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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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블로 네루다. 공산당 소속의 칠레 민족시인.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외교관.

 1970년 공산당 대통령 후보 지명. 좌파 연합으로 통합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 지원, 당선. 프랑스 대사 임명. 대사직 수행 중 노벨 문학상 수상. 지병으로 자택이 있고, 이 책의 무대가 되는 이슬라 네그라로 이주.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 쿠데타 군에 의하여 아옌데 대통령, 관저에서 총격전 중 사망. 지병 악화 및 쿠데타 후 기타 사유로 산티아고 소재 병원으로 이송, 9월 23일 사망.

 네루다의 생전 모습. 저 위 책 표지가 생전에 찍은 것. 책 내용으로 미루어 1952년과 70년 사이 짱박혀 활발하게 시를 쓰던 이슬라 네그라 자택인 것이 분명함.

 마리오 히메네스. 어부의 아들. 뺸질뺀질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음. 대를 이은 어부로 살기가 죽기보다 싫음. 돈을 벌어야겠고 뭐 편하게 할 거 읎으까? 눈알을 뒹굴뒹굴 굴리다 공산당원 우체국장, 우체국장이라기 보다 동네에 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네루다 씨 말고는 거의 없는 관계로 진짜 할 일 없는 동네 아저씨에게 접근, 우체부로 취직. 단 한 명, 네루다 씨를 위한 우체부가 됨. 전임자들이 계속 바뀐 건 고객이 오직 한 명이라는 거 때문. 느므느므 심심해서. 때마침 동네 유일의 카페 여사장의 고명따님 베아트리스가 눈에 띔. 소설 목적상 당연히 한 방에 눈이 돌아감. 카페 여사장은 마리오에게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고 일갈함. 궁리궁리하다가 네루다 씨에게 고민을 풀어달라고 조르기 시작함.

 "선생님, 부탁이 있는데요."

 "뭔가?"

 "저 아래 주막 있잖아요? 거기 베아트리스란 쥔집 딸이 있거든요."

 "아, 그 아가씨한테 뻑 갔군 그래?"

 "어떻게 아셨대요?"

 "목소리와 얼굴 색과 눈동자의 떨림에 다 써 있어. 근데 왜?"

 "어떻게 고백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말씀인데 시 하나 써주세요."

 "시?"

 "예, 시."

 "아이 씨!"

 "씨 말고 시요, 시. 시인이 시 하나 얼른 못 써주셔요?"

 "자네 시가 뭔줄 아나?"

 "알면 쇤네가 지금 이 지랄을 할까요? 그게 뭔데요?"

 "메타포야."

 "메타포요? 100 그램에 얼마나 줘야 사는 거예요?"

 "안 팔아. 왜냐하면 세상 도처에 있거든. 그것만 발견하면 다 시인이 되는 거지"

 "그럼 어디 있는데요?"

 "네 마음 속에. 예를 들어 이런 노래 들어봤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염병을 한다고 울어제꼈나 보다.'"

 (마음 속으로) "지랄하고 자빠졌네."

 이런 대화가 시인, 우체부 사이에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지고 다시 이루어지면서 그들 사이엔 잔잔하고 따뜻하다가 드디어 슬그머니 물결치는 우정이 싹튼다.

 이 책에서 당시 칠레의 시대적 배경과 비극적 현대사와 정의의 종말 같은 것들을 얘기한 서평이나 책소개 같은 건 무지 많다. 난 그거 빼고 얘기한다.

 몇년 후 노벨상을 받을 칠레의 국민시인이자 사랑의 시인이자 민중시인, 저항시인이면서 당대 가장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 계관을 쓸 거구의 60대 노인과, 구원의 여신 베아트리스와 사이에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던 순박한 청년이 서로의 우정을 잊지 않으며 함께 세월을 보내는, 아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맺음. 정말로 따뜻하고 독자를 미소 짓게 만드는 인간 간의 사랑. 이 하나만 찾아 읽어도 진정으로 충만한 독서를 했다고, 만족할 수 있다. 무지렁이 어부의 아들을 시인으로 만든 대시인의 자연을 닮은 가르침.

 건조한 세상을 살아가는,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인류에게 일독을 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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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07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때문에 왠지 읽어보지도 않고 읽은 느낌이라 ㅋㅋ 아직 안 읽어봤는데 이 글 보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Falstaff 2017-06-07 14:42   좋아요 0 | URL
명작 혹은 걸작의 반열이 아니라 그냥 ‘좋은 책‘이라고 분류할 수 있습니다. 참 잔잔하게 웃음짓게 하는 글이더군요.
 
내 생명 앗아가주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
앙헬레스 마스트레타 지음, 강성식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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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사만큼 서로 비슷하고 복잡한 건 별로 없으리. 숱하게 싸우고, 암살하고, 인민들을 학살하고, 쿠데타 벌어지고 등등. 하긴 라틴 아메리카에 국한할 것 없이 20세기 들어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진 공통적 정치 현상이다. 유럽의 영향을 받아 조금 일찍 깬 라틴 아메리카에 이어 한국, 필리핀 등 신생국들, 그리고 중부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들까지.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대가리 터지게 쌈박질하고 죽이다가 드디어 권력을 잡은 인간들이 댓가로 조금 편하게 사는 건 크게 인심 써서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고래 싸움에 동시다발적으로 굶어 죽고, 학살당하고, 태 묻은 고향을 등지고 할 수밖에 없던 인민들은 어쩌냐고. 책을 읽으며 나라는 다르지만 라틴 아메리카의 독재자와 권력 투쟁을 다룬 많은 작품들, 아스투리아스의 <대통령 각하>, 요사의 <염소의 축제>, 아옌데의 <영혼의 집> 같은 것이 떠올랐고, 심지어 멕시코 북부 농민 학살을 연상시키는 대목에선 요사의 <세상 종말 전쟁> 까지 같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 참 태생이 중요하다. 인간 사이에 차별은 절대 있어서 아니된다고, 태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아무리 주장해봤자, 콩고 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소년병사로 태어나는 거 보다 노르웨이 중산층에서 태어나는 것이 훨씬 좋을 거 같은데? 이 책의 무대인 멕시코라도 열다섯 살에 장군의 아내가 되는 것이 아이 아홉을 낳았지만 낼 모레 정부군 또는 혁명군의 총알이 왼쪽 허파를 관통할 예정인 여인보다 훨씬 더 좋은 거 같은데? 평등? 여보, 세상에 평등이 어딨어.

 책을 읽고 생전 안 하는 버릇이 책의 뒤편에 있는 역자 서평 읽는 거. 어떻게 시간이 좀 남아서 이 책에 달린 역자 서평은 읽었다. 다분히 통속소설 같은데 좋은 평을 받아 여기저기서 상을 받고 베스트 셀러의 계관까지 썼다는 취지. 그건 역자의 평이고, 이게 어디 통속 또는 대중소설이야. 그리고 통속 또는 대중 소설이 뭐 어때서. 순소설과 대중소설을 가르는 경계를 당신이 알아? 순소설이건 대중소설이건 읽어서 나 좋으면 그만이다. 칼라스가 좋을 때도 있고 이미자가 좋을 때가 있는 거 같이.

 그렇다. 열다섯 살 먹은 애가 자기보다 나이가 스무 살도 넘게 차이가 나는 중년의 사내를 끔찍하게는 아니고 그냥 어딘지도 모르게 끌려서 따라가 딱지를 뗏다. 여자에 관해 워낙 내공이 깊은 사내라 딱지를 떼도 아프진 않았는데 정말 뭔지는 모르지만 좋을 거 같기도 하다가 말았다. 다음날 아무리 생각해도 '좋을 거 같았다가 만 느낌'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궁금해 견디지 못하겠는 거다. 그래서 찾아간 사람이 점쟁이 집시 여인. 열다섯 살 카탈리나가 집시 여인에게 궁금증을 털어 놓고 어떻게 하면 '느낌'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점쟁이 집시 여인이 카탈리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후 벌떡 일어나더니 자기 옷을 훌렁 벗어버린다. 그리고 정확하진 않지만 이 비슷하게 말한다.

 "여자는 다리 사이에 초인종이 달려 있어요, 아가씨. 사랑을 나눌 때는 머리도 없고, 팔 다리도 없고, 내 온 몸 다 없다고 치고 오직 그 초인종 하나에 집중해야 한답니다. 어떻게 하면 초인종을 잘 누를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하세요. 그럼 느낌이 올거랍니다."

 이 말을 듣고 긴가민가 하는 카탈리나. 집시 점쟁이가 어쨌든 도움의 말을 해주었으니 댓가로 돈을 내밀었다. 집시 여인이 다시 이야기한다.

 "필요 없어요. 받을 수 없답니다. 난 거짓말을 해준 댓가로 돈을 받는 여자랍니다. 거짓말이 아닌 진실을 얘기하고는 절대 받을 수 없어요."

 이쯤되면 이거 철학책 아냐?

 그리하여 열다섯 살, 우리 기준으로 중학교 3학년의 카탈리나는 삼십대 후반의 장군 안드레스 아센시오한테 시집가고 그 후 과부가 되기까지의 인생을 쓴 소설.

 그럼 남편 안드레스 아센시오가 어떤 작자일까?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다. 어떠한 것일지라도, 선한 목적이 아니라 악마나 상상할 수 있는 목적이라도 그것을 얻기 위해 살인, 협박, 사기, 도둑질 등 방법의 회피를 절대 하지 않는 인물. 젊은 아내와 눈이 맞은 것처럼 보이는 청년을 가비얍게 죽여버릴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공장을 얻으려면 걸리적거리는 공장주에게 너 죽을래? 아니, 아니,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죽겠느냐고, 라면서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협박할 수 있는 작자. 이런 인간하고 같이 살면서 두 아이를 생산했으나 전처들 소생으로 다섯 명이 더 들어오고, 걔네들 말고도 멕시코 방방곡곡 각처에 현지처와 사생아들이 부지기수로 있어서 소생을 다 합하면 수십명의 '법적인 어머니 예정자'. 카탈리나는 남편 안드레스와는 달리 정상적인 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불행해지는 건 당연한데, 멕시코 현대사의 급변하는 순간순간이 여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재미있는 책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인의 시각으로 본 격변기에 대한 묘사 측면에선 아옌데의 연작들에 (전혀)미치지 못하고, 독재자 혹은 독재의 언저리의 권력자에 의하여 저질러진 야만에 관해선 요사의 작품들에 (절대로)미치지 못한다.

 근데, 제목 <내 생명 앗아가주오>가 뭐게?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질문.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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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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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바로 앞 작품 <고요한 집>에는 아흔 살이 넘은 노파 파트마가 이스탄불 근교 소도시의 낡은 저택에서 난장이 하인 레젭과 살고 있다. 노파의 온갖 치닥거리를 다 챙겨주는 레젭은 알고보니 노파의 죽은 남편 셀라하틴이 노파가 불쌍해서 집에 들인 하녀를 건드려 낳은 사생아다. 한 시절 터키의 잘 나가던 부르주아 출신인 파트마는 자신이 시집올 때 가져온 보석만을 팔아, 한땐 정권의 실력자이었으나 이젠 권력에서 쫓겨난 의사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의 터무니 없는 백과사전 출판의지와 (첩과 사생아들의 식비를 포함한)바람기와 술값을 댔으며, 마지막 보석은 아들 대학보내고 하면서 이젠 사실상 거렁뱅이 신세로 전락했다. 이 아들과 몸 약한 며느리는 2남 1녀를 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출발하여 1년에 한 번씩 손자 손녀들이 성묘하러 산소에 들르느라 낡아빠진 저택을 방문한다. 저택의 땅을 팔고 그 자리에다 아파트를 지으면 돈 좀 만질 수 있겠다는 꿍꿍이를 가지고. 막내 손주는 앞날이 창창한 수재로 대학은 미국에서 마치고 막강한 실력자가 되어 터키로 돌아와 어여쁜 부르주아 아가씨한테 장가들 생각에 꽉 차있고, 한 살 위 손녀는 만민평등의 급진노선을 택하는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나이 터울이 심한 큰 손주 파룩은 역사를 가르치는 대학교수로 1년에 한 번 고향집을 들를 때마다 시의 고문서 보관소에 거의 상주하며 터키 역사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하는 즐거움에 빠진다. 이렇게 터키 근현대사 3대를 다룬 아주 재미난 책 <고요한 집>을 짧게 소개하면서 일독을 권하는데, 재미난 건, <고요한 집>의 한 주인공이자 집안의 장손 파룩이 <하얀 성>을 쓴 작가라고 전제되어 있다는 점. 그리하여 <하얀 성>은 오르한 파묵의 바로 전 작품 <고요한 집>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자 파룩의 동생으로 나오는 '닐귄 다르븐오울르'에게 헌정되었다('다르븐오룰르'는 서양의 과학을 대단히 선망했던 할아버지 셀라하틴이 법으로 성姓을 만들어야 했을 때 진화론자 '다윈의 자손'이란 뜻으로 지었다). 하여간 역사학자 파룩이 1980년 7월 경 소도시의 문서보관소에서 곰팡이 피고 군데군데 삭아 떨어진 책 한 권을 흥미롭게 읽고선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레둘레 쳐다보더니 읽던 책을 그냥 자기 가방 속으로 쑥 집어넣어 버린다. 이어서 여동생의 장례가 끝나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와 언어표기를 알파벳으로, 고어체를 현대문으로 바꾸어 책을 출간하니 바로 <하얀 성>이다.

 청소년기에 누구나 한 번 씩은 해보는 심사숙고. 왜 나는 나일까. 내가 옆집 상숙이가 아니고 우리집 영숙이인 이유는 뭘까. 미국에, 아니면 히말라야 산 기슭에 또 다른 내가 하나 더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소년기의 심사숙고는 거의 모든 인류의 공통된 고민이었고,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철학과 학문의 가장 깊숙한 밑바탕이라고 생각한다. <하얀 성>은 이런 고민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고 있다. 다분히 라 만차의 기발한 기사 돈 키호테를 탄생시킨 세르반테스를 한 모델로, 즉 여러 모델을 혼합해서 만든 주인공 가운데 하나가 분명히 세르반테스인 것 같다는 것으로, 기독교를 믿는 이탈리아 인이 터키에 노예로 잡혀와 극도의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는 줄거리다.

 터키에선 머리 좋기로 손 꼽히는 수재 호자의 노예로 떨어진 '나'. 내가 이래뵈도 선진 서양과학으로 무장한 인간으로 비록 노예이긴 하지만 애초부터 의사, 과학자, 기술자, 폭약 전문가로 나중엔 흑사병 예방 전문가까지 터키, 아니면 적어도 한 지역 파샤의 힘을 과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된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노예면 그냥 노예일 뿐. 내 유일한 꿈은 하루빨리 몸값을 지불하거나 탈출을 해서라도 꿈에서도 그리운 약혼자, 벌써 돌아가셨을 거 같은 부모님이 계신 이탈리아 땅을 밟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심한 건 바로 시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나'란 인간의 실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모호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그리하여 언젠가 드디어 누군가가 터키 땅을 탈출해서 이탈리아로 향하는데, 그게 누구게?

 여기까지가 내 양심 상 제공할 수 있는 스포일러의 한계다.

 해설과 작가 연표까지 몽땅 합해서 240쪽 밖에 되지 않는 가벼운 책이지만 한 장 한 장이 흥미로운 이야기로 꽉 차 있어서 아침에 책 잡으면 해 떨어지기 전까지 다 읽게 돼있다. 이거 정말이다. 믿지 못하시겠는 분, 일독 해보시라.

 <고요한 집>을 먼저 읽으시고 다음에 <하얀 성>을 보시면 좋을 듯. 여기서 '하얀 성'이란 터키의 왕이 끝내 함락하지 못한 유럽의 한 성城을 말한다. 이런 건 뭐 일러드려도 무방할 듯.



 * 그끄제는 <고요한 집>을 개판이라고 흉보더니 오늘은 또 읽어보라 권해? 답의 1번은 내 맘이고, 2번은 사실 <고요한 집>도 읽으면서 짜증이 마구 날 수준의 교정, 교열까지는 아니고 3번은 그만큼 원 텍스트가 좋아서이다. 한 번 믿어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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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6-02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르한 파묵 작품은 왠지 재미없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ㅋ 이 책만큼은 흥미진진하게 읽었어요. <고요한 집>과 관련 있는 줄은 몰랐네요. 암튼 이 작품 다 읽고 나서 바로 다시 앞으로 돌아와서 아니 대체 어디서부터 그렇게(!!!) 된 거야 허겁지겁 찾았다는 ㅋㅋㅋㅋ

Falstaff 2017-06-02 12:42   좋아요 1 | URL
전 파묵의 작품으로 이 책이 네번째인데, 재미는 별도로 하고 다 좋은 작품이었다는 데 동의하거든요. 그래서 며칠 후에 또 하나의 파묵 독후감을 쓸 거랍니다.
근데, 다 읽고 아 씨 좀 더 집중해 읽을 걸, ˝도대체 어디부터야˝를 진심 동의하면서 저도 후다닥 페이지를 거꾸로 넘겼었습니다. ㅋㅋㅋㅋ 아마 이 책 읽은 사람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했을 걸로 ^^; 짐작하고 말겠습니다.
 
호텔 뒤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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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내 스타일. 이 책을 덮자마자 곧바로 애니타 브루크너의 다른 책을 검색해보았다. 한글로 번역한 책은 이거 말고 없다. 있었으면 보관함이고 뭐고 간에 단박에 사버리고 말았을 텐데. 책소개를 보니 1984년 부커상 수상작이란다. 크. 언제 내가 그랬잖은가. 내가 거의 유일하게 신뢰하는 문학상이 맨부커상이고, 그래서 그 상을 받은 한강이 더 좋아보인다고. 맨부커 상의 먼젓번 이름이 부커 상이다.

 이디스 호프. 당찬 이름의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쓰는 전업작가. "배들이 호수 위를 스치듯 지나고, 간이 선착장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보이고, 노천 시장이 열리고, 십삼 세기에 지은 성채의 쓸쓸한 잔해와 멀리 산의 경계마다 쌓인 흰 눈도 보이는" 스위스의 오래된 호텔. 뒤락. 오랜 호텔답게 완고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장식과 부대시설, 그리고 정찬. 오래되고 충성스런 고객들 중심의 경영방식으로 이름난. 그러나 성수기인 여름이 이미 끝나 객실엔 거액을 상속받은 늙은 퓨지 모녀, 거식증으로 인한 불임증 등의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유배 조치를 받은 모니카. 고부 갈등으로 매년 여름 내내 호텔에 처박히는 귀머거리 노파 브뇌이유 부인이 들어 있을 뿐. 이디스 호프가 이들 사이에 또다른 한 명으로 보태지며 소설은 시작한다. 겨울을 맞아 호텔이 정기 폐장을 하는 시점까지.

 이디스 호프. "세상 물정을 제법 잘 아는 신중한 여자이고 친구들도 분별 없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와 겉모습이 많이 닮았다고" 하는 이. "집이 있고 납세 의무를 잘 지키고 요리도 꽤 잘하며 마감일이 채 되기도 전에 원고를 보내주는 사람". "어떤 경우라도 내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에 먼저 전화하지 않"으며 "책이 곧잘 나가는 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떤 권리 주장도 하지 않"는 이디스 호프는 그러나 호텔 뒤락에서 "자신이 운 나쁘게 저지른 잘못은 잊고 신중하고 착실한 원래의 성품을 뒤찾"기 위하여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기에 집에 있어야" 하지만 "사람도 별로 없는 이곳으로, 잠시동안의 유배생활로 내몰았다". "이디스는 집이라는 곳이,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집'이라고 해야 할 그곳이 갑자기 자신에게 적대적이 되자 일어난 일에 몹시 겁이" 나서 "친구들이 짧은 휴가를 제안하자 마지못해 따르기" 위해 스위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따옴표 속에 나온 건 전부 책의 10~11쪽에 나오는 이른바 도입부의 설명이다. 이것으로 스토리는 독후감을 읽는 분들이 스스로 만들어보시고, 그것이 얼마나 적중할 지는 직접 책을 읽고 알아내시라.

 위에서 이디스는 스스로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소설의 등장인물에 대한 외모를 다른 소설가와 비교하는 건 일단 모른 척하고, 그래서 그런가? 하나 확실한 사실은 문체가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울프와 브루크너의 원문을 비교해 읽어본 것이 아니고 (읽어봤자 구별도 못할 거면서 말이라도 이렇게 써놓자) 한글로 번역한 두 이의 문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 브루크너도 소설에서 그걸 사용해, 울프를 읽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울프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건 물론이고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면(아이고 징그러!) 바로 이렇게 쓸 거 같다.

 소설의 내용은 진짜 별거 없다. 호텔에 들어 투숙객과 호텔 사장, 종업원, 가끔 보태지는 남자 손님들. 여자들 사이의 미묘하고 섬세하고 아무 쓸모없는 신경전, 남자가 하나 끼어들면 또다시 추가되는 특별한 경쟁. 이런 것들. 인생 사는데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것들. 근데 참, 인생이란 것이 정말 신기한 이유는 진짜 너절하고 쓸모없고 권태스럽고 비정하기도 한 잡스런 일상사에서도 '나'를 찾는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놀라운 진실. 거기다가 애니타 브루크너의 교묘한 문장까지 섞이면 나처럼 이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이 더 있는지 얼른 검색해보게 만든다니까.

 애니타는 왜 런던을 급하게 떠나 스위스 산골까지 오게 됐을까? 호텔의 장기 투숙객들과는 어떤 심리적, 실제적 갈등을 빚을까? 호텔이라니 혹시 찐한 베드 씬도 나오지 않을까? 애니타는 유배형을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 퓨지 여사의 진짜 나이는 몇 살이나 될까? 궁금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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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와 어둠의 공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4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지음, 진일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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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기대를 하고 읽은 책. 그렇게 기대를 잔뜩 품고 읽은 책이 거의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다 별로였다. 물론 전날 밤 쐬주, 맥주 장하게 들이켜 해골이 뱅뱅 도는 와중에 책을 읽는 바람에, 뇌활동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도 즐거운 독서에 언짢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리. 암만 핑계를 대도 이 <빙하와 어둠의 공포>가 작년 말에 읽은 <최후의 세계>에 미치지 못하는 건 분명하다. 아, 물론 아마추어 독자인 내 의견이다. <최후의 세계>를 얼마나 재미나게 읽었는지 당시 독후감에 아마 "1년에 한 편 나올 수준"이라고 의견을 달았을 거다. 그 책에선 말년까지 영화를 누린 베르길리우스와 달리 귀양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친 오비디우스와 그의 걸작인 <변신 이야기>를 절묘하게 각색했었다(고 기억한다).

 <빙하와...>은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쓰여졌다.

 첫번째는 1872년 부터 1875년 까지 약 3년간에 걸친 북극해 탐험에 관하여. 탐험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골통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위해(그러나 황제는 탐험가들의 이름이나 제대로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지의 지역인 북극해에 황금을 가득 품은 땅덩어리가 있을 것이란 기대,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구가 둥그렇다는 사실이 밝혀져 만일 북극해를 관통할 수 있다면 황금의 땅 인도와 일본, 중국으로 가는 뱃길을 대단히 줄여 경쟁국에 비교우위를 누릴 것이란 환상,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경쟁국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용맹한 모험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폼을 잡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망상에 휘둘려 해상 지휘관 바이프레히트, 육상 지휘관 파이어 등 스물 네명이, 다수의 썰매 개,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출발한다. 베링해를 향해서. 항로의 경제성도 전혀 없고, 위험하기만 한 아무 쓸모없는 모험. 북극점 위에 선다해도 기껏해야 자기 이름이나 남길 수 있는 댓가로 목숨을 담보하기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광적인 모험의 시대.

 또 하나는 100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탐험대의 일지 등 자료를 읽고 경탄한 마치니란 이름의 젊은이 이야기. 연상의 여인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에 갑자기 필을 받아 그들과 같은 항로를 한 번 보고싶다는 의지로 짐을 꾸리는데, 간단한 여행에 어울리지 않게 짐이 많아보인다. 하여간 이 청년 노르웨이 북쪽 끝 도시 트롬쇠 항으로 가, 쇄빙선을 타고 북극해를 둘러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여행 중인 1981년, 썰매와 개들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이 두 가지가 책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줄기. 두번째 이야기를 보면 마치니가 100년 전 탐험을 했던 이들의 행적을 좇는 것으로 나와 있으니 당연히 책의 거의 대부분은 19세기의 북극해 탐험을 위하여 쓰여 있다. 란스마이어, 이 사람은 당초 <최후의 세계>에서 보여주었듯, 이 책에서도 실제 탐험가들이 만든 기록물들과 그걸 읽은 100년 후 마치니의 또다른 기록, 이 사이에 빈 것들을 자기 상상력을 동원하여 채워나가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숱하게 나오는 변신(Verklaerung)이 은유하는 바를 자신의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근사한 소설 <최후의 세계>를 쓴 것과 비슷하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메타 픽션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꼭 문학작품을 한 테두리 안에 두려고 하는 건 정말 부질없다. 더구나 책에선 탐험 소설에서 흔히 기대하는 극적 반전드라마, 선상반란, 배신과 황금 같은 것도 나오지 않는다. 19세기에 북극해를 항해했으니 고생이야 오죽했겠느냐마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기록과 기록 사이를 이어가는 작가의 상상력, 다분히 건조한 문체로 써내려간 흔적들과 나름대로 정의한 해당 탐험의 의미 뿐이다. 극지 탐험에 관심 있는 분에겐 적극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들께서 굳이 읽겠다면 말리지 않을 정도.

 (게다가 북극곰을 수십마리 잡아먹고 추위를 견뎌낸 이 탐험대의 고생담을 다른 책에서 벌써 읽어 알고 있었던 거디다. 그러니 이 책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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