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쏘러 숲에 들다 윤택수 전집 1
윤택수 지음 / 디오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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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택수.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시인이(었)다. (2023년) 9월 12일 시인 장석주가 한국매일경제신문에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편의 시”라는 제목의 컬럼을 읽기 전까지. 장석주는 컬럼에서 “내가 읽은 <새를 쏘러 숲에 들다>에는 낯선 상상력으로 빚은 무섭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시편이 그득했다.” 라고 하면서 “이 가을 아침엔 시인이여, 불량식품처럼 상한 언어 한 무더기 말고, 당신의 어깨 위에 까마귀를 앉히고 ‘이 피를 맑히려면 백년이 걸리리’라고 노래하라!”, 느낌표! 하나를 콱 찍었다. 장석주 본인도 1980년대 초반부터 《완전주의자의 꿈》 등으로 유명 인기 모더니즘 시인의 반열에 올랐던 시인인 만큼 시에 관한 한 칭찬이 박할 지도 모를 터인데 이렇게 상찬을 하니, 기사를 읽자마자 득달같이 읽어볼 수밖에.

  윤택수. 1961년 대전생. 충남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3사단 백골부대 포병대에서 군역을 마친 거 같다. 동문 선배로 보이는 시인 윤형근의 발문을 인용하면, 학교를 졸업한 윤택수가 홀연 자취를 감추더니 몇 년 만에 나타나 그동안 울산에서 용접공을 일했다고 말한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누구나 알겠지만 윤택수가 용접공으로 일했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노동운동 같은 것에 투신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먹물의 삶에 적응하기 싫었든지, 적응하는데 애를 먹어 선택한 길 가운데 하나였든지 할 것이다. 그러다가 또 갑자기 사라져 한동안 보이지 않았단다. 다시 한번 불쑥 등장해서 하는 말이, 이번엔 원양어선을 탔다고. 충남 홍성에 있는 오랜 역사를 지닌 홍주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도 몇 년 했고, 서울로 올라가 몇 잡지사와 출판사의 편집장도 한 모양이다. “전적으로 시를 읽고 판단하면” 마흔이 가깝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혹시 이이가 성소수자여서 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윤택수가 택한 마지막 호구지책은 학원 강사. 대전에서 학원 강사를 하다가 잠깐 쉬고 서울로 올라가 세월을 보낸다. 돈이 떨어질 만하면 다시 고향으로 가 학원 강사를 하고. 그러다가 겨우 서른아홉 살 즈음이었던 2000년 여름, 학원에서 강의를 하다가 뇌졸중이 쳐들어와 강단에서 쓰러지고 만다. 이후 꼬박 2년 간 고생하다 생을 마감한 시인. 참 고단하게 살다 갔다. 등단도 하지 않고 그동안 써 둔 110편의 시를 선배 윤형근에게 버리듯 넘겨준 윤택수. 등단, 소위 시인 면허증이 없이 그저 몇 동인지에만 시를 발표했을 뿐이라 이 시집 《새를 쏘러 숲에 들다》가 그의 첫 시집이며 유고시집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 그의 마흔 살 평생이 이 한 권에 실려 있을 터. 20대 초반의 치기도 들어 있고, 시대에 대한 부채감도 있으며, 시와 시를 쓰는 사람에 대한 탐색도 당연히 실려 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삶의 장소, 군대, 울산의 용접공, 원양어선 선원, 중학교 교사의 경험 같은 것들 모두.


  윤택수에게 시와 시인이란 무엇일까? 그는 제일 앞에 실린 시 <재난과 기아>에서 이렇게 말한다.


  “말로 구애하고 말로 사업하고 말로 반란 일으킨다

  밀하지 않는 자는 망자와 신뿐이다

  정치에 관한 말 분배에 관한 말 절망에 관한 말을 하면 그들이 노한다

  그들은 노예의 말을 활용하지 않는다

  말을 다루는 기술은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다” (p.11 부분)


  그래, 시는 말로 하는 것이지. 말로 세상에 안 되는 게 있나. 정치, 분배, 절망, 그리고 인용하지 않은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불안하고 가냘픈 것, 지친 자와 지루한 자에게 하는 질문, 대지와 대기에 상감象嵌한 증오 같은 것들도. 시인이 시를 쓰는 것, 즉 말하는 건 자유다. 하다못해 세금도 안 낸다. 그러나, 구애하고, 사업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건 사실 알고 보면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기술”이란다. 이게 무슨 뜻일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하나는 죽자사자 그렇게 말로 수다한 사업을 해봐야 나와 내 가족들 목구멍으로 들어갈 양식이 되지 못한다는 거. 다른 하나는, 공들여 정치와 분배와 절망에 관한 말을 했는데 정작 시라는 새를 총으로 쐈더니 새는 이미 형체도 알아보지 못하게 다 흐트러졌다는 거.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돈이 안 된다는 건 비슷한데, 두번째 것은 아예 “새”라는 시가 되지도 못한 그냥 헛소리로 끝났다는 것이니 더 참혹하달까.

  이 “먹을 수 없는 새를 쏘는” 행위는 표제시 <새를 쏘러 숲에 들다>에서 더 확실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총신에 온기가 쌓인다

  먹지도 못할 새라며 내심 언짢아하시는 아버지의 말씀이 쟁쟁해오고

  숲의 끝을 돌면서

  무슨 놈의 새가 깃 스침이 그리 눅눅한지

  집으로 돌아가서 책이나 볼 것이었다

  (중략)

  새는 어리고

  구우면 고엽같이 뼈째 부스러진다

  버려진 농막에 엎드려

  총탄을 세고

  소매에 튄 피를 털어내면

  늦은 불면이 온다  (p. 38~39. 부분)


  여기서 “먹을 수 없는” 상태는 위에서 이야기 한 두 가지 가운데 더 참혹한 경우다. 구워봤자 총을 맞은 새는 고엽같이 뼈 째로 부스러져버렸으니. 쏘려면 큰 새를 쏴야 하지만 아무나 다 큰 새를 쏘면 가뜩이나 세상에 넘치는 시인들 전부 랭보일 텐데 그러면 또 재미없지.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 올라 맞아도 아프지 않을 돌 있으면 한 번 던져보시라. 요즘엔 던졌다 하면 시인이나 화가가 맞을 테니까.


  윤택수가 1961년생. 빠른 61년생이면 79학번, 보통이면 80학번, 눈치를 보니까 재수는 집에서 안 시켰을 거 같다. 1980년 불행한 시절에 윤택수는 안전한 대전에서 흉흉한 소문을 통해서만 남도에서 있었던 잔혹한 사건을 듣고 크고 큰 부채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핏빛 소식은 천생 서정시인이고 모더니스트인 윤택수에게도 시절의 부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는 비 내리는 밤, 소주 한 잔 걸치더니 애꿎은 문을 열어 들이치는 빗속에서 울며 노래한다.



 



  나는

  이 밤에

  깊이 감상에 빠지고

  제 감동에 겨워 전전긍긍 살아가는

  시인이다

  나도 때로는

  격시를 쓰고

  절망한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

  힘찬 시도 쓰고 싶지만

  적에 의해 가슴에 아픈 못이 박혀

  철철 피를 흘려도

  개천에 버려져도

  나는 장엄하게 죽노라 호언하는

  용자도 되고 싶지만

  이 비 내리는 밤

  문을 열고

  울음 우는

  병신 같은 시인이다

  개새끼다

  나는  (전문)



  이렇게 노래할 수 있지. 그러나 이제, 물론 십여 년이 흐른 후에도 그러했겠느냐만, 얼마간 시인은 계절의 여왕 5월이 오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독후감이 길어지니 그건 그냥 넘어가자.


  그의 직업인 용접공과 원양어선 선원과 교사의 경험에서 나온 것들을 보자. 용접공을 할 때의 울산은 6.29를 기점으로 사업장마다 노동조합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즉, 새로운 노조의 탄생보다 기존에 있었던 사용자를 위한 어용노조의 개편 투쟁이 훨씬 격렬했다) 전국적으로 노동쟁의를 시작해 연간 임금 인상률이 20퍼센트에 육박하던 시기의 바로 전이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최고조의 상태였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며, 아무리 모더니즘 시를 주창하는 시인이라도 현장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 <별곡 3>에서 노래하기를


  그해 여름의 울산은

  침잠의 뻐쓰와 침묵의 노동조합이여

  라디오 뉴스를 들음이어

  잘못하여 뉘우치고 잘해서 추억함이어

  무슨 큰 사랑인가 대학 못 간 청춘들아

  빨래도 마르지 않고 자꾸 눈물나네 용접공들아

  (중략)

  하느님 당신은 용접공이십니다

  찢어진 둑들을 때우시고 비인 가슴들을 때워주소서

  우리의 욕심들아

  아멘 청춘들아

  아멘 아멘 용접공들아

  선생께서는 어디로 가려시는가  (후략. P.52~53. 부분)



  윤택수는 또 <박물지 12>에서 자신의 교직 경험을 깊게 반성하고 있다. 스스로 나쁜 교사였다는 반성. 그래서 정식 교직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말 그랬다면, 잘했다.


  교육은

  피교육자의 교육자에 대한 열광과 찬탄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수수되는 노래이다

  노력에 의한 숙련이나

  시간의 온축에 의한 노회만으로 교사가 되어

  피교육자들을 판단하고 추장하고 징계하는 예를

  우리는 흔히 목격하거니와

  우리들 스산한 추억의 대부분은

  나쁜 교사들에게서 왔다

  내가 좋은 예이다

  용서해줘

  제발 잊어줘  (p.148 전문)



  이 시집이 시인의 첫 시집이면서 유고시집, 그러면 젊은 시절의 연애 감정도 하나 인용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그렇지? 비록 마흔이 되도록 장가 한 번 들지 못하고 총각귀신이 되었을지언정 어찌 마음 속 흔들림 한 번 없이 시절을 보냈겠는가. 달달한 시 한 수 읽으며 독후감을 끝내자.



  심홍빛 나라



  들국화 핀 비탈이 보이는 날에는 편지 못 쓰네

  무슨 상념의 거품이 닿은 솜털이여 가슴 뛰네


  그 여름의 아가미의 스러져가는 열망조차 낙엽 지네

  오래오래 참아온 눈물의 향기 스미네


  아득한 나라의 추목秋木 가지에 놓이는 연흔漣痕이여 미치겠네

  들국화 핀 비탈이 보이는 날에는 편지 못 쓰네 (전문)



  * 연흔漣痕: 바람에 의하여 모래나 눈 위에 만들어지는 물결 모양의 흔적 (네이버 검색,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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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 읽었다. 작년 10월에 시작해서 오늘, 9월 13일에 끝냈다.

  20여 년에 걸친 기번 필생의 역작 <로마제국 쇠망사>. 제목 그대로 쇠망, The Decline and Fall, 쇠퇴는 전성기 때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로마의 쇠망은 5현제,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시기부터 서로마 제국이 문을 내리고, 동로마 제국 비잔티움이 오스만 투르크에 함락되는 순간까지의 역사다. 로마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형제가 세웠는데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도 로물루스. 기독교를 공인했으며 동로마제국을 만든 황제는 콘스탄티누스. 로마 제국의 용맹한 군인 황제답게 전세가 불리해지니 “내 목을 쳐 줄 기독교인 없소!” 외치며 성벽에서 고군분투하다가 난입한 적군 말단 병사의 창에 찔려 죽은 마지막 황제 역시 콘스탄티누스. 동로마제국은 그렇게 끝난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갈 곳이 없다.

  동로마제국은 <로마제국 쇠망사 5>에서 사실상 이미 끝난 상태였다. 이제 다시 중흥의 기회도 없을 만큼 쇠약해진 제국. 그래도 살 수 있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 비잔티움은 로마의 교황에게 인공호흡을 부탁한다. 비티니아에서 나라를 일으킨 투르크 족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십 년이 지나니 이제 비잔티움의 턱 아래인 아나톨리아 반도 서쪽 끝까지 바짝 올라와, 아직 정식으로 적대적 행위를 한 적은 없지만 상당한 위협으로 등장했다. 막강한 투르크 군대가 마음먹고 짓쳐 들어오면 한 해도 지나지 않아 콘스탄티노플은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당시의 황제 알렉시우스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런 위기의식이 궁내에 퍼져 있을 때, 프랑스 아미앵 출신의 은자 페트루스가 예루살렘의 성묘 순례에 나섰다가 무슬림에게 탄압받는 기독교와 기독교도들의 모습을 보고 도무지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 양반이 자기가 무슨 예수라고 저 황야에 앉아 40일 동안 옴마니밧메훔, 도만 닦은 줄 알았더니, 예루살렘이 이교도의 손에 망가지는 걸 보고 비잔티움에서 군사를 보내 어떻게 해달라고 동방교회의 총대주교에게 하소연을 했다. 총대주교는 동로마제국 황제들이 얼마나 악독하고 나약한지 오히려 은자에게 오히려 넋두리를 하는지라, 은자 페트루스가, “좋소! 그렇다면 내가 대의를 받들어 유럽에서 군대를 일으켜 데리고 오겠나이다.” 큰소리 뻥뻥 치고 그 길로 정말 유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은자 페트루스는 왜소한 체구에 못생긴 얼굴, 꾀죄죄한 입성을 했으나 눈빛이 형형하고 무시무시한 웅변술을 장착했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이 어떻게 황야에서 은둔해가며 도만 닦았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이는 유럽을 떠돌며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무슬림들의 무도한 행위에 관해 침을 튀기 시작했는데, 이 이야기가 교황의 귀에도 들어가, 솔깃해진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이 광신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확실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에 기가 산 광신도 페트루스는 주로 북 이탈리아와 인접한 프랑스, 독일 지역을 다니며 그의 설교에 현혹된 온갖 동네 건달, 양아치, 범죄자들이 먼저 성지 회복을 주장하며 멀고 먼 길을 떠난다.

  이 때가 1090년대. 불과 십여 년 전에 그레고리우스 7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하여 교황이 기거하던 한 겨울 산골 카노사 수도원까지 맨발로 걸어와 죄를 고백하고 사과했을 정도로 기독교의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물론 결코 수모를 잊지 않은 하인리히 4세가 나중에 로마를 점령했고, 위협을 느낀 교황은 (예수의 대행자도 죽는 게 무섭긴 한가 보다) 남부 이탈리아로 도망하다가 비참하게 죽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독교의 전성기였다는 말씀. 우르바누스 2세는 1095년 공의회를 열고, 성 베드로의 깃발 아래 뭉친 수만 명의 군사를 최고 지휘자인 툴루즈의 백작 레이몽이 이끌고 1096년 8월 15일에 출병하기로 결정한다.

  <로마제국 쇠망사 6>은 이렇게 책을 열자마자 십자군 전쟁으로 시작한다. 1차 십자군은 얘기한대로 8월 15일 성모승천축일에 출발한 정규군을 일컫기도 하지만 페트루스의 입놀림에 홀딱 넘어가 이들보다 먼저 출발한 건달들을 말하기도 해서, 이 건들건들 거리기만 하는 부랑자들이 자기 영토를 관통해 지나가면서 주민들한테, 혹시 알아, 궁전을 향해 무슨 폭력을 구사할 지 몰라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도중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해 말 그대로 거지꼴이 되어 비잔티움에 도착한다. 비잔티움에 도착해도 마찬가지다. 동로마 황제 알렉시우스는 궁리를 하다가 건달들에게 예루살렘으로 곧장 진격하라고 바람을 풍풍 내주면서 지나가는 길에 함께 싹 쓸어버린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거뭐쥔다. 동시에 한 방에 걱정이 없어졌는지라, 여태 로마를 향해 굽신거리면서 도움을 요청했던 태도를 싹 바꾸어 버린다. 이렇게 잘 나가다가 안면을 여러 모습으로 바꾸는가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황제 시절은 아니더라도 네 번째로 십자군 원정을 온 라틴 사람들에게 그만 콘스탄티노플을 함락당한다. 이게 첫 콘스탄티노플 함락. 그래도 황제의 대는 끊기지 않지만 두 번째엔 결코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다.


  이어서 등장하는 흥미로운 주제는 칭기즈칸과 몽골군이 중국에서 폴란드까지 세상을 정복해버리는 일. 정말 역사의 거대한 한 페이지다. 여태 알기로 이때 몽골 왕가에서 초상만 안 났다면 신성로마제국이니 프랑스, 에스파냐까지 몽땅 거덜이 났을 거라는 것. 에드워드 기번은 그런 것까지는 이야기하지 않고, 칭기즈칸의 손자 티무르가 사마르칸트의 제위에 등극한 후 곧장 서쪽으로 말머리를 돌려 짓쳐 나가더니 난데없이 호시탐탐 비잔티움을 한 입에 먹으려 초고추장을 버무리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의 귀싸대기를 올려 붙인 재미있는 스토리를 소개한다.

  지금의 터키에 터를 잡은 오스만 투르크. 이 사람들은 무슬림을 믿는 회교도지만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페르시아와 관계없는 인종이다. 책에 의하면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살던 타타르 족이 훈족 등에 밀려 조금씩 이동해 정착한 민족이라고 한다. 그동안 투르크 족은 오스만, 오르한, 무라드 1세, 바야지트 1세 등을 거치며 탄탄한 군사강국이자 독실한 회교국을 거듭나 해협 건너 자리 잡은 휘황찬란한 문화의 보고, 콘스탄티노플 함락을 가문의 과제로 남겨 놓은 상태였다. 이제 때가 무르익어 숟가락만 대면 저절로 꿀꺽 삼킬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무르익었는데, 난데없이 저 동쪽에서 티무르가 쳐들어온 거였다. 당대 서아시아에서 만난 최고의 영웅이자 호적수. 티무르 대 투르크의 왕 바야지트. 아무리 투르크라 할지라도 역시 칭기즈칸의 손자에겐 부족한 상대여서 싸움에 지고 바야지트도 포로로 잡히고 만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 티무르는 바야지트를 극진하게 대우하고, 내가 이긴 건 우연이었을 뿐이오, 거 참, 립서비스도 맛깔나게 해주고 떠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투르크는 이기지도 못할 전쟁을 치르느라 수많은 병력도 잃었지, 졌으니 전쟁배상금도 함빡 물어줬지, 부심에도 깊게 스크래치 가버렸는데, 원래 이럴 때 죽어라, 죽어라 하는 법이라 바야지트가 죽자마자 아들들끼리 내란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중에 마호메트 1세가 권력을 잡고, 그의 손자 마호메트 2세 세상이 되어야 오스만 투르크는 그때까지 역사상 가장 커다란 대포를 말 마흔 마리가 끌게 한 채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건너 콘스탄티노플 앞마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티무르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이 50년 뒤로 미뤄진 것. 에드워드 기번은 말한다. “비록 우발적이지만 이 중대한 공헌이 바로 이 몽골 정복자의 일생과 인격을 소개하는 데 한 장 전체를 할애한 이유다.”

  비잔티움이 멸망한 후에는 당연히 그곳에서도 있었을 후손 몇 명에 의한 (언제나 실패하고야 마는) 복귀운동. 그리고 20년 동안 썼으면서도 그래도 하지 못한 이야기. 비잔티움이 아니라 이탈리아 반도 내 로마에서 있었던 마지막 호민관 리엔치의 성공과 몰락, 기독교가 아니라 교회, 정확하게 말해서 교회 수장들이라는 “인간”들의 역겨운 권력 투쟁, 더 역겨운 호색 이야기, 그리고 20년 과업을 마치는 짤막한 소감으로 채운다. 어쨌든 이것으로 여섯 권 다 읽었다. 격렬하게 운동하고 난 상쾌함 같은 기분. 그래 이 맛이야. 이 맛 때문에 두꺼운 책을 읽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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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0-06 07: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윤택수 <새를 쏘러 숲에 들다>
목요일, 샤오홍 <가족이 아닌 사람>
금요일, 알레호 까르뻰띠에르, <잃어버린 발자취>

stella.K 2023-10-06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축하합니다. 완독하시다니 정말 뿌듯하시겠어요. 학교 때 읽어 보라고 권장도서 였는데 저는 감히 손도 못ᆢOTL

Falstaff 2023-10-06 16: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1년이나 걸렸는 걸요 뭐. 그냥 살살 읽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얘기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 역사 모노드라마
하워드 진 지음, 윤길순 옮김 / 당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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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인물 소개를 하는 게 새삼스럽다. 1922년생, 2010년 몰. 미국의 역사학자, 정치학자, 사회비평가, 사회운동가, 극작가로 <미국 민중사>의 저자다. 베트남 전쟁 반대를 비롯해서 모든 평등과 평화를 위한 운동에 참가한 골수 진보 좌파 인물.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의 원래 제목은 <Marx in Soho>다.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추방을 당해 프랑스에서 장가들어 살다가 치사하게 조국이, 얘 위험한 애래요, 프랑스 정부에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벨기에로 갔고, 거기서도 추방당해 런던으로 옮겨 진짜로 살던 곳이 ‘소호Soho’다. 진은 미국과 현대를 무대로 마르크스를 초청하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무대를 영국의 Soho가 아니라, 마침 뉴욕에도 Soho라는 동네가 있어서, 마르크스가 귀신이 되어 뉴욕의 소호에서 예수도 못한 재림을 하는 것으로 정했다. 여기서 “예수의 재림”은 나 같은 유물론자가 불경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귀절이 아니다. 진이 작품 속에서 마르크스의 입을 통해 한 말을 따왔을 뿐. 하워드 진은 열일곱 살 때 처음 <공산당 선언>을 읽은 이후에 마르크스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당연히 반은 공산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 아니면 적어도 마르크스 주의자로 살다가 1989년에 충격을 먹는다. 세상의 모든 볼셰비키는 쿠바나 북한 등 극도로 좁은 땅에서만 억지로 숨을 유지한 채 근근이 명을 이어가고, 소비에트, 동독, 동유럽, 남아메리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한 순간에 증발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근데 말은 정확하게 하자. 공산주의가 사라졌다고?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함께 무너진 건 확실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내 생각을 밝히자면, 인류는 공산주의를 한 번도 실천해본 적이 없다. 소련과 소련의 위성국가, 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의 공산주의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태까지 몇 번 강조한 거 같은데, 공산주의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다. 공산주의를 흔히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해서 공산주의 체제는 애초에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심각한 오해다. 20세기 이후 공산주의를 하겠다는 국가에는 하나같이 공산주의를 빙자한 골통 파시스트들이 창궐, 번창했을 뿐. 카를 마르크스는 애초에 인간의 본성을 너무 선하게 봤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해야 하나. 천생 마르크스 주의자인 하워드 진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을 너무 선하게 보고 있다.

  여태 인간의 역사는 한 번의 공산주의도 실현시키지 못했듯이, 앞으로도 공산주의는 결코 인간의 손으로 구현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하게 순진하고 낙천적이지만 바쿠닌이 옳을 지도 모른다. 모든 특권과 특권적 위치는 인간의 지성과 마음을 죽이는 것이라고 애초에 권력 자체를 부정했으니 말이다.


​  이 작품은 마르크스의 유령이 (1999년 작품이니)20세기 말 뉴욕에 나타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모노드라마다. 그리하여 그라운드 제로 이전인 1999년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하워드 진은 공산주의의 새로운 실천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바, 이것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혁명이 유효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인류 역사에 마지막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고, “마지막” 혁명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정말 하워드 진의 전망이 옳을까? 나는 어떻게 1999년에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는지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99년이라면 당연히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발호하기 시작해 자유무역협정 같은 것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시절이다. 진은 이런 현상을 미국, 아니다, 세계의 모든 부를 극소수의 부자들이 독차지하는 반면 부자/자본가들은 대다수 임금노동자를 겨우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착취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리하여 딱 이렇게 쓰여 있지는 않지만 모든 (주식회사를 포함한)개인(들의)기업은 사회적인 악이라고.

  언제나 문제는 권력이다. 마르크스의 입을 빌린 하워드 진은 새로운 공산주의의 모델을 프러시아-프랑스전쟁 당시의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독자적으로 나폴레옹 3세를 퇴위시키고 수립했던 “파리 코뮌”을 제시한다. 프랑스 제3 공화국이 다시 왕정을 복고하고 독일과 굴욕적인 정전협정을 맺으려 하자 파리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궐기한 사건이다. 당시 프러시아 출신으로 세계에서 제일가는 여우 재상 비스마르크가 당당히 군대를 파리에 입성시켜, 시민들로 하여금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음을 시위만 하고 살짝 빠져버렸다. 보불전쟁을 프랑스 측에서 발발하게 만들고 정작 전쟁이 터지자마자 초장부터 프랑스를 싹 쓸어버렸던 비스마르크는 파리 시민들을 현혹시키는 데도 성공하여, 시민들은 객관적 전투력의 불리에도 불구하고 치욕적인 조건의 정전협정에 크게 불만을 갖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하여간 이렇게 정부를 뒤집어 엎은 파리 코뮌은 불과 2개월 열흘 만에 정부군의 진압으로 3만명을 한 자리에서 총살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진은 코뮌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라고 평가하지만, 그의 말대로 한다고 하더라도, 코뮌이 두 달이 아니라 반년, 일년을 가도 마르크스가 원했던 선한 공산주의 체제가 수립되었을까?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 필연이기도 하다. 아니라면 단박에, 적어도 일정한 가속도를 가지고 코뮌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이리 상태로 떨어질 것이란 점은 역사를 통해 너무도 많이 보아왔지 않나. 저 멀리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좋다, 코뮌이라 하자!)부터 시작해서.

  만일 극소수의 부자들이 전체 부의 98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들의 부를 합리적이고, 합법적이고, 합상식적인 방법을 통하여 하위 몇 퍼센트 시민들에게 분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고,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며 부작용도 적을 것이다. 이게 21세기의 진보, 21세기의 좌파가 따져야 할 과제 아닐까 싶다. 자신의 평생 소원이 강남 건물주인 사람은 이제 좀 왼편에서, 진보에서 꺼져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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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10-05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워드 진이 이런 것도 썼군요.
바쿠닌의
‘모든 특권과 특권적위치는 인간의 지성과 마음을 죽이는것‘이라는 말 확 와닿네요.

Falstaff 2023-10-05 16:09   좋아요 1 | URL
저도 진의 문학작품을 읽을 줄은 몰랐습니다.
바쿠닌은 덩치도 그렇고 우짜 저 프랑스 혁명기의 당통을 연상시키기도 하더라고요.

yamoo 2023-10-05 1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폴스타프 님의 서재에서 하워드 진의 리뷰를 보는 날이 있군요!!!ㅎㄷㄷ

대체로 민주주의 반대를 공산주의로 알더라구요. 민주주의 반대는 전제주의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하워드 진이 이런 책도 썼군요. 근데 별3개라..흠..

Falstaff 2023-10-05 16:1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래서 일단 오래 살고 보는 겁니다.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제도는 자기네 주의가 아닌 다른 건 몽땅 적...아닌가요?
이 책의 편집까지 감안했으면 별 하나 더 뺐을 겁니다.

페넬로페 2023-10-05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완전한 패배나 포기보다는
로맨틱한 생각일지라도 혁명까지의 생각을 잃지는 않아야하지 않을까요.
저는 요즘 제가 자꾸 패배주의자가 되는 기분이라 힘이 빠진 상태이거든요.

Falstaff 2023-10-05 16:17   좋아요 2 | URL
˝모든 기업은 사회의 악˝이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제도의 개편, (고용인과 피고용인 모두의) 의식의 전환 같은 것도 혁명의 하나 아닐까 합니다만.

저는 이제 뭘 하던 간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부지런히.... 이렇게는 안 살려고 합니다. 아득바득 살아서 뭐하게요. 그래도 얼른 기운을 차리시기 바랍니다.

바람돌이 2023-10-05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워드 진 선생이 소설을 쓴 줄은 처음 알았네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듯한데 그걸 이런 식으로도 쓴게 아닐까 싶고요. ㅎㅎ 맑스가 파리코뮌을 굉장히 크게 평가했죠. 하지만 그 코뮌이 좀 더 오래갔다면 아마도 Falstaff 님 말씀대로 되지 않았을가 생각합니다. 맑스 역시 그 시대의 한계 안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을테니 말이죠.

Falstaff 2023-10-06 07:29   좋아요 2 | URL
옙. 마르크스가 런던에서 보기에 파리 코뮌은 정말로 찬스라고 생각하기 쉬웠을 겁니다. 문제는 하워드 진이 마르크스를 20세기 말의 뉴욕으로 모셔다 놓고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하게 만든 데에 있습지요. ㅎㅎㅎ
시간과 돈이 있어도 이 책은 굳이 읽으실 필요가 있을까 싶더랍니다.
 
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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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트는 나한테 독후감을 쓰기 힘든 작가다. 제일 힘들지도 모른다. 읽는 내내 제발트, 이 양반 특유의 쓸쓸한 문장에 푹 젖어 있었으며 책을 다 읽고도 그런 감정에서 얼른 빠져나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감정이 무엇이다, 어떤 종류의 쓸쓸함이다, 콕 집어서 얘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짓궂게 말하면 이 책이 다행스럽게 내게 마지막 제발트인데, 어디까지나 짓궂게 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제발트가 57년이라는 짧은 세월만 살고 가는 바람에 네 권의 픽션만 남긴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 작품집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독자는 지금 작가가 서술하고 있는 것이 정말 W.G 제발트의 독백인지, 아니면 그가 만든 픽션의 등장인물의 서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얼핏 작가와 비슷한 연배, 동향 인물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어떻게 구했는지 진짜 관련 사진이라고 해도 독자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만한 사진 자료를 첨부하는 바람에, 처음 《토성의 고리》를 읽을 때부터 마구 혼돈스러워 한 것처럼, 글쎄, 여태까지 그렇더라니까. 《이민자들》 앞부분에서 달릴 생각은 아예 못하고, 제발트 비슷한 문체의 글을 읽을 때 줄곧 그러듯이 템포 아다지오, 당연히 꼼꼼하게 읽으면서, 지금 내가 픽션을 읽고 있다, 하고 스스로를 각성을 시킨 후에 비로소 작품과, 쓸쓸한 문체, 문장과 거리를 두고 셈을 할 수 있었다. 글쎄, 제발트가 이렇다니까.


​  《이민자들》은 네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차례로 <헨리 쎌윈 박사>와 <파울 베라이터>는 30~40쪽으로 짧은 편이고,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와 <막스 페르버>는 중편 정도 분량이다. 네 작품 모두 어린/젊은 시절에 고향을 떠나 이방의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들로, 자살이나 완만한 자살 또는 자살과 거의 마찬가지 방법으로 생을 소멸시킨다. 세번째 작품을 빼고 유대인이 주인공이다. 나는 제발트의 대표작 《아우스터리츠》를 읽어서 그런지 꽤 오랫동안 이이가 유대계 독일인인 줄 알았다. 이런 건 W.G 제발트가 소년 시절에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에 노출된 경험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자연스럽게 전쟁과 학살,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발생시킨 20세기 유럽의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초래했을 수 있다. 이쯤에서 지금 독후감을 쓰기 위해 위키피티아와 제발트의 다른 책들을 참고하고 있다는 걸 밝혀야 하겠다. 제발트는 후에 나치 협력자들에 관해 대단히 세밀한 필터를 적용한 듯하다.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라는 짧지만 훌륭한 작품을 남긴 알프레트 안더쉬가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편협한” 태도로 그를 비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알기로 안더쉬는 나치의 눈 밖에 나 퇴폐문학자라고 탄압받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인데, 이 정도면 목숨이나마 건사하고자 협력하는 척했던 거 아닌지 모르겠다. 같은 독일 평론가들도 제발트더러 “비판받을 만큼 편협”하다고 했다니까.

  그렇다고 제발트가 과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가 소년시절에 어떤 홀로코스트 관련 경험을 했는지 나는 모르니까. 다른 시절도 아니고 혈관을 타고 니트로 글리세린이 흐리기 시작하는 남자들의 십대 때 경험한 충격이라면 그게 평생 갈 수 있고, 세월이 감에 따라 진짜 경험했던 실제보다 더욱 과장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 시절 혈관 속에 다량의 혈중 니트로 글리세린 농도를 지녔을 때,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귓속말을 하고, 그것도 혹시 알아들을까봐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했으며, 그저 입 끝에 ‘어디 가서 이런 말 말아라, 큰일난다.’라는 단서조항을 달았으며, 수업시간에 갑자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누군가가 생물 교사를 데리고 가더니 그걸로 마지막 수업이 된 것을 경험한 것이, 여태까지 박정희, 그리고 유신, 하면 두드러기 증세가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드니, 내 나름대로 제발트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다.


​  네 작품의 주제를 누가 딱 한 단어로 말해보라면, 작품집의 제목 《이민자들》를 연상하면 단박에 알 수 있듯이 “향수homesickness”다. 물론 제발트가 누군데 아무리 제목이 《이민자들》이라고 해서 주제마저 “향수” 이렇게 칼로 자르듯이 말할 수 있겠는가? 비슷한 다른 말도 골라보자. 상실. 공허. 우울. 고독. 또 많은 단어가 있겠지만 바람직한 양성positive 명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전부 자살을 하거나 의사 자살을 하는 거겠지만. 가장 짧은 작품이면서 제일 앞에 실린 <헨리 쎌윈 박사>, 한 작품만 들여다보자.

  화자 ‘나’는 1970년 9월 말에 영국 동부 노퍽주 노리치의 새 직장을 얻어 아내 클라라와 함께 노리치 근교인 힝엄으로 갔다. 실제로 W.G 제발트가 이 때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독문학 강사를 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고목과 건물 등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개업소에서는 주변에서 가장 큰 집을 소개해주었고, 스코틀랜드 소나무와 주목이 늘어선 교회 옆에 딱총나무 무리와 루시타니아 월계수, 그리고 사람 키 정도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집에 들게 된다. 정원과 나무를 포함한 식물에 대한 제발트의 수식은 전작에서 이미 충분히 경험해본 것이다. 제발트 자신이 정원 가꾸기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 집엔 키도 크고 어깨도 넓지만 항상 고개를 수그리고 안경 너머로 다른 곳을 보는 습관 때문에 자세가 구부정해 왠지 좀 땅딸막해 보이는 나이든 사람이 있었다. 이이가 헨리 쎌윈 박사다. 집은 아내의 것이고 자기는 말하자면 일종의 장식용 은둔자일 뿐이라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노부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기는 있다.

  지금은 황폐해져 버렸지만 테니스 코트까지 딸린 넓은 정원을 깔끔하게 가꾸어 소소한 작물 정도는 직접 농사를 지어 살았더랬지만 이젠 두 부부만 살아 늙은 하녀 한 명을 빼고 다른 하인들은 전부 보냈으며, 아내도 각지에 있는 다른 집의 임대 같은 업무와 여행을 즐기기 위해 일년의 반 이상을 집 밖에서 보내 거의 혼자 살고 있다.

  쏄윈 박사는 리투아니아의 흐로드나 근처 마을에 살다가 일곱 살이던 1899년 늦가을에 이민길을 떠나 영국에서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런던의 화이트채플의 지하 셋집에 터를 내렸다. 공부를 잘해 전교 일등 자격으로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 의과대학에 진학할 때 견진성사를 받으면서 헤르슈라는 이름을 헨리로, 쎄베린이란 성을 쎌윈으로 바꾸었다. 1차 세계대전이 터져 인도로 보내는 동안 아내 헤디와 결혼을 했다. 헤디의 집안이 워낙 부유해서 이들은 1920~30년대에는 아주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이를 위해 박사 역시 열심히 종합병원 의사로 일을 했으나 거의 대부분이 처가집 덕분이었다. 이런 생활이 지나자 박사는 당연히 가난뱅이가 되었지만 아내는 쓰고 남은 돈을 훌륭하게 운용하여 지금은 다시 확실히 돈이 많은 부인이 되었단다.

  박사의 잘못이 무엇인가 하면, 자신이 어떤 출신인지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사가 견진성사를 한 성공회 교도이긴 하지만 할례를 한 유대인의 아들이라는 걸 적어도 십 년 이상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물론 특별하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나, 그걸 알게 된 아내 헤디는 그만 조금씩, 조금씩, 이게 켜켜이 누적이 되다 보니 이젠 돌이킬 수 없이 남편한테 정나미가 떨어져 버린 거였다.

  물론 이건 스토리일 뿐이다. 그러나 누가 제발트의 작품을 스토리 때문에 읽을까? 이것 외에 헨리 쎌윈 박사가 살아온 이야기, 스위스 알프스를 올랐던 장면들 같은, 제발트 표 문장을 감상하는 것 만 가지고도 충분히 시간 값, 돈 값을 하리라 본다. 오랜만에 내돈내산 책 읽은 독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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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03 0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우연이네요. 어제 하루키의 “신작”을 읽으면서 제발트 생각이 계속 났거든요. 시간이나 기억을 다루는 것이 아우스터리츠를 연상시켜서요. 예전에 반 읽다 던져놓은 거 재도전 해보려고요.

Falstaff 2023-10-03 07:53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하루키 리뷰는 읽었습니다. ㅎㅎㅎ
저는 노르웨이 숲이 좋아서 1Q84를 읽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군요. 하루키는 더 안 읽으려고 했다가... 필립 글래스라는 현대음악 작곡가가 <해변의 아인슈타인>이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거든요. 그랬는데... 하루키의 책 가운데 <해변의 카프카>가 눈에 띄더라고요. 왜 아인슈타인과 카프카를 헷갈렸는지 같은 작품으로 오해하고는 그만 사버렸던 거딥니다. 흑흑흑... 사놓고 2년이 흘러도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만. ㅎㅎㅎ 다 이렇게 사는 거지요 뭐.

stella.K 2023-10-03 10: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해변의 아인슈타인! ㅋㅋㅋ 공통점이 없진 않죠. 둘 다 유대인 아닌가요?
해변의 카프카 전 작년인가 읽었는데 일큐팔사는 2권 중간까지 읽다 덮었습니다. 저는 하루키 에세이는 좋은데 소설은 잘 안 읽게 되더군요.
저 근데 좀 실례인지 모르겠는데 단골 이달의 당선자신데 오랜만에 내돈내산 책이시라니요? 그럼 그 많은 적립금은 어떻게 하시는지...? 별개 다 궁금하죠? 제가 이런 사람이네요.ㅠㅋ

Falstaff 2023-10-03 11:28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유대인! 저는 해변의 카프카가 마지막 하루키가 되지 않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이달의 리뷰... 적립금 생기면 꼭 읽고 싶은 책 사고요, 아니면 커피 사서 마십니다. ^^
가급적 책은 안 사려고 해요. 책장도 좁아 터지고, 방바닥에 쌓은 것도 갑갑하고, 아내와 아이의 회원증 가로채 한 달에 아홉 권의 책을 사달라고 할 수 있어서 읽고 싶은 신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더군요.

stella.K 2023-10-03 11:47   좋아요 1 | URL
오, 그러시군요. 역시 현명하시네요. 근데 부럽네요. 아홉 권까지.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내가 정말이라면 창비시선 434
유이우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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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여름, 중앙신인문학상 시부문에 당선해 등단을 하고 3년 후인 2019년 창비에서 낸 첫 시집. 나는 누구나 볼 수 있는 완전 공개 독후감을 쓴다. 유이우. 본명은 김소연. 아마 유이우에겐 자신의 본명을 밝히는 것도 그리 기분 좋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유이우에 관한 정보는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는 것,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러나 특히 영화배우들이 간혹 그러듯이 신비주의 캐릭터를 고수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유이우를 검색해 예스24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볼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신비주의 컨셉을 고수하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시인으로 등단한 기쁨, 처음 시집을 내서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이왕이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포토그래퍼, 옛말로 하자면 ‘찍사’, 하시시박한테 찍었을 정도로 젊은 사람들 특유의 솔직한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라, 시인이라는 직업이 이제 부모한테 독립해 원룸 하나 얻어서 먹고 살기에도 얼마나 팍팍한 직업인지는 다음으로 하고, 다른 곳도 아니고 중앙신인문학상, 예전 이름으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등단을 하고, 다른 출판사도 아니고 창비에서 첫 시집을 찍었으니 얼마나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겠는가. 그리하여 유이우는 첫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의 표지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유명 타투이스트 카와요니한테 부탁해 자신의 몸에 지울 수 없게 그려놓았다.

  이 인터뷰를 읽고 나는 시집 《내가 정말이라면》을 읽은 감상을 쓸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게다가 별점까지 하나 더 보태줬다. 못할 게 뭐 있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감상을 쓸 수 있겠는가? 자신의 첫 시집에 대한 애착이 이 정도로 심각한 시인에게, 틀림없이 단어의 칼날이 되어 깊숙한 자상을 낼, 그것도 아마추어의 무딘 칼날이라 오히려 더 심한 고통을 줄 것이 뻔한 허튼 독후감으로 젊은 시인에게 함부로 상처낼 수 없다. 그저 내가 읽고 그 중에 좋다, 생각이 든 시 한 편을 어디가 좋다, 어디는 언짢다 일언반구 없이 그냥 소개한다.




  이루지 못한 것들



  오후를 타고

  쿠션은 떨어져내린다


  너는 화가가 되었구나

  너는 화가를 포기했구나


  꿈이 널브러진 햇빛

  퍼져 사라지는 빛


  좋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완전히 다른

  좋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전문. P.10)




  대신 나는 이우성이 쓴 시집의 발문 “안녕, 단어”를 읽고 현대시를 읽는 방법에 대하여 힌트를 받았다. 이에 대해 얘기해보자.


  시인이 “자유로운 항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것이 시화詩化 한다. 떠올린 걸 시로 쓰지 않으면 시인이 아닐 터이니. 근데 “자유로운 항해”라고 하면 ‘항해’에 힘이 팍 가서 별로 ‘자유’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 “자유와 항해”라고 적어보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이번엔 “자유”라고 하는 것보다 움직임/흐름이 자유와 비슷한 이미지를 주는 ‘구름’ 혹은 ‘오후’라고 하면 어떨까, 라고 사고가 확장되어 이제 “구름과 항해”와 “오후와 항해”라고 썼다. 이러고 나서도 시인은 이것들 위에 두 줄을 그어 버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오후의 빛”이라고 쓴다.

  이제 거의 모든 독자는 “오후의 빛”을 읽으면서 이것이 “자유로운 항해” 또는 “자유와 항해” 개별적인 단어 “자유” 그리고 “항해”와 어떤 연결이 지어지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이우성은 여기서 말한다. “오후의 빛”을 읽고 시의 본질, 어떤 시인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라고. 아울러 반드시 본질을 발견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본질을 발견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의 단어들, 문장들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를 떠올리는 편이 훨씬 유익"하단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안단다. 나는 아닌데. 하여튼 이우성은 같은 시인이라서 그런지 그게 가능하단다. 자칭 똑똑해서. 똑똑한 이우성은 애당초 눈에 보이는 단어와 문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여서 어떤 의미를 만드는지에는 관심이 없으며, 단어란 마침내 도착한 어떤 것, 더 멀리 가게 될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고 한다. "어떤", "어떤"."어떤"..... 염병할. 그 "어떤"이 도대체 뭔데? 비겁하게 자기도 모르니까 그냥 "어떤", "어떤" 그리고 "어떤", 한 번 더 "어떤".

  즉 단어와 문장의 본질이 아니라 시 안에서의 방향성과 운동성이 더 중요하다고, 물론 어떤 시인의 어떤 시에서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를 유이우는 위에서 말한 인터뷰를 통해 시의 "리듬감"이라고 표현했다.

  인터뷰어가 질문한다. “연을 짧게 치는 시가 많더라고요?”

  인터뷰이 유이우가 답한다. “빨리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후루룩 쓰고 막히면 저는 그 시를 버려요. 리듬감에 성공한 시만 살리고요.”

  그렇구나, 유이우는 시를 잔치국수 먹듯 후루룩 쓰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인이구나.


  유이우의 시를 읽는 암호해독기는 “리듬감”이었다. 유이우를 읽으면서 리듬감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는 그러니까 온전히 독자 책임이다. 하여간 시를 읽는 일도 점점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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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9-29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W.G 제발트 <이민자들>
목요일, 하워드 진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금요일, 에드워드 기번 <로마제국 쇠망사 6>

잠자냥 2023-09-29 09: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목요일 거 왠지 별점이 예상되긴 합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0:40   좋아요 0 | URL
별 셋입니다. 모노 드라마 희곡인데, 만일 편집까지 감안하면 별 둘이고요. ㅎㅎ

잠자냥 2023-09-29 10:41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혔다! ㅋㅋ 저도 예전에 읽었는데 아무리 진 선생이지만 역사책 쓰는 거하고 문학 쓰는 건 다르구나! 했습죠. 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09-29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책 내지 말아야 겠어요 팔백작님한테 걸리면 말 다 안 하고도 디지게 맞는 거임…

Falstaff 2023-09-29 10:21   좋아요 1 | URL
그래도 내셔요. 한 번 보게. ㅋㅋㅋㅋ

독서괭 2023-09-29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시는 분명히 감동을 주지만.. “어떤, 어떤, 어떤…” 이거 보니 왜 모르겠는지 좀 알 것 같네요 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0:39   좋아요 1 | URL
저는 ˝어떤˝이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합니다. ㅎㅎㅎㅎ
물론 쓰는 사람 마음입니다만. 왠지 좀 자신이 없거나, 비겁해보이지 않으셔요? ^^

Falstaff 2023-09-29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쓰려 했는데..... 참지 못하고 꽝!

˝시의 단어들, 문장들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 혹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이게 시의 본질을 발견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발문을 쓴 시인 이우성은 이 말을 쓰고 콱 막혔을 겁니다. 아니면 자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도 잊었거나. 그러니까 자꾸 ˝어떤˝을 남발하게 되지 않았겠느냐, 하는 의견입니다. ˝어떤˝을 자주 쓰는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
˝어떤˝은 틀림없이 언어의 전염병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09-29 12:14   좋아요 2 | URL
제가 또 이런 거에 걱정이 많아가지고 자기 검열 차원에서 블로그 검색 해 보니 제 어떤은 281개 백작님은 700개여서 휴우 이 정도면 나 합격이네 오히려 상위권이야 이러고 안도하고 갑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09-29 12:1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내가 밋쵸요!

반유행열반인 2023-09-29 12:26   좋아요 1 | URL
저는 하여간에 를 너무 많이 쓴다 싶어 이거도 돌려보니 80여개로 생각보다 양호하고 팔백작님 하여간은 500개가 넘어서 부사어는 그냥 글 개수에 비례하는 구나 싶어 넘어갑니다 ㅋㅋㅋㅋ

2023-09-30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9-30 1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