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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상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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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의 산>을 만 16세 5개월에서 6개월 사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었다. 지금은 서경대학이 들어선 정릉의 언덕 위 하얀 집, 방학 중 보충수업이 끝나고 오직 열람실만 있던 아르센 루팡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선풍기 한 대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1970년대의 학교는 전기요금 아낀다고 형광등도 켜주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다, 밤이 내려 배가 고파질 때까지 책을 읽던 시절. 숱한 헤르만 헤세와 <개선문>과 <마의 산>과 <인간조건>과 전혜린과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빛나는 보석더미들, 삼중당 문고본.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당시에 읽은 책들은 어느새 다시 읽어야할 만큼 기억의 채도가 흐려져 거의 다 새로 읽었지만, 작품의 무게와 분량의 압박 때문에 은퇴 이후 시간이 넘쳐 흐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 <마의 산>이었다. 정년을 앞두고 제일 먼저 주문했던 책. 토마스 만의 대표작.
16세 5개월에서 6개월 사이의 나. 육십대 중늙은이인 나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떻게 이걸 읽었을까, 기어이 읽어냈을까 싶어서.
작품에 대하여 너무 오래된 기억은 이미지로만 남는다. <마의 산>에 관한 기억은 자잘한 봄꽃이 핀 들판을 청년(들)이 걷고 배경에는 마치 성처럼 선 요양원이 보인다. 문장은 딱 하나. 주인공을 일컬어 토마스 만은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라고 칭했던 것. 이미지는 혹시 마르세 파뇰의 작품 <마농의 샘> 표지 또는 삽화, 며칠 전 세상을 뜬 장 자끄 상페의 그림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이미지 기억’이란 언제든 왜곡되기 마련이니.
이번에 책을 읽으며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언제 나올까 내내 궁금했다. 작가가 직접 나서서 주인공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는 호칭을 나는 그때 처음 읽었고, 2014년 독후감을 쓰기 시작한 이후 “우리의 주인공 누구”라고 자주 이를 흉내 냈기 때문에.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는 거의 에필로그 가까이에 딱 한 번 나온다. 소년 골드문트는 책을 끝까지 읽은 것이 맞다.
긴 세월이 지나고 다시 책읽기를 시작하면서 반드시 다시 읽을 작품으로 저 삼중당 시절들을 꼽았다. 헤세의 여러 작품과 <개선문>, <인간조건>, <그리스인 조르바> 등을 읽으며 놀랐던 것은, 그냥 놀란 것이 아니라 정말 깜짝 놀랐던 일은, 책의 내용이 거의 완전하게 낯설다는 것이었다. 새 책을 읽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느낌.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기억과 연결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토마스 만은 미완성 유작이자 유일한 희극인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을 포함하더라도 딱딱하고 불친절한 독일인 그 자체다. 어머니가 비록 낭만적인 브라질 계였더라도 토마스는 아버지 쪽을 닮아 평생 내성적이고 엄격한 성격을 버리지 못했고, 이런 경향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재미없는 독일인의 전범. 반면에 친형 하인리히는 라틴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를 닮아 사고와 행동이 물론 상대적이겠지만 자유분방, 유쾌하고 활발해 토마스의 자식들마저 아버지보다 백부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시 소설가였던 형 하인리히의 대표작은 프랑스를 무대로 하는, 저 분방했던 왕비 마고와 카틀린, 메디치 가문의 후예들이 만든 바르톨로메오 축일 밤의 학살부터 부르봉 왕가의 설립까지 그린 <앙리 4세>를 꼽는다(우리나라 번역본은 절판).
토마스 만을 읽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번역해 나온 토마스 만의 모든 장편소설을 읽었는데, 이 가운데 <마의 산>이 가장 높은 벽이라고 해야 할 거 같다. 그렇다고 세계문학을 읽는 사람이 굳이 이 작품을 피할 수, 아니다, 피할 이유는 없다. 먼저 읽어보고, 읽기 쉽지 않다거나, 독자의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일단 책을 덮자.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어보면 어떻겠는가.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으면 또 덮은 채 한 번 더 시간을 보내다가 또다시 읽는다면.
이 책이 나오고 벌써 백 년이 흘렀다. 마법의 산에서 성직자 레오 나프타와 이탈리아인 인문주의자 로도비코 세템브리니가 토론하는 형이상학적 논제나, 조선 공학을 전공한 한스 카스토르프의 과학적 지식은 벌써 까맣게 구닥다리가 됐다. 우주 탄생의 비밀은 이미 벗겨졌고, 생명체의 탄생기원도 밝혀졌으며, 유전자의 발견은 생명의 연속성에 환한 조명을 비치기 시작했다. 아직도 저 은밀한 지하 특정장소에서 세계의 운명을 결정짓기 위해 복면을 쓴 단원들이 모이는 지는 몰라도, 내 주위에는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를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세상은 급하게 변했지만 텍스트는 변하지 않는다. 작가는 오직 한 시절, 자신이 경험하고 그걸 문자로 만드는 시기를 대변한다. 그리하여 <마의 산>은 당대 최고의 문제작이었겠지만 이젠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독자에게는 더 넘기 힘든 벽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조금도 걱정하지 마시라. 길고 긴 분량을 더 길게 느끼게 만드는 “독일적 담론”을 담고 있을지언정 단언하노니, 세계최고의 베스트셀러인 구약성서만큼 읽기 어렵지는 않으니까.
‘우리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다섯 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가 동생의 출산을 앞두고 급성 혈관 폐색증을 일으켜 일순간에 심정지가 발생해 세상을 떠났다. 물려받은 사업을 번창시켰던 아버지 한스 헤르만 카스토르프는 아내가 죽고 심하게 낙심해 급격하게 쇠약해지면서 사업에도 영향을 끼치더니 다음해 봄에 폐렴으로 아내의 뒤를 따랐다. 한스는 어쩔 수 없이 시의원이던 할아버지 한스 로렌츠 카스토르프 씨와 함께 살게 됐는데, 할아버지마저 일년 반이 지나 치열한 투병과 이에 따른 고통을 겪고는 대략 40만 마르크의 유산을 남긴 채 폐렴으로 천국의 안녕을 찾아 떠났다. 이후 한스는 작고한 어머니의 외삼촌인 티나펠 영사를 후견인으로 해, 안전한 채권에서 나오는 이자로 영사의 집에서 생활했으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빈혈과 부계에서 내려온 약한 폐 때문에 활동적이지 못한 소년기를 지내게 된다.
토마스 만은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를 다보스 플라츠 근방에 위치한 국제요양원 ‘베르크호프’에 부모, 형제, 친척의 별다른 간섭 없이 긴 세월을 보낸 수 있도록 이렇게 초반에 그를 완전한 외톨이로 만들어 놓았다. 단치히 공과대학, 브라운슈바이크 공과대학과 카를스루에 공과대학을 졸업하는 동안 활발하지 못한 사교생활과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성적으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한스 카스토르프는 비록 툰더 빌름스 사의 견습 엔지니어로 입사했으나 어려서부터 조혈작용에 문제가 있어 조선소에 입사하기 전 몇 주 정도 고산지대에서 요양을 하고 오라는 권유를 받는다. 그리하여 작고한 어머니의 이복언니가 낳은 아들 요하임 침센이 머물고 있는 국제요양원 베르크호프에 3주를 예정으로 머물기로 하고, 그곳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1장을 시작한다.
베르크호프 요양원의 제너럴 매니저이자 수술의 대가이며 스스로도 완치 결핵환자인 베렌스 박사는 냉소적인 사람의 표본으로 한스 카스토르프의 빈혈을 한 눈에 알아보고 야릇한 표정을 짓는다. 결국 한스는 조혈작용 증진을 위한 3주라는 짧은 시간 대신 결핵 진단을 받고 오랜 시간을 베르크호프에서 머물게 된다. 사촌 요하힘 침센은 군문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다가 난데없이 결핵 진단을 받아 함부르크에서 멀리 떨어진 스위스의 다보스까지 와 기약 없는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에 조금씩 절망하는 반면, 한스 카스토르프는 산 위의 요양원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정서에 매혹된 것일까, 독자에 따라서 기묘 하달 수 있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 한스가 느끼는 감각의 변화는 시간에 대한 것. 저지 독일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흘러가는 고원에서의 시간. 토마스 만은 요양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과 마치는 시점에 이 “시간”의 정의에 관해 많은 공을 들인다. 시간이란 것이 원래 상대적이지 않은가. 똑 같은 두 시간 40분이지만, 드라마 작가 김수현은 <아바타>를 보면서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는지, 지루해 죽을 뻔했다가 결국 졸고 만 반면, 많은 감상자들은 순식간에 후딱 시간이 가더란 소감을 냈던 것을 기억하는지.
고지에서의 시간 변화에 관한 사색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1차 세계대전의 검은 구름이 유럽을 덮기 시작한 벨 에포크 시대의 끝 무렵. 토마스 만은 이 시절을 배경으로 깔아 놓고 다양한 논제의 만찬을 차려 독자들 앞에 대령한다. 만찬을 즐기든가, 아니면 허겁지겁 퍼먹다가 체하든가, 애초에 여러가지 메뉴 가운데 먹을 만한 것들만 골라서 접시에 담든가 하는 건 완전히 독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아예 선택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어느덧 여름은 가고 있다. 이제 곧 서늘한 바람이 불면, 당신도 누구에겐 신들의 궁전인 발할이기도 하고, 누구한테는 돼지로 변하고 마는 키르케의 동굴이기도 하며, 또다른 누구에겐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연금술적 모험을 할 수 있는 한 마법의 산으로 떠나보면 어떻겠는가. 산을 오르는 일. 힘들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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