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픽처스
제이슨 르쿨락 지음, 유소영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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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0월에 출간할 계획으로 쓰고 있는 작품을 포함해 세 편을 발표한/발표할 뉴저지 출생 작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국문과, 우리 입장에선 영문과를 졸업하고 편집자 생활을 좀 하다가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글 검색해도 르쿨락에 관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필라델피아에서 오래 살았고, 지금도 가족과 많은 애완동물을 키우며 살고 있다고 한다.

  <히든 픽처스>는 매력적인 B급 소설이다. 아마존 식 분류법에 따르면 “미스터리 스릴러.” 오늘이 7월 16일.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매스컴은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폭우를 예보하고 있다. 요즘 날씨에 읽기 딱 좋은 소설. 모르기는 해도 독일의 그림 형제가 지은 이야기에 힌트를 받지 않았나 싶다. 아동용 동화로 각색해 널리 퍼진 버전 말고, 원래 그림(들)이 쓴 이야기. 예를 들어 신발이 발에 맞지 않으면 신발을 신기 위해서 발가락을 잘라버리는 거 같이. 그래서 <히든 픽처스>에 다섯 살 난 천진한 아이가 주인공(의 한 명)으로 등장하지만 제이슨 르쿨락이 자기 홈페이지에 딱 박아 놓았다. 이 책은 “성인용”이라고. 전혀 에로틱하지 않은 성인용. 약물 중독이 조금 나오고, 과하다고 볼 수는 없는 폭력/피폭력 장면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르쿨락의 “성인용” 선언은 조금 과한 듯. 아니면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한 꼼수이든가. 아동만 아니면 추천도서까지는 아니지만 굳이 읽지 말라고 금줄을 달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저 그렇지도 않다. 매력적인 B급 소설이다. 그래 B급이다, 어쩔래! A나 B, 계급장 떼고 맞짱 한 번 떠 볼래? 웃통 벗어제칠 정도로. 한여름 밤을 위한 킬링 타임용으로 이만한 소설 찾기 쉽지 않다.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늦여름이라도 읽기에 늦지는 않을 터.


  화자 ‘나’ 맬러리 퀸의 불행은 단순한 천골 피로골절에서 시작했다. 필라델피아 남부, 운동경기장 바로 위의 조금 못 사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대개 그렇듯이 범죄율도 낮지 않은 셩크 스트리트에서 자란 맬러리는 센트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운동선수 특기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 진학할 예정인 육상선수였다. 그러나 마지막 졸업 학기 때 천골 피로골절, 즉 꼬리뼈에 미세하게 실금이 가서 몇 주 동안 달릴 수 없었고, 동생 베스는 자기 친구 첸구앙과 함께 한심한 놀이공원에 놀러가기로 엄마한테 허락을 받았다. 하필 토요일이었던 그날 엄마가 직장인 병원에서 특근을 해야 해, 엄마는 맬러리에게 베스와 첸구앙을 차로 실어다 주라고 똑 부러지게 “명령”을 하는 바람에 맬러리는 시합에 나간 팀원들을 응원하지도 못하게 되어 주둥이가 댓발 나온 상태로 동생을 태우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토요일 아침이니 고속도로는 한가했고, 시합 때문에 마음이 바빴던 맬러리는 당연히 과속을 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시합 결과를 알고 싶은 마음에 팀원한테 온 문자에 답신을 하기 위해 시선을 휴대전화로 돌렸고, 시선과 함께 일시적으로 주의력도 전화기에 집중되는 순간, 앞선 SUV 차량에 묶여 있던 산악자전거가 풀려나 도로에 떨어졌으며, 이를 피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급하게 핸들을 틀었다. 맬러리가 운전하던 차도 이것들 가운데 한 대였다. 병원에서 의식을 찾았을 때 맬러리는 왼쪽 다리가 부러졌고, 갈비뼈 세 대에 금이 갔다. 

  바버라 킹솔버의 작품 <내 이름은 코퍼헤드>에서 보듯이 미국 의료체계는 부유하지 못한 자들에게 참혹하다. 2주 후 퇴원하는 맬러리한테 의사는 옥시코돈, 마약성 진통제의 상품명인 옥시콘틴을 처방하면서 “통증이 있을 때만 사용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맬러리는 킹솔버의 코퍼헤드와 마찬가지로 생전 처음 경험하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빠른 속도로 옥시코돈에 중독되어갔다. 맬러리는 옥시코돈을 처방받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구했으며, 이 중에는, 입학하지 못한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의료센터에서 진행한 심리연구 프로젝트의 인간 마루타 자원도 포함되었다. 이 장면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19세의 맬러리는 연구소에서 대기하는 도중에 옥시콘틴 한 알을 입에 넣고 빨아먹다가 삼분의 일 남았을 때 손바닥에 뱉어 엄지로 으깬 다음에 분말 옥시콘틴을 코로 흡입하면서 자신을 진정시킨다. 어떻게 첫 실험이 끝나고 흰 가운을 입은 박사가 일주일 후에 두번째 실험을 제시해 시간당 50달러를 요구했지만, 쓰던 아이폰을 옥시콘틴 80mg 다섯 알에 팔아 연락을 받을 수 없을 거란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런 상태의 맬러리. 그러나 다행스럽게 이후 곧바로 자기 발로 재활 시설에 걸어 들어갔고, 18개월의 프로그램을 수행했으며 이젠 스물한 살 먹은 여성으로 더 이상 알코올이나 마약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재활 12단계를 밟아 지금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을 할 찰나였다.

  이때 맬러리 앞에 오랫동안 단거리 육상 코치를 했으며 88 서울올림픽 때 선수단 코치를 했던 러셀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메스암페타민에 취해 운전하다가 옆집 이웃을 과실치사한 죄로 5년 형 수감 중 목사 안수를 받은 68세의 재활 도우미. 이 양반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사생활보다 재활중인 피 도우미를 보살피는 데 전력과 전심을 다하는 선한 인물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 스스로 약물 중독에 빠진 전력이 있어서 그렇게 변모했을 것이다. 이 러셀의 도움으로 재활의 막바지에 이른 맬러리는 부르주아들의 집단 거주지인 뉴저지 스프링브룩에서도 가장 큰 저택 가운데 하나인 맥스웰 씨의 집에서 거주하며 매우 훌륭한 보수로 9월까지 육아 돌보미, 베이비시터로 일할 기회를 잡는다. 9월 이후에도 맥스웰 가족이 만족한다면 아들 테디를 위한 전담 고용인으로 일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재향군인병원에서 심리치료 및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 캐롤라인과 필라델피아 중심가의 최고급 고층 빌딩에서 IT 관련 사업을 하는 테드 맥스웰 부부. 이들이 러셀 씨와 아는 사이라서, 해군 퇴역병이나 아프간 참전 군 같은 완전히 망가진 사람들을 전문으로 다루는 캐롤라인 씨의 이해심 깊은 선의로 재활치료를 거의 마친 약물중독 출신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지원자를 찾았던 터다. 이들 가족은 바르셀로나에서 최근에 귀국해 웅장하고 고전적인 빅토리아 풍의 3층 저택을 구입했는데, 이는 캐롤라인이 친정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서 가능했다. 저택 뒤에 곧바로 깊은 숲이 펼쳐져 밤이 되면 토끼 같은 설치류부터 크고 작은 사슴까지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천혜의 자연환경. 셩크 스트리트 출신인 맬러니는 이 집과 캐롤라인, 그리고 다섯 살 난 아들 테디가 너무 좋다. 그러나 당신 같으면 남들보다 훨씬 후한 임금을 주는 입주 베이비시터로 아무리 재활의 막바지에 이르렀다지만 약물 중독의 경험이 있는 사람한테 흔쾌히 맡길 수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시라. 아빠 테드도 그랬다. 그들은 말한다. 당신을 선택하는 건 너무 위험한 도박인 거 같다고. 그러자 맬러리는 러셀이 건네준 비장의 방어 무기를 꺼낼 수밖에. 마약 복용 여부를 시험하는 다섯 개 들이 키트를 내민다. 아마존에서 하나에 1달러 하는 검사기. 원하는 날짜에 무작위 검사를 받겠다고. 테드는 말한다. 당신은 좋은 사람 같아요. 진심으로 행운을 빕니다. 하지만 난 매주 컵에 소변을 볼 필요가 없는 육아도우미를 고르고 싶어요. 이해하시겠지요?

  걱정 마시라. 이 집에 들어가야 소설이 진행되니까. 천사 같은 캐롤라인, 테디의 엄마가 나이든 남편 테드를 설득해 맬러니는 이 집의 육아도우미로 들어가고, 창고로 쓰던 별채를 깨끗하게 치운 독채를 거실로 삼았으며, 천사같이 귀엽고 착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다섯 살 난 테디와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입주 전에는 지독하게 잘난 척하는 댄디 밥맛인 줄 알았던 아빠 테드도, 막상 입주를 하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환경을 만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에 그렇게 인간적이고 부드럽고, 신사적일 수가. 그러나 딱 하나 마음에 꺼림칙한 것이 있었으니 테디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유령. 이게 ‘나’ 맬러니에게 골치거리를 안겨주는 유일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테디의 상상 속의 단짝인 유령, ‘애냐’였다. 테디에게 맬러니의 지시를 따르지 말라고 옆에서 부추기는 짜증스러운 습관의 유령. 애냐는 테디의 침대 밑에서 살며 예를 들어 지저분한 옷가지는 빨래 바구니에 넣어야 한다거나, 붉은 고기가 든 햄버거 보다는 두부와 흰 밥을 먹어야 한다는 자잘한 규칙을 안 지켜도 된다고 속살거리고 있었다. 맬러니는 당연히 의심한다. 어리지만 어려서 어린아이다운 사악함으로, 유령 애냐를 핑계 삼아 자기 뜻대로 하려는 거라고. 자기 생각을 엄마 캐롤라인에게 말했더니, 엄마도 맬러니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끈기있게 기다리면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정신의학 전문의다운 소견을 개진한다.

  그런데, 왼손잡이 테디는 어느새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다섯 살 난 아이의 단순한 그림에서 점점 전문화가 같은 드로잉으로 진화하더니, 그림 속에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려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어떻게 되었을까? 21세기에 웬 유령 타령?


  B급 소설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이렇게 재미있을까? B급 소설의 특징은 읽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내용을 모두 잊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는데, 이 책 <히든 픽처스>는 안 그럴 거 같다. 그림 안에 뭔가가 숨겨 있거든. 원래 숨겨있던 걸 발견하면 기억이 오래 가는 법이거든. 여름의 막바지. 당신도 좋은 피서를 경험하실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웬만하면 가족들 잠든 밤에 읽으시라. 오소소 소름 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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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22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점은 네 개 반. 다섯 개는 좀 과하다.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진리를 따라가자.

coolcat329 2024-08-22 0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샀어요. 매력적인 B급 소설이라니 기대가 됩니다.

근데 글을 오전 4시에 쓰셨네요. 일찍 주무시나봐요.

Falstaff 2024-08-22 07:08   좋아요 1 | URL
여름 가기 전에 얼른 읽으셔요! ㅎㅎㅎ 납량물입니다.
어제 오랜만에 꽐라가 되어 좀 일찍 잤습니다. ^^ 더운 데 무슨 짓인지...ㅠㅠ

stella.K 2024-08-22 1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님은 한 달 전에 리뷰를 쓰시나봐요. 가끔 그런 리뷰가 있더라구요. 대단하세요. 저는 한 편의 리뷰를 한 달 가까이 붙들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ᆢㅋㅋ
역시 여름은 납량물이죠. 소설이든 드라마든. 저는 야한 사진관이란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원래 본방은 지난 봄에 했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으시시한 호러물인데 괜찮은 것 같더군요.
이 책 지난 5월에 나왔네요. 좀 된 소설인 줄 알았는데. 기억하겠슴다.^^

Falstaff 2024-08-22 16:38   좋아요 1 | URL
7월엔 세 권짜리 <삶과 운명>이 있고, 8월 초엔 두꺼운 하인리히 만 <충복>을 읽을 예정이어서 미리미리 속도를 좀 냈었습지요. ㅎㅎㅎ

다락방 2024-08-22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후훗 이 책 진작 사놓은 저를 칭찬합니다. 너무 기대되네요. 지금 읽는 책들 다 읽으면 바로 시작해야겠어요. 슝-

잠자냥 2024-08-22 10:25   좋아요 0 | URL
나도!!!😤

다락방 2024-08-22 10:27   좋아요 0 | URL
지금 읽는 책이 여러권에 두껍기도 한게 함정.. 🙄

Falstaff 2024-08-22 16:39   좋아요 1 | URL
죽여주는 킬링 타임. 더위 가기 전에 읽으시면 좋을 텐데요.

잠자냥 2024-08-22 16:5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요즘 날씨보니까 9월에도 30도 넘을 거 같아서 그때 읽어도 되겠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식탁 위의 개
클로디 윈징게르 지음, 김미정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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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에 페미나 상을 받았다고 해서 관심 솟아 읽어봤다. 작가 이름이 “클로디 윈징게르Claudie Hunzinger”라니 혹시 시댁이 몽골이나 훈족 같은 오랑캐 출신인가 잠깐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랬더니 흥미로운 인생을 산 사람이다. 70대에 이르러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동프랑스 산악지역에서 잠깐 교사 생활을 하다가 남편 프란시스를 만나 알자스 산골로 들어가 양을 치며 60년을 살았다. 딸, 아들 하나씩 두었으며, 아들 로빈은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2022년에 페미나 상을 먹은 <내 식탁 위의 개>를 읽어보면 1940년생인 작가가 여든이 넘어 쓴 작품으로, 노년의 작가가 쓴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실제로 자신이 살고 있는 생활을 자잘하게 묘사하고 있다. 책 속의 노부부는 저 벌판의 숨어있는 빙퇴석 지역에 홀로 서 있는 낡은 집에 사는데, 12미터 길이의 통으로 된 복층 구조의 단층집이다. 쉽게 말하자면 다락방이 있는 단층집 정도. 남편 그리그(‘구두쇠’라는 의미)는 이 다락방에 구축한 자기만의 터전에서 산다. 활자 중독 같다. 책이 워낙 많아 빽빽하게 쌓아놓는 바람에 창문까지 모두 가려버렸고, 청소도 거의 하지 않아 살금살금 걸어도 종이먼지가 풀풀 휘날릴 지경이다. 가히 책을 보관하는 저장고라 할 만하다. 아내인 화자 소피는 숲 속의 집 “부아바니”의 주거지역 가운데 초원이 바라다 보이는 창문을 가진 가장 좋은 곳에 생태계를 이루었다. 소피는 2년 전에 <동물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하여 나름대로 생태작가로 이름을 높였지만, 프랑스에서는 영미문학에 비해 이 분야는 변두리, 변방문학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화자 ‘나’는 변방의 소설가이다.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리그는 거의 잠시도 쉬지 않고 하여간 뭔가를 읽고 있다. 하다못해 신문이라도. 그렇게 많은 책이 쌓여 있건만 늘 택배로 새로운 책을 받아보는 일상. 근데 내가 정말 궁금한 건, 60년이 넘게 양을 치고 살았다며, 그리그는 한 번도 취직을 해본 적도 없고 열라 노동해본 적도 없다며, 근데 다 늙어서까지 어떻게 그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리그나 소피의 부모가 꽤 부유했던 건 아닐까? 혹시 모르지, 젊은 시절에 연달아 로또에 꽈광, 두어번 얻어 터졌는지도. 별걸 가지고 다 시비라고? 부러워서 그런다, 부러워서.


  식탁 위의 개. 읽기 전에 잠깐 헛갈렸다. 식탁 위에 개가 올라올 수 있는 방법? 버르장머리 없는 개가 훌쩍 식탁 위에 뛰어오른 경우. 개엄마, 개아빠들이 울룰루 배고파쪄 어쩌고 저쩌고 식탁 위에 올려놓고 미디엄 레어 안심 스테이크 잘라 먹이는 경우. 그리고 개가 그릇에 담겨 식탁에 차려진 경우 말고 또 있을까? 그러면/아니라면 이 책의 제목은 어떤 경우일까? 당신은 헛갈리지 않아? 책을 읽어보면 끝날 때까지 문제의 개 “예스”라고 이름지은 양치기 종의 개는 한 번도 식탁 위에 올라가거나 올려지지 않는다. 하여간 그렇다. 그렇다는 말이다.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는 2019년에 생태소설 <위대한 사슴들>을 출간한 적 있는데, 이것을 이 작품의 화자 ‘나’ 소피가 2년 전에 생태소설 <짐승들>이란 소설을 발표해, 리옹에서 열리는 생태문학에 관한 토론회에 남성 작가 두 명과 더불어 초청을 받는 것으로 변주했다. 이미 여든 살이 넘은 소피-그리그 부부는 자신들의 집에 “부아바니” 추방당한 숲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어주고, 그곳을 벗어나는 일이 그렇게 즐겁지 않다. 하다못해 식료품을 사기 위해서도 SUV 차량을 타고 한 시간을 운전해야 하는 터라 한 번에 겨울을 날 만큼의 통조림을 싣고 오는 정도이다. 하여간.

  리옹으로 출발하기 전날. 아직 밤이 오지 않은 저녁. 온갖 서글픈 세상사에서 추방당한 것 같은 초원의 끄트머리에 있는 낡은 집. 농사를 짓는 광활한 초원과 방목장, 그리고 근사한 숲으로 싸인 공터에 거대한 빙퇴석 지대가 있으며, 이 지대 아래의 또다른 초원에 들어선 집, 오랫동안 방치된 높이가 낮고 자그마한 목골 연와조 건물과 건물에 딸린 채소밭. 그리고 노부부. 그림이다, 그림. 죄 많은 세상에서 내쫓긴 자칭 추방자는 이 잊힌 집과 초원 63아르, 약 2천평의 대지를 구입해 살기 시작한 것이 3년 전. 원래 남편 그리그는 책을 읽는 일 말고 다른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소피도 이제는 손에 기형이 와서 그렇게 즐긴 정원 가꾸기도 포기한 지 오래다. 그래도 집 주변엔 여러가지 꽃들이 자잘하게 피기를 그치지 않았다. 한 편엔 씨앗이 맺힌 디기탈리스가 있었는데, 디기탈리스가 모여 있는 무더기 아래 뭔가 눈에 띄었다. 틀림없는 도망자. 꼬질꼬질한 회색 털뭉치. 굶주려 기진맥진해 소피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커다란 밤색 눈동자의 개.

  소피는 등지고 있던 현관을 비켜 옆으로 서는 것으로 개에게 집으로 들어올 것을 권유했다. “철저히 고독한 그 모습이 너무 우아”해서. 노부부는 양치기 개 종種이 분명한 이 도망자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고 관찰했다. 몸에 진드기가 적지 않게 붙어 있었으며, 누군가의 발길에 여러 번 거세게 걷어차인 것이 분명하게 털 아래 뱃가죽은 시커멓게 멍들었다. 게다가 암컷인 이 개의 생식기는 처참하게 찢겨 진물과 피가 엉겨 있었다. 작가는 이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동물을 학대하고 성폭행하는 건 처벌받아야 할 중범죄야.”

  이 말을 들은 ‘까마득한 원시 시대에서 온 듯한 그리그’는 대답한다.

  “늘 일어나는 일이잖아.”

  이 대사가 17페이지. 책을 더 읽어? 말어?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는 어떤 한 “남성”이 명백하게 수간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수간이 있었건 없었건, 이 단어를 듣는 것 하나만 가지고 나는 소화기 적 반발로 위산이 역류하려는 것을 감각한다. 지금 독후감을 쓰는 아침에도 같은 증상이 생기려 한다.

  소피가 사랑해 마지않는 ‘예스’라는 이름의 개가 왜 걷어차여 배에 심하게 멍이 들었을까? 사람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즐겁기 위하여 다른 목숨을 괴롭히고, 학대하고, 죽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포유류. 크고 작은 이유가 있었든, 아니면 재미를 위해서 틀림없이 어느 인간이 예스의 배를 몇 차례 걷어찼고, 생식기가 찢어지는 참혹한 상처를 냈다. 수십년, 어쩌면 한 세기 전, 이미 돌아간 내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잠자리를 잡아 배 아래부분을 잘라버리고 그곳에 풀줄기를 꽂아 다시 하늘로 날리며 시집 보내는 거라고 했듯이. 소피와 그리그, 그리고 클로디 윈징게르는 개의 생식기에 심한 상처가 난 것을 보고, 어떤 증거로 성폭행이라 확정했으며, 그 행위를 인간에 대한 소아성폭행과 연관지었을까?

  음식을 먹고 치료를 받은 개 예스는 그러나 떠났다. 소피가 리옹에서 별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생태문학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자 다시 돌아왔고, 소피가 목욕을 시키고 꼼꼼하게 진드기를 잡아준 후에 함께 살기 시작했다. 소피, 그리그, 예스. 이렇게 세 생명체가 가로 세로 각 2미터짜리 대형 침대에 함께 누워.


  과한 동물주의 책은 읽기 불편하다. 226~228쪽의 내용을 소개한다. 예스는 양치기 개. 당연히 보통 이상의 체구를 가지고 있으며, 무리에서 떨어진 양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몰기 위해 양의 뒤꿈치를 가볍게 물려고 하는 습성을 “인위적으로, 인간에 의하여” 물려받았다.

  어느 날, 예스가 좋아서 그러는 것처럼 지나가던 등산객 커플을 따라가더니, 엄청나게 짖으면서 그 사람의 발꿈치를 물 기세로 달려들었다. 고삐 풀린 중대형 개가 어떤 모습인지 짐작하시리라. 소피가 아무리 불러도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예스는 그들을 향하여 튀어 나갔다. 등산용 스틱을 들고 선글라스와 챙 달린 모자를 쓴 혼비백산한 등산객들을 쫓아. 너무 멀리 가버려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늙은 소피가 할 수 있는 한 제일 빠른 걸음으로 도착했을 때, 여자는 도요타 야리스에 올라타 있었고, 굳이 “그 여자의 애인”이라고 지칭하는 남자는 차 밖에서 한 손으로 열려 있는 트렁크 뚜껑을 잡고 있었는데, 트렁크 안에서 공포에 떠는 예스를 윽박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소피는 남자에게 겁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노인네가 나를 개보다 더 갈기갈기 찢어 놓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납게. 그랬더니 남자는 “악의에 차서” ‘나’ 소피를 비난했다. 개를 키우려면 통제를 잘 하라고. 이 미친 개를 브리가드 베르트 단속반으로 보내야 한다고. 그래서 고소장을 쓰는 데 필요할 거 같아 소피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단다.

  젊고 바쁜 커플이 오랜만에 어렵게 시간을 내 등산하려고 먼 길을 왔더니 난데없이 큼지막한 개가 마구 짖으면서 고삐 풀린 것처럼 발꿈치를 물려고 막 달려오면, 그곳이 난생 처음 가본 장소인데다가 사방 십리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어떤 마음이 드는 게 정상이었을까? 경악과 공포 아니었을까? 여자가 공포에 휩싸이는 걸 본 남자는 갑자기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기 시작했고, 지팡이를 휘둘러 미친 개, 예스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암만 생각해봐도 이런 개새끼는 단속반에 보내 살처리 하는 것이 만인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어서 차 트렁크에 싣고 가려 했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피해 남녀의 입장이다. 소피, 그리그, 못된 늙은이인 작가 클로디 윈징게르는 이들, “사람” 혹은 피해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등산 스틱을 들고 선글라스를 낀 커플이 반쯤 미친 상태이다. 읽는 사람도 설핏설핏 따라가다보면 작가의 의도에 설득당하기 마련이다. 그게 글의 힘이니까. 주차장에서 이런 꼴을 당한 젊은 등산객을 만났으면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정상적인 인간 아냐? 아니면, 적어도, 차라리, 요즘 유행하듯이:

  “놀라셨어요? 괜찮아요. 우리 개는 안 무는데 괜히 지랄하셨네요.”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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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8-20 1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도서관에서 늘 눈에 띄어 알고는 있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내용으로 보건대 개를 사람과 동등하게 생각하고 식탁에서 같이 식사한다는 뜻 같습니다.
저도 등산객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네요. 미안하다는 말도 안하고 저렇게 동물학대했다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다니. 동물을 대변하는 건 좋으나 저 상황은 좀 나쁘네요.

Falstaff 2024-08-20 18:22   좋아요 0 | URL
식탁의 개, 그런 의미일 수 있겠습니다. 좋네요. ^^
동물주의... 제 생각만 얘기했습니다. 그냥 의견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요 뭐. 흐흐

다섯 2024-08-20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독서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Falstaff 2024-08-20 18:22   좋아요 0 | URL
좋게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문수봉우리 2024-10-19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대신 주인이 물어요 ,,돈을,,,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이문구 지음 / 아로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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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여덟 편을 실었다. 2000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은 초판본은 문학동네에서 나왔고, 2006년엔 랜덤하우스에서 이문구 전집의 20번으로 출간했으며, 이제 2024년에 다시 출판사 아로마를 통해 3판이 나와 읽었다.

  이문구에 대해서는 많고 많은 이야기가 있어 굳이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1941년 보령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출신. 김동리 추천으로 등단.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간사. 이후 협의회에서 김동리 비판하자 문학적 아버지에 대한 비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탈퇴. 2003년 졸. 이런 개인사는 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문구가 좋다. 그런데 이 책은 여태 들어본 적도 없다. 인터넷 동무님(이런 표현을 너그럽게 받아준다면 말이지만) 열반인 님의 리뷰를 읽고 즉시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그러고보니 2000년 출간이면 모르고 넘어간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전혀 책을 읽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이이를 좋아하느냐 하면, 이이와 박상융/박상륭(시기별로 자기가 자기 이름 쓰는 데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을 내가 아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둘이 서로 막역한 친구라서 이문구 발인할 때 박상융은 캐나다에서 비행기타고 왔다고 하지 아마, 선생들의 작풍도, 문장을 쓰는 방법도 심각하게 차이가 나지만, 나 소시적에 이이들 글 쓰는 게 하도 기가 막혀서 따라 했다가, 덩달아 내 문장도 길어진 거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감히 이이들과 한 번이라도 비비적거려 보겠다고는 당연히 꿈도 꾸어 보지 않았으니 혹 오해하지 마시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요즘 소설”이란 말을 자주 하는 걸 마땅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흠. 시작이 너무 도발적인 걸? 달리 말해보자.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읽는 재미”를 확 느낄 수 있는 것이 드물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읽는 재미”가 있는 시인 이정록의 시집 《정말》의 발문을 읽어보자. “읽는 재미”가 있는, 내가 아는 마지막 소설가 한창훈이 썼다. 한창훈은 이문구 발인할 때 만장을 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시인 직업도 국가자격증이 있고 자격증 취득 시험을 면접으로 본다 치자.

  아니, 면접 오면서 소주병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술병은 입구 우산꽂이 같은 곳에 두고 들어오세요. 아무리 해장이라도 그렇지, 국가행정 알기를 원…… 저기요, 초상났어요? 그만 좀 우세요. 화장실 거기 있으니 콧물 좀 닦으시고요. 으이그, 다른 곳으로 얼른 전근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그래. 그리고요 제발 면접관 앞에서 피 좀 토하지 마세요. 화장실 옆에 따로 각혈실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기를 이용해주시구요. 피 토하면 곧바로 자격증 준다는 말은 브로커들이 하는 소립니다. 속지 마세요.“


  물론 위 인용은 상당한 과장이다. 그래도 꼭 저렇지 않지만 시인 면접을 소설가 면접으로 바꾸고 소주병, 울음, 각혈 같은 단어를 조금만 변형하기만 하면 내가 “요즘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과 많이 다르지 않다. 주정酒酊, 비통, 각혈을 어떤 단어로 바꾸면 비슷하냐고? 안 알려드린다. 나도 몸조심해야 하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단어를 올리고 싶어하는 지는 다들 아실 듯. 혹자는 내게 충고한다. 함부로 떠들지 말고 자기한테 맞는 것을 찾아 읽으라고. 옳은 말이다. 겸허하게 말 듣고 있다.


  도대체 이문구의 입담은 당할 방법이 없다. 제일 앞에 실린 <장평리 찔레나무>의 초입을 읽어보자.

  “동네에서도 벌써 언젠가부터 이금돈(李金敦)이의 안식구라거나 월미엄니보다 진퍼리(長坪里:장평리) 부녀회 김 회장이나, 기본바로세우기운동 장평분회 김 회장이라고 해야 얼른 알아듣는 김학자 회장은, 오늘도 식전부터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이 뺑덕어멈 화상이 됐다가 장쇠어멈 화상이 됐다가 해쌓더니 전화통이 상대방의 상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냅다 내던지며 그러고 앙분하였다.”

  김회장 김학자 여사는 이금돈이한테 시집와서 살림 잘 하고, 시동생 건사하며 잘 살다가 하나밖에 없는 시동생이 장가를 든다 하니 없는 살림에 남 부끄럽지는 않게 해 보냈건만, 시내에 당구장이 하나 나와 그걸 하고 싶다고 얼마나 눌어붙어 들볶아대는지 그것 마저 해주고 말았는데, 반년만에 남의 손에 넘겨버리고 서울로 떠서는 사업(이래봤자 별 거지 같은 점방이겠지만 하여간 사업은 사업)으로 앞가림을 하더니 아들만 셋을 줄줄이 낳은 후부터 딸만 둘 낳은 형네 알기를 개 항문에 붙은 보리쌀 정도로 치부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더니 저번에 김회장의 공부 별로 못하는 장녀 월미가 수능 점수를 받아오자마자 전화를 넣고는 이렇게 씨부린 것이 결정적으로 김회장하고 의가 나게 된 사달이었다.

  “형수, 대관절 걔 점수가 얼마나 나왔간디 그러셔? 하여간 두 자릿수는 넘었을 거 아뇨? 아 걔 형편에 그만했으면 됐지 뭘 더 바래셨다. 그 점수면 전문대두 아무 전문대는 아니 되더래두, 그래두 그 근방 워디서 새루 문 열은 디는 아마 그냥저냥 들어갈 걸. 그깨잇늠의 꽈야 아무 꽈면 워떻간디. 어채피 슨볼 적이나 써 먹을 간판. 그러구 저러구 간에 몇 점이나 받었냐니께요? 형수, 나 좀 봐요, 아 월미 수능이 몇 점이냐구요?” 형수, 내가, 이 인간 이은된(李銀敦)이가 암만 반갑잖은 사람이라구 해두 그렇지, 하여간 우리가 냄은 아니잖요, 안 그료?”

  이런 전화를 받았으니 월미 엄마 김회장의 복창이 어떻겠는가 말이지. 그리하여 진짜 말 쏴 주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목이 메는데, 이런 건 아예 외워놨다가 나중에 써먹어도 좋겠다.


  “냄이사 아니지, 냄은 아녀. 그럼 넴인감, 넴이는 네미니까 넴두 아녀. 그러믄 뭐여. 냄만도 못헌 늠이지. 냄두 아니메 냄만두 못한 늠이 뭐간. 뭐는 뭐여, 웬수지. 그게 바루 웬순겨. 뭣이 워쩌구 저쪄? 뭐? 반갑잖은 사람? 니가 시방 내 헌티 반갑잖은 사람 정돈 중 아냐? 이 개 잡어먹은 자리에 가서 곡을 허구 재배할 늠아.”


  나, 이 책을 도서관에서도 제일, 무척, 아주 무척 조용한 열람실에서 읽다가 미치는 줄 알았다. 웃음이 터지는데, 아예 마구 쏟아져서 웃지도 못하고, 웃기는 웃어야 할 찰나에 그러지 못하니까 몸을 비틀고 눈엔 눈물이 비질비질 흘러나오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어. 세상에 이런. 개 잡아먹은 데 가서 곡을 하고 절 두번, 재배할 놈이라니. 핫하, 잡아먹힌 개의 자손이란 뜻이다. 곡하고 재배하면 제사잖여.

  그러나 이문구를 재미로만 읽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땅콩이다. 재미에 빠져 얼른얼른 읽느라 후루룩 빈 속에 국수 마시듯 퍼 넣으면 진짜 이문구의 맛을 놓치는 거다. 이문구를 읽을 때는 휴대폰을 켜놓고, 국어사전 앱을 열어놓고, 따박따박 읽으며 세월 탓, 현대화 탓, 도시화 탓, 개인주의 탓으로 잃어버렸거나 적어도 자주 쓰지 않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우리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찾아보며 읽어야 제 맛이다. 정말 다양한 우리말, 우리 단어가 속출한다. 그냥 짐작으로 앞뒤 문맥 더듬어 이런 뜻이겠거니, 하지 마시란 이야기다. 그래서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이문구를 읽을 때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이 든다. 물론 읽는 사람 마음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훌훌 읽어 치우실 분은 그렇게 하시라.

  씨의 전작으로 비유를 하자면, 연작소설 《우리동네》만 있는 게 아니다. 역시 연작인 《관촌수필》도 있다. 위에 예로 든 <장평리 찔레나무>가 《우리동네》과라면 《관촌수필》과도 이 책 안에 두어 작품 들어 있다. 완전히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젊은 시절에 쓴 《관촌수필》에 비하면 생각과 표현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섬세하고 서정적인 작품도 들어 있다. 이이의 마지막 작품집으로도 의의가 있는 책이니 한 번 읽어 보시라 권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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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8-19 07: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아 정말 재밌네요. 아 저 시동생 복장 뒤집히게 하는 말, 옛날 유머일번지 <괜찮아유> 생각납니다. ㅋㅋ 진짜 도서관에서 어찌 참으셨는지 ㅋㅋ

Falstaff 2024-08-19 09:08   좋아요 0 | URL
정말로 어디 한 군데 탈날 거 같더라고요. 이러다 핏줄 터지는 거 아닌가.... 웃다가 아니, 웃음 참다가 혈관 터져 뇌출혈 사망. 흠... 이것도 낭만적인 우화적 죽음 같기는 하겠습니다. ㅋㅋㅋㅋ

2024-08-19 0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8-19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4-08-19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껏들에 대한 논의는 30년전부터 있어왔으니까요. 그 30년전 논의 대상들이 또 요즘 껏들에 대해 얘기하면 말 다했죠. 예전에 신경숙 찧고 빤거 생각하면... 당장 요즘 젊은 작가들 앞으로 1,20년만지나면 요즘 껏들하면서 자기 때 얘기할 겁니다. 격세지감이죠. ㅎㅎ
이문구는 예전에 문학동네 사람들 사 놓고 아직도 못 읽고 있는 1인입니다. 그동안 새옷 입고 나왔군요. 책이 예쁘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김동리 비판은 뭔가요? 그의 친일행각...?

Falstaff 2024-08-19 11:32   좋아요 0 | URL
ㅋㅋㅋ 화들짝 놀라서 얼른 비밀글로 수정했습니다. 다른 곳에선 비밀글에 대한 답글은 저절로 비밀 처리되던데... 에휴, 조심해야겠어요.
ㅋㅋㅋ 미칩니다. ㅋㅋㅋㅋ 문학동네 사람들. ㅋㅋㅋㅋ
40년대 들어 일본이 발악을 하느라 조선말을 쓰지 못하게 했잖습니까. 그때 존경하는 황순원 선생은 학교 교사 때려치우고 고향집으로 돌아가 자기 방에 박혀 계속 조선어로 소설을 썼습니다. 경주가 고향인 김동리는 엣다, 소설 안 쓰고 만다, 해서 남쪽 어디더라, 하여간 고향 떠나 쌀집에서 경리직으로 취직을 해버렸습니다. (이 대목이 서정주가 안타까운 일입니다!)
친일은 당연히 아니고요, 유신 시절에 친정부 한 거. 당연히 리얼리즘이 아니라 모더니즘 계열의 수장이었다는 것도 은근히, 알게 모르게 포함됩니다. (앗, 이건 괜히 말했습니다. 여차하면 두드려 맞겠네 이거....)

반유행열반인 2024-08-19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무 왔습네다 ㅋㅋ맨날 따라 사놓기만 하다 팔백작님이 나 따라 읽었대니 아주 뿌듯...비교적 이동네 소수파(?)인 이문구 박상륭 팬덤이라 더 뿌듯 ㅋㅋㅋ저 딱 일년 전에 칠조어론 다 읽었다는데 지금은... 책 안 읽어도 80여일 발등의 불이라 헛헛증도 안나고 독후감이나 쬐꼼 읽고 간식거리로 잘 삼고 갑니다 ㅋㅋㅋ근데 저 박상륭 읽을 땐 사전 모셨는데 이문구는 그냥 휘딱 읽어 취었다 아입니까 말맛이 저랑 맞는가 (나 충청도에 연분 인연 없는데도) 그냥 다 알아듣겠어요 ㅋㅋㅋ 반대로 수능 문학 연습으로 나오면 애들한테는 이 소설이 까다로운 글이라고 하더라구요...(나 22년 전 수능 볼때 이문구 나왔으니 올해도 나와라! 나 고욤나무까지 다 봤다!!! ㅋㅋㅋ)

Falstaff 2024-08-19 11:3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하여튼 이 두 양반들이 끼친 해악이 정말 작지 않아요. 두 대마왕들입니다, 대마왕!

젤소민아 2024-08-21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 소설계의 독보적인 분이시죠. 이분이 가시면서 또 한 시대가 가면서, 이제 대한민국에는 농촌이나 전원을 문학적으로 옮겨주는 작가가 멸종 위기를 맞은 것 같습니다. 그런 작가의 작품이 그립다면 이상문학상 수상작가인 손홍규 소설가의 소설집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Falstaff 2024-08-21 06:09   좋아요 0 | URL
이미 멸종 직전 단계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50대 작가 가운데 한 두 명이 사라지면 그걸로 끝날 거 같아요. 손홍규, 이름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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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이런 주제로 책이 한 권 나온 모양이다. 책을 통해 민음사가 출간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대표하는 다섯 작품으로 작가 김하나는 카를로스 푸엔테스 <아우라>,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셰익스피어 <맥베스>,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를 꼽았다. 내가 이 다섯 작품에 관한 에세이집 “금빛 종소리”를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책을 냈다 하니 조예가 있다고 여길 수 있는 김하나라는 작가가 꼽은 다섯 작품을 다행스럽게 다 읽어본 것이 기특했으며, 나도 이 시리즈 좀 읽었다고 평소에 어깨에 후까시 좀 잡고 다니던 터, 만일 내가 다섯 작품을 꼽으면 어떤 것을 선택할지 궁금했던 것 반, 한 번 골라보고 싶었던 것 반. 그리하여 오늘, 며느리와 아이들, 손녀, 손자가 온다고 해서 도서관 제낀 기념으로 간단하게 한 방 꽝!



1번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고른다. 자우메 카브레, <나는 고백한다>


카탈루니아 언어로 쓴 명작. 이제야 카브레라는 작가의 이름을 듣게 된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저 14세기 말, 종교재판관에게 능욕을 당했다고 고발해 온 여성의 주머니에 든 단풍나무 씨와 솔방울로 이후 6백년에 걸친 거대한 죄와 악의 흐름을 시작한다. 자객에 의하여 주검이 된 수사의 주머니로 자리를 옮긴 씨앗은 수사의 몸을 양분삼아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고, 나무는 풍미한 선율을 공명해주는 바이올린으로 변해 더 큰 죄를 잉태하는 거대한 이야기. <나는 고백한다>는 21세기가 최초로 발굴한 시대의 걸작 반열에 올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2. 도심 속의 섬에 핀 꽃. 글로리아 네일러,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뉴욕 도심에 높이 솟은 콘크리트 벽. 저쪽 앵글로색슨 플로테스탄트들의 유토피아로 절대 접근하지 못하는 이쪽 폭력과 마약과 성폭행의 우범지대 흑인 지역. 60년 전 <미국의 아들>을 쓰던 리처드 라이트 시대에서 거의 몇 발 떼지 못한 차별과 불평등과 혐오가 만발한 도시. 그곳에 또한 약자들끼리의 차별과 폭행이 생겨나고, 다시 한번 더 소외되고 피학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그들의 이름은 여성. 이런 여성들이 이루는 거대한 연대. 어차피 버린 인생 속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여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생명력 넘치는 모계사회를 이룬다.



3. 철저하고도 명징한 상상력의 승리.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로망 이후의 신문학을 탐색하던 유르스나르가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에 충격 먹었던 소설. <알렉시> 같은 장르를 기대했다가 예상 외로 고집스러운 고증의 긴 터널을 걸으며 한 인간의 생애를 오로지 상상력으로 새롭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장의 풍모를 발견했다. 말년의 하드리아누스가 양세손이자 당대의 철학자, 로마의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남기는 회상록. 나는 내 아이들에게 나의 삶을 통해 인생의 본질, 권력이 포함하고 있는 투쟁성, 아릿한 사랑, 인간과 역사에 대한 사색을 남길 수 없어 대신 이 책을 사 주었다.



4. 페트로니우스, 페트로니우스여! 헨릭 시엔키에비츠, <쿠오 바디스>


  새해연휴가 3일이었던 시절 흑백 더빙 영화로 TV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영화의 원작. 영화를 여러 번 봐 오히려 찾지 않았던 책. 원작에서 잘생긴 미남 주인공 비니키우스의 외삼촌인 페트로니우스는 강력한 폭군이자 황제인 네로에게 이렇게 유언한다. “폐하, 만수무강 하더라도 앞으로 대중 앞에서 노래는 하지 마소서. 양민을 학살하더라도 아무튼 시는 짓지 마소서. 신하를 독살하더라도 부디 춤은 추지 마옵소서. 또다시 로마에 불을 싸지르더라도 부탁이니 서투른 키타라 연주는 하지 마소서.” 하필이면 카타콤 시대의 로마가 어지러워 정치적 목적으로 원시 기독교 신자들을 탄압하던 시절,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는 베드로 앞에 다시 십자가를 진 예수가 나타나니, 베드로 왈, 쿠오 바디스?



다음 자리에 올리고 싶었던 목록

  그리스 고전작가, 단테, 보카치오, 초서, 셰익스피어, 괴테, 플로베르, 위고, 뒤마 같은 사람들은 제쳐두자. 위대한 극작가 유진 오닐, 마르케스, 불가코프, 레마르크도 자리를 양보하자. 그래서 남은 작품은:

  밀란 쿤데라 <불멸>,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 미셸 트루니에 <마왕>, 존 바스 <연초 도매상>, 엔도 슈샤쿠 <깊은 강>, 치누아 아체베 <사바나의 개미 언덕>, 아이리스 머독 <그물을 헤치고>, 조지프 헬러 <캐치-22>,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카를로스 푸엔테스 <의지와 운명>, 에벌린 워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에두아르도 멘도사 <의지와 운명>, 마거릿 애트우드 <눈 먼 암살자>, 응구기와 시옹오 <피의 꽃잎들>. 이 가운데 선택을 했다. 앞의 네 권이 전부 엄숙무비한 것이라 좀 경묘한 작품으로.



5. 잃어버린 세대는 결코 잊히지 않았다. 잭 케루악, <길 위에서>


  진지한 것을 저 멀리 던져버린 세대. 중요한 건 일단 살고 보는 일. 무엇을 성취할 것인가, 무엇을 위해 노력할 것인가는 개나 줘버려라! 일을 하는 목적과 인생의 목표가 없어도 우리는 발산하고 발광하리라. 그리하여 샐과 딘, 잭 케루악과 윌리엄 버로스 일당은 술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히치 하이킹 또는 훔친 차를 과속으로 운전하며 미국 동부에서 중부를 거쳐 서부로, 다시 남으로 핸들을 꺾어 멕시코시티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술과 마약과 섹스와 싸움과 절도에 탐닉한다. 내일은 없다.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선 번영과 기회의 위대하고 위대한 나라, 미국에서 자진해 소외당한 젊은이들의 우울하고 발칙한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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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8-17 1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페이퍼는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을 좀 읽어 본 독서인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 있는 책들 다 찜합니다.
읽은 책도 있지만 언제나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습니다.ㅎㅎ
저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딸아이에게 선물해야겠어요^^

Falstaff 2024-08-17 10:45   좋아요 2 | URL
ㅎㅎ 재미있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마지막 <길 위에서>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엇갈리는 책이라 조심스럽네요. 다른 독자의 평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

독서괭 2024-08-17 1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번 읽어서 뿌듯! 하지만 나머진 읽은 게 없네요 흑흑 진짜 하나도 없.. ㅜㅜ

Falstaff 2024-08-17 11:39   좋아요 3 | URL
아휴, 없으면 어때요! 천천히 읽으시면 되지요. ㅎㅎㅎ
근데 1번 진짜 좋지 않습니까! 그거 안 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ㅋㅋ

단발머리 2024-08-17 1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과 같은 댓글을 저도 답니다 ㅠㅠㅠㅠㅠ 1번 아는 책 나와서 괜히 좋아했다가.....
저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제일 먼저 주워봅니다. 어흑 ㅠㅠㅠ

Falstaff 2024-08-17 12:0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1번은 잠자냥 님이 영업을 엄청나게 하셨지 뭡니까. 하긴 아무리 영업을 해도 모자랄 명작이기도 하지요.
2번도 좋습니다. 단편 연작 비슷해서 읽기도 매우 편하고요.

coolcat329 2024-08-17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폴스타프님 이런 페이퍼가 정말 재밌습니다. 이중에서 <나는 고백한다>만 읽어봤는데, 저도 한 권을 고르라 한다면 이 책입니다. 2,4번은 가지고 있는데 나머지도 구비해놔야겠습니다.

Falstaff 2024-08-17 12:19   좋아요 2 | URL
4번은 독자들이 잘 안 읽어요. 시엔키예비치가 폴란드 국적으로 좀 오래된 사람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coolcat329 2024-08-17 12:24   좋아요 2 | URL
네 저도 그중 한 사람이네요. 영화가 워낙 유명하고 또 어떤 내용인지 대충 알기도 하니 손이 안 가는 거 같아요. 근데 폴스타프님 리뷰읽고 구입은 해둔거에요. ㅎㅎ

coolcat329 2024-08-17 1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르케스가 없어서 조금 섭했는데 양보했군요 ㅎㅎ

Falstaff 2024-08-17 12:20   좋아요 1 | URL
만일 제쳐두거나 양보하지 않았으면 그런 작가들로만 채워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팍, 드는 거였거든요. ㅎㅎ 그래서 누구나 아는 작가/작품은 빼고 고른 겁니다.

stella.K 2024-08-17 12: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우, 여간해서 주말엔 글을 쓰시지 않으시는데 무슨 일인가 와봤더니 안 보면 클날 뻔했습니다. ㅎㅎ 민음사가 이 페이퍼 보면 꽤 뿌듯하겠어요. 전 민음사의 이 책들 싸서 좋은 거 빼면 딱히 판형이 맘에들지않아 언제부턴가 멀리했는데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드네요. 폴님도 폴님만의 금빛 종소리 쓰시려면 쓸수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ㅋ

Falstaff 2024-08-17 12:30   좋아요 2 | URL
큰 일은요 뭘... ㅋㅋ
저는 민음사 교정 교열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다른 출판사보다 심해요. 문장 자체에 대한 고민도 덜 하는 거 같아서, 이젠 이상한 문장이 나오지 않으면 민음사가 왜 이러지? 이런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요.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4-08-17 1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책 냅시다^^

Falstaff 2024-08-18 07:09   좋아요 1 | URL
아마존 밀림을 보존하기 위하여 안 그러기로 했습니다. ㅋㅋㅋ

moonnight 2024-08-17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길 위에서만 읽었네요ㅠㅠ 1번 외에는 다 가지고 있는데도ㅠㅠ 일단 1번을 사는 일부터 해야겠어요. 언젠간 읽겠지 하는 맘으로ㅎㅎ;;;;

Falstaff 2024-08-18 07:09   좋아요 1 | URL
1번은 사시고요, 즉시 읽으셔요. 일단 손을 대면 떼기 힘드니까 조심하시고요. ^^

다락방 2024-08-17 13: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한 권도 읽은 게 없다니!! 부끄럽네요!! 그리고 민음사 고전에 대한 서평집인지 그런 거 나올 거라면 폴스타프 님이 제일 먼저 써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잠자냥 2024-08-18 01:30   좋아요 0 | URL
제발 나는 고백한다 좀 읽으라구!!!

Falstaff 2024-08-18 07:10   좋아요 2 | URL
1번하고 2번, 특히 2번이 다락방 님한테도 맞을 거 같습니다. 2번 강추!!

다락방 2024-08-19 09:06   좋아요 1 | URL
1번은 가지고 있고 2번 사러 갑니다.

잠자냥 2024-08-19 09:35   좋아요 1 | URL
아! 2번도 정말 다락방 님이 좋아할 거 같습니다~!!
(저도 5별 줬던 거 같은데, 다락방 님도 그럴 거 같음)

햇살과함께 2024-08-17 1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번 김하나 작가와 폴스타프님 중복이니 꼭 읽어야겠고 1번도 사두고 아직 못읽었네요ㅠㅠ

Falstaff 2024-08-18 07:10   좋아요 1 | URL
1번 읽으셔요. 순식간에 며칠 지나갑니다! ^^

자목련 2024-08-18 07: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은 게 없어요. <나는 고백한다>는 제목은 익히 알고요. ㅎㅎ

Falstaff 2024-08-18 07:43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셔요. 날들은 새털처럼 많습니다. ^^

유부만두 2024-08-18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안 읽어서 빵점 맞은 학생이 되어버렸어요 ㅎㅎ

Falstaff 2024-08-18 07:45   좋아요 0 | URL
빵점이라니요. ㅎㅎㅎ 1, 2, 4 재미있고요, 3은 좀 장황할 수 있습니다. 5는 다른 독자평도 감안하시는 걸 권합니다. 재미나게 읽으셔요. ^^

독주가 2024-08-1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오 바디스의 진가를 알아봐줘서 감사할 따름. ^^

젤소민아 2024-08-21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판형, 표지, 본문 폰트 건 본문 디자인이건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데 그래도 민음사만큼 묵직한 고전을 충실해 출판해 주는 것도 없으니까요~

Falstaff 2024-08-21 06:07   좋아요 0 | URL
요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예전에 찍은 품절 판을 다시 내는 데 정신이 쏠린 거 같더라고요. 고전은 세대별로 새롭게 번역해야 한다는 최초 출간 의지가 어느새 색이 하얗게 바래버렸습니다.
 
마녀들 환상하는 여자들 2
브랜다 로사노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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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 시티에서 1981년에 출생한 브렌다 로사노는 사립 가톨릭 학교인 이베로 아메리카나 대학과 미국의 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 에세이스트,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2024년에 발표한 <나비처럼 꿈꾸다>를 포함해 네 편의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집 한 권을 출간했다. <마녀들:Brujas>은 2020년 출간 작품. 2014년에 나온 <Cuaderno Ideal: 완벽한 공책>은 <Loop>라는 영어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판해 2019년 펜 번역문학상을 받았다.


  <마녀들>은 두 명의 여성 주인공이 작품을 끌어간다. 홀수 챕터의 화자는 산펠리페에서 사는 치유사이자 샤먼인 펠리시아나, 짝수 챕터의 화자는 조에.

  멕시코의 저 오지 가운데서도 오지인 산펠리페에서 비둘기, 즉 ‘팔로마’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에 칼이 꽂힌 채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멕시코시티의 신문사 기자 조에는 평소에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과 폭력, 강간을 다룬 뉴스라든가 사무실에서 듣는 성차별적 농담 같은 것을 견디기 힘들어 했는데, 젠더 폭력에 대한 분노가 솟구쳐 이를 취재, 기사를 쓰기로 결심한다. 더하여 그곳에 사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언어의 치유자”이자 “생존하는 가장 유명한 치유자”인 펠리시아나도 만나고 싶어한다. 산펠리페 산골까지 전세계 예술가, 영화인, 작가, 가수, 음악가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영혼의 구원자. 그리하여 조에는 펠리시아나를 직접 만나게 되며 세 번에 걸친 ‘치유의 의식’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선언한다. 이 이야기는 팔로마 피살에 관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 펠리시아나와 팔로마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펠리시아나는 깊은 산골 산후안데로스라고스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 펠리스베르토까지 대를 잇는 남자들은 모두 산맥에 이름이 난 치유자들이었다. 낮에는 성실한 일꾼이었으며 밤에는 유명한 치유자였던 아버지는 그러나 펠리시아나의 동생 프란시스카가 걷기도 전에 갑자기 닥친 폐렴으로 삶을 접었다. 당시 펠리시아나 본인도 자신에게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사촌 가스파르한테 치유의 능력이 있으며, 평소에 백부인 펠리시아나의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방법을 전수받아 본격적인 치유사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다. 가스파르, 문제의 가스파르는 ‘무셰’의 성 정체성을 지녔다. 각주에 따르면 무셰는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이들과,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으며 동성애자 남성으로 정체화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합한 개념으로 보면 될 듯하다. 이런 가스파르를 할아버지는 ‘새: 동성연애자’를 뜻하는 “파하로”라고 불렀는데, 그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파하로’보다는 더 부르기 쉽고 친근하게 비둘기, 즉 “팔로마”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이렇게 가스파르는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팔로마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또다른 주인공 조에는 당혹스럽지 않았을까? 여성에 대한 살인과 폭력, 그리고 강간에 치를 떨어 팔로마 살인사건을 취재하려 했다가, 피해자가 남성과 결혼상태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남성의 성염색체와 생식기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으니. 그리하여 팔로마 살해사건은 조에의 초점에서 벗어나고 오직 펠리시아나의 치유와 샤먼으로의 능력,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하여 집중한다. 물론 이런 상황의 변화에 따른 갈등은 작품에 나오지 않는다.

  펠리시아나가 세상에 나왔을 때 어머니는 열세 살, 아버지는 열여섯 살 정도였다. 정확하게 펠리시아나는 몇 살인지, 몇 년에 태어났는지 모른다.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동생 프란시스카는 몇 년 후에 출생했으며 평생 독신으로 살며 언니와 조카들에게 음식을 해주고, 농사와 잠업을 포함해 집안살림 전부를 다스린다. 펠리시아나는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선량한 남자 니카노르와 결혼해 아니세타, 아폴로니아, 아파리시오, 세 아이를 낳아 키운다. 남편 니카노르는 내전에 참전했다가 돌아왔을 때는 거의 알코올 중독이 되어 있었고, 술 취하면 늘 폭력을 휘둘렀으며, 그렇게 살다가 일찍 죽었다. 이 무렵 산펠리페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이름난 치유사 가스파르는 이름을 팔로마로 바꾸어 남자들과 사랑에 빠지면서 치유자의 일을 그만 두었다. 사랑을 한다고 해서 치유의 능력이 사라지거나 잃게 되는 건 아니다. 그저 팔로마 본인이 생각하기에 남자와 밤을 보내는 거와 치유의 일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그렇게 세상이 어차피 끝나는 거라면, 자기는 남자들과 밤을 즐기는 편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부 아니면 전무.” 브렌다 로사노의 데뷔작 제목이기도 하다. <전부 아니면 전무: Todo nada>. 

  가스파르 혹은 팔로마가 치유사 일을 그만두자 외눈박이 타데오가 자신은 눈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안 보이는 눈으로 사람들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거짓 치유사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펠리시아나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 미국의 기업가로부터 집을 선물 받을 때 그것이 배가 아파 그녀의 어깨에 총알을 박아 넣을 예정이기도 하다.

  어릴 때 생의 마지막 즈음에 도달한 아버지는 펠리시아나를 데리고 평소에 팔로마가 채집하던 버섯과 약초가 자라는 언덕으로 데려가 보여주면서 이야기했다.

  “펠리시아나, 바로 여기 이곳에 책이 있단다. 우리 것이 아닌 오직 너의 것이란다. 어느 날 네 앞에 모습을 드러낼 거야.”

  펠리시아나가 과부가 되자, 어머니는 또 말했다.

  “딸아, 고개를 들어라. 어미처럼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열심히 일하거라. 세상 모든 여자처럼 앞으로 나아가거라. 아래로 내려가지 말아라. 중간도 절대로 안 된다. 나처럼 위를 지키거라. 앞으로 나아 가거라.”

  선하기는 했지만 전쟁을 거치면서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남편 니카노르가 죽은 후에 팔로마, 가스파르는 내게 치유의 길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나를 찾아오렴. 언어와 책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 지 알려줄 테니.”

  팔로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사람의 미래를 봐주고, 사랑에 관한 조언을 잘 해주었다. 그가 펠리시아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펠리시아나의 “언어”가 치유자라는 것. 그녀가 “책”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모든 사람은 자신의 책이 있고, 자신의 언어가 있다. 자기 책에 어떤 언어가 쓰여 있어서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위와 성격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펠리시아나는 바로 그 사람의 책갈피에서 문제의 언어를 꺼내는 것으로 치유를 한다. 상대는 수십 년을 살면서도 자신에게 그런 기억이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던, 어쩌면 생존을 위한 필사의 방어기재로 하여금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못하게 했던 언어를 끄집어 내 아픈 자를 치유한다는 것인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프로이트 식 신경정신 치료 방법과 비슷한 것 같다.


  작가 브렌다 로사노는 놀랄 만한 치유사이자 샤먼 펠리시아나가 육체적 고통은 혈통을 타고 내려온 치유능력으로 약초와 버섯 처방을 포함한 의식으로 해소하고, 정신적 고통은 “언어”와 “책”으로 치유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정신적 고통까지 치유함으로써 펠리시아나는 단순한 치유사의 범주를 넘어선 “샤먼”의 단계에 이른다.

  그러면, 장소가 멕시코의 화산지대가 아니라 거대도시 멕시코시티였다면 누가 치유사이자 샤먼이 될 것인가? 브렌다 로사노는 한 작품에 여러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다른 주인공 조에의 어머니에게도 이런 샤먼의 기질 또는 특별한 “직감”이 있어서, 여성에게는 자기 안에 조금은 마녀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그러나 더 크게, 언어와 책의 주인, 즉 문학이라는 것이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효용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모든 (정신적)치유는 언어를 통해 이룬다고 로사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힘주어 이야기한 것으로 보아.

  정말 문학이라는 장르가 현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을까? 새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른 주인공 조에의 이야기는? 직접 읽으시기 바라며 이쯤에서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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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16 0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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