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연극과인간 중국현대희곡총서 31
천스안 지음, 김우석 옮김 / 연극과인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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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에 북경에서 태어나 시인, 소설가, 극작가, 연출가, 역자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중국 신세대 예술인. 다섯 권의 단편소설집을 출간했고, 다양한 극작품을 쓰고 연출했다. 극본 리딩 공연인 “외침(聲囂: 소리와 분노) 연극제”의 발기인이며 예술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출처:천쓰안 홈페이지)

 

천쓰안陳思安


  표지를 열면 속지에 제목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가 쓰여 있고 줄을 바꿔 영어로 괄호치고 (Be seen)이라 했는데, “Be seen”이 영어제목이란 뜻인가 싶기도 하다. “보이라” 또는 “드러내라” "알리라." 그런데 굳이 적극적으로 보이거나 드러낼 것까지는 아닌 수준으로. 다른 말로 할 수도 있겠다. “숨기지 마라”나 “감추지 마라”. 무엇을? 자신이 장애가 있고 그래서 비장애인과 다르다는 것을. 속지 아래 작은 글씨로 또 이렇게 밝혔다.

  모노드라마 / 실화를 기반으로 함

  역자 해설에 의하면, 2022년에 연극제작자 션루쥔이 우연히 장애인 인플루언서 자오홍청(趙紅程)의 다큐멘터리를 본다. 자오는 ‘착한 누이 훌륭한 청즈(程子)’라는 이름으로 동영상 플랫폼에서 활동하며 장애인인 자신의 “연애와 결혼, 일과 학업 등에 관한 영상을 소개하며 웨이보에 32만, 빌리빌리에 9만의 팔로워를 보유한 성공적인 인플루언서”라 한다. 연극 제작자이니까 션루쥔은 당연히 유명 장애인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재창조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는 이 뜻을 자오홍청에게 전했고, 토의 끝에 자오홍청 본인이 직접 무대에 올라 자신의 이야기를 모노드라마로 공연하기로 엄지손가락에 인주 묻혀 계약서 서명란에 꾹 눌렀다.

  그리하여 중국에서 “청년 예술가” 그룹의 뛰어난 일원인 천쓰안에게 희곡을 위탁했고, 천쓰안은 자오홍청과의 인터뷰를 거쳐 그것을 토대로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만들었다. 천쓰안이 좋은 소설가이기도 한 것이, 모노드라마 대본만 읽으면서도 매우 좋은 문장을 사용한다는 것을, 별로 좋지 않은 감식안을 가지고 있는 독자도 알아차릴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 같다. 게다가 극작, 연출가를 겸하고 있으니 사실 애초 최상의 조건을 지닌 인터뷰어였을 터. 천쓰안은 오직 자오홍청을 위한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 내용마저 자오홍청이 나고, 한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쓰지 못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똑바로 서고, 걷고, 뛰고, 산에도 오르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진 고통을 수반하는 척추만곡과 다리교정 수술을 받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휠체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것을 이해하는 과정. 이 속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운 좋게 회사에 취직을 하고, 직장에서 만난 연인과 함께 살며, 놀랍게도 섹스도 즐기면서, 이제 세상 속에서, 비록 여러가지로 불편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세상을 향해, 나는 이렇다, 스스로 드러내는 장, 그게 연극의 무대가 될 수도 있고, 강연회의 연단이 될 수도 있는데, 장소야 아무러면 어떤가, 하여간 단 위에서 자오홍청, 그저 한 장애인이 세상의 모든 장애인이 하고 싶은 말, 당신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장애인이 하고 싶은 말을 드러내는(Be seen) 작업이다.


  첫 장면은 자오홍청, 청즈程子가 강연회장으로 간다. 휠체어를 타고 가니 아무래도 교통 시간이 많이 걸리는 교통약자일 수밖에. 그래서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출발한다. 청즈가 타고다니는 휠체어는 시속 25킬로미터로 여덟 시간을 연속으로 달릴 수 있는 최신형이다. 즉 2백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마라톤 선수보다 훨씬 빨리 주파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거대 도시에서는 시간 안에 고층 건물 속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집을 나선다. 인도를 지나 지하철역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3호선에서 7호선으로 환승한다. 역에서 나가는 장애인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상으로 올라가 바글바글한 인파를 뚫고 행사가 열리는 건물에 도착하는 것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이제 문제가 시작된다.

  건물의 일반 엘리베이터 타는 일. 청즈의 다리는 상당히 가늘다.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아 근육을 하도 많이 상실해서 그렇다. 엄마는 이걸 가리기 위하여 늘 바지만 입혔지만, 머리 커지고, 직장에 다니며 독립한 다음에 친구 룰루가 거의 강요하다시피 해서 치마를 입기 시작했는데, 정작 입어보니 신세계였다. 특히 방광을 비우는 일이 훨씬 간단해졌다. 여름엔 훨씬 시원했으며 보기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로 여성스럽다.

  그건 그거고 빌딩의 엘리베이터 문 가까이 청즈의 휠체어가 서 있다. 20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숫자판의 숫자가 점점 작아지자 갑자기 두 발로 뛸 수 있는 사람들이 휠체어 근처로 몰려든다. 그러다 숫자가 기어이 1로 바뀌고, 문이 열리자마자 몰려온 사람들이 우르르르 네모난 상자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아직 문이 열린 상태. 조금의 공간이 있지만 전동 휠체어가 낄 공간을 부족해 보인다. 청즈는 입가에 기꺼운(듯한) 미소를 보이며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정말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이제 청즈는 자기 휠체어를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 착 붙여버린다. 잠깐 후 늘씬한 다리를 가진, 허벅지가 청즈의 눈높이 정도에 달하는 여성이 와서 서고, 그 여자가 열일곱 번이나 청즈를 내려다본다. 신경쓰지 않는 척하던 청즈가 갑자기 위를 쳐다봐 시선이 마주치니 여자는 어색한다. 어색한 김에 한 마디 한다.

  “다리가 참 가느시네요…….”

  청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로 대답한다.

  “네. 다 열심히 운동한 결과랍니다.”

  여자는 이제서야 깜짝 놀라서, 아, 하고 자기 입을 막은 채 칭즈의 다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하려고 하지만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휠체어는 금속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여자를 찾으러 두리번거리지만 여자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해서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모양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보면 더욱 친절을 베풀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싸이고는 한다.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니까. 진짜 속마음으로는 장애인들을 비하하고 열등한 인간으로 생각하는 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고, 실제로 친절하게 행동한다. 물론 대부분 친절한 행위의 근본은 장애인이 결코 받고 싶어하지 않는 동정심에서 시작하겠지만.

  그러나 청즈, 자오홍청은 결국 알아낸다. 세상에 장애라는 이름의 병은 없다는 것을.

  나는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거야.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불행해지는 것 말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차린다. 장애인의 병은 장애가 아니라 “마음에 박혀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나의 피와 살을 빨아먹으면서 조금씩 자라나”는 의식이었다. 이것을 몸 속에서 끝까지 철저하게 뽑아내지 않는다면 장애를 극복해 일어날 수 있든 없든, 영원히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는 병이란다.


  위에 쓴 것 말고도 장애인과 장애에 관하여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장애인이 아니라면 입에 올리기 쉽지 않고, 여차 조금이라도 핀트가 다른 곳으로 박히면 심란한 비난을 각오해야 할 것들을 자오홍청은 천쓰홍의 글을 빌려 자근자근하게 그러나 심각하게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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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28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열심히 사는 사람 같네요. 팔뚝에 문신도 세기고. 젊은 사람답네요.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자연스럽게 융화하면 좋을텐데 말이죠...

Falstaff 2024-11-28 15:27   좋아요 1 | URL
표정도 강단있을 거 같습니다. 모든 갈등이 전부 융화되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비관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서리 영.....
 
서머타임 J. M. 쿳시 자전소설 3부작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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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존 쿳시의 자전소설 3부작”


  출판사 문학동네가 내놓는 광고 포인트다. “자전소설.” 소설가가 자신의 자서전을 소설 형식으로 쓴 글을 일컫는 말. 여기서 우리가 더 무게를 두어야 할 점은 “자전”보다 “소설”, 즉 허구, 있을 법해서 타당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되어야 하리라. 이 자전소설 3부작은 <소년 시절>, <청년 시절> 그리고 <서머타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는 앞선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은 읽지 않았다. 자전이라고 하면 이제 세상을 거의 살아 자신의 생을 돌아본 작품이어야 할 터이지만 <서머타임>의 주요 시간적 공간은 1972년부터 75년, 넓게 봐도 1970년대, 존 맥스웰의 삼십대 시절이다.

  1940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변호사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네덜란드 이민자와 폴란드계 독일 이민자 사이에서 태어났고, 2차세계대전 당시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복무한 적이 있으며, 남동생도 하나 있다는 것도 다 자전소설의 내용과 같다. 실생활이 <서머타임>의 내용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쿳시는 1963년에 스물세 살 때 결혼해 66년과 68년에 아들과 딸을 낳고, 1980년에 이혼했지만, 작품 속에서는 내놓고 단정한 바는 없으나 누가 보더라도 변호사 하다가 자격증 박탈당한 아버지와 함께 꾀죄죄한 농가에서 사는 괴팍한 독신남이다. 그러니 애초에 이 책이 진짜 쿳시의 자전소설이라고 오해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이렇게 내놓고 거짓말하는 것이 작가의 권리이기도 하니 뭐라고 하지도 말자.


  쿳시는 이 책, 2009년 작품에서 본인 J.M. 쿳시는 2009년에 죽었고, 이 “위대한 작가” 적어도 “유명한 작가”를 연구하는 빈센트 씨가 1972년부터 75년까지, 쿳시가 <어둠의 땅>을 출간하여 작가로 이름을 낼 무렵, 미국에서 전과자 신분으로 돌아온 (남아공 사람들이 보기엔) 돌이킬 수 없는 루저 시절의 쿳시에 관한 책을 쓰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빈센트는 당시 독신남 쿳시와 혼외 관계였던 줄리아, 훈훈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촌누이 마르곳, 고등학교 방과후 교사시절 학부모 아드리아나, 케이프타운 대학 영문과 교수자리에 쿳시와 함께 지원하여 면접을 보아 친분을 쌓은 마틴, 1976년경 잠깐 관계를 맺었던 소피와 각각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다시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고 파리에서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이 책 <서머타임>이다. 당연히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 30대 시절을 돌아보며 시절을 스스로 윤색한 내용이지.

  이 책을 집필하던 시기 쿳시의 나이 예순아홉. 10년 전에 부커상을, 6년 전 10월에 이미 노벨문학상을 받아 쿳시의 이름이 전세계에 떠르르했던 시기. 아프리카에 사는 유럽계 백인, 소위 아프리카너들의 일원처럼 진정한 아프리카 사람이라 인식한 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쿳시는 이미 오스트레일리아로 이민을 했고, 채식주의를 시작해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도 출간했다. 자전소설 3부작이 될 <소년 시절>은 12년 전에, <청년 시절>도 7년 전인 2002년에 발표했다.

  독후감이 왜 이렇게 삐딱한 지는 아시지? 나는 늙은 작가가 자기를 되돌아보며 지난 시절의 자신을 변호하거나 변명하는 걸 좋게 보지 않는다. 그냥 죽을 것이지 무슨 미련이 있어 당시에는 이랬느니, 저랬느니. 좀 궁상맞아 보이지 않나?


  그래서 <서머타임> 속에서 J.M. 쿳시는 기회가 날 때마다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은 온전히 쿳시에 의하여 쓰였고, 등장인물 모두 쿳시가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등장인물의 대사 속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으니까. 가령:


  “내가 가장 바라는 게 뭔지 알아요? 우리가 사후에, 각자 잘못한 이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갖는 거예요. 난 사과할 게 정말 많아요.” (p.78)


  젊은 날의 쿳시와 간통행각을 벌이던 시기에 관해 인터뷰를 하던 줄리아가 인터뷰어 빈센트에게 한 말이다.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 아냐? 그냥 잘못한 사람들에 관한 미안함을 품은 채 묻히면 되는 것이지 굳이 이렇게 글로 써서 세계만방에 고하느냐고. 물론 이런 작가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나는 왜 이걸 견디지 못할까, 또는 우습게 알까?

  브라질 사람으로 앙골라 루안다에서 살다가 난민으로 남아프리카에 와서 과부가 된 아드리아나의 입을 통해 쿳시는 자신을 평한다.


  “그가 정말로 위대한 작가인가요? 내 생각에는 위대한 작가가 되려면 (중략) 위대한 사람이 되어야죠. 그런데 그는 위대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작은 사람이었어요. 중요하지 않고 작은 사람이었어요.” (p.306)


  이것 참 묘하게 읽힌다. 적어도 작가로는 자신이 위대한 작가였다고? 설마 아니겠지. 또는, 작가로의 평판에 미치지 못하는 인간 쿳시에 관한 변명으로 읽을 수도 있고.

  쿳시가 미국에서 강사 비슷하게 있다가 68운동과 1970년 뉴욕주립대에서 있었던 교수 난입사건에 연루되어 비자를 갱신하지 못하고 처자식들과 함께 남아공으로 돌아온 후에 곤궁한 생활을 했던 건 잡아낼 수 있겠다. 이때 가족들은 쿳시 가문의 농장에서 가까운 곳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사정을 보면 차로 한 여덟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거 같다. 쿳시는 케이프에서 아버지와 함께 낡은 농가주택에서 살고. 흠. 그러니까 줄리아하고는 유부남녀들 간의 치정 간통 사이였던 건 맞겠네. 작품 속에서는 독신남과 유부녀로 분식을 하고. 좀 치사하지 않나? 같은 픽션이라면 자신을 유부남, 줄리아를 독신녀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이 어떻게 하면 젊은 시절의 과오와 자신이 미안해 할 수밖에 없는 광경에 대한 변명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는 거다.

  좋아, 좋아. 다 그런 거지 뭐. 이왕 줄리아와의 간통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이들의 침대에서 있던 웃긴 일이 있어 소개한다. 역시 간통중인 줄리아의 남편 마크가 더반에 사는 불륜녀와 함께 공무를 빙자한 여행을 떠난 시기에 쿳시를 안방 침대에 초대한다. 이미 상습적으로 혼인의 침대를 점령해온 쿳시는 이날 엉뚱하게 슈베르트의 현악오중주 D.956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들고 와서 플레이를 시킨 다음에 전희도 없이 그냥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2악장 아다지오에 집중해보라고. 이 음악 자체가 섹스라고 중얼거리며 나름대로 열심이었는데, 문제는 줄리아.


  “멍청이가 아닌 바에야 누가 사랑에 빠져 있는 여자한테 죽은 작곡가에게서, 빈의 바가텔렌마이스터에게서 섹스에 관해 배우라고 주문하겠어요? (중략) 그는 침실로 제3의 존재를 끌고 들어와요. 프란츠 슈베르트가 서열 1위, 사랑의 거장이 되죠. 존은 서열 2위, 거장의 제자이자 실행자가 되죠. 그리고 나는 서열 3위. 섹스-음악을 연주하는 악기가 되죠. 내 생각에 이것이 존 쿳시에 대해 당신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걸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p.130~131)


  그것 참.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노트북 메모리에 슈베르트의 D.956이 저장되어 있다. 전곡 연주하는데 50분 가까이 드는 긴 곡으로 자주는 아니지만 걸으면서 간혹 듣는 곡이다. 근데 이게, 이 중에서 아다지오 악장을 통해 섹스를 배울 수 있다고? 아니고, 왜 이런 훌륭한 정보를 일찍 알지 못했을꼬?

  굳이 믿을 필요는 없겠지. 슈베르트는 결코 바가텔렌마이스터, 소품이나 작곡하는 소품 거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내악곡을 어떻게 하면 대편성에 버금가게 큰 규모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젊은이였지. 근데 한 번 생각해보시라. 환장한다. 나른하게 느린 아다지오를 틀어놓고 전희도 없이 기어 올라가더니, 음악에 집중해봐, 헥헥, 섹스를 배울 수 있을 거야, 헥헥, 하는 벌거벗은 남자를. 쿳시가 이랬단다. 영낙없는 왕재수 아냐?


  쿳시의 자전소설을 믿을 필요 없다. 그는 천생 픽셔니어fictioneer다. 자신의 일기나 메모에서조차 객관적 진실이 아닌 픽션을 쓰는 작가, 거짓말쟁이. 그런 운명, 별자리를 타고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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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27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쿳시의 추락, 페테르부르크의 거장 등 여러 권 읽었고, 나름 좋았는데, 갑자기 정떨어지네요. ㅠ
불쌍한 슈베르트 !

Falstaff 2024-11-27 16:29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추락>부터 쿳시를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하여튼 뭔가가 캥키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쿳시를 만족한 상태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겨본 적이 없답니다. 거 참.
이런 게 작가-독자의 합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ㅎㅎㅎ 슈베르트. 세월이 가면 갈수록 더 좋아집니다.
 
그해 여름 끝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앤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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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인민군대에 복무하고 있던 옌롄커가 1992년에 딱 열흘 걸려 썼다고 하는 작품. 곧바로 원고를 문예지 두 곳에 투고했으나, “훌륭한 작품이지만 발표하기 어렵다.”는 회신을 받고 작가도 잊고 살았다는데, 1993년 하반기에 원고청탁을 받고 이 소설을 찾아 보냈다. 그러니까 정말 잊고 산 건 아니겠지? 이렇게 1994년에 작품은 햇빛을 받았다, 잠깐 동안은. 이 작품이 아직 영국으로부터 반환되지 않은 홍콩에서 상찬을 받자 개방개혁이 진행중이긴 하지만 여전히 왼쪽 길만 고수하던 중국 당국자로부터 “적들의 옹호”를 받는다는 이유로 책으로 출간을 금지당한다. 옌롄커의 작품 가운데 처음 금서 처분을 받았다는 것이 <그해 여름 끝>의 제일 중요한 광고 포인트. “금서”, “금지곡”. 권력으로 하여금 금지 조치를 당했다는 건 틀림없이 소비자로 하여금 상당한 추가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금지를 당했다는 거 하나로 작품 자체가 대단하게 저항문학적이라거나 높은 예술성을 가졌다는 뜻은 아니겠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만일 “금서”라는 것에 혹해 이 책을 구입해 읽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금서인지 전혀 모른 상태로, 오직 옌롄커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래 도서관 관심도서 목록에 올렸다가 옆 동네 도서관에 상호대차 서비스를 받아 읽었다.

  58년 개띠 옌롄커는 1978년에 군대에 자진 입대해 28년 동안 복무했다. 이동안 군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허난대학과 해방군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창작활동도 지속했다. 군 초년병 시절인 1979년 2월 17일 중국과 베트남이 국경에서 전쟁을 벌였다. 당시 중국은 단 1개월, 2월과 3월 사이니까 28일만에 끝난 “자위반격전쟁”에 무려 20만 대군을 쏟아 부었고, 전쟁 때마다 늘 그렇듯 군대 내외에서 참전을 독려하는 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옌롄커 역시 전투 신청서에 서명을 했지만, 전선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이후 무려 28년 동안 군인 신분을 유지했던 옌롄커 입장에서 자위반격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건 작은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그랬나, <그해 여름 끝>의 두 주인공, 허난성 동부의 허허벌판에 위치한 보병연대 3중대 중대장 자오린(趙林)과 3중대 정치지도원 가오바오신(高保新)은 같은 해에 입대해 둘 다 자위반격전쟁에 참가했다가 가오바오신은 다리에 총알 두 방을 관통시켰고, 자오린은 여전히 포탄 파편이 허리에 박혀 있다고 전제했다.


  당시 전투 중에 지도원 가오가 속한 1소대에 베트남군의 포탄이 떨어져 소대원 전부가 죽고 딱 한 명 가오만 살아 남았는데, 이때 가오를 향해 휙 날아오던 물체는 베트남군이 쏜 또다른 포탄이 아니라 포탄에 의하여 몸통에서 분리된 소대장의 머리통이었으며, 동시에 같은 소대원의 시신도 무더기로 날아와 가오를 덮쳤었다. 이를 본 지금의 중대장 자오는 순식간에 아드레날린이 대량 분비되어 가오를 살려야겠다는 난데없이 용감한 생각이 들어 빗발 같은 포탄을 무릅쓴 채 가오를 들쳐메고 복귀해 야전병원까지 데려갔다. 병원에서도 그까짓 총알 두 방 관통은 위급한 수준이 아니어서 수술 순위가 저 뒤로 쳐지자 자오는 기발한 방법으로 새치기를 해 기어이 가오가 무사하게 치료받게 만들어주었다.

  며칠 후 퇴원해 다시 복귀한 가오는 자오가 있는 중대로 편입해 함께 싸우게 되었는데, 그야말로 영웅적인 활약을 해 무공훈장을 탈 기회가 왔다. 가오는 자오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자기 대신 자오가 훈장을 받을 수 있게 배려했고, 자기는 다시 한번 또 죽자사자 총을 쏴 따로 훈장을 받았다.

  여기서 잠깐. 가오의 영웅적인 전투는 거의 틀림없이 PTSD의 일종 아니었을까? 참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가오를 향해 날아오는 소대장의 잘린 머리통. 잘린 부위에서 콸콸 쏟아져내리던 피와 뇌수와 기타 체액. 이어서 던져지던 같은 소대원의 시신들. 하여간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괜히 전적으로 믿지는 마시고. 이러니 두 사람 관계가 절친인 것은 틀림없겠지?


  이후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격지 보병 3중대의 중대장과 정치지도원으로 복무하고 있다. “양띠 해 1월초.” 이걸로 작품은 시작하니, 이게 언제야? 1979년? 아니다. 1991년을 봐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1991년 1월 초에 보병 3중대에서 총기고 관리소홀로 신형전자동 소총 한 정을 분실했고, 본적이 정저우(鄭州)인 사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시절이 여름의 끝자락이란다. 이 책이 2012년 ‘글누림’이라는 출판사에서 <여름 해가 지다>라는 제목으로 최초 번역 출간했고, 2021년 &(앤드)에서 다시 중판을 찍었는데, 여전히 1월초가 여름 끝무렵인지, 새롭게 1월이 여름 끝무렵으로 되었는지, 아니면 가끔 초현실주의적 표현을 숨기지 않는 옌롄커가 초여름의 끝무렵이지만 1월 초라고 썼는지 아마 내 궁금증을 풀어줄 이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잘못 쓸 수도 있지 뭐 이딴 걸 가지고 야단이냐고 하지 마시라. “양띠 해 1월 초”로 작품의 첫 문장을 시작하니 만일 작가가 애초에 이렇게 썼다면 무슨 함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양띠 해 1월 초는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병영에서 소총 한 정이 사라졌다면 이건 난리가 나는 거다. 총알도 한 박스 함께 없어졌으면 전쟁이라도 나는 듯하는 거다. 그리하여 지는 해를 감상하며 두 절친이 풀밭에 누워 쉬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아, 아직 사망사고 전이라서 총기 분실로만 두 장교의 복장이 터지는 순간인데, 당장 터진 사고를 무마하기 위하여 두 장교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하기를, 첫째로 현장보존, 둘째로 소문봉쇄, 마지막으로 인물분석에 이은 대화와 소통으로 순탄한 총기 회수였다. 대대장과 연대장한테 즉시 보고를 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다. 아직 시간이 있고, 토요일이라 상관들은 영외 숙소로 나가 전화보고를 해야 할 텐데, 전화선이 끊어졌으면 보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니……전화선부터 끊고 보자. 일단 이렇게 사고를 은닉하고 중대장과 지도원은 평소에 누구와 관계가 좋지 못했는지 따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 등장하는 여성. 성省내 야채회사 회계 아가씨. 미모와 대졸 학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유부남인 중대장을 연모한다. 중대장은 아내와 두 딸이 있어 자기도 싫지는 않건만 절대 엮이지 않으려 하는 관계. 이 아가씨가 총을 훔쳤을 지 몰라 다음날 해가 밝지도 않은 새벽에 자전거를 타고 아가씨 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새벽에 벌어진 자살 사고.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와 환경보호 관련 노동자인 어머니 사이의 공부 잘하는 취사병 청년이 소총의 총구를 가슴에 대고 한 발 발사, 짧고 우울한 생을 지워버렸다. 이젠 사고를 감출 도리가 없었고, 지도원이 전쟁터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을 당시, 자기 훈장을 중대장에게 양보했을 때 중대장을 했던 지금의 연대장은 두 사람을 병영의 작은 방에 일주일 동안 사실상 구금을 한다. 중대장과 지도원, 이 가운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책임을 분산해 둘 다 불이익을 받을지, 한 명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 군복을 벗고 남은 한 명은 계속 복무를 이어갈 것인가의 문제. 어느새 둘 사이의 대화는 없어졌다. 이 전에 벌써 누구의 책임이 엄중한가, 누가 제대하는 것이 덜 불행한가, 둘 사이에 누가 더 은혜를 입었는가에 대하여 한바탕 입씨름을 벌였으며, 누구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기억하시라,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맺은 막역지교 사이였다.


  《그해 여름 끝》은 중편 <그해 여름 끝>과 단편 <류향장劉鄕長>, <한쪽 팔을 잊다>가 실려 있다. <류향장>은 류劉씨 성의 향장이란 의미다. 향鄕의 상위 조직인 현縣에 새로 온 현위원회 비서에게 업무보고를 하러 고물 소형 승합차를 일컫는 빵차를 타고 가던 류 향장이,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차를 멈춰 세우고 바러우산 중턱의 춘수촌으로 가라 지시한다. 동시에 향장은 보고를 위해 준비한 자료들과 자세한 보고 내용, 수치가 적힌 공책을 전부 찢어 차창 밖으로 날려 보낸다. 딱 이래 버리니까 향장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향 부서기, 부향장, 당위원회 선전위원, 민정위원, 부민위원, 부녀위원 등이 놀랐을 터. 이걸 옌롄커는 “마치 한여름 해가 빨갛게 타고 있는 가운데 큰 눈이 휘날리고 있는 듯한 광경”이라고 썼다. 한여름에 휘날리는 큰 눈이라고. 이러니 저 위에서 내가 양띠 해 1월 초가 여름의 끝자락이라 한 옌롄커의 의도를 궁금해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 않겠나는 거다.

  자신, 류향장이 누구냐는 말이지. 일찍이 두메산골 춘수촌을 잘 살게 해서 지금은 번듯한 기와집에 한 집 건너 이층집, 게다가 서구식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 마치 그림 같은 유토피아를 만들어 놓은 업적을 이루지 않았느냐는 거다. 그러니 그깟 어린 현위원회 서기한테 늙은 자신이 직접 찾아가 업무보고를 하는 게 가히 치사하고 아니꼽지 아니한가, 라고 주장한다.

  좋다, 좋아. 거기까진 매우 좋았지만, 아뿔싸, 류향장이 춘수촌을 잘 살게 한 방법이 작가의 장편소설 <작렬지>에서 주민들이 가래침을 쏟아 뱉아 기도가 막혀 죽은 주칭팡의 외동딸 주잉이 작렬촌의 청춘 남녀들을 도시로 보내 도둑질과 몸을 판 돈으로 고향 마을에 공장을 짓고, 집을 다시 지어 번창하게 만든 이야기하고 딱 맞아 떨어진다. 복붙 그 자체. 아오, 이러면 안 되지. <작렬지>가 나중에 나온 책이리라. 그러면 작가는 서문이나 꼭지글을 붙여 이 장면은 전에 단편소설 <류향장>에서 한 번 써먹은 적이 있다고 말을 했어야지. 안 그런가? 아니라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그러면 말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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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11-25 09: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옌롄커가 백작님보다는 쪼께 형이죠? 작렬지 복붙이면 이거 걸러도 되나요? ㅎㅎ 군대가 예술가한테는 참 그지같은데 (지드래곤 정신병자 폐인 만들어 뱉는 조직...) 글쓰는 이들한테는 군대소설도 줄줄 나오게 허규 쓸모가 있긴 하네요...

Falstaff 2024-11-25 15:53   좋아요 2 | URL
중편, 단편, 단편... 이렇게 세 개가 있는데 단편 하나 <류향장>이 복붙이다... 뭐 이런 얘기였습니다.
ㅎㅎㅎ 그리고 옌이 저보다 쫌 형인 거 맞는데요, 진짜 형은 먼저 죽는 인간이라 하더라고요. 죽었는데, 지가 와서 절 안 하느냐는 겁지요. ㅋㅋㅋ
군대 얘기는 (쇤네, 육군 헌병 만기 병장 제대).... 아오, 저하고는 맞지 않아서 걍 패스!

stella.K 2024-11-25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이 좋네요. 근데 이 작품을 열흘에 썼다니. 이 작가 천재네요.

Falstaff 2024-11-25 15:51   좋아요 1 | URL
천재까지야 뭐... 진정한 천재가 누구냐? 혹자는 조르쥬 비제라고 주장합니다만, 저는 모차르트 이후에 우리 질투의 하느님이 허락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_-;;;
 
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 - 막북 초원에 고립된 위구르의 발전 모색 유목제국사
정재훈 지음 / 사계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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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솔직한 이유는, 에드위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의 마지막 부분, 동로마제국마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하여 멸망하는 장면이었다. 오스만 투르크. 이제 마지막 한 방이면 위대한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쪼개놓을 찰라, 난데없이 몽고군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 영광의 시기를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민족. 튀르키예의 조상들은 로마사를 읽으면서도 갑자기 튀어나왔다. 로마 제국사에서 로마의 가장 큰 적수는 제국 초기엔 라인강변 주변의 갈리아족과 게르만족, 중기에는 골족과 고트족, 서로마가 망한 이후에는 페르시아였다. 역사가의 서술에 황제가 직접 적군의 창이나 칼에 맞아 전장에서 목숨을 다했던 건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있었을 뿐이다. 제국사 내내 거의 이름을 내지 않았다가 난데없이 등장해 기어이 동로마제국의 숨통을 끊어놓은 오스만 투르크, 투르크 족. 이들은 15세기까지 지금의 튀르키예 동쪽 황야지대에서 유목을 하던 투르크 사람들을 조상으로 한단다. 이 투르크 족은 유라시아 대륙의 저 동쪽 다싱안링(대흥안령)산맥부터 고비사막의 북쪽을 따라 서쪽의 알타이 산맥까지를 일컫는 막북 지역에 거쳐했던 다양한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흉노, 돌궐, 위구르처럼 하나의 제국을 건설하지는 않았고, 각 유목 제국의 일원에 포함되어 생활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3세기를 전후해 몽골이라는 거대국가에 밀려 위구르 시대에 이미 ‘튀르키’라는 부족을 이루어 서쪽으로 밀리고 밀리면서, 대륙을 횡단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과의 혼혈도 이루어지며 튀르키예 동쪽에 거의 최초로 정주하게 된 민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몰랐다. 여태 유럽에서는 사납기로 이름이 난 타타르 족의 한 가지로 그 지역에서 유목을 하고 있었는 줄 알았을 뿐. 그러다가 다른 소소한 민족처럼 훈족이나 몽고족에 의하여 밀리고 밀리다 결국 서방에 압력을 가해 발칸쪽으로 옮겨 동로마제국과 국경을 맞닿게 된 것쯤인 줄 알았다. 여기서 궁금증을 조금, 많이도 아니고 조금 풀어볼 셈으로 <위구르 유목 제국사>를 읽기로 했던 것.

  또한 가지가 현대 중국의 큰 골치거리 가운데 하나인 신장∙위구르 지역에 관한 것. 내가 알기로는 티벳 고원을 장악했던 토번 족이 세력을 떨친 신장하고, 고비 사막 이북, 윈깡 동쪽을 장악한 위구르. 이게 연결이 잘 안 되더라는 것. 토번과 위구르를 알기 쉽게 말해 견원지간이라고 알고 있었다. 근데 그들이 언제 신장 지역에 합류해서 뜻을 합해 신장 위구르의 자치 독립을 주장하게 되었는지,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이건 이 책 <위구르 유목 제국사>가 다루는 744~840년까지의 연구에서는 밝히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미는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혹시 했다가 역시 했지만.


  흉노와 말갈, 위구르 등 유목민족은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먹고 살 것이 부족했다.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건 유목의 대상인 가축과 가축들이 줄 수 있는 몇 가지, 그리고 거의 바랄 수 없을 정도의 수렵과 채집뿐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거친 땅에서 나오는 양질의 철, 즉 만들어봤자 쓸모도 없는 농기구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칼과 창과 화살촉을 만들 수 있는 철. 두고두고, 천 년을 넘는 동안 세상 어느 인종도 넘볼 수 없는 전쟁기술인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백발백중의 실력은 인구 수보다 더 많은 말과 좋은 철로 만든 화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먹고 살기 팍팍하고, 입을 것도 없고, 누릴 것도 없다. 이래서 그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심정으로 물자가 풍부하다못해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 그러다가 자신들도 조금 누려보려고. 나중엔 최고급의 중국산물(비단이나 차, 도기, 장신구 같은 사치품)을 노략질하거나 자기들 말과 교환해 오아시스 지역의 나라들에 내다 팔아 자기들의 부를 키워보려고.

  사람이란 다 마찬가지다. 아예 해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우연이라도, 한 번 제대로 된 밥상을 경험해보면 그걸 한 번 더 받아보고 싶고, 어느 집에 불을 싸질러 옥가락지를 하나 뺏아 손가락에 끼워봤으면 두 손가락, 다른 손의 손가락에도 끼워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게다가 기동력있게 타고 다닐 말도 있지, 스나이퍼를 능가하는 활도 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애초에, 자기들 기준에 북쪽에 크고 긴 성을 지어 오랑캐 유목 민족들이 담을 넘어오지 못하게 인프라 건설에 힘을 쏟은 진나라 시황 때부터 중국인들은 벌판에서 오직 싸움만 가지고는 이들을 방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이 즐겨 쓴 방법이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하여금 지들끼리 대가리 터지게 만드는 전술이었다. 정말 다싱안링 산맥부터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까지 진출했던 돌궐도 세가 줄어들자 당나라 조정은 이를 이용해 위구르를 견제했고, 돌궐이 시새푸새해지니 돌궐 대신 토번을 이용해, 토번과 위구르한테, 너네 쟤네하고 싸우면 이겨? 열심히 이간질을 해왔던 거다. 중국도 다 자기들 살기 위해서.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중원과 에그머니, 낙양, 그리고 궁전이 있는 장안까지 점령당하자 당현종은 꽁무니를 빼고 그 자리에 앉은 숙종이 한 일은, 북쪽을 향해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고 위구르 군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안녹산, 안사도 원래 돌궐족, 오랑캐 출신으로 당나라에 와 운이 좋아 현종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더니 허파에 바람이 들기 시작, 그깟 황제, 나도 한 번 해보자, 칭제를 해 나라를 세워 연燕이라 했다. 그러니 안사의 난으로 죽어나간 건 애먼 당나라 사람들이었으나 정작 쌈질은 돌궐+소그드족과 위구르족이 주로 담당했던 거다. 이 한 방으로 사실 당은 제대로 맛이 가서 점점 쇠망의 길로 접어든다.


  부록을 빼면 360쪽. 이 분량으로 아무리 96년사에 불과한 짧은 역사를 기록한 것이지만 위구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뿌듯해지기는 힘들 듯. 근데 그건 이 책을 쓴 사학자 정재훈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워낙 부실한 기록밖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유목지역이 워낙 넓고, 인구밀도가 낮고, 종족들이 많아 그만큼 다툼과 파괴가 잦았기 때문에 그나마 기록이 된 것들도 다른 어느 곳보다 결정적인 망실이 많았을 것이다. 유물들의 보존도 그만큼 힘들었으며, 사람 손이 닫지 않는 유적은 그만큼 빨리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자연의 힘이라 변변한 유적 하나 없는 역사학의 황무지가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앞뒤에 펼쳐진 거대한 초원지대. 그리하여 남은 역사 자료라 함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에 의하여 기록된 문서일 터이고, 당연히 역사는 기록한 자들의 편집이라, 중국인의 눈, 중국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 것. 이제 벌판에 묻힌 비석 몇 개에 풍화된 채 남겨진 비석문으로 중화의 서고를 채운 자료를 최대로 반박하며 새롭게 쓰는 역사라는 아쉬움을 모른 척하는 것도 야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구르 유목 제국사>를 읽은 다음에는, 역사책 한 권을 끝냈다는 뿌듯함이 들지 않는다. 처음으로 읽는 유목 제국사이긴 하지만, 짧은 역사이기 때문에 위구르의 스토리가 다양하지 못해 그런 측면도 있겠고, 당연히 있었겠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위구르 문화 역시 유물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며, 사용하는 문자는 있었으되 이들의 생활이나 사상을 기록할 만큼 다양하지 않아 그저 흘러가 잊힌 민족.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사이에서 휘리릭 사라진 하자르 족처럼, 분명 있기는 했지만 남기지 못한 제국을 찾는 일, 결과물을 읽는 것. 어째 좀 짠하다.

  중국인들, 당이나 명의 눈에 위구르와 마찬가지로 오랑캐夷로 불린 우리는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은 내가 낼 수 있는 답은, 정주민이었기 때문에. 즉 스스로 먹고 마시고 기록하고 즐기고, 위계 세우고 문화를 만드는 독자생존이 가능해 국경을 넘어 중국까지 들어가 약탈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 중국에 새로운 왕조가 생길 때마다 우리에게 보낸 의심은, 저것들이 다른 세력과 연계해 우리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지 결코 우리가 독자적으로 침략하리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태종과 고종이 대를 이어 그리도 죽자사자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유가, 걔네들은 내버려두면 여진이나 말갈, 몽고처럼 쳐들어올 거 같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하여간 역사만큼 야박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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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1-2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옌롄커, 《그해 여름 끝》
화요일. J.M. 쿳시, <서머타임>
목요일. 천쓰안,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금요일. 김혜진, 《축복을 비는 마음》

자목련 2024-11-22 09:35   좋아요 1 | URL
김혜진의 단편집이 반갑습니다^^

Falstaff 2024-11-22 10:13   좋아요 0 | URL
아휴, 괜찮았습니다. 삼십대 후반에 쓴 작품집인데 솜씨가 만만치 않더군요. ^^

꼬마요정 2024-11-22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넓은 초원을 누빈 대신 자신들의 기록을 잃었군요. 역사는 너무 야박합니다ㅜㅜ

Falstaff 2024-11-22 10:14   좋아요 1 | URL
넵. 그저 짠하지요. 중국 변방에서 살아남은 우리가 대단합니다.

yamoo 2024-11-2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민에 보는 뽈님의 역사서 리뷰!!

Falstaff 2024-11-22 16: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정말 역사 책은 오랜만입니다.
 
시골 소녀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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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올해 여름에 93세 7개월 12일을 살다가 런던에서 생을 멈춘 조세핀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 작가로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유럽 각지에서 이름을 낸 소설가였던 모양인데, 나는 이름도 몰랐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에세’ 시리즈에서 이런 작가,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 독자 입장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이 시리즈의 18번으로, 열여덟 권 모두 여성 소설가가 쓴 작품으로 구성했다. 여성작가 시리즈가 이것 말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작품만 소개하면 되지 굳이 여성작가만 대상으로 하는 것에 불만이 생길 즈음, 은행나무는 드디어 에세 시리즈의 19번에서 처음으로 제럴드 머네인의 <평원>, 150쪽에 불과한 중편 정도의 소설을 찍어, 다음 달에 읽을 예정이다. 괜찮다고 여기는 작가 구성이 남자 한 명에 여자 18명 정도 되는 모양이다. 문학은 여성시대로 오래전에 완전히 바뀌었다. 1번으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었고, 2번부터 한 권도 빼지 않고 집중하고 있다. 좋은 책만 찍어라, 읽는 건 내가 한다. 별로 소용은 없겠지만 광고와 영업도 해준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소설 말고도 회고록, 극작, 시, 단편소설도 썼다고 하는데, 하여간 전업작가로 2019년까지, 그러니까 88세에 낸 마지막 장편소설 <소녀>까지 쉬지 않고 뭔가를 썼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1960년부터 64년까지 출간한 시골소녀 3부작, <시골 소녀들>, <외로운 소녀들>, <행복한 결혼을 한 소녀들>일 것 같다. 필립 로스는 오브라이언을 가리켜 “현재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재능있는 여성”이라고 평했다고. 로스가 이렇게 말한 것이 언제 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요즘에 이렇게 주둥이를 함부로 놀렸다가는 네가 뭔데 재능이 있고 아니고, 여성이고 남성이고를 말하느냐고 경향각지를 막론하고 오지게 얻어 터졌을 듯하다. 안 그랴? “가장 재능있는 여성” 속에 은근히 여자가 이 정도면 잘 쓴다고 해줄께, 뭐 이 비슷한 뉘앙스가 보이는 거 같아서 그렇다. 내가 여자라면 로스의 말이 달갑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아일랜드의 대통령이었던 매리 로빈슨은 “그녀 세대의 가장 위대한 창의적인 작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매리 로빈슨은 여성 대통령이었다. 성을 불문하고 오브라이언이 창의적인 작가라고 칭찬한 것이니 얼마나 깔끔하느냐는 것이지. 필립 로스가 좀 그래. 예쁘장한 여자 제자를 뒷말 나오지 않게 자빠뜨릴 생각 하는 늙은 것들이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말이지.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완전 아일랜드 혈통(뭐 이런 혈통이란 게 있기는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으로 어린 시절에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를 다니며 천주교에 깊은 영향을 받은 초년시절을 지냈다. 1930년생이니 이이의 작품 속 소녀시절은 주로 1940년대 중후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시 천주교 아일랜드는 1960년대 우리나라의 의식하고 많이 다르지 않았다고 여기면 될 듯하다. 그중에서도 시골이면 완고함, 특히 여성의 규범, 특히 성과 몸가짐에 관한 사회와 가정의 압제와 강요는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1960년이 되면 많이 나아지기는 했을지언정 그렇다고 여성이 대놓고 자신의 성적 욕망과 흥분상태를 묘사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않았다고 한다. 18세를 넘어 이제 사회에서 확실한 성인으로 인정받아 음주와 흡연, 섹스를 포함한 연애의 자유를 얻었어도 임신과 피임에 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 연인이 더블린발 런던행 비행기를 타도 시간을 달리 해 각자 출발해야 하던 때였다.


  이 시기에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열네 살 먹은 사춘기 소녀가, 작품에서는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는데, 초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곧 본격적인 사춘기로 접어들었을 정도의 화자 ‘나’ 캐슬린, 애칭 ‘도티’와, 제목이 시골 소녀”들”이어서 이미 알 것 다 알 거 같고 가까이 사는 이웃집 동급생 브리짓, 애칭 ‘바바’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이들 가운데 특히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도티가 몸 속의 성적인 발현이랄까 끌림 혹은 열정을 고스란히 표현하여, 1960년대 초의 아일랜드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시골 소녀들>은 가톨릭 교회와 정부와 문화계 저명인사들로 하여금 대단히 열을 받게 했으며, 당장 금서로 지정된 건 물론이고, 분서갱유의 변까지 당했다고 하나, 이건 특정 공개장소에서 불을 싸지른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말이 전해진 것이었는데 2015년 조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혀졌단다. 그렇다 해도 이게 당시의 유럽 변방, 아일랜드의 수준이었다. 어떠셔? 겁나게 웃기지?

  도대체 어떤 장면인데 그러냐고? 독자들은 작품의 시대가 1940년대임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도 16세면 결혼을 하고 17세에 아이를 낳아, 18세에 이혼해 미혼모가 되던 시절. 동네에 늙어 골골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잡화점과 술집을 하면서 돈 깨나 모아 책의 전반부에서 도티의 주정뱅이 아빠가 빚을 많이 져서 은행에 넘어간 도티네 집과 48만5천 평에 이르는 농장을 인수하는 알부자 노총각 잭 홀랜드와, 프랑스 사람으로 더블린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주말이면 이곳 시골에 와 평온한 시간을 지내는 유부남 미스터 젠틀먼, 본명 드모리에 씨. 이들은 열네 살의 도티를 절대 소녀로 보지 않고 신붓감으로 보거나 바람피울 내연녀의 대상으로 대한다. 둘의 공통점은 도티네 집에 비하면 엄청 돈이 많다는 거. 드모리에 씨는 진짜로 부르주아 비슷하다는 거. 도티는 어떨까? 은근히 자기 무릎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잭 홀랜드는 옷과 몸이 더러워서 싫고, 난생 처음으로 진짜 키스를 가르쳐준 미스터 젠틀먼 씨한테는 자글자글하고 간질간질하고 쪼르르한 성적 반응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젠틀먼 씨를 사랑하고, 젠틀먼 씨 역시 자기를 사랑할 것으로 믿는다. 3년, 4년이 지나면 그게 사실로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느 수준의 성적 묘사인데 그리 수모를 당하고, 엄마가 평생 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됐느냐고? 나중에, 4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에 바바와 함께 입학했다가 숨막히는 기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어 퇴학을 당하고, 나이 깨나 먹었으니 자립하기 위해 더블린에 가서, 집이 거덜이 난 도티는 잡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바바는 대학에 진학해 하숙집에서 함께 살고 있을 때, 둘은 더블린의 돈 좀 있는 유부남과 노총각을 꼬여 (주로 바바가) 이들한테, 속된 말로 줄 듯 말 듯 밀당을 즐기며 고급요리와 비싼 술을 마시며 젊음을 즐긴다. 노총각과 바바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유부남은 도티와 절대 그런 사이가 될 수 없으니, 도티의 마음에는 또다른 유부남인 미스터 젠틀먼, 드모리에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부남-점원, 노총각-여대생이 두 커플을 이루어 유부남의 집에 가서 간신히 선을 넘지 않고 스릴을 즐기고 온 날, 하숙집 앞에 검은 승용차가 서 있었고, 승용차 안에는 오랜만에 등장한 드모리에 씨가 들어 있었으니 다시 나이든, 아마 40은 당연하고 50 가까운 꼰대를 하염없이 사랑한 도티는 그만 스르르 오금에 힘이 풀렸던 거다.

  어느 정도 묘사인지 빨리 말하라고? 알았다, 알았어. 둘은, 둘만 하숙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마주보고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오늘은 정말로 할 거야, 하고 말 거야. 이러다가 드모리에 씨가 도티의 전신 나신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홀랑 벗었고, 도티 역시 나도 보고 싶어요, 요 지랄을 해 드모리에의 늙은 몸도 홀랑 벗었더니, 역시 당신 생각대로 그냥 흐물흐물 한 것이 매달려 있었는데, 도티가 만져보니까 몽글몽글한 게 귀여웠더라, 뭐 이런 수준이다. 이 정도에서 끝난다. 그걸 지칭하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1960년대면 남학교 화장실 벽엔 “어제 친구네 집에 갔었다. 마루에서 친구 누나가 치마를 입은 채 만세를 부르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집에는 친구 누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등등의 패관문학이 절정을 달했을 때인데, 이 정도 가지고 뭔 금서에, 출간금지에, 분서갱유라는 유언비어까지 떠도느냐는 것이지.


  하여간 그렇다. 내가 읽기엔 문장이 지극히 간결하고, 담백한 데다가 주인공 도티와 바바가 만드는 불량 소녀의 감정이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드는데, 한 가지가 머뭇거리게 되는 게 있다. 주로 도티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이 섬세한 간질간질, 충동,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나이 먹은 남자들의 터치를 어떤 방식으로 보아야 할지 조금 난감했던 걸 말해야겠다. 1940년대 유럽식으로 볼 것인지, 남성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성적 추행으로 봐야 할지. 지금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열네 살짜리 소녀한테 저지르는 성추행이라서 처음엔 그렇게 읽었다가, 점점, 작가 에드나 오브라이언이 남성에 의한 성추행에 관한 인식/기억이라기보다 사춘기 소녀 속에 감추어진 리비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난처했다. 어떻게 읽어야 마땅한가? 이런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는데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 난삽한 독후감을 읽는 분께서는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섣불리 말했다가는 얻어 터질 거 같고, 그냥 넘어가자니 비겁하고 찜찜할 것 같았다. 몇 방 얻어 터지는 것이 찜찜하거나 비겁한 거 보다 나을 거 같아서 굳이 말미에 꺼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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