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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바스 - 이 땅의 손님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제프 로트 지음, 남기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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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경장이 일어난 189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리치아에서 태어난 요제프 로트가 1939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질곡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로트의 작품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할 때부터 아예 또 한 편의 유대 문학을 읽을 것이라 여겼을 수밖에.
그런데 아니었다. 타라바스. 니콜라우스 타라바스는 1914년 8월 현재 미국의 뉴욕에 거주하는 젊은 러시아 사람이었다. 러시아의 서쪽 근처 국가들 가운데 한 곳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기도 하다. 공부도 곧잘 했는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3학기 때 혁명적 사상을 가진 단체에 가입한다. 그러나 혁명이나 사회주의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젊은 혈기에 목적 없이 열정에 이끌린 행동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단체가 헤르손 총독 폭탄 암살에 가담을 했고, 이 바람에 타라바스도 얼떨결에 달려 들어가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때 집안의 외아들로 소위 대를 이어야 했던 아버지 타라바스 영감이 아래 위 할 것 없이 손을 써 석방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집에 들어온 니콜라우스에게 아버지는 이 길로 미국으로 떠난다면 적당한 돈을 줄 것이고, 아니면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선언을 하는 바람에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주인공 니콜라우스 타라바스는 러시아 국적은 가지고 있지만 국경 쪽에 붙은 많은 속국 가운데 한 나라의 부르주아 자제로 유대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게 오히려 책을 읽는 독자에겐 흥미거리였다.
유대인이 쓴 소설을 유심히 읽어보면 많은 작품의 공통점이 있는 바, 유대인 또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대인은 모두 총명하며, 계산에 밝고, 장사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으며, (총명과 다른)현명한 데다가 사해동포주의자 같은 인격적 풍모를 (원래는 없었다가 점점 풍부해지기도 하지만) 지닌 거의 이상적인 인물일 경우가 많다. 반면에 그들 입장에서 이교도들은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이고, 잔인하고, 방종하고, 폭력적이고, 하여간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로 골고루 갖춘 양아치, 호모 바스타디스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한 종족이다. 그리하여 이민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트가 과연 어떤 타라바스를 만들어낼 지 애초부터 관심이 터지던 차에,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돈을 주머니마다 쑤셔 넣고 배에 올라 뉴욕 항에 도착한 타라바스는 콘크리트의 밀림 속에서도 아무 걱정 없고 힘이 넘쳤으며 새로운 생활을 어떻게 할까, 기대가 충만했다. 뭐 처음에 그랬다는 거다. 신대륙에 도착한지 두 달 만에 마치 잃어버린 삶을 그리워하는 노인처럼 고향생각이 간절해져 무슨 일도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탄탄해진다. 그리하여 태만한 생활을 하며 자신을 방치하기로 결정을 하고, 돈 좀 있는 룸펜 생활을 하다가 카페에서 서빙을 하는 카탈리나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연애를 하기에 이른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출신의 어여쁜 아가씨 카탈리나는 타라바스의 향수병을 달래주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했다. 타라바스는 질투심이 많은 건장한 체구의 튼튼한 청년. 하루는 오해했는지 아니면 청년이 정확하게 눈치를 챘는지, 카탈리나가 정말 조리사하고 치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밤 아홉 시에 출근하는 카탈리나 양의 입을 그 큰 주먹으로 한 방 쾅, 두드렸고, 이를 말리는 카페 사장한테 헤드록을 걸어 큰 유리창을 향해 돌진,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카페 사장이, 어떻게 된 지는 모른 채 그냥 도망치고 말았다. 여기까지 보면, 대학 다니며 가입한 단체도 그렇고, 뉴욕에서 지낸 룸펜 생활과 가벼운 연애와 질투에서 시작한 폭행도 그렇고, 내면에는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하는, 내가 누군지 알겠지? 하는 우쭐함이 팽만해 있었다. 독자가 타라바스의 심리상태를 단박에 알 수 있게끔 요제프 로트가 절묘하게 써놓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3학기까지 다녔다니까 타라바스가 아는 것도 좀 있고, 생각도 나름대로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은데, 작가가 주인공을 묘사하는 “질투심 강하고 거칠면서 동시에 온유하기도 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온유한 모습은 눈에 불을 켜도 찾을 수 없다.
사고를 치기 바로 전에 타라바스는 심심해서 놀이 공원에 갔었다. 뭔가 하나를 확실하게 믿지 않는 그는 기독교가 창궐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생겨난 숱한 미신을 믿는 경향이 있었던 그는 집시 여인에게 점을 보기로 한다. 이때 번쩍! 소설작법 5장 1절. 점쟁이, 예언자의 헛소리는 언제나 들어 맞는다는 거. 집시 여인이 복채 2 달러를 받고 손금을 보더니, “당신은 정말 불행한 사람이군요! 손금을 보니 당신은 살인자이자 성인이에요! 이 세상에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에 대해 참회를 할 겁니다. 그걸 전부 이승에서 겪게 될 거예요.”
이 점괘를 기억하는 타라바스. 그럼 카페 주인이 죽었나? 창문이 깨졌을 경우 중력에 의하여 자유낙하 하는 유리의 절단면이 사람의 조직에 닿으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그런데 헤드록을 한 상태에서 머리로 유리창을 깼으니 떨어진 유리가 목을 쳤을까? 걱정하지 마시라, 카페 사장은 세월이 좀 더 흘러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해서 국가 유공자 목록에 등록될 팔자니까.
자, 이 때가 1914년 8월. 정확하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점이다. 이 밤을 빌빌거리며 보낸 타라바스는 다음 날 아침 카페 주인이 죽었는지 신문을 보고 확인하려다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음을 알아내고 조국 러시아와 차르를 위해 참전하기로 결심, 러시아 대사관으로 들어간다. 백 루블을 여비로 받은 그는 러시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라트비아 리가 항구에서 (소위 계급장이 달린 군복이 있는)고향으로 가는 기차간에서 어깨에 안간힘을 써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며 도착한다. 마을에 왔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 완고한 부모는 타라바스가 바라듯이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듯, 가족을 지키는 기사나 영웅이 돌아온 듯” 맞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꼴을 해놓고 집을 떠났는지는 절대 생각 못하는 찌질한 타라바스는 그러나 마차를 타고 동네방네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아 마음이 풀어졌다. 농부들 표정에는 큰 두려움이 쌓이는 건 절대 알아채지 못하고.
집엔 부모님과 여동생 루지아, 그리고 사촌 마리아가 있다. 오랜만에 와서 보니 원래 좀 성숙했던 마리아가 완전 꼴을 갖춘 아가씨가 되어 있었던 거다. 혹은 타라바스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마차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오다가 마리아를 만났고, 함께 숲 속으로 갔으며, 은근히 눞혔다는데, 뭘 했는지는 다 아시지? 집에 돌아온 커플. 어느덧 밤이 깊고, 이제 다음날 새벽 네 시 기차를 타고 전장으로 가야할 터이지만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다시 마리아의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고, 또 하고, 다시 살금살금 나오려 했지만, 그게 아무 소리 내지 않고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데, 하여간 자기 방으로 돌아오니, 잠귀 밝은 늙은 아버지가 우뚝 서 있었더라는 것. 아버지는 타라바스의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 붙이더니 군복의 소위 견장까지 떼내려다가, 말았다. 대신 한 마디 한다. “내가 너의 계급을 강등한다. 죽지 않고 돌아오면 마리아와 결혼하라.”
이렇게 다시 집에서 쫓겨난 타라바스. 그는 모른다. 뉴욕의 카페 사장한테 가한 폭력을 무마하기 위하여, 기소를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아버지는 또 얼마나 큰 돈을 송금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변호사와 허비해야 할 지. 하여튼 그렇게 93연대 보병연대의 소위로 배치받은 타라바스는 전쟁터에서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소속 연대에서 가장 용맹한 장교, 전우들에게는 가슴 뭉클한 전우애를 시전하지만 파괴와 약탈, 강간, 가치 없는 복수, 복종과 명령의 엄수 등을 확실히 시행하는 모습이 고위 장성들의 눈에 띄어 대위로 진급할 뿐더러 확실하게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독자는 잊지 않았다. 뉴욕 놀이 공원의 집시 점쟁이의 예언. “당신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에 대해 참회를 할 겁니다.” 이제 남은 일은 작가가 예언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전쟁은 어느덧 끝나고 분리독립을 한 조국으로 돌아와 작은 마을에 연대를 새로 만들어 연대장 대령이 된 타라바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한 요제프 로트의 유대적 세계관.
재미있게 읽다가 갑자기 헛김이 빠져버린다. 천하의 이기주의자이며 자기만 아는 철부지, 덜 떨어진 인간인 타라바스, 이이가 난데없이 지은 죄를 참회하기 위하여, 그것도 이승에서 마무리하기 위하여, 어처구니없어라, 순례자, 필그림이 되어 버린다. 타라바스가 쾌락을 탐미했던 탄호이저도 아닌데 이게 뭐하는 뻘짓일까? 유대인 작가라서? 재미있게 읽다가 거 참, 스팀 아웃. 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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