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의 의자 1 세계문학의 숲 36
일리야 일프.예브게니 페트로프 지음, 이승억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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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초간본이 나온 해가 1928년.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혁명에 관한 책은 김학준이 1970년대에 쓴 <러시아 혁명사>. 그야말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대강 보면, 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은 볼셰비키를 필두로 전쟁 반대를 위한 대규모 파업을 강화, 확대하였으며 나아가 군대도 이에 호응하여 수많은 군발이들이 탈영,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와 같은 구호 "빵을 달라!"는 기치 아래 썩을대로 썩어버려 땅 속에 묻힐 시간만 기다리고 있던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리고 1917년 10월 혁명을 완수한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들어보시라. 1905년, 10월 등 많은 작품이 러시아 혁명을 위해 만들어졌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 첨탑에서 경종이 난타하며 혁명의 절정에 이르는 순간의 묘사나 혁명의 순교자를 위한 조종 등이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진정한 혁명이란 감동을 수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대한 혁명의 완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정을 지지하는 반혁명 백군이 러시아 전역에서 붉은 적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고, 인민들은 이 와중에 극도의 굶주림을 겨우 겨우 이기며 고난의 행군을 이어가는 것을 보다못한(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개떡같은 소설 <닥처 지바고> 참조) 소비에트 정권은 어이없게 1921년 한시적으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허용해버리고 만다. 수난을 다 견뎌내고 갓태어난 혁명의 씨앗이 이제 겨우 제 자리를 찾은 몇년 후, 백군을 깡그리 소탕하고 시장경제도 다시 원위치 시켜 안정적 체제를 확립한 1920년대 중반,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네 집구석 같은 구 러시아의 귀족들은 이제 파리 등 유럽과 아메리카로 망명 또는 이민을 떠나 구체제적 공,후,백,자,남작의 쓰레기같은 옛추억을 저작하거나, 그냥 소비에트에 남아 옛 영광과 재산을 몽땅 몰수당하고 그들의 눈으로 보면 곤충과 하나도 다를 것 없었던 평민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겨우겨우 연명하고 지내는 처지에 이른다. 그러나 인민들은 1921년 시장경제의 일시적 도입으로 소비에트가 주장한 '부의 균등한 분배'가 개떡같은 꿈속의 속삭임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너나 할 거 없이 일확천금, 물질만능의 이상향을 꿈꾸게 된다.

 이 시점에서 탄생한 소설, <열두 개의 의자>.

 구체제의 대귀족 출신이어서 당시엔 귀족회의 의장까지 지냈으나 시간이 흘러 1927년 현재, 혁명정부에 의해 완전 알거지가 된 신세. 이제 구청 호적계에서 인민들의 출생과 혼인과 사망을 장부에 기록하는 나이먹은 말단 회계원에 불과한 이폴리트 마트베예비치 보로뱌니노프. 그에겐 진실로 불행하게도 부양해야 하는 군식구가 하나 딸려 있기도 하니 바로 이미 죽은 마누라의 친엄마, 즉 장모 클라브디아 이바노브나 페트호바. 노파는 몰락한 대귀족의 후예답게 하루 온 종일 불길한 시선으로 좁은 아파트를 배회하며 예전이라면 생각도 하지 못할 요리, 빨래, 청소 등 집안 살림을 직접해야 하는 치욕을 죽음으로 어서 끝내고 싶어....할 거 같지? 천만의 말씀. 노파의 행동 하나 하나엔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음모가 담긴 듯, 기나긴 복수의 일념 하나로 생을 이어가는 듯한 고집스러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독한 인간이라도 제까짓 것이 시간을 이길 수 있나. 드디어 숨을 거두어야 하는 순간. 하나밖에 없는 친척으로 사위를 불러 생각지도 못한 유언, 또는 비밀을 털어놓는데,

 "사위, 옛날 우리 잘 나가던 시절에 말야, 불상놈 같은 빨갱이들이 우리집에 처들어와 온갖 재산을 다 뺏아가던 전날 밤에 있지, 내가 무슨 짓을 했느냐 하면, 가지고 있던 모든 보석, 다이아몬드 브로치, 에메랄드 팔찌, 큼직큼직한 진주 목걸이, 역시 다이아몬드 반지 세 개, 하여간 온갖 보석들을, 우리집 응접실에 있던 똑같이 생긴 열두 개의 의자 중에 하나, 똑바로 들어, 독일제 의자 생각나? 그 의자들 말야, 바로 그거 열두 개 중에 하나에, 쿠션 속에다 숨겨놓고 감쪽같이 꿰매논 거야. 그걸 찾아. 그때 돈으로 금으로 만든 장식 빼고 보석들만 쳐도 7만 루블어치란 말야."

 이걸 들은 월급 40루블을 받는 봉급쟁이 사위. 당시 7만 루블이면 현 시가로 치면 무려 15만 루블이다. 한 푼도 안 쓰고 312년 반을 모아야 하는 거대한 돈. 사회주의 세상에서도 돈이란 건 굉장한 권력이자 행복의 전제조건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유혹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장모의 숨이 넘어가니, 생각도 하지 않던 최고급의 관을 써서 장사를 지내놓고 그동안 꿍쳐놨던 돈을 박박 긁어 예전에 장모와 자신이 살던 저택을 향해 떠난다.

 하지만 독실한 장모께서 운명을 코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정교회 신부에게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죄를 참회하면서 그만 숨겨둔 보석과 열두 개의 의자가 어디 있는지에 관해 다 뽀롱을 내버리고 숨을 거둔다. 혼인을 할 수 있는 러시아 정교회 신부 표도르 이바니치 보스트리코프 역시 마누라 몰래 꿍쳐두었던 금화와 지폐를 몽땅 꺼내 열두 개의 의자를 향한 대장정에 오르는 거 역시 물론이다.

 그러나 평생 폼이나 잡을 줄 알았던 귀족계급 출신의 무능하고 힘도 없고 세상살이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우리의 이폴리트 혼자라면 열두 개는 커녕 하나의 의자라도 제대로 손에 넣을 수 있겠는가. 여기에 하늘의 도움으로 구세주 처럼 나타난 희대의 사기꾼 오스타프 벤데르.

 자, 이들이 펼치는 희대의 풍자극이자 희극 소설 <열두 개의 의자>. 일리야 일프와 예프게니 페트로프, 두 사람이 서로 뇌를 모아 어떻게 하면 희극적 풍자가 제대로 나타날지 궁리하며 으쌰으쌰 힘써 써낸 재미난 소설. 러시아 사람들한텐 훨씬 더 재미났을 소설. 이들이 어떻게 의자를 위해 사기를 치고, 도둑질을 하고 서로 반목하다가 화해했을까. 찾은 보물은 얼마나 눈이 부셨을까. 온갖 것들, 다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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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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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가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재즈시대, 라고 해도 쫄 거 하나 없다. 그냥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아메리카, 그 중에 미 합중국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되는 거다. 이 속의 여러 작품이 아직 금주법을 발효하기 전(이렇게 쓰고 보니 좀 우습다. '금주법'을 '발효'하기 전이라니. 發效? 醱酵? 이 엄청난 '금주법의 발효'여!)과 막 시작해서 금주법이 아직 사회적으로 조금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던 시기다. 선술집에선 시큼털털한 싸구려 위스키를 팔고, 고급 호텔에선 코냑을 마실 수 있었으며, 야매로 하자면 최고급 버번과 스카치를 무한정으로 목구멍 속으로 퍼부을 수 있던 시기. 그럼! 허드슨 강이 말라봐라, 뉴욕 시내에 위스키가 떨어지나.

 비록 100년 이상이 흘러 핏제랄드의 단편들이 이젠 더이상 새롭지도 않고, 기발하지도 않고, 발칙하지도 않고, 엽기적이지도 않고,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지도 못하지만 다시 한 번 기억하시라. 이런 작품을 1910년대와 20년대 초반에 썼다는 걸. 그때 핏제럴드는 한 손에 위스키 병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손가락 사이에 궐련 한 개비를 꼽은 채 포드 모델T의 핸들을 굳게 잡고 옆 좌석의 매혹적인 아가씨를 위해 극한속도 시속 70킬로미터로 뉴욕과 뉴잉글랜드의 간선도로에 먼지를 피우고 있었던 거다. 전쟁은 이미 끝나 극적이면서 낭만적이기까지 한 죽음의 기회를 놓쳐버린 프린스턴 졸업생들은 이미 금융계의 큰 부품이 되어 증권가를 휩쓸기도 하고, 할아버지의 유산인 거대한 농장, 거의 경기도만 한 농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살진 송아지 고기에 입맛을 들여 피둥피둥 살이 오르기도 하고, 법과대학을 졸업한 다음 일찌감치 정치계에 투신해 유력한 상원의원의 보좌관이란 명함을 갖고 다니며 상원의원의 후임자리를 확언받아 벌써 정치적 근육과 알통을 자랑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론 학창시절엔 대단한 실력을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과 재주가 실제 사회생활엔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아 박봉을 감수하고 말단 공무원 창구에 머무르면서 불평과 불만으로 충일한 삶을 하루하루 꾸려가기도 했으며,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데다가 사철 발 벗은 마누라 하나 건사하지 못한 채 동창생들마다 돌아다니며 백 달러만 꿔줄래? 결코 갚을 수도 없고 갚지도 않을 돈을 빌어 목구멍의 거미줄을 걷어내는 부적응자도 당연히 있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가운데 낀 동창생은 전쟁 후 갑자기 변해버린 사회의식과 윤리와 종교를 포함한 모든 기존 문화 사이에 조금은 동요하면서 자유 혹은 자유와 비슷한 것들을 향한 그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발을 찍찍 끌어 먼지를 일으키면서 재즈 선율을 휘파람으로 흥얼거리며 그의 슬픔을 전염시키기도 하고, 모든 계급들이 좌충우돌 하면서 화해하지 못하는 장면을 오히려 뜨끔한 유머에 섞어 그려보이기도 한다. 부유하게 사는 인간은 더욱 부유하게 살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할 수밖에 없는 1920년대 초, 좁혀지지 않는 계급적 간극. 그러나 희한하게 웃어야 하는 곤란한 지경. 이게 핏제럴드의 힘. 핏제럴드 후에 무수한 독자, 작가들이 그를 찬양하는 이유를 이 책의 처음 네 편의 단편소설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내가 홀딱 빠진 핏제럴드의 매력. 즐겁지 않은 얘기를 가볍고 우스꽝스럽고 재미나고 전혀 심각하지 않게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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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도 다 갔고, 어제 마신 술도 아직 덜 깼고, 연초에 세운 계획, 올핸 절반으로 줄여서 쐬주는 딱 200 병만 마시자 했는데 어제 마신 두병 포함해서 3월까지 딱 50병 마셔 없앴으니 정말 기막히게 절주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거디고, 책은 얼마나 읽었나 보니까 어제까지 76권을 읽었다.

 완전히 산수로 계산하면 76권 곱하기 4는 304권. 올 한해 동안 이대로라면 300권을 넘게 읽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반성한다. 앞으로는 독서량을 팍 줄여서 진짜 인간답게 살겠다.

 하여간 3월까지 읽은 책 가운데 좋은 느낌을 받은 것들에 짧게 100자 평을 써보자 한다. 순서는 읽은 날짜. 다른 의미 하나도 없다.

 

 


1. 허버트 조지 웰스, <투명인간>

 

 다양성을 인정/허용하지 않는 사회를 풍자.... 했는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독자는 그렇게 읽을 수 있는 책. 19세기 생각하면 참 대단한 아이디어

 

 

 

 

 

 

 

 

 


2. 다이허우잉, <사람아 아, 사람아!>

 

 오랜 세월 읽었는 줄 알고 있다가 정신차려보니 정작 읽어보지도 않고 그랬거니 했던 책. 그러나 정말로 책을 펼치니 생각도 못하게 넘쳐흐르던 인간애, 그리고 사랑.

 

 

 

 

 

 

 

 

 

 

3.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여명>

 

 여자가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하는데 두 사람 말고 또 뭐가 필요해. 거기다가 독특한 글쓰기의 매력이라니.

 

 

 

 

 

 

 

 

 

 

 

 

4. 벤 오크리, <굶주린 길>

 

 반식민半植民 상태 나이지리아. 굴곡에서 벗어나려는 가난한 자들은 어제처럼 오늘도 부자에게 수탈당하며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어주고, 인민은 토속신앙의 몽환 속에서 헤매는데, 이를 어쩌랴.

 

 

 

 

 

 

 

 

 

5. 아베 코보, <불 타버린 지도>

 

 너도 나도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고 그걸로 끝일 수도 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꿈꾼다. 어느날 문득 가족, 친척, 친구들로부터 사라져버릴까?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

 

 

 

 

 

 

 

 

 

6. 마틴 에이미스, <런던 필즈>

 

 살인이 예정되어 있는 인물들의 좌충우돌 난장판, 야단법석, 또 뭐 이 비슷한 말 없나? 하여간 기발한 유머가 쏟아지는 인간군상들의 '죽여주는' 요지경.

 

 

 

 

 

 

 

 


 

 

7. 장마리 블라 드 로블레스, <호랑이들이 제 세상인 나라>

 

 브라질을 무대로 한 인텔리 가족 구성원이 같은 시점에 벌이는 세 가지 골 때리는 사건. 그렇게 가족은 호랑이로 불리는 야만이 제 세상을 이룬 브라질에서 산산이 해체되고.

 

 

 

 

 

 

 

 

 

8. 벤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한 인간의 정체성은? 그걸 만드는 사회적 환경은? 내가 누굴까? 어떻게 태어나서 어떤 유년시절을 보내 이 자리까지 왔을까? 내가 과연 누구냐고!

 

 

 

 

 

 

 

 

 


9. 다니 라피에르, <남쪽으로>

 

 카리브 해에 둘러 싸인 섬. 더위와 땀과 분비물과 흑인 소년들과 오르가즘에 중독된 사람들. 그들을 중독시키는 섬의 늘씬하게 잘 생긴 소년들. 몽환과 몰입의 장면.

 

 

 

 

 

 

 

 

 

 

 

10. 그웨나엘 오브리, <페르소나>

 

 완전히 몰락해 가난하고 늙은 아버지. 그는 노트와 호텔 메모지와 광고지 등에 끼적인 글을 딸에게 남겨놓고 죽음이란 축복을 맞이한다. 이제 아버지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나이먹은 딸

 

 

 

 

 

 

 

 


 

11. 오노레 드 발자크, <인생의 첫출발>

 

 썩어도 준치. 발자크다 발자크. 평생의 삶을 만들어가는 사소한 일들. 우연과 인연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라는 흔한 소재를 발자크는 죽여주게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다.

 

 

 

 

 

 

 

 

 

12. 알렉상드르 뒤마, <검은 튤립>

 

 뒤마의 이름만 보고 이 자리에 넣은 거 절대 아님. 19세기 프랑스 소설을 만들기 시작한 인물다운 놀라운 입심과 스토리와 현장감 넘치는 묘사. 완전한 드라마.

 

 

 

 

 

 

 

 

 

 


13.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늦여름>

 

 사람에 따라 길기만 하고 재미는 하나도 없다고 여길 수 있어 추천은 하지 않음. 그러나 내겐 참으로 친근하고 그립던 자연에 대한 애정어린 그림이 절절하게 와 닿았음. 느림의 행복을 선사해준 책.

 

 

 

 

 

 

 

 

 

14. 15.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 <93년>

 

 위고를 연달아 읽는 일은 넘치는 즐거움. 읽고나서 보니 여기저기서 <웃는 남자>에 대한 찬사가 넘치고 이책 저책에서 거리낌 없이 인용하며, 예를 들고 하는데 그게 다 이해가 되더라는 거.

 

 

 

 

 

 


16. 에밀 졸라, <여인들의행복 백화점>

 

 

 백화점 이름이 "여인들의 행복". 현대적 생산과 소비에 대한 과격한 고찰. 시대는 능률능률 흘러가기 시작하고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하고 세대를 이어간다.

 

 

 

 

 

 

 

 

 


17. 볼레스와프 프루스, <인형>

 

 폴란드 귀족들의 허황하고 교만하고 가식적이고 싸가지없고 그래서 재수없는 행태를 여지없이 까발려버리는, 적수공권에서 시작한 부르주아의 자각 과정. 근데 왜 시도 때도 없이 짠한 거야.

 

 

 

 

 

 

 

 

 

 

18. 나쓰메 소세키, <그 후>

 

 룸펜 부르주아 인텔리겐챠 도련님의 하품나는 어리광. 근데 그거 구경하는 재미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앞으로 노동을 해야하는 노동혐오자의 철없는 고민.

 

 

 

 

 

 

 

 

 

 

 


19. 제임스 조이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의 전매특허 의식의 흐름을 싼 값에 경험할 수 있는 기회. 이 책을 만족하게 읽은 분은 드디어 <율리시즈>를 재미나게 읽을 수도 있을 걸? 그러 말고도 좋은 성장소설 한 편으로 읽어도 됨.

 

 

 

 

 

 

 

 

 


20. 일리야 일프, 예브게니 페트로프, <열두 개의 의자>

 

 두 명의 소비에트 시민이 쓴 협동작품. 허리 아프다. 하도 웃어서. 한 명의 위대한 사기꾼과 정교 사제와 귀족대표가 벌이는 웃음 만발의 비극적 보물찾기.

 

 

 

 

 

 

 

 

 

 

 

21. 고바야시 다키지, <게 가공선>

 

 지독하게 열악한 환경에서의 노동은 그 안에 혁명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리얼리즘 작품. 자본은 언제나 권력과 결탁하고 노동이 믿을 수 있는 건 노동과 단결 밖에 없다. 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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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4-0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열 두 개의 의자> 오늘 챙겨갑니다. ㅎㅎ 근데 어제까지 76권도 만행이십니다! ㅋ

Falstaff 2017-04-02 12:42   좋아요 0 | URL
옙, 재미난 책이더라고요.
아... 정말 야만스런 짓을 했다고 지금 자책 중입니다. ㅠㅠ
 
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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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에 이대 앞 잡탕집(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젊은 술꾼한테 이대 앞 잡탕집 골목, 하면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에서 술 한 잔 마시고 친구가 나한테 책을 한 권 사주고 싶다 해 신촌 사거리 홍익서점까지 기어가 얻은 책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 학원사에서 나온 거. 당시 내 수준이 그랬다. 소주, 막걸리 얻어 마시고 책 한 권 사 읽으면 장땡인줄 알았다. 길 건너 고고장 '우산속'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 돈이면 잡탕이 몇 냄비고 소주가 몇 병인데 어떻게 거길 가?

 

 

 이 책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읽으려고 작심을 해 책을 펴보니

 

 

 조명을 환하게 해놓고 찍어서 그렇지 종이가 완전히 바래 파삭 부서질 거 같았다. 왼쪽 상단, 조금 노란 계열의 색이 비치는데, 실제로 보면 김태희/김연아 커피믹스 색깔이다. 종이 섬유질로 아직 책의 모습을 버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또 활자 시대의 책이 그렇듯이 글씨 크기가 도저히 내 눈으로 읽히기를 거부하는 수준. 엄두가 나지 않아 민음사 책을 중고로 사서 읽기로 했다.



 혹시 조이스가 쓴 <율리시즈> 읽어보셨나? 지금 읽고 계신 서재 친구 한 분은 내가 안다. 그분 빼고 만일 <율리시즈>를 읽고 싶은 분 계시면 그 전에 (<율리시즈> 책이 워낙 비싸니까. 지금 보니 정가가 4만 8천원이다. 으때, 나 친절하지?) 스파링한다는 기분으로 <젊은 날의 초상>을 먼저 읽어보시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의 주인공이 '스티븐 디덜러스'. <율리시즈>에서도 주인공이며 거의 분명하게 같은 사람이다. 이 책에 만족한다면 <율리시즈>에 도전하시라.

 조이스, 하면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소설 기법이 소위 "의식의 흐름"이다. <젊은....>의 초반부에 이 '의식의 흐름' 기법이 와장창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연대기가 왔다리 갔다리 마구 헷갈리기도 하고, 덩달아 등장하는 인물들도 막 섞여서 갈피를 잡지 못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도 책을 읽어나가며 공통된 '의식'(이라고 해두자. 난 '감정' 또는 '느낌의 고양' 등도 좋을 듯하지만)이 시공간, 인물을 초월해 '흐르는' 걸 감각할 수 있다. <율리시즈> 초반에 벅 멀리건이 면도를 하는 장면부터도,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에서, 오정희의 <바람의 넋>에서도 거의 비슷한 '어떤 느낌이 고양되면서 그게 마치 흐르는 듯한' 감각과 아주 유사한 그런 소설 기법. 독자에게 다른 어떤 소설 기법보다 효과적으로 책 속의, 그리고 스토리 혹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전달해주는 대신 정독을 하지 않으면 지금 뭔 얘기를 하고 있는지, 내가 뭘 읽고 있는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경험을 하게 만든다. 아, 이 대목에서 그동안 여러번 얘기한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글 읽고 어디가서 비슷한 얘기하지 마시라. 난 아마추어 독자일 뿐이다. 개망신 당할 확률이 높다.

 근데 '의식의 흐름'이란 게 그저 소설 기법의 하나라고 치고, 그거 말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내용을 보면, 스티븐 디덜러스의 소년시절에서 청년시절까지를 그리고 있는 성장소설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물론 스티븐 디덜러스의 8할은 제임스 조이스 자신임에 분명하다. 시력이 약하고 선병질적인 육체부터 시작해서 생각이나 취미 기타 등등까지. 당대 조이스의 조국 아일랜드는 정치적으로 잉글랜드에 병합되고 1916에 있었던 무장 독립투쟁이 여지없이 박살이 난 뒤 무력증과 증오, 복수심이 잠복되어 있는 상태였고, 종교적으로는 수백년간 아일랜드 인들을 지배했던 가톨릭 교가 시대적, 환경적, 정치적 이유로 슬슬 힘이 빠지고 있던 상태였다. 이렇게 시대적 환경과 당대의 모습도, 그 속에서 조이스 가족이 경제적으로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도 잘 그려져 있다. 다만 역자 이상옥 선생이 40년 전인 1976년에 한 번역을 원본으로 해서 지금 시대 말에 맞게 윤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쉬울 뿐. 김종건 선생이 다시 번역해놓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사실은 별 관심도 없긴 하지만) 있다면 그걸 찾아 읽는 편이 좋을 듯하다.


 이 책의 317~318 쪽에 조이스는 디덜러스의 입을 통해 소설을 쓰는 미학적 견지를 밝힌다. 인용하겠다.

 "예술가가 표현하는 아름다움은 우리들에게 동적인 정서나 순수히 육체적인 감각을 일깨울 수가 없어. 그 아름다움은 미적 정지상태를 일깨우거나 일깨워야 하고 혹은 유발하거나 유발해야 하지. 그 상태는 곧 이상적인 연민이나 이상적인 공포로서, 내가 아름다움의 리듬이라고 부르는 바에 의해 환기되고 지속되며 결국 해소되기도 하는 하나의 정지 상태야."

 "리듬은 어떤 미적 전체 속에서 부분과 부분이 갖는 관계라든지, 어떤 미적 전체가 그 한 부분 또는 여러 부분과 갖는 관계라든지, 혹은 한 부분이 그 미적 전체와 갖는 관계같은 최초의 형식적인 미적 관계를 말해."

 난 이 인용한 대화가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소설이라는 예술 형식을 창작하는 건 순간 순간 정지해 있는 상태를 계속 일깨워야 하는 것이고, 그걸 다 모은 것을 조이스는 "리듬"이라고 규정한다. '리듬'은 미적 부분들이 서로 수렴을 하거나 발산을 하며 궁극적으로 미적 전체와 관계를 갖는 것으로, 좀 쉽게 얘기하자면 미적 부분을 위해 작가는 과거의 한 부분을 차용해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감각을 연장,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식의 흐름 아닐까 싶은데 위에서도 말했듯이 전적으로 아마추어 의견이니 신경쓰실 거 없다. 그냥 한 번 이렇게 주장해보는 것이니. 다만 이 독후감을 읽고 혹시 <젊은....>에 관심을 두어 진짜로 읽어보실 분은 이 주장을 염두에 두고 일독을 해보셔도 좋지 않을까.... 옙! 꿈 깨겠습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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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31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 오래된 <젊은 예술가의 초상> 뭔가 간지납니다. ㅋㅋㅋ 저도 아직 이 작품은 민음사 버전으로 사두고 읽지 않았는데요, 읽을 땐 폴스타프 님 주장을 음미하면서 읽어보겠습니다. ㅋㅋ

Falstaff 2017-03-31 11:01   좋아요 0 | URL
젊은 시절에 술 오지게 마시면 저런 간지나는 책도 생기고 그런답니다. ㅋㅋㅋ

Chai 2021-07-13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쉽고 친절한 감상평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됐어요. 작품 진짜 겨우 읽었습니다 휴

Falstaff 2021-07-13 20:25   좋아요 0 | URL
고맙게도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얼마나 좋은지요. ^^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세계문학 176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소임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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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흘 사이에 두 권의 버나드 쇼를 읽었는데 사실 <피그말리온>을 읽기 위해서였다. <인간과 초인>은 <피그말리온> 하나만 읽기 뭐해서 곁가지로 사거였고. 왜 <피그말리온>을 선택했었느냐 하면 올해 초에 읽은 어느 책(그 새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피그말리온>을 여러번 거론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난 책 읽으면서 작가가 인용하는 다른 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인간과 초인>은 재미나게 봤다. 버나드 쇼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촌철살인, 낭중지추(아, 따가워!)의 골계미 같은 것들, 독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키득거리게 하는 재미. 근데 <피그말리온>은? 버나스 쇼 말고 빅토리아 시대의 선배 작가 찰스 디킨스가 문득 떠올랐다. 몇 십년 전 찰스 디킨스가 써놓은 원고를 버나드 쇼가 발견해 희곡으로 다시 썼다고 해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거 같은 기시감. 새로운 신디 F. 렐라 스토리. 다만 버나드 쇼가 여혐자이자 결혼 결사반대주의자라서 신디 F 렐라 같은 결론을 만들지 않았을 뿐 뭐 여기나 거기가 비슷하다.

 아, 신디 F. 렐라가 누구냐고? 혹시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나오는 옛날 영화 <귀여운 여인> 보셨나? 거기서 줄리아가 백만장자 리처드를 만나 팔자를 고치는 걸 보고 줄리아의 창녀 친구가 축하의 의미로 단번에 팔자를 고치는 유럽 여자를 빗대 말한다. "신디 Fucking 렐라" 이제 기억나셔? 신데렐라를 말하는 거. 그래서 20세기 그것도 초연을 1913년에 했던 현대 연극에 왠 신데렐라 이야기냐고 지금 타박하는 중이다. 이래저래 찰스 디킨스가 끼적거린 메모 정도라면 아주 딱일 듯한데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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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31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과 초인>은 정말 뭐랄까 통쾌하게 읽었습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느낌이랄까... <피그말리온>은 폴스타프님 지적대로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디킨스적이네요. ㅎㅎ

Falstaff 2017-03-31 11:02   좋아요 0 | URL
<피그말리온>은 정말 그렇죠? 이거 써놓고 너무 오버했나? 좀 캥겼었거든요. 에휴, 다행입니다. ㅋㅋㅋ
<인간과 초인>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