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
우르스 비트머 지음, 이노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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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1월, 우르스 비드머Urs Widmer가 쓴 희곡 <정상의 개들>을 읽고 쓴 독후감의 초두에 나는 비드머를 이렇게 소개했다.
  “1938년 스위스 바젤에서 번역일도 하는 고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우어스 비드머.…”
  <아버지의 책>은 제목처럼 우르스 비드머가 자신의 아버지 카를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한 사람이 살다가 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른다. 훗날 우리는 그를 “스위스 바젤에서 번역일도 하는 고등학교 교사”이며 “스위스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우르스 비드머의 아버지”로 기념할 뿐, 그의 고향에서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 일종의 성인식과 이날 이후부터 쓰기 시작해 죽는 날까지 빠짐없이 기록해야 하는 책인 백서, 그가 평생을 바쳐 온 문헌학적 성취, 죽을 때까지 오직 한 여성과만 육체적 사랑을 한 순정, 모인 사람들에게 활력을 갖게 만드는 쾌활함, 생활과는 거리가 먼 학문 또는 연구에 관한 집착, 남에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숙함, 자기로서는 자연스럽지만 남들은 지독하게 엉뚱하게 볼 기상천외한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버리는 기벽 등에 관해서는 전혀 덧붙이지 않는다. 사는 게 다 그렇듯이, 죽은 다음에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이 기록되지 않으면.

 

  “나의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다.”
  이렇게 소설은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고, 독일의 패전이 거의 확실해지자 스위스에서 법으로 금지한 공산주의 활동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다. 이 틈을 타 사회주의 정당의 일종인 ‘노동 리스트’라는 이름의 단체를 발기할 당시, 화자의 아버지 카를은 비례대표 19번을 맡으라는 관계자의 부탁을 아무 생각 없이 들어주는 바람에 하마터면 지방의회 의원이 될 뻔했던 일을 말한다. 당시에 노동 리스트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큰 성과를 거두어 18 명의 비례대표를 배출했다고 하니, 정치에도 관심이 없던 무신론자 카를 입장에선 있지도 않은 하느님이 보살폈던 거였다. 그렇게 작품 상 저 뒤에 벌어질 일을 앞에서 거론하며, 이야기는 다시 아버지 카를의 소년기, 만 12세 시절로 되돌아간다.
  화자의 아버지 카를은 김나지움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애초에 목표를 정해 공부한 것도 아니건만 5.5점을 얻은 체조 과목만 제외하고 전 과목에서 만점인 6점을 받았던 똑똑한 소년이었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원래 공부 잘하는 집안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경기(여)고-서울대를 가지 못하면 자식 취급도 하지 않는 집구석도 봤다. 우리 집안 같으면 집안 전체에 한 명이나 나오면 경사라고 어른들끼리 축하주 핑계를 대고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셨을 텐데 말이지. 근데 이 카를의 집안이 그랬다. 어린 카를은 집에서 바보 취급을 받았다. 카를의 형 펠릭스는 체조는 물론이거니와 카를이 한 번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성실도와 품행점수까지 탁월한 모범생 자체였다. 그러나 형을 능가하는 것도 하나 있었다. 축구. 카를은 지역 축구단 올드 보이스 소년 2팀의 센터포워드로 말 그대로 골게터였던 것. 사실 그것도 펠릭스가 축구에 쏟는 관심이 카를이 정치에 쏟는 관심만큼 적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어린 카를. 자꾸 ‘어린 카를’이라고 하는 이유는 카를의 아버지, 그러니까 화자의 할아버지 역시 카를이어서 그러는 건데, 하여튼 카를이 열두 살이 되자, 카를은 시내의 살림집에서 난생처음 혼자 길을 떠나 부모님의 고향 마을로 걸어가는 여행길에 오른다. 부모는 벌써 오래 전부터 이 날을 위한 여행복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바닥에 징을 박은 신발, 검은 바지, 조끼, 하얀 셔츠, 수공업 직인이 쓰는 것처럼 생긴 모자, 가죽 배낭과 속에 빵 하나, 치즈 한 조각, 한 병의 과일즙. 이 배낭은 그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열두 살 때 카를처럼 고향으로 향할 때 지던 배낭이었다. 아버지는 카를에게 가다 보면 폭풍우가 칠 것이고, 그러면 조금 지나서 우박까지 쏟아질 터이니 얼른 조끼를 벗어 머리 위에 얹고 그 위에 모자를 쓰라고 가르친다. 그리멜스하우젠이 쓴 <모험적 독일인 짐플리치시무스>를 보면 유럽 산간지방의 우박을 잘못 맞으면 골로 갈 정도로 우악스러운 모양이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온몸이 무섭게 떨리도록 춥겠지만 그래야 다치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 물론 실제로야 그러했겠는가. 카를이 앞으로 걸어야 할 인생에서 추위와 폭풍우과 우박이 숱하게 쏟아지리라는 은유로 읽어야할 터.
  고향에 도착하니 이상한 풍습이 있는 마을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즉시 관을 짠다. 그리고 그걸 집 담 같이 보이는 곳에 보관한다. 누구나 집 옆에 쌓인 관의 수를 세서 이 가구가 몇 명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살다가, 누군가가 죽으면, 어디서 죽었든지 간에 자신의 관에 담아 매장을 하는 풍습이다. 그리고 검은 교회. 밖에서 보면 하얀 색에 가깝지만 거대한 탑, 본당, 굉장히 작은 익랑으로 되어 있는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카를의 눈엔 천 개도 넘을 거 같은 촛불의 바다에서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다. 나이든 어른 두 명이 카를의 옷을 모두 벗기고 뜨거운 욕조에 담근 다음 목욕솔로 박박 문지른다. 포피를 젖히고 귀두까지도 그렇게 문지르는데, 이것 역시 은유인 것이, 이후 빽빽이 들어찬 마을 사람들과 예배를 진행할 때의 합창, 온 사람들이 목청을 높여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전력을 다해 노래 부를 때, 카를의 높은 목소리가 한 순간에 낮고 우렁찬 베이스 음정으로 바뀐 걸 알게 된다. 즉 성인이 되는 의식을 치루었던 것. 이때 의식을 도와주었던 두 명의 소녀 가운데 한 명. 얼굴에 주근깨가 귀엽게 박힌 아이. 저 먼 훗날에 상봉하게 될 소녀의 이야기는 독자가 직접 확인을 하게 맡겨 두고, 성인식의 마지막 순서를 소개하자.
  카를의 삼촌이 마지막으로 제단 위에 검은 수건으로 덮여 있던 검은색의 2절판 큰 책을 꺼낸다. 절단면에 금박이 칠해져 있고 뒷면에 카를의 이름이 새겨진 책.
  “이것은 백서다. 책이 백지로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는 죽음을 맞이하는 날까지 너의 하루 하루를 이 책에 기록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 그렇게 하고 있다. 짧든, 길든 우리의 방식대로 하고 있다. 글씨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매일 저녁 세 개의 십자표를 그려 넣는다.”
  이 책은 책의 주인이 죽기 전에 누구도 읽지 않을 것이며, 죽은 다음에 맏아들이, 맏아들이 멀리 있으면 다음 아들이 읽고,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았는지 이해하고 기뻐하기도 할 것이고 눈물짓기도 할 것이다. 놀라기도 하겠고, 누군가는 무엇을 배울 수도 있다. 즉, 자신의 소설을 스스로 써내려가는 일. 삼촌은 2절판의 커다란 책과 거위 깃펜, 잉크를 건네주며 오늘부터 책을 채우라고 권한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카를 역시 나이가 들고 몸이 쇠약해지고, 이제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독립하지 않은 아들과 아내 클라라가 미리 표를 예매한 서커스를 구경하러 간 사이, 마지막으로 시 낭송회 뒷풀이에 참석했고, 이미 잠에 빠진 아내와 아들보다 더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와 여러 개의 약을 삼키고 설핏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깨어난다. 6월이었음에도 아직 어두운 새벽, 카를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화장실로 가서 물을 틀고는 바닥에 쓰러져 거의 사망 상태에 이르고 만다. 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들이 앞에 섰을 때까지 아주 잠시 더 생존해 있다가 숨을 거둔다.
  그래서 화자가 멀리 있는 맏아들 펠릭스 대신해 카를의 책을 열어 읽기는 했다. 하지만 훌륭한 지식인이었던 카를이 직접 쓴 책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었을 것. 그리하여 아버지의 책이 어떻게 변주되고, 그 속에 들어 있던 아버지의 삶은 어떤 그림이 그려졌을까, 이건 안 알려드린다.

 

  좋은 책이다. 260 쪽에도 못 미치는 짧은 작품이라 별로 부담도 없는데,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전에 읽었던 우르스 비드머, <정상의 개들>에서는 절대 기대하지도 못한 위트와 유머도 많이 섞여 있고, 때로는 진지하다. <어머니의 연인>도 가까운 날 안에 읽을 예정이다. 그 책도 기대하게 만들 정도로 <아버지의 책>을 즐겁게 읽었다. 책값도 싸다. 읽지 않을 이유가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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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4 1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일 것 같아요
세워둔 관과 채워갈 백지 책의 상징을 알 것 같아요. 죽음의 순간까지 주어진 시간을 채워가고, 그 내용이 아들에게 읽혀짐으로 책임을 갖게되는... 더 많은 변주가 있을듯요.
어떻게 변주되었는지 알고 싶게 만드는 리뷰!

Falstaff 2022-01-24 12:08   좋아요 3 | URL
예. 이 책 재미난데, 문지가 마케팅을 잘 안 해서 알려지지 않은 거 같아요.
비트머도 스위스 출신으로 꽤 알려진 작가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왜 아버지의 책을 아들이 쓰는 지는.... 안 알려드림. ㅋㅋㅋ
 
레 망다랭 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송이 옮김 / 현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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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의 프랑스. 온 유럽을 말발굽으로 짓밟고 다니던 키 작은 코르시카 사나이가 1815년 6월 벨기에의 워털루 평야에서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한테 거의 다 이겼다가 마지막 카운터 펀치 한 방을 맞고 쌍코피를 흘린 이후에, 일설에 의하면 코르시카 사내가 자기보다 키가 큰 프랑스 남자들의 씨를 말려서 이후 순종 프랑스인 가운데 씨알 굵은 종자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확인한 바는 없지만 그래서 그런지, 55년 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914년 1차 세계대전, 마지노 선을 우회해 아르덴 고원을 돌파한 1940년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독일하고 붙었다 하면 얻어터지느라 해 지는 줄 몰랐다. 사실 기원전에 쓴 <갈리아 전기>를 보더라도 라인 강 동쪽에 터를 잡고 사는 야만인들을 정복하는 일이 카이사르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을 만큼 그쪽 인종들에게, 모르기는 몰라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많았던 거 같다. 갈리아 인이라고 같은 갈리아 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황제 근위병은 전부 이 라인 동쪽 골 족의 용병으로 채웠으며, 후계 없이 죽은 황제의 다음 황위는 거의 이 용병 게르만 족이 결정을 했거나 적어도 승인을 받아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명저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참조하셔도 좋다.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땅에 첫 발을 디딘 독일군은 5주 만인 6월 13일, 드디어 파리에 입성한다. ①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와 나치 일당을 나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왜 전쟁을 벌였을까? 애초에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여기다가 미국까지 합한 연합군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시뮬레이션을 해보았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토록 훌륭한 시뮬레이션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진행했을까. 이 책 <레 망다랭>을 읽기 전에 페터 바이스의 역작 <저항의 미학>을 미리 읽으면 좀 더 편할 지도 모른다. 나도 <저항의 미학>을 읽기 전까지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어찌하여 독일의 군비증강과 히틀러와 나치에 의한 전체주의화를 용인, 적어도 묵인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② 1차 대전으로 그렇게 곤혹을 겪고도 또 독일로 하여금 군대를 키우고 무기를 생산하게 내버려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②부터 말하자면, 1917년, 소비에트의 탄생이 주된 이유였다. 보라. 프랑스, 영국 등 전통의 연합국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자본주의, 라기보다는 부르주아 권력에 의한 국가였다. 예전에 러시아라고 부르던 영토에 자리잡은 소비에트 연방, 소련은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세계 적화를 목표로 공산주의의 확산에 전력을 기울였다. 1919년 레닌에 의하여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3 인터내셔널, 이라고도 하는 코민테른은 세계 각국에 지부를 두고, 심지어 당시 조선 공산당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을 포함한 부르주아 국가들은 서유럽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더border 지역으로 여겨, 독일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이 소련의 서진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키 작은 오스트리아 아마추어 화가와 나치들은 한편으로 전체주의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 집시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이것, 즉 (집시는 모르겠고)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에 대한 수용소 처분과 학살을 서유럽과 미국이 반대했다고? 누가 그래? 알베르 코헨의 명작 <주군의 여인>에서는 프랑스 부르주아의 입에서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글쎄 히틀러한테도 배워야 할 게 있다는 말이야.” 물론 소설 속의 주요 증오 대상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유대인이지만, 바이스는 작품을 통해 유대인보다 공산주의를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워했던 서방 국가들이 독일의 무장을 못 본 척했다고 주장한다.
  ①의 문제, 히틀러로 하여금 전쟁을 발발하게 만든 것 역시 연합군의 잘못이라는 관점이 대세다. 애초에 히틀러는 큰 규모의 전쟁을 계획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코를 억눌러 독일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을 통째로 삼킬 수 있어서, 이것 봐라, 하는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이 첫 번째 잘못이고, 폴란드를 침공해도 다른 국가들에서 여전히 큰 문제로 삼지 않아 마음을 놓게 했던 것이 두 번째 잘못이라고 한다. 그래 처음에는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다면 도무지 승산이 없다고 봤다가, 점점 간이 커져 프랑스하고만 싸우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고 (사실 그랬다.),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해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단다. 이 시뮬레이션도 조금 무리라는 걸 우리는 안다. 영국이 참전했다 하면 다만 시간이 문제지 전통적으로 영국과 한 편이 되어 끝까지 가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뉴질랜드. 소련과 이 나라들을 무시한 것이 히틀러에게는 불능의 방정식이었는데,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오게 만든 건 전적으로 서방 부르주아 국가들에게 있다고.

 

  1940년 6월 13일 독일군의 지배에 들어간 파리는 1944년 8월 25일, 미군에 의하여 해방된다. 왜 구구절절 말이 많았나 하면, 이 책 <레 망다랭>의 등장인물 거의 대부분이 좌파 진보세력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1944년 12월 24일, 동거 상태인 앙리와 전직 가수였던 폴(女)의 원룸에서의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시작한다. 파티에 참석한 인물은 유명한 작가이자 정치에 참여하려는 뜻을 갖고 있는 뒤브뢰유 씨와 이이보다 스무 살 젊은 아내 안, 열여덟 살 먹은 딸 나딘, ‘희망’이란 뜻의 신문 “레스푸아”의 운영자 앙리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뱅상, 랑베르, 세즈나크, 샹셀, 그리고 앙리와 함께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 무장 레지스탕스의 영웅이자 이름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마젤 등이다. 레스푸아의 뱅상, 세즈나크, 샹셀 역시 레지스탕스 출신이며, 랑베르는 자기 아버지가 유대인 애인을 나치 친위대에 밀고해 죽게 만들었다고 믿어 부자간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청년이다.
  프랑스 문화계의 거물 사회주의자 작가 뒤브뢰유 씨는 새롭게 공산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자들의 연합 S.R.L을 창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앙리의 신문사 레스푸아를 S.R.L의 기관지로 만들려고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앙리를 설득한다. 그런데, 20세기 공산주의를 보면, 공산당은 하다못해 스페인 내전 시기에도 끝없이 권력투쟁을 벌이고, 투쟁마다 승리를 거둬 공산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당파를 말살한다. “건전한 정신에는 우둔의 악취가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라고 농담 한 마디 했다가 청춘 시절 거덜난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는 익히 아실 듯. 공산주의와 공산당은 인정하되 결코 호락호락 활동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음을 21세기의 독자들은 알고 있지만, 좌파 무장 레지스탕스 경력으로 뭉친 1944년 말의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공산당과 공산주의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뒤브뢰유 씨가 새로운 사회주의 당파를 만들려고 했던 것.
  앙리도 S.R.L이 기관지가 없으면 자기들의 주장을 펼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곤란한 처지에 처해질 것임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관지로 흡수된다면 모든 중도와 좌파 독자들 가운데 공산당이나 S.R.L과 뜻을 달리하는 독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기관지가 되기는 하지만. 이때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스크리아신이라는 러시아 출신 망명자가 있다. <붉은 낙원>의 저자이기도 한데, 이이가 소련 내의 거대 수용소에 관한 기사거리를 가져온다.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이 떠오르는데, 스탈린 정권은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생산에 종사하는 수 많은 프롤레타리아를 먹이고 입히기 위하여 특별한 생산 조직을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하여 스탈린은 전국에 1천5백만에서 2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수용소라는 이름의 집단 노동형에 처해 하루에 열네 시간씩 무보수로 일을 하는 새로운 노예계급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 극동지방 간도 지역의 조선 이민들 역시 1920~30년대에 집단으로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 카레이스키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만든 것도 이 때다. 즉 소련 내 유대인 뿐 만 아니라 독일군 포로, 소수민족 등등, 가리는 것 없이 노동할 수 있는 비 러시아인이면 이 노예계급에 합당한 신분을 가졌다는 것.
  사람들에게 “높은 덕성을 지니고, 이해에 좌우되지 않고, 정직하고, 공정하고, 용기 있고, 한결같고, 결점이 없으며 스스로에 대해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성격의 앙리는 이런 내용일수록 좌파신문에서 고발기사가 나가야 하지 피가로 같은 우파 신문에서 특종을 내게 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S.R.L의 대표 뒤브뢰유와 담판을 벌인다. 뒤브뢰유는 이를 거절한다. 만일 레스푸아에 이 기사가 뜬다면 공산당으로부터 본격적인 공격이 들어와 결국은 S.R.L의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라서. 그래 앙리는 뒤브뢰유와 크게 다툰 후 그와 결별하고 다시 독자의 신문매체로 돌아와 1면에 소련의 노동 수용소 실체를 밝히게 된다. 결과는, 뒤브뢰유가 옳았다. 누구나, 심지어 프랑스 공산당 당원들도 알고 있었지만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려 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견제하고 있는 스탈린 소련에 반대하는 자체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끝없이 권력투쟁을 벌여 빠짐없이 승리를 해온 공산당 집단의 당파성. 비록 자신들의 의견이 진실과 다름을 충분히,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거나, 잘못한 행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좌파적 집단 의식에 앙리가 제대로 걸려버렸다. 그리하여 앙리는 그토록 믿었던 젊은이 라숌으로부터 신문지상으로 협잡꾼, 모리배, 사기꾼 등, 활자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가장 독한 욕설을 원없이 듣게 된다.
  굳이 독후감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여기까지 진도가 나가야 <레 망다랭>이 별점 다섯 개의 계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앞부분, 1권을 읽다가 생각보다 재미없다고 쳐도, 하여간 여기까지는 진도를 빼시라. 위에 쓴 것 말고도 참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여기에 <레 망다랭>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시몬 드 보부아르가 등장인물에 부여하는 성격이다. 완전하게 선한 인간은 한 명도 없다. 위 문단에서 마치 극단의 높은 인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인용한 앙리 페롱은 두어 살 많은 여인 폴과 동거하면서 그녀로 하여금 심각한 정신병에 걸릴 정도의 집착을 갖게 만들 정도로 자유연애를 구가하고 있다. 극 중에서도 포르투갈에 초청받아 몇 달에 걸쳐 여행을 할 예정이면서도 처음부터 폴과 함께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계획에 없이 뒤브뢰유의 열여덟 먹은 천방지축 딸 나딘과 동행한다. 이건 사생활이라 치더라도, 공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랑베르의 찬사가 어느 순간에 배신과 위선으로 바뀌는 파렴치한 짓, 범죄수준의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공적으로 하기도 한다.
  나딘 뒤브뢰유는 스페인 국적의 유대인 청년 디에고와 연애를 하다가 디에고가 부헨발트에서 사망하자 프랑스 남자와 미국 군인들의 침대를 오가며 지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엉뚱한 억측과 삐딱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나딘의 엄마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안은 학회 참석차 뉴욕에 갔다가 시카고에서 인생의 연인 루이스를 만난다. 이후 일 년에 몇 달씩 루이스를 만나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시카고의 루이스 방에서 몸의 즐거움을 확인하고, 삶의 이유를 되찾아 다시 로베르 뒤브뢰유 곁으로 온다. 물론 이건 작가 시문 드 보부아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연인이었던 넬슨 올그린을 모델로 써서 그런지 읽으면서 잘못됐다거나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용감한 레지스탕스로 이름이 높았던 세즈나크는 알고 보니 마약 중독자로 원래 부자였지만 모르핀을 사기 위해 모든 재산을 날리고, 그것도 모자라 비밀리에 독일군과 접선해 수백 명의 유대인을 그들의 손에 넘기는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이 발각난다.
  기타 전쟁이 끝나 극도로 어수선한 상태에서 파리의 레 맹다랭, 지식인들은 곧이어 3차 세계대전이 터질 것임을 공포스럽게 기다리며 미국과 소련이란 두 진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불안이 시민들을 압도할 당시의 인간 모습, 이 가운데 전 프랑스, 아니, 전 파리 사람들에 비하면 비록 소수이겠으나 (프티)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들의 생활과 심리상태를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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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1 1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높아졌네요^^
말은 끝까지 들어보고, 책도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저는 리뷰쓰면서 별점을 더주게 되죠 ^^
레망다랭은 출간되었을때 도서관 희망도서로 받았다가 들춰보지도 못하고 반납했었습니다.^^;;

Falstaff 2022-01-21 12:02   좋아요 5 | URL
옙. 높아졌습니다.
근데도요, 보부아르의 수다가, 이거 참,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한 얘기 비슷하게 한 번 더 하고. 이 끝없는 론도 모데라토가 참 ㅋㅋㅋㅋ
다시 읽으라면 제가 이렇게 되물을 겁니다.
을마 줄랴?
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1-22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놓고 아직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책이데 지난번 골드문트님 별점 보고 절망했다가 지금 이 리뷰보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ㅎㅎ 올해 가기전에 읽겠죠 뭐.... ^^

Falstaff 2022-01-22 18:56   좋아요 2 | URL
아이, 사셨으면 걍 읽어버리세요!
술술 읽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전혀 어렵지도 않습니다. 으쌰, 으쌰!!!

stella.K 2022-01-22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왠지 골드문트님 리뷰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ㅠ
문트님 리뷰는 정말 공익적인 느낌까지 들어 경의를 표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이것도 그렇습니다. 고맙슴다.^^

Falstaff 2022-01-22 20:21   좋아요 1 | URL
책 안 사셨으면 선택은 당연히 독자 맘이지요.
이 책은 스타일에 맞고 안 맞고도 중요한 거 같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굳이 권하지 않습니다. ^^
 
2017 서울연극제 희곡집
오세혁 외 지음 / 서울연극협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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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그대로 2017년에 있었던 “서울연극제” 출품작품의 희곡을 담은 책이다. 2017 서울연극제에는 모두 열 편의 작품을 공연했지만, 세 편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이 희곡집에 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책에 담지 않은 것 가운데 <벚꽃동산>이 포함되어 있다. 이게 체홉의 작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안톤 체홉의 작품 맞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연극제라고 해서 모두 초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실린 작품 가운데서도 1980년 가을에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초연한 안민수의 <초혼>도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37년만의 리바이벌 공연인 셈이다. 초연 연출가이자 원작을 쓴 극작가인 안민수가 이 공연을 보았을까? 2019년에 세상을 떴으니 봤을 수도 있고, 건강상 아닐 수도 있겠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나는 “희곡 우체통” 시리즈와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읽어 보기로 했다. 2020 희곡우체통은 읽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을 해서, 서울연극제 희곡집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네 권을 한 방에 구입했는데, 이 모음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희곡우체통은 좋은 희곡을 발굴하기 위해 작품을 상시 모집하고 이 가운데 작품을 선정해, 정식 공연은 아닐지라도 낭독공연을 해주는 신인 등용문 역할을 했던 것과 달리, 서울연극제는 각 극단이 참가 신청을 하고, 물론 특정한 기준에 의거해서 작품을 선정해, 공연할 무대를 깔아주는 것이라 희곡 자체 보다는 연출을 통한 “극”에 더 방점을 찍겠지만, 하여튼 관객이 아닌 독자가 “읽기에” 희곡우체통 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섭섭해 할 것을 알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처진다.
  “희곡”은 글로 쓰여진다. 그래서 한 번 활자를 타고 제본이 되면 이제 다시는 지울 수 없다. 인류 최초의 문학 기록물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돌에 쐐기문자를 새긴 것인데, 이래서 생긴 말이 “글로 쓴 건 지울 수 없다.”로도 해석하는 “Littera Scripta Manet.” 반면에 “극”을 포함한 무대에서 벌어지는 건 일회성이 특징이다. 아무리 여러 번 공연을 해도 원칙적으로 말해서 “같은 공연”은 한 번도 없다. 그래 연출가와 배우는 단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오버를 한다. 2017년 서울연극제 희곡집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오버는, ① 쌍욕, ② 벗기기, ③ 보수권력 조롱하기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를 대통령의 직에서 파면한다. 4월 26일, 수요일에 시작한 2017 서울연극제는 적어도 연초부터 준비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임기말에 닥친 박근혜 정권을 마음대로 조롱하기로 마음먹은 거 같다. 좋다,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어야 하니까. 창작의 자유가 언제나 보장되는 게 아닌 거 같아 문제긴 하지만.
  또한 벗기기 연극. 연극에서 과도한 벗기기를 문제 삼은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긴 한데, 그것이 참. 여자 남자 배우를 벗기지 않아도 극을 얼마든지 진행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극작가와 연출가는 일단 벗기고 보는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이 대선 국면이라 이에 관해 얘기하기가 좀 거시기 하지만) 배우한테 뭐 이리 험한 욕설을 주문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욕 좀 하는 인간이기는 해도 도무지 수습이 안 될 분위기에서 그냥 일상적으로 쌍욕을 뱉고 마는 거, 이런 것들이 전부 극의 장면을 과장하려는 거 아냐? 오늘날 셰익스피어나 실러처럼 극작을 하라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어처구니없게,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은 1980년 가을에 초연한 <초혼>이다. <초혼>은 당시 다양하게 시도했던 특정 대사가 없이 몸짓과 소리를 사용해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채택한 극이다. <초혼>은 당시 <산씻김>과 더불어 당대에 히트한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희곡을 읽어보았다. 희곡 자체도 대단히 재미있다. 특히 지문 읽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예를 들어,

 

  “되풀이 또 되풀이
  어찌 서럽고 애통해서 오른손으로 왼 가슴을 치며 두 발은 껑충껑충 뛰는데 마치 춤추듯 무용하고 그러는 새 다시 입 맞아 외치는 소리는 노래 같다.”

 

  “되풀이 자꾸만 자꾸만 되풀이
  이제는 내고 뛰는 것이 넘쳐서 입도 발도 모두가 제각각인 것이 마치 미친 이들 같다.
  그러다 지쳐서인지 지인들이 하나하나 언제인지 모르게 뒤걸음쳐 나가고 아들만 있는 곳에 가솔들의 곡성은 멀리멀리 아득해진다.”

 

  찾으면 더 있겠지만 그냥 펼친 한 페이지 안에서 골라도 이 정도다.
  <초혼 2017>의 영어 제목을 어떻게 뺐느냐 하면, <Ah-e-Goh>다. <아이고>. 우리나라에서 초상이 생기면 상주와 문상객들이 곡을 하는 소리가 아이고,니까 이렇게 지은 거 같은데 말 그대로 초혼招魂으로, evocation이라 하면 더 좋았지 않을까 싶다. 관객 또는 독자에겐 제목을 지을 권리가 없으니 그저 희망사항일 뿐.
  <초혼>의 1980년 초연 당시에 “혼을 부르는 사람들 (여)” 명단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한영애. 신촌블루스의 멤버로 <누구 없소>와 <조율>을 히트시킨 가수 겸 배우.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 밥집 유량북어찜 아줌마가, 자기 친구까지는 아니고 적어도 지인은 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그 한영애가 출연했던 건 맞는다.

 

  하여간 이제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처음 읽었다.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첫 번째 시도란 것에 만족하고 2018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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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0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곡집은 골드문트님께!

Falstaff 2022-01-20 14:5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도 희곡과 연극, 이 동네는 잘 몰라요. 그래서 더 읽고 있는 겁니다. 좀 알고 싶어서요. ^^;;;

stella.K 2022-01-22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도 그렇다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오죽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네요.
영화는 말할 것도 없죠. 굳이 안 벗겨도 다 이해하는데 꼭 벗겨요.
그거 보면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더군요.
연극도 검증된 것만 재탕, 삼탕 나중엔 십전대보탕까지
우려 먹으려 드니 연극을 한다는 게 좀 김빠지는 일이긴 하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니 작품 보단 어떤 배우를 쓰느냐가 더 관건이겠죠.
저도 몇년 전에 비슷한 구성의 희곡집 읽은 적이 있는데
대체로 의욕적인 느낌은 들지만 과연 이 작품이 진짜 무대에 올라갔을까?
의문스럽긴 하더군요.
근데 골드문트님 대단하십니다.
이 책을 시리즈로 한꺼번에 구입하시다니.
연극계가 좀 알아줘야 할텐데....ㅋ^^;;

Falstaff 2022-01-22 20:19   좋아요 1 | URL
혹시... 스텔라 님 일이 드라마터지 아니세요?
그냥 팍, 느낌이 그래서 말입죠 ㅋㅋㅋ
말씀이 콕콕 찌르는 느낌이랄까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

stella.K 2022-01-22 20:28   좋아요 1 | URL
앗, 너무 나댔나 봅니다.ㅠ
안 봐도 비디오 같은 천리안 아니겠습니까.ㅋㅋㅋㅋ
 
아버지의 책
우르스 비트머 지음, 이노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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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놀랍네! 우르스 비드머가 이런 작품을 만들었어? 게다가 9천 원이야?
아아, 알아. 명작의 반열은 아니지. 그래도 어때? 아우, 난 정말 괜찮더라고.
누구나 다 장편소설 한 권은 가슴 속에 담고 사는 거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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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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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편의 단편을 실은 단편집. 윌리엄 트레버가 76세였던 2004년에 출간했다.
  트레버의 책은 읽을 때마다 곱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어느 쓸쓸하지만 보이지 않는 얇은 손톱이 있어 단어가 눈을 스칠 때마다 휘익 살갗을 베는 것 같은 서늘함이, 뭐라 말해야 하나, 그렇다, 애간장을 녹인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트레버의 책 일곱 권, 전부 마찬가지다. 이제는 트레버의 책을 새로 번역해 출간했다는 말을 듣기만 해도 저절로 구입하고, 구입한 것들 가운데 제일 먼저 읽어야 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당신은 안 그런가?
  그러나, 트레버의 작품을 명작이나 걸작이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독자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라. 물론 현금 삼십만 원 주고 명작이라 말해달라고 하면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이십만 원도 뭐 괜찮다.
  게다가 더욱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밀회>가 일곱 번째 트레버인데, 이제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분위기와 내용 같은 것이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 거의 정확하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터무니없을 듯한데, 작품 하나하나가 이미 트레버의 다른 책에서 읽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같은 작가가 쓴 것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트레버 특유의 단어와 문장과, 문장들이 모인 트레버의 핑거 프린트, 단락이 워낙 독특해, 이런 기시감을 더욱 느끼게 만드는 건 아닌지.
  만일, 트레버와 같은 지역, 적어도 영어권에서 살며, 이이의 작품이나 작품집이 나올 때마다 몇 년 터울로 읽는다면 매번 위에서 말한 얇고 투명한 손톱에 할퀴어 대책없이 애간장만 녹일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 2018년에만 네 권, 작년에 두 권에 이어 또다시 트레버를 읽으니, 조금 문제가 된 거 같다. 작년 8월 이후에만 세번째 만나는 트레버. 꽃노래도 삼세번, <밀회>가 바로 이 삼재수에 걸려버렸다. <밀회>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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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18 0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칭찬하시던 작가에게 별 3개를 주셔서 깜놀!
트레버를 많이 읽으셔서 그러신듯요^^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트레버의 핑거프린트를 말씀하시는 골드문트님의 표현이 멋지십니다~

Falstaff 2022-01-18 09:19   좋아요 2 | URL
ㅎㅎㅎ 좋아하는 음식도 한 번에 자꾸 먹으면 좀 그렇잖아요.
이번에 그게 걸린 거 같습니다.
흠. 칭찬은 아무리 많이 들려도 질리지 않는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22-01-18 0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30만원이면 본전 뽑겠는데요?ㅎㅎ

Falstaff 2022-01-18 10:17   좋아요 3 | URL
본전 뽑고도 쐬주 한 병은 사 마실 수 있을 거 같아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1-18 1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 이책 보려고 사두었는데요. 저는 아직 펠리시아의 여정 1권밖에 안읽었기 때문에 아직 트레버의 마법에서 벗어나려면 멀었음으로 안심입니다. ㅎㅎ 저도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보통 전작주의로 가는데 읽은게 어느 정도 쌓이다보면 권태기가 오더라구요. 그러면 또 내려놓습니다. 우리에겐 읽어야할 수많은 작가와 책이 너무 많이 쌓여있으니까요. ㅎㅎ

Falstaff 2022-01-18 12:09   좋아요 2 | URL
앗, 그러시면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닷!
맞아요, 전작주의가 꼭 좋은 건 아닙니다. ㅜㅜ

새파랑 2022-01-18 1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트레버의 책은 좀 간격을 두고 읽어야 겠군요~! 같은 작가의 책은 한달에 한편씩만 읽어야 겠습니다~!! 전작주의가 좋은게 아니었군요 ㅜㅜ

Falstaff 2022-01-18 12:23   좋아요 3 | URL
오. 전작주의가 좋지요! 그런데 언제나 좋은 건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저도 지난 달에 오에 겐자부로 3부작 한 방에 읽었다가 나가 떨어졌다는 거 아닙니까. 오에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일본 작가였는데도 말입니다.
전작을 읽더라도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읽는 게 훨씬 바람직해 보입니다.

잠자냥 2022-01-18 13: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한 작가 책 한번에 쭉 몰아읽는 분들 정말 대단해 보여요. 전 그렇게는 절대로 질려서 못 읽거든요. 저도 전작을 읽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텀을 두고 읽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도 사두고 아직 안 읽은 거라고 핑계를 대봅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1-18 13:2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사실이 그런데 핑계는요. 천만의 말씀을.

coolcat329 2022-01-18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한 작가의 작품은 간격을 두고 읽는게 좋은거같아요.

Falstaff 2022-01-18 19: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죠? 다 비슷한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