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대답 민음의 시 125
김언희 지음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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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넘기면 스스로 쓴 서문이 나온다. 인용하겠다.



自序


이 시편들은 坐入用이

아닙니다.



 오른 쪽 맞춰쓰기로 한 자서에 나오는 한자말, 좌입용坐入用이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앉을 좌, 들 입, 쓸 용. 앉아서 들어가는 용도의 시들이 아니란 얘기. 네이버 사전 찾아봤더니 이런 단어가 없단다. 중국어 사전에도, 한자사전에도 없단다. 그럼 시인이 만든 말이다. 좋다. 시인이 시 쓰면서 단어 만드는 거는 특권이니까. 근데 좌입용이 뭘까? 이 시를 읽은 것이 2017년 3월 10일. 불과 이틀 전인 3월 8일. 나는 이 동네 종합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고 검진 항목에 위 내시경, 대장 내시경이 있었다. 아, 수면 내시경을 선택했지만 내시경 받는 도중에 잠에서 깨는 불상사가 벌어졌는데 하필이면 대장에서 용종 하나를 떼내는 순간이었다. 집게 비슷한 게 내 큰창자 속에 들어가 뭔가를 집더니 탁, 자르는 광경. 이어지는 출혈. 입엔 위 내시경 용 튜브가 삽입되어 있어 말도 못하고 간호사한테 손짓으로 수면약 좀 더 넣어달라고 시늉했다. 인간이 가진 신체 장기 가운데 유일하게 우주와 통하는 소화기관의 처음과 끝이 다 훤하게 뚫려있던 기억. 그러니 불과 이틀 후 김언희 시인이 말하는 '좌입용坐入用'을 읽으면서 '인간의 신체 기관에 밀어 넣는 용도'라고 퍼뜩 생각이 들던 게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겠는가. 자연스레 '좌약'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요도, 항문, 질 따위를 통하여 몸 안에 끼워 넣어 체온이나 분비물로 녹인 후에 약효가 나타나게 만든 약." 그럼 좌입용은 좌약과 비슷하게 "요도, 항문, 질 따위를 통하여 몸 안에 끼워 넣을 용도"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그 용도가 아니라고 했으니 적어도 시를 읽으면서 사람에게 약효나 즐거움이나 동감이나 시적 쾌감을 느끼게 해주지 않을 거라는 말인가 싶었다. 아, 미리 밝혀두지만 난 김언희 시인의 시를 생전 처음 읽는 거였다.

 '자서' 좌입용이 아니라는 말을 오래 궁리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드디어 책을 넘겨 첫번째 시를 읽었다.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백 년 동안 장롱 아래 깔려 있듯이, 깔린 채 팔만 개의 막대 사탕을 빨듯이,


 예를 들면, 흡혈귀 이상으로 흡혈귀가 되어가듯이, 하루도 남의 피를 빨지 않고는 살 수 없듯이,


 예를 들면, 장님이 되어가는 사람의 하나 남은 눈동자를 후벼 먹듯이, 하나뿐인 출구가 매독 걸린 입이듯이,


 예를 들면, 그것의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이것의 피를 묻히듯이, 뭔가를 안 하려고 뭔가를 하듯이,


 예를 들면, 주방 기구와 섹스하듯이, 너무나 모멸적인 섹스 파트너, 그것이 너를 삼키듯이 토해내듯이,


 예를 들면, 어제가 기억나지 않듯이, 어제 뭐 했지? 어제 뭐 했더라……? 1분도 기억나지 않듯이,


(전문. 13쪽)

(3연에 나오는 "장님이 되어가는 사람의 하나 남은 눈동자"는 마야코프스키의 <나 자신에 관하여> 중에서 나오는 시어라고 주註가 달려있다)


 아, 자서의 좌입용이란 단어를 해석한 것이 많이 틀리진 않겠다 싶은 느낌이 팍 왔다. 근데 문제는 시인이 이렇게 격렬한 단어들을 모아모아 도무지 뭘 주장하고 있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 '백년 동안 장롱 아래 깔려 있는 게 뭘까? 물론 백년은 오랜 세월을 의미하겠지. 그럼 거의 모든 집구석의 장롱을 내려다 보시라. 장롱의 짧은 다리 네 개 가운데 적어도 하나는 딱딱한 마분지나 포장지 접은 거, 아니면 나무 판자를 깔고 있을 거다. 그거 말하는 거야? 팔만 개의 막대 사탕은? 하나뿐인 출구라는 '매독 걸린 입'은 도대체 뭐야? 주방 기구하고 섹스를 해? 그게 너무 모멸적인 섹스 파트너야? 혹시 마스터베이션 하시는 건가요? 도대체 오리무중. 그냥 글 또는 시의 이미지만 느끼라는 이미지즘적 시는 아닌 게 분명하니 뭔가를 주장하고 있을 것인데 거 참.

 그럼 이거 한 번 읽어보실래?



 6

 아버지의 이름으로,

 촌충처럼 마디마디 끊어지는 이름으로


 미친 척 하면서 구매하고 미쳐가면서 지불하는

 빨간 고환, 파란 고환, 찢어진 고환,


의 이름으로


<후렴> 부분. 16쪽. "촌충처럼 마디마디 끊어지는 이름"은 이성복의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란 시 중에서 나온다는 주가 달려있다)


 시집의 3부에 가면 시인이 집과 가정을 얼마나 황폐하고 불안정한 것으로 보는지 나오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1부의 이 시에서 과연 시인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았다. 촌충처럼 끊어지는 이름이 바로 아버지의 이름인데 그게 돈지랄하는 색색의 고환들 심지어 찢어지기 까지 한 고환, 즉 아버지가 색동 칠을 했거나 다 헤져 찢어진 고환이란 말이다. 근데 아버지의 고환이란 자신의 생태적 출발지. 그리하여 자신의 비극을 이렇게 나타낸 거라면 그야말로 감정의 과잉일 것이겠지만 과연 그랬을까? (아, 순 우리말의 아름다움. '아버지의 색동 고환'보단 '아빠의 색동 불알'을 발음할 때의 숨 막히는 공명이여!)

 이 시인의 작품에서 수다하게 쏟아지는 것들을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구분하겠다. 첫번째는 참 난감한 단어들의 무차별적 사용. 용서하시라 그대로 인용하겠다. 자지, 보지, 불알, 고환, 질, 음부, 분비물, 똥, 등등. 물론 난 이 단어들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전부 표준말이며, 비어도 속어도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단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라고 말한 건 그냥 습관상 될 수 있으면 피해가며 사용하는 단어들이기 때문이지 다른 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 단어들을 자연스럽게 만인 앞에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김언희는 다르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레 쓴다. 두번째 내가 지적하고 싶은 건, 다른 사람이 쓴 시, 가요(팝송이 됐건 뽕짝이 됐건 간에)의 가사를 과하게 자주 인용한다. 출처를 밝히고 기억나지 않을 땐 '갑동이의 시 어느 곳에서' 따왔다고 숨김없이 이야기 하지만 시인에게는 결코 마땅하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어느 시인이 그러던데, 시를 쓰기 위해 다른 시를 과도하게 읽는 건 바람직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이런 경우 때문에 그렇게 얘기했던가? 하긴 그 얘기 들은지 30년도 넘기는 했다.

 정작 내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지금부터. 남들이 쓰지 않는 단어나 그것들의 하드코어적 조합이 일으키는 교감작용을 사용했음에도, 김언희의 시는 극적인 고통이나 절망, 분노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 만일 있었다고 하더라도 너무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 솔직히 난 많은 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격렬한 단어가 마구 쏟아지기는 한데 그것들의 총합으로 만들어내는 '뜻' 혹은 '이미지' 그것도 아니면 시인이 지금 느끼는 '감정' 이런 것들 가운데 어느것도 제대로 감각할 수 없었다는 말씀. 그나마 3부에 가서 일관된 주제에 관한 시편들이 나열되었을 때는 좀 알아들을 수 있었으니 좀 낫기는 한데 그래도.

 하나만 더 말씀드리자면,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시점이 2005년 3월. 내가 책을 산 것이 2017년 1월. 그럼 두 달 모자른 12년이 흘렀는데 놀랍게도 초판 1쇄다. 12년 동안 2,000부 가량 팔렸다는 얘기. 도대체 시인들은 뭘 먹고 사는 거야? 이슬?  당신이 시인이 아닌 걸 참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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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87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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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년은 당연히 1793년. 89년 바스티유 감옥이 깨지고 4년이 흘러 파리는 로베스피에르, 당통, 그리고 막강한 마라가 권력을 틀어쥐고 무시무시한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짜리몽땅 장 폴 마라는 한두 주 있다가 탕 속에 더운 물을 받아 느긋하게 전신목욕을 즐기다 젊은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가 찌른 단검이 심장에 박혀 죽을 처지였고(샤를로트 코르데는 소설에선 마라의 부하가 내리친 의자에 해골이 쪼개져 현장에서 즉사한다), 산악파 행동대장답게 쾌걸의 거한 조르주 자크 당통(책에선 '당똥')은 몇 달 지난 후 자신이 발의한 법령에 의거해 (그로부터 1년 후 로베스피에르가 똑같이 당했듯이) 재판 한 번 받지 못하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릴 예정이었다.

 한편 왕당파의 핵심멤버로 일찍이 런던으로 망명하여 왕권중심제의 부활을 위해 프랑스 브루타뉴 지역으로 잠입한 랑뜨낙 후작은 정작 자신은 종교에 별 관심도 없었으나 천주교와 왕정에 기반을 둔 이 지역의 농민군들을 규합해 세를 불린 다음 영국 정규군을 수입해와 혁명군들을 괴멸시키는 야멸찬 야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만 그의 나이 이미 80이 넘은 노인이라는 점과 하필이면 해당 지역의 정부군 또는 청군 또는 혁명군의 사령관 고뱅이 자신의 종손(형 또는 남동생의 손자)으로 자식 없는 이 노인네 후작의 상속권자라는 점. 고뱅 장군을 어려서부터 훈육하고 자유사상에 물들게 한 고상하고 박애와 평등정신 넘쳤던 사제 씨무르댕(어감이 꼭 욕하는 거 같긴하다)이 등장해 이 양반이 혁명공회가 엄정한 반란군 토벌을 위해 임명한 전권대사로 종조부와 종손간의 싸움에 꼽사리를 끼는데 씨무르댕은 이미 예전 자상하고 사랑과 평화와 박애정신과 평등의식이 넘치는 사제가 아니라 오직 하나 혁명의 엄정한 완수를 위해 추상같은 법의 집행 하나에만 목숨을 거는 정치인으로 바뀌어 나타난 거다.

 그리하여 이 세 사람은 한 편은 한 명의 노인, 다른 한 편은 둘이서 힘을 합해 브루타뉴 방데의 한 고성, 랑뜨낙 후작이 일찌기 어린 종손 고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얼러가며 키운 '라 뚜르그'에서 서로의 목숨을 걸고 운명의 한 판 싸움을 벌인다. 누가 이겼냐고? 혁명군(정부군) 병력 4천명, 후작의 농민 반란군 19명의 싸움. 4천의 정부군이 19명에 불과한, 그것도 농민군한테 깨지면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게 말이 돼? 당연히 정부군이 이긴다. 근데 그게 끝이야? 에이, 아직 남았지. 그것도 중요한 게. 절대 안 알려줄 마지막 클라이막스가.

 이렇게 방데 전투의 한 장면이 책의 주요 내용 가운데 하나.

 내가 읽기엔 하나가 더 있다. 그리고 비교적 일찍 2권의 중간쯤에 쫑이 나는 거다. 책에서 랑뜨낙 후작 역시 엄정하기 짝이 없는 냉혈한으로 나오는 바, 일찌기 아이 셋을 유괴하고 아이들의 엄마를 비롯한 동네의 모든 성인을 총살한 적이 있다. 근데 하늘이 그렇게 무심하지 않았는지 아이 엄마를 관통한 총알이 다행스럽게도 허파를 건드리지 않아 생명을 구하고, 당연히 아이들을 찾아 후작이 있는 곳, 그러니까 뜨거운 전쟁터 라 뚜르그를 향해 맨발로 걸어간다. 아이들은 성 안의 도서관에서 잘 먹고 잘 놀고 있지만 도서관에 뭐가 있냐하면 맨 종이와 양피지, 불에 잘 타인 인화물질. 여기다가 후작의 충견 이마누스는 성을 지키기 위해 화공을 위한 모든 준비를 해놓은 상태. 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들은 전혀 모른 채 두 사내 아이와 한 계집애는 정말 천진스러운 놀이에 빠져든다. 그러다가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는 아이들은 줄곧 그러듯이 탁자에 기어올라 책을 한 권 찢어발기기 시작한다. 그 책이 바르톨로메오의 순교에 관한 신학서적. 바르톨로메오가 누구냐 하면, 아르메니아에서 예수의 말씀을 전하다가 거기 종교 제사장들한테 찍혀 산채로 껍데기를 홀랑 벗긴 다음 십자가에 쿵쿵 못박고 그것도 모자라 대가리를 댕가당 잘라 죽임을 당한 성자다. 그 책을 어린 아이들이 발기발기 찢어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광경은 뭘 은유하고 있을까? 거의 무신론자 비슷한 위고가 다가오는 세대와 종교와의 결별을 그렇게 써놓은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 혁명과 혁명/반혁명 전투를 바르톨로메오의 순교와 비교해 놓은 것일까. 그건 이 책을 읽고 당신이 판단하시라.

 위고의 마지막 작품. 반은 역사적 진실이고 반쯤은 허구겠지. 격동의 한 시기, 서로의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불사른 영혼, 하지만 바보같기 그지없는 순진한 낭만주의의 끝판.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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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피타 히메네스 대산세계문학총서 60
후안 발레라 지음, 박종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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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 '나'는 몇년 전 세상 하직한 대성당 주임신부가 쓴 종이뭉치를 발견한다. 뭉치의 첫장엔 제가題字임이 분명하게 라틴어로 "Nescit labi virtus" 우리 말로 "덕은 추락하지 않는다"라고 써 있는 건데 당시 스페인에서도 라틴어는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에 앗뜨거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개봉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의 손에 들어온 거다. 근데 막상 종이 뭉치를 열어보니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조카가 삼촌인 주임신부에게 쓴 편지, 주임신부가 이것저것을 알아보고 상황을 이야기한 것, 마지막으로 19세기 초반 소설의 에필로그 격인 이야기의 뒷담화.

 화자 말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 나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 목차를 빼고 본문에서 첫 문장으로 나오는 엄숙한 라틴어, "덕德은 추락墜落하지 않는다"를 보고 속으로 이거 또 기독교적으로 골아픈 얘기들 아닌가 싶어 좀 캥겼음을 굳이 숨기지 않겠는데 근데 조금 이상한 건, 기독교적으로 골아픈 얘기를 담은 책 껍데기의 제목을 그림에서 보듯이 저렇게 발랄하게, 십자고상의 피흘리는 기독과 비교하면 발칙하기까지한 글씨체로 했다면 정말 오랜만에 우리나라 메이저 레이블인 문학과지성사가 미친 척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잇, 초장부터 결론을 내버리자. 문학과지성사에서 만드는 대산세계문학총서 가운데 제목을 저 글씨체로 뽑은 것들, 읽지마시라. 두 권 읽었으나 다 꽝이었으니 다른 것들도 비슷할 거 아닌가. 물론 이 발언에 나는 전적으로 책임지지 않겠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알량한 소신이 이러다 혹시 악플러로 고발당하는 거 아냐?

 이쯤에서 내 생활주변 실제 촌극 하나.

 난 유물론자.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그래서 종교는 명백하게 아편이라고 단정하는 사람이다. 근데 내 친한 술친구 하나가 천주교 환자다. 천주교 환자들은 (내 생각으론 그냥 미사에 참석해서 참회하고 용서받고 착하게 살면 되는 거 같지만) 미사 참여 말고도 신자들끼리 레지오regio 그니까 군대 용어로 연대 혹은 대대라는 이름의 집단으로 모여 실생활에서 서로 무지하게 가깝게 지내는데 단위조직이 한 열 가구 정도 되는 걸로 봐서 북조선의 5호감시제가 이 레지오를 본받은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 바, 레지오 구성원들이야말로 영혼의 형제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형제 가운데서도 좌장이며 돈도 많아 술도 자주 사주고 인심도 좋고 성격도 너그러워 존경받는 김모씨한테 결혼 적령기의 예쁘장한 딸이 하나 있었다. 딸도 당연히 모태신앙으로 낳자마자 세례를 받아 끊임없이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는 은혜를 입은 바 적다고 할 수 없었으나 천주께선 김모양에게 순결의 미덕과 함께 젊음의 욕망을 함께 주셨으니 (원래 기독교 전 시대부터도 신들이란 것들은 꼭 그렇게 애매한 선물만 주는 걸 김모양은 몰랐던 거디다) 어느날 문득 김씨가 딸의 뒤태를 보니 몇 달 사이에 엉덩이가 펑퍼짐하고 옆구리가 두툼해져 여지없이 주리를 틀어버렸다. 누구야? 어떤 놈이야? 이름이 뭐야? 아, 이름이 뭐냐는 수 세기에 걸친 질투의 물음. Il nome! 글쎄 누구야? 김모씨는 실제로 김모양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뭉텅 잘라버렸으나 결코 배부른 딸의 입에선 카시오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몇 주일 후 작년까지 자기 본당의 담임신부였다가 옆동네 성당의 담임신부로 옮긴 사제가 느닷없이 파계를 하고 김모씨에게 찾아와 자기가 김모씨의 사위임을 고백했고 김씨 가족은 그로부터 한달 후에 시골구석으로 이사를 했으며 또다시 한달 후에 김양의 결혼식이 저 먼 시골동네 성당에서 있었는데 평생 갈 거 같았던 영혼의 형제들 가운데 아무도 그들의 결혼을 축복하지 않았고, 김씨와 굳이 연락하려 하지 않았으며, 과거 본당의 담임신부를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다. 참 대한민국의 종교인들은 어느 종교를 불문하고 대단하다, 대단해.

 하지만 가톨릭의 본산이자 아직도 그 자리를 하다못해 로마에게도 양보하고 싶어하지 않는 스페인은 좀 다르다. 내 말 못 믿겠으면 이 책 읽어보시라. 특히 대한민국식 가톨릭에 몰두하는 분들에게는 권하고 싶다. 다른 분들껜 그냥 19세기 독자의 입장에서만 기막히다고 할 수 있을 뿐, 지금 독자들에겐 굳이 이걸 고전이라고 읽어야되나, 싶은 책을 굳이 권하고 싶지 않다. 책 내용은 내 생활 주변의 한 코메디를 소개한 걸로 너무나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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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역시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제일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서, 제가 읽어본 것들로만 추렸습니다. 예컨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개선문> 등은 대단한 작품이긴 하지만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어서 이 목록에선 빠졌습니다. 아울러 늘 우리가 얘기하는 걸작들, 오비디우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발자크, 위고, 뒤마 이런 양반들이 쓴 것도 제외했습니다. 괜히 입 아프잖아요.

 근데 '좋아하는 책'하고 '추천하는 책'하고는 다릅니다. 예를 들어서 추천해달라고 하면 빼놓지 않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넣지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번호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번호입니다.

 

 

 

32. 33. 귄터 그라스, <양철북>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가물가물하지만 확실한 건 재미있게 봤던 영화 <양철북>보다 훨씬 매력적인 작품이란 거. 책 읽고 꼭 독후감 쓰던 시기 이전 것이라 당시 느낌을 컨닝해올 수도 없지만 처참하기 그지없던 시기를 넘치는 은유와 해학과 그러나 무엇보다 그냥 덤덤하게 넘어가는 그림이 아주 강하게 남아있다.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엄마를 만들던 광경. 독보다, 독보.

 

 

 

 

 

 

 

 

 

 

78. 79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

 길고 긴 해안선은 가진 아름답고 매혹적인 나라. 요샌 축구까지 진짜 잘하는 나라 칠레.

 칠레 국민에 대한 헌사. 한 손엔 기관총을 들고 한 손엔 방송 마이크를 든 채 대통령 궁 옥상에서 피노체트의 주구들에게 벌집이 된 채 죽음을 맞은 아옌데 대통령을 위한 조종이자 쿠데타로 부르주아 독재를 이어갈 수 있다고 확신했던 우파 정치인에 대한 조롱.

 신화적 리얼리즘에 대한 찬란한 종언.

 

 

 

 

 

 

 

 

 

 

 

97. 98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미치광이 늙은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난 아직까지 이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이 책에서 문제적 작가 조지프 콘래드가 산적질까지 했었다는 게 나올 걸?

 

 

 

 

 

 

 

 

 

 

 

 

 

116. 117. 조지프 콘래드, <로드 짐>

 말레이 반도 쯤의 아시아 원주민 집단에 흘러든 '짐'이란 이름의 서양 백인 이야기. 같은 백인 이야기지만 조지프 키플링의 '아시아 내에서의 백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짐이 한 시절 저지른 불명예를 평생의 멍에로 여기고 사는데, 누구나가 스스로 원죄로 생각하는 과거의 불명예, 잘못, 실수 또는 이것들과 비슷한 과오를 짊어지고 사는 법. 그리하여 이 책에 더욱 더 큰 공명을 느끼게 한다.

 

 

 

 

 

 

 

 

 

 

 

139.140.141 존 바스, <연초 도매상>

 이 책에 관해선 정말 할 말 많은데, 다른 말 다 생략하더라도 이거 하나만 밝혀두자.

 겁나 재밌다.

 바스, 이 작자가 새로운 소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선언한 다음 과거의 작품이나 신화, 이딴 것들을 배배꼬아 즐겨 소설을 만들었는데 <연초 도매상>에선 목차를 18세기 소설들과 비슷하게 해놓고 요절복통, 잘못 읽으면 사레들려 마치 맹물 마시다 체한 상태 비슷하게 만들어 놓는다.

 근데 이걸로 끝? 천만의 말씀. 자세한 건 독자 리뷰에 써놨으니 참조하시압.

 

 

 

 

 

 



 

142.143 조지 엘리엇,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에잇. 여자 이름이 조지가 뭐야, 조지가.

 근데 참 이 사람, 묵직하니 좋다. 빅토리아 시대의 규범적인 작품. 더 이상 빅토리아스러운 건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빅토리아 시대. 치렁치렁한 드레스에 만날 사교 모임에 가면무도회, 신사 의식 (꼴값하는 이디스 워튼 왈, 찰스 디킨스하고 마크 트웨인은 작품 속에 신사들이 등장하지 않아 싫어요!)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방면의 시대의식. 강건하고 굳세며 근면한데다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여인들.

 동 시대에 이만큼 건강한 여류는 엘리자베스 케스켈 말고는 없다.

 

 

 

 

 

 

 

 

 

 

174.175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빨갱이 스타인벡이 쓴 백미. 1920~30년대 아메리카. 대공황과 가뭄에 시달리는 오클라호마, 네브라스카 촌놈들은 캘리포니아 드림 하나만 가지고 서쪽으로 죽음의 행군을 시작한다. 그러나 갖은 고생을 하면서 도착한 캘리포니아엔 부르주아에 의한 착취만이 기다리고 있고 가난한 인민들의 단결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스타인벡의 조합운동을 위한 소설은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근데 정작 사람을 감격시키는 건 오클라호마의 거친 땅을 닮은 존의 어머니. 그녀는 가장 견디기 힘들 때 또다시 생명을 발견한다.

 진정한 리얼리즘 소설.

 

 

 

 

 

 

 

 

 

186.187 조지프 헬러, <캐치 22>

 최고의 반전소설. 난 이 책을 읽은 다음 일단 헤밍웨이부터 우습게 알기 시작했다. 진정한 반전소설이면서도 사람 혼을 빼놓는 웃음의 만발.

 용감무쌍한 미군 비행사의 꿈은?

 놀랍게도 탈영이다.

 비겁하다고? 천만의 말씀. 어떤 전쟁이 죄악이 아니었던가.

 반전소설을 이토록 가비야운 터치로 쓸 수 있었던 조지프 헬러. 일어나 갈채하라!

 

 

 

 

 

 

 

 

 

195.196 마르그리뜨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누보 로망의 한 분파인 유르스나르가 이런 책을 썼다는데 깜짝 놀랐으며, 이 책을 위해 그토록 고집스럽게 고증해나갔다는 것에 경악했고, 무엇보다 한 찬란한 인간의 일생을 그리도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조망했다는 데 대하여 유르스나르를 숭배하지 않을 수 없다.

 하드리아누스가 양세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남기는 회상록. 여기에 곽광수 선생의 옛스런 번역도 멋있기 짝이 없다.

 난 내 아이들에게 내 삶을 통하여 이야기해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사주려 한다.

 

 

 

 

 

 

 

 

 

 

207. 글로리아 네일러,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여자들>

 흑인, 무학의 여인들이 20세기 중반의 미국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색. 거기다가 동성연애자라면?

 세상을 살기 위한 모든 악조건을 갖춘 여자들이 한 아파트에 입주해서 벌어지는 생활상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린 수작. 피부색과 젠더와 성적선택에 관한 차별. 책은 비록 이의 극복을 위한 어떤 방향도 제시하지 못했으나 적어도 당시 입장에선 획기적일 수도 있게 문제제기를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과연 무학의 흑인 여성들은 브루스터플레이스의 아파트 바로 옆에 쳐저있는 완강한 콘크리트 벽을 무너뜨렸을까? 당신이 확인하시라.

 

 

 

 

 

 

 

 

 

208. 치누아 아체베,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식민주의를 이야기할 때 조지프 콘래드와 함께 항상 거론되는 인물. 근데 주로 아체베가 콘래드를 씹는 방향으로 등장하며 이때 콘래드의 작품은 위에서 얘기한 <로드 짐>이 아니라 <암흑의 핵심>이 보통이다.

 근데 내가 보기엔 치누아 아체베도 식민현상을 그저 보여주고만 있고, 조금 세게 얘기하면 폭로하는데 그치지 결코 식민의 해소를 위해 투쟁하거나 하다못해 반식민을 위해 조직하지도 않는다. 주로 식민이 현지인에게 어떤 형태로 침입해서 어떻게 피해를 입히고 있는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뿐. 그건 아체베의 삼부작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신의 화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아쉬움이다.

 

 

 

 

 



226.227 잭 케루악, <길 위에서>

 말 하면 뭘해. 비트 문학의 선구.

 개판무인지경의 청춘들. 재즈와 블루스 그리고 히치하이킹. 거기다가 좀 보탠다면 무책임한 차량절도와 임신. 다 합쳐 대책없는 젊음의 분출과 무책임. 의미없이 치열하고 의미없이 절망적인 질주.

 그러나 거의 다 그렇듯이 결국엔 출발한 곳으로의 회귀. 그래서 슬픈.

 

 

 

 

 

 

 

 

 

 

 

229. 카울로스 푸엔테스, <아우라>

 아, 정말 사랑스런 아몰랑주의 소설. '환상소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야지. 더하기 아름다운 문장들.

 몽환 속에 빠진 젊은이. 마주치는 여인들. 사랑과 섹스. 그로데스크한 낡고 어두운 건물에서 벌어지는 아스라한 분위기.

 난 이 작품 하나 읽고 단박에 푸엔테스의 다른 책 <의지와 운명>도 읽어버렸다.

 

 

 

 

 

 

 

 

 

 

 

244.245 토마스 만, <파우스트 박사>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아르놀트 쇤베르크를 모델로 한 작품이란 걸 알아챌 수 있다.

 천재 작곡가 레버퀸이 자신의 음악과 (음악 속에 융해되어 있는)철학을 완성하기 위한 지랄발광. 어떻게 보면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주인공 장과 비슷한 부류인데 더 지랄 같은 성격의 레버퀸. 근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롤랑이나 만이나 똑같이 쇤베르크를 모델로 쓴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 거 같다. 그럼에도 쇤베르크는 유독 만한테만 태클을 걸었는바, 만은 괘씸하게도 12음 기법 비슷하게 흉내까지 내서 그런 듯.

 음악에 관심 없는 분한테 추천하면 두고두고 욕먹을 소설.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사랑할 때와 죽을 때>

 <개선문>은 내게 일생의 책이었는데 옛적에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민음사로 읽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사실 책도 아닌데 그건 전적으로 개판무인지경 비교불가 열린책들이 만들어서 그런 거고. 하여간 이 세 소설은 인생 살면서 꼭 읽어봐야 할 책들.

 근데 정여사는 나 소싯적에 왜 <사랑할....>을 재미없다고 그렇게 얘기하셨을까? 자라나는 청소년한테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 것. 상처받음.

 진짜 멋있고 진중한 반전소설. 위에 쓴 <캐치 22>와는 또다른 반전 철학을 진지하고 아름답게 그린다.

 

 

 

 

 

 

 

 

 

 

273.274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큰아이가 하는 말이 "<유리알 유희>에선 단 한 번도 유리알 유희의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정말? 아니다. 나온다. 근데 그걸 발견하지 못할 뿐.

 헤세 소설의 백미. 누군들 <데미안> <지와 사랑> <시타르타> <황야의 이리>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지 않고 청춘을 보냈을까 싶지만, 세상에나, 회사 직원한테 물어보니까 읽기는커녕 책 제목들도 모르더라. 오호 애재라.

 음악, 철학, 미학에 관한 장대한 서술. 엉덩이 질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즐거이 이 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나, 아니라면 아예 시도도 하지 말것.

 

 

 

 

 

 

 

 

 

339. 응구기 와 시옹오, <피의 꽃잎들>

 가리봉동에도 응국이 사는 거 아시지? 농담이다.

 진정한 신흥국의 문학. 식민에서 벗어나 독립을 했을지언정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식민인 상태. 이름하여 반식민半植民. 대한민국에서도 1980년대까지 반식민에 대한 논의가 매우 치열했었는데 그걸 제대로 문학화한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몇 십년이 지나 대한민국이 아닌, 한국은 이미 반식민을 극복했다고쳐서 꼭 반식민 문학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하여간 한국이 아니라 케냐 출신 작가가 쓴 소설에서 제대로 된 반식민半植民 소설을 읽는 기회가 됐다.

 정말 잘 썼다. 하긴 내가 뭐라고 늘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사람이 쓴 걸 가지고 잘 썼네 아니네 육갑을 떠느냐마는, 내 수준에 정말 잘 맞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으... 써놓고 보니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빠졌다. 그냥 내비둔다.

 

 

 

 여때까지 몇 개의 작품을 언급했는데, 이제 시간이 된 거 같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약 230권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가지고 있고 그걸 싹 다 읽었는데, 그 가운데 내가 제일 절절하게 동감하면서, 가슴이 정말로 막 쓰라린 것을 느끼면서까지 처절하게 감동한 작품. 바로 이것.

 

 

69.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피를 토해 쓴 백조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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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0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말씀하신 것 중에 제가 읽지 않은 책이 꽤 되는군요. 특히 흑인 문학과... 저쪽 남미 문학이요. ㅋ 리스트로 적어놓고 차근히 꼭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17-03-09 15:43   좋아요 0 | URL
오오... 위에서도 써놨는데요, 이거 추천은 아닙니다. ㅎㅎㅎ 읽어보신 다음에 후회하셔도 책임 안 집니다. ㅋㅋㅋ

비로그인 2017-10-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시작만 했는데;;) 참고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Falstaff 2017-10-23 09:22   좋아요 0 | URL
시작이 반입니다. 힘내세요!

수많은 고전을 언제 다 읽지 2020-08-30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추천감사합니다~ 구매목록에 잘 저장해둬야겠어요

Falstaff 2020-08-30 07:46   좋아요 0 | URL
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유부만두 2022-09-07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명절 직전인데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시작해버렸어요!!! 아, 정말 재미있어요. 이걸 어쩌죠???

Falstaff 2022-09-07 21:4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어떻게 하긴요 뭘, 읽으셔야지. ㅋㅋㅋㅋ 팔잡니다.
 

전 그냥 일반적인 독자입니다. 그냥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좋은 것도 있고 언짢은 것들도 있고, 심지어 세계적인 명작 대작 걸작의 반열에 오른 책들도 정작 읽어보면 저하고 극적으로 맞지 않아 책값 아까운 적도 있습니다. 근데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이란 타이틀을 달고 찍은 것들이라면 출판사의 핵심부서에서 대한민국의 국민들에게 한 번 읽어보십사 권유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가운데서 전적으로 제 취향상, 기호상 맞지 않아 도무지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지 못하는 것들의 리스트입니다.

 왜 이런 리스트를 쓰는가 하면, 추천하는 책들의 정보만 넘쳐흐르지 반대의 것은 보질 못해서 그렇습니다. 비추천 리스트도 독자들에겐 유용할 수 있는 정보란 것이 제 생각인데 그렇지 않나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첫번째로 우리나라에서 세계문학전집의 가장 많은 스펙트럼을 자랑하는 민음사 세계문학을 골랐습니다. 다만 제가 읽어본 책들에 한정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번호는 시리즈의 번호와 같습니다.

 

 

6.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핀의 모험>

 

 어려서 숱하게 읽었으나 한 번도 완역을 본 거 같지 않아 선택해 어른이 되어 읽어보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악동들이 얼마나 악마와 비슷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 외엔 별로 없다. 하는 짓이 동양의 어린이들하고 서양의 어린이들하고 많이 다른 거 같다.

 괜히 읽었다.

 

 

 

 

 

 

 

 

 

 

 

21.22,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아무리 세계 최고의 명작이라도 나하고 맞지 않으면 개떡이란 진리.

 이거 정말 재밌나? 왜?

 이거 정말 교훈적인가? 왜?

 내 무식한 질문에 실소 및 냉소하실 분 무척 많은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랴. 평양 감사도 내가 싫으면 싫은 거. 난 <파우스트>를 포함해 모든 괴테를 이 목록에 올려놓고 싶다.

 혹시 해서 괴테 하나 더 읽은 것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마찬가지.

 

 

 

 

 

 

46. 조지 오웰, <카탈로니아 찬가>

 

 프랑코 개자식에 반대해서 스페인 내전에 뛰어든 거 까진 좋았는데 오웰의 논점은 어떻게 프랑코 군대를 극복하고 혁명을 쟁취하는가에 있지 않고 공산주의의 내분을 밝히는 데 있다. 더 괘씸한 건 노골적으로 전쟁을 지지한다는 점. 세상에 정의로운 전쟁이 어딨나. 추악하지 않았던 전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는 내 신념에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의 조지 오웰. 내 눈엔 조지 오웰이나 스탈린이나 거기서 거기다.

 

 

 

 

 

 

 

 

 

71. 가오싱젠, <버스 정류장>

 

  중국인 쓴 현대희곡이라서 관심을 갖고 읽어본 바, 기본적으로, 재미없다. 희곡 안에 음악적 화성을 집어넣으려고 한 거 같은데 성공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뭔 얘긴가 하면, 음악극에서 이중창, 사중창, 팔중창, 합창 같은 걸 연극에 도입하려 했던 건 아닌가 싶다는 뜻. 언어에 사성체계가 있는 중국어일 경우와 그게 없는 한국어 사이의 간극 때문일까? 난 동의하기 힘들었다.

 

 

 

 

 

 

 

 

 

 

76. 노발리스, <푸른 꽃>

 

 서양 소설을 읽어보면 <푸른 꽃>이 <오디세이아> 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인용된다. 서양인에겐 질풍노도, 찬란한 낭만주의의 시발점(발음주의!)이 대단히 중요한 거 같은데 정작 읽어보니 뭐 별 재미도 없고 격동하는 청춘의 염통도 뭐 그냥 그렇고, 무엇보다 나서부터 지금까지 주로 문장이 "...다."로 끝나는 언어권에서 살아 그런지 공명도 없었다.

 

 

 

 

 

 

 

 

 

 

109.110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이것도 중1 때 읽고는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봤더니 개떡. 빅토리아 시대 초기에, 지금부터 170년 전에 쓴 건데 당시 수준으로 봐서는 모르겠으나 지금 동아시아 독자가 읽기에는 좀.

 이 책 속의 등장인물을 다시 주인공으로 한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라면 내가 즐거이 추천을 하는데 조건이 <제인 에어>를 먼저 읽어본 사람에게. 그래서 이걸 추천한다는 거야 뭐야? 하시면 좀 그렇지만 하여간 이 작품 하나만 가지고 말하자면 적극적 비추.

 

 

 

 

 

 

 

 

 

150.151.152 단테 알레기에리, <신곡>

 

 지옥의 입구에 이렇게 써있다.

 "이곳에 들어온 자, 희망을 모두 버리라."

 이 책을 집어든 자, 희망을 모두 버리라고 하고 싶다. 서양 운문을 읽는 거 자체가 대단히 힘든 일이며, 더구나 기독교하고 전혀 친하지 않은 내가 읽기엔 더욱 힘들었던 일이었고, 그것도 끝까지 읽느라 하마터면 지옥구경을 할 뻔했다.

 팍 때려주고 싶은 인간 있으면 점잖게, 이거 한 번 읽어봐, 그래야 지성인이지, 하고 권해주고 싶은 책.

 

 

 

 

 

 

 

 

158 노먼 킹슬리 메일러, <밤의 군대들>

 

 저널리스트. <밤의 군대들>을 써서 퓰리처 상을 받은 작가.

 미국인들이 자국 내에서 얼마나 완강하게 집회 시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는지를 밝히는 책. 전적으로 기자의 입장에 의해 썼다. 근데 대한민국이 유구한 근대사를 통틀어 국민의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탄압했는지 경험해보지 못해 이 책에 퓰리처 상을 줬다고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책.

 천상 신문기자. <벌거벗은자와 죽은자> 역시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건 재미나 있지, 이건 뭥미?

 

 

 

 

 

 

 

 

 

185. 앙드레 브르통, <나자>

 

 초현실주의 작품.

 우선 나는 초현실주의 '문학'을 싫어한다. 초현실주의 회화나 영화 같은 건 즐겨 보지만 도무지 브르통을 대표로 하는 이 계파가 쓴 책은 못 읽어주겠다.

 혹시나, 해서 사봤더니, 역시.

 

 

 

 

 

 

 

 

 

 

 

189. 장 폴 사르트르, <말>

 

 이거 굳이 돈 들여 책 사서 읽으면서까지 사르트르의 잘난 척을 꼭 들어줘야겠어?

 누군가 이렇게 말하더라.

 "20세기가 사르트르인줄 알았더니 사르트르가 20세기더라."

 그럼 난 20세기 사람이 아님을 인정한다.

 사르트르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난다면 그에게 딱 하나를 묻고싶다.

 "도대체 뭘 주장한거야?"

 

 

 

 

 

 

 

 

 

263. 잉에보르크 바흐만, <말리나>

 이 책 읽느라 죽을 똥을 쌌다.

 내가 대단한 것이, 적어도 다른 사람한테 얼마나 인내심이 강한 인종인지 증명하려면, 이 책을 무려 완독, 끝까지 읽었다는 거 하나만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궁금하셔? 그럼 시도해보시든지.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픽션들>

 책 좀 읽었다 하는 사람들한테 비웃음 받기 가장 쉬운 것 가운데 하나가 보르헤스 책을 읽고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다, 안 좋다, 뭐 이런 얘기 하는 거란 것쯤은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읽으면 읽을 수록 오리무중인 것을 어떻게 좋다고 하나.

 난 일찌기 보르헤스를 필두로 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소위 말하는 환상문학을 하는 일단의 작가들을 "나몰랑 주의"라고 일컬은 바 있으며 지금도 그렇다. 보르헤스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 깊은 늪 속에 빠지는 느낌.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다른 읽을 것도 차고 넘치는데 이런 얇은 책 한 권 때문에 괜히 뇌를 괴롭힐 생각 없다. 가뜩이나 잘 돌아가지도 않는데 잘 관리하면서 남은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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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3-09 1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집어든 자, 희망을 모두 버리라고 하고 싶다‘ ㅋㅋㅋ 이 포스팅 제목을 이걸로 삼으면 딱이겠는데요! ㅋ

괴테의 모든 작품을 저는 올리고 싶습니다. 정말 지겨워요. 전 괴테 작품 싫습니다.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 편력시대> 다 구리고요. <이탈리아 기행>도... 아 나참. (근데 왜 또 다 읽었는지 ㅋㅋ)
가오싱젠 희곡 ㅋㅋㅋㅋ 와.. 이토록 짧고 가벼운 책을 이토록 끝마치기 어려울 줄이야. 아직 다 못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사르트르의 <말> 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잘난척 바가지
<말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결국 똥싸다 말았어요. 인내심 최고이십니다. 전 읽다가 포기..... 그냥 도서관 반납했어요. 다시 대출할 일은 절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지 않은 게 천만다행 ㅋㅋㅋ
초현실주의 저도 정말 싫어해요. 언제나 보르헤스를 읽을지? ㅋㅋㅋ

Falstaff 2017-03-09 12:0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다행스럽게도 잠자냥 님하고 제 취향이 비슷한가봅니다. 이거 쓰면서 조금은 용기가 필요했었거든요. ㅋㅋㅋㅋ
근데 답글 읽어보니 완전 우문현답을 해주셨네요. 진짜 재밌어요. ㅋㅋㅋㅋ
잠자냥 님도 비추 리스트 작성을 좀 해주셨으면 쇤네한테도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말씀입죠.

물감 2017-03-09 17: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런 까는 글 너무 좋아합니다!
저도 한 까칠 하는 성격이거든요 ㅎㅎ 잘읽었습니다 😀

Falstaff 2017-03-09 20:40   좋아요 1 | URL
잘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 이거 까는 글... 아닌데요. 하여간 난 이 책이 싫다,는... 아, 그게 같은 말 비슷하긴 합니다. ㅎㅎㅎ

싱클레어 2019-05-1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리나>에 대한 평을 살펴 보다가 이 리스트를 봤습니다. 민음사세계문학전집을 저도 한 100권쯤 읽어서 여기 리스트 중에 반 이상은 읽었는데 <카탈로니아 찬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 의견과 정말 일치합니다. 당연히 주관적인 취향이 반영된 것이라서 이게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저와 취향이 거의 흡사한 분을 만나서 굉장히 신뢰가 되네요. 저도 괴테 할아버지 책 매우 지루했었고, 사르트르의 <말>을 누군가는 거의 최고의 책으로 꼽았지만 저한테도 잘난 척으로밖에 안 들렸고, 보르헤스가 위대한 작가인 것은 알겠으나 남미의 초현실, 환상주의 문학 안 맞습니다. 덕분에 <말리나>는 믿고 거르겠습니다 ^^

Falstaff 2019-05-13 09:14   좋아요 0 | URL
동의하신다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이 글 쓴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가서 새로 업데이트를 해야 하겠는데, 아시다시피 이런 비추 리스트 같은 글은 함부로 쓰기가 쉽지 않군요.
<말리나> 말고 같은 이가 쓴 <30세>는 그나마 읽을 만했습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옵니다. 근데 바흐만 등 골아픈 47세대 말고도, 본문에 썼다시피 읽을 책은 무지 많잖아요? ^^;

leftclub 2019-06-0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고 나의 얄팍함을 탓했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게 아쉽네요...강추합니다도 좋지만 비추입니다도 자주 볼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Falstaff 2019-06-01 16:02   좋아요 0 | URL
공감하시는 거 같아 반갑습니다.
근데 지극히 주관적인 평이고요, 거기다가 제가 완벽한 아마추어라는 점이 걸립니다.

내로남불이니 2021-04-1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나라에 밤의 군대들 같은 소설이 없는데 어떻게 상을 주겠어-요?
아마추어가 아니라 그냥 땡깡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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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보는 일기장에 자기 하고 싶은 말 아무거나 써놓는 애덜 보면 꼭 ‘주관적‘ 이라고 사족 붙이더라. 내가 남 까는 것 괜찮고 내가 남한테 까임 당하는 건 싫고? (근데 지극히 주관적인 혼잣말이고요,^^ )

Falstaff 2024-05-12 16:15   좋아요 0 | URL
하신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쓴 거 까셔도 좋습니다.

오진영 2024-05-12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밤의 군대들은 저자가 직접 참여한 1부 베트남 반전 시위와 2부 언론에서 보도하는 역사 두부분으로 나뉘어서 쓴 글입니다. 카탈로니아 찬가(11장에서 언론이 다루는 역사를 직접적으로 비판)와 밤의 군대들(2부에서 전쟁을 다루는 언론을 기술)은 언론이나 승전국 혹은 역사와 무관한 거대한 나라가 역사를 편향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현장과 언론의 갭을 통해 서술하는 책입니다. 최근 나오는 가짜뉴스의 편향을 봤을때 그 의미와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죠.

르포문학을 싫어하시는 건 알겠으나 르포문학은 재미로 읽는 책이 아닙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직접 현장에서 다룬 사실적 역사이고 무심고 지나칠 수 있는 역사의 순간들은 사람의 눈으로 다룬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오웰은 작품 안에서도 자신의 기술마저도 왜곡이 될 수 있기에 의심하라고 적고 있지요(후기에는 씻지못해서 냄새나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데다 죽음의 공포와 매순간 마주하고 있었지만 가치있었던 순간이라고 적는데.. 그건 참전한 사람들만 적을 수 있는 내용인거죠). 르포문학을 단순하게 훑어보고 재미와 그 가치를 폄훼하는건... 옳지 않은 것 같네요.

Falstaff 2024-05-12 16:14   좋아요 0 | URL
선생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옳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