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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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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을 통해서만 세 번째 읽는 작가인데, 연작 장편 또는 단편집 <우리들의> 안에 저번에 읽었던 <여행 가방>과 <수용소-교도관의 수기>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도블라토프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과 자기 주변의 것들을 약간 변주해서 독특한 짧은 글을 만드는데 탁월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아직 도블라토프가 쓴 장편은 읽어보지 못했다. 역자 해설 속에, 도블라토프가 ‘소비에트 체호프’라고 불릴 정도의 단편 작가이며,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는 푸시킨의 언어 전통을 이어받았단다. 러시아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 체호프와 푸시킨의 적자라는 평을 받았으면 나름대로 최고의 상찬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소비에트 체호프는 모르겠고,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쉬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작가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평선을 긋고 한쪽 끄트머리에 “평이하다”를 써 놓으면 다른 쪽 끄트머리에 어울릴 수 있는 단어가 또한 “세련되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이 가능한 겨? 가능하다. 증거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즐기려면 <우리들의>를 읽어라? 아니, 내가 읽은 도블라토프 세 권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제일 앞서 <여행 가방>을 읽었고, 인상이 깊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도 사서 읽었으며, 이제 또 <우리들의>까지 달달 긁은 거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 가운데 이제 <외국 여자> 한 권 남았는데 그것도 얼른 읽어야겠다.
<우리들의>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가족 이야기다.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나오고 두 번째로 외할아버지, 세번째는 외삼촌 등등. 물론 진짜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약간씩 변형을 해서 픽션으로 만들었는데,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작가가 직접 경험했고, 적어도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 충분히 체화된 것이라, 특유의 “평이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툭, 툭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모두 열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한 얇은 책자로 하루, 특히 요즘 같이 더위가 극성을 떠는 시절에 읽기로는 아주 맞춤이다.
열세 편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도블라토프의 내력을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아버지 도나트 메치크는 유대계 연극 연출가로 아르메니아 태생의 그루지야 연극배우, 역시 실명 등장하는, 노라 도블라토바 사이에서 태어난다. 부부는 몇 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해서, 엄마가 세 살 난 세르게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바람에 아버지 성이 아닌 엄마 성을 따라 ‘도블라토프’라는 성을 갖는다. 레닌대학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는 김에 입대를 했는데 수용소 간수 생활을 했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다. 제대한 후엔 잡지사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이의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글을 소비에트 체제가 허용할 일이 없어서, 몇 작품을 서유럽으로 빼돌리고, 거기서 출간이 된다. 이후 곧바로 실직을 하고, 그래도 그나마 좋은 세월을 만나, 스탈린 시절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재판도 안 받고 죽었을 테지만, 며칠 감방 생활을 시키더니 이민을 가는 것을 전제로 풀려난다. 그리하여 먼저 엄마가 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두번째 아내와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때의 경험, 규정상 짐은 여행가방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해, 촌스러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이 또 <여행 가방>이다.
위에 쓴 도블라도프의 간략한 반평생까지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열세 명의 등장인물을 열세 편의 이야기로 모자이크 또는 스테인드글래스 유리창처럼 조합한 책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이사크 메치크.
이사크 메치크는 러시아에서는 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저 수호보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모이세이 증조부의 아들로, 에잇, 나는 농사 안 지어, 선언을 하고 도시로 나온 가문의 첫 남자였는데, 그곳이 어딘가 하면 하얼빈이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도나트까지 생산을 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터를 옮긴다. 7피트, 즉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는 천하장사 이사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러일전쟁에 참전을 했고, 그곳에서 거대한 몸집이 차르에 눈에 띄어 무려 근위대로 전속이 되었는데, 하필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다시 포병대로 배치된다. 몇 년 후 제대해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3 구경 소총이 쥐어 있었고 가슴엔 게오르기 십자훈장이 달려 있었다. 작가가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도 혁명세력이 행진을 시작하자, 혁명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유대인들 가슴에 새겨진 유대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에 휩싸여, 반유대 집단이 행동을 개시한 것으로 오인해 지붕 위로 올라가 행진대열을 향해 3 구경 소총을 갈겨댄 인물이다.
엄청난 대식가로 바케트 빵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잘라서 먹어, 잔칫집에 갈 때마다 라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쪽팔려 했다고 한다. 먹방을 연상시키는 이사크 할아버지의 식도락에 관해서는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작가가 쓴 내용과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여튼 젊은 시절에 음식점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필이면 옆집에 술 판매소가 생겨, 두 양반이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음식점의 모든 음식, 술집의 모든 술을 둘이 다 퍼먹고 퍼 마셔서 없앴달 정도다.
할아버지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와 둘째, 미하일과 도나트는 예술에 끌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레닌그라드로 갔고, 셋째 아들 레오폴트 삼촌은, 역사적 사실로는 열세 살에 작품 속에서는, 열여덟 살에 일단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벨기에로 옮겨갔다. 두 아들을 좇아 레닌그라드로 가서 여전히 도시 최고의 천하장사요, 술꾼이요, 먹보요, 정의파 유대인으로 활약하던 할아버지한테 하루는 ‘모냐’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셋째 레오폴트가 보낸 남자다. 아들의 선물로 모자걸이 기린 인형과 턱시도 한 벌을 들고 찾아와 두 주를 보내고 갔다. 그러자 스탈린 당국은 이사크 할아버지를 벨기에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해 면접권 없는 10년 유형에 처해놓고 총살시켜버렸다. 20년이 흘러 조금 좋은 세월을 만나 둘째 아들이자 도블라토프의 아버지인 도나트가 다방면으로 애를 써서 할아버지는 무죄 복권이 된다.
도블라토프는 허탈해서 묻는다. “그때는 무슨 죄가 있었던가? 뭘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삶을 중단시켰는가?” 하여간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작가는 반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시절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독자와 당시 소비에트 인민들이 판단해야 할 터.
재미있는 책이다. 적은 분량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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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을 통해서만 세 번째 읽는 작가인데, 연작 장편 또는 단편집 <우리들의> 안에 저번에 읽었던 <여행 가방>과 <수용소-교도관의 수기>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도블라토프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과 자기 주변의 것들을 약간 변주해서 독특한 짧은 글을 만드는데 탁월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아직 도블라토프가 쓴 장편은 읽어보지 못했다. 역자 해설 속에, 도블라토프가 ‘소비에트 체호프’라고 불릴 정도의 단편 작가이며,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는 푸시킨의 언어 전통을 이어받았단다. 러시아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 체호프와 푸시킨의 적자라는 평을 받았으면 나름대로 최고의 상찬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소비에트 체호프는 모르겠고,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쉬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작가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평선을 긋고 한쪽 끄트머리에 “평이하다”를 써 놓으면 다른 쪽 끄트머리에 어울릴 수 있는 단어가 또한 “세련되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이 가능한 겨? 가능하다. 증거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즐기려면 <우리들의>를 읽어라? 아니, 내가 읽은 도블라토프 세 권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제일 앞서 <여행 가방>을 읽었고, 인상이 깊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도 사서 읽었으며, 이제 또 <우리들의>까지 달달 긁은 거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 가운데 이제 <외국 여자> 한 권 남았는데 그것도 얼른 읽어야겠다.
<우리들의>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가족 이야기다.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나오고 두 번째로 외할아버지, 세번째는 외삼촌 등등. 물론 진짜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약간씩 변형을 해서 픽션으로 만들었는데,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작가가 직접 경험했고, 적어도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 충분히 체화된 것이라, 특유의 “평이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툭, 툭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모두 열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한 얇은 책자로 하루, 특히 요즘 같이 더위가 극성을 떠는 시절에 읽기로는 아주 맞춤이다.
열세 편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도블라토프의 내력을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아버지 도나트 메치크는 유대계 연극 연출가로 아르메니아 태생의 그루지야 연극배우, 역시 실명 등장하는, 노라 도블라토바 사이에서 태어난다. 부부는 몇 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해서, 엄마가 세 살 난 세르게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바람에 아버지 성이 아닌 엄마 성을 따라 ‘도블라토프’라는 성을 갖는다. 레닌대학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는 김에 입대를 했는데 수용소 간수 생활을 했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다. 제대한 후엔 잡지사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이의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글을 소비에트 체제가 허용할 일이 없어서, 몇 작품을 서유럽으로 빼돌리고, 거기서 출간이 된다. 이후 곧바로 실직을 하고, 그래도 그나마 좋은 세월을 만나, 스탈린 시절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재판도 안 받고 죽었을 테지만, 며칠 감방 생활을 시키더니 이민을 가는 것을 전제로 풀려난다. 그리하여 먼저 엄마가 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두번째 아내와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때의 경험, 규정상 짐은 여행가방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해, 촌스러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이 또 <여행 가방>이다.
위에 쓴 도블라도프의 간략한 반평생까지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열세 명의 등장인물을 열세 편의 이야기로 모자이크 또는 스테인드글래스 유리창처럼 조합한 책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이사크 메치크.
이사크 메치크는 러시아에서는 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저 수호보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모이세이 증조부의 아들로, 에잇, 나는 농사 안 지어, 선언을 하고 도시로 나온 가문의 첫 남자였는데, 그곳이 어딘가 하면 하얼빈이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도나트까지 생산을 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터를 옮긴다. 7피트, 즉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는 천하장사 이사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러일전쟁에 참전을 했고, 그곳에서 거대한 몸집이 차르에 눈에 띄어 무려 근위대로 전속이 되었는데, 하필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다시 포병대로 배치된다. 몇 년 후 제대해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3 구경 소총이 쥐어 있었고 가슴엔 게오르기 십자훈장이 달려 있었다. 작가가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도 혁명세력이 행진을 시작하자, 혁명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유대인들 가슴에 새겨진 유대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에 휩싸여, 반유대 집단이 행동을 개시한 것으로 오인해 지붕 위로 올라가 행진대열을 향해 3 구경 소총을 갈겨댄 인물이다.
엄청난 대식가로 바케트 빵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잘라서 먹어, 잔칫집에 갈 때마다 라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쪽팔려 했다고 한다. 먹방을 연상시키는 이사크 할아버지의 식도락에 관해서는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작가가 쓴 내용과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여튼 젊은 시절에 음식점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필이면 옆집에 술 판매소가 생겨, 두 양반이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음식점의 모든 음식, 술집의 모든 술을 둘이 다 퍼먹고 퍼 마셔서 없앴달 정도다.
할아버지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와 둘째, 미하일과 도나트는 예술에 끌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레닌그라드로 갔고, 셋째 아들 레오폴트 삼촌은, 역사적 사실로는 열세 살에 작품 속에서는, 열여덟 살에 일단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벨기에로 옮겨갔다. 두 아들을 좇아 레닌그라드로 가서 여전히 도시 최고의 천하장사요, 술꾼이요, 먹보요, 정의파 유대인으로 활약하던 할아버지한테 하루는 ‘모냐’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셋째 레오폴트가 보낸 남자다. 아들의 선물로 모자걸이 기린 인형과 턱시도 한 벌을 들고 찾아와 두 주를 보내고 갔다. 그러자 스탈린 당국은 이사크 할아버지를 벨기에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해 면접권 없는 10년 유형에 처해놓고 총살시켜버렸다. 20년이 흘러 조금 좋은 세월을 만나 둘째 아들이자 도블라토프의 아버지인 도나트가 다방면으로 애를 써서 할아버지는 무죄 복권이 된다.
도블라토프는 허탈해서 묻는다. “그때는 무슨 죄가 있었던가? 뭘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삶을 중단시켰는가?” 하여간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작가는 반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시절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독자와 당시 소비에트 인민들이 판단해야 할 터.
재미있는 책이다. 적은 분량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 좋다.또는 단편집 <우리들의> 안에 저번에 읽었던 <여행 가방>과 <수용소-교도관의 수기>의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흥미로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도블라토프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것과 자기 주변의 것들을 약간 변주해서 독특한 짧은 글을 만드는데 탁월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아직 도블라토프가 쓴 장편은 읽어보지 못했다. 역자 해설 속에, 도블라토프가 ‘소비에트 체호프’라고 불릴 정도의 단편 작가이며,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체는 푸시킨의 언어 전통을 이어받았단다. 러시아 언어를 사용한 작가로 체호프와 푸시킨의 적자라는 평을 받았으면 나름대로 최고의 상찬을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소비에트 체호프는 모르겠고,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이게 말로 하기는 쉬워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작가에나 적용할 수 있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수평선을 긋고 한쪽 끄트머리에 “평이하다”를 써 놓으면 다른 쪽 끄트머리에 어울릴 수 있는 단어가 또한 “세련되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이 가능한 겨? 가능하다. 증거가 바로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다.
“평이하면서도 세련된” 문장을 즐기려면 <우리들의>를 읽어라? 아니, 내가 읽은 도블라토프 세 권이 다 그렇다. 그러니까 제일 앞서 <여행 가방>을 읽었고, 인상이 깊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도 사서 읽었으며, 이제 또 <우리들의>까지 달달 긁은 거다.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책 가운데 이제 <외국 여자> 한 권 남았는데 그것도 얼른 읽어야겠다.
<우리들의>는 세르게이 도블라토프의 가족 이야기다. 제일 먼저 할아버지가 나오고 두 번째로 외할아버지, 세번째는 외삼촌 등등. 물론 진짜 이야기를 밑바탕으로 세부적으로 약간씩 변형을 해서 픽션으로 만들었는데, 픽션이 됐든 논픽션이 됐든, 작가가 직접 경험했고, 적어도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 충분히 체화된 것이라, 특유의 “평이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툭, 툭 이야기를 던지는 방식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모두 열세 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한 얇은 책자로 하루, 특히 요즘 같이 더위가 극성을 떠는 시절에 읽기로는 아주 맞춤이다.
열세 편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고, 할아버지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도블라토프의 내력을 조금 알아두는 것이 좋다.
이 책에서도 실명으로 등장하는 아버지 도나트 메치크는 유대계 연극 연출가로 아르메니아 태생의 그루지야 연극배우, 역시 실명 등장하는, 노라 도블라토바 사이에서 태어난다. 부부는 몇 년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해서, 엄마가 세 살 난 세르게이와 평생을 함께 하는 바람에 아버지 성이 아닌 엄마 성을 따라 ‘도블라토프’라는 성을 갖는다. 레닌대학에 다니다가 퇴학을 당하는 김에 입대를 했는데 수용소 간수 생활을 했고, 당시의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 <수용소-교도관의 수기>다. 제대한 후엔 잡지사 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한다. 이이의 책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이런 글을 소비에트 체제가 허용할 일이 없어서, 몇 작품을 서유럽으로 빼돌리고, 거기서 출간이 된다. 이후 곧바로 실직을 하고, 그래도 그나마 좋은 세월을 만나, 스탈린 시절이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재판도 안 받고 죽었을 테지만, 며칠 감방 생활을 시키더니 이민을 가는 것을 전제로 풀려난다. 그리하여 먼저 엄마가 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두번째 아내와 딸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때의 경험, 규정상 짐은 여행가방 세 개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해, 촌스러운 여행 가방을 챙기는 것이 또 <여행 가방>이다.
위에 쓴 도블라도프의 간략한 반평생까지 작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열세 명의 등장인물을 열세 편의 이야기로 모자이크 또는 스테인드글래스 유리창처럼 조합한 책이다. 그러면 할아버지 이사크 메치크.
이사크 메치크는 러시아에서는 법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유대인으로서는 아주 예외적으로 저 수호보에서 농사꾼으로 살던 모이세이 증조부의 아들로, 에잇, 나는 농사 안 지어, 선언을 하고 도시로 나온 가문의 첫 남자였는데, 그곳이 어딘가 하면 하얼빈이었다. 여기서 둘째 아들 도나트까지 생산을 하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터를 옮긴다. 7피트, 즉 2미터가 넘는 장신에 거대한 체구를 갖고 있는 천하장사 이사크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다가 러일전쟁에 참전을 했고, 그곳에서 거대한 몸집이 차르에 눈에 띄어 무려 근위대로 전속이 되었는데, 하필 유대인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다시 포병대로 배치된다. 몇 년 후 제대해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엔 3 구경 소총이 쥐어 있었고 가슴엔 게오르기 십자훈장이 달려 있었다. 작가가 말하기를 천성적으로 무질서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블라디보스톡 시내에서도 혁명세력이 행진을 시작하자, 혁명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유대인들 가슴에 새겨진 유대인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에 휩싸여, 반유대 집단이 행동을 개시한 것으로 오인해 지붕 위로 올라가 행진대열을 향해 3 구경 소총을 갈겨댄 인물이다.
엄청난 대식가로 바케트 빵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잘라서 먹어, 잔칫집에 갈 때마다 라야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쪽팔려 했다고 한다. 먹방을 연상시키는 이사크 할아버지의 식도락에 관해서는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작가가 쓴 내용과 재미하고는 비교할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자. 하여튼 젊은 시절에 음식점을 하기도 했었는데 하필이면 옆집에 술 판매소가 생겨, 두 양반이 친구로 지내기로 하고, 음식점의 모든 음식, 술집의 모든 술을 둘이 다 퍼먹고 퍼 마셔서 없앴달 정도다.
할아버지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와 둘째, 미하일과 도나트는 예술에 끌려 블라디보스톡을 떠나 레닌그라드로 갔고, 셋째 아들 레오폴트 삼촌은, 역사적 사실로는 열세 살에 작품 속에서는, 열여덟 살에 일단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하여간 벨기에로 옮겨갔다. 두 아들을 좇아 레닌그라드로 가서 여전히 도시 최고의 천하장사요, 술꾼이요, 먹보요, 정의파 유대인으로 활약하던 할아버지한테 하루는 ‘모냐’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셋째 레오폴트가 보낸 남자다. 아들의 선물로 모자걸이 기린 인형과 턱시도 한 벌을 들고 찾아와 두 주를 보내고 갔다. 그러자 스탈린 당국은 이사크 할아버지를 벨기에의 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해 면접권 없는 10년 유형에 처해놓고 총살시켜버렸다. 20년이 흘러 조금 좋은 세월을 만나 둘째 아들이자 도블라토프의 아버지인 도나트가 다방면으로 애를 써서 할아버지는 무죄 복권이 된다.
도블라토프는 허탈해서 묻는다. “그때는 무슨 죄가 있었던가? 뭘 위해서 말도 안 되는 우스꽝스러운 삶을 중단시켰는가?” 하여간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작가는 반어적으로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다고 말한다. 우스꽝스러운 삶이었는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시절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는 독자와 당시 소비에트 인민들이 판단해야 할 터.
재미있는 책이다. 적은 분량으로 하루를 즐겁게 지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