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명환.김엘리사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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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2년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해 두 살 때부터 10년 동안 뉴욕에서 생활하고, 열두 살 부터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성장한 인텔리.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비밀 자유투표를 통해 세계 최초로 칠레의 사회주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때 도르프만의 나이가 스물여덟. 사회주의 국가의 대두는 라틴 아메리카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혹시라도 자국에 영향을 미칠까 싶은 미국을 자극해, 칠레의 주 산업이었던 구리copper의 국제 시장가격을 대폭 낮추어 칠레 경제는 아옌데 집권 이후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시민들의 거의 모든 불만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시작한다. 시민 불만이 고조되자 1973년 8월에 육군 총사령관 대장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선 대통령 아옌데를 제거하고 군사평의회 의장 자리에 취임했으며, 이듬해인 1974년 12월에 대통령에 취임해서 1990년 3월까지 17년간 칠레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권력을 손아귀에 쥔 피노체트는 현대 세계사에서도 유래가 극히 드물 정도의 폭압적인 시민탄압을 통해 집권을 유지했는데, 1980년 광주 시민항쟁 당시, 대통령이 같은 군인 출신, 같은 독재자라서,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가 되지 않았던 칠레에서의 민중 학살이 주로 대학가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나도 그때 칠레의 사정을 처음 알았다). 아리엘 도르프만이 서른한 살 때, 피노체트가 정권을 탈취하자마자 곧바로 피의 통치를 시작하는 걸 보고,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 또는 불평불만자로 밀고할 수 있다는 것이 비단 도르프만 혼자가 아니고 당시 거의 모든 인텔리들의 공포이자 생각, 우려였다.

  딱 그때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군인 출신의 독재자가 장기 집권을 하고 있었으나 그래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비록 형식적이라고 할지라도 합법한(합법하게 보이는) 재판과정을 거친 후에 생명을 거두었던 반면, 박정희보다 10여 년 늦게 권력을 차지한 피노체트는 별 재판도 없이, 예를 들어 진짜로 산티아고 월드컵 경기장에 1만2천 명이 넘는 별의 별 정치범들을 모아놓고 체계적인 스케쥴에 의거하여 숱한 소설작품을 통해 널리 소개된 라틴 아메리카 식 고문을 시전하고, 그러다가 다수는 다시는 햇빛 구경을 하지 못하고, 나와도 거의 불구 상태로 기어 나오기도 했다. 나무위키를 얼핏 보니까 이렇게 쓰여 있다. "박정희 시기 대한민국과 피노체트 시기 칠레, 두 나라를 비교하면 한국은 유치원 수준에 불과했다." 아리엘 도르프만도 당시에 해외로 도피한 무리 백만 명 가운데 한 명이다. 대부분의 해외도피자들은 안데스 산맥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북쪽에 접한 사이 안 좋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쳐 멕시코까지 튀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도르프만은 몇 몇 나라를 거쳐 1976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다. 이 당시 칠레에서 3천6백 명이 넘는 여성들도 체포되어 이 가운데 3천2백 명이 강간을 당했다고 하지만, 수십 만의 피해자들 대부분은 남성이었고, 숱하게 많은 남자들은 아무 혐의 없이 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특정 마을은 성인 남자가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이런 동네엔 당연히 과부들의 천지였을 것이다.

  76년에 네덜란드에 정착한 도르프만은 (똑부러지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제 칠레의 기적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어느 정도 사회 경제적 안정을 찾은 피노체트 정권이 대 시민 유화정책을 펼친 시기를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었으며, 독한 칠레 정권은 현재 구금되어 불구가 될 정도로 고문을 받은 사람들도 차라리 안데스 산맥 위를 나는 비행기에서 내던져 버리는 한이 있어도 숨만 붙어있는 채로 고향 집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반면에 마을의 과부들은 남편의 시신이라도 확실하게 돌려받아 장사 지냄으로 한 인간의 종말을 뒤끝 없이 마칠 수 있게 해주든지, 사내들의 죽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죽음과 밀접한 누군가의 사과와 징계를 통해 해원을 해주든지, 하여튼 이런 깨끗한 결말을 바랐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아리엘 도르프만이.

  그리하여 《죽음과 소녀》를 여는 첫 작품은 <과부들>이 된다..


​  <과부들>에는 비교적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다. 푸엔테스 가족만 해도 할머니와 두 며느리, 손녀와 손자, 고문 받아 나사가 빠진 채 나중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작은 아들이 필요하며, 다수의 동네 과부들, 이 마을 출신의 군인과 그와 눈이 맞은 젊은 과부, 로마 가톨릭 신부, 그리고 새로이 주둔한 군인들이 필요하다. 군인에는 될 수 있는 대로 주민들을 회유해서 잘 지내려고 하지만 과부들의 계속되는 요구사항에 지쳐 점점 예전의 폭력적인 지배자로 변해가는 대위와, 원래 잔혹한 성격을 가진 중위를 포함한다. 중위의 천성이 잔혹했겠는가. 권력을 쥐어봤고, 어쩌다 보니 그걸 함부로 사용하는데도 누가 뭐라하기는커녕 잘한다고 격려를 받고, 이런 것이 조금씩 쌓이다 보니 강압적으로 일을 밀어부치고, 필요하면 가차없이 채찍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신속하다는 진리를 터득해 그렇게 됐겠지. 반면에 대위는 자신도 그렇게 편하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알기는 하지만 그것을 잘못, 그리고 계속 사용하다 보면 집단적인 반발을 일으키기 쉬워 피가 더 많은 피를 부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기도 하다. 하여간 동네 군조직의 수장은 비둘기파인 대위의 소관이니까 별 문제가 없었는데, 저 상류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이미 상당히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떠내려오면서 사달이 난다.

  푸엔테스 집안의 소피아 할머니가 부패해 머리통이 떨어져나간 시신을 잡고 자신의 아버지 유해라고 주장하면서, 푸엔테스 집안의 방식으로 매장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할머니는 하루도 빼지 않고 이 계곡에 나와 앉아 아버지, 남편, 아들 둘을 기다리고 있어서, 천지신명이 자신을 돌보아 먼저 아버지의 시신을 자신한테 보내주었다고 주장한다. 설마 시신이 정말로 소피아 할머니의 친아버지가 맞겠는가? 그저 빈 묘지를 조성해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것보다는 진짜 사람의 시신을 자기 아버지의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인간의 깔끔한 종말, 그러니까 깨끗하게 정리해서 보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겠지. 피노체트 당시 죽거나 실종되어 다시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라고 집계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데, 그저 계곡을 따라 떠내려온 머리 없는 시신이 자기 아버지일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말이지. 그걸 정말로 소피아 할머니가 몰라서 주장할 리는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다시 강을 따라 부패한 시신 한 구가 또 떠내려온다. 이번에도 시신을 건진 소피아 할머니. 자신의 남편이라고 주장한다.

  이 동네에 대규모 비료공장을 지을 목적으로 먼저 주민들을 안정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온 대위는 확인되지 않은 시신을 수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던 시신을 회수한 터에 다시 남편의 시신이라고 주장하는 것마저 아니라고 할 수가 없는 대위는 마을의 신부 가브리엘을 불러, 남편의 시신이 아님을 두 명 다 알고 있음에도 굳이 신부에게 누구의 시신인지 확인을 요구한다. 가브리엘 신부 역시 시신이 할머니의 남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소피아 할머니에게 가늠할 수 없는 지옥 대신 조그마한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에 기꺼이 장례를 주관해주기로 한다. 평화의 이름으로. 소피아의 남편 미겔 푸엔테스의 안식을 위하여. 그러나 대위는 자기 부하가 연애하고 있는 젊은 과부의 남편 시신이라고 이미 거짓 확인을 한 상태. 일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이의 해결을 위해 가장 간단한 것은, 있다. 이 마을에 도착하기 전까지 대위와 중위가 숱하게 저질렀던 다반사. 가장 쉬운 해결방법. 대위는 시간이 갈수록 이 ‘방법’의 유혹을 감촉하기에 이르고, 마을의 숱한 과부들에게 최후 통첩을 하는 순간에도, 계곡의 강을 따라 또다른 시신 한 구가 떠내려온다.


​  이 책의 대표작은 아무래도 표제작품이기도 한 <죽음과 소녀>를 들어야 할 터. <죽음과 소녀>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우리나라에 청소년 소설로 소개했으나 어른이 보더라도 충분한 단편집 《우리집에 불났어》를 시작으로 창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후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을 내고, 희곡선 《죽음과 소녀》까지 출간했다. 불과 세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죽음과 소녀》 가운데 <과부들>과 <죽음과 소녀>를 이이의 대표작이라고 꼽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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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9-12 0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도 기억
아옌데부터 읽고싶은데 기억해뒀다가 같이 읽어야겠네요.

Falstaff 2023-09-12 07:41   좋아요 2 | URL
아옌데가 더 재미있더라고요. 누가 됐든 칠레의 징글징글한 현대사는 참... 이런 식으로 문학이 발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뭐 이런 생각도 듭니다.
<죽음과 소녀>는 우리나라에도 개봉을 한 영화로 만들어졌는데요, 제목에 기함을 합니다. 뭔가하면 <시고니 위버의 진실> ㅎㅎㅎㅎ

coolcat329 2023-09-12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독재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유치원에 불과했다니 놀랍네요.
근데 칠레랑 네덜란드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멈출 때> 작가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칠레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라틴아메리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또 읽고 싶어지네요.

Falstaff 2023-09-12 17:58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런 건(군사독재) 금메달 받는 게 좋지 않잖아요.
칠레-네덜란드는 별로 관계 없습니다 하다보니까 칠레 떠서 네덜란드에 정착했다는 것 뿐이지요. 조금 의외이긴 합니다. 유럽으로 간 라틴 아메리카 먹물들은 대개 언어가 통하는 스페인으로 간 걸로 알고 있거든요. ^^
 
원무, 그 밖의 다양한 사건사고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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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는 아프리카 대륙 동쪽의 마다가스카르 섬 동쪽, 인도양의 서쪽에 솟은 작은 섬인 모리셔스 국적도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자이다. 혈통적으로는 틀림없는 프랑스인이지만 아버지는 영국과 모리셔스 국적을, 어머니는 프랑스 국적을 가지고 있다. 조금 복잡한 내력을 지닌 작가인데, 이건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주의 다툼과 모리셔스의 독립으로 인한 일종의 부작용이었다. 르 클레지오가 자신의 삶에 관하여 자전적인 소설을 써서 이걸 상세하게 밝힌 책도 있다. <아프리카인>. 그를 이해하고 싶으면 읽어보시는 것이 좋다. 프랑스인이라기보다 세계인, 이중에서도 비 유럽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누가 알까? 실제로 내가 읽은 여덟 권의 르 클레지오의 작품 모두가 아프리카나 아프리카와 매우 비슷한 환경이 무대이기도 하다.


  2년 만에, 그리고 처음 읽는 르 클레지오의 단편집이다. 《원무, 그 밖의 다양한 사건사고》 그러니까 원무, 독일말로 <라이겐>, 프랑스말로 <La ronde>를 뜻하는 원형을 이루면서 추는 춤의 제목이 사건사고와 연결이 된다. 그럼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원무”가 무엇일까? 설마 르 클레지오의 책을 읽으면서 소규모 관현악 편성에 맞추어 연미복과 드레스를 차려 입은 귀족들의 무도회를 연상하시는 건 아니겠지? 책에 나오는 원무는 아직 소녀 티를 못 벗은 빨강머리 티티와 한 달 만 더 있으면 열일곱 살이 되는 아가씨 마르틴이 만드는 일종의 질주다. 티티는 자신의 모터 사이클을 가지고, 마르틴은 티티의 오빠가 빌려준 이탈리아제 모터 사이클 육중한 모토구찌를 타고 질주한다. 작가의 대표작인 <황금 물고기>의 주인공 라일라 또는 라이라가 어두운 지하 생활하는 장면이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마르틴은 천둥 같은 폭발음을 내며 도시를 누비면서 푸른 정장을 입은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을 오늘의 먹이로 꼽는다. 티티와 마르틴, 두 명의 소녀가 운전하는 모터 사이클의 원무는 리베르테로 거리에서 끝을 맺고 이제는 직진. 첫 번째 오토바이가 속력을 늦추지 않은 채 인도 위로 올라가 파란 옷의 여인에게 다가가고, 여인의 눈은 배수로 위를 폭주해 달려오는 마르틴의 시선과 약 백분의 일 초가량 머무르며, 이어서 텅 빈 거리에는 고통과 경악의 비명이 날카롭게 울려퍼졌는데, 검은 핸드백을 움켜쥔 마르틴의 손은 땀으로 흥건해 있었다. 이게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원무다. 원무, 하고 원무 다음에 오는 쉼표에 씌어질 “그 밖의 다양한 사건사고”가 이제는 이어지시지? 이렇게 원무는 벌어진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한 원무는 반드시 멈춰야 하는 법. 마르틴의 원무가 어떻게 멈추어지는 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두 번째 작품 <몰록>은 읽으면서 계속 긴장하게 되는 작품이다. 위키피디아에는 ‘몰록’을 “고대 근동의 신으로 소의 머리를 가지고 있으며, 어린아이를 불태워 바치는 인신공양 제의가 행해”졌으며 신명기와 레위기에 언급되었단다. 주목할 것은 몰록이라는 신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베풀 선행의 대가로 어린아이의 생명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무대는 트레일러 주택이다. 리아나와 시몽이 살고 있었다. 전에 시몽이 나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이름을 그냥 무심하게 ‘닉’이라고 지어주었다. 강아지일 때는 그저 귀엽기만 하더니 점점 크고 용맹하게 자라 이젠 늑대개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리아나는 시몽의 아이를 임신해 어느덧 막달이 다 찼고, 시몽은 트레일러를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모기가 들어올까봐 방충망을 설치하지 않은 창문조차 열어놓지 못하는 리아나와 늑대개 닉은 트레일러의 철제 벽을 사정없이 내리 쬐는 태양볕 때문에 마치 그대로 증발할 것 같다. 그럼에도 리아나는 금테안경을 쓴 사회복지사가 제안하는 구제 사항을 완곡하게 거절한다. 왜 거절할까? 무정한 시몽이 적어도 출산 전에는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르 클레지오는 리아나가 버티는 이유를 설명해줄 정도의 친절하지는 않다. 밤이 되면 리아나는 트레일러의 문을 열고 닉을 내보내주고, 닉은 주변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닭이니, 토끼, 거위 등을 사냥해 포식한 채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다시 돌아온다. 그러다 드디어 리아나는 오직 혼자, 아니 닉과 둘이 있는 트레일러에서 아이를 출산한다. 태반을 꺼내고 탯줄을 끊고, 젖을 먹인다. 점점 햇빛이 강해지는 날 속에서.

  노란 눈의 늑대개는 리아나와 아기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출산과 출산 후의 탈진으로 리아나는 닉의 밤사냥을 위해 밤에 트레일러의 문을 열어주는 것을 며칠 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다. 트레일러의 모든 것은 스파크에 얻어맞아 마비된 것 같고, 늑대개는 동공이 오그라든 노란 눈으로 미동도 않고 앞만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 닉이 맡는 갓난아기의 냄새는 아주 감미롭다. 트레일러 내부를 냄새가 가득 채운다. 늑대개는 그 냄새를 더 잘 맡기 위해 힘줄 하나하나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러다가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허기는 아기 엄마 리아나에게도 찾아와서 리아나는 트레일러를 열고, 닉과 아기를 남겨놓은 채 절룩이면서 고속도로 옆의 편의점으로 걸어간다.

  으시시하시지? 너무 긴장하지는 마시라. 작가 르 클레지오가 설마 엽기 잔혹극을 쓰기야 했겠는가?


  르 클레지오가 늘 관심을 두는 것은 사회의 비주류, 이 가운데서도 청(소)년들, 젊은 계층의 불행과 방황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불행과 방황이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비행을 대단히 건조하고, 담백하고, 그래서 삭막하고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사한다. 위에 예를 든 것 말고도, 감옥 혹은 군대에서 탈주하여 프랑스 국경을 넘어 도망했으나 거의 노예 수준의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탈주자>, 거리를 배회하다가 여러 명의 불량배에게 윤간을 당하는 소녀 크리스틴 이야기인 <아리안>, 한 시절 너무도 아름다웠던 집을 개발이란 폭군 앞에서 지켜나가려 안타까운 안간힘을 쓰는 <오로르 빌라>의 늙은 여주인 등을 르 클레지오 특유의 건조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르 클레지오의 작품에 내가 매혹당하는 것은, 그의 시선이 거의 약자에게 가 있다는 것과, 약자들이 언제나 선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점, 그러나 그들이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배운 것도 없으며, 착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주 악을 행할지언정 작가는 기본적으로 그들 편에 서 있고자 한다는 것 때문이다. 심지어 그저 한 번 그래 보는 것 같지도 않다. 데뷔작 <조서>부터 시작해 내가 읽은 작품 모두,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소외와 이탈 중인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래도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의 독특한 글, 문법이 있었기에 꾸준하게 그를 찾는 독자가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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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08 0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아리엘 도르프만 <죽음과 소녀>
목요일, 루이지 피란델로 <산의 거인족>
금요일, 오에 겐자부로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hnine 2023-09-08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 난해하네요 ㅠㅠ
처음에 모리셔스라는 나라 이름을 들었을때 제가 말레이시아를 잘못 들었나 했었어요. 그런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을때.
르 클레지오가 이곳 국적도 가지고 있었군요.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머물렀던 작가라서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데, 정작 작품은 한권도 읽은게 없네요.

Falstaff 2023-09-08 09:5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조서>나 <열병> 같이 난해하지 않습니다. 잘 읽힙니다. ^^
모리셔스가 영국령이었거든요. 그래서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 영국, 모리셔스 세 나라 국적으로 다 가지고 있었다가, 아마 영국 국적은 포기했다나 그렇지요? 영어도 프랑스어 만큼 쓰는데, 영국의 식민지정책에 불만을 갖게 되어 프랑스어로 작품활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정확한 건 아닙니다.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08 0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르클레지오도 풀네임에 귀스티브가 있군요 ㅋㅋㅋ저두 한 권도 안 본 작가인데 역시나 저희 엄마가 떠도는 별이랑 우연 읽고 갖춰두신 기억은 있구요 ㅋㅋㅋ몰록은 얼마 전에 다시 본 반지의 제왕에도 나오더라구요 간달프랑 싸워서 간달프가 이김! 골백작님 수염 간달프보다는 짧죠?!?!

Falstaff 2023-09-08 09:58   좋아요 1 | URL
옙. 몰록 쓰면서 반지제왕 얘기도 할까 했습죠.
제 수염은.... 지금 하나 뽑아 보니까, 앗 따거워, 약 1.8cm 정도입니다. 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3-09-08 10:29   좋아요 1 | URL
20mm아니고 18mm라 하심은... 잘 알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yamoo 2023-09-0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 클레이오...예전 직장 다닐 때 이 양반 전공한 친구가 있어서 몇 권을 추천 받았습니다. 첫 권이 아마 <홍수>였나 그랬을 겁니다. 대표작인 <황금물고기>를 읽으라고 했는데, 그냥 홍수가 재밌을 거 같아서 읽었습니다. 결과는 50페이지를 못 넘기고 덮었습니다. 재미가 없더라구요. <조서>도 읽다 말았고...책은 7권인가 있는데, 못 읽겠더라구요. 이동진이 소설은 재밌어야 하는데 지루하면 왜 읽느냐고 말하더군요. 음..맞는 말 같아요. 재미가 없더라도 읽는 동인이 있어야 하는데 홍수와 조서는 그렇지 않았나봅니다. 그래서 르 클레니조는 제게서 멀어져만 갔어요..ㅎㅎ

Falstaff 2023-09-08 16:09   좋아요 0 | URL
<조서>는 저도 읽느라 아주 혼을 뺐습니다. ㅎㅎㅎ
<홍수> 읽은 거 같은데 읽었다는 자국이 없네요. 안 읽고 읽은 줄 아는 걸까 저도 궁금합니다. <황금 물고기>는 괜찮아요. 시도해보셔요! 제가 다 안타깝습니다.
 
커다란 초록 천막 1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0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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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1943년생. 스탈린 치하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스탈린이 죽었으나 극소수 소비에트 엘리트를 위하 전체주의는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등이 성공적으로 계승해 울리츠카야가 마흔여섯 살이 되는 1989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니까 작가의 젊은 시절은 세계적 냉전 기류 속 도청과 감시, 밀고, 불법 구금, 집단 수용과 유형 수준의 징역의 세상이었다. 물론 소비에트만 그랬던 건 아니다. 다 아다시피 미국에서도 메카시즘 광풍이 있었고, 로젠버그 부부를 전기의자에 올려놓은 일도 있었다. 당연히 미국 및 서유럽의 반공주의를 소비에트에서 행해진 공산주의(체제 유지를 핑계로 행해진) 파시즘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스탈린이 죽은 1953년 이전에 비하면 재판 없는 공개 총살 같은 야만적인 처형은 볼 수 없었던 부드러운 수준의 탄압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당하는, 즉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 전체주의/파시즘/독재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당장 그 고통이 언제나 엄혹한 것임은 당연한 일이었다. 철권에 의한 시민 통제에 반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어럽게 찾을 것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1970년대, 80년대 민주화라는 이름의 자유 회복 운동을 떠올리면 직방이다. 울리츠카야는 자기 나이 또래 반정부 활동을 했던 집단을 주인공으로 해서 스탈린 사후인 1953년부터 1996년 세월까지 이들의 성장과 운동가로의 변모, 이후의 고난 등을 한 편의 장편소설로 그렸으니 바로 <커다란 초록 천막>이다.

  제목 "커다란 초록 천막"이 무엇일까? 프롤로그를 포함해서 작품의 여덟 번째 챕터의 제목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천막'은 근본적으로 "죽음"이라고 볼 수 있다. 역자 승주연도 역자 해설에서 "작가도 '천막'이라는 주제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라고 내 의견을 지지해주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이 천막 또는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러시아 멸망 시기, 즉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이어진 레닌과 스탈린 시대, 그리고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등의 후계자 시대를 통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희생되었거나, 저항하다 죽음을 맞았거나, (크건 작건 간에) 고통에 찬 '나머지 삶'을 살다가 생을 접은 모든 사람들, 좁게는 등장인물들 주변의 사람들의 죽음을 말한다.

  울리츠카야의 작품은 단편집 <우리 짜르의 사람들> 한 권만 읽었다. 그 책이 많지 않은 분량에 서른 몇 편의 단편을 실은 작품집이라 그리 인상깊지는 않았는데, 울리츠카야가 메릴린 로빈슨에 이어 (세계적인 문학상이었으면 좋았을) 제2회 박경리 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조금 관심이 생겼다가, 얼마 안 되어 잊혔다. 그러다가 난데없이 두 권, 본문만 천백 쪽에 육박하는 장편소설을 읽으니, 내용이야 어려운 시절을 보낸 당대 소비에트, 특히 모스크바 시민들에 대한 헌사인 것은 맞지만, 에피소드들이 과하게 복잡하게 얽히고 등장인물도 너무 많아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지 않으면 많이 헷갈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건, 흔히들 그러하듯이 각 단계/챕터를 단편소설 쓰듯 해서 그것들이 서로 연결이 되는 구조라 그랬지 않을까 싶다만, 내가 뭘 알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읽혔다는 것 뿐이다..


​  세 명의 사내 아이들이 있다. 작품의 주인공들이다. 일리야 브랸스키, 미하 멜라미트, 그리고 사냐 스테클로프. 시절은 40년대 후반 또는 50년대 초반. 43년생 정도의 이들이 1학년에 입학한 시기다. 이들은 사막의 늑대들이 횡행하는 교실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한다. 강하고 사나운 두 늑대 무리를 이끌고 있는 무리긴과 무튜킨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잠시의 평화시기를 누릴 때만 되면, 대장 늑대들과 그들의 추종자이자 꼬붕들이 조심하라는 경고로 쉬는 시간이나 화장실에서 가볍게 취미삼아 두드려 팰 수 있는 타악기로 존재하기도 했다.

  일리야는 비쩍 마르고 키만 훌쩍 컸다. 엄마는 우울증이 있는 홀어멈이라 허름한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남루한 차림이었다. 그러나 법석 떨면서 광대처럼 웃기기 좋아했고 가난한 자기 상황을 희화 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눈에 번히 보여 더 슬픈 아이였다.

  미하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유대인 아이다. 엄마는 열차 폭파 사고로 죽고, 아빠는 전사한 고아로 지난 주부터 새로운 후견인이 된 게냐 고모 댁에 얹혀 살고 있는 빨강머리에 주근깨투성이 얼굴, 지독한 근시를 가졌다. 전학을 와서 세 명의 집단에 늦게 가담했다.

  사냐는 지난 시절 거의 최고 귀족 가문의 후예로 피아노 연주에 러시아 식 천재를 가지고 있으나, 후에 장난으로 시작한 눈싸움 도중 늑대 대장 무리긴에 의해 오른손 손가락 세 개의 힘줄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얼마 안 지나 무리긴도 미하가 선물받은 스케이트를 빼앗으려는 와중에 질주하는 전차에 치어 참혹한 모습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접어버리고 말지만.

  이들은 스스로 '트리아농'이라고 했다. 이 트리아농이 베르사유 궁정에 속한 빌라를 말하는 것인지, '트리'라고 했으니 삼총사 비슷한 것인지, 세 명이니까 삼총사에 더 가깝지 않을까 궁리하고 있는 바, 아직까지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말 세 마리가 끄는 마차가 트로이카, 삼총사 쪽이 더 비슷하지 않을까? 하여간 이 '트리아농'은 20년 후에 사진에 관한 한 도사 수준이 된 일리야를 상대로 한 고위직 공무원이 국가 안보에 관한 위압적인 대화를 하면서 처음 언급한 이름이다. 이들은 어쩄거나 학교라는 이름의 정글/사막 속에서 생존에 성공하여 5학년에 진급을 했고, 위대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는 2차 세계대전 참전 상이군인이자 담임 교사인 빅토르 율리예비치 선생으로부터 모스크바 골목골목, 광장 건물마다 그곳에 담긴 러시아 문학의 흔적을 좇는 "러문애", 러시아 문학 애호가들이란 서클이 탄생한다. 당연히 세 명의 트리아농 멤버들은 러문애 회원에서도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며, 빅토르 선생을 통해 또래에서 가장 넓은 문학적 스펙트럼을 지니게 되는데, 이때 쌓은 소양은 훗날 이들의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한다. 좋은 교사 한 명 만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


​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들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다. 가장 중요한 주인공인 일리야는 대학 진학을 자진해 포기하고 생물학적 아버지가 준 마지막 선물, 소련산 독일제 라이카 카메라의 모방품인 FED-S 카메라 전문가로 활약하면서 19세기 초부터 혁명가들의 숨은 사진을 추적하고, 당대 소련의 다양한 운동성과 생활상을 촬영하는데 전력을 다해 다양한 아카이브를 만들어 나간다. 이 가운데 거의 대부분을 소련 당국에 압수당하기는 하지만 일부는 서유럽으로 유출하여 그곳에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소개가 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리야는 특유의 활달함과 넓은 인간관계로 당대 가장 중요한 반정부 인사의 한 명이 되며, 두 명의 죽마고우들이 곤경에 빠질 때마다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등 방패막이가 되주기도 한다.

  미하는 어려서부터 시인이었다. 나중에 스스로 생각해보면 그리 훌륭한 시인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하여간 시인은 시인이라서 마음이 여려 어려운 처지에 몰린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려 하다가 곤경에 빠지고 만다. 소련 당국은 유대인 미하에게 이스라엘로 이민을 권하기도 하지만, 소련에서 낳고 자라고 러시아 말로 시를 쓰는 시인에게 러시아 땅에서 떠나라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진퇴양난이 되고 만다.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사냐는 끝내 여자친구 리자와의 애틋한 사랑을 6촌 남매라는 멍에 때문에 이루지 못한다. 사냐는 세 손가락의 신경이 절단되어 연주를 포기하면서 진정으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연주자 대신 음악 이론가의 길을 선택해 성과를 이루지만 이 시기에 청춘의 강을 건넌 사람들 가운데 슬픔 없는 이가 없다. 세 친구를 모두 사랑했던 할머니 안나 알렉산드로브나가 숨을 거두자마자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떠난 과부 엄마가 남자와 함께 돌아와 집을 차지하면서 사냐는 소련 탈출을 꿈꾸기 시작한다.


​  시절들. 비교를 하지 않으려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는 작품이 <커다란 초록 천막>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쓴 <의사 지바고>. 지바고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기에 젊음을 소진한 세대를 향한 헌사였다고 하면, 울리츠카야가 자기와 동 시대를 보낸 세대에게 바친 헌사가 <커다란 초록 천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장한 장편소설을 읽은 후의 포만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챕터 별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들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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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라바스 - 이 땅의 손님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요제프 로트 지음, 남기철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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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오경장이 일어난 189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리치아에서 태어난 요제프 로트가 1939년에 생을 마칠 때까지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질곡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로트의 작품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을 할 때부터 아예 또 한 편의 유대 문학을 읽을 것이라 여겼을 수밖에.

  그런데 아니었다. 타라바스. 니콜라우스 타라바스는 1914년 8월 현재 미국의 뉴욕에 거주하는 젊은 러시아 사람이었다. 러시아의 서쪽 근처 국가들 가운데 한 곳 출신으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기도 하다. 공부도 곧잘 했는지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3학기 때 혁명적 사상을 가진 단체에 가입한다. 그러나 혁명이나 사회주의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젊은 혈기에 목적 없이 열정에 이끌린 행동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이 단체가 헤르손 총독 폭탄 암살에 가담을 했고, 이 바람에 타라바스도 얼떨결에 달려 들어가 재판을 받아야 했다. 이때 집안의 외아들로 소위 대를 이어야 했던 아버지 타라바스 영감이 아래 위 할 것 없이 손을 써 석방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집에 들어온 니콜라우스에게 아버지는 이 길로 미국으로 떠난다면 적당한 돈을 줄 것이고, 아니면 호적을 파버리겠다고 선언을 하는 바람에 미국 뉴욕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주인공 니콜라우스 타라바스는 러시아 국적은 가지고 있지만 국경 쪽에 붙은 많은 속국 가운데 한 나라의 부르주아 자제로 유대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게 오히려 책을 읽는 독자에겐 흥미거리였다.


​  유대인이 쓴 소설을 유심히 읽어보면 많은 작품의 공통점이 있는 바, 유대인 또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대인은 모두 총명하며, 계산에 밝고, 장사에 천부적인 재질이 있으며, (총명과 다른)현명한 데다가 사해동포주의자 같은 인격적 풍모를 (원래는 없었다가 점점 풍부해지기도 하지만) 지닌 거의 이상적인 인물일 경우가 많다. 반면에 그들 입장에서 이교도들은 야만적이고, 비윤리적이고, 잔인하고, 방종하고, 폭력적이고, 하여간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로 골고루 갖춘 양아치, 호모 바스타디스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한 종족이다. 그리하여 이민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로트가 과연 어떤 타라바스를 만들어낼 지 애초부터 관심이 터지던 차에,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의 돈을 주머니마다 쑤셔 넣고 배에 올라 뉴욕 항에 도착한 타라바스는 콘크리트의 밀림 속에서도 아무 걱정 없고 힘이 넘쳤으며 새로운 생활을 어떻게 할까, 기대가 충만했다. 뭐 처음에 그랬다는 거다. 신대륙에 도착한지 두 달 만에 마치 잃어버린 삶을 그리워하는 노인처럼 고향생각이 간절해져 무슨 일도 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탄탄해진다. 그리하여 태만한 생활을 하며 자신을 방치하기로 결정을 하고, 돈 좀 있는 룸펜 생활을 하다가 카페에서 서빙을 하는 카탈리나라는 이름의 아가씨와 연애를 하기에 이른다.

  니즈니노브고로드 출신의 어여쁜 아가씨 카탈리나는 타라바스의 향수병을 달래주기도 하고 강화하기도 했다. 타라바스는 질투심이 많은 건장한 체구의 튼튼한 청년. 하루는 오해했는지 아니면 청년이 정확하게 눈치를 챘는지, 카탈리나가 정말 조리사하고 치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밤 아홉 시에 출근하는 카탈리나 양의 입을 그 큰 주먹으로 한 방 쾅, 두드렸고, 이를 말리는 카페 사장한테 헤드록을 걸어 큰 유리창을 향해 돌진,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카페 사장이, 어떻게 된 지는 모른 채 그냥 도망치고 말았다. 여기까지 보면, 대학 다니며 가입한 단체도 그렇고, 뉴욕에서 지낸 룸펜 생활과 가벼운 연애와 질투에서 시작한 폭행도 그렇고, 내면에는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하는, 내가 누군지 알겠지? 하는 우쭐함이 팽만해 있었다. 독자가 타라바스의 심리상태를 단박에 알 수 있게끔 요제프 로트가 절묘하게 써놓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3학기까지 다녔다니까 타라바스가 아는 것도 좀 있고, 생각도 나름대로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은데, 작가가 주인공을 묘사하는 “질투심 강하고 거칠면서 동시에 온유하기도 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온유한 모습은 눈에 불을 켜도 찾을 수 없다.

  사고를 치기 바로 전에 타라바스는 심심해서 놀이 공원에 갔었다. 뭔가 하나를 확실하게 믿지 않는 그는 기독교가 창궐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생겨난 숱한 미신을 믿는 경향이 있었던 그는 집시 여인에게 점을 보기로 한다. 이때 번쩍! 소설작법 5장 1절. 점쟁이, 예언자의 헛소리는 언제나 들어 맞는다는 거. 집시 여인이 복채 2 달러를 받고 손금을 보더니, “당신은 정말 불행한 사람이군요! 손금을 보니 당신은 살인자이자 성인이에요! 이 세상에 당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에 대해 참회를 할 겁니다. 그걸 전부 이승에서 겪게 될 거예요.”

  이 점괘를 기억하는 타라바스. 그럼 카페 주인이 죽었나? 창문이 깨졌을 경우 중력에 의하여 자유낙하 하는 유리의 절단면이 사람의 조직에 닿으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그런데 헤드록을 한 상태에서 머리로 유리창을 깼으니 떨어진 유리가 목을 쳤을까? 걱정하지 마시라, 카페 사장은 세월이 좀 더 흘러 1차 세계대전 중에 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해서 국가 유공자 목록에 등록될 팔자니까.

  자, 이 때가 1914년 8월. 정확하게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점이다. 이 밤을 빌빌거리며 보낸 타라바스는 다음 날 아침 카페 주인이 죽었는지 신문을 보고 확인하려다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음을 알아내고 조국 러시아와 차르를 위해 참전하기로 결심, 러시아 대사관으로 들어간다. 백 루블을 여비로 받은 그는 러시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라트비아 리가 항구에서 (소위 계급장이 달린 군복이 있는)고향으로 가는 기차간에서 어깨에 안간힘을 써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며 도착한다. 마을에 왔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 완고한 부모는 타라바스가 바라듯이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듯, 가족을 지키는 기사나 영웅이 돌아온 듯” 맞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꼴을 해놓고 집을 떠났는지는 절대 생각 못하는 찌질한 타라바스는 그러나 마차를 타고 동네방네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아 마음이 풀어졌다. 농부들 표정에는 큰 두려움이 쌓이는 건 절대 알아채지 못하고.

  집엔 부모님과 여동생 루지아, 그리고 사촌 마리아가 있다. 오랜만에 와서 보니 원래 좀 성숙했던 마리아가 완전 꼴을 갖춘 아가씨가 되어 있었던 거다. 혹은 타라바스의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마차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집에 오다가 마리아를 만났고, 함께 숲 속으로 갔으며, 은근히 눞혔다는데, 뭘 했는지는 다 아시지? 집에 돌아온 커플. 어느덧 밤이 깊고, 이제 다음날 새벽 네 시 기차를 타고 전장으로 가야할 터이지만 발걸음 떼기가 쉽지 않다. 그리하여 다시 마리아의 방으로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고, 또 하고, 다시 살금살금 나오려 했지만, 그게 아무 소리 내지 않고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데, 하여간 자기 방으로 돌아오니, 잠귀 밝은 늙은 아버지가 우뚝 서 있었더라는 것. 아버지는 타라바스의 귀싸대기를 한 대 올려 붙이더니 군복의 소위 견장까지 떼내려다가, 말았다. 대신 한 마디 한다. “내가 너의 계급을 강등한다. 죽지 않고 돌아오면 마리아와 결혼하라.”


​  이렇게 다시 집에서 쫓겨난 타라바스. 그는 모른다. 뉴욕의 카페 사장한테 가한 폭력을 무마하기 위하여, 기소를 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아버지는 또 얼마나 큰 돈을 송금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변호사와 허비해야 할 지. 하여튼 그렇게 93연대 보병연대의 소위로 배치받은 타라바스는 전쟁터에서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소속 연대에서 가장 용맹한 장교, 전우들에게는 가슴 뭉클한 전우애를 시전하지만 파괴와 약탈, 강간, 가치 없는 복수, 복종과 명령의 엄수 등을 확실히 시행하는 모습이 고위 장성들의 눈에 띄어 대위로 진급할 뿐더러 확실하게 주목을 받는다.

  그러나 독자는 잊지 않았다. 뉴욕 놀이 공원의 집시 점쟁이의 예언. “당신은 죄를 지을 것이며 그에 대해 참회를 할 겁니다.” 이제 남은 일은 작가가 예언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 전쟁은 어느덧 끝나고 분리독립을 한 조국으로 돌아와 작은 마을에 연대를 새로 만들어 연대장 대령이 된 타라바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한 요제프 로트의 유대적 세계관.

  재미있게 읽다가 갑자기 헛김이 빠져버린다. 천하의 이기주의자이며 자기만 아는 철부지, 덜 떨어진 인간인 타라바스, 이이가 난데없이 지은 죄를 참회하기 위하여, 그것도 이승에서 마무리하기 위하여, 어처구니없어라, 순례자, 필그림이 되어 버린다. 타라바스가 쾌락을 탐미했던 탄호이저도 아닌데 이게 뭐하는 뻘짓일까? 유대인 작가라서? 재미있게 읽다가 거 참, 스팀 아웃. 김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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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9-05 0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부와 2부 사이에 요제프 로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ㅋㅋㅋㅋㅋ
톨스토이 만나서 잔소리 잔뜩 듣고 왔는지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뜬금 참회.
저는 이 작품 1부는 정말 재미나게 읽었어요...... 별점은 4.5 정도였는데 4줄까 하다 5로 그냥 올렸습니다.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05 16:42   좋아요 0 | URL
맞아요. 2부 가서 아주 팍.....
전 별 셋 주려다가 그동안 쌓아온 로트와의 우정을 봐서 하나 보탰습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3-09-05 16:5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2부 무슨 일이야 로트!!
 
냉동어 - 초판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채만식 지음, 최유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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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근대 문학 최고의 작가 가운데 한 명.” 이렇게 주장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을 소설가일 것이다. 전북 옥구군 임피면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 대학에 유학할 때 갑자기 집안이 어려워져 (또는 자료에 따라,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 학살을 피하고자) 1학년을 마치지 못한 채 귀국해 동아일보, 개벽사, 조선일보 기자 등을 하다가 전업작가로 활동한 작가. 전라북도 옥구 출신이지만 조선 팔도 사투리 모두에 능해 작품 안에서 능청맞게 사용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 할 만하다. 아쉽게도 이이는 1940년을 기점으로 작품 속에 친일적 요소를 삽입하기 시작하여 1942년 작 <아름다운 새벽>과 45년의 <여인전기> 두 편의 적극적 친일 작품을 생산해내기에 이른다. 채만식 스스로 1947년에 단편소설 <민족의 죄인>을 발표하여 작품 속에서 친일 행위를 고백하고 자신의 친일 행적을 최초로 인정한 작가가 되지만 그렇다고 친일 반민족 작가의 오명까지 벗어나는 건 아니다. <냉동어>는 1940년에 『인문평론』에 발표한 작품으로 “친일행위를 본격화하는 첫 작품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엮은이 최유찬의 해설에 쓰여 있다. 평소에 채만식이 친일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태 읽은 그의 작품에서 그런 내용을 발견한 적이 없어 그리도 능란하고 골계적으로 사투리를 쓸 줄 아는 작가가 친일이라고 하면 얼마나 했겠느냐 싶었었다. 이 책 <냉동어>를 읽어보니까, 일본과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이 아니라, 일본의 대륙 침략의 역사적 당위성, 조선의 내지화 같은 것이 노골적이지 않고 오히려 너무도 스스러워, 자연스러울 지경으로 언급을 하고 있어서, 여태 알고 있는 친일 문학과 구별이 되는 동시에, 친일 청산을 위한 평론가들로부터 더 높은 친일의 내면화를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위키피디아).


​  <냉동어>, 얼린 물고기. 강시가 되어 창고에서 점점 더 딱딱하게 얼어가고 있으나 겹겹이 성에가 낀 눈으로는 푸르고 푸른 바다 속을 바라보고 있는 냉동어. 놀랍게도 <냉동어>는 연애소설이다.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에서, 언제나 확실한 적자를 보증하는 기업인 잡지사 “춘추사” 사무실. 신년호를 교정하고 있는 중이다. 주필은 서른세 살 먹은 조선 문단의 혁혁한 중견 대가 문대영. 지금이야 서른세 살이라도 구상유취의 젊은이 대접을 받지 저 시절, 1930년대 말에는 혁혁한 중견 대가라는 타이틀도 어울렸던 때다. 사람들이 얼른얼른 죽어 주니까 후배들이 그만큼 쑥쑥 자라날 수도 있었다. 채만식 본인도 마흔여덟 살을 몇 달 앞두고 전쟁 터지기 전에 폐결핵으로 죽었지 않은가. 시인, 소설가가 주인공일 경우에 주인공이 육체 건강하고 일이나 사상적으로 전투적인 사람이 극히 드문 관계로 <냉동어>의 주인공 문대영 역시 본인이 스스로를 이렇게 평한다.

  “삐뚜러진 빈 집에서 호올로 거주하는 물락된 귀족의 신세로 세대의 룸펜, 즉, 거지beggar.”

  작가는 문대영더러 “모든 사물에 흥미나 관심이 없으며, 젊고 가정을 가졌으나 퓨리탄이 아니어서 ‘모든 남자’의 규범에서 벗을 것이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비록 집이 있고, 집에 가면 만삭의 아내와 곧 있을 출산을 위해 딸을 돌보아주려고 평양에서 내려온 장모가 당분간 함께 살지언정, 그리고 하루 뒤 첫 딸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첫 아이가 세상 구경을 한 바로 그 날, 새로 생긴 애인과 잠자리만 빼고 밤드리 노니다가 새벽 네 시 가까이에야 귀가해서 아이 구경을 했다 이거다. 즉, 1930년대 말 조선의 중산층 인텔리겐치아 답게 욕을 푸짐하게 먹을지언정 시대가 허용하는 방탕은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갑자기 이야기 가운데로 불쑥 들어가지 말고 차근차근 시작해보자.


​  <냉동어>의 시간적 공간은 1930년대 말의 연말이다. 신년호 교정을 하느라 바쁜 시간에 별로 상종 없는 영화계 관계자 김종호라는 일면식 없는 인간이 스미꼬라는 이름의 일본 여성이 도쿄에서 경성으로 이사했다고, 평소에 영화와 무대 예술에 대해 이해와 관심과 동정이 깊다고 굳이 소개를 해준다. 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스물세 살을 먹은 스미꼬는 다음날 오후에 다시 사무실을 방문해 소파에 앉아 <성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바쁜 와중에도 코 앞에 앉은 여자에게 신경이 쓰이지 않지는 않아서, 대영은 값진 모피 외투와 윤潤gloss 좋게 새까만 모피자락으로 덮은 무릎 위에 놓인 흰 손가락에 상당히 굵은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스미꼬 아가씨가, 어제는 못 보았던, 침울한 얼굴, 지적으로 세련된 총명함이 보이는 듯한 표정 등등 여성의 기상이 매우 노블하며 화장, 의복 등 전체 풍모가 기품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미인이라 할 만하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모든 남자의 규범에 벗어날 것이 없는 대영은 거의 모든 수컷들이 그러하듯이 암컷을 앞에 놓고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네 시 반밖에 안 됐음에도 책상을 정리하고 스미꼬와 함께 경성 시내를 구경하기로 작정을 한다.

  그럴 수 있겠지? 미인을 앞에 놓고, 비록 맞춤법 표준안이 나오긴 했으나 불평이 많은 동료들이,

  “뚫, 뚫…에잇 이놈의!… 온, 이게 글ㅅ자람!... 쌍 디귿에 이을을 하구, 또 그 옆댕이에다가 ㅎ을 붙이구, 이게 무슨 천하의 괴벽들이람!... 우리두, 요? 우리두 우리 춘추사식春秋社式 한글을 좀 만들어 가지구 이 흉악한 뚫ㅅ자 따위, 끊ㅅ자 따위 이런 괴물일라컨 뽀이코틀 합시다!”

  라는 주장이 귀에 들어오겠느냐는 말이지.

  그리하여 문대영은 스미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전화통이 울리더니 장모가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대영의 맏이, 첫 딸이 태어났다고, 그러니 얼른 들어와 아이 구경을 하라고 안달을 하는 거다. 대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내는 원래 순종적이고 현명하고 기타 한국적 미덕을 모두 갖춘 아낙이라 조금도 걱정하지 않은 채, 스미꼬와 함께 종로통을 걷고, 그녀가 경성 시장major이라면 종로의 보신각을 단박에 헐어버리겠다고 구시렁거리는 것을 들으며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스미꼬가 잠들 때까지 이야기 벗해주기”로 결심을 해서 스미꼬 혼자 사는 아파트에 함께 가, 또 차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키스 한 번 하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으며 노닥노닥 새벽 세시 반까지 머문다.


​  이런 것이 한 번이 힘들지 두번째는 아무 것도 아닌 거거든. 그리하여 다른 날도 아니고 바로 다음날, 문대영은 다시 스미꼬 집에 가서, 이번엔 할 거 다 한다. 비록 쁘띠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라고 해도 ‘퓨리탄이 아니어서’ 죄의식이 전혀 없다. 문대영은 스스로를 생활을 잃어버린 인간, 그리하여 유령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조금은 가운데 중, 중급 정도의 세상 허무함을 갖고 사는, 물론 이게 진짜 허무함인지, 자신이 작가임을 나타내려고 보여주기식 허무함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거 비슷한 거에 항상 적셔져 있는 인간인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게 사람이 어디 배겨 나겠느냐는 거다. 오후 다섯 시까지 일을 하고, 퇴근해서 데이트를 하고, 여자 집에 가서 또 새벽 세시 넘어서까지 밤중에 체조를 하다가 새벽도 다 지나 처자식 사는 집으로 와서 눈도 못 붙이고 깔깔한 입에 밥이나 제대로 넘길 수 있나, 이럭저럭하다가 곧바로 출근을 하지만 당연히 지각이고. 사람 사는 꼴이 아니어서 결국엔 병이 나버린다. 꼴값을 한다.

  이러던 어느 날, 스미꼬는 문대영에게 세상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자신과 함께 도쿄로 떠나 버리자고 제의하고, 중요한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고 착각하며 사는 대영은 그 자리에서 동의를 해버린다. 그래서 다음 날 자정 열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배를 타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해서 길지 않은 연애소설은 대단원을 향해 막바지 기적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질주를 하는데, 궁금하시지?

  자주 말했다. 연애소설은 결국 이별소설이라고. 어떤 이별일까? 스미꼬가 안나 카레니나처럼 부산행 열차가 다가오자 바퀴 사이로 몸을 날렸을까? 아내는 아니고 드센 평안도 장모가 문대영의 부랄을 잡고 너 죽고 나 죽자, 이랬을까? 관부연락선에 오른 문대영과 스미꼬가 윤심덕이처럼 현해탄 돌고래 노니는 바다 속으로 첨벙, 뛰어들었을까? 나도 시원하게 말해버리고 싶지만, 참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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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01 05: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도 어김없는 삽질 :
화요일, 요제프 로트 <타라바스 - 이 땅의 손님>
목요일,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커다란 초록 천막>
금요일, JMG 르 클레지오 <원무, 그밖의 다양한 사건 사고>

유부만두 2023-09-01 0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말이 궁금해서 전자책 결재했습니다. 얼른 읽으러 가야겠어요. 그나저나 아내가 첫아이 낳느라 고생하는데 술집에서 거리에서 방황하며 애쓰는 남편이라니, 오에 겐자부로랑 헤밍웨이 읽으면서 욕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애송이 남편/아빠라면 꺼져버리라고!

Falstaff 2023-09-01 06:04   좋아요 1 | URL
당시가 30년대 후반 식민지 조선입니다.
그럼에도 이건 시대 문제가 아니라 문대영이 ˝퓰리탄˝이 아니라서 여태 그냥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텔리라는 데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그날 아가씨와 밤드리 노닐 수 있었던 것이 맏이로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은 것도 크게 작용을 했으니 말입죠.

유부만두 2023-09-01 06:24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그런데 문대영은 직업에선 중견이었는지 몰라도 인생에서 책임감이라고는 조금도 지고 싶지 않아서 도망다니며 자기 연민과 변명에만 능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줄거리는 어떤 전형 같기도 하고요.
결말만 읽고 왔는데 (아, 이럴줄 알았어요) 30년대 후반 아니라 다른 시대에 갖다놔도 비슷한 먹물 태도를 보일 것 같은 인물이에요. 그런데 스미코 편지 내용은 딱 채만식 스타일이네요.

Falstaff 2023-09-01 06:44   좋아요 2 | URL
21세기에 갖다 놓으면 문대영은 절대 그런 짓 안 할 겁니다.
인텔리들의 특징이 눈치 잘 본다는 거 아닙니까. 이혼 당해서 아이 달린 홀아범 될 텐데요. ㅋㅋㅋ

건수하 2023-09-01 06: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자세히 얘기하다가 갑자기 참지 마세요….. 🥲

퓨리탄이라고 굳이 강조하는 걸 보니 가톨릭은 역시 할 거 다 했나봅니다…

Falstaff 2023-09-01 06:46   좋아요 3 | URL
ㅋㅋㅋ 그래야 재밌잖아요. 스포일러는 아무리 좋아도 없는 게 더 좋지 않나요? ^^
가톨릭, 개신교 등등 모든 종교에 대한 코멘트는 생략합니다. ㅎㅎㅎ 전 유물론자예요. 사서 욕 먹거나 귀싸대기 맞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9-01 08: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체조 꼴값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01 17:03   좋아요 0 | URL
ㅋㅋㅋ 예전엔 많이 쓰던 표현인데 요즘에는 잘 안 쓰긴 합니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