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비드 1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0
조지 엘리엇 지음, 유종인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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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려 5년에 걸쳐서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를 국내 최초로 완역한 전 한양대 영문과 교수 유종인은 책의 제일 앞에 「소개의 글」을 첨부했다. 많은 독자들이 서문 격의 글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곧바로 본문을 읽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라면 웬만하면 「소개의 글」을 먼저 읽어 두는 편이 좋겠다. 특히 나처럼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작품의 무대가 1799년 6월부터 1807년 6월까지 약 8년에 걸친 시기의 영국 중북부 농촌지역이었는데, 갓 태동한 감리교단에 의한 개혁적 사고방식과 특히 여자 설교자의 강연 등의 활동, 그리고 국교회와 감리교를 대하는 도농都農 간의 시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좋을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개의 글」 속에 스토리의 일부를 미리 짐작할 수 있기도 하지만 역자 유종인은 절묘한 트릭을 숨겨놓은 채 서문 격인 「소개의 글」을 썼다는 것만 귀띔한다.


  스토리의 80 퍼센트 이상이 펼쳐지는 농촌 헤이슬롭 마을은 사실상 대지주이자 귀족인 도니손 가문에 속한 소작농장과, 소작농장주에 고용된 인부, 마을의 각종 소상공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1799년 6월의 어느 날, 큰 규모의 소작농장을 운영하는 포이저 씨 댁 스무다섯 살 처조카이자 감리교 여자 설교사이기도 한 다이나 모리스 양이, 마을의 그린 광장에서 농촌에는 별로 많지 않은 감리교도들을 모아 놓고, 당시가 그랬듯 즐길 일이 별로 없는 시골마을 답게 많은 국교도들도 마치 무심한 척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거리낌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어 주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순백의 꽃잎에 뽀얀 색조가 살짝 가미된 하얀 꽃을 연상시키는 얼굴로 설교를 했다. 조지 엘리엇에게는 엘리자베스 에번스라는 이름의 독실한 감리교도 여자 설교사인 친척 아주머니가 있었다. 메리 보스라는 어린 미혼모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죽여 영아살해죄로 사형 선고를 받자 엘리자베스 아주머니는 감옥으로 메리를 찾아가 죄인과 함께 밤새 기도로 지새우고 형장에까지 동행했다고 한다.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다이나 모리스 양의 모델이 바로 엘리자베스 에번스다.

  또다른 주인공이자 작품의 타이틀 롤인 건장한 체격과 완력을 지닌 미남 목수 아담 비드는, 자신이 여태 모은 돈을 전부 써서 나폴레옹 전쟁에 징집당하는 것을 막아준 동생 세스가 감리교로 개종했음에도 여자 설교사에 대해 마땅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비록 인파에 섞이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대표 목수 버즈의 목공소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 먼 발치에서 다이나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이때 우연히 말을 타고 현장을 지나던 나이든 신사는, 국교도임에도 먼저 설교사 다이나의 훌륭한 연설에 깊게 공감을 하고, 많은 인파 가운데 단연 눈에 띈 건장하고 선량해 보이는 아담 비드의 모습에 경탄한다. 이 나이든 신사의 정체는 책의 가장 끝 부분에 가야 밝혀지는 바, 치안판사 코노렐 타운리였다. 당연히 타운리 판사, 다이나 모리스, 아담 비드는 판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책의 뒷부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조지 엘리엇은 자신의 아버지인 로버트 에번스를 모델로 삼아 아담 비드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 이름이 메리 앤 에번스였던 조지 엘리엇 역시 작은 농가 출신으로 완전한 독학으로 공부를 해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 이이는 거의 완벽한 남자 주인공으로 아담 비드를 만들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근육질에다가 꼿꼿한 척추를 지닌 색슨 계 6피트 키의 남자. 겨우 180cm? 18세기 말에 180이면 지금 키로 얼마나 될지 상상해보시라. 여기에 깊숙한 바리톤 목소리, 멋진 육체, 잿빛처럼 까만 머리카락, 선이 분명하고 날카로운 눈엔 북부 켈트 혈통도 좀 섞여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고 지성인다운 정직한 표정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하는 행실 하나, 하나, 똑 부러지지 않는 것이 없다. 다 늦게 야학을 다녔는데 야학의 교장 바틀 메이시 선생이 가르친 모든 학생들보다 빨리 글을 배우고 썼으며, 계산 및 응용능력을 익힌 바 있다.

  그러니까, 두 명의 여자 주인공, 두 명의 남자 주인공 가운데 딱 절반, 그것도 절대 선을 행하는 주인공들은 전부 조지 엘리엇의 집안 사람을 모델로 한 인물들이다. 감리교 여자 선교사를 지낸 엘리자베스 에번스의 아바타인 다이나 모리스와, 친아버지 로버트 에번스를 모델로 한 아담 비드. 다이나 모리스는 작품에 나오는 최고의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매력의 정도로 치자면 단연 일등이고, 아름다움 또는 예쁨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등은 헤티 소렐에게 양보하더라도 하여튼 그 다음 순번으로 거론할 수준이다. 조지 엘리엇이 <아담 비드>를 발표한 것이 1859년. 이 시절에 나온 많은 소설작품의 주인공이 대부분 선남선녀에 훌륭한 외모를 가졌지만, 엘리엇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1799년 6월에 열일곱 살이었던 다른 한 명의 여자 주인공 헤티 소렐한테 엘리엇의 최고로 아름다운 외모를 주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 무리 속에 섞여 있어도 이 한 명 때문에 주위가 다 환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 헤티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아담 비드>에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철부지일 뿐. 헤티, 헤스터 소렐이 대표적이다.

  헤티야말로 <아담 비드>, 이 19세기 신파극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더구나 헤티의 순진한 방종과 사치지향, 허튼 믿음은 신파를 흥미진진하게 몰아가기까지 한다. 정말이다. 이건 직접 읽어봐야 하는데, 이 재미있는 19세기 작품에 섣부른 스포일러가 될지도 몰라 함부로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엘리엇의 대표작인 <미들마치>에서도 비슷한 여성 로저먼드가 있으나, 적어도 로저먼드는 소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기나 하지, 헤티는 적수공권 고아인데도 그렇다는 게 문제다.

  형 아담에게 충직한 아우 세스 비드, 본인은 설교사 다이나를 사랑해 청혼까지 했다가 미역국을 먹지만, 근동에서 비할 바 없는 최고의 신랑감인 형이 제일 아름다운 소녀인 헤티와 결혼하게 될까봐 걱정을 할 정도. 다행스럽게도 헤티는 아담에게 관심이 없다. 아니, 있지만 남편으로서는 아니다. 그냥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 버리자니 아깝고 가지고 있기는 싫은 남자. 자신의 반도 따라올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쁜 축에 드는 메리 버즈 아가씨한테 아담이 에티켓 수준의 호의를 표시하는 것조차 기분이 나쁘더라도 자신을 향한 사랑은 눈곱만큼도 인정하지 않는다. 조지 엘리엇은 헤스터, 즉 헤티 소렐의 아름다운 외모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고운 건 아니다. 어떤 아름다움인지 인용해본다.


  “자, 그럼 이제 다시 그 길고 짙은 속눈썹을 바라보라. 무엇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눈들이 기만, 횡령, 그리고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 짙은 속눈썹으로 덮인 커다란 푸른 눈동자에 깊이 있는 영혼이 존재할 거라는 착각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흐리멍덩한 눈을 보면 역겹게 느껴지기에, 두 눈은 모두 결론적으로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점에서 두 눈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1권, p.269)


  천애고아로 외삼촌 댁에 얹혀 지내는 헤티는 비록 소프트 치즈를 만드는데 최고의 솜씨를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만 나면 거울 들여다보며 머리 손질하느라 바쁘고, 용돈을 모아 싸구려 장식품을 사느라 다 써버리고 만다. 아담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청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헤티 앞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스무 살의 아서 도나손, 지주 가문의 유산 상속인 손자이며 현역 대위. 한 달 여 뒤, 돌아오는 7월 30일에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아 성대한 성인식을 할 예정이며, 소작농장의 모든 사람을 초청하느라 어윈 교구 목사와 동행해 포이저 씨의 홀 팜 농장을 들러, 눈에 확 들어오게 어여쁜 헤티를 보고 자신과 두 번 춤을 추어달라고 예약을 한다. 역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스무 살 아서 도나손은 넘치는 리비도를 여태 잘 돌보며 건전하게 살아온 올바른 청년이었으나, 책 표지의 카피처럼 “봄날 같이 예쁜” 헤티를 보고도 참아야 한다고, 만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세상에 다른 건 몰라도 소설에서 그게 가능하면, 그게 소설이니?

  헤티는 진심으로 아서를 사랑하게 되고, 아서 역시 진심을 다해 자신을 사랑하는 줄 오해하여, 그에게, 지주댁 손자 나리에게, 꾸미기 좋아하는 천성을 감추지 못해, 귀금속 귀고리와 비싼 목걸이 로켓을 사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철부지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그러나 아뿔싸, 이를 계기로 헤티는 자신이 아담을 습관이나 장난처럼 사로잡고 있을 뿐, 결혼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만일 결혼하면 가난한 집에서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까지 떠맡을 수밖에 없는데 자신은 사치스러운 희망, 비단 드레스와 비싼 향수를 향유하는 꿈을 이루고 싶어, 실제로는 그럴 수 없음을 알아챌 수 있었음에도, 젊은 지주의 연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만 빠져 있게 된다.

  이렇게 비극은 시작한다.


  아직 <사일런스 마너>는 읽어보지 않아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조지 엘리엇은 작품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당시 사회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게 큰 문제이건 아니건 간에. 그러면서 역시 큰 목소리로든, 작은 목소리로든, 뭔가를 주장한다. 반유대주의를 반대하거나, 기초적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하거나, 혼인제도의 불합리성을 부각시키려 하거나, 계급의 차별에 항변하거나, 하여간 뭔가를 한다. 이게 빅토리아 시대의 다른 작가와의 차이점 같다. 이 작품도 지금 관점으로 보자면 내용이 지극히 신파적이기는 하지만 당시 계급과 대중들의 교파 주의 같은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성인 아담의 입을 통해 범죄와 처벌에 관한 진정한 책임 소재를 논의함으로써 여성주의적 시각을 발제하는 것일 터이다.

  빅토리아 시대 소설이나 조지 엘리엇의 팬이라면 딴 군말 없이 읽어야 할 작품.




* 책 표지는 작자 미상의 <나탈리아 곤차로바 푸시킨>의 초상화다. 책 속지에는 "표지: 이미지 코리아"라고만 되어 있다. 왜 나탈리아의 초상을 표지로 했을까? 얼굴이 예뻐서? 그녀의 부박함 때문에? 예쁜 얼굴의 그림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됐을 듯. 나탈리아는 천부의 외모와 바람기로 당대 러시아를 주름잡았고 언니의 남편, 프랑스군 장교 조르주 단테스와도 깊은 사이라, 이를 알게 된 작가 푸시킨이 장교 단테스와 결투를 벌여 겨우 서른일곱 살 팔 개월 만에 세상을 접게 만든 여인이다. 죽은 사람이 왜 하필이면 푸시킨인가 말이지. 그가 일흔까지 살았다면 러시아 문학, 그리고 세계의 문학이 얼마나 풍요로워졌겠는가. 예쁜 얼굴이 작품의 주인공 헤티를 연상시킬 수 있어서 나탈리아를 표지 모델로 했겠지만, 헤티는 허영기가 있기는 했어도 절대 헤픈 여성은 아니었다. 이 책이 인기 작가 조지 엘리엇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지 않는 건, 표지 디자인의 촌스러움이 크게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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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30 0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 내용도 그렇고 표지 이야기도 그렇고 흥미롭네요.^^

Falstaff 2022-08-30 09:49   좋아요 3 | URL
ㅋㅋㅋ 역시 제일 재미있는 소재는 불륜과 질투인데요, 여기에 특급 조미료가 있다면 그게 바로 또 결투 아니겠습니까. 어리석은 수컷들의 난장판.
자신의 작품 <에프게니 오네긴>에서 결투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낸 푸시킨. 아, 좀 더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심지어 자기가 결투한 장소마저 작품하고 비슷하다네요.

포스트잇 2022-08-30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철부지일뿐˝...
궁금하네요.

Falstaff 2022-08-30 11:04   좋아요 2 | URL
그러고보니 제가 읽은 조지 엘리엇에는 철부지 아름다운 아가씨가 골고루 등장하는군요. <미들마치>에선 본문에 썼듯 로저문드가 있고, <다니엘 데론다>엔 그웬덜린.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은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나지 않는군요.
저는 조지 엘리엇이 좋습니다. 로맨스에 목을 매는 동시대의 이름난 여성 작가들 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2-08-30 1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하, 진짜 이 책 궁금한데, 문트님이 말씀하신 그 표지 문제때문에 도무지 손이 안 가네요. 그리고 이 출판사에서 나온 이 시리즈 다른 책 가운데 학을 뗀 책이 있어서.... 번역 문장도 좀 의심스럽고요....

Falstaff 2022-08-30 11:17   좋아요 4 | URL
오, 이 책의 번역은 괜찮습니다. 물론 오자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독자가 허용할 정도입니다.
역자 유종인이 조금 예스러운 우리말로 번역을 했고, 기독교인인 듯 아주 상세한 성서 주석을 달아서 비기독교인이 읽기에 좀 피곤할 뿐입니다.
저는 이 시리즈를 통해 윌키 콜린스의 <흰 옷 입은 여인>을 읽고나서 긍적적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좀 그런 책도 있었던 모양이지요? 뭐가 그럴까요. ㅎㅎㅎ

잠자냥 2022-08-30 11:21   좋아요 3 | URL
다행히 문트 님은 읽으실 일 없을 것 같은 책입니다. 피츠제럴드 작품이었어요. ㅎㅎ

mini74 2022-08-30 12: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폴로스강의 물방앗간? 만 읽어봤어요. 재미있었는데~ 표지의 여인이 바로 그 유명한 푸시킨의 아내군요. ~

Falstaff 2022-08-30 16:27   좋아요 2 | URL
저도 <플로스 강....>을 제일 먼저 읽었는데요, 을매나 좋은지 단박에 조지 엘리엇의 팬이 되어버렸지 뭡니까.
이거 뭐여,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들하고 다르잖여? (팬들께는 죄송합니다.)
담부터 계속 조지 엘리엇을 따라 다녔는데, 공통점이, 책값이 만만하지 않더라고요. ㅋㅋ
 
도즈워스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0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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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 읽었다면 환장하게 재미있었겠다. 나도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는데, 이 작품 이후 루이스는 그저 그런 소설만 쓰다가 후배 미치너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과대 평가되어 있는 작가˝ 네 명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되는 영광을 누린다. 나머지 세 명이 누군고 하면, 헤밍웨이, 펄 벅, 스타인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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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27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4명 중에서는 가장 덜 유명하군요. ㅎㅎ

Falstaff 2022-08-27 21:26   좋아요 3 | URL
네 명의 공통점은, 전부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겁니다.
이이의 작품이 그래도 재미 있더라고요.

반면에 가장 위대한 미국의 소설가 네 명으로 꼽은 사람들은요,
허먼 멜빌, 스티븐 크레인, 이디스 워튼, 윌리엄 포크너인데요, 포크너만 노벨 상을 탔군요. 전 스티븐 크레인이 쓴 책은 한 권도 못 읽어봤습니다. ㅋㅋㅋ

바람돌이 2022-08-27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노벨상 ㅎㅎ 헤밍웨이 펑벅은 다들 워낙 오래 전에 읽은지라 지금 뭐라고 판단을 못하겠네요 ㅎㅎ
스티븐 크레인은 처음 듣습니다. ㅎㅎ

다락방 2022-08-28 08: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사두었는데 재미있다고 하셔서 너무 안심이 됩니다! ㅎㅎ

Falstaff 2022-08-28 11:18   좋아요 2 | URL
다락방 님 읽으시면 좀 빡치는 부분도 없지는 않을 듯합니다만, 전향적으로 생각하시면 통쾌한 부분도 그만큼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8-28 0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 작품 정도는 좋은 작품을 낸 작가들!
미치너의 평가는 그 작가들이 가진 사유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위에 말씀하신 네명의 위대한작가와 갈리는 지점이 거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잘 만나는것도 작가의 운이란 생각이 드네요.^^
미치너 역시, 그의 작품 <소설> 오래 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ㅎ
저도 장바구니에

Falstaff 2022-08-28 11:21   좋아요 3 | URL
제가 싱클레어 루이스를 아마 네 권 읽었을 겁니다. 그중 제일 재미난 건 <배빗>이었고, 이 책이 바로 뒤 정도 됩니다.
미치너의 평가니까 절대적 판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의 성향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겠지요.
저는 혹시 제가 ‘미치너‘라고 써서 ‘미친놈‘이란 의미의 미치....너라고 이해하시는 분 계실까봐 조마조마 했다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

coolcat329 2022-08-28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미스터 렌>골드문트님 글 읽고 사뒀는데 재미로는 3등인가요?
미치너의 소설도 골드문트님 글 읽고 사뒀고...정말 저의 독서 멘토세요. 😅

Falstaff 2022-08-28 18:44   좋아요 1 | URL
윽.
넵. 우리나라에 번역한 책 가운데서 3등인데요 여태 나온 책이 네 권이예요. ㅜㅜ
그래도 그게 싱클레어 루이스의 장편 데뷔작이니까 감안해서 보시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이거 참.... 왜 캥기는 마음이 자꾸 드는 거랍니까? 흑흑......
 
불가능 제안들 2
조르주 바타유 지음, 성귀수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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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내 눈과 귀에 조르주 바타유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시인, 소설가, 사회학자, 인류학자, 기타 등등이라는, 거의 모든 지적 전문가의 타이틀을 지닌 이름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한꺼번에, 아니면 그동안에는 내가 관심이 없어 그냥 지나쳐서 몰랐던, 바타유라는 이름이 쏟아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사전 정보 하나도 없이 그냥 바타유라는 이름 하나 보고, 그의 저작 가운데 분량이나 책값으로 보아 별로 부담이 없는 <불가능>을 사서 읽었다.

  생몰연대가 1897~1962인 조르주 바타유는, 오베르 비요에서 전직 세금 징수원인 조세프-아리스트리드 바타이유와 안토니에트-아글레 투르나르드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출생 당시에 아버지는 신경매독에 의한 마비증세를 겪고 있는 맹인이었단다. 이런 집의 가정주부가 어째 정상일 수 있을까. 어머니는 또 조울증이 있었다 하니 초장 팔자 하나는 참 기구하다고 할 밖에. 어쨌거나 한 살 때 랭스로 이주해 세례를 받고, 학교를 다녔다. 소년 바타유는 1914년 가톨릭으로 개종해 9년 동안 헌신적으로 종교에 몰두, 잠깐 신학교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곧 그만 두고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직업을 갖기로 결심, 기독교를 포기한다. 이후 파리 국립 고문서 학교에 입학, 공부 잘 해 졸업해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많은 도서관에서 경력을 쌓고, 오를레앙 도서관장으로 일할 당시에, 숟가락 놨다.

  이렇게 소개하면 비록 초년 팔자가 기구했을지언정 똑똑한 머리 하나로 인생 잘 산 지식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그게 맞기도 하다. 이 책 <불가능> 딱 한 권을 읽어서 이제 바타유에 관해서 알아가는 단계이지만, 일찍이 “사드 전집”과 <O 이야기>를 번역한 바 있는 역자 성귀수가 딱 한 문장으로 바타유를 정의한 것은 이렇다.


  “사드의 적자라 불러도 좋을 바타유는 매음굴을 전전하며 글을 썼던 에로티슴의 소설가였다.”


  이 문장이 책을 열면 목차 바로 다음 페이지 “작가에 대하여”에 실려 있어 독자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음. “사드의 적자”라면 분명 무지막지하게 더러울 터이고 “에로티슴의 소설가”라면 매력적일 것인데, 과연 어느 쪽일까, 궁금하지 않겠는가 말이지.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넘어가자. 내가 읽고 판단한 사드는 성적 환타지와 읽는 행위를 통해 엑스터시를 제공하는 에로티즘의 작가가 절대 아니다. 그의 글은 에로틱하기는커녕 솔직하게 말해, 드러워서 읽어주지 못하겠다. 돈 주고 사드의 책을 사서 읽느니 차라리 인터넷을 뒤져 야설을 몇 편 읽는 것이 낫다. 야한 장면 많이 나오는 소설 좋아하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니까 알아서들 판단하시라. 아, 미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성귀수가 또 한 편의 드러운 섹스 소설인 <O 이야기>의 번역자였다는 것을. 사드의 적자, 아니, 사드의 맏딸은 바타유가 아니라 <O 이야기>를 쓴 폴린 레아주다. 스스로 남성의 성 노리개가 되기 위해서 자의에 의해 외음부에 두 개의 큼지막하고 묵직한 자물쇠를 피어싱하는 이야기를 쓴 인류.


  그럼 <불가능>은? 이건 사드나 폴린 레아주 같은 구토유발의 저급한 외설이 아니다. 뭐 조금 그런 장면도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지극히 낮은 수위이며, 대체로 은유적 표현이 섞여 있어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그것도 몇 번 되지 않는다. 역자나 편집자는 목차 바로 뒤 페이지에 사드의 적자라는 이야기를 써서 책을 좀 팔아볼까, 했겠지만 이건 에로티슴이라기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현타”에 관한 작품이지 싶다. 굳이 은어가 아닌 표준어로 말하면 “허무” 정도? 물론 현타나 허무를 유발하는 매개는 여성이고, 몸의 결합을 포함하는 사랑이고, 질투일 수도 있으며, 죽음도 포함한다.

  주인공 ‘나’는 B라는 애인을 두었고, 당연히 성적 접촉도 했지만, 성castle을 소유하고 있는 B의 키 작은 대머리 아버지한테 집안의 재산을 바라고 접근하는 나쁜 종자라는 이유로 무지하게 두드려 맞은 경험이 있다. 게다가 B는 가톨릭 사제인 A와 성접촉을 가졌다고 판단하고 있는데 B가 A 앞에서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었던 것을 봤기 때문이다. 정말? 모르겠다. 이게 ‘나’의 판타지인지 정말로 A가 보고 있는 앞에서 발가벗고 서 있는 B를 ‘나’가 자극한 적이 있는지.

  하여간 한 겨울, B는 어찌어찌 해서 ‘나’를 떠나 아버지가 사는 V에 있는 성으로 갔다. 아버지는 아직 ‘나’와 헤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B의 오른손 손가락 하나를 완전히 뒤로 꺾어 부러뜨려버렸다. B가 왼손으로 쓴 편지를 받은 ‘나’는 겁나게 추운 눈 오는 밤에 B가 감금된 성을 향해 가다가 기진해 쓰러져 죽어가는 찰라, A와 함께 집을 나선 B의 눈에 띄어 목숨을 구해, 죽는데도 실패하고 만다.


  뭐 이런 이야기인데, 만일 이게 바타유의 대표작이라면, 글쎄 잘 모르겠다. 혹시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쓰는 전 세계의 몇몇 나라 사람들이 바타유를 마테오, 마르코, 루크, 요한 등 열 몇 남자의 초등학교 동창 정도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문화적 환경과 완전히 다른 문자체계를 가진 우리나라 독자들이 바타유에 열광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인다. 뭐 이런 견해가 내가 문학적으로 무식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말이다.

  바타유, 될 수 있으면 우연이라도 앞으로 서로 마주치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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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26 09: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골드문트 님, 바타유의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써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제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 그전에 바타유 책을 읽다가 포기한 사람으로서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더라고요. 제가 읽다 던져버린 책은 <눈 이야기> 였는데, 섹스 중에 오줌 싸는.. 뭐 여튼 너무 참을 수가 없어져서 ㅋㅋㅋㅋ 던져버렸거든요. 그래도 바타유 란 이름 많이 들리니까 한 편쯤 다시 도전해보고 재판단 해야하지 않나...하고 미루던 이즈음, 골드문트 님이 마치 운명처럼! 이렇게 리뷰를 똭! 써주셔서 저는 너무나 감사하고 좋습니다. 게다가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는 리뷰여서 너무 좋네요.

저는 <o의 이야기>를 비디오방에서 영화로 보다가 끝까지 못보고 중간에 나왔습니다.

이만 총총.

Falstaff 2022-08-26 12:37   좋아요 2 | URL
이제야 로그인 합니다. 어제 25도 쐬주 한 병에 발동 걸리는 바람에 와인까지 한 병 반, 꽐라 됐다가 비실비실.... 해장으로 동태탕에 쐬주 한 병 까니까 살 만합니다. ㅎㅎㅎ
윽, 전 이 <불가능> 읽기를 잘한 거 같군요. 섹스 중 오줌 싸는.... 근데 그게 가능한가요? 남자는 거기에 피가 꽉 차 있어서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는데, 여자는 모르겠네요... 하여간, 하여튼 이런 재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유명세를 탈 수 있었는지 그것도 미스테리오조합니다.
ㅎㅎㅎㅎ 다락방 님께 도움이 되는 독후감이 돼서 진심으로 제가 다 고맙습니다.

공쟝쟝 2022-08-26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느 순간 바타유바타유 하길래, 바타유 무엇? 하던 차에 이렇게 써주시니 궁금하네요 ㅋㅋㅋ edps 좋아하는(?) 사람에게 은유와 현타는 ㅋㅋㅋ 연구해볼만한 무엇인 것!

Falstaff 2022-08-26 12:43   좋아요 2 | URL
아이고, 이건 edps도 별로 나오지 않고 편집도 억지로 페이지 수 늘리려 별 꼼수를 다 부렸는데, 현타는 확실하지만요, 은유는 무슨.. 별 같지도 않은 장치로 메타포라고 주장하는 수준입니다. 연9해보실 필요 없을 거 같은 기분입니다.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08-26 11:0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바타유, 한국에서 특히 과대포장된 인물 같아요. 이른바 지식인들이 남들과 다른 척, 현학적인 척 하고 싶을 때 자주 끌어다 쓰는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에로티즘> 하도 이야기하기에 읽어봤는데, 대체 이게 뭐꼬? 하고 현타가 왔었습니다.

그나저나 사드랑, <O 이야기>의 폴린 레아주 드러운 소설이라는 데 동의합니다....ㅋㅋ

Falstaff 2022-08-26 12:42   좋아요 2 | URL
정말 왜 이 사람을 거들먹 거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이게 이번에 책을 읽고 얻은 유일한 성과입니다. 저 역시 소위 ˝지식인˝ 또는 ˝책 좀 읽은 인간˝의 글 속에서 바타유를 자주 발견해, 아직도 바타유 한 권 읽지 않은 자괴감이 들어 선택을 했다가 똥 밟은 심정입니다.

ㅋㅋㅋㅋ 저는 아직도 화딱지가 나는 건, 어째 한 번도 까틀린 M이 얘기하듯 발뒤꿈치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걷어채여본 적이 없느냐 하는 겁지요.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8-26 18: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바타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정말 여기저기 자주 나오더라구요. 근데 골드문트님 글과 댓글들 넘나 재밌습니다. 근데 아버지가 b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다니 사디스트인가요? 내용이 정상이 아니네요.

Falstaff 2022-08-26 21:44   좋아요 1 | URL
19세기 식 완전 가부장적 사이코 귀족 나부랭이 정도입니다. 소설에 자주 나오는 괴물 아버지,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 책에도 무지하게 흔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고기 안 먹는다고 딸의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그런 아빠 정도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 시인선 276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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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은영. 1970년 3월 17일(전날인 16일은 엄마 생일, 전전날은 여동생 생일)에 대전에서 출생한 개띠 시인, 서양철학자,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문학/철학상담 전임교수. 2000년 서른 살 되던 해에 『문학과 사회』를 통해 데뷔해 2009년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2010년에 현대문학상 시부문, 2013년에는 천상병 시문학상과 시부문 대산문학상으로 연타석 홈런을 친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이이가 낸 첫번째 시집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 낼 니체를 비롯한 서양철학서, 문학과 철학 상담 관련 도서 등을 통틀어도 첫번째 저작이라는 개인적 기념비가 된다. 2000년이면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아마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이이의 박사 논문 <니체와 차이의 철학>이 통과된 것이 2005년 8월이니까, 박사를 준비하는 도중에 덜컥, 시인으로 데뷔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계간지 2000년 봄호면 1월에 등단, 앞으로 얼마나 더 공부를 해야 박사 학위를 받고, 행운의 별이 얼마나 반짝여야 대학의 전임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서른 살 당시엔 모두 까마득했을 터. 공부를 더 할까, 전업 시인이 될까, 잠깐 고민을 했을 수 있겠다. 그리하여 진은영의 서른 살은 이러했다.



  서른 살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전문)



  시를 요약하면, 인생의 반을 살았건만 여기서 정처를 잃었다는 거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벼랑 위의 서른 살. 게다가 이제부터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도 없다는 얘기. 이후 자신이 저지를 악덕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의 어느 블로그를 보니까 최승자가 진은영더러 “드디어 나를 정말로 잇는 시인이 나왔다.”라고 말했다는데,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최승자 역시 <삼십 세>에서 서른 살을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 서른 살은 온다 /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라고 첫 연을 시작한 바 있다. 진은영은 70년생, 최승자는 70학번. 한 세대가 흘렀어도 서른 살은 참 어려운 시절인가보다. 진은영이 최승자의 시를 염두에 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최 시인이 스스로 자신을 잇는다고 했다면 겸손하지 못하고 좀 주제넘은 이야기인 듯하다. 그럼 이런 시는 김수영을 잇는 거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네.



  카오스

     ― K에게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모래야 먼지야 나는 왜 이리 작으냐구?

  그래, 그것은 너무 가벼운 반성

  나비의 날갯짓으로 되어 있는,

  오래된 집의 거미줄처럼 상투적인.


  노랑나비가 팔랑거렸다

  매일 그런 것처럼,

  아프리카로 달아나던 내 마음에 폭풍이 쳤다  (전문)



  그렇지 않은가? 왜 쪼잔하게 사소한 일에만 화딱지를 부리느냐, 하는 건 김수영의 전매특허다. 노랑나비가 팔랑거려서 내 마음은 아프리카로 달아나는 건 마치 베이징에서 나비 한 마리가 움직여 뉴욕에 폭풍이 치는 것을 연상할 수 있다. 그래서 쪼잔한 일로 열 받았다는데 그게 뭐 잘못이냐고 혹시 시인은 말하고 있는 건가? 어차피 시를 읽는 일의 80퍼센트는 해몽을 하는 것과 비슷하니까.

  내가 정작 눈에 힘을 주어 읽은 건, 이제 등단을 해서 첫번째 시집을 낸 시인이 “시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걸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거였다. 이 시집에서도 ‘시’ 자체를 주제로 하는 작품이 몇 있다. 예를 들어보자.



  詩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전에

  흔들거리는 풀잎이야

  너의 부드러운 숨결이 닿기도 전

  터지는 비눗방울

  네 눈빛에 꺼지는 촛불이야

  알 수 없는 깜박거림, 이 오래된 어둠 속에서


  빙산의 가장 깊고 투명한 곳에서

  터져나오는 열기

  쩍쩍 갈라지는 얼음이야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와

  심장에 정확히 꽂힌 칼

  콸콸 쏟아지며 거즈를 적시는 피처럼

  사막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이야

  발가벗은 낮의 하얀 유방을 감싸는

  검은 어둠의 실루엣  (후략)



  진은영에게 시라는 건, 비 쏟아지기 전에 흔들리는 풀잎(뭐라?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라고?), 터지는 비눗방울, 오랜 어둠 속에서 꺼지는 촛불, 빙산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 심장에 정확하게 꽂힌 칼, 사막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 검은 어둠의 실루엣 등이란다. 후략이니까 이후에도 시란 무엇이다, 라고 줄줄이 늘어 놓았다. 흠. 그렇구나. 진은영에게 시라는 건 이런 거구나. 근데 이런 것들이 무엇일까?


  (전략)

  내가 이름을 불러보기 전에

  사라져버린 것들이여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숨어버린 모음들

  손을 담그기 전에 흘러가버린 강물이여


  너를

  만나기도 전에


  알 수 없는 폭풍 속에서

  나는 그 많은 나뭇잎을 다 떨어뜨렸어 



  라며 끝을 맺는다. 결국 진은영에게 시는 이미 사라진 아름다움. 만나 보기는커녕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한 폭풍 속 떨어진 나뭇잎이다. 물론 엄살의 시적 표현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러나 (내가) 진은영이 가장 깊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건 어느 블로거의 표현마따나 최승자도 아니고 김수영은 더 아니고, 니체는 내가 그를 모르니 가려낼 방법이 없고, 딱 한 명 고르자면 카프카다. <카프카의 연인>이라는 시도 있지만 확실하게 프란츠를 상기할 수 있는 시 하나를 고르면,



  벌레가 되었습니다



  내 방이었습니다

  구석에서 벽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천장 끝에서 끝까지

  수십 개의 발로 기었습니다

  다시 벽을 타고 아래로

  바닥을 정신없이 기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다리를 가지고도

  문을 찾을 수 없다니


  밖에선 바퀴벌레의 신음소리

  아버지가 숨겨둔 약을 먹은 것입니다

  어머니 내 책상 위에

  아버지가 피운 모기향을 좀 치우세요

  시집 위에 몸 약한 날벌레들

  다 떨어지잖아요

  동생 문 열고 들어옵니다

  나는 문밖으로

  재빨리 나가려고…


  동생이 소리 질렀습니다

  여기 또 있어  (전문)



  이 정도면 <변신>과 완전 빼박이다. 까다로운 비평가가 있다면 제대로 시비를 걸 수준 아닌가? 카프카처럼 풍뎅이 류의 곤충이 아니라 다족류 벌레로 변신한 시의 주인공은 마치 그레고리 잠자처럼 방 밖으로 탈출을 획책하지만 실패한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죽는 대신, 역시 악역을 맡은 아버지가 뿌린 살충제 때문에 조속한 시간 내에 방을 탈출하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래 동생이 방에 들어오는 틈을 타 재빨리 탈출을 감행하려는 순간, 동생은 아버지에게 “여기 또 (한 마리) 있어!”하고, 누나 살해에 공모하게 된다. 다족류 벌레로 변신한 주인공 입장에서 보면 참 비정한 가족, 가정이다. 그러나 앞에서 미리 초를 친 시를 읽었다면 이 정도는 이미 짐작을 했을 것. 이 가족을 보자.



  가족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전문)


 

  원래 가족이란 전생의 원수들이 모인 곳이라 하지만 시인에게 가족은 완전히 죽음의 골짜기였나 보다. 자, 이러니 여러분 가족에 시인, 소설가가 한 명도 없는 것을 슬퍼하지 말지어다. 가정에 시인, 소설가가 생기는 순간 당신 가정은 눈 깜작 할 새에 끝장이 날 터이니. 이것을 보라. 다 까발려버리잖은가.

  감상이 길어졌다. 제일 흥미롭게 읽은 시 한 수를 소개하며 독후감을 접는다.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붙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는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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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2-08-23 0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랑해요 진은영💙 근데 왜 사랑하는지 시집 넘 오래 전에 읽어서 잘 모르겠네요;; 시집 다시 들춰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2-08-23 11:45   좋아요 0 | URL
옙. 얼른 다시 읽어보셔요. ㅎㅎㅎ 반 나절이면 후딱 다 읽습니다. ^^

바람돌이 2022-08-23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오늘 시 리뷰 너무 좋습니다. 시를 읽기도 힘든데 이런 멋진 리뷰라니... 👍

Falstaff 2022-08-23 11:46   좋아요 2 | URL
앗, 재미나게 읽으셨습니까? 으쓱으쓱.
시집 독후감 쓰기가 젤 어려워서 이런 칭찬 받으면 기분 느므느므 좋아요. ㅋㅋㅋㅋ

Falstaff 2022-08-23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솔직 감상.
선배 시인이 쓴 시를 많이 읽는 것이 좋을까, 아닐까? 진은영의 시 속에 왜 이렇게 자주 김수영의 시어들과 니체, 카프카가 눈에 밟히는지 말이지.
본문에서 인용한 <카오스>에서는 진은영이 따옴표를 사용해서 자신이 김수영의 것을 가져왔다고 고백을 해 그냥 넘어갔다고 치고, <벌레가 되었습니다>는 넘 노골적인 거 아닌가 싶다. 나는 진은영의 다음 시집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진짜 궁금하다. 선배들의 시를 많이 읽는 행위가 시인에게 좋은 일일까, 아닐까?
결론은 당신들이 내시라. 하여튼 난 별로 좋은 일 같지 않다. 시 쓰는 대신 세탁소에서 짜깁기를 하는 직업이면 몰라도 말이지.

coolcat329 2022-08-24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레나오는 시는 정말 <변신>을 압축해 놓은 거 같아요. <가족>이란 시도 그렇고 시인에게 가족은 고통이었나봅니다. 하긴...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ㅎ
가족이란 시가 참 강렬하네요.

Falstaff 2022-08-24 12:28   좋아요 1 | URL
그죠? 벌레 이야기는 꼭 시로 써야 했는지 좀 의아합니다.
<가족>으로 충분한 거 같은데 말입죠 ㅎㅎㅎ

mini74 2022-08-24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정에 시인이나 소설가가 없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 참 재미있어요. 우리집에 누군가 나왔다면 아침드라마 다 석권했을 듯 합니다. ㅎㅎ가족이란 짧은 시가 확 와닿네요. 골드문트님 시 이야기 참 좋습니다. !

Falstaff 2022-08-24 16:01   좋아요 1 | URL
아마 세상의 모든 가족들이 미니 님하고 똑같이 생각할 겁니다. ㅋㅋㅋㅋ
골라서 소개한 시를 잘 읽어주셔서 제가 고맙습니다. ^^
 
헤밍웨이 단편선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3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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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소설 열다섯 편을 실은 작품집.

  헤밍웨이, 라고 하면 하드보일드 문체, 잃어버린 세대, 마초 적 작가, 우울증 등을 이야기한다. 타당한 일이다. 민음사에서 두번째로 찍은 헤밍웨이의 단편집을 보면 이것 외에도 주목할 것이 있다. 열다섯 편의 단편에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특히 주인공들은 결코 한 장소에 정착하지 못한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의 전장 속 참호에 있든지(<이제 내 몸을 누이며>), 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오지만 큰 불이 나서 고향마을은 벌써 사라져버렸든지(<심장이 두 개인 큰 강 1부, 2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전전하는 미국인 기수騎手든지(<나의 아버지>), 전쟁 중 동맹국이었던 터키의 스미르나 부두에 도착한 해군이든지(<스미르나 부두에서>) 등등, 결코 안식처와 주거지로의 집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의 장편소설도 다 그랬다. 첫번째 장편소설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부터 시작해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이어지는 3대 헤밍웨이 작품 모두 유럽의 전장이나 대도시의 호텔 바, 레스토랑에서 미국의 잃어버린 세대들이 겪는 이야기들이다.

  집 떠나면? 맞다. 개고생. 헤밍웨이의 마초적이고 약간은 폭력적이며, 힘을 과시하기 위한 살육 성향은 주인공들을 집구석에 편히 내버려두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길을 나서게 되고, 길을 나섰으니 당연히 개고생을 하는데, 그게 흥미롭다는 말이지. 이 책에서는 특히 사자와 아프리카 물소를 사냥하는 <프랜시스 매코머의 짧지만 행복한 생애>와 늙은 투우사의 마지막 황소 살육을 다룬 <패배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살육의 냉혹한 장면을 헤밍웨이 특유의 하드보일드 한 문체로 마치 사진을 찍듯 그려낸 것이 백미였다.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으면서 흔히들 오해하는 것은, 이이의 작품은 완전히 스토리가 중심이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별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이다. 천만의 말씀. 비록 나하고 궁합이 맞지 않아 읽고 나서도 독후감을 쓰지 않은 몇 안 되는 작품의 생산자이기는 하지만, 극도로 건조한 문장 속에서 드라이한 짧은 컷 묘사 안에 해당 광경을 마주하는 인물의 심리가 절묘하게 드러나 있다는 건 안다. 그리고 그런 솜씨를 아무나 부릴 수 있는 게 아닌 것도 안다. 나는 이런 이유로 그가 싫은 게 아니라, 겁나게 잰 체하는, 헤밍웨이 특유의 어깨에 힘주는 모양이 싫은 거다.

  이이는 천부적인 글솜씨를 타고 났다. 오래 기자 생활을 하는 중에 저절로 습득이 된 간략한 문체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기자 생활을 백 년 해봐라. 이이만큼 짧은 문장 안에 자신의 속마음을 “노골적이지 않게” 흘려 넣을 수 있는지. 솔직히 이야기하자. 문장 하나만 가지고 말하자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천재다.

  내가 비록 이 책을, 알라딘이 준 쿠폰을 사용하느라 헌책이나 커피 필터 또는 굿즈를 사야하는 옵션 때문에 구입하기는 했지만, 진즉에 이이의 단편을 한 번 읽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그의 대표 장편소설 세 편보다 <노인과 바다>를 더 좋아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왕 내친 김에, 아니, 기회가 되면 단편집 1도 한 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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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9 09: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짧고 쉬운 문장 안에 의도를 담는 천재!
원서보고 놀랐어요.
간결하고 쉬워서, 그런데 그 한 줄 한 줄이 예사롭지 않아서,,,,
공기까지 담겨 있다는 생각!

Falstaff 2022-08-19 13:42   좋아요 3 | URL
윽, 공기까지요? ^^
근데 문장 하나는 정말 좋죠? 에휴....

coolcat329 2022-08-19 15: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단편이 참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는데 궁색한 변명이지만 작가에게 정이 안가서 안 읽게되네요.😆
근데 황소 살육은 읽고 싶지 않네요. 사진처럼 그려냈다니 ㅠㅠ

Falstaff 2022-08-19 19:2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울 나라에 유독 헤밍웨이하고 연분이 안 되는 분이 많은 거 같더군요. 물론 저도 포함되는데요, 톡! 까놓고 얘기해보면.... 아니, 그러면 안 되겠네요. 아직 제가 그럴 짬밥이 아니라서... ㅋㅋㅋ 하여튼 저도 헤밍웨이를 그리 곱게 볼 수 없는 쪽입니다만,
밉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문장 아닐까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