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고 해밀턴
더글러스 스튜어트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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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출생해 스물네 살 때 뉴욕으로 건너가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단다.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잭 스페이드 같은 곳에서 20년 넘게 일했다니 틀린 말은 아니다. 수석 디자이너면 뭐해, 열두 시간 교대근무 하는 데. 스튜어트가 대단한 게, 맞교대 하면서 무슨 시간이 났는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소설을 썼으니 소설가로도 이름을 높이게 만든 <셔기 베인>이란다. 이게 영국과 미국의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했지만 (32곳의 미국 출판사, 영국 출판사 12군데) 하여튼 결국 미국의 독립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어 시장에 나왔고, 2020년에 덜컥 부커상을 받는 바람에 이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부커상이 그렇다. 무명이었다가 한 방에 스타로 뛸 수 있게 만드는 권위.

  우리나라에서도 <셔기 베인>이 센세이셔널했지 아마? 그래서 한 김 빠지길 기다렸다가 읽겠다고 마음먹었었다가, 날이 가면서 그만 잊고 지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3년 가까이 지났다. 그러다가 인터넷 책방 알라딘의 AI가 나를 위해 이 <먼고 해밀턴>을 추천했다. 나는 무릎을 치며, 아, 이 작가가 <셔기 베인>을 쓴 이지? 기억이 나서 얼른 희망도서 신청을 하고, 한 달을 기다렸다가 읽었고, 모두 5백 페이지 분량인데, 270페이지까지 읽은 다음, 도무지 읽어주지 못해 그냥 덮어버렸다. 그러면서 만일 2001년 말에 <셔기 베인>을 읽었다면 분명히 내 돈 내 산이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이 책의 독자평이 그리 나쁘지 않으니 나 말고 감격에 겨워 읽는 독자가 있을 것일 터, 위안을 삼자, 뭐 이 정도 선에서 마감을 하고, 도서관 “내 서재”의 “관심도서” 목록에서 얼른 <셔기 베인>마저 지워버렸다.


  먼고 해밀턴. 원래 책 제목은 <젊은 먼고> 또는 <어린 먼고>다. 열다섯 살이긴 하지만 애가 좀 늦게 되는 아이라 여전히 어린 아이 수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중3. 당연히 알 거 다 알고, 어차피 이왕 해볼 거 할 준비가 완료된 ‘일상 거총’ 상태의 탱탱한 사춘기 소년 생각하지 마시라. 주워듣기로 <셔기 베인>에서도 주인공 셔기가 열다섯 살 난 늦된 아이로 알고 있으며, 그 작품처럼 <먼고 해밀턴> 속에도 자전적 이야기가 적지 않게 들어있다고 하니 스튜어트도 좀 그랬지 않나 싶다.

  거의 모든 포유류가 그렇지만 특히 어린 인간종에게는 끔찍할 만큼 슬픈 본능이 있다. 부모, 특히 어미가 아무리 새끼에게 모질어도 새끼는 어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본성. 스스로 먹고 살 능력이 없는 새끼 시절에 생존을 위해 이런 본성이 특화해 진화했을 것이다. 이러다가 대가리가 커져 자기 혼자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오해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힘이 세지 않은 엄마한테 박박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기성세대는 이걸 ‘제2의 탄생’이라 주접 떨며 아무쪼록 여드름이 돋기 시작하는 자식 새끼가 큰 탈 없이 사춘기 시절을 지나기 바라는 거고. 근데 그것 마저 지나 이제 성인이 되면 전세 역전이다. 그러니 사춘기 자식을 둔 부모들이여, 미리미리 자식새끼한테 잘 하시라. 나중에 후회 말고.

  우리의 먼고는 그러나 이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여전히 엄마 모모를 걱정하느라 여념이 없다. 엄마 이름이 모모다. 몸에 털이 많아 모모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고, 그냥 모모다.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자기 아이들이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것. 그렇게 부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듣는 거다. 원래 이름은 모린. 지금은 대외적으로는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인 AA 클럽에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참석해서 “월목 모린”이라 불린다. 실제로는 책에서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열다섯 살 때 지금은 ‘빅 하하’라고 부르기로 한 해밀턴 군을 만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나누고, 그래서 임신과 출산을 해서 맏이 하미시, 대외적인 호칭으로 ‘하하’를 낳았고, 이어서 줄줄이 둘째 조디와 막내 먼고를 출산했으니 이 때가 열여덟 살이었다. 동네 논두렁 건달 가운데 대빵이었던 빅 하하는 어울리지 않게 패싸움에 가담을 했다가 칼을 맞아 드런 세상 겨우 스무 해를 살고 숟가락 놨다. 이후 모모는 술에 빠지기 시작해 곧장 깊은 알코올 의존증으로 접어들었다. 술만 취했다 하면, 혹은 몸에서 혈중 알코올 농도가 기대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많은 의존자들이 그러하듯이 전혀 다른 인격체로 돌변해 집구석에 뭐 제대로 남아남는 것이 없었다. 그럴 때면 어린 조디는 동생 먼고를 데리고 모모가 찾을 수 없는 어두운 공간으로 숨어, 지금 엄마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건 엄마 모모가 아니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다른 인간 ‘태티 보글’이라고, 이렇게 달래면서 열여섯 살이 되었다. 이젠 모모도 함부로 자식들 앞에서 테티 보글로 변신할 수 없다. 힘이 달리니까. 완력도 달리니까. 까불면 오히려 제압당하니까. 그러게 내가 뭐랬어, 잘 하라고 했잖아.

  맏이 하미시는 벌써 열여덟 살. 아빠 빅 하하의 대를 이어 글래스고 빈민가이자 개신교 구역 논두렁 건달의 왕초 자리를 꿰찼다.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완력으로 무지르고 그게 괴롭힘으로 나타나고, 특히 늦된 먼고를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거칠게 “키우려고” 나름대로 열심이다. 열여덟짜리 형이 열다섯 살짜리 동생을 키운다고 고생이 자심하겠지? 읽어보시라. 그것도 고생일 듯하다.


  엄마 모모는 자식들한테 관심이 없다. 혹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아이 셋 달린 홀아비 조키와 열애중이다. 자기 생각엔 서로 죽기 살기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독자가 보기엔 조키 생각으로는 그저 섹스 파트너 아닐까 싶다. 집에 불러 며칠 살다가 싫증나면 쫓아버리고, 며칠 지나 또 아래가 궁금해지면 전화 찍 해서 불러올 수 있는 여자. 문제는 모모가 조키와 함께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는 거. 처음에 말했듯이 내가 책을 다 읽은 게 아니라 단정하지는 못하지 믿지도 마시라. 그리하여 모모는 조키의 집에서 살다가 쫓겨나야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제정신일 수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엄마는 엄마. 모모 역시 맏아들 하미시처럼 먼고가 사내답지 못하다는 것이 고민이다. 그래서 같이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다니는 두 남자, 문신이 촘촘한 젊은 갤러게이트와 쉰 살 이상으로 보이는 세인트 크리스토퍼에게 먼고를 남자답게 대해달라고 함께 2박 3일의 낚시 여행을 떠나게 한다. 이래서 대한민국 천안시와 자매결연을 맺었고 북위 55도 51분에 위치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도 북쪽으로 아무리 5월(6월인가?)이라도 반바지에 점퍼 하나 입혀서 캠핑을 떠난다.

  두 명은 같은 알코올 중독자 모임인 AA 클럽 회원이면서, 발리니 교도소 감방 동기이며, 여전히 하루 종일 맥주와 위스키, 기타 에틸 알코올을 흡수할 수 있는 모든 액체를 섭취하기에 조금의 게으름이 없다. 그리고 치명적으로 둘 다 양성애자이다.

  먼고는 엄마의 무관심과 엄마를 간절하게 원해서 곱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조금의 불편한 상황에 처하기만 해도 얼굴에 경련이 일어나는 일종의 틱 증상을 보인다. 자신도 그것을 알아 얼굴을 긁어대 잘 생긴 모습이기는 하지만 흉터가 많다. 선한 누나 조디 역시 틱 증상이 있다. 심각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히히익, 하며 엽기적으로 웃어버리는 것. 이외에도 아빠 얼굴을 기억하지 못해서 그런지 유독 나이 많은 남자한테 끌려, 학교 선생과 밀회 끝에 임신하는 바람에, 선생은 교장한테 전화 한 통으로 사표를 가름한 채 도망쳐버리고, 아랫집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중절수술을 받는다.

  이 정도면 내가 도무지 더 이상 읽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듯하다. 더글러스 스튜어트는 이 참담한 광경, 특히 먼고한테 벌어지는 참혹한 장면을 발갛게 묘사해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불과 몇 달 만에 다시는 읽고 싶지 않았던 베스트 셀러 <리틀 라이프>를 다른 버전으로 읽는 일이 생겼던 거다. <셔기 베인>도, <먼고 해밀턴>도 그리고 <리틀 라이프>는 말할 것도 없이 독자 평이 좋다. 굳이 내 독후감을 믿을 필요 없다. 단지 나는 이런 스타일의 작품하고 도무지 맞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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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고니시의 번영과 몰락
베어톨트 브레히트 지음, 김기선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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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곡가 쿠르트 바일은 20세기도 20여 년이 흘렀음에도 관중에게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르게 만드는 오페라 장르를 계속 “미식가적 취향”에 머물게 하는 것이 마땅한 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 책의 부록으로 첨부한 브레히트와 주어캄프의 주석에 그들(브레히트와 주어캄프)는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의 오페라는 미식가적 오페라다. 오페라는 상품이기 훨씬 전부터 향락의 도구였다. 오페라가 교양을 요구하고 교양을 전달한다 해도 오페라는 쾌락에 기여한다. 왜냐하면 기호의 형성이나 전달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오페라는 어떠한 대상이든 즐기는 태도로 접근한다. 오페라는 하나의 ‘체험’이고 ‘체험’으로서 기여한다.”


  인용의 마지막 문장에서 오페라가 “체험으로서” 기여한다고 했다. “으로서”는 자격격 조사이다. 즉 문장을 잘못 쓴 것이 아니라면, “체험”의 과정을 통해서(기구격 조사 ‘으로써’)가 아니라 기호의 형성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문학의 극화 자체”로 관중에게 기여한다고 말한다.

  베르톨트는 이런 개념에 입각해 <마하고니 시의 번영과 몰락>을 애초부터 오페라 대본, 리브레토를 썼다. 그리하여 <마하고니…>는 애초부터 “향락적”이고 감상자의 쾌락에 기여할 목적이다. 여태까지 지속해왔던 “비이성적 성격”을 가지는데 그것은 “입체성과 현실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모든 사실성이 음악을 통해 제거”된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거창한 무대와 오케스트라, 출연진과 합창단, 발레에 드는 비용으로 인민들의 하늘 위에 존재했던 오페라 무대를 이제 시장의 흙바닥에서도 공연하게 만들고 싶다. 이것이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포인트. <마하고니…>를 쓰기 몇 년 전에도 이들은 뜻을 합쳐 <서푼짜리 오페라>를 만들고 공연했다.

  나는 <마하고니…>가 처음부터 오페라를 위해 쓴 것인지 몰랐다. <마하고니…>라는 희곡작품이 있어서 그것을 쿠르트 바일이 하도 재미있게 읽고, 보아, 자기가 오페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읽어봤으면서도 여태까지 원래 희곡인 줄 알았다. 요즘 출판사 지만지에서 나오는 책들에 슬슬 정나미가 떨어지는 판이었음에도 이 책을 읽으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까지 한 이유는 오페라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를 DVD로 가지고 있음에도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해 (쿠르트 바일의 작품이 재미가 없다니 이게 웬 일이냐는 말이지!) 원작을 한 번 읽어볼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총 238쪽의 분량이긴 하지만 원 텍스트는 113쪽에서 끝나고 이어 부록, 삭제 장면, 해설, 작가 소개, 역자 소개가 본 텍스트 분량만큼 첨부되어 있다. 역시 지만지 드라마,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독자한테 별로 영양가 없는 정보를 제공하기에 여념이 없다. 혹시 당신이 브레히트를 전공하거나, 극작에 큰 관심이 있는 지망생이면 아주, 아주, 아쭈? 아주 좋은 정보일 수 있으니 읽어 보시든지.


1998년 찰스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DVD


  극작 특성상 진행이 무척 빠르다. 애초 협업하기로 뜻을 맞춘 쿠르트 바일은 리하르트 바그너와 달라서 구구절절 독자/관객에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마하고니라는 도시가 생긴 내력을 성실하게 소개할 의지는 별로 없다.

  막이 오르면 무대에 고장나 멈춘 트럭과 세 명의 등장인물이 보인다. 삼위일체 모세와 지배인 빌리, 그리고 마더 구스 역할인 베크비크. 애초 이들은 사금을 채취하기 위해 이 황량한 벌판에 도착했다. 하지만 앞에는 사막, 뒤에는 이들을 쫓는 경찰, 금을 캘 수 있는 해안으로 가야 하건만 트럭이 퍼져버렸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처지에 어미 거위 베크비크가 선언한다.

  “좋아, 그럼 여기다 자리를 잡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거면 여기 아래에 자리 잡는 거야. 이봐, 금 찾는 일은 힘든 일이고 우린 그런 일을 할 수 없어. 그렇지만 난 사내들을 잘 알지. 틀림없이 사내들은 금을 내놓을 거란 말이야. 강에서 금을 찾는 것보다 그 사내들한테 뜯어내는 게 더 쉬울 거야.”

  이리하여 세 명의 (범죄자인 것처럼 보이는) 뜨내기가 도시를 만들어 “마하고니”라 이름 짓는데, 마하고니는 그물망이란 뜻이란다. 금을 캐는 남자들인 감칠맛 나는 새들을 잡을 수 있는 그물망.


  작은 주머니에 금 조각을 담아 가슴에 품고 마하고니 시로 들어온 사내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갈취하기 위한 방법은? 당연히 여자들이다. 이런 건 특별히 광고를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들어오는 법. 마하고니 시에도 제니를 비롯해 여섯 여자들이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등장해 <마하고니…>에서 가장 유명한 노트 “앨라배마 송 Alabama Song”을 노래한다. <마하고니…>는 1928~29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썼다. 그런데 난데없는 앨라배마? 브레히트와 바일 두 명의 독일인은 나중에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지만 이 때까지 설마 자신들이 떠날 줄 알았겠어? 그럼에도 금과 꿀과 젖이 흐르는 신세계를 조금은 동경했을 지 모른다. 이것으로 마하고니 시가, 모르기는 하지만, 미국 땅에 있는 가상의 도시 아니겠느냐, 짐작을 할 수 있다. 이 노트의 가사는 브레히트가 독일어로 쓴 것을 <서푼짜리 오페라>의 공동 저자이기도 한 엘리자베트 하웁트만이 영어로 바꾸었다. 유명작 <직조공>을 쓴 게르하르트 하웁트만하고 인척관계인지는 모르겠다. 아닌 것 같다. 마침 유튜브에 올라 있으니 한 번 듣자.



  이후 몇 년 동안 도시는 세계 각처에서 불평 불만 가득한 남자들이 쇄도해 전성기를 만난다. 이제 도시에는 네 가지 미덕 또는 죽을 죄의 기치가 휘날리게 됐으니, 첫째는 폭식, “처먹는 것”이고, 둘째는 사랑의 행위 즉 섹스이며, 셋째는 브레히트 스스로가 매료된 스포츠인 권투시합, 넷째로는 바로 술이다. 주목. Pay your attention. 네 가지 미덕 또는 죽을 죄. 즉 이것은 도시 마하고니의 가장 전성기를 만들었으며, 전성기라고 함은 이제 남은 건 쇠퇴밖에 없다는 얘기로 이 네 가지 때문에 마하고니는 쫄딱 망하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로마제국 쇠망사>가 로마의 전성기인 오현제 시절부터 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 것처럼.

  그러면 이제 이야기는 다 끝났다.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는 직접 확인하시라. 다만 이 작품, 오페라를 위한 대본에 관심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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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1 창비세계문학 98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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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12월 12일에 러시아 제국 영토이었던 우크라이나 베르디치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이오시프 솔로모노비치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태어난 바실리 그로스만은 어린 시절 유모가 젖 아들인 그를 요샤Yossya(Vasily의 애칭)로 부르기 시작해 온 가족이 ‘바실리’라는 이름을 공유하게 된 재미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세묜 오시포비치 그로스만은 화학자였다고 하는데, 그러면 바실리의 부칭은 솔로모노비치가 아니라 셰묘노비치가 되어야 마땅할 터. 조금 의문이 들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아버지 역시 당대의 지식인이었으며 당연히 러시아 혁명에 가담을 했으나 불행하게도 멘셰비키에 가담을 한 바람에 훗날 아들한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어 교사였던 어머니 예카테리나 사벨리예브나는 남편과 별거해 아들 바실리와 함께 제네바에서 몇 년 동안 함께 살았던 적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에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베르디치프에서 탈출하지 못한 어머니는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2~3만 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처형을 당했다. 이 정경은 <삶과 운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이론 물리학자 빅또르 빠블로비치 시뜨룸의 어머니 안나 세묘노브나의 일화로 등장한다. 바실리 그로스만이 국립 모스크바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으며 대단한 공부벌레였다고 한다. 딸을 하나 얻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절친한 친구 보리스 구버의 아내 올가와 정분이 나 그들이 이혼을 한 1936년에 재혼한다.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하여 대규모 숙청이 일어났을 때 보리스 구버가 체포되고, 올가도 인민의 적을 고발하지 않은 죄로 체포되자, 이혼과 재혼 시기였을 때라서 무죄일 수밖에 없다며, 당시엔 아주 이례적인 경우로 감히 상부조직에 의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결국 석방을 시킨 대담한 성격을 지녔다. 하물며 감히 멘셰비키 족속의 아들이 말이지. 친구 아내와의 연정도 작품 속에 작가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나온다. 하긴 작품 속에 자신의 경험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바실리 그로스만은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원을 해 입대하고자 해서 붉은 군대 신문인 “붉은 별” 종군기자로 1천 일을 넘게 복무한다. 이 동안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와 베를린 전투의 참상을 목격하고 기록한다. 이 가운데 2차 세계대전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삶과 운명>의 주요 장면이다. 독일의 파울루스 장군은 1942년 7월에 돈강의 지류인 치르강에 도착해 붉은 군대를 공격하고 급기야 돈강을 건넌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서 한 걸음도 퇴각하지 말 것을 명령하지만 한 달이 채 못 되어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 접근해 도시를 고립시킨다. 이 즈음 해서 <삶과 운명>은 시작한다. 영화 <스탈린그라드>를 보신 분은 이 작품의 비극적 전쟁 장면을 이해하실 수 있을 터. 도시는 거의 폐허가 된 와중에 붉은 군대와 제국군대가 약 3백 미터의 간격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데, 한 시절 고급 저택이었던 ‘6동 1호’ 건물의 지하실에서는 실제로 총 24명의 붉은 군사들이 58일 동안 독일의 격렬한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로스만은 이 부대에 집중해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을 그리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외곽에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던 전차군단은 깔미끄 족 출신 대령 노비꼬푸가 군단장을 맡아 훗날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주력 무기가 될 T34 탱크로 무장한 채 만반의 준비를 기하고 있었다. 전시에 대령이 군단장을 한다고? 그렇다. 노비꼬프의 출중한 전쟁 수행능력을 눈여겨본 예료멘꼬 사령관은 정보부 출신 네우도브노프 장군조차 노비꼬프의 지휘를 받게 만들었다. 이렇게 전투는 스탈린그라드 시내에서는 (지휘관이라 불리기 원하지 않는)그레꼬프가 관리인을 지칭하는 6동 1호의 극렬한 전투장면과 노비꼬프를 필두로 하는 무적의 붉은 전차군에 의한 우크라이나 수복까지 그리고 있다. 이 전투에서 각각 끄리모프와 노비꼬프, 두 명의 장교가 특별한 역할을 하지만 승리가 확정된 순간 이들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두 명의 주인공이 공유점은 대단한 미인인 예브게니아 니꼴라예브나 샤뽀시니꼬바의 전남편과 약혼자라는 것.

  <삶과 운명>이 전쟁 소설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이것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첨부해야 마땅하다. 하나는 나치에 의하여 저질러진 유대인 학살. 그로스만이 종군기자 생활을 하면서 폴란드 지역에 설치했던 절멸수용소 두 곳, 트레블린카와 마이다네크를 직접 목격했고, 트레블린카에서는 유대인 수감자로 구성되었으며 오직 조금 더 생존하기 위하여 같은 유대인의 희생자 처리 일을 했던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를 취재한 전력이 있다. 어머니가 절멸수용소에서 학살을 당하기도 했으니 20세기의 가장 불행한 역사를 건너 뛸 수는 없었을 터이다. 다만 작품의 첫 장면이 독일의 강제수용소인데 분명히 주인공 급으로 보이는 노 혁명가 미하일 시도로비치 모스똡스꼬이에 대하여 별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간략하게 각주를 통해 “이 소설의 전편인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에서 모스똡스꼬이는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침공되자 그곳에서 빠져나왔다.”라고만 한다. 물론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레닌과 함께 혁명을 하고, 내전을 겪은 골수 볼셰비키이자 레닌주의자이다. 그가 왜 독일 수용소에 들어왔는지, 유대인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공산주의자라서였는지 도통 독자는 알 길이 없다. 1,360 페이지가 넘는 작품을 다 읽은 다음에야 작품해설을 통해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는 모스똡스꼬이가 아그리삐나와 운전사 세묘노프, 의사 레빈똔과 함꼐 8월 어느날 스딸린그라드 부근에서 독일군에게 체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편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이 인물들은 모두 친숙하다. 전편 소설을 모르면 이 운전사가 모스똡스꼬이의 운전사라고 여길 수 있는데, 여기서 세묘노프는 모스똡스꼬이의 오랜 지기이자 혁명 동지인 끄리모프, 이 소설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샤뽀시니꼬프 가족의 막내딸 제냐의 전남편이자 당시 꼬미사르로 활동 중인 그의 운전병 세묘노프를 말한다.”

  1952년에 출간한 전편 소설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는 시간적으로 1942년 4월 29일부터 노비꼬프가 우랄지역에서 전차군단을 정비하는 시점까지라고 하나, 아쉽게도 이 전편소설을 읽어보고 싶어도 번역 출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독자는 <삶과 운명>을 읽는 내내 난데없이 등장하는 거물급 인물들의 정체에 전혀 친숙하지 않은 상태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모스똡스꼬이가 제일 앞에 등장하는 문제의 인물이다. 독일 수용소 장면에서는 독자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경우가 다 등장한다. 수용소 내 공산주의 파벌 갈등,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과 좀머코만도스의 갈등, 소련 포로와 누구인지 모를 스파이 간의 갈등, 그리고 여태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나치 추종자 지휘관과 볼셰비즘 찬양자 사이의 사상적 겨룸. 여기에 독일 수용소 장면에서 역시 처음 읽게 되는 탈출 모의까지. 윌리엄 홀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제17 포로수용소>는 보셨으리라. 그들이 수용소에서 탈출해 과연 안전지대까지 갈 수 있었을까? <삶과 운명>에서는 수용소 위치가 이들에게 익숙한 폴란드, 우크라이나 지역이고 언어까지 탈출자들과 통해서 가능했을 수도 있을 터였다.


  <삶과 운명>은 여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1954년에 스탈린이 죽고, 1956년에 흐루쇼프에 의하여 스탈린 우상화는 끝을 본다. 그리고 3년이 더 흐른 1959년에 바실리 그로스만은 <삶과 운명>을 출판한다. 하지만 KGB는 곧바로 그로스만의 집을 가택수색했고, 그의 사무실과 은행 금고까지 털었으며, 작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원고와 심지어 타이프라이터에 걸린 잉크 테이프까지 걷어갔다.

  아무리 스탈린이 죽었고, 그에 대한 우상화가 마감을 했다 해도, 소비에트 연방에 의하여 저질러진 집단 농장화와 1937년의 대대적 피의 숙청을 대놓고 질타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을 터이다. 집단 농장을 만들며 숱한 소수민족을 한겨울의 황야에 내팽개쳐 정말인지 과장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수천만 명이 아사, 동사하게 만들었고, ‘편지교류 없는 10년 유형’이라는 독특한 총살형 및 교수형 선고는 소비에트 전 지역을 대화 없는 동토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도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유신시절 긴급조치 9호를 경험했던 바,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끔찍한 수준으로 입조심을 하게 만들었다. 술김에, 농담으로 한 마디 했다가, 그 말이 비단 스탈린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의미가 아니었더라도, 들은 자가 스탈린과 볼셰비키 독재를 부정, 반대, 비방했다고 주장하며 당국에 고발하면 “의학이 허락하는 한” 모진 고문을 거쳐 결국 체제 전복을 꾀했다는 자필 서류에 서명을 한 다음 “편지교류 없는 10년 유형”을 선고 받아야 했던 시절을 강력하게, 아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1959년 이후 소비에트에서 다시는 읽을 수 없는 책이 되어 버렸고, 1980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친지가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한 원고를 스위스에서 다시 타이핑해 출판할 수 있었다. 5년이 더 흐른 1985년에 영어번역본이 나왔으며, 이전에 84년엔 독일어로 부분 번역 되었다고 한다. 체제 경쟁이 한창일 1980년대 초였다면 서구 반공권 입장에서 이 작품의 번역에 게으를 필요가 없었을 듯한데, 소련 사람이 쓴 작품이라서 그랬나 좀 아쉽다. 내가 반공주의자라서 아쉽다고 한 게 아니다. 이 책은 전쟁과 독일 수용소와 소비에트의 일인 독재만 다루지 않는다. 저 멀리 러시아 시절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러시아를 소개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세심한 심리묘사 역시 대단하다. 전쟁을 포함한 세계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역시 사람이다.


  즐거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진짜 리얼리즘 소설.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이 소설을 “진짜”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겠다. 스탈린이 죽었다고 해도 아직 공기 중에 소비에트 일당독재의 기압이 팽만해 있어 여전히 볼셰비키와 레닌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작가의 눈에 뜨인 문제점을 과감하게 드러냈다는 것만 가지고도 이 작품을 높은 위치에 놓아야 할 것이다. 이 때 말하고자 하는 “문제점”이 비단 체제나 체제의 운영에 대한 문제점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속에 쓸려가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그로스만은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예를 들어, 전차군단장 노비꼬프는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끄렘린에서 직접 시달한 명령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군단에 총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지금 위대한 무기 T38을 몰고 포화가 한창인 지역으로 돌진하면 말 그대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 자폭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무려 8분 동안이나 스탈린의 명령을 뭉개버린다. 이윽고 포격을 멈추자 누구보다 서둘러 크고 큰 외침으로 돌격을 지시한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꼬미사르(정치위원) 게뜨마노프는 노비꼬프의 절묘하고 냉정한 결정에 감격해 키스를 날린다. 전차가 웅장한 굉음과 함께 진격을 하고, 게뜨마노프는 생각한다. “그래도 스딸린의 명령을 8분동안이나 지연시켰잖아. 그건 보고하지 않을 수 없지.”

  다 마찬가지다. 핵의 척력과 인력에 관한 혁명적인 연구를 발표한 유대인 과학자에 쏟아지는 질투와 마타도어. 인류와 소비에트에 크게 공헌할 지도 모르는 연구를 볼셰비즘과 소비에트의 개념과 상충하는 개인적 관심사라고 혹평하는 것도 모자라 최소한 해임, 적어도 체포, 심하면 영구 퇴출하게 만들고자 하는 어제까지의 찬양자들. 언제 그들이 바라는 대로 비밀경찰이 문을 두드릴까, 밤과 낮이 없이 아무 죄 없이 노심초사하는 빅또르 빠블로비치 시뜨룸 등등.

  이 책을 읽으며, 여차하면 <삶과 운명>이 폴로네이즈를 생략한 <전쟁과 평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다양하고 재미있다. 책 세 권을 다 읽고 역자해설을 훑으면서 역자 최선 선생도 똘스또이를 거론하는 걸 보며 은근히 어깨가 으쓱거리니 아직 나는 한참 멀었다. 하긴 어디 가려고 책 읽는 거 아니니까 멀었으면 어떠랴, 그냥 안 가면 되는 것이지. 하여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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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9-03 0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종군기자로서 전쟁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사람이 쓴 소설이니 정말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이겠어요. 영화 <스탈린그라드>,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보고 정말 끔찍한 전쟁이다 생각했는데 이 책은 직접 전쟁을 겪은 사람이 썼으니 엄청날 거 같습니다.

Falstaff 2024-09-03 07:17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 <스탈린그라드> 막 생각하면서 읽었답니다. ㅎㅎㅎ
꽤 괜찮은 작품입니다. 실감도 나고, 무엇보다 1937, 38년 소비에트 내에서 있었던 대규모 숙청을 빙자한 학살도 그대로,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문 당하고 살해 당하는 게 아니라, 그걸 상상하며 대기하고 있는 인간 상실의 순간 같은 것 말이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건 내돈내산 해서 책꽂이에 꽂아두어야 하는데 그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게 아쉽네요. ^^

페넬로페 2024-09-03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음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안되겠다 싶어 일단 1권은 구매했어요.
조금 읽다 다른 책에 자꾸 밀리네요.
1권에서부터 3권까지 주욱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보고 있습니다.
폴스타프님은 내용이 리얼하고 방대해도 항상 리뷰를 잘 쓰시더라고요.
저는 이런 책에 대한 감상을 쓸 엄두가 잘 안나요 ㅎㅎ
그래서 <잃어버린 환상>도 100자평으로 퉁 치고 있습니다.
‘전쟁과 평화‘도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4-09-03 17:35   좋아요 1 | URL
에이그... 참 페넬로페 님 같이 고수 님이 이리 말씀하시면 우짭니까. ㅎㅎㅎ
그냥 팍 3박4일 책만 읽겠다 각오하고 시작하시면 아무것도 아닐 듯합니다.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은하수 2024-09-03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리뷰를 올리셨네요^^
읽은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니 또 새롭고 넘 재밌었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다 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그만큼 뛰어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6동1호‘와 노비꼬프의 8분 대기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꼬미사르인 게뜨마노프는 명령불복종을 보고하게 되잖아요. 인간이 그저 커다란 체제의 부품으로만 작용하게 만드는 그런 체계가 정말 안타까울 수 밖에 없었죠. 1권의 시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모스똡스꼬이와 끄리모프의 사연은 정말 가슴이 넘 아팠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싫은 인간은 역시 게뜨마노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 작품 출간 전에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도 함께 출간이 되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여러번 들었죠! 전 영화는 보지 못하고 책으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읽었는데 끝까지 읽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하더라구요~~~

이 책은 정말 소장각인데...
저도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어요

Falstaff 2024-09-03 17:37   좋아요 1 | URL
넵. 예상 등록일에 딱 맞춘 것도 재미있습니다. ㅎㅎㅎ
아휴, 진짜 괜찮은 대하 리얼리즘 소설입니다. 전쟁 상황 뿐 아니라 사람들의 내적 갈등까지 홀홀 다 묘사하는 솜씨가 정말 죽여줬습니다.
 
라파니엘로의 날개
에리 데 루카 지음, 윤병언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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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에 1950년에 나폴리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소설가, 역자, 시인이라고 나와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급진 좌익 조직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조직이 해체된 다음엔 정치 쪽에도 기웃거렸다. 각종 블루컬러 노동을 하면서도 여러 언어에 관심을 두었고, 글도 썼다. 은둔형 외톨이 스타일로 여전히 로마 근교의 시골에 살며 열정적 등산가로 활약하고 있단다. 21세기에 리옹 토리노 간 고속열차 설치에 반대했다가 기소까지 됐으나 무죄 선고를 받기도 했으니 왼쪽인 건 맞을 듯.

  왜 이 책을 읽었느냐 하면, 프랑스에서 공쿠르 상과 쌍벽을 이루는 문학상이 페미나 상인데,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던 차에, 이 책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던 거다. 2002년 페미나 상 수상작이라고. 마침 도서관 서가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길래 얼른 빌려 읽었다. 간혹 읽은 기분을 설명하는 데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별 몇 개, 이렇게 얘기하는 게 편할 때가 있으니, <라파니엘로의 날개>로 말하자면 별 셋은 박하고 네 개는 후해서 셋 반이 적당한 수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소수점 없이 채점하면 네 개.

  페미나 상 수상작을 저 동아시아 촌놈이 별 셋 반을 준다고? 어때, 내 맘이지. 그런데 독후감 쓰려고 위키피디아 보니까 페미나 상은 페미나 상인데, 페미나-에드랑제 Femina Etranger란다. 이런 것도 있나? 페미나 상 외국어 소설 부문? 무슨 아카데미 시상식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페미나 상은 불어로 쓴 작품한테만 상 주는 걸로 알고 있어서 불어 잘 하는 이탈리아 사람이 불어로 쓴 책인 줄 알았지 뭐야.


  데 루카가 역자로도 일하고 있다. 언어의 범위가 재미있다. 고대 히브리어, 스와힐리어, 러시아어, 이디시어 등등. 고대 히브리어로 쓴 구약, 오래된 계약을 “비신자”로써 번역했다고 한다. 이디시어까지 관심을 넓혔다면 유대인 아닐까 싶기도 하다. 비 신자라고 했으니 기독교건 유대교건 간에 종교를 믿지 않는 유대인. <라파니엘로의 날개>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돈 라파니엘로도 러시아 혹은 동/북유럽에서 이디시어를 사용하던 유대인으로 팔레스타인까지 가려고 배를 타기 위해 나폴리에 도착했지만 여기서 옴짝달싹 못하는 선한 유대인이다. 나폴리 말도 한 마디 못했다가 조금 배운 정도의. 하기는, 그깟 작가가 어디 사람인 걸 알면 뭐해. 그냥 읽기만 하면 되지.

  어째 요새 읽는 이탈리아 소설에서 유난히 무대를 나폴리로 한 것이 많다. 연초에 읽은 쿠르지오 말라파르테의 <망가진 세계> 마지막 장면(이 책에서도 이 장면 나온다. 반갑더구만.)부터 시작해 도메니코 스타르노네의 책 두 권 등등. 근데 나폴리 사람들 기질을 보면 소설 쓰기에 아주 딱 맞춤일 정도라서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라파니엘로의 날개>는 전형적인 나폴리의 저소득층 사람들의 주거지. 건물이 촘촘하게 붙어 서 있고, 사람들은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 옷을 빨고, 옥상이나 자기 집 테라스에 빨래줄을 걸고 별의 별 빨래를 다 내거는 좁은 골목길.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는 장면이 이 소설의 무대이다. 하필이면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사람들은 이 동네를 ‘신의 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화자 ‘나’는 열세 살 소년. 루이스 어드리크가 쓴 <라운드 하우스>에서 말했듯이 사내새끼 열세 살이란 참 어려운 나이다. 게다가 장소가 나폴리. 이제 대가리 다 컸다고 어른들이 용인을 하는 시기란다. 뭘 용인하느냐고? 한 여자를 책임질 수 있다는 걸. 아, 이제 시작이니까 미리 넘겨짚지는 마시라. 항구에서 하역일을 하는 아버지는 자신이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것을 평생 한이 되어 ‘나’를 초등 5학년까지 보냈다. 의무교육이 초등 3학년까지라서 부모는 내게 가외로 2년을 더 공부시킨 셈이다. 아버지 생각에 이건 좀 더 나은 학력으로 ‘나’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나’도 이런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여 부모님의 하해와 같은 사랑에 늘 감화 감동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은 에리코 선생이 운영하는 목공소에서 목수 일을 배우고 있다. 목수일까지는 아니고, 이제 겨우 열세 살이니 아직 그냥 대패밥이나 톱밥을 청소하고 공방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정도지만.

  그래도 이 동네에서 ‘나’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소년이다. 독자가 읽기에 그렇다. 자기 입으로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지만. 아버지는 수십 년 동안 까막눈으로 살다가 이제 노동조합 주관으로 저녁 강의를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중이다. 큰 키에 건장하고 힘센 아버지와 역시 큰 키의 어머니는 서로 인애하는 부부다. 아버지는 내게 부메랑을 선물했다. 오세아니아 원주민이 쓰는 무기. 던지면 목표물을 맞추고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하는 거.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그쪽 지역에서 만들었을까? 나폴리 제일의 목수인 에리코 선생도 이렇게 단단한 나무를 깎을 수 있는 장비도 드물 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의 산이 하도 좁은 골목으로 건물 밀집 지역이라서 마음대로 부메랑을 날릴 처지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의 공방이 끝나면 집에 와 밥 먹고, 청소하고, 옥상 테라스에 올라가, 밤이 되어 빨래하는 아줌마들이 다 내려가 빈 테라스에서 무거운 부메랑을 던지는 연습만 한다. 왼손으로 그리고 오른손으로.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이제 역삼각형의 어깨가 딱 부러지고 근육도 붙어 완력 또한 만만하지 않게 됐다.

  오래 에리코 선생이 가게 한 쪽에 구두 수선공 돈 라파니엘로를 들여 좁은 공간을 맡겼다. 작은 작업대와 신발더미가 쌓인 공간 역시 ‘나’가 청소해야 한다. 돈 라파니엘로는 유럽의 땅끝 어딘가에서 나폴리로 온 빨간 머리와 녹색 눈을 한 작은 체구의 곱사등이다. 자기가 몇 살인지도 모르는 그가 처음 나폴리에 도착했을 때의 이름은 ‘라바넬로’였단다. 그러나 ‘딸기만한 크기의 순무’라는 별명으로 불리다가 ‘라파니엘로’가 됐다고. ‘나’가 보기에 라파니엘로는 좋은 사람이다. 가난한 사람한테는 신발을 수선해주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 나폴리의 진짜 저소득층 사람들은 사철 맨발로 다녔는데, 엣다 모르겠다, 끝 장면까지 이야기하자면, 라파니엘로가 신의 산에서 구두수선공으로 있는 동안 모든 나폴리 주민들은 전부 신발을 신고 다니게 됐다. 그러니 천사 아냐? 천사 맞다. ‘나’는 샌들을 신고 다녔다. 한겨울에도 샌들만 신었다. 다른 신발과 다르게 샌들은 내 발보다 커도, 작아도 다른 샌들로 바꾸어 신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나’를 얼핏 본 라파니엘로는 ‘나’의 샌들도 발에 딱 맞게 수선해주어 기분 좋게 신고 다닐 수 있었다.

  나폴리 사람들이란. 아버지는 우리는 이탈리아에 살지만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폴리 말을 하니까. 이탈리아 말을 해야 이탈리아 사람이니, 이탈리아 말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미국에 사는 거하고 마찬가지라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엄마가 보태기를, 고국이 별건가요, 먹을 걸 주어야 고국이지. 이 말을 들은 아버지, 그러면 아버지의 고국은 먹을 걸 주는 엄마라고. 이런 엄마가 깊은 병에 들고, 아버지는 심하게 충격을 받지만, 엄마의 병은 부부의 문제라서 아들한테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게 만들고 싶어하지 않는다.

  같은 건물에 사는 마리아. ‘나’하고 동갑내기. 생일은 ‘나’보다 조금 빠르다. 저 위에서 눈치 채셨지? ‘나’와 마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열세 살짜리니까 풋사랑이겠지, 지레짐작하지 마실 것. 하지만 이들 앞에 놓인 벽은 당연히 만만하지 않다.


  이제 본론.

  곱사등이 라파니엘로의 곱사등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기형으로 변한 뼈? 그렇겠지.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돈 라파니엘로의 커다란 곱사등에는 언젠가는 펼쳐질 날개가 들어 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Montedidio>가 “라파니엘로의 날개”로 변해버린 것. 날개가 돋는 날, 그는 어디로 날아갈까?

  날개가 달린 인격체를 우리는 천사라고 한다. 그런데, 라파니엘로의 말에 따르면 천사는 이동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유추하면, 이제 곱사등이 터져 날개가 돋힌 라파니엘로는 나폴리 신의 산에 거하는 천사가 된 거 아닐까? 정작 신의 산을 떠야 하는 인물은, 아직 한 번도 비행하지 못한 부메랑을 손에 든 화자 ‘나’이고.

  뭐 그렇다는 거다. 우화 또는 은유로 읽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페미나 상을 즐길 만하지 않은 거 같은데, 내가 유럽사람들 정서에 깡통이니 믿지 마시라.

  편집이 하도 널럴해서 3백 페이지라도 한나절이면 책 읽고 독후감도 푸지게 쓴다. 그래도 시간 남아 맥주 한 캔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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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을 기다리며 더봄 중국문학 전집 2
거페이 지음, 문현선 옮김 / 더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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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페이格非는 필명이다. 본명은 류용劉永. 64년 용띠. 이름도 처음 듣고, 작품도 처음 읽지만 중국에서는 60년생 위화, 63년생 쑤퉁과 함께 중국 아방가르드 작가군의 한 명으로 친다고 한다. <봄바람을 기다리며>가 “관심도서” 목록에 오래 있었던 걸로 보아, 이이 작품이 괜찮다고 언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거페이는 주도가 난징인 장쑤성 단투 줄신이다. 장쑤성이면 황해에 면한 양쯔강 하류지역. 작품의 배경이 양쯔강을 면한 장쑤성 내륙지역인 듯하다. 그러니 위도가 32도밖에 되지 않지만 북풍한설 몰아치는 한겨울엔 땅에 묻어 보관하는 배추 같은 채소 등속이 꽝꽝 언다고 그러지. 작품은 화자 ‘나’, 자오바이위趙伯渝가 장쑤성의 작은 촌 마을 루리자오儒里趙촌과 이웃한 야오터우자오窯頭趙촌 사람들이 1958년부터 2007년까지 한 세월을 살아낸 이야기이다.

  두 마을 다 조씨 집성촌이지만 루리자오촌에 사는 사람들이 은근히 야오터우자오촌 사람들을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마을의 원로 가운데 한 명인 자오시광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자면, 루리자오촌 사람들의 조상들은 옛날 제나라가 있던 산둥성 랑야에서 대대로 고관대작을 배출한 명가의 후손으로 진晉나라 회제懷帝 시기에 경치 좋은 강남으로 옮겨 터를 잡았다고 한다. 좋은 말로 해서 경치 좋은 강남으로 온 것이지, 회제는 5호 16국 시대를 맞아 흉노가 건국한 잡스러운 나라의 군대가 쳐들어와 잡혀 죽는 등, 중국 역사에서 가장 정신없던 시절에 난을 피해 조금이라도 북방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피난을 온 거 같다. 하여간 사마염이 첫번째 황제로 등극한 사마씨의 진나라는 신기하게도 사마 성을 가진 인물들은 제 명대로 산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서로 죽이고 죽느라고. 하여간 이때 양쯔강을 건너 강남으로 온 조씨들은 자기네 마을을 배운 동네 조씨 촌, 즉 유리儒里라 했고, 어디서 온 줄도 모르고 오자마자 집 짓기 위해 벽돌을 굽느라고 가마를 세워 가마 사람들, 요두窯頭라 멸칭했다. 그래 “둘 다 자오씨라고 해서 뭉뚱그려 자오자촌, 조가촌趙家村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였다.


  그러나 1949년에 공화국이 섰으니 세상이 바뀌어, 공부를 했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시대가 되어버렸다. 근데 이 자오시광趙錫光 할배도 문제가 많은 인간이기는 하다. 원래 이 양반이 중문이 몇 개인 저택에 살면서 농지가 백여 마지기, 그러니까 2만평을 가뿐히 넘었고, 방앗간 두 개, 기름집 하나를 가진 부르주아 지주였다. 이 할배 특기가 눈알 돌리기라서, 이제 땅이 많고, 집도 크고, 가게까지 몇 개 가진 사람들은 인간 축에도 끼지 못할 것임을 딱 알아본 거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부동산을 “유일한 친구”이자 칠현금 연주에 관한 한 전 중국의 일인자인 자오멍수에게 팔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자오멍수는 1955년 한여름에 처음으로 공개 비판을 당하고 집에 돌아와 초우蕉雨산방에서 음독자살했다. 그래도 자오시광 이 할배가 마을에서 가장 학식이 높아 자기 아들 창성, 손자 퉁빈한테 글을 가르쳤는데, ‘나’도 퉁빈의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우는 걸 모른 척해줬다. 다행히 자오시광의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성을 자기 대에서 마감을 해 아들은 보통사람, 손자는 정이 깊고 의리 또한 두터운 남자로 성장해 ‘나’와 평생 절친관계를 이어간다.

  ‘나’의 아버지 자오윈셴趙雲仙은 돌림자인 선仙 자 때문에 간혹 ‘신선’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대개 ‘자오바보’ ‘큰 바보’ 또는 ‘자오 큰 바보’로 불렀다. 왜 큰 바보냐면, ‘나’가 ‘작은 바보’니까. 그러나, 이제야 말하지만, 아버지는 점술가다. 세상에 바보 점술가 보셨어? 내가 예수를 믿지 않는데 하물며 점술가의 사술을 믿겠는가? 그래도 정상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좋은 의미이거나 나쁜 의미로) 현혹해 밥술이라도 먹으려면 여간 눈치가 재고 상황판단이 빨라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바보일 수 없는 법. 젊어서 아버지는 상하이 홍커우虹口에서 남방물품 잡화점에 견습생으로 일했던 적이 있다. 일 잘하고 있다가 상하이 최고의 점술가 다이톈쿠이의 눈에 들어 수하로 들어간다. 원래 사리판단이 빠르고 뭐든지 얼른 익히는 사람이라 다이톈쿠이의 점술을 퐁퐁 묻힌 스펀지가 돼지 기름기 빨아들이듯 해치웠다. 그런데 아뿔싸, 그냥 내버려 두지, 아버지 인생이 꼬이려고 그만 부농 아버지가 난징에 내려와 상점 점원 그만두고 집에 가서 장가를 들라고 명령을 해버린 거다. 이때만 해도 아버지 하는 말은 하느님 말씀이라 어기지 못하고 낙향을 하니, 그래도 똑똑하고, 못 배워서 교양은 없지만, 예쁘기는 겁나게 예쁜 젊은 아가씨가 집에 와 있는지라 엣다 모르겠다, 그 길로 장가들고 아이부터 만들었으니 그게 ‘나’ 자오바이위다.

  큰 도시 난징에서 남방물품 상점 점원이면 프롤레타리아라고 주장해도 하나도 이상한 거 없잖아? 근데 깡촌 루리자오에서 손바닥 만한 자기 농지를 소유했다고 부농이라 해서 공화국 생긴 다음에 있는 거 없는 거 다 빼앗기고, 하루 아침에 천한 출신성분이 되어 버렸으니, 동네 사람들이 바보 가운데 상 바보라고 놀리기 시작해서 그대로 혓바닥이 굳어버린 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연신 벙글거리며 도무지 열을 내지 않아 어린 ‘나’가 보기에 정말 바보 같기도 하고 그랬다. 소설은 섣달 29일에 시작한다. 옆 마을, 그래도 걸어가려면 한 나절이 걸리는 작은 어촌 마을 반탕에서 의뢰가 와서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길을 떠났다. 동네에 아름다운 아주머니가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산다. 이런 지 얼마 안 됐다. 올 한 해 동안 시아버지(나이 먹었으니 그냥 죽은 것이지만), 남편(북쪽으로 쌀 수송하다가 바람이 불어 배와 함께 난파), 큰아들(사연을 결코 알려주지 않음), 남자만 셋이 차례대로 죽어버리고 내 또래 작은 아들도 도무지 매가리가 없이 시들시들하다. 그리하여 혹시 하는 마음에 아버지를 부른 것. 아버지를 청하기 전에 반당사에 사는 중이 말해주기를 딸 춘친春琴에 문제가 있어 액이 쏟아지니 자기와 함께 절로 들어가 심부름을 하며 지내라고 한 적이 있단다. 춘친이 큰 액이었는지 반당사에 갑자기 불이 나고, 이 말을 꺼내 중도 함께 타 죽었다나? 묵묵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두려움과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에 혐오와 원망의 기운을 담아 바라보는 춘친을 지그시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아주머니와 속닥속닥. 다음날 아침 반탕을 떠나면서 아버지는 작은 소리로 내게 말해주었다. 춘친이 곧 우리 마을로 시집올 거라고.


  춘친이? 누구한테? 혹시 홀아비인 아버지한테 시집을 와 내 엄마가 되는 거 아냐? 겨우 다섯 살 많은 엄마. 아, 그러면 문젠데. 걱정하지 마라, ‘나’여.  루리자오촌에 못 생기고 나이 많이 먹은 총각이 하나 살았다. 빈농이었다가 아버지가 오래 가는 병에 들어 그나마 싹 거덜을 내고 숟가락을 놓더니, 시름시름 어머니도 뒤따라 갔다. 동네사람들이 의견을 모아 강 건너 외삼촌한테 보냈더니 며칠도 안 돼 바지도 입히지 않고 다시 강 건너 동네로 보내 버렸다. 자기 식구들 먹고 살기도 팍팍해서 안 되겠다나? 마을 사람들이 이 아이를 어떻게 하나, 다시 뜻을 모았더니 또 길이 생겼다. 동네 사당을 늙은이 하나가 지키고 있으니 그리로 보내 심부름을 하며 함께 살면 좋겠다고.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이제 동네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먹을 것도 남으면 보내주고, 입을 것도 보내주어, 숱한 아이들이 겨울에 입어보지도 못하는 솜바지를 이 아이한테 주기를 망설이지 않아, 아이는 오히려 기골 장대하고 튼튼하고 힘 센 천하장사로 성장해, 2부의 주인공이 될 자오더정.

  세상이 휙 뒤집어져, 현의 간부가 루리자오촌에 와서 촌의 대표를 뽑으라 성화했고, 촌에선 석 달이 지나도 뜻을 모으지 못했다. 급기야 현의 장이 직접 방문해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딱 결판을 봤다. 당신들이 원하지 않는 누구가 촌대표를 하고 싶은데 나서기 면이 없으니 직접 가마를 가져와 태워 대표로 앉히기를 기다리는 거 맞지? 아이고, 진짜 점술가는 여기 있었다. 그랬더니 속에 그런 마음 또는 욕심이 대창 속 지방 들이찬 듯했던 자오시광 영감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아니, 아니, 나는 그런 적 없소, 시뻘개진 목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현의 장은 그러면 가장 성분이 좋은 사람을 고르겠다, 제일 가난한 자가 누구냐? 해서 더 이상 얘기할 거 없이 자오더정이 한 순간에 촌 대표로 올라선 것.

  이때 한 여자가 발딱 일어서서, 일자무식한 자가 어찌 대표가 될 수 있겠소? 여태 가장 천했던 자가 남의 위에 오르게 되면 어떻게 공정한 일을 할 수 있겠소? 격에 너무 맞지 않으면 사람들이 진정으로 따르지 않으니 이게 문제가 아니오? 따박따박 따지고 들어 현의 장이 보기에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자오더정은 촌의 대표로, 발언한 여자는 현의 사무관으로 발탁해 데리고 가서 몇 달 교육을 시킨 다음 정식 촌 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때 자오바보, 점쟁이 자오윈센이 장가까지 들게 해주었으니 이 고마움이란. 자오더정은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나’가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아버지의 은혜를 잊지 않는 의리의 사나이였다.


  재미있다. 위화, 쑤퉁, 그리고 옌롄커 같은 작가들과 비슷한 주제인데 그들보다 톤이 훨씬 부드럽다. 가난과 폭력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인간 짐승의 모습을 발현하기도 하고, 인간 보살을 체현하기도 하지만 앞의 세 사람들보다 적나라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조씨 들의 집성촌 이야기라서 수다한 ‘자오’ 이름이 나와 많이 헷갈릴 수 있다. 다른 성씨의 중요 인물도 하필이면 ‘가오’ 씨라서, 이틀동안 내리, 자오, 가오. 가오, 자오 속에서 헤맬 수도 있다. 그런 건 다 팔자소관이니 각오하시고 읽어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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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30 04: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별점 다섯 개는 조금 과하고, 넷은 많이 아쉽다.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에리 데 루카, <라파니엘로의 날개>
화요일. 바실리 그로스만, <삶과 운명>
수요일. 베르톨트 브레히트, <마하고니 시의 번영과 몰락>
목요일. 더글러스 스튜어트, <먼고 해밀턴>
금요일. 하인리히 만, <충복>

stella.K 2024-08-30 1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 시리즈 괜찮은 거 같습니다. 읽을 책이 하도 많아 과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도전의식 생기네요. 표지도 맘에들고.
자오ㅡ각오. 라임이 진짜 각오하게 만듭니다. ㅎㅎ

Falstaff 2024-08-31 06:13   좋아요 1 | URL
시리즈 정말 괜찮아 보이는 데요? ㅎㅎㅎ
이 책은 정말 자오가 많아도 느므 많이 나와서 처음엔 무지 헷갈리더라고요.
기회 닿으면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