조종사>의 한 귀절.


​  “전쟁은 진정한 모험이 아니다. 모험의 대용품밖에는 되지 않는다. 전쟁은 일종의 병이다. 티푸스 같은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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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6-23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이 확 다가오네요

Falstaff 2023-06-23 17:31   좋아요 1 | URL
넵, 뵐의 초년 팔자가 말 그대로 지긋지긋했는데,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노벨 문학상에 살아 생전 소설가로 누릴 수 있는 영광은 거의 다 즐겼는 걸요. ㅎㅎ
 
세구 : 흙의 장벽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5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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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의 옛 왕국 세구의 귀족 트라오레 가문 3대에 걸친 대하소설. 콩데는 “밤바라족, 나의 선조에게”라는 헌사로 책을 시작한다. 전에 읽은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에서 티투바의 어머니 아베나는 전투에서 패한 아샨티 족의 딸이었다. 즉 <…검은 마녀>는 노예로 팔려온 기구한 흑인 여성이 낳은 딸의 이야기였고, <세구…>는 얄궂게도 전쟁을 일삼아 다른 부족을 공격해 포로를 노예로 팔거나 그들로부터 세금을 착복하면서 부를 늘린 세구 왕국의 가장 중요한 귀족 가문 이야기다. 세구 왕국은 지금 지명으로 말리, 세네갈 오른 편, 코트디부아르의 위편 그리고 사하라 아래쪽의 나라 대부분을 영토로 하고 있던 한 시절의 강국이었으나, 세구 역시 유럽인들의 잠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들과 거의 동시에 사하라 이북에서 발현한 이슬람 교도에 의한 침식이 먼저였지만.


​  작품은 1797년, 나중에 포르투갈 출신의 외과의사 ‘멍고 파크’라는 것이 밝혀지는 백인이 세구의 경계를 긋는 니제르 강, 토속어로 졸리바 강가에 나타나 그들의 만사(왕) 알현을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구의 귀족이며 예레월로, 왕실 각료이자 만사의 친구, 십여 명 적자의 아버지이고 다섯 가족의 파(가부장)인 두지카 트라오레의 집에서도 여인들과 아이들과 하인들과 노예들 모두 생전 처음 나타난 흰둥이를 구경하러 강가로 뜀박질하는 바람에 텅 비어 있고, 페울족 출신의 여인으로 전투 중 노예로 잡아와 신분 차이 때문에 정식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종첩으로 가까이하던 시라가 출산 진통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출산을 보면 부정을 타는 법이라 당황하고 있던 차에 밤바라의 왕족 출신인 첫 번째 아내 니아가 돌아와 시라의 출산을 돕는다.

  두지카 트라오레는 세 명의 정실 부인과 많은 첩을 두었다. 정실 부인은 첫 아내인 니아와 그가 낳은 맏이 티에코로와 나바가 주요 등장인물이고, 첩 소생에서는 시작할 때 시라가 낳은 아들 말로발리와, 다른 첩 소생인 시가가 또 중요한 인물이다. 시가가 당연히 말로발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티에코로와 같은 날 몇 시간 차이로 출생해서 두 번째 아들이지만 포로 어머니로 역시 노예 첩, 우리 말로 종첩이다. 이 노예 어머니는 포로로 잡혀와 늘 향수에 젖어 있어 우울증이 심각해졌고, 드디어 하루는 우물에 거꾸로 빠져 스스로 삶을 마감해버렸다.

  그리하여 이 대하소설 <세구: 흙의 장벽>은 1대가 두지카 트라오레, 2대는 티에코로, 시가, 나바, 말로발리, 3대는 이 네 명이 낳은 아들들로 이어진다. 두지카는 당연히 서아프리카 세구, 니제르 강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2대는 아메리카(브라질)과 케이프타운 근처 남아프리카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3대에 이르러서 영국 유학까지 감행한다. 이들의 여정을 보면, 작가 마리즈 콩데가 살아온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의 경로와 매우 유사한 것을 알 수 있기도 하다.

  마리즈 콩데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즉 아프리카 출신 엔틸리스 제도 사람으로,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먹고 살기 위하여 서아프리카에서 십여 년 동안 교사 시절을 보내며 아프리카 역사에 관해 심도 있는 접근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하고,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이후 미국과 과들루프를 왕래하면서 강의와 글쓰기를 계속했으니, 작중 나바의 아들 에우카리스투스가 프랑스 대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나바가 엔틸리스 제도가 아니라 브라질에 노예로 팔려간 작은 차이만 날 뿐이다.


​  1797년에 외과의사 멍고 파크가 왜 세구에 왔을까? 세구의 야만인에게 의료봉사를 하기 위하여? 그럴 수 있다. 다음 코스는? 선교사와 학교. 다음은 플랜테이션 농장 건설. 당연히 야만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현지인들의 소득을 높이고 생활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이다. 그 다음엔 치안을 위한 군대의 주둔이며, 최종적으로 이익 착취 경쟁 목적의 유럽 국가간 식민지 전쟁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유럽 백인들의 부의 축적을 위한 추악한 일련의 과정일 뿐. 이 작품이 1984년에 출간했는데, 당시까지 세계는 식민 현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었다. 그러나 세월은 더 흘러가 19세기 중반 비슷한 시점까지 왔는데 아직 세구에는 백인들이 최상의 상품을 들고 아프리카에 상륙했다는 이야기만 나오지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에 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물론 서아프리카 해변 지역은 오래 전부터 백인들이 항구에 요새를 설치하고, 교회와 학교를 지었으며 이에 비례해 피부색 검은 현지인들이 유럽인을 닮아 흑인의 정체성을 잃고 점점 사기꾼 비슷하게 얄팍한 심성으로 변했지만, 말로발리가 말하듯 아직 내륙 지역엔 독특하고 우아한 아프리카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  이제부터 스토리인데, 그러나, 다음 몇 문장은 분명히 헷갈릴 터이니 그냥 잊고 마시라. 주로 낯선 이름과 사정이 복잡해  그럴 터, 꼴난 독후감 읽으며 메모할 수는 없을 것이니.

  여기에 독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현상이 나타난다. 1세대 주인공 두지카 트레오레의 열다섯 살짜리 맏아들 티에코로가 세구를 떠나서 통북투로 가서 이슬람과 알라에 대하여 더 공부를 하고, 수단의 유명한 상코레 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슬람교의 득세는 페르시아의 쇠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배화교 즉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페르시아가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7세기 초에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이슬람교는 천 년 동안 쉼없이 세를 불려 드디어 사하라 사막을 종단해 서아프리카 지역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라는 점. 다신교를 믿는 한 시절 저 위대했던 로마의 신들도 여호와의 배타적 믿음 앞에서는 나가 떨어졌으니, 아프리카 특유의 샤머니즘에 기반한 숱한 신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책 속의 이슬람은, 특히 엘 하지 오마르가 신봉하는 (비교적) 극단적 이슬람교는 한 손에 코란을, 한 손엔 칼을 들고, 알라를 믿든지 죽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지르며 세를 확장한다.

  결과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슬람은 백인들이 신봉하는 기독교에 잠깐 찍소리 못하고 자리를 내주었지만 20세기 들어와 백인들이 돌아간 이후 중서부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슬람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주인공 가문의 2대와 3대에 걸쳐 이슬람교가 서부 아프리카에 진압하기 시작한 시점을 그리고 있다.

  어느 세계적 종교가 안 그럴까? 한 종교가 세계적이 될 수 있으려면 그 안에 사랑과 포용과 배려를 품어야 한다.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엔 선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좋은 종교에 귀의하라고 권했겠지. 하지만 뭐든지 권력이 문제다. 포교를 위해 도착해보니 생각지도 못한 금광에서 금덩이가 쏟아지고, 아프리카 지역이라면 사람 자체가 금과 비슷한 가치를 얻을 수 있고 팔아먹을 수 있으니, 비록 시작은 진실한 종교인이었겠지만, 그걸 믿지 않는 바 아니건만, 조금은 욕심이 생기다 보니까, 그게 하루 하루 자꾸만 커져가서 결국엔 현지인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어 영생의 즐거움을 주는 대신, 종교의 이름으로 죽음을 부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거였다. 그리하여 과격한 종파의 엘 하지 오마르는 아프리카 원주민은 당연하고, 가톨릭 교도들은 물론이며, 다른 종파의 이슬람 교도들의 목덜미에 언월도를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원주민은? 엘 하지 오마르와 뜻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독실한 이슬람 교도인 알하지 기다도는 자신보다 더 독실한 신자인 아들 알파 기다도가 보는 앞에서 1대 주인공 두지카의 바로 아래 동생이자 그의 후임 부족장인 티에폴로 트레오레와 다투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부족장의 아내는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울부짖는다.

  “알라가 내 남편을 죽였다!”

  이것으로 이슬람교는 사랑과 포용과 배려를 포기한 종교가 되어버린다. 바로 옆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알파 기다도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죽임을 당한 이의 조카이며, 2대 주인공 티에코로의 아들이며, 3대 주인공인 모하메드와 함께 아프리카 인의 정체성과 어머니의 땅 마시나를 보존하기 위하여, 모하메드는 세구를 지키려 원리주의자 엘 하지 오마르의 군대와 대적하기 위해 참전하기에 이른다.

  <세구: 흙의 장벽>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흑인 여성이 쓴 작품이다. 그러니 아프리카라는 지역이 함의하고 있는 식민, 흑인이란 인종, 그리고 여성이라는 젠더를 부각할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가 18세기에 시작해 19세기 초중반 까지라 젠더를 주장하는 장면은 몇 컷이 안 되긴 한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낯선 문화권 이야기.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와 비슷하거나 조금 앞 시대의 내륙지방 이야기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지만 핀트가 약간 다르다. 아프리카 문학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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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20 08: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체베의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땡기네요.

공간적으로 니제르 하구 유역
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아체베
의 서사가 떠오르네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해 하던 책
이었는데 일단 사재기부터...

Falstaff 2023-06-20 13:01   좋아요 2 | URL
ㅎㅎ 사바나 흰 개미 만큼은 아니지만 이 책도 재미있습니다. 즐겁게 읽으셔요.
 
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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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생 범띠 작가이자 법학박사인 율리 체는 도무지 가리는 소설 장르가 없다. SF, 범죄, 스릴러 등을 망라하더니, 이젠 코로나 19를 경험하면서 현 시점, 사회적 거리 두기, 마스크, 봉쇄정책 등 갇힌 시스템 속에서 사람에 대한 작가적 탐구를 시도했다. 그래서 제목 자체가 “인간에 대하여”일 수 있었겠지. 이 작품은 출간했을 때부터 꼭 사서 읽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잠깐 깜박 잊었는데 갑자기 떠올라 (화들짝 놀라서) 먼 도서관에 상호 대차 신청해 읽었다. 역시 율리 체다. 이름만 가지고도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작가 군 가운데 한 명.

  율리 체는 워낙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는 작가라서 책을 진짜로 읽기 전에 이게 어떤 내용일 것이라는 짐작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여간 나는 그랬다.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을 쓴 작가가 <어떤 소송>은 그렇다고 쳐도, <새해>나 <잠수 한계 시간> 같은 작품도 쓸 수 있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신기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뭔가 신선한 배신감 같은 걸 경험할 수도 있다. 한 번 더 말하자면, 하여간 나는 그랬다. 이제는 율리 체, 하면 일단 아무 예단도 없이 그냥 첫 페이지를 열려고 하는데, 참 나, 그러고 보니 동화책 한 권 말고는 이제 번역 출간한 책 다섯 권을 다 읽어버렸지 뭐야.


​  독일의 뮌스터와 베를린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대표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대학 교수인 요하임 코르프마허 선생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내 없는 홀아비로 딸 도라와 아들 악셀을 성인이 되도록 키웠다. 아들 악셀은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통과했으면서도 하는 일이라고는 소파에 누워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뿐 도무지 생산적인 활동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생각 없이 사는 인간이라도 구르는 재주 하나는 있는 법이라 조세법 전문 변호사 크리스티네라는 여성을 꼬드겨 결혼까지 해 쌍둥이를 낳아, 아내는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경제적 책임을 지고, 남편 악셀은 알고 보니 자신의 진짜 주특기인 주부(여성을 일컫는 주부主婦 말고 지아비 부를 써서 주부主夫라 쓰자) 노릇과 유아 돌보기를 아주 아주 훌륭하게,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살고 있다. 악셀의 누나 도라는 이 책의 주인공으로 대학에 다니다가 뮌스터에 있는 작은 광고 에이전시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일하면서 자신이 이 업계에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일단 학교부터 때려치웠다. 견습생 하다가 인턴을 거쳐 순식간에 주니어 카피라이터로 채용되었으니 간이 부을 만도 하지. 이후 함부르크에 있는 카피라이터 양성학교 1년 과정을 마치고 여러 대형 광고 에이전시에서 경력을 쌓은 후, 급여 삭감을 무릅쓰고 주로 지속 가능 상품과 사회 생태적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기업을 지원하는 SUS-Y으로 옮겼다.

  오래 전에 사귄 첫 애인 필리프는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사회학 교수였는데 이 잡것이 양다리를 걸치는 바람에 헤어졌고, 지금도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그러니까 아직 찢어지지는 않은 두 번째 애인 로베르트 하는 일이 기온과 해수면 상승, 사막화 확대와 파괴적인 폭풍 등의 자연재해를 예방하자는 캠페인이라 자신도 지구에 해를 덜, 많이 덜 끼치는 사업에 공헌하기 위해 회사를 옮긴 것이었다. 즉 현재 애인 로베르트와 도라는 차도녀, 차도남이었으며 정치적으로는 좌파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로베르트와의 사랑에 진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도라의 연애전선에 구름을 끼게 만든 건, 거참 스웨덴의 큰 부잣집 딸이자 환경운동의 선봉이라고 하는 그레타 툰베리였는데, 그레타가 시작한 금요시위에 로베르트가 참여하면서 로베르트는 환영을 보듯 소녀를 바라보았고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중요한 이슈는 하여간 기온 상승과 이에 따른 재앙의 예방이었다. 얘네들은 연애만 했다 하면 동거를 하는 모양이다. 그래 도라가 분리수거에 아주 작은 실수만 해도 로베르트는 버글버글 입술 양쪽에 흰 거품을 물어가며 지랄지랄 해대기 시작했지만, 뭐 하는 일이 그 분야니까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그러다가 COVID-19 시국을 맞았다. 이후 로베르트는 갑작스럽게 기후보호 활동가에서 감염병 연구자로 변신을 해, 짧은 말로 성공했다. 각종 매체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고, TV에도 나오기 시작했으며, 극단적 봉쇄정책과 마스크 착용,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신앙처럼 설파하기 시작했다. 책 후반부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극단적 봉쇄를 풀려고 시도할 때는 적극적으로 이런 정책에 반대를 했으니 어찌 보면 좌파니 진보니 하는 건 자신의 진짜 정체성은 다음으로 하고, 그냥 자신이 그렇게 불리고 싶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이러스는 경제의 많은 부분에서도 충격을 주어 광고 에이전시 SUS-Y의 광고주들도 예산을 동결하며 다양한 광고 캠페인을 취소하고 조업도 단축해버려 SUS-Y의 직원도 이에 맞추어 될 수 있는 대로 재택 근무를 하게 됐고, 도라는 이런 조치가 심각할 수준인 베를린에 염증을 느껴 못생긴 강아지 ‘요헨데어로헨’만 데리고 베를린에서 조금 떨어진, 예를 들자면 오산이나 양평쯤 거리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주, 프리그니츠 군, 플라우지츠 읍 지역의 브라켄 마을로 거처를 옮겨버렸다.


​  브라켄 마을은 전형적인 독일 변두리지역으로 브란덴부르크 사람들이 특유의 무뚝뚝한 관심이라는 지역색을 굳건히 간직한 작은 동네답게 벽에도 귀가 있는 건 물론이고 밟고 선 모래 속에도 귀가 있는 지역이었다. 그래서 도라는 주민들의 이름도 모르지만 주민의 거의 대부분은 도라의 이름은 물론이고 도라가 관심 있게 하고 있는 텃밭 개간, 심고자 하는 품종인 감자 등에 관해서 훤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다는 걸 오직 도라만 몰랐을 뿐이지. 이들이 도라를 보면서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말은 “당신 같은 대도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었다. 심지어 담 아래에 의자를 놓고 의자 위에 올라가면 상자 위에 선 남자와 같은 눈 높이가 되는 옆집 사람까지도.

  옆집 남자 고트프리트 프로크슈는 도라가 이사온 지 며칠 안 되어 도라의 강아지 요헨을 담 넘어로 휙 집어 던졌는데, 책이 끝날 때까지 사람들에게 귀여움만 받는 이 개 요헨이 자신의 감자밭을 분탕질 해놓아 홧김에 던져버린 거였다. 애칭 ‘고테’라고 불리는 고트프리트는 사실 별로 말이 없는 남자다. 완벽한 대머리에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를 풀풀 풍기는 거한. 이 고테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말한다. 진짜 좌파처럼 악수 ‘금지 조치’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난 이 마을 나치요.” 실제로 담 옆에 의자를 놓고 위에 올라가 집을 바라보니 거대한 독일국기가 벽 한쪽을 장식하고 있었다. 나중에 고테는 “이 마을에 나치는 없다.”라고 말은 하지만 도라는 마지막 페이지에 도착할 때까지 고테가 나치다, 아니면 적어도 나치에 매우 가깝다, 라는 믿음은 바뀌지 않는다. 독일 극우파 정당인 AfD에 투표한 옛 동독 지역 브라켄 마을 주민은 총 27%로, 역시 동독 지역이었던, 그래서 AfD 투표율이 높은 모든 브란덴부르크 주의 평균보다도 몇 퍼센트 포인트가 높은 성향을 보인다. 이런 곳에서도 이민자와 난민, 동성애자에게 유난히 지랄맞은 고테. 도라는 이런 강적과 같은 블록 담의 이편, 저편에 살아야 하는 처지를 만난 것이다.

  고트프리트 프로크슈 씨는 동독 시절엔 이웃한 슈테 지역의 넓은 평야에서 논밭을 일구어 제법 먹고 살던 농부의 아들이었는데, 독일 통일 후에 갑자기 자기네 살던 땅의 진짜 주인이 나타나 하루 아침에 쫓겨나 이웃 도시에서 도시 빈민 생활을 하다, 삶에 대한 반항 때문이었는지 열서너 살 때부터 극우 스킨헤드 족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 고테는 자신이 나치라는 특별한 생각도 없다. 그냥 그저 자신이 부르는 “히틀러 깃발이 거리마다 휘날린다”는 노래가사가 나치 노래라는 건 거의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려서부터 부르던 노래 정도로 여기고 있다. 이걸 좀 확장하면, 고테가 난민과 이민자, 동성애자에게 특별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것이 그저 어려서부터 학습이 된 시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테는 전형적인 “무뚝뚝한 친절”을 가지고 있는 이다. 원래 농장관리자의 집이었던 도라의 집이 비어 있는 동안 매 금요일에 한 번씩 둘러보며 손도 봐주고 했었고, 도라가 와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도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도라의 침대와 의자도 뚝딱 만들어 가져다 놓고는 한 마디도 벙긋하지 않았을 정도다. 도라는 당연히 이를 알게 되고, 그의 무뚝뚝한 친절에 마음이 쓰이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천하의 불한당, 네오 나치, 의도를 가진 살인의 전과자인 무시무시한 거구의 냄새나는 남자와, 난데없이 등장한 그의 자그마한 딸 프란치, 도라와 도라의 개 요헨데어로헨, 이 네 등장(인)물과 중요한 조역으로 각기 좌파와 우파로 구성된 동성애 부부 톰과 슈테펜, 그리고 R2-D2라는 별명과 ‘하이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하인리히, 도라의 아버지 요하임(요요)박사. 여기에 엑스트라 역으로 브라켄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재미있고 맛있는 만찬이 펼쳐진다.


​  결론은, 동쪽과 서쪽도, 아래쪽과 위쪽도, 좌도 우도 없이, 서로를 조금이나마 좋아하여, 자신들 모두 이 지구라는 행성에 지금 여기에 함께 있다는 사실 만을 축하하자는 것.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차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상대가 비록 네오 나치일지언정.

  나는 율리 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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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7 0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려 법학박사님이 쓰신 소설
이라지요.

저도 흥미롭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Falstaff 2023-06-17 17:26   좋아요 1 | URL
옙. 메냐 님의 리뷰 멋있게 읽었답니다!

얄라알라 2023-06-17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법학박사라니 범죄, 스릴러에는 특히 더 메리트가 있을 것 같은데 ˝율리 체˝ 이분은 사회비판(?) 적인 소설까지 전방위인가봐요

이름 보고 바로 택할 수 있는 작가를 이렇게 많이 확보하고 계신 골드문트님은 얼마나 든든하실까요?^^저는 상대적으로 문학작품을 너무 몰라서, 이렇게 플친님들께서 주시는 콩고물을 찍어 먹고 갑니다. ^^

은하수 2023-06-17 14:07   좋아요 3 | URL
저도요!~~~
콩고물... 거 참 표현이 딱 저와 어울리네요.
전 콩고물 너무 좋아요^^
저 아침에 다락방에서 무려 율리 체의 책이 제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을 봤어요.
근데 역시 책등으로 제목이 안보여서 억지로 꺼내 봤네요...!
민음사 각성하라!
헉.. 지송합니다

Falstaff 2023-06-17 17:28   좋아요 2 | URL
참 다양한 의견을 가진 작가인 거 같습니다. 아직 다섯 편 밖에 안 읽어서 뭐라 드릴 말씀은 없지만 다양합니다.
ㅎㅎㅎ 콩고물은 저도 찍어 먹고 있답니다. 이곳에는 중원의 고수들이 많아서 제 검법은 짧기가 이루 말할 바가 아니더군요. ㅎㅎㅎ

은하수 2023-06-17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율리 체 저도 읽어 보겠습니댜~~~^^

Falstaff 2023-06-17 17:29   좋아요 0 | URL
옛! 응원합니다. 차근차근... 다만 형사 쉴프를 될 수 있으면 뒤로 넘기면서 말입죠. ^^

coolcat329 2023-06-17 2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새해>골드문트님의 강추로 읽고 저 또한 ‘신선한 배신감‘을 느꼈어요.
주변에 추천했고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갑자기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사실 이 책은 코로나 세상을 배경으로해서 읽기가 싫었답니다. 코로나가 너무너무 지겨웠거든요. ㅎㅎ

Falstaff 2023-06-17 20:10   좋아요 2 | URL
오, 읽어보셔요. 코로나보다 더 재미있는 담론이 있습니다.
차별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랄까요, 하여튼 굉장히 흥미롭더군요. 팬데믹은 그냥 작품의 한 조건일 뿐입니다.
 
켑투케 중단편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갈리나 켑투케 지음, 김민수 외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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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갈리나 켑투케는 놀랍게도 퉁구스족이다. 혹시 김혜린이 쓰고 그린 <불의 검> 보셨나? 나는 <불의 검>의 배경이 선사시대의 북만주 지역, 한반도 이전 시절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러면 이들은 각기 몽고족, 만주족, (우리나라)한韓족으로 나뉘기 이전의 퉁구스족 아닐까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이들의 조상은 우리 조상과 함께 저 알타이 부근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와 훈족, 말갈(청나라 세운 만주)족, 거란족, 고려족으로 갈라졌고, 서쪽으로 뻗어 지금의 튀르키예에 자리 잡았으니, 이들은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에 속해서 어순이 비슷해 서로 말을 쉽게 배운단다. 켑투케는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서문에서 자신이 퉁구스족, 즉 예벤크(예벤키)족으로 소개하면서 저 먼 고대에 한국인 조상들과 역사 과정이 교차한 적이 있음을 강조한다. 서문을 통해 몽고족의 조상이 거란족이라고 한다. 다른 거 같은데. 송나라가 망할 때 거란이 세운 요나라가 짓쳐 내려왔고, 이어서 여진족의 금나라가 송과 힘을 합해 요나라를 멸했으며, 최종적으로 몽고족이 금과 송을 멸하고 원나라를 세운 것으로 아는데 말씀이지. 하여튼 그가 퉁구스족, 이 책에선 예벤크족, 이라고 하는 거만 가지고도 참 친근한 느낌이 든다. 아마 여러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 부족들의 삶을 관심있게 보아서 그랬던 모양이다.

  주로 TV 다큐멘터리로 본 예벤크족, 그 넓고 광활하고, 삭막한 눈 덮인 툰드라 지대에서 순록떼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유목생활을 하는 원주민들의 순박한 삶의 모습. 나는 지평선이 보이는 황야지대가 나오면 그만 오금이 풀리고 만다. 그래서 내 평생 로망은 유럽의 고딕 종교건물과 조각품, 회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막과 평야와 너른 허허벌판 속 화다다닥 쏟아질 것 같은 별들 아래 하루 밤을 지새우는 거다. 별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멍때리는 것만 가지고. 그러니 동시베리아 툰트라 출신 작가가 있어서 이제 그이의 책 번역본이 나왔다는 데, 이 책을 읽어야겠어, 말아야겠어?


​  꼭 눈을 감지 않아도 좋다. 머리 속에서 정말로 내 평생의 로망, 저 툰드라 또는 시베리아 타이가 지역에서 쏟아지는 별 아래, 그냥 멍하게 누워 있다고 생각해보자. 바람 소리와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말고는 오직 적요만이 있는 텅 빈 어둠의 공간. 이때 저 멀리 한 샤먼이 있어 11각형의 북을 두드리며 하늘과 땅 속 저승과 땅 위의 모든 영령들을 부르는 높은 음정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기분이 어떨까? 이에 맞춰 숲 속에선 늑대나 엘크나 수사슴 같은 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우우우 들려오고.

  기분 삼삼하겠지? 그래. 그럴 거다. 어디까지나 생각 속에서의 타이가 숲 속이니까. 정말 로망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기껏해야 사나흘 한시적 유희니까 말이지. 세상에 그런 건 없다. 기분 삼삼한 건 없다. 모든 곳에서는 생존을 위해 일 해야 하고, 용감해야 하고, 용감하지 않더라도 일단 무슨 일이든 벌여야 하는 법이며, 척박한 툰드라 또는 타이가 숲 속이면 그게 더욱 고생스러울 수밖에 없다.

  예벤크족도 인간종이니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모두를 가지고 있을 터. 다만 오랜 세월, 현대문물이라고 부르는 자본주의의 손톱에 할퀴어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하도 생활 환경이 독해서 특별한 악연이 없는 한 서로 약하고 죽어가는 이들을 아무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도와주고 명을 이어주며 살아온, 투박하지만 정 깊은 사람들이었다. 마치 저 베링 해협 근방의 이누이트족처럼. 이상하지. 살기 힘들수록 자기 것을 더 챙기고 보관하려 할 텐데 그게 아니거든. 저 함경북도 산골에서 한 번 눈이 오면 눈이 녹을 때까지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곳, 그곳에 어쩌다 손님이 오면, 그게 어떤 사람이던지 따지지 않고 봄이 와 눈이 녹을 때까지 집주인과 똑같이 먹여주고 재워주었다잖은가. 하물며 한참 더 높은 위도에 사는 예벤크족이라면 말해 무엇하나.


​  그러나 예벤크 사람들의 뜻과 상관없이 세월은 흐르고 역사도 같이 흘러 이제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편입이 되고, 하루는 백군, 하루는 적군 치하 시절도 거치고, 스탈린의 소수민족 해체작업도 겪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백인 또는 슬라브인에 의한 인종차별도 당했는데, 예벤키 입장에서 이것들 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어느새 예벤크족 지역인 타이가에도 작으나마 도시화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작가 갈리나 켑투케는 아마도 타이가 숲속 숨(예벤키의 유목민 천막)에서 태어난 거의 마지막 세대쯤 될지도 모른다. 동시에 이들은 타이가 숲에서 나와 작은 마을에 있는 학교를 다녔던 최초의 세대일 수도 있다. 많은 남자 아이들은 학교를 4학년 또는 7학년이나 10학년까지 마치고 다시 타이가 숲으로 돌아가 사냥꾼이 되었고, 많은 여자 아이들은 절대로 타이가로 돌아가지 않을 생각으로 더 공부를 했으나 대학을 졸업해도 직업을 구할 수도 없고, 또래의 남자들도 없어서, 대학졸업 출신의 청소부가 되거나, 러시아 백인이나 금을 캐러 온 다른 민족 남자들과 결혼을 하거나 그들의 사생아를 출산했다. 그러면서 아직 한참 젊은 나이부터 알코올 의존증에 시달리며 한 세상을 막 살기도 했다.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간혹 갈리나 켑투케 같은 여성도 있어서 레닌그라드, 지금의 페테르부르크까지 유학을 해 그곳에서 러시아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민속학자 또는 문인이 되어 자신의 고향인 시베리아 타이가 마을에 찾아와 예벤크족에서 내려오는 옛 이야기를 채집하기도 했겠지.

  이 책은 작가가 어린 시절에 겪고 들었던 이야기에 픽션을 보탠 297쪽짜리 중편 <제 이름을 가진 젤툴라강>과, 민속학 박사가 된 ‘나’가 예전에 샤먼이었고 누구보다 예벤크족의 언어와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던 체릭테 할아버지를 찾아가 채록한 옛 이야기를 쓴 단편 <체릭테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리고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를 담은 《순록 없는 순록 올가미》로 되어 있다. 본문만 451페이지.

  <제 이름을 가진 젤툴라강>은 재미있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열살 전후에 자신의 눈으로 보고, 이야기를 엿듣거나 직접 화자로부터 들은 내용으로,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예벤크족의 살림과 전통이 이어나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어떻게 보면 라틴아메리카의 붐문학처럼 환상소설적 묘사도 있지만 그것과 차별을 두는 타이가 문화 속 샤머니즘까지, 물론 열 살 꼬마 아가씨가 보고 들은 것이니까 그렇겠지만, 지난 시절의 곤궁함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다른 두 편은 기록이랄 수도 있고, 르포 성격도 조금 있는데, 그렇다고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일단 새로운 내용이라 저 북동쪽 오지 사람들의 삶을 알아가는 흥미도 있으며, 세상 누구들의 삶도 다 그렇겠지만 그들 특유의 삶의 희로애락이 난마처럼 섞인 모습이 장면에 따라 짠하기도 하고, 이 선을 넘어 애처롭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고 그렇다.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착한 책이다. 골치 아픈 먹물들의 이야기만 읽다가 이 중단편집을 읽으니 버터를 잔뜩 올린 두툼한 쿠키를 목이 메게 먹은 다음에 나박김치 국물을 한 사발 들이켠 느낌이다. 진짜다.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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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6-15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캄캄한 밤 쏟아지는 별 속에 누워있던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 어디였어요. 정말 어둠과 별 저만 있던 그런 순간이었는데 시베리아 툰드라에서 이런 경험을 한다면! 우와 대단할 거 같아요.
마지막 문장에 역시! ㅋㅋㅋㅋㅋ
진짜 동치미, 나박김치국물은 최고죠!

Falstaff 2023-06-15 14:11   좋아요 0 | URL
요즘에 안 가는데요, 산에서 혼자 텐트 치면 별이 쏟아지지요. ㅎㅎㅎ
아, 툰드라, 고비 사막, 실크 로드. 인생의 로망입니다. 흑흑...
집에 가서 국수 삶아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어야겠습니다. ^^

persona 2023-06-15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작가와 책 알고 가요. 일찍 돌아가셨다니 좀 속상하네요. ㅠㅠ
리뷰 잘 읽었어요. 감사드립니다.

Falstaff 2023-06-15 14:12   좋아요 1 | URL
이 책이 그리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마치 고골의 <디칸카 교외 마을의 야회>하고 비슷한 면도 있고요. 도서관 이용하시면 딱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