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친화력 을유세계문학전집 127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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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러가 죽은 다음에 갑자기 팍 기력이 떨어져버린 괴테는 나이를 셈해보더니 벌써 환갑을 맞은 늙은이. 오히려 깃펜을 휘날리는 노익장을 과시하여 쓴 소설이 <선택적 친화력>. 생각 잘 했다. 몸을 움직여야 오래 산다. 괴테는 무려 23년을 더 살다 간다. 이 바이마르 공국의 추밀고문관 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은 몇몇 분이 알고 계실 터. 그래도 이렇게 괴테의 새 번역이 나오면 구태여 읽어보는 심사는 뭘까? 혹시 나도 괴테 님을 좋아하게 될 지 몰라서? 아니면 괴테를 싫어하는 이유를 더 보태고 싶어서?

  아니, 그거 말고, 나는 왜 괴테를 싫어할까? 괜히 유명하고 널리 존경받는 작가를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아마추어의 유치한 허풍일 수도 있겠다. 근데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막 떠들고 다니는 걸? 젊은 시절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싫고, 노년에 완성한 <파우스트>는 더 싫다. 내가 읽어본 추밀고문관 님의 작품 가운데 어떻게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는지, 나도 안타깝다니까. 이 <선택적 친화력>을 포함해서 말이지. 작품 속에 괴테가 나오는 것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이 토마스 만이 쓴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일 정도. 다른 작가도 아니고 토마스 만의 책을 “재미있다” 라고 쓰고 있다니까 그래.


  부유한 남작의 응석받이 외동아들 에두아르트는 옆 동네 귀족 아가씨 샤를로테와 어린 시절부터 사이좋게 지냈다. 그래서 배꼽 밑에 터럭이 수북할 때쯤 되면 당연하게 샤를로테한테 장가들어 살 줄 알았지만, 아빠 남작이 하도 욕심이 많아서 옆의 옆에 있는 동네의 돈이 무지무지하게 많은 중년 과부한테, 싱싱하고 교육 잘 받고 게다가 잘 생기기까지 한 아들을, 드셔보시라고, 은쟁반에 올려 장가보내 버렸다. 갑자기 옆구리가 허전하게 된 샤를로테는 우거지죽상을 하고 있다가 역시 아빠가 가운데 끼어 중매를 드는 바람에 평소 존경은 하지만 결코 사랑하는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던 중년 돌싱과, 에라 나도 시집이나 가버려야겠다, 결혼을 해 어여쁘고 똑똑하고 교만한 딸 루치아네를 낳아 살았다. 물론 중년 돌싱 남편 역시 무지, 무지무지하게 부자인 건 당연하고.

  그런데 이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 두 명이 진짜 은총받은 남녀라서 중년의 과부 홀아비 출신 아내와 남편이 거의 동시에 숟가락을 놔 버린 거다. 세상에 이런 행운아들이 어딨어? 그리하여, 새로 생긴 홀아비와 과부는 인생의 한창 좋은 나이인 30대 중반 정도에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 샤를로테가 거두어 기르는 죽은 절친의 딸 오틸리에가 있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에 여자 나이 삼십대 중반이면 이미 원숙한 중년이라 자기 마음은 다음으로 하고 아직도 에두아르트가 자신을 사랑하리라고는 아예 바라지도 않던 샤를로테는 오틸리에를 에두아르트의 두 번째 아내로 들일 심산이었다. 그러나 십여 년 만에 첫사랑 샤를로테를 만난 에두아르트는 눈알이 홱 돌아버려 오직 샤를로테에게 돌진, 결국 둘 다 두번째 결혼에 이른다. 미친 것들. 인생의 첫 결혼은 몰라서 해봤다고 치고, 그 지옥 속으로 또 자진해서 들어가? 안 그랴? (이렇게 쓴 거 마누라한테 들키면 난 세상 하직한다. 좀 걱정된다.)

  가뜩이나 부유한 집안의 딸 아들이었는데 죽은 아내, 남편이 또 어마어마한 유산을 남겼을 터라 이들 금고 안에 쌓인 금덩이 은덩이가 물러 앉아 눌러 붙을 지경. 저 언덕에 높이 솟은 성에 살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무위도식하는 (아, 부러워라!) 남자는 자신처럼 일 년의 황금기인 4월을 맞아 수목원에서 접목 작업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자는 성 맞은편 암벽에 짓고 있는 새 집의 부속건물인 정자 공사를 감독하느라 올라가 있다. 딸 루치아네와 양녀 오틸리에는 기숙학교에 보내 성에서는 부부와 부부를 시중하는 하인, 하녀들만 있어 여차하면 미끄러지기 십상이었다는데, 이 신혼부부가 하도 깨를 많이 쏟아 기름을 짜 넘쳐 흘러 그랬다는 설도 있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인권사상이 알프스를 넘어 바이마르까지 쳐들어올까 두려워한 독일 제국諸國이 프랑스하고 한 바탕 전쟁을 벌일 때 에두아르트와 함께 참전한 대위가 있었는데 이이처럼 지식, 재능, 학식, 솜씨 있는 인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시절은 줄곧 인재를 시기하는 터라, 대위는 바야흐로 우울한 상태에 빠져버려 한 몸 뉠 자리도 찾지 못하고 있어 에두아르트 남작께서 이 동무를 안타까이 여겼다. 대위의 가장 큰 고통은 다방면에 걸쳐 능력과 열정이 있음에도 도무지 할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으니 에두아르트는 그를 성으로 불러들여 지금 하고 있는 새집 건축과 인근 토지를 측량하게 하고 후에 농장경영 전반을 맡겨볼 의향이었다.

  하지만 샤를로테가 선뜻 수긍하지 않는다. 극성스런 반대는 아니었으나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는 주장. 어떤 경우라도 사람 사는 일에 3자가 들어오면 문제가 발생하리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샤를로테도 속으로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진중하고 진실되지만 도무지 기숙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의붓딸 오틸리에 때문이었다. 그러나 때를 맞추어 학교로부터 편지가 와서 총명하고 이기적인 루치아네의 극성이 오틸리에를 괴롭히고 있으니 일단 집에 데려갔다가 루치아네가 졸업한 다음에 다시 학교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샤를로테한테는 의붓딸이지만 에두아르트 입장에선 완전한 타인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되는 것. 그리하여 성에는 부부와 대위, 그리고 오틸리에 이렇게 네 명이 살게 된다.


  18세기 말 소설을 읽으며 독자가 (또는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작품 속에 꼬불쳐 둔 복선을 찾는 일이다. 이 작품 속에서도 많은 복선을 깔아 두었는데, 이 가운데 하나만 소개하자. 샤를로테가 대위의 능력과 열정, 학식에 완전히 만족을 하게 된 이후, 부부가 일종의 화학 현상에 관하여 배운다. 이때 나오는 것이 “선택적 친화력.”

  화학에서 “친화적”이라는 것은 “자연 속의 어떤 것(원소)들이 서로 만나는 순간 금방 서로를 붙잡거나 규정하는 것”이란다. 쉽게 말해 결합하는 현상. 수소 두 개와 산소 한 개가 만나 물이 되는 거.

  “선택적”은 “어떤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선호되는 현상”.

  두 개를 합해 선택적 친화력이라 함은 AB가 CD를 만나 AC와 BD로 변하는 거다. 여기다 샤를로테가 뭐라고 초를 치는가 하면,

  “나는 서로 헤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두 사람의 긴밀한 결합이 제3의 인물의 우연한 등장에 의해 해체되고. 애초에는 그처럼 아름답게 결합되었던 이들 중 하나가 무기력하게 저 멀리로 내쫓기는 안타까운 경우를 잘 알고 있답니다.”

  답 나왔다. A: 샤를로테, B: 에두아르트, C: 대위, D:오틸리에라고 하면, AB+C+D는 어떤 방식으로 선택적 친화력을 보여줄까? AC와 BD? AC와 B 그리고 D? A와 C와 BD? 아니면 AB와 CD? 이게 제일 바람직하겠지? 세상은 결코 바람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은, 다들 아시고.


  표지 그림은 존 에버릿 밀레이의 <검은 제복의 브라운슈바이크 병사>다. 추밀고문관님이 손수 쓴 <선택적 친화력>을 읽는 것보다 같은 그림을 표지로 한 D.H. 로렌스의 <무지개>를 읽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다.

  내가 괜히 추밀고문관, 추밀고문관 한 게 아니다. 2부로 가면 아이고, 독일의 나이 든 관리 아니랄까봐 여기저기서 독자를 가르치려 들어서 많이는 아니고 조금 재수없는 지경까지 간다. 결말 부분으로 가면 모든 독자가 그럴 것이란 건 아니고, 내 경우에 정말로 목불인견,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 수준의 신격화 비슷한 것도 나온다니까. 괴테가 잠깐 노망이 났던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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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1-10 0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이정록, 《풋사과의 주름살》
화요일, 잭 케루악, <빅 서>
목요일, 베르톨트 브레히트, <제3 제국의 공포와 참상>
금요일, 허준, 《잔등殘燈》

stella.K 2023-11-10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망은 잠깐이 아닐 걸요? 시작일지도 모르는ᆢㅋ
독일문학을 재밌게 읽기는 좀 어려운 거 같습니다. 요즘 것은 몰라도. 저도 파우스트, 베르테르 억지로 읽은 기억이납니다. 그래도 왠지 친화력은 그 이름 때문인지 읽어보고 싶었는데 넘기는게 날 거 같네요. ㅋ 저 도표식 문체 존경함다.ㅎ 괴테 할배 작위가 추밀고문관이었군요. 우리나라의 뭐쯤될까요? 문화부장관쯤 되는 건가요? 😂

Falstaff 2023-11-10 16:42   좋아요 1 | URL
18세기, 19세기 독일 소설은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요. 암만해도 19세기까지 소설은 프랑스 소설이.... ㅎㅎㅎ
추밀고문관은 사전에도, 지식백과에도 어떤 역할인지 나오지 않는 신비의 직책인데요, 토마스 만의 작품인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창비세계문학55의 각주 9번인가 하여튼 근방에 보면 ˝군주의 최측근 요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말 그대로 ‘고문관‘이니 굳이 장관이라면 그저 무임소 장관,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꼬마요정 2023-11-10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잠깐 노망이 났던 게 틀림없다 ㅋㅋㅋㅋㅋㅋ 책은 리뷰보다 재미없을 것 같아요 ㅋㅋㅋㅋ 저는 그냥 괴테가 좋아서 몇 개 읽었는데 또 다시 생각하면 딱히 이 사람이 왜 좋지 하기도 해요. 나이가 들면서 취향이 바뀌나 봅니다.

Falstaff 2023-11-10 16:43   좋아요 1 | URL
그만큼 결론 부분에 나오는 장면이 심하게 하품난다, 어이없다, 눈이 찌푸려진다, 정도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ㅎㅎㅎ

호시우행 2023-11-10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자를 가르치려 든다는 표현에 빵 터졌습니다.ㅎㅎ 하지만 나이 든다고 다 노망나는 건 아닙니다.ㅠㅠ

Falstaff 2023-11-10 16:54   좋아요 0 | URL
당연하지요. 나이 든다고 다 노망들면 재미없어서 누가 노인이 되려 하겠습니까.
근데 늙어서까지 너무 똘망똘망해 섦은이들 하는 거 하나하나 다 따지고, 시시비비하고, 계산하고, 충고하고.... 그런 것도 보기 덜 좋더라고요. 나이 들수록 침묵의 기술을 익혀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 발 떨어지는 법도 배우고 말입지요.

호시우행 2023-11-10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하십니다. 늘 행복하세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조르조 바사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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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으로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조르조 바사니 네 권은 다 읽는다. 책방에서 사서 읽은 <금테 안경>에 홀딱 반했던 게 2017년이니 6년 반이 걸렸다. 도서관 개가실에서 눈에 띄지 않았다면 그나마 모든 바사니를 읽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거 같다. 그럼 책씻이로 쐬주 한 병 꽝? 참자. 요즘 맹렬히 살깎기 중이다.

  조르조 바사니 작품의 두 가지 키 워드는 단연 베네치아에서 7시 20분 방향에 있는 소도시 페라라, 그리고 유대인이다. 나는 <금테 안경>을 제일 먼저 읽어서 키 워드가 세 가지이고 앞의 두 개 외에 남성 동성연애자 게이도 포함인 줄 알았는데 바사니를 더 읽어보니까 유대인 차별법 시행 이후 고독을 이기지 못해 죽어버리는 이비인후과 의사 파디가티 선생만 그랬던 거였다. 이이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딱 한 컷에서 우정출연 하기도 한다. 이이 말고는 게이나 레즈비언은 등장하지 않더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 한 명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는 증거 없이 짧은 생을 마감할 뿐.

  의사 파디가티 선생 말고도 전작 <문 뒤에서>, <금테 안경> 그리고 소설집 《성벽 안에서》에서 읽을 수 있었던 다양한 등장인물과 장소 역시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도 등장한다. 이럴 경우 전에 읽은 작품의 인물, 장소 등을 기억하면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지만 굳이 각주의 작은 글자를 보고서야 아, 전에 나왔던 인물/장소구나, 기억도 못하면 또 씁쓸하기도 하다. 난 거의 대부분 씁쓸한 쪽이다. 당연하지 네 권 읽는데 6년 6개월이 걸렸으니 그걸 기억하는 게 비정상 아냐?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은 성장소설이다. 1929년부터, 주로 1938년에서 39년에 걸친 청년 화자 ‘나’와 핀치콘티니 집안의 막내딸 미콜 핀치콘티니의 연애담. 연애소설은 이미 웬만한 방법으로 거의 다 시도를 해서 여간 잘 쓰지 않으면 독자에게 흥미를 돋게 하는 데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에 나오는 연애도 당연히 수다하게 읽어본 연애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하거나 애잔하거나 심지어 야하지도 않다. 하지만 조르조 바사니의 책을 읽으면서 드라마틱을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번지수를 잘못 찾는 거다. 바사니는 참, 뭐랄까, 독특하게 스산한 아름다움을 문장 속에 집어넣어 글을 쓴다. 그렇게 쓰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것,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났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감각적 아름다움을 속삭이는 방법을 그냥 체득한 듯한 작가라고 하면 좋을까? 때는 1938년. 이탈리아에도 유대인 차별법이 발효되어 유대인은 다른 민족을 고용할 수 없고, 단체에 속할 수도 없는 등 노골적으로 사회적 멸시를 받아야 했던 시절. 바사니는 이 시기를 서술하면서 다른 유대 작가들처럼 그들이 받는 핍박, 피해의식 같은 것을 노골적으로 쓰지 않았다. 대신 유대인끼리 나누는 대화에서 애써 그다지 심하지 않은 듯, 그래도 살 만한 듯 현상을 회피하려는 모습 속의 불안을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유대인 사이에서도 계급은 존재한다. 계급 차이 때문에 맺어지지 못하는 인연도 있을 것. 낮은 계급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완고한 벽처럼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를 완곡하게 설명해주려 애쓰는 장면도 읽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게다가 아이 씨, 나도 경험해봤거든, 당해봤거든, 눈에 띄지 않지만 얼마나 아린 상처인지 알거든.

  그래, 바사니를 읽는 건 스토리 말고 이런 장면 장면을 읽는 일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그렇게 큰 쓸쓸함과 아스라한 아름다움으로 조각되어 있는지 넋을 잃는 일이다.


  1957년 4월, 로마에 사는 ‘나’는 친구 십여 명과 함께 소풍 갔다가 돌아오면서 훗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린 고대 에트루리아인들의 공동묘지를 방문한다.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1세기에 걸쳐 조성한 묘지를 보며, 고향 페라라의 몬테벨로 거리 끝에 있던 유대인 묘지를 떠올린다. 공동묘지 안에 크고 단단하게, 정말이지 위풍당당한 것이 <아이다>나 <나부코>의 무대장치에서 본 것 같은 대단한 핀치콘티니가의 가족묘지를 추억한다. 페라라의 에르콜레프리모데스테 대로 끄트머리에 있던 핀치콘티니가의 저택, 그리고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에 어울렸던 미콜과 알베르토, 에르만노 교수와 올가 부인, 외할머니 레지나 헤레라 노부인를 연상한다.

  저택은 1850년 알베르토의 증조 할아버지 모이세 씨가 구입하여 후손들이 수리와 개조를 계속했으나 1944년에 폭격으로 상당부분이 파괴되어 큰 건물 한 채만 남아 지금은 도시 빈민 오십여 가구의 피난민들이 차지했다. 저택보다 ‘나’의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은 3만 평에 이르는 정원이었다. 출입구에서 5백 미터를 가야 도달하는 저택 ‘큰집’ 마그나도무스, 테니스 코트, 판필로 운하, 선착장과 마구간. 이 모든 것은 성벽과 이어지는 끝없는 담벼락과 육중한 나무문으로 고립되어 있었다.

  1914년 여섯 살의 맏아들 귀도가 미국발 소아마비로 급사하자 어머니 올가는 이후 평생 상복을 입기 시작했으며 사실상의 장남 알베르토와 미콜은 귀도처럼 공립학교에 보내지 않고 여러 명의 가정교사를 들여 홈 스쿨링을 하기로 결정했다. 틈틈이 ‘나’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를 초빙해 이들의 실력을 점검하면서. 그러나 일년에 한 번 이상은 ‘나’의 학교에 마부가 진짜 말을 모는 고급 마차를 타고 와 진급시험을 치루기도 했는데, 이때 미콜이 조금은 관심있게 ‘나’를 본 것 같다.

  1929년에 자전거를 타고 성벽을 따라 핀치콘티니가의 담장을 따라 달리고 있을 때, 미콜이 담장 안에서 머리를 내놓고 ‘나’를 불러 세운 적이 있다. 미콜은 벽에 마치 발 딛개처럼 박혀 있는 철심을 밟고 담장을 넘어오라고 했으나 천성이 내성적이고 부끄럼이 많고 생각도 많은 ‘나’는 기어이 미콜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나’는 볼로냐의 대학의 마지막 학년, 미콜은 더 멀리 베네치아 대학의 마지막 학년이던 1938년의 10월, 인종법이 발효하는 바람에 집에 와 있는 미콜과 알베르토 남매로부터 집에 와서 테니스를 함께 치자는 초대를 받고, ‘나’는 이를 수락해 다시 미콜과의 관계를 시작한다.

  미콜의 친절하고 늙은 아버지 에르만노 교수는 저택과 정원 말고도 모이세 씨로부터 물려받은 농토 수백만 평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평생, 평생을 넘어 자손 대대로 노동할 필요 없이 부르주아의 삶을 살 수 있는 최상급 유대인인 반면에, 젊은 시절에는 의사였지만 일찌감치 의사를 포기하고 여유롭게 살던 ‘나’의 아버지는 지금 유대인묘지 관리자 일을 하는 중간 정도의 중산층 유대인. ‘나’는 시간이 갈수록 미콜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빠지고, 사랑하는 만큼 미콜을 만지고 싶어 지옥 같은 갈증에 시달리지만, 미콜은 그럴 때마다 빤히 눈을 뜬 채 ‘나’의 접촉을 (독자인 내가 생각하기에) 냉소하기만 한다. 그러다가 말한다.

  “네게 고통을 주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우리 둘이서 육체적 사랑을 하다니! 그게 정말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니? 네가 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약혼이라도 하자고?”

  위의 따옴표는 긴 내용을 몇 문장으로 축약한 거다. 짧게 이야기해서 너하고 나는 동등하게 결혼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좋은 말할 때 꺼져달라는 것. 그럼에도 ‘나’가 미콜을 사랑하게 만들어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도 알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이야기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화자 ‘나’는, 돌 맞은 개구락지? 그럴 수도 있고. 어느 시인이 그랬지? 안 넘어가는 나무는 백 번을 찍어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이렇게 1938년, 39년은 사랑과 함께 사라지고, 42년에 림프 육아종으로 죽은 큰아들 알베르토만 거대하고 화려한 가족묘에 묻힌 채 나머지 가족 모두는 1943년에 독일로 강제 이송을 당한 후 아무도 소식을 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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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11-09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금테안경>으로 바사니를 처음 만났는데 정말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스산한 아름다움‘ 맞아요. <문 뒤에서>도 참 쓸쓸했구요.
페라라도 가보고 싶은데 왠지 쓸쓸한 도시일 거 같네요.
저도 이 책 샀는데 정신없는 시간 다 지나면 젤 먼저 읽어보렵니다.

Falstaff 2023-11-09 16:56   좋아요 0 | URL
아휴, 가지고 있으시면 얼른 읽어야지요! 재미나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yamoo 2023-11-09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사니군요!
네, 바사니는 좋더라구요. 근데 문학동네는 너무 책을 얇게 만들어 비싸게 팔아쳐묵는 거 같아요..
타부키 책도 열받았는데...그냥 묶어서 좀 두툼하게 펴내면 안되나 봅니다...^^;;

Falstaff 2023-11-09 16:5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제가 문둥이네 책이 너무 얇다, 얍삽하다..를 좀 심하게 썼다가 한 방 맞은 적 있습지요. 그게 뭐였더라.... <금테안경>이었나, <무게>였나... 아마 그럴 겁니다.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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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한 카루나틸라카는 1975년 스리랑카 남부 골Galle에서 (부잣집 아들로? 맞을 걸?) 태어나 콜롬보에서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 뉴질랜드로 유학 가 경영학을 공부하라는 집안 어른들 말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마시(Massey)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다. 이후 런던, 암스테르담, 싱가포르 등지의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틈틈이 가디언, 뉴스위크, 롤링스톤,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에 특집기사를 실어 가외수입을 올리는 한편, 베이스 기타를 들고 스리랑카 록밴드와 공연도 하며 2010년 데뷔작 <차이나맨: 프라딥 매튜의 전설>을 발표해 여기저기서 여러 문학상을 받는다. 그러다가 2022년 세번째 소설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이 세상의 모든 영어 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부커상을 받는 대박을 쳐 본격적으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부잣집 아들이지, 공부 잘해 여기저기 급여 좋다는 광고회사에 정직원으로 취직도 잘 하지, 록그룹에서 베이스 연주도 하지, 부커상도 받지, 게다가 위키피디아 가서 얼굴 보면 생기기도 잘 생겼다. 이런 인간들 정말 재수없지?


  이 책을 읽기 전에 스리랑카의 현대사를 조금 알면 훨씬 좋다. 스리랑카 사람들 이름이 우리가 듣기엔 매우 독특하다. 작가 셰한 카루나틸라카도 이게 원래 이름이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름 full name 읽는 데만 1박 2일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 이름을 영어식으로 짧게 쓰고 중간 이름을 몽땅 생략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그러니 사람 이름을 될 수 있으면 빼고 최대한 간략하게 소개한다.

  옛 실론 섬의 고원지대에는 불교를 믿는 다수민족인 싱할라 족과 북부와 동부 해변에 걸쳐 살면서 힌두교를 믿던 소수민족 타밀족이 있었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쳐들어와 네덜란드 식민지를 거쳐 18세기부터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는데, 언제나 해변을 끼고 사는 부족이 혜택을 보는 법이라(치누아 아체베!) 타밀족이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먼저 얻어 고위 관리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싱할라족이 보기에 배가 아팠는데 실론이 독립을 하자 단박에 상황을 역전시킨 싱할라족은 곧바로 머릿수로 밀어 부쳐 권력을 얻었다. 모든 것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는 법이지만 수백 년 동안 상대적 불이익 또는 피해를 고스란히 당해왔다고 생각하는 싱할라족은 아예 법을 고쳐 싱할라의 언어만 국어로 채택하더니 점점 차별이 심해져 1972년엔 나라 이름을 스리랑카로 바꾸고 타밀족의 대학입학을 제한하는 법까지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급기야 1977년과 81년에 싱할라족이 타밀족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두 민족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골짜기로 빠져 버린다. 그리하여 1983년에 타밀족 분리독립주의자들이 “타밀 엘람 호랑이 해방군”이란 것을 만들어 스리랑카의 북동부 지방에서 세를 떨친다.

  1983년 7월, 타밀 엘람 호랑이 해방군은 북부 자프나 지역에서 정부군을 급습해 열세 명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총리가 걱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죽은 병사 13명의 장례를 수도 콜롬보에서 치루기로 했고, 장례에 참석한 무수한 인파들은 순식간에 폭도로 돌변해 눈에 띄는 타밀족의 집엔 불을 싸지르고 사람들을 사정 없이 때려 죽이기 시작한다. 폭동은 전국으로 번져 7월 한 달 동안 정부 집계로 5,638명이 사망하고, 15만 명의 집이 불에 타버렸다. 동시에 중부와 남부 밀림지역엔 민족해방군, 북쪽엔 잔인한 인도 평화유지군이 나타나 스리랑카 내전은 Go go mountain, 갈수록 태산의 형국으로 치닫는다. 근데 우습게도 진짜 스리랑카 터줏대감 원주민은 내륙 산지 밀림 지역에 극소수만 남은 베다족이란 거.

  이런 나라의 특징은 권력을 순 깡패들이 잡고 있다는 점이다. 타밀 반군이라고 해서 타밀족에게 관대한 건 절대 아니다. 생포한 적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건 이 섬나라 인간들의 공통점이라 그냥 넘어가고, 적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멀쩡한 같은 부족 사람이라도 그냥 쏴 죽여버리고 만다. 싱할라족도 타밀 반군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 같은 부족 사람들을 기꺼이 학살해버린다. 인민해방군도 이하동문이다. 숱한 인민(정식 국가명: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들은 밤에 자다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끌려가 손가락마다 못이 박히고 관절이 부러지는 고문 끝에 살해당하고, 시신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심한 오염으로 악명높은 베이라 호수에 풍덩 빠뜨려버린다. 가히 1970년대 칠레와 동급이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얘네들하고 비교하면 유치원 학생 수준이었고.


  1955년, 이런 나라에 말린다 앨버트 카발라나, 줄여서 말리 알메이다라는 사내 아이가 태어난다. 고요하게. 영어로 하면 Still Born. 나오긴 했지만 울지도 않고 심장이 뛰지도 않는 사산아, 의료진은 급하게 인큐베이터로 신생아를 옮겨 호흡과 심장박동을 되살렸고, 35년 후에 아이는 그때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거라고 땅을 치게 된다. 1955년에 인큐베이터 구경을 했으니 말리가 부잣집 아들인 건 맞다. 머리가 유난히 좋아서 체스는 2주만에, 컵스카우트는 한 달만에, 럭비는 3분만에 마스터해 버리고 이내 학교를 혐오하는 증상이 생긴다. 이후 다니던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중단해 여러 직업을 전전하지만 그것도 다 때려치운 한량. 엄마와 이혼하고 애인과 함께 미국으로 날아가 딸 둘을 낳고 사는 아버지가 말리에게 카메라를 선물해 취미를 붙였고, 신기하게도 스리랑카 현대사의 극적인 장면을 함께 하는 운명을 지녔는지 위에서 이야기한 학살과 그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검은 거래 같은 것을 카메라에 담아 전세계 언론사, 정부 등에 좋은 가격으로 팔아, 호텔 레오에서 도박을 하고, 비싼 술을 마시고, 젊고 예쁜 남자를 사서 즐기고, 해시시를 하느라고 다 탕진해버린다. 그래도 부잣집 아들인 걸 뭐. 그리하여 직업이 사진작가, 도박꾼, 걸레.

  말리가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고, 이런. 몸이 죽어 영혼이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에 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의 주인공 말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귀신도 되지 못한 중음신(이라고 치자). 여기서 일곱 개의 달, 달은 나오고 지는 것이니 일주일과 같은 의미다. 일곱 달, 7개월이 아니고, 7일 안에 과거의 트라우마, 지은 죄, 숨긴 죄책감 등이 새겨진(다고 스리랑카에서 믿는) 귀와 귓불 조사를 마친 다음 빛의 방으로 가는 중음신은 윤회를 할 것이고, 아닌 것들은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될 터인데, 귀신이 되면 또 큰 악마 마하칼리(비슈누의 화신)의 노예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쉽게 우리말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말리는 다른 귀신들, 귀신들한테도 갓 죽은 영혼을 위한 선한 자원봉사 귀신이 있는데, 이들의 조언에 의하면 죽은 형태를 보아하니 누가 높은 곳에서 던져 죽임을 당한 거 같다나? 근데 죽을 당시의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거다. 책의 결말 부분에 가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에 의하여 죽는 걸 알게 되지만, 물론 눈 밝은 사람은 중간에 눈치를 챌 수도 있지만, 말리 역시 동시대의 많은 실종자들처럼 모처에서 죽은 다음에 불법 죽음을 당한 시체를 전문적으로 처리해주는 청소부들, ‘발랄’과 ‘곧뚜’에 의하여 깊은 호주머니에 벽돌을 잔뜩 집어넣은 상태로 베이라 호수에 수장된 상태다. 1989년 12월 4일 화요일 새벽 네 시에.

  말리에게 몇 장의 중요한 사진이 있다. ① 83년 야만인들이 타밀족의 집에 불을 지르고 주민을 학살하는 동안 장면을 지켜보며 방관하는 정부 각료, ② 실종된 언론인과 사라진 운동가들이 재갈을 문 채 묶여 학살을 기다리는 모습, ③ 구금상태에서 사망한 사진, ④ 정부군 소령과 타밀 반군 대령, 영국인 무기상이 킹코코넛을 나누어 마시며 불법 무기 거래를 위해 한 자리에 앉아 있는, 해상도가 낮지만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스냅, ⑤ 스타배우 위자야를 죽인 사람들과 ⑥ 테러로 추락한 위팔리의 비행기 잔해를 찍은 것들로, 집의 운전수와 요리사가 쓰는 침대 밑에 보관하고 있다. 이 사진이 전시되면 참상이 정부에 의하여 조직적으로 자행된 것이며 사실은 정부군과 적군이 비밀리에 거래를 했다는 것까지 밝혀져, 네이팜탄이 쏟아지는 전장에서 달리는 나체의 소녀 사진이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키는 불씨가 된 것처럼, 스리랑카의 폭력정권이 무너질 수도 있을 만한 자료였다. 당연히 말리는 자신이 사진 때문에, 그리고 잔망스럽게 그걸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권력의 하수인에 의하여 죽었을 거라는 생각에 휩싸여 있다. 게다가 걱정이 한 가득이다. 내각의 유일한 타밀족 출신인 스탠리 다르멘드란 장관의 아들과 조카딸이자, 말리의 애인 딜런 다르멘드란과 말리의 절친 재클린 와이라와나단이 자신 때문에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미 죽었으면 재빨리 과거를 잊고, 세상사도 잊고 저승으로 떠나 처분을 기다려야 하거늘, 오지랖 넓은 말리는 딜런과 재클린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려 애가 타고, 사진이 강제로 압수당하자, 이번엔 원판 필름을 어디에 숨겨놓았으며 어떻게 조치하라고 말해주기 위해 귀신 생명을 걸고,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구태여 이야기를 하자면 그렇다는 건데, 귀신의 목숨을 걸고 한 판 도박을 벌인다.


  스리랑카의 기구한 현대사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런던의 비평가들도 이런 점을 높이 사서 <말리의 일곱개의 달>에 부커상을 주지 않았나 싶다. 스리랑카에서 있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남아시아 독자를 위하여 구상을 했기 때문에 그런지 웬 우라질 사후 세계 귀신 이야기가 이리 창궐을 하는지 나중엔 징글징글했다. 나는 유물론자란 말이다. 예를 들어 이사벨 아옌데가 이 작품을 읽고 다시 써보라는 염라대왕의 명령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적당하게 소위 환상적 리얼리즘을 조금 가미하고. 귀신 이야기도 어쩌면 나올 지 모르지만 그게 산들바람이나 오렌지 향기를 타고 콜롬보 빈 하늘을 배회하기야 하겠어?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겠다. 이야기는 겁나게 재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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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1-07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인데 소개글을 읽으니 맘이 더 급해지네요. 루슈디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Falstaff 2023-11-07 06:59   좋아요 1 | URL
근데요, 독자서평에 좋지 않은 평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제가 읽기엔 괜찮았습니다. 루슈디하고 (영광스럽게!) 비교하려면 신화성이 아무래도 부족하지않나... 싶습니다. 연륜 탓일 수 있겠습지요.

반유행열반인 2023-11-07 10: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팔백작님의 질투가 좀 느껴지는 ㅋㅋㅋ엄친아 주제에 작가까지!!제삼세계 엘리트들은 이점도 있겠습니다. 자기는 그 난리통 안 휘말리면서도 옆에서 어떡해…관찰만 하다가 있는 일 주워들은 일만 써도 다른 나라 애들이 우와 입틀막 님좀짱 이러고 재밌게 봐주니까요…

Falstaff 2023-11-07 17:07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제가 시방 겁나 취해서 말입죠 열반님 글씨가 막 날아 다닙니다. ㅋㅋㅋㅋ
이거 틀림없이 의존증 맞을 거예요. 그리하여 답글은 내일... 의존증이건 지랄이건 하여튼 지금은 천국이고만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1-07 19:14   좋아요 1 | URL
아니 비인격 물질 한 가지가지고 원하면 언제든 숑 갈 수 있으면 그거 축복 아닙니까(천국도 숑 일찍 가는 거는 당장 알 바 아니고…) 책이랑 술이랑 하나만 골라! 이러면 팔백작님 뭘 놓으시겠어요?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아 이딴 거 말고요 ㅋㅋㅋ

Falstaff 2023-11-08 04:39   좋아요 2 | URL
의존증이라니까요. 둘 놓고 고르라면 당연히 술이지요.
근데 숑.... 차라리 약을 하면 더 빠르잖아요. 술, 안 마셔야 합니다. 줄이려 애쓰고 있는데도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인생에 술이 없었으면 좀 더 행복했을 거 같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 주변 사람들 하는 말이, 술 마신 후에 사람이 더 귀여워진다고 하더라고요. 술 주사가 없고 곧바로 자는 편입니다.
알코올 의존자들도 술 마시면 심신이 괴로운 건 마찬가지랍니다. 지금도 속 쓰리고, 몸이 땡땡 붓고, 머리 흔들리고.... 이란 회교민주주의공화국으로 이민이라도 가야겠습니다. 술 마시면 짱돌 던져 죽여버리는 나라로요.

3세계 부르주아 아니면 또 누가 그 나라 난리치는 걸 세상에 알리겠습니까. 민중들은 워낙 교육이 안 되어 있는 걸요. 엘리트란 엘리트는 다 도망간 나라도 있잖아요. 콜럼비아. 그저 그런 시대를 안 산 것도 행운입니다.

coolcat329 2023-11-08 08: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은 알고있었는데 스리랑카의 소설인지는 몰랐어요.
사후 귀신세계 얘기에 읽기 싫어졌는데 또 겁나 재밌다하시니 솔깃하기도 하고 스리랑카 문학인점도 끌리네요.
폴스타프님 덕분에 스리랑카 역사 조금이나마 알게되었습니다.
그 조그마한 섬나라에세 저런 엄청난 폭력이 일어났다니 아이구 정말 놀랐습니다.

Falstaff 2023-11-08 17:26   좋아요 1 | URL
재미있는 책입니다. 여태 몰랐던 스리랑카 현대사도 조금 알게 돼 신선했습니다. 권할 만한 책이지만 오직 하나, 제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입지요.
 
물이 흘러내린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20
구레이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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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중국 현대 희곡. 극작가 구레이는 중국 허베이성 스좌쟝石家莊 1978년생이다. 베이징이공대학과 대학원에서 생화학공학을 전공해 석사까지 하고 고향의 제약회사에 취직 확정까지 했으나, 교내 연극 동아리에서 올린 뷔히너의 <보이체크>를 연출해 연극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은 것을 계기로 연극계로 전향한다. 구레이 스스로 “수신풍극단樹新風劇團”을 만들어 예술감독으로 활약하며 개방, 협력, 순수창작, 고 궐리티 지향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역자 해설의 쓰여 있다. 구레이를 구글 검색해보면 “수정된 검색어에 대한 결과: 그레이”가 올라오면서 애먼 페이지만 죽 뜨고, ‘顧雷’를 검색해야 구레이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의 중국어 사이트와 연결되어 있어서 “중국 연극계의 빅 네임들보다 한 세대 뒤인 21세기의 소장 작가군에 속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또한 역자는 해설을 통해 이이의 특징은 자신이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하는 작가-연출가를 고집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이 작품을 “희곡” 대신 “극본”이라 칭하는 것이다.

  작가가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까지 하는 것은, 그것이 바람직하고 하지 않고를 떠나, 이해할 수 있다. 작가로서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썼는지 분명하게 어필하고 싶을 터이니까. 어차피 세월이 흘러 작가의 시절이 가면 작품은 다른 연출가에 의하여 공연을 할 수밖에 없을 터이며 이 경우엔 당연히 일정 부분 작가의 의도를 수정하게 되리라. 그러나 구레이는 적어도 공연이 어떻게 이루어지기를 원했는지 원래 취지를 기억해주기 바랐을 지도 모른다.

  무대극의 원본을 이야기하는 ‘희곡’ 대신 ‘극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그리 가볍지 않은 일인 듯하다. 이제 연극의 기본 텍스트는 곡曲, 몇 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도도하게 흘러온 인류 최초의 예술형태인 곡에서 본本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도 된다. 내가 (다른 것도 다 그렇지만) 연극과 희곡/극본에 관해 아는 것이 짧아 곡과 본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저 이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랄 뿐. 그리스 시대 대표 희비극들, 중국의 다양한 곡, 우리의 판소리 같은 무대예술의 공통점은 운율 아닌가 싶다. 시와 노래로 극을 만들었으니 시와 노래를 문자로 쓴 것을 곡曲이라 했을 것. 희랍에서 절정을 이룬 곡 문학도 어언 스무 너댓 세기가 흘러 이제 무대에서 운율은 메말라 휘발했다. 운율의 빈 자리를 대사, 행위, 무대배경이 채웠으니 이를 산문적으로 본本이라 한 건 아닐까? 그냥 아마추어의 생각이다. 어디 가서 써먹지 마시라. 얘기해 놓은 나도 무식하단 얘기 들을까 겁나니까.


  2022년 중국의 출산율은 1.09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0.78에 비하면 그래도 좀 나은 듯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우리나라도 2019년엔 1.05였다. 물론 2019년이 소위 “황금돼지해”여서 조금 많이 낳는 경향이 없지 않았지만, 중국도 앞으로의 전망이 전혀 밝지는 않아 보인다. 이게 다 양육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서, 그리고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우리집만 보더라도 첫 아이는 사내 결혼으로 장가들어 2019년에 맏딸을 낳고 올해 둘째로 아들을 낳았다. 작은 애는 결혼이라는 것이 암만해도 노력봉사 이상이 아니어서 여차하면 코만 꿰는 결과를 초래하는 거 같아서 웬만하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사니, 너네가 살지. 이런 주의다.

  중국 허베이성에 스石씨 많이 사는 동네, 베이징 기준 7시에서 7시 40분 방향으로 고속철도 타고 8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스좌쟝에 어느새 70여 세에 달한 팡통광方同光 선생이 외아들 팡하오창方浩倡이 있었는데 이 외아들이 어려서부터 남달리 공부를 잘해 인근에 비교할 만한 학동이 없었더란다. 어려서는 아버지와 사이가 유난히 돈독하여 아버지가 항문을 비롯한 샅 일대를 씻어주면 신이 나서 좋아하기도 했으나, 아들이 점점 사내가 되면서는 유사이래 모든 수컷들이 그러했듯이 둘의 관계는 조금씩 크랙이 가기 시작했고 그만큼 서먹서먹해졌다. 하오창은 동네 처녀 아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국어 선생님한테 홀딱 반해 수십장에 달하는 편지도 보내기도 하고, 배꼽아래 솜털의 색이 진해지기 시작하면서 밤새 하얗게 빨아 풀까지 먹인 욧닛에 한 번 더 풀칠을 해놓으면서 차곡차곡 부자 사이의 금은 어느덧 깊고 깊은 크레바스로 변해버렸다. 그래도 공부 잘하는 거는 여전해 베이징까지 가서 의과대학을 졸업해 유명 종합병원의 심장외과 전문의로 활약 중이다. 중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뛰어난 의사라 숱한 의사 팔로워들을 거느렸는데, 심장외과 전문의로 만족하지 못하고 황사장이란 인물과 동업을 해 전동치솔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아버지 팡통광 씨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들 팡하오창이 자식 둘 생각은커녕 결혼조차 눈꼽 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것.

  아들 팡하오창이 37~38세이고 아버지 팡 선생이 70이 넘었으면 당시 중국에서는 적어도 32세에 얻은 귀한 아들일 터. 그러나 의사가 되어 베이징의 종합병원 전문의면 얼굴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은 것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인지상정이다. 무엇보다 바쁘니까. 휴일엔 바쁜 몸 좀 쉬고 여유를 가져야 하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들이라서. 팡하오창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여성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그냥 혼자 살고 싶은 것일 뿐. 근데 거기나 여기나 늘 아들 장가들어 손주새끼들 보는 게 꿈인 아버지가 사는, 냄새나는 집에 자주 가고 싶겠느냐고. 꽃노래도 삼세번인데 낯을 보일 때마다 색시는 생겼느냐, 언제쯤 국수를 삶아야 하겠느냐 같은 걸 취조 당한다면 사실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듯.

  그러나 전문의 팡하오창 선생께서 고속열차를 80분 타고 고향 허베이성으로 안 갈 수 없는 일이 생겼으니, 병이 깊어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팡통광 씨가 자신한테 병명을 일러주지 않고 아들도 내려와 간병해주지 않는다고 홧김에 화병을 벽에다 집어 던졌다가 애먼 ‘애기선생’ 천위써의 이마에 상처를 입혀버렸던 거다. 젊고 예쁜 흉부외과 전문의의 이마에 기스를 냈으며, 아버지가 아들 좀 불러달라고 파출소 경찰을 불러온 터, 아들 팡하오창이 득달같이 달려가 이를 수습해야 할 밖에. 하지만 전동칫솔 사업 초기라 광고 카피도 문제고, 황사장과 금전문제는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초기 문제는 그리 크게 확장되지 않고 이제 부자간 갈등이 점점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이 와중에 팡통광 씨의 병세는 환자가 직접 이마에 기스를 낸 천위써 선생으로부터 약물치료, 수술, 표적치료 모두 의미가 없는 소세포 폐암으로, 암이 인체 각 조직으로 전이되어 남은 여생이 겨우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땅땅땅, 선고를 받는다.

  그럼 남은 것은 돌이키기 힘든 이격거리를 가진 부자지간에 서로 화해하고 팡선생의 70여 평생이 잔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게 극이 끝나면 현대극은 아닐 걸? 아무리 아버지의 남은 시간이 두 달밖에 없다고 해도 거칠게 아들의 신경을 긁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한 아들은, 우리 동쪽의 예의 바른 사람들이 들으면 경끼를 할 만한 상스러운 욕을 병상의 아버지한테 푸짐하게 던져놓고 내빼기도 한다. 물론 앞에서 얘기한대로 부자간 화해의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참, 내가 지금 어디까지 이야기하는 거야? 아, 몰라, 몰라. 이 이상은 직접 읽어 보시라, 하고 내빼야 했는데 깜박했지 뭐야.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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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오빠 창비시선 396
김언희 지음 / 창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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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미만, 심혈관질환자, 기독교 엄숙주의자는 안 읽는 것이 만수무강에 좋음)



  시인을 헷갈렸다.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을 낸 강기원하고. 김언희가 그 김언희인 줄 알았다면 시집을 살 때 훨씬 더 신중했을 듯하다. 뭐 그것도 팔자니까 괜찮다. 김언희의 《뜻 밖의 대답》을 읽고 용맹 용감한 시어들에 화들짝 놀랐던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이이의 이름을 다른 시인과 혼동해버렸으니 혹시 건망증 또는 초기 알츠하이머 아냐 이거?

  김언희의 시어는 참혹하다. 《뜻 밖의 대답》을 읽을 때부터 알아봤다. “예를 들어 주방기구와 섹스하듯이, 너무 모멸적인 섹스 파트너, 그것이 너를 삼키듯이 토해내듯이” (《뜻 밖의 대답》, 민음사 2005. <예를 들어> 부분 p.13) 같은 구절은 오히려 이 시인이 잘 정제하여 다듬은 듯한 문장들일 정도로. 《뜻 밖의 대답》을 읽을 때, 김언희가 틀림없이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런 시어들을 골라 사용했을 터인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 거의 아무 시인도 사용하지 않는 회피단어들을 고의로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시에 강한 특징을 주어 어필하겠다는 속셈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시인이 들었으면 기절초풍을 할 의심까지 했었는데, 《보고 싶은 오빠》를 읽어보니까 참혹한 명사와 동사들의 반복 사용이 또 묘하게 시를 읽는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다. 당연히 수고롭겠지만 다음 시를 소리내서 읽어보자.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


  나는 모든 것이 흘레이면서 흘레가 아닌 흘레의 나라에서 왔어요 빨기 위해 생니를 몽땅 뽑은 어린 창녀의 입속 같은 곳에서요 나라 전체가 음란한 유치원인 곳에서요 나무랄 데 없는 시체들의 재롱*을 실컷 보다 왔어요 입덧과 동시에 구더기를 토하다 왔어요 나는 머리도 내장도 없어진 여자의 사인(死因)이 자해인 나라에서 왔어요 묵살 묵살 묵살이 살인의 한 방식인 곳에서요 길고 긴 묵살의 터널 끝에 몰살이 기다리는 곳에서요 나는 여자의 완성이 얼굴인 나라에서 왔어요 여자의 피부가 신분인 곳에서요 죽는 날까지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곳에서 왔어요 죽기도 전에 미라 먼저 된 여자들이 제 미라를 창밖으로 내던지는 곳에서요 나는 죽을 틈을 주지 않는 공중파의 나라에서 왔어요 흰 변기 위에 놓은 채 잊히고 만 황색 시인**들의 나라에서요 빗방울에도 살이 패이는 눈사람의 목소리로 귀여운 물방울의 목소리로 시를 쓰다 왔어요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 흘레 앞에도 ‘르’가 붙는 이 유명한 맛집까지요


  * 헤르베르트

  **  타나까와 슌타로오 (전문 p.17)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 (우리말 표기법에 따르면 “흘레” 대신 “를레”를 써야 하지만 뭐 그냥 넘어간다.) 파리에서 갈빗살 스테이크만 파는 맛집으로 특히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찾는 곳이란다. 그러니 김언희도 파리에 가서 르 흘레 드 랑트르꼬뜨에 들러 능청맞게 자기가 “눈사람 같이 귀여운 물방울의 목소리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구라를 풀고 있다. 귀엽다. 물론 시 속에 김언희가 풀어놓은 그로테스크하게 참혹한 광경은 별개로 하고 말이지. 이게 시냐고? 현대 시 읽으면서 그런 질문하지 마시라. 시집 몇 권 읽어본 바, 시 속의 의미나 본질을 찾는 행위는 말짱 필요 없는 시절이 왔다. 시를 읽으며 즉자적으로 느끼기만 하면 대빵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시, 무슨 식당 간판이 제목인 이 시가 유독 참혹한 시어로 되어 있는 것뿐 아니냐고 의문을 표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좋다. 그런 분을 위하여, 제일 앞에 나오는 시가 시집을 대표하는 경우가 흔하고 마침 짧기도 하니 그걸 읽어보자.



  회전축



  23도26분21초4119


  지구의 기울기는

  발기한


  음경의, 기울기


  이 기울기를

  회전축으로

  지구는


  자전한다 (전문 p.11)



  1953년생. 올해 일흔. 시집을 냈을 때 예순 셋. 63세의 중년여성이 본 발기한 남성의 음경 각도가 23도26분이란다. 북극와 남극점을 잇는 선이 23도26분 기울어져 있다는 거니까… 근데 여기서, 흠흠, 심각한 질문이 있는 바, 23도26분은 알겠는데 어느 방향으로, 설마 왼쪽이나 오른쪽을 꼬나 보지는 않았을 것이라, 그놈의 민대가리가 발가락을 내려다봤는지, 고개를 발딱 들고 쥔 아저씨 마빡을 올려다보고 있는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하긴 뭐 발가락 쪽을 봤다고 해도 그게 얼마야? 그저 얼마간이라도 피식 쓰러지지만 않고 그렇게 버텨 주기만 하면 장땡이지, 그지? 이상한 감상이라고? 김언희의 시를 읽으면서 이렇게 감상문을 쓰지 않으면 그럼 어떻게 쓰라고? 이번에는 이 시집의 표제 작품을 인용해보자. 설마 또 그럴까, 싶지?



  보고 싶은 오빠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하고, 십년도 넘었어, 난 저 개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 먹었던 거? 정말로 개새끼였어, 오빤, 그래도 우린 짬만 나면 엉기곤 했지, 줄 풀린 투견처럼, 급소로 급소를 물고 늘어지곤 했었지,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라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면서


  3

  꿈에, 오빠, 누가 머리 없는 아이를 안겨주었어, 끊어질듯이 울어대는 아이를, 머리도 없이 우는 아이를 내 품에, 오빠, 죽는 꿈일까…… 우린 해골이 될 틈도 없겠지, 오빠, 냄새를 풍겨댈 틈도, 썩어볼 틈도 없겠지, 한번은 웃어보고 싶었는데, 이빨을 몽땅 드러낸 저 웃음 말야


  4

  여긴 조용해, 오빠, 찍소리 없이 아침이 오고, 찍소리 없이 저녁이 오고, 찍소리 없이 섹스들을 해, 찍소리도 없이 꿔야 할 꿈들을 꿔, 배꼽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오빠, 우린 공손한 쥐새끼들이 됐나봐, 껍질이 벗겨진 쥐새끼들, 허여멀건, 그래도


  5

  그래도, 오빠, 내 맘은, 내 마음은 아직 붉어, 변기를 두른 선홍색 시트처럼, 그리고 오빠, 난 시인이 됐어, 혀 달린 비데랄까, 모두들 오줌을 지려, 하느님도 지리실걸, 낭심을 꽉 움켜잡힌 사내처럼, 언제 한번 들러, 오빠, 공짜로 넣어줄게  (전문 p.12~13)



  어떤가? 저 앞에서 한 말을 다시 해보자. 내가 이 김언희가 그 김언희인 것을 알았으면 이 책을 선뜻 샀을까? 정말로 강기원인 줄 알고 골랐다니까 그래. 강기원의 문법도 좀 생식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막장, 참혹극으로 가지는 않는다. 하여튼 그래도 소리 내 읽어보면 또 그럴듯한 리듬을 타는 것이 발음하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하여간 잘 굴러가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싶은 오빠>의 5연처럼 좀 지리긴 한다. 하느님도 지리실 거라는 데, 그것도 불알을 움켜 잡힌 사내처럼 지린다는 데 한갓 피조물인 우리야 좀 많이 지려서 흘러버린 들 또 어떠랴. 근데 그거 아시나? 5연에 보면 오줌을 지리는 게 전부 남자라고 보면 되는데 말입니다, 김언희는 나이는 많지만 여자라서 몰랐을 거다. 불알을 오지게 쥐어 잡혀도 오줌은 지리지 않는다. 죽거나 죽음 근처에 가면, 즉 거세게 불알을 쥐어 잡히는 극도의 고통/공포에 다다르면 말은 오줌을 지린다고 하는데 사실 그게 오줌이 아니다, 전립선 액이지. 방광보다 전립선이 더 요도에 가까이 있거든. 목매달아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보면 뭔가 몇 방울 지린다. 그걸 채취해서 현미경으로 보시라. 글쎄, 내 말이 맞다니까. 전립선 액이라니까. 육군행정학교 법의학 시간에 배웠다니까. 후진 독후감 읽고 그래도 뭔가 하나 얻어 가시라고, 오늘의 교양으로 알려드리는 거다.


  김사인이 책의 뒤표지에 김언희가 또 “격렬한 자폭의 언사”를 저질렀다고 썼다. 격렬하게 자폭을 하면서 동시에 단정하단다. 얼음같이 찬 맨정신이란다. 물론 뒤표지에 쓰인 말이니까 다분히 주례사겠지만, 다른 시인도 아니고 김사인이 한 말이니 반 이상은 믿기로 하고 더 읽어보면, 김언희의 문장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말한 것처럼 참혹하고 어찌 보면 위악적이고, 하느님조차 지리게 만드는 논-필터링의 문장들. 근데 이상하다. 난 김언희의 시를 읽으면서 김사인이 낚아챈 “우리의 분노와 혐오가, 우리의 공포와 거룩함이 마침내 여기에 이른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건 아마 이런 거친 자폭, 참혹한 문장의 사용이 비극성을 끌어오는 데 성공하지 못했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당연히 이건 아마추어 시 독자의 의견이니 심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김사인이 이야기한 김언희의 문장에 관한 시를 읽으며 독후감을 끝낸다. 제목을 제외한 원문의 글꼴은 전부 이탤릭체로 되어 있다.



  문장들


  아비의 낯가죽을 손톱으로 벗기는 문장, 어미의 뼈를 산채 바르는 문장, 젖이 아닌 것을 물리는 문장, 젖이 아닌 것을 빠는 문장, 갈보 중의 상 갈보, 죽은 몸을 파는 문장, 죽은 몸을 대패로 밀어서 팔아먹는 문장, 부위별로 값이 다른 문장, 구석에서 대가리가 떨어져나가도록 하고 있는 문장, 대가리가 떨어져나간 줄도 모르고 하고 있는 문장, 떨어진 대가리가 개미떼에 떠들려 뿔뿔이 흩어지는 와중에도 하고 있는 문장, 숨이 끊어진 다음에도 알을 까고 있는 문장, 컴컴한 물 밑에서 죽은 자의 항문을 쪽쪽 빨고 있는 문장, 창자까지 게워 바치는 문장, 다 게운 다음에도 더 게우는 문장, 부질없는 삽날을 물고 독을 질질 흘리는 문장, 손에 잡히는 건 뭐든 성기로 가져가는 문장, 세상의 중심을 혀끝으로 벌려보는 문장, 나를 아홉 구멍으로 범하는 문장, 어떤 죽음도 이미 죽음이 아닌 문장, 내 죽은 얼굴에 오줌을 싸는 문장, 내 죽은 얼굴에 칼질을 하는 문장, (전문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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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1-03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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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구레이顧雷 <물이 흘러내린다>
화요일, 셰한 카루나틸라카 <말리의 일곱 개의 달>
목요일, 조르조 바사니 <핀치콘티니가의 정원>
금요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선택적 친화력>

coolcat329 2023-11-03 13:00   좋아요 2 | URL
핀치콘티니 저도 지난 달에 샀어요. 기대됩니다!

Falstaff 2023-11-03 16:23   좋아요 1 | URL
핀치콘티니..... 화자 ‘나‘하고 제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아주 (염병을 한다고) 빠져서 읽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algial 2023-11-03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언희 시집 중 어느 자서에서 남근 중심 세상과 싸우느라 시가 그렇다고 한 걸 봤습니다. 노투사는 언제 쉽니까. 말씀대로 짠합니다.

Falstaff 2023-11-03 16:19   좋아요 1 | URL
김언희의 의도는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그 말이 별로 설득력 없게 들리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이 시집의 발문을 시인 김남호가 썼는데요, 발문을 읽어봤더니 남근 중심의 세상과의 투쟁이란 건 과장이거나 허사일 것 같습니다. 물론 시인은 진심으로 이야기했겠지요.
제가 제목에서 말한 ‘짠하다‘는 건 시인으로 자기 색깔을 내보고 싶어하는 시인들만의 애씀 같은 것이었답니다. ^^;;;

coolcat329 2023-11-03 1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오랜만에 왔습니다.
근데 시인의 화법이 엄청 직설적이네요.
도대체 누구실까 궁금해서 찾아 봤는데 환하게 웃는 얼굴이 시와 매치가 안되네요. ㅎㅎ
근데 그게 전립선 액이었군요! 하나 배웠네요 ㅎㅎ

Falstaff 2023-11-03 16:21   좋아요 1 | URL
정말 오랜만입니다. ㅎㅎㅎ
보편적으로 좋다는 평가를 받는 시,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만 추려서 읽을 수 없어서 가끔 모험 비슷한 걸 해보는데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시 읽는 것도 어쩜 그렇게 인생을 닮았는지 말입죠.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3-11-03 1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근데 전 팔백작님 질색팔색하는 책들이 느낌 있고 좋은 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1-03 20:0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 책은 질색팔색은 아니고요, 이 양반이 제 생각엔 오버, 크게 오버하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비등점 바로 앞에서 딱 멈출 줄 아는 미덕을 아쉽게 김언희는 갖추지 못한 걸로.... ㅎㅎㅎ 제가 뭘 압니까, 그냥 그렇다는 거죠.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