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 화가들의 삶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프랑스 미술 여행, 개정판
최내경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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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애하는 알라딘 친구 햇살과함께 님의 글을 읽고, 오베르 쉬즈 우아르... 딱, 떠올랐습니다.

2001년에 쓴 글입니다. 이 책의 초판을 읽고 쓴 글로 다니던 회사의 사보에 기고했던 잡문입니다. 지금 읽기에는 낡은 감상문입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소개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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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가을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까. 당신 가슴 속 깊숙한 고독의 빈자리로 문득 황황한 바람이 불어오지는 않습니까. 어려운 시절, 거친 생활을 살아내느라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고 함부로 관계들을 만들어가면서도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는 사막을 바라보지는 않나요. 부모와 배우자, 그리고 정겨운 살붙이들이 아주 가끔은 전혀 낯선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하겠군요.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가을에.
  가끔은 길을 떠나고 싶습니다. 지구라는 별자리에 오직 당신만이 혼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 당신은 헤진 배낭을 메고 그저 길을 나서고싶어질 것입니다. 당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지친 발걸음을 쉬고싶겠지요. 당신은 신발끈을 풀고 고단한 발바닥을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무거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려봅니다. 저런, 그러고보니 외로운 당신을 품고있는 공기 속에서 위대했으나 고독했던 영혼들이 당신을 지켜보고 있군요.
  당신은 행복합니다. 위대한 예술품을 만들어낸 고독한 영혼들이 당신과 함께하니까요.
그러나 정말로 자리를 박차고 길을 나설 수 있으면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거나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이겠지요. 보통의 당신은 길 떠날 생각조차 못할 확률이 많습니다. 시간이 없고, 돈이 없는.... 하지만 언젠가 길을 떠나리라, 마치 비밀스런 에로스의 약속인 양 마음 한 쪽엔 그런 갈증을 이 가을에도 당신은 품고 있겠지요. 그 희망, 사실은 조금은 덧없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뒤 돌아보지 않고 베낭을 멜 희망이 있는 당신은 지금 불행하고, 그럴 희망을 갖지 않은 당신은 언제나 불행합니다.

  그날을 기다리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일탈의 그날을 위해 이 책을 소개합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
  프랑스.... 혹은 불란서를 소리내 발음해보십시오. 그것은 이미 당신에게 어떤 동경으로서의 보통명사입니다. 유럽의 중심, 세계 2위의 농산물 수출국이라는 지리부도적인 지식보다도 당신의 가슴 속에서 프랑스는 로제 마르탱 뒤 가르, 앙드레 말로 같은 작가, <암흑가의 두 사람>에서의 쟝 가뱅과 알랭 들롱의 우수 깊은 눈동자, 장-폴 고띠에,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의 패션 디자이너... 이런 소프트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아니죠, 당신을 포함한 많은 우리 보통의 사람들은 의당 그러리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몽마르트 언덕의 노천 카페에 몰려앉아있는 혁명가 레닌과 바쿠닌 같은 망명 이방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프랑스의 무수한 소프트 중에 프랑스를 프랑스답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소프트는 무엇일까요. 루브르 박물관의 눈썹 없는 여인 <모나리자>를 위시한 미술품을 제일 윗자리에 놓지 않으면 많이 서운하리라 생각합니다.
  책《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는 그러나 고흐의 작품에 대한 설명서나 입문서가 아닙니다.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에서 고흐를 발견할 수 있는 페이지는 얼마 되지 않는군요. 그의 그림도 여섯 컷의 사진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책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앞에서 얘기했듯, 어느날 갑자기 단행할 당신의 일탈, 그 여행길에 당신의 헤진 베낭 속에 담아갈 안내서입니다. 당신은 이 책과 함께 지난 세기와 지지난 세기에 가장 고독했고 우울했던 영혼들의 흔적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즉, 고흐의 작품을 보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고흐가 자신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던 그 무서운 고독과 절망의 시절을 온전히 담아낸 다락방으로 당신의 발길을 옮길 수 있게하는 책이지요. 낡은 침대가 놓인 그 좁은 다락방에서 밤새도록 신음을 하던 고흐를 당신은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비뚤배뚤하게 원색으로 불안하게 그려놓은 오베르 교회, 위대한 그 그림을 볼 수 있게 안내하는 것이 아니고, 어느 천재에 의하여 불멸의 명화로 그려진 교회 건물을 당신은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시간의 마모는 직접 고흐의 집을 찾아나선 나그네의 발길에 쓸쓸한 회한 만을 선사하기 십상입니다만, 고독했던 천재의 숨결마저 어느 한 구석에서 발견하기 기대난망이겠지만 굳이 그 집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신의 외로운 영혼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작가 최내경은 고흐가 최후를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셋집을 비롯해서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1막의 무대가 되는 퐁텐블로 숲 가의 밀레의 집과 아틀리에, 거장 다 빈치가 만년을 보낸 클로 뤼세, 프랑스 회화의 다른 큰 축을 이룬 남프랑스 지방, 그리고 파리를 대단원으로 해서 간결하게, 그렇습니다, 우리가 섣부른 기행문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허접한 감상을 첨가하지 않고 담담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최내경의 글은 이렇듯 조금은 건조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까운 지면을 빌어 소개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백에 대한 매력이지요. 작가는 고흐의 집으로 가는 길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어느어느 것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 다음의 지면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최내경의 책을 헌 베낭에 넣고 남프랑스에서 다시 파리로 향하는 밤 열차를 탄 당신은 열차 객실에서 이방의 문자로 인쇄된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꺼내 그 빈 여백에 당신의 감상을 적어놓을 수 있습니다. 최내경은 남부에까지 가서 왜 엑상 프로방스의 세잔의 집엔 들러보지 않았을까...를 빈 자리에 쓸 수도 있고, 끝없이 펼쳐지는 남 프랑스의 들녘을 밤기차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써놓아도 좋을 것입니다. 그건 당신의 몫이니까요.

  당신 속의 외로운 영혼을 위하여, 어느날 문득 저질러질 일탈을 위하여 기쁘게 《고흐의 집을 아시나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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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13 21:2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와 2001년 골드문트는 진짜 골드문트였군요? 감수성 폭발방랑감성! ㅋㅋㅋㅋㅋㅋ

아니 근데 역시 직장이 사람을 망쳤넼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감수성 다 어디 갔어요!

Falstaff 2022-02-14 07:36   좋아요 4 | URL
그러게 말입니다. 35년 넘게 직장생활 해서 얻은 결론이, 저는 애초에 봉급쟁이 체질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ㅠㅠ
에휴. 오늘 입원하시는군요. 힘! 힘!! 힘힘힘!!!

햇살과함께 2022-02-13 21:3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광입니다! 골드문트님의 갬성 추억을 깨우다니 ㅋㅋㅋ

Falstaff 2022-02-14 07:36   좋아요 3 | URL
제가 고맙지요. PC 저 새까만 구석에서 이 글을 꺼냈잖아요! ㅋㅋㅋ

새파랑 2022-02-13 21:3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ㅋ 2001년에 회사의 사보라니 놀랍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지나도 그시절 감성이 어느정도(?)는 남아있는거 같아요 ^^

‘당신 속의 외로운 영혼을 위하여..‘라니 골드문트님이 아마 회사에서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셨을거라 확인합니다 ~!

Falstaff 2022-02-14 07:37   좋아요 5 | URL
지금은 사보 없어졌습니다.
2000년대 들어 아직 사보 만드는 회사는 별로 없을 거예요. 사보도 한물 갔더군요.

페넬로페 2022-02-13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우, 짝짝짝👍👍👍🌺🌺
회사 사보에 이런 글을 기고하시다니~~
혹시 승진하시지는 않으셨나요?
글 속에 온갖 문화적인 것과 사람의 향기가 들어 있어요~~
이 책 넘 읽고 싶네요^^

Falstaff 2022-02-14 07:38   좋아요 4 | URL
ㅋㅎㅎㅎ 승진하고는 별갭니다.
사보의 내용과는 별개로 소위 강추....는 아닙니다. 벌써 20년 전에 나온 책이라 지금 얼마나 효용이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hnine 2022-02-13 2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2001년이 무려 20년 전인가요? 바로 몇년 전 같은데 ㅠㅠ
그러니까 이 책은 고흐보다는 고흐가 짧은 일생 동안 거쳐간 장소, 더 정확하게는 프랑스 기행문에 가까운가보죠? 그만큼 고흐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말이 되네요.
그래도 프랑스를 다섯번이나 방문하고 쓴 기행문이라니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2-02-14 07:42   좋아요 3 | URL
옙. 최내경 선생이 지금은 서경대 교수를 하고 있는데, 그 자리가 제가 졸업한 대일고등학교 자리라서.... 이건 그냥 농담이고요.... 최현무 선생, 우리나라 불문학계에서 김화영, 김치수 등과 함께 소위 프로방스 학파를 이룬 필명 최윤의 제자인데요, 이 책은, 책을 거의 처음 내던 때라 문장이 조금 거칩니다.
나름 꽤 공을 들였지만 훌륭하다,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레이스 2022-02-13 22: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동경의 보통명사!
멋있어요~~

Falstaff 2022-02-14 07:43   좋아요 4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팔팔했던 때는 이렇게 살았는데 말입죠.

청아 2022-02-13 22: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술 드시고 쓰셨던 건가요?ㅎㅎ
골드문트님 이 글 너무×30 좋네요!! 이게 대체 책 내용이 아닌 감상문이라는 점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

Falstaff 2022-02-14 07:44   좋아요 4 | URL
오호, 저는 여간해서 술 마시고 글 안 씁니다.
취해서 쓰면 나중에 꼭 후회하더라고요. 거의 대부분, 엄청 후회합니다. ㅠㅠ

바람돌이 2022-02-14 01: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진짜 이런 소개글을 본다면 당장 저책을 사러 서점으로 달려가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년 전의 골드문트님은 감성 충만!! 멋져요. ^^

Falstaff 2022-02-14 07:44   좋아요 4 | URL
ㅎㅎㅎ 많은 분들이 늦은 밤에 답글을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그땐 생기기도 잘 생겼었는데 말입죠. 물론 믿거나 말거나. ㅋㅋㅋㅋ
 
대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4
에밀 졸라 지음, 조성애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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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다섯 번째 작품.

  루공-마카르 가계를 최초로 여는 인물은 아델라이드 푸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다. 이이는 18세기 중엽인 1768년생으로, 대혁명 당시엔 벌써 21세의 방만한 여성이었는데 무려 105세, 오늘의 작품 <대지>와 지난 번에 읽은 <패주>의 주인공(가운데 한 명)인 장 마카르의 할머니로, 장이 뛰어난 활약을 했던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끝나고도 2년이 지난 1873년에야 눈을 감는다. 첫 남편 루공이 맏아들 피에르 루공을 낳고 곧바로 죽어 과부가 된 후 이름은 모르지만 하여튼 마카르라는 성을 가진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게으른 남자를 애인으로 두고, 파리 인민들이 바스티유로 쳐들어갔던 1789년에 아들 앙투안 마카르를 낳는다.

  앙투안 마카르는 친아버지에게 못된 것들만 골라 닮아 성격이 악질 폭력적이고 입술에서 술병 꼭지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이이는 조제핀 가보당과 결혼해 순서대로 딸, 아들, 딸을 낳는데, 아버지가 하도 집구석을 엉망으로 만드는지라 딸 아들들은 성장하자마자 한 명도 예외 없이 가출해버리고 만단다. 첫째가 리자 마카르로 3권 <파리의 복부>에서 돼지고기 파는 여자로 등장한다. 둘째는 바로 장 마카르로 <대지>와 <패주>에서 활약한다. 막내가 누구냐 하면 어쩌면 루공-마카르 총서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 마카르다. 루공-마카르 총서에서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의 가계도를 밝히는 것도 재미있다. 장과 제르베즈가 오라비, 누이 사이란 것이 책 중에 나와서 다른 관계도 궁금해 이들의 족보를 뒤져봤다. <파리의 복부stomach>가 아직 번역 출간되지 않아 내용을 잘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악질 술꾼 앙투안의 외아들 장은 다행스럽게 아버지를 많이 닮지 않았다. <대지>를 보나 <패주>를 보나, 술도 과하지 않고 성격도 진중하면서 그가 속한 계급 중에선 마치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합리적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준다. 꽤 능숙하게 글을 읽고 쓸 줄도 안다. <패주>에서는 그렇지 않았지만 <패주>보다 열 살 정도 젊은 나이인 29세로 시작하는 <대지>에서는 사랑과 성적 욕구의 광풍에 휩쓸리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을 써서라도 만족하려는 경향은 없다.

  그러나 <대지>에서 만일 주인공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장 마카르라고 하기는 쉽지 않다. 대지주는 아니고 부르주아의 눈으로 보면 소지주지만 일반 농민 계급 입장에선 큰 땅을 보유한 동네 부자로 푸앙 씨가 작은 농촌 마을 로뉴에 살고 있다. 이 푸앙 씨와 세 자녀를 중심으로 하는 푸앙 일가가 실질적인 작품의 주인공이다. 장은 푸앙 가족이 촘촘한 씨줄과 날줄, 그러나 곳곳에 올이 크게 나가 사이사이로 갖은 미풍양속과 윤리와 천륜까지 몽땅 빠져나간 진정한 엽기발랄한 막장 파티에 엉겁결에 휘말린 외지인 희생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제일 중요한 건 푸앙 가문의 구성을 기억하는 일이다.

  푸앙 가문은 로뉴에서 수백 년을 지낸 명문가는 아니고, 지금은 흔적도 남지 않은 로뉴브크발 가문의 농노출신인데 15세기의 농노해방 이후 점차 궁핍해진 영주로부터 1 아르팡(0.5 헥타르)인가 2 아르팡인가를 사들인 후에 4백년에 걸친 땅을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1789년 대혁명 당시 조제프카지미르 푸앙이 예전 영주한테 쟁취한 21 아르팡에 대하여 혁명정부로부터 소유권을 확보한다. 공포정치를 시작한 93년엔 당시 27세의 혈기방장한 조제프카지미르는 영주의 조상 대대로 물려내려온 큰 땅, 약 2백 헥타르의 옥토 중의 옥토가 경매로 나왔을 때, 언제 제정으로 바뀔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귀족들에게 다시 토지를 몰수당할까 겁이 나 1/5 가격으로 나온 경매에 참여하지 못해 땅을 쳤다. 당시 그 큰 땅은 이지도르 우르드캥이란 전직 소금세 징수원인 부르주아에게 팔려 지금은 보르드리 농장이라 불리는데, 이 농장의 고용인 중 한 명이 바로 장 마카르다.

  조제프카지미르한테는 차례로 딸, 아들, 아들, 딸이 있었는데, 막내딸 로르는 도회지 샤토됭으로 나가 양재사로 일하고 있어 현금을 상속받아 책 속에서 벌어지는 땅을 둔 싸움에선 열외다. 하지만 샤를과 결혼해 샤르트르로 진출, 유대인 거리 19번지에서 뛰어난 사업솜씨를 과시하며 지방 최고의 유곽을 세워 큰 돈을 벌어, 늘그막에 다시 고향 로뉴로 돌아와 만인의 존경을 받으며 행복한 노후를 보낸다. 시골에선 어떻게 했든 돈만 많으면 상전이니까.

  맹금 같은 모습으로 여든 살에 그랑드 할멈이라 불릴 맏딸 마리안은 7아르팡을 물려받고 18 아르팡을 가진 이웃남자 앙투안 페샤르와 결혼해 보르드리 농장만 빼면 지방 최고의 부자로 위세를 떨치지만 그러면 뭐하나, 딸 하나를 낳고 곧바로 과부가 되더니 물론 전에도 그랬지만 세상에 비할 수 없는 수전노, 노랑이, 돈벌레, 심술꾼, 악녀로 변한다. 딸이 가난뱅이와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가차없이 내쫓아 버리고, 딸과 사위가 손녀 팔미르와, 구순구개열과 정신지체이긴 하지만 엄청난 완력을 지닌 손자 일라리옹을 출산하고 죽자 손자녀도 전혀 돌보지 않아 끝내 손녀 팔미르는 가장 더운 날 열사병 비슷한 질환으로 밀짚 정리 일꾼을 하다 죽어버린다. 그럼에도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셋째이자 두번째 아들인 미셸 푸앙도 7아르팡을 물려받고 포도밭 2아르팡을 가진 여자와 결혼해 ‘상대적으로’ 어렵게 살고 있다. 슬하에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임신을 한 맏딸 리즈와 열네 살짜리 천둥벌거숭이 둘째 딸 프랑수아즈를 둔 홀아비로 작중 마차를 타고 장보러 나갔다가 돌아오다가 뇌졸중으로 간다. 다행히 자매들은 서로 굳게 의지하고 세상에 더 사이 좋은 동기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리즈가 출산 후, 아이의 친아버지이자 동네에서 깡패 수준으로 악다구니를 치고 다니는 망나니이자 사촌오빠인 뷔토(바보라는 뜻의 별명)와 결혼하자마자 급속하게 사이가 벌어지더니 나중엔 자매가 천생 원수 중의 원수 사이로 변한다. 기억하시라. 이 작품은 말 그대로 막장의 교과서다.


  맏아들 루이 푸앙이, 푸앙 씨라고 불리는 사람으로 역시 7 아르팡을 물려받고 12 아르팡을 지닌 로즈 말리베른과 결혼해 평생 유복하게 살다가 이제 늙어 힘이 빠지니까, 굳이 에밀 졸라에게 작품을 쓰게 하느라 때 이르게 재산을 분할하기로 결정한다.

  이이는 아들, 딸, 아들을 두었다. 첫째가 40대의 야생트. 이아생트 라고도 하며 영어이름으로는 히아신스다. 일찍이 입대해 북아프리카에서 복무했으며 돌아와 아무렇게나 살다가 떠돌이 매춘부와 엮여 딸 올랭프를 낳는다. 올랭프는 겁쟁이란 뜻의 트루유라고 불리며, 아무런 도덕 관념도 없이 제멋대로 살아간다. 야생트는 동네에서 별명 제쥐크리스트로 불리고, 밀렵과 남의 곡식이나 짐승을 훔쳐 먹으며 허물어진 성의 옛 조그마한 반지하 창고를 대강 고쳐 살고 있다. 돈만 보였다 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빼앗아 술 마시는데 마지막 한 푼까지 쓰고 보는 성격이다.

  딸 파니는 남편 델롬의 땅만 가지고도 부자지만 부부가 다 돈에 환장을 했다. 다만 그래도 좀 배웠다고 계약 또는 약속을 했으면 지킨다. 살림살이가 결벽증 수준의 깔끔 자체고 딱 그만큼, 특히 아버지에게 냉정하다. 상대방이 불쌍하건 안 불쌍하건 그건 별개다. 나한테 도움이 되면 친절하고, 아니면 야박하다. 야박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부부가 마찬가지긴 하지만 이마를 펜치로 쥐어 뜯어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다. 네네르라고 하는 외동 아들이 있다. 제비뽑기로 군대에 가던 시절 성공적으로 돈을 써 병역을 치루지 않고, 후반부로 가면 외가쪽 대고모가 운영하던 유대인 거리 19번지의 유곽을 운영하는데 수완이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주인공이자 당대 최고의 악당 뷔토. 당시 27세. 삼촌 무슈영감이 죽어 혼인 전에 자기 아들 쥘을 낳은 사촌 리즈가 땅과 재산을 물려받자마자 곧바로 결혼을 하고, 어린 처제가 성인이 되면 재산의 반을 분할해줘야 하는 것이 아까워 처제마저 결혼하지 못하게 실제적 중혼관계로 만들려고 하지만 어디 세상이 쉽나, 그럴 때마다 죽기살기로 반항하는 프랑수아즈에게 사추리를 걷어채여 끙끙 앓는다. 하여간 책에서 등장하는,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사람이 행하는” 거의 모든 악행은 모두 뷔토나 뷔토의 주변에서 벌어진다.


  졸라의 펜은 거침이 없다. 기원전 사오백년 전 그리스에서도 졸라처럼 쓰는 작가는 별로 없었을 듯하다. <인간 짐승>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만취한 장병들을 함빡 싣고 미친 속도로 죽음의 탈선을 향해 치닫는 열차처럼 도무지 멈추지 않는 질주가 돋보인다. 이 책에서도 몇 장면이 있다. 마을 전체가 포도를 수확하는 날, 아침부터 포도를 수확하면서 눈치도 별로 보지 않고 입 속으로 욱여 넣은 포도가 배 안에서 발효해 처녀들이 가스와 설사를 쏟아내려 둔덕너머로 달아나는 장면, 한 밤중에 환자는 숨이 넘어가는데 의사는 도착하지 않고 주먹만 한 우박이 쏟아지는 모습. 그러나 이 책에서의 질주장면은 단연 암소 콜리슈와 뷔토의 아내 리즈가 한날 한시에 출산하는 장면일 것이다. 나도 책 좀 읽는다 하지만 여태 이렇게 출산장면을 상세하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작품은 처음이다. 암소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하여간 졸라, 알아줘야 한다.

  지금 시대에 읽기에도 쇼킹한 장면이 많다. 이런 건 여기에 소개할 수 없다. 쓰기 민망해서가 아니라 독자가 모른 상태에서 읽어야 제 맛이지 미리 알고 있으면 정말로 책을 읽을 때, 아, 이게 전에 말한 그거로구나, 정도의 임팩트밖에 못 받을 거 같아서 입을 닫을 뿐이다. 당대의 마음 약한 작가, 비평가들이 이런 장면과 묘사와 암시를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래서 내놓고 외설이니 충격이니, 자연주의의 파산이니 하고 비판할 수 있었을 듯하다. 같은 이유로 험한 표현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독자들은 조금 힘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워낙 스스럼없이 저질러버리는 에밀 졸라이고 필력이니 크게 지장은 없지 않을까. 이제 아홉 편만 번역해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도 총서 완간이다. 하루속히 그리 되길 바란다. 모르긴 해도 OECD 국가 가운데 루공-마카르 총서를 완역하지 않은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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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2-11 0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엽기발랄한 막장파티‘와 ‘막장 교과서‘에 깊이 공감합니다!👍
출판사들은 골드문트님의 이 마지막 문장을 꼭 읽고 나머지 9편을 조속히 번역해주길 바랍니다.^^*

Falstaff 2022-02-11 07:22   좋아요 3 | URL
엽기 막장으로 치면 총서 가운데 <대지>가 단연 최고의 경집니다. 나머지 아홉 편도 마저 읽어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어휴, 어휴, 어휴...... ㅋㅋㅋㅋ

잠자냥 2022-02-11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별 다섯이군요. 집구석들에 질려서 이건 여태 읽을 생각 못했는데, 조만간 읽어야겠습니다~

Falstaff 2022-02-11 08:56   좋아요 2 | URL
넷 주면 박하고, 다섯 주면 과하고, 넷 반? 넷 반도 조금 과한 느낌이라 4.3 정도 주면 좋은데, 에잇,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서 넷 이상이니 걍 다섯 때렸습니다. 요즘 제가 별점 그렇게 줍니다. 걍 좋은 게 좋은 거더라고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2-02-11 09: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오 너무 읽고 싶네요. 루공-마카르 총서 완역이 되는 건 너무 좋지만 한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쫙 뽑아주면 더 좋을것 같아요. 그러며 제가 책장에 좌르륵... (그거 아니야!)

골드문트 님. 땡투 드리고 갑니다. 부자 되세요.

잠자냥 2022-02-11 09:38   좋아요 3 | URL
맞아요. 한 출판사 시리즈로 쭉~ 와 멋지겠다.
그래서 전 얼마 전에 창비에서 나온 집구석들은 집구석에 놓지 않고 팔아버렸삼.... ㅋㅋㅋ

Falstaff 2022-02-11 10:32   좋아요 4 | URL
루공 마카르... 현실적으로 한 출판사에서 뽑는 건, 그거야 말 그대로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얼른 완간이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 생각엔 <목로주점>을 필두로 총서 가운데 재미난 작품은 이미 번역해 나와서 나머지 것들에 대한 독자의 눈높이가 이미 꼭대기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 거 같아요. <대지>도 좌르르르 읽히기는 하지만 <목로주점>보다 나중에 쓴 것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원고를 퇴고 없이 막 밀어낸 거 아냐? 라는 의심이 드는 부분이 몇 군데 있더랍니다. <집구석들>은 졸라스럽지 않게 몇 에피소드가 지루하기까지도 했고요.

다락방 님 읽으시면 빡칠 만한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널려 있어서, 정말 읽으시면 병가 낼 일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집어던지든지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2-11 10:34   좋아요 3 | URL
늦었어요. 저 이미 샀어요. 배송중이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파엘 2022-02-11 22:19   좋아요 2 | URL
루공-마카르 총서는 완역되면 순서대로 읽으려고 아껴두고 있는 시리즈 중 하나라서, 정말로 한 출판사에서 멋진 커버로 통일성 있게 출판해주면 좋겠어요. 최근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처럼, 2040년 발간을 목표로 에밀 졸라 탄생 200주년 기념판 완역 루공-마카르 총서가 기획되었으면 좋겠네요 ㅎㅎ

coolcat329 2022-02-11 11: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야겠네요.
저는 졸라 <테레즈 라캥> 하나만 읽어봤는데 <목로주점>으로 시작하는게 좋겠죠?

Falstaff 2022-02-11 11:11   좋아요 4 | URL
<테레즈 라캥>은 ㅋㅋㅋ 루공-마카르 총서 이전, 신인 시절에 쓴 거 맞죠?
그럼요, <목로주점> 곧바로 핵심으로 쳐들어가셔요!!!!

stella.K 2022-02-11 16: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루공-마카르가 시리즈의 이름였군요.
저는 지금까지 프랑스 대표 출판사의 이름인 줄 알았슴다.ㅠ
근데 저는 졸라가 좀 안 맞아서 접어두고 있습죠.
오래 전 <작품> 읽다가 가위 눌리는 기분이라 집어치워버렸죠.
그나마 영화 <제르미날>은 봐 줄만 했는데...
읽는다면 무슨 백화점이나 읽어 볼까 생각중입니다.

근데 쓰느라고 팔이 꽤 많이 아팠을 것 같아요.
도 선생님도 그렇고 발자크도 그렇고...
요즘 보이스 타이핑이 가능한 놋북이 새로 나왔다고 하던데
저도 그게 써 보고 싶더군요.ㅎ

Falstaff 2022-02-11 20:18   좋아요 1 | URL
아,저도 그랬어요!
루공-마카르. 이름 잘 지은 프랑스 기업 같은 발음이잖습니까. 출판사보다 더 큰, 요새 말로 출판 그룹 정도의 규모가 무지 큰 문화사업체 이름인 줄 알았습지요. ㅋㅋㅋ 정말입니다. 너무 어울려서 말입죠.

백화점은 즐기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작품>하고는 애초에 다르니까요. <꿈>도 괜찮을 거 같은데, 우짰든 제가 읽기에 <꿈>은 재미가 적어서, 흠.... 비추. ^^;;;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창비시선 169
박영근 지음 / 창비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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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근. 58년 개띠다. 전북 부안 출생. 시를 꼭 믿을 필요는 없지만 이 시집에 실린 <변산 기행>을 보면 신석정 고택이 있는 부안 읍내 말고 변산 반도 출신인 것처럼 보인다. 변산 입구에 폭포가 하나 있다. 직소폭포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을 받는 못.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산다는 일은 저렇게 곧게 쏟아져내리는

  폭포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어이 산맥은 스스로 길을 끊어 왕포나

  채석강에서 바위 절벽 아래 떨어지고

  바다 끝까지 달려간 마음도

  저녁 노을로 스러지고  (부분)



근데 내가 시인의 고향이 읍내가 아닌 변산반도 아닐까 염두에 두었던 건 이어지는 구절 때문이었다


  방첩대나 지서 사람들이 밤새 술상머리를 두드리며 부르던

  그 유행가 소리를 옛집에서 듣는다


  선거장이 설 때마다 공화당 표몰이꾼들에게

  말들이 막걸리와 그 질긴 만월표 고무신짝을 풀며

  신명을 내던 아버지

  (중략)

  외롭게 춤출 때 듣던

  아버지의 또다른 이름

  빨치산 전향자라는 이름

  (후략)


  

  하여간 변산반도를 포함한 부안군에서 자란 똑똑한 박영근은 전주고등학교에 들어간다. 당시 전주고는 명문 가운데 명문으로 전북의 엘리트라면 당연히 전주서중과 전주고를 거쳐 서울대로 직진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정말인지 모르겠으나 빨치산 전향자로, “아들의 목숨을 사기 위해 / 한 마을을 부리던 논마지기”를 할아버지가 팔아버리는 바람에 말 그대로 알거지가 됐으며, 알 빨갱이 출신에게 누가 있어서 온정을 베풀겠는가, 이어진 가난의 연속상영은 박영근으로 하여금 전주고등학교를 중퇴하게 만든다.

  1980년에 제대를 했다고 하니, 당시 군 복무기간이 33개월이었으니까 1977년에 입대해 중동부 전선에서 복무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시집에 실린 <대암산>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쓸 수 없을 것처럼 상세한 고백으로 되어 있어서 해보는 짐작에 불과하지만.



  살아 붙잡을 것은 물소리밖에 없었던

  내 마음의 대암산

  이십년이 흘러도 나는 떠나지 못하고,

  귀울음으로 남아 시시때때로 울려오는 선무방송  (부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들어간 군대에서도, 대개 시인들은 복무 시절에 관해서는 별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비해 박영근은 높은 빈도수로 당시를 추억 또는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나도 군 시절에 관해서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아 이 시절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이후 상경한다. 먹고 살기 위해 구로 3공단에 취직을 해 밥을 벌고, 한편으로는 시를 쓰면서 잡지 동인도 하고, 유명한 《반시》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활발하게 시작을 하기 시작하는데 당시만 해도 현장 노동자가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센세이셔널한 것이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이이 이후에 곧바로 박노해, 백무산 등이 출현하니 가히 1호 현장시인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그러나 살림은 언제나 절망이고 오직 시만이 희망으로 다가왔으리. 그래 시인은 <희망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바람 부는 공단거리 해종일 쏘다녀도

  아는 이 한사람

  만날 수 없고

  옷 벗은 광고선전지만 날아와 발등을 덮고

  지친 내 그림자가 기대고 선

  공장 담벼락엔

  찢겨진 낡은 포스터


  저물어 역전거리에 나가

  싸구려 노래테이프를 파는 내 친구

  절단기에 잡아먹힌 헐렁한 팔소매를 끌고

  소줏집에서 흰소리를 치다

  돌아와 눕는 밤

  마음 밑바닥 싸늘한 강판엔

  옛말들 쇠시루처럼 쌓여가고  (부분)



  공단과 역전거리에서 하루 살림을 마치고 소줏집에서 한 잔 기울이면 마음에 싸늘한 강판, 무, 당근, 오이, 감자 등을 갈아 즙을 내는 철판 위에 옛말들이 쇠시루처럼 시인의 먹을 거리, 떡(餠)이 되어 쌓이는 것, 그게 바로 시라는 말 아니었을까. 희망은 희망이되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게 아니라 쇠시루처럼 쌓인 옛말, 하루하루의 살림을 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라는.


  그러나 세월은 가고 세상도 변한다. 6월 항쟁을 맞아 소위 민주화를 이루었고, 여기에 1989년 소비에트마저 무너지자, 현장에 들어와 있던 많은 동지들, 이 가운데 소위 ‘학출’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복학을 하고, 정치를 하기 위해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취직을 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다가, 박영근이 결코 보지 못한 미래엔 당당한 기득권 세력으로 고착한다. 시를 써서, 시만 써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인은 거의 없다. 이제 문학판에서 구경하기 쉽지 않은 고등학교 중퇴 학력의 시인이 되어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활동을 하자니 어찌 그것이 쉬울 수 있었을까. 박영근은 애먼 술만 늘어간다. 그러다 성효숙과 함께 인천으로 거처를 옮겨 삶을 이어간다.

참 험하게 살았다. 그의 생애 앞에 놓였던 것, 그건 이것이었을까.



  빙벽



  겨울산은 나뭇잎 하나 붙잡을 것이 없다

  침묵의 저 가파로운 칼등


  바람에 끌려다니던 눈송이들이

  일제히 머리를 풀고

  바위 절벽에 얼어붙는다


  어떤 생애의 화살이 날아와 꺠뜨릴 수 있을까

  흉터와 외침 위에

  얼음 저며드는 벽화여


  바람도

  눈송이도

  스스로 부딪쳐 불타올라

  온몸으로 절벽이 된다


  오오 고통만으로

  저를 지키고 있는

  저 겨울산  (전문)



  마흔여덟 살, 2006년, 21세기에 죽은 시인의 사인이, 영양실조, 결핵성 뇌수막염, 패혈증이다. 인천 시내 판잣집에서 겨울에 물도 끓이지 못하고 살았다니, 생활인으로서는 무능하다는 말을 듣는 걸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그에게 시인으로의 문학적 기질이라 변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렇다고 이이가 평생 가난에 치어 우울하게 살았다는 증거도 없다. 원래 피해의식과 가난은 사람을 오히려 공격적으로 만드는 법. 김사인은 자신의 시에서 박영근의 성품을 묘사하며, 왈왈거리고 나이 차이에도 말 트자고 강짜를 부릴 수 있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암만 그래도 학출 빠져나간 현장, 가방끈 짧은 문학판에서의 피해의식과 가난은 그의 노래를 편하고 아름답게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터. 그가 자연을 보는 시선을 소개하며 독후감을 마친다.



  달 1



  한나절 바지락을 캐고 난 갯벌은

  먼데 막소줏집 불빛 하나를 남겨두고

  말이 없다


  어둠이 노을을 삼키고

  웅크린 섬들을 지우는 동안

  철책이 빗장을 걸고 이빨을 세운다


  한점 비린내도 없이

  저렇게 바람으로 텅 비어버린

  갯벌이 나는 두렵다


  물이랑이

  칼등을 세워

  비구름 몰려오는 수평선으로 돌아간다


  사나운 바람이 엉겨붙어 아우성치는

  철책 위로

  피를 머금은 달이, 솟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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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인데, 좋아하지 않게 된 내력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2017년 어느 날, 나는 그해 연말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될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읽는다. 읽기는 읽는데, 그냥 읽어치우기만 하면 됐을 것을, 심각하게 오독을 하고 만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은 오노 가스지라는 이름의 친 군국주의자 화가를 주인공으로 했다. 패전 후, 전쟁 중 청년들에게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어 일왕을 위해 영미귀축을 타도하고 장렬하게 옥쇄하자고 주장했던 과거를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으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 많이 죽는 바람에 극단적인 여초 현상이 벌어져, 자기 딸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할 수 없이 과거를 반성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는 수도 도쿄를 재건하려는 공사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일본이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 간에 앞으로는 상황이 더 좋아질 기회를 얻은 것이라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며 작품을 마감한다.

  당시에 물론 그해 연말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지는 생각도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던 이시구로의 작품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파렴치한 장면이라, 그만 작품의 속내를 생각하기도 전에 파르르 성질부터 부렸던 거 같다. 작가 이시구로와 책의 주인공 오노를 싸잡아 한꺼번에 잡놈으로 부르면서 독후감을 쓰기에 이르렀으니. 그리고 차라리 잊으면 좋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자꾸 <부유하는…>이 머리에 삼삼하면서, 혹시 이시구로가 겉으로는 양심을 유지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속물 기질이 넘치는 원로 부역 화가 오노를 태연하게 등장시킴으로써 독자에게 전후 전범국의 문제를 거꾸로 환기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던 거였다. 한 번 이렇게 생각을 해버리자 곧바로 오독誤讀임이 분명한 거 같아 언제 시간을 내서 한 번 다시 읽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됐다가, 그러느니 차라리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것이 편하겠다 싶어, 정말 오랜 망설임 끝에 읽은 책이 <남아 있는 나날>이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어보니까, 이 책에서도 <부유하는…>에서 이시구로가 채택한 문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의 일인칭 화자 ‘나’는 옥스퍼드셔에서 달링턴 가문이 2백년 이상 소유하던 저택 탈링턴홀에서 35년간 집사로 일해온 ‘스티븐스’다. 아버지 윌리엄 스티븐스에 이어 저택의 집사로 평생을 보내며,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봉사와 신뢰와 복종을 하면서도 이를 통해 자신의 품위를 발산하는 수준에게 허여 되는 ‘위대한 집사’를 평생의 목표로 삼은 인물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집사 가운데 한 명인 70대의 은퇴한 아버지를 자기의 집사 보조로 채용한 적이 있다. 1923년 당시의 70대 아버지가 탈링턴홀에서 1차, 2차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붕 아래 좁은 하인방에 누워 마지막 호흡을 하던 와중에도, 스티븐스는 자신을 집사로서 진정한 성년에 도달하는 계기이자 ‘품위’의 핵심적인 자질을 입증하는 기회였던 당대의 행사를 위해 조금의 어긋남없이 집사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윽고 성황리에 행사가 끝나갈 시간, 지붕 하인방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부음. 스티븐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자신의 슬픔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며 내외귀빈 여러분에게 최고급 포도주를 잔에 따라주면서 회담의 뒤풀이까지 일체의 흔들림 없이 집사의 품위를 보여준다.

  훗날 달링턴 경은 저택에 수상과 외교부 장관, 그리고 독일대사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를 초치하여 극비 회담을 열어, 영국 수상이 히틀러의 초청에 응해 독일을 방문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스티븐스는 여전히 영국 최고의 집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이들이 호출하면 언제든 응할 수 있게 문 밖에 움직임 없이 서서 대기하고 있다. 바로 이때, 하녀들의 총무인 켄턴 양은 지역 근로자 벤 씨에게 청혼을 받고, 응접실 앞에 직립해 있는 스티븐스에게 오늘 벤 씨를 만나 청혼을 수락했으며, 1주일 안에 집을 떠날 수 있게 도와 달라 말한다. 스티븐스는 켄턴 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기어이 켄턴 양을 떠나보내고야 마는 것도 오직 하나, 집사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품위있게’ 애틋한 아쉬움을 희생시킨 것 아니었을까.


  그의 35년간 달링턴홀에서의 집사 생활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인인 달링턴 경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한 번 신뢰하고 섬기기로 정하면, 달링턴 경이 세상을 뜰 때까지 무한 충성을 바쳐야 한다. 자신은 어떠한 모욕을 받아도 그것이 달링턴 경을 위한, 경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참을 수 있지만, 모욕이 경을 향한 것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를 똑바로 해놓아야 집사로서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으며,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달링턴 경은 영국의 대표적인 전체주의자들과 가까운 사이로 나중에 적대국이 될 히틀러와도 모종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심지어 달링턴 경은 능률이 떨어지는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한 파시즘을 신봉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1920년대 후반에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파시스트들의 눈 밖에 나기 싫어 집에 딱 두 명 있는 유대인 하녀를 해고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치룬 후 본격적으로 나치의 야심이 유럽을 불안에 떨게 만들기 시작하자, 달링턴 경은 스티븐스 집사를 불러 자신이 해고하게 만든 유대인 처녀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었다면서. 이때는 이미 영국 수상과 외무부 장관, 영국 주재 독일 대사와의 비밀 협상도 다 허사가 된 뒤였다. 스티븐스는 결국 이런 달링턴 경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를 바쳤던 거였다.


  이제 전쟁이 끝나고 1953년에 달링턴 경은 회한에 싸인 생을 마감한다. 3년 후 가문의 상속자는 예전처럼 큰 행사도 없어서 저택이 필요 없게 되어 탈링턴홀을 미국인 백만장자 페러데이 씨에게 팔았다. 한때는 최대 28명의 종업원이 있었으며, 스티븐스는 집사로서 17명까지 거느린 경험이 있는 저택에, 작품의 시간적 무대인 1956년에는 스티븐스와 클레먼츠 부인, 그리고 두 명의 하녀만 남는다. 저택의 주인 페러데이는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 저택과 저택을 위해 품위를 지키며 봉사할 수 있는 최상급의 집사 스티븐스를 세트로 구입하기를 원했던 것. 그러나 미국에 터전을 잡고 있는 페러데이는 사실 영국에서 집사를 고용할 정도로 대규모의 행사를 자기 집에서 열 형편은 아니다. 그는 작품 초두에, 즉 1956년 7월에 스티븐스 씨를 불러, 자신이 8~9월에 5주 정도 미국에 다녀올 예정인데, 나이 든 집사에게 자기가 타는 차 포드를 내줄 터이니 영국 여행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연료비도 부담해주겠다면서.

  예전이라면 당연히 사양해야 마땅한 주인의 제안이지만, 때마침 20년 전에 결혼을 위해 달링턴홀을 떠났던 전 총무 켄턴 양이 편지를 보내와 이곳에서 보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 읽기에 따라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애초에 읽는 사람, 즉 스티븐스가 켄턴 양과 다시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강한 희망, 한때는 사랑이었을지도 모르는 희망이 그로 하여금 페러데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고급 포드를 타고 솔즈베리, 도셋, 서머싯, 콘월, 웨이머스를 유람하게 되었을 것이리라.


  이 책의 등장인물에서 이해못할 사람은 없다. 달링턴 경은 해고했던 두 명의 하녀에 대한 보상을 거론함으로써 일본의 화가 오노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그나마 인정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영국의 파시스트로 파시즘의 형제 히틀러와 독일을 돕기 위해 일하다가 전쟁의 위협이 다가오자 급격하게 몰락한 귀족이며, 스티븐스는 이런 주인의 약점을 애초에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오직 충성을 다해 자신의 품위를 얻어, 최종적으로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아 있는 나날>과 <부유하는…>, 두 편의 이시구로를 읽어보니 이게 바로 이이의 화법, 작법이 아닌가 싶었다. 그냥 보여주고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것. 물론 두 편만 읽고 작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좀 더 읽어보기로 했는데, 다음엔 단편집을 한 권 골랐다.

  아직 단정지도 못하겠고 단정할 필요도 없지만, 여섯 살에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인, 영국 안에서도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글 속에서 나는 건 내 후각에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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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08 10: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어요. 저는 집사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 소설이 너무 재밌었고 그의 주인에 대한 잘못된 맹목적인 충성심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에 기여하고 있는 상황과 그 안에서 혼란을 느끼는 집사의 모습이 단순하게 보이진 않더라구요.
급격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 구시대의 인물이 겪는 혼란을 통해 골드문트님 말씀대로 ‘그냥 보여주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단편이라면 녹턴인가요?
저도 갖고 있는데 안 읽었네요.ㅎ

Falstaff 2022-02-08 12:38   좋아요 3 | URL
이시구로, 이이가 음흉하기 이를 데 없어요. ㅎㅎㅎ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읽어야지 읽다가 흥분하면 말려드는 거 같더군요.
옙. 지금 대기중인 책이 녹턴입니다. 귀신이셔요. ㅋㅋ

잠자냥 2022-02-08 1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남아 있는 나날>은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 중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스티븐슨이란 인물, 정말 평생 노예처럼 살았는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금도 여전히 노예와 같은 굴종이 내재된 인물. 어휴 생각만 해도 답답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골드문트 님이 말씀하신 영국 안에서의 ‘일본식 교육‘ 받은 느낌이랑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Falstaff 2022-02-08 12:49   좋아요 3 | URL
옙.
이 작품을 좋아하기는 힘들 거 같습니다. 흥미롭지만 정 가지 않는 인간들만 득시글거려서....
근데 위대한 집사가 요즘 연봉 많이 받는 성공한 직장인하고 어딘가 닮은 거 같아서 읽는 내내 씁쓸했습니다. 저도 스티븐스 집사하고 다른 게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숨기지 못했습지요.

공쟝쟝 2022-02-08 10: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골드문트님 모처럼 저도 읽었던 소설이예요! 반갑기도 하고 그런 의심(?)을 하신게 신기하기도 해요 ㅋㅋㅋ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의심이다! 저는 꼰대 옹호소설이라기 보다는 (저는 에휴 답답이 답답이 이러면서 읽었어요!) 마지막 두번째 문단처럼 느꼈어요! 일부러 이런 사람들을 보여주고 좀 더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구나~ 그리고 나서 앤써니홉퀸스옹 나오는 영화봤는데 울었음…… (역시 배우가 너무 품위 있었음…)

Falstaff 2022-02-08 12:42   좋아요 2 | URL
전에 읽은 <부유하는 화가...>와 이 책의 공통점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만 등장한다는 거였습니다. 아니라고 믿지만, 혹시 모릅니다. 이시구로가 그들을 위한 변명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해주고 싶었는지도.
아직까지 이런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했습지요. 그래 좀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포스트잇 2022-02-08 1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생각을 하셨네요. 이시구로 소설을 읽고 나서 불쾌했던 느낌을 받았던 게 저만은 아니었군요.
아주 영리, 영악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더군요.

Falstaff 2022-02-08 12:44   좋아요 3 | URL
아, 그러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사실 지금 저는 당시에 느꼈던 불쾌감이 타당한 것인지, 오해인지 그걸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2-02-08 1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히려 부유하는 화가들이 더 좋았어요
메시지가 보여서...
남아있는 나날과도 연결되는 메시지가 있지요?!
무사유에 대한 경고!

Falstaff 2022-02-08 12:45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레이스 님께서 무사유면, 사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겸양의 말씀도 참.... ^^

새파랑 2022-02-08 12: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남아있는 나날>을 ˝이시구로˝의 첫 책으로 읽었는데 그렇게 재미있지 않아서 안읽다가, <클라라와 태양>이 화제길래 읽었더니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그 다음에 읽은 <나를 보내지마>는 더 좋고 ㅋ 그의 초기작들 읽다보면 일본 느낌이 나긴 합니다. 배경이 그래서일 수도 있구요 ㅎㅎ 세번째 작품 리뷰가 기대됩니다~!!

Falstaff 2022-02-08 12:47   좋아요 4 | URL
세상이 엎어져도 제일 확실한 건, 소설 읽으면서 제일 중요한 건, 내 맘에 드느냐, 아니냐일 거 같아요. 새파랑님께서 후졌다고 하시면 그 책은 후진 거고요, 좋다면 좋은 겁니다. 그잖아요? 저는 좀 천천히 읽겠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2-02-08 15: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안 좋아하셨던 이유가 이해가 되네요. 저라도 그렇게 읽었을 듯요. 저는 <클라라와 태양>만 사 놓고 안 읽고 있는데, <클라라와 태양>이랑 <나를 보내지마>를 대체로 추천하시더라고요. 올해는 꼭 읽어야겠습니다;; 근데 <남아있는 나날>도 왠지 읽어보고 싶어요. 리뷰로 줄거리 다 봤는데도요.

Falstaff 2022-02-08 16:16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는 그럼 독서괭 님께서 먼저 클라라 읽고 서평 올리시면, 그걸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음메 좋은 거!)
클라라와 보내지마에서는 다른 식으로 작품을 썼는지, 조금 궁금합니다. 어떻게 변했을지도 그렇고요. ^^

독서괭 2022-02-08 16:28   좋아요 2 | URL
네…? 그럼 몇년간 못 읽으실 수도 있는데요😅

Falstaff 2022-02-08 16: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괜찮아요. 그거 말고도 지금 읽을 책이 겁나 쌓여 있습니다!

scott 2022-02-17 22: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즈오가 골드문트님 말씀처럼
부유하는 과 이 작품은 일종의 연장선이자 앞 선 작품에서 미흡했던 것을 보완하며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2-02-18 07:13   좋아요 2 | URL
흠. 두 작품은 정치적으로 좀 수상합니다.
이시구로한테 정이 똑 떨어져서 이이를 읽으려면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ㅋㅋ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 2020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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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극작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극의 긴박한 국면을 마무리하는 방법인데, 이때 극작가가 사용하는 것이 여태까지 극의 내용과는 별 연관이 없이 신을 포함한 초자연적 힘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요샌 의미가 좀 더 넓어져서 한 문제적 인간을 작품의 줄거리와 별로 관계없이 작가가 목숨을 거두어, 이른바 문학적 사형집행 한 방에 모든 갈등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한다. 물론 이제 정말로 이렇게 작품을 쓰면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습작 작가라 하고, 이런 습작 열라 써 봤자 그럴 듯하다고 얘기하는 인간은 1도 없을 정도로 구식이다. TV 드라마에서도 이 비슷한 결말을 구경하기 힘들지만 20세기 말에도 의례 누구 하나 죽어 자빠져야 드라마틱한 결말이라 얘기할 정도였으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사실 대단한 발명이었음직도 하다.

에우리피데스가 <메데이아>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써먹고 한 세기가 흘러 등장한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는 세기전 3백년 대에 여태까지의 이야기 밖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신들에 의하여 결말이 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작품의 결말은 전적으로 작품 이야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리스 고전은 참. 한 마디로 하자면 적나라하다. 뭐 감정을 숨기거나 그런 거 없다. 그래서 2천5백 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에게 읽히고, 연구하게 만들고, 심지어 전율하게 만들 수 있는 거 같다. 열 편의 비극을 담고 있는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 이 가운데 살인에 의한 죽음이 등장하지 않는 건 한 편도 없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살인의 대상이 직계가족만 아니라면, 죽이고 나서도 죄의식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대상이 어린 아이여도 마찬가지다.

  친족 살해도 참 다양하다. 내가 처음 메데이아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히 십대는 아니었다, 아마 대학 시절이었던 거 같은데,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 같은 권위있는 역자의 번역이 아니라 그저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이 대단한 축약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에도 깜짝 놀랐지만 에우리피데스의 원전을 읽어보니 더 대단하다. 본문을 소개하는 것 대신에 <메데이아>의 1번 주석의 부분을 옮겨보자.


  “천신만고 끝에 황금 양모피를 가져온 이아손에게 펠리아스가 왕위를 물려주지 않자, 메데이아는 펠리아스의 딸들 앞에서 늙은 숫양 한 마리를 토막 쳐 약초와 함께 솥에 넣어 끓여 (팔팔 끓은 양을 다시 살려) 젊음을 되찾게 해 주고 나서, 펠리아스도 같은 방법으로 회춘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그의 딸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토막 치게 한다. 그런 다음 메데이아는 효과 없는 약초를 주어 딸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자가 되게 한다.”


  실화와 전설, 신화를 통틀어 가장 엽기적인 여성인 메데이아는 이 일 전에 잘생긴 이아손한테 반해 조국을 배신하고 이아손과 함께 도망했는데 이들을 추격하는 오라비 압쉬르토스도 죽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거나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죽이고 보는 거다. 이 메데이아-이아손 신화 가운데 에우리피데스는 후반부를 차용해 비극을 만들었다. 당대의 그리스 관객들은 이야기의 앞부분을 다 알고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올코스에서 펠리아스를 죽이고 추방된 메데이아-이아손 부부는 코린토스로 옮겨와 아들 둘을 낳고 잘 살다가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말 그대로 신화는 드라마틱해진다. 크레온이 마녀 메데이아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당장 코린토스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고, 메데이아는 왕에게 애걸복걸을 해 하루의 기한을 연장한다. 그리고는 드레스와 머리띠에 독을 묻혀 왕의 딸에게 결혼선물로 주는데, 드레스와 머리띠를 두르자마자 왕의 딸은 비참하게 살이 썩어 급사하고 만다. 이를 본 크레온 역시 딸의 몸에 손을 댔다가 같이 죽음을 맞는다. 이어서 메데이아는 자신을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게 가장 큰 슬픔, 아이를 잃는 아픔을 주기 위하여 아빠 닮아 잘 생긴 두 아들을 칼로 찔려 죽여버린다는 신화.


  이 신화를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신화의 후반부에 기초하여 비극을 쓴 것이다. 신화에서 비극으로 변신을 해야 하고, 신화에 무슨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상당한 부분은 작가가 임의대로 다시 해석하여 쓰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채집한 지 150년 정도가 지난 우리나라 판소리도 여러 본에 따라 이야기의 세부사항이 다른 것처럼 신화 역시 오랜 세월 구전되면서 조금씩 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비극마다 약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네번째 실린 <헤카베>에서는 트로이를 폐허로 만든 그리스 군이 수많은 전리품과 노예를 싣고 귀국길에 오르는 순간 아킬레우스의 영혼이 나타나 트로이의 죽은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의 딸 폴뤼세네를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여, 그의 친구 오뒷세우스가 폴뤼세네를 데리러 왔을 때 헤카베가 탄원을 하는 장면이 있다. 반면에 아홉 번째 작품 <트로이아의 여인들>에서는 폴뤼세네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같은데, 제물로 정해졌고 이미 새하얀 목덜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아킬레우스의 무덤을 적신 후임에도 헤카베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러니 여기선 A라고 이야기하고 저기서는 B라고 할 수 있느냐, 라는 비난은 옳지 않다는 말씀이다.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 때 드라마 작가가 원작을 약간 훼손하는 것은 타당한 권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를 극화한 작품이다. 그래서 여태까지 나도 그랬지만, 작품의 스토리를 가지고 에우리피데스를 논하는 건 조금 어색하다. 신화에는, 모르기는 해도, 메데이아가 이아손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로 한 것에 질투가 나서 이아손의 아들들을 죽여 복수했다, 정도로 묘사되어 있을 것을, 에우리피데스는, 이아손의 아들이지만 자기가 열 달 동안 품다가 직접 낳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절절한 회한과 고통을 노래하는 데 의의가 있다. 어차피 코린토스의 왕과 왕의 딸을 죽였으니, 메데이아는 사형을 모면할 수 없을 뿐더러, 살려두면 이들이 성장하여 복수를 꾀할 것이 틀림없으리라 판단한 코린토스 왕가가 두 아들 역시 죽이리라는 것을 아는 어미가 차라리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음을 맞게 하는 편이 좋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자, 내 마음이여, 무장해라. 왜 주저하는 거지? / 끔찍하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범행이 아닌가! / 자, 가련한 내 손이여, 칼을 들어라! 칼을 들고 / 고통스러운 경주의 출발점으로 다가서도록 해. / 비겁자가 되지 말고, 아이들 생각은 하지 마. / 그들은 내 귀염둥이들이고, 네가 그들을 낳았다고! / 이 짧은 하루 동안만 네 자식들을 잊었다가 나중에 / 울도록 해! 네가 아이들을 죽이더라도 아이들은 역시 / 네 귀염둥이들이 아닌가! 나야말로 불운한 여인이구나!” (78쪽)


  재미있는 비극(들)이다. 그러나 6백쪽, 열 작품을 연이어 읽는 것은 조금 무리다. 휴일 이틀을 온전히 제단에 올려놓아야 한 권을 읽을 수 있는데, 나야 이제 휴일 아닌 날이 없어서 가능하지 다른 분들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서 하루에 딱 한 작품 씩 읽는다 치면, 열흘. 중간에 휴일 이틀이 있으니 휴일엔 두 편 씩 읽으면 여드레 걸린다. 좋다. 연달아 읽으면 질릴 수도 있겠으나 마음먹고 여드레에 걸쳐 읽으면 작품마다 새롭지 않을까. 다만, 책값이 조금 비싸다. 책의 가치와 비교해보라, 이런 얘기 하지 마시라. 비싼 건 비싼 거다. 도서관 이용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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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07 06: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읽을때 에우리피데스 비극을 계속 연결시키게 돼요^^
당시 복수는 명예였기에 당연했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친족과 공동체를 위해 복수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겼던 시대여서 지금의 잣대로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헤카베가 안타까웠죠. 폴뤼세네의 죽음도 그렇구요.
죽어서까지 배신에 대한 복수를 하는 아킬레우스의 인격이 ^^

Falstaff 2022-02-07 07:08   좋아요 4 | URL
아, 그렇겠네요. 전 <아이네이스>를 먼저 읽어서 그저 <일리아드> 뒷얘기란 거,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질까, 뭐 이런 잡생각만 했는데 말입니다. ^^
하여튼 그리스 비극은 이상하게 독자를 공감하게 만드는 거 같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누가 소위 무인도 책 물어보면 소포클레스 비극전집을 첫 번째로 듭니다.
ㅎㅎㅎ 죽은 아킬레우스가 복수를 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좋은 여자는 다 아가멤논이 가져가서 귀신이라도 심통이 도졌거나 욕심이 나 그랬는지, 전 심통이라는 데 한 표!

청아 2022-02-07 0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엑스 마키나‘라는 영화가 있는데 에우리피데스로부터 유례된 거군요! 다행히 저희 도서관에 2권까지 있네요^^*

Falstaff 2022-02-07 10:26   좋아요 3 | URL
에고, 사이에 지금 치과 가서 임플란트 수술 받고 왔습니다. ㅠㅠ
즐겁게 읽으세요! 으쌰!!

잠자냥 2022-02-07 09: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데우스 엑스 마키나‘ 대단한 발명이라는 말에 ㅋㅋㅋㅋ 극공감합니다. ㅋㅋㅋㅋ 아니, 그나저나 골드문트님 이제 언제 어느 시간이고 (독서로) 방랑이 가능하게 되신 겁니까?

Falstaff 2022-02-07 10:32   좋아요 5 | URL
옙! 근데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더 바쁘네요!! 웬 할 게 이렇게 많은지 말이지요.
산소 가서 보고해야지, 건강보험, 고용보험 처리해야지, 그간 신세진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안 얻어 터지고 살려면 세탁기 돌려야지, 청소기 밀어야지, 하루에 적어도 한 끼는 해다 바쳐야지, 수다 떠는 거 다 듣는 척해야지 (이게 제일 힘든 태스크입니다!), 아휴, 하루 해가 언제 졌는지 몰라요! ㅋㅋㅋㅋ

공쟝쟝 2022-02-08 10:39   좋아요 1 | URL
아 부럽다! 책 방랑 많이해주세요 골드문트님! ㅋㅋㅋ 헤헤…

coolcat329 2022-02-07 1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데우스 엑스 마키나! 또 하나 알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엄청 센 인물이 등장하네요. 오...😨
이런 책이야 말로 진정한 고전인데 읽기 쉽지 않지요?

근데 자유인이 되신 거 축하드려요. 그동안 열심히 사셨으니 좋아하시는 술, 책 여유롭게 즐기시면서 건강도 챙기시고 북플에 재미있는 글 마니 올려주세요~☺



Falstaff 2022-02-07 11:22   좋아요 3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정말 축하받아야 할 일인데, 대개 ˝앞으로 뭐할 거여?˝ 이렇게만 묻더라고요.
뭐 하긴 뭐 합니까. 즐기며 놀아야지요.
전 특히 혼자 놀기에 특화된 체질이라서 아무 걱정 없습니다. 일을 하더라도 이젠 절대로 돈 벌기 위해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
제일 좋은 건, 우라질 영어에서 완전 해방됐다는 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2-07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우스 엑스 마키나- 대단한 발명 ㅎㅎ 정말 그러네요. 누굴 죽이고 토막내는 게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와서 지금 시대에 읽으면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 같아요;;
골드문트님 안 그대로 많이 읽으시는데 이제 더 많이 읽고 쓰시는 건가요! (그런데 골드문트님 글 느낌은 청년 같으세요)

Falstaff 2022-02-07 16:06   좋아요 1 | URL
그리스 고전, 정말 읽을 만해요. 제가 별 하나 뺀 건, 1. 책이 비싸다. 화려한 장정 하지 말고 좀 싸게 팔 수 없었을까, 2. 한 방에 계속 읽으면 질린다. 라는 이유 때문인데, 사실 여유잡고 읽으신 분은 5별을 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집에 있으면 책 읽을 시간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요즘 놀라는 중입니다. 책 많이 읽는 주부들, 오오, 대단하세요. @.@
저야 언제나 청춘 아닙니까, 골드문튼데요. ㅋㅋㅋㅋㅋ

mini74 2022-02-07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이 아주 좋아했을만한 발명이네요 ㅎㅎ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골드문트님 ~ 이제 직장에서 해방되어 집요정 도비가 되신건가요. ㅎㅎ

Falstaff 2022-02-07 16:07   좋아요 1 | URL
ㅋㅋㅋ 집요정 맞습니다!
도비는 아니고 황금입술 금순입니다.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02-08 0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전 이 비싼 책 두 권 다 샀지요. 그리고 몇 편 씩만 골라 읽고 있어요.
우렁차게 잔인하고 거창하게 소란스러운 게 우리나라 아침드라마 혹은 넷플릭스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몇년전 연극으로, 또 NT live 로 메데이아를 봤는데요, 전 마지막 장면의 각기 다른 해석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이해영 주연의 연극은 두 아이의 살해 후 이아손이 아이들을 감싸 안고(희곡에선 감히 만지지도 못하게 메데이아가 만드는데 말이죠) 울고, 하늘에 ‘정의‘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살해 현장, 무대의 피칠갑한 곳을 여성 코러스들이 걸레질을 합니다;;;; 제목은 메데이아지만 마무리는 이아손의 고통이었어요.

NT live 연극은 의상이나 무대가 다 현대식인데요, 군복 바지 입고 담배를 뻑뻑 피우며 복수의 칼을 갈던 메데이아는 무대 밖에서 살인을 합니다. 무대, 집안 거실로 돌아온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한참 말로 다투죠. 그 다음 좌절한 이아손을 냅두고 메데이아는 그 문제의 두 포대(!)를 업보처럼 질질 끌면서 퇴장합니다. 자, 내가 좋은데 묻어줄게,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아요. 메데이아는 곧 하늘마차를 타고 아테네로 날아가겠지요.

Falstaff 2022-02-08 07:46   좋아요 1 | URL
아, 연극으로 보셨군요!
저는 <폭군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만 봤는데 둘 다 고전적 연출이었습니다. 무대만 밝은 톤의 조명과 플라스틱 의자 등으로 현대식이었고요.
ㅎㅎㅎ 하여간 실제 공연에서 제일 중요한 건 희곡, 대본이 아니라 연출인 것 같습니다.

유부만두 2022-02-08 0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어제 2월 7일이 찰스 디킨스 생일이었는데, 뭣좀 드셨어요?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구식 찬란한 표현법을 생각하며)

Falstaff 2022-02-08 07:47   좋아요 1 | URL
아휴.... 디킨스는 정말 안 읽을 거라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임플란트 해 박는 바람에 끓인 밥 식혀서 배추김치 반찬 해 먹었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