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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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피에르 르메트르의 “참화 삼부작”이 <우리 슬픔의 거울>로 마무리한다. 1부 <오르부아르>는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인 1918년 11월 2일에 시작하고, 2부 <화재의 색>은 대공황이 막바지 준비 단계에 이른 1927년, 3부 <우리 슬픔의 거울>은 2차 세계대전이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시작해 나치가 에펠탑 위에 하켄크로이츠를 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0년 6월 13일에 끝난다. 이 세 작품이 소위 삼부작이기 때문에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물론 삼부작이란 체인을 생각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읽어도 재미가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왕 읽는 것, 순서대로 읽는 편이 낫다. 1부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는 이미 종전협정이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을 알고 있던 악당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의 공명심, 출세를 위한 공훈 욕심 때문에 진격 명령을 받아 고지를 향해 진격하던 중, 위기에 처한 동료를 구하려다가 포탄 파편이 날아와 턱과 혀 전체가 떨어져 나가는 중상을 입는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파리로 돌아와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에게 복수극을 펼치는 것이 1부 <오르부아르>. 이때 에두아르는 한 하숙집에서 꼬마 소녀, 자신의 흉한 상처에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람’인 루이즈와 친하게 지내는데, 루이즈가 1909년생이니 당시엔 한 열 살 정도였고, 이 아이가, 점점 자라 초등교원 사범학교를 졸업해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면서 약혼을 하고, 파혼을 하고, 서른 살을 넘기는 1940년에 3부 <우리 슬픔의 거울>에서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줄은 몰랐다. 2부 <화재의 색>에서 1부의 악당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와 별로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던 에두아르 페리쿠르의 착한 누나 마들렌이 등장한다. 에두아르가 1부에서 성공적으로 복수에 성공해 이미 과부가 된 마들렌은 아버지 마르셀 페리쿠르가 자신의 은행 후계자로 점찍은 귀스타브 주베르를 재혼 상대자로 정혼 비슷하게 해 놓고 생을 마쳤지만 아들 폴의 가정교사 앙드레 델쿠르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버지 마르셀의 장례식날, 생각지도 못하게 페리쿠르 저택의 3층에서 외아들 폴이 할아버지의 관을 향해 자유낙하를 감행해 구만리 만큼 창창하게 남은 세월을 휠체어 위에서 보내야 하는 불행한 일을 당하며 활극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 책의 주인공 마들렌 역시 <우리 슬픔의 거울>에서도 다시 등장하는데, 세월이 흘러 중늙은가 된 마들렌이 진짜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주인공 루이즈가 전쟁 중에 거두어 나중의 의붓딸을 삼은 고아에게 마들렌이라는 이름이 지어준다. 그러니 이왕 읽을 거면 순서대로 읽는 게 좋다는 말씀.


​  1부와 2부에서는 프랑스에서도 최고 수준의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지만 르메트르는 3부 주인공들로 ① 하녀의 딸 쉬잔 아드리엔 루이즈 벨몽, ② 천하의 야바위꾼이자 양아치 라울 랑드라드, ③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디카프리오를 찜 쪄 먹을 그러나 선한 사기꾼 데지레 미고, ④ 건실하지만 아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절도를 감행하는 기동 헌병대 페르낭 상사 등을 골랐다. 1, 2부와 마찬가지로 6백 쪽이 넘어가는 장편소설의 스토리를 다 간추리는 것이 번거로울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아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루이즈를 소개하는 것으로 독후감을 가름하려 한다.


​  쉬잔 아드리엔 루이즈 벨몽. 1940년 4월 6일에 일이 벌어진다. 전에 내력을 좀 보자. 아빠 아드리앵 벨몽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1916년에 비뉴 협곡 동쪽 사면에서 전사해 별로 루이즈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래도 1908년에 페르 가street에 집을 사둔 덕에 아내 잔과 외동딸 루이즈가 비싼 월세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이나 백년 전이나, 우리나라나 프랑스나 그저 돈 있으면 집 사두는 것이 장땡이다. 1차 대전이 끝난 후부터 어머니 잔 벨몽은 우울증이 발병해서 모든 일을 중단했고, 1939년 봄에 건강이 악화되더니 6월에 향년 52세로 생을 멈췄다. 삼촌 역시 전쟁통에 전사하는 바람에 루이즈는 하늘 아래 자신 혼자 신세다. 어머니로부터 약한 우울증 증상을 내리받아 그런 지는 몰라도 매우 예쁜 아가씨였지만 스스로는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많은 구애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아르망과 약혼을 했으나, 루이즈는 자신이 임신을 한 다음에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러나 여간해 아이가 생기지 않아 병원에 가서 진료를 했더니, 반복된 나팔관 염증의 결과로 난관에 이상이 생겨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3년의 약혼기간을 날린 커플이 입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의견차이가 심해 결국은 헤어지고 만다. 루이즈는 임신과 출산을 갈망해 혹시 산과 의사의 오진일 지도 몰라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남자들을 만나 여기저기서 동침을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다음 번 생리일을 기다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결혼과 남자를 포기하고 말았다.

  루이즈는 성마른 성격과 은은한 분노를 품은 듯한 모습이었으며, 임신을 포기한 후부터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 말라는 의미로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지만 오히려 그게 더 예쁘게 만들어버렸다는 걸,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을 모나리자라는 별명으로도 부른다는 걸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 십대 때부터 거리 저 편 2백 미터 떨어진 카페(또는 레스토랑) 라 프티트 보엠, 우리말로 집시 아가씨라는 간판을 단 집에서 토요일마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카페의 쥘 사장이 엄마 잔 벨몽을 연모했었다. 엄마는 카페가 보이지 않는 쪽의 방에서 하루 종일 창문을 연 채로 밖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줄도 몰랐다. 귓속에 정글처럼 털이 수북한 거구의 쥘 사장은 둥근 베레모를 쓴 대머리였는데 잔을 사랑했었기 때문인지 책이 끝날 때까지 루이즈를 마치 자신의 딸 같은 마음으로 보살피게 된다. 그러니까 그림이 그려지시지? 천하에 아무도 없고, 결혼과 임신의 희망을 접은 1940년대의 서른 살 무렵의 약한 우울증 증세가 있는 아름다운 미혼 여성. 그리고 루이즈의 엄마만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유일하게 사랑했던 거구의 순정파 늙은 남자.

  루이즈가 일하는 카페에 20년 넘게 단골로 같은 자리에 앉아 늙어간 남자가 있다. 조지프 외젠 티리옹. 70세는 확실하게 넘은 노인이며 전직 의사. 뇌이쉬르센 구 오베르종 대로 67번지 저택에 살면서도 매주 토요일 지하철을 타고 먼 거리를 와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신문을 보고 차를 마시다 가는 늙은이. 하루는 이이가 루이즈에게 제안을 한다. 자신을 위해 옷을 벗어 달라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더 이상 원하는 게 없다고, 손 끝 하나도 대지 않겠다면서. 대가는 루이즈가 정하란다. 몇 주가 흐르고, 세 번째 대화 후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루이즈는 노인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인 만 프랑의 대가를 요구했지만 노인은 수긍하면서 금요일 저녁 여섯 시, 파리 14구의 아라공 호텔을 티리옹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해놓았단다. 금요일은 다가왔고, 루이즈는 혹시 몰라서, 토스카가 스카르피아를 죽일 때 썼던 고기 써는 나이프를 핸드백에 넣은 채, 결코 어머니 잔이나 자신이 드나들 만한 곳이 아닌, 호텔의 현관문을 밀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하루 전에 답사를 해 본 루이즈를 주인 여자는 알아보았고, 3층의 객실을 알려주었으며, 별로 장식이 없이 낡은, 그러나 깔끔한 방 안 침대 위에는 은퇴 의사가 쪼그라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의사는 얼굴과 존재 자체에서 무어라 말하기 힘들고 무한히 슬픈 무언가가 느껴질 뿐이었으며, 너무도 처절한 면이 있는 상황이었다. (이 문장은 본문에 나온 걸 줄여 쓴 것인데, ‘무어라’, ‘무언가’를 너무 남용해 읽기에 짜증이 났다. 명색이 공쿠르 상 수상 작가가 쓰는 ‘산문’이 무슨 이 따위야 그래. 혹시 역자가 대충 번역한 건 아니겠지?) 루이즈는 원피스 지퍼를 내리고 노인을 등지고 선 다음 브래지어도 벗고, 팬티를 아래로 내린 후, 왼발을 축으로 몸을 돌려 노인을 향했으며, 눈을 마주친 노인은 잠깐 후,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빼들더니,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발사해버리고 말았다. 노인은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상태로 (<오르부아르>의 주인공 에두아르 페리쿠르처럼) 얼굴의 반이 날아갔고, 작고 늙은 몸에서 상상도 못할 만큼 많은 피를 루이스를 향해 분사해버리는 바람에, 루이스는 경련을 일으키더니 피범벅이 된 몸으로 공포에 찬 눈을 하고 호텔 방에서 뛰쳐나가, 비틀비틀 갈지자로 몽파르나스 대로를 달렸다. 피칠갑을 한 알몸의 젊은 여성. 순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지만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도 몰라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머리에 터번을 쓴 늙은 여자가 자신의 외투를 벗어 루이즈의 어깨를 덮어주었으며, 이제 막 도착한 경찰은 상황으로 보아 루이즈를 범죄자로 체포했는데, 이 순간, 루이즈는 기절을 해버리고 말았다.


​  이게 다냐고? 웬걸. 아직 독일이 벨기에로 쳐들어가지도 않았다.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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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8-01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악 여기서 끊으시다니! 오르부아르는 두껍고 재미없는 소설이라 생각했는데 골드문트님이 쓰시니 왜이리 재미있어 보이죠?!

잠자냥 2023-08-01 11:18   좋아요 2 | URL
이 시리즈, 1부와 2부까지는 읽었는데 재밌었어요. 여름에 재미로 읽기 괜찮은 책.....(근데 왜 전 3부는 안 궁금해지는지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8-01 16:06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미는 있는데요, 결말이 완전 아메리칸 스타일, 다 좋은 게 좋다... 이래버리는 바람에 말입죠. ㅋㅋㅋㅋ
잠자냥 님처럼 1부, 2부에서 멈추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 이 책을 아예 시도하지도 마시고요. ㅋㅋㅋ 일단 손에 잡으면 안 떨어집니다. 강력 본드예요.

건수하 2023-08-02 13:37   좋아요 3 | URL
자냥님/ 제가 1부는 책모임에서 읽었는데 잘 읽히긴 했으나 아주 재밌진 않았고 이렇게 두껍게까지 써야하는가 생각했거든요. 그게 3부까지 나오다니….

건수하 2023-08-02 10:02   좋아요 2 | URL
골드문트님/ 1부만 읽었는데 두꺼워도 참 잘 읽히긴 하더라고요 ㅎ 결말이 좀 아쉽가 하시니 살짝 찾아볼까 싶습니다 ^^

Falstaff 2023-08-02 13:3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결말말 보시면 완전히 미국 영화 같아요!
좋은 게 좋은 거다. 착한 놈 우리편.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3-08-03 0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루이즈를 보고 싶어했던 노인은
루이즈를 붉은 빛으로 칠해버리고 싶었던 건가요...루이즈가 갈지자로 달릴 수 밖에요

3부 인물로 소개해주신 중에는 ‘캐치 미 이프 유 캔‘형 캐릭터가 궁금하네요

Falstaff 2023-08-03 06:02   좋아요 1 | URL
죽자고 마음 먹은 인간이 다른 사람 배려해가며 죽지는 않겠지요. 그냥 루이즈의 몸을 보고 죽는 게 소원이었을 겁니다. 죽다보니까 루이즈에게 그렇게 지독한 폐를 끼친 것 뿐이다, 라고 봅니다. 미친 영감 같으니라고....

저도 이 책에서 제일 유쾌하고 등장할 때마다 즐거웠던 인물이 선량한 사기꾼 데지레 미고였습니다. 심지어 데지레는 데지레인데 성이 미고인지 그것도 헷갈린답니다. ^^

coolcat329 2023-08-05 07: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1,2부는 읽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또 안 땡기더라구요. 근데 강철 본드라니 ㅋㅋ 하긴 1,2편도 그랬죠. ㅎㅎ

Falstaff 2023-08-05 18:31   좋아요 1 | URL
재미는 있는데요,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권하기도 뭐한 것이 좀 애매합니다. ㅋㅋ

공쟝쟝 2024-05-01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3부가 제일 재밌었어요!!! ㅋㅋㅋㅋ 아 여기서 왜 전쟁이 터지는 거얏!!! 왜왜왯!! (당연함…) 그리고 루이즈가 주인공인 것도 넘나 반가웠고!!!! 퐐님 본드라고 하신 거 넘 넘 넘 맞는 말씀 이십니다. 르메트르 소설은 잡으면 다음이 궁금해서 놓지 못하는 마력이 있는 것 같고!! 저는 그런 소설을(순식간에 페이지 넘어가는 소설) 무지 좋아합니다. 이런 소설 보다는 넷푸릭스가 더 잼나서 아쉬웠는데 ㅋㅋㅋ 모처럼 과몰입 독서였음돠! 또 추천 부탁드려요!!

Falstaff 2024-05-02 06:39   좋아요 0 | URL
그러셨구먼요. ㅎㅎㅎ 이런 작품은 영화로 만드는 것보다 소설책으로 읽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 속편 <대단한 세상>도 아주 재미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ㅋㅋㅋ
 
마지막 연인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
찬 쉐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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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2022년 초에 독자들이 열광했던, 그러나 생각만큼 흥분이 오래 가지는 않았던 작가 찬쉐(殘雪)를 읽었다. 당시 나는 중국의 3세대 소설 작가들의 문법에 조금은 식상하고 있어서 찬쉐가 여성작가이며, 제목이 <마지막 연인>이란 것만 가지고 징글징글한 중국의 현대사를 다룬 남성 3세대 작가들과 달리 조금은 달달하고 도시적 감수성을 보여주지 않겠는가, 생각했으며, 기회가 닿으면 한 번 읽어 보기는 하겠는데 찬쉐에 대한 찬사가 좀 가라앉은 다음에 그리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다. 그리고 코피 터졌다. 시대가 2020년대에 징글징글한 남성작가, 달달한 여성작가, 제목 가지고 스토리 짐작하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말짱 헛생각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짐작한 내가 참 한심했다. <마지막 연인>은 참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언제부터인가 좀 야릇한 소설이 등장하면 “카프카와 보르헤스를 잇는 작가가 등장했다.” 라고 하면서 어깨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찬쉐의 경우에도 “중국산 카프카”라 칭하는 작가/평론가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그래. 작품을 해설하기 힘들 때 카프카나 포크너 비슷하다,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하면 반은 먹고 들어가니까. 내가 읽은 <마지막 연인>은 자전적 이야기 같던데. 물론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헷갈릴 경우에 “자전적 이야기” 운운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즉 나처럼 <마지막 연인>을 달달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책을 사거나 빌려 읽은 사람은 초장부터 보기 좋게 코피가 터질 것이다. 찬쉐는 자신의 이야기, 부유하게 살다가 폭삭 망했으며, 자기를 돌보던 외할머니마저 굶어 죽는 참화와 스스로도 심각한 결핵을 겪었으면서도 문학의 꿈, 작품 속에서는 책을 읽고 읽은 책의 스토리들을 다 합쳐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만들고자 하는 등장인물 존처럼 소설쓰기를 운명 또는 세상에 자신을 밀어낸 저 지하 또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부터의 운명이다, 라고 작품의 주제를 밝혔고, 형식적으로는 그걸 “초현실주의”에 발을 담그고 쓴 작품이라고 읽었다.


​  “옮긴이의 말” 속에는 “중국의 초기 선봉파 작가들이 평이한 현실주의로 선회할 때 찬쉐는 오히려 30여 년 동안 꾸준히 가장 전위적인, 때로는 서양의 모더니즘 작가들보다 훨씬 더 모험적인 실험을 감행했다.”라고 쓰여 있다. 선봉파?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  선봉파先鋒派. “문학예술에서의 선봉, 아방가르드란? 20세기 초에 기성의 문학예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나선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등 첨단의 문예사조를 말한다. (중략) 1980년대 중반 이후 개혁개방정책이 실효를 거두고 상품경제가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조성된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 때문이며 개혁 개방이 시작되면서 쏟아져 들어온 외래사조의 영향도 선봉문학이 등장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출처: 씽크존)


​  찬쉐는 1986년, 33세 때 <황니거리>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또래 작가들은 시작은 선봉파로 했을지언정 점점 중국 안에서 잘 팔리는 현실주의로 선회했고, 찬쉐를 비롯한 골수 아방가르드 들은 끝까지 선봉파의 선봉에 섰다는 의미다. 그러면 옮긴이 강영희의 말마따나 초기 선봉파 작가로 훗날 평이한 현실주의로 선회한 대표적인 작가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칭한 것일까?

  내가 꼽기로는 찬쉐보다 3년 아래, 중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모옌, 아닐까 싶다. <홍까오량 가족>, <열세 걸음>, <술의 나라>, <인생은 고달파>, <달빛을 베다>, <풀 먹는 가족> 등등의 작품 속에 일정한 만큼 또는 적당할 정도의 (포스트)모던한 향미 첨가물을 살포해 놓았다. <개구리>는 좀 덜 그렇지만. 모옌과 비슷한 경우를 현실주의로 선회한 작가 그룹으로 봤을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다고 단언하는 건 아니니 이 대목을 어디 가서 써먹지 마시라. 망신당할 수 있다.

  하여튼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거장으로 이름 높은 모옌 선생의 이름까지 끌어들여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단지 찬쉐가 강단있게 중국의 아방가르드, 선봉파의 입장에서 굽힘 없이 작품을 썼으며, 그것으로써 중국 소설계의 다양성 확보에 크게 복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작 읽어볼 것을 그랬다. 소설, 또는 문학을 포함한 모든 세상살이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 바로 다양성일 터이니. 나하고 맞고 맞지 않고는 관계없이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과 표현법과 문자놀이로 감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일일 것이다.


​  작품 속에는 서로 관계가 있는 세 커플이 등장한다. 장소는 특정하지 않은 세상의 어떤 곳, A나라 B시. 그곳에서 의류회사 “로즈”를 차려 사장으로 있는 빈센트와 발랄하고 영리하면서도 요염한 중년여성인 아내 리사. 회사 “로즈”의 영업부 매니저로 작은 키에 고집스러운 중년과 노년 사이의 남자 존과 존이 벌어오는 돈으로 귀금속 같은 장식품을 열라 수집하다가 정신차려 이제 직기를 사용해 벽걸이 카펫 작업을 해 제법 돈을 벌고 있는 아내 마리아. 존과 마리아 사이에는 서먹서먹한 부자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열일곱 살 먹은 아들 대니얼이 있다. 얘는 공부하기 싫어서 학교 때려치우고 정원사가 되려 알아보고 있는 중으로 나중에 꽤 그럴듯한 정원사가 된다. 다행이다. 그리고 “로즈”의 오래된 고객으로 온열대 지방인 남부지역에서 거대한 규모의 고무나무 플랜테이션 농장을 경영하는 레이건 씨와 그가 오랑우탕이라고 부르고 싶어하는 갈색 피부와 새까만 곱슬머리를 한 아시아 여자 에다.

  이 A나라 B시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여인이 있으니 도시 청소부로 아침부터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깨끗이 쓸고 있는 흑인여성 조이너. 조이너는 이 B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빈센트의 아내 리사는 도박의 도시 출생으로 나이든 빈센트가 한 번 마음먹고 아내의 고향인 도박의 도시로 길을 떠나 기차에 내렸을 때 텅 빈 도시에서 단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바로 흑인 여성 청소부 조이너였다. 도박의 도시에서 조이너가 말하기를 B시의 조이너가 자신의 자매라고 하고, 도박의 도시에서 사용하는 룰렛을 비롯한 모든 도박 장비는 벽 속에 들여놓았으며, 사람들은 지하 또는 동굴 속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언제 지진이 나 건물이 무너질지 모르는데 지하에 있으면 안전할 것이란다. 그렇게 조이너의 말에 따라 여관 지하에 숙소를 정하고 무작정, 조이너의 약한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의 옛집을 찾아갔더니, 이게 웬일? 이미 죽었다고 알고 있는 리사의 부모가 안락의자에 누워 앵무새와 말장난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러면 이곳은 시간의 차원이 없는 곳.

  존, 사실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일의 기단을 만드는 인물이다. 존은 영업부 매니저 일을 하면서, 워낙 머리가 좋아, 서류 아래에 소설책을 한 권 깔고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어가면서도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해 사장조차도 존이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며 그만두지 않을 거란 다짐을 받고 싶어한다. 존은 또 사장의 태도를 자신이 그만두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표시하는 것으로 여기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하여간 엄청난 독서량은 서재에 책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게 했으며, 그의 소원은, 물론, 당연히, 자연스럽게, 틀림없이 작가 찬쉐와 같은 소원으로, 평생 읽은 소설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난 뒤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보겠다는 웅대한 계획이다.

  뭐라고? 존의 계획이 존을 태어나게 한 작가 찬쉐의 계획이라고? 당연하지. 그리하여 이후의 작품은, 비록 상충하고 연결되지 않으며 버석거리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막 흐트러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등장인물들의 행위, 겪었던 경험, 그들의 공통점인 ①지하 또는 동굴, ②불운과 불행을 상징하는 뱀, 까마귀, 늑대, 말벌 같은 토템이랄까 상징, ③지진과 산사태로 입은 피해와 정신적 외상, ④몇몇 선한 동물에서 뿜어 나오는 자기장은 모두, 적어도 책의 앞갈피에 쓰인 극히 짧은 찬쉐 소개글과 “옮긴이의 말”에 나온 작가에 관한 정보 만으로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때로는 직접 말하고 거의 대부분은 변형하고 비튼 이야기임을 “추리”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사를 따라가보려 노력할 필요 없다. 나는 습관적으로 스토리 전개의 요약을 위해 메모를 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금방 때려치웠다. 책의 초반을 읽을 때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수면에 문제가 있어요. 잠이 모자라요. 그러니 낮에 졸려요.) 많이 헤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에는 오히려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만큼 문장/문단이 독자를 흡인하는 파워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작품은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아마 독자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 선봉파 문학을 조금 하다가 적지 않은 작가들이 괜히 평이한 현실문학으로 노선을 바꾼 건 아니다. 찬쉐처럼 평단과 독자들의 박한 평가를 무릅쓰고 자기의 길을 걸은 외고집이 가끔은 멋있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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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7-28 0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궁금해 하실 줄은 아는데요, 그냥 아무 뜻 없이 다음 주 독후감 계획 알려드립니다. ㅋㅋㅋ
화요일, 피에르 르메트르 <우리 슬픔의 거울>
목요일, 익명의 여성 <함락된 도시의 여자: 1945년 봄의 기록>
금요일, 그레이엄 그린 <조용한 미국인>

stella.K 2023-07-28 10:5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아뇨. 궁금해요. 근데 이리 알려주시니 기대되네요.ㅋ
근데 골드님 대단하십니다. 저는 한 주에 한 권 읽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리 읽으시는지 존경스럽습니다.^^

우끼 2023-07-28 12:0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매우궁금합니다 독후감 매번 잘 읽고 있어요!

Falstaff 2023-07-28 15: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백수잖아요. 책이나 읽는 사람하고, 생활인하고 그냥 비교하시면 안 됩니다. ^^

반유행열반인 2023-07-28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중국산 카프카 왜 이렇게 저렴해 보입니다 ㅋㅋㅋㅋㅋㅋ중국산 똘스또이 중국산 밀란 쿤데라 개터지네요 ㅋㅋㅋ내 안의 특정 국가 혐오 반성...중국산 고추가루... 중국산 우엉 중국산 고사리(중국 사람들 우엉 고사리 둘다 안 먹는대요 그럼 우리한테 뭘 먹이는 거냐 대체...ㅋㅋㅋㅋ)

Falstaff 2023-07-28 15:04   좋아요 2 | URL
크.... 분명히 중국인 차별입니다! 중국에도 좋은 거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배추와 오동나무입니다. 써 놓고 보니 둘 다 1차 산업이네요.
문학도 괜찮은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ㅎㅎㅎ 진심으로요.

반유행열반인 2023-07-28 15:31   좋아요 3 | URL
중국인 차별 아니고 중국산 차별로 수정해주옵소서ㅎㅎ(반체제) 문학이랑 ‘옛날’ 영화는 괜찮은 게 꽤 많은 걸로요...지금은 읍읍 아임그루트

얄라알라 2023-08-01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께서 새벽에 깼다 다시 자는 제게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골드문트님 역시 밤에 푹 숙면하시지는 못하시나봐요.

초반에 ‘코피 터졌다‘고 하시길래, 무슨 말씀이신가했네요. 흐앙...줄거리도 난해하네요^^ 메모를 중단하셨을만큼 흡인력이 대단하다시니, 아직 중국 작품은 읽어본적이 거의 없는 저도 ˝찬 셰˝ ˝찬 쉐˝ 기억하고 갑니다. ^^

Falstaff 2023-08-01 16:07   좋아요 1 | URL
알라 님한테 댓글 달기 전에 쓴 독후감이거든요. 그래 별 것이 다 반가워서 얼른 댓글 단 겁니다. ㅋㅋㅋㅋ
메모 스톱 할 만큼 흡인력이 있는 게 아니라.... 메모 해봤자 나중에 하나도 써먹을 것이 없다... 뭐 이런 취지였습니다. ^^;;;
 
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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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아델>을 읽은 건, 올해 초 <타인들의 나라>가 정말 좋았기 때문이었다. <달콤한 노래>를 통해 절대로 달콤하지 않은 비정한 스릴러를 경험해서 조금은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타인들의 나라>,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을 읽었는데, 예상 외의 수작이어서 슬리마니의 데뷔작인 <그녀, 아델>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는 거다.

  아델이라는 여자. 무슬림인 듯한 아버지 카데르와 프랑스인 엄마 시몬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무관심 아래 자란다. 열 살 무렵 어머니와 단 둘이 파리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어머니는 아델을 호텔 방에 혼자 둔 채, 딸아, 방 밖으로 나가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한 발자국도 나가면 안 돼. 누가 방문을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소리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알겠지, 이렇게 교육을 시켜놓고 자기 혼자만 열심히, 아주 열심히 즐기고는, 마지막 날, 내일 다시 돌아가는 날이라면 오늘 딱 하루, 처음 보는 남자와 엄마가 생색을 내듯 아델을 데리고 “파리 관광”을 시켜주었는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하필이면 간 곳이 몽마르뜨 언덕이라, 겨울이었음에도 거의 헐벗은 옷차림을 한 채 남자들의 시선을 찾아 눈을 두리번거리는 매춘부 구경만 실컷 한 경험이 있었다. 성인이 된 아델은 (마치 슬리마니 자신처럼) 영화계 스타가 한 번 되어볼까 싶어서 연기 학원에 다녔으나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어영부영하다가 조르주 퐁피두 병원에서 위장병 전문의 리샤르 로빈슨을 만나 결혼을 해버렸다. 팔자가 좋으려니 리샤르는 아델 수준에서 보기엔 상당한 부잣집 맏아들이었으며, 병원에서도 거의 내과 과장 정도의 직책으로 높은 연봉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는 곳도 파리에서도 부촌으로 알려진 18구의 널찍한 호화 아파트를 비싼 월세로 빌려 살고 있었다. 슬하엔 아들 뤼시앙이 있고, 얘는 지금 한창 미운 다섯 살이다. 넓은 아파트에서 아들 하나만 키우면 재미가 없을 거 같았던 찰나, 남편 리샤르의 친구 아버지가 신문사 출판국장이라 낙하산을 타고 신문사 기자로 입사해 처음엔 불꽃 같은 실력을 내뿜으며 회사 돈으로 세계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었고, 특히 튀니지에 관한 한 신문사에서 거의 독보적인 실력을 가진 기자라고 일컬었었다.

  대단하지?

  세상에 뭐든 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게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읎잖여? 아델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근데, 거 참. 이걸 뭐 어떻게 내놓고 이야기하기도 거시기한 바, 거의 중독 수준인 건 자신도 알고 있어서 나흘 동안 32 킬로미터를 달리고, 술 한 잔도 마시지 않으면서 중독 증세를 이겨내려 집중하고 있었건만, 도무지 아랫배에서 찌리리, 온몸의 신경을 타고 진저리가 쳐지는 증상을 아델 스스로도 참지 못하겠는 거라. 참다, 참다, 결국 견디지 못해, 아델은 남편과 아들이 잠든 새벽에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가서, 지하철을 타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난 애인 또는 친구의 작은 아파트로 여덟 시도 안 된 시간에 쳐들어가, 실 하나 걸치지 않은 아담을 깨웠고, 자기도 하와처럼 훌렁훌렁 외투와 원피스와 속옷과 스타킹을 벗어버린 후에, 했다, 하긴 했는데 아담이 원래 사정을 빨리 하는 편이라 마치 하다 만 것 같았고, 그럼에도 일단 몸 속의 금단증상은 멈출 수는 있었으며, 내가 읽기로 정말 드러워 죽겠는 것이, 하여튼 하자마자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라, 곧바로 속옷부터 스타킹, 원피스, 외투를 입은 다음 출근을 해버렸다는 거다. 으이그… 씻지도 않고.

  이런 여자가 결혼은 왜 했을까? 리샤르와 뤼시앙. 남편과 아들에게 자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이기는 할까? 아버지와 아들만 살아도 행복에 전혀 지장이 없을 거 같을 정도로 자신은 좀처럼 그들과 맞추기 힘든, 거북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생활이 이러니 아델은 무수한 거짓말과 거짓 증거와, 시의 적절한 알리바이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휴대폰도 그렇다. 흰색의 구식 폴더 폰을 하나 더 장만해 남자들에게 오는 연락만 취하고, 일상적인 통신은 스마트 폰으로 따로 통화한다. 그럼에도 아델은 결혼과 출산을, 세상에 귀속되어 타인들과 그 외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즉 가족 구성원 모두가 아닌 아델 자신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뤼시앙을 임신해 배가 부른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아델을 치유해줄 것이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동시에 임신 때문에 자신의 뭔가가 죽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스스로 깨우치기를, 자신은 스스로가 아닌 타인을 돌보기에 적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며, 이것은 아들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로 끔찍한 일이라는 점. 그리하여 아델이 얻은 거의 모든 사회생활/복지 등은 리샤르와 합의를 통해 이룬 가족/가정에서 소유하기 시작했음에도, 가족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다.

  불행하게도 아델이 고치지 못하는 질병은, 아니 어쩌면 질병이 아니라 그저 형질, 우연히 노랑 머리와 투명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형질 뿐일 수 있는데, 노란 머리카락에 초록 색 눈동자를 가지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여간 하느님이 하필이면 심술을 부려 아델에게 떨치지 못하고 갖고 있게 만든 것이 님포매니악. 여자일 경우도 간혹 있었던 것 같지만 주로 남성과의 결합을 참지 못하며, 어느 중독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간혹 끔찍한 피학 변태성까지 보이는 아델의 형질은 그녀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어갈 뿐이다.

  책 속에 나오는 아델의 상대 남자는 순서대로 아담, 신문사 사장 시릴,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이름 모르는 연하 남, 남편 리샤르, 장관minister의 보디가드, 아프리카의 프랑스 대사 참사관, 친구 로렌이 은근하게 포기하지 않은 남자 마티외, 로렌의 사진전에서 만난 낯선 남자, 한 달 전 마드리드 학회에서 만나 콘돔 없이 애널 섹스를 허용한 니콜라, 첫경험이었던 루이, 남편 리샤르의 병원 동료 자비에, 코카인을 나누고 쓰리 섬과 피학 성애를 즐긴 메디와 앙투안, 그리고 뱅상, 올리비에, 한 번 더 자비에, 엄마 집의 8층 남자.

  이 명단에 이름을 두 번 올린 인물이 배 나오고 키 작은 병원 내과 과장 자비에. 부자이며 심성이 고운 자비에는 아내 소피에게 꼬투리를 잡히고, 얼마 버티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부 좔좔 불어버린다. 소피는 또 득달같이 리샤르에게 달려가 당신 마누라 아델이 내 남편 자비에한테 꼬리를 쳐서, 어쩌고 저쩌고… 그림이 그려지시지? 이번 아비규환을 겪으며 정말 부처님 가운데 토막 itself였던 리샤르는 독한 마음을 먹고 선언을 하기를, 파리에서 가장 실력 있는 변호사를 구해서 이혼 소송을 벌이겠어, 당신은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뤼시앙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로 이혼하게 될 거야. 우리는 아주 멀리 떨어져 살게 될 거야.

  근데 그게 쉽게 돼? 그럼 그게 소설이냐고.

  굳이 레일라 슬리마니의 <그녀, 아델>을 읽어볼 필요가 있을까? 자극적인 장면이 종종 출몰하면서도 그것 참 신기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니 말이지. 뭐 그냥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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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7-27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님 리뷰만으로 그 드러움이 충분히 알 것같네요. ㅎㅎ 이건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네요. ㅋ

Falstaff 2023-07-27 19:03   좋아요 1 | URL
굳이 읽으실 필요까지 있을까 싶습니다. ㅎㅎ
 
봄, 파르티잔
서정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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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



 "하이고, 세상에나..... 아직도 이렇게 시를 쓰는 사람이 있었을까나?"


 사실 오늘 글을 쓰는 목적인, 서정춘 시인의 ≪봄, 파르티잔≫을 소개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딱 한 줄의 감탄문을 쓰기만 하면 충분할 겁니다. 도대체 이 작자가 어떤 시를 썼기에 초봄부터 이리 방정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당신이 아무리 콘크리트로 만든 심장을 가졌기로서니 시인이 겨우내 갈아낸 뼛가루를 피에 섞어 울음 울 듯 적어간 단 석 줄의 짧은 시를 읽는다면 초봄의 호들갑을 그래도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어느새 새순이 돋고 꽃도 필 겁니다. 철새들도 날아오겠지요. 그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더군요.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봄, 파르티잔> 전문, 11쪽


 글쎄 봄이 꽃을 피운 것이 아니라, 꽃을 그렸다는 겁니다. 산과 들을 캔버스, 또는 화선지 삼아서 봄이란 놈이 꽃을 그렸더니, 새는 그 꽃 그림을 보고 가슴이 또 얼마나 아려서 울었겠습니까. 그 가슴앓이를 참지 못한 새는 기어이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는데, 그래서 파르티잔, 소위 빨치산이라는군요. 게다가 운율이 또 기막히지 않으세요? 소싯적에 배운 3,4,3,4 / 3,4,3,4 / 3,5,4,3 뭐 이런 시조의 마지막 장을 읽는 것 같은 절묘한 운율이 입 속에서 뱅뱅 돌지요. 그런데 또 그 운율이 아련한 봄소식, 겨우내 기다려마지 않았던 봄소식을 너무나도 기막힌 애뜻함으로 만드는군요. 제아무리 장편의 소설이 있다고 해도 어찌 이 석 줄의 짧은 시보다 읽는 사람의 가슴을 아리아리하게 만들 공명(共鳴)이겠습니까.

 원 참, 석 줄의 시를 감상하는데 원고지 두 장이 꽉 차게 드는군요.


 서정춘 시인은 조금 별스런 사람입니다. 이제 환갑을 넘긴 예순 둘의 노인이지요. 전라도 순천에서 나서,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이제껏 책 만드는 동네에서 밥을 먹고살았습니다. 스물 여덟 살에 신춘문예에 당선을 해 소위 시인이라는 딱지를 달았지만 여간해서 시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시인의 인생으로는 종을 쳤는줄 알았었지요. 어찌 그러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해온 사람들은 전적으로 무죄입니다. 자신의 시집을 처음으로 찍었을 때가 쉰 여섯 살이었으니까요. 시인 딱지를 단지 스무 여덟 해만에 낸 첫 시집 ≪죽편:竹篇≫을 펴내면서 기껏 한다는 말이 이랬습니다.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

흑!

흑!  ≪죽편≫ 5쪽, 시인의 말, 동학사, 1996년


 ≪죽편≫을 펴낸 1996년. 시인들은 아마 그 해를 악몽같이 기억할지 모릅니다. 그때까지 잘 팔리던 시인들은 공장에서 가전제품을 만들어내듯이 시를 찍어내는데 너무 익숙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지요. 서 시인이 지은 참혹한 농사에 대해 수많은 시인들이 경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편편이 어디 하나 버릴 것 없는, 뼈를 갈아 쓴 시들이었으니, 그간 잘 먹고 잘 놀았던 자신들이 무척 초라했을건 물론이고, 아마 무척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설사하듯이 시를 쓴다면 자신도 그럴 수 있었다고 일갈을 했으니 말이지요.

 그러다가 또 육 년의 세월이 지나, 예전의 충격이 조금 가실 만하자 서정춘 시인은 시퍼런 칼날을 서걱서걱 갈아 자신의 뼈를 깍은 두 번째 시집을 발표하였으니 오늘 소개하는 ≪봄, 파르티잔≫인 것입니다.


 도대체 그의 시는 조금의 더함도, 덜함도 용납하지 않는 반듯한 서정의 길에 서있군요. 그래서 이 책 ≪봄, 파르티잔≫에 실린 작품들은 아주 짧습니다. 말을 극도로 아낀다는 뜻일 겁니다. 시에 있어서 만큼 서정춘 시인 같은 구두쇠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집을 읽다가 뭐 이딴 시인이 다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시적 구두쇠 기질에 대한 찬탄을 금치 못해 뱉었던 말이었습니다. 그러니 사실 정말로, 정말로 오랜만에 읽는 시다운 시들을 우러러 찬미한 것이지요.


 그의 시를 하나 더 읽어보겠습니다.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詩를 남겼으랴

 기차는, 고향 역을 떠났습니다

 하모니카 소리로 떠났습니다 <전설> 전문 33쪽


 이 석 줄의 짧은 시 또한 피울음이지요. 길고 긴 두 줄의 강철 시. 그러니까 자신이 떠나온 고향. 고향을 떠나올 때 몸을 실었던 철길이군요. 누구에겐들 그렇지 않겠습니까만 자신의 시에 대한 모태가 시인에게도 역시 고향입니다. 고향. 자신의 태를 묻은 생물학적인 고향일 뿐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 먹줄로 새겨진, 너무 그립지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겠습니다. 그곳을 떠나 고향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시인은 두 줄의 강철로 만든 시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기차 얘기가 나오니 전에 그가 썼던 또 하나의 절창을 이야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의 고향 남도엔 대나무가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에겐 대나무 또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시적 도구인 것이 너무 당연하겠지요. 이번엔 대나무를 시인이 노래합니다. 이렇게......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竹篇·1 ― 여행> 전문, 죽편≫ 22쪽


 아, 어쩔거나..... 이젠 대나무가 기차가 되어버렸습니다. 대꽃이 피는 고향마을로 가는, 대나무 마디마디 하나가 전부 기차 한 칸씩이 되어 시인은 대나무라는 기억의 열차를 타고 어느 외로운 밤, 죽어야 갈 수 있는 고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가려면 백년이 걸리는, 그리하여 이젠 가슴속에만 자리한 고향으로 시인은 대꽃이 피는 늦은 봄 밤 소주라도 한 잔 걸치며 눈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 시단에 서정춘 시인이 있다는 것만 가지고도 아직 시인들을 위해 기꺼이 인세를 지불할 수 있을 겁니다. 서정춘 시인은 우리 시대의 보석이지요.

 봄 밤. 달뜬 몸뚱이가 가끔 거추장스러울 때, 어느 시인이 자기 뼈를 깍아 그 위에 서슬 퍼런 정을 쪼아 쓴 시를 읽으며 단어 하나 하나를 가슴 깊이 외워보는 것, 이 또한 너무 멋진 봄 나기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봄 나기를 위해 정말 즐겁게 이 책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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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07-26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서정춘 할아버님은 이제 84세가 되셨군요... 골드문트님이 시집 읽고 감탄할 때 소인은 뭘 읽었드랬나... 채팅하고 놀았네요. ㅋㅋㅋㅋ 무라카미류69 호밀밭의 파수꾼 참을수없는존재의가벼움(까져갖고) 그런 거 조금 읽고 시는 안 보고 진짜 여름 내내 펑펑 놀았습니다...

Falstaff 2023-07-26 21:50   좋아요 1 | URL
무라카미 류. ㅋㅋㅋㅋ 저도 쬐매 읽었습지요. 근데 그 당시에 놀지 않으면 언제 놀겠습니까. 무죕니다, 무죄!

반유행열반인 2023-07-26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
요즘 어린이들은 아씨개멀어 다섯자로 압축할 걸 적당히 예쁘게 눌러놓으셨고 골드문트님은 구절구절마다 잔에 소주랑 눈물을 눌러담으시고...(망상 죄송합니다)

Falstaff 2023-07-26 21:5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뭔 말을 못해요. ㅋㅋㅋㅋㅋㅋ

dalgial 2023-07-27 0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지간한 시집 뒷 해설보다 당연히 좋습니다. 감탄과 감동에 공감합니다.
골드문트 님 글이 너무 좋아요.

Falstaff 2023-07-27 05:55   좋아요 1 | URL
그저 아마추어가 쓴 잡글인 것을요.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oolcat329 2023-07-27 0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골드문트님이 ‘우리 시대의 보석‘이라고 칭송하시는 시인이니 이름을 기억해야겠어요.
저는 시보다 골드문트님의 글이 더 재미있네요. ☺️

Falstaff 2023-07-27 06:54   좋아요 1 | URL
읽어보셔요! 꼭 해야할 말, 써야할 문자만 딱 있는 그런 시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전 한눈에 휘까닥! ㅋㅋㅋㅋㅋ

jmlee130 2024-10-05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정춘 시인님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Falstaff 2024-10-05 16:40   좋아요 0 | URL
앗, 반갑습니다!

jmlee130 2024-10-05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의 글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대산세계문학총서 174
아마두 쿠루마 지음, 이규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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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아마두 쿠루마. 1927에 코트디부아르에서 태어나 2003년 프랑스 리옹에서 삶을 마친 작가. 그가 쓴 다섯 편의 소설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란다. 우리나라엔 네 번째 소설, 아프리카의 소년병 이야기인 <열두 살 소령>과 동화책 <아프리카의 사냥꾼 야쿠바> 이렇게 번역 출간했다. 이 책을 읽고 곧바로 <열두 살 소령>을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올렸다. 처음 보는 작가의 첫 작품인 <들짐승들의 투표를 기다리며, 이하 “들짐승”으로 표기>를 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는 의미랄까?

  어느 곳이 됐건 간에 1927년에 아프리카에서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식민지, 독립전쟁, 독재, 냉전, 혁명 또는 내전 등등, 살면서 단 하나라도 겪지 않으면 좋을 다양한 불행을 모두 경험해보았다는 말이 된다.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프랑스에 저항한 할아버지를 둔 괜찮은 집안 출신인 쿠루마는 1950년부터 54년까지 프랑스 식민지 부대원으로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 독립군들과의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경험은 작품의 주인공인 독재자 코야가의 이력 가운데 하나로 작품에 등장한다. 이후 프랑스 리옹으로 건너가 회계사 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2년 동안 일을 하다, 코트디부아르가 독립을 한 1961년에 귀국했다. 그러나 독립 정부는 쿠루마를 곧바로 체포하고, 악명 높은 아프리카의 감옥을 경험하게 한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다가 독립을 했으나 여전히 신식민주의와 절정을 맞은 냉전시대의 기류 속에서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던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얼마 안 가 석방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후 신생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야만적인 일들에 관한 글을 써서 세상에 알리겠다고 결심을 한다. 이렇게 프랑스의 한 공인회계사는 문학적 투사로 변신을 하고, 한 편의 희곡, 다섯 편의 소설, 다섯 편의 동화를 남긴다.


​  <들짐승>은 구성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의 판소리하고 비슷하다. 화자는 ‘빙고’. 사냥꾼의 위업을 노래로 칭송하는 소리꾼이며 음영시인으로 ‘그리오’라 불린다. 사냥꾼의 전통적 정화 의식인 돈소마나를 주관하며, 작품은 모두 여섯 마당의 돈소마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오에게는 제자이자 조수, 우리의 판소리와 굳이 비교를 하면 고수와 비슷한 티에쿠라가 하나 있어서 돈소마나 중에 코르두아, 즉 광대 비슷하게 춤도 추고, 고수처럼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작품의 주인공은 토템이 매falcon인 ‘코야가’로 군인이자 대통령, 가장 위대한 장군, 가장 위대한 “사냥꾼”이다. 그리하여 코야가와 그의 오른팔인 교육부 장관도 하고 내무부 장관도 하는 마클레디오를 앞에 놓고 돈소마나를 열 수 있던 것. 코야가는 람세스 2세, 순디아타와 함께 인류의 가장 유명한 세 명의 아프리카 사냥꾼으로 골프 공화국의 독재자. 이이의 실제 모델은 차마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을 쓸 수 없었던지 토고의 지도자 ‘냐싱베 에야데마’란다.  내게는 코트디부아르와 토고, 하면 드로그바와 아델바요르, 각 한 명씩 잉글랜드 프로축구 선수 이름을 댈 정도로 아는 것이 없지만, 이들 나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는 참으로 다양한 독재자가 오랜 세월을 해먹었다. <들짐승>에서도 다양한 독재자의 스케치가 등장한다. 산봉우리 공화국 기니의 대통령 세쿠 투레, 흑단 공화국 코트디부아르의 대통령 필릭스 우푸에부아니, 두 개의 강 나라 중앙 아프리카의 하이에나 토템 황제 장베델 보카사, 산악 및 사막 국가 모로코의 자칼 토템 왕 하산 2세 등등 쿠루마는 특히 중부 아프리카를 골라 내놓고 비아냥거린다.

  코야가는 토고의 산악지역에 사는 나체족 출신이다. 처음엔 나체족 역사상 가장 놀라운 에벨마, 즉 격투기 챔피언이었던 ‘차오’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 차오는 의사소통 실수로 그만 프랑스 군대에 징집을 당해 1917년 1차 세계대전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베르됭 전투에 참전, 급한 성격을 참지 못해 중위의 명령에 불복하고 독일군 진지로 혼자 뛰어들어 다섯 명을 죽여버리고 자신은 부상을 입는다. 이에 깜짝 놀란 프랑스 군은 차오에게 무공훈장, 십자무공훈장, 레지옹 도뇌르 십자훈장, 식민지 훈장, 이렇게 사관왕에 올려놓는다. 아프리카 촌놈이 번쩍이는 훈장을 자랑하고 싶지만, 고향에 와봤더니 전부 발가벗고 다녀 도무지 자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차오는 나체족 역사상 처음으로 옷을 입었고, 옷 위에 훈장 네 개를 붙인 채 뻐기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이러니 차오가 주인공이라고 오해할 수밖에. 차오가 옷을 입음으로 해서 프랑스 식민정부는 나체족을 포함한 모든 원주민에게 1년에 세 달 동안 무보수로 백인 이주민을 위해 의무적으로 노동을 하게 했고, 인두세를 부과하는 등 노골적인 경제적 착취를 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잔뜩 기대했던 차오는 독자의 기대를 무시한 채 금방 죽어버리고 대신 그의 아들 코야가가 등장해 아버지보다 더욱 찰진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코야가는 아버지를 닮아 힘도 좋고 날쌔고, 훗날 천하에 둘도 없는 사냥꾼이 되었듯이 다섯 살 때부터 동네에서 쥐 잡기의 명수로 불렸다. 게다가 똑똑하기도 해서 산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일년에 한 번 있는 축제 시기에 고산지역 소년들을 몰고 단체로 도망가 축제 때마다 벌어지는 격투기 시합에 참가했고, 당연히 1등을 먹었으며, 대가로 학교에서 퇴학조치를 받았지만 식민 정부의 백인이 퇴학 명령을 철회시키고 만다. 그러나 맹수는 길들여지지 않는 법. 이후 매년 산악 지역 축제인 하마르탄 때마다 탈출을 하고 그 벌로 수사 선생한테 서른 대씩 얻어 터지지만 원주민한테 그깟 얇은 회초리로 맞는 거야말로 껌이었다. 식민지 행정관은 코야가에게 도의적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군 다섯 명을 죽이고, 나체족에게 옷 입기를 도입했으나 자신이 바로 그 영웅 차오를 죽인 셈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무난히 졸업을 했고, 머리가 좋아 행정관은 계속 공부를 시키고 싶어했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한 코야가는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불량한 선동꾼으로 자리를 잡았다. 학교는 그의 불량기에 진저리를 치다가 생루이의 군부대 자녀를 위한 학교로 전학을 시켰고 거기서 기어이 퇴학을 맞는다. 그리하여 들어간 곳이 세네갈 원주민 보병부대.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인도차이나로 파병됐다.

  프랑스에서 온 백인들은 베트남의 덥고 습기 많은 기후에 적응을 하지 못해 고생을 한 반면 원래 더운 지방에서 낳고 자란 아프리카 군인들은 미끈미끈한 진흙 구덩이에서도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고 주장한다. 백인들의 눈으로 볼 때, 아프리카 출신 보병. 가운데서도 산악지방 원주민, 이들이야말로 보병대의 꽃이었다. 산악 지역 출신 남자들도 코야가가 제대한 이후 프랑스 군대에 입대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으며, 여성들이 제대한 남자를 특별히 그윽한 눈길로 쳐다본다는 것을 알아챈 이후에 더했는데, 하여튼 줄줄이 징집이 아니라 지원병으로 들어가, 줄줄이 인도차이나로 파병을 갔다. 그들의 속셈은 제대 후에 고향에 돌아와 고향의 풍습에 맞게 제대로 약탈혼을 하기 위해서.


​  고국으로 복귀한 코야가는 아버지 차오처럼 나대는 대신, 때를 잘 만나 독립을 한 조국의 수도에서 한 번 투옥되었다가 탈옥에 성공을 한 후, 프라카사 산토스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모의를 한다. 모반자들은 대통령 관저를 포위하고, 코야가가 이끄는 스무 마리의 아프리카 들개, 리카온과 함께 공격을 시작한다. 리카온 하나가 총으로 대통령을 쏘았으나 가까운 거리에서도 맞추지 못한다. 쇠붙이는 위대한 자의 살을 뚫지 못하는 법이라서. 그리하여 코야가는 독을 묻힌 수탉의 며느리발톱이 달린 화살을 쏘아 프리카사 산토스 대통령을 푹 쓰러뜨린다. 한 병사가 연속 사격으로 목숨을 완전히 끊은 다음 몸을 구부린다. 그는 이미 죽은 대통령의 바지 단추를 끄르고 익숙한 솜씨로 거세를 하고, 피로 뒤덮인 성기를 시신의 입 안으로 찔러 넣는다. 요사의 소설 한 장면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이걸 고문이나 지독한 복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일종의 의식. 죽은 자는 자신의 살해자를 공격함으로써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힘이 있는데, 살해자는 희생자를 거세함으로써 시신에 내재하는 힘을 제압한다는 거였다. 일종의 액막이. 이후 독자는 무수하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죽자마자,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죽기 전에 이와 같은 의식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는 독재자가 되기 전의 일. 이후엔 독재자가 된 후 독재를 지키기 위한 장면이 길게 나온다. 이에 덧붙여 이웃 나라 독재자들의 다양한 모습도 소개를 하고, 독재를 지키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도 소개한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우리도 경험해봐서 아니까. 여차하면 등장했던 문구들. 북괴의 남침 야욕. 운운.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두려워한 미국과 서유럽이 공산주의보다는 차라리 독재자를 지원했던 것이 장기 집권과 부패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럴 듯하다고 본다. 서유럽과 미국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웃기고 있다.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서유럽과 미국의 부르주아들이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를 차단하기 위하여 히틀러의 군비확장을 눈감아준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유로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독재자들을 비호한 것일 뿐. 공산주의가 폭망한 이유? 하여간에 권력이란. 공산주의 국가들이 하나 같이 독재를 해서 결국엔 부패한 것이 첫째고, 자본주의에 비하여 능률적이지 않아 경쟁에 실패했던 것이 다음이다. 마르크스가 너무 순진했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 선하게 봤다.

  우리나라 독재자가 자주 썼던 구절, 한국적 민주주의. 민주주의면 민주주의지 한국적인 건 뭐야? 독재 아냐? 파시즘 아냐? 파시즘/독재는 누구/어떤 집단에 의해 저질러지던 무조건 나쁜 거다. 동무들아, 현혹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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