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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나데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85
쥴퓌 리바넬리 지음, 오진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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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검색해보니 <세레나데>를 포함해 모두 네 권이 번역되어 시장에 나왔다. 이중에 <살모사의 눈부심>은 벌써 출간한지 20년이 넘어 절판됐다. 그러나 다니는 도서관의 보존실에 한 권 있다. 기분 좋다. 읽어야지. 나머지 세 권은 전부 2022년과 23년 출간. 그러니 리바넬리는 우리나라에서 사실 이제 시작이다. <세레나데>를 읽어본 소감은 대박. 앞으로 이이의 작품은 완독해볼까 싶은 마음이 든다.
쥴퓌 리바넬리는 1946년 튀르키예의 콘야에서, 나중에 튀르키예 대법원장까지 오르는 검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를 따라 아나톨리아 반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다양한 민속 문화를 섭취했는데, 이는 후에 리바넬리가 음악가로도 성공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앙카라에서 조부모와 함께 살며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이때부터 습작을 하다가 작품 속에서도 간략하게 소개하는 세계적인 1968년 운동에 충격을 받는다. 이때 그리 크지 않은 진보서적을 파는 책방을 경영하면서 어울리게 된 진보 성향의 지식인 그룹으로부터 깊게 영향을 받았다. 1971년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자 리바넬리는 71년 한 해 동안 두 번 체포, 구금되었으나 아버지의 뒷배가 좋아서 그랬는지 풀려났고, 72년에 또다시 수배가 되자 여권을 위조해 독일로 도피했다. 74년에 사면 복권 조치로 76년에 귀국했지만 정국이 불안정해지자 이후 11년 동안 스톡홀름, 파리, 아테네, 뉴욕 등을 전전하며 엘리아 카잔, 아서 밀러, 제임스 볼드윈, 피터 유스티노프 등의 극문화 관련자, 현대음악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으로 OST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만들고, 소설도 쓰기 시작했다. 다시 튀르키예로 돌아온 쥴퓌 리바넬리는 소설창작을 위해 음악을 중단하는 한편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회의원에 당선하기에 이른다. 금세 환멸을 느껴 때려 치우기는 했지만. (위키피디아 참조했음)
리바넬리의 이런 경력은 그의 작품에도 고스란히 나타나서 개인적, 철학적 주제로는 여성, 가족, 자유, 사랑, 자기중심적 사고, 과거에 대한 향수, 소통 부재, 분노라고 할 수 있으며, 사회적 측면에서 종교, 정치, 권력, 죽음, 관습, 전쟁, 학살, 퇴보 사회, 예술 등을 주제로 한다. (옮긴이 해설 참조했음) <세레나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종, 종교, 피부색, 젠더, 핸디캡, 지위, 국가/국적, 생각에 따른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에 두드러진 것은 국가의식에 대한 반대. 튀르키예의 역사에 어둡지만 아는 대로 이야기해보면, 그들의 조상은 흑해 북쪽 타타르의 한 부족으로 페르시아가 쇠잔해지자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해 위대한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고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린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인근의 여러 국가와 민족, 종교를 수입한 다문화 국가로 성장한다. 20세기 들어 유럽열강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머무르게 되자 튀르키예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극단의 민족주의 국가로 변질되며, 20세기 후반에는 유연성 있던 종교마저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물론 이 배후에는 민주화되지 못한 정치 시스템과, 부정부패, 계속되는 쿠데타, 심각한 경제 불안 같은 요소가 있고, 이런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경향을 더욱 부채질한 것은 물론이다. 쥴퓌 리바넬리는 책 속에서 끊임없이 피할 수 없는 권력의 폭력성, 결코 깨끗할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을 거론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심지어 국가라는 단위마저 부정하고 싶어한다. 제임스 조이스가 쓴 위대한 소설작품 <율리시즈>에서 이런 문장이 나온다.
“국가는 나를 위해 죽어달라.”
이게 내가 <율리시즈>를 읽고 여태 기억하는 유일한 문장이다. 가장 싫어하는 건 바람둥이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한 연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라.” 이게 뭐가 달라.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닫는 것하고.
하여간 쥴피 리바넬리는 이런 정치적 측면에서 가장 왼쪽에 선 좌파 진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출신이 부르주아라서 그런지 경제적 좌파, 경제적 진보라고 하기는 쉽지 않지만.
화자 마야 두란. 1964년 1월 21일생. 무직. 5월의 어느 아침에 이스탄불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보스턴행 여객기로 환승해 비즈니스석의 안락한 좌석에 앉아 화이트포트와인 한 잔 곁들인 기내식 서비스 후에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쓴다. 물론 전에 다 써 둔 원고라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복사-붙이는 작업이 훨씬 많기는 하지만. 이스탄불 대학의 계약직 대외협력과 공무원이었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해고 직전에 사직서를 냈다. 열네 살의 아들을 키우는 홀어미. 전남편 아흐메트는 큰 키에 적갈색 머리카락과 근육질 몸매를 지닌 매우 빼어난 미남으로 외모 하나 보고 결혼했다가 요지부동의 우유부단을 여성스런 섬세함을 지닌 건장한 남자라고 오해했다는 걸 크게 후회하며 8년 전 이혼서류에 인감도장 찍었다. 아흐메트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위자료는커녕 자기 성姓을 물려받은 아들 케렘의 양육비도 한 푼 보태주지 않아 엄마인 마야가 집세와 교육비를 위해 악착같이 업무에 매달렸지만 그만 잘리고 만 것.
서른일곱 살의 매력적인 여성. 당연히 애인도 있다. 타륵. 애인이라기보다 요새 말로 보이프렌드. 이혼을 경험한 마야는 자유로운 사람으로 구속이나 관계에 얽매어 상처받고 싶지 않아 절대 결혼할 마음도 없다. 이건 마야 말고 여러 여성과 애인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타륵도 마찬가지. 자산관리인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타륵은 그리 잘 생기지 않았지만 구르는 재주가 있어서 극단의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21세기 초의 튀르키예에서 마야의 전 재산을 잘 굴려 재산을 수십배로 불리는 수단을 부려주는, 그야말로 천사 같은 존재로 변신한다. 어느 작품이든 선한 일을 하려면 자주 큰 돈이 들어야 하는 법, <세레나데>에서는 타륵이 재물을 가져다주는 램프의 지니 역할을 할 예정이다.
작품 초입에 비행기 안에서 마야는 자신 속에 자기 말고 세 명의 여인 아이셰, 나디아, 마리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각기 이슬람, 유대교, 천주교를 믿는 여성들이다. 국적은 튀르키예, 독일, 아르메니아. 아이셰는 이슬람을 믿는 튀르키예 인이지만 조국이 사지로 몰고도 구해주기를 포기해 자신을 뺀 부모 형제 친척 모두 물에 빠져 자살을 하든가 총살을 당해 죽은 마야의 외할머니. 마리는 천주교를 믿는 아르메니아 인이었으나 터키의 강제이주 정책에 의하여 어른들은 모두 추방당하고 자신은 친절한 무슬림 가정의 보호를 받다가 고아원으로 들어간 뒤 개종 이슬람인으로 살아온 친할머니.
그리고 나디아. 유대계 독일인으로 전쟁 전에 뮌헨 대학의 부교수였던 막시밀리안 바그너와 사랑을 맺어 혼인을 한다. 유대 여인을 아내로 둔 남편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는 하이델베르그 대학으로 옮겨갔으나, 유대인 검거 선풍이 불자 망명을 시도하다가 독불 국경선에서 아내 나디아가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된다. 혼자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대학으로 옮겨온 바그너 교수는 아내를 구출하기 위하여 튀르키예에서 온갖 방법을 다 써 기어이 다하우 수용소에서 나디아를 빼내는 데 성공한다. 나디아는 부모의 고향인 루미나이로 추방되어, 막시밀리안 바그너가 그곳으로 큰 돈을 보내 흑해를 관통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오는 팔레스타인 행 여객선에 탐승한다. 그러나 나디아의 여행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이로부터 59년이 흘러 하버드 법과대학 정교수 막시밀리안 바그너는 이스탄불대학 대외협력과 마야 두란의 마중을 받고 튀르키예 땅을 다시 밟는다. 그의 손엔 비싼 독일제 골동품 바이올린 케이스가 들려 있었다.
저 오랜 세월. 당시 젊은 막스는 자신의 모든 생을 바쳐 사랑할 여인 나디아가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듣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를 위하여 소품을 한 곡 작곡하니 <나디아를 위한 세레나데>. 59년이 흐른 2001년 2월 24일. 그 겨울에 가장 혹독하게 추웠던 날. 흑해 쉴레 해변에 선 바그너 교수는 바이올린을 꺼내 <나디아를 위한 세레나데>를 연주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다시 처음부터 연주하다, 또 중간에 멈추기를 계속한다. 여든일곱 살의 키 크고 마르고 늙은 교수는 세레나데의 후반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였다. 그의 몸은 빠른 속도로 얼어버리고 기어이 얼굴과 입술이 보랏빛으로 새카맣게 타버린 저체온 증상으로 사경을 헤맨다.
도대체 막시밀리안 바그너 교수와 나디아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마야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마리와 아이셰는? 큰 이야기라서 하잘것없는 독후감에 다 담을 수도 없을 뿐더러, 내 남루한 글자로 그토록 무거운 이야기를 옮기는 것 역시 외람된 일이라, 그건 독자께서 직접 읽어보시기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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