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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구 : 흙의 장벽 1 ㅣ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5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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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옛 왕국 세구의 귀족 트라오레 가문 3대에 걸친 대하소설. 콩데는 “밤바라족, 나의 선조에게”라는 헌사로 책을 시작한다. 전에 읽은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에서 티투바의 어머니 아베나는 전투에서 패한 아샨티 족의 딸이었다. 즉 <…검은 마녀>는 노예로 팔려온 기구한 흑인 여성이 낳은 딸의 이야기였고, <세구…>는 얄궂게도 전쟁을 일삼아 다른 부족을 공격해 포로를 노예로 팔거나 그들로부터 세금을 착복하면서 부를 늘린 세구 왕국의 가장 중요한 귀족 가문 이야기다. 세구 왕국은 지금 지명으로 말리, 세네갈 오른 편, 코트디부아르의 위편 그리고 사하라 아래쪽의 나라 대부분을 영토로 하고 있던 한 시절의 강국이었으나, 세구 역시 유럽인들의 잠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들과 거의 동시에 사하라 이북에서 발현한 이슬람 교도에 의한 침식이 먼저였지만.
작품은 1797년, 나중에 포르투갈 출신의 외과의사 ‘멍고 파크’라는 것이 밝혀지는 백인이 세구의 경계를 긋는 니제르 강, 토속어로 졸리바 강가에 나타나 그들의 만사(왕) 알현을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세구의 귀족이며 예레월로, 왕실 각료이자 만사의 친구, 십여 명 적자의 아버지이고 다섯 가족의 파(가부장)인 두지카 트라오레의 집에서도 여인들과 아이들과 하인들과 노예들 모두 생전 처음 나타난 흰둥이를 구경하러 강가로 뜀박질하는 바람에 텅 비어 있고, 페울족 출신의 여인으로 전투 중 노예로 잡아와 신분 차이 때문에 정식으로 결혼하지 못하고 종첩으로 가까이하던 시라가 출산 진통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출산을 보면 부정을 타는 법이라 당황하고 있던 차에 밤바라의 왕족 출신인 첫 번째 아내 니아가 돌아와 시라의 출산을 돕는다.
두지카 트라오레는 세 명의 정실 부인과 많은 첩을 두었다. 정실 부인은 첫 아내인 니아와 그가 낳은 맏이 티에코로와 나바가 주요 등장인물이고, 첩 소생에서는 시작할 때 시라가 낳은 아들 말로발리와, 다른 첩 소생인 시가가 또 중요한 인물이다. 시가가 당연히 말로발리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티에코로와 같은 날 몇 시간 차이로 출생해서 두 번째 아들이지만 포로 어머니로 역시 노예 첩, 우리 말로 종첩이다. 이 노예 어머니는 포로로 잡혀와 늘 향수에 젖어 있어 우울증이 심각해졌고, 드디어 하루는 우물에 거꾸로 빠져 스스로 삶을 마감해버렸다.
그리하여 이 대하소설 <세구: 흙의 장벽>은 1대가 두지카 트라오레, 2대는 티에코로, 시가, 나바, 말로발리, 3대는 이 네 명이 낳은 아들들로 이어진다. 두지카는 당연히 서아프리카 세구, 니제르 강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2대는 아메리카(브라질)과 케이프타운 근처 남아프리카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고, 3대에 이르러서 영국 유학까지 감행한다. 이들의 여정을 보면, 작가 마리즈 콩데가 살아온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의 경로와 매우 유사한 것을 알 수 있기도 하다.
마리즈 콩데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즉 아프리카 출신 엔틸리스 제도 사람으로,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고, 먹고 살기 위하여 서아프리카에서 십여 년 동안 교사 시절을 보내며 아프리카 역사에 관해 심도 있는 접근을 할 수 있었다. 이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하고,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이후 미국과 과들루프를 왕래하면서 강의와 글쓰기를 계속했으니, 작중 나바의 아들 에우카리스투스가 프랑스 대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나바가 엔틸리스 제도가 아니라 브라질에 노예로 팔려간 작은 차이만 날 뿐이다.
1797년에 외과의사 멍고 파크가 왜 세구에 왔을까? 세구의 야만인에게 의료봉사를 하기 위하여? 그럴 수 있다. 다음 코스는? 선교사와 학교. 다음은 플랜테이션 농장 건설. 당연히 야만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현지인들의 소득을 높이고 생활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목적이다. 그 다음엔 치안을 위한 군대의 주둔이며, 최종적으로 이익 착취 경쟁 목적의 유럽 국가간 식민지 전쟁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유럽 백인들의 부의 축적을 위한 추악한 일련의 과정일 뿐. 이 작품이 1984년에 출간했는데, 당시까지 세계는 식민 현상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었다. 그러나 세월은 더 흘러가 19세기 중반 비슷한 시점까지 왔는데 아직 세구에는 백인들이 최상의 상품을 들고 아프리카에 상륙했다는 이야기만 나오지 본격적인 식민지 개척에 관해서는 별로 말이 없다. 물론 서아프리카 해변 지역은 오래 전부터 백인들이 항구에 요새를 설치하고, 교회와 학교를 지었으며 이에 비례해 피부색 검은 현지인들이 유럽인을 닮아 흑인의 정체성을 잃고 점점 사기꾼 비슷하게 얄팍한 심성으로 변했지만, 말로발리가 말하듯 아직 내륙 지역엔 독특하고 우아한 아프리카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스토리인데, 그러나, 다음 몇 문장은 분명히 헷갈릴 터이니 그냥 잊고 마시라. 주로 낯선 이름과 사정이 복잡해 그럴 터, 꼴난 독후감 읽으며 메모할 수는 없을 것이니.
여기에 독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현상이 나타난다. 1세대 주인공 두지카 트레오레의 열다섯 살짜리 맏아들 티에코로가 세구를 떠나서 통북투로 가서 이슬람과 알라에 대하여 더 공부를 하고, 수단의 유명한 상코레 대학에 입학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슬람교의 득세는 페르시아의 쇠퇴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배화교 즉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페르시아가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7세기 초에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이슬람교는 천 년 동안 쉼없이 세를 불려 드디어 사하라 사막을 종단해 서아프리카 지역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공통점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라는 점. 다신교를 믿는 한 시절 저 위대했던 로마의 신들도 여호와의 배타적 믿음 앞에서는 나가 떨어졌으니, 아프리카 특유의 샤머니즘에 기반한 숱한 신들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책 속의 이슬람은, 특히 엘 하지 오마르가 신봉하는 (비교적) 극단적 이슬람교는 한 손에 코란을, 한 손엔 칼을 들고, 알라를 믿든지 죽든지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윽박지르며 세를 확장한다.
결과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슬람은 백인들이 신봉하는 기독교에 잠깐 찍소리 못하고 자리를 내주었지만 20세기 들어와 백인들이 돌아간 이후 중서부 아프리카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이슬람을 믿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주인공 가문의 2대와 3대에 걸쳐 이슬람교가 서부 아프리카에 진압하기 시작한 시점을 그리고 있다.
어느 세계적 종교가 안 그럴까? 한 종교가 세계적이 될 수 있으려면 그 안에 사랑과 포용과 배려를 품어야 한다. 이슬람교도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처음엔 선한 마음으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좋은 종교에 귀의하라고 권했겠지. 하지만 뭐든지 권력이 문제다. 포교를 위해 도착해보니 생각지도 못한 금광에서 금덩이가 쏟아지고, 아프리카 지역이라면 사람 자체가 금과 비슷한 가치를 얻을 수 있고 팔아먹을 수 있으니, 비록 시작은 진실한 종교인이었겠지만, 그걸 믿지 않는 바 아니건만, 조금은 욕심이 생기다 보니까, 그게 하루 하루 자꾸만 커져가서 결국엔 현지인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주어 영생의 즐거움을 주는 대신, 종교의 이름으로 죽음을 부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거였다. 그리하여 과격한 종파의 엘 하지 오마르는 아프리카 원주민은 당연하고, 가톨릭 교도들은 물론이며, 다른 종파의 이슬람 교도들의 목덜미에 언월도를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원주민은? 엘 하지 오마르와 뜻을 같이 하지는 않지만 독실한 이슬람 교도인 알하지 기다도는 자신보다 더 독실한 신자인 아들 알파 기다도가 보는 앞에서 1대 주인공 두지카의 바로 아래 동생이자 그의 후임 부족장인 티에폴로 트레오레와 다투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부족장의 아내는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울부짖는다.
“알라가 내 남편을 죽였다!”
이것으로 이슬람교는 사랑과 포용과 배려를 포기한 종교가 되어버린다. 바로 옆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알파 기다도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죽임을 당한 이의 조카이며, 2대 주인공 티에코로의 아들이며, 3대 주인공인 모하메드와 함께 아프리카 인의 정체성과 어머니의 땅 마시나를 보존하기 위하여, 모하메드는 세구를 지키려 원리주의자 엘 하지 오마르의 군대와 대적하기 위해 참전하기에 이른다.
<세구: 흙의 장벽>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흑인 여성이 쓴 작품이다. 그러니 아프리카라는 지역이 함의하고 있는 식민, 흑인이란 인종, 그리고 여성이라는 젠더를 부각할 수밖에 없다. 다만 시대가 18세기에 시작해 19세기 초중반 까지라 젠더를 주장하는 장면은 몇 컷이 안 되긴 한다.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낯선 문화권 이야기.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와 비슷하거나 조금 앞 시대의 내륙지방 이야기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지만 핀트가 약간 다르다. 아프리카 문학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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