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역시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제일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서, 제가 읽어본 것들로만 추렸습니다. 예컨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개선문> 등은 대단한 작품이긴 하지만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어서 이 목록에선 빠졌습니다. 아울러 늘 우리가 얘기하는 걸작들, 오비디우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위고, 뒤마 이런 양반들이 쓴 것도 제외했습니다. 괜히 입 아프잖아요.
근데 '좋아하는 책'하고 '추천하는 책'하고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추천해달라고 하면 빼놓지 않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넣지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번호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번호입니다.
32. 33. 귄터 그라스, <양철북>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확실한 건 재미있게 봤던 영화 <양철북>보다 훨씬 매력적인 작품이란 거. 책 읽고 꼭 독후감 쓰던 시기 이전 것이라 당시 느낌을 컨닝해올 수도 없지만 처참하기 그지없던 시기를 넘치는 은유와 해학과 그러나 무엇보다 그냥 덤덤하게 넘어가는 그림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다.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만들던 광경. 독보다, 독보.
78. 79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
길고 긴 해안선은 가진 아름답고 매혹적인 나라. 요샌 축구까지 진짜 잘하는 나라 칠레.
칠레 국민에 대한 헌사. 한 손엔 기관총을 들고 한 손엔 방송 마이크를 든 채 대통령 궁 옥상에서 피노체트의 주구들에게 벌집이 된 채 죽음을 맞은 아옌데 대통령을 위한 조종이자 쿠데타로 부르주아 독재를 이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던 우파 정치인에 대한 조롱.
신화적 리얼리즘에 대한 찬란한 종언.
97.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미치광이 늙은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난 아직까지 이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이 책에서 문제적 작가 조지프 콘래드가 산적질까지 했었다는 게 나올 걸?
116. 117. 조지프 콘래드, <로드 짐>
말레이 반도 쯤의 아시아 원주민 집단에 흘러든 '짐'이란 이름의 서양 백인 이야기. 같은 백인 이야기지만 조지프 키플링의 '아시아 내에서의 백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짐이 한 시절 저지른 불명예를 평생의 멍에로 여기고 사는데, 누구나가 스스로 원죄로 생각하는 과거의 불명예, 잘못, 실수 또는 이것들과 비슷한 과오를 짊어지고 사는 법. 그리하여 이 책에 더욱 더 큰 공명을 느끼게 한다.
139.140.141 존 바스, <연초 도매상>
이 책에 관해선 정말 할 말 많은데, 다른 말 다 생략하더라도 이거 하나만 밝혀두자.
겁나 재밌다.
바스, 이 작자가 새로운 소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선언한 다음 과거의 작품이나 신화, 이딴 것들을 배배꼬아 즐겨 소설을 만들었는데 <연초 도매상>에선 목차를 18세기 소설들과 비슷하게 해놓고 요절복통, 잘못 읽으면 사레들려 마치 맹물 마시다 체한 상태 비슷하게 만들어 놓는다.
근데 이걸로 끝? 천만의 말씀. 자세한 건 독자 리뷰에 써놨으니 참조하시압.
142.143 조지 엘리엇,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에잇. 여자 이름이 조지가 뭐야, 조지가.
근데 참 이 사람, 묵직하니 좋다. 빅토리아 시대의 규범적인 작품. 더 이상 빅토리아스러운 건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빅토리아 시대.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만날 사교 모임에 가면무도회, 신사 의식 (꼴값하는 이디스 워튼 왈, 찰스 디킨스하고 마크 트웨인은 작품 속에 신사들이 등장하지 않아 싫어요!)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방면의 시대의식. 강건하고 굳세며 근면한데다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여인들.
동 시대에 이만큼 건강한 여류는 엘리자베스 케스켈 말고는 없다.
174.175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빨갱이 스타인벡이 쓴 백미. 1920~30년대 아메리카. 대공황과 가뭄에 시달리는 오클라호마, 네브라스카 촌놈들은 캘리포니아 드림 하나만 가지고 서쪽으로 죽음의 행군을 시작한다. 그러나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도착한 캘리포니아엔 부르주아에 의한 착취만이 기다리고 있고 가난한 인민들의 단결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스타인벡의 조합운동을 위한 소설은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근데 정작 사람을 감격시키는 건 오클라호마의 거친 땅을 닮은 존의 어머니. 그녀는 가장 견디기 힘들 때 또다시 생명을 발견한다.
진정한 리얼리즘 소설.
186.187 조지프 헬러, <캐치 22>
최고의 반전소설. 난 이 책을 읽은 다음 일단 헤밍웨이부터 우습게 알기 시작했다. 진정한 반전소설이면서도 사람 혼을 빼놓는 웃음의 만발.
용감무쌍한 미군 비행사의 꿈은?
놀랍게도 탈영이다.
비겁하다고? 천만의 말씀. 어떤 전쟁이 죄악이 아니었던가.
반전소설을 이토록 가비야운 터치로 쓸 수 있었던 조지프 헬러. 일어나 갈채하라!
195.196 마르그리뜨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누보 로망의 한 분파인 유르스나르가 이런 책을 썼다는데 깜짝 놀랐으며, 이 책을 위해 그토록 고집스럽게 고증해나갔다는 것에 경악했고, 무엇보다 한 찬란한 인간의 일생을 그리도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조망했다는 데 대하여 유르스나르를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드리아누스가 양세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남기는 회상록. 여기에 곽광수 선생의 옛스런 번역도 멋있기 짝이 없다.
난 내 아이들에게 내 삶을 통하여 이야기해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사주려 한다.
207. 글로리아 네일러,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흑인, 무학의 여인들이 20세기 중반의 미국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색. 거기다가 동성연애자라면?
세상을 살기 위한 모든 악조건을 갖춘 여자들이 한 아파트에 입주해서 벌어지는 생활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린 수작. 피부색과 젠더와 성적선택에 관한 차별. 책은 비록 이의 극복을 위한 어떤 방향도 제시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당시 입장에선 획기적일 수도 있게 문제제기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과연 무학의 흑인 여성들은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아파트 바로 옆에 쳐저있는 완강한 콘크리트 벽을 무너뜨렸을까? 당신이 확인하시라.
208. 치누아 아체베,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식민주의를 이야기할 때 조지프 콘래드와 함께 항상 거론되는 인물. 근데 주로 아체베가 콘래드를 씹는 방향으로 등장하며 이때 콘래드의 작품은 위에서 얘기한 <로드 짐>이 아니라 <암흑의 핵심>이 보통이다.
근데 내가 보기엔 치누아 아체베도 식민현상을 그저 보여주고만 있고, 조금 세게 얘기하면 폭로하는데 그치지 결코 식민의 해소를 위해 투쟁하거나 하다못해 반식민을 위해 조직하지도 않는다. 주로 식민이 현지인에게 어떤 형태로 침입해서 어떻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뿐. 그건 아체베의 삼부작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아쉬움이다.
226.227 잭 케루악, <길 위에서>
말 하면 뭘해. 비트 문학의 선구.
개판무인지경의 청춘들. 재즈와 블루스 그리고 히치하이킹. 거기다가 좀 보탠다면 무책임한 차량절도와 임신. 다 합쳐 대책없는 젊음의 분출과 무책임. 의미없이 치열하고 의미없이 절망적인 질주.
그러나 거의 다 그렇듯이 결국엔 출발한 곳으로의 회귀. 그래서 슬픈.
229. 카울로스 푸엔테스, <아우라>
아, 정말 사랑스런 아몰랑주의 소설. '환상소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야지. 더하기 아름다운 문장들.
몽환 속에 빠진 젊은이. 마주치는 여인들. 사랑과 섹스. 그로데스크한 낡고 어두운 건물에서 벌어지는 아스라한 분위기.
난 이 작품 하나 읽고 단박에 푸엔테스의 다른 책 <의지와 운명>도 읽어버렸다.
244.245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모델로 한 작품이란 걸 알아챌 수 있다.
천재 작곡가 레버퀸이 자신의 음악과 (음악 속에 융해되어 있는)철학을 완성하기 위한 지랄발광. 어떻게 보면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주인공 장과 비슷한 부류인데 더 지랄 같은 성격의 레버퀸. 근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롤랑이나 만이나 똑같이 쇤베르크를 모델로 쓴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거 같다. 그럼에도 쇤베르크는 유독 만한테만 태클을 걸었는바, 만은 괘씸하게도 12음 기법 비슷하게 흉내까지 내서 그런 듯.
음악에 관심 없는 분한테 추천하면 두고두고 욕먹을 소설.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개선문>은 내게 일생의 책이었는데 옛적에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민음사로 읽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사실 책도 아닌데 그건 전적으로 개판무인지경 비교불가 열린책들이 만들어서 그런 거고. 하여간 이 세 소설은 인생 살면서 꼭 읽어봐야 할 책들.
근데 정여사는 나 소싯적에 왜 <사랑할....>을 재미없다고 그렇게 얘기하셨을까? 자라나는 청소년한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 것. 상처받음.
진짜 멋있고 진중한 반전소설. 위에 쓴 <캐치 22>와는 또다른 반전 철학을 진지하고 아름답게 그린다.
273.274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큰아이가 하는 말이 "<유리알 유희>에선 단 한 번도 유리알 유희의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정말? 아니다. 나온다. 근데 그걸 발견하지 못할 뿐.
헤세 소설의 백미. 누군들 <데미안> <지와 사랑> <시타르타> <황야의 이리>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지 않고 청춘을 보냈을까 싶지만, 세상에나, 회사 직원한테 물어보니까 읽기는커녕 책 제목들도 모르더라. 오호 애재라.
음악, 철학, 미학에 관한 장대한 서술. 엉덩이 질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즐거이 이 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나, 아니라면 아예 시도도 하지 말것.
339. 응구기 와 시옹오, <피의 꽃잎들>
가리봉동에도 응국이 사는 거 아시지? 농담이다.
진정한 신흥국의 문학. 식민에서 벗어나 독립을 했을지언정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식민인 상태. 이름하여 반식민半植民. 대한민국에서도 1980년대까지 반식민에 대한 논의가 매우 치열했었는데 그걸 제대로 문학화한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몇 십년이 지나 대한민국이 아닌, 한국은 이미 반식민을 극복했다고쳐서 꼭 반식민 문학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하여간 한국이 아니라 케냐 출신 작가가 쓴 소설에서 제대로 된 반식민半植民 소설을 읽는 기회가 됐다.
정말 잘 썼다. 하긴 내가 뭐라고 늘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사람이 쓴 걸 가지고 잘 썼네 아니네 육갑을 떠느냐마는, 내 수준에 정말 잘 맞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으... 써놓고 보니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빠졌다. 그냥 내비둔다.
여때까지 몇 개의 작품을 언급했는데, 이제 시간이 된 거 같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약 230권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가지고 있고 그걸 싹 다 읽었는데, 그 가운데 내가 제일 절절하게 동감하면서, 가슴이 정말로 막 쓰라린 것을 느끼면서까지 처절하게 감동한 작품. 바로 이것.
69.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피를 토해 쓴 백조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