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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코스텔로 ㅣ 창비세계문학 90
J. M. 쿳시 지음, 김성호 옮김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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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1928년생으로 1995년 현재 예순여섯, 곧 예순일곱 살이 되는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다. 멜버른에서 낳고 지금도 그곳에서 살고 있지만 1951년부터 63년까지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살았으니 사실상 범 유럽, 아니, 범 백인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봐도 좋다. 물론 진보적 작가라서 인종에 관한 차별의식은 없는 사람이라도, 유럽 전역에 살았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일당의 만행과, 공장식 축산의 고통을 견디다가 짧은 생을 전기충격으로 마감하는 짐승들의 비참한 축생은 대단히 슬퍼할지언정, 불과 자신의 몇 대 선조밖에 되지 않는 유럽에서 유입된 백인 종자들이 테즈메이니아 섬 원주민을 완전히 멸종시킨 것에는 한 번도 관심을 쏟아본 적이 없다. 나중에 누군가가 말을 해주어 본인도 깨닫고 왜 그랬을까, 잠시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당연히 그때 뿐이다. 작가로 지내는 동안 장편소설 아홉 편, 시집 두 권, 그리고 새들의 삶에 관한 에세이 집과 기타 잡문을 썼는데, 이 가운데 젊은 시절의 노작인 <에클스가의 집>이 대박을 쳐, 독자들은 아직도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하면 <에클스가의 집>을 먼저 언급할 지경이다. <에클스가의 집>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율리시즈>에 출연하는 두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레오폴드 블룸의 아내인 메리언 블룸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명성을 떨쳤는지 평론가들은 지금도 <에클스가의 집>이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죽은 후에도 오래오래 살아남는 것은 물론이고 어쩌면 <율리시즈>만큼 오래 생명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평할 정도이다.
두 번 결혼했고 결혼마다 한 명씩, 자식 둘을 두었다. 딸은 남 프랑스에서 미술관련 일을 하고, 아들은 매사추세츠에 있는 한 대학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다가 현재는 휴직중이다. 1995년 봄에 코스텔로 여사는 펜실베이니아의 윌리엄스타운에 가야 한다. 엘토나 대학에서 수여하는 스토우Stowe상의 수상자로 선정이 되어 상금인 수표 5만 달러를 받는 대가로 수락 연설을 하기 위해. 그래서 이번 여행엔 아들 존이 펜실베이니아의 호텔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다시 출국할 때까지 옆에서 보살피기로 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스토우 상과 관련한 허드레 일을 전담하는 테리사가 해주기로 했다.
아들 존. 만만하지 않다. 어머니라 해도 흔히 생각하는 어머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작가 어머니는 글을 쓸 때 자신의 서재 문을 여는 어떤 경우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기를 밖에 던져놓고 문을 닫아 걸어버린 엄마에 대한 응답 가운데 하나의 방법으로 존은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쓴 작품은 물론이고 매스컴에 기고한 어떤 문장도 읽어보지 않았다. 자신의 성취를 위해 단단한 벽을 쌓은 어머니에게 자신 역시 벽을 쌓아 답례를 했겠지. 그는 어머니의 수상연설이 끝난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출국하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만난 라디오 방송국 여성 진행자이자 여성주의 작가 수전 K. 모비어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제 어머니는 남자였던 적이 있어요. 개였던 적도 있지요.”
워낙 독특한 폭력을 묘사하는 데 도가 튼 쿳시라서 위 인용을 읽고 이게 무슨 수작인지 걱정하지 마시라. 정말 어느 날 일어나보니 생식기가 변했다거나 개로 종변하는 변용 현상이 일어났던 적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한테 남성적인 폭력성을 구사한 적도 있고, 개 같은… (생략)…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존도 나이가 들고, 결혼도 했으며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어서, 예전에 쌓아 올린 벽도 많이 허문 상태이다. 그러나 1995년 봄의 펜실베이니아에서의 존은 비록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어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엄마를 향해 거슬리는 말을 삼가지 않는 조련사가 되리라고 마음먹은 터였다. 그는 여전히 어머니를 알지 못한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온갖 찬사를 남발하는 군중들이 굳이 자신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당신들은 이 여자가 무녀라도 되는 양 그녀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 여자는 사십년 전, 날이면 날마다 햄프스테드의 원룸에 처박혀 온자 울고, 저녁이면 안개 자욱한 거리로 기어나가 피시 앤드 칩스를 사서 끼니를 해결하고, 입은 옷 그대로 잠에 빠져들던 바로 그 여자입니다. 나중에는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휘날리며 아이들에게 ‘니들 때문에 내가 죽지, 죽어! 니들이 내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구나!’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멜버른의 집을 뒤집어놓던 바로 그 여자지요.”
하지만 아들 존은 어머니를 증오하지 않는다. 그게 쉽게 되나, 어디.
책에서는 모자간, 모녀간 불화가 문제로 부상하지 않는다. 한 시절에 그랬던 적이 있다, 수준이지. 문제가 터지고, 도무지 수습되지 않는 생각의 차이를 만드는 건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가 자신의 육성으로 말한 스토우 상 수락 연설에서 시작한다. 신자유주의와 여성문제, 원주민 권리 보장과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의 문학 같은 문제를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오리무중의 연설. 심사위원장을 맡은 맥길대학 교수 고든 휘틀리는 스토우 상이 엘리자베스 차지가 된 이유는 1995년이 오스트랄라시아의 해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라는 악담을 날려버린다.
엘리자베스는 채식주의자다.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는데 위에서 잠깐 말한 공장식 축산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다만 인간에게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낳고 죽어가는 동물의 섭취를 포기한 거였다. 자신이 동물을 먹지 않겠으면 그냥 먹지 않으면 되는 거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다른 사람도 육식을 금지하기를 바라 2년 후 다시 방문한 미국의 애플턴 대학 연설에서 공장식 축산을, 어처구니없게도, 트레블린카, 나치에 의한 유대인 처형수용소에 비교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유대인의 생각으로 돼지는 더러운 동물이다. 독일 사람한테 얻어맞고 싶으면 그 사람 얼굴 앞에서 Sie sind ein Schwein 너는 돼지야, 라고만 하면 된다. 전세계에서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 사람들도 그렇다. 이 일로 백인 지역의 많은 지식인들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정상이 아닌 작가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소수의 네오나치들과 낭만적 채식주의자들은 열광했다.
연설 후에 교수 부부들과 육식 금지에 관한 담론이 벌어진다. 이 자리 말석에 엘리자베스의 아들이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는 정보를 들은 주최측이 급하게 참석시킨 아들 부부도 끼어 있었다. 그러다 어처구니없게도 토론은 엘리자베스와 며느리 노마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벌어진다.
“우리가 돼지는 먹고 개는 안 먹는다면 그건 그저 우리가 양육되는 방식인 거예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으세요, 엘리자베스? 그건 그저 우리 습속의 일부라고요.”
시어머니는 교수(부부)들이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대답한다. “역겨움이라는 게 있어요. 우리는 신들을 제거했는지는 모르지만 역겨움을 제거하지는 못했는데, 역겨움은 일종의 종교적인 공포예요.”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인가. 시어머니 엘리자베스라는 이름 대신에 우리나라 대통령 배우자의 이름을 넣어도 비슷할 거 같다.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 먹거리 십자군이 쳐들어왔다. 국회라는 공권력은 조만간에 완전히 사라질 개고기 식용을 아예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금지권은 언제나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권력이거늘 오만한 국회는 이를 무시했다. 자칭 진보도, 보수도. 며느리 노마는 시어머니에게 다시 덤벼든다.
“(고기를 먹지 않는) 그 절제의 힘에 의거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월한 존재, 예컨대 사회 내의 우월한 카스트로 분류한다 이거예요. 브라만처럼.”
채식주의자라고 고기 먹는 사람들에게 괜히 우월감 갖지 말라는 뜻이다. 나도 개고기 안 먹었다. 그러나 먹는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생각하지 않았다. 개고기 식용 금지를 주장하는 인간들의 90퍼센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도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웃기는 사람들. 대신 당신들은 개고기 먹는 사람을 열등하게 봤잖아, 아냐? 3년이 흐른 후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먹으면 야만인이 아니라 범죄자가 되는 거다.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만큼 개고기 먹는 게 그렇게 세상에 대고 쪽팔렸니? 아주 먹지 못하게 되기 전에, 먹기만 해도 범죄자가 되어 여차하면 족보에 빨간 줄 올라가기 전에, 나도 한 번, 적어도 한 번, 몇 십 년 만에 먹어보고 여전히 맛있으면 수십번이라도 먹겠다. 이거 진심이다. “금지권력”을 조심하고 삼가하지 않는 너희들, 우스운 종자들, 너희는 개만도 못하다는 거, 이건 몰랐지?
육십대 후반의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세상에 많은 것을 겪었겠지. 이 책을 출간할 당시의 J.M. 쿳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년 동안 거주했고 예순세 살이었으며 다음 해에 동물보호단체 “보이스리스”에 가입한다. 그리고 3년 후인 2006년엔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을 딴다. 여러가지로 엘리자베스와 쿳시가 비슷한 면이 많다. 이제 노년의 초입에 들어 작품이 변하기 시작해서, 쿳시를 읽을 때마다 재미는 있으나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많이 누그러졌다. 아프리카의 지역적 특색 때문에 숨기지 못했던 야만성이 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에서도 거구의 남성에 의한 여성 폭행 장면도 나오긴 하지만 그게 작품의 한 전환점으로 기능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작품의 방법이 달라졌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주인공의 연설 내용과 모임의 참석자 사이의 대담 같은 것들로 만들어져 전에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쿳시와는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 그래서 많은 부분, 마치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그만큼 쿳시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더욱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오류나 과장, 잘못은 전부 엘리자베스가 한 짓으로 몰아버리고. 거참 똑똑한 작가네. 말은 자기가 하고, 책임은 주인공한테 뒤집어 씌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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