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병사 슈베이크 1
야로슬라프 하셰크 지음, 요세프 라다 그림, 홍성헌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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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로슬라프 하셰크.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중등학교 수학교사를 하다가 은행원으로 직장을 옮겼어도 궁벽하게 살았다고 한다. 열세 살 때 그나마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더욱 가난해져 이후 빈민가에 살면서 침울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변했단다. 성당의 복사를 오래 해서 그랬는지 김나지움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반 독일, 반 정부 시위에 적극 가담해 퇴학을 당했다. 이후 약학을 공부해 프라하 체코 상업 아카데미에서 약학 전공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게 약사 자격증을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졸업 후에 아버지가 다니던 슬라비아 은행의 행원으로 입사하지만 곧 그만두고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삶’으로 접어든다. 무정부주의자로 유럽 각지를 여행했지만 흔히 작가들이 하는 풍요로운 여행은 아니고 거의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닌 거 같다.

  1907년에 무정부주의 활동 때문에 짧게 교도소 구경을 하는 동안에 화백 요세프 라다와 친분을 맺는데, 이이가 나중에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 : 이후 “슈베이크”>의 삽화를 그린다. 이 책에 그의 삽화가 많이 들어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5년에 91연대에 자원입대해 전선으로 가지만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왕국 체제에 반감을 가져 1915년 가을에 스스로 러시아에 투항했다. 당시 다수의 체코 병사들도 마찬가지여서 그들만 따로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을 만들어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것도 처음 알았다. 1918년 러시아 혁명 후에는 모스크바에서 체코 사회민주당에 합류해 러시아 적군에 들어가 복무했고, 우파Ufa에선 군 출판국 편집장도 지냈다.

  1920년 12월에 체코로 돌아온 하셰크는 또다시 ‘보헤미안의 삶’, 즉 방탕한 생활에 접어들어 알코올 중독 상태가 된다. 도저히 작품활동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철제 침대 위에서 책의 삽화를 그리던 요세프 라다에게 <슈베이크>의 후반부를 구술하다가 결국 끝을 맺지 못한 채 1923년, 마흔 살을 채우지 못하고 죽는다.

  체코에서는 유명하다지만 역자 해설에 다른 작품을 소개한 것도 없고,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 것도 체코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 두 권에 단편소설 세 편 포함된 것이 전부다.


  이 작품 <슈베이크>는 블랙 코미디다. 경쾌한 문체로 되어 있다는 점을 미리 아시기 바란다.

  슈베이크는 몇 년 전에 복무했던 군대의 의무위원회에서 정식으로 ‘바보’로 최종 판정을 받아 복무 중단 조치를 당한 개장수다. 체코 사람들도 개를 먹느냐고? 아니, 그런 개장수 말고, 개를 사고 파는 사람, ‘개고기’가 아니라 ‘개’로 장사를 하는 사람을 이렇게 번역했다. 그런데 슈베이크가 한 개 장사는 온갖 못생긴 괴물 잡종개들의 족보를 위조해 순혈의 진짜배기라고 구라를 쳐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파는 사기였으며 그것도 개 사냥꾼이 몰래 훔쳐온 똥개를 파는 일이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1권 뒷부분으로 가면 연대장이 애지중지하던 개를 훔쳐 자기가 모시던 중대장한테 줬다가 발각이 나서 편한 후방부대에 근무하던 중대 전체가, 일찍이 작가 하셰크 자신이 1915년에 입대한 91연대 산하로, 전선으로 배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작품은 집안일을 돕는 밀레로바 부인이 슈베이크한테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의 암살사건을 전해주며 시작한다. 이후 맥주집으로 향하는 슈베이크. 술집엔 사복경찰 브렛슈나이더와 입이 거칠고 박식한 술집 주인 파리베츠 딱 둘이 있었다. 브렛슈나이더는 자신의 건수를 올리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엮어 넣으려고 혈안이 된 당시의 보통 사복경찰이라 이들로 하여금 오스트리아, 체코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게 만들려 자꾸 미끼를 던진다. 그러나 시민들도 밖에서 함부로 정부 욕을 했다간 치도곤을 당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여간해 넘어가지 않았다. 당연히 대공 피살 사건이 화제가 됐고, 슈베이크는 1912년 터키가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스와의 전쟁 때 오스트리아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대공 부부를 죽였을 거라고, 이제 오스트리아가 터키에게 선전포고할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 세르비아와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체코, 즉 우리를 도와 터키를 쓸어버릴 거란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복경찰 브렛슈나이더가 술집 주인한테 묻기를, 어찌하여 요제프 황제의 초상화가 걸려있지 않느냐, 했다. 맥줏집 주인 파리베츠가 대답하기를, 초상화에 파리들이 얼마나 똥을 싸 놓았는지 얼굴이 온통 새까매져 떼어 놨노라. 그래 찾아서 보니까 정말 늙은 황제 얼굴에 까만 점이 촘촘했고, 갑자기 얼굴에 함빡 웃음이 번진 브렛슈나이더가 한꺼번에 두 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면서 슈베이크더러는 반역죄, 파리베츠한테는 황제 얼굴에 똥칠한 죄가 중하단다.

  슈베이크는 경찰서에 끌려가 브렛슈나이더가 작성한 조서가 사실이라고 읽어보지도 않고 서명을 해버려 다음날 아침 여섯 시에 지방형사재판소로 보내졌다. 근데 슈베이크가 하는 말이 좀 이상하거든. 그래 법정 의무관에게 진료를 의뢰했고, 세 명으로 이루어진 법정의무위원회는 “요세프 슈베이크의 완전한 정신적 마비상태와 선천적 백치상태증으로 미루어 요세프 슈베이크가 확실한 바보”라는 사실에 만장일치로 의견을 낸다. 그러나 곧바로 귀가시키는 대신 심리를 중단하고 혹시 주변 사람에게 위험한 지 확인 관찰을 위해 즉시 정신병원으로 이송시키라고 권고하는 바람에 병원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정신병원의 전문의들은 법정의무위원회와 의견을 달리해 슈베이크가 “이성이 박약한 꾀병쟁이”라고 진단하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어 그냥 퇴원조치 해버린다. 정신병원에서도 잡다한 에피소드가 있으나 생략을 하고, 퇴원을 할지언정 당연히 점심식사 하고 퇴원하겠다고 병원 수위실에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수위가 경찰을 불러 다시 경찰서로 끌려간다. 끌려가며 보니까 프라하 중앙통이 정신없이 술렁거리는데, 늙고 노망난 프란티세크 요제프 황제가 선전포고를 해버렸던 거였다. 경찰서에서도 이젠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왜곡된 법조항을 수호하기 위하여” 오직 형무소와 교수대 건수만 생각하는 가장 멋진 관료주의적 맹수들로 변해 있어서 밥투정 때문에 들어온 슈베이크 같은 날파리는 그냥 훈방 방면해 드디어 며칠만에 집으로 돌아간다. 맥줏집 사장 팔리베츠는 어떻게 됐느냐고? 일 주일 전에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맥줏집은 팔리베츠 부인이 계속 경영하고.

  수다스럽지만 얌전한 (줄 알았던) 밀레로바 부인은 슈베이크가 없는 동안 슈베이크의 방을 불륜 커플한테 빌려주어 돈을 벌어왔는데, 이 에피소드도 넘어가자. 얼마 후 오스트리아가 수세에 몰리자 드디어 슈베이크에게 신체검사 통지서가 도착했다. 통지서가 오자마자 갑자기 류머티즘이 재발한 슈베이크는 밀레로바 부인에게 입대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류머티즘 증세를 잘 알고 있는 밀레로바 부인은 득달같이 의사를 불러와 3일 동안 관찰을 하게 하지만 날이 갈수록 증상은 더욱 나빠지기만 해서 드디어 참전은 꿈도 꾸지 말라는 진단을 받아낸다. 그러나 슈베이크는 부인이 다림질한 전에 입던 군복을 입고, 붕대를 친친 감은 다리와 목발로도 부족해 과자가게에서 예전에 쓰던 작은 수레를 빌려와 그걸 타서, 밀레로바 부인이 미는 수레 안에 누운 채 오스트리아 군가를 부르며 신체검사장으로 출발한다. 이 모습이 프라하 관보에 소개되기를, “노모에 의해 병자를 위한 수레에 실려왔던, 목발에 몸을 의지한 불구자의 아름다운 시위”라 했다.

  하지만 군의관 대장 바우츠가 딱 보고 하시는 말씀. “이 모든 것 속에 최전방과 총탄과 포탄의 파편을 회피하려는 기만적인 시도가 숨어 있다. 모든 체코 국민들은 거짓말쟁이 무리들이다.”

  판정에 의하여 영창으로 끌려가려는 순간 슈베이크는 기적같이 류머티즘이 사라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판정이 났으니 영창으로 가기는 했는데 영창 중에서, 영창 의무대로 갔다. 이곳을 찾아온 남작 부인. 프라하 관보에 난 아름다운 광경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영창 의무대 병실로 통닭구이 12마리, 전투용 리큐어 두 병, 와인 세 병, 담배 두 갑, 잘 제본된 <우리 군주의 인생 이야기>, 초콜릿 상자, 매니큐어 세트, 과일상자, 흰 히야신스와 함께 위문차 방문한 것. 남작부인이 돌아간 후에 영창의무대의 그린슈타인 박사에게 슈베이크가 하는 말이, “남작부인이 저의 계모랍니다.”

  최종적으로 군의관들이 위원회를 만들어 슈베이크를 찾아와 결론을 낸다. 슈베이크는 “생선처럼 건강하고 꾀병을 부리고 있고, 멍청한 소리도 지껄이면서 상관을 상대로 웃긴 짓을 하고 있음. 다만 자기 재미를 위해 여기에 있고 모든 전쟁이 장난이며 코미디 같은 것이라 생각함. 전쟁은 절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어야 함.”

  그리하여 슈베이크는 유대인이며 호색한이며 분명한 알코올 중독자인 군종신부 오토 카츠의 당번병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본문만 1,623쪽까지 달려도 결국 미완성으로 끝나는 길고 긴 전쟁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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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12-06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코, 블랙코미디,,, 읽고 싶은 요소는 다 갖췄네요.^^

Falstaff 2023-12-06 16:25   좋아요 1 | URL
재미는 있는데 미완성이라 갑자기 뚝 끊어지는 바람에 김이 좀 샙니다. ^^

레삭매냐 2023-12-06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책 계의 전설적인 책이라
나오자마자 사긴 했는데... 여적
뭉개고 있네요.

다른 재미진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니-

Falstaff 2023-12-06 16:26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셔요.
문체는 차페크의 희극 단편집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하고 매우 비슷하더라고요. 보헤미아 사람들이 이런 문체인가...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번역자도 다른데 말이지요.
 
구리 이순신 범우희곡선 40
김지하 지음 / 종합출판범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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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여 년 전 교양과목 국어작문을 수강했다. 과제 가운데 하나가 “총장에게 보내는 서한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불행했던 우리나라 현대사는 생떼 같은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몸에 시너thinner를 뿌리고 구호를 외치다가 스스로 휴대용 라이터에 불을 붙여 온몸으로 아스팔트를 뒹굴며 생을 마감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1970년대 초반 베트남 승려들의 분신에서 비롯한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보인 이런 극한의 자살 시위는 나로 하여금 심각한 회의를 갖게 했다. 때마침 모교에서도 도서관 옥상에서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살포한 후 시멘트 바닥을 향해 장렬하게 몸을 날렸으나(그렇게 들었으나) 기가 막힌 순간에 학교에 상주하는 사복 형사 또는 무명의 백골단원이 그녀의 발목을 나꿔채는 바람에 명을 보존한 일이 있었다. 민주 투쟁을 하는 건 시대를 잘못 만난 젊은이로서 하나의 의무인 건 맞다. 그것을 위하여 법, 기존의 악법을 위반하는 것도 맞다. 악법을 올바로 고치려면 반드시 악법을 반대하는 투쟁을 하고, 대신 그 법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 한다. 희생 없이는 어떠한 법도 바로잡을 수 없으니까. 이 과정에 잘못된 법률에 의하여 죽음을 맞는 것과 투쟁의 방법으로 하필이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는 것은 다르다. 그건 완전히 잘못된 죽음의 방법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들과 다른 생각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시대였다. 나는 찌그러졌다.

  그리하여 교양필수 국어작문 시간에 몇 년 후 국무총리가 될 총장에게 당부의 편지를 썼다. 당시 모교 화장실에는 좌변기 이전 시대라서 쪼그려 앉는 수세식 변기가 있었는데, 앉은 상태에서 눈 높이에 가로 손잡이를 달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피가 끓는 청년 학생들이 눈 앞의 손잡이를 잡고 안간힘을 쓰면 혹시 순풍순풍 매화타령을 하는 쾌변의 카타르시스를 만날 수 있겠으며, 해탈의 순간에 모든 스트레스가 함께 빠져나가 최근 도서관 옥상에서 있었던 현대판 ‘타잔 놀이’ 같은 아찔한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 같다고. 하필 장난기에서 그리 했을 것이 분명한, 유명하지는 않지만 소설가였던 강사께서 내 서한문을 뽑아 낭독을 했고, 계단식 강의실엔 홍소가 터져버렸으나, 나는 입대해버리고 말았다. 뭐 그때는 그랬다. 비겁한 남자새끼들은 회피의 방법으로 군대에 가버리고, 여자애들은 시집을 가거나 약혼을 해버리고.

  세월은 흘러 제대를 하고 실연을 당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다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직장을 위해 소도시로 옮기고 아이 하나를 둔 1991년. 조국에선 여전히 젊은이들이 시너를 뒤집어쓴 채 줄줄이 죽어 나갔다. 이때 많고 많은 신문 가운데 하필이면 조선일보에 김지하의 칼럼이 올라왔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이미 예전의 친구들과 완벽하게 격리된 나는 세상물정 모르고 ‘조선일보’의 칼럼임에도 열광했다. 역시 김지하. 그러지 않겠는가? 십 년 전에 내가 생각했던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무려 김지하가 웅변을 해 마지않았으니.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자는 건 좋은데 발언의 톤이 시원하기는 시원하지만, 논조가 필요한 것보다 과격하다는 거였다. 20여년 전 5적을 향해 일갈했듯이. 아니나 다를까, 노태우 정부와 당시 여권은 이를 반대파 공격의 강력한 무기로 활용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김지하를 변절자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김지하는 이후 기행의 시기로 접어들고 10년이 지난 2001년에 죽음의 굿판에 관해 유감을 표하기도 했으나 2022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진보 진영과의 화해는커녕 변절자의 낙인도 지우지 못했다.

  변절자. 물론 김지하가 박근혜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변절자?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자기 진영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변절, 배신이라 말하는 자체가 아집 그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닐까? 사상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도 인정하지 않는 게 소위 진보?

  김지하. 미당 이후에 어쨌거나 지하만큼 영욕의 대상이 된 문인은 없을 듯하다. 오늘 소개하는 《구리 이순신》에는 1970년 작품인 <나뽈레옹 꼬냑>과 표제작 <구리 이순신>, 1974년 작 <금관의 예수>가 들어 있다. 1970년은 지하가 그의 대표작인 담시 <오적>을 발표해서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된 해. 당시 청년, 지식인들은 벌써 권력을 쥐고 10년차에 이른 박정희 독재정권의 정치적 폭력과 경제적 약자 수탈에 항거할 수밖에 없었다. 부르주아의 축재는 세상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러했듯이 저임금 대량생산을 통한 이익의 극대화를 시작했으며, 이와 관련한 공무원, 군인, 기업가들은 서로 부패의 고리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독야청청? 돈 안되는 일이었다. 이 당시 진보 진영은 적어도 의식意識적으로는 행복했을 지 모른다. 무조건 권력을 쥔 자, 부유한 자를 공격하기만 하면 정당했으니까. 책은 벌써 반백 년 전 이야기들이다. 지금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때는 이랬었구나, 하는 심정으로 읽어야지, 50여년 전에 했던 김지하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그리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첫번째 작품 <나뽈레옹 꼬냑>은 에네시가 맛있느냐, 르미 마르탱이 맛있느냐 하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에 양주라는 단어조차 귀했던 시절, 삼학소주가 진로와 함께 시장점유율을 다투던 시절에 서울의 절두산 인근에서 오빠가 운전하는 자가용 차를 타고 가던 정인숙이라는 아들 하나 딸린 젊은 여성이 의문의 총에 맞아 현장에서 죽고, 오빠는 허벅지에 관통상을 당한 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작중에서는 정인숙이라는 본명 대신 강변에서 총을 맞았으니 강변숙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국무총리를 했던 정일권이 정인숙이 키우는 아들의 친부라는 의혹(네이버 지식백과를 베낀 것. 내 의견 아님. 관계자분들은 고소하지 마실 것)은 여전히 미궁에 빠진 채라는 건 다 아실 터이고, 작중 강변숙의 남자는 그저 ‘고위 관리’ 당시 부자나 관료들을 대표하는 똥배 나온 대머리에 카이저 “수염”이 나고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인데, 극은 이 수염 남자의 집에서 여사님의 대학 동창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단막극이다.

 베트남 파병 육군장교의 아내 통뼈, 공무원 아내 시엄마, 회사 사장의 아내 오만평이 수염의 아내 마마의 응접실에 앉아 서로 못 잡아먹어서 독살 맞은 말의 칼로 서로의 멱을 따려는 가운데 마마가 “나뽈레옹 곤냐꾸” 한 병과 코냑 잔을 들고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등장한다. 이들은 남편의 안전과 다음 번 승진 발탁, 관급 계약의 성사를 마마에게 청탁하러 온 것이고, 나중엔 방송사 PD의 아내 선녀가 바람난 남편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가판대에서 산 신문 한 장을 갖고 늦게 도착한다. 친구들 앞에서 온갖 폼을 잡는 마마가 신문을 펴보더니 강변숙 살해사건에 수염 씨가 깊이 관여되어 있어 관직 박탈이 거의 확정적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순간 친구들이 돌변해 마마에게, 화무십일홍이니, 권불십년이니, 위대한 나뽈레옹 곤냐꾸가 되어버렸다느니 비웃으며 자리를 뜬다는 내용이다.


  두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구리 이순신>은 세번째 1974년 작 <금관의 예수>와 매우 유사하다. <금관의 예수>를 자기표절 작품 또는 <구리 이순신>의 확장 각색 작품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구리 이순신은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말하며, 금관의 예수는 부자가 만들어준 금관을 쓴 시멘트 예수상이다.

  세상은 갈수록 험해 가난하고 가여운 사람, 엿장수는 처자식 돌보느라 아무리 일을 해도 호구지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내일이 오늘보다 좋아지리라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 이를 슬퍼하는 거지 시인은 이순신 동상 아래에서 세상을 탄하다가 쪼그리고 잠을 청한다. 엿장수는 구리로 만든 이순신 장군의 몸통은 그만두더라도 집고 있는 칼이나마 훔쳐 팔아 마누라한테 목도리라도 하나 사주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칼에 손을 대는 순간, 이순신 동상이 엿장수에게, 세상이 이 지경인데 자신은 구리 틀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제발 구리 감옥을 벗겨달라고 부탁한다. 이 어려운 시기를 바라만 볼 수 없다고.

  마찬가지로 사창가에 살고 있는 문둥이와 거지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왕관을 벗겨 세상에서 소외된 가장 가여운 인간, 문둥이와 거지들이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라고 말하고, 시멘트 감옥 안에 갇혀 도탄에 빠진 하느님의 자식들을 내버려두고 있는 처지를 한탄하는, 금관의 예수 이야기다.


  김지하라고 하면 문, 사, 철, 시, 서, 화, 무(춤)에 능하다고 하는 인물이다. 1970년에 발표한 <오적>에서 볼 수 있듯이 김지하의 다방면에 걸친 탁월함 중의 하나가 놀이판이자 담시譚詩다. 그리하여 <구리 이순신>에서는 엿장수가 한 판 사설을 늘어놓고, <금관의 예수>에선 문둥이와 거지가 듀엣으로 사설을 풀어내는데, 이게 김지하의 희곡, 마당극의 진수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뽈레옹 꼬냑>과 <구리 이순신>은 1971년 5월에, 축제 때 아닐까 싶은데, 공연을 준비했다가 대학 군사훈련 반대 시위로 휴교조치가 내려 무산되었다고 해설에 쓰여 있다. 만일 이때 공연을 했다면 최초, 아니면 상당한 초기의 현대식 마당극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다시 말하는데, 50년 전 작품이다. 그때의 시각과 지금 시각이 같을 수도 없고 같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 터, 독자들은 스스로의 필터를 갖고 읽어 마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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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12-05 16: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대학 다닐 때 <금관의 예수>는 연극으로도 상연하고 운동권 노래집에 노래로도 만들어져 실렸던 기억이 나요.
김지하 시인의 시가 그때만해도 마음에 금방 와닿지는 않았는데 ‘새벽 두시‘라는 시를 읽고 그나마 쉽고 공감이 되어 다른 시도 더 읽어보는 계기가 되었었지요. 시대의 아이콘이라는 이름을 이 시인에도 붙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분명히 그런데 말이죠.

Falstaff 2023-12-05 16:05   좋아요 0 | URL
저 다닐 때 김지하는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 거의 신격화 수준이었습니다. 일종의 반작용이었겠지요. 당시 파쇼 정권이 워낙 혹독해서... 저도 물론 상당히 좋아했었습니다.

호시우행 2023-12-0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보는 자신들이 지식인이라고 착각하는 자만심에 빠진 무리이기에 김지하 시인을 변절자라고 폄하하는 건가?

Falstaff 2023-12-05 16:06   좋아요 0 | URL
진보가 어때서요? 보수가 문제 없듯이 진보도 문제 없습니다. 보수나 진보나 제대로 된 것들은 문제 없습니다. 그저 보수라고, 진보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것들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호시우행 2023-12-05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허물어버린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396
문충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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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오랜만에 문충성의 시집을 샀다. 그리고 1년 하고도 열 달이 지나 첫 장을 열었다. 지독한 게으름이다. 문충성은 80년대 초반에 조금 읽고, 이후 드물게 우연히 읽게 되면 읽고, 아니면 말고, 그냥저냥 그랬다. 우리 나이로 마흔 살에 등단해 첫 시집 《제주 바다》를 당시 모교 아르센 루팡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지, 빈 주머니를 털어 두부김치에 막걸리 한 통을 마실까 주저하다 돈 주고 사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하여간 읽었다. 별로 감흥이 없었나 보다.

  문충성이, 아이고, 그동안 “우리나라 나이”가 없어져 그냥 여든다섯. 하기는 내 턱을 따라 돋은 터럭에도 눈 내린 지 오래니까.  이 시집이 나온 해가 2011년. 일흔셋일 때 출간했다. 말이 일흔셋이지, 시인은 이제 서울 나들이를 하더라도 며느리의 삼촌이 대나무로 깎아준 지팡이를 짚고 길을 나선다. 시인은 병들고 시인의 아내는 아프다. 앞서거니뒤서거니 혹은 며느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행이 다반사다. 그래도 아직은 그림자가 둘이어서 조금 위안이 되는 모양이다. 노인들은 조금씩 쇠하는 게 아니라 큰 계단처럼 한 방에 훅 가고, 얼마 있다가 또 한 방에 훅 가고, 몇 번 훅, 훅 가다가 툭, 떨어진다. 그걸 시인이라고 모를 턱이 있나. 그리하여 시집의 마지막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꽃들 지고


  여름날

  왕잠자리 날 듯

  벙그는 연꽃들과 눈 맞춰뒀다

  고양시 호수공원

  연꽃 밭

  다리 아파

  갈 수 없다

  산책 갔다 온 막내딸애

  말한다

  연꽃들 졌더라고

  만딱!  (전문)



   마지막 행의 “만딱”에서 ‘만’은 “아래 아”를 쓰는데 지원이 되지 않아 그냥 ‘만’이라고 썼다.

  소감? 나도 딸 하나 있었으면. 아들 집에 가봐라, 서로 불편하다. 며느리는 호수공원을 바로 앞에 두고도 혼자 산책하러 나가기 눈치 뵈고, 갔더라도 연꽃이 졌다고 얘기하기도 눈치 보이고, 시부모도 마찬가지로 다리 아프다 한 마디 하기도 뻑뻑하다. 그냥 하는 얘기다. 딸이건 아들이건 다 크면 각자 사는 게 장땡이다.

  문충성이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시를 읽으면 “연꽃들 졌더라”는 이야기에 방점이 찍히면서 ‘나’의 시간도 이젠 질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이런 시를 쓸 마음을 먹지도 않았을 터이니.

  민영, 고 오탁번, 정희성 등등 노년에 접어든 시인의 말년 시는 주변의 자잘한 사물, 일상 같은 것을 새롭게 보고 듣는 노래가 많다. 이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가령 이런 시.



  동동



  파란 달빛 소리

  파르르

  눈 떴다


  아무런 생각은

  잠자고


  방 하나 그득

  넘쳐난다 달빛이


  파랗게 떠간다 파랗게

  아무런 생각이

  동동  (전문)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노년의 시인이 자다 깼다. 방 안 가득 달빛이 들어오고 그저 아무것도 아닌 생각들이 동동 달빛에 희뿌윰한 어둠 속에 동동 떠있는 그림, 또는 노래. 어떠셔? 귀엽지? 또 이 시절의 시인한테는 과거를 회상하는 일종의 특권이 주어진다. 젊은 사람들이라고 추억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수십년 오래 묵어 고릿하게 묵은 내가 나는 추억, 연상 만하겠는가. 문충성은 자신의 20대를 추억한다.



  가짜 사기꾼



  이제야 알았다

  사기꾼들 세상

  언어의 감옥에서

  동대문시장에서

  그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길 위에서

  도주하라

  1960년대 가난한 그

  전당포에서

  명동에서

  전차에서

  아니면 충무로에서

  이고 다니던 하늘

  싸구려로 저당 잡혔다

  냄비 우동 한 그릇 값에

  그리고

  얼굴 붉히며

  사기꾼들 사이에 끼어 아직

  사기꾼이 되지 못한 가짜 사기꾼

  120 당구를 치고

  막걸리 대폿집 지나 ‘달 다방’으로

  점심 값 살리고

  어깨 구부리고

  걸어 들어갔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브람스 들으러  (전문)



  여기서 “가짜 사기꾼”은? 시인 자신이다. 한 번 까볼까? 제주에서 살다가 서울 유학 온 “1960년대의 가난한 그”라고? 쇤네도 돈 아까워서 당구 한 판 안 쳐봤습니다. 당구 10분 칠 돈이면 막걸리가 한 되인데 어떻게 손 떨려서 큐를 잡을 수 있었겠느냐는 말이지. 브람스도 열라 들었습지비. 학교 음악감상실에 죽치면서 듣든지, 한 겨울 종로1가 르네쌍스에서 그애하고 덜덜 떨며 듣던지. 시퍼렇게 얼 정도로 벌벌 떨다가 냄비우동은 자주 사 먹었군.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그걸 시인이나 소설가가 쓰면 그럴듯하고 나같이 무지렁이가 쓰면 꼴값을 하는 거다. 그러니 보통의 독자여, 어디 가서 함부로 궁상 떨지 맙시다. 괜히 가오만 떨어지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이런 거 하나 더 있지? 첫사랑 이야기. 그것도 길게 해봐야 꼴값이란 말 밖에 못 듣는다.


  그러나 이 시집 《허물어버린 집》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현대사의 큰 비극 가운데 하나인 4.3 사건과 사라져가는 제주도 언어와 제주 사람들이다. 내가 4.3 사건과 제주에 관해 아는 것이 없어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해 말하지 않았다. 시인이 열 살 때 직접 눈으로 본 산간마을에서 있었던 참사를 내가 뭐라고 아는 척을 할 수 있겠는가. 관심있는 분은 읽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참수한 사람의 머리통을 죽 늘어놓은 광경. 그걸 본 열 살의 소년은 30년 후 시인이 되고, 다시 30년이 더 지나 본 것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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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3-12-04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딸 하나 있어봤자 되바라지게 아빠 드러워!! 꼰대애!!! 할 걸요 저기는 옛날 딸이라 연꽃 진 거도 알려주고 그러지 ㅋㅋㅋ 옛날 이야기 독후감에 잔뜩 팔아먹은 입장으로 꼴값처럼 보일 수도 있구나…안 본 눈 사드릴 수도 없고 어쩌지 계속 꼴값이나 떨어야지…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3-12-04 10:19   좋아요 1 | URL
그 딸도 ‘옛날 딸‘이 될 즈음엔 늙은 아빠한테 연꽃이 졌다고 하지 않을까요? ㅎㅎㅎ
 
별의 시간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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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데뷔작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읽고 화들짝 놀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백일도 더 지났다. 왜 놀랐느냐 하면, 리스펙토르가 겨우 스물두 살 때 쓴 작품이면서 포스트모던, 그리고 경쾌한 문장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별의 시간>을 읽으면서도 당연히 이런 것들을 기대했다. 그런데 발칙한 빨간 색 표지의 <야생의 심장 가까이>와 달리 검정 표지를 한 <별의 시간>은 다분히 음울하다. 1977년 작품이니까 57세의 작가가 난소암으로 생을 마감한 해이지만 정작 리스펙토르의 육체적 고통은 암에 의한 것이 아니라 1966년에 당한 사고의 후유증이었다. 난소암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치료불가의 판정을 받아 손쓸 새도 없이 죽음에 이르렀다. 암이든 사고이든 간에 만년의 지독한 고통은 작가로 하여금 옛 시절을 생각하게 했고, 당연히 죽음과 살아온 흔적 같은 것을 연상하게 만들었을 터이니, 암울한 작품을 쓴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갈 것.

  리스펙토르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한 편의 교향시, 아니면 적어도 음악 형식과 유사한 형태를 갖기 원한 것 같다. 그리하여 책의 제일 앞에 첨부한 “헌사” 가운데 이 작품을 헌정하고 싶은 작곡가만 나열해도 꽤 많다.

  지금은 슬프게도 유골로 남은 오래전의 슈만과 그의 사랑 클라라, 베토벤의 폭풍, 바흐의 중성색이 진동하는 순간, 나를 졸도시키는 쇼팽, 나를 겁먹게 했으며 나와 함께 불길 위에 솟구친 스트라빈스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 드뷔시의 투명한 베일, 마를로스 노브레(브라질 작곡가), 프로코피예프, 카를 오르프, 쇤베르크와 12음 기법 작곡가들, 전자 음악 세대의 귀에 거슬리는 여러 외침들에게 <별의 시간>을 바친다고 썼다. 물론 이 외에 “혈기 왕성한 인간/남자인 나의 피처럼 짙고 검붉은 진홍색에 바치며 따라서 내 피에 바치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기도 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1920년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유대인 여성이다. 그런데 위 문단 안의 따옴표에 “인간/남자”라고 표기한 것은 포르투갈어 ‘homem’으로 ‘남자’ 또는 ‘인간’으로 번역할 수 있다고 영어전문 번역사 민승남이 각주를 달았다. 역자는 또한 이 헌사는 작품의 등장인물이며 화자인 호드리구 S.M.이 썼다고 볼 수도 있고, 작가인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썼다고 볼 수도 있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독자는 헌사의 마지막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씀”이라고 박아 넣은 헌사를 누가 썼는지 굳이 구별할 필요는 없다. 작중 주인공인 브라질 동북부 알라고아스 출신 처녀, 처음엔 이름이 없다가 조금 후 고모한테 타이프를 배운 타이피스트였다가, 중간 이후부터 마카베아라고 불리는 어릴 적부터 고아였던 19세 여성의 보잘것없는 누추한 삶을 따라가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마카베아 아가씨의 스토리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까, 이건 독자에 따라 의견이 조금 갈릴 것 같다. 이런 책은 뒤에 흔한 “역자 해설”이 붙어 있으면 훨씬 좋을 텐데, 한 부류는 분리를 할 필요가 없거나 할 수 없는 작가 리스펙토르와 화자 호드리구의 독백, 치통 같은 날카로운 고통과 귀에 거슬리는 고음으로 넘실거리는 당김음 선율 속에서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발견하려 할 지 모르고, 다른 한 부류는 북동부 알라고아스 출신의 가난하고 굶주린 하층 고아 여성 타이피스트 마카베아가 상징하는 것을 찾을 지 모른다. 나도 둘 가운데 하나, 아니면 둘 다였다. 독후감을 쓰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은, 평소엔 작가 소개 언저리만 읽고 마는데 오늘은 리스펙토르의 난소암 상태가 어때서 마지막 작품이 이렇게 암울한지 알아보려고 말년까지 읽다가 발견한 바, 책을 다 읽고 지금까지도 남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오인 줄 알았다가, “마카베아”라는 여성형을 “마카베오”라는 남성형으로 바꾸면 “명백하게” 유대인 가족, 리스펙토르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인종이란다. 이걸 극동아시아 독자가 도무지 알 수가 있나? 게다가 마카베아 아가씨의 고향 알라고아스가 러시아 혁명 후 적백군 간의 내전을 피해 유대인 리스펙토르 가족이 배를 타고 길을 떠나 도착한 곳이라고 한다. 그러면 셈이 좀 복잡해진다.

  여기에 한 가지 의문이 더했으니, “마카베아”가 브라질 문학에서 상징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쓰여 있다. 마카베아가 <별의 시간>에 출연해서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원래 상징적인 인물/이름이 있었는데 그걸 리스펙토르가 차용해 쓴 것인지, 이런 거 알려주라고 “역자 해설”이 있는 거 아닌가?


  화자 호드리구의 인생에 자신과 같은 고향을 가지고 있는 익명의 못생긴 타이피스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문학적으로 이렇다 할 성공은 거두지 못했어도 그럭저럭 만족스럽게 사는 남자였다. 말이 많은 것도 아닌데 줄곧 죽는 소리만 하다가 “금전적으로 가난하지 않은 사람은 영혼이나 열망의 가난에 허덕이게 되는데, 이들은 황금보다 소중한 무엇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헛소리도 서슴지 않는다. 외교관과 결혼하여 16년 동안 유럽과 미국 생활을 하고 귀국한 후 이혼을 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쪼들린 경험이 있는 리스펙토르의 수준에서 가난과 부유에 관한 이야기일 터, 진실은 가난은 사람의 영혼이나 열망까지 잠식해버리고 만다는 걸 작가와 화자는 몰랐을 것이다. 당시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호드리구가 말하는 시대엔 많은 여성들이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에서 선원들을 대상으로 매춘을 해 먹고 살았다는데, 그가 보기에 마카베아는 팔 수 있는 몸조차 갖지 못했고,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아직 처녀로 있어서 전적으로 무해하며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한다. 게다가 가진 것도 없어서 빈민가의 공동주택이나 상점 계산대 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너무도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적 존재이며, 차라리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마카베아는 조실부모하고 학교 교육도 3년 밖에 받지 못해서 글도 쓰지 못했지만 고모가 속성으로 타이프치는 걸 가르쳐 고모가 죽은 다음에 리우에 와서 도르레 유통회사의 타이피스트로 취직을 했다. 하필 사장 하이문두 실베이라 사장이 현학적인 단어 쓰는 걸 좋아해, 단어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는 마카베아는 연일 오타투성이의 서류를 만들어낸다. 대화도 길게 하는 게 버겁고, 상당히 좁은 생활 말고는 기본 의식주 관련한 것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이 아니라)없는 마카베아는 네 명의 마리아와 함께  한 방에서 살고 있으나 친하지는 않다. 몸을 잘 씻지 않아 심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알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자주 씻지 않는 것으로 알았으니까. 고향에선 사람들이 다 그랬으니까.

  그래도 사랑은 피어난다. 고향에서 사람을 한 명 죽이고 리우데자네이루로 와서 공장일을 하는 올림피쿠와 연애를 시작하지만 도무지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으며,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르고, 남자에 비하여 과하게 단순하기 때문에. 그러다가 올림피쿠는 마카베아와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통통한 중산층 아가씨 글로리아와 데이트를 하고 싶어 마카베아를 걷어차 버린다. 그래도 글로리아와 우정을 유지하는 마카베아는 친구가 권하는 대로 전직 매춘부였다가 포주를 거친 마담 카를로타에게 가 앞날의 운세를 보는데, 이게 대박, 이 집을 나가자마자 한스라는 이름의 백인을 만나 결혼하고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그거 아시지? 소설 작법 2장 3항. 노파의 예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는 거. 근데 작가가 브라질 포스트 모던의 선구인 클라리사 리스펙토르인데도 마찬가지로 들어 맞을까? 그건 직접 확인해보시라.


  원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때, “이 작품은 스토리 위주로 읽는 책이 아니다.” 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위키피디아에 쓰인 것을 보니까 그만 야코가 팍 죽어서 내 생각을 더 고집하지는 못하겠다. 솔직한 내 의견은 <야생의 심장 가까이>보다 덜 좋았는데 아직도 책 읽는 내공이 부족한 게 드러난 거 같아서 거 참, 겸연쩍기도 하고 뭐 그렇다. 나 잘난 맛에 사는 거, 그게 인생이지 뭐 별거 있어? 그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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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12-01 0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문충성, 《허물어버린 집》
화요일. 김지하, 《구리 이순신》
수요일. 야로슬라프 하셰크,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
목요일. 줄리언 반스, <고슴도치>
금요일. D.H. 로렌스, <다윗>

유부만두 2023-12-01 10:12   좋아요 2 | URL
골든삽질 기대하겠습니다.
연말 특집 올해의 삽! 선별 리스트도 만들어 주세요. ^^

수이 2023-12-01 11:24   좋아요 1 | URL
줄리언 반스랑 로렌스 기다리고 있을게요 폴스타프님

Falstaff 2023-12-01 15:35   좋아요 1 | URL
삽질은 계속 이어집니다. ㅎㅎ
11일. 앤 타일러, <바너비 스토리>
12일. 아모스 오즈, <블랙박스>
13일. 윌리엄 트레버, <운명의 꼭두각시>
14일. 조광화, 《조광화 희곡집》
15일. 줄리언 반스, 《레몬 테이블》
18일. 타티야나 톨스타야, 《톨스타야 단편집》
19일. 조지 엘리엇, <사일러스 마너>
20일.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깨어진 항아리>
21일. 장 콕토, <무서운 아이들>
22일. 아우구스트 스트랜드베리이, <꿈 연극>
25일. 신현림, 《세기말 블루스》
26일. 줄리언 반스, <태양을 바라보며>
27일. 요나스 하센 케미리, <몬테코어>
28일. 압둘라자크 구르나, <배반>
29일. 산도르 마라이, <사랑>

그리고 내년의 첫 삽질은: 프란츠 카프카, <실종자>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3-12-01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리스펙토르 배수아 번역만 두 권 보고 이제 그만 볼게…했는데 오늘 팔백작님 독후감이 좀 꼬십니다?? 훠이훠이 나 쉽고 안 맵고 정신 사납지 않을 거 볼 거야!!!

Falstaff 2023-12-01 15:34   좋아요 1 | URL
리스펙토르, 읽을 때는 매력적인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냥 잊혀지더라고요. ㅜㅜ

수이 2023-12-01 1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대대로 높은 안목을 지니신 분 후훗, 리뷰 잼났어요.

Falstaff 2023-12-01 15:34   좋아요 0 | URL
헉.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5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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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1943년생 러시아 작가. 《우리 차르의 사람들》을 재미있게 읽었어도 날이 많이지나 기억나지 않지만 <커다란 초록 천막>도 그렇고 이 <메데아와 그녀의 아이들>도 그런데, 유대인들이 주목할 만한 배역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정작 울리츠카야는 <커다란 초록 천막>에서 시인이자 유대인인 미하 멜라미트를 등장시켜, 거의 모든 지식인이 소비에트 연방에서 탈출하려고 갖은 방법을 도모했던 1970년대에, 소련 당국이 미하더러 이스라엘로의 이민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국어인 러시아어를 저버릴 수 없어서 끝내 소비에트에 남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내가 아는 유대인 작가는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울리츠카야가 1970년에 지하출판물(samizdat)를 소유, 배포한 혐의로 직장에서 해고되어 9년 동안 결혼하고 두 아들을 키우다가, (책의 앞날개에 쓰인 것처럼) 유대 드라마 극장에 들어간 것이 조금 의아스러웠다. 폐쇄적인 유대인 집단이 러시아 사람을 채용했을까? 울리츠카야가 유대인 맞다. 그러나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구소련이 만든 공동체 집단의 한 명으로, 인종적, 문화적 측면에서는 유대인이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다고 한다.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쓰는 경향이 있다는 울리츠카야는 그곳에 아파트까지 소유하고 있으며, 일년의 반은 모스크바에서, 나머지 반은 이스라엘에서 지낸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작품은 언제 쓰는 거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빅토리아 토카레바와 류드밀라 페트루셉스카야와 더불어 내가 주목하고 있는 여성 작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구 소련 시대에는 글을 쓰지 않았거나 검열을 당했거나, 써 놓고도 출간하지 않다가, 고르바초프가 제주도에 와서 노태우한테 30억 달러를 얻어가는 등 페레스트로이카가 진행되자 활발하게 출간을 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린 작가들이란 점이다. 그러나 울리츠카야의 장편소설 작법은 다른 작가들과 다르다. 그는 한 판에 많은 사람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옛일이거나 새로 하고 있는 일을 좌르륵 풀어내는 데 집중한다. 주인공 한 명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작가와 차별이 될 정도로 주인공이 거대 서사를 독차지하지 않는다.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메데야이지만, 메데야 시절에는 두 번의 전쟁과 스탈린에 의한 이주 정책으로 크름 반도 안에서 사라진 타타르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는 작품의 가장 큰 이야기 줄기인가보다,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점점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빼곡한데 어느새 앞부분에서 관심있게 읽었던 문제들은 사라져버린다. 이런 건 사실 내 스타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를 계속 읽고, 앞으로도 눈에 띄면 틀림없이 읽을 것이 분명한데, 그건 이이의 작품이 단단한 스토리라인을 구축하는 전형적인 장편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내는 문장의 섬세한 날줄과 씨줄 때문일 것이리라. 세상에 글 좋은 작가들이 한두명이 아니지만 글 좋은 작가들이 만들고 그것을 우리말 솜씨가 좋은 역자들이 번역한 작품은 놓치고 싶지 않다.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읽을 때가 있듯이 문장이 애간장을 녹이는 바람에 읽을 때도 있는 법이다.

  비록 이 책이 예전 비채 출판사에서 《소네치카》라는 책에 든 세 작품, <소네치카>, <메데야와 그녀의 아이들>, <스페이드의 여왕>을 역자 별로 잘라서 두 권을 만들어 불만이기는 한데, 이 책과 동시에 문학동네가 찍은 《소네치카∙스페이드의 여왕》도 놓치지 않을 예정.


  메데야 멘데스. 벌써 20년이 넘게 과부로 살고 있는 작은 병원의 간호사다. 간호사라도 같은 간호사가 아니다. 전쟁 때 동네의 유일한 의료업계 종사자로 모든 환자들에게 심각하지 않은 수술, 진단, 처방까지 두루 허가가 났던 지역 명사 정도 된다. 무시무시한 소련 정부에 의하여 지명수배된 사람이 메데야의 집에 숨어들어도 메데야가 호통 한 번 치면 아무리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라 하더라도 찍소리 못하고 날이 밝아 손님이 아침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다. 이런 기운차고 압도적인 위세는 다분히 할아버지한테 물려 받은 것. 할아버지는 지금은 우크라이나 영토이지만 과거부터 따지면 고대 스키타이 인들의 땅이었다가 그리스와, 타타르, 오스만 제국을 거쳐 지금은 소비에트 연방의 국영농장 땅이 된 크름의 페오도시야에서 빈 손으로 출발해 페오도시야 항에 등록이 된 네 척의 상선을 소유한 부유한 무역상이었다. 그러니 살면서 얼마나 억척을 떨고, 가끔 독한 악행도 서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기질 때문에 그 세대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꼭 있어야 좋은 자식복이 없어 유일한 혈육인 아들을 하나 두었을 뿐이다. 그러나 부자의 아들로 태어난 게오르기는 아버지처럼 악착을 떨 이유가 없어서 마틸다와 혼인을 하자마자 1890년부터 1816년까지 짝수 해 여름마다 줄줄이 자식을 생산해 무려 열네 명의 손주를 봤다.

  이 열네 명의 손주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마저 오리지널 그리스인인 시노플리 할아버지한테 강인한 기질과 재능을 물려 받았으니, 이 재능이 남자들한테는 탐욕과 큰 에너지와 건설에 대한 열망으로, 여자들한테는 절약과 물건에 대한 비상한 관심 그리고 재기 넘치는 실용적 기질로 나타났다, 라고 하는데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그냥 해본 이야기이거나 작가가 작품을 쓰다가 이 내용을 잊은 거 아닐까 싶다.

  메데야의 죽은 남편 사무일 야코블레비치 멘데스는 스페인에서 이주한 유대인 조상을 두었다. 1장에 소개하기를 쾌활한 유대인 치과의사라 했으나 책을 더 읽으면 드디어 남편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유쾌하다기보다 좀 산만하고 체신머리 없는 떠벌이 치과 기공사였다가 사회가 어지러울 때 자기는 별로 원하지도 않았지만 어영부영 치과 의사 자격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비밀스러운 바람둥이다. 그렇다. 바람을 피운 비밀 하나를 죽을 때까지 꽉 붙잡고 놓지 않은 인간.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마누라가 워낙 무서우면 지가 안 그러고 배겨? 죽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한테 우스워보일까봐 늘 전전긍긍하던 그가 미리 작성한 묘비명은 이랬다. “사무일 야코블레비치 멘데스. 특수부대 전사. 1914년부터 당원. 1890~1952” 묘비 꼭대기에 큼지막한 별 하나.

  메데야의 열네 형제 자매 가운데 마지막 열네 번째는 세례도, 이름도 갖지 못하고 엄마 배속에서 나오다가 엄마와 함께 죽어버리고, 아빠는 1916년 10월 7일, 세바스토폴 만 근처에서 함선 황후 마리야 호가 폭발할 때 선박 기관사로 일하다가 아내보다 9일 먼저 세상 떴다. 오빠 셋 가운데 하나는 적군에게 죽고, 하나는 백군한테 죽고 다른 하나는 메데야의 가장 친한 친구 옐레나가 난관에 빠지자 옐레나한테 장가들라고 강권해서 지금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과하게 잘 나간다. 남자 형제 하나는 독일군이 징병했고, 다른 하나는 소비에트가 징병해서 끌고 갔고 다른 하나는 루마니아인가로 가서 수도사가 됐다. 남은 형제 자매는 친척들한테 보내고, 아버지 형제가 워낙 없어서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 된 메데야가 알렉산드라와 두 살짜리 막내 디미트리를 업어 키웠다. 아이들이 거진 크고 보니 어느새 자신은 영낙없는 노처녀가 된 것. 그리하여 유대인 치과의사가 더 고맙고 그를 더 사랑했는지 모른다.

  남편이 죽은 이후에도 메데야는 한때 헬라스 땅이었던 페오도시야 옛집을 떠나지 않아 가문에 마지막 남은 그리스 순혈을 지키는 여인이 됐다. 그렇다고 오리지널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건 아니어서, 그리스어도 현지화 된 여러 그리스어가 있는데, 한때 그리스의 식민지 타브리다 그리스어, 정식으로 말하자면 폰토스 그리스어를 쓴다. 이제는 쓸 줄 ‘안다’. 그리스어보다 훨씬 자주 러시아어를 사용하니까. 혼자 산다고 외롭지는 않다. 매일 작은 병원 수납원으로 출근을 하고, 많고 많은 형제들이 낳은 자식과 손주들이 4월말부터 밀려들기 시작하는데, 워낙 활기차고 마음씀씀이가 큰 메데야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맞아들여 마치 휴가 온 아이들의 집인 것처럼 스스로 요리하고, 잠자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살게 해준다. 가을바람 소슬할 때까지.

  그러니 형제, 자매, 조카들한테 얼마나 이야기가 많겠는가. 지지고 볶고, 그것도 모자라 무치고, 튀기고, 삶고, 조리고, 꾸덕꾸덕하게 말리는 일들이. 그걸 그렇게 조근조근, 나긋나긋하게 펼쳐내는 솜씨란. 다만 저 앞에서 이야기했듯,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별은 네 개에서 멈추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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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3-11-30 0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메데이야는 동생이나 자기 자식들을 죽이진 않나보네요. 간호사래서 은근 독살을 기대했는데요.

Falstaff 2023-11-30 07:32   좋아요 1 | URL
저도 그리스 신화 생각하고 피 좀 튀는 악녀가 나올 거라 예상했다가, 꽝이었습니다.
오히려 선하고 강한 여성이더라고요. ㅎㅎㅎ

stella.K 2023-11-30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완전 제 스탈인데요? 조근조근. 하지만 언제 읽게될런지 모르겠습니다.ㅠ 언제나 소설 읽기에 좋은 길잡이를 제시에 주셔서 감사하네요.^^

Falstaff 2023-11-30 16:26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으셔요. 새털 같은 나날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