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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DAVID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음, 송옥 옮김 / 동인(이성모)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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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책도 안 읽으면서 책 욕심은 많아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책. 다른 작가도 아니고 D. H. 로렌스가 쓴 희곡이라니, 딱 그거 하나 보고 얼른 골랐던 책. 이제 책 사고 1년 반 만에 읽었다.
로렌스는 <어머니와 아들>, <무지개>, 그리고 <채털리 부인의 사랑> 등으로 거의 평생을 외설시비에 휘말렸던 작가. 나는 책을 사면서 이이가 정말 구약성서에 나오는 근엄한 다윗왕을 연극으로 만들었을 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그랬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근데 책의 첫 장을 열고,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 선지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아 왕이 된 사울이 기껏 아말렉과의 싸움에 이기고 왕을 잡아왔으나 팔자가 찌그러지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고, 아차, 괜히 샀다, 후회했다.
생전 처음 구약성서를 읽어본 것도 벌써 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이 몇 개 있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성당, 쾰른 대성당, 노트르담 성당, 로마 대성당, 옛 성 소피아 성당 등등. 나는 이런 휘황찬란하고 요란뻑적지근한 성당은 야훼나 예수의 뜻과 관계없이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든 후세의 교황, 추기경, 대주교, 큰 목사 등 종교인들이 자기들 어깨에 힘주기 위해, 민중들은 태중에서 죽지 않은 것을 후회할 정도로 배고픔과 추위와 전쟁의 잔혹함에 떨고 있음에도 눈꺼풀 하나 깜박하지 않고 그들을 무임으로 징용해서 세운 사치품일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는 거. 다른 잡신한테 가오가 망가지고 싶지 않았던 질투의 하느님 야훼가 솔로몬이 만든 최초의 성전부터 그렇게 만들기를 바랐다는 거. 음. 그랬구나. 그리하여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황소 2만2천 마리, 양 12만 마리를 공물로 태우게 해 야훼께서는 구름 위에서 그 미세먼지를 흠향했던 것이로구나. 그때 나는 잽싸게 계산했었지. 황소 2만2천 마리. 황소의 코끝부터 꼬랑지 끝까지 2미터라 잡고 한 줄로 늘어 세우면 44킬로미터, 화곡동에서 천호동까지 가겠구나. 양 12만 마리도 한 마리를 1미터라 잡아 한 줄로 늘어 세우면 120킬로미터, 서울시청에서 원주시청까지 가고도 10킬로미터를 더 가겠구나.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던 존재가 밤하늘의 도심을 빼곡하게 점령한 붉은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을 창조한 야훼의 정체구나. 나도 어려서 외조부모 따라 감리교회에 열나 다닌 적 있지만, 종교는 명백하게 아편임이 밝혀지고는 멀리했다가, 구약성서를 읽은 다음엔, 기독교인들이여 미안하다, 기피하게 됐다. 당신들의 종교생활을 존중하지만 나더러 믿으란 얘긴 더 이상 말라. 대신 기꺼이 지옥의 불 맛을 볼 터이니.
그런데 위에 쓴 건 전적으로 내 생각, 즉 기독교를 믿지 않는 불신자, 선하지 않은 사마리아 종자들의 생각이고 선한 예루살렘의 후예들은 구절구절 읽으며 아멘을 외치지 않을 수 없게 가슴에 콕콕 사무치는 모양이다. 이렇게.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는 (아멘!)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사람들을 전멸하였으나 (우우…)
다만 백성이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왔나이다 하는지라 (우우….. 우우….. 너 잘났다, 우우…..)
기독교인들은 다 아시겠지만 우매한 비기독교인들 들으시라 한 마디 설명을 첨언하자면, 야훼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사실이라기보다 내가 추리하기를, 사울을 왕에 올려준 사무엘이 보기에, 사울이 자신을 좀 냉대하는지라) 아말렉 족과 싸워 생명이 붙어 있는 모든 것을 죽이라고 명령해, 사울이 전군을 이끌고 가서 싹 도륙을 냈지만 말이 그렇지 어떻게 몽땅 살육을 할 수 있나, 아말렉의 왕 아각과 아말렉 땅에서 가장 좋은 소와 양을 전리품으로 가져왔다. 야훼가 지시한대로 아말렉의 모든 생명, 어린이, 여인, 노인, 장애인을 망라한 모든 인간과 종을 불문한 모든 가축을 다 찔러 죽이지 않고, 그들의 왕을 포로로 데려왔으며 산 생명체를 전리품, 그것도 야훼에게 공물로 쓸 목적으로 가져왔음에도, 아니 그랬기 때문에 사울을 왕위에서 끌어내려야 마땅한 죄라는 뜻이다.
근데 사무엘이 왜 사울한테 삐졌느냐 하면, 당시는 신권시대라서 제사장 사무엘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백성들이 자신들의 왕을 뽑아달라고 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거 불신자의 말이다. 교인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란다.) 사울을 왕으로 뽑아주었으나, 하루는 급하게 제사를 지내야 하건만 사무엘이 보이지 않아서 그냥 사울이 제사를 지내 버렸기 때문이다. 즉 왕이 신권까지 행사한 것이 못마땅했다는 거. 물론 성서에서는 야훼의 말씀으로 등장한다. 아멘.
근데 결론은 언제나 잘못을 세 가지 해야 나는 법. 동양이나 서양이나 삼세번의 규칙이 있으니까. 마지막 세 번째는 전투를 잇달아 치루면서 전황이 불리해지자 심신이 쇠약해진 사울이 전투의 승리를 점술가에게 물어보는 행위였다. 이렇게 삼진 아웃을 당하는 사울은 아들 요나단과 함께 전사하고, 두번째 왕으로 등극하는 이가 오늘의 주인공 다윗이다.
그러니까 세 가지 다 사울의 잘못은 야훼가 이렇게 하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무조건 복종하지 않고 인간 주제에 머리를 굴린 죄다.
하여간 극에서는 사울이 했지만 성서에선 사무엘이 포로로 잡아온 아말렉의 왕 아각과 소, 양을 즉결처분하고 사울한테 영원히 아듀를 고한 다음 궁을 떠나 간 곳이 베들레헴. 이곳엔 양을 치는 이새라는 원로가 산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말해 이새의 아들을 몽땅 불러놓고 면접을 보는데, 역시 선지자라서 척하면 척, 한눈에 척 심중의 왕의 재목을 알아본다. 근데 없는 거다. 아들이 이게 다요, 하고 물으니 막내가 양을 몰고 집에 오는 중이란다. 크고 건장하고 씩씩하고 잘생긴 장남은 원래 구약성서에서는 인기가 없는 게 보통이라 이 집에서도 장자 엘리압은 예선탈락하고 영웅은 나중에 등장한다는 연극법 5조 2항에 의거하여 아들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나타나는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당한다.
그리하여 한 판 잘 때려먹은 다윗네 집. 이 소문이 흘러흘러 사울의 귀에 들어가서 다윗은 길갈에 있는 사울의 성에 들어가 블레셋과의 전쟁에도 참가하게 된다. 이 전투에서 블레셋의 최고 장수가 바로 골리앗. 9척의 키에 봉황의 눈, 익은 대추 빛 얼굴,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수염이 가히 관운장인데, 블레셋 군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 장수 싸움, 1대1 맞짱을 떠서 승패를 정하자고 연일 시위가 대단했던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면전을 하면 이기겠지만 유대군 가운데 누구도 골리앗을 이기지 못할 거 같아서 1대1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진영에 틀어박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때, 혜성같이 등장한 목동이 다윗이다. 사울의 칼과 갑옷과 방패를 착용시키지만 도무지 갑갑해서 움직이지 못하겠다고 다 벗어버리고 (이미 야훼의 눈 밖에 난 사울의 기구를 쓰지 않고) 그냥 양치기 복장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더니 돌팔매 한 방으로 자빠뜨려 버리고 득달같이 뛰어가 골리앗의 가슴을 발로 밟고 골리앗의 칼을 들어 골리앗의 목을 쳐버린다. 원래 유대인이 계산에 밝으며 이익도모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다윗도 예외가 아니라 골리앗의 대가리와 칼과 방패, 갑옷은 몽땅 아버지 이새네 집으로 보내고 자신은 사울의 맏딸 메랍의 약혼자가 된다. 물론 결혼하지 못한다. 구약에서 결혼이 어디 쉽게 되나.
이 일 이후에 다윗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가고 상대적으로 사울의 권위는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자기가 느끼기에 날로 사그라지는 것 같아 점점 위기의식에 빠지는 것도 모자라 피해의식까지 생긴다. 그리하여 위험한 전투엔 어김없이 다윗을 보내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이기고 돌아오니 사울이 보기에 참 난감하기도 했겠지. 그러다가 결국 메랍은 다른 장수에게 시집 보내버리고 다윗은 메랍의 동생 미갈과 결혼시킨다. 하지만 이미 사울과 다윗의 관계는 거의 완벽하게 빠그러진 상태. 다윗은 바보가 아니라 끊임없이 충성을 맹세했건만 정치란 게 어디 그래? 사울의 질투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이르자 다윗은 도망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도망갔다. 아내 미갈은? 사울이 다른 남자한테 새로 시집 보낸다. 극은 여기까지. 사울이 범한 마지막 불순종도 나오지 않는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면 읽어보시라. 아니면, 읽든지 말든지 뭐 알아서들 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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