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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
한스 팔라다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팔라다의 장편 <홀로 맞는 죽음>을 읽고 고른 팔라다의 다른 책. <홀로 맞는 죽음>에서 이미 작가 소개를 했으니 생략한다.
술. 웬수 같은 술. 나도 알코올 의존 성향이 조금 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술에 관한 한 지조가 없어서 술의 맑고 흐림을 가리지 않아 다른 술도 마셨지만 마시지 않았다고 치고, 오직 소주만 세서 일년에 350병에서 400병(까지 가지는 못한다)을 비우는 인간이니 알코올 의존증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어쩌나, 알코올 의존증을 떨치지 못하는 인간들이 가장 바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술 좀 안 마실 수 있게 되는 일인 것을. 근데 그게 안 되는 안타까움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술은 중독성이 있는 담배와 같아서, 마약이나 기타 향정신성 물질은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모든 중독성 물질과 같이 결코, 점점 섭취를 줄이는 방식으로는 절대 끊을 수 없다. 한 번에 딱, 자기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애먼 말의 모가지를 내리쳤던 김유신처럼 단칼에 끊는 수밖에 없다. 내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나를 비롯해 담배를 끊은 인간은 숱하게 많아도 술을 끊은 독한 사람은 딱 한 명 밖에 없다. 그만큼 술을 끊는 건 어려운 일. 담배는 의사가 “당신 담배 계속 피우면 1년 안에 죽어.”라고 말하면 열 명 가운데 한 명 빼고 다 끊는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여보, 의사 선생, 그냥 피우다가 죽을 게, 라고 했고, 정말로 죽을 때까지 담배를 즐기다 간 사람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 밖에 못봤다. 그러나 술은 더 독하다. “당신 술 계속 마시면 반 년 안에 죽어.” 해도, 영화 <바람난 가족>의 문소리 시아버지 김인문 씨 봐라, 잠깐 끊는 시늉하다가 다시 마신다. 그런데 신기하기도 하지. 실제로는 반 년 안에 죽은 사람 한 명도 못 봤으니. 의사가 알코올의 해악을 강조하기 위해 반 년 운운했던 거 같다.
중증 알코올 의존을 그린 작품이 꽤 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니컬러스 케이지가 1996년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와 베네딕트 예로페예프가 쓴 소설책 <모스크바발 페투슈키 행 열차>. 다음이 요새 책방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에밀 졸라의 작품 <목로주점>에서 악당 쿠포가 벽면에 쿠션 장치가 된 정신병원의 독실에서 발광 끝에 죽어가는 너무도 리얼한 장면과 쿠포까지는 아니나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어머니. 또 약하긴 하지만 서머싯 몸의 <면도날> 뒷부분에 나오는 해변가에서 만난 소피. 그러나 역시 알코올 의존 소설의 최고는 작가 스스로가 중증 알코올 의존증 환자였던 맬컴 라우리가 쓴 <화산 아래서>를 들어야겠다.
“비극의 단어들이 자신을 관통한 총알처럼 방 안을 윙윙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산세계문학총서 107, <화산 아래서> p.500 문학과지성사. 2011)
자신을 관통한 총알마저 술에 취했는지 구심력에 이끌려 방 안에서 그냥 비척비척 술 취한 남자의 걸음 마냥 날아다니는데, 날아다니는 것처럼 감각을 하는데, 이 장면을 읽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 그러면서 아름다웠는지, 읽다가 또 술 한 병 깠지 뭔가. 그런데 정말로 <화산 아래서>를 읽으실 분을 위해 한 마디만 보태자면, 함부로 시도하지는 마시라는 것. 당신이 알코올 의존증을 경험하지 못했으면 무지하게, 무지무지하게 지루해질 확률이 겁나게 높으니까.
한스 팔라다는, 잉글랜드의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케임브리지를 수석으로 졸업한 중증 알코올 의존증 환자 맬컴 라우리와는 달리, 어려서 마차를 끄는 말한테 얼굴을 걷어 채여 죽음의 기로에 설 만한 수술을 여러 차례 받으며 마약성분이 다량 함유된 진통제를 장기 복용하는 바람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친구와 동반자살도 감행했고, 이후에 알코올, 마약, 약물에 탐닉하는 불행한 일생을 살다 간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끝내 나치 지배하의 독일에서 벗어나지 않고 버티면서 창작을 계속했던 독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알코올 의존증 환자이자 식료품 도매상 사장인 에르빈 좀머 씨가 몰락하는 소설인 <술꾼>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들 하는 모양이지만 꼭 그렇게 여길 필요는 없다. 세상에 자신의 경험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은 허구 이야기는 없으니까.
에르빈 좀머 씨가 처음부터 알코올 의존 증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작은 회사의 말단으로 근무하다가 직장에서 만난 아가씨 막다(‘마그다’라고 쓰는 게 더 좋을 거 같은데 이건 역자 마음이니까 뭐)와 사내연애를 거쳐 가난한 연인이 손가방 한 개씩만 들고 결혼해 궁핍했던 신혼시절을 헤쳐 나갔다. 이후 이들은 독립을 해 식료품 도매 회사를 차렸고, 막다가 워낙 적극적인 성격이고,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데 열성이라 금방 성공을 해 이젠 막다-에르빈 좀머 가족은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고 있다. 회사가 커지자 돈도 많이 생겨 좀머 씨는 교외에 땅을 구입하고 저택을 지어 고급 가구를 들여와 이제 막다는 저택관리와 텃밭을 가꾸면서, 닭과 오리 같은 가금을 키우는 일에 전념하며, 애초에 소극,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업을 키우는 것보다는 현상유지에 관심이 많았던 에르빈이 회사의 사장으로 어깨에 힘을 주게 되었다. 14년 동안 한 번 유산을 하고 이후에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을 빼고는 더없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했는데, 15년차에 들어서면서 불운의 손톱이 저택을 할퀴기 시작했으니, 에휴, 20세기 들어와서는 톨스토이가 틀렸다, 불행한 가정은 거의 다 비슷하게 경제적 곤란함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들 사업의 최고 아이템은 1천5백 명을 상시 수용하는 교도소에 식품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막다가 경영의 한 축을 맡을 당시엔 3년마다 입찰이 있기 바로 전에 교도소 구매 책임자와 담당자를 연달아 방문해 사업상 어려움과 교도소와의 거래가 자신들의 생존에 얼마나 간절한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곤 했는데, 세번 입찰을 성공해 9년 연속으로 거래를 하다 보니까, 에르빈 좀머 사장은 원래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구태여 그들을 찾아가기도 뭐하고 그래서 그냥 서류로 입찰에 응했다가, 장렬하게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가장 크고 중요한 고객을 잃은 식료품점은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었는데, 이 즈음에 사건은 벌어지고 만다.
이때까지 좀머 씨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할 때는 그저 맥주 한 잔. 그것도 몇 모금 깨작거리는 수준이었다. 이게 문제다.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할 때” 이게 술을 끊고자 하는 사람들을 제일 절망시키는 일이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중요한 핑계거리다. 담배는 분명히 해악인데, 술에 대하여는 너무도 관대하다. 음주운전만 빼면. 오죽하면 내가 이란으로 이민을 갈까, 하고 고민을 다 하겠는가. 술 마시다 걸리면 돌 던져 죽여버리는 이란회교공화국. 꿈의 나라.
하여간 이렇게 다른 사람들한테 공감과 존중을 받으며 근면하게 살아가던 좀머 씨에게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도 않고, 은행에서도 당연한 듯 처리해주던 어음교환도 거절당해 자존심에 크게 스크래치가 갔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을비까지 무척 내리던 거였다. 저택이 도시 외곽에 있어서 포장이 되지 않아 신발이 진흙투성이가 되어 집에 도착하니, 글쎄 현관 앞에 신발 털이개가 깔려 있지 않은 거다. 현관을 열어 아내를 불러도, 막다, 막다, 어이 막다!, 아무런 대답도 없고 불도 꺼져 있어서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은 연두색의 비싼 카펫에 진흙이 묻고 말았으며, 신발을 벗다가 손에서 놓치는 바람에 커다락 얼룩이 지고 말았고, 때를 맞춰 지하 음식창고에서 올라온 막다에게 온갖 지질한 짜증을 부려, 결혼 15년차 들어 일용할 양식이 되어온 심한 언쟁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강상태가 오고, 갑자기 안 하던 생각이 나서 지하실에 직접 내려간 좀머 씨가 벌써 몇 년 전에 선물 받아 아직 개봉하지 않은 레드 와인을 가져와서 부부간에 한 잔 씩 하니까 분위기도 풀리고, 기분도 좋아져, 회사 사정을 감안하면 턱도 없는 돈 백 마르크를 아내한테 건네면서 사고 싶은 거 마음대로 사라고 허풍까지 떨었다.
이게 사달이 난다. 안 하던 짓 하면 일이 커진다. 한 번 술맛을 본 좀머씨는 회사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아내 막다를 다시 회사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걸 번히 알지만 그러면 사장이자 남편으로의 가오에 금이 가는 관계로 고민만 하다가, 시 외곽으로 산책하러 나간 길에 들른 카페에서 그만 화주, 옥수수 위스키를 몇 잔 마시면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알코올의 송곳니에 물려 가장 처절한 몰락의 길로 급속하게 빨려들어간다.
알코올 의존은 결국 몰락을 한다는 결론, 이건 책을 읽기도 전에 독자 누구나 알고 있지만, 한스 팔라다는, 나도 아직 약한 증상이긴 하지만 의존증이 있는 입장에서 읽을 때, 너무도 잔혹하게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간다. 물론 가장 책임이 많은, 아니지, 모든 책임은 선했던 식료품 도매회사 사장 에르빈 좀머가 져야 하지만 얼마나 혹독하게 그를 궤멸의 골짜기로 몰아넣는지 등골이 다 시릴 정도다. 가차없는 문장과 묘사로, 세상에나 꼭 좀머 씨를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 남의 일이 아니라서 무지하게 힘들었다. 차라리 나중에 비쩍 마르고 키만 멀끔하게 큰 노인, “좀머 씨”로 만들어 하루종일, 일년 열두달 쉬지 않고 지팡이 하나를 짚고 뚜벅뚜벅 빠른 걸음으로 여기저기 걷다가 나중엔 조용한 호수의 중심으로 걸어가게 만들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