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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1 ㅣ 창비세계문학 98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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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2월 12일에 러시아 제국 영토이었던 우크라이나 베르디치프의 유대인 가정에서 이오시프 솔로모노비치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태어난 바실리 그로스만은 어린 시절 유모가 젖 아들인 그를 요샤Yossya(Vasily의 애칭)로 부르기 시작해 온 가족이 ‘바실리’라는 이름을 공유하게 된 재미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 세묜 오시포비치 그로스만은 화학자였다고 하는데, 그러면 바실리의 부칭은 솔로모노비치가 아니라 셰묘노비치가 되어야 마땅할 터. 조금 의문이 들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아버지 역시 당대의 지식인이었으며 당연히 러시아 혁명에 가담을 했으나 불행하게도 멘셰비키에 가담을 한 바람에 훗날 아들한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어 교사였던 어머니 예카테리나 사벨리예브나는 남편과 별거해 아들 바실리와 함께 제네바에서 몇 년 동안 함께 살았던 적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41년에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베르디치프에서 탈출하지 못한 어머니는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2~3만 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처형을 당했다. 이 정경은 <삶과 운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이론 물리학자 빅또르 빠블로비치 시뜨룸의 어머니 안나 세묘노브나의 일화로 등장한다. 바실리 그로스만이 국립 모스크바 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으며 대단한 공부벌레였다고 한다. 딸을 하나 얻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절친한 친구 보리스 구버의 아내 올가와 정분이 나 그들이 이혼을 한 1936년에 재혼한다. 1937년에 스탈린에 의하여 대규모 숙청이 일어났을 때 보리스 구버가 체포되고, 올가도 인민의 적을 고발하지 않은 죄로 체포되자, 이혼과 재혼 시기였을 때라서 무죄일 수밖에 없다며, 당시엔 아주 이례적인 경우로 감히 상부조직에 의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결국 석방을 시킨 대담한 성격을 지녔다. 하물며 감히 멘셰비키 족속의 아들이 말이지. 친구 아내와의 연정도 작품 속에 작가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나온다. 하긴 작품 속에 자신의 경험을 전혀 포함시키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바실리 그로스만은 징집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지원을 해 입대하고자 해서 붉은 군대 신문인 “붉은 별” 종군기자로 1천 일을 넘게 복무한다. 이 동안 모스크바 전투,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와 베를린 전투의 참상을 목격하고 기록한다. 이 가운데 2차 세계대전의 커다란 분기점이 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삶과 운명>의 주요 장면이다. 독일의 파울루스 장군은 1942년 7월에 돈강의 지류인 치르강에 도착해 붉은 군대를 공격하고 급기야 돈강을 건넌다. 스탈린은 모스크바에서 한 걸음도 퇴각하지 말 것을 명령하지만 한 달이 채 못 되어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에 접근해 도시를 고립시킨다. 이 즈음 해서 <삶과 운명>은 시작한다. 영화 <스탈린그라드>를 보신 분은 이 작품의 비극적 전쟁 장면을 이해하실 수 있을 터. 도시는 거의 폐허가 된 와중에 붉은 군대와 제국군대가 약 3백 미터의 간격을 두고 대치하고 있는데, 한 시절 고급 저택이었던 ‘6동 1호’ 건물의 지하실에서는 실제로 총 24명의 붉은 군사들이 58일 동안 독일의 격렬한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그로스만은 이 부대에 집중해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을 그리고 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외곽에서 반격을 준비하고 있던 전차군단은 깔미끄 족 출신 대령 노비꼬푸가 군단장을 맡아 훗날 한국전쟁에서 북한군의 주력 무기가 될 T34 탱크로 무장한 채 만반의 준비를 기하고 있었다. 전시에 대령이 군단장을 한다고? 그렇다. 노비꼬프의 출중한 전쟁 수행능력을 눈여겨본 예료멘꼬 사령관은 정보부 출신 네우도브노프 장군조차 노비꼬프의 지휘를 받게 만들었다. 이렇게 전투는 스탈린그라드 시내에서는 (지휘관이라 불리기 원하지 않는)그레꼬프가 관리인을 지칭하는 6동 1호의 극렬한 전투장면과 노비꼬프를 필두로 하는 무적의 붉은 전차군에 의한 우크라이나 수복까지 그리고 있다. 이 전투에서 각각 끄리모프와 노비꼬프, 두 명의 장교가 특별한 역할을 하지만 승리가 확정된 순간 이들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 두 명의 주인공이 공유점은 대단한 미인인 예브게니아 니꼴라예브나 샤뽀시니꼬바의 전남편과 약혼자라는 것.
<삶과 운명>이 전쟁 소설이라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지만, 이것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첨부해야 마땅하다. 하나는 나치에 의하여 저질러진 유대인 학살. 그로스만이 종군기자 생활을 하면서 폴란드 지역에 설치했던 절멸수용소 두 곳, 트레블린카와 마이다네크를 직접 목격했고, 트레블린카에서는 유대인 수감자로 구성되었으며 오직 조금 더 생존하기 위하여 같은 유대인의 희생자 처리 일을 했던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를 취재한 전력이 있다. 어머니가 절멸수용소에서 학살을 당하기도 했으니 20세기의 가장 불행한 역사를 건너 뛸 수는 없었을 터이다. 다만 작품의 첫 장면이 독일의 강제수용소인데 분명히 주인공 급으로 보이는 노 혁명가 미하일 시도로비치 모스똡스꼬이에 대하여 별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간략하게 각주를 통해 “이 소설의 전편인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에서 모스똡스꼬이는 레닌그라드가 독일군에 침공되자 그곳에서 빠져나왔다.”라고만 한다. 물론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레닌과 함께 혁명을 하고, 내전을 겪은 골수 볼셰비키이자 레닌주의자이다. 그가 왜 독일 수용소에 들어왔는지, 유대인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공산주의자라서였는지 도통 독자는 알 길이 없다. 1,360 페이지가 넘는 작품을 다 읽은 다음에야 작품해설을 통해 역자는 이렇게 말한다.
“포로수용소 생활을 하는 모스똡스꼬이가 아그리삐나와 운전사 세묘노프, 의사 레빈똔과 함꼐 8월 어느날 스딸린그라드 부근에서 독일군에게 체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편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 이 인물들은 모두 친숙하다. 전편 소설을 모르면 이 운전사가 모스똡스꼬이의 운전사라고 여길 수 있는데, 여기서 세묘노프는 모스똡스꼬이의 오랜 지기이자 혁명 동지인 끄리모프, 이 소설에서 중심적으로 다루어지는 샤뽀시니꼬프 가족의 막내딸 제냐의 전남편이자 당시 꼬미사르로 활동 중인 그의 운전병 세묘노프를 말한다.”
1952년에 출간한 전편 소설 <정의로운 일을 위하여>는 시간적으로 1942년 4월 29일부터 노비꼬프가 우랄지역에서 전차군단을 정비하는 시점까지라고 하나, 아쉽게도 이 전편소설을 읽어보고 싶어도 번역 출간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모든 독자는 <삶과 운명>을 읽는 내내 난데없이 등장하는 거물급 인물들의 정체에 전혀 친숙하지 않은 상태로 지나갈 수밖에 없다. 모스똡스꼬이가 제일 앞에 등장하는 문제의 인물이다. 독일 수용소 장면에서는 독자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경우가 다 등장한다. 수용소 내 공산주의 파벌 갈등, 죽음을 기다리는 유대인과 좀머코만도스의 갈등, 소련 포로와 누구인지 모를 스파이 간의 갈등, 그리고 여태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나치 추종자 지휘관과 볼셰비즘 찬양자 사이의 사상적 겨룸. 여기에 독일 수용소 장면에서 역시 처음 읽게 되는 탈출 모의까지. 윌리엄 홀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제17 포로수용소>는 보셨으리라. 그들이 수용소에서 탈출해 과연 안전지대까지 갈 수 있었을까? <삶과 운명>에서는 수용소 위치가 이들에게 익숙한 폴란드, 우크라이나 지역이고 언어까지 탈출자들과 통해서 가능했을 수도 있을 터였다.
<삶과 운명>은 여기에 국한하지 않는다.
1954년에 스탈린이 죽고, 1956년에 흐루쇼프에 의하여 스탈린 우상화는 끝을 본다. 그리고 3년이 더 흐른 1959년에 바실리 그로스만은 <삶과 운명>을 출판한다. 하지만 KGB는 곧바로 그로스만의 집을 가택수색했고, 그의 사무실과 은행 금고까지 털었으며, 작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원고와 심지어 타이프라이터에 걸린 잉크 테이프까지 걷어갔다.
아무리 스탈린이 죽었고, 그에 대한 우상화가 마감을 했다 해도, 소비에트 연방에 의하여 저질러진 집단 농장화와 1937년의 대대적 피의 숙청을 대놓고 질타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을 터이다. 집단 농장을 만들며 숱한 소수민족을 한겨울의 황야에 내팽개쳐 정말인지 과장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으나 수천만 명이 아사, 동사하게 만들었고, ‘편지교류 없는 10년 유형’이라는 독특한 총살형 및 교수형 선고는 소비에트 전 지역을 대화 없는 동토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도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유신시절 긴급조치 9호를 경험했던 바, 부모가 자식들 앞에서, 교사가 학생들 앞에서 끔찍한 수준으로 입조심을 하게 만들었다. 술김에, 농담으로 한 마디 했다가, 그 말이 비단 스탈린을 부정, 반대, 비방하는 의미가 아니었더라도, 들은 자가 스탈린과 볼셰비키 독재를 부정, 반대, 비방했다고 주장하며 당국에 고발하면 “의학이 허락하는 한” 모진 고문을 거쳐 결국 체제 전복을 꾀했다는 자필 서류에 서명을 한 다음 “편지교류 없는 10년 유형”을 선고 받아야 했던 시절을 강력하게, 아주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1959년 이후 소비에트에서 다시는 읽을 수 없는 책이 되어 버렸고, 1980년에 이르러서야 그의 친지가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한 원고를 스위스에서 다시 타이핑해 출판할 수 있었다. 5년이 더 흐른 1985년에 영어번역본이 나왔으며, 이전에 84년엔 독일어로 부분 번역 되었다고 한다. 체제 경쟁이 한창일 1980년대 초였다면 서구 반공권 입장에서 이 작품의 번역에 게으를 필요가 없었을 듯한데, 소련 사람이 쓴 작품이라서 그랬나 좀 아쉽다. 내가 반공주의자라서 아쉽다고 한 게 아니다. 이 책은 전쟁과 독일 수용소와 소비에트의 일인 독재만 다루지 않는다. 저 멀리 러시아 시절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러시아를 소개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세심한 심리묘사 역시 대단하다. 전쟁을 포함한 세계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역시 사람이다.
즐거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진짜 리얼리즘 소설. 아는 것이 별로 없어 이 소설을 “진짜” 리얼리즘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 있겠다. 스탈린이 죽었다고 해도 아직 공기 중에 소비에트 일당독재의 기압이 팽만해 있어 여전히 볼셰비키와 레닌주의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작가의 눈에 뜨인 문제점을 과감하게 드러냈다는 것만 가지고도 이 작품을 높은 위치에 놓아야 할 것이다. 이 때 말하고자 하는 “문제점”이 비단 체제나 체제의 운영에 대한 문제점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속에 쓸려가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그로스만은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
예를 들어, 전차군단장 노비꼬프는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끄렘린에서 직접 시달한 명령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군단에 총출동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지금 위대한 무기 T38을 몰고 포화가 한창인 지역으로 돌진하면 말 그대로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 자폭일 뿐이다. 그리하여 그는 무려 8분 동안이나 스탈린의 명령을 뭉개버린다. 이윽고 포격을 멈추자 누구보다 서둘러 크고 큰 외침으로 돌격을 지시한다. 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꼬미사르(정치위원) 게뜨마노프는 노비꼬프의 절묘하고 냉정한 결정에 감격해 키스를 날린다. 전차가 웅장한 굉음과 함께 진격을 하고, 게뜨마노프는 생각한다. “그래도 스딸린의 명령을 8분동안이나 지연시켰잖아. 그건 보고하지 않을 수 없지.”
다 마찬가지다. 핵의 척력과 인력에 관한 혁명적인 연구를 발표한 유대인 과학자에 쏟아지는 질투와 마타도어. 인류와 소비에트에 크게 공헌할 지도 모르는 연구를 볼셰비즘과 소비에트의 개념과 상충하는 개인적 관심사라고 혹평하는 것도 모자라 최소한 해임, 적어도 체포, 심하면 영구 퇴출하게 만들고자 하는 어제까지의 찬양자들. 언제 그들이 바라는 대로 비밀경찰이 문을 두드릴까, 밤과 낮이 없이 아무 죄 없이 노심초사하는 빅또르 빠블로비치 시뜨룸 등등.
이 책을 읽으며, 여차하면 <삶과 운명>이 폴로네이즈를 생략한 <전쟁과 평화>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다양하고 재미있다. 책 세 권을 다 읽고 역자해설을 훑으면서 역자 최선 선생도 똘스또이를 거론하는 걸 보며 은근히 어깨가 으쓱거리니 아직 나는 한참 멀었다. 하긴 어디 가려고 책 읽는 거 아니니까 멀었으면 어떠랴, 그냥 안 가면 되는 것이지. 하여간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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