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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신漁神을 찾아서
장웨이 지음, 최창륵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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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날개의 작가 소개는 이렇게 쓰여 있다.
“산둥성 룽커우시에서 태어났다. 고교 진학 대신 고무공장에서 일했으며, 중등교육과정을 이수한 뒤에도 농업과 어업에 종사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단편소설을 발표했으며 「음성聲音」(1982)과 「어떤 맑은 연못一潭淸水」(1984)이 중국작가협회 주최 전국우수단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음성聲音」의 한자어를 발음하면 “성음”이다. 거꾸로 쓴 거 아니다. 책에 그리 나와있다.)
작가 장웨이는 1956년에 태어나 청소년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고무공장 직공도 하고,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잡고 했던 모양이다. 앞날개 작가 소개를 읽으면 그러면서 소설을 써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1980년에 고향 룽커우시가 있는 얀타이 현에 있는 얀타이 대학 국어과를 졸업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장웨이 중단편소설선張煒中短篇小說選》으로 세 편의 긴 중편 또는 짧은 장편을 실었는데 등장인물이 산골 농부와 어부(어신을 찾아서), 바다를 면한 소도시(바닷가 호루라기)와 농촌(원두막의 밤)이며, 거의 모두 교육을 받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이라, 혹시 중학교만 졸업하고 고등학교과정은 이수만 한 작가의 환경과 직결되지는 않을까, 생각을 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공장 노동자와 농사, 어업에 종사하면서 빈 시간에 무수한 책을 읽고 글쓰기에 흥미를 느껴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쩌면 출판사도 장웨이의 청소년 시절을 유독 강조함으로써 독자의 흥미를 조금이라도 더 유발하고자 했을 지도 모른다. 아니겠지만. 악마처럼 거만한 문학과지성사가 그렇게 얍삽하게 머리를 굴리지 않았겠지. 그렇겠지. 뭐. 그래도 1980년 대학 졸업이니까, 이 당시 중국에서는 학교를 불문하고 대학이란 곳에 진학한 하나만 가지고도 머리가 상당히 좋다고 알아주던 시절이니 밝혔을 거 같은데 말씀이야.
왜 이거 가지고 까탈을 유난하게 부리고 지랄이냐 하면, 두번째 작품 <바닷가 호루라기>를 읽다가, 이게 1987년 초에 완성했으니까 서른두 살이었는데, 바닷가에서 작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해 도시의 친구들을 배불리 먹여주곤 하는 천사표 늙은이, 빼빼 마른 것도 모자라 몸에 힘줄만 남은 라오진터우 영감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적지 않은 부분을 읽으면서, ① 지금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나, ② 작품집에서 이런 건 좀 빼고 출판해도 될 거 같은 걸? ③ 하긴 문학과지성사가 가오가 있지 전편을 번역 출간해야 했겠지, ④ 스무 살 짜리가 습작한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이거, ⑤ 애당초 이 작가의 책을 번역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렇게 교만을 떨었는데, 당연히 두번째 작품 <바닷가 호루라기> 하나에 대해서만 그랬다는 말이니 너무 웃지들 마시고요, 소설가도 정식으로 작법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을 거라는 황당한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바닷가 호루라기>는 마지막 스무 페이지를 남기고 도저히 읽어줄 수 없어서 세번째 실린 <원두막의 밤>으로 넘어갔다.
근데 내가 아직 소설책 읽는 데 지극하게 얇은 소양밖에 없는 증거가 있으니, 이 장웨이란 56년 잔나비띠 작가가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오르고 있다는 거 아닌가 말이지. 밥 딜런도 받는 상이니 장웨이라고 못 받을 이유는 없지만, 미국하고 관계가 단단히 틀어진 중국의 시인, 작가가 당분간은 노벨문학상을 받지는 못할 것 같으니까 조금은 위안이 되긴 한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작품을 번역해 출간했다. 특히 문학과지성사에서 낸 대산세계문학총서 144번에 빛나는 단편집 《흥분이란 무엇인가》에는 작가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다는 <음성>과 <어떤 맑은 연못>이 다 실려 있다. 시집이 아닌 대산세계문학총서는 대충 다 읽은 듯한데, 어쿠, 이 책을 빼먹었다. 그래서 이 양반을 몰랐던 거다. 뭐 기회가 생기면 읽고 아니면 말고지 구태여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 두 권 말고 <도연명의 유산>과 <제나라는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에세이. 안 읽을 거 같다.
또 한 마디 할 것은, 책방 알라딘에서는 책의 제목을 《어신漁神을 찾아서》라고, 문학과지성사 출간 원본은 <어신魚神을 찾아서>라고 했다. “어”의 한자어 魚자 앞에 삼수변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소한 문제이긴 하지만, 뜻이 달라진다. 어신漁神은 고기잡이의 신, 신기에 가까운 고기잡이 내공을 가진 고수를 말하고, 어신魚神은 물고기 신, 용왕처럼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는 신이다. 내 경우엔 알라딘에서 책구경을 먼저 해서 어신漁神, 귀신 같은 어부라고 생각했으며 즉각 궈스싱의 희곡 <물고기 인간>을 떠올렸다. 내가 읽은 모든 책 가운데 <물고기 인간>에 나오는 낚시의 신이라 불리는 영감과 비슷한 수준의 낚시꾼은 청새치와 사투를 벌인 끝에 잡아 매달고 오다가 상어한테 다 뜯어 먹히고 만 노인 말고는 없다. 그 노인도 낚시의 신 수준하고 비교가 되지 않지만 하여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기잡이 노인이니까 좀 후까시를 해주면 그렇다는 말씀.
주인공 화자는 이제 백살에 육박하는 노인이다. 그래도 기억력이 여전히 생생해서 팔십 여 년 전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좋은 소일거리라, 자리를 턱, 잡고 저 멀고 먼 까마득한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이 2015년. 그러니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 초반 중국의 두메산골이다. 화자 ‘나’는 큰 산의 깊은 곳, 깊고도 깊어서 이웃집이라고 해도 산 하나를 넘어야 있을 법하게 깊은 산골에서 돌덩이로 쌓은 집에서, 작은 돌투성이 밭을 개간해 고구마도 심고, 토란도 심고, 감자도 심어 주식으로 삼았다. 가끔 운 나쁜 짐승도 잡아 단백질 보충도 하고 그랬는데, 아주 드물게, 정말 정말 드물게 물고기 한 마리를 얻으면 그야말로 집안에 난리가 났다. 기껏 미꾸라지 한 두 마리, 그것도 죽어 바짝 마른 바람에 썩지 않은 미꾸라지 두 마리를 구했을 때도 물을 끓이고 미꾸라지를 넣고, 그 위에 각종 야채를 올려 푹푹 곤 다음 엄마, 아빠, ‘나’, 세 식구가 침을 뚝뚝 흘리며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나이가 좀 들자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산 두 개를 넘어 강줄기가 있는 골짜기의 학교, 당연히 서당 수준이긴 하지만 하여튼 학교를 가게 했고, 방 두 칸 집은 안방과 교실로 쓰는 큰 방 하나로 되어 있었는데, 가끔 안방에서 물고기 비린내가 풍기는 바람에 ‘나’의 코가 흥분,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하기도 했다. 암만해도 돋보기를 낀 사팔눈의 영감 선생이 집 옆에 딸린 연못 속에는 아무리 더워도 발도 담그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물고기 요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아서, ‘나’는 하루 날을 잡아 연못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에 납짝 엎드려 해가 으슥할 때까지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선생이 연못 옆에 쪼그려 앉아 작은 대나무를 드리우고 있었는데 미동도 하지 않고 오래 그러고 있다가 난데없이 대나무를 휙 잡아당겨보니 자루의 끝에는 역시 대나무로 만든 망, 그물 역할을 하는 망이 달렸고, 그 속에 한 뼘 정도의 물고기가 두어 마리 들어 있었던 거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호, 환호성을 질렀고, 선생은 나를 불러 치도곤을 내렸으며, 아빠를 불러오라 명을 하더니 기어코 퇴학을 시켜버리고 말았다. 워낙 산골이라 물고기는 이렇게 귀했던 거였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평온해 했다. 이왕 끝까지 공부하지 못할 것, 공부를 한다고 해서 꼭 좋은 사람, 부자, 기타 등등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스스로 어떤 일을 해 성공할 것인지 정해보라고 했다. ‘나’는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큰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말을 들은 아버지는 눈을 감고도 물고기가 머무는 곳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 일이라서, 무엇보다 먼저 ‘어신’부터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 번 본 적 있는 바, 정말 대단한 사람으로 신선처럼 혼자 지내고, 족장님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고기잡이의 고수란다. 그저 보통 사람의 외모를 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절대 어신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어신이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주 이사를 다니는데 점점 깊은 산골로 들어가 겉보기엔 가난뱅이 같지만 살면서 부족함 없는 생활을 영위한다는 말씀. 사실은 아버지 젊은 시절에 어신을 찾아가 제자가 되려 했지만 도무지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 중도 작파하고 집으로 돌아와 ‘나’의 엄마와 결혼해 ‘나’를 낳고 자족하면서 나름대로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거란다.
이 착한 아버지는 ‘나’를 이끌고 몇날 며칠을 걸어 드디어 어신, 이라고 아버지가 말하는 80대 노인을 찾아간다. 스승님, 제가 왔습니다. 저 말고 이 아이를 제자, 아니, 아들로 받아 주십시오. 얘야, 스승님께 아버지라고 불러라. 그리하여 ‘나’는 늙고 늙은 어신의 양아들이 되어 어신의 모든 것을 옆에서 관찰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어신漁神 이야기. 작 후반에 가서 이 어신을 생을 마감하고, 그가 유일하게 사랑했으나 인연을 맺지 못한 다른 어신漁神을 만나는 이야기가 재미있게 그려지고, 이후 마지막으로 이번엔 진짜 어신魚神이 등장하며 작품을 맺는다. 그러니 제목을 魚神이라 해도, 어신漁神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듯. 재미있는 것이 남자 어신은 수영에 서툴고 물에 들어가기 싫어한다. 작은 연못이나 개울에서 큰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천하신공의 소유자. 이름하여 한수旱手. 건조한 손. 반면에 이 어신이 평생 사랑해 마지 않은, 꿈엔들 잊으리까, 이젠 노파가 된 여인 어신은 물이 풍족하게 가득한 큰 호수에서 본 모습을 보이는 수수水手. 물의 손. 이 두 늙은이의 평생에 걸친 이루어지지 못한 순결한 사랑도 재미있다.
그러나 분명 내가 소설을 읽는 소양이 부족해 생긴 일이겠지만 두번째 작품 <바닷가 호루라기>를 끝까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나와 맞지 않아서, 셋보다 많은 별점은 주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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