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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프, 바이 더 시 - 조이스 캐럴 오츠의 4가지 고딕 서스펜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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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가 1938년생이니까 여든다섯 살인가? 다작의 여왕이다. 장편소설을 쉰여덟 편, 천편에 육박하는 중단편 소설을 썼다. 아침에 너댓 시간 쓰고, 오후에 또 쓰고, 저녁 먹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 완벽한 전업작가. 쓴 작품의 양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어 나온 책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다. 곱게 나이 든 할머니인데 미국 현대 고딕 소설의 대가라고 하고, 그로테스크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전형적인 미국 작가로 이이의 관점은 전적으로 미국 위주다. 우리나라에서 이이의 대표작으로 꼽기도 하는 <카시지>의 경우가, 내가 읽기로는, 그랬다. 이럭저럭 맞춰보자면, 미국적인 작가이고, 그로테스크의 여왕, 현대 고딕. 이러면 대강 감을 잡을 수 있으니, 하여튼 나는 글 좋은 대중작가라고 본다. 작품 속에는 리얼한 폭력을 담고 있으며 자주 철철 피가 흐르고, 그걸 역겹기 바로 전까지 상세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카디프, 바이 더 시》도 예외가 아니다. 이 중단편집은 2020년에 초판 출간했는데 초판 표지에 내놓고 “네 편의 서스펜스 노벨라”라고 박아 놓았으며, 우리나라 번역본 표지에는 여기에 단어 하나를 추가하여 “4가지 고딕 서스펜스”라고 했던 바, 나는 깜짝 놀라길 “4가지”? 혹시 “싸가지”를 이야기하는 건가? 했는 줄 알고 말이지. "싸가지 고딕 서스펜스" 완전 새로운 장르의 소설 말씀이야. 하여간 네 편 모두 여성 피해자가 극한 상황까지 몰리는 사건을 그렸으며, 언제나 그렇듯이 악당은 권력과 완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다. 물론 다 죽어 마땅한 새끼들이다. 아니, 죽여 마땅한 새끼들. ‘죽어’와 ‘죽여’, 점 하나의 엄청난 차이란! 하여간 그렇다.
내가 읽은 소감은 그냥 오츠. 오츠한테 기대했던 딱 그만큼의 오츠. 오츠, 하면 많은 독자들이 <좀비>나 <흉가>, <악몽> 같은 걸 떠올리는 듯한데, 나는 <카시지>와 <사토장이의 딸> 딱 두 작품 읽고 더 이상은 내 돈 내고 오츠를 사서 읽지는 않기로 했다. 《카디프, 바이 더 시》 역시 도서관 개가실의 신규 구입 도서 책장에 놓인 것을 보고 잽싸게 읽었다. 잘했다.
네 편의 노벨라, 중편 소설이 들어 있는데,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카디프, 바이 더 시>는 시poem 옆의 카디프(라는 이름의) 아가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서 몇 번 보신 바 있는, 또는 내가 생각하기에 누구나 한 번은 영화를 통해 본 경험이 있을 것 같은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 시작한다. 술에 취한 건장한 남자가 엽총이나 권총을 들고 집안으로 들어온다. 집엔 세 명의 아이들과 엄마가 있었다. 먼저 엄마의 머리를 향해 총을 두 방, 빵빵, 쏘아 죽이고, 큰 딸한테도 가슴과 목에 빵빵 쏴 아직 열살도 안 된 목숨을 거두었으며, 이어서 어린 아들이 눈에 띄자 역시 한 방, 빵, 쏴서 죽여버리고 만다. 이제 겨우 두 돌 아홉 달이 된 막내 클레어는 개수대 아래 어두컴컴하고 냄새나는 공간, 배수관 뒤편, 거미줄과 머리카락이 함부로 흩어져 있는 작고 작은 공간으로 몸을 구기고 들어가 더러운 공간보다 더 작게 웅크리고 있다. 조금 후, 남자의 발과 다리가 보이고, 시커멓고 축축하게 번들거리는 뭔가가 바짓단에 묻어 있는 것도 보이지만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거의 혼절 상태에 이른 막내를 발견하니 가족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다. 살인자는 아빠. 처자식을 쏴 죽인 다음 남은 총알을 자신의 옆통수를 관통시켜 자살해버린 사건. 세월은 흐르고 흘러 클레어는 다른 가정이 입양해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와 옛 사건이 벌어진 집과 일대의 땅을 상속받았음을 전해준다. 그리하여 저 기억 속, 어쩌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아 있던 아득한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이야기, 이게 타이틀 롤 <카디프, 바이 더 시>다. 내 말 맞지 않나? 작은 피난처에 몸을 피한 유년의 나. 영화에서 본 장면이지? 이 책의 초판이 2020년이니까 오츠도 영화의 한 장면이 인상 깊어 그걸 꺼내 작품으로 썼을 거 같다. 뭐 아니면 말고.
흠. 이거 스포일러 맞는데, 엣다 모르겠다, 얘기하자면, <카디프, 바이 더 시>에서 진짜 악당이 처자식 죽인 아빠가 아닐 수도 있어서 결론을 미루더라도, 두 번째 <먀오 다오> 부터는 진짜 개자식들이 나온다. <먀오 다오>에서 출연하는 개자식은 사춘기를 맞은 주인공 미아의 의붓아빠 패리스 로크. 하긴 이 중편에 나오는 남자 치고 개새끼 아닌 게 거의 없기는 하지만 이외에도 사춘기를 맞아 가슴이 봉긋해져 손만 대도 아픈 가슴을 고의적으로 툭 치고 “아, 미안, 젖소” 하며 지나가는 한 학년 위의 뎀스터도 마찬가지다. <먀오 다오> 악당들의 공통점은 성희롱, 또는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통해 처음 들은 단어인 ‘성비위’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이 개자식들은 충분하게 (또는 죄에 비해 과하게) 벌을 받기는 한다.
세 번째 작품 <환영처럼, 1972>는 가장 역겨운데, 성공회 신부 공부를 하다가 때려 치고 대학에서 강사질을 하는 젊은 악당 사이먼과, 유명 시인의 계관/권력을 자랑하는 61세 늙은 교수 롤런드 B가 등장한다. 이 새끼들 가운데 한 명은 젊고 똑똑한 학부 2학년 학생 앨리스를 임신시키고, 당시에는 전 미국에서 낙태 수술이 불법이었으며 간혹 야매로 해주는 의사가 있더라도 학생신분으로는 엄두를 내기 힘들 만큼 많은 돈을 요구해 절망에 빠진 앨리스에게 문제 해결을 위하여 자신과 결혼을 해 애 낳고 키우자고 제의를 한다. <환영처럼, 1972>는 별로 주의하지 않고 읽으면, 읽다가 갑자기 숨이 턱, 하고 막힐 만큼 분노하게 되고, 안타까워하다가, 한숨을 푹 쉬면서 끝장, 그러니까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마지막 작품 <살아남은 아이>는 첫 번째 이야기 <카디프, 바이 더 시>와 달리 아이 죽이고 자살한 인간이 아빠가 아니라 엄마, 살아남은 아이가 딸이 아닌 아들, 일 것 같은데 오츠 작품은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앞에서 내가 말하기를, 이 책에서 나오는 (사춘기 중이거나 지난) 남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다 개자식들이라고 했다. 그러니 정말 이 집안의 아빠는 무고한 거야? 읽어 보셔야 안다니까. 하여튼 엄마가 죽는 방식도 어디서 본 거 같다. 차고 안에서 틈을 막아 놓고 시동을 건 다음 배기가스가 차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수면제 칵테일 한 잔 마시고 잠에 빠져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편안하게 죽음에 이르는 방법. 토미 리 존스와 수잔 서랜든이 주인공을 한 <의뢰인>에서 나오는 자살 미수 장면이다.
이제 소감. 딱 조이스 캐럴 오츠. 그러나 여태 오츠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로테스크의 여왕이란 별호가 어울리는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 그런 줄은 모르겠지만, 하여간 내가 알던 오츠 보다 강도가 훨씬 셌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오츠가 매년 거의 빠지지 않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 후보에 올라간다고 하는데, 미국 땅 안에서 잘 팔리는 작가라 하고, 또 읽어보면 정말 글을 쉬우면서도 (아마 짧은 단문 위주로 써서 그렇기는 하겠지만) 흥미진진하게, 때론 복장 터지게 만드는 솜씨가 대단하다는 데 다른 의견이 없긴 하지만, 감동이라든가, 공감이라든가 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못할 것 같다. 심지어 어제 밤에 <환영처럼, 1972>의 마지막 장면이 꿈 속에서도 나와 아주 진저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자다가 벌떡 깼지 뭐야, 잠 깬 김에 방광 한 번 비우고 다시 자긴 했어도),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이 인상깊지는 않다. 높은 대중성으로 영화화하면 괜찮은 수준의 박스 오피스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조이스 캐럴 오츠. 여전히 나는 이이의 책을 돈 주고 사서 읽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백수거든. 아무 책이나 살 수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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