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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어진 하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4
크리스타 볼프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크리스타 볼프가 동독에서 이 책 <나누어진 하늘>을 쓰고 출간한 해가 1963년. 같은 토끼 해 자유 대한민국에선 놀랍게도 식민모국의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다카키 마사오가 원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박정희로 다시 개명하고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복무 중 남조선노동당원으로 체포돼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한국전쟁의 와중에 승승장구, 초보 민주주의 공화국의 어지러운 틈을 타 와장창 쿠데타를 일으키더니 자기 손으로 별 네개를 달고 제대를 해 민주공화당 당수에 올라 선거를 통해 제 5대 대통령에 취임, 두번째 해를 맞는 제 1차 경제개발계획에 숨가쁘게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누어진 하늘>을 읽어보고 단언하건데, 1963년 빨갱이 나라 동독은 자유 대한민국보다 훨씬 사상과 표현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던 거다. 25년 후 독일이 통일될 수 있었던 건 동과 서가 정치적으론 비록 수많은 간첩을 파견하고 온갖 공작을 자행했겠지만, 독일민족 특유의 혈연과 이에 따른 동질감이 이어진데다가 상대적으로 매우 폐쇄적일 수밖에 없는 동쪽 독일에서조차도 이런 책을 발간할만큼 충분한 표현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자니, 슬프게도 한반도의 남과 북은 아직 구호 말고는 통일을 위한 아무런 전조가 보이지 않는다.
쓸데없이 길게 머리말을 썼는데, <나누어진...>은 동쪽 독일에서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패전 후 약 15년이 지난 사이 서쪽 독일이 동쪽보다 월등하게 발전했고 당연히 저쪽 동포들이 훨씬 여유롭게 살고 있으며 이에따라 또다시 당연하게 문화적, 학문적 우월성도 확보하고 있다는 걸 분명히, 여러번, 일반 동독 인민까지 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밝힌다. 위에서 같은 해 한국의 상황을 얘기한 건 같은 시기에 공산주의 국가 동독보다, 단언하건데, 파시스트 비슷한 대통령이 지배 또는 통치, 부드럽게 말해, 다스리고 있던 대한민국보다 훨씬 풍족한 자유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의 학문과 경제가 남쪽보다 우월했던 게 사실이라는데, 이 뻔한 사실을 북한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에 와서야 일반적으로 알려졌고, 파시스트와 그의 아들들, 이름이 뭐라더라 전두환이라던가, 하는 파시스트 적的 아들 대까지 와서도 북이 남보다 더 잘산다던데? 했다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을 일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사실이 무엇보다 부러웠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도래하니 그 새 내 청춘도 몽땅 사그러지고 말았던 거다. 그래서 위에서 한 얘기 지금 또 중언부언. 하지만 이런 사실이 책의 소감으로는 어울리지 않아서 더 말하지 않겠다. 뭐라? 할 얘기 실컷 해놓고 더 안하겠다 하느냐고? 어때, 쓰는 사람 맘이지.
동쪽 독일의 한 촌구석에 열 아홉 먹은 참한 아가씨가 (우리나라로 치면)고등학교 졸업 후 보험회사 출장소에서 한가하게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가씨 앞에 화학을 전공한 이학박사가 등장하면서 사건은 벌어진다. 나이 차가 좀 나긴 하지만 사랑엔 국경도 없는데 그까짓 십년 남짓한 나이 차 때문에 연애를 못한다면, 서태지, 이병헌, 서경석, 이승환에다가 요즘들어 마동석까지 숱한 연예인들, 장가 한 번 못가고 다 총각귀신됐게? 나이많은 이학박사가 어떻게 열아홉 순정을 꼬드기냐 하면, 넌 똑똑하니까 대학에 가야지? 그럴려면 먼저 (공산주의 나라니까) 노동현장 경험이 있어야 하는 거, 몰랐지? 나하고 같이 살자. 낮엔 공장 다니고 밤엔 조금씩 공부하다가 공장 주임이 추천서를 써주면 대학에 가는 거야, 어때? 그리하여 열아홉 순정은 박사의 집에서 시부모 모시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살게 된다.
근데 이딴 얘기만 나오면 그건 전후 독일 얘기도 아니다. 먼저 이학박사 가족간의 갈등이 툭 튀어나온다. 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앞 세대로 둔 천형을 짊어진 독일민족. 문학 작품 속에서도 그들의 반성문은 숱하게 나오는데, 이 책에선 박사의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나치 친위대의 골수에다가, 나치 하에서 출세를 위해 아버지로서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박사에게 저질렀다고 설정했다. 자, 이해하자. 박사가 가족 문제로 전혀 존경, 존경? 존경은커녕 경멸해 마지않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밖으론 자신이 만든 기계장치가 학문적으로 전혀 인정받지 못해 자존심 팍 상하고, 여기에다가 은근히 열아홉 순정과의 사랑의 농도도 좀 희석되는 거 같고, 해서! 서베를린으로 토껴버린다는 전제. 왜 상세히 이런 얘기를 다 알려드리느냐 하면, 비교적 책의 앞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그럼 책의 뒤는? 뒤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나누어진...>은 한 개인이 동과 서로 나누어진 하늘 때문에 치명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 그걸 치유하는 과정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과정이 독자로 하여금 심장이 저릿저릿하게 한다는 거, 이거 만 얘기해도 이 책을 진짜 읽어보실 이유는 되리라 믿는다. 안타까움을 독자가 계속 갖게 하는 책. 힘들게 유지해온 사랑까지 동과 서로 쪼개버리는 세계에 대한 통곡.
그.러.나… 역자 전영애. 설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괴테 학회장을 역임한 비까번쩍한 이력을 자랑하듯(남산에 있는 괴테 하우스 1977년이던가 78년이던가, 오픈하는 날 직접 가봤다. 독일에서 공부한 장혜원 선생이 베토벤의 <발트슈타인>을 연주했다. 거기 대빵이었다는 말씀은 아니겠지?) 깔끔한 번역이 눈에 띄는데, 시금치 동생, 근데, 어째 좀 진도가 팍팍 나가지 않는다. 작가 크리스타 볼프가 전형적인 여류작가답게 여성의 섬세한 심리의 끈을 조밀하게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라 이런 소설을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가며 읽을 때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가 이상하게 문맥에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이럴 경우는 거의 대부분 번역문에 문제가 있는 법이다. 한 번 읽어보시라. 좀 길게 인용하겠다.
"'……… 이 일이 가늠구멍이며 가늠쇠 너머 살아있는 표적에 겨누어 총을 쏘는 것보다는 목공일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지. 믿을 수 있겠어?' 그러나 그가 그 사실을 이해했다면 지나칠 것 없다는 거야 그녀도 분명히 인정 하리라고, 하지만 그가 전쟁에서 돌아오자 곧장 서른여섯 살 나이로 당에 가서 입당신고를 할 이유가 불분명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거라고.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충직한 마음으로 오기만 했다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느냐는 끈질기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106쪽)
"그의 이러한 실추에는, 온 국민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해왔던 그라는 한 사람에 대한 불의 못지않게 국민전체에 대한 정의가 결부되어 있었다." (108쪽 : 썅 '결부'란 얼토당토 않게 어울리지 않는 단어 때문에 얼마나 헤맸는지!)
내가 내린 결론은 전영애가 단문의 경우는 매우 깔끔하게 번역을 하지만, 크리스타 볼프가, 이이 말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번역할 경우에도 마찬가지겠으나, 번역해야할 문장이 길어지기만 하면 헤매는 거 같다. 숱한 문장지도 책에선 문장을 길게 쓰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난 한 번도 그딴 책 안 읽어봐서 모르겠다. 내 문장도 상당히 긴 편에 속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할 수 없다. 박상륭과 이문구를 읽은 다음부터 이렇게 고정되어 버렸다) 그리고 긴 문장의 글은 (제대로)쓰기도 힘들뿐더러, 번역하기는 더욱 힘든 거 같다. 긴 문장으로 악명높은 작가들, 조이스, 프루스트, 포크너, 이 사람들이 쓴 작품을 읽고 쉽다고 얘기하는 사람을 아직 보질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전영애 선생, 비문이나 적어도 비문에 가까운 번역을 하시면 돈 주고 책 읽는 사람 기분 별로지. 이 역자의 글이 비문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두개의 경우 특히 첫번째 문장들은, 같은 내용을 한 삼십번 읽어봐야 했는데 물론 첫째가 내 IQ에 문제가 좀 있어서 그랬겠지만, 앞으론 보다 더 친절한 번역을 해주시면 좋겠다.
기억하시라. 단어 하나 때문에 문장을 서른 번 읽는 IQ 낮은 독자도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