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나데 대산세계문학총서 185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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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재미나게 440쪽까지 달리다, 술 약속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일단 덮음. 내일 다 읽고 써야겠지만 오늘 오후나 밤에 이 책 검색해보고 혹시 안 사실 분 있을까봐 한 마디 안 할 수 없음. 명작 까지는 아니지만 바로 아래 자리 정도는 너끈하게 차지함. 하나도 안 야한데도 겁나게 재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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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0-26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마만에 5별 주는겨?
독자 평은 11월 27일.

잠자냥 2023-10-26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Falstaff 2023-10-26 16:18   좋아요 2 | URL
올해 광복절 이후 첫 5별!

레삭매냐 2023-10-26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좀 더 일찍 봤다면
이창래 선생 신간 지르면서 같이
주문장을 날렸을 텐데 아숩네요.

Falstaff 2023-10-26 18:51   좋아요 1 | URL
오늘만 날입니까!

망고 2023-10-26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방금 책 주문 하고 왔는데 이 글을 좀만 일찍 봤으면 이 책도 샀을텐데요ㅠㅠ

Falstaff 2023-10-26 18:51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 책은 소장용입니다!

페넬로페 2023-10-26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야겠어요 ㅎㅎ

Falstaff 2023-10-26 18:51   좋아요 1 | URL
주저하지 마셔요. ㅎㅎ

다락방 2023-10-26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지?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보자.

Falstaff 2023-10-26 18:53   좋아요 1 | URL
그럼요, 작가 사진 가린 채 읽으면 여지없이 여성이 쓴 소설이라고 판정할 겁니다.

우끼 2023-10-26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고맙습니다ㅠ

Falstaff 2023-10-26 19:08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제가 고맙지요. ^^

꼬마요정 2023-10-26 2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진짜인가요. 지금 계속 장바구니에만 있는데 사겠습니다!!

Falstaff 2023-10-27 05:22   좋아요 1 | URL
옙. 손가락에 힘 줘서 클릭 하셔요!!

잠자냥 2023-10-27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들 산다며 세일즈포인트 왜 어제랑 똑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10-27 09:27   좋아요 1 | URL
시장조사 중입니까?ㅋㅋㅋ

우끼 2023-10-27 21:1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모아서 한꺼번에 사려고 ㅌㅋㅋㅋㅋㅋ 자냥님 그러고보니 자냥님도 아직 안사셨나보네요! 세일즈포인트가 그대로라면…(괜히 자냥님께 화살 되돌려드리기)

반유행열반인 2023-10-27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안 야한데도 에서 일단 거름... 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0-27 20:21   좋아요 2 | URL
ㅎㅎㅎ 눈도 좋으셔요, 열반님은. 다 읽었어요! 재미나요! 거르지 마세요!!!

반유행열반인 2023-10-27 20:33   좋아요 2 | URL
원래 하던 대로 여기 있는 사람 다 - 보고 나중에 조용할 때 볼게요 ㅎㅎ
 
악의 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9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이현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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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휴머니스트의 세계문학 시리즈는 자주 낯선 작가를 소개하여 독자에게 다양한 읽을 거리를 선사해주는 미덕이 있다. <악의 길>을 쓴 그라치아 델레다Grazia Deledda도 처음 들어본 이탈리아 작가인데, 이탈리아 반도라기보다 반도 왼쪽에 떠 있는 두 개의 섬 가운데 아래쪽에 있는 샤르데냐 섬 특유의 문화와 민속을 작품 속에서 그대로 유지한다. 물론 제국 로마의 지배를 받았지만 순종 로마인들이 보기에 야만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곳이라 세월이 많이 흘러도 본토와 많이 다른 독특한 문화와 단어 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저자 그라치아 델레다는 1871년생이다. 조선이 제물포조약을 맺고 나라를 연 것이 1876년, 그 이전에 태어났고, 작품의 수도 만만치 않으며, 게다가 쉰다섯 살 때인 1926년에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는데, 아무리 이탈리아가 통일도 못하고 유럽에서 빌빌거렸다 해도, 이이의 이름이 아직도 귀에 설다면 이거 뭔 문제가 있는 거 아냐? 하여간 <악의 길>을 읽어보니까 여태 유럽의 문학작품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이곳 샤르데냐 섬 문화와 사람들의 행동양식 같은 것이 색다르고 흥미롭다. 어떻게 보면 시칠리아나 나폴리 사람들하고 비슷한 면도 있는 거 같다. 19세기 여성 작가가 유럽에서도 유독 강한 벤데타 문화를 작품에 자세히 서술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그런 것도 얼핏 체감할 수도 있다. 하도 오래 이 민족한테 얻어 맞고, 저 민족한테 코피 터진 세월을 보낸 지라 재까닥 적응하는 순발력, 반대로 주민들 특유의 텃세 같은 것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1871년생이 샤르데냐 섬에서 가정교사한테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라틴어를 배웠다면 소위 은수저 계급이며 어린 시절부터 집안에 하인, 하녀를 두고 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큰 갈등이 바로 주인과 하인 간의 계급 차이에서 벌어지니 하는 말이다.


  때와 장소는 1896년 이탈리아 샤르데냐 섬의 작은 누오로 시. 작가 그라치아 델레다 역시 낳고 자란 곳이다. 세상은 소위 벨에포크 시대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벨에포크의 은총의 손길은 저 변두리 샤르데냐 섬에서도 변두리 누오로 시까지는 미치지 못했고, 간신히 은총이 왔다 치더라도 일반 농민들한테 손길은커녕 고랑내 나는 입김이라도 한 번 훅 불어줄 수 없었을 터. 인민들은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죽느니 살거나 목구멍에 친 거미줄 걷어내기에도 허덕였던 건 꼭 눈으로 안 봐도 삼천리였다.

  동네에 남의집살이 하는 피에트로 베누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예전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가난한 것들이 잘 생기면 여자나 남자나 팔자가 좋지 않게 풀리는 것이 일반 상식이었으니, 바로 이 피에트로 총각이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에다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다. 청년은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늙고 가난한 숙모 두 분이 지원을 해주어 그럭저럭 자라 이제 남의집살이를 하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집을 수리하고 마차와 황소 두 마리, 개 한 마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그때 비로소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 지금 지내는 집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준다고 해서 니콜라 노이나 씨 집으로 요새 말로 이직을 하러 가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그가 면접을 보러 간다는 건 동네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니콜라 씨 가족과 먼 쇠락한 친척 사비나가 잡화점 여인에게 한 이야기가 퍼진 것이었다. 사비나 역시 호리호리한 몸매의 사랑스러운 금발 아가씨로 피에트로와 서로 고백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눈이 맞은 상태였다. 피에트로가 청혼만 하면 ‘곧바로’ 응하지는 않겠지만 ‘거의 곧바로’ 승낙을 할 정도로. 이런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 사이에 점점 더 고양되는 것이 일반상식이다.


  니콜라 노이나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젊어서 누오로 시에서 제일 잘 생겼다고 해도 시비 걸 사람이 거의 없었을 정도의 미남이었다. 그러나 누오로 지역 토박이가 아니라 램프용 기름 행상을 하는 떠돌이 출신으로 키 작고 좀 덜 생긴 부잣집 루이사 아가씨를 꼬드겨 결혼에 성공해 하루 아침에 시에서 일류 명사가 된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떠돌이 행상이 이 지역에서 최상급인 “프린치팔레” 계급의 아가씨와 결혼을 했으니 말 다 한 거지. 실제로 작가 델레다는 작 초반에 노이나 집안을 일컬어 “이 근방의 왕”이라고 했을 정도다. 물론 뒤로 가면 갈수록 앞에서 했던 건 좋게 말하면 과장이란 것이 들통나기는 한다. 이런 니콜라 씨가 하루는 포도주 사러 더 큰 도시 올리에나에 갔다가 잔뜩 취해 돌아오면서 말이 푸짐하게 싸 놓은 개똥을 밟았는지 푸드득 거리는 바람에 말 잔등에서 떨어져 다리가 똑,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따로 하인을 두지 않고 직접 일을 하던 니콜라 씨가 더는 일을 하지 못해 하인을 한 명 고용하려는데 피에트로가 지원을 한 것. 물론 합격이다. 미남은 미남을 알아보잖여? 그건 다음으로 하고, 이 집에 마리아라고 하는 젊고 예쁜 딸이 있다. 피에트로하고 딱 어울리는 나이고 아빠 닮아서 통통하니 상당한 미인이다. 엄마는 자신이 생기기만 멀쩡하지 글도 모르고 재산도 없는 남자와 결혼한 것을 후회해, 마리아는 부자 또는 대학 졸업생, 아니면 대학을 졸업한 부자와 결혼시키기로 작정을 해버렸다. 그리고 정말로 마리아는 피에트로를 단지 하인 그 자체로만 보고, 일을 시키고, 잔소리를 늘어놓고 하는 거다.

  초반에 니콜라 씨 집으로 오는 도중에 피에트로가 이 집 따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작품의 복선으로 둔 것이긴 하지만 피에트로가 하인 일을 시작하자마자 천성이 구두쇠이기도 한 마리아는 피에트로가 일 하는 곳곳마다 따라다니며 그가 작물을 가외로 챙기는지, 포도를 따서 먹어치우는지 끊임없이 감시를 하는 바람에 정나미가 똑 떨어져버리고, 갈수록 허해지는 마음을 마리아의 가난한 친척이자 역시 남의집살이를 하고 있는 예쁘고 착한 사비나 생각으로 채우고 있었다. 사비나는 마리아네 농원에서 배를 수확할 때 와서 일을 도와준 적이 있어서, 바쿠스의 후예들한테는 큰 축제를 겸하기도 했던 포도 수확에도 사비나가 올 줄 알았는데, 일이 바빠 올 수 없어 피에트로는 심통이 잔뜩 난 상태로 포도를 따야 했다. 그대로 인용하면, “슬프고 화가 났다.” 그리하여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쓸데없이 “로사, 당신은 샤르데냐의 순례자……” 노래를 하며 길을 가고 있었는데, 진짜로 동네 아가씨 가운데 “가시돋친 로사”라는 동네에서 제일 심술궂고 질투 많고, 성질마저 드러운 아가씨가 나타나 피에트로의 개 옆구리에다 돌을 던지는 등 패악질을 하다가, 소설을 뒤흔들어버리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맡는다.


  “사비나는 당신을 조롱하고 있어요. 당신만큼 가난하지 않고 거칠지도 않은 청년과 사랑에 빠졌으니까요……. 당신에게 가서 이 말을 전하라고 일러줬어요. 당신을 괴롭히고 화나게 하라고…….”

  “누가? 사비나가?”

  “아니요, 마리아가요. 피에트로 베누, 마리아는 사비나를 질투해요.”

  “무엇 때문에?”

  “당신 때문이죠, 멍청이!”


  피에트로는 확 돌아버린다. 어여쁘고 마음씨 고운 사비나는 이 말 한 마디로 마음 속에서 거의 완벽하게 소거되고 이제 그는 주인 아가씨, 아름답고 풍만한 마리아와의 사랑을 꿈꾸며 키스 한 번 해보았으면, 몸을 한 번 만져봤으면, 하고 이루어질 리가 없는 허공을 밟기 시작한다. 마리아 역시 피에트로를 관찰해보니 잘 생기고, 정직하고, 튼튼하고, 일 잘하고, 돈 없는 거 빼고 어디 한 군데 빠지는 데가 없어 점점 호감이 쌓여가기 시작했던 차, 이들은 포도밟기와 압착기 작업부터 급격히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피에트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마리아의 허리에 손을 두른 채 키스하는 데 성공하고, 이때부터 일사천리 둘은 가망 없는 사랑을 시작하게 되니, 저 가시돋친 로사, 하긴 로사, 가시 없는 장미를 어디다 쓰겠는가만, 성격 좋지 않아 청년들한테 눈길 받는 법이 없었던 맹랑한 아가씨의 심통난 한 마디 때문에 두 청춘과 이어진 몇 명의 신세가 골로 가버리고 만다.

  말은 언제라도 흉기가 될 수 있다. 삼가고 또 삼가야겠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양날의 검. 아무쪼록 내가 한 말 한 마디, 내가 쓴 글 한 조각에 마음 상하신 분들은 사과를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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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0-26 08: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남은 미남을 알아본다더니 골드문트 님도 피에트로를 알아보셨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0-26 07:11   좋아요 1 | URL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18 킬로그램의 살덩이가 몸에서 빠져나가니까, 얼굴이 홀쭉해지는 것이 십대 시절 모습이 다시 돌아왔다는 거 아닙니까! 주름이 좀 많아져서 아쉽지만 말입니다. 머리숱도 형편없어지고요. ㅋㅋㅋㅋㅋ
요즘 마트 가면 늘 하는 일, 쌀 20kg 짜리 한 번 들어보고 오는 거. 이만큼 빠졌단 말이지....하면서요. 고민은.... 맞는 옷이 없어서 늘 포대자루 같은 걸 걸치고 다닌다는 점입니다.

다락방 2023-10-26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재미있겠다 재미있겠어. 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Falstaff 2023-10-26 07:50   좋아요 0 | URL
재미있지만 추천할 정도는 아닌 선입니다.

잠자냥 2023-10-26 08:38   좋아요 0 | URL
그거 일전에 읽은 그거(제목 벌써 까먹음 ㅋㅋㅋ) 그거보단 재미납니다.

다락방 2023-10-26 09:43   좋아요 1 | URL
저도 제목이 생각 안나요. ㅋㅋ 형수를 사랑하는 자극적인 내용인데 세상 재미없었던 그 소설 말씀이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0-26 10:15   좋아요 0 | URL
네 ㅋㅋㅋㅋ 와 아직도 생각 안 나. 무슨 갈대였던 거 같은데...

다락방 2023-10-26 11:45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ㅇ 들어가는 글자로 시작하는 사람 이름이 제목이었을 겁니다.

다락방 2023-10-26 11:46   좋아요 0 | URL
찾아보고 옴. 엘리아스 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10-26 11:48   좋아요 0 | URL
미쳐 갈대는 왜 나온 거죠? ㅋㅋㅋㅋㅋ
아 내가 심각하게 갈등했었나봐요. 이걸 끝까지 읽느냐 덮느냐...ㅋㅋㅋㅋㅋㅋ
 
배꼽 창비시선 286
문인수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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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수의 시는 쓸쓸하다. 스산하고 애잔하다. 그러나 시인의 시선이 난감의 언덕을 넘지 않아 궁상스럽지 않다. 시집을 열자마자 곧바로 독거노인과 개펄 일을 마친 쪼그랑 할머니다. 데뷔 28년 만에 첫 시집을 낸 3단短short, 체구가 작고 가방끈이 짧고 극약같이 짤막한 시만 쓰는 서정춘이며, 씨멘트를 반죽해 벽을 바르는 미장이 사내였다가, 맹물에 밥 말아 밥 떠넣고 장 떠넣고 밭에 나가 그 길로 세상 등진 경운기 할아버지이고, 법원 앞 신호등 무시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는 무법자 할머니이기도 하다. 어쩌면 가여운 모든 이들한테 시인은 “이만할 때 고만 돌아가이소.”라고 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시집의 해설을 쓴, 시인한테 띠 동갑 아우이지만 많지 않은 나이에 고인이 된 평론가 김양헌은 “꼭지는 슬프다. 질기고 질긴 슬픔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미 울음부터 들은 꼭지. 계집 꼭지는 그만 똑 떨어지고 사내아이 점지하라는 부적, 꼭지.” 라고 해설을 시작하여 마치 이 시집을 남성한테 핍박받은 여성의 박복한 모습을 그린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 여지가 있으나, 읽어보면 조금 오버한 거 같다. 김양헌이 말한 “꼭지”는 시집에 제일 먼저 실린 시의 제목이다.



  꼭지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여생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 떨어져나가듯 저, 어느 한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전문)



  장면을 머리에 그릴 수 있다. 독거노인 꼬부랑 할머니가 동사무소에 가서 일을 보고 달동네 언덕 골목길을 애터지고 느리게 걸어 올라가다가 힘이 드는지 전봇대 아래 쉬어 가는 길, 난데없이 등장한 노란 민들레꽃. 꼬부랑 할머니한테는 노란 것이란 젖을 못 먹어 노랗게 뜬 아이의 얼굴을 연상시킬 뿐이라, 탓하니 가난해서 젖조차 말라버린 자신의 젖꼭지, 이미 그 시절도, 노랗게 뜬 얼굴의 아이도 주전자 뚜껑 꼭지 떨어져나가듯 새처럼 날아가 혹시 모르지, 늙은 가슴 숨 들이마셔 한숨 한 번 폭, 쉬고 펴지지 않는 무릎 억지로 끌고 다시 휘적휘적 골목길 걸어 올라갔는지. 인생 뭐 있나. 한 번 나와 살다가 가면 그만인데, 하필 나한테 이런 신난곤난이 떨어져, 한탄 한 번 하고 싶은 삶이 어디 한두 개냐마는, 그것도 신난곤난 나름이지 문인수의 손끝은 제일 신난한 삶을 이젠 거의 다 마친 이들을 찾아간다.



  만금이 절창이다



  물들기 전에 개펄을 빠져나오는 저 사람들 행렬이 느릿하다.

  물밀며 걸어들어간 자국 따라 무겁게 되밀려나오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수장되는 길, 그리 길지 않지만

  지상에서 가장 긴 무척추동물 배밀이 같기도 하다. 등짐이 박아넣는 것인지,

  뻘이 빨아들이는 것인지 정강이까지 빠지는 침묵. 개펄은 무슨 엄숙한 식장 같다. 어디서 저런,

  삶이 몸소 긋는 자심한 선을 보랴. 여인네들…… 여남은 명 누더기누더기 다가온다. 흑백

  무성영화처럼 내내 아무런 말, 소리 없다. 최후처럼 쿵,

  트럭 옆 땅바닥에다 조갯짐 망태를 부린다. 내동댕이 치듯 벗어놓으며 저 할머니, 정색이다.

  “죽는 거시 낫겄어야, 참말로” 참말로

  늙은 연명이 뱉은 절창이구나, 질펀하게 번지는 만금이다.  (전문)



  제목에서 ‘만금’이 뭘까? 많은 돈萬金은 아닐 거 같고. 조개잡이 할머니 대사가 전라도 사투리인 것을 보면 부안 개펄, 만금, 이제 바닷물로 수몰이 됐거나 내가 모르는 지역으로 하여튼 새만금이 들어서기 전의 근처 어느 곳 아닐까 싶다.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곳으로 썰물이 지면 조개잡이들이 물을 밀며 걸어 들어가 배밀이 같이 개펄을 뒤집어 숱한 바지락 등을 잡고 밀물이 들어오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돌아가는데, 등에 진 무거운 조갯짐 망태의 무게를 견디기에 이제 너무 늙은 할머니. 기어이 저린 다리로 귀환해 망태를 부리며, “죽는 거시 낫겄어야.” 하는 대사가 늙은 연명, 늙어서 명을 늘이는 동안의 절창이라는 시인. 그리하여 시인은 시집의 저 뒤편에서 고향 경상도 성주 사투리로 “이만할 때 고만 돌아가이소.”라고 할 수 있었을 테지. 연명도 연명 나름, 독거노인 꼬부랑 할머니나 조갯짐 망태 진 만금 할머니나, 비닐봉지나 다 거기서 거기다.



  비닐봉지



  차들이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연신 치고

  달아난다. 비닐봉지는 힘없이 떴다 가라앉다 하면서

  찢어질 듯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지만 도통

  소리가 없다. 연속으로 들이닥치는 무서운 속력 앞에, 뒤에, 두둥실

  웬 허공이 저리 너그러운지.


  누군가의 발목에서 떨어져나온 그림자, 그늘인 것 같다. 과거지사는 더 이상 다치지 않는다. 이제

  적의 멱살도 박치기도 없는 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또 잔뜩

  바람을 삼킨다. 대단한 소화능력이다. 시장통,

  거리의 밥통이다. 금세 홀쭉하다.  (전문)



  운전하면서 여태 아스팔트 위를 나는 검정 비닐봉지 한 번 못 본 사람은 없을 터. 바람이나 차량의 속도에 의한 공기의 이동에 따라 넘실넘실 춤을 추는 것 같이 날아다니다 이 차에 치고, 저 차에 치다가 결국 차의 뜨거운 머플러에 녹아 한 세상을 마감하던지, 그냥 그렇게 휘날리며 시간을 죽이다 운 좋게 인도로 날아들어 마음씨 좋은 행인에게 걸려 쓰레기통에 들어가거나, 청소부에 의하여 장사지낼 검정 비닐봉지. 시는 절대 한 번도 기미를 보이지 않지만 나는 시를 읽으면서 왜 슬프고 쓸쓸했을까? 다정도 병인 양한다고? 아마 비행 또는 활무活舞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위태한 도로에서 무거운 쇳덩이에 충돌 당하며 흐느적 거리는 때문이겠지. 이미 알맹이를 내주어 빈 껍질만 남은 것이. 사람이나 비닐봉지나 자기 속의 것을 다 내준, 시간의 끝 무렵은 늘 그런 것이겠지. 문인수가 시집을 낼 때의 나이 예순 셋. 그래, 이제 이런 시들을 쓸 때가 됐었다. 이왕 쓰는 김에 조금 더 오래 써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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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고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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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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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력적인 작가의 매력적인 작품 <내 말 좀 들어봐>의 후속편이다. <사랑, 그리고>를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거의 반드시(꼭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내 말 좀 들어봐>를 먼저 읽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독후감을 쓰기에 앞서 전작의 스토리를 대강이라도 소개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웃기지?

  주인공 격인 등장인물은 세 명. 스튜어드 휴스, 나이젤 O. 러셀, 반은 프랑스 반은 영국계인 질리언 와이엇. 스튜어드 휴스는 전형적인 잉글랜드 인으로 유머감각도 없고 낭만이나 인생의 선망도 없이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계획적으로 쌓아가는 범생이. 나이젤은 독특한 천재형으로 여러나라의 언어를 자유스럽게 구사하며 음악, 미술, 문학, 철학 등 모든 방면에 구애받지 않고 2박3일간 구라를 풀 수 있는 골통 낭만형 인간으로 그만큼 실생활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이젤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하다가 갑자기 나이젤을 버리고 O, 즉 올리버로 불리기 바라면서 자신의 은행 계좌마저 올리버 러셀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한다. 미술품 복원 일을 하는 질리언은 어린 시절에 영국인 아버지 고든 와이엇 씨가 아내와 딸 질리언을 버리고 딸이 아닌 질리언과 함께 사랑의 도피를 떠나 질리언의 이복동생 질리언을 낳고 사는 바람에, 프랑스인인 어머니 마리-크리스틴과 함께 영국에서 살다가, 나이 서른이 가까이 오자 에잇, 결혼이나 해버릴까, 싶어서 짝짓기 앱에 접속해 만난 스튜어드와 사랑을 맺어 결혼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둘의 결혼식 때 신랑과 죽마고우 사이였던 올리버가 들러리 겸 증인으로 시청 공증센터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해서 그만 한 눈에 신부한테 반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신혼여행에 쫓아가 첫날 밤 술을 잔뜩 퍼마시고 신랑 신부 사이에 누워 까무러쳐버릴까, 잠깐 생각하다가 주머니에 돈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대신 여행에 돌아오자마자 스튜어드의 출근과 동시에 득달같이 꽃다발을 들고 현관문을 쾅쾅쾅 두드려 질리언이 문을 열기만 하면 큰 소리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외치고 도망을 쳐버린다. 오후가 되어 스튜어드가 퇴근해 집에 들어온 것을 보면 속으로 시간을 재 퇴근 후 개인위생 시간이 분명한 짧은 순간에 전화를 해, 질리언이 수화기를 들자마자 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큰 소리로 고백을 해버린다. 질리언의 기분이 어떻겠어? 어떻긴 어때, 한 남자가 자기더러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그것도 가만 보니 장난이 아니라 진심인 거 같은데 어떻게 불쾌할 수 있겠어? 그리하여 질리언은 거의 즉각적으로 스튜어드와 이혼을 감행하고 올리버와 새로 결혼을 해버렸다. 근데 스튜어드가 생각해보니 자기 결혼할 때 친구 올리버가 왔는데, 올리버가 결혼하면 자신도 가서 축하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갔다. 이것으로 세 명의 인생살이 난장판, 또는 난장판 인생살이를 시작하는데, 스튜어드가 이마빡으로 올리버의 콧잔등을 받아버려 코피가 줄줄 터지기도 하고, 프랑스 툴루즈에 그림 복원 일이 많다고 해 그리고 이사를 한 올리버-질리언 부부는 작은 마을의 한 가운데서 대판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올리버가 질리언을 두드려 패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딱 이 때, 맞은편 호텔 객실에서 창문을 통해 사진 한 컷을 찰칵, 찍은 인물이 있었으며, 그게 스튜어드였던 거다. 물론 뒤로도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이 정도만 알고 <사랑, 그리고>를 읽기 시작해도 충분히 작품을 즐길 수 있다.


  독후감을 시작하기 전에 아쉬운 점을 먼저 밝히면,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 <내 말 좀 들어봐>와 <사랑, 그리고>가 지금 말로는 품절, 내용상 절판이어서 출판사 열린책들이 당분간 중쇄를 찍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역자 신재실 선생이 줄리언 반스보다 다섯 살이 더 많아서 지금 여든 둘이라 다시 판을 내는 건 쉽지 않다고 보고, 출판사가 자기 회사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개정판을 내지 않으면 개인들이 책꽂이에 꽂아 놓기 쉽지 않을 터, 줄리언 반스가 노벨문학상이라도 받으면 그때야 개정판을 찍으라는 내 말을 들을 지, 갑갑하다, 갑갑해. 누가 번역을 하든지 나이든 신선생보다 더 좋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말씀이야.

  <내 말 좀 들어봐> 이후 신자유주의의 시계는 능률능률 흘러가 어느덧 10년 이상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그동안 스튜어드는 워싱턴에서 금융회사에 근무하며 여전히 질리언의 엄마 마리-크리스틴 와이엇 여사의 재정을 관리해주다 볼티모어로 옮겼고, 테리라는 여자와 결혼해 몇 년 살다가 이혼해 버린 후, 그곳에서 새삼스레 발견한 미국이라는 나라, 기회를 잡아 한 친구와 함께 식당을 열었다. 식당에서 크게 재미를 보고, 친구에게 적절한 돈을 받고 자기 지분을 판다. 이후 다른 동업자와 함께 다시 식당을 열어서 맛집으로 키워 또다시 돈을 받고 팔아, 이제 식당업은 그만 두고 유기농 식품 유통 사업을 벌여 다시 한번 대박을 친다. 꽤 돈을 모은 스튜어드는 영국으로 날아와 얼핏 시장조사를 해보니 영국, 런던 지역에서도 유기농 식품 사업을 하면 꽤나 전망이 밝을 것이라 여겨 정말로 사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원래 진짜 사업을 할 목적으로 온 것인지는 좀 애매한 것이, 책을 시작하자마자 스튜어드는 10여년 만에 올리버 러셀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녕하신가!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스튜어드다. 스튜어드 휴스. 그래, 그렇고말고. 그렇다. 10년 전쯤 일이지. 그래 많이 변했어. 백발이 다 됐지. 반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수준이야.” 어쩌고저쩌고, 전화번호는 전화번호부 책을 보고 알아냈지, 소통을 시작하면서 사달을 낸다.

  에잇, 그것 참. 스튜어드는 왜, 어찌하여 이제는 잊거나 그저 가슴 속에서만 간직해도 마땅하고 충분한 옛 시절의 사랑을 굳이 오늘에 되살리려 하는 것일까? 아직 모른다고? 뻔하지, 십여 년 만에 귀국해서 처음 한 일이 질리언(분명히 올리버는 아니다)을 찾아내는 일이었으니 당연한 거 아냐? 정답은 책의 제목에 있다. “사랑, 그리고” 영어로 “Love, etc”. 스튜어드는 사랑에 인생을 건 인간형이기 때문. 반면에 올리버는 ‘그리고’, ‘기타etc’가 사랑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인간형이다. 질리언은 이 두 명의 극과 극 형질 사이의 한 점에서 적절하게 진동폭을 지닌 유연한 인간형이고.

  10여 년 전에 재산을 분할할 당시, 스튜어드와 질리언이 살던 집의 적정가 절반을 스튜어드가 질리언에게 현금으로 주고, 질리언이 올리버의 거처로 옮긴 적이 있었다. 당시 질리언이 아무래도 조금 미안하던 바, 시세보다 약간 덜 쳐서, 나쁜 말로 좀 밑지고 나가줬던 거였고, 그걸 스튜어드도 알고 있어서 자기는 크기만 크고 썰렁한 셋집에 살면서, 여태 좁은 집에서 살림도 하고 그림 보수 작업실로도 사용하는 질리언 가족, 부부 외에 두 딸을 합해 네 식구한테 옛집에 들어와 살도록 조치해준다. 당연히 여전히 돈벌이와 세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올리버의 처지를 감안하기도 했던 것. 그러나 세상에 좋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나? 한 사람이 보기에 정당하고 적절한 조치와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터무니없이 틀린 조치나 행위일 수 있으며 심지어 범죄행위일 수도 있는 것. 왜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이 두 소설 <내 말 좀 들어봐>와 <사랑, 그리고>가 1인칭 소설인데, 수시로 화자가 바뀌면서 각자 1인칭 화자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말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와 아내에게 배신을 당해 생각할 수 없이 깊은 내상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스튜어드. 그는 미국에서 십여 년간 객지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성공한 삶을 즐기면서도, 인간에게 유일한 사랑은 첫사랑뿐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강박이란 주변인의 끊임없는 조언에서 후천적으로 박힌 생각이 아니라 그냥 그런 체질이라서 그렇다. 전혀 밥벌이를 하지 못해 나중엔 하다못해 스튜어드의 사업체에 운송원으로 들어가 회사 사장 스튜어트한테 직원들이 훤히 보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실실 농담처럼 보스를 대하는 태도를 숨기지 못하는 사회 부적응자 올리버 역시 어머니의 자살에서 비롯한 유추로, 학습한 사회부적응이 아니라 기질적 사회부적응과 우울증을 보유하고 있는 거다. 완전히 다른 형질의 사람들 사이에 혼인이란 제도로 강하게 끼였었거나 낀 상태의 질리언.

  세상에나, 책 읽은 소감은, 스튜어드가 그냥 자기 혼자 잊고 살든지, 지 앙가슴에 묻고 살든지 했으면 자기는 자기대로, 올리버-질리언은 또 이이들 대로 불행하지만 이럭저럭 한 평생 살 수 있을 것을, 꼭 그렇게 인생을 주물러 터뜨려야 했을까, 하는 점.

  줄리언 반스가 여전히 휘황찬란한 문장을 날리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본편 만한 후속편이 드물 듯이 <사랑, 그리고>가 재미로 치면 <내 말 좀 들어봐>보다 약간 못 미치지는 않았어? 하여간 난 좀 그렇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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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0-20 0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화요일, 문인수 <배꼽>
목요일, 그라치아 델레다 <악의 길>
금요일, 오한기 <나의 즐거운 육아일기>

수이 2023-10-20 0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꼭 주물러 터뜨려야 속이 시원한 인간들이 존재하거든요 ㅋㅋㅋㅋ 저는 이 소설 못 읽었는데 읽어야겠어요, 도서관 간만에 가게 생겼네요.

Falstaff 2023-10-20 16:16   좋아요 0 | URL
맘 속으로야 천번이라도 주물러 터뜨리지요. ㅋㅋㅋㅋㅋ 하긴 맘 먹은 걸 진짜로 저질러버리니까 소설 주인공이라도 하는 거겠지만요.
<내 말 좀 들어봐> 부터 재미나게 읽으셔요!

유부만두 2023-10-20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 말 좀 들어봐> 첫 쪽만 읽어봤는데 스튜어드가 굉장히 껄렁하게 썰렁한 농담조로 나오네요. 재밌을거 같아요.

잠자냥 2023-10-20 10:39   좋아요 2 | URL
전 이거 <내 말 좀 들어봐>, <사랑 그리고> 둘 다 엄청 재미나게 읽었어요. 만두 님도 재미나게 읽으실 듯..
추천합니다만... 책 구하기 쉽지 않을 듯요.

Falstaff 2023-10-20 16:17   좋아요 0 | URL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무지 재미나요 강추!

yamoo 2023-10-20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두 작품 모두 있죠. 신재실 님이 번역한 열린책들 본 4권이 제게 있습니다..ㅎㅎ
이 두 작품 아주 재밌죠. 반즈는 초기 작품이 요즘 나오는 작품들보다 더 나은 거 같아요..^^

맞아요. <내 말 좀 들어봐>가 더 재밌어요. 근데 열린책들본 이전에 동인에서 나온 책도 있어요..ㅎㅎ

Falstaff 2023-10-20 16:19   좋아요 0 | URL
저도 신재실 번역으로 <고슴도치>하고 <레몬 테이블>을 사 두고 또 해를 넘길 거 같습니다. ㅎㅎㅎ 초기 작품이 읽는 재미는 확실한 듯합니다.
 
금색 큐큐클래식 6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큐큐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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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대표선수 미시마 유키오. 유럽에서는 세기말부터 시작해 늦어도 1920년대엔 서쪽 고개로 해 넘어간 사조였다. 그걸 죽자사자 70년대까지 부여안고 있었던 미시마 유키오의 인기는 나한테는 도저한 수수께끼다. 일본문학에 관한 한 대단한 편식을 하고 있어서,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본 문학에 무지몽매하기 때문에 잘 몰라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미시마 유키오의 인기는 어처구니없게 시인 김후란이 번역한 학원사판 <우국>의 한 구절을 한때 소설가라고 주장했던 신모가 슬그머니 카피했다는 말이 나온 이후인 것 같다. 중학교 다닐 때던가 방구석에 굴러다니던 <금각사>는 읽어본 적 있는데, 그땐 입 안에 여전히 젖내가 가시지 않았던 때라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도 몰랐다. 이후 그의 군국주의적, 천황제를 옹호한 이력을 들어서인지 여간해 손이 가지 않다가 <가면의 고백>과 《오후의 예항/짐승들의 유희》를 읽었다. 이 두 권으로 미시마 유키오는 끝을 냈으면 좋았겠는데, <오후의 예항>과 <짐승들의 유희>의 실망, 실망이라기보다 허탈을 기억하지 못한 채 기어이 도서관에서 상호대차까지 신청해 <금색>을 읽고 말았다. 금색禁色. 황금빛이 아니다. 금주, 금연하듯이 색을 끊으라는 금색이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색은 연애가 아니고 다분히 허리하학적인 의미에서 색이다.

  탐미주의라고 하면 말 그대로 아름다움에 탐닉한다는 건데, 이게 조금 발전하면 다른 모든 질서를 무시하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거의 모든 세기말 풍의 작가들, 별로 읽어보지 않았지만 카이절링이나 위스망스 같은 이들도 작품 속에서 “아름다움”을 위한 도덕의 파괴가 거의 노골적으로 등장한다. 기존 질서와 권위, 율법, 현존하는 미적 감각을 부정하고, 파괴한 후 극복하여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움인지는 조금 아리송한 결과를 초래하여, 작가들이 주장하는 퇴폐주의 비슷한 아름다움을 당시와 후세의 독자들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지는 그이들이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다. 미시마 유키오는 <금색禁色>에서 65세의 원로 유명 소설가 히노키 슌스케와 이폴리트처럼 아름다운 청년 스무 살의 미나미 유이치를 등장시켜, 객관성을 극단적으로 희생시켜 감각적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노 소설가가 유이치의 청춘 시절을 리모컨 컨트롤하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  1894년에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타고난 문재로 일본에서 명성을 누리는 소설가가 된 히노키 슌스케는 아쉽게도 대단히 못생긴 얼굴과 보잘것없는 체구를 지녔다. 그럼에도 이이의 소설이 워낙 좋은 평가를 받아 일문학사에 대단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그건 나중 일이고 20대 초반에 결혼을 한다. 처음 얻은 아내는 집안의 물건 가운데 좀 쓸만한 건 죄다 내다 팔아 돈으로 만드는 습관이 있어 이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아내는 조현병 증세가 있어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해 방지하는 주술을 쓰느라 상대 여성의 옷을 구해(왔다고 주장해) 그걸 페르시아 양탄자 위에서 불을 피우는 등 히스테리 증상이 도져 결국 또 한 번 이혼을 해야 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아내는 젊은 시절부터 우유배달 총각 등과 가리지 않고 바람을 피우다가 쉰 살이 됐을 때 슌스케와 함께할 추한 노후가 두려워 자기 나이의 반도 안 되는 청년을 부둥켜안은 채로 겨울 바다로 몸을 던져 동반자살을 하고 만다. 사체는 후에 파도에 떠밀려 아누보곶으로 떠밀려 올라왔는데 이미 용해된 두 육체는 젖은 닥종이처럼 붙어버려 피부를 서로 공유한 모양새였단다. 이를 억지로 분리해 아내는 화장을 원했지만 굳이 관에 담아 매장을 했고, 시신에 처리한 방식은, 내가 자판을 두드려 설명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세 번의 결혼과 열 번의 꼴사나운 추태로 끝난 연애 이후에 슌스케는 여성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증오에 싸이게 된다.

  올해 5월에 하코네 온천에다 작업실을 차리고 소설을 쓰던 슌스케 앞에 가벼운 늑막염 때문에 요양차 하녀와 둘이 내려온 열아홉 살 여자 손님 야스코를 알게 됐다. 도쿄의 유명 백화점 지배인의 딸인 야스코 역시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아가씨로 한눈에 할아버지가 히노키 슌스케 선생인 줄 알아채고 금방 친하게 지낸다. 이후 도쿄로 돌아온 야스코는 종종 슌스케의 집에 놀러 오는 사이가 됐다. 책을 열면 첫 장면이 야스코가 놀러와 등의자에서 쉬는 슌스케의 무릎 위에 스스럼없이 앉는 장면이다. 아무리 여자가 열아홉 살 처녀라도 비록 못생기고 늙고 점잖은 작가이기는 하지만 남자의 무릎 위에 앉아 아양을 떠는 장면을 읽으면서 둘이 이미 깊은 관계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독자는 파렴치한이나 변태일까, 정상일까? 게다가 65세의 슌스케가 손으로 야스코의 턱을 들고 키스를 하는 장면도 있는 바에. 하여간 이러다가 야스코는 집으로 돌아가고 이후 몇 주 동안 연락이 없다. 궁금해진 슌스케가 야스코의 집에 가서 하인에게 물어보니 친구하고 이즈 반도로 여행을 떠났단다. 하인에게 연락처를 얻어 득달같이 이즈 반도에 도착해 같은 여관에 체크인한 슌스케는 야스코를 찾아 해변가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슌스케의 눈에 들어온 아름다운 청년. 못생긴 외모로 태어나 평생 열등감에 시달린 슌스케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청년을 끔찍하게 증오한다. 타당한 건 아니지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를 꼼짝달싹 못하게 한다. 그가 바로 세가와 야스코의 약혼자이자 도쿄의 유명 사립대학에 재학중인 스무 살의 미나미 유이치. 완전한 청년, 완전한 외면의 미를 구현한 모습으로 평생 작가 히노키 슌스케의 꿈이었다. 그리하여 슌스케-야스코-유이치가 삼자대면을 하게 되고, 상황을 알아챈 유이치가 그날 밤 슌스케의 방으로 찾아와 둘 만의 대화를 나눈다. 슌스케는 아직 천사같이 순결한 몸이라는 것. 비록 어제 밤을 야스코의 옆자리에 누워 잤지만 결코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두 명 다 방을 거의 꼴딱 세우며 자는 척을 했단다. 이게 가능해? 깜짝 놀랄 일이지만 가능하다. 미나미 유이치는 오직 남자만 관심이 있었던 거였다. 그걸 야스코에게 말은 못하고, 대화는 얼마든지 좋지만 직접 피부가 닿는 일은 끔찍하게 어색해서, 견디다 못한 유이치는 노인 슌스케에게 선생께서 야스코와 혼인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쳐죽일 말까지 하고야 만다. 집안이 점점 곤고해져 자신이 결혼하기엔 돈도 모자라다면서.

  슌스케는 유이치의 성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야스코와의 결혼을 권유한다. 그가 슌스케의 관념이자 예술 작품의 화신이라 생각해서이다. 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기존 질서와 율법의 해체에 관한 많은 말을 하고, 괜찮다고, 괜찮으니 자신이 45만 엔을 무상으로 줄 터, 야스코와 결혼을 하란다. 이 늙은 잡놈 소설가 히노키 슌스케 하는 짓을 읽으면 저절로 쇼데를로 드 라클로가 쓴 <위험한 관계>에서 발몽 자작과 메르퇴이유 남작부인을 생각하게 된다.

  “결혼에 욕망은 필요 없네. 적어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인간은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법을 잊었네. 상대를 그저 장작개비라고, 방석이라고,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이라고 생각하게. 자넨 분명 거짓 욕망에 달아올라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걸세. 다만 거듭 주의할 것은 상대의 정신을 인정해선 안 된다는 점이야. 자네 역시 정신의 찌꺼기조차 남겨선 안 되네.”


​  이렇게 아름다운 청년 유이치는 야스코와 애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면서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서 허니문 베이비를 만들고, 유이치는 곧바로 도쿄 시내 곳곳을 다니며 게이 사회의 총아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 작품은 유이치의 문란한 행각이 중심이 되면서, 야스코의 가정생활과 출산, 슌스케 주위의 거물 등으로 확장한다.

  내가 경끼를 일으킨 것은 아무리 1950년대가 그랬다고 해도 슌스케와 기타 남자 등장인물들이 거침없이 여혐 대사를 쏟아내는 것과, 도대체 뭘 주장하는지도 헷갈리게 현학적인 단어와 구절을 쏟아내며 정신과 도덕률과 질서를 파괴하자는 “멀미할 정도로 과도한” 주장이며, 촌스럽게 게이 문학 자체가 아니라 천편일률적으로 젊고 어린 연애 상대를 찾아 문란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에 잊지 않고 하나 더, 슌스케의 세번째 아내 시신처럼 저절로 떠오르기까지 하는 잔혹한 장면의 여과되지 않은 묘사도 포함하자. 처참, 참혹한 시신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느낄 수 있다면 그건 별개로 하지만. 또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도 안 되고 마땅하지도 않은 마지막 장면. 그게 뭔지는 당연히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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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0-19 0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밀의 그 내용은 모르는 채 남겨두겠습니다. 그런데 은근 우리나라 노작가의 “은교” 생각이 나네요. 출판사 이름이 특이해서 (큐큐라니 ㅋㅋ에 ㅠㅠ 를 더한듯) 찾아보니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라고 하네요. 금색의 색은 이성애만 해당인가봐요.

Falstaff 2023-10-19 06:52   좋아요 1 | URL
옙. <은교> 생각하시는 분 종종 있더라고요. 저는 소설 안 읽고 영화만 봤는데 별 감흥은 없어서.... ㅎㅎㅎ (난데없이 이상 문학상 ㅋㅋㅋ)
재미있게 읽으신 분도 많습니다. 저 때문에 괜히 평가절하 하시고 그런 거 없기입니다.

은하수 2023-10-19 06: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시마 유키오 혹평할만합니다!
좋게말해 탐미주의죠... 전 더럽다고 느껴져요. 제 생각은 그런데 아름다울 미의 탐미라니...어디서 그걸 느낀단건지...
마지막장면도 전 안궁금입니다^^
저와 생각이 같으셔서 속이 후련!
합니다.

Falstaff 2023-10-19 07: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세기말 작가들 가운데 일부는 악마주의, 소년유괴와 식인, 고문, 적그리스도 등등 이런 거에 초점을 맞춘 사람도 있더라고요. 하여튼 저는 미시마, 이젠 좀 안 읽으려 합니다. 근데 도서관에서 눈에 띄면, 자신할 수 없다는 게 문젭니다. ㅜㅜ

yamoo 2023-10-19 09:18   좋아요 1 | URL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탐미주의의 최고봉이라고...저는 인정합니다. 네, 미시마 유키오 최고의 작품은 금각사입니다. 탐미주의가 무엇인지 모를 때 이 작품을 읽고 단박에 알았습니다..ㅎㅎ

yamoo 2023-10-19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뽈님의 감상문에서 혹평은 정말 오랜 만에 보는군요! 이런 혹평 아주 좋습니다! 피해갈 수 있으니까요..ㅎㅎ

Falstaff 2023-10-19 15:3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많이 쓴 댓글이랍니다.

꼬마요정 2023-10-19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탐미주의 하면 임노월 작가의 <악마의 사랑>이 생각납니다. 오디오 북으로 들었는데 정보석 님이 어찌나 맛깔나게 읽는지... 들으면서 욕이 나왔지만 이상하게 궁금해서 끝까지 들었어요. 근데 <금색>은 저하고 안 맞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 야무 님 말씀처럼 아주 좋습니다. 관심도 안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근데 폴스타프 님이 소개 안 해주셨으면 저는 몰랐을 책입니다. ㅋㅋㅋ 계속 모른 채로 있겠습니다. 탐미주의는 힘들어요.

Falstaff 2023-10-19 15:37   좋아요 1 | URL
임노월... 처음 듣는 작가네요. 검색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미시마 같은 사람하고 궁합이 잘 맞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읽으면 좋을 거 같긴 합니다. 근데 저는 별로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