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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오빠 ㅣ 창비시선 396
김언희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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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미만, 심혈관질환자, 기독교 엄숙주의자는 안 읽는 것이 만수무강에 좋음)
시인을 헷갈렸다.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을 낸 강기원하고. 김언희가 그 김언희인 줄 알았다면 시집을 살 때 훨씬 더 신중했을 듯하다. 뭐 그것도 팔자니까 괜찮다. 김언희의 《뜻 밖의 대답》을 읽고 용맹 용감한 시어들에 화들짝 놀랐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이의 이름을 다른 시인과 혼동해버렸으니 혹시 건망증 또는 초기 알츠하이머 아냐 이거?
김언희의 시어는 참혹하다. 《뜻 밖의 대답》을 읽을 때부터 알아봤다. “예를 들어 주방기구와 섹스하듯이, 너무 모멸적인 섹스 파트너, 그것이 너를 삼키듯이 토해내듯이” (《뜻 밖의 대답》, 민음사 2005. <예를 들어> 부분 p.13) 같은 구절은 오히려 이 시인이 잘 정제하여 다듬은 듯한 문장들일 정도로. 《뜻 밖의 대답》을 읽을 때, 김언희가 틀림없이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런 시어들을 골라 사용했을 터인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 거의 아무 시인도 사용하지 않는 회피단어들을 고의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시에 강한 특징을 주어 어필하겠다는 속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시인이 들었으면 기절초풍을 할 의심까지 했었는데, 《보고 싶은 오빠》를 읽어보니까 참혹한 명사와 동사들의 반복 사용이 또 묘하게 시를 읽는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다. 당연히 수고롭겠지만 다음 시를 소리내서 읽어보자.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
나는 모든 것이 흘레이면서 흘레가 아닌 흘레의 나라에서 왔어요 빨기 위해 생니를 몽땅 뽑은 어린 창녀의 입속 같은 곳에서요 나라 전체가 음란한 유치원인 곳에서요 나무랄 데 없는 시체들의 재롱*을 실컷 보다 왔어요 입덧과 동시에 구더기를 토하다 왔어요 나는 머리도 내장도 없어진 여자의 사인(死因)이 자해인 나라에서 왔어요 묵살 묵살 묵살이 살인의 한 방식인 곳에서요 길고 긴 묵살의 터널 끝에 몰살이 기다리는 곳에서요 나는 여자의 완성이 얼굴인 나라에서 왔어요 여자의 피부가 신분인 곳에서요 죽는 날까지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곳에서 왔어요 죽기도 전에 미라 먼저 된 여자들이 제 미라를 창밖으로 내던지는 곳에서요 나는 죽을 틈을 주지 않는 공중파의 나라에서 왔어요 흰 변기 위에 놓은 채 잊히고 만 황색 시인**들의 나라에서요 빗방울에도 살이 패이는 눈사람의 목소리로 귀여운 물방울의 목소리로 시를 쓰다 왔어요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 흘레 앞에도 ‘르’가 붙는 이 유명한 맛집까지요
* 헤르베르트
** 타나까와 슌타로오 (전문 p.17)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 (우리말 표기법에 따르면 “흘레” 대신 “를레”를 써야 하지만 뭐 그냥 넘어간다.) 파리에서 갈빗살 스테이크만 파는 맛집으로 특히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찾는 곳이란다. 그러니 김언희도 파리에 가서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에 들러 능청맞게 자기가 “눈사람 같이 귀여운 물방울의 목소리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구라를 풀고 있다. 귀엽다. 물론 시 속에 김언희가 풀어놓은 그로테스크하게 참혹한 광경은 별개로 하고 말이지. 이게 시냐고? 현대 시 읽으면서 그런 질문하지 마시라. 시집 몇 권 읽어본 바, 시 속의 의미나 본질을 찾는 행위는 말짱 필요 없는 시절이 왔다. 시를 읽으며 즉자적으로 느끼기만 하면 대빵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시, 무슨 식당 간판이 제목인 이 시가 유독 참혹한 시어로 되어 있는 것뿐 아니냐고 의문을 표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좋다. 그런 분을 위하여, 제일 앞에 나오는 시가 시집을 대표하는 경우가 흔하고 마침 짧기도 하니 그걸 읽어보자.
회전축
23도26분21초4119
지구의 기울기는
발기한
음경의, 기울기
이 기울기를
회전축으로
지구는
자전한다 (전문 p.11)
1953년생. 올해 일흔. 시집을 냈을 때 예순 셋. 63세의 중년여성이 본 발기한 남성의 음경 각도가 23도26분이란다. 북극와 남극점을 잇는 선이 23도26분 기울어져 있다는 거니까… 근데 여기서, 흠흠, 심각한 질문이 있는 바, 23도26분은 알겠는데 어느 방향으로, 설마 왼쪽이나 오른쪽을 꼬나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 그놈의 민대가리가 발가락을 내려다봤는지, 고개를 발딱 들고 쥔 아저씨 마빡을 올려다보고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하긴 뭐 발가락 쪽을 봤다고 해도 그게 얼마야? 그저 얼마간이라도 피식 쓰러지지만 않고 그렇게 버텨 주기만 하면 장땡이지, 그지? 이상한 감상이라고? 김언희의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감상문을 쓰지 않으면 그럼 어떻게 쓰라고? 이번에는 이 시집의 표제 작품을 인용해보자. 설마 또 그럴까, 싶지?
보고 싶은 오빠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 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찍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 찍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들이 됐나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지려, 하느님도 지리실걸, 낭심을 꽉 움켜잡힌 사내처럼,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전문 p.12~13)
어떤가? 저 앞에서 한 말을 다시 해보자. 내가 이 김언희가 그 김언희인 것을 알았으면 이 책을 선뜻 샀을까? 정말로 강기원인 줄 알고 골랐다니까 그래. 강기원의 문법도 좀 생식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막장, 참혹극으로 가지는 않는다. 하여튼 그래도 소리 내 읽어보면 또 그럴듯한 리듬을 타는 것이 발음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하여간 잘 굴러가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은 오빠>의 5연처럼 좀 지리긴 한다. 하느님도 지리실 거라는 데, 그것도 불알을 움켜 잡힌 사내처럼 지린다는 데 한갓 피조물인 우리야 좀 많이 지려서 흘러버린 들 또 어떠랴. 근데 그거 아시나? 5연에 보면 오줌을 지리는 게 전부 남자라고 보면 되는데 말입니다, 김언희는 나이는 많지만 여자라서 몰랐을 거다. 불알을 오지게 쥐어 잡혀도 오줌은 지리지 않는다. 죽거나 죽음 근처에 가면, 즉 거세게 불알을 쥐어 잡히는 극도의 고통/공포에 다다르면 말은 오줌을 지린다고 하는데 사실 그게 오줌이 아니다, 전립선 액이지. 방광보다 전립선이 더 요도에 가까이 있거든. 목매달아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보면 뭔가 몇 방울 지린다. 그걸 채취해서 현미경으로 보시라. 글쎄, 내 말이 맞다니까. 전립선 액이라니까. 육군행정학교 법의학 시간에 배웠다니까. 후진 독후감 읽고 그래도 뭔가 하나 얻어 가시라고, 오늘의 교양으로 알려드리는 거다.
김사인이 책의 뒤표지에 김언희가 또 “격렬한 자폭의 언사”를 저질렀다고 썼다. 격렬하게 자폭을 하면서 동시에 단정하단다. 얼음같이 찬 맨정신이란다. 물론 뒤표지에 쓰인 말이니까 다분히 주례사겠지만, 다른 시인도 아니고 김사인이 한 말이니 반 이상은 믿기로 하고 더 읽어보면, 김언희의 문장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말한 것처럼 참혹하고 어찌 보면 위악적이고, 하느님조차 지리게 만드는 논-필터링의 문장들. 근데 이상하다. 난 김언희의 시를 읽으면서 김사인이 낚아챈 “우리의 분노와 혐오가, 우리의 공포와 거룩함이 마침내 여기에 이른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건 아마 이런 거친 자폭, 참혹한 문장의 사용이 비극성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지 못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당연히 이건 아마추어 시 독자의 의견이니 심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김사인이 이야기한 김언희의 문장에 관한 시를 읽으며 독후감을 끝낸다. 제목을 제외한 원문의 글꼴은 전부 이탤릭체로 되어 있다.
문장들
아비의 낯가죽을 손톱으로 벗기는 문장, 어미의 뼈를 산채 바르는 문장, 젖이 아닌 것을 물리는 문장, 젖이 아닌 것을 빠는 문장, 갈보 중의 상 갈보, 죽은 몸을 파는 문장, 죽은 몸을 대패로 밀어서 팔아먹는 문장, 부위별로 값이 다른 문장, 구석에서 대가리가 떨어져나가도록 하고 있는 문장, 대가리가 떨어져나간 줄도 모르고 하고 있는 문장, 떨어진 대가리가 개미떼에 떠들려 뿔뿔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하고 있는 문장, 숨이 끊어진 다음에도 알을 까고 있는 문장, 컴컴한 물 밑에서 죽은 자의 항문을 쪽쪽 빨고 있는 문장, 창자까지 게워 바치는 문장, 다 게운 다음에도 더 게우는 문장, 부질없는 삽날을 물고 독을 질질 흘리는 문장,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성기로 가져가는 문장, 세상의 중심을 혀끝으로 벌려보는 문장, 나를 아홉 구멍으로 범하는 문장, 어떤 죽음도 이미 죽음이 아닌 문장, 내 죽은 얼굴에 오줌을 싸는 문장, 내 죽은 얼굴에 칼질을 하는 문장, (전문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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